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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우리 전통 성악곡 중에는 ‘태평가’라는 이름을 가진 노래가 두 개 있다. 가곡 태평가와 민요 태평가다. 전통 사회에서 가곡과 민요는 가락도 장단도 향유하는 사람도 각기 달랐지만 가사에 담긴 의미만큼은 일맥상통한다. 태평성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사태평하기를 바라는 마음.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행간에서, 우리네 삶을 어지럽히는 근심 걱정을 꾹꾹 눌러보려는 의지가 읽힌다.
가곡 태평가
가곡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우리 전통 성악의 한 장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지만, 가곡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양 성악을 전공한 이들이 부르는 ‘비목’이나 ‘그리운 금강산’ 같은 곡을 먼저 떠올린다. 우리 가곡은 시에 곡을 붙인 서양의 가곡처럼, 시조에 가락을 붙여 부르는 노래다. 시조를 지은 이는 임금부터 선비, 중인 중심의 가객, 기녀들까지 다양했다.
가곡 태평가 공연 장면(출처: 국립국악원 국악아카이브)
그 시조에 가락을 붙인 노래인 가곡은 주로 율객(律客)이라 불린 전문가들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주 향유층은 양반이었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단소, 대금, 장구 등의 악기로 반주하며, 시조 한 편을 5장으로 나누어서 부른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전주인 ‘대여음’이, 3장과 4장 사이에 간주인 ‘중여음’이 연주된다. 노랫말의 문학성뿐 아니라 완벽한 음악적 구성, 예술적 가치까지 두루 갖춘 음악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전승되어 불리는 가곡은 총 41곡인데 남자가 부르는 ‘남창’과 여자가 부르는 ‘여창’으로 나뉜다. 그중 가곡 태평가는 유일하게 남녀 가객이 함께 부르는 노래다.
(이려도) 태평성대 / 저려도 성대로다
요지일월이요 순지건곤이로다
우리도 / 태평성대니 놀고 놀려 하노라.
이러나 저러나 태평성대로구나
요순 시절의 해와 달이요, 하늘과 땅이로다
우리도 태평성대에 놀고 놀려 하노라
가곡 태평가의 가사는 달랑 세 문장이지만, 노래 한 곡을 다 부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8분 남짓이다. 태평가는 전주인 ‘대여음’이 없이 시작되고 첫 소절인 ‘이려도’는 거문고 연주로 대신한다. 실제 부르는 첫 구절은 ‘태평성대’인데, 이 네 음절을 노래하는 데 어림잡아 40초 정도 걸린다. ‘태’ 한 글자를 ‘타으~ 으으~’하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빨라서 알아듣기 어려운 곡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느려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가 가곡이다. 하지만 노랫말인 시조의 구절구절을 음미하고, 맑고 곱게 소리내는 음색을 따라가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드는 가곡의 담박한 맛을 깨닫게 된다.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지만, 가곡을 노래하는 이들이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는 덕에 우리는 어쩌면 이 낯선 전통 음악과 이미 한 번쯤 조우한 적이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해어화를 통해 알려진 ‘사랑, 거즛말이’는 가곡 ‘계면조 평거’를 원곡으로 한다. 창작곡에 가깝지만, 노랫말과 창법 등은 원곡과 많이 닮아있다. 가곡 이수자인 강권순이 송홍섭 앙상블과 낸 음반이나 정가 여신이라 불리는 하윤주가 두번째달과 함께한 노래들도 현대의 청중에게 다가가고 있는 가곡의 일면을 보여준다. 유튜브에서는 경남 MBC가 제작하고 가곡 예능보유자 조순자 명인이 출연한 2부작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가곡이 무엇인지, 명인으로부터 한 수 배울 수 있는 영상이다.
민요 태평가
생활 전반에서 불리던 민요는 지역에 따라 경기 민요, 남도 민요, 동부 민요, 서도 민요, 제주 민요 등으로 나누는데 태평가는 경기 민요에 속한다. 경기 민요는 맑은 소리로 경쾌하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가곡에 비해 민요 태평가는 많이 알려진 노래다. 지코, 넬, 우쿨렐레피크닉 등이 각자의 버전으로 만들었던 광고 음악 ‘사는 게 니나노’의 원곡이 바로 ‘태평가’다.
1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2
꽃을 찾는 벌 나비는 향기를 쫓아 날아들고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 사이로 왕래한다.
(후렴구) 니나노 늴리리야 늴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씨구 좋다 벌 나비는 이리저리 펄펄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민요 태평가는 대구를 이루는 두 문장 정도의 가사를 노래한 후 ‘니나노~’하고 시작하는 후렴구를 붙여 부른다. 후렴구 앞에 부르는 사설은 매우 다양하다. 부르는 이가 새로 창작하거나 변형하며 노랫말을 확장해나가는 민요의 특징 덕분이다.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찾아 들어보면 부르는 사람에 따라 또는 공연이나
음반에 따라 가사가 조금씩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이희문이나 송소희, 전영랑, 김용우 등 경기 민요 소리꾼들의 음반에는 태평가가 거의 다 들어있다. 이들의 음반을 찾아 듣다 보면 태평가뿐 아니라 흥겹고 세련된 경기 민요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태평가의 가사에 ‘태평’의 본질이 담겨있다. 1절에서는 ‘비 오면 미투리 안 팔리고 해 나면 나막신 안 팔리고, 비 와도 탈이고 안 와도 걱정’이라 노래하더니 2절에서는 ‘비 오면 나막신 잘 팔리고 해 나면 미투리 잘 팔리고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마음이 아주 턱 놓여서 태평’이라고 능청이다. 매사 천하태평의 경지에 다다를 마지막 열쇠는 결국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태평가는 노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0-12-04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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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2번으로 인정받기까지
[클래시그널] 지난 봄, 지인의 소개로 함께 식사를 하게된 그녀는 자신을 '희극인'으로 소개했다. 그녀는 위트가 있으면서도 침착했고 조리있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금 놀랐던건 식사메뉴를 고르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신중했다는 것. 탄수화물을 피한다는 말을 그때는 별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지만 지병으로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지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되었다.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몇주 전 그녀의 생을 마감했다.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선사했던 그녀의 죽음은 갑작스럽고 황망한 비보였다. 그날 함께했던 모습은 우리 일행과 함께 연남동 거리를 거닐던 경쾌한 발걸음의 밝은 모습이었는데.. 워낙 방송에서 밝고 웃음이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그녀에게 소개했던 유일한 클래식 곡 하나가 기억난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아름다운 클라리넷 솔로가 인상적인 3악장이 잘 알려져있다.
월트 디즈니와 함께한 라흐마니노프 (출처: Rebecca Franks's blog)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생 러시아 태생으로 1년 늦게난 동시대의 전위적인 작곡가 쇤베르크와 달리 고전적인 음악어법을 고집했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끝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음악은 낭만적인 선율과 극적인 음악적 서사로 인기가 높으며 어려운 클래식의 단비같은 존재다.
걸출한 피아니스트이기도했던 라흐마니노프를 떠올리면 한국인들은 의례 피아노협주곡 2번을 떠올리는데 피아노곡을 제외하면 '교향곡 2번'이 자타가 공인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역작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교향곡 2번을 가리켜 "라흐마니노프의 가장 위대한 작품인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라고 소개한 바 있다. 차이콥스키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현재 클래식의 가장 대표적인 레파토리로 인정받기까지 그 과정은 어떘을까.
그는 교향곡 2번을 세상에 내놓기전 한참동안 침체의 늪에 빠져있었다. 나이 스물셋에 야심차게 발표한 교향곡 1번의 초연이 참담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1894년 차이코프스키의 부고소식을 접하고 우울증의 나락에 빠졌을정도로 약한 멘탈이었던 그에게있어 초연의 실패는 크나큰 정신적 충격이었다. 마음을 추스리기위해 찾아간 대문호 톨스토이가 그의 연주를 듣고 했던 말. " 누가 이런 음악을 듣겠는가". 거의 3년간 신경쇠약에 걸려 거의 작곡에 손을 놓았던 그에게 찾아온 전환점은 1900년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Nicolai Dahl) 박사와의 만남이다. 최면요법을 포함한 심리치료의 일환으로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작곡가로 재기할 것이라는 것을 자기암시를 통해 끊임없이 되새김질 했다고한다.
결국 1901년 완성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며 그에게 '글린카 상'을 안겨주었고 이 작품은 달 박사에게 헌정되었다. 1906년 그는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 독일 드레스덴으로 건너왔는데 이곳에서 교향곡 2번이 탄생한다. 비밀리에 작곡을 진행했던 그가 작곡을 마친 후에서야 지인에게 했던 말. " 사실 한 달전에 교향곡을 하나 작곡하긴 했지만 치워버렸다네, 심각하게 걱정스러워서 더 이상 생각하고싶지 않네". 교향곡 1번에서 맛본 실패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시카고 심포니의 전담 주석가이자 평론가였던 필립 허셔는 "1번 교향곡의 참담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2번 교향곡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1908년 모스크바에서 그는 자신의 지휘로 교향곡 2번을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고 두번째 글린카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 이후 교향곡이 너무 길고 장황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며 곧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고민끝에 라흐마니노프는 지휘자가 임의로 길이를 줄여서 연주할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했는데 교향곡장르에서는 보기 드문 전례로 작곡가로써의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이며 나름의 타협점을 모색한 것이다.
1시간정도 걸리는 교향곡은 결국 대부분 30분내와로 축약되어 연주되었지만 이마저 점차 잊혀졌고 피아노 협주곡 2번이나 파가니니 주제에의한 랩소디같은 피아노곡에 비해 저평가 되어왔다.
하지만 1973년 녹음된 앙드레 프레빈과 런던 심포니의 음반을 통해 상황은 반전되었다. 작품의 빼어난 음악적 함의를 알아본 프레빈이 음반녹음은 물론 유럽을 비롯해서 미국, 아시아 곳곳에 무삭제 버전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많은 지휘자들이 다시 이 작품을 찾았고 수많은 음반녹음까지 가세하며 큰 인기를 누리게되었다. 심지어 싱어송라이터 에릭 칼멘이 3악장의 주제선율을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라는곡에 차용하여 대중성까지 갖추게 되었다. 현재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에 능한 탁월한 심포니스트(Symphonist)로 인정받고 있다.
