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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디지털 혁명과 초국적 문화자본을 향유할 N세대의 예술”
밀레니얼 세대가 향유하는 예술의 가시화된 성격은 장르 간 경계 및 중심과 주변의 해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에는 디지털 혁명과 초국적 문화자본의 다각화, 수용자 계층 및 예술 유통의 다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이러한 컨텍스트의 종합적 유형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탈구조적 행위성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고급·저급 문화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진 소통과 융합의 시대 속에서 순수예술의 영역은 ‘전문화×대중화’라는 콜라보의 가치를 통해 삶과 문화의 경계를 종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새로운 기획에 대한 요구는 정형화에 대한 반항, 상대성과 다원성의 강조, 미술·음악·무용·연극 등이 전통과 현대라는 시공간적 제약을 가로질러 공존하는 것이다. 우연적인 가독성과 장르 혼성의 퍼포먼스는 우리를 다원예술(Interdisciplinary Art) 분야에 주목하라고 손짓한다.
N세대와 다원예술의 등장 배경
밀레니얼시대로 대표되는 ‘네트워크 세대=Net 세대’를 우리는 ‘N세대’라고 부른다. 이에 대치되는 용어로 X세대가 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나 경제적 혜택과 문화적 혜택을 동시에 누린 이들은 컴퓨터에 익숙한 첫 번째 세대로 통한다. N세대는 인지능력이 생길 때부터 컴퓨터와 친숙하고,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말 그대로 SNS라는 가상공간을 삶의 중요한 무대로 인식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비대면 수업을 통한 인터넷의 활용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공연감상은 물론 다양한 취미활동까지 유튜브를 활용한다. 디지털 기반의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세대 간 편견 배제, 탈 이데올로기와 확장된 성(Gender)에 대한 이해 등도 이러한 자율적 사유를 확산시켰다.
이렇듯 다름을 향한 ‘차이’의 강조는 중심과 주변을 아우르는 예술형식들과 다종의 페스티벌, 대안예술의 정착을 통해 삶과 예술을 연결시키는 공공예술 등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창작-감상의 위계질서 역시 해체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최근 공연과 시각예술을 아우른 다원예술의 강화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현대예술문화 전 장르 간의 상호교류를 근간으로 한 실험적 예술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원예술은 예술의 탈순수성, 탈물질화, 다문화적 공공성을 통해 형식주의와 내용주의의 측면을 통섭시킨 21세기형 대안예술의 한 형태인 것이다.
다원예술의 현황과 발전 가능성
다원예술이 예술현장에 등장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낯설고 새로운 이 개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축제, 공간, 매체 등에 등장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다원예술의 창작과 발표를 지원하는 지원제도 및 민간·공공기관들도 확대되었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원의 이름을 떼고 새롭게 재편되면서 다원예술 소위원회가 설치된 것도 이러한 지원확대를 반영한 결과이다. 초기 다원예술의 개념이 기존 문화예술 개념적 틀에서 소외된 영역을 포괄하는 용어였다면 오늘날 다원예술에 대한 정의는 장르의 다양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한 탈장르·복합장르·새로운 장르·비주류·문화다원주의·독립예술 등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의 확립에는 2010년대 전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최한 다원예술 관련 자료집과 학술대회들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책과 지원이 활성화된 2020년의 시점에서는 이에 대한 학술적 발언이 중단된 상태이다. 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다원예술분야 지원 창작성과 공유 및 확산(2009-2012)의 사업이 종료된 후 2013년 4월 발표된 『다원예술의 현황과 전망연구』라는 자료집 발간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 지원사업의 특징은 초기보다 뒤로 갈수록 신진단체보다 전문단체의 수가 증가했고 매체실험성은 증가했지만 가치지향은 감소 추세를 보였다. 이는 다원예술이 지원금과 지원정책의 향방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다원예술에 대한 밀도 있는 지원이 필요한 오늘날 정책적 발언이 답보 상태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예술경영의 확대와 전문적인 기획자들에 의한 거리극 축제 등이 기관 산업 주도로 이어지면서 순수 예술가들의 수준 높은 시도로까지 확대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기관 주도 미술관에서 행해지는 일부 프로젝트성 행사를 제외하고 공연예술 주도의 다원예술은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아트와 콜라보한 공연예술은 이미 많은 범주에서 행해지고 있지만 문학적 스토리텔링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연주도의 예술’은 실험적인 시도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다원예술은 전문화되고 대중화 돼야 한다. 장르를 가로지른 신선한 기획이 수출할 만한 한류 컨텐츠 등으로까지 이어지기엔 현장열기와 민관(民官) 지원이 아직 미지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국형 디지털 뉴딜을 이끌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은 것처럼, ‘N세대’가 향유할 공연예술의 신선한 기획은 다층의 크로스오버를 통한 수준 높은 다원예술 기획을 통해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원예술 기획에 대해 "하나의 관점, 정형화딘 형식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초과와 불일치를 드러내는 과감한 시도"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다원예술은 전시의 부대행사로 인식된다. 이미지는 2019 서울관 <광장; 미술과 사회 3부, 2019> 다원 프로젝트.
<필자>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0-08-14 1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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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언제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이다. 잠잠해질만 하면 들려오는 코로나 소식은 우리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생활의 변화를 온 몸으로 체감하며 회사나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나 학교 뿐 아니라 코로나 사태로 인한 생활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분야는 예술계가 아닐까 싶다. 연극, 콘서트, 전시 등 예술은 공연장을 직접 방문해야 즐길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니 물리적 거리두기 실천에 많은 제약이 생긴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못 하도록 권고 받고 있고 설사 공연을 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듬성듬성 앉아 공연을 본다. 관객석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로의 소극장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 결국 공연장과 기획사들이 파산 신청을 하기에 이르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이번 칼럼에서는 세계 경제 대국이자 문화의 중심, 미국의 현 상황과 그들의 대처방법을 살펴보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AMERICAN FOR THE ARTS의 예술 지원
현재 미국은 우리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와 더불어 흑인 폭동까지 겹쳐 전체 경기 성장률이 둔화되었다. 경기 침체는 문화 예술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96%의 공연이 취소되었고, 94%가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뉴욕의 메트 오페라, 카네기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등은 내년 1월까지 모든 실황 공연을 중단하기에 이르렀고, 자연스럽게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사라지게 되었다.
예술가와 단체 모두 경제적 위기에 처하자 미국의 American for the Arts(AFTA)가 예술계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AFTA는 National Assembly of Local Arts Agencies와 American Council for the Arts, Arts & Business Council Inc.가 합병되어 예술을 지원하는 비영리 기구로 건강하고 사회를 위해 예술이 모든 사람들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받고자 노력하고 있다.
AFTA의 최근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성과로는 정부 지원 기금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지원하고자 지속적인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것을 들 수 있다. 설문 조사에는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 물리적 거리두기가 예술 종사자들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이 포함되어 있어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를 파악하고 실용적인 대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실제로 AFTA는 조사 결과를 적극 활용하여 예술가들의 필요사항을 파악하고 Artists Relief 기금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참고 : Artists Relief기금은 코로나19 사태에 필요한 재정과 정보 자원을 미국 전역의 예술가들에게 제공하기 설립된 비상 단체이다.) AFTA 대표 Robert L. Lynch는 “예술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며 지금이야말로 예술이 그동안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을 되돌려 주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어려울수록 예술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굳이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이 창의적인 경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의 돌파구이자 현실생활에서의 능률향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 창의성이다. 예술은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며 예술을 접할수록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진다. 코로나 사태에 필요한 경제위기 극복 아이디어 역시 예술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예술의 힘을 들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욱 집중하고 이타심을 발휘할 여유가 부족해진다. 이때 함께 예술을 접하고 나누는 기회를 가진다면 자연스럽게 상황에 대한 조망, 타인을 위한 배려심, 따뜻한 마음이 발현될 것이다. 병원에서 예술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러한 이치이다. 또, 펜실베니아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도시의 활발한 예술 활동은 시민 참여도를 높이고, 사회적 화합을 통해 아동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며, 이는 낮은 빈곤율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술을 피부에 녹이고 예술을 통한 창의력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교육과 함께 하는 예술’이다. 음악, 미술, 문학 교육을 통해 얻은 창의성과 그 능력은 언제 어디에서건 반드시 빛을 발한다. 교육을 통해 예술을 제 몸처럼 접한 아이들일수록 타인에 대한 높은 공감과 위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극복하는 힘이 생겨난다고 나는 믿는다.
코로나로 인해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든 국내외 예술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 속에 예술을 녹여내기 위해 고분고투 중이다. 바로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서이다. 하지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수익 창출이 아직 어려운 상태이다. 코로나19가 계속 되면 공연, 전시를 언제 다시 재개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니만큼 즉각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AFTA에서도 “예술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며 지금이야말로 예술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것을 되돌려 주어야 할 시점”라고 강조하고 있다. 모두를 위해, 특히 다음 세대의 우리 아이들이 ‘예술’이 없는 척박한 사회에서 살지 않도록 우리만의 방식으로 건강하게 ‘아름다움’을 지켜나가야 할 때이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2020-08-07 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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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영화평론가가 될 운명이었을까. 용돈을 모아 처음 산 카세트테이프가 ‘시네마천국’(1988,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OST였다. 시칠리아섬의 이국적인 풍광,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던 이탈리아어, 영화관에서의 사건사고들과 선남선녀의 첫사랑을 담고 있던 ‘시네마천국’은 청소년기 나에게 또렷하게 각인되었고 그 음악을 반복해 듣는 것은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머릿속에서 되살려 곱씹는 나름의 의식과도 같았다.
