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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1980년대 후반은 베토벤 교향곡 연주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로 기록됩니다. 그의 교향곡 전곡이 처음으로 원전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Period performance) 방식으로 녹음되었기 때문이지요. 원전 연주를 간단히 말하면, 어떤 작품이 탄생되었을 당시의 연주 방식을 살려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당대의 악기 및 악기 편성, 그리고 연주 기법 등의 적용이 필요하지요.
현대 악기로 이루어진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에 베토벤 당대의 악기와 연주 기법으로 무장한 원전 연주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연주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원전 연주 단체의 베토벤 연주는 더욱 늘어났으며 현대 악기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도 편성의 크기나 템포 설정 등에 있어서 이들이 행했던 방식을 참고하고 도입하는 경우가 생겨났습니다.
원전 연주의 등장은 감상의 즐거움을 더할 뿐 아니라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베토벤은 어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였을까? 당시 빈의 오케스트라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들이 생겨나지요. 이와 관련하여 어떤 사실들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까요?
우선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사실은 베토벤 당대에는 빈에 전문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프로 음악가로 구성된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없었다는 뜻인데 음악 애호가들이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몇 개 존재했습니다.
그렇다면 프로 음악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어떤 유형으로 존재했을까요? 베토벤이 활동했던 19세기 초반 빈에는 3가지 유형의 프로 오케스트라가 있었습니다. 1. 궁정에서의 의식을 담당했던 궁정 오케스트라 2. 극장 오케스트라 3. 귀족에 소속된 오케스트라. 이 중에서 베토벤의 활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극장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빈에는 궁정 극장을 비롯 몇 개의 극장과 그에 속한 오케스트라가 있었지요. 베토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개최한 첫번째 음악회에서도, 그의 교향곡 5번과 6번이 동시에 초연되었을 때에도,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던 합창 교향곡의 초연 때에도 극장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였습니다.
지휘하는 베토벤 (Michel Katzaroff 작품, 출처: rnz.co.nz)
당시 오케스트라의 크기는 어땠을까요? 기록을 살펴보면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이 100여명 혹은 그 이상인 오늘날보다는 작은 규모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824년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담당했던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경우 1823년 등록된 인원이 총 43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극장 오케스트라들은 40명이 채 되지 않고요. 1810년의 롭코비츠 백작의 오케스트라는 조금 큰 앙상블 수준인 9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베토벤 당대의 공연에는 언제나 작은 크기의 오케스트라만이 연주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연주 공간 크기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크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장대한 규모의 영웅 교향곡도 롭코비츠 백작의 저택에서 연주될 때에는 전체 오케스트라가 30명대 초반이었지만 7번과 8번 교향곡이 대 무도회장에서 연주되었을 때에는 현악 파트만 69명이었던 경우도 있었지요.
이렇듯 현악 파트가 매우 많아지게 되면 목관 파트를 두배로 늘리는 이른바 ‘더블링’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전반적으로 빈의 당시 오케스트라 규모가 작은 편이었기에 규모가 있는 공간에서의 관현악 연주회를 위해서는 한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부족한 인원을 매번 그때 그때 보충해서 연주할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방식을 취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음악회를 주최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수고스러운 일이었겠지요.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원래의 악단 규모보다 더 큰 규모의 공연을 해야 할 때 인원을 보충하는 방식인데요. 합창 교향곡 초연 당시의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적어도 현악 파트의 경우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포함하여 보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연주의 수준이 아무래도 저하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수 있는데 당시 빈의 아마추어 연주자들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엇갈립니다. 그들의 연주력이 좋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고 (클라이브 브라운), 반대로 이들의 연주력이 뛰어났다고 보는 견해도 볼 수 있습니다. (오토 비바, 하르트무트 크로네스)
베토벤이 사망한 지 15년이 지난 1842년, 빈의 궁정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 니콜라이(O. Nicolai, 1810-1849)의 지휘로 관현악 연주회를 갖게 됩니다. 빈에서 최초로 프로 음악가들로 구성된 콘서트 오케스트라, 바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연주했던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이었지요.
시간이 흐르며 오케스트라도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베토벤을 비롯한 많은 위대한 음악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계속 연주된다는 사실이겠지요. 어려운 이 시기에도 이 사실이 변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그동안 베토벤 탄생 250주년 칼럼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회부터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02-05 1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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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3일간의 프리뷰 일정을 마치자마자 아쉬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른바 ‘퐁퐁당’이라 불리는 2자리 거리두기가 의무화된 공연장 환경 속에서 무대의 막을 계속 올릴 수 없어 2주간 공식 개막이 연기됐다는 것이다. 25주년을 맞은 뮤지컬 ‘명성황후’다. 구한말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한 많은 죽음으로 우리 민족을 눈물짓게 했던 국모의 사연은 2021년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녀의 삶이 어찌 이리 기구한지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원작은 이문열의 소설 ‘여우사냥’이다. 소설의 제목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궁에 난입한 일본 낭인들이 황후를 제거키 위해 붙인 작전명이다. 원작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한국인이라면 무언가 울컥해지는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심지어 뮤지컬로 탈바꿈하며 붙여진 ‘명성황후’라는 타이틀은 활자보다 상당히 순화된 표현인 감마저 없지 않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 불리는 노래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듣는 순간에는 소설이나 뮤지컬이 전달하고자 했던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느끼게 된다.
오랜 세월 여러 차례 반복해 공연되다 보니 작품을 거쳐간 배우들만 해도 상당하다. 김민수, 조승우, 홍경인, 조승룡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도 여전히 미우라로 등장하는 김도형 등 주요 캐릭터의 주연급 배우들은 오늘날 한국 뮤지컬계의 최고 스타들로 성장했다. 하물며 앙상블을 거쳐간 신인급 배우들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덕분에 뮤지컬 배우들 사이에서 ‘명성황후’는 한때 뮤지컬 배우 사관학교라 불리기도 했다.
주인공인 명성황후를 맡았던 배우는 초연 무대를 장식했던 윤석화를 포함해 모두 6명에 달한다. 제각기 독특한 이미지와 성격을 창조해내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가장 오랜 기간 명성을 누린 것은 아무래도 이태원이다. 탁월한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인기를 누려온 국가대표급 명성황후다. 사실 무대에 합류할 당시 그녀는 런던 뮤지컬계에서 스타급 배우로 통했다. 90년대 말 무대에 올려졌던 웨스트엔드 뮤지컬 ‘왕과 나’에서 티앵 왕후로 등장해 99년 영국 공연가 최고의 영예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우수조연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번에 올려지는 25주년 기념 무대에서는 요즘 안방극장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탁월한 가창력의 여배우 신영숙이 참여하고 있다. 한층 젊고 매력적인 여배우들의 무대가 작품의 오랜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무대를 만나는 매력을 한 단계 격상시켜준다. 김소현의 실제 배우자인 고종 역의 손준호, 감수성 넘치는 연기로 늘 시선을 집중시키는 강필석, 홍계훈 장군 역으로 등장하는 한국의 초대 콰지모도 윤형렬이나 인기 아이돌그룹 비투비의 멤버인 이창섭의 등장은 올해 앙코르 공연 최고의 매력중 하나다.
사실 ‘명성황후’의 인기는 비단 무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뮤지컬로 얻은 명성은 여타 문화산업 장르에서도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해왔다. TV 드라마로 꾸며져 한류 드라마로서의 대중적 인기몰이를 하는가 하면, 음반이나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문화산업 영역을 확장되기도 했다. 또 다른 캐릭터를 따로 발전시켜 또 다른 이야기를 꾸미는 스핀오프의 실험도 시도된 적이 있다. 뮤지컬 ‘영웅’의 설희다. 하나의 인기 콘텐츠가 등장하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며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문화산업의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로의 접목인 셈이다. 흥미로운 도전과 실험들이다.
더이상 수정될 내용이 없다는 의미로 마스터 버전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적도 있지만, 이번 앙코르 버전에서도 시대에 맞는 변화와 실험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노래로만 진행되던 형식을 탈피해 대사를 삽입해 극의 이해력과 전달력을 높이는 변화가 가미됐으며, LED 패널을 이용한 공간적 활용의 적극적인 실험도 더해졌다. 특히, 다양한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이 편곡에 참여해 보다 수려해진 선율의 향연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명성황후’는 창작 뮤지컬이 하루아침에 브랜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25년이라는 결코 짧지않은 세월동안 외형은 물론 크고작은 작품의 요소와 형태들은 크고 작은 수정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좋은 작품을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영광 뒤의 숨겨진 상처’에 더 큰 응원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
‘명성황후’가 주는 교훈이 있다. 요즘 우리 뮤지컬 시장이 이런 ‘명작’의 출현을 계속하거나 지속시키기에 너무 조급하다는 문제의식이다. 기본적인 시장 환경이나 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배려가 너무도 제한적이고 열악하다. 당장 안정적인 공연기간을 통해 작품을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창작 뮤지컬만의 전문 공연장 시설도 없고, 작품을 단계별로 성장시킬 수 있는 투자환경도 미약하다. 결과란 과정의 산물인데 그 과정에 대한 투자나 시스템의 보완이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제2, 제3의 ‘명성황후’는 그저 ‘희망사항’으로 머무를 요원한 꿈으로 남을지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명성황후’에게 보내는 박수만큼이나 이 작품이 우리 뮤지컬계에 남기는 의미 있는 화두다.