참담한 실패의 아픔을 딛고일어나 우울증을 극복해나가며 다시 한번 교향곡에 도전했던 라흐마니노프. 그래서인지 더욱 그의 작품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고(故)박지선씨에게 직접 3악장을 들려주었을때 그녀가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했던 말이다 " 뭔가 아직 어려운데 뭔가 좋은 것 같아요". 참 두루뭉실하고 솔직한 대답이다. 먹먹하게 심금을 울리는 3악장의 클라리넷 솔로와 함께 유쾌한 웃음과 행복을 선사하고 떠난 우리의 '멋쟁이 희극인'을 추모한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0-11-27 1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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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음악 감상의 즐거움 중 하나는 한 작품을 다양한 연주자의 해석으로 감상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즐거움을 위해 사람들은 많은 음반을 모으기도 하지요. 유튜브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의 등장은 이러한 비교 감상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베토벤 교향곡 5번’을 검색하면, 하루에 다 듣기도 어려울 정도의 많은 영상 및 음원이 등장합니다. 수많은 베토벤 교향곡 5번을 감상한다는 것은, 결국 수많은 ‘다른’ 해석을 접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제일 먼저 인식되는 ‘다름’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이 ‘빠르기’ 즉 ‘템포’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제일 먼저일 뿐 아니라, 가장 쉽게 인식되기도 하는 ‘다름’이죠. 이는 템포의 변화에 따라 곡의 인상이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연주에 있어 템포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늘 자리하지요.
작곡가들은 연주자들이 어떤 템포로 연주해야 하는지 적어 놓습니다. 전통적으로는 이태리어로 적어 놓았죠. 우리에게도 친숙한 Allegro (빠르게), Adagio (느리게)와 같은 단어로요.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빠르고 느린 ‘정도’를 정확히 알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는 한 작품이 탄생한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령, 베토벤이 생각했던 ‘빠르다’가 그가 사망한 지 20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의 음악가가 생각하는 ‘빠르다’와 같을까요?
베토벤(1770-1827) 생전에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이 있었습니다. 바로 메트로놈(Metronome)이었죠. 독일 출신의 멜첼(J. N. Mälzel, 1772-1838)이 1815년 특허를 낸 이 제품은 특정 음가가 1분당 몇 번 연주되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60 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면, 4분 음표가 1분에 60번 연주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죠. 이런 방식을 통해 작곡가가 원하는 템포의 ‘정도’를 기존의 이태리어 템포 표기보다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베토벤은 메트로놈의 출현을 무척이나 반겼습니다. 이는 1817년 12월에 그가 썼던 한 편지에서, 이태리어 템포 표기에서 느끼는 그의 답답함과 메트로놈이 있으니, 더 이상 이태리어로 템포 표기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요. 이 시점에, 베토벤은 그 때까지 작곡된 그의 교향곡들(1-8번)과 7중주, 그리고 현악 사중주들(Op. 18/1-6, Op. 59/1-3, Op. 74, Op. 95)의 템포를 메트로놈을 이용해 표기했습니다.
멜첼이 1815년에 만든 메트로놈. (public domain)
그런데, 위에서 언급된 편지에서의 결심과는 달리, 베토벤은 1817년 이후에도 이태리어 템포 표기를 계속해서 이용하였습니다. 이태리어 템포 표기에 메트로놈 표기가 더해진 것은 9번 교향곡 등 소수의 작품에 불과했지요. 베토벤이 왜 이러한 태도를 보였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1826년, 베를린에서는 처음으로 연주된 그의 교향곡 9번이 성공을 거두자, 이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그 공연에서의 성공은 자신이 전달해 준 메트로놈 표기 덕분이라고 편지에 썼던 것을 보면, 그의 태도는 의아하기도 하지요. 아쉽게도 메트로놈 표기가 포함된 베토벤의 작품은 전체 작품 중 일부에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베토벤이 어떤 템포를 원했는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베토벤이 메트로놈의 출현에 열광했던 것과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의 메트로놈 표기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주된 이유는 메트로놈으로 표기된 그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너무 느린 메트로놈 표기도 존재해서 논쟁이 되곤 하는데, 메트로놈 표기의 수용 여부와 관련하여, 이는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C. Kleiber, 1930-2004)는 “바보들은 메트로놈이 너무 빨라질 때는 그것이 고장났다고 확신한다. 너무 느린 건 절대로 문제 삼지 않으면서 말이다.” 라고 지적하기도 했죠.
베토벤의 너무 빠른 메트로놈 표기를 설명하는 여러 주장들이 있었습니다. “Allegro와 같은 빠른 템포의 곡에서는 제시된 메트로놈 표기보다 2배 느리게 연주해야 한다.” 라는, 극단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주장도 있었는데요. 보다 설득력 있고 숙고해볼 가치가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주장입니다. “베토벤은 실제 연주된 템포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그가 머리 속으로 생각한 템포를 메트로놈을 통해 적은 것이다. 생각 속의 템포는 실제의 템포보다 조금 더 빠르다.”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는 베토벤 당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이른바 원전 악기 연주가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 이후 보다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휘자 라이보비츠(R. Leibowitz, 1913-1972)가 1961년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를 준수하고자 하는 시도가 그 이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로서는 과감했던 시도로 여겨졌지요.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가 템포에 대한 그의 의도를 담고 있다고 할 때, 이 표기를 따르지 않은 연주들은 자칫 ‘틀린’ 연주로 여겨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틀리다’ 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템포에 있어 베토벤의 의도와는 ‘다른’ 연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한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을 더 넓혀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요.
이제는 서서히 저물어가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 다양한 템포로 재해석된 그의 음악을 찬찬히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음반 추천> 베토벤 교향곡 5번 중 1악장.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르네 라이보비츠 지휘.
빠른 템포를 시종일관 유지하며, 날렵한 5번 1악장을 들려주는 연주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다소 흐트러질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템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요. 베토벤의 메트로놈 표기를 존중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자 노력했던 라이보비츠는 베토벤 교향곡 연주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더욱 부각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X4JRgLmCA1I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0-11-27 1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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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인간이 선사하는 극강의 아름다움, 새로이 새길 역사...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클래시그널] 현지 시각 기준 2019년 4월 15일 오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번진 불로 전 세계인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건.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으나 이제 복구라는 과제가 남았다. 1345년에 완공된 이 성당은 프랑스인에겐 자부심이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로도 잘 알려졌다. 고딕 양식을 따른 대표적인 건축물로, 하늘을 찌를 듯한 직선미가 돋보이는 디자인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높은 곳에 닿고 싶은 욕망을 담았다. 이번에 소개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도 이곳에서 시작됐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한국 초연 15주년을 기념해 프렌치 오리지널 내한공연으로 우리 곁을 찾았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개막해 내년 1월 17일까지 예정된 이번 공연은 2015년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다시 만난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의상·분장·조명·안무 등 기존 작품에 새로움을 가미해 더욱 섬세하게 발전된 모습이었다. 12월에 합류할 예정인 초연 오리지널 캐스트 다니엘 라부아(프롤로 役)의 첫 내한도 기대를 모은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1831년 작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원작으로 한다.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해 매력적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과 욕망, 혼란스러운 사회를 벗어나 새롭게 도래할 시대에 대한 갈망을 그렸다.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지금까지 1,5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해왔으며 작품 전체를 마치 한 편의 시처럼 표현해 더욱 매력적인 뮤지컬이다.
배경은 1482년 파리. 작품의 스토리텔러이자 음유시인 그랭구아르가 푸른빛으로 가득한 무대에 올라 ‘대성당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를 부르자마자, 공연장은 단숨에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으로 옮겨 간다. 무대 규모도 압도적이다. 길이 20m, 높이 10m 규모의 대형 세트는 주된 배경이 될 대성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단순하게 표현했다. 100㎏이 넘는 성당의 종, 움직이는 기둥과 가고일 역시 인상적이다. 여기에 빛과 그림자를 적절하게 활용한 연출,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더해지며 꺼지지 않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사진출처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는 흉측한 얼굴에 등이 굽은 모습으로 태어나 사람들 틈에 섞여 살지 못하고 프롤로에게 거둬져 종탑에 숨어 사는 인물이다. 반면 늠름하고 반듯한 외모로 눈길을 끄는 근위 대장 페뷔스는 우연히 본 에스메랄다에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겨 오랜 사랑을 배반한다. 에스메랄다 역시 페뷔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모두에게 드리운 숙명의 그림자는 짙은 어둠보다 더 깊다. 이를 지켜본 콰지모도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울 뿐이다. 그에게 에스메랄다란 결코 허락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마지막으로 대주교 프롤로는 평생을 종교에 귀의해 살아왔으나 에스메랄다를 욕망하며 부정한 방법으로 얻으려 한다. 한 여자를 향한 세 남자의 각기 다른 마음과 마주하는 순간, 자연스레 예상된 비극적 결말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나의 그림을 연상하게 만든 무대는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져 마치 살아있는 수채화를 보는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은 대사 없이 대부분 노래로 진행되는데, 앞서 언급한 ‘대성당의 시대’ 뿐만 아니라 ‘아름답다(Belle)’, ‘성당의 종들(Les Cloches),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Danse mon Esmeralda)’ 등 주옥같은 넘버가 이어지며 오래도록 깊은 잔상을 남긴다.
연기자와 댄서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성 또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등장인물을 연기하며 노래하는 배우들과 함께 아크로바틱 댄서, 브레이커가 등장하는 순간 눈을 뗄 수 없는 볼거리에 몰입도는 배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역사는 곳곳에 새겨지고 있다. 원작의 다채로운 변주는 이번에도 확실히 통했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잇는 가교이자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완성도 높은 걸작으로서 극강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새로이 간직될 역사의 순간에 꼭 함께해 보시길 추천한다.