영화는 유명 영화감독 ‘살바토레’(마르코 레오나르디)가 자신의 친구이자 멘토였던 ‘알프레도’(필립 느와레)의 부음을 듣고 수십 년 만에 고향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살바토레의 플래시백은 그의 천진난만했던 유년기와 첫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청년기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선명하지는 않아도 분명히 존재했던 한 시절, 그 빛나는 청춘의 순간들이 이제는 중년이 된 살바토레 위에 겹쳐진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빛바랜 필름처럼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희미한 이미지의 조각들일 뿐이다.
‘시네마천국’을 관통하는 정서는 바로 그 아련함이며 영상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밀착된 음악은 관객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엔진과도 같다. 그만큼 ‘시네마천국’을 본 사람들이라면 음악 없이 영상을 떠올리기는 어렵다. 아니, 그 영상은 기억할 수는 있어도 거기에 짙게 묻어 있는 향수(鄕愁)까지 소환하기는 어렵다.
나이차를 뛰어 넘어 우정을 나누는 두 남자의 모습에 나오는 경쾌한 왈츠풍의 ‘토토와 알프레도’, 살바토레가 매일 ‘엘레나’의 집 앞을 지키는 신에서 깔리는 ‘러브 테마’의 애잔한 선율은 그 장면을 이끌어가는 투명한 캐릭터 같은 존재다.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연출도 부족하지 않지만 ‘시네마천국’을 전설로 만든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초창기에는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았던 엔니오 모리꼬네는 웨스턴, 갱스터, 스릴러,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천재적 재능을 펼쳤던 작곡가다. 그의 음악에는 잔혹하고 자극적인 장면도 미학적으로 격상시키는 우아함이 있다. ‘석양에 돌아오다’(1966), ‘황야의 무법자’(196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 ‘미션’(1986), ‘벅시’(1991), ‘러브 어페어’(1994) 등에서 흘러나왔던 테마는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익숙할 만큼 미디어가 사랑하고 소비해왔던 음악이다. 이처럼 엔니오 모리꼬네는 시대를 넘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멜로디로 유명하지만 전자 기타, 휘파람 등을 클래식 악기와 접목시키고 현실의 사운드까지 음악에 포함시키는 등 음악적 실험도 멈추지 않았다. 현대의 영화음악이 음악의 완결성보다 영상의 톤 앤 매너를 강렬하게 뒷받침하는데 중점을 두면서 엔니오 모리꼬네나 존 윌리엄스가 창조해낸 것만큼 유명하고 익숙한 스코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언컨대, 이들의 자장 아래 있지 않은 현대 영화음악 작곡가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난 7월 6일, 엔니오 모리꼬네는 9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갔다. 영화음악으로 수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던 그가 있는 곳은 어디든 시네마천국이 아닐까. 삭막한 세상을 아름다운 예술혼으로 촉촉이 적셔주고 간 거장의 안식을 빈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침묵을 깨는 것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위하여,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등장했을 때 이야기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언론사인 폭스뉴스는 트럼프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길까 노심초사 한다. 그런데 간판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과 여자관계를 문제 삼는 사건이 터진다. 이에 트럼프는 인정도 반성도 하지 않고 SNS를 통해 메긴을 맹비난한다. 폭스뉴스측은 대중들에게까지 위협을 당하는 메긴의 일신을 걱정하면서도 트럼프를 건드린 데 대해서는 불편해한다. 한편, 폭스뉴스의 또 다른 진행자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자신을 부당하게 해고한 회장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를 성희롱 혐의로 고소한다. 그레천이 또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운데, 메긴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갈등한다. 하비 와인스타인으로부터 시작된 할리우드의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 일이다.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감독 제이 로치)은 그레천의 르포에 메긴과 가상인물인 ‘케일라’(마고 로비)를 등장시켜 만든 작품이다. 공공연히 여성들을 상품화하고, 성희롱을 서슴지 않았던 로저 에일스의 만행은 구역질이 날 정도지만 그가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는 결말부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피해자들의 연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나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는 그레천의 책 제목처럼 침묵을 깨는 용기야말로 세상을 바꿀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비단 여성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부당한 처우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0-07-31 14: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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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배고플 때 명연기가 나온다”라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지독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냈던 예술가들을 떠올려보면 이 말에 왠지 고개가 끄덕여 지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가난이 예술을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가난이 한 예술가의 창조성을 방해한다고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술가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예술성을 마음껏 발휘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1809년 베토벤이 그의 몇몇 후원자들과 맺은 연금 계약서의 한 부분은 이러한 전제를 뒷받침합니다. “오직 걱정거리들로부터 해방된 사람만이 위대하고 숭고한, 그리고 예술을 고귀하게 만드는 작품들을 창조하며…” 이와 같은 생각은 틀림없이 예술가에 대한 후원을 예로부터 계속 이어져 오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후원을 통해 후원자 혹은 그 가문의 명성이 높아지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베토벤(1770-1827)에게 후원자들의 존재는 그의 일생동안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1792년 고향을 떠나 빈으로 온 젊은 베토벤이 음악계에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애썼으며 경제적인 도움도 주었지요. 베토벤이 애초에 빈에 갈 수 있었던 것도 후원자 덕분이었습니다. 이것이 베토벤이 일생 동안 경제적인 후원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빈에서 만족스러운 수입을 올렸던 시기도 분명 있었지요. 예를 들어 1801년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은 “작품들이 많은 수입을 안겨주었다”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빈에서 이렇다할 직책을 갖지 못했던 베토벤에게 후원이 갖는 중요성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많은 베토벤의 후원자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을 꼽으라면 리히노프스키 공작(F. K. Lichnowsky, 1761-1814)과 루돌프 대공(J. J. R. Rudolph, 1788-1831)을 들 수 있습니다. 리히노프스키 공작은 베토벤이 빈에 자리잡은 때부터 1806년 경까지, 그리고 루돌프 대공은 1809년부터 베토벤이 사망할 때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이들은 베토벤에게 연금 형식으로 정기적인 후원을 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리히노프스키 공작은 1800년부터 매년 600 플로린을 베토벤에게 지급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연금은 둘 사이의 불화로 관계에 금이 가고 말았던 1806년 혹은 그 이듬해까지 지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악학자 게크에 따르면 당시 궁정 오케스트라 단원의 연봉이 400 플로린이었다고 하니 공작의 후원금은 상당한 규모였지요.
이 연금이 끊기고 나서 경제적으로 타격이 있었던 베토벤에게 1808년, 큰 기회가 찾아옵니다. 독일 카셀의 궁정 악장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이지요. 연봉은 약 3000 플로린에 이르렀습니다.
평생 이런 직책을 꿈꿔온 베토벤에게 이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고 그는 당연히 이 제의에 긍정적이었는데 베토벤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몇몇 후원자들이 뭉칩니다. 루돌프 대공, 롭코비츠 공작(F. J. M. Lobkowitz, 1772-1816), 그리고 킨스키 공작(F. F. J. N. Kinsky, 1781-1812)은 베토벤에게 매년 4000 플로린을 지급한다는 연금 계약을 1809년에 성사시키지요. 조건은 단 하나, 베토벤이 빈에 계속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금으로 베토벤의 삶은 경제적으로 훨씬 나아질 것만 같았지만 불운은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오스트리아가 1811년 국가 부도를 맞아 화폐 가치가 심하게 떨어졌으며, 킨스키 공작이 1812년 말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롭코비츠 공작이 파산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당연히 연금 지급에 문제가 생겼는데 오직 루돌프 대공만이 4000 플로린 중 자신에게 할당된 액수를 계속 지급하지요. 이 때, 베토벤은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해가며 결국에는 연금을 정상적으로 받아내는 집요한 모습도 보입니다. 1815년부터 다시 정상적으로 지급된 연금은 베토벤이 죽을 때까지 이어집니다.
베토벤과 후원자들의 관계에서 흥미로운 것은 그들을 대하는 베토벤의 태도입니다. 헌신적이었던 주요 후원자들에게 베토벤은 당연히 감사했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이 되거나 자신의 독립성이 결여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들이 관찰됩니다. 후원자들에게 그저 음악 만드는 사람으로만 여겨질까 고심한 흔적이 편지에서 보이기도 하고요. 그가 후원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것을 자주 거부했던 것에는 이러한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리히노프스키 공작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당시에, 베토벤이 그에게 남겼다는 메모에는, 베토벤의 높은 자존심이 드러납니다. “세상에는 수천 명의 귀족이 존재하지만, 베토벤은 오직 저 하나뿐입니다.”
