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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산업 100년의 성쇠
한국제약산업의 100년사는 구한말 서양의학을 도입한 이래 한세기만에 '국산신약'을 탄생시킴으로써 '세계속의 한국 제약'을 새롭게 인식 시킬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하면서 선진제약으로 도약할수 있는 발판을 구축하는 눈부신 성과를 이룩해 냈다. 국내 제약산업은 이제 새천년의 21세기를 앞두고 국산신약을 양산하는 R&D 투자의 인프라 확대와 함께 선진제약의 궤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기업들과 생존을 위한 미래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제의 약업시장 석권속 국내 제약 태동
현대적 의미의 국내 제약업의 탄생은 구한말 일제가 국내 약업시장을 석권하고 있을 무렵인 1897년(고종34년·대한제국 광무1년) 동화약방(동화약품 전신)이 서울 순화동에 설립되면서 부터이다.
국내 최초의 제약은 당시 宣傳官 閔 浩가 왕립병원인 제중원에서 입수한 서양신약의 처방과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전래되어온 생약재를 혼합 처방하여 소화기관용약인 '引蘚丸'을 만들어 행상을 통해 유통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동화약방에서는 오늘날까지 한세기 동안 장수하고 있는 '활명수'를 제조 판매했으며, 이후 국내 제약업으로 정식 제조허가를 받은 것은 藥品營業取締令이 공포된 1912년이었다.
일제의 강점시기에 한국인들은 의약품 제조허가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았으나 유한양행·금강제약소·신흥제약소·경성신약·자선당제약소·삼성제약소등 설립 되면서 민족 제약기업들이 서서히 태동 되었다.
▲민족 제약기업의 잇따른 설립
우리나라 제약업체로 화학합성의 효시는 의사인 전용순사장이 이끌던 금강제약소로 기록되고 있으며, 1935년 산발산의 합성을 시작으로 머큐로크롬, 설파민제등이 시도 되었다.
유한양행은 1934년 독일의 도마크박사가 발명한 설파제 '프론토질'을 도입하여 서양의 우수한 신약을 도입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신흥제약소는 1939년 우에무라제약에서 근무했던 서울약학전문학교 출신인 차상철씨가 설립하여 포도당주사약, 증류수주사약등을 생산하여 호평을 받았다.
경성신약사도 주사제 전문 메이커로 1939년 주세환씨가 설립하여 포도당주사약등 수십종의 주사약을 생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자선당제약소는 1929년 조선약학교와 동경약학교 출신의 김일영씨가 설립했으며, 강장제 '삼용토니크'를 생산 일본과 만주에 진출하여 크게 선풍을 일으켰다.
삼성제약소는 1929년 조선약학교 출신인 김종건씨가 설립했으며, 일반 신약제제 30여종을 허가받아 의욕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혼란과 시련을 딛고 새출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우리나라 제약업의 역사는 부활 되었다. 8.15이후 혼돈이 계속된 가운데 미군의 진주이후 제약업계에는 커다란 변혁을 몰고왔다. 당시 보급된 '다이아진'과 '페니실린'은 만병통치약으로 통할만큼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고 무상으로 배급 됨으로써 해방후 제약업이 재정비 되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혼란속에서도 제약업 대표자들은 조선약품공업협회를 결성하고 1945년 10월 26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제약업계는 일제와 미군정때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해방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의 혼란과 미군의 군수의약품 범람과 원료난으로 삼중고를 겪었다.
▲의약품 국산화의 기반조성
6.25는 명맥을 유지하던 국내 제약기업의 생산기반을 초토화 시켜 환도후 잿더미 속에서 새출발 해야만 했다. 국내 제약공업은 제1차 경제개발 계획이 시작된 1962년 이전에 수입대체 공업으로 전환되어 의약품의 국산화 기반이 서서히 구축되었다.
동양제약이 미국 머크사와 제휴로 1958년 항생제를 생산 시판 했으며, 한독약품이 독일 훽스트사와 기술제휴를 맺어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어 의약품의 국산화 기반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완제약품의 수입은 56년을 고비로 국내 제약기업의 생산활동이 활기를 띠면서 급격하게 줄어 들었으며, 원료약품이 66만불에 불과한데 비해 완제약품은 531만불이 수입되었다. 그러나 57년부터 436만불, 58년 302만불, 59년 312만불, 60년 278만불로 감소했다.
제약부문은 다른 분야와 달리 급속한 국산화가 이루어졌는데, 제약기업들의 생산기반 확충과 수입억제 정책이 뒷받침 되면서 의약품 국산화의 기반이 조성되었다.