<사진출처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0-11-20 1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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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인기 소설을 무대로 옮기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
[클래시그널] 한때 ‘암굴왕’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작품이 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Le Comte de Monte-Cristo)’이다. 살아생전 큰 인기를 모았던 프랑스의 19세기 인기작가 알렉상드르 듀마가 1844년 발표한 소설이다.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이 살얼음판 같은 현실에서 뮤지컬 버전의 한국 초연 10주년 기념공연을 올리며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듀마의 작품들 중에는 뮤지컬로 만들어져 역시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경우가 또 있다. 달타냥과 근위대 기사들의 이야기로 유명한 ‘삼총사(Les Trois Mousquetaires)’다. 마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가 뮤지컬 무대에서 각광을 받는 것처럼, 듀마의 이 작품들도 무대라는 판타지 공간에서 새롭게 해체되거나 재구성되며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새삼 위대한 문학이 얼마나 오랜 세월 후대의 자손들에게 ‘먹거리’가 되어주는지 그 위대함에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인문학을 배격하고 예술과 문화산업을 경시하는 작금의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 같아 신기하면서도 씁쓸하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소설로 발표됐을 당시에도 듀마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대중적 관심과 흥행을 불러왔던 서적으로 큰 명성을 누렸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는 다양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재료로도 각광을 받게 했는데, 여러 차례 시도됐던 영화화 전력이 대표적이다. 여럿이 만들어졌지만 원작 소설에 충실했던 경우가 있던 반면, 아예 무협물이나 활극으로 그려졌던 경우도 적지 않다. 복수의 쾌감과 일확천금의 환상, 그 안에 꽃피는 사랑 이야기가 달고 짠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탓이다.
무대화가 이뤄진 것도 이 작품이 첫 시도가 아니다. 이미 2005년에 프랑스에서 프랑스어 뮤지컬로 선보인 적도 있고, 이듬해에는 영국에서, 2008년에는 러시아에서도 각기 다른 버전의 뮤지컬이 제작된 이색 경력이 있다. 사실 원작이었던 소설 자체가 예술성 보다 대중적인 인기가 한 발 앞설 정도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작품이었으니 무대화를 꿈꾸는 시도와 이에 대한 기대 그리고 대중적 관심도나 흥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몬테 크리스토’는 장편소설치고도 상당히 분량이 두꺼운 작품이다. 원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던 우리말 번역본도 자그마치 다섯권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이다. 당연히 뮤지컬화를 고민하면서도 아마 그 방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무대에 구현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또, 원작의 유명세는 자칫 파생상품의 예술적 완성도에 대한 기대를 너무 높여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잘해야 본전이요, 어설프면 쉽게 원작이 그리워질 수 있는 어려움 또한 도사리고 있다. 소설보다 재미가 없다면 굳이 책이 아닌 무대로 이 작품을 즐겨야 할 당위성을 설득하기 어렵다. 이런 부류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이자 선결되어야 할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는 일단 영리한 작품이라 평가할 만하다. 방대한 원작속 이야기를 선택과 집중이라는 각색을 통해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특히 뮤지컬을 관극하기 전후로 원작 소설을 읽으면, 배우의 몸짓 손짓 움직임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소설속 사연들이 함축되어 있는지 여실히 실감할 만도 하다. 물론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라는 의미의 노블컬의 매력이기도 하다.
우선, 음악이 좋다. 이 작품의 작곡가는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이다. 그가 만든 또 다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한국 대중의 마음을 잘 읽어낸다는 와일드혼의 음악적 역량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다. 오죽하면 한때 맥주 광고에도 “지금 이 순간!”을 외치는 장면이 등장했을 정도다. 특히 몇 소절만 들어도 따라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를 만큼 대중적인 소구력이 강한 선율과 멜로디는 그가 만든 뮤지컬 음악들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에도 그런 와일드혼의 역량은 큰 역할을 한다.
엇비슷한 선율의 반복이 귀에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뮤지컬 음악으로서의 매력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감수성 풍부한 선율은 이 작품 최고의 매력을 경험하게 만든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에드몬드가 연인인 메르세데스와 함께 서로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언제나 그대 곁에’나 절망의 노래인 ‘하루 하루 죽어가’ 그리고 마니아 관객들에게는 ‘지옥송’이라고도 불리는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등은 꽤나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 이 작품의 대표적 뮤지컬 넘버들이다. 간혹 분노어린 하이드의 모습이 투영돼 자기복제(?)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도 하지만, 극적인 대비를 세련되게 포장해내는 솜씨는 스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확인하기에 아쉬움이 없다.
음악적 완성도가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의 한 축이라면, 시각적인 완성도는 국내 제작진이 덧붙여놓은 화려한 치장이다. 이리저리 공간 이동을 표현해내는 지도의 활용, 물속에서 유영하는 듯한 와이어 액션, 땅굴을 파면서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이 그러나는 무대의 단면, 거대한 선박 모양의 세트, 화려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저택 등은 꽤나 만족스러운 볼거리를 구현해낸다. ‘마타하리’, ‘웃는 남자’를 만든 EMK 뮤지컬컴퍼니는 최근 외국 원작을 라이선스 무대로 꾸미면서 비주얼 효과에 적절한 한국화를 더하는데 꽤나 많은 노력을 경주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매력이 십분 담겨있다. 볼거리라는 측면에서는 시쳇말로 입장권 가격이 아깝지 않은 체험을 주는 것은 이 작품의 큰 매력이다.
2020년 막을 올리는 10주년 기념 앙코르 무대에서도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주인공인 몬테 크리스토 역으로는 엄기준과 신성록, 카이가, 그의 사랑하는 연인인 메르세데스 역으로는 옥주현, 린아, 이지혜가 나온다. 비열한 몬데고는 최민철과 김준현, 강태을이다. 코로나 19로 답답했던 일상을 벗어나고파 나선 기왕의 무대 나들이니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조합을 꼼꼼히 따져보길 권한다. 약간의 노력과 정성이 작품 즐기는 재미를 극대화시켜 줄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거나 연인에게 다정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다면 역사적 배경에 대해 조금의 사전지식을 미리 갖추기도 추천한다. 이야기의 시공간적 배경이 나폴레옹 황제 말기의 유럽인 탓에 유럽 근대사나 지리, 문화적 배경을 사전에 점검해 둔다면 감상의 폭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뮤지컬에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긴다’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뒷맛이 오래 남는 관극이 되길 기대된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0-11-20 1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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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특별인터뷰> 2020년 최고의 음악밴드 '이날치'
2020년 현재 모든 장르를 통털어 가장 '핫' 하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팝 밴드 '이날치'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뜨겁다. 전통적인 판소리에 현대적인 팝 스타일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음악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 그룹의 밴드명칭인 이날치는 조선후기 명창 중 한 명인 이날치(李捺治)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날치 밴드는 권송희(보컬) 신유진(보컬) 안이호(보컬) 이나래(보컬) 장영규(베이스) 정중엽(베이스) 이철희(드럼) 등 7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2018년 말 수궁가를 모티브로 한 음악극 <드라곤킹>용왕을 작업하면서 처음 만났으며 2019년 5월 <들썩들썩 수궁가> 공연으로 데뷔한 이래 각종 무대에서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왔다.
한국관광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제작 전세계인으로부터 2억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바 있는 이날치는 최근 삼성전자의 최신 휴대폰 광고에 등장, 또 한번 엄청난 인기몰이와 함께 주목을 받고있기도 하다. 다음은 약업신문이 최근 진행한 이날치 밴드 멤버들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모든 음악장르를 통틀어 2020년 현재 가장 주목을 받는 음악단체가 밴드 이날치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대중예술 단체중 특별히 이같은 관심을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이호)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많은 분들과 많은 우연들로부터 고마운 도움을 받은 것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찰떡같은 춤으로 음악을 더 즐겁게 만들어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도 그렇고 네이버 온스테이지도 그렇고 한국관광공사와 HS애드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보자면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에서 이날치가 줄타기를 잘 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들 알고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잘 모르던 수궁가의 숨겨진 재미와, 익숙한 베이스기타지만 두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뒤섞임은 전혀 새로운 자극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담백하지만 변화무쌍한 드럼 역시 일반적인 연주와는 또 다른 재미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익숙함과 낯설음의 간극이 주는 자극을 많은 분들이 즐겁게 받아주신 것 결과인 것 같습니다.
Q. 이날치 결성배경과 멤버구성은 어떻게 이뤄져 있으며 창단이후 현재까지의 공연성과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신유진) 2018년 극단여행자와 함께한 드라곤킹이라는 애니메이션 음악극을 통해서 소리꾼들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장영규 선생님이 음악감독이셨는데 음악이 잘 나왔다고 생각해서 그 음악들을 편곡하여 밴드를 해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렇게 드럼에 이철희, 베이스에 장영규, 정중엽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1월에 수궁가 프로젝트로 채널1969라는 클럽에서 이름도 없이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고 그 무대를 보시고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와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이날치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예상치 못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화제가 되어 지속적으로 여러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졌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앨범작업을 차근차근히 해서 5월에 1집 앨범 수궁가가 디지털음원으로 발매되고 6월에는 바이닐(LP)로 나오게 되었고, 6월 LG아트센터에서의 공연으로 활동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관광공사에서 저희 음악과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춤으로 한국홍보영상을 찍자고 제안해주셨고 그것이 또 한번 큰 화제가 되며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게되면서 대중적으로 더 많이 이날치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됐던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채녈인 온스테이지에 올린 <범 내려온다>는 수십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같은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이나래) 일단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의 시너지가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각자가 가진 가치관이나 표현방식이 비슷했기때문에 잘 어울러질 수 있었던 것 같고, 두 집단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 영상이었기에 좋은 시너지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잘 담아준 온스테이지 영상팀 분들의 감각이 더해져 생생한 장면이 탄생한 것 같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이날치하면 국악과의 접목을 떠올리는데, 이날치는 판소리를 기반으로 팝을 지향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한 콘셉트를 갖게 된 배경이나 이유가 있나요?
권송희) 이날치 음악을 국악이나 국악밴드라고 하기엔 몹시 한정적이고 그 외 다른 많은 것을 담기 때문에 팝 밴드라는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냥 팝이라고 하기에도 독특한 구성이기에 대안적인 얼터너티브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얼터너티브 팝 밴드라고 소개 하고 있습니다.