음악학자 게크는 “베토벤의 창작이 오스트리아 귀족의 도움 없이도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은 만용이다.”라고 했습니다. 후원자들에게 베토벤은 그의 많은 작품들을 헌정했지요. 그들의 이름은 베토벤이 남겨 놓은 위대한 작품들과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0-07-31 1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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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추억이 생생하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던 나 홀로 첫 여행. 유학을 마친 뒤 멋지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어디를 제일 먼저 가보고 싶냐던 질문에 내 대답은 주저 없이 브로드웨이였다. 거대 전광판에 화려한 불빛,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타임스 스퀘어를 시원하게 가로지른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 이 특별한 추억으로 가득한 공간을 서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월드클래스 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42nd Street)’가 한국 초연 24주년을 맞아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어느덧 17번째 시즌이다. 남경주, 황정민, 박해미, 류정한, 옥주현 등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거쳐 간 작품답게 이번 시즌 출연진 역시 믿고 보는 배우들로 가득하다. 뮤지컬 입문작으로도 익히 알려진 만큼 단순한 전개, 유쾌한 퍼포먼스, 눈부신 의상과 세트에 그 흔한 악역 하나 없는 캐릭터까지 두루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를 다 갖춘 작품이다. 실제로 작품이 상연되고 있는 샤롯데씨어터에 들어서면 세대나 성별 구분 없이 다양한 관객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뮤지컬계 스테디셀러 대표작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그만큼 긴 역사를 자랑한다. 미국 소설가 겸 각본가 브래드포드 로페스의 원작 소설(1932년 작)을 바탕으로 1933년 영화로 먼저 제작됐고, 뮤지컬은 1980년 뉴욕 윈터가든 극장에서 초연됐다. 그리고 같은 해 토니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아 뮤지컬 최우수 작품상과 안무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국내에선 1996년 호암아트홀 라이선스 초연 이후 2016년 리바이벌 버전을 선보이며 변함없이 꾸준한 인기를 누려 왔다.
작품은 극중극 ‘프리티 레이디’의 제작 과정을 그린다. 브로드웨이 최고 연출가 줄리안 마쉬가 새로운 뮤지컬을 제작한다는 예고와 함께 본격적인 막이 오르고 곧이어 오디션 준비에 한창인 배우들이 보인다. 이때 관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대 위 ‘다리’로 향한다. 독특하게도 이 작품은 포스터와 음원 커버, 심지어 포토월에서조차 작품 속 무용수들의 길게 뻗은 다리를 유독 강조한다. 참신한 전략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배경엔 어떤 사연이 담겨있을까.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배경이 된 1930년대 미국은 전례 없는 대공황으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어렵게 쌓아 올린 자본주의의 뿌리마저 흔들릴 위기에 처했으나 이를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뮤지컬 또한 마찬가지다. 스토리라인만 두고 본다면 앨런타운 출신 무명 코러스 걸 페기 소여가 우연한 기회로 작품에 합류해 결국 주연으로 발탁되어 뉴욕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전형이지만 절대 단순하지만은 않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단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집중하지 않는다. 작은 파랑새가 화려한 날갯짓을 시작할 때 그의 곁엔 든든한 동료들이 있었다.
어쩌면 서로 가장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순간이나 공연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작품 속 인물들은 좌절하거나 주저앉기보다 미소 띤 얼굴로 계속해서 춤추기를 선택한다. 굳건한 의지와 희망의 상징과도 같은 두 다리는 그 모든 것을 버틸 힘이었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힘차게 바닥을 차고 오르는 모습은 재즈풍의 경쾌한 스윙 음악과 심장을 두드리는 탭 사운드와 어우러져 크나큰 감동을 선사한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의상에 날아갈 듯 가벼운 몸짓,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황금빛 탭댄스의 향연을 보다 보면 어느새 다리로 리듬을 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작품에 등장한 모두의 이야기는 요즘 우리 일상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다 같이 꿈의 무대를 완성해내는 과정은 힘겨운 버티기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커다란 용기를 준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침체기를 맞이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어쩌면 정말 장기전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쇼는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 역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가끔은 삶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지친 일상에 잠시나마 활기를 불어넣어 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와 함께 희망찬 발걸음을 내디뎌 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바로 당신이니 말이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0-07-31 0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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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뮤지컬의 노래를 ‘아리아’라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아리아는 일반적으로 오페라에 등장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는 ‘뮤지컬 넘버(Musical Number)’라는 말을 쓴다. 음악이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로 쓰이기에 뮤지컬에서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감히 비할 데가 없다. 뮤지컬을 감상하고, 되새김 하는데에도 뮤지컬 넘버 만큼 효과적이고 강력한 매개체가 없다.
이 칼럼에서는 국내외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뮤지컬과 그 속의 뮤지컬 넘버를 통해 감상을 극대화하는 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칼럼 타이틀로 쓰인 ‘커튼 콜(Curtain Call)’은 공연에서 막이 내린 뒤 관객들이 무대에 대한 찬사의 의미로 환성과 박수를 보내는 것을 말한다. 영상과 달리 라이브로 구현되는 무대, 무대니까 가능한 예술가와 관객이 함께 이뤄내는 최고의 순간이다. 모쪼록 행복한 공연과의 만남에 바람직한 길라잡이가 되길 바란다.
유령이 살고 있는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
뉴욕 타임즈에 한국 공연가 소식이 대서특필됐다. 코로나 19의 팬데믹 상황을 뚫고 안전하게 막을 올리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한국 투어 공연 관련 뉴스다. 어떻게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뉴노멀에 대응하며 공연을 지속하고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인 영국의 거물급 공연기획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서방 세계도 K방역의 노하우를 익혀 어서 공연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남겼다.
2020년 현재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고 있는 곳은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특별한 비법이나 신으로부터의 축복 탓은 아니다. 오히려 철저한 방역 대비와 각각의 공연장 및 배우, 관객에 대한 정보 확보 및 데이터 쉐어, 그리고 경우의 수에 대한 물샐 틈 없는 대응이 ‘기적’을 가능케했다. 아닌게아니라 요즘 관객들 사이에서는 공연장엔 조금 일찍 도착하는게 에티켓이라는 무언의 약속도 존재한다. 방문 데이터를 좌석 위치에 맞춰 기입하는 개인신상정보 제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IT 강국 답게 QR코드나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자동화 시스템도 꽤나 원활하게 활용되고 있다.
사실 공연장에서 감염 확산은 이뤄지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공연장 출입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돼있고 손 세척, 열 감지 카메라 운용 등 공공장소에 대한 방역시스템이 철저히 지켜지는 이유도 있지만. 서로 마주보지 않고 무대쪽 한 방향만 바라보며 말을 하지 않고 관극환경이 방역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오히려 공연장보다 식당이 더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음식을 먹고 마실 때 마스크를 벗고 동행자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원칙과 주의만 잘 지켜진다면 공연장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요인만 제외하면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뮤지컬 공연장에서 감염이 확산된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다. 반대로 확진자가 발견된 적은 있다. ‘오페라의 유령’에 참여했던 미국 배우 2명이 부산 공연이 끝나고 서울 공연이 있기 전, 고국인 미국에 다녀와 서울 개막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주최 측은 재빠르게 다른 배우 및 스탭, 방문 관객에 대한 전수조사와 잠정적인 공연 중지를 이행했고, 그 결과 PCR 검사에서 전원이 음성으로 확인돼 감염 사례는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는 다행스런 결과를 얻었다.
발열자에 대한 해프닝도 있었다. 하반기 개막을 준비 중인 뮤지컬 ‘킹키부츠’의 연습실에서 한 참가자가 발열 증상을 보였다. 관계자들은 재빨리 이 정보를 다른 공연 단체와 공유했고, 이들의 동선을 추적해 접촉자에 대한 격리 조치를 시행했다. 다행히 발열을 보였던 배우는 PCR 검사에서 음성으로 드러났고, 공연계는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발열자의 등장이 한국 공연계가 얼마나 철저하고 빠르게 대응하며 정보를 효과적으로 공유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계기가 됐다는 언론지상의 평가도 등장했다.
뮤지컬 공연계를 중심으로 캠페인도 시작됐다. 바로 ‘컴백 스테이지’다. 규칙적이고 정례화된 공연장과 객석에 대한 방역, 배우 및 스탭을 대상으로 한 ‘바이러스 프리’ 환경 조성 그리고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 공개 및 공유를 통한 비상체계가 마련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뮤지컬 공연을 찾아달라는 몸짓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K 방역의 노하우와 자신감이 공연계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지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앙코르로 불려지는 커튼콜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인기 배우의 독창이나 대표적인 프로덕션 넘버를 멋지게 다시 보여주던 과거와 달리, 배우 전체가 합창으로 노래하거나 감동의 눈물까지 더해 객석을 울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전대미문의 천재지변 같은 코로나 19 상황이지만 ‘무대는 계속 돼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는 예술가들의 불굴의 의지가 투영된 탓이리라. 공연과 예술이, 뮤지컬이, 무대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는 존재로 다시 되돌아오길 간절히 꿈꿔본다.