▲기술제휴와 합작투자
60년대이후 국내 제약산업은 다국적 제약기업과의 기술제휴와 합작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도약기를 맞아 비약적인 성장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제3공화국이후 경제정책이 성장체제로 지향 되면서 제약산업도 고도성장이 추진 되었다. 이과정에서 메사돈과 불량항생제 사건이 발생 하면서 행정규제가 강화되어 제약업도 재정비 되는 계기를 맞았다.
국내 제약업소중 가장 먼저 외국의 기업과 기술제휴를 체결하고 외국 상표를 붙인 제약회사는 한독약품. 이때만해도 외국 메이커와 원료제공 및 기술제휴를 맺는데 법적 뒷받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업체간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60년 1월 1일 정부의 '외자도입법'이 제정되어 합작투자와 기술제휴가 활성화 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한일약품이 서독 '바이엘'사, 국제약품이 이태리 '레펫티트'사, 유한양행이 미국 사이나미드사와 기술제휴를 체결 하는등 제약업의 국제화 기반이 서서히 조성되었다. 한독약품이 64년 독일 훽스트사와 국내 최초의 합자기업으로 전환된이후 85년까지 모두 31개의 합작기업이 설립되어 제약산업이 서서히 개방체제로 전환 되었다.
정부가 81년 6월 고시한 외자도입법은 외자기업이 합작을 통해 국내시장에 진출할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함으로써 국내 제약산업은 개방화의 파고에 휩쓸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제도정비와 고도성장시대 구가
60년대 후반은 국내 제약업계가 외국의 선진제약 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고도성장의 기틀을 다진 도약기로 평가되었다.
부정 마약 메사돈사건과 불량항생제 사건은 업계에 상당한 진통을 안겨 주었으나 결과적으로 국내 제약수준을 한단계 높이 끌어올렸으며, 무분별하게 산재해 있던 제약업소와 허가품목수를 일제히 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수 있다.
이러한 환경전환으로 66년 의약품 총생산액이 90억원 규모를 기록했고, 70년에는 338억원을 기록하여 5년동안 평균 30%이상 고도성장을 실현하는 도약기를 맞았다.
제약산업의 지속적 성장은 70년대 전반부에도 계속 이어져 연평균 34%의 성장률을 시현했으며, 이러한 성장추세는 일찍이 제약업계가 경험하지 못한 경이적인 성장으로 기록되었다.
▲드링크시대의 개막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타민제도 제형이 드링크제로 바뀌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바로 비타민과 미네랄에 강장제를 추가한 '기타의 자양강장변질제'가 선보여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국내시장에 드링크 붐을 일으킨 것은 '단발구론산'과 '동인구론산'이 새로운 개념의 내복액 타입으로 발매되어 과감한 대중광고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이어 동아제약이 사운을 걸고 63년 8월 '박카스디'의 제조허가를 받아 발매하여 드링크의 대명사를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고 오늘날에도 부동의 매출순위 1위를 지킴으로써 동아제약을 국내 제일의 제약기업으로 도약시킨 효자품목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GMP 도입과 기반조성
우리나라는 74년 자문위원으로 GMP 프로젝트팀을 구성하여 조사·연구를 진행시켰다. 보사부는 제약업계가 품질관리를 자율적으로 실시하도록 함으로써 우수의약품 생산기반을 조성하려는 목적아래 이제도를 추진했다.
미국에 이어 일본 후생성이 75년 4월 'J-GMP'방안을 마련하여 단계적 절차를 거쳐 79년에 의무화 하자 이에 자극을 받아 보사부는 77년 3월 KGMP를 제정, 고시했으며, 84년 7월 GMP 제도가 도입되어 90년대 들어서는 의무화 되어 220여개사가 적격업소로 지정되는등 국산의약품의 품질관리시대를 본격화 시켰다.
▲국제화·개방화의 시대 개막
국내 제약산업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개방화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장개방으로 선회함에 따라 국제화시대의 궤도에 진입하게 되어 수입·자본자유화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에따라 외자기업들의 합작투자가 활기를 띠면서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수 있는 약업환경이 조성된 가운데 국내 제약기업들도 경쟁력을 갖추지 않되는 체질개선이 불가피 해졌다.