커튼콜에서 다시 불리는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조선이 아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목청 높여 일깨워주는 깨달음의 울림이어서 더욱 감동적이다. 일촉즉발의 형세로 전개되는 국제 정세나 아직도 망언이나 일삼는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명성황후’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울분이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준다. 코로나 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일단은 프리뷰 공연만 진행된 채 잠정적으로 막을 내렸지만, 거리두기 단계조정이나 공연장 환경에 따른 정책변화가 시행되면 조만간 다시 관객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 3차유행까지 진행된 우리나라의 코로나 19 시국에서 공연장에서의 감염확산은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없었으니, 앞으로도 방역지침을 잘 준수하고 감염병 확산에 효과적으로 대비한다면 해외 유수의 언론들이 부러워했던 대한민국 뮤지컬 공연가의 우수한 K방역 신화는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침 뮤지컬 협회에서도 동반자외 거리두기에 대한 필요성을 알리고 있으니, 다시 막이 오르면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았으면 좋겠다. 모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무대를 완성해준 제작진에게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1-02-05 1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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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때때로 인간의 삶은 바다에 비유되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바다를 유영하는 항해자가 된다. 수면 위로 얹은 빛을 잔잔하게 일렁이며 드넓게 펼쳐진 미지의 세계. 그곳엔 아직 만나지 못한 푸른 희망이 담긴 듯하다. 누군가는 이런 바다를 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의지를 다지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자연의 위대함을 보며 막연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바다는 순간 표정을 바꿔 여러 가지 모습으로 항해자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끝 모를 바다 한가운데서 맞이한 고난과 역경,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위기 속에 침전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 여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생의 여정이 이번에 소개할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 고스란히 담겼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한국 초연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왔다. 2016년 4번째 시즌 이후 무려 4년 만에 들려온 출항 소식이다. 2020년 11월 14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해 오는 3월 7일까지 공연을 예고하며 힘차게 닻을 올렸으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확정된 후 거듭된 지침 재연장으로 인해 항해는 잠시 멈춰야만 했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삼총사’로도 잘 알려진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대하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원작과 비교해 일부 달라진 설정은 이전에 개봉한 동명 영화들로부터 각각 영향을 받았다. 방대한 분량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와 전반적인 흐름을 비교적 유사하게 가져와 호평받았으며, 2017년에는 공연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가 한국 최초로 작품 라이선스 배급권을 획득해 주목받았다. 또 남다른 규모만큼이나 캐스팅 역시 화려하다. 이번 시즌엔 엄기준, 카이, 신성록, 옥주현, 린아, 이지혜 등이 무대에 오르며 최고의 하모니를 예고했다.
<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파도치는 소리와 함께 지중해 지도 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지고 나침반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는 순간, 드디어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서막이 오른다. 배경은 1814년, 전쟁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배돼 있던 시점이다. 촉망받던 청년 항해사 에드몬드 단테스는 모렐 선장이 갑작스럽게 고통을 호소하자 급히 배를 근처 엘바섬에 정박시킨다. 이때 우연히 만난 나폴레옹이 에드몬드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며 누군가에게 꼭 전달해 달라 부탁하는데, 간절한 요청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든다. 그땐 이 편지 한 통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리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왔으나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고 악명높은 감옥에 14년이나 갇혀 살게 된 에드몬드는 극적으로 탈출해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는 자신을 배신한 이들을 향해 통쾌한 복수극을 펼친다.
작품에는 사랑과 질투, 증오, 배신, 복수와 파멸, 용서 등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모두 녹아있다. 이 낯설지 않은 감정들은 관객들이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 좀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언뜻 보면 어둡고 무겁게 느껴질 만한 소재들의 집합이지만 때에 따라 적절하게 가미된 유머와 긍정적인 메시지가 작품의 균형을 이룬다. 흥미진진하면서도 극적인 전개는 권선징악이 확실해 더욱더 후련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관객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모험에 동행하며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서사의 흐름과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음악 역시 재미와 감동을 준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웃는 남자’, ‘드라큘라’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과감하지만 절대 과하지 않은 느낌으로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끈다. 특히 복수를 결심한 에드몬드가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부른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갑작스레 이별을 맞이한 에드몬드와 메르세데스의 그리움이 담긴 듀엣 넘버 ‘언제나 그대 곁에’, 메르세데스의 솔로 넘버 ‘온 세상 내 것이었을 때’, ‘세월이 흘러’ 등은 섬세한 감성 표현과 어우러져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
더욱 풍성해진 볼거리 또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자랑이다. 우선 효과적인 영상 활용 기법이 돋보인다. 에드몬드의 탈출 장면이나 루이자의 해적선이 방향 전환되는 장면은 순간 긴장을 야기할 만큼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거대한 배와 지하 감옥, 몬테크리스토 성 등 실감 나는 무대 세트와 화려한 의상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렇게 보고, 듣는 재미까지 확실하게 선사하는 작품이 바로 ‘몬테크리스토’다.
<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이란 작품의 대표 문구가 떠오른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체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오직 정의라 믿으면서 내달렸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극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까닭은 바로 ‘사랑은 주는 자의 것’이란 불변의 진리에 있었다. 결국 먼저 사랑하고 더 많이 사랑할 줄 알았던 이는 용서로 사랑을 실현하며 거친 풍랑 속에 표류하던 자신을 구원하게 됐다.
우리는 모두 삶이란 바다를 탐험하는 항해자이면서 동시에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 막막한 요즘, 아득한 미래에 잠시나마 방향을 잃었다면 이번 기회에 공연장으로 향해 보자.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분명 당신의 마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1-01-29 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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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작곡가 안톤 베베른의 음악에 대하여[클래시그널] 3~4분정도 걸리는 대중가요와 비교해 클래식 음악은 너무 길다? 작곡가 안톤 베베른 (Anton Webern 1883~1945)이 들으면 섭섭해할 소리. 베베른의 음악은 매우 짧다. 대게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듣고 곡이 막 시작하는가하면 어느새 끝난다고 말한다. 어쩌면 대중의 입장에서 어려울 수 있는 베베른의 무조음악이 짧다는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어떤 악장은 기껏해야 30초도 안되고 야심차게 작곡한 교향곡 전곡이 10분 안팎이다. 언감생심 난해한 현대음악의 시발점에 위치한 베베른의 음악을 소개한다는건 무모한 시도일까.
우선 그의 음악적 배경을 간단히 짚어보자. 1883년 빈 출생으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베베른에게 첨으로 음악을 소개한건 어머니였다. 음악애호가였던 어머니 덕분에 다섯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의 길로 들어선 케이스로 첼로, 음악이론을 공부했으며 빈 대학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사사했던 귀도 아들러 교수는 음악을 '음들에의해 통합된 유기체'로 보았으며 베베른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음악적 노선은 무조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와의 만남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다 . 무조음악이란 조성을 부정하고 음들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여 논리적으로 짜맞춘 음악이다. 결과적으로 베베른은 20세기초 쇤베르크가 정립한 12음 기법의 무조음악을 충실히 답습함으로써 제 2 빈 악파의 중심인물로 꼽히며 현대음악의 전위적인 변곡점을 일궈내었다.
하지만 알려져있다시피 무조음악은 대중성이 결여되어있다. 익숙한 조성감을 해체하고 논리적으로 음을 나열하다보니 듣고나면 선율 하나 기억에 안남는 무조음악이 어려운건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베른의 무조음악이 매력적인 이유는 곡이 짤막하다는 이유를 제하고라도 그 음악이지닌 '응축미' 때문일 것이다.
베베른의 음악은 시와 닮았다. 단어 하나 허투루 낭비할 수 없는 시처럼 베베른 음악속의 까다롭게 엄선된 음들은 응축된 가치를 담아낸다. <아홉개 악기를 위한 협주곡 Op.24>는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곡이 6분내외로 역시 짤막한 곡이다. 1악장의 세 음으로 이루어진 짧은 모티브가 다양한 악기를 통해 운율을 자아낸다. 또한 구조적으로 제시부 25마디, 재현부 25마디로 구성된 대칭적 구조로 시의 '연'을 연상시킨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교향곡 Op.21>을 소개하며 " 구조적 관점에서 시의 모습을 담고있다"고 했다.
또한 베베른의 음악적 본질을 언급하며 "베베른은 모티브와 멜로디 음색 그리고 작품의 형태같은 요소들이 공생관계로 연결되어있다"고 덧붙였다. 자연을 음악의 원천으로 삼았던 베베른은 모든 음악적 구성요소들이 모여 '하나'를 지향하는 통일성을 강조했는데 괴테의 원형식물(Urpflanze)을 모티브 삼았다. 즉, 결국 한몸이지만 뿌리, 줄기, 잎,꽃이라는 다른 형태로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는 스승이었던 아들러의 이론과도 궤를 함께한다.) 음 하나가 주제로 간주될만큼 음의 높은 밀도와 곡의 짧은 길이는 통일성에 일조한다.
<현악 4중주를 위한 다섯개의 악장>中 4악장은 총13마디의 길이를 갖고 있다.
점묘주의를 연상케하는 흩어진 음들 사이의 '공백' 또한 베베른의 큰 매력이다. 그의 작품에서 철저히 선별된 음들 사이의 공백은 넓다 .<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의 4악장은 고작 6마디로 가장 짧은 악장이다. 6마디 속의 넉넉한 쉼표들은 몇 안되는 음들을 더욱 돋보이게끔한다. 현대음악의 거장 피에르 불레즈는 " 베베른에게 있어서 음악은 소리와 침묵의 대위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덧붙여 음고의 변화 뿐만아니라 음색의 변화가 선율을 이룰 수 있다고 본 쇤베르크의 참신한 개념,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은 베베른의 단골 소재다.
쉽게 말해서 선율을 다양한 악기에 분산시키는 작곡기법이다. 가지각색 악기들이 모여 한 멜로디를 서로 나눠 연주하는 음악이 상상되는가. 베베른이 편곡한 바흐의 <6성 리체르카레>가 대표적인 예이다. 트롬본으로 시작하여 호른, 트럼펫, 하프등 차례로 등장한 악기들이 한 성부를 몇음씩 나눠서 연주하는데 익숙해져버린 바흐 음악에 현대적인 색채를 더한다.
이처럼 내제된 음의 높은 밀도와 더불어 디테일이 살아있으니 짧고 간결한 구조가 용이하며 몇 안되는 음들 하나하나가 응축된 형태로 의미심장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바쁜 현대인에게 무조음악 감상은 예상컨데 쉽지 않을 터. 하지만 참신한 접근법으로 베베른의 음악에 다가간다면 색다른 미적 쾌감을 준다. 게다가 무척이나 짧다, 할렐루야.
