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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하버드대 저널에 따르면 리더십은 비전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한다.
오케스트라에는 두 종류의 리더가 있는데, 단원들을 이끄는 지휘자와 사무국을 이끄는 대표이다. 지휘자와 대표가 함께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나갈 때 오케스트라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 할 수 있다.
지휘자의 존재는 친숙한 반면 대부분은 오케스트라 이면의 사무국, 특히 경영자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이면에서도 유독 리더십이 빛을 발한 케이스가 있다. 바로 LA 필하모닉의 전(前) 대표 데보라 보르다(Deborah Borda)이다. 그녀는 미국 내 10위권에 머물던 LA 필하모닉을 라이벌인 뉴욕 타임즈 -그들에게는 뉴욕 필하모닉이 있다-가 인정한 명실상부 1위의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녀는 어떻게 이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을까? 보르다는 비올라 전공 후 헨델 & 하이든 소사이어티에서 매니저, 디트로이트 심포니, 세인트 폴 챔버 오케스트라에서 대표를 역임했다. 그 후 뉴욕 필하모닉 대표로 선임되어 맞춤형 공연 제작 시스템을 체계화 시켰다. 그리고 그 성과가 LA 필하모닉에서 그녀에게 러브 콜을 보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LA 필하모닉의 상황을 살펴보면,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LA 필하모닉을 위한 공연장을 설계 중이었고 동시에 곧 공석이 될 음악감독 자리를 채울 후임을 찾는 것이 시급했다. 즉, 이 두 가지 큰 미션을 동시에 잘 이끌어갈 수 있는 대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음악감독인 살로넨과 게리는 보르다를 설득하기 위해 LA에서 뉴욕으로 날아갔다. 이 때 보르다는 놀라우리만치 당돌한 제안을 하는데, 그것이 지금의 LA 필하모닉의 토대가 되었다. 바로 설계 중인 디즈니 콘서트홀이 LA필하모닉만의 공연장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의견을 건축에 반영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이 대범한 제안은 먹혀들었고, 그녀는 LA필하모닉의 수장이 되었다.
그녀의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경영전략은 계속되었는데, 대표가 된 후 음악감독 선임에서도 자신의 비전을 갖고 의외의 인물을 섭외하게 된다. 바로 베네수엘라 출신의 젊은 지휘자인 두다멜이다. 두다멜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실력을 가진 지휘자이다. 보르다 이전에 살로넨이 두다멜을 발굴하여 LA의 신임 음악감독으로 부임 시키고자 했으나, 그는 베네수엘라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한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이에 보르다는 여러 번 베네수엘라를 방문하여 두다멜을 설득하였다. 결국 두다멜은 LA로 오게 되었고, LA시민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이후 디즈니 콘서트홀은 LA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고, 두다멜의 인기는 가히 슈퍼 스타급이었다. 이 모든 호재는 LA 필하모닉의 연주력 향상으로 직결되었고 공연은 매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리더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다. 첫째, 그녀는 LA 필하모닉이 최고가 되기 위해 최고의 공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에 신선함을 불어넣어줄 음악감독을 섭외 할 때 평범한 선택을 넘어 그녀가 그리는 LA 필하모닉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데려왔다. 이는 리더가 어떤 신념을 갖고 진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기관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둘째, 그녀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신뢰도이다. 그녀가 비올라 연주자였기에 단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단원들 역시 그녀를 신뢰할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경영 또는 예술 한쪽에 편향된 리더십 유형에서 벗어나 전반을 아우르는 경영마인드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이 사고 싶은 것은 그녀의 도전 정신이다.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 필하모닉 대표 자리에서 과감히 떠오르는 LA 필하모닉으로 간 것이다. 더 나아가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드러내고 사람들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음악감독을 섭외하기까지 그녀가 LA필하모닉을 이끌기 위해 해온 모든 것들이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처럼 비전, 공감력, 도전 정신을 갖춘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소위 말하는 명문대 진학이 좋은 리더를 만들어줄까?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의 학원 시스템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학원을 통해 입시경쟁에 성공한 사례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성적은 전문가로서의 성장은 담보하지만, 리더의 자질을 키워줄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리더의 자질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리더란 전문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이끄는 일이기 때문에 ‘공감’ 없이는 다른 사람과 일을 할 수 없다. 공감은 학원에서 기를 수 있는 자질이 아니라는 것만은 자명하다.
아이들의 공감력을 길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생은 부모이다. 부모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줄 때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나를 돌이켜보게 되고, 그 시선이 다시 타인에게 되돌아간다. 그래서 조금 뜬금없지만,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산의 정상까지 힘차게 올라가볼까 한다. 숨이 가빠오는 순간, 힘들어도 끝까지 해낸 뒤의 성취감, 새로운 도전과 함께 힘듦을 짊어지는 시간이야말로 우리 사이의 공감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리라. 그리고 산의 정상에서 멀리까지바라보며 보르다처럼 탄탄한 알맹이, 신념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꿈꿔본다. 산의 청량한 공기로 함께 호흡하며.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1-04-09 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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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1952년, 런던에서는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녹음되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스튜디오에서 녹음되는 역사적인 현장이었지요. 이에 걸맞게 당시 음반사(EMI)는 최고의 캐스팅을 이루어냈습니다. 지휘에는 거장 푸르트뱅글러,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에는 각각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었던, 주트하우스와 플라그스타가 기용되었습니다. 녹음 프로듀서는 EMI를 대표했던 프로듀서, 레그가 맡았지요.
그런데, 녹음 과정에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57세로, 빛나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었던 플라그스타가 2막에서 두 번 나오는 높은 음(High C) 처리에 난색을 표했던 것이었죠. 중요한 부분이어서 은근슬쩍 넘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어느 대타가 그 높은 음을 대신 불러주는 방법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 대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무명의 가수가 아닌, 플라그스타처럼 20세기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중 한 명인 슈바르츠코프였지요. 당연히 이 과정은 외부에는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당시 레그와 연인이었던 슈바르츠코프가 대타를 맡게 된 것도 (그들은 이듬해인 1953년 결혼했습니다) 비밀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녹음에 참여했던 가수들, 녹음 기사들,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 단원들 등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지켜보았으므로, 비밀이 지켜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1953년 이 비밀은 탄로나고 말았고, 떠들썩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논란의 요지는 너무도 자명했지요. 플라그스타가 속임수를 썼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깊은 존경을 받던 지휘자 푸르트뱅글러까지도요. 이 에피소드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이 에피소드를 잘 이해하려면, 녹음 및 음반이 공연과는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연과 음반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소리를 담아둘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습니다. 공연장에서의 음악은 매순간 청중들에게 전달되지만 동시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방금 전달된 그 음악 소리는 절대 되돌릴 수 없지요. 마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요. 공연장에서 듣는 음악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에 반해, 음반에 담겨진 음악은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언제나. 공연장에서의 음악이 시간에 매여 있다면, 음반에 담겨진 음악은 시간을 초월하는 속성을 지녔다고도 여겨질 수 있겠습니다.
이졸데로 분한 플라그스타 (출처: 위키피디아)
편집의 가능 여부 또한 공연과 음반 사이의 커다란 차이입니다. 공연에서든 음반 녹음 중에서든, 음악가가 실수를 하거나, 특정 부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곤 합니다. 공연 중의 실수는 수정될 수 없습니다. 이는 이미 발생한 실수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 실수가 담긴 음악 자체가 되돌려지지 않으니까요. 이에 반해, 음반에서는 녹음 과정에서 편집을 통해 실수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수를 편집하지 않을 경우, 그 실수는 되살아나게 되지요. 그 실수가 언제나 재생 가능한 음반 속의 음악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편집을 위해서는 대게 한 부분 혹은 전체를 반복해서 녹음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연주가 들쑥날쑥하면 편집이 매끄럽게 이루어지기가 힘들기 때문에, 음악가에게는 반복되는 녹음 과정에서도 고른 수준의 연주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지요.
서두에 나왔던 에피소드에서 플라그스타가 대타를 썼던 이유도 반복 녹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플라그스타가 그 고음을 낼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대타였던 슈바르츠코프에게 말했듯이, 공연에서라면 그 고음은 가능했지만, 녹음을 하면서 5~6번씩 고른 수준으로 반복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죠.
