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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
시리도록 차가운 하얀 빙하, 하늘을 수 놓은 오색 빛깔의 오로라,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들판, ‘북유럽’하면 떠오르는 풍경이다.
북유럽은 예술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동화의 아버지 안데르센, 사랑스러운 ‘무민’을 만들어 낸 얀손, ‘말괄량이 삐삐’의 린드그렌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세계적인 문학가들이다. 클래식 음악에서도 그리그, 시벨리스우스 등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음악가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효율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 이케아,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레고 등 북유럽 문화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들로 거듭나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저명한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실용적이며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창의성으로 똘똘 뭉친 북유럽 예술계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할까? 이번에는 덴마크 국립 교항악단, 오슬로 필하모닉의 대표들의 생각과 스웨덴 예술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책적, 재정적 뒷받침을 살펴보고자 한다.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오슬로 필하모닉은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라벨을 배출한 세계적인 악단이다. 악단 대표 뢰위네스달은 “노르웨이 사람들은 바다, 숲, 산속의 오두막에서 지내는 시간을 사랑하기에 그리그를 포함한 작곡가들은 아름다운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훌륭한 음악가가 많은 것은 자연이 주는 영감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관대해지면서 마음이 열리는 것처럼 오슬로 필하모닉의 음악에서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이점을 느낄 수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진부하지만 실천하기는 어렵게 느껴지는 그 삶의 방식이 그들의 창의성의 원천이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덴마크 국립 교향악단은 세계적인 현대 작곡가 닐센과 함께 성장했다. 이 곳은 그들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단원을 선발한다. 한 파트의 단원들이 모두 심사과정에 참여해 각 파트의 단원을 뽑는다. 적극적인 의사소통과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들과 평생 함께 할 소중한 가족을 맞이한다. 단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그들만의 음색에 활발한 의견 교환까지 이루어진다니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여기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우면서 민주적인 의사소통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이 곳 대표 킴 보르는 덴마크가 열린 마음과 투명함으로 교육하는 것이 창의적인 교육 시스템을 만든다고 한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받는 환경이 민주적인 의사 소통을 일상에서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과 음악을 가까이하는 삶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한다고 믿는다. ‘행복을 기반으로 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 일상에 치여 아이들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하는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예술위원회에서 가장 많이 지원하는 분야는 문학. 상상력은 책읽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얼마 전 ’구름빵‘의 작가 백희나씨가 이 곳에서 수여하는 아동문학상 중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린드그렌상을 받아 스웨덴의 문학계가 우리나라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 성소수자라도 차별 없는 평등한 인권을 갖도록 예술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지원한다. ‘공평’을 위한 평등을 실현시키기 위해 힘 있게 정책을 끌고 나가는 저력은 그들의 예술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대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다. 늘 자연을 가까이 하기에 여유로워져 열린 마음을 갖고 있을까? 마음이 여유로워 나를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싹튼 것일까? 어쨌든 그들의 예술과 문화에 자연이 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이판에서 한 달 살이를 한 적이 있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바다는 매일 다른 표정으로 우리를 반겼다. 해가 뜬 날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청량하고 투명한 에메랄드 색, 태풍이 부는 날은 겉과 속을 드러내지 않은 짙은 파란 색. 바다의 수평선은 끝이 없었고 하늘과 바다는 하나가 되어 가슴 가득이 들어찼다.
빡빡한 서울의 생활에서 자연으로 탈출했던 그 때를 일 년 중 ‘없는’ 한 달로 하기로 마음먹으니 어느 때보다도 느긋한 마음으로 자연에 물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기억은 나의 힘든 하루를 지탱해 주는 생생한 위로가 되고 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 속에서 실컷 놀며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세상을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쉴 새 없이 오간다. 아이들이 맘놓고 자연에서 놀 수 있는 환경이 좋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는데도 부모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초조해지곤 한다. 신나게 뛰어노는 동안 우리 아이들이 뒤쳐지거나 놓치는 게 생기는 건 아닌지.
이제는 초조해지는 순간이 올 때마다 북유럽의 정경과 그들의 아름다운 음악, 문학작품 그리고 사이판의 바다를 떠올리려 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자연을 품고 만들어 낼 관대함과 타인에 대한 이해심을 기대해 보려 한다. 그 속에서 단단해져 싹 틔울 갖가지 아름다운 생각이 열매를 맺는 날을 상상하며 나무 대신 고층 빌딩, 꽃과 열매 대신 오색 간판이 가득한 ‘차가운 도시의 초조한 엄마’도 주말엔 ‘따뜻한 자연의 관대한 엄마’로 변신해 보리라.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2020-10-16 0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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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남한산성>(황동혁, 2017)에는 음악이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냉혹한 현실을 관조하는 영상의 결을 따라 소리 또한 조심스럽다. 눈 덮인 겨울 산성의 적요함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나 삶과 죽음 사이의 심오한 공방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 공간의 소리(엠비언스)도 숨을 죽이고, 악기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그 공백이야말로 <남한산성>을 격조 높은 사극으로 완성시킨 음악적 밑바탕이다. 이는 ‘영화의 빈 공간과 이미지의 감흥’을 중시하고 ‘시간과 공간의 소리’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해왔던 이 영화의 음악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의 철학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남한산성> 스코어의 두 번째 전략은 장르적 관습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적지 않은 제작비로 굴욕적인 우리 역사를 영화화하겠다는 용기만큼 도전적인 결단이다. 중반부 두어 차례의 전투 신, 추격 신에서 음악은 이기는 자와 지는 자,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어느 한 편의 시점이나 정서를 대변하기보다 그 상황 자체의 서스펜스에 초점을 둔다. 마치 버나드 허먼이 히치콕의 스릴러에서 사용했던 음악처럼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선율이 아비규환의 전투 공간을 쪼개며 심리적 압박감을 표현한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에서도 음악은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다. 대신 최대한 절제하고 누르고 돌아보면서 더 넓고 깊게 관객들의 지각을 열어준다. 이는 오욕의 역사 및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에 대한 원작자와 감독의 사려 깊은 태도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처럼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남한산성>이 한층 세련된 스타일을 성취하는데 공헌했다.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마지막 황제>(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7)부터 암투병을 하며 참여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2015)까지, 그는 매 작품마다 스스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그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나 ‘레인’처럼 멜로디가 강하고 콘서트에서 자주 연주되는 곡들을 많이 남겨주기를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항상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관성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인으로서 그의 활동과 음악 작업 과정을 두루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스티븐 쉬블, 2017)에는 새로운 소리를 찾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가는 그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남한산성>의 스코어 또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천재적 음악성과 더불어 우리 전통 음악과 역사, 한국영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땀방울이 더해진 결과다. <남한산성>은 그의 재능과 열정이 담긴 첫 한국영화였다. 앞으로도 국경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디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스포츠들이 있다. 눈과 얼음 위를 가로지르고 암벽을 맨 손으로 기어오르고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운동들, 그 스릴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분명 범상치 않은 이들이다. <디바>(조슬예)의 두 주인공, ‘이영’(신민아)과 ‘수진’(이유영)은 인간이 가장 공포를 크게 느끼는 10미터 높이에서 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다이빙 선수다. 낙하하는 짧은 순간에도 기교를 부리며 안정된 자세로 착지해야 하는 이 스포츠는 신체적 능력 뿐 아니라 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이영과 수진은 단짝이자 라이벌로서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태극마크를 달지만, 이들에게 선수생활이 안겨준 것은 다이빙의 짜릿함이 아니라 경쟁의 고통과 낙오에 대한 공포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이영은 수진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수진과 심하게 다툰다. 그 바람에 수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던 두 사람은 도로 밑 절벽으로 추락하고, 수진은 실종되지만 이영은 구조되어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영은 수진의 환영과 자책감으로 다이빙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영의 무의식은 사고 당일보다 훨씬 더 전으로 돌아가 모든 인과 관계를 뒤섞어 놓는다. 다이빙 디바의 자리가 수진에서 이영으로 바뀌던 그 날부터 수진과 이영의 관계 또한 위태롭게 변해버린 것은 아닐까. 실오라기 같던 이마의 상처가 덧나고 곪아서 터져 버리는 과정 속에 오래 전 해결하지 못했던 수진과의 앙금은 이영을 광기로 몰아간다.
영화는 시시각각 변하는 이영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따라 거침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블랙 스완>(2010, 대런 아로노프스키)과 같은 뛰어난 레퍼런스가 있기에 새롭다고 할 수는 없어도 아름답게 낙하해야만 이길 수 있는 다이빙의 성격과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인간의 심리가 그럴 듯한 대구를 이루며 결말까지 무리 없이 나아간다. 결국 공포의 근원은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한다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러닝 타임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0-10-08 1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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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음악 분야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연주자들이 종이로 된 악보 대신, 아이패드 같은 스마트 기기에 입력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통해 악보를 만드는 프로그램은 이미 보편화된 지 오래이고요. 최신 기술은 편리함을 안겨주지만 우리는 여전히 옛 방식에서 최신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메일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꾹꾹 눌러쓴 손편지에서 느껴지는 정겨움마저 대체할 수는 없겠지요. 컴퓨터를 통해 만들어진 악보는 깔끔하고, 수정도 쉽게 이루어지지만, 작곡가 고유의 필체가 담긴 자필 악보를 바라보는 특별함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베토벤의 자필 악보는 어땠을까요? 깔끔하기로 소문난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와는 달리, 베토벤의 악보는 혼란스러운 느낌마저 주는 것으로 악명높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수정의 흔적과 쉽게 알아보기 힘든 베토벤의 필체가 합쳐진 덕분인데요. 음악학자 쿠퍼에 따르면, 베토벤은 “모든 구상이 머리 속에서 끝났으니, 그 모든 것을 옮겨 적으면 돼” 라고 표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보에서 보여지는 혼란은, 그가 곡의 구상이 ‘완벽하게’ 끝나지는 않은 상태에서, 악보를 적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자필 악보를 적는 동안, 그가 구상했던 곡의 근본적인 특징이 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쿠퍼는 단언합니다.