스시 하나하나에 정성이 담긴 오마카세가 우리로 하여금 맛에 온 감각을 집중시키듯 베베른 음악의 디테일한 응축미는 음의 본질에 집중시킨다. 베베른의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은 비평가들로부터 '진정한 음악적 시'라고 찬사받은 작품이다. 짧은 음악적 셀(cell)을 변주하여 만들어낸 이 곡은 전 악장이 5분이 채 안된다. 50초만 투자하면 1악장을 감상할 수 있다. 고요한 적막을 뚫고 나온 각각의 독립된 음들이 마치 시어를 읆조리는 듯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eqqQ-kBJQ0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1-01-28 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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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예술계의 성장엔진은 사람, 인문학에 기반한 아트브랜딩”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인 유행으로 일상이 멈춰 선지 어언 1년, 예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안겨줄까. 문화예술의 역할은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예술과 만나야 하는가. 코로나 백신의 글로벌 접종이 시작되고 전 세계인의 70% 이상에게 백신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간의 삶을 되돌려 놓을 최선의 처방으로 문화예술이 본격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새해의 첫 컬쳐포커스에서는 올 상반기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향후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 온라인시대에 걸 맞는 인문베이스의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문화의 유행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왼쪽>한상윤, 우리 사랑도 풍성하게-행복한 돼지(Happy Pig Couple), 2020 (나마갤러리 제공) <사진 오른쪽>캐릭터 아트를 전망케 하는 Ayako Rokkaku 작품, 2008 (나마갤러리 제공)
2021년, 문화예술계의 새로운 전망들
올해 문화예술계의 트렌드는 무거운 예술보단 가볍고 편안하게 즐기는 편안한 예술이 강세가 될 것이다. 가볍고 편하게 즐기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의 재유행과 개인에게 집중하는 온라인 마케팅, 공유하고 콜라보하는 다원예술, 위기를 극복하는 인문학 열풍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올 한해 문화예술 분야의 새로운 흐름(trend)이 될 것이다. 대중화된 스마트기기를 활용해서 집안팎에서 안전하게 즐기는 10~15분 안팎의 웹·모바일영상 콘텐츠 등이 활성화될 것이고, 코로나로 인해 자가격리 되는 인구가 많아지면서 개인의 시청습관, 선호도 등을 고려한 프로그램 추천, 주제별 채널을 제공하는 스마트 예술상품의 출시, 개인의 일상을 반영한 <나혼자 산다>, <식샤를 합시다> 같은 컨텐츠의 새로운 변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각 지역의 자원과 시설을 기반으로 했던 커뮤니티형 문화예술 모임은 이제 줌을 통한 온라인 커뮤니티로 방향을 옮겨와 전문성과 편안함을 갖춘 융·복합 온라인 공간의 확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문화예술계의 성장엔진은 결국 사람이다. 인문학에 기반한 아트브랜딩이 강세가 되면서 문화예술계의 청년 인력 키우기 문화예술 분야1인 창업도 활성화가 될 전망이다.
청년이슈, 문화예술계 청년예술가 지원공모 포스터들 (출처 : 구글이미지)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카데믹한 과거의 구조(문화예술계 갑-을 관계)가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방송, 영화, 시각.공연 예술계의 불공정관계가 개선되고, 유튜브 등의 다양한 컨텐츠에 대한 저작권 환경 등도 크게 변화가 예상된다. 히스토리가 스토리텔링이 되고, 작년부터 일기 시작한 한글, 문자, 민화 등의 전통컨텐츠의 현대화 바람이 확산되면서 젊은 세대가 전통에 대한 새로운 틀을 견인할 것이다. 이는 디지털 시대, 청년예술가들의 새로운 가능성이 이해하기 쉬운 소통과 신선한 아이디어 속에서 창출되는 것과 같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이미 공유가치(CSV)로의 패러다임을 낳았고, 예술과 기업의 수평적 파트너십은 인문학 열풍 속에서 확대되고 있다. 정치, 경제, 환경 등의 거시적 이슈보다 방탄소년단과 같은 대중문화예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힘이 더 강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예술 평준화 시대, 온라인 마켓팅과 인문이슈의 강화
꽁꽁 얼어붙은 것은 새해 겨울철 날씨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경제와 문화가 마비됐을 뿐 아니라, 이슈에 따라 정치 지지층까지도 바뀌는 헤프닝도 벌어진다. 전세계 2/3이상의 공연장과 미술관이 문을 닫았고, 국제적인 문화예술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거나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나마 2020년 예술계는 이를 타계하기 위한 방편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관객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시도하였고, 이는 오늘을 대체할 뿐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래소통방식을 빠르게 앞당기게 되었다. 1월 4일자 조선일보 인터넷 판(장미 기자)에 따르면 “지난해 600여개 작품이 온라인라 이브로 공연”됐고, “침체된 공연업계는 네이버TV를 통해 관객과 창작자를 연결했다”고 보도했다.
누적 시청자수는 “전년 대비 12.5배 증가한 1500만회”, 그 가운데 재밌는 부분은 온라인라이브에서 가장 많은 시도를 한 장르가 클래식이며,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감상한 장르는 뮤지컬이라는 점이다. 이미 약업신문 클래시컬에서도 소개한 대로 국악, 발레·무용, 오페라 등의 다양한 공연과 미술전시, 다원예술 등이 비대면으로 관람객을 찾았다. 공연과 전시 수익에 대한 여러 방편들이 논의된 가운데, 네이버TV의 ‘후원라이브’가 진행중이고 다음카카오갤러리 등에서 컨텐츠의 편의성을 제공한 ‘구독서비스’ 등이 논의 중이다. 이용자가 일정 금액을 후원하거나 구독하면 단독으로 공연이나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러한 온라인 방식의 문화예술관람은 디지털 상품들, 텀블벅과 같은 플랫폼, 온라인 관련 콘텐츠 발굴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러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앞으로 고려될 대상은 바로 사회적 공공성의 강화다. 흔히 예술의 역할은 사회감지시스템을 보여주는 르포형 기능과 감상하면서 치유하는 소통기능에 있다. 온라인 소비가 급증하면 예술의 주제의식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음악계와 미술계는 다원예술과 같은 보여주기 방식으로 보다 쉬운 스토리텔링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이미 문화예술계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채널의 첨단기술을 획득해 온택트(Ontact)식 소통을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갖추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을 다양한 기획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브랜드의 원형을 만드는 스토리 안에는 가치와 철학, 작품감상에 대한 명분이 담겨 있어 온라인컨텐츠의 자본화에 큰 도움이 된다. 문화예술 기획의 출발점이자 중심이 되는 인문베이스(원형요소, archetype)는 공연/전시를 둘러싼 다양한 스토리와 최근 이슈 속에서 도출해야 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요소들은 공연/전시가 소비되는 환경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비대면속에서도 스펙트럼을 넓혀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문화콘텐츠 통합페이지를 연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출처: 문화포털 사이트)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브랜딩이 예술계를 주도한다.
스토리텔링이 브랜딩화되면 대면가능한 시점에서 문화예술의 접근성은 오히려 유지·강화될 것이다. 예술의 가치와 그 역할은 코로나 시대에도 바뀌지 않았다. 다만 이를 경험하고 접근하는 경로가 확장됐을 뿐이다. 이제 대면소통이냐 비대면 소통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지친 이들을 위로하고 매료시킬 것인가에 있다. 올 하반기면 코로나 종식에 대한 논의들이 본격화되고, 사람들은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가 언급한 대로 타인과 자신의 ‘구별 짓기’를 ‘희귀하고 가치있는 대면소통 예술’ 속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직접 보고 만지고 모여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세이프티(Safety)에 대한 욕구가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신축년 새해, 문화예술의 접근성 강화는 “예술을 일상처럼”이라는 휴머니티 속에서 읽혀야 한다. 이미 일상이 된 유튜브 서비스는 국립현대미술관·국립발레단 등을 비롯한 국‧내외 미술관이나 공연기관에서 자리잡게 되었고, 예술을 멀게만 생각했던 관람자들이 예술 소비자로 전환되는 획기적인 역사와 직면하게 되었다. 예술은 전문지식이 있어야 아는 스페셜 상품(specialty goods)에서 집에서 즐기며 치유하는 서비스(caring service)’가 되었다. 이제 예술은 스토리텔링을 덧입은 마케팅의 도입은 필수가 된 것이다.
미술계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의 최고가에 거래되는 김환기를 비롯한 단색화 류의 작품이나 공공미술의 전신 격인 민중미술 계보의 작품들은 이제 미술사의 한 획이 되어 문화계 중요뉴스에서 논의된다. 하지만 미술을 처음 접하는 대중들이 환호하는 작품들은 청년예술가들이 창출해낸 캐릭터를 가진 팝아트류의 작품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핑크퐁이나 뽀로로, 어덜트식 캐릭터 펭수는 누가 봐도 선호되는 캐릭터이다. 펭수가 성공한 이유에 대해 문화웹진 채널예스(2020년 5월호, 엄지혜 기자)에서는 “자유롭고 당당한 모습의 캐릭터, 펭수는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거나 세상을 구하거나 하는 대의가 아니라 인기스타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 자기표현에 대한 욕구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남극에서 온 EBS 연습생 ‘펭수’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 뿐 아니라 300만 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가질 만큼 인기 스타가 되었다. 이들은 대중취향을 매개로 성공했지만, 거꾸로 팝아트의 캐릭터가 대중캐릭터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일본에는 무라카미 다카시와 나라 요시토모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스타 아야코 로카쿠가 자리한다. 손가락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순진무구한 작품들, 싸구려 종이 같은 카드보드지에 손가락으로 그어댄 작품은 유럽뿐 아니라 한국시장에 까지 유행할 모양새다. 정체모를 여자아이가 그려진 그림들, 삐쳐있는 듯 뾰루퉁해보이는 듯 정감가는 이 그림들(http://www.rokkakuayako.com)은 젊은 여성작가가 그려낸 치유적 세계를 보여준다.
국내의 경우 돼지(Pig-Pop) 캐릭터로 SBS아침, 저녁 뉴스(2019.02.04.)에 단독보도 됐던 한상윤 작가도 주목할 만하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유쾌·상쾌·통쾌라는 시각을 통해 ‘행복한 돼지’ 캐릭터로 다양한 미술·공연과 콜라보를 해온 작가는 자신의 피그팝을 국민캐릭터로 데뷔시키기 위해 준비 중이다. 대중들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김선우 작가의 마다가스카 펭귄이나 아트놈 작가의 가지, 모타루 등의 캐릭터들도 한국팝아트의 캐릭터 아트마케팅을 이끌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2021년, 펭수와 겨룰 수 있는 대중캐릭터가 한국예술계에서도 나올 수 있기를 고대한다.
2021년 광고계를 접수한 '펭수캐릭터는 CF 조회수 TOP5 3관왕에 올랐다.