삶의 고난과 뜻하지 않은 질병이 우리를 힘들게 할 순 있어도, 인간의 정신,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존엄성을 뺏어갈 순 없다. 이 어려운 시기에 다시 무대를 되돌아봐야 하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0-07-21 1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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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예술생태계, 이전과 전혀 다른 생산-소비가 이어질 것이다!”
선진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방역실패와 돈 풀기,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들, 실제 코로나 이전과 다른 문화와 사회활동이 이미 우리 삶을 뒤덮었다. 급작스레 직면한 언택트(untact·비대면) 시대로의 진입은 문화예술의 지형도를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공연 및 시각예술 현장은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을 통한 새로운 기회를 모색했고, 유‧무료 컨텐츠의 다각화는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예술 활동과 가치 발굴에 기여하면서 국내 예술계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문화예술계의 변화양상
지난 6월 18일자 국민일보의 ‘손영옥의 컬처 아이’에 따르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수도권 국공립 문화예술시설에 대해 2주간 시행했던 휴관 결정을 다시 무기 연장키로” 한 정부 발표에 대해 “룸살롱은 되고 미술관·박물관은 안 된다니, 이건 무슨 고무줄 잣대인가.”라는 시민들의 반응에 주목하였다. “온라인으로 관람을 대신하는 동안 ‘방구석 미술관’ ‘랜선 공연’ 등의 신조어 속에서도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보완재일지언정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는 권준욱 중대본 본부장의 정례브리핑의 말이 현실이 된 셈, 생활방역 속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와 만난 것이다. 전 세계를 포위한 바이러스와의 전면전은 인류 문화사의 큰 변곡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누려온 문화생활들, 오리지널 공연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은 이제 ‘온라인’ 환경 속에서도 모색해야 한다.
밀레니얼 시대 이후 영화 관객 수는 최저치를 기록했고, 상반기 예정됐던 연극‧뮤지컬‧발레‧클래식 공연의 상당수도 무기한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규모 기관의 홍보담당자들 SNS에는 훌륭한 공연이 방치되는 현상에 대해 안타까운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 일부 소규모 전시를 제외한 대다수의 미술관‧박물관은 지난 5월 잠시 오픈하는 듯 했지만 이태원발 코로나 확산이후 무기한 휴관을 선언했다.
문화예술의 감동은 관객과의 호흡이 필수다. 대체방안으로 취소된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 콘서트는 ‘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유튜브 방탄TV)가 대신했고, ‘SAC On Screen–백건우 리사이틀’과 ‘피아니스트 조성진 온라인 독주회’를 향한 호평도 쏟아졌다.
그러나 문화예술은 컨텐츠를 기반으로 한 수익활동이 있어야 다음을 기대할 수 있다. 선순환구조가 막혀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문화예술 전문가들은 하반기 공연업계 역시 상반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무관중 생중계와 박물관과 미술관의 가상현실(VR) 전시, 동영상 공연 등이 오리지날 관람을 대체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스템의 출연에 낙관만 할 상황이 결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 문화예술의 생존을 위한 수익 구조의 구축이기 때문이다.
전망, 공연예술계의 향후 과제들
이곳저곳에선 공연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공연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들은 많지만 집중도를 요구하는 공연예술의 특성상 관객이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홀로 보는 집콕 랜선’은 해외단체 및 수준 높은 뮤지션들의 공연과 가까워질 기회를 제공했지만, 포스트코로나 이후 높아진 관람객들의 수준을 잡기 위해 일반 공연단체들의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는 인식까지 낳았다.
‘온라인 공연시장의 확산’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가? 오프라인 공연처럼 좌석별 금액을 산정하지 않는 이상 온라인 공연은 선착순 한정판매 혹은 평생 소장, 고음질 다운로드 등 ‘넷플릭스’와 같은 대규모 영상시스템의 경영방식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거대 자본의 투입에 따라 랜선공연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록용이 아닌 온라인을 위한 미디어마켓의 확산, 랜선 플랫폼의 강화 등 공연촬영에 대한 질적 요구도 개선돼야 한다.
대중음악 장르들과 국악‧서양음악‧시각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다원예술의 발전은 기대할 만하다. 참신함과 친근감을 중시하는 온라인의 대중화는 새로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장성이 전달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는 여전하다. 이를 스포츠 중계와 비교한다 해도 티켓판매로 충당되는 공연예술의 성격상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작품들에 많은 비용을 소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많은 관객들이 찾는 현장성 있는 생생한 공연은 거대자본의 플랫폼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공연예술은 신선한 해석, 새로운 경험이 만들어내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기획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길은 새로운 감수성을 탑재한 우수한 콘텐츠의 개발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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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0-07-17 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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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
필자는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직업을 가진 여성이며 동시에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이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어떻게 길러주어야 할까’ 이다.
우리와는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그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것이 바로 대인관계 지능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학교, 학원에서 시험을 치며 본인들의 레벨이 어디쯤에 있는지 검사 받기 바쁘다. 영어학원이나 수학학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레벨 테스트를 받고, 그 성적에 따라 부모와 아이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아이들이 영어나 수학 학원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까. 음악을 배우면서도 정기적으로 콩쿠르에 나가서 본인의 수준을 검증받고 그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입시에 성공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게 부지기수다. 우리 교육은 ‘창의성’을 키운다는 예술 장르인 음악이나 미술에서조차 경쟁의식과 줄 세우기가 우선인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은 레벨 테스트 받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와 나는 다른 존재이므로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기본 사회적 배려심을 체득하기도 전에 ‘잘해야 한다. 나는 너를 이겨야 한다’를 배운다. 생활비를 아껴 아이들의 장래와 행복을 위해 시킨 교육들이 아이들을 오히려 행복과 멀어지는 곳으로 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대회’와 ‘성과’ 지향적이지 않은 교육기관(학원)과 문화예술단체들도 있다. 하지만 부모들의 불안과 조급함이 아이들을 다시 대회지향적인 학원으로 데려다놓고 만다.
어떻게 하면 적어도 예술을 접하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하게 배움을 체험 할 수 있을까. 예술교육에 몸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참에 제대로 알아보자는 마음에 공부 해 온 외국의 여러 사례들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먼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세계 최고의 지휘자 중 하나인 사이먼 래틀이다. 사이먼 래틀은 ‘How to Build an Orchestra'라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을 직접 소개한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곳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다. 번스타인 청소년 음악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그래미 16회 수상에 빛나는 데이비드 포스터가 사회를, 레너드 번스타인의 딸 제이미 번스타인이 나레이터로 참여한 어린이 콘서트는 예술교육에 쏟는 뉴욕 필하모닉의 열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작곡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들이 오선지가 아닌 그림을 그려 작곡을 하는데 이 때 아이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음악교사들이 옆에서 지원한다.
미국 정통 클래식 공연장인 카네기홀에서는 교육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책임까지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예를 들어 유치원 대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에서는 각국의 동요를 음악회를 통해 접하면서 다문화 가정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또 어린이 음악회 자료(교사를 위한 지침서, 어린이를 위한 지침서 등)도 웹싸이트를 통해 전세계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그 밖에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만2세부터 만19세까지 연령대를 세분화 해 7개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렇듯 세계적인 주요 예술 단체에서는 오피니언 리더 격인 유명인사들이 어린이 예술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 중요성을 알린다. 프로그램은 예술가, 교육가, 행정가가 함께 많은 고민과 연구 끝에 기획하며 아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인 내가 봐도 재미있다. 이제 예술단체에서의 공연기획 트렌드는 스타급 예술가를 초청하는 것만큼이나 교육 콘서트 기획에도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 사회적 흐름에 부응해 우리의 문화 예술 단체들도 예술로 인해 사회가 성숙해질 수 있도록 힘을 쏟았으면 한다. 공공 문화 예술 단체에서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예술교육에 무게감을 두고 공연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간다면 사교육 시장에 만연한 ‘콩쿠르’ 와 ‘성과’ 중심의 교육도 점차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적극적으로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활용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질 높은 예술 교육을 접할 수 있을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 질 것이다. 예술을 예술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숨 쉴 수 있는 휴식처가 아닐까.
‘창의성’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 그 생각이 존중받을 때 길러진다. 다름을 인식하기 이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사고 방식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두렵고 낯설다. 노래 부르기, 악기 연주하기, 춤 추기, 그림 그리기, 글 쓰기 등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즐기는 모든 유희는 자신의 생각을 예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명의 아이가 모두 ‘산토끼’ 동요를 부르더라도 아이마다 다른 목소리와 느낌으로 부른다. 음악이라는 도구를 통해 ‘다른 생각’을 언어보다 좀 더 쉽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른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야말로 창의성이 피어나는 씨앗이다. 예술을 통해 너와 내가 ‘다르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존중을 배우고 오롯한 즐거움을 느끼는 때가 늘어난다면 더불어 살 수 있는 성숙한 사회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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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2020-07-07 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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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판소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리꾼과 북치는 사람인 고수, 단 두 사람만 있으면 공연이 가능한 세상에서 가장 미니멀한 음악극이다. 조선 시대부터 광복 이후까지,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사랑을 받았던 장르다. 청중을 두루 만족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보완하고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며 발전하다 보니 오늘날에는 상당한 공력을 들여야 즐길 수 있는 예술이 되었다.