사실, 베토벤이 젊을 때부터 악보를 알아보기 힘들게 적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젊을 때의 자필 악보들 중에는 꼼꼼하게 잘 적혀있는 것들도 있어서, 이것이 그의 자필 악보가 아니라, 전문 카피스트(Copyist)가 옮겨 적은 악보라고 여겨진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의 필체는 나이가 들며 계속해서 악화된 것이었죠. 남아있는 그의 자필 악보들 중 초기 작품보다는 후기 작품의 수가 더 많다는 점이, 이러한 ‘악명’에 일정부분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베토벤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수정을 거듭해가며 자필 악보에 그의 음악을 펼쳐놓으면, 카피스트들이 그 악보를 깨끗하게 옮겨 적는 작업이 뒤따랐습니다. 이것은 곡의 연주와 출판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죠. 베토벤의 악보를 필사하는 것은 전문가인 그들에게도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위에 서술된 대로 악보가 혼란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아, 베토벤의 의도를 정확히 알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베토벤이 적어놓은 음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으며,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적힌 그의 지시사항이 악보 구석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필사 과정이 끝나면, 베토벤은 필사된 악보를 매우 꼼꼼하게 점검하였고, 출판에 이르기 전 또다시 수정하기도 했지요.
(베토벤 교향곡 9번 2악장 중 트리오 시작 부분-목관파트. 자필 악보와 필사본 악보 비교:
자필 악보 (위/출처: Staatsbibliothek zu Berlin), 필사본 악보 (아래/출처: Juilliard Manuscript Collection)
흥미로운 것은 자필 악보를 대하는 베토벤의 태도입니다. 자필 악보에 담겨 있는 그의 작품이 필사와 점검을 거쳐 출판에 이르게 되면, 베토벤은 더 이상 자필 악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그 악보들은 잘 간수되지 못하고 분실되곤 했지요. 그의 사망 이후 남겨진 그의 악보들 중 초기 작품들보다 후기 작품들의 악보가 많은 것은 이런 그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곡에 대한 본인의 최종 생각은 출판된 악보에 담겨 있으니, 자필 악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베토벤은 생각했던 것일까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이러한 무관심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교향곡 9번 자필 악보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유명한 작곡가의 자필 악보가 새로 발굴되면 학계의 큰 관심을 받으며, 그 악보들이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베토벤 당대의 관점에서 보면, 자필 악보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음악학자 두프너에 따르면, 자필 악보의 가치에 대한 인식은 베토벤이 살던 시기에 점차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베토벤은 그러한 가치의 형성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겠지요. 이 시기에 자필 악보들은 오늘날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한 예로, 베토벤이 사망한 해에 (1827년), 그의 남겨진 자필 악보들은 경매에 부쳐졌는데, 그 가격은 베토벤의 가계 물품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베토벤의 자필 악보들은 독일 본의 베토벤 하우스(Beethovenhaus Bonn)와 베를린 국립 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에 대부분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디지털화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상당수의 자필 악보를 온라인으로 언제나 볼 수 있지요. 본의 베토벤 하우스에서 베토벤의 자필 악보들을 직접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토벤의 많은 오리지널 자필 악보들을 열람하면서 베토벤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들이 변해도, 베토벤 자필 악보의 가치는 계속해서 빛날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0-10-08 1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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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무료공연과 안방전시, 내용과 형식을 곱씹어 즐기는 팁”
가을하면 전시와 공연의 계절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각종 공연과 전시가 제한된 가운데, 문화단절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유튜브, 다음카카오 혹은 네이버라이브 등을 활용해 언택트 공연과 랜선 전시 등을 감상하는 것이다. 물론 실제 공연이나 전시장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지겨운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데 디지털기술의 발달을 영리하게 활용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매년 인연이 닿지 않아 놓치던 전시나 공연을 클릭과 터치만으로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나만의 귀맛과 눈맛을 발견 할 최상의 시기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음카카오갤러리를 즐겨찾기 하면 10만이상이 관람한 랜선 전시들을 실시간 만날 수 있다. (출처: https://gallery.v.daum.net/p/h)
실제 공연장에 갈수 없다면,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자
대부분은 공연예술을 즐기는 팁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다.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공연장에서 지켜야 할 예의는 무엇인지, 장르별 감상법은 따로 있는지 등을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대면 공연의 장점은 옷차림이나 장소에 제한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효율적인 공연감상을 위해 바뀌지 않는 전제가 있다. 바로 공연의 성격과 감상예절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연장 도착은 20분전, 객석입장은 10분전”이라는 바뀌지 않는 명제를 언택트 감상에서도 지키는 것이 좋다. 정해진 시간에만 온라인 런칭하는 공연들도 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공연장 입장은 공연시작 이후엔 할 수 없다. 늦게 입장하는 경우 안내자가 제시한 좌석에서 대기하다가 휴식시간에 자신의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예절일 만큼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전시관람에 비해 관람예절이 까다롭다. 온라인 공연을 볼 때도 이러한 자신만의 착석 시간을 마련해놓고 본다면 좀 더 집중해서 공연에 몰입할 수 있다.
공연에서 항상 고민하는 박수치는 타이밍도 이 기회를 통해 습득해보자. 선진국의 음악청중들은 연주자들에 대한 감사표시로 앙코르가 목적이 아닌 감사의 의미로 기립박수를 보낸다. 혼자 보는 공연에서도 정해진 시간과 박수로 보이지 않는 예의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발레의 경우 춤만을 볼거리로 즐기는 디베르티스망이라는 장이 삽입되고, 이후에 솔리스트들이 그랑빠, 빠뒤드 등의 명칭을 붙여 줄거리와는 상관없는 고난도 기교를 보여준다. 이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데, 디베르티스망 장면마다 박수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다. 오페라의 경우도 아리아나 이중창이 끝나면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뜻에서 ‘브라보’를 외쳐 가수들을 격려한다. 반면, 교향곡이나 협주곡은 모든 악장이 끝난 후 박수를 쳐야한다. 국악이나 민속음악의 경우엔 판소리나 민요 등은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을 만큼 박수가 자유롭다. 궁중음악은 집박이끝을 알릴 때, 정악은 어느 정도 여음이 사라진 후에 박수로 답례하는 것이 바른 예절이다. 이렇듯 박수 예절도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공연감상의 팁으로 온가족이 모여 앉아 랜선 공연을 감상하면서 서로의 느낌을 얘기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나만의 눈을 발견하는 시간, 랜선 전시감상법
세계 유명 작품이 있는 품격 있는 전시장을 나 혼자 전세 낸 듯한 모습을 상상해보자. 관람객에게 쫓기듯 떠밀려 전시장을 둘러볼 필요도 작품을 손상시키지 말라는 팻말을 볼 필요도 없다. 최근 다음카카오갤러리에서는 매일 프리미엄 전시를 띄우고 우리 모두에게 클릭을 유도한다. 실제 이 카테고리는 전시하나를 통째로 옮겨와 확대와 축소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서비스와 전시장을 VR로 찍어와 서비스 하는 구글 아트프로젝트 같은 효과를 최신전시로 제공한다. 랜선 전시감상의 팁은 작품을 천천히 감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하기 위해 작가는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달이 걸리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작품을 몇 초 만에 급히 보고 지나버리면, 작품이 주는 실제 형식과 내용을 음미할 수 없다.
작품을 감상하는 법은 매우 다양하고, 똑같은 작품이라도 감상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먼저 줌을 활용해 작품의 디테일과 전체를 봄으로써 작품을 가까이 멀리 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이와 유사한 작품이 있다면 왜 그런지, 다른 작품은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 작품이 마음에 드는 이유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내 취향을 발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이 맘에 든다면 작가에 대해 서치해보는 것도 필수다. 작품의 재료는 무엇인지 작가가 언제부터 이런 소재로 그렸는지를 살펴보고, 작품의 해당연도에 따라 작품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살펴보자.
작가가 작품에 이용한 소재, 재료의 특징과 이들이 만들어내는 효과, 구성과 내용들을 분석하면서 본다면 더욱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작가는 왜 이 소재를 여기에 그렸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어떤 상황과 감정이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그렸을까” 등의 질문을 만들고 대답으로까지 확장시키는 상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미술사 등의 배경정보나 미학 관련 지식이 있으면 좀더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하다. 거꾸로 전시 큐레이터가 “왜(why) 이 시기(when)에, 이 장소(where)에서 이 주제(what)로 기획했을까”라는 상상도 해보자. 전시주제가 오늘의 사회적인 이슈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까지 고려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를 모두 거친 후에 실제 전시장에 나간다면 감상취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네이버 공연 라이브를 즐겨찾기 하면 다양한 공연정보를 실시간 만날 수 있다.
