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Ⅰ. 현재 실태 - 병의원 밀집약국
의약분업의 수혜자로 인식돼오던 병·의원 밀집약국들도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일반약 매출 감소 등으로 경영위기에 직면해있다.
병·의원 주변 약국들은 분업 초기만 해도 특수를 톡톡히 누렸으나, 최근 몇 년간 약국간 입지전쟁에 따른 처방분산, 일반약 매출 감소 등을 겪으며 수입이 큰 폭으로 줄고 있는 것.
특히 재고약 누증에 따른 경영악화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나, 이에 따른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어 약국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처방건수 50여건 급감…매출 20% 이상 감소
서울시에 소재하고 있는 A 약국은 주변에 시장상권이 형성돼 있고, 반경 200m안에 소아과·내과·산부인과 등 의료기관 12곳이 밀집해 있는 동네약국과 의료기관 밀집지역 약국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하루 처방건수는 약 100여건. 의약품은 약 700~1000여종을 구비하고 있다.
"최근 들어 경기침체 여파가 상당합니다. 분업초기만 해도 하루 150~200여건은 소화했는데 최근에는 처방건수가 50여건 이상 감소했습니다."
A약국 B약사는 분업 시행이후 치열한 입지전쟁이 시작된 이후 자연스럽게 처방건수가 감소한 데다가, 경기불황 여파로 약국매출이 전년대비 약 20%정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의약품 구비현황에 대해서는 "의약품을 얼마나 구비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약들이 사용되지 않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A약국은 약 700~1000여종의 의약품을 구비해놓고 있지만 사용되지 않는 의약품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원 90%이상이 처방변경
"재고약 누적은 누구나 다 알다시피 의원들의 잦은 처방변경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제 약국만 하더라도 의사들의 처방변경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B약사는 주변 의료기관 12곳 중에 1곳을 제외한 11곳의 의료기관이 3개월~6개월 간격으로 처방변경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처방변경이 재고약 누증의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약사에서 처방을 내는 의료기관에 로비를 하게되면 그 이후에는 어김없이 처방이 변경된다는 것이 B 약사의 지적이다. 게다가 처방변경을 하는 의사들에게는 할말이 없다. 의사와의 관계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
"처방변경이 잦아지니까 당연히 약국에서는 구비해야할 의약품들이 늘어나는 것이죠. 웬만한 약국에서는 아마도 동일성분 의약품 십 수종은 다 구비하고 있을 겁니다"
△세파계 항생제만 20종 구비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 수십 종을 지속적으로 구비해야 하는 부담, 말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B약사와 직접 조제실에 들어가 봤더니 문제는 생각보다 심했다. 일례로 조제실 안에는 세파계 항생제만 시럽제를 제외하더라도 20여 제약사에서 출시된 제품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거의 대부분 의약품이 채 30%도 사용하지 못한 채로 진열만 돼 있는 것. 의원들이 처방하는 세파계 항생제가 수시로 바뀌다 보니 20여종 이상씩 의약품을 구입해야만 했다는 것이 B약사의 설명이다.
처방이 바뀔 때마다 의약품을 계속 구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결국 재고약 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일성분이면 1~2가지만 사용하면 되는데 구조적으로 안됩니다. 제약사는 제약사 나름대로 열심히 자사 제품을 의사들에게 홍보해야 하고, 의사들은 그럴 때마다 처방을 바꿉니다" 세파계 항생제 뿐만 아니었다. 조제실에는 소염진통제 성분인 탈니 플루메이트 제제 역시 18종 이상 구비돼 있다. 타이레놀 성분은 10여종이나 됐다.
동일 성분 의약품 20여종씩 구비 '남는게 약'
주변 의료기관 12곳 중 11곳이 처방변경
생동인정품목만이라도 사후통보 규정 삭제해야
게다가 최근에는 노바스크 제네릭과 아마릴 제네릭이 쏟아지면서 약국은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A약국은 노바스크 제네릭이 4종이나 구비돼 있었다. 아마릴 제네릭은 더욱 많았다. 1~2곳의 제약사 품목이 처방되지 않다 보니 고스란히 약국이 다 구비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떠안고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만 있을 때는 필요 없던 의약품들이 제네릭이 쏟아지면서 가지수는 늘어나고 재고약은 쌓이고 또 쌓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동일성분 의약품을 10~20종 구비하고 있는 경우는 A 약국만 하더라도 약 10~15가지는 족히 됐다. 문제는 소진을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불용재고약 규모를 물어보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불용재고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처방이 나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처방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수십 종의 의약품을 구비만 해놓고 처분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약국 현실이 나와 동일할겁니다." 불용 재고약 규모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B약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방변경에 따른 재고약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으니, 아마도 불용재고라 함은 유효기간이 지난 약 정도가 되지 않을까라는 답변이다.
△고가의약품 재고는 더욱 문제
"한 알에 2,000원 정도 하는 고가 의약품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부담입니다. 이런 약들은 100T 짜리만 구입해도 가격이 20만원이나 됩니다. 그야말로 약국의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혈소판응집억제제인 A제제는 한 알에 1,000원정도 하는 고가의약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고가 의약품들이 그대로 재고로 남는다는데 있습니다. 사용빈도가 적기 때문입니다. 근데 가끔 단골환자들이 처방을 들고 오는 경우가 있어 약 구비를 안 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고가약 재고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B 약사는 이트라코나졸 제제 등도 상당한 고가의약품임에도 불구하고 제약사 5~6곳에서 출시하고 있는 제품을 다 구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은 약국의 경영압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B약사는 한 알에 500원 이상 하는 고가의약품의 경우 A약국에만 약 15~20여종이 된다고 말했다.
△반품은 무슨 반품
반품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직거래 제약사의 반품은 어느 정도 수용이 되는 데, 도매거래의 경우 반품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A약국 B약사의 지적이다.
그리고 문제는 반품은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또 다시 반품한 의약품이 처방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반품할 엄두가 안 난다는 설명이다. 1~2년 전에 서울시약사회에서 대규모로 반품정산 작업을 진행했지만 그 사업에 대한 인식 역시 약사들에게는 안 좋은 기억이다. 약사들이 무슨 구걸하는 것처럼 반품해달라, 정산해달라 하니 자존심이 상당히 구겨졌다는 것..
특히 유효기간 지난 의약품의 경우 낱알반품이 안되기 때문에, 사실상 반품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생동인정품목이라도 사후통보 면제
"재고약 누적은 지극히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적극 나서주지 않으면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약사가 담당해야 할 약의 선택권이 의사에게 있으니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분명처방이 가장 좋은 제도이기는 하나, 상대단체의 강력한 압력으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데다가, 대체조제 또한 사전동의 사후통보 조항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소포장 생산 또한 근본적으로 재고약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체조제를 하면 할수록 의원들의 처방변경은 더욱 심해진다는 설명이다. 약국과 환자 약국과 의원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대체조제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조금은 현실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B약사의 설명이다.
"최근 뉴스를 보니까 생동성 인정품목이 2,500품목에 달하고 있더라구요. 생동성 인정품목이라도 사후통보 규정을 없애도록 강력히 제도화한다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급박하게 제도를 확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순차적으로 대체조제 확대를 위한 기반 조성에 나서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B약사의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B약사는 "환자들에게 복약지도를 잘하고 약에 대한 전문성을 살리면서 환자들에게 존경받고 싶은데, 분업 이후 약국의 현실은 약사라는 직능을 그저 단순한 기술자로만 전략시키려 하고 있다."며 "무엇보다도 약사직능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우선돼야 할 과제"라고 주장했다.
가인호
2004.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