(출처: 동원참치 유튜브)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1-01-22 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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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눈을 기다리는 이들이라면, ‘가위손’, 그리고 대니 엘프만
세월이 흘러도 특정 계절마다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작품이 있다. 작년에 서른 살 생일을 맞은 ‘가위손’(감독 팀 버튼, 1990)은 눈을 기다리는 겨울이면 한 번쯤 생각나는 영화다. 사실 이 영화는 한 발명가가 미처 완성시키지 못한 ‘에드워드’(조니 뎁)의 슬픈 경험담이다. 작은 마을에서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던 ‘펙’(다이안 웨스트)은 언덕 위의 성에 들어갔다가 창백한 얼굴에 상처 투성이를 하고 손가락 대신 가위 날이 달린 에드워드를 만난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 에드워드를 환영하는 듯 하지만 그의 재능을 이용하려다 실패한 사람들의 모략 때문에 에드워드는 다시 성으로 쫓겨 가고 만다. 인간의 편협함과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는 사회성 짙은 이 작품이 에드워드와 ‘킴’(위노나 라이더)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야기로 널리 각인되어 있는 이유는 몇몇 로맨틱한 이미지들과 그 분위기를 한껏 돋워준 음악에 있다.
에드워드가 거대한 얼음을 깎아내면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킴이 그 아래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그 어떤 영화의 러브신과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낭만적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시간적 배경, 천사 조각상, 청초한 킴, 에드워드의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음악에는 성가의 경건함과 판타지의 웅장함, 캐롤의 영롱함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가위손’의 작곡가인 대니 엘프먼은 길예르모 델 토로, 이안, 브라이언 드 팔마 등 뛰어난 감독들과 100편이 넘는 영화에 참여해온 거장이다. 그러나 엘프먼과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한 감독은 팀 버튼이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스코어들도 팀 버튼의 작품들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원래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오잉고 보잉고’라는 밴드로 뮤지션의 커리어를 시작한 엘프먼에게 영화계에 입문할 기회를 준 것 역시 팀 버튼이다. 두 사람이 명콤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엘프먼이 팀 버튼의 환상적이고 기묘한 세계를 이해하고 음악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최적의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엘프먼은 어른들의 동화가 가진 음산함, 어두운 현실과 그것을 넘어서는 초월적 세계, 그 사이의 몽환적 감수성을 자유롭게 표현해낸다. 변칙적인 화성과 리듬을 쓰는 엘프먼의 스타일은 ‘엘프먼에스큐’라 명명될 정도로 독창적이다.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가위손’에도 이러한 특징은 잘 드러나 있다. 가령, 펙이 성을 방문하는 신에는 에드워드의 존재에 미스터리와 신비스러움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오케스트라 기반에 합창이 얹어지고 예상치 못한 리듬이 끼어들었다가 사라지기도 하면서 영상에 감정의 굴곡을 심어주고 있다.
유례없이 황량한 마음으로 맞이한 새해이기에, 차가움 속에 따스함이 숨어 있는 ‘가위손’의 정서가 더 그리워진다. 에드워드의 순애보가 만들어내는 얼음눈이라도 실컷 내렸으면 좋겠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지금, 당신의 위치를 가리킬 수 있나요, ‘운디네’
‘운디네’(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사랑이야기다. 두 남녀가 운명처럼 만나고 열렬히 사랑하다가 넘어설 수 없는 장애로 인해 헤어지는 멜로드라마의 관습적 서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다. 연인들의 만남과 이별이 독특하고 전반적인 톤 앤 매너도 신비스럽다.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개연성이 떨어지는 순간들이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다분히 판타지적 성격이 들어 있지만 어딘가에는 이런 관계가 존재할 것만 같은 현실감도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절절한 사랑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게 된 시대에 오히려 더 커져 버린 사랑의 힘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운디네’(파울라 베어)는 산업 잠수부인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와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죽을 만큼 사랑했던 ‘요하네스’(야콥 맛쉔츠)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지 1시간쯤 후, 같은 카페에서의 일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운디네에게 수조 속에 있던 산업 잠수부 미니어처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크리스토프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자신을 배신했던 요하네스를 금세 잊어버린 운디네는 새로운 연인에게 깊은 애정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크리스토프가 그녀에게 선물한 산업 잠수부 조각상이 부러지는 사건이 암시하듯 두 사람의 애틋한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고 위기에 빠진다.
신화에서 남성들의 짝사랑을 이루어주는 정령, 질투의 화신 혹은 배신의 희생양으로 묘사되었던 운디네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랑의 주체로 거듭난다. 그녀가 도시역사학자이며 박물관에서 베를린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의 건축물에 대한 강의를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도시 재건에 있어서도 옛 것과 현재의 것이 같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그녀는 요하네스와 크리스토프를 혼동하거나 저울질하지 않는다. 질투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남성들이다. 도시가 발전하는 것처럼 운디네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운디네는 강의 때마다 도시 모형관에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를 가리킬 수 있는 분?”, “전에 베를린궁이 있던 자리를 가리킬 수 있는 분?” 그녀가 공간의 현재와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과 상태, 연인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행위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바바라’(2012), ‘피닉스’(2014), ‘트랜짓’(2018) 등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꾸준히 주목받아 온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운디네의 캐릭터를 바꾸고 성역할을 전복시킴으로써 보다 현대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신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결말부는 다소 아쉽다. 2020년의 ‘운디네’에서는 그녀의 선택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1-01-22 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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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서편제 이후, 전통 예술을 소재로 해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풍물과 가면극, 줄타기와 인형극 등등의 전통 연희 종목들을 엿볼 수 있다. 국어사전은 연희를 ‘말과 동작으로 재주를 부리는 행위’, ‘각본에 따라 사건이나 인물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무대 예술’로 정의하지만 전통 예술에서 연희의 범주는 곡예와 묘기를 가리키는 재주 부리기, 인형극과 가면극, 노래와 춤, 판소리, 농악, 굿 등으로 좁혀지기도 한다.
전문 예인 집단의 연희, 남사당놀이
“이보게 매호 양반! 저기 저 위에 핀 꽃이 대체 무슨 꽃인가?”
영화 ‘왕의 남자’에 나오는 광대 장생의 첫 대사다. ‘매호 양반’ 혹은 ‘매호씨’라 불리는 이는 남사당놀이에서 광대들과 재담을 주고받는 역할을 하는 어릿광대를 가리킨다. 남사당놀이를 연행하고 전승해온 남사당패는 유랑 예인 집단이다. 그들은 전문적이고 다채로운 기예를 선보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만의 은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등 독특한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꼭두쇠’가 이끄는 남사당패는 각 종목을 대표하는 ‘뜬쇠’와 종목별로 재주가 출중한 이들을 일컫는 ‘가열’, 신입 광대인 ‘삐리’, 재주를 담당한 무동 ‘새미’와 ‘피조리’ 등 40~50명이 한 패를 이루었다. 매호씨와 재담을 주고받는 뜬쇠들은 주 종목에 따라 줄광대인 ‘어름사니’, 땅재주꾼인 ‘살판쇠’, 대접 돌리는 사람인 ‘버나잽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남사당놀이는 크게 여섯 마당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의 연희 종목들이 남사당패의 레퍼토리에 포함된다. 흥을 돋우는 ‘풍물’로 시작하여 대접이나 접시 등을 나무 막대 끝에 올려 돌리는 ‘버나’, 재주 넘기인 ‘살판’, 줄타기를 가리키는 ‘어름’, 가면극인 ‘덧뵈기’, 꼭두각시놀음으로 알려진 인형극 ‘덜미’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에서 전승되는 전통 인형극으로는 꼭두각시놀음이 유일하다. 1964년에는 남사당놀이 중 꼭두각시놀음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에 여섯 마당이 모두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지역 공동체의 연희, 양주별산대놀이
양주별산대놀이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이다. 현재는 전문 예인들에 의해 전승되지만, 원래는 지역 공동체의 세시풍속에서 유래한 놀이다. 민중들의 놀이 문화가 왕의 제사 음악인 종묘제례악에 이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산대놀이’는 고려의 ‘산대잡극’ 혹은 ‘산대연희’가 이어진 우리 전통 가면극의 일종이다. 전통 가면극은 전국 곳곳에서 전승되었는데 북쪽으로는 봉산탈춤과 강령탈춤, 은율탈춤이 있고, 서울 근교로 양주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가 전해 내려온다. 경상도에는 익히 알려진 안동의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비롯해 낙동강 서쪽의 통영오광대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가 전해지며 낙동강 동쪽으로는 동래야류와 수영야류가 있다. 덧뵈기가 포함된 남사당놀이와 관노가면극이 펼쳐지는 강릉단오제, 인형극과 가면극의 요소를 모두 가지는 발탈 그리고 동물 가면을 뒤집어쓰고 노는 사자춤이나 소놀음굿까지 포함하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가면극만 스무 개 가까이 된다.
'양주별산대놀이(©문화재청)'
양주별산대놀이는 중부 지방을 대표하는 탈놀이로,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 추석, 단오 등에 연행되었다. 서울의 산대놀이가 파생된 것으로, 서울의 산대놀이를 ‘본산대’ 양주의 산대놀이를 ‘별산대’로 구별하였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다른 지역의 탈놀이에 비해 가면과 극의 내용 모두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으로 꼽힌다. 각 지역의 탈놀이는 탈의 모양을 과장하거나 지역민들이 참여가 두드러지는 등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음악과 춤을 곁들인 종합극의 성격을 띤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1년의 연희
연희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 있다. 광대들은 무시로 객석을 휘젓고 다니며 구경꾼들을 그들의 놀이판으로 끌어들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고대 제의祭儀에 이르게 되는 이 오래된 공연 양식은, 지금도 여전히 바래지 않은 흥과 신명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게다가 연희판에는 무형문화재를 전승하는 예인들부터 젊고 재주 많은 오늘날의 광대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재기발랄한 즉흥성과 현장 장악력으로 대동단결의 마당을 이끌어 온 광대들은 2020년 무대를 영상 안으로 옮겨야 했다. 공연 영상보다는 농한기에 짚신 삼듯 만든 영상들이 눈에 띈다. 천하제일탈공작소가 전국의 탈춤을 소개하는 ‘명품탈춤-천하제일탈’, 연희집단 The 광대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역 방언과 무형문화재를 함께 소개하는 ‘재담 리서치-말맛 담기’ 등은 TV 예능 프로그램 못지않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유튜브에는 청배연희단이 일찍이 연희집단 The 광대, 연희컴퍼니 유희와 함께 벌인 <연희왕 타이틀 매치 시즌3 – 연희판 도장깨기> 공연 영상이 남아있다. 출사표를 던질 날만 기다리며, 실력을 갈고 닦았을 고수들이 하루 속히 그들의 무대로 돌아오면 좋겠다. 돌아오는 봄날에는 연희판을 훨훨 날아다니는 그들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신명이 세상을 평정하길 바라본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1-01-22 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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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작년 한 해 동안은 문화 잡지인 ‘객석’에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 대표들을 인터뷰 기사를 썼다. 그 동안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미국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덴마크 국립 교향악단,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총8개의 내로라하는 오케스트라들의 대표들을 온라인으로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감사한 기회가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리더’ 하면 지휘자만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오케스트라의 리더는 둘이다. 하나는 카라얀, 번스타인, 정명훈과 같은 지휘자인 음악감독과 다른 하나는 오케스트라 살림을 꾸리는 대표이다.