Q.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서 만든 홍보영상들이 2억뷰를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중독성 강한 리듬을 탑재한 감각적인 국악에 코믹하면서 개성넘치는 춤의 합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평이 있습니다.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며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됐는지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준비과정이 궁금합니다.
이나래) 특별한 준비과정은 없었습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이날치의 음악 위에 사전에 구성한 동작들을 가지고 와서 현장의 상황과 지형들에 따라 동선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협업이 이루어집니다. 각자의 영역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서로의 감각과 방향성을 믿고 존중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연출을 요구 하지는 않습니다.
Q.조선의 힙스터로 불리는 이날치의 흥은 판소리같은 한국적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게 크게 어필해 유튜브·SNS 등을 통해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문화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 향후 가능성 대해 어떤 기대감을 가져도 될런진요?
이철희) 저희도 관광공사의 홍보영상이 세계적으로 맗은 관심을받고 많은분들이 즐거워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영상을 계기로 코로나가 잠잠해진 이후에 정말로 많은 외국인 분들이 한국을 찾아주시면 더더욱 보람될거같구요.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해외활동도 기회가된다면 열심히 하구요. 저희를 관심있게 지켜봐주시는분들께 감사드립니다.
Q. 이 폭발적인 인기와 성공이 단발성이 아닌 지속성을 가지기 위해 유행의 변화가 빠른 한국의 특성상 나름의 음악적 고민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날치의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정중엽)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고 인기를 얻게 된 부분들은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 부분은 언젠가 사그라들게 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이 빠르고 시장이 좁은 한국이라 더더욱 그럴텐데, 그런것에 흔들리지 않고 좋은 음악을 만드는게 가장 기본이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마음을 비워야 한달까. 일단 음악이 나왔다면 음원이나 앨범, 공연이나 영상등을 통해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걸 전달하게 되는데, 그 단계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이 가지는 힘은 분명 존재하지만 요즘은 음악만 집중해서 듣기보다는 영상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고 그렇기에 디자인부터 뮤직비디오, 라이브 연출에도 더 많이 신경을 써야하겠지요. 디테일한 부문은 비밀이라 인터뷰에서 모두 얘기하기는 어려운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11-19 1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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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클래시그널] 갑작스럽게 유령이 된 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된 남자, 그리고 그런 그에게 슬픈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던 여자.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원한 사랑의 완성, 뮤지컬 ‘고스트(GHOST)’가 무려 7년 만에 반가운 인사를 전했다.
지난 10월 6일 서울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개막해 내년 3월 14일까지 공연될 예정인 뮤지컬 ‘고스트’는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주연을 맡아 할리우드 흥행 신화를 이룩했던 영화 ‘사랑과 영혼(1990)’을 원작으로 한다. ‘Unchained Melody’가 흐르는 가운데 연인이 함께 앉아 도자기를 빚는 로맨틱한 모습은 세월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명장면이다. 반갑게도 이 장면은 뮤지컬에서도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
2011년 영국 맨체스터 첫 공연 이후 웨스트엔드에서 브로드웨이 무대까지 연이은 무대를 섭렵하며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은 뮤지컬 ‘고스트’는 2013년에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됐다. 당시 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일찍이 뜨거운 인기를 증명한 바 있어 오랜만에 돌아온 재연 역시 커다란 기대감을 모은다. 출연진도 눈부시다. 먼저 초연 멤버였던 주원, 김우형, 아이비, 박지연, 최정원이 다시 무대에 오르며 한층 더 깊어진 감성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배우들 모두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 깊이 들어오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아 말할 만큼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보였다. 또 박준면, 김진욱, 김승대, 백형훈도 새로이 합류하며 작품의 분위기만큼이나 놀라운 시너지를 선보인다.
보랏빛이 감도는 무대 위로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막이 오르면, 순식간에 강렬한 색감의 배경들이 연이어 나타나며 시선을 끈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금융가 샘 위트는 그의 연인인 도예가 몰리 젠슨과 함께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새롭게 구한 아파트에서 시작한 동거생활도 그저 벅찬 행복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완벽해 보였던 그의 인생은 단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낯선 괴한으로부터 불의의 사고를 당한 샘은 믿을 수 없는 일을 경험한다. 바로 쓰러진 자신을 앞에 둔 채 슬프게 울고 있는 연인을 보게 된 것. 샘은 곧 충격적인 현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쳤던 위험이 몰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와, 떠난 사랑을 잊지 못하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여자. 이 두 사람의 곁에 함께하며 오랜 우정을 이어온 칼 브루너, 그리고 사랑의 메신저로서 작품 속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매력 만점 오다 메 브라운까지. 한순간에 운명처럼 얽힌 네 사람의 이야기엔 눈물과 웃음, 감동이 모두 담겼다. 관객들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고 숨겨진 진심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만큼 마법처럼 연출된 무대는 ‘매지컬(Magic과 Musical의 합성어)’이라고도 부를 만큼 환상적이다. 특히 문을 통과하는 장면이나 지하철 전환 장면은 다시 봐도 놀랍기만 하다. 비밀은 7000개의 LED판으로 감싼 구조물과 9대의 빔프로젝터에 있다. 또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 참여했던 일루셔니스트 폴 키이브가 참여해 실감 나는 특수효과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에 생동감 가득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더해져 몰입도를 극대화한다.
이처럼 원작이 지닌 특별한 감성과 감각적인 음악, 현대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모두 갖춘 작품 ‘고스트’는 눈부신 무대 과학의 진수를 선보이며 단숨에 스펙터클한 세계로 이끈다. 일반적인 뮤지컬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고 넘버보다는 스토리와 무대 연출에 집중한 작품이라, 화려한 볼거리와 연기력에 중점을 두고 본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뮤지컬이다. 이왕이면 한 번쯤은 꼭 봐야 할 작품으로 추천하는 바다. 이번 기회에 뮤지컬 ‘고스트’만의 황홀한 매력에 푹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0-11-13 0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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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클래시그널] ‘밀정’(김지운, 2016)은 시간에 관한 영화다. 국가가 주권을 잃어버렸던 수 십 년의 암울한 시간, 의열단이 일제의 폭압에 맞서는 치열한 항쟁의 시간, 한 인간이 조국의 독립과 자신의 안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각고의 시간이 이 작품에 켜켜이 담겨 있다. 또한 ‘밀정’은 의열단이 갈망하고 있는, 아직 오지 않았고 기약도 없으나 반드시 오리라 믿는 그 어떤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채산에게서 이정출에게로, 다시 학생의열단 선길에게로 이동하는 회중시계의 내연은 세대와 공간을 가로지르며 퍼져나가는 바로 그 시간에 대한 믿음과 닿아있기에 의미심장하다.
모그가 연출한 ‘밀정’의 음악은 거의 일관되게 이러한 시간의 다층적 의미를 내포한 채 진행된다. 시계 초침을 모티브로 한 규칙적 리듬은 김장옥 일행이 함정에 빠지는 첫 시퀀스에서도, 일본경찰과 의열단이 각자의 작전을 바쁘게 수행하는 와중에도, 숨 막히는 정찰과 혈투가 벌어지는 경성행 기차 안에서도, 동족상잔을 강요당하는 끔찍한 고문실에서도 중량과 세기, 템포를 달리해 등장한다. 힘찬 초침소리에서 때로 긴장한 심박처럼 육중하고도 빠르게 변이되는 이 리듬단은 다른 사운드 이펙트들과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드라마에 긴박감을 조성하고 음악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아날로그 시계의 소리는 디지털 시대의 관객들을 1920년대라는 시간 속으로 끌어들이는데 효과적이었다.
이렇듯 영화 초반부터 말초신경을 자극하면서 관객의 심리를 선동하던 음악은 종반으로 치닫는 동안 직관을 넘어 이지력의 확장을 요구한다. 영화에 삽입된 ‘When You're Smiling'과 ’Bolero'는 1920년대 서양에서 발표된 곡들로, 서사 바깥의 공간을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서사 안의 상황과 대비시킴으로써 제3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When You're Smiling’의 느리고 차분한 선율과 아름답고 희망적인 노랫말은 의열단이 무자비하게 척결되는 몽타주 영상에 삽입되어 오히려 비극성을 부각시키는 기능을 한다. 또한, 반복적 멜로디에 악기가 하나씩 추가되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Bolero'는 극의 절정을 예비하는데 기여한다. 뿐만 아니라 이 곡은 형식상 무수한 실패를 딛고 높은 곳으로 올라서고자 하는 의열단의 기조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밀정’을 한 단계 더 정교하게 세공시킨 탁월한 선곡 및 편곡이었다.
모그는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음악감독 중 하나다. 유수의 영화상을 섭렵한 만큼 실력을 인정 받은지도 오래지만 그의 음악적 성취는 현재진행형이다. 비교적 최근작인 ‘마녀’(박훈정, 2018), ‘버닝’(이창동, 2018),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홍원찬) 등에서도 적확한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영화의 경험치를 높여준 바 있다. 김지운 감독과는 ‘악마를 보았다’(2010)부터 ‘인랑’(2018)까지 꾸준히 함께 작업해 오고 있다. ‘밀정’은 두 사람의 시너지가 가장 돋보인 작품 중 하나다. 앞으로도 한국영화음악의 지평을 넓혀주리라 기대한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고통에 관하여, ‘마틴 에덴’
한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모든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의 ‘마틴 에덴’(2019)은 195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이런 도전 앞에 선 한 청년을 조명한다. 어릴 때부터 선원 생활을 해온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은 폭행당하고 있던 한 부르주아 청년을 도와주는 사건을 계기로 그 집 식사에 초대받는다. 청년의 동생인 ‘엘레나’(제시카 크레시)에게 한 눈에 반한 마틴은 그녀처럼 교양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시집과 사상서들을 탐독한다. 마틴은 틈틈이 혼자 공부하며 작가가 되기를 꿈꾸지만 가난과 시대적 한계가 번번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마틴 에덴’은 잭 런던이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엘레나를 향한 열정만큼 펜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마틴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영화의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엘리트가 된 노동자, 혹은 부르주아가 된 프롤레타리아가 겪는 내적 혼란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틴은 그토록 원하던 작가가 되고, 계급 투쟁과 개인주의에 관한 새로운 주장을 펼치며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장본인, 엘리나와는 오히려 요원해진다. 큰 저택에서 깨끗한 옷을 입고, 말로 돈을 버는 마틴은 자신의 삶과 사상을 일치시킬 수 없고, 그 간극은 자신을 향한 조소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만, 그리고 비관과 허무주의로 이어진다.