(출처: https://live.naver.com/)
코로나19의 2단계 격상으로 공연장, 전시장 등이 문을 닫게 되고 생활고를 겪는 예술계 종사자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예술계에 많은 지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다양한 지역 문화재단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온라인 사업을 공모하고, 서울문화재단이 공모한 <아트 머스트 고 온(ART MUST GO ON)>은 200여팀 30억원을 선정해 다양한 다원예술 온라인 뷰잉룸을 일반인에게 무료로 공개할 예정이다. 그 밖에도 <아트 체인지업(Art Change Up)>같은 온오프라인 창작 지원활동이 예정돼 있어 온라인 미디어 콘텐츠 제작 및 온라인 중심의 예술인과 크리에이터를 키우는데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 온라인 창작자가 양산된다는 것은 이제 온라인 감상자들을 위한 컨텐츠가 마련된다는 것이고, 일반인 감상자도 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 장기화로 지쳐가는 시기지만, 사고를 전환시켜 눈과 귀가 동시에 행복한 나만의 취향을 발견해 보면 어떨까.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0-09-29 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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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결국 무대가 된서리를 맞았다. 철저한 방역과 감염 대비로 그나마 간간히 유지돼오던 공연들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됨에 따라 결국 민간극장까지 띄어앉기를 준수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이제 우리나라 공연들은 만석을 기록하고 티켓을 모두 팔아도 평소의 절반뿐인 매출을 기록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이, 창작진이, 기술 스탭들이 혹자는 택배를 하러 다니고, 또 다른 이는 세일즈 영업사원이 됐다는 연락을 전해온다. 그 직업들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예술가가 예술 현장에서 쫓기듯 떠나고, 호구지책을 마련하기 위해 돈벌이 현장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상황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다시 와도 이미 사라진 문화예술 인력의 부재는 쓰라린 상처로 남을지 모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는 말이 있다. 공연계가 꼭 그렇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작금의 현실은 무척 안타깝지만, 공연계로 하여금 새로운 도전을 과거보다 더 과감하게 시도하게 만드는 환경 또한 되고 있다. 이른바 공연의 영상화에 대한 여러 실험들이다. 당장 이번 추석 시즌을 전후로 공연보다 저렴한 영상 이용료를 지불하는 인기 공연들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할 예정이다. 시아준수로 유명한 뮤지컬 배우 김준수가 주연인 ‘모차르트’는 인기 뮤지컬 배우 박은태 출연진과 더불어 공개될 예정이며, 서울예술단의 인기 레퍼토리인 ‘잃어버린 얼굴 1895’, 대학로의 인기 뮤지컬 작품인 ‘여신님이 보도계셔’, ‘팬레터’ 등이 이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아날로그의 매력을 담은 공연이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고 유포되는 영상 미디어의 세계에서 어떤 파장을 남길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무대와 영상의 결합이 요즘 들어 시작된 것은 사실 아니다. 이미 무대와 영상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왕성하게 시도되어졌고, 꽤나 굵직한 성과나 기록들을 남기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무대와 영상의 밀월관계는 꽤나 역사있는 만남이자 썩 잘 어울리는 변화였던 셈이다.
예를 들자면 뮤지컬 영화가 그렇다. 심지어 뮤지컬하면 영화를 먼저 떠올리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은 거의 대부분 뮤지컬을 스크린을 통해 처음 만났다. 1950~60년대 헐리웃의 대형 영화사들은 무대의 영상화에 꽤나 적극적이었고, 그래서 제작되어진 글로벌 흥행 영상 콘텐츠들이 그 주인공이다. ‘아가씨와 건달들’, ‘왕과 나’,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등 굵직한 뮤지컬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영화가 무대용 뮤지컬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분명하다. 대중적인 콘텐츠를 재가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가 쉬운 탓이다. 무대는 매일 한정된 장소에서 반복되어야 하는 비복제의 속성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한꺼번에 수천, 수만 곳의 상영관에서 동시다발로 상영되거나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소비될 수 있고, 또 텔레비전이나 비디오 등 새로운 창구(window)를 통해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흥행이 검증된 콘텐츠를 글로벌 스타의 기용을 통해 포장해내는 일은 여간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1970년대 이후 보다 다양한 대중매체의 등장으로 뮤지컬과 영화간의 밀월관계를 소원해졌지만, 2000년대 들어서 다시 뮤지컬 영화의 흥행 공식들이 등장하며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기도 하다. 영화로 만들어진 ‘시카고’나 ‘오페라의 유령’ 혹은 ‘스위니 토드’, ‘레 미제라블’, ‘캣츠’ 등이 대표적이다.
무대만 영상으로 흘러간 것은 아니다. 반대로 영화가 무대로 유입되거나 차용된 사례도 있다. 특히 큰 인기를 누리는 것이 바로 무비컬(Movical)의 등장이다. 물론 영화(Movie)와 뮤지컬(Musical)의 합성어로, 원작 영화를 무대에 재구성해내는 일련의 제작 방식을 말한다.
무비컬의 역사도 뮤지컬 영화의 그것 못지않게 열정적이고 화려하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카비리아의 밤’이나 ‘8과 ½’을 무대로 재구성한 뮤지컬 ‘스위트 채러티’나 ‘나인’이 바로 대표적인 초창기 사례들이다. 저예산이나 엽기, 컬트 혹은 B급 SF영화들도 무비컬의 소재로 각광받기도 했다. 영화 ‘포비든 플래넷’이나 ‘거미 여인의 키스’는 각각 무대용 콘텐츠로 재활용돼 ‘돌아온 금단의 별’이나 ‘거미 여인의 키스-더 뮤지컬’로 제작돼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다. ‘리틀 숍 오브 호러스’의 경우는 더 흥미로운데, 1980년 첫 선을 보인 영화가 82년 소극장용 무비컬 제작의 모티브가 됐고, 다시 무비컬의 인기가 86년 뮤지컬 영화의 재제작으로 이어진 경우라서 그렇다. 영화가 무비컬의 소재가 되고, 다시 무비컬이 뮤지컬 영화로 환생하는 ‘돌고 도는’ 콘텐츠 재가공과 부가가치 극대화가 흥미롭다.
무비컬의 본격적인 등장과 대중적 인기의 확산은 특히 최근들어 조명받는 트렌드다.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요즘만큼 왕성했던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2000년대 이후 세계 극장가에 올려진 무비컬 수만도 족히 수십편이 훌쩍 넘는다. ‘프로듀서스’, ‘헤어스프레이’, ‘메리 포핀스’, ‘빌리 엘리어트’, ‘스패머랏’, ‘더티 댄싱’, ‘금발이 너무해’, ‘제너두’, ‘영 프랑켄쉬타인’ 심지어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호명하기조차 벅차다.
무비컬의 인기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산업적인 효과가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콘텐츠를 재활용함으로써 흥행의 리스크를 줄일 뿐 아니라 쉽게 대중적 관심을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관객 입장에서는 이미 익숙한 줄거리를 라이브로 감상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이해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지나간 추억에 대한 복고나 향수도 만끽할 수 있다. 평론가들이 “이런 환경에서 과연 누가 새로운 이야기와 음악에 도전할까”라며 무비컬 제작 트렌드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대중적 인기가 지속되는 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무비컬의 확산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무작정 융합만 한다고 좋은 콘텐츠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보편적 원리가 그러하듯, 무대와 영상의 융합 콘텐츠가 좋은 평가와 흥행을 얻기 위해서는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상 문법과 무대 문법은 유사한 것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영상에서는 연출자의 의도가 카메라 샷(shot)과 씬(scene)의 구성을 통해 구현되지만, 무대에서는 열린 공간을 이용한 현장 구성의 과정(process)을 통해 형상화된다. 많은 문화산업 장르들 중에 유독 영상과 무대의 ‘궁합’이 잘 어울리는 이유도 이들의 이종교배를 통한 생산물은 익숙하면서도 또다시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대중들에게 선사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단순히 영화의 서사구조 재연만으로 혹은 무대의 영상적 기록만으로 이 융합 콘텐츠의 묘미가 창조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적인 무대와 영상의 만남에 대한 실험과 도전이 왕성히 시도되고 있는 요즘, 무대와 영상 관계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제작의 기본 철칙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0-09-29 1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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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바흐의 역행카논에 대하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하면 복잡한 플롯으로 잘 알려져있다. 한 번보면 이해가 안가서 N차관람을 유도한다는 놀란 감독이 야심차게 내놓은 영화 TENET(테넷). 놀란 감독의 팬이기도 하지만 난해함의 끝판왕이라는 얘기에 승부욕(?)이 발동하여 개봉하자마자 보고 왔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 극중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던지는 대사인데 결국 놀란감독이 영화가 어려운 관객을 의식한 듯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미래인들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파괴하려는 사토르라는 악당에 맞서 주인공과 그의 조력자 닐이라는 인물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제3차 세계대전을 막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첩보물인데 내러티브가 기발하면서도 역시 영화의 서사는 복잡하고 어려웠다.
이 영화에서 앤트로피, 핵분열 등 다소 낯선 개념들이 등장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역시 '인버전(Inversion)'이라는 시간개념일 것이다.
인버전은 타임머신처럼 과거나 미래의 시간대로 순간이동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역행하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중에 주인공이 캣이라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일주일 전 과거 오슬로로 인버전하는 장면이 있는데 일주일 동안 시간을 들여 시간을 역행하며 오슬로로 향한다. 〈백 투더 퓨쳐〉처럼 바로 순간이동 하는 것보다 훨씬 수고스럽다는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연대기적으로 역행하며 흐른다는 점에서 직관적으로 떠오른 작품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의 헌정〉이다. 독일어 원제는 'Musikalische Opfer( BWV1079)'이며 13개의 악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흥미롭게도 음악을 사랑했던 독일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직접 작곡한 테마를 바탕으로 1747년 말년의 바흐가 리체르카레, 카논, 푸가등 다양한 작곡기법을 녹여낸 작품으로 왕에게 헌정했다.
여기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카논(Canon)'이라는 작곡기법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카논은 '규칙'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어원이며 쉽게 설명하면 주선율이 선행되면 다른 성부가 시간 간격을 두고 그 주제를 엄격하게 모방하며 따라가는 작곡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네 한 바퀴'라는 돌림노래가 잘 알려진 카논이다) 그 어원이 말해주듯 물론 엄격한 모방을 규칙으로 하되, 예를 들어 모방하는 성부가 다른 음정에서 시작한다거나 같은 선율에 음가를 두배로 늘린다거나 하는 식의 다양한 자유도 부여되어 있다.