만약 플라그스타가 대타를 쓰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문제의 고음 부분이 매끄럽지 않게 처리되었다면 어땠을까요? 혹시 우리는 ‘다 좋은데, 그 고음이 두고두고 아쉽네’ 라는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까요?
공연과는 다른 음반의 특성을 생각할 때, 가능한 한 최고의 녹음을 남기고자 했던 플라그스타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속임수가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음반이 편집을 포함하는 예술이라고 해도, 이는 선을 넘은 것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음반에 담긴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은 마치 한 번에 연주된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많은 편집을 통해 완성된 것이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속임수가 아닌가?’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공연과 음반의 예술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공연 예술의 잣대로만 음반 예술을 평가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음반은 많은 장점을 지닌 매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반을 통해 음악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음악가들의 음악을 여전히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게 해 주었죠. 음악가들의 해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음반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변화를 거듭해오며 우리 곁에 자리한 음반의 예술이 앞으로도 계속 꽃피워지길 기대해봅니다.
추천음반: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 중에서, 플라그스타가 자신의 파트를 슈바르츠코프와 나누어 불렀던 순간을 소개합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정열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2막 2장의 한 부분인데요. 57초와 1분 16초에서 문제의 대타 논란이 있는 고음 부분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음반이 커다란 찬사를 받고 있으며, 그 찬사의 상당 부분이 플라그스타를 향해 있음을 생각하면, 문제의 부분은 아쉬움과 흥미로움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UgjMAZV2gQ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04-02 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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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비현실의 놀라운 현실화, 오컬트 뮤지컬 ‘검은 사제들’
인간의 삶에서 과학과 이성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사유하는 인간은 과학을 발전시켜 좀처럼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던 문제를 풀어냈고, 또 생활 수준을 한층 높여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만으론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현상도 있다. 예컨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근본적인 탄생이나 신을 향한 믿음으로 통하는 종교적 신념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여전히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때때로 전해진 놀라운 이야기들은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이번에 소개할 뮤지컬 ‘검은 사제들’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다.
한국 오컬트 뮤지컬의 무한한 가능성을 알린 뮤지컬 ‘검은 사제들’이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첫인사를 전했다. 지난 2월 25일 프리뷰를 시작으로 오는 5월 30일까지 예정된 이번 공연은 매번 독특하면서도 놀라운 시도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제작사 알앤디웍스의 야심작이다. 작품에는 뮤지컬 ‘호프(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에 참여했던 창작진이 함께했으며, 팝·가요·포크·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다룬 넘버와 참신한 연출로 눈길을 끌었다.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엑소시즘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김윤석·강동원·박소담의 신들린 연기로 544만 관객을 동원했던 대작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이 원작이다. 이번에 무비컬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과연 영화 속 장면들을 어떻게 구현했을지 궁금했는데, 결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뮤지컬은 영화의 줄거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무대 상연에 적합하게 압축됐고, 공연 예술만이 선보일 수 있는 생동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조명의 활용이 돋보였는데 화려하면서도 눈부신 조명 연출은 빛과 어둠, 신의 수호자와 악령을 시각적으로 대비해 오컬트 뮤지컬다운 면모를 잘 나타냈다. 보랏빛 조명이 비추는 무대 위로 짙은 안개가 잔잔히 퍼지면 귓가에 어렴풋이 성가가 들려오고, 고요히 흔들리는 여섯 개의 초가 시선을 끈다. 양옆으로 늘어선 초는 마치 불타는 악령의 두 눈이면서, 동시에 어둠을 밝히기 위해 의지를 다지고 희생을 거듭하는 사람들의 작지만 강한 힘처럼 느껴진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들로 한국 가톨릭 교단의 눈 밖에 난 구마 사제 김 신부는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후 빙의에 시달리던 여고생 이영신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보조 사제를 구해야만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최 부제가 그 역할을 맡게 된다.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휩싸여 신에 대한 믿음보다는 속죄를 위해 신학교에 들어간 최 부제는 김 신부의 구마 의식을 도우면서 오랜 트라우마와 맞선다. 악령의 저항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눈앞에 실감 나게 펼쳐진 구마 의식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100분간 쉼 없이 이어진 배우들의 땀과 눈물은 지금 이 시대에 무대가 존재해야만 할 이유를 분명히 보여줬다. 우선, 영화보다 한층 강화된 인물의 심리 표현이 인상 깊었다. 특히 김 신부 역을 맡은 박유덕과 최 부제 역 조형균의 놀라운 명연기가 초연인 작품의 완성도와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간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작품 속 메시지처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필요도 있다는 압박에 자신의 희생으로 답을 대신하던 두 사람의 모습은 숭고미로 빛난다. 또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신예 배우 김수진이 연기한 이영신과 악령 마르베스를 온몸으로 표현해낸 앙상블 이지연의 무대도 여운이 남는다.
일부 장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연출과 유머 코드도 포함돼 있으나,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 전환을 위한 장치로 여긴다면 감상을 저해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이런 새로운 시도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매력이 살아 숨 쉬는 뮤지컬 ‘검은 사제들’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기록을 세우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로,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지 마시기를. 그리고 공연 전후로 달라진 출연진들의 사진도 한 번쯤 눈여겨보시길 바란다.
*무비컬 : 뮤지컬(Musical)과 무비(Movie)의 합성어로서 영화를 원작으로 탄생한 뮤지컬을 뜻한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1-03-26 14: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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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약사불에서 데미안 허스트까지, 인간의 희망은 고통 없이 사는 것!!”
아프면 달려가게 되는 곳이 바로 약국이다. 자주 찾는 단골약국에서는 환자의 얼굴만 봐도 먹어야하는 약을 쉬이 건네준다. 빨간 색 ‘약’이란 글자와 십자모양의 결합만 봐도 금세 열이 떨어지고 아픈 속내가 낫는 느낌, 이것이 바로 약국이 가진 치유의 힘이다.
유럽여행 중 만나는 약국의 상징 기호엔 반드시 뱀이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신화 속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와 그의 딸 휘게이아(Hygieia)의 도상 속에서 또아리를 틀며 어딘가를 기어오르는 뱀이 약국의 상징으로 형상화 된 것이다.
동양에서는 다양한 불상들이 손에 약합을 들고 있는데, 이들을 ‘약사불’이라고 부른다. 약을 통해 고통을 잊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했던 선인들의 바람은 이렇게 다양한 상징코드와 만나 ‘약업의 문화사’를 탄생시켰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약사불’에 담긴 치유
약사신앙의 성격은 질병 치료를 대표로 한다. 불교에서는 중생의 번뇌와 고통을 질병발생의 원인으로 본다. 산스크리트로는 Bhaiṣajya-rāja인 약사보살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질병을 치료하는 보살이다.
통일신라시대 말엽부터 유행한 약사불사상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양식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다부진 얼굴, 아담하지만 당당한 체구, 손에 쥔 약합의 모습 등에서 중생의 질병을 당장 고쳐줄 듯한 건강한 모습이 느껴진다. 약사유리광여래(藥師瑠璃光如來)·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하며,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키는 부처이다.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 악귀를 물리쳐서 횡사를 면하고 싶은 자, 온갖 재앙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자들이 약사여래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면 구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외적의 침입과 내란, 때 아닌 비바람, 가뭄, 질병의 유행 등 국가가 큰 재난에 처했을 때도 약사여래에게 빌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은 고려시대 약사도량(藥師道場)의 개설로까지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방법은 7일 동안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면서 주야 6시에 약사여래를 예배, 공양하면서 ≪약사경≫을 49번 독송하고 49등(燈)을 밝히는 것이다.
고려시대 약업문화와 관련한 미술품 가운데 재밌는 것은 관음신앙이다. 관음보살은 버드나무 가지로 물을 뿌리면서 병을 치료하는데, 실제 고려불화 속 ‘수월관음(水月觀音)’ 그림에는 청자정병에 버드나무를 꽂은 상징물이 등장한다. 버드나무의 껍질과 뿌리는 한방 약재에서 치료제로 널리 이용되면서 버들가지를 씹으면 통증이 가라앉는다는 처방이 있었으며, 버들가지를 씹어 이를 닦기도 했다. 현대에 밝혀진 것은 버드나무가 해열제 역할을 하며 아스피린의 약제로 쓰인다는 것이다.