‘마틴 에덴’에는 종종 이야기의 배경이나 인물의 심리가 자료 영상처럼 삽입되는데, 이 부분에서 삽입된 침몰하는 배의 이미지는 마틴의 심정을 정확히 대변해준다. 루카 마리넬리는 영리하고 순수한 청년에서 날카롭고 불손한 작가로 변해가는 마틴 에덴을 신들린 듯 연기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름다운 영상미, 독특한 스타일, 매력적인 인물, 통렬한 주제의식을 두루 갖춘 수작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0-11-13 0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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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카라얀, 번스타인, 조수미, 조성진.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하기까지 누구와 함께 일을 할까? 그들이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뒤에서 묵묵히 일해 온 사람들이 있다. 아티스트의 완벽한 무대에 그들보다 더 뿌듯해하고, 그들이 받는 박수에 더 크게 환호하는 사람들. 바로 아티스트 매니저이다.
대중들은 생각보다 매니저라는 직업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TV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도 있고,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워낙 각광받는 시대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 주변의 직업군에도 관심이 넓어진 것이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도 이처럼 매니저라는 직업이 존재한다. 클래식 연주자들의 레퍼토리 관리, 이미지 마케팅, 스케줄 및 자산 관리, 공연장 섭외, 연봉 협상까지 아티스트의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직업이다. 나 역시 매니저로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금은 안타깝게도 사라져버린 100년 역사의 콜롬비아 아티스트 등 클래식업계의 회사들에서 꽤 긴 시간을 몸담아오면서 아티스트들과 함께 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간 것 같다. 끼니는 책상에서 대충 때우기가 일쑤였고, 거르는 게 오히려 더 익숙해질 정도인데다 주말 역시 공연이 있어 쉬는 날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 모든 수고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일을 하는 동안의 나는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좋은 음악과 함께 하는 순간이 ‘힐링’ 그 자체였으니까. 난 아직도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듣던 ‘말러’ 선율을 잊지 못한다.
뉴욕 필하모닉에서는 투어와 정기 공연 담당, 콜롬비아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에서는 아티스트 계약 업무를 담당했다. 먼저 뉴욕 필하모닉에서 담당했던 세부 업무는 이렇다. 각 나라별 맞춤 레파토리 편성, 일정관리, 연주자 지원, 특히 연주자 지원 업무는 그 어떤 일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단원들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안한 숙소 수배는 물론 공연장 내부 온도 체크까지 해야한다.
나 뿐만 아니라 뉴욕 필하모닉의 모든 매니저들이 이렇게 모든 것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기에 오케스트라는 언제 어디서든 최고의 연주를 할 수 있었고 지금도 해내고 있다. 비록 그 모든 과정을 준비한 매니저들은 객석도 아닌 무대 뒤에서 연주를 들어야 했지만 충실감을 느끼는 매일이었다.
다음으로 몸 담았던 곳은 콜롬비아 아티스트이다. 나는 특히 그 곳에서 만났던 매니저 더글라스 쉘던과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더글라스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매니저로 1986년부터 일하기 시작했으니 약 35년을 함께 해왔다.
안네가 연주를 위해 뉴욕 필을 찾았던 때이다. 당시 더글라스는 70대, 안네는 40대. 그는 안네의 연주 의상을 옮기고 있었다. 내 눈에는 70대 매니저가 40대 연주자의 의상을 옮기는 것이 참 의아해 보였지만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의상을 옮기고 있었다. 평소 날카로운 눈빛에 언제나 위엄 있는 상사로만 보였던 그가 안네의 무대 의상을 옮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내게 그가 했던 말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는 “매니저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것을 이중인격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일을 하고 있기에 이런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라”였다. 그녀의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물론, 무대에서 빛나는 순간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의상 하나까지도 직접 챙기는 그의 모습에 오만가지 감정이 스쳤던 것 같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빛나는 순간을 뒤처리해주는 일이 가끔 ‘바보 같다’ 느껴졌던 내게 그 말은 매니저로서의 자부심과 이후 어떻게 일해 나갈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어쨌든 아티스트와 매니저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리고 내가 겪어온 바 이 둘의 관계는 돈독한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이렇게 돈독한 신뢰 속에서 만들어진 안정감이 아티스트들의 예술성을 훌륭히 꽃피우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종종 아티스트와 매니저의 관계가 진정한 의미로 파트너쉽 관계인지 의문을 품게 될 때도 있다. 아티스트들이 얼마만큼 연습을 했는지,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섰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이들을 뒤에서 지원하고 협력해 나가는 매니저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도 한다. 이게 바로 아티스트와 매니저라는 특정 집단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상 깊숙이 침투하는 SNS에는 늘 화려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 차 보인다. 그리고 ‘화려한’ SNS를 볼 때마다 상대적인 박탈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표면에만 집중하고 이면은 무시해 버리는, 인간 관계의 본질이 퇴색되고 무너지는 것이다.
아티스트 매니저였던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며 환하게 드러나는 빛보다 빛 뒤에 깊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사회는 점점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즉 빛에만 집착하고 ‘서로의 속마음’ 즉, 어둠을 무시하고 벗어나려고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어둠과 빛은 서로 공존할 때 더 아름답다. 별은 어둠이 있어야 빛나고, 밤새 에너지를 충전한 아침이 상쾌한 것처럼. 빛과 어둠을 모두 헤아리는 아름답고 편안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아티스트와 매니저가 서로에게 빛과 어둠이 되어주듯 균형 있는 파트너로서 일하며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 듯.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2020-11-06 1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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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클래시그널]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나고 자라며 무수히 많은 음악을 들어왔을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듣는 태교 음악을 시작으로 성장 과정에서 듣고 배우게 되는 노래들. 어쩌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노래일지 모른다. 누구의 기억 속에나 있는 유년의 노래는, 동심으로 회귀하게 하거나 추억의 힘으로 오늘을 다잡게 하는 마법의 주문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기르는 노래
갓 태어난 아기에게 잘 먹고 잘 자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어른들은 아기를 잘 재우기 위해 요람에 넣어 흔들거나 토닥이면서 노래를 불러준다. 낮게 읊조리듯 부르는 이 노래는 백색소음처럼 주변의 소음을 옅게 하고 안정감을 주어 숙면에 이르게 한다. 이 노래가 바로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는 ‘자장가’다. 출산 전후로 자장가를 들려준 아기가 훨씬 덜 운다는 연구 결과, 엄마의 노래 부르기가 산후 우울증을 덜어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래저래 긍정적 효과를 지닌 이 기능성 생활 음악은 대부분 구전으로 전해진다.
브람스나 슈베르트의 자장가처럼 세계적인 거장들이 만든 노래도 유명하지만, 우리에겐 ‘자장자장’ 하며 시작하는 자장가가 훨씬 익숙하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고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불리는 노래이면서 각기 다른 노랫말과 가락을 지닌 노래. 자장가는 ‘아리랑’과 닮은 점이 많다. 입으로 전하는 민요들이 그러하듯 자장가 역시 각 지역의 특색이 드러난다. 그 지역에 전해오는 말이나 가락이 자장가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먹고 자는 일을 반복하던 아기가 자라 손과 발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 ‘잼잼, 도리도리, 꼬네꼬네, 걸음마’ 같은 노래들을 불러준다. 온 가족이 함께 부르며, 아이의 첫 손짓 혹은 첫걸음을 응원하고 건강한 성장을 바라는 노래들이다. 놀이운동가 편해문은 ‘아이 어르는 노래’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에는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따른 노래가 단계적으로 섬세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이는 세계가 놀랄 만한 음악 유산이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하였다.
보림출판사에서 책과 음반을 함께 낸 「자미잠이 자장가」 시리즈에는 우리나라 곳곳의 자장가가 해금 연주자 강은일, 소리꾼 박애리 등의 목소리로 담겨 있다. 또 아기들에게 간단한 동작과 함께 불러주면 좋을 ‘짝짜꿍’부터 ‘음마음마’까지의 성장 노래들은 「자미잠이 전래 영아 놀이 노래」 편에 실렸다. 모두 작곡가 류형선이 구전하는 노래들을 채록하고 다듬어 정리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옹알이를 하고 걸음을 겨우 떼던 아기가 쑥쑥 자라 자유자재로 말을 하고 뛰어놀 나이가 되면 노래를 부르는 주체는 자연스럽게 바뀐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며 스스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여우야 여우야’, ‘남생아 놀아라’처럼 동물이 등장하는 노래, ‘잘잘잘’과 같은 숫자풀이 노래, ‘나무 노래’처럼 말을 이어가며 부르는 말놀이 노래 등 무궁무진한 ‘놀이 노래’들이 변주되고 각색되며 아이들의 놀이를 보다 풍요롭게 한다. ‘대문놀이’, ‘고사리 꺾자’ 같은 노래는 어른들이 하는 강강술래에서도 불린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주먹 위에 흙을 얹어 토닥토닥 다지며 부르는 이 노래는, 요즘 아이들의 놀이와는 거리가 있다. 집을 지어줄 두꺼비도, 흙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옛 아이들의 놀이 노래 상당수가 놀이터 대신 교과서에 남아 전한다. 노랫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빛이 바래 가지만, 전래 동요의 친근한 가락과 장단은 여전히 쓸모가 많다. 재창작의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국악방송은 요즘 아이들이 즐길 만한 노래를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국악동요’라는 이름으로 묶은 아이들 노래 시리즈는 알록달록한 애니메이션이 눈길을 사로잡고 전통 악기들이 흥겨움을 더한다. ‘손 씻기 발 씻기’나 ‘모두 제자리’처럼 올바른 생활 습관을 독려하는 노래부터 ‘손치기 발치기’, ‘동무동무 어깨동무’ 같은 전래 동요를 새롭게 지어 부른 노래, ‘응가송’, ‘모두 다 꽃이야’와 같이 재미나 감동을 추구한 창작곡까지 두루두루 보고 듣는 재미가 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옛 노래가 길러주었던 창의력과 응용력이다. 놀이에 맞게 노랫말을 지어 부르고 상황에 따라 바꿔 불렀던 옛 아이들의 놀이 노래처럼, 아이들의 잠재된 상상력을 이끌어 낼 오늘날의 노래가 필요하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0-11-06 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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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유튜브의 경제학, 예술가에게 자본이란 무엇인가.”