〈음악적 헌정〉에 등장하는 10개의 카논 중에 그 유명한 카논 1번의 2성 역행카논(Canon 1, a 2 cancrizans)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역행카논이란 주선율 끝에서 시작하여 거꾸로 역행하며 시작점을 향하여 모방하는 것. 쉬운 예를 들어 '도레파미솔'이 주션율이라고 가정한다면 다른 성부가 뒤에서부터 거꾸로 '솔미파레도'로 역행하며 연주하는 것이다.
음악적 헌정의 역행카논이 특별한 이유는 순행하는 선율과 역행하는 선율이 시간의 격차가 없이 동시에 얽히며 연주된다는 점이다. 마치 시간을 순행하는 사람들과 역행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사투를 벌이는 영화 '테넷'속의 장면들처럼. 이 카논은 달랑 한 성부의 멜로디가 주어지는데 한 연주자는 앞에서 연주를 시작하고 다른 연주자는 말미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음악 테이프를 거꾸로 되감으면 어색하게 들리듯 역행하는 성부가 선율적으로 구색을 갖추기가 쉽지 않을 터. 절묘하게도 하나의 선율이지만 순행하는 선율과 역행하는 선율이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서로 반응하며 화성진행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15세기 전후 성행했던 카논이 역사의 흐름속에 다양한 지적유희적 양상을 띄며 역행카논뿐 아니라 돌림노래 형식의 무한카논, 선율을 상하로 역전시켜 모방하는 거울카논 등 수많은 형태로 양산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이중에서도 바흐의 역행카논은 같은 음에서 출발하여 동시적으로 순행방향과 역행방향의 선율이 완벽하게 맞물린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마치 시작과 끝이 맞물려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역행카논의 대가 기욤 드 마쇼의 <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다 Ma fin est mon commencement >라는 곡을 떠올리며 영화 '테넷' 에서 로버트 패틴슨이 주인공과의 마지막 이별씬에서 던지는 묵직한 대사를 소환해본다. "내 우정은 여기서 끝이지만 자네의 우정은 여기서 시작이야 ". 영화는 아직 어려운데 왠지 이 대사만은 와닿는다.
〈음악적 헌정〉은 바흐가 생애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 만큼 바흐가 집대성한 대위법의 정수가 담겨있다. 우선 바흐의 역행카논(Canon 1, a 2 cancrizans)을 들어보며 주선율의 순행과 역행의 맞물림이 가져다주는 쾌감을 경험해보라. 악보를 보며 역행방향으로 음을 따라가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 외에 〈음악적 헌정〉에 수록된 Trio Sonata를 추천한다. 4악장으로 이루어진 실내악 작품으로 편성은 플루트, 바이올린, 통주저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플루트를 잘 다루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을 배려한 흔적이 엿보이며 유려한 선율과 함께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테마를 변주한다.
*유튜브 링크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xUHQ2ybTejU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0-09-25 13: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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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유쾌한 패러디의 향연, 매력 만점 뮤지컬 ‘썸씽로튼’
뮤지컬은 이제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예술 장르 중 하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느새 대중적인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과연 인류 최초로 뮤지컬이 탄생한 순간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여기, 기발한 아이디어와 넘치는 유머로 가득 찬 뮤지컬 한 편이 어쩌면 당신의 상상에 더 큰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지 모른다.
2019년 내한해 첫선을 보였던 뮤지컬 ‘썸씽로튼(Musical Something Rotten!)’이 올해 국내 라이선스 버전으로 다시 한번 반가운 인사를 전했다. 201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썸씽로튼’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연극이 대중적 인기를 끌던 영국에, 뮤지컬 황금기의 30년대 브로드웨이가 결합된 모습을 상상해 새롭게 그린 뮤지컬이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은 마지막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인류 최초로 뮤지컬이 탄생한 순간, 그 중심에 바텀 형제가 있었다는 상상과 함께 좀처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기발한 패러디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본격적인 막이 오르면 ‘Welcome to the Renaissance’를 외치며 흥겹게 리듬을 타는 두 유랑 악사의 이끌림을 따라 16세기 런던, 문화와 낭만으로 가득 찬 르네상스 시대가 눈앞에 펼쳐진다. 연극을 만드는 닉 바텀과 나이젤 바텀 형제는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성공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과거 같은 극단에 소속됐던 셰익스피어가 연이어 대성공을 이루자, 상대적으로 번번이 실패만 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만다. 고민 끝에 닉은 아내 비아가 고이 모아둔 돈을 훔쳐 미래를 점치러 갔다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예언가 토마스 노스트라다무스를 만난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조카라던 그는 닉에게 앞으로 ‘노래로 하는 연극’인 ‘뮤지컬’이 대세가 될 것이라 말한다.
토마스가 부른 넘버 ‘A Musical’엔 사람들이 뮤지컬을 사랑하게 될 수밖에 없는 모든 이유가 담겨있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던 닉이었지만, 우연히 토마스의 예언과 일치하는 일을 경험하자 그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는 급기야 셰익스피어의 차기작 ‘햄릿(Hamlet)’과 발음이 비슷한 ‘(햄)오믈렛(Omelet)’이라는 뮤지컬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런 가운데 동생 나이젤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포샤와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풋풋한 사랑을 키워간다. 한편, 창작의 고통을 겪던 셰익스피어는 나이젤의 뛰어난 글을 보고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내어 바텀 형제의 계획을 살피기 위해 극단에 잠입한다. 과연 뮤지컬 ‘오믈렛’은 바텀 형제에게 성공의 열매를 맛보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엉망진창 좌충우돌 뮤지컬 탄생기는 작품만이 가진 유쾌하면서도 독창적인 매력과 더해지며 멈출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뮤지컬 ‘썸씽로튼’의 특별함은 적절한 비틀기와 유머, 정겨운 언어유희에 있다. 겉보기엔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인 느낌을 함께 품으면서 원작이 가진 뉘앙스를 자연스레 살렸다. 여기엔 영화 ‘데드풀’, ‘스파이더맨 홈커밍’, ‘보헤미안 랩소디’ 등의 번역을 맡았던 번역가 황석희의 숨은 노력이 빛났다. 놀랍게도 뮤지컬 번역은 그의 첫 도전이다.
또, 곳곳에 인용된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이나 오늘날 우리가 즐겨보는 뮤지컬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뮤지컬 ‘썸씽로튼’엔 다가올 미래에 성공할 작품들이 줄을 잇는다. 뮤지컬 마니아라면 금세 눈치챌 ‘브로드웨이 42번가’, ‘지킬앤하이드’, ‘시카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렌트’, ‘에비타’, ‘위키드’, ‘스위니토드’, ‘캣츠’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손꼽히는 셰익스피어를 당대 최고의 록스타처럼 묘사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가죽 재킷을 입은 셰익스피어가 ‘Will Power’를 노래하며 자신의 인기에 한껏 취한 채 능청스레 무대를 휘젓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느새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이뿐만 아니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달라진 요즘 시대상을 적극 반영했다. 관객들은 이 모든 요소들로부터 낯선 듯 친숙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뮤지컬을 아끼는 관객들에게 더 없는 종합 선물세트가 될 작품, 뮤지컬 ‘썸씽로튼’. 예상보다 길어지는 위기 상황 속에서 이제는 생활 방역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마음 방역라고도 한다. 이럴 때, 고품격 패러디가 선사하는 청량한 웃음과 함께 코로나 블루로 가라앉은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확실한 기분 전환이 되어 줄 것이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0-09-18 1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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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추석연휴까지 즐기는 랜선 공연과 전시, '뮤캉스’ 제안”
코로나19가 반년이상 장기화되자 모든 걸 멈췄던 공연예술계는 네이버 TV와 유튜브를 활용한 랜선 공연으로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를 시도하고 예술의전당과 국립극장,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국악원 등은 공연을 VR 등을 활용한 최첨단 영상기술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렇듯 진화된 기술력이 점차 공연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다. 장르별로 다양해진 콘텐츠가 ‘안방공연’을 다각화하면서 이제 공연이나 전시를 영상으로 즐기는 것이 익숙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표준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랜선 감상의 시대, 백남준 다시-읽기
코로나가 우리 삶을 잠식하기 전인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에서는 2020년 2월9일까지 전 세계에 흩어진 백남준(1932~2006)의 대표작 200여점을 모아 타계 13주기 회고전을 열었다. 26년 만에 처음 복원된 <시스틴채플>부터 영상·빛·위성으로 우리를 하나로 모았던 흔적까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를 그리워한 이들이 발길을 옮겼다. 실재 2022년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관과 시카고 미술관,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와 등 5개 미술관에서 열리기로 한 순회전시는 백남준의 조카(저작권을 승계한 켄 백 하쿠타, 한국명 백건)와의 갈등으로 한국에서 개최 계획이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전시를 다녀온 이들은 시대를 앞서간 그의 천재성이 오늘날 일반적인 것이 된 SNS, 유튜브 등의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한 4차혁명의 기반기술들 속에서 이미 예견됐다고 말한다.