<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
음악감독은 오케스트라가 음악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단원들을 연습시키며 정기 및 교육 공연 프로그램, 협연자 등을 결정하고 오케스트라의 고유한 음색을 만든다. 숨겨진 리더이자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살림을 꾸리는 대표는 사무국(경영팀, 기획팀, 홍보팀 등)을 경영하며 오케스트라와 음악감독이 연주를 편안히 할 수 있도록 환경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 중 내가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은 오케스트라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대표들로 사전 조사 과정에서 그들의 약력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3명의 대표는 놀랍게도 음악 관련 전공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핀란드 방송교항악단 대표는 경제학을,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대표는 정치학을 그리고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표는 공학을 전공하였다. 모두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전공 출신의 오케스트라 대표라니. 늘 음악가 출신의 대표만 보다보니 그게 으레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하고 있던 전공자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랄까. 왜 이들은 오케스트라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까.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에서 살던 이들을 오케스트라, 그리고 ‘대표’라는 무거운 왕관을 기꺼이 쓰게 만들었을까. 인터뷰를 통해 느껴진 그들의 오케스트라를 향한 열정은 깊고도 단단했다.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특히 나의 관심을 끌었던 사람은 현재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표를 이끄는 학팽 창이다. 그는 세계적인 명문인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에서 공학을, 그리고 프랑스의 인시아드에서 경영을 전공 해 음악과는 상관이 없는 삶을 긴 시간 살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은 무엇이 공학을 전공한 사람을 오케스트라로 이끌었을까였는데 인터뷰 내내 그가 반복한 문장이 바로 ‘spread love of music'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단단히 자라 뿌리내린 음악에 대한 사랑이 그가 속해 있던 세계를 벗어나 결국 클래식의 중심인 오케스트라로 이끈 게 아닐까.
그를 보며 새삼 깨달은 것은 결국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즐겁게 자기의 고유한 색을 드러낼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분야에서 대체불가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표들은 음악이 아닌 다른 전공을 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음악에 열정을 바침으로써 그들의 전공과 시너지를 발휘해 더 큰 리더로 성장하고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었다.
세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을 보며 늘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자라는 동안 꼭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꾸준히 즐겁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기꺼이 던질 일을 찾아 평생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학을 가기 위해 어린 나이임에도 매일 학원에, 숙제에 밤낮으로 공부에 치이는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아이들이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싶다. 아니, 그런 고민을 제대로 숙고하는 방법을 배울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영어와 수학을 중시하는 사회. 영어와 수학 공부가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가는 건강한 수단이 되어야 할 텐데 그저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목표로 변질되지는 않을지 늘 두렵다. 그리고 영어, 수학 위주로 공부해야만 하는 지금 교육의 현실이 야속하기도 하다.
2020년은 코로나로 많은 학원들이 휴식에 들어가며 아이들이 지루하지만 적어도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학교에 대한 애정이 다시 생겨났다는 점에서는 감사한 면도 있다. 이번을 계기로 코로나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는 아이들이 ‘진짜 공부’를 할 기회가 늘어나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것을 찾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교육으로 전체 흐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음껏 생각하며 다양하고 자유로운 경험을 하면 좋겠다. 곧 초등 고학년으로 진입하게 될 첫째를 볼 때마다 지금처럼 읽고 싶은 만큼 책을 읽고 상상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지고 입시를 향한 공부를 시작하게 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그 생활에 지쳐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지기도 한다. 실제로 입시 점수에 맞추어 대학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 합격 후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 나아가는 것이 좋을지 몰라 목적 없는 방황을 시작하는 어린 성인들이 지금도 많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글을 쓰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대표들처럼 혹시나 좋아하는 음악이 아닌 다른 전공을 선택하게 되더라도 언제든 다시 좋아하는 분야로 기꺼이 발을 내딛어 전공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창의적이고 폭넓게 생각하는 리더로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싶다. 인생의 걸음을 먼저 뗀 선배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2021-01-15 1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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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인류애가 강조된 쉴러(F. Schiller, 1759-1805)의 <환희의 송가, Ode an die Freude>가 삽입된 베토벤(1770-1827)의 교향곡 9번 <합창>은 특별한 순간에 자주 연주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를린에서 울려퍼진 합창 교향곡일 것입니다.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는 음악회였지요.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리라” “모든 사람들아, 서로 포옹하라” 라는 텍스트가 담긴 합창 교향곡은, 베를린을 동과 서로 나누던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하기에 더없이 적절했습니다.
세계적인 콘서트홀의 오프닝 공연에서도 합창 교향곡은 자주 연주되었습니다. 1888년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Concertgebouw), 1963년 베를린의 필하모니(Philharmonie), 1986년 도쿄의 산토리 홀(Suntory Hall)의 첫 공연에서 모두 합창 교향곡이 울려퍼졌죠. 1872년 바그너가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Bayreuther Festspielhaus)의 공사 착수를 기념할 때 연주된 곡도, 이 극장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2차 대전의 여파로 중단되다 1951년 다시 재개되었을 때 연주된 곡도 합창 교향곡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순간, 그리고 오프닝 공연과 더불어 합창 교향곡이 자주 연주되는 경우를 생각해본다면, 분명 송년 음악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내에서 서울시향과 KBS 교향악단 등 주요 오케스트라들이 매년 12월에 꾸준히 연주하는 관계로, 송년 음악회에서 합창 교향곡이 연주되는 구성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요.
일본 역시 이러한 구성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곳입니다. 아니, 일본만큼 이 구성이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곳도 드물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일본의 대표적인 홀은 산토리 홀의 음악회 일정을 살펴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데요. 2004년부터 검색이 가능한 산토리 홀의 콘서트 아카이브를 보면, 합창 교향곡 연주되는 일정이 12월 말에 4-5일 연속으로 잡혀 있는 것을 매년 볼 수 있습니다. 연속으로 잡혀 있는 일정 외에도 12월에는 대게 몇 개의 합창 교향곡 공연이 더 자리잡곤 하지요. 얼마 전 실린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사의 제목은 일본 사람들의 합창 교향곡을 향한 애정을 잘 나타냅니다. “일본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다(In Japan, Beethoven’s ‘Ode to Joy’ is a Christmas carol)”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를린에서 합창 교향곡을 지휘했던 번스타인 (© dpa)
한국과 일본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송년 음악회=합창 교향곡’의 전통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요?
이 전통이 오래도록 남아 있는 악단을 찾으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바로 라이프치히에 있는 유서깊은 악단인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입니다. 세계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베토벤 생전에(1825/26 시즌) 해낸 악단이기도 하죠. 송년 음악회에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는 전통은 1918년,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니키쉬(A. Nikisch, 1855-1922)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100년이 넘은 전통인 것이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이 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역임했던 샤이(R. Chailly, b. 1953)에 따르면, 이 전통은 세계대전 중에도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세계적인 전통은 올해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다름아닌 코로나19 때문이죠. 겨울에 접어들며 유럽 각지에서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자, 공연 자체가 취소된 것입니다. 이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을 이런 뉴스를 통해서도 새삼 깨닫습니다. 길게 이어지던 전통에 타격을 입은 악단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만이 아닙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송년 음악회도, 그리고 새해 첫 날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도 사상 처음으로 청중 없이 치러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얼마 전 열렸던 서울시향의 송년 음악회도 마찬가지였고요.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방 안에서 수많은 음악회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콘서트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무척이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며, 코로나19라는 이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하여, 합창 교향곡을 다시 콘서트홀 현장에서 들으며 감격할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래봅니다.
음반추천: 1989년 크리스마스에 베를린에서 열렸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기념했던 공연입니다. 번스타인이 지휘했으며, 독일, 영국,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나라들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함께 참여하여 음악회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이 공연에서 번스타인은 텍스트 중 환희(Freude/Joy)를 자유(Freiheit/Freedom)로 바꾸어 부르게 하여 화제를 모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n0IS-vlwCI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01-15 1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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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이 원고가 나야, 나라고!”
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을 경험한다. 일상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선택들은 하나둘 모여 지금의 삶을 이룬다. 순간의 선택은 곧 책임이란 무게로 바뀐다.
만약 당신의 인생을 한 권의 책이라 본다면, 맨 마지막 문장은 과연 어떤 글귀로 남게 될지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여기,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한 ‘원고’에 내맡긴 인물이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이 곧 원고라 주장하는 78세 노인 에바 호프. 한국 창작 뮤지컬 ‘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호프’)’은 그 심오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열쇠를 제시해 준다.
작품은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 ‘변신’,‘심판’ 등으로 잘 알려진 유대계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Kafka, Franz 1883-1924) 미발표 원고 반환소송을 모티브로 창작됐다. 뮤지컬에선 호프의 아버지이자 세상이 뒤늦게 주목한 작가 요제프 클라인이 프란츠 카프카의 역할을 대신한다. 실제로도 카프카는 뛰어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병마와 외로이 싸우다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조명을 받았다.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고립된 삶을 살았던 카프카 이야기가 다시금 세간에 오르내린 건 바로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로부터 전해진 미발표 친필 유고 소송 때문이었다. 상대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원고를 보관하고 있던 사람은 호프였다. 그리고 길고 긴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뮤지컬 ‘호프’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법정에서 펼쳐진 마지막 재판을 시작으로 주인공 호프가 간직한 기억의 흐름에 따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형식을 취한다. 30년에 걸쳐 이어온 원고 소유권 다툼은 그의 생애 절반에 가까운 것이었다. 노인이 된 호프는 한눈에 보기에도 괴팍하고 거칠다. 마치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 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무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 호프의 곁에서 계속 말을 거는 남자가 눈에 띈다. 눈부시게 하얀 원고지를 여러 겹 겹쳐 입은 ‘K’. 작품은 독특하게도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를 ‘K’라는 젊은 청년으로 의인화했다. 또, 앙상블을 책갈피로 표현해 기억의 단편을 구분 짓는 역할을 부여했다.