이야기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장단을 알아야 한다, 완창 판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판소리 감상법 가운데에는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배경지식이나 사전 준비 없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판소리 어디 없을까?
판소리 수궁가
판소리 수궁가는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에 나온 별주부, 자라의 이야기다. 동물이 주인공이고 서로 속이고 속는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라 우화적이고 해학적인 장면이 많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는 대중음악 연주자들과 소리꾼들이 의기투합한 팀이다. 그들의 정규 1집 「수궁가」는 판소리 수궁가의 재미난 노랫말과 판소리 본연의 흥을 잘 살린 곡들로 빼곡하다. 네 명의 소리꾼이 드럼, 베이스 등 악기 반주에 맞추어 편곡한 판소리 눈대목(주요 대목)을 노래한다. 반복되는 노랫말과 리듬이 금방 귀에 익는다. 타이틀곡 ‘범 내려 온다’에 현대 무용을 가미해 만든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와 댓글 수를 늘려가며 인기몰이 중이다. 이 곡은 토끼를 찾아 육지에 당도한 별주부가 토끼를 발견하고 ‘토 생원’ 하고 부른다는 것이 그만 ‘호생원’ 하고 발음하는 바람에 호랑이가 자길 부르는 줄 알고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노래했다.
수궁가를 모티브로 한 곡으로, 김덕수 사물놀이패 음반에 실린 ‘토끼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사물놀이와 독일 재즈그룹 레드선의 연주에 안숙선 명창이 부르는 ‘토끼 잡아들이는 대목’을 더한 곡이다. 수궁에 잡혀 온 토끼가 위기를 모면하려 ‘나 토끼 아니오’ 외치며 꾀를 내는 장면인데, 토끼의 임기응변을 익살스럽게 표현해내는 대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1995년에 나온 곡이지만 20여 년의 시차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현대적인 감각을 자랑한다.
판소리 춘향가
청춘남녀의 연애담을 그린 판소리 춘향가는 대중에게 친근한 레퍼토리로 드라마나 영화, 창극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또 춘향가에는 사랑가, 이별가, 쑥대머리 등 잘 알려진 곡들도 많다.
광고 음악, 드라마 OST로 유명한 에스닉 퓨전밴드 '두번째달'이 소리꾼들과 합작한 앨범 「판소리 춘향가」는 ‘판소리 입문 음반’으로 꼽힌다. 원곡의 노랫말이나 장단 등을 살리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게 편곡한 열네 곡을 소리꾼 김준수와 고영열이 불렀다. 춘향가에서 자주 불리는 대목에 북 장단 대신 유럽의 민속 악기들이 반주를 맡아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다.
이중 사랑가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랑가’, ‘세상 감미로운 판소리’라는 평을 듣는다. 고영열이 내는 저음의 부드러운 음색과 경쾌한 두번째달의 음악이 시너지를 일으킨다. 원래 판소리에서 사랑가라 일컫는 대목을 이 음반에서는 ‘만첩청산’과 ‘사랑가’ 두 곡으로 나누어 놓았다. ‘만첩청산’이 아주 느린 장단으로 다음 세상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는 내용을 노래하는 한편, ‘사랑가’는 그보다 빠른 장단에 알콩달콩 대화하는 형식으로 노래를 이어간다.
덧붙여 닮은 듯 다른 곡으로, 두번째달이 영화 <소리꾼>의 주연 배우인 이봉근과 협연한 ‘사랑가’와 JTBC 팬텀싱어에 출연한 고영열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불렀던 ‘사랑가’도 비교해 들어볼 만하다.
판소리는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이자 유네스코가 인정한 문화유산이지만 제대로 들어보거나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용에 따라 어떤 장단과 선율로 노래하는지, 지역 혹은 유파에 따라 음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판소리 명창들의 계보는 어떻게 이어지는지 등등. 파면 팔수록 재미있어지는 그러나 초심자로서는 철벽을 뚫어야 하는 장르가 판소리다.
쉬운 길도 없지만 정답도 없지 않을까? 판소리에 오늘의 감성을 입힌 음악들을 즐기다 보면 판소리 한 자락을 부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브레히트부터 헤밍웨이, 마르께스까지 세계적 거장들의 명작을 가져다 참신한 창작 판소리로 만들어내는 이자람의 공연에 매료되면 판소리 공연 마니아가 될 수도 있다. 소리판에서는 제대로 들을 줄 아는 관객을 ‘귀명창’이라 하여 대접하는데 그 귀명창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는 완창 소리판 입성을 꿈꾸어 봐도 좋겠다.
최소 3시간 이상이라는 완창 판소리를 감상하며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추임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귀명창들 틈에 끼어 앉아 꿈인 듯 생시인 듯 판소리에 빠져들다 보면그 뒤야 뉘가 알리 더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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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0-07-06 1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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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막스 리히터의 비발디 사계
비발디 <사계> 만큼이나 '듣게 되어지는' 클래식 곡이 있을까. 곡 제목처럼 사시사철 라디오, TV,광고,백화점 등 어딜가나 흘러나오니 원하든 원치않든 듣게되는 곡. 명곡이기도 하지만 너무 흔해져버린 탓에 식상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비발디 사계를 과감하게 현대인의 입맛으로 '다시 작곡한' 한 남자를 주목해볼 만 하다. 바로 막스 리히터(Max Richter)라는 인물. 그는 2012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된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Recomposed)'라는 앨범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클래식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히 전에 없었던 참신한 편곡이라는 이유로는 충분치 않다. 바로크 시대 비발디 원곡의 본질과 리히터 자신만의 참신한 선율과 코드, 트렌디한 미니멀리즘과 리듬의 변칙적인 재구성, 게다가 전자악기까지 탑재한 현대미가 조화를 이루며 드라마틱한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막스 리히터는 어떤 인물인가. 1966년생, 독일 태생의 영국작곡가로 실험적인 전자음악을 선도했던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에게 사사했다.스승의 영향 덕분에 리히터는 관현악 악기와 전자음악의 자연스러운 결합에 능하며 스티브 라이히와 필립 글래스의 뒤를 잇는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요즘 힙한 네오클래식 작곡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게다가 클래식을 넘어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셔터 아일랜드> 등 영화음악에 손을 대며 외연을 확장시켜 팬층도 넓은 작곡가다. 특히 영화<셔터 아일랜드>와<어라이벌>에 등장하는 'On the Nature of Daylight'라는 곡은 그의 히트곡으로 JTBC 뉴스룸 엔딩곡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친숙하다.
사실 TV다큐, 드라마,영화의 음악을 맡으며 종횡무진 활약했던 그가 올드(old)한 비발디를 골라 '재작곡' 하겠다는건 의외의 행보다. 게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으로 불리우는 사계라니. 어느 분야나 리메이크는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왠만큼 잘하지않고는 본전도 못 건진다는 건 주지의 사실.하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석권하며 보란듯 성공시켰다.
무엇보다 리히터가 비발디 원곡의 DNA를 남겨두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 NPR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이 오리지날 원곡과 자신이 작곡한 음악의 '적절한 분배'였다는 리히터. 비발디 음악의 75퍼센트를 날려버렸다지만 리히터의 봄·여름·가을·겨울 속에는 비발디 음악의 본질이 여전히 살아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계 중 <가을>의 예를 들며 "음악에 변화를 준 건 사실이지만 비발디가 작곡한 '음'은 건드리지 않았다"며 비발디 고유의 음악적 언어는 남겨두었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자르고 붙이는 기법, 루핑, 시간을 늘이고 음악을 뒤집는 기법 등 컴퓨터로 가능한 모든 작업들을 적용했다." 리히터가 바로크 음악을 기초로 컴퓨터 작업방식을 적극 활용했으며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보수적인 클래식계의 회의적인 시선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와 현재가 이질감없이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솔리스트로 참여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는 <가을>에서 비발디가 작곡한 네 마디를 기초로 리히터가 반복적인 루프기법을 사용했음을 언급하며 "1725년 비발디 음악을 재료삼아 최고의 미니멀리즘 작품을 완성시켰다"고 극찬했다. 흔해져버린 비발디의 식상함을 불식시켜버린 작업이 아닐까. <봄>의 첫 시작부분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처음 들었을때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전자음이 과해서 원곡의 본질을 훼손하거나 너무 급진적이진 않을까?
곡 전체를 들어 본 결과 기우에 불과했다. 아쿠스틱 악기와의 고른 배합을 위해 분량이나 다이나믹에 신경 쓴 흔적과 더불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 삽입된 전자음을 통한 '엠비언스'적 효과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가오며 원곡과 어우러졌다. 늘 과거에 머무르기 쉬운 클래식에 건강한 자극이랄까.
과거를 가져와 현대와 조화롭게 접목한 리히터. 영국 가디언지가 이 작품을 소개하며'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는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리히터는 식상해져버린 비발디와 다시 사랑에 빠지기위해 이 곡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다시 비발디의 사계와 사랑에 빠졌다고. 리히터의 사계를 들어보라.비발디의 사계가 식상한 사람들에게 이처럼 신선한 처방전은 없다.