이미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47분 37초, 컬러, 사운드)을 통해 전 세계를 인공위성으로 생중계하며 상호소통적인 예술매체로 활용하는 ‘참여 TV’의 가능성을 제시한 백남준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그의 저서 『1984년』에서 ‘빅 브라더(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권력 및 사회체계)’가 텔레비전 지식과 권력으로 대중을 통제한다는 비판에 돌을 던진 것이다. 우리는 백남준을 미술가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사유는 사실 음악에서 발현되었다. 현대음악의 대표주자인 살럿 무어만과 존 케이지 등과의 협업이 그랬고, 오늘날 일반적인 것이 된 SNS,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한 4차혁명의 기반기술들은 대부분 음악적인 형식을 통해 구현되었다. 실제 한 번도 공연한 적이 없던 요셉 보이스와 존 케이지 등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팝 가수들은 백남준의 기획에 의해 오늘날 랜선공연의 단초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비판과 위기의 시대에 마련된 랜선예술의 다원화 전략은 이후 <바이 바이 키플링>(1986), <손에 손잡고>(1988) 라는 위성오페라 3부작에 의해 완성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다시금 백남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남겨 주었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말에 가장 적합한 그는 모던 시대를 관통한 우리의 미래를 ‘정주 유목민(Sationary Nomad)’에 빗댔다. 유목 개념은 공간과 시간을 뉴미디어 속에서 함께 즐기면서 매개와 소통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여러 사람이 공감하는데 있다. 브라운관 TV는 스마트폰으로, 위성은 다양한 플랫폼 기술로 대체됐을 뿐이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전 세계를 다원예술로 연결하기 위한 시도, 우리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백남준의 예측과 만나게 되었고 그가 보여준 데자뷰(Deja vu)같은 ‘랜선 아트’의 시대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한 부분, 1984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IQLhyDIjtI)
안방서 즐기는 ‘랜선공연’에서 ‘온라인경매’까지
최근 ‘랜선공연’의 인기는 코로나 장기화와 함께 공연, 전시 등의 새로운 컨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탤런트 이광기씨는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강헌)이 공모한 아트경기2020과 함께, ‘이광기의 온오프라인 아트쇼’를 통해 12시간 라이브를 유튜브와 네이버TV에서 선보인바 있다. 아트쇼는 온·오프라인 동시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오프라인 관람을 제한했지만, 첫 시도로서는 천여명이 넘는 동시관람을 기록하며 새로운 장르확산에 기여했다. 공연에서는 아쉽게도 모든 참여 아티스트가 마스크를 쓰고 실시간 영상을 기록했는데 매일 이어지는 공연과 코로나로 침체된 미술계를 살린다는 취지에서 아트경기 선정작가들의 라이브 경매 역시 새롭게 선보였다.
이 현상에 대해 MBC 뉴스데스크는 “온라인 전시회나 온라인 연주회 같은 '비대면 문화생활'이 늘고 있는데 이제 온라인 미술품 경매까지 등장했다.”며 “코로나19로 작가들의 작품활동과 시민들의 문화생활이 위축되자 경제활동과 문화적 재미 두마리 토끼를 잡아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끼스튜디오 대표인 이광기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트쇼의 부제인 ‘Show must go on’은 ‘그래도 쇼는 계속된다’는 코로나 시대 극복과 회복을 주제로 한 풍성한 융복합 예술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목적으로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강연과 아트토크, 국내 미술시장 및 코로나 시대의 미술에 대한 대담, 김규식 첼리스트와 ‘라틴 코리아’ 조윤성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미디어 아트, 특히 미술·음악·무용·악기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Brava Art Museum의 종합 예술 공연 등은 유튜브 광끼채널을 통해 언제든지 다시보기로 시청가능하다. 경기문화재단과 함께한 27시간에 걸친 라이브 공연은 다가오는 긴 추석연휴, 안방에서 보는 랜선공연과 전시라는 새로운 ‘뮤캉스’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아트경기2020과 이광기의 온오프라인 아트쇼(출처: MBC 저녁뉴스)
이러한 방식은 제작·유통과정이 공연보다는 영화와 방송에 가까워 기존 공연 혹은 전시들과는 구분된다. 이러한 다차원의 영상물이 국가 지원 없이 안정적인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보완제로서 산업화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국외와 달리 예술시장이 작은 국내상황에서 온라인 공연과 전시서비스만을 위한 온라인 라이브가 제작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세종문화회관은 민간 공연 10편을 선정해 온라인 생중계를 지원하고 2021년 다원예술 전시를 위해 1억원에 가까운 전시예산을 편성해 놓았다. 이렇듯 활발해진 공연 및 전시의 영상화 시도는 관련 산업을 육성·발전시키는 계기가 돼야 하며 디지털아카이브와 유통, 교육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민관차원의 지원 및 협업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 상황 가운데, 다수의 박물관과 미술관 등도 ‘랜선 전시’와 ‘유튜브 관람’ 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 가운데 서울도시건축전시관(http://www.seoulhour.kr/main/ko/)과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가상현실(VR) 영상을 통해 다양한 전시보기를 제안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현재 서울관과 청주관에서 각각 진행 중인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와 《보존과학자 C》의 하루 영상을 온라인미술관('https://look360.kr/vr/sto_mmcaseoul/sto_mmcaseoul/20517)을 통해 제공한다. VR전시는 공간을 상하좌우 360도 회전하며 볼 수 있는 실감 영상으로, 사용자가 직접 원하는 위치와 작품을 클릭하여 전시장을 간접적으로 공간이동 할 수 있다.
다가오는 추석연휴 다양한 랜선전시와 공연을 통해 백남준이 제시한 ‘정주 유목민’의 자세에서 ‘뮤캉스’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0-09-11 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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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궁중 춤 처용무 vs 서사 무가 바리데기
오래도록 살아남는 노래와 춤은 보편타당한 가치를 담은 이야기 하나쯤 품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노래와 춤에는 한탄하거나 원망하기보다 순응하고 감내하며 살아낼 방도를 찾아 극복하고야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용서와 화해, 치유와 회복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일상이 조금 더 환해질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역신을 물리치는 춤
그는 동해 용왕의 일곱째 아들이다. 용왕은 아들을 신라로 보내며 헌강왕의 정치를 도우라 명한다. 헌강왕은 그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 벼슬도 주고 아름다운 아내와 결혼도 하게 한다. 그런데 아내의 아름다움은 화근이 된다. 역신마저 한눈에 반하게 만들고 만 궁극의 미모. 역신은 그가 출타한 틈을 타 그의 아내와 동침한다. 때마침 돌아온 남편.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그에게 감정이입 하며 잔뜩 별렀던 마음이 허망해진다. 그가 조용히 물러나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하고 노래하는 바람에. 이 대인배의 면모에 역신이 이번에는 그에게 반한다. 무릎까지 꿇고 고백하길 “당신이 있는 곳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노라.” 용서로 역신을 물리친 자, 그의 이름은 처용이다.
처용의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 편에 실려 전한다. 고려사에는 처용희(處容戱)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 시대 악학궤범에는 오방처용무가 등장한다. 다섯 명의 처용이 각각 동(청) 서(백) 남(홍) 북(흑) 중앙(황)을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추는 춤을 오방처용무라 한다. 궁중이나 민간에서 잡귀를 쫓기 위해 행해지던 ‘나례 의식’에서 추었고 조선 후기에는 궁중 잔치에서도 연행되었다. 궁중 춤에서는 보기 드문 가면무이기도 하다. 처용 탈은 낯빛이 어둡고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해 웃는 상이면서도 근엄해 보인다. 머리에 쓴 모자는 삿된 것을 물리치는 복숭아와 경사스러움을 부르는 모란꽃으로 장식해 용서로 벽사를 이룬 신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궁중 춤답게 춤사위에서 절제와 균형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아름다운 궁중 음악 수제천에 맞추어 느리지만 간결한 동작을 반복하며 춘다. 난해한 데가 없고 여느 궁중 춤에 비해 힘차고 호방하며 흥겨운 느낌을 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처용 설화는 알아도 처용이 덩실덩실 추는 춤은 본 사람이 많지 않다. 매년 처용무보존회에서 정기 공연으로 공개 행사를 진행하고 다양한 기획 공연도 연다. 올해는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는 일이 쉽지 않으니 현장감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유튜브를 통해 감상해볼 것을 권한다. 국립국악원 유튜브 채널에서는 처용무 360도 VR영상, 학무와 연화무를 이어서 추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 등도 감상할 수 있다.
넋을 위로하는 노래
한편 그녀 역시 불라국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났다. 딸만 여섯을 내리 낳은 아비는 또 딸이 태어나자 내다 버리라 명한다. 버려진 공주는 다행히 선한 이들의 손에 거두어 길러진다. 세월이 흐르고 오구대왕은 그만 죽을병에 걸리고 만다. 병든 그에게 내려진 신탁은 얄궂게도 버림받은 자식을 구원자로 지목한다. ‘버려진 아이만이 대왕 살릴 약수를 구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아 데려온 딸은 아비를 위해 기꺼이 길을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저승 너머에 있다는 불사약을 구해온다. 그 정성에 하늘이 감복했던지 그 사이 이미 죽었던 아비가 되살아난다. 딸 덕에 목숨 건진 오구대왕이 소원을 묻자 저승 땅 밟아본 그녀는 ‘죽은 이들의 길잡이’가 되겠다 한다. 만신들의 왕이자 죽음을 관장하는 자, 그녀는 바리공주 혹은 바리데기라 불린다.
처용 설화가 일찍부터 문헌에 기록된 것과 달리 바리데기 이야기는 서사 무가 즉 무당이 부르는 이야기 노래로 전해졌다. 이름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죽은 이를 위로하고 무탈한 저승길을 축원하는 굿으로 함경도 지방의 망묵굿․황해도와 서울 경기 지역의 지노귀굿․강원도와 경상도의 동해안에서 행해지는 오구굿․남도의 씻김굿 등이 널리 퍼져있다. 그리고 이들 굿의 제의를 받는 주신(主神)은 모두 바리데기다. 신의 일대기를 풀어내고 신 내리기를 비는 노래를 ‘본풀이’라 하는데, 바리데기가 등장하는 본풀이만 전국 곳곳에 90편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굿판을 구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되었지만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신화나 소설, 동화로 각색되고 공연 예술이나 영상 콘텐츠로 확장되며 우리 곁에 남아있다.