희망을 뜻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불행히도 지나온 호프의 삶은 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힘겨웠던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했던 선택은 오히려 독이 됐고, 절박함은 호프를 어둠 속으로 집어삼켰다. 요절한 천재 작가 요제프를 동경했던 친구 베르트로부터 부탁을 받아 전쟁통에서도 필사적으로 원고를 지켜온 엄마 마리에겐 사랑이 곧 희망이었다. 그러나 다시 만난 사랑은 끝내 등을 돌리고 만다. 약속이 깨진 후에도 오로지 원고를 지켜내는 일에만 몰두하는 엄마를 보며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 다짐하며 도망쳤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된 호프다. 마치 한 번도 읽히지 않은 원고처럼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을 등진 채 후회로 가득 찬 과거를 돌이키며 자신을 벌하듯 사는 매일, 이제 남은 것은 이 원고뿐이라 생각하며 지킨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재판에서 과연 호프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인터미션 없이 110분간 이어진 공연은 놀라운 흡인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오루피나 연출·강남 작가·김효은 작곡가가 함께한 뮤지컬 ‘호프’는 2018년 창작산실 뮤지컬 부문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2019년 초연됐고, 제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올해의 뮤지컬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한 작품이다. 또 2020년 1월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선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거머쥔 바 있으며 동시에 총 8관왕 수상이라는 성과를 올렸다. 초연 당시에도 반응이 무척 뜨거웠는데 이번 재연 역시 큰 사랑을 받으면서 ‘호프’의 저력을 다시금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지난 11월 19일에 개막한 공연은 당초 계획보다 2주 연장된 2021년 2월 2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상연될 예정이다.
호프의 인생이 눈 앞에 펼쳐지고 추억이 서린 페이지가 한 장씩 넘어가는 사이, 우리는 생의 남은 페이지를 채워가는 것 또한 오직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의 삶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순간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의지는 곧 가능성이 된다.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은 아직 적히지 않은 문장으로 남는다.
생의 모든 선택이 다 옳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갈 동력을 얻으면서 살아간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상의 연속으로 인해 모두가 힘겨운 시기, 뮤지컬 ‘호프’를 통해 얻은 위로와 희망은 지친 오늘을 견딜 힘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또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자연스레 느끼게 될 것이다. 행복은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이에 있고, 당신의 삶은 지금도 충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1-01-08 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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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연말을 맞아 공연계가 다시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그나마 한 칸씩 비워두던 방역 시스템이 더욱 엄격한 거리두기로 두 칸을 비워야하는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만석을 기록해도 티켓은 1/3만 팔 수 있다는 의미다. 제작비 회수는 커녕 막을 올리면 올릴수록 손해라는 의미다. 공연계 특히 상업적 성격과 대중성과 완성도가 남다른 뮤지컬계 입장에서는 말그대로 고사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커머셜 씨어터라는 이유로 공공적 차원에서의 지원이나 보호책도 주요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순수예술보다는 사정이 낫지 않냐는 편견 탓이다. 뉴욕 타임즈에서까지 대서특필되며 세계 공연가에서 남다른 성장으로 주목받던 K뮤지컬 시장의 위기는 그래서 더 충격적이고 한숨만 나온다. 배 부른 뮤지컬계라며 도외시하다가는 언젠가 코로나19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 때 더 이상 그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는 충격파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예술가들과 관계자들은 모두 사라진 이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대한민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우리나라보다 매출규모가 훨씬 컸던, 그래서 아날로그 예술장르이면서도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며 각광받던 세계적인 공연가의 메카들 –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공연가가 겪고 있는 충격파도 만만찮다. 공연 자체의 막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관련된 부가산업, 기념품 판매, 레스토랑, 카페, 할인 티켓 부스 등 관련 산업의 거의 모든 부분들이 정지돼버렸다. 그나마 막은 올리고 있는 대한민국 공연가를 보며 부러움의 시선을 보낼 정도다. 실제로 내한공연에 참여했던 한 배우는 언론지상과의 인터뷰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행복하고 고국의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마냥 손 놓고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왕성하게 시도되는 것이 바로 인터넷을 통한 공연 동영상의 공개다. 물론 막을 올리지 못하는 기간동안에도 공연을 찾았던 관객들의 시선과 관심을 끌 수 있는 다양한 매력과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국의 유명 작곡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주축이 돼 진행하고 있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다. 인터넷 유투브를 통해 그간 소문으로만 접했거나 건너서 알고 있는 유명 무대들의 영상화된 콘텐츠를 한시적인 시간동안 무료 공개를 하고 있다. 애호가들, 마니아들에게는 덕분에 주말이 즐거워지는 소소한 즐거움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넷째주 주말에 무료 공개된 뮤지컬 영상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렸던 화제작 ‘킹키부츠(Kinky Boots)’의 영국 캐스트 공연실황이다. 영국 시골의 한 기울어가는 신발공장을 배경으로 여장을 하는 남성들을 위한 뒤축이 튼튼한 하이힐 부츠를 만들어 니치마켓을 활용해 화려하게 부활한다는 줄거리다.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는 실화다. 영국 노스햄프턴 지방의 실존했던 신발공장 사연을 BBC 방송에서 1999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바가 있었는데 세인의 관심이 높아지자 2005년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활용이 됐고, 다시 그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근간이 돼 2012년 무대용 뮤지컬로 각색됐다. 그러니까 실제 사건이 다큐멘터리가 되고, 영화를 거쳐, 다시 무대용 뮤지컬로 환생하는 현대 문화산업의 부가가치 생산 공식인 OSMU(원 소스 멀티 유즈)의 전형적인 루트를 거쳐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은 모범 사례라 인정할만하다.
음악을 만든 작곡가도 화제다. 바로 여성 싱어 송 라이터인 신디 로퍼가 이 뮤지컬의 음악을 만든 탓이다. ‘걸스 저스트 워너 해브 펀’, ‘쉬 밥’, ‘타임 애프터 타임’등 1980~90년대 글로벌 대중음악 시장에서 빅 히트를 기록했던 그녀는 이제 환갑을 넘긴 노년의 아티스트가 됐다. 엘튼 존이나 아바의 남자 멤버인 비요른 울바에스, 베니 앤더슨처럼 그녀도 팝 뮤직을 넘어 무대용 뮤지컬 작곡가로서의 변신을 꾀했는데, 그런 신디 로퍼의 첫 작품이 바로 ‘킹키 부츠’다. 그리고 마치 아직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듯 그녀는 이 뮤지컬 작품으로 미국 무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 수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작곡상까지 거머쥐는 쾌거를 달성했다. 말 그대로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쳐낸 놀라운 기록이자 뮤지션 개인으로도 대단한 영광이지만, 토니상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단독으로 작곡상을 수상한 진기록이라는 데에도 그녀의 특별함은 특히 남다르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처럼 역시 대중을 잘 아는 대중음악 가수 신디 로퍼답게 뮤지컬의 흥행은 오리지널 캐스트 앨범의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2013년 3월에 발매된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트 음반은 단박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공연 음악으로서의 정체성 뿐 아니라 신디 로퍼의 음악적 스타일이 대중적 인기에도 한 몫을 톡톡히 행사한 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힐에는 성적 매력이 담겨야 해(Sex is in the Heel)’와 같은 뮤지컬 넘버는 빌보드 클럽 차트의 25년 역사 중 최초로 톱 10에 진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극중 성소수자인 드레그 퀸 - 롤라도 화제다. 브로드웨이의 원작 무대에 이 역할로 등장했던 배우 빌리 포터는 실제 오랜 무명배우였는데, 이 작품을 만나 그동안 갈고 닦은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해 태풍의 눈 같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국 그는 토니상 시상식의 가장 주요한 시상부문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누렸다. 자신의 독특한 성정체성으로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 내용이 담긴 ‘나는 못난 아들(I’m not my father’s son)’은 그래서 더욱 눈물짓게 되는 이 뮤지컬의 명장면이다. 우리말 무대에서는 오만석과 강홍석, 정성화, 최재림 등이 이 역으로 등장해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공개된 영상의 마지막 스텝 스크롤에선 우리나라 기업인 CJ ENM을 발견할 수도 있어 즐겁다. 초연 당시 프로듀서의 한 축으로 참여한 덕분이다. 문화산업에서는 꼭 신토불이만이 전부가 아니라 남의 것을 가져다 다시 가공해 되팔기도 하고, 글로벌 제작과정에 동참할 수도 있다는 열린 사고의 바람직한 사례인 것 같아 흥미롭다. 문화산업이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라 부르는 이유이자 방증이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감염병 세상에서의 생존을 넘어 또다른 변화에 대한 대비이자 긴 안목에서의 혜안임을 다시금 곱씹어보게 된다. 이제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꿈꿔야 하는 이유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1-01-08 1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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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디즈니가 제작한 인어공주의 ost 'Part of the world'는 인간사(人間事)에 대한 '갈망'을 담았으며역시 리디안 모드가 사용되었다.
리디안 모드(Lydian mode)에 대하여
[클래시그널] 코로나 3차 대유행이 현실화 되면서 코로나에 누적된 피로감때문인지 밝고 희망찬 음악을 찾게된다.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운명' 교향곡 음반에 손이 자주 가는데 다이나믹한 절정이 압권인 마지막 4악장을 골라서 듣곤 한다. 이 발군의 피날레를 듣다보면 항상 기다려지는 대목이 있다. 150마디속에 등장하는 극적인 바이올린 선율인데 장단조와 사뭇 다른 조성감으로 승리의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리디안 모드(Lydian mode)'가 돋보인다. 리디안 모드는 장단조가 확립된 바로크 시대 이전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걸쳐 널리 사용 되었던 음체계다. 중세시대에는 음악이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리디안 모드는 교회선법(Church mode)이라 불리는 기본 음체계중 하나이다.