이 음반에 솔리스트로 참가한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가 가장 좋아한다는 <여름 3>을 추천한다. 뭐니뭐니해도 사계를 통틀어 가장 다이나믹하며 열정적인 음악이다. 리히터는 기존의 비발디 음악에 다른 뉘앙스를 부여하고 새로운 코드를 점진적으로 추가해나가며 곡을 길게 늘어뜨렸다. 리히터가 작곡하여 얹은 바이올린의 솔로가 격정적인 오케스트라 위에 애절하게 노래부르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부분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도 참신한 자극이 될 듯 하다.
(유튜브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tU5i0biE1pQ)
필자프로필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0-06-29 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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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스윙키즈>(2018)는 한국전쟁 당시의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이념과 인종을 뛰어넘어 춤으로 하나가 되었던 탭댄스 팀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스윙 댄스를 하는 팀도 아니고 아이들로 구성된 팀도 아니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스윙키즈’라 칭한다. 곧 영화의 제목이 된 이 이상한 작명은 토마스 카터 감독의 <스윙키즈>(1993)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스윙재즈를 좋아하던 10대들이 나치의 폭정 하에 겪게 되는 갈등과 고통, 변화를 다룬 동명 1993년 작과 강형철 감독의 <스윙키즈>는 유사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것은 베니 굿맨은 물론 데이빗 보위, 비틀즈와 정수라까지 소환한 <스윙키즈>의 다채로운 삽입곡들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즉, <스윙키즈>에는 시대적 배경이나 탭댄스와 무관하더라도 그 장면의 정서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음악들이 선곡되었다.
가령, ‘Modern Love'는 양판래(박혜수)와 로기수(도경수)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박차고 뛰어나가 열정적으로 춤추는 교차편집 장면에서 사용되어 청춘들의 억눌린 에너지가 폭발하는 느낌을 배가시킨다. 또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Free as a Bird'는 자유를 향한 스윙키즈 멤버들의 갈망을 대변하는 곡으로, 영화의 스틸 컷들과 함께 사용되어 따뜻한 추모식의 분위기를 돋운다.
대망의 크리스마스 공연에는 역시 스윙의 고전, ‘Sing, Sing, Sing'이 연주된다. 잭슨(자레드 그라임스)이 현란한 발재간으로 만들어내는 경쾌한 태핑(tapping) 사운드에 드럼이 리듬을 쪼개고, 나머지 멤버들의 등장과 함께 브라스 연주가 얹어지면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오프 비트로 신나는 분위기를 유도해내는 대중적인 재즈, 스윙이 영화 안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군인들과 관객들 모두의 심장을 더 빨리 뛰게 만드는 동안, 다섯 개의 타악기가 된 스윙키즈 멤버들은 밴드와 대화를 나누듯 퍼포먼스를 주고받으며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뜨겁게 장식한다. 인종차별 없이 연주자를 기용했던 베니 굿맨,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 곳곳을 다니며 위문공연을 한 것으로 유명한 글렌 밀러 등 스윙 선구자들의 활동과 정신이 깃든 장면이기도 하다.
다만, 다양한 대중음악들이 사용되다 보니 해당 신과 어긋나면서 몰입감을 떨어뜨린 부분도 보인다. 가령, 미군과 스윙키즈의 댄스배틀 때 삽입된 정수라의 ‘환희’는 가사, 멜로디, 리듬 등 모든 면에서 최상의 선택은 아니었다. 영화의 전반적인 톤 앤 매너와도 맞지 않을뿐더러 그저 연출자의 유머감각으로 넘기기에도 너무 자극적인 선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탭댄스 영화로서 <스윙키즈>의 의미는 크며,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도 그 몫은 충실히 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과속 스캔들>(2008)부터 <타짜 - 신의 손>(2014)까지 강형철 감독과 꾸준히 협업해왔던 김준석 음악감독은 이 작품에서 거제포로수용소, 탭댄스 등 이질적 요소들을 음악으로 조화시켜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탭댄스 동작과 탭 슈즈 사운드, 편집을 고려한 섬세한 편곡, 힘 있는 스코어들은 그의 노련함을 드러내준다. 대중성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해도 눈과 귀를 쉴 새 없이 즐겁게 해주는 영화로, 147만 명의 관객들만 보기에는 분명 아쉬운 작품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사라진 시간
우리에게 배우로 잘 알려진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 <사라진 시간>은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고 여러 사건과 인물들의 아귀를 짜 맞추기 어렵다는 점에서 난해한 영화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러닝 타임 내내 깃든 재미와 유머, 철학이다.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조합해 정교한 풍경화를 완성시키려는 강박만 없다면 의외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감독이 애초에 그렸던 것은 추상화이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에서 한 젊은 부부가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담당형사 박형구(조진웅)는 화재 현장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 마을 사람들을 취조하다가 부부에게 숨겨져 있던 비밀을 알게 된다.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사고 현장에서 잠이 든 박형구는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음에 경악한다. 형사 박형구의 인생과 가족들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나를 나로 인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 대한 타인의 인식과 나의 기억이 다를 때,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과거가 사라져버린 형구의 기막힌 운명에는 이러한 질문들이 깔려 있다. 2020년에 팬데믹이 온 것처럼, 인류가 모든 비현실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정한다면 <사라진 시간>의 판타지적 가정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은 최선책을 강구하고,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해괴한 상상력, 관습과 해석을 거부하는 태도, 인간을 바라보는 적당한 온도까지 ‘참 좋은’ 영화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0-06-27 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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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아카데미(academy)’ 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떠오르나요? 영화와 관련하여 <아카데미 시상식>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우선 학교나 학술 단체를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기원전 385년 플라톤이 세웠던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Ἀκαδημία)’에서 유래한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 또한 주로 학술 협회, 대학, 전문학교 같은 교육 기관을 가리키고 있지요. 오늘날 유명한 음악원 또는 음악대학교의 명칭에도 ‘아카데미’가 들어가 있곤 합니다. 영국에 있는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이 그 한 예가 되겠네요.
그런데, 베토벤(1770-1827)이 빈에서 활동하던 시기(1792-1827)에는 이 ‘아카데미’라는 단어가 다른 뜻으로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음악회’ 입니다. 독일어로 아카데미에 해당하는 단어 Akademie를 단독으로 사용하지는 않았고, 앞에 Musik(음악)이란 단어를 더하여 musikalische Akademie 이렇게 사용했지요.
당시 아카데미는 모든 음악회를 지칭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음악회를 가리켰지요.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아카데미가 처음부터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음악회를 뜻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1750년대부터였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음악을 점차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었죠. 베토벤은 바로 이 시기에 활동했던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귀족들이 자신들의 공간에서 음악을 향유하던 문화는 아직 존재했습니다. 베토벤의 몇몇 작품들은 아카데미를 통해 공개적으로 처음 연주되기 전, 귀족의 저택에서 미리 연주되기도 했죠. 대표적인 작품이 롭코비츠(F. F. J. M. Lobkowitz) 공작의 저택에서 첫 선을 보였던 영웅 교향곡입니다.
아카데미는 여러 장소에서 열렸는데, 베토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오페라나 연극 공연이 주 목적이던 극장들, 왕궁의 무도회장, 그리고 대학교의 연회장 등이 주요 공연 장소였습니다. 아카데미가 기악/오케스트라 음악회임을 생각한다면, 전문 콘서트홀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아카데미가 주로 열렸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요.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빈에는 콘서트홀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현재 빈에는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이나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 같은 걸출한 콘서트홀들이 있지만, 19세기 초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빈에서 처음으로 콘서트홀이 지어진 것은 1831년으로, 베토벤 사망한 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주최했던 몇몇 아카데미 프로그램 구성을 보면, 오늘날 음악회의 그것보다 자유로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00년 4월 그가 개최한 첫 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교향곡 한 곡과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중 2곡, 베토벤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한 곡, 교향곡 1번, 7중주, 그리고 그의 피아노 독주곡 한 곡.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 음악회 안에 교향곡과 성악곡, 독주곡, 그리고 실내악 곡이 모두 들어있었던 것이죠. 물론, 그 중심은 교향곡이었습니다. 한편, 음악회도 오늘날보다 상당히 길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데, 교향곡 5번과 6번이 동시에 초연된 것으로도 유명한, 1808년 12월에 열렸던 아카데미는 약 4시간가량 소요되기도 했습니다.
1792년 말, 자신이 태어난 독일 본에서 빈으로 이주한 베토벤의 빈 데뷔는 1795년 3월 한 아카데미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자신이 주최했던 아카데미는 아니었고, 피아노 협연자로서 출연했던 것인데, 그는 여기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또는 2번)을 연주하죠. 같은 해 12월에는 그의 스승이었던 하이든이 주최한 아카데미에 피아노 협연자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1800년 4월 2일 열렸던 베토벤의 첫 아카데미를 알리는 포스터.