바리데기가 등장하는 서울새남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되어 보존회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개최한다. 동해안별신굿 보유자였던 김석출이 구연한 동해안본 바리데기와 1960년대 문순덕이 구연한 서울본이 지난해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한때 없애야 할 미신으로 치부되었으나 우리 문화는 음악과 춤, 설화에 이르기까지 굿에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이 많다. 다큐멘터리 영화 ‘영매’, ‘허창열씨 오구굿’, ‘만신’ 등은 편견 없이 굿을 이해해 볼 기회가 될 것이다.
「바리 abandoned」는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정재일과 소리꾼 한승석이 함께 2014년 발매한 음반이다. 무가라기보다 판소리에 가깝고 노랫말은 극작가 배삼식이 새로 썼다. 현대인의 감성에 맞게 재창작된 바리데기의 노래 역시 제 몫의 짐을 지고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이들과 안타깝게 스러져간 이들의 해원을 위한 위무의 노래로 남을 모양이다.
정재일․한승석 공연 영상 https://music.naver.com/onStage/onStageReview.nhn?articleId=4914
필자 소개_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0-09-04 1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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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영화관을 자주 찾지 않는 이라 할지라도 명절마다 TV에서 만날 수 있는 ‘해리 포터’ 시리즈나 이제 첩보 멜로드라마의 고전이 된 ‘색, 계’(이안, 2007), 로맨틱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본 사람이라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을 만난 적이 있다. 데스플라는 현재 유럽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화음악가 중 한 사람으로 웨스 앤더슨, 기예르모 델 토로, 톰 후퍼 등 거장 감독들이 계속 함께 작업하기 원하는 작곡가다. 지난 달 개봉한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파스칼 쾨노, 2020)는 그의 음악 세계와 작업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다큐멘터리로 음악가로서의 재능은 물론 성실성과 소통 능력까지 엿볼 수 있다.
그리스인 어머니와 프랑스인 아버지 덕분에 어려서부터 여러 문화권의 음악을 접하며 자란 데스플라는 1990년대 초 프랑스에서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피터 웨버, 2003), ‘탄생’(조나단 글레이저, 2004) 등으로 할리우드에까지 잘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탄생’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3분여의 스코어는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카메라가 조깅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동안 별 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음악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눈밭과 검은 옷의 남자 때문에 거의 흑백으로 보이는 이 신에서 데스플라는 가볍고 단순한 선율을 기본으로 장중하고 무거운 소리를 추가하면서 조금씩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퍼커션이 울려 퍼지면서 조깅하던 사람이 쓰러지면, 이 프롤로그는 한 편의 영화를 요약한 듯한 드라마를 갖게 된다.
오프닝 신에 사용되는 음악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 앤 매너를 반영하면서 관객들을 스크린 속 세계로 몰입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데스플라의 작품들에서는 그 교과서와 같은 테마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서사와 캐릭터에 대한 적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음악이 설계되고 진행된다는 점, 해당 신에 부족한 스토리나 정서를 음악으로 채워준다는 점 등이 데스플라를 동시대 가장 인기 있는 영화음악 작곡가로 만들어준 이유다.
다큐의 제목은 2년 전 그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셰이프 오브 워터’(기예르모 델 토로, 2017)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의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잘 보여주는 것은 첫 오스카상 수상작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웨스 앤더슨, 2014)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음악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핑크색 호텔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거시사와 미시사가 뒤얽히는 서사를 뒷받침하는데 특유의 관현악부터 발라라이카 연주, 그레고리오 성가까지 들어볼 수 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구현한 시각적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이국적이고 환상적이며, 인물별 테마에서는 유머와 슬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면서 이미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데스플라의 전성기는 아직 진행중이다. 부디 영화계가 코로나시대의 불황을 잘 극복하고 엔니오 모리꼬네 이후 가장 낭만적인 영화음악가로 꼽히는 데스플라의 음악을 스크린에서 오래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
경계의 모호함을 일깨우는 도시, ‘후쿠오카’
장률 감독의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 물음표 속을 헤매느니 애초에 해석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이들에게는 너무 심심해서 아무 맛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함께 있어도 사실 서로 겉돌고 있는 인물들, 먹고 마시고 걷고 자는 일 밖에 없는 그들의 하루는 너무 평범하고 현실적이어서 흥미롭지 않다. 그런데 어쩐지 비밀스런 주인공들의 대화나 낯선 카메라의 시선은 요상하게 마음에 남아서 영화와 비슷한 풍경을 마주할 때 불쑥 떠오른다. 장률 감독의 신작을 찾아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이렇듯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쿠오카’는 ‘경주’(2014),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를 잇는 장률 감독의 도시 3부작 마지막 편이다. 이 영화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소담’(박소담)과 ‘제문’(윤제문)의 갑작스런 여행으로 시작된다. 후쿠오카에는 제문이 28년이나 손절하고 지냈던 선배, ‘해효’(권해효)가 술집을 하고 있다. 대학 시절 ‘순이’를 사랑했던 두 사람은 아직도 그 시절의 감정과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소담에게 제문과 해효의 관계는 연적이 아니라 연인으로 보일 정도로 다정하고, 많이 닮아 있기까지 하다. 같은 맥락에서 성인인데도 교복을 입고 다니는 소담, 재일동포였던 순이의 이중적인 정체성, 산 사람과 죽은 사람(귀신) 등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언급되는 것은 ‘경계’의 모호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순이가 떠나기 전날 만난 사람이 제문이었는지 해효였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진실과 거짓도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서 뒤엉켜 버리고 만다. 그래서, 세 사람의 후쿠오카 산책은 인간이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영역, 선을 넘나들며 느끼는 자유로움을 인지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소담의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너무 긴장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여행 같은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0-09-04 1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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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아이들은 집에서 비대면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책상에서 컴퓨터 화면만 보고 수업을 하니 친구를 사귈 수 있는 폭이 좁아지고, ‘너와 나는 다르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는 다양성에 대해 경험하지 못해 획일화되고 한계에 갇힌 생각을 하기 쉽다. 온라인 수업에서 아이들이 다양성과 창의성을 배우며 즐겁게 수업 할 방법이 없을까? 온라인 수업의 장단을 어느 정도 파악한 지금 아이들이 좀 더 즐겁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온라인 교육을 시키고 있는 부모로서 어떤 콘텐츠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사진출처 : www.metmuseum.org>
교육적 효과를 충분히 누리면서도 아이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찾던 중 발견한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웹사이트 #METAnywhere.
메트로폴리탄의 명성에 걸맞게 웹사이트는 볼 것들이 무궁무진했다. 웹사이트를 보는 내내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는지도 모른다. 손 끝의 클릭 하나로 귀중한 유물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다는것이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또 큐레이터에게 직접 듣는 박물관의 이모저모와 뒷이야기, 상형문자 배우기 등 문화유산,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수업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즐길만한 거리가 무엇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았다. 아이들을 위한 온라인 교육인 #MetKids.
첫 번째로 눈에 띈 것은 ‘이집트인처럼 벽화 그려보기’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떤 재료를 사용하였는지, 어떤 그림을 어떻게 그림을 그렸는지 설명되어있어 아이들이 따라하기 쉬웠다. 또한 박물관 지도, 시대와 주제의 분류에 따른 게임 등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뉴욕 필하모닉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포스터 <사진출처 www.nyphil.org>
나의 호기심을 사로잡은 두 번째 콘텐츠는 뉴욕 필하모닉의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이다. 우선 뉴욕 필하모닉은 오프라인상에서도 전문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거장 번스타인이 교육 콘서트를 시작해 많은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고 나 역시 어린 시절 EBS에서 방영한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를 즐겁게 시청한 기억이 있다. 뉴욕 필하모닉에서는 매진 행렬을 거듭했던 Very Young People's Concert를 확장하여 온라인에서 아동들이 접할 수 있도록 Very Young People's Concert at Home을 만들었다. 다양한 음악적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어 클래식 음악에 갖고 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즐겁게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를 소개한다. 싱가포르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다양한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발전시키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는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만 8000여 개 소장한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갤러리이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박물관과 함께 인상주의 기획전을 진행하고, 오르세 박물관에 동남아시아 인상주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게끔 만든 자부심 높은 갤러리이다. 이 갤러리 웹사이트의 특징은 성인과 아동의 경계를 두지 않고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작품을 즐기도록 한다. 특히 2년에 한 번씩 개최하던 어린이 미술 축제를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5명의 동남아시아의 대표작가를 선정, 그들의 작품을 모티브로 다양한 체험 활동을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바로 #GalleryKids이다. 온라인 콘텐츠들은 국가 예술정책과 부합되어 갤러리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Singapore National Gallery <사진출처 https://www.nationalgallery.sg>
웹사이트의 면면을 살펴보니 각각의 기관마다 자신만의 강점을 살린 콘텐츠로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온라인의 강점을 살려 창의적이면서도 접근성을 키운 콘텐츠들은 예술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교육적이고, 동시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어른인 내가 봐도 재미있는 콘텐츠들이니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으리라. 아이들은 공연을 보면서 답답한 현실을 잊고 잠시나마 웃을 것이고, 경이로운 세계 유산을 보면서 다양한 역사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것이다.