[클래시그널] 왜 예술가는 언제나 가난해야 ‘예술적’이라고 인식될까. 예술가의 가난은 왠지 일반인들에게 신선하고 흥미로운 요소로까지 다가온다, 유명 예술가들의 아픈 삶을 예술로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낭만주의(Romanticism)라는 폭력으로 색칠해온 시각은 예술계의 구조적 폐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예술의 어떤 부분이 사람들을 매혹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왠지 예술가가 자본을 많이 가졌다고 하면 매혹이 반감되는 느낌을 갖는다.
이른바 예술효과의 특수성(The specificity of art effect), 이는 예술의 신성화가 경제논리를 은폐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예술의 가치영역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놓은 오늘날, 가뜩이나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가들에게 ‘유튜브 경제학’은 이제 생존의 이름으로 다가온다. 바야흐로 예술경제의 패러독스(paradox, 逆說)를 바로 잡을 때가 온 것이다.
자본효과, 가난한 예술가와 부유한 예술가
예술계(Art world)는 경제적 공정성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다. 가난한 미술가들로 치부되던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인 고갱·고흐·세잔의 작품들은 세계 최고가인 1000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아이러니를 낳았고, 오로지 1등만이 주목받는 공연예술의 장(場)은 무한경쟁을 부추긴다. 이러한 승자독식 구조 때문에, 부유한 소수의 예술가와 찢어지게 가난한 다수의 예술가들이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의 구조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불공정한 구조를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
방탄소년단의 폭발적 인기차트와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에 열광하면서도, 예술이 경쟁구도에 의한 자본효과 속에서 서열화 되면 안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네덜란드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화가인 한스 애빙(Hans Abbing)은 저서 『Why Are Artists Poor?: The Exceptional Economy of the Arts The Exceptional Economy of the Arts』에서 “예술세계가 복권과 같다”고 말한다.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엄청난 보상이 따르는 예술계로 투신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던아트의 정착이후 다양한 선진국들이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기 위해 엄청난 기금을 쏟아 넣었지만 다수의 예술가들은 여전히 빈곤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는 미술품 최고가 3억달러 이상으로 거래된 바 있다. (출처: 바젤 미술관)
한스 애빙의 저서는 예술가들이 왜 가난해야 하는가를 반문한다. (출처 : 암스테르담 대학출판사)
가난한 예술가들이 전하는 빛과 희망을 그린 뮤지컬 ‘렌트(Rent)’는 "이 안은 엄청 추워요. 그래도 스마일, 우리에겐 이 순간일 뿐"을 말한다. 철재 구조물 뒤 단촐한 무대 위로 낙서가 가득하고 라이브 밴드의 공연은 어딘지 스산하다. 뉴욕 이스트빌리지 재개발 지역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은 사랑과 열정 그리고 성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에이즈에 감염된 마약중독자, 다큐영화감독, 무정부주의자, 동성애자 등이 경계 없이 등장하는 이곳에서 작품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상황을 ’낭만주의‘에 빗대 표현한다.
집세를 낼 수 없을 정도의 가난함, 불법적으로 끌어온 전기와 끊어진지 오래된 난방에도 젊다는 희망은 예술의 한줄기 빛이다. 무대에 오르는 젊은이들의 희망은 예술의 자본효과 속에서 오늘도 유린당한다. 어두운 시절을 노래한 <렌트>는 희망을 노래하지만, 과연 우리의 현실도 그러할까.
표준계약서는 대형기획사 앞에서 유명무실하고, 예술계의 청년예술가를 향한 ‘열정페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작사건 속에서 ‘노예계약’이 폭로되고, 공연예술 기획사들은 아직도 사각 지대에 놓여있다. 젊은 성악가들은 돈을 내고 오페라 무대에 서고, 작품전시를 위해 미술가들은 자식 같은 작품을 부당하게 뺐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술인들의 평균연봉이 1500만원에 불과한 시대, 아르바이트하지 않으면 예술 활동이 불가능한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예술가들에게 매서운 겨울을 미리 경험하게 했는지 모른다.
브로드웨이의 장기 인기공연 렌트 (https://broadwaymusicalhome.com/shows/rent.htm)
예술자본의 민주화, 유튜브라는 문화자본에 접근하라!
20세기 문화자본의 패러독스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독식현상에 있었다. 취향이 한번 만들어지면, 계속해서 지원과 자본을 독식하는 편중 현상이 예술창작에 만연했던 것이다. 예술이 시장경제의 논리와 맞아떨어지려면 바로 이러한 그들만의 리그로부터 해방돼야 한다. 물론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순수예술은 분명 지속돼야 하지만, 소수의 법칙이 아닌 다수가 살아남기 위한 예술경제학이 뉴노멀 시대엔 반드시 요구된다. 바로 유튜브와 크라우드 펀딩(Crowed Funding) 같은 새로운 해법을 통해서다.
대중문화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은 이제 공공방송이 아닌 개인방송의 경쟁 속에서 어느 정도 갈무리 되었다. 순수하다고 평가받는 예술도 상업논리와 질적인 문제가 완전히 공개되었을 때, 새로운 변화(혹은 전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열리지 않던 예술자본의 진입장벽은 어느새 낮아졌고, 독식과는 별개로 새로운 자본시장은 스타트업을 준비 중이다. 더 나아가 어느 출신인가 어디서 상을 받았는가라는 아카데믹한 층차는 대중의 기호 속에서 점차 사그러들고 있다.
예술자본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미래는 수평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가진 장점을 부각시키는 시대일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공유와 초국가적 상호교류를 만드는 유튜브 시스템은 시장자본주의를 낙관적인 관점으로 변화시켰다. 그 안에서 크라우드 펀딩은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획기적인 방식을 제안한다. 킥스타터·와디즈·위제너레이션·텀블벅·오퍼튠 등은 새로운 플랫폼 속에서 문화예술 방면의 투자와 후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이 공공의 취향으로 발전되는 SNS 공간에서의 동질감은 자본과 결합한 새로운 예술시장의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1인 출판사, 웹툰, 가상전시, 음악앨범 등에서 높은 성공확률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성공·실패 사례 등은 꼼꼼히 체크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요청되는 것은 기존에 보지 못한 새로운 컨텐츠를 유튜브 시스템을 통해 공개하는 것이다. 이미 국악계는 이러한 쇄신의 방향을 일찌감치 내다봤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혹은 국립극장의 <2020 여우락 페스티벌> 등은 퓨전국악인의 무대를 국립극장 유튜브 및 네이버TV에 소개함으로써 안팎으로 인지도 높은 예술컨텐츠로 자리 잡았다.
물론 전문적인 영역에서의 순수공연과 전시는 더욱 예술성에 몰입해야겠지만, 대중문화의 확장을 야기한 4차혁명의 시대 속에서 새로운 시스템에의 도전에 두 손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난한 예술가’가 성공하던 시대는 지났다. 예술가의 삶이 풍요로울 때 대중들의 공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예술계의 자본효과는 시스템에 접근하는 시대적 변화에 의해 달려져야 하고 바로 잡혀야 한다.
클라우드 펀딩의 바람을 일으키는 텀블벅 (출처: https://tumblbug.com/start)
대중음악의 새로운 소리꾼, 이날치밴드는 퓨전국악을 통한 새로운 문화컨텐츠를 창출한다.
(출처 : KBS 골든케이팝 유튜브)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0-10-30 1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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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클래시그널] 우리는 베토벤(1770-1827)을 우선적으로 작곡가로 인식합니다. 그가 대단한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자주 언급되지만 대부분 간단한 언급 정도에서 끝나곤 하지요. 물론, 베토벤은 기본적으로 작곡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났던 그의 피아노 실력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지만 그의 목표가 최종적으로는 피아니스트가 아닌, 작곡가가 되는 것에 있었음은 분명하지요.
1792년, 스물을 조금 넘긴 그가 고향인 독일 본을 떠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했던 중요한 이유는바로 작곡가 하이든(F. J. Haydn, 1732-1809)에게 작곡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베토벤이 고향을 떠나기 전, 후원자였던 발트슈타인 백작(F. Waldstein, 1762-1823)이 그에게 쓴 유명한 글에서도 베토벤이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이든의 손을 통해 모차르트의 정신을 얻으십시오.”
발트슈타인 백작의 애정 어린 글처럼 베토벤은 결국 위대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빈에서 활동하던 초기에 그가 얻었던 명성은 작곡가로서 얻은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로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녹음 기술이 나오기 한참 전이어서, 오늘날 베토벤의 연주를 소리로 증명해낼 수는 없지만 다행히 피아니스트 베토벤이 얻었던 명성을 증명해주는 일화는 제법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당대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었던 겔리네크(A. J. Gelinek, 1758-1825)의 회상이지요.