이렇게 케케묵은 중세시대 음체계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놀랍게도 이 음체계는 현재 클래식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이유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통속적인 잣대로 구획된 장조와 단조와는 다른 음악적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리디안 모드만의 독창성에서 찾을 수 있다.
'리디안 모드'라는 음체계를 들여다보자. 아주 간단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장음계(Major scale)의 네번째음을 반음 상행시킨 것이다.
예를들어 '도-레-미-파-솔-라-시-도'가 장음계라면 리디안 모드는 '도-레-미-파샾(#)-솔-라-시-도'가 되는 것이다. 고작 '음' 하나에 변화를 준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영화음악의 거장 토마스 뉴먼은 옥스포드대 강연에서 "네번째 음에 샾이 더해졌을때 음악이 희망감과 용솟음을 자아낸다"며 그 차이를 역설한 바 있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 15번 3악장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병을 앓던 베토벤이 건강을 회복한 후 새 기분으로 3악장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서두에 적어놓은 글이다. "신에게 바치는 회복한 자의 신성한 감사노래, 리디안 선법에 따라서".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악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3악장은 장단조라는 음악체계가 자리잡았던 당시 베토벤이 대놓고 과거의 리디안 모드를 소환시킨 악장이다. 코랄형식을 바탕으로 따뜻한 현악기 음색을 통해 감사와 희망의 메세지를 노래한다. 20세기 신낭만주의 작곡가 코른골드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의 첫 시작부분 또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상행하는 바이올린 솔로가 '솔샾(#)'을 향하는데 이 음이 바로 반음 올린 4번째음에 해당한다. 벅찬 희망감을 자아내는 첫 솔로에 답례하듯 오케스트라는 같은 멜로디를 두터운 사운드로 반복한다.
기본음 '도' 에서 시작하는 리디안 모드(Lydian mode)
리디안 모드는 영화음악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음악적 단골소재다.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가 작곡한 쥬라기공원 OST에 수록된 'Welcome to Jurassic Park'은 좋은 예다. 헬리콥터를 타고 부활한 공룡들과의 첫만남을 위해 섬으로 향하는 주인공들의 기대감과 설렘은 스필버그 감독의 탁월한 미장센과 함께 리디안 모드가 연출해 낸 음악을 통해 배가(倍加)된다.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맡았던 영화 E.T는 어떤가. 집(Home)으로 돌아가고픈 외계인 E.T의 희망은 음악의 기저에 깔린 리디안 모드라는 음악적 장치를 통해 극대화되었다. 게다가 리디안의 또 다른 특징으로 꼽히는 '신비감'은 미지의 외계인과 어울리는 아우라를 더해주었다. 음악적 캐릭터를 uplifting(고양시키는, 희망을 주는)시키는 리디안 모드의 효과는 언제나 예외없이 명징하다.
덧붙여 리디안 모드는 거의 모든 음악 장르에 걸쳐 사랑받고 있는데 재즈도 예외가 아니다.코드가 아닌 모드 기반의 모달 재즈(Modal jazz)를 확립했던 유명한 재즈 이론가 조지 러셀. 그는 즉흥연주의 기본 바탕으로 리디안 모드를 선택했고 재즈에 최적화된 스케일로 간주했다. 리디안 모드에 대한 인식이 시대의 흐름속에서도 변함이 없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19세기 독일의 저명한 이론가 아돌프 베른하르트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에서 리디안 모드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열망'을 언급한 바 있으며 이는 리디안 모드의 본질이 시대적 유행과는 상관없이 확고부동함을 말해준다.
장조의 밝은 톤에 고작 네번째 음을 반음 상행시킨 것 뿐인데 토마스 뉴먼의 말처럼 이 작은 모멘텀은 음악에 희망이라는 큰 날개를 달아준다.
이제 코로나의 기나긴 터널 속에서 백신과 치료제 소식이 속속 들려오고 있다. 음악에서 리디안 모드가 보여준 마법처럼 이 코로나 시대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올 희망의 모멘텀을 기대해본다.
처음엔 '리디안 모드'를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얼기설기 다양한 음체계가 얽혀있는 음악의 흐름 속에 간과하기 쉬울 터. 결국 많이 들어보고 접해보는게 지름길이다. 코른골드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첫 시작부분을 들어보라. 상행하는 바이올린 솔로가 상행하여 도달한 음, 바로 '솔샾(#)'에 귀를 기울여보자. 음 하나의 차이가 솔로 선율에 희망과 설렘의 정서를 더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코른골드는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았던 작곡가였던 만큼 특히 영화음악에서 사랑받는 리디안 모드가 협주곡 서두에 등장하는 점이 놀랍지 않다.
(유튜브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tvJtvRbsN44)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0-12-28 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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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장소성의 구조변동, 그들만의 예술에서 모두를 위한 예술로”
동시대 사회는 문화·예술·교육 등을 시장경제의 차원에서 정의함으로써 각 영역 간 활동 자체가 갖는 특성보다는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와 결과를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문화 공동체’로 전환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가시적으로든 비가시적으로든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문화는 행위하는 인간에 의해 정치적으로 안정을 얻는 공적 영역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사물들을 전시하는 공간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즉 문화의 역할은 공적 영역의 본질을 드러내는 동시에 미적인 것을 ‘공공(公共, public audience)'을 향해 제시한다는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상품으로서의 예술’을 추구할 지라도, 문화예술은 ‘공공성(公共性, publicness)’을 담보한 진리추구를 통해 미의 생산과 수용에 기여해야 한다. 쉽게 말해 장소성이 그들만의 리그인 ‘공연장 혹은 갤러리’에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광장 혹은 거리’로 바꿨을 때, 공공취향이 발견되고 풍부한 문화발전에 기여한다는 뜻이다.
춘천마임축제현장과 포스터(출처:한국관광공사)
공공공연의 발견, 국내외 거리극 축제를 톺아보다.
코로나19가 문화예술계에 발목을 잡은 가장 큰 명제는 ‘집합금지에 관한 명령’이다. 모이는 것이 금지되다보니 다양한 거리행사는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공공장소에서 행해지는 거리극이란, ‘거리’와 ‘연극’이란 명사가 결합된 용어로 밖에서 즐기는 ‘공공공연(公共公演, Public Demonstration)’이란 뜻이다. 여기서 ‘극’이란 장르의 한정성 때문에 ‘거리예술’ 혹은 ‘거리축제’라고도 불린다. 이 형태의 원형은 서양의 퍼레이드 혹은 동양의 장터극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행렬과 중세의 광대들의 축제(Fête des fous)에 기원을 둔 이 형태는 동·서양 할 것 없이 15~19세기 오락거리를 제공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공공영역에서 대중과 직접 호흡하는 방식은 20세기 중반이후 일반화됐는데, 이는 장비사용 면에서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최소화시켰고 대중을 관람의 입장에서 공연자체를 만드는 주체적 입장으로 전환시켰다. 특히 196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임극단의 창립은 전통연극 시스템과 공공공연 역할에 다양한 질문을 제시하였다.
해외 거리극 축제를 주도해온 국가는 단연코 영국이다. 영국의 거리예술은 대중에게 공공장소를 특별하게 소유하고 있다는 민주화된 예술형태를 지향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상연은 남녀노소가 넓게 참여할 수 있도록 대부분 무료로 제공된다. 연간 열리는 대규모 축제부터 작은 반나절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영국을 찾은 거리극 관객들은 언제든지 본인의 스캐쥴에 맞는 공연과 만날 수 있다. 스톡튼 국제 리버사이드 페스티벌, 런던의 그리니치+도크랜드 국제 페스티벌, 윈체스터 햇 페어, 런던 내셔널 씨어터의 워치디스스페이스, 맨체스터의 XTRAX, 런던의 템즈페스티벌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출판과 마케팅 분야에 있어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는 프랑스로, 약 1,000여개의 공연단체와 300여개의 축제가 있다. 기간별 프로그램부터 살롱축제와 같은 국제적 규모의 행사까지, 영국보다 체계적인 거리예술축제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영국의 대표적 거리극축제, 템즈페스티벌 (출처:http://www.thamesfestival.org/)
2003년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이어진 2020 서울거리예술축제 포스터 (출처: 서울문화재단)
그렇다면 한국의 거리극 축제는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에서 축제가 개최된 시기는 문민정부가 국제화를 지향한 1995년 이후로, 관주도의 지역관련 축제가 2000년대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공연예술축제는 지역축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특정기간 동안 대규모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핵심인력들이 자리 잡기도 전에 해체된다는 단점을 띤다. 예술축제가 이벤트성으로 흐르면서 전문화된 시야와 정체성이 요구되었는데, 이를 보완하고자 최근에는 전문예술감독제를 시행하여 최소한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큰 문제는 민간이 아닌 관(官)이 주도하기 때문에 정치성을 띤다는 점, 성과주의에 함몰되어 다양한 가능성이 배제된다는 점에 있다. 거리극이 추구해온 젊은 장르로서의 자율성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활용의 부조화에 직면해 있으며, 수도권 혹은 대도시에 한정되는 축제라는 점에서 ‘수준 높은 지역마케팅’으로까지 연결되기 어렵다. 통영국제음악제나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는 공연장 중심의 문화라는 점에서 지역민들의 적극적인 수용엔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듯 축제운영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프랑스나 영국처럼 도시마케팅 수단으로서 민관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거리극 축제가 모색돼야 할 것이다.