각 예술 단체들의 온라인 프로그램을 살펴보며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What)'을 주어야 할 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 좋은 씨앗을 ’어떻게(How)' 줄 지는 때때로 잊고 있다는 것을. 같은 역사와 음악, 미술도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한없이 지루할 수도 반대로 게임보다 더 재미있고 자꾸자꾸 알고 싶고 하고 싶은 놀이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코로 하지만, 마음의 숨은 표현으로 한다. 아이들은 자기표현을 통해 마음의 숨을 내쉰다" 이는 이오식 아동문학가 선생님의 말씀이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온라인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는 것이 들숨이라면, 그 경험을 그림, 춤 노래에 녹여 표현하는 것이 날숨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내가 그린 그림과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온라인 수업으로 제한된 환경 아래 세상의 일부만 보고 속단하기 쉬운 요즘, 다양한 창작 활동을 통해 조금이라도 세상을 넓게 볼 기회가 생기면 한다. 화면 속의 세상을 통해서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지금의 답답한 현실에 발목을 잡히는 일 없이 아이들이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며 자랄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2020-08-28 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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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종종 역사에 ‘만약’을 붙여 상상하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같은 것들이죠. 클래식 음악사에도 흥미롭게 이야기되는 상상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것을 들 수 있겠네요. “만약 모차르트가 오래 살았다면…” 만일, 초점을 베토벤에게 맞춰보면 어떤 상상들이 이야기될 수 있을까요?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 배울 수 있었다면…” “베토벤이 결혼했다면…” 이런 상상들도 흥미롭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토벤이 계속 들을 수 있었더라면…”
베토벤(1770-1827)이라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그의 청각 장애는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청각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예술가’와 같은 표현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요. 베토벤의 청각 이상은 언제부터 있던 것이었을까요?
베토벤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청각에 이상이 있음을 밝힌 것은 1801년, 의사이자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베겔러(F. G. Wegeler, 1765-1848)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습니다. “내 청력이 지난 3년 동안 계속해서 약해졌어…” 베토벤의 말대로라면, 1790년대 후반, 그러니까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 자신의 청각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죠. 당시 그가 받았을 충격과 절망,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 귀를 바라보며 느꼈을 초조와 불안은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이듬해인 1802년 작성한,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고통과 그로 인해 결국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심정마저 들어있는 이 유서는 사람들을 오해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베토벤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된 것처럼 말이죠. 베토벤의 글을 보면 이런 오해를 할 만하기도 한데, 전기작가 솔로몬은 베토벤이 불안에 사로잡혀 청각이 나빠지던 초기 상태를 극적으로 과장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내 청력이 지난 3년 동안 계속해서 약해졌어…” 라는 글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베토벤의 청각 장애는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솔로몬에 따르면, 청각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1812년 이후라고 합니다. 이듬해 그는 보청기 제작을 지시했지요. 1818년부터 사람들이 베토벤과의 의사 소통을 위해 노트에 글을 썼던 것을 보면, 보다 심각해진 그의 청각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베토벤의 청각은 그의 생애 말년에도 완전히 상실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1824년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열광적인 박수 소리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그의 청각은 실질적으로 상실된 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습니다.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좌)와 베토벤이 사용했던 보청기들(우).
출처: Beethoven-Haus Bonn)
베토벤의 청각 장애는 그의 음악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적어도 작곡 분야에는 그의 청각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청각 장애로 인해 그만의 예술을 더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이죠. 생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가 창조해낸 뛰어난 작품들, 특히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그의 후기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이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러나, 작곡 분야와 달리, 순간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연주 분야에는 그의 청각 장애가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14년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를 들었던 작곡가 슈포어(L. Spohr, 1784-1859)는, 한 때 빛났던 베토벤의 연주가 심하게 망가져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하였습니다.
연주에서 소리를 세게 내야 하는 부분은 너무 시끄러울 정도로 컸고, 여리게 내야 하는 부분은 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죠.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의 위험이 고스란히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 결국 베토벤은 이듬해인 1815년, 자신의 가곡 “아델라이데”의 피아노 반주를 끝으로 공개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휘는 더 오래 했지만, 그의 지휘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가 어긋났는데도 그가 알아채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했죠. 1822년, 자신의 오페라 “피델리오” 리허설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휘와 연주가 어긋났지만, 베토벤은 리허설이 잘 끝났다고 생각했지요. 결국에는 극장 측에서 베토벤에게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그의 지휘 활동은 고통스럽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음악가로서, 그리고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베토벤은 청각 장애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겪었던 고통 덕분에 우리는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와 다른 이들 간의 소통을 위해 사용되었던 대화록 덕분이죠. 그의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작성된 이 대화록은 그와 그를 둘러싼 당시 상황들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글의 서두에 나왔던 상상처럼, 만약 베토벤이 계속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청각 장애를 갖지 않은 그의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그의 예술적 창조력이 장애에 의해 결코 저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그의 예술성은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빛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베토벤을 작품을 통해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0-08-28 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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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독보적인 존재감, 과학자 ‘마리 퀴리’의 삶과 고뇌를 그리다
올 초 성공적인 초연을 마무리했던 뮤지컬 ‘마리 퀴리’가 재연으로 돌아왔다. 예상보다 빠른 귀환에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번에는 대극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카이스트 출신 김태형 연출이 전체적인 지휘를 맡아 무대 구성과 분위기, 동선, 넘버 등을 다듬고 규모를 키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대학로에서, 그것도 여성 캐릭터를 원톱으로 앞세워 작품을 만드는 일은 흔치 않은데 ‘마리 퀴리’는 그 한계를 뛰어넘으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당당히 증명해냈다. 여기에 2018년 트라이아웃부터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 역을 모두 맡아온 김소향과 데뷔 15년 만에 처음으로 대학로 무대에 서는 옥주현이 나란히 캐스팅돼 또 한 번 시선을 끌었다.
작품은 과학사에 길이 남을 그를 무대 위로 불러와 온전한 한 인간으로 재조명한다. 하지만 ‘뛰어난’ 마리 퀴리가 아니라 인물이 가진 고뇌와 고통, 극복과 성장에 주목했다. 역사적 사실에 다양한 상상력을 가미한 전개는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만큼 깊은 감동을 준다.
마리에게 과학은 삶의 전부였다. 소르본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폴란드에서 온 이방인’, ‘늘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괴짜 여인’으로 불리며 내내 차별과 억압을 견뎌야 했던 그다. 하고 싶은 일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저할 것도 없었다. 탐구는 그칠 새 없이 계속됐고 결국 인류 최초로 새로운 방사성 원소 라듐을 발견해내는 성과를 이룬다. 덕분에 남편 피에르 퀴리와 공동으로 노벨상을 받게 되지만 이때 또 한 번 여성 과학자로서 넘기 힘든 현실의 벽을 느끼고 만다.
온 세상이 이 놀라운 물질에 뜨겁게 열광할 때 마리는 후속 연구에 매진한다. 그 사이 라듐은 널리 상품화되며 마치 인류를 구원할 물질처럼 추앙받는다. 암 치료와 관련해 의학적인 효과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성도 발견됐다. 그러나 그 이면엔 끔찍한 위험이 감춰져 있었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라듐의 두 얼굴은 마리를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했지만, 인체에 미치는 위해성을 확인한 직후부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두려움과 절망을 이겨내고 라듐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나 자신의 연구가 초래한 결과를 회피하려 하지 않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여러모로 기존 작품과 차별화된 부분이 많다. 우선 여성 서사극을 떠올렸을 때 흔히 예측할 수 있는 전개를 따르기보다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또, 보통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더라도 조력자나 친구 역할은 남성인 경우가 많은데 이와 다르게 안느 코발스키라는 여성을 내세웠다. 안느는 마리와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 신뢰 관계를 맺고 문제 해결의 열쇠와 발상의 전환을 유도하는 역할에 충실하며 끝까지 함께 성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다채로운 넘버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그중에서도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 ‘또 다른 이름’ ‘그댄 내게 별’ ‘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은 작품의 서사를 더욱 단단히 연결하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만큼 큰 감동을 준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사한 대가로 영원한 고통을 받았듯 마리 퀴리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빛나는 별은 끝내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았다. 뮤지컬 ‘마리 퀴리’가 전한 희망의 메시지는 오늘날 자신의 궤도를 잃고 흔들리기 쉬운 상황에 놓인 모두에게 환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0-08-21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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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진다는 속설이 있다. 항간에는 ‘여성 비하’라 해석하기도 하고 오히려 치마가 길어지더라는 데이터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냥 표현 그대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여유가 사라지게 마련이고 그래서 더 과감한 패션이 유행을 한다”고 풀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공황이 미니스커트의 유행을 불러온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쉽게 판단할 순 없지만 확실히 문화산업에서는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회가 우울하고 돈벌이가 시원찮을수록 코미디나 이색 소재의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쉽게 목격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락거리가, 무대가, 영상 콘텐츠가 잠시 현실의 어려움을 잊고 삶의 힘을 되찾도록 배려하는 탓이다. 잠시의 판타지나 일탈이 일상의 피로를 지우거나 극복하게 만든다. 문화와 예술이 우리에게 사랑받는 이유이자 의미다.
코로나 19로 보통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진 게 벌써 반년째다. 하지만 수그러들지 모르는 감염병의 위협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정치색을 띤 집회에 특정 교회 목사나 정치집단이 관여돼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태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겨우겨우 예전으로 복귀하던 우리나라 뮤지컬 공연가가 또 다른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새다. 민간 공연에서까지 ‘띄어 앉기’를 강제하겠다는 정부의 지침으로 아예 문을 닫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매출규모가 큰 뮤지컬계가 가장 엄살이 심하다고 핀잔하는 사람도 있다. 모르고 하는 말이다. 매출이 높을수록 피해가 더 클 수도 있고 절반의 관객으로는 배보다 배꼽이 큰 구조적 문제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클래식이든 상업예술이든 절반의 관객으로는 치명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무대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현실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함의 효과는 더욱 강렬하고 격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면 힘들수록 문화와 예술이 주는 위로는 더욱 강력해진다.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닌, 그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힘을 느끼게 마련이다. 인류에게 문화와 예술이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존재해 온 이유다.