건강과 위생을 상징하는 치료의 상징, 뱀
서양에서는 지팡이를 타고 올라가는 뱀의 형상 혹은 성배(컵)를 두 번 휘감는 뱀의 모양새 등이 약국을 상징하는 기호로 사용된다. 약업에 부여된 이러한 기호는 고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게이아 신앙에서 유래하는데, 이들은 건강과 위생, 의학과 치료를 상징하는 부녀(父女) 신들이다.
휘게이아는 종종 큰 뱀으로 휘감겨 있거나, 큰 뱀에게 물/먹이를 먹이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미주 지역에서 약업 공동체에 큰 공을 세운 약사에게 ‘Bowl of Hygeia Award’라는 이름으로 상이 수여된다.
이에 앞서 고대인들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서 하루를 보내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신앙을 가졌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은 뱀이 또아리를 틀고 기어오르는 지팡이로, 현재 유럽전역에 약국표시가 여기에서 유래한다. 뱀이 치료의 상징이 된 것은 허물을 벗으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
죽음과 부활의 개념을 도입한 고대인들은 뱀을 통한 치유, 재생, 회복의 관념을 신화화 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신화를 과학으로 대체한 현대인들은 대량생산된 약을 파는 약국에서 어떤 느낌을 받을까. 신화화를 벗어낸 현실 속에서 우리는 약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를 풀어주는 실존적 실마리는 바로 현대미술의 거장 ‘데미안 허스트’에게서 찾을 수 있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 속 ‘약과 약국’
약장(Medicine Cabinets)은 죽음에 이르기 전 인간의 수많은 생명들을 치유와 만나게 하는 창구다. 세계적인 영국의 스타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약국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포착했는데, 그는 그 믿음이 약의 효능에 기인한다기보다 약장 속에 진열된 약 상자의 형태와 포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았다.
복용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약의 효능, 그러나 ‘약국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신뢰(과거에는 신화였던)를 보여준다. 현대 약업의 심리에 주목한 작가는 유명미술관에 약국의 진열대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대량생산된 공산품의 미학, 혈액순환을 조절하고 우리 몸을 치유하는 물질로서의 약(medicine, remedy)은 분명 우리에게 긍정적 의미를 제공한다.
1980년대 청년기를 보냈던 허스트는 신자유주의를 주장했던 대처(Margaret Thatcher)의 복지정책 축소와 국영사업 민영화 속에서 긴축정책으로 많은 병원들이 문을 닫는 것을 목도했다. 방치된 빈 병동과 병실에서 버려진 약병을 손쉽게 구한 작가는 사회현상 그대로를 전시장의 문화로 옮겨와 “나는 오늘 무슨 약을 먹는가? 내가 지금까지 먹어온 약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를 고민토록 했다.
갤러리와 약국의 공통점은 대상이 예술작품과 약품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흰 벽을 바탕으로 한 치유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발상이었다. ‘약업=제약회사’가 우리의 삶에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약에 의존해 살고 있는 현대인들, 약에 의한 구원이라는 믿음은 우리가 모두 죽는다는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정신적 치료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시대를 아우른 약업의 문화사는 인간행복을 향한 구원의지가 있는 한 계속해서 우리 삶 속에 존재할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1-03-19 1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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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
‘팬텀싱어’를 통해 세상에 나온 ‘라비던스’에는, 이전의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팀에서 찾아볼 수 없던 이력의 소유자가 있다. 소리꾼 고영열. 소리의 질감부터 다른데, 뮤지컬이나 서양 성악을 하는 이들과 4중창을 하면 과연 어울릴까? 첫 경연을 사랑가 한 대목으로 시작한 그는, 그 이후로 국악은 꼭꼭 묻어둔다. 그리고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곡을 찾아 자신만의 색으로 바꾸며 승승장구한다. 소리꾼 고영열이 속한 팀 ‘라비던스’는 마침내 다다른 결승전에서 남도 민요 ‘흥타령’을 부른다. 그리고 올해 초 시작한 팬텀싱어 올스타전의 첫 무대는 서도 민요 ‘몽금포타령’으로 열었다.
남도 민요 흥타령
전라도부터 충청도 일부에 이르는 지역에서 전승된 민요를 남도 민요라 한다. 경기 민요는 경기 명창이 부르고 서도 민요는 서도 명창이 부르는데, 남도 민요는 주로 판소리 명창들이 도맡아 부른다. 남도 민요는 판소리와 쓰이는 장단이 거의 같고 또 판소리 춘향가에 등장하는 남도 민요 농부가처럼, 일부 민요는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악 용어 중 ‘토리’라는 것이 있는데, ‘노래 투’, ‘선율적 특징’ 혹은 ‘특징적 선율의 형태’라고 정의한다. 각 지역 언어의 특징을 드러내는 사투리처럼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구분하는 것이 ‘토리’다. 경기 지역의 민요나 무가는 ‘경토리’, 강원도‧경상도‧함경도 등 동부 지역은 ‘메나리토리’, 황해도․평안도 지역은 ‘수심가토리’ 그리고 남도의 민요나 무가는 ‘육자배기토리’에 속한다. 육자배기토리로 된 대표 민요로 ‘육자배기’, ‘흥타령’, ‘진도아리랑’이 있다.
떠는 소리, 꺾는 소리 등 남도 소리의 풍부한 시김새(꾸밈음)와 애절한 느낌의 선율이 담긴 흥타령은 육자배기토리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라고 일컬어진다. 라비던스가 노래한 ‘흥타령’의 가사 외에도 여러 사설이 있는데, 남도 민요 ‘흥타령’의 노랫말과 곡조는 모두 이별의 슬픔 혹은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천안삼거리’라고도 알려진 경기 민요 ‘흥타령’이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흥타령의 한 장면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화 취화선에 수록된 김수연 명창의 소리인데, 직접 영화에 출연해 부른 대목이 라비던스의 흥타령에서도 가장 많이 반복되는 구절이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 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 거나
<영화 취화선 중 김수연 명창의 흥타령>
망국의 징후가 곰팡이처럼 번지던 조선 후기, 시국을 한탄하는 천재 화가의 절망 그리고 부귀영화에 눈과 귀를 닫았던 지도층에게 던지는 일갈. 무엇을 표현하기에도 부족함 없는 절창이다. 한편, 소리꾼 임현빈이 부른 흥타령은, 조선 후기 가왕이라 불린 송흥록과 그의 연인 맹렬의 이별을 그린 사설로 맺음 한다. 맹렬을 맹렬하게 부르며 시작하는 이 노래에서는, 불같은 사랑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 그들이 이별 또한 얼마나 절절 끓게 했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맹렬아 잘 가거라
나를 두고 가려거든 정마저 가져가지 정은 두고 몸만 가니
쓸쓸한 빈방 안에 외로이도 홀로 누워 밤은 적적 깊었는데
오늘도 뜬 눈으로 이 밤을 새우네
(후렴) 아이고 데고 허허나 허 성화가 났네 헤
- 임현빈의 흥타령 https://youtu.be/fhj0eYdJMfU
서도 민요 몽금포타령
경기 민요나 남도 민요에 비해 서도 민요는 익히 알려진 곡이 적다. 갈 수 없게 된 땅에서 전해온 탓도 있을 테고, 수심가토리의 곡들이 섬세하고 부르기 어려워 교과서 수록 비중이 적은 것도 한몫할 것이다. 그중 몽금포타령은 오랜 세월 교과서를 통해 불리며 우리에게 익숙해진 노래다.
몽금포타령의 ‘몽금포’는 지명으로, 황해도 용연군에 위치한다. 서도 민요 중에도 황해도 민요에 속하는데, ‘수심가’, ‘자진아리’ 등 애잔함이 느껴지는 평안도 민요에 비해 흥겹고 경쾌하게 부른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경기 민요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흥타령이 이별 노래라면, 몽금포타령은 상봉의 기쁨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듯한 노래다. 라비던스의 몽금포타령에는 서정적인 선율로 편곡한 ‘배 띄워라’를 이어붙였다. 그래서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젓고, 바람이 불면 돛 올리는’ 그들 노래의 화자는, 원곡에 비해 훨씬 진취적이다.
서도 민요를 포함하는 서도 소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도 소리 예능보유자 김광숙 명창이 부르는 몽금포타령의 한 대목은 우리를 조금은 낯설고도 정겨운 풍경 속으로 이끈다.
<몽금포타령이 수록된 김광숙 唱 西道소리 음반>
바람새 좋다고 돛 달지 말구요 몽금이 개암포 들렸다 가소래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들렸다 가소래
북소리 두둥둥 쳐 올리면서 봉죽을 받은 배 떠들어옵네다
에헤요 에헤요 에헤야 떠들어옵네다.
또, 경기 소리꾼 이희문‧신승태와 함께 민요 록밴드 ‘씽씽’으로 활동한 서도 소리꾼 추다혜가 2020년 3월, 첫 솔로 앨범에서 선보인 곡 역시 몽금포타령을 편곡한 ‘몽금포’다. ‘따뜻한 설렘’을 주제로 일렉기타 선율을 반주 삼아 선보인 이 곡은 남도 소리꾼 고영열의 창법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추다혜와 비슷한 시기에 발매한 감성밴드 나봄의 ‘몽금포타령’은 KTX 출발 대기 음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추다혜의 몽금포 https://youtu.be/1kt25AaVkA8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1-03-19 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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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브로드웨이의 전설과도 같은 뮤지컬이자 믿고 보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뮤지컬 ‘위키드(Wicked)’가 드디어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악재 속에서도 지난 2월 17일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무사히 본공연 개막을 알린 ‘위키드’는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올해로 4번째 시즌을 맞이한 이번 공연은 2016년 이후 무려 5년 만에 돌아온 공연이라, 재연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개막일을 손꼽아 기다린 관객들이 유독 많았다. 또 다가오는 5월엔 부산 초연까지 앞두고 있어 더욱더 관심을 끌었다.
캐스팅도 눈부시다. 먼저 한국어 초연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 옥주현(엘파바 역)과 ‘위키드’ 전 시즌 출연에 빛나는 정선아(글린다 역)가 7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며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그리고 폭발적인 가창력을 지닌 디바 손승연과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주인공 나하나도 새로운 마녀로 더블 캐스팅돼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두 마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로맨틱한 영웅 피에로 역으로는 서경수·진태화가, 마법사 역엔 남경주·이상준 등이 함께 어우러져 다채로운 무대를 꾸민다.
21세기 들어 가장 성공한 뮤지컬로 기록된 ‘위키드’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매력이 차고 넘친다. 마치 화려한 놀이동산 같은 오리지널 무대를 그대로 옮긴 무대와 풍성한 스토리, 감각적인 연출이 보는 내내 확실한 만족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지컬 초심자들이 처음 도전해 볼 만한 추천작으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작품의 인기를 견인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넘버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Defying Gravity’, ‘Popular’, ‘For Good’ 등은 많은 뮤지컬 배우들이 사랑하는 곡이자 실력 있는 배우 지망생들이 오디션 곡으로 선호할 만큼 곳곳에서 꾸준히 불리며 사랑받았다. 아직 여성 주연 극이 많지 않은 뮤지컬에서 여배우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란 사실에도 주목해 볼 만 하다. 이를 증명하듯 뮤지컬 ‘위키드’는 2004년 토니상을 비롯해 그래미상, 로런스 올리비에 상등 각종 시상식에서 꾸준히 수상 이력을 더하며 지금까지 100여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동명 원작 소설로부터 출발한 뮤지컬은 ‘오즈의 마법사’가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의문에 바탕을 두어 탄생했다. 초록 마녀 엘파바와 금발 마녀 글린다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며, 극 중 시점은 ‘오즈의 마법사’ 속 등장인물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이다. 똑똑하고 놀라운 능력을 지녔음에도 타고난 초록 피부 때문에 늘 외롭게 지내던 엘파바와 해맑은 성격과 아름다운 외모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글린다. 얼핏 봐도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서로를 인정하고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마법사의 제안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둘은 각각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 돼 대척점에 서게 된다.
<사진제공 : 에스앤코>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쪽 마녀를 주목한 뮤지컬 ‘위키드’는 놀라운 상상에 기반을 둔 전개로 몰입을 이끈다.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가 사실은 부당한 권력에 맞선 인물이었고 착한 마녀 글린다도 무조건 착하기만 한 인물이 아닌, 사랑받는 행복을 잃지 못한 야심가였다는 재미난 비틀기가 신선하다.
여기에 철학적 깊이도 더해졌다. ‘선은 비극의 시작’이라던 엘파바의 말처럼 선과 악을 구분할 기준과 의미, 권한에 관한 질문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또한 ‘위키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에도 주목했다.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는 사실은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용기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 역시 인상적이다. 이렇게 뮤지컬 '위키드'는 다양한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하며 현실에 대응해 해석할 수 있는 재미까지 준다.
<사진제공 : 에스앤코>
뮤지컬은 다소 어두운 느낌을 지닌 원작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면 미리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나 영화를 먼저 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물론 그러지 않더라도 들리는 가사에 좀 더 집중해 본다면 훨씬 쉽게 힌트를 찾고 전반적인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초록 마녀 엘파바가 자신을 둘러싼 중력을 벗어나 힘차게 날아오른 것처럼, 뮤지컬 ‘위키드’가 현실 속 어려움을 타파하고 이번에도 마법 같은 흥행을 이어갈지 기대되는 바다. 뮤지컬 ‘위키드’가 펼칠 초록빛 마법은 분명 당신의 오늘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1-03-12 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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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코로나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 공연예술까지 본격적인 ‘언택트’ 시대가 열린 지금. 단시간에 이루어진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상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잘 녹아든 것은 기업들의 발빠른 대처가 톡톡히 한몫을 했다. 기업의 괄목할만한 성과는 예술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까지 않은 사례와 그 성공에 있다. 예술은 우리 삶의 균형을 맞추고 윤택한 삶을 만들어가는 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힘을 발한다. 백조의 우아한 유영이 물속에서 격한 발길질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예술은 스스로 존립해 갈 수 있는가?
K-pop과 같은 상업 예술은 재생산이 가능한 수익구조로 인해 존립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시장에서 예술종사자들이 실제로 ‘생존’하는 시간과 교체시기가 몹시 짧아 예술 본질의 보존성, 순수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의 전통적인 흐름을 따르는 오케스트라, 오페라 등은 자립이 가능한가? 순수예술은 사정이 더욱 열악해 예술종사자의 생존은 물론, 사회의 지속적인 지원 없이 “짧은 생존” 조차도 담보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영국의 경제학자 보멀&보웬은 ‘예술의 경제적 딜레마’를 언급했다. 순수예술에 들어가는 비용만큼 수익이 창출되지 못해 종사자들이 경제적 빈곤에 빠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 할 때 시대를 불문하고 단원의 수는 70명으로 동일하다. 공연 횟수는 정해져 있는데 반해 단원 월급 등의 고정 지출은 점점 더 증가해 왔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실시간으로 생산되는 공연의 현전성을 요구하지만 공연 생산 비용은 점점 비효율적으로 증가하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이 악순환의 꼬리는 계속돼 결국 공연 수익 자체가 줄어든다. 이는 예술의 자립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의미하고 사회의 관심과 후원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기업들의 예술후원은 예술의 존립에 상당부분을 기여할 수 밖에 없고 예술 역시 기업의 후원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기업의 예술후원이 단순히 순수예술의 존립을 위한 도구는 아니다. 기업이 소비자를 통해 정당한 이익을 창출할수록 사회에 다시 환원하는 것은 기업의 윤리적 의무이며 이를 예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끌어 갈 때 기업의 가치 역시 상승 효과를 겪는다. 이는 현재 많은 기업들이 자각하고 있는 이슈이며 적극적으로 예술 후원에 참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UBS는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기업으로 “Art- Eco System"을 통해 문화예술을 후원하고 있다. 몽트뢰 재즈 축제,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베이징 뮤직 축제 등을 후원하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 분야를 집중 후원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구겐하임과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현대미술에 대한 접근성과 이해를 높이고 있다.
UBS처럼 단체를 후원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Rolex의 경우는 다른 측면에서 예술지원에 접근하고 있다. 그들의 광고를 보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동안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통해 기업의 가치와 예술의 아름다움을 결합시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정교한 피아노 연주처럼 롤렉스도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카피는 그들이 예술후원에 접근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이다.
기업의 예술지원 당위성은 예술의 존립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고 개개인의 미시적 관점에서도 살펴봐야 할 문제이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까지 이어지는 예술을 통해 얻는 정서적 안정감은 사회의 많은 이슈를 해결하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예술계 종사자가 아닌 개인의 삶을 통해 예술의 당위성을 조명해 보면 역시나 내 아이들에게 시선이 돌아가게 된다. 대형학원에서 한국의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첫째의 하루 일과는 작년과 천지차이로 변했다. 아이의 절대공부(숙제)량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책과 음악, 놀이에서 멀어졌다. 노래를 부르듯 시를 암송하고, 동생들과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춤출 때 보였던 눈빛의 반짝거림은 학원 숙제에 하루를 오롯이 투자하면서 눈에 뜨게 줄었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예술이 일순간 시간낭비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아이의 마음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엄마로서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라면 음악, 미술, 문학이 함께하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여유로운 삶을 어른이 된 첫째에게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사회인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물리적 가치만이 자리잡게 되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예술이 가진 힘은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 장개석이 공산당에 패하고 대만으로 물러날 당시 문화재들을 대만으로 가져와 ‘국립고궁박물원’을 만든 것은 대만이 중국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수호정신과 더불어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의 하나로서 기능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많은 문화재를 소실하고 고증을 해내지 못한 대가로 ‘문화의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문화는 사회를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울타리이자 기업이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자원의 보고이다. 문화예술의 가치가 평가절하 된 기업들은 대중의 시선을 외면받기 쉽다. 정체성, 창의성, 개성 없는 기업의 제품에 매력을 느끼기에 소비자들은 너무 똑똑하다. 예술은 기업 이미지 상승 효과와 더불어 생산제품에 대한 매력도를 상승시키는 효과까지 있다.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지기 쉬운 때일수록 기업이 예술후원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하는 이유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무너지기 쉬운 현대사회의 정신에 손 내밀어 주는 마지막 구원은 예술밖에 없으니까.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1-03-12 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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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다음 달, 팬데믹으로 인한 영화계 불황으로 예년보다 두 달 늦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다. 작년 ‘기생충’(봉준호, 2019)이 주요 부문을 휩쓴 것은 기본적으로 작품의 우수성 때문이겠으나 그 동안 백인, 남성, 미국 중심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시상식 주최측이 변화를 선언한 하나의 사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올해의 선택이 더 중요해졌다.
할리우드의 여성 차별에 대해 통계적으로 접근한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톰 도나휴, 2018)에 따르면, 1949년부터 1979년까지 여성 스태프의 비율은 0.5%에 불과했으며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할리우드에서 여성 감독의 비율 또한 4.1% 밖에 되지 않았다. 진입 장벽부터 높으니 시상식에서도 여성은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레이첼 포트먼은 이처럼 업계의 고의적 차별 속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여성 음악감독으로, 그녀가 ‘엠마’(더글라스 맥그라스, 1996)로 받은 오스카상은 여성 작곡가가 받은 최초의 (뮤지컬/코미디 부문) 음악상이었다. (참고로 작년에 ‘조커’(토드 필립스, 2019)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힐더 구드나도티르는 장르 구분 없이 통합된 음악상 부문 최초의 여성 수상자가 되었다.)
그녀는 당시 동양 여성들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이목을 끌었던 ‘조이 럭 클럽’(웨인 왕, 1993)에 참여한 후, ‘엠마’로 오스카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아왔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대극에서 레이첼은 고전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바순을 독주 악기로 많이 사용했는데, 배경이 되는 영국의 작은 마을이나 주연을 맡은 기네스 펠트로의 기품과도 잘 어우러지는 선택이었다. 저 유명한 메인 테마에는 시골 공동체의 친밀함과 더불어 그 안에 은근히 도사리고 있는 날선 호기심과 엠마의 실수로 인해 벌어질 심상찮은 사건들까지 암시되어 있다.
레이첼은 또한, 장면의 주된 정서와 다소 어긋나는 음악을 사용하기 좋아하는데 이러한 그녀의 스타일은 라세 할스트롬 감독과 작업한 ‘사이더 하우스’(1999), ‘초콜릿’(2000)에서도 잘 나타난다. 레이첼은 최근에도 줄리 코엔, 베시 웨스트 감독의 다큐, ‘줄리아’(2020), 월트 디즈니사에서 제작한 ‘갓마더드’(2020) 등의 음악을 담당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레이첼 포트먼은 여성과 남성의 감수성이 다를 수는 있지만 음악만 듣고 작곡가의 성별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만큼 서로가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없는 것은 아니며, 그것들이 뒤섞일 때 흥미로운 음악이 나온다고 말한 바 있다. 더 많은 여성 작곡가들이 실력에 맞는 기회를 얻고, 영화를 풍요롭게 만들었으면 하는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미나리의 푸른 생명력을 닮은 영화, ‘미나리’
미나리는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 미나리는 어디에든 넣어 먹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런데 그야말로 ‘원더풀(wonderful)’ 하고, ‘원더(wonder) 풀’이기도 한 미나리에 우리가 그동안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정이삭 감독이 이 식물의 이름을 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말이다.
미국에 가서 서로를 구해주자고 했던 한국인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아칸소의 넓은 들판으로 이사를 온다. 그러나 부부의 속마음은 다르다. ‘제이콥’(스티븐 연)은 이 땅의 흙을 일구어 아이들에게 뭔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모니카’(한예리)는 컨테이너 집이 한심한데다 병원이 멀어 심장이 안 좋은 ‘데이빗’(앨런 김)이 걱정이다. 부부 싸움이 잦아지는 가운데 제이콥이 대출을 받아 농사를 시작하자 아이들을 봐주기 위해 한국에서 모니카의 엄마 ‘순이’(윤여정)가 온다.
어린 데이빗은 할머니와 한 방을 쓰는 것도, 할머니가 가져온 한약을 먹어야 하는 것도 싫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가 부모님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면서 남다른 유대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순이가 사용하는 ‘Strong’, ‘wonderful’, ‘네가 이겼다’ 등의 긍정적인 언어는 미나리 씨앗처럼 데이빗의 심장에 파릇파릇한 에너지로 자라나 마침내 그를 뛰게 만든다.
데이빗의 시점으로 시작되고 끝날 만큼 감독의 유년 시절이 많이 담겨 있는 ‘미나리’는 미국 이민 1세대의 성공 과정을 보여주는 대신 이들이 겪게 되는 다양한 역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순이가 물가에 심는 미나리는 거센 비바람과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다시 살아나는 제이콥 가족의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을 의미한다.
이들을 버티게 해주는 것은 돈이나 성공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의 동행이라는 주제가 선명하다. 그래서 ‘미나리’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가족에 관한 영화이며, 무엇보다 삶의 보편적 가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이민이라는 특별한 경험 없이도 3대에 걸친 가족들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얼마든지 있다.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가 ‘자식의 미래를 위해 희망을 걸었던 세상 모든 부모를 향한 러브레터’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에서 모니카 부부는 이름 대신 서로를 ‘지영 아빠’, ‘지영 엄마’라고 호칭한다. 우리 문화에서 익숙한 그 호칭이 아칸소의 외딴 집에서 들릴 때마다 새삼 뭉클해지는 것은 이제 제이콥보다 나이가 더 든 중년 감독의 고백이 진솔하게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1-03-05 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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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우리나라 언론지상에서는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그리고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려고 준비한 ‘캣츠’를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된 표현이다. 180여년의 역사에 등장한 뮤지컬 작품 중 이들에게만 위대한 타이틀이 주어질 리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문구는 영어를 오역한 것이다. 1980~90년대 영미권에서는 전대미문의 흥행을 기록한 메가 히트 뮤지컬 네 편이 세간에 화제가 됐는데,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 ‘Big 4’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한 작품들이란 의미인데, 굳이 해석하자면 흥행대작들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아날로그 예술인 공연 콘텐츠가 첨단의 영상물보다 큰 부가가치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들이다.
한 작품 한 작품 모두 대단한 족적을 남긴 뮤지컬계의 명작들이지만, ‘캣츠’는 특히 남다르다. 1981년 런던에서 초연됐고, 이듬해부터 뉴욕에서 막을 올린 이 작품은 ‘이제와 항상 영원히(Now and forever)’라는 홍보문구로 유명하다. 정말 언제까지나 인기를 놓치지 않을 것 같은 작품이라는 자신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유명세에 비해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를 아는 사람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캣츠’의 뒷이야기는 그래서 매우 중요한 뮤지컬 감상의 중요한 전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표적인 이야기중 하나는 바로 주인공 격인 그리자벨라에 얽힌 해석이다. 원작자로부터 저작권을 확보하지 않은 해적판이 여럿 등장했던 시절, 우리나라 공연계에서는 그리자벨라를 두고 창녀 고양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그리자벨라 글래머 캣’이라는 부제도 그렇거니와(고양이인데 별명이 글래머라니 다소 선정적이기까지 하다), 낡은 코트 차림에 풍기는 이미지나 분위기도 제법 그럴싸해 보였던 탓이다. 국내 제작진의 구성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이 시절 한국판 해적(?)버전을 주도하는 공연 관계자들이 배부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참여했던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죽어서 다시 살아난다는 환생의 의미와 창부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를 차용하다보니 그런 해석이 더해졌다는 설명이다. 물론 당시 출연진과 제작진이 비슷한 종교적 배경과 신념을 지니고 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덕분에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는 여전히 ‘창녀’ 고양이의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해석은 작품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만든다. 원작에서 그리자벨라가 창녀라는 설정은 작품 어디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거스가 극장에 사는 늙은 배우 고양이라든지, 스킴블생크스가 기찻간 고양이이고 미스터 미스토플리스가 마법사 고양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그리자벨라의 직업이나 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그저 새벽녘까지 런던의 도심 한복판인 토튼햄 코트 로드를 어슬렁거렸다거나, 우편배달부가 한숨을 쉬며 저 늙고 초라한 고양이가 왕년의 그 예쁜 고양이였다니하며 탄식만 했다는 표현만 나올 뿐이다.
창녀 고양이라는 해석은 그리자벨라의 노래 ‘메모리(Memory)’에서 혼란을 크게 가중시킨다. ‘추억’을 노래하며 그녀는 삶의 열정과 기쁨이 가득했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인생의 반성이나 회한보다 젊음에 대한 추억과 지나간 시절에 대한 미련을 담고 있다. 많은 고양이들은 그녀의 노래를 듣고 고양이만의 특권인 환생의 기회를 양보한다. 그런데 그녀가 창녀 고양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남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던 늙은 창녀 고양이가 화류계로의 귀환을 꿈꾸자 다른 고양이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양보하는 셈이다. 뭔가 석연찮은 의미가 되고 만다.
그리자벨라는 창녀 고양이가 아니다. 그보다 한때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이젠 나이 들어 볼품없어진 고양이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군데군데 털이 숭숭 빠진, 그래서 마치 피부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보이는 늙고 추레한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부르는 노랫말은 “나를 쓰다듬어 주면 진정한 행복을 이해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두 경험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중년의 고단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창녀 고양이의 환생이라는 난해한 스토리에 어리둥절했던 우리 관객들과 달리, 손바닥 벌겋게 박수치고 상기된 미소로 극장을 나서는 영미권 관객들의 이질적인 체험은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캣츠’를 보고 스토리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제대로 분석한 관객이다. 이 뮤지컬에는 사실 뚜렷한 스토리라인이 없다. 원작이 바로 시집인 탓이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T. S. 엘리엇은 캐톨릭 신자였다. 성당에서는 견진성사를 통해 종교적인 후견인(대부(Godfather) 혹은 대모(Godmother))이 되는 의식을 치르는데, T. S. 엘리엇에겐 고양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대자(Godchild)가 있었다. 도움이 되는 인생의 교훈을 들려주고 싶었던 그는 대자를 만날 때마다 고양이를 소재로 한 시를 한 편씩 건네줬고, 훗날 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발간한다. 무대용 뮤지컬은 바로 그 시집에 곡을 붙여 무대로 꾸민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엔 당연히 줄거리가 없다. 시집은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이 작품은 한 마리 한 마리 고양이에 담겨있는 시적 상상력, 그리고 잘 알려진 싯구가 노래가 되고 춤이 되는 재미난 변화를 즐기는게 매력인 무대다. 당연히 뮤지컬을 보러 가기 전에 시집을 먼저 읽어보고 가는 것은 제대로 된 감상을 위한 매우 중요한 전제다.
우리나라에서 ‘캣츠’는 보험 같은 뮤지컬이라는 별칭도 있다. 단 한 번도 흥행에서 실패하지 않은 이색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서울에서는 코로나 19 팬데믹을 딛고 내한공연이 막을 올리고 있다. 아직 ‘캣츠’를 보지 못한 독자라면 이 기회에 행렬에 동참해보길 추천한다. 세종문화회관을 나서며 고양이 한 마리쯤 키워보고 싶어진다면 이 작품을 제대로 만끽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객석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은 요즘 분위기에 맞게 마스크도 쓰고 있어 이색적이다. 멋진 관극이 되길 바란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1-03-05 1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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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놀라지 마세요. 굴드 씨는 여기에 있으니까요.”
1962년 4월 6일 카네기홀,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에서는 굴드의 협연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연주 취소가 잦은 것으로 유명했던 굴드 없이, 홀로 무대에 등장한 번스타인은 청중들을 안심시키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발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곧 연주될 브람스의 협주곡은 정통적이지 않은 연주가 될 것인 데, 내가 굴드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굴드의 음악관을 존중하므로 그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정통적이지 않은 연주’를 유발한 가장 큰 요인은 굴드의 너무 느린 템포였습니다. 이는 특히 1악장에서 두드러졌지요. 이 템포를 처음 접한 번스타인은 놀랐고, 굴드를 설득하려 했지만, 굴드는 계속해서 자신의 느린 템포를 고수했고, 번스타인도 결국 이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템포로 인해 번스타인은 굴드 없이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진행하였는데, 그는 이미 여러 번 연주했던 작품을 왜 솔리스트 없이 따로 연습해야 하는지 묻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설득해야만 했지요.
마침 라디오로 실황 중계되었던 이날의 연주는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는데, 심지어 굴드가 기량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리게 연주했으리라는 비난이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연주 이후 번스타인과 굴드의 사이도 멀어지게 되었고요. 이래저래 떠들썩했던 이 연주는 몇 가지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을 남겨놓았습니다.
번스타인과 굴드 (Don Hunstein 사진, 1957, Sony Classical 제공)
첫째, 지휘자가 연주에 앞서 저런 발언을 하는 것이 옳은가?
연주에 앞서 지휘자가 발언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대부분 곡에 대한 간단한 설명 혹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 정도이지요. 번스타인의 발언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 해석은 전적으로 솔리스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솔리스트의 독특한 해석에 대해 지휘자가 선을 그어버리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지휘자가 솔리스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고요. 굴드의 평전을 쓴 피터 오스왈드와 당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현장에 있었던 오자와도 번스타인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사실, 발언 전체를 들어보면, 번스타인이 굴드라는 예술가와 그의 해석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그에 따르면, 굴드가 연주에 앞서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에 찬성했다고도 하고요. 번스타인은 선의로 이루어진 자신의 발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억울해 했지만, 그 빌미를 자신이 제공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기 어려울 듯 합니다.
둘째, 그 연주는 정말 그토록 느렸나?
물론 느렸습니다. 하지만, 번스타인이 연주에 앞서 청중들에게 미리 주의를 줄만큼 느렸을까요? 굴드와의 협연 이후 20여년이 흐른 1984년, 번스타인은 짐메르만과 같은 곡을 실황 녹음했는데, 총 연주 시간은 약 54분 정도였습니다. 굴드와의 협연이 53분 정도였으니, 비슷하죠. 1악장과 3악장의 경우에는 짐메르만의 연주가 약간 빨랐지만, 크게 차이나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번스타인은 연주에 앞서 발언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했을까요? 일단, 1960년대에 굴드의 템포가 지금보다 더 낯설게 다가왔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한데,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정기연주회는 3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번스타인의 발언이 있었던 날짜는 4월 6일이었는데, 하루 전인 5일에 공개 리허설 형태로 첫 공연이 있었고, 8일에 마지막 공연이 있었죠. 번스타인이 말년에 밝힌 바에 따르면, 첫 공연이었던 5일의 연주가 굴드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템포대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템포는 정말 느려서 연주가 거의 한 시간 반이 걸릴 지경이었다고 해요. 물론, 그가 말년에 회상한 것이어서 다소 과장이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연주가 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것은 사실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 첫 공연에서도 번스타인은 그 다음날(4월 6일)과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극도로 느렸던 템포를 생각하면, 그가 왜 발언을 해야 한다고 결심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첫 공연에 비하면, 그 다음날의 연주는 한결 빨라진 것이었죠.
셋째, “협주곡에 있어 누가 대장인가? 솔리스트인가? 아니면, 지휘자인가?”
이것은 번스타인이 그의 발언에서 직접 했던 말입니다 (“Who is the boss?”). 협주곡에 있어 음악적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이지요. 번스타인은 boss는 때로는 지휘자이고, 때로는 솔리스트인데, 이는 누가 연주에 참여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대답을 하며 그의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이에 대해 오자와는 대게는 그 곡을 더 오랜 기간 밀도있게 연습해왔을 솔리스트에게 음악적 주도권이 있겠지만, 지휘자의 권위가 솔리스트보다 훨씬 더 높을 경우에는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을 내놓았죠. 지극히 원론적인 결론이지만, 지휘자와 솔리스트의 조합에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므로, 정해진 하나의 답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지휘자와 솔리스트가 협주곡 연주를 함께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겠지요. 60여년 전 이루어진 번스타인과 굴드의 연주는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합니다. 협주곡이라는 장르가 지속되는 한, 이 연주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회자될 것입니다.
추천음반: 라디오로 중계된 번스타인의 발언과 뒤이어 연주된 브람스 협주곡 1번은 고스란히 음반으로 남아있습니다. 시작 부분의 오케스트라 총주 부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템포 설정이 인상적이지요. 어쩌면, 논란만큼 느리지는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개성 강한 이 연주에 대한 호불호는 나뉘겠지만, 이 음반이 소중한 기록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Hz2i6bhUXw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02-26 1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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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참신한 레퍼토리가 목마른 클래식
[클래시그널] 지난해 8월 BTS의 첫번째 영어 신곡 '다이너마이트'는 공개 24시간 만에 1억 110만뷰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아미(Army)를 비롯한 수많은 팬들이 애타게 신곡발표를 기다려왔다는 방증일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BTS 의 디지털 싱글 '다이너마이트'는 미국 빌보드 차트1위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유튜브에 공개된 노래 '다이너마이트 '의 뮤직 비디오>
사실 장르의 속성이나 시장규모면에서 팝시장에 '클래식'을 가져와 온전한 비교대상으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꾸준한 신곡발표로 기대감을 유발시키고 대중과 긴밀히 호흡한다는 면에서 팝은 늘 참신하다.
안타깝게도 클래식의 맹점은 오래전부터 레파토리가 고착화되어있다는 사실. 모짜르트, 베토벤, 말러 , 부르크너등 익숙할 대로 익숙한 클래식의 주레파토리는 몇 십년이 지나도록 늘 변함이 없이 클래식 무대를 평정하고 있다. 게다가 클래식의 계보를 잇는 현대음악을 찾는 대중은 드문편이라 설사 신작이 세상에 나와도 지속성을 가지고 연주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난제의 해결책은 두 가지다. 새로운 클래식 레파토리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소개하는 것, 그리고 현대음악이 난해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며 대중과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일이다.
2021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의 모짜르테움 그레이트 홀에서 모짜르트의 미발표곡이 전세계에 소개되는 이벤트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로 온라인 생중계되었는데 수많은 클래식팬들을 설레이게하며 화제를 모았다 . 알레그로 D장조로 알려진 이 곡은 1분 34초 남짓으로 짧은 곡이지만 부분이나 스케치가아닌 완벽하게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모짜르트의 막내아들이 악보를 유실한 이후 여러 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2018년 모짜르트 연구기관 모짜르테움 재단의 손에 들어왔다고 한다. 명확한 진위여부를 위해 4명의 모짜르트 전문가들을 소집하여 감정을 거친 결과 명백하게 모짜르트의 작품으로 판명되었는데 전문가들은 1773년 17세의 모짜르트가 이태리에서 작곡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모짜르트의 생일을 기념하는 음악제 '모짜르트 주간'에 초청되어 이 곡을 소개하게된 조성진은 "모짜르트가 태어난 도시 잘쯔부르크에서 이 작품의 세계초연을 맡게되어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경쾌하고 리드믹한 메인테마, 그리고 이와 대조적으로 서정적인 제 2주제가 매력적인 이 작품은 현재 유튜브에서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모짜르테움 재단의 요하네스 에어렌부르그 대표는 " 이 작품의 발견은 재단 뿐 아니라 전세계의 '모짜르트 주간' 팬들을 향한 진정한 선물"이라고 전했다.
< 조성진 트위터 캡쳐>
사실 연주자나 기획자 입장에서 새로운 작품을 직접 발굴하여 소개하는 일은 전문가들의 도움없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존재는 알려져있되 자주 연주되지 않는 훌륭한 곡들을 눈여겨보고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소개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현재 클래식의 주레파토리로써 두터운 팬층을 거느린 말러의 교향곡들도 한때는 생소한 작품들이었다. 20세기 중반만해도 지휘자 브루너 발터를 비롯한 소수의 추종자들에의해 그 명맥만 유지하며 간헐적으로 연주될 뿐. 하지만 말러의 진가를 알아본 지휘자 번스타인은 1960년대 말러 전곡음반을 내놓았고 의욕적으로 그의 교항곡들을 무대에서 올리며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말러의 부활을 도모한 것이다.
그 결과 한때는 '괴물같은 교향곡'이라는 평까지 들었던 말러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말러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현재 뺴놓을 수 없는 클래식 레퍼토리로 자리매김 하였다. (번스타인은 1958년부터 1972년까지 뉴욕필하모닉과 기획한 청소년 음악회로 클래식 저변확대에 앞장서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장본이기도 하다.) 번스타인이란 지휘자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현재 클래식의 레퍼토리는 더욱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말러라는 존재가 드러난게 아니라는 사실.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클래식의 눈높이를 낮추고 친근하게 소개하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참신한 작품을 들고 대중에게 다가가기위한 시도는 더욱 절실하다.
조성진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초연한 모짜르트의 곡을 언급하며 "재미있고 귀여운 곡이라서 앞으로 앵콜로 연주할 것 같다"라고 했다. 새로운 모짜르트 작품을 조성진의 연주를 통해 실연으로 만날 수 있다니. 너무 매력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mxZVMU1Gpg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1-02-26 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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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다양한 인프라와 문화수출로 K-ART 플랫폼이 돼야한다”
한국국제교류문화진흥원(원장 김용락)은 2월2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POP, K-Food 넘어 K-Life의 시대가 열렸다! ‘2020 한류생활문화한마당 모꼬지 대한민국’ 성료”라는 글을 발표했다. ‘모꼬지 대한민국’은 케이팝(K-POP) 등 한류 콘텐츠를 매개로 국가 간 상호 문화교류를 통해 한국의 생활문화와 우수 소비재를 알릴 목적으로 계획된 사업이다. 156개국, 200만 명이 방문하는 한국 생활문화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한류팬들에게 한식, 미용, 의복, 놀이, 건강 등 한국의 다양한 생활문화를 전파하겠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안에 순수예술(공연, 전시 플랫폼)에 관한 시도는 담겨 있지 않다.
클래시컬한 스토리텔링이 소개되기에 순수예술은 어렵고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모꼬지 대한민국’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의 성공은 코로나 시대 속에서 한국의 문화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운용돼야할지를 보여주었다. 유튜브 누적 조회수가 늘어난다 해도 공연과 전시는 온라인의 감동만으로는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기 쉽지 않다.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 속의 한국문화 플랫폼은 세계 각국에 자리한 ‘한국문화원’의 재정립을 통해 해소돼야 할 것이다.
2020 한류생활문화한마당 모꼬지 대한민국 온라인 현장
(출처 : 한국국제교류문화진흥원유튜브)
국제문화교류를 위한 한국문화원의 현황과 위상
한국의 ‘국제문화교류’는 학술적·이론적으로 정립되기보다 2000년대 중반 한류가 본격화되면서 증가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정책용어가 ’문화외교’란 말로, 예술교류사업(arts exchange program)을 통해 국가별 상호이해와 감상, 외국의 문화적 가치와 신념에 대한 가치증진을 시각 및 공연예술기관, 예술가, 예술경영가들의 국제교류사업에 주안점을 둔 활동을 말한다. 세계 각국은 대외적인 문화 활동의 거점으로서 자국의 문화원을 설립·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문화원은 1977년 당시 문화공보부가 수립한 「해외 한국문화원 설립계획(안)」에 따라 관계 부처 간 합의·조정된 「해외 ‘한국문화원’ 설립 추진 및 조정보고」가 대통령께 보고되면서 설립되었다. 한국문화원의 설치는 대통령령으로 제정하고, 문화공보부가 조직·정원·예산 등 행정사항에 대해 관계 부처와 협의·조정을, 외무부가 한국문화원 설치에 관해 상대국 정부와 사전 협의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에 따라 문화공보부는 1979년 동경, 뉴욕을 시작으로, 1980년 LA, 프랑스 등 4개소의 문화원을 개원하였고, 190년대 들어 워싱턴, 중국, 독일, 러시아 등 6개의 한국문화원이 신설되었으며 2000년대에는 20여개의 문화원의 신설이 추진되어 현재 약 30여개소가 설치돼 있다.
일본 동경에 자리한 한국문화원 (출처 :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한국문화원의 최근의 위상은 각 국가별 맞춤형 전략에 따라 외교부와 문체부가 협의하는 방식을 띄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문화산업(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관광(한국관광공사)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한류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소개 및 순수문화예술을 홍보하는 영역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부족한 예산과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수준높은 문화원의 위상은 찾기 어렵다. 그나마 미국, 프랑스,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 위치한 문화원을 중심으로 해외 체류 중인 한국 예술가들의 공연이나 전시들이 자그마하게 열리는 실정이다. 이를 타계할 방향은 바로 홍보 내용의 콘텐츠를 확장하고, 이에 협력할 수 있는 국내 민간 문화예술기관들과의 연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실제 영화진흥위원회와 KOTRA는 영화분야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기 위한 ‘업무협조 약정(MOU체결)’을 통해 한국 영화의 다양한 소개를 문화원을 통해 지속하고 있다. 이는 각 국가별 문화권역의 확대와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략이다. 현지의 특성화를 살린 고유한 문화프로그램을 국내 컨텐츠와 연계하여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방식 등도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 문화권역 따라 예술사회학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문화교류가 ‘모꼬지 대한민국’의 성공과 같이 시도·연계된다면, 다양한 교류와 기발한 기획들이 한국문화원을 중심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해외 한국문화원의 새로운 과제
해외 한국문화원에 대한 비판들은 주로 국가의 지원이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원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제문화교류활동 임에도, 기준 없이 취사선택된 수준 낮은 공연과 전시가 단순히 나열된다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문화예술의 교류를 매개해야 할 경우, 국가기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수준 높으면서도 대중적인 국제문화교류에 대한 지원은 필수전략이 돼야 한다. 이때 배제돼야할 것은 ‘정치권력의 개입’이다. 국제문화교류와 해외문화홍보를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부처들이 문화예술 현장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파악하여 새로운 문화정체성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짧은 역사 속에서 해외 한국문화원들은 나름의 구체적인 외형과 내면을 찾아가는 중이다. 건축에 있어 세련미를 자랑하는 문화원은 단연 일본 동경에 자리한 한국문화원이다. 한옥과의 콜라보로 신축된 이곳에서는 다양한 한국 문화 관련 행사들이 개최되는데, 거리상으로 가깝고 한일관계에 대한 외교부의 다각화된 노력으로 다양한 문화·예술·관광 자료들이 세련된 형태로 상시 전시돼 있고, 일본-한국 문화 교류 증진을 위한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세심하게 개최됨을 알 수 있다. 뉴욕, 파리, 엘에이, 런던의 한국문화원 역시 문화도시에 걸 맞는 다문화주의를 융복합의 공연, 전시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모든 문화의 시선이 집중돼 있는 문화도시들답게 한류를 공급하는 문화예술플랫폼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세계의 문화예술전문가들이 자리한 공간이라는 도시적 특수성에 기인한다.
뉴욕한국문화원 개원 40주년 백남준 특별전 개막 공연 (출처 : 한국문화원 홈페이지)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들 안에서 어떻게 한국만의 정체성을 전략적으로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다문화로 평가받는 뉴욕, 런던 등의 성지에서 한국만의 전시, 우리만의 공연을 만들고 이를 작은 해외 문화원으로 확산시킬 가능성을 없는 것일까. 도시가 흡수해버린 장외문화 속에서 영어에 익숙한 문화보다 한글을 잘 살린 독특한 한국문화가 더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국제문화교류와 한국문화의 홍보에 있어서 이제 한국문화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주된 방향설정은 해외 한국문화원이 문화외교에 필요한 도구가 아닌 공공과 민간의 교류를 확산 시킬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야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류를 통한 문화홍보를 순수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한국문화원의 법적 위상과 예산, 보다 많은 전문 인력들이 해외에서 펼쳐낼 수 있는 온오프라인 공급의 지원체계가 확립돼야 할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1-02-19 14: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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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꼭 공연장에서 봐야 하는 공연이 있다. 연주자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빚어내는 조화, 신들린 듯 움직이는 손가락과 가만가만 움직이는 발장단, 들숨과 날숨 사이의 긴장감 같은 것이 주는 감동으로 더욱 풍성해지는 레퍼토리들이 있다. 전통 기악곡 중에는 정악의 ‘영산회상’, 민속악의 ‘산조’가 그러하다.
비대면 시대의 종말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 다시 열린 공연장에서는 이 두 곡을 꼭 만나보시라 권하고 싶다. 오랜 세월 자연 음향을 추구하며 발전한 우리 전통 악기의 고졸하고도 정갈한 멋을 느끼며, 평화로운 휴식을 만끽할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영산회상 (靈山會上)
(©국립국악원)'
우리 전통 음악은 크게 정악과 민속악으로 구분하는데, 궁중 음악과 민간의 상류층이 향유했던 음악을 통틀어 정악正樂이라 한다. 정악은 신분의 구분 없이 두루 즐겼던 민속악에 비해 들을 기회가 흔치 않은,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다소 낯선 음악이다.
그중 ‘영산회상’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즐기던 풍류 음악으로 현악기가 중심이 되어 ‘현악영산회상’, ‘줄풍류’, ‘거문고 회상’이라고도 불린다. 본래의 곡인 상영산과 상영산의 변주곡인 중영산, 삼현도드리를 변주한 하현도드리 등 몇 개의 곡과 그 변주곡들을 이어붙여 총 아홉 곡을 연주하는 독특한 형식의 모음곡이다.
영산회상은 선비들의 사랑방에서 연주되었던 음악인만큼 소리를 낮추어 섬세하게 연주한다. 소리가 작은 세피리, 단소와 함께 거문고, 가야금, 대금, 해금, 장구가 연주에 쓰이며 양금이 더해지기도 한다. 세피리보다 소리가 큰 향피리를 편성하는 ‘평조회상’이나 향피리, 대금 등 관악기가 힘있게 선율을 이끌어가는 ‘관악영산회상’의 웅장한 연주와는 차이를 보인다. 평조회상은 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연주하는 곡을 이르며, 관악영산회상은 영산회상을 관악기 중심으로 편성해 연주하는 곡이다. 두 곡 모두 영산회상 아홉 곡 중