2018년 안산거리극축제 폐막식과 시민참여 현장(출처 : www.ansanfest.com) 그리고 2018년 안산거리극축제 포스터
공공전시의 다변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공개
공공미술이란 용어는 존 윌렛(John Willet)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존 전시장 미술, 이른바 제도권 미술에 대한 비판으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국내에서 행해지는 공공미술은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큐레이터, 평론가, 컬렉터 등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윌렛의 초기 의도를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공공미술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을 지칭하는데, 이 경우 ‘장소 지정형 미술(Site-Specific Art)’이란 용어가 함께 사용된다. 광화문 흥국생명빌딩에 자리한 조나단 보롭스키(Jonathan Borofsky)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2002)이나 청계천에 자리한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의 <스프링 (Spring)>(2006)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공공미술의 개념을 ‘장소특정성(Site Specificity)’으로 한정 지을 경우 공공미술이 갖는 다양한 가능성에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에서의 공공미술은 크게 네 단계의 변화를 겪어 왔다. 첫째, ‘건축 속의 미술(Art in Architecture)', 둘째, 공공장소 속의 미술(Art in Public Places), 셋째, 도시계획 속의 미술(Art in Urban Design), 넷째,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이다. 앞의 셋은 ‘장소특정성’을 전제로 한 전통적인 공공미술을, 마지막은 비전통적인 매체의 활용까지 넘나드는 새로운 장르로의 확장을 일컫는다. 이 구분은 미술이론가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에 따른 것으로, 이 명칭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미술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레이시는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에 관해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 매체를 사용하여 광범위하고 다양한 관객과 함께 그들의 삶과 관련된 이슈들에 관해 대화하고 상호 소통하는 시각예술”(Suzanne Lacy, 1995)이라고 정의한다. 주민참여라는 전제를 통해 공공장소에서의 소통과 공동선(共同善)을 발휘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목적이라면, 1980년대 있었던 참여중심의 민중미술은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과 맞닿는 면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운동과 만난 미술을 모두 ‘공동체 기반의 미술(community based art)'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예술행위와 사회정치적 목표 사이에 작은 ‘의견차이’라도 존재한다면, 그 역시 공공미술의 목적에는 완전히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윤리적 미술경향이라는 전제 속에서 이 둘은 유사해 보이지만 민중미술은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기에, 다양한 견해를 수용해야 하는 공공미술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만큼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조나단 보롭스키, 망치질하는 사람,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동아미디어센터 아트프로젝트 동아일보X다니엘뷔렌 '한국의 색, 인 시튀 작업'(2020)과 2006년 논란이 된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 서울 청계광장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0-12-18 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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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곡이 정말 좋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 (히사이시 조)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사이시 조라는 이름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히사이시 조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이웃집 토토로’(1988),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등 많은 작품을 함께 했던 음악가다. 그러나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그가 한 때는 미니멀리즘 음악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품의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만큼 멜로디가 강한 곡들을 썼지만, 스무 살의 히사이시 조는 존 케이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클래식과는 부러 거리를 두었다. 전위음악에서 마음이 떠난 것은 서른 즈음이었다. 그는 청중들의 즐거움 보다 논리를 앞세우는 현대음악에 염증을 느꼈고, 팝의 필드로 들어가 앨범까지 낸다. 이후, 그를 본격적으로 대중들과 만나게 해준 사람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다. 우연히 참여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는 쭉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을 맡아왔다. 처음에는 당시 그가 선호하던 신디사이저를 썼지만 조금씩 클래식 악기를 사용하다가 ‘모노노케 히메’부터 풀 오케스트라를 쓰게 되었다.
그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작곡가들이 영혼과 육신을 바쳐 만들어온 교향곡들에 오케스트라의 비밀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대학 시절 클래식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오로지 작곡에 도움을 받고자 시작한 지휘는 이제 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음악 활동이다. 6년 만에 선택한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와타나베 아유무, 2019)에서 다시 미니멀리즘 음악의 정수를 추구한 그는 고전과 동시대의 음악이 어우러진 연주회로 전세계 팬들을 만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했기 때문일까. 마법과 로맨스가 직조된 판타지이기 때문일까. 메인테마의 웅장하고도 신비스러운 느낌 때문일까. 마녀의 저주로 인해 할머니가 된 소녀 ‘소피’와 마법사 ‘하울’이 등장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은 지브리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연말에 가장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꼽힌다. 저 유명한 테마곡, ‘인생의 회전목마’는 소피와 하울이 처음 만나 팔짱을 끼고 걷다가 하늘 위로 날아오를 때부터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극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다양한 편곡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이 곡이 소피의 두 얼굴처럼 얼마나 상반된 매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조용히 보내게 된 연말, 히사이시 조의 역작과 함께 하는 건 어떨까.
윤성은의 Pick 무비
달아나! 가장 믿었던 것으로부터, ‘런’
*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8년 가을, 미국 신인감독의 저예산영화가 국내 극장가에서 호응을 얻으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서치’(아니쉬 차칸티, 2017)는 영화 내내 인물들이 카메라 앞에 바로 등장하지 않고,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디지털 디바이스나 과거 촬영되었던 동영상 안에서만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 작품이다. 또한, 아버지가 실종된 딸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과정의 긴장감은 웰 메이드 추리극이라 칭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런’은 이처럼 데뷔작 한 편으로 전 세계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아니쉬 차칸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으로, 뒤틀린 모녀 관계를 그린 스릴러다. 이 영화에는 엄마에게서 벗어나야만 하는 장애인 소녀가 등장한다. 전작에서 딸이 사라진 후에야 그녀의 외로움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아버지의 부성애가 감동을 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지만,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솜씨는 여전하다. 감독은 주인공이 제한된 환경과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그 밖의 감정들은 최대한 배제시킴으로써 장르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태어날 때부터 다양한 병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엄마의 도움 없이는 외출도 불가능한 그녀는 집 안에 고립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클로이의 유일한 희망은 대학에 진학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합격 통지서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어느 날, 클로이는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의 쇼핑백에서 이상한 알약을 발견한다. 인터넷은 끊겨 있고 몰래 전화 한 통 하기가 어려운 상황, 클로이는 알약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그 대가는 라푼젤의 탑과도 같은 2층 방 안에 감금되는 것뿐이다. 여기서부터 하체 마비에 당뇨, 천식까지 있는 클로이의 눈물겨운 생존기가 시작된다. 딸을 향한 엄마의 집착에서는 ‘미져리’(로브 라이너, 1990)의 스토커, ‘애니’(케시 베이츠)가 보이고,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는 클로이는 외딴 컨테이너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룸’(레니 에이브러햄슨, 2015)의 모녀와 겹쳐진다. 키에라 앨런과 사라 폴슨의 호연이 극의 요소요소에서 빛을 발한다.
여느 스릴러와 마찬가지로, ‘런’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고, 내가 가장 필요로 하며,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일상이 파괴되고 계획이란 것이 무의미해진 지도 오래, 사회 기저의 공포심을 적절히 건드리는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0-12-11 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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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시각장애인들이 ‘무용’을 관람하는 법
‘최근 무용은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 준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학 선배로부터 “심포지엄을 하는데 네가 꼭 와서 보면 좋겠어” 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주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용음성해설’. ‘어떻게 시각장애인들이 무용을 본다는 거지? 무용은 눈으로 감상하고 느껴야 하는데’라는 의아함이 있었지만 꼭 보면 좋겠다는 말에 참석하기로 했다.
<사진출처 https://www.scottishballet.co.uk >
무용음성해설이란 시각장애인이 작품을 충분히 느끼고 관람할 수 있도록 무대 위 무용수의 움직임, 상황, 의상 등을 예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란다. 영국 노던 발레단, 미국 피츠버그 발레단 등 해외에서는 20년 전부터 이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공연 전 ‘터치투어(시각장애인들이 무대 소품을 직접 만져보거나 무용 동작을 배워본 뒤에 관람하는 방식)’와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용 음성 해설 공연을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영국에서는 무용음성해설이 법제화되어 있어서, 일정 횟수 이상의 공연에서 반드시 무용음성해설을 해야 한다.
심포지엄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음성 해설로 움직임과 이미지를 어떻게 느끼는지, 무용음성해설이 왜 필요한지 사회적 필요성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생각보다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는데 원래 동작 예술가들은 아무래도 제스처가 적극적이다보니 화기애애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용음성해설’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주제가 모두를 숙연하게도 숙고하게도 만든 것 같았다.
무용수들은 그동안 자기만족만 생각하며 춤을 춘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관객을 생각하면서 춤추기보다는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무대에 올랐고, 관객 중에 시각장애인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적잖이 놀란 듯 했다. 기획자들은 무용 공연을 기획하는 첫 단계부터 무용음성 해설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언급하며 왜 이제껏 시각예술이라는 한계에 스스로 갇혀 유연하고 열린 생각을 갖지 못했었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사진출처 : touch-tour-insight-2@-jo-dean>
심포지엄 중에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고, 무용 시연을 듣는 시간도 있었다. 이것 역시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참석자들에게 신선하고 놀라웠는데 이제껏 눈으로 보던 익숙한 세상이 새로운 차원에서 열린 느낌이랄까. 시적인 표현으로 무용수의 동작을 듣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 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눈으로 좇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음악과 동작의 조화가 또 다른 방식으로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은 말 그대로 색다를 경험이었다.
또한,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된 부분은 무용음성 해설가 육성에 대한 것이었다. 무용음성 해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용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글짓기 능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공연 중인 춤을 객관적이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이를 재해석해 글로 이어주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스코틀랜드 국립발레단에서 활약한 무용 음성 해설가 ‘엠마-제인 맥헨리’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음성 해설은 장벽 없는 공연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무용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청각, 시각, 촉감 및 후각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우리가 오감 중 어느 하나라도 빼앗긴 상황이 생기더라도 여전히 마음속에 한 장의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그것은 완전한 그림이 아니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것이 음성해설가와 더불어 모든 관련 해설가의 역할이다. 우리가 하는 도전은 찰나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를 구두로 설명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또는 적게 설명할 것인가가 언제나 관건이다. 작품의 전반을 언어로 그려내면서, 순간을 부각시키고,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다른 감각들도 함께 조화를 이뤄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관객이 완성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어떤 공연이든 한 순간에 여러 활동이 겹겹이 진행된다. 우리의 역할은 시각 장애인 관객이 공연 속에서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라고.
<사진출처 : www. pbt. org>
무용음성해설은 단순한 동작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이 풍부한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배경을 만들어 주는 시각을 청각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힘은 순발력, 창의성, 언어적 표현력까지 필요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직업이지만 그만큼 예술의 가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느낀 점은 첫째, 예술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각자의 완전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유연하고 열린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둘째, 다양한 시각과 관용, 포용이 어우러질 때 모두가 동등하게 예술을 즐기는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용을 글로 표현하고, 또 글로 표현된 무용을 머리 속에서 그려내려면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다양한 책들도 읽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공연을 즐기는 관객, 해설자 그리고 공연자 모두에게 녹록치 않겠지만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예술로 걸어들어가는 길을 열어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의 온라인 수업에서 선생님께서 ‘파랑,초록,노랑 등의 색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색깔을 이야기 해 줄까요’라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지는 것을 들었다. 우리 아이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아이와 같은 반 친구들이 글로 표현한 파랑,초록, 노랑은 어떤 향기와 리듬, 움직임을 달고 있을지 몹시 궁금하다.
무용<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2020-12-04 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