당시에 빈에서는 피아니스트들이 한 무대에서 겨루는 경연이 유행이었는데 한 경연에서 겔리네크는 베토벤과 맞붙게 됩니다. 그는 베토벤에게 패배했는데 이후 이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그는(베토벤) 악마와 손을 잡은 모양이다. 나는 그 누구도 이렇게 연주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베토벤은 내가 준 주제로 즉흥 연주를 펼쳤는데 이는 모차르트의 즉흥연주에서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 그는 연주에서 어려움들을 극복해냈으며, 우리가 꿈꿔보지도 못했던 연주 효과를 이끌어냈다.”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은 어땠을까요? 전기작가 셰이어에 따르면, 베토벤의 연주 스타일은 강력하고 화려하며 상상력이 풍부하였고, 이는 당대에 유행하던 달콤하고 섬세한 스타일과 대조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음악학자 요스트도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힘과 열정으로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라고 그의 연주를 정리한 바 있지요. 바로 위에서 언급된 겔리네크의 회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토벤은 즉흥 연주에 매우 능했으며, 청중을 사로잡는 힘이 대단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베토벤이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높은 재능을 가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의 피아노 실력이 재능만으로 완성된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이 그의 대표적인 제자 체르니(C. Czerny, 1791-1857)에게 말했던 것처럼, 엄청난 연습이 뒷받침된 결과였지요. 베토벤이 정확히 몇 살 때부터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7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4~5세 무렵부터 피아노 연습을 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어린 베토벤의 첫 스승은 음악가였던 그의 아버지였는데,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교육은 폭력적이었고 가혹했습니다. 그는 어린 아들을 때려가며 피아노 연습을 시켰고, 밤 12시에 술에 취한 채 집에 들어와 곤히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워 피아노 연습을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같았으면 아동학대에 해당되었을 법 합니다.
(피아노를 치는 어린 베토벤: Erich Nikotwoski 작품으로 추정됨.
<출처: Beethoven-Haus Bonn>
10대 초반이 되자 베토벤의 연주 실력은 그를 아직은 어리지만 전문 음악가 대접을 받게 해 주었고, 음악 교육에 있어 아버지의 영향력을 조금씩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훌륭한 스승 네페(C. G. Neefe, 1748-1798)를 만나 작곡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지요. 네페는 기본적으로 작곡 선생님이었지만 피아노도 가르치는데 그가 사용했던 교제는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C. P. E. Bach, 1714-1788)가 지은 피아노 교본(Versuch über wahre Art das Clavier zu spielen)이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베토벤도 체르니를 가르치며 이 교본을 사용하지요. 흥미로운 것은 베토벤에게 피아노 교본을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의 비서였던 쉰틀러(A. Schindler, 1795-1864)에 의해 전해진 것인데, 정말 아쉽게도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베토벤이 피아노 교본을 완성했더라면, 베토벤의 연주 기법 등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젊은 시절 찬란했던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청각 장애로 인해 점점 방해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1815년, 자신의 가곡 <아델라이데>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던 것이, 피아니스트로서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이후 공식적인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인 모임에서는 여전히 뛰어난 즉흥연주를 선보이곤 했습니다.
걸출했던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는 이미 오래 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작곡을 통해 그의 예술을 악보에 구현해 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0-10-30 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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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할리우드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가 클래식에서 인정받는 이유
''존 윌리엄스는 영화음악도 클래식 작곡가의 작품처럼 위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클래시그널] 이 시대 가장 핫한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의 말이다. 존 월리엄스는 명실상부 클래식에서 가장 인정받는 영화음악 작곡가다. 최근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발매된 '존 윌리엄스 인 비엔나'는 2020년 1월 존 윌리엄스의 빈 필 데뷔무대를 담았다. '바이올린 여제'로 불리는 안네 조피무터까지 협연자로 합세하여 존 윌리엄스의 주옥같은 영화음악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던 공연이다. 클래식에서 보수의 아이콘으로 일컬어지는 빈 필이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만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며 결국 정통 클래식에서도 그의 음악은 통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음악 작곡가가 독보적으로 클래식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우리가 알고있는 변치않는 전통 할리우드 사운드의 근간이 '클래식'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 20세기초,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건너온 볼프강 에리히 코른골드, 막스 슈타이너와 같은 작곡가들은 심포닉한 후기낭만 사운드로 1세대 할리우드 황금기를 일궈내었다. 줄리어드스쿨 출신으로 피아노, 작곡 전공인 존 윌리엄스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사운드를 계승했다. 게다가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 바그너를 비롯한 후기낭만 작곡가들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뉴욕타임즈는 존 윌리엄스의 심포닉 스코어와 클래식의 연관성을 다루며 "존 윌리엄스가 영화 캐릭터들과 짧은 음악적 테마를 동기화시키는 기법은 바그너 오페라 <링 시리즈>의 '라이트모티브'를 연상시킨다"고 전한 바 있다.
존 윌리엄스와 여느 영화음악 작곡가와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디테일'에 있다. 클래식의 핵심은 다른 장르보다 까다로운 심미적인 이상에 부합하기 위한 디테일을 살리는데 있으며 이는 클래식이 퀄리티를 인정받으며 생존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영화음악은 영화의 내러티브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영화를 대변하는 음악테마는 중요하지만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을 위한 작곡기법)의 완성도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 관현악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존 윌리엄스의 대가적 면모는 정평이 나 있으며 슈트라우스, 라흐마니노프나 같은 후기낭만 작곡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 그의 영화음악들을 직접 지휘해 볼 기회가 많았는데 그의 악보를 분석하며 '디테일'에 혀를 내두른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금관악기가 테마를 연주하면 보통 나머지 악기들은 단순한 반복적인 리듬과 화성으로 보조하는 역할이 대부분인데 반해 존 윌리엄스는 잘 안들리는 비올라나 몇몇 목관악기들까지 모두 아우르며 나름의 선율과 독자적인 리듬을 부여했으며 이 디테일은 존 윌리엄스의 클래스가 남다른 가장 큰 이유다. 음악적 함량이 높으니 퀄리티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2017년 빈 필이 쇤브룬 여름밤 음악회에서 드볼작,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정통 클래식 작품과 더불어 존 윌리엄스의 해리포터의 영화음악 '헤드윅 테마'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느낀 격세지감.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코른골드가 20세기 초 할리우드에 몸담았던 이유로 클래식계에서 홀대받았던 과거를 떠올려보면 미국출신의 한 영화음악 작곡가로서는 분명 입지전적인 성취다. 그 성공의 이면에 영화음악에 찾아온 음악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사점이 있다. 한스 짐머를 변곡점으로 오케스트라 중심 사운드에서 실험적인 신스 사운드 기반에 오케스트라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음악적 기류가 바뀐 것이다. <더 데일리 캘리포니안>지는 영화가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 "멜로디 중심의 존 윌리엄스 음악에서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찾아왔다"고 전한 바 있다.
요즘 영화음악이 영화속에서는 소위 '빵빵한' 소리로 압도하지만, 실제 클래식 공연장으로 옮겨오면 효과가 반감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신스 사운드의 비중이 크다 보니 실제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부실한 것이다.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존 윌리엄스의 정통 오케스트라 음악은 영화속이나 클래식 공연장이나 동일하게 스펙터클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덧붙여 그가 꾸준히 클래식 연주자들과 협업하며 음악적 신뢰를 쌓아갔다는 사실은 클래식 팬들에게 친밀감을 심어주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함께했던 이츠하크 펄먼을 비롯 요요마, 구스타보 두다멜등 그는 기라성 같은 클래식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영화음악과 클래식의 심리적 경계를 희석시켰다.
스필버그나 조지 루카스같은 감독들의 성공한 영화들이 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터.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E.T보다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E.T 음악의 수명이 더 긴 것 같다"고 말했던 것처럼 존 윌리엄스는 영화음악 그 자체만으로 위대한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그의 음악은 클래식 공연장의 단골 레파토리로 자리잡으며 더욱 '클래식화' 되어가고 있다.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의 말이 떠오른다. "존 윌리엄스는 이 시대의 모짜르트다".
2020년 1월에 개최된 존 윌리엄스와 빈 필의 공연을 담은 이 음반은 할리우드 작곡가와 클래식의 전통을 대표하는 악단과의 만남이란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자존심 센 빈 필 단원들이 존 윌리엄스에게 찾아와 다스 베이더의 메인 테마곡인 을 연주하고 싶다고 자청한 일화는 유명하다. 존 윌리엄스는 빈 필이 연주하는 Imperial March를 듣고 " 내가 여지컷 들어본 최고의 프리젠테이션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작은 피아니시모서부터 웅장한 사운드까지 빈 필의 디테일한 표현력이 빛을 발하는 최고의 명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sMWVW4xtwI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0-10-23 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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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클래시그널] 사랑스런 연인 샘과 몰리는 어느 날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숨을 거둔 샘을 안고 오열하는 몰리는 그러나 바로 곁에 영혼이 된 샘이 서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저승으로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던 샘은 자신을 죽인 괴한이 몰리 또한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고,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오로지 그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온갖 사기전과로 얼룩진 하지만 유령의 소리를 진짜로 듣는 기괴한 영매 한 사람뿐이다. 그리고 좌충우돌의 과정에서 그의 죽음에 얽힌 거대한 음모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유령이 된 샘은 몰리를 지키고, 자신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까? 새롭게 앙코르 무대의 막을 올린 뮤지컬 ‘고스트(Ghost)’의 줄거리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인기 영화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1990년대 초반의 최고 화제작이라면 아마 ‘고스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사랑과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던 흥행영화다. 남자 주인공 샘 역이었던 패트릭 스웨이지가 여주인공이었던 몰리 역의 데미 무어와 함께 원판을 돌리며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은 다양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수없이 패러디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물론 영상의 배경으로 쓰였던 라이쳐스 브라더스의 노래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는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사랑받았던 진기록을 낳았다. 지난 2009년 패트릭 스웨이지는 지병인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 - ‘고스트’나 ‘더티 댄싱’ 등은 여전히 올드 영화팬들로부터 사랑받고 기억되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직배 파동 논란도 대단했다. 당시까지의 관행과 달리 이 영화는 국내 기획사가 아니라 원작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외국 회사 UIP가 직접 영화를 배급하겠다고 나섬으로써 우리나라 영화시장의 개방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덕분에 우리 영화인들의 반발도 거셌는데, 유명 영화배우들이 시내 한 가운데에서 삭발을 하며 시위 퍼포먼스를 펼치는가 하면, 영화관에 뱀을 풀어놓겠다고 윽박을 지르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극장은 관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글로벌 시장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지닌 위력이 어떤 것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WTO 체제의 요즘 국제무역 환경을 감안하며 되새겨보면 웃지못할 해프닝이다.