요즘 우리나라 공연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야기 소재는 성소수자이다. 뮤지컬 분야에서는 특히 그렇다. 예를 들자면 새롭게 막을 연 영국 뮤지컬 ‘제이미’가 그렇다. 여장남자를 의미하는 드렉퀸이 되고 싶어했던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군대를 다녀온 조권이나 신주협, MJ, 렌 등이 주연으로 등장하며 특유의 끼와 연기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2015년 토니상 12개 후보에 올라 최우수 뮤지컬상을 포함 주요부분 5개상을 석권했던 미국 뮤지컬 ‘펀 홈’은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엘리슨 벡델이 43살이 되어 게이였던 아버지를 회고하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원작이다. 실력파 뮤지컬 배우인 방진의가 최유하, 유주혜, 이지수 등과 함께 43살의 앨리슨 역할로 무대에 등장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뿐만 아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킹키 부츠’도 2020년 앙코르 무대를 준비 중이다. 영국 시골마을 남성화 신발공장이 니치 마켓인 여장남성을 위한 튼튼하면서도 섹시한 롱부츠를 만들게 된다는 내용이다. 역시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데, 처음에는 다큐멘터리로 영국 BBC에서 소개됐던 내용을 코믹영화로 만들고 다시 무대용 뮤지컬로 환생시켜 인기를 누린 경우다. 이번 앙코르 무대는 박은태, 최재림, 강홍석이 드렉퀸인 롤라 역으로 무대에 등장해 비교할 수 없는 끼와 흥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은 막을 내렸지만 오랜 세월 인기를 누린 사례로는 ‘헤드윅’도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공산 정권하의 동베를린을 벗어나기 위해 트랜스젠더의 삶을 선택하지만 잘못된 싸구려 성전환수술로 사타구니에 1인치 살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이도 저도 아닌’ 존재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 헤드윅의 넋두리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점차 트렌스젠더가 아닌 인간 헤드윅을 이해하며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 각별한 묘미다. 조승우나 오만석, 조정석, 김다현 등 간판급 꽃미남 배우들이 거쳐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단 두 명의 남자 배우만 등장하는 ‘쓰릴 미 Thrill me’도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 사례다. 스스로를 니체의 초인이라 여길 만큼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받던 두 청년이 이유 없는 유괴와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다. 한 명은 파괴를 통한 자극을 위해서였고 다른 한 명은 그런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류정한 김무열 등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미남 배우들이 등장했었는데 극중에서 사실 이들은 모두 동성애자들이다. 키스씬도 등장하고 남성끼리 애정행각도 벌이는 등 성소주자의 모습이 꽤나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성적 소수자의 등장을 단순히 충격적인 캐릭터를 통한 별난 자극쯤으로만 여긴다면 절반짜리 이해에 불과하다. 사실 이런 작품들의 진정한 묘미는 성 정체성 그 자체보다 이들이 겪는 인격적 성숙이나 휴머니즘의 공감대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대는 이들 성적소수자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정상’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풍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극 뒤에 숨겨진 보편적 감동의 원리를 찾아낼 때 비로소 작품에 대한 이해가 완성된다는 점은 간과되어선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기회가 허락된다면 꼭 도전하라 권하고 싶은, 코로나 19도 막을 수 없는 요즘 볼 만한 최고의 무대들이다.
필자소개 -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0-08-21 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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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해금과 아쟁. 국악기 중에 ‘줄을 문질러 소리를 내는 악기’는 단 두 개뿐이다. 관악기처럼 소리를 길게 뻗어낼 수 있어서 현악기이면서 관악합주에 편성되는 악기도 이 둘 뿐이다. 해금이 바이올린처럼 높은 소리를 낸다면 아쟁은 첼로처럼 중후한 음색을 가졌다. 조선 시대 궁중 음악에도 쓰였고 오늘날에는 전통 춤이나 노래의 반주 악기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헌의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두 악기 모두 조선 이전부터 이 땅에서 연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단짝처럼 붙어있기 일쑤인 이들은 현대에 이르러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영욕의 세월을 함께하고 있다. 해금을 아쟁이라 부르는 이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국악기는 흙, 돌, 쇠, 실, 가죽, 나무, 대나무, 바가지(박) 등 악기의 주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로 구분 짓기도 한다. 재료 이름을 한자로 바꿔 토부, 석부, 금부, 사부, 혁부, 목부, 죽부, 포부로 나누는 것이다. 대나무를 잘라 만든 피리나 대금 등 관악기는 주로 죽부에 포함되고 현악기는 대체로 사부에 속한다. 소리에 관여하는 주재료가 명주실이기 때문이다. 해금과 아쟁 역시 사부에 속한다.
천의 얼굴을 가진 악기 : 해금
그런데 해금의 생김새를 보면 명주실을 꼬아 만든 현은 달랑 두 줄 뿐이다. 대나무로 만든 공명통에 가느다란 대나무를 끼워 만든 몸체, 대나무와 말총을 연결해 만든 활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나무로 만들고 관악기의 선율을 연주하는 해금은 현악기와 관악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하여 ‘비사비죽(非絲非竹)’이라 불리기도 한다.
해금 연주자들은 두 줄의 현에 왼손의 손가락 네 개를 얹고 쥐락펴락하며 음정을 만든다. 미세한 음정의 변화를 표현할 수 있어 음 체계가 다른 서양 음악도 수월히 연주한다. 활대를 사용하는 여느 악기들이 활을 팽팽하게 조인 채 연주하는 것과 달리 해금은 오른손으로 활의 장력을 조절하며 연주한다. 다채로운 음정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무장한 해금은 그만큼 쓰임새가 많다. 현악기이면서 관악기의 역할까지 해내기 때문이다.
‘깡깡이’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익살스러운 소리로 해학적인 장면을 묘사하기도 하고 서양 현악기의 금속성 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비애를 표현하기도 한다. 재즈와도 어울리고 현대 음악과의 앙상블도 훌륭히 소화해낸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광고 음악으로도 각광받는다.
대중과의 접점이 많았던 덕에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해금 연주곡들이 많고 오랜 시간 사랑받아 온 해금 연주자들도 많다. 그중 한여름에 듣기 좋은 음반으로 강은일의 ‘오래된 미래’, 꽃별의 ‘숲의 시간’을 추천하고 싶다. 두 음반에는 모두 ‘초수대엽’이라는 제목의 곡이 실려 있는데 해금을 비롯한 악기 두엇으로 담박하게 연주한 곡들이다. 우리 전통 성악곡인 가곡 중 ‘초수대엽’에서 그 이름을 빌려왔다. ‘초수대엽’은 가곡 한바탕을 이어 부를 때 제일 처음으로 부르는 곡이다. 해금이란 신세계에 첫발을 딛고자 한다면, 함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음반들이다.
더 깊이 스미는 나지막한 울림 : 아쟁
19세기 이전에는 선비들의 악기, 거문고가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불렸다. 20세기는 가야금, 21세기는 해금의 전성시대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다음 세대의 악기로 아쟁을 꼽는다.
‘가거대피해’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등 다섯 가지 국악기를 가리키는데 여기에 끼지 못하는 여섯 번째 국악기가 바로 아쟁이다. 고음을 구사하는 러시아 가수에게 ‘아쟁 총각’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이름은 알려졌으나 악기의 모양새나 속성은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악기다. 해금과 같이 관악기의 속성을 지닌 현악기로 연주법의 다양함과 악기의 쓰임새가 결코 해금에 밀리지 않는다.
모양만 봐서는 가야금 거문고와 비슷하다. 나무로 된 긴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얹어 만든다. 산조 아쟁과 개량 아쟁에는 말총으로 만든 활을 사용하고 궁중 음악에서 쓰는 대아쟁에는 개나리나무를 깎아 만든 활대를 쓴다. 국악 합주에서 주로 저음의 영역을 도맡고 있으며 창작 곡의 협연 또는 독주 악기로 부상 중이다.
아직 다른 악기들처럼 국악 전 장르를 아우르는 음원들을 풍요롭게 구비하고 있지 않다. 아쟁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아쟁컴퍼니 아로새김’, ‘아쟁앙상블 보우잉’의 음반에 옛 음악을 재해석한 곡과 창작곡이 비교적 고루 담겼다. 도널드 워맥의 ‘소리(sori)’라는 곡은 원래 해금, 첼로, 장구 편성으로 작곡되었지만 국립국악원 연주자들이 해금, 아쟁, 타악 편성으로 편곡해 공연한 바 있다. 유튜브에서 두 가지 버전을 찾아 들어보면 아쟁과 첼로의 질감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컨템퍼러리 댄스 그룹 모던테이블과 여러 차례 협연한 아쟁 명인 김영길의 음반 ‘Coree: L’art Du Sanjo D’ajaeng’에는 전통 기악곡의 백미 산조가 담겼다. 모두 만나보면 아쟁이 한층 친밀하게 여겨질 것이다.
국악기 중 찰현 악기는 아쟁과 해금뿐이다. 서두의 이 말은 틀린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험과 도전 정신으로 충만한 후세의 예술가들이 국악기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병기의 ‘미궁’ 공연 영상을 찾아보면 활대로 가야금을 연주하는 명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의 음반에도 활로 연주한 거문고 곡들이 실려 있다. 쉽사리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국악이 이만큼 왔다. 그러니 이제 해금과 아쟁은 그만 헷갈릴 때도 되었다.
필자 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0-08-14 1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