출처 – Digitalesarchiv/Beethoven-Haus Bonn)
몇 년 후인 1800년 4월2일, 베토벤은 부르크 극장(Burgtheater)에서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이 주최한 아카데미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1824년 5월23일에 대 무도회장(großer Redoutensaal)에서 그의 마지막 아카데미가 열렸죠. 이 24년 동안 그가 개최했던 아카데미는 9번에 불과했으니, 당대 빈 시민들도 그의 아카데미를 자주 접할 수는 없었겠지요. 합창 교향곡이 초연된 1824년 5월 7일의 아카데미는 무려 10년 만에 열렸던 아카데미였습니다.
베토벤이 열었던 아카데미에서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곤 하는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정점은,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던 아카데미였을 것입니다. 노쇠하였고 청력이 너무 상실된 베토벤은 연주 내내 지휘자 옆에 서 있었지만, 곡의 진행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청중들의 커다란 박수 소리조차 듣지 못했지요. 베토벤의 이러한 모습은 공연의 큰 성공과 대비되며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이 바로 위대한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역사적인 아카데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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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0-06-26 1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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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묵직하게 드리워진 붉은 커튼 사이로 돌아선 한 남자가 보인다. 청바지 차림에 기다란 갈색 머리.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모습은 한눈에 봐도 외양부터 예사롭지 않다. 모든 시선이 한 사람을 향할 때 눈부신 섬광이 비추고, 그는 더 짙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신의 선물’이자 ‘하늘이 내린 천재’라 불리는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A.Mozart, 1756~1791)다.
유럽 뮤지컬 신화의 시작을 알린 대작 뮤지컬 ‘모차르트!(MOZART!)’가 한국 초연 10주년을 기념해 6번째 시즌 공연으로 돌아왔다. 199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최초로 공연된 뮤지컬 ‘모차르트!’는 뮤지컬계 명콤비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뜻을 모은 작품이다. 2010년 한국 초연 당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연일 매진, 당해 각종 뮤지컬 시상식 총 11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뜨거운 인기를 끌었지만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여러모로 변화도 많았다. 특히 이번 공연은 새로운 10년을 위한 도약을 약속한 시즌이기도 한 만큼 더욱 특별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인해 개막일이 한차례 연기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철저한 방역 조치와 정부 예방 지침 준수 조건 아래 지난 6월 16일 관객들과 무사히 만나게 됐다.
캐스트를 공개하지 않은 블라인드 티켓팅으로 우려와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모차르트!’지만 화려한 출연진이 대거 포진하며 작품에 기대감을 더했다. 먼저 볼프강 모차르트 역에는 이 작품으로 뮤지컬 무대 데뷔를 알렸던 김준수와 이번 시즌 새로이 합류한 박강현, 그리고 ‘모차르트!’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박은태가 이름을 올렸다. 또 ‘황금별 장인’이라 불리는 신영숙과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김소현이 모차르트의 후원자인 발트슈테텐 남작부인을, 묵직한 음성으로 극에 안정감을 더하는 민영기와 손준호가 그릇된 소유욕을 품었던 고용주 콜로레도 대주교를 맡았다. 이밖에도 레오폴트 모차르트 역에 윤영석과 홍경수가 열연하며 뜨거운 부성애를 선보이고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베버 역에는 김소향·김연지·해나가, 난넬 모차르트 역으로 전수미와 배다해가 무대에 오른다.
본격적인 막이 오른 순간, 모든 시공간은 과거 모차르트의 생애 한가운데로 집중된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작품은 그가 남긴 예술적 발자취를 따르기보다 ‘위대한’ 모차르트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근원적 불변의 진리에서부터 출발했다. 독특하게도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의미하는 아마데 모차르트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해 순수하면서도 혈기왕성한 청년 볼프강 모차르트의 곁을 맴도는데, 같지만 확실히 다른 둘이 의미하는 바가 무척 크다. 그래서 뮤지컬 ‘모차르트!’는 이 두 모차르트의 동선을 부지런히 따르면서 무대를 전반적으로 살펴야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작품에 좀 더 깊이 몰입하고 싶다면 모차르트의 삶에 대해 미리 조금이라도 알아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음악의 신동이 위대한 작곡가로 성장하는 데는 음악가였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공이 컸다. 그는 아들이 비범한 재능을 가졌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어릴 때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녹록지 못했던 탓에 귀족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상류사회 진출을 꿈꿨으나 현실은 냉혹했다.
궁정악단에 자리를 잡으려던 희망이 좌절되자, 볼프강은 어머니와 함께 타지로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슬픔에 힘겨워하던 볼프강은 어렵게 홀로서기를 결심하나 그의 행보에 반대하던 아버지와 커다란 갈등을 빚는다. 이후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을 하고 작곡 활동에 집중하며 장르를 불문한 성공을 거머쥐게 되는데, 머지않아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아버지마저 잃게 된 뒤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는 신원 미상의 인물로부터 진혼곡인 ‘레퀴엠(K.626)’ 작곡을 의뢰받고 미처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뮤지컬 ‘모차르트!’는 이 같은 모차르트의 일생을 압축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일화들을 놓치지 않았다. 겨우 여섯 살에 불과했던 모차르트가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선보인 후 곧바로 달려가 안겼다는 이야기나,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콘스탄체가 부모님의 압박을 받아 작성한 모차르트의 결혼 서약서를 시원스레 찢어버린 이야기, 대주교에게 해고 통보를 받으며 엉덩이를 걷어차였다는 일화 등이 그렇다. 물론 방대한 분량을 175분 안에 풀어내느라 일부 장면 간 연결이 인물의 감정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여백이 작품의 감상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가볍지 않은 분위기에 쉼표를 찍으며 분위기를 전환하고, 잠시나마 생각을 정리할 여유를 주는 느낌이다.
클래시컬한 선율에 록과 재즈가 가미된 음악은 마치 오페라 같기도 하면서 현대의 콘서트를 연상시키기도 할 만큼 세련됐다. 특히 대표적인 인기 넘버 ‘황금별’은 동화 같은 가사와 더불어 공연장 가득 쏟아지는 별빛의 향연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모차르트의 정체성을 표현한 ‘나는 나는 음악’, 부서진 거울이 조각난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며 부른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와 또 다른 외로움에 괴로워하던 콘스탄체의 ‘난 예술가의 아내라’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넘버다.
봉건 질서와 낡은 체계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운명에 온몸으로 맞선 모차르트. 그저 사랑받고 싶었고, 또 사랑을 돌려주고 싶었던 청년은 오선지 위에 그 마음을 자유로이 풀어냈다. 신이 주신 천재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었으나 이기적인 사람들 틈에서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의무감은 늘 그를 압박했다. 성공으로 빛난 영광 뒤엔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쓰디쓴 좌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황금별을 그리던 왕자가 홀로 남아 외로움을 삼키는 모습 또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저리게 한다. 음악의 신동이 오페라의 거장으로 성장하며 세상을 놀라게 할 음악을 작곡하는 동안 그의 생명은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닳아버린 힘의 원천은 천진했던 미소마저 앗아갔다. 짧은 생을 마감할 무렵, 꺼져가는 삶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일 때 모차르트는 그제야 자신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 안는다.
커튼콜이 끝난 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표정엔 깊은 여운이 남았다. 놀랍게도 모두 ‘위로’를 말하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삶은 힘겹고 쓸쓸했지만, 특별한 음악과 감동으로 가득 채워진 무대는 요즘 같은 시기에 더욱더 특별한 위로로 기억될 것이다.
바로 지금 ‘모차르트!’를 봐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0-06-26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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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 모짜르트의 B급 코드 >
2017년 가수 비가 내놓은 '깡'이라는 노래가 현재 역주행하고 있다며 지인들이 동영상을 보내왔다. 댓글을 꼭 읽어 봐야한다는 덧붙임과 함께.
노래도 노래지만 "시대를 뒷선 노래"," 빈틈없이 촌스럽고 끊임없이 어긋났으며 쉴틈없이 안타깝다"등 조롱거리 가득한 댓글들 속의 촌철유머는 역대급 재미를 안겨주었다. 촌스러운 노래와 재치있는 댓글이 삶에 활력을 준다며 1일1깡(하루에 한 번은 '깡'을 봐야한다)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다니. '깡'이 B급 유희문화의 놀이터가 된것이다.
B급 코드는 현재 대세다. 주류 A급에 돌직구를 날리며 상투적인 틀을 깨버리는 펭수가 인기를 끌고 수많은 광고들이 '병맛'(맥락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 캐릭터를 내세운다. 정형화된 주류라는 틀에대한 피로감이 누적된 사회에 탈권위적인 비주류 캐릭터들이 가져다주는 쾌감이 짜릿할 터.
35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주피터 교향곡, 레퀴엠과 같은 불후의 명곡들을 써내려간 모짜르트의 B급 감성은 어땠을까?
사실 그는 허무한 장난을 즐겼으며 남세스러운 대화에있어서도 거침없었다. 여기 유명한 일화가 있다.
랑엔만텔(Langenmantel)이라는 사람이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모짜르트를 피아노 제작자였던 슈타인(Stein)이라는 사람에게 소개하기로 했다. 모짜르트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랑엔만텔씨는 깜박하고 "피아노의 대가를 소개합니다"라고 운을 띄운다.