83년부터 단계별 수입자유화 조치가 이루어져 85년에는 원료약품이 97.2%, 완제약품이59.6%의 개방율을 기록했으며, 88년이후 극히 일부 제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면적인 수입자유화시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성장기에서 산업구조 조정기로 전환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로 이어진 10여년의 세월은 국내 제약업계로서는 중흥기를 맞았던 시절이었다. 양적인 성장과 함께 선진국의 신약들이 국내시장에 상륙하여 제약 생산의 기틀을 마련 했다. 그러나 80년대이후 수입·자본자유화 조치이후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구조조정기에 들어가 개방화 시대에 적응하면서 재도약의 기회를 엿보았으며, 물질특허제도가 87년 7월부터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다국적 제약기업들의 국내시장 진출이 가속화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90년대에도 계속 이어지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구조를 무한경쟁구조에서도 생존할수 있는 체질로 바꾸어 나갔으며, 신약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세계화 경영에도 동참하는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들은 기술제휴나 합작투자의 제휴관계를 청산하고 21세기를 두고 직접적인 투자로 독자적인 경영권을 확보하여 국내시장의 무차별 쉐어확장에 나서 국내 제약기업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외자기업들은 풍부한 자본력과 우수한 제품력, 선진화된 마케팅력을 축으로 삼아 본격적인 국내시장 잠식에 들어 감으로써 2000년이후에는 국내기업의 생존을 크게 위협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원료산업의 발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약업계는 원료약품 국산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의약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원료산업의 자립은 필연적인 과제였다.
국내에서는 54년부터 일부 제약회사가 기초적인 원료약품을 생산하기도 했지만 국제적인 수준과는 현저한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 외자도입법이 공포되면서 자본자유화의 기반이 조성되면서 일부 업체들이 기술제휴·합작투자로 원료약품을 수입하여 단순한 제제기술을 바탕으로 완제약품을 생산하기 시작 함으로써 의약품 생산기반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원료 중간체를 수입하여 최종 공정의 화학반응을 실험하거나 정제하는등 설비가 적게 소요되는 원료약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구루타민소다·식카린·디아스타제 등 기초적인 원료들이었다.
이후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수시장이 큰 항생제·해열진통제등 원료약품이 제제와 합성기술의 진일보로 국산화 되어 수입품을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특허를 피하기 위한 새로운 제조공정의 제법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수준의 향상 노력에 힘입어 기초물질은 거의 합성단계에 진입할수 있었으며, 70년대 후반부터는 합성기술의 눈부신 향상으로 원료산업의 고부가가치 새장을 열게 되었다.
▲물질특허제도 도입의 국제적 압력과 지적재산권 파고
본격적인 개방기에 들어선 국내 제약산업은 85년 1월 16일 벽두부터 국제의약품특허협회(INTERPAT) 대표단의 방한을 계기로 국내 제약업계가 우려했던 물질특허 도입의 국제적 압력이 거세게 밀려왔다. 그러나 국내 제약업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87년 7월부터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되어 신약개발의 불모지대였던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지적재산권의 회오리에 휘말려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리기 시작했다.
물질특허제도의 전격적인 도입은 국내 제약기술의 예속화를 가져온 굴욕적인 통상외교의 양보로 엄청난 타격을 가져왔다.
당시 신물질이나 제제개발 능력이 없는 국내 제약산업으로서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통상압력에 밀려 수출정책의 희생양이 되었으며, 이후 EU·일본·스위스등 제약선진국에 대해 '파이프라인 프로덕트'의 지적재산권을 허용하고 특허기간을 연장해주는 도미노 현상을 가져왔으며, 물질특허의 도입으로 국내 제약산업은 다국적 제약기업들의 절대적인 영향권에 놓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물질특허제도의 도입은 한편으로는 국내 제약기업들이 신약개발과 지적재산권의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뒤늦게 나마 R&D 투자에 눈길을 돌리는 계기도 되었으나 선진국의 집요한 통상압력에 힘없이 밀려 형평성이 결여된 유례없는 양보로 국내 제약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95년부터 WTO체제의 출범으로 본격적인 무한경쟁시대가 본격화 되어 국내 제약산업의 입지를 크게 약화 시켰다. 96년 7월부터 시행된 특허법개정안은 다국적 제약기업들의 특허가 또다시 연장되어 96∼98년 사이에 특허가 만료되는 제제의 개발을 완료한 국내 제약기업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이후에도 선진국의 지적재산권 확대를 위한 통상압력이 줄기차게 강화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 정부의 경우는 걸핏하면 국내 법규와 관행을 무시한채 '슈퍼301조'의 발동을 위협하면서 자국의 다국적 제약기업의 이익을 위해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99년들어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지원아래 압력을 가해 수입의약품의 보험약가 등재를 실현하는등 다국적 제약기업들의 본격적인 치료제시장 확대가 가속화 됨으로써 정부채널을 통한 선진국의 지적재산권 확대 압력이 본격화 되고 있다.