바로 그 추억의 화제작이 뮤지컬로 환생했다. 요즘 공연가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인 무비컬(Movical, 영화를 의미하는 Movie와 무대용 콘텐츠인 Musical의 합성어)이다. 예전의 원작 영화를 기억하는 기성 세대들에겐 추억속 명장면들이 무대로 어찌 구현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미 대중성과 흥행성이 검증된 ‘재미난’ 이야기를 다시 무대로 재연해냄으로써 더할 나위 없는 흥미로운 대중문화 속 산물로 인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도랑 치고 가재도 잡는’ 요즘 문화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공식의 전형적인 사례다.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무대로 재구성된 이야기가 단순히 영화의 재연 수준에 머문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렇다. 많은 무비컬들이 그렇듯 익숙하면서도 다시 새로운 해체와 재구성의 묘미를 십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앞서 언급한 도자기 씬이 그렇다. 이 영화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상징적인 명장면이지만 무대에서 주요한 장면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통기타를 메고 나온 남자 주인공이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같은 창법으로 사랑의 장난을 여인에게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의 슬로우 모션 같은 로맨틱한 감수성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아쉬움이 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식상하지는 않아 참신한 무대적 재연이다. 물론 멜로디가 워낙 익숙한 탓인지 관객들은 그저 선율 하나만으로도 꽤나 만족한 미소를 띠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무대는 라이브로 연주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므로 뮤지컬을 통해 새삼 음악의 힘을 깨닫게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건네주기도 하다.
뮤지컬이 처음 막을 올린 곳은 축구로 유명한 영국의 도시 맨체스터다. 지방은 서울에서 만들어진 뮤지컬 콘텐츠의 소비지쯤으로만 여기는 우리 사정과 달라 흥미롭다. 사실 문화상품을 만들어 테스트 마켓을 거치게 하는 과정에서는 지역과 도시의 시차가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이지, 반드시 대도시의 상업시장에서 첫 삽을 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28일 맨체스터 오페라 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버전의 ‘고스트’는 곧바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결국 5월 14일까지 약 두 달간 전회 매진을 이어가는 ‘상큼’한 흥행을 일궈냈다. 결국 초연의 흥행과 소문은 곧바로 런던으로 공연장을 옮기게 만들었고, 웨스트엔드의 가장 중심가에 있는 피카딜리 극장에서 같은 해 6월 22일 막을 올려 장기상연의 흥행은 물론 글로벌한 진출을 시도하게 됐다.
영화의 재미는 2중의 합성 화면 – 그래서 자동차에 치거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인물의 영혼이 자신의 주검을 다시 바라보며 놀라는 것과 같은 재미난 상상력이 담긴 영상 기법에서 출발했다. 자연스레 뮤지컬의 제작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중들의 관심은 영상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의 여부였다. 고민 끝에 제작진이 선택한 방식은 영상과 실사의 조화다. 예를 들자면 마지막 장면 이별을 고하는 여인 몰리는 실제 배우가 등장하고, 그녀를 떠나는 영혼 샘은 홀로그램과 같은 특수 영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2차원의 평면이었던 영상이 무대라는 입체 공간에서 실감나게 재구성되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글로벌 흥행 뮤지컬들에서 만날 수 있는 무대의 비주얼적인 특수 효과를 가장 극대화한 무대적 표현이 된 셈이다. 뮤지컬의 음악을 ‘듣는’ 재미 못지않게 ‘보는’ 재미 역시 충실히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라 손꼽을만하다.
그렇다고 음악이 비주얼 효과에 비해 뒤쳐진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영화에서 배경음악이 서정적인 선율의 복고풍 정서를 효과적으로 구현했다면, 무대에서는 현대적인 리듬과 선율의 일종의 판타지같은 느낌이 오랜 뒷맛을 남긴다. 뮤지컬 넘버들은 80~90년대 애니 레녹스와 함께 듀엣으로 활동하며 ‘스윗 드림스’, ‘후스 댓 걸’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유리스믹스의 남자멤버 데이빗 스튜어트와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알라니스 모리셋의 ‘잭드 리틀 필’ 등을 프로듀싱한 글렌 발라드가 공동으로 작곡을 맡았다.
2020년 우리말 앙코르 무대에선 탤런트로도 활약 중인 주원이 김우형, 김진욱과 함께 샘으로, 가수 출신인 아이비와 사랑스런 뮤지컬 배우 박지연이 몰리로, 그리고 영매인 오다 메 브라운으론 관록의 최정원과 박준면이 등장한다. 이미 초연부터 무대를 지켜온 배우들도 많아 농익은 무대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의 모습을 만끽해보길 기대한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0-10-23 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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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예술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즈음 부쩍 자주 듣게 되는 이 물음에는 예술 활동이 푸석한 일상에 윤기를 돌게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묻어 있다.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 것이 오래도록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었으므로. 우리 조상들은 노동요를 부르며 일하고 독서성(讀書聲)으로 학문을 닦으며 생활 예술을 실천했다. 놀이부터 제사까지 생활 속에 춤과 음악을 곁들였던 선조들의 면면을 조금 더 살필 필요가 있겠다.
한 편의 공연처럼 지내는 제사, 종묘제례악
종묘제례는 조선의 왕이 역대 왕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지내던 제사였다. 조선을 건국하고 번영시킨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안녕을 비는 국가적 행사다. 종묘는 공간 자체로 국가 제사의 위엄을 나타내었으며, 종묘제례악은 절차에 따라 엄수하는 제례에 장엄함과 신성함을 더해 의식의 격조를 높였다.
종묘제례악은 음악과 춤, 노래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은 한데 어우러져 악․가․무 종합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음악은 ‘등가’와 ‘헌가’로 불리는 두 개의 악대가 나누어 연주한다. 등가가 연주하는 ‘보태평’은 선대 왕의 문덕(文德)을, 헌가가 연주하는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내용을 노래한다. 무용수들 역시 각각 문무(文武)를 상징하는 도구를 들고, 보태평에는 문무(文舞)를, 정대업에는 무무(武舞)를 춘다. 제례 때 추는 춤을 일무(佾舞)라 하는데 줄지어 추는 춤이란 뜻이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예순네 명의 무용수가 여덟 명씩 여덟 줄로 서서 추는 ‘팔일무’를 이어오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음악과 춤뿐 아니라 악기의 구성과 배치부터 무용수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음양오행의 원리, 천지인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며 상징적 의미를 담아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다. 느리게 반복되는 선율과 춤사위는 제례에 임하는 이들의 마음을 경건하고 단정하게 한다. 우주의 질서에 따르며 겸허한 자세로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인 종묘제례와 함께 유네스코가 인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오늘날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거행되는데, 올해는 11월 첫 번째 토요일인 7일에 개최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에서 무대 공연으로 재구성해 선보이는 종묘제례악은 올해 송년 공연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며, 지난해 공연 영상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궁중의 의식 음악이 익숙하지 않아 전 곡을 감상하기 힘들다면, ‘전폐희문’부터 들어볼 것을 권한다. 원로 국악학자 권오성 선생은 종묘제례악이 사람의 소리와 악기의 소리를 구분 짓지 않은, 개념 자체를 달리한 음악이며 그 가운데 전폐희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자랑할 수 있는 음악이라 단언한 바 있다.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이 부른 ‘종묘제례악 시작한다’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드오 박 축 축축 쿵 축 축축 쿵 축 축축 쿵 박’
종묘제례악을 시작할 때 집사 악사가 휘(麾)라는 깃발을 들라는 의미로 ‘드오’ 하고 외치면 ‘박’이라는 악기를 친 후, ‘축’이라는 악기 세 번에 큰 북인 ‘절고’ 한 번 치는 것을 세 번 반복하고, 다시 박을 치는데 이를 가사로 표현한 것이다. 쓰이는 악기, 춤에 사용된 무구의 이름, 악기 배치의 의미 등 종묘제례악의 주요 요소들이 담겨 있어 노랫말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한과 흥이 교차하는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팔월 한가위를 비롯해 정월 대보름과 칠월 백중 등 보름달이 뜨는 명절에 주로 연행되는 민속놀이다. 처음에 장단이 느린 ‘늦은강강술래(긴강강술래)’로 시작해 장단이 빨라지면서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중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순으로 이어가며 흥을 고조시킨다. 손을 잡고 돌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기본 형태인데, 노랫말에 걸맞은 동작이나 놀이를 접목하기도 한다. 받는소리인 후렴구는 ‘강강술래’로 정해져 있으나, 메기는소리는 자유롭게 창작해서 노래할 수 있다.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자 부녀자들의 놀이였던 강강술래는 전문 소리꾼이나 무용수들에 의해 음반에 실리거나 공연 작품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젊은 소리꾼 황애리, 국악아카펠라 그룹 토리스가 노래한 강강술래는 경쾌하고 현대적이다. 김수연․안숙선․이난초 명창의 음반에 담긴 강강술래를 비롯해, 김소희․박귀희․박초월 명창이 부른 음원도 남아있다. 그중 장구 장단 하나로 옹골지고 풍성하게 부른 조공례 명창의 강강술래가 본고장 소리에 가까운 듯하다.
국립국악원이 상설 공연 레퍼토리로 제작한 강강술래 공연 영상, 그리고 강강술래 소재지인 전남 진도의 국립남도국악원이 제작하고 진도강강술래보존회가 출연하는 강강술래 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사뿐사뿐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강강술래와 욱신욱신 뛰는 엄마들의 강강술래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선사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유보와 재개, 취소를 오가고 있지만 진도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는 강강술래 공연과 교육, 경연대회 등을 주최해왔고 국립남도국악원 체험 프로그램에는 강강술래 배우기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본질이 ‘놀이’이므로 직접 해보면 두 배 더, 배워서 잘하게 되면 그보다 훨씬 더 신나게 즐길 수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뛰어볼 날이 언제나 올는지. 옛 엄마들도 밤 도와 나선 길 끝에서 손을 맞잡고, 나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서로의 삶을 위안 삼으며 둥글게 둥글게 마음을 공글렸을 것이다. 서로의 손을 얽어 쥐고 나누어야 할 단단한 온기와 든든한 연대가 절실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0-10-16 13: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