당황한 모짜르트가 자신은 뮌헨의 지겔이라는 선생의 하수 제자일 뿐이라며 한껏 자신을 낮추자 슈타인씨가 "분명히 모짜르트씨를 만나고 있는 것 같은데"라며 의심한다. 그때 모짜르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제 이름은 '트라촘' 입니다." 트라촘? 트라촘은 다름이아니라 Mozart를 거꾸로 읽어 트라촘(Trazom)으로 발음한 것으로 모짜르트가 평소 즐겼던 언어유희였던 것이다.
그 외에 그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더티'한 대화 속에 드러난 그의 면모도 주목해보자.
사촌누이 마리아 안나에게 보낸 편지속에 등장하는 모짜르트와 그의 어머니의 대화내용을 소개한다.
모짜르트가 자신의 방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서성이던 중 대뜸 어머니가 등장하며 모짜르트에게 묻는다.
" 모짜르트, 너 방귀꼈구나?" 모짜르트는 대답한다. " 저는 아닙니다 어머니." 이에 질세라 어머니는 말한다."너가 확실하다." 결국 모짜르트는 자신의 엉덩이에 손을 갖다대고 냄새를 맡고는 " 역시 어머니가 옳았다'고 고백?하며 편지를 마친다. 허무하고 하찮은 것을 심각하게 풀어내는 요즘의 B급 코드와 비슷하다.
독일 속담을 연구했던 버몬트대 볼프강 미더 교수는 문헌들을 조사한 결과 18세기 당시 지저분한 주제를 담은 글과 유머들이 성행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이 심지어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글에서도 발견된다고.
모짜르트의 음악속에서도 그의 B급 취향은 빛을 발한다.
1787년 발표된 '음악적 농담' (Ein musikalischer Spass)은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악장마다 유치한 재밋거리들이 포진해있다. 1악장은 따분한 테마가 반복되며 당시 화성법적으로 거의 금기시된 병행 5도를 집어넣었다.
2악장은 호른주자가 불협화음 솔로를 연주하고 느린 3악장에서는 '카덴차' 부분에서 조잡한 구성과 뜬금없이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피치카토'(손으로 튕기는 주법)가 방점을 찍는다. 4악장은 화려한 불협화음으로 대미를 장식하는데 역시 지루할 틈이없이 싼 티나는 음악의 정수를 보여준다.
당시 사람들은 이 음악을 듣고 폭소를 터뜨리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지 않았을까? 이 외에도 한껏 진지한 돌림노래에다가 'Leck mich im Arsch'(내 엉덩이에 키스해)라는 가사를 붙이는등 일탈적인 재미를 살린 노래도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여섯 살의 나이에 궁정음악회에서 만났을 정도로 어릴적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며 궁정 예법에 익숙했던 모짜르트.
나중에 궁정 음악가로도 활동했지만 귀족 주류를 상대하는 비주류로 살며 그 인위적인 엄숙함 속에서 '싼티'나는 재미를 추구하며 권위와 차별의 피로감을 덜어내지 않았을까.
현재 A급을 거침없이 일갈하는 펭수로부터 대중이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다만 이 시대의 B급이 이제 주류로 성큼 올라섰다는 차이만 있을 뿐.
다난한 하루, 오늘도 어김없이 1일 1깡 실천하고 잠들어야겠다.
'음악적 농담'의 영문제목은 'Musical joke'. 한마디로 음악으로 '조크'를 날리는 것이다. 모든 악장 곳곳에 재미가 숨어있는데 4악장을 추천한다. Presto (매우 빠르게)의 속도감과 더불어 테마가 매력적이다. 어설픈 푸가기법, 끝날듯 안끝나는 지루한 반복악구들을 비롯해서 곳곳에 '저급함'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룡점정은 역시 통렬한 불협화음으로 끝나는 곡 마무리다.
필자프로필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0-06-08 1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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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는 2020년,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베토벤의 메트로놈 템포(Tempo). 그리스어 '템노'가 그 기원이고 시간을 나눠서 헤아린다는 의미에서 '자르다'라는 뜻을 지니며 영어로는 타임(Time)이다. 음악에서의 템포는 알다시피 '빠르기'를 의미한다. 템포가 '빠르다' 혹은 '느리다'가 음악에 있어 늘 중요한 화두 아닌가.
최근 빅데이터 조사에서 클래식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베토벤.그가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았다. 1770년생으로 독일 본(Bonn)태생인 그는 혁신적인 음악적 진보를 가져왔고 오케스트라를 더 크게 확장시켜 나가며 시대를 앞서 낭만주의를 내다본 게임체인저다. 교향곡 9번처럼 교향곡에다가 '합창'을 집어넣는, 그 당시 전례없는 파격을 선보인 그다.
재미있는 사실은 완벽주의자 베토벤이 아직도 그가 표기한 '템포'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 그가 템포에 매우 집착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공연 불참 시 그날 연주된 템포는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고 한다.
베를린 공연에 가볼 수 없었던 베토벤이 악보 출판사 쇼트(Schott)에 했던 말. "베를린에서 초연된 나의 9번 교향곡이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는데 이는 메트로놈 표기 때문일 것이다".
'메트로놈'이란 템포를 측정하여 숫자로 보여주는 기구다. 당시 템포지시는 안단테 (걷는 속도), 알레그로 (빠르고 유쾌하게)와 같이 모호한 표현을 써온 터라 베토벤 입장에서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1816년 멜첼이라는 사람이 메토로놈을 세상에 처음 내놓으며 얘기가 달라졌다. 베토벤이 최초로 작품에다가 메트로놈 빠르기를 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실연 빠르기를 정확히 알아낼 방법이 없는데 베토벤이 숫자로 표기해 놓았으니 감사한 일 아닌가.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연주자들이 그가 표기한 템포를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너무 빨라서!.
베토벤을 연구했던 음악학자 페터 슈타들렌은 "135개의 템포기호 중에 66개는 터무니없이 빠르기 때문에 아마도 오류일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나조차 유럽에서 그 유명한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피아노 소나타를 수없이 들었지만 베토벤이 적어놓은 빠른 속도는 아직도 못 들어봤다.
베토벤의 템포에 관한 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한다. 표기된 템포에 연연할 필요 없다는 부류와 템포를 따라야한다는 부류. 베토벤의 템포를 개의치 않는 연주자들의 이유는 이렇다.
베토벤이 표기한 템포는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음악적 이상을 담은 것이므로 초지일관 템포지시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전과 낭만사이의 과도기적 위치에 서있는 베토벤이라는 사실. 독일의 전설적인 지휘자 프루트벵글러는 베토벤 교향곡을 지휘할때 낭만적으로 몰아치는듯한 자의적 템포로 베토벤의 템포 표기를 등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장 뛰어난 베토벤 연주로 평가받는다. 템포에 관한 설왕설래는 베토벤의 메트로놈이 그 원인이라는 주장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음악학자 슈타들렌은 베토벤이 소유했던 메트로놈이 무게결함으로 인해 오작동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물론 베토벤의 템포를 신뢰하는 부류는 이 주장을 일축한다. EMI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전곡녹음했던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그녀의 저서에서 "베토벤의 템포는 왜곡되어 연주되어 왔다"며 강조한다.베토벤은 메트로놈이 고장나면 새 것을 주문해서 작곡을 이어갔던 섬세한 작곡가였다는 것.
베토벤의 빠른 템포를 따르려면 두 가지를 고려해야한다. 속도감이 불러일으키는 낯선 뉘앙스 그리고 연주의 난이도. 예전에 베토벤 <영웅>교향곡 1악장을 오리지널 템포 60으로 빠르게 지휘했는데 거친 야성미는 좋았지만 급한 느낌과 더불어 디테일이 살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인해 연주자들도 힘겨워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의도를 살린다는 취지와 함께 그 템포를 잘 살려낼수만 있다면 참신하게 들리므로 매력적이다. 베토벤의 템포를 꽤 신뢰했던 지휘자 로저 노링턴은 1988년 EMI에서 당대 악기 연주기법과 더불어 빠른 템포의 날렵한 베토벤을 선보였고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해석이다.
모범답안은 없다. 지휘자 프루트뱅글러처럼 템포는 적당히 무시하고 오롯이 베토벤의 열정과 정신을 담아내던 아니면 철저히 베토벤의 템포지시를 신뢰하던. 사실 메트로놈 빠르기는 음악을 표현함에 있어 유용한 하나의 도구일 뿐 궁극적으로 중요한건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써내려갔던 베토벤의 위대한 음악 그 자체다.
베토벤 교향곡 8번을 추천한다. 자칫 근엄해보이는 베토벤에게서 밝은 면모와 유머스러운 반전 매력이 넘친다. 강력한 리듬감이 탑재된 7번 교향곡과 대작 9번 '합창'교향곡 사이에서 8번교향곡은 과거를 회상하듯 심플한 고전미를 뽐낸다.
특히 2악장을 강추한다. 시작부분의 목관악기 반복리듬이 멜첼의 메트로놈 소리를 묘사했다는 설이 있는데 상상하고 들어보면 재미있다. 작심하고 놀래키듯 갑작스런 포르테(f)와 아기자기한 멜로디로 지루할 틈이없다.
필자프로필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0-05-06 11: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