▲KGMP기반확충과 제도정착
정부는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의약품의 생산시설과 품질관리 수준을 향상 시키기 위한 KGMP 제도를 조기에 정착시키기 위한 목표를 설정했다. 이에따라 보사부는 매년 KGMP 적격업소 지정을 확대했으며, 우대조치로 의약품 가공수탁업제도를 신설하여 '제3자 소유의 시설 및 기구이용범위'(고시85-18호)를 제정하고 KGMP 업소에 대한 국검 면제의약품범위도 설정하여 별도로 고시했으나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KGMP제도는 90년대들어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보사부는 92년부터 KGMP 의무화 방안을 마련, 미실시 업소에 대해 행정제재를 단계적으로 취하는 방안을 마련, 제도정착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따라 KGMP 의무화 시한이 94년 5월 20일로 확정 고시되었고 이후 전면적인 KGMP 제도 정착에 나서 우수의약품 생산기반 구축과 품질경쟁 시대를 개막하기에 이르렀다.
▲신약개발 인프라 조성
보사부는 물질특허 도입과 개방시책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환경이 급격히 바뀌자 87년을 전후하여 신약개발 기반을 조성하기 시책을 마련하고 시행에 들어가 90년대 중반까지 진행 됨으로써 국산신약 개발의 인프라 조성에 커다한 밑거름이 되었다.
보사부는 89년 신약개발 기반조성을 중장기적인 정책과제로 추진하기 위해 '신약개발 정책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제약업계·학계·연구소·정부 관계자들이 참석하는등 본격적인 인프라 조성에 나섰다. 이에앞서 86년 신약 및 기존 의약품의 안전성 평가에 필요한 '의약품 안전성시험관리기준'(KGLP)을 보사부 고시 86-41호로 제정 했으며, 87년에는 '임상시험관리기준'(KGCP)을 입안예고한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도보완을 거쳐 90년을 넘기고 제정되어 신약개발의 뒷받침 하는 여건을 조성했다.
보사부는 94년부터 국내 임상시험 실시를 의무화 하고 임상시험 실시기관 지정을 위한 기준제정과 약효군별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마련 했으며, 87년 제정되었으나 여건미비로 보류되어온 KGCP제도의 시행에 들어갔다.
이후 신약개발을 위한 인프라 조성은 제약업계의 기대만큼 만큼 진전되지 못했으나 국산신약이 개발되는 환경구축에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그러나 신약개발에는 막대한 개발비와 연구기간이 소요 된다는 점에서 R&D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임상시험센터 설립등이 조속히 실현 되어야 할것으로 요청되고 있다.
▲국신신약 1호의 탄생의 R&D 투자의 미래
국내 제약업계는 80년대 후반부터 물질특허 제도의 도입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신약개발에 착수하여 인프라 조성과 함께 제약선진국으로 발돋움 하기 위한 거보를 내딛었다.
정부의 간접적인 지원과 각 제약업소의 R&D 투자로 경영난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10년간 매출액의 4%를 개발비로 투입하는 수준까지 향상시켜 21세기 미래경쟁력 강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드디어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SK케미칼과 SK제약에 의해 20세기 대미를 장식하는 99년 7월 국산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주'가 탄생하는 쾌거를 이룩했으며, 계속해서 제2호, 제3호의 탄생이 임박 함으로써 국내 제약업계의 R&D 투자는 제약선진국을 노크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국산신약의 탄생은 앞으로 계속해서 '세계적인 신약'이 양산될수 있는 시금석이 되고 있으며, 마케팅의 국제화 전략에 따라서는 제약선진국으로 발돋움 하는날도 멀지 않았다는 점에서 21세기 첨단 유망산업으로 평가되는 제약산업에 거는 기대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LG등 국내 기업과 다국적 제약기업과의 전략적 제휴에 의한 R&D 투자가 21세기의 벽두인 내년도에는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한국 제약산업이 제약선진국으로 진입 하는것은 시간문제로 이미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앞으로 국내 제약기업들의 신약개발은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기업과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절대절명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정책적인 뒷받침과 함께 제약기업의 과감한 R&D 투자가 지속 되어야 할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강희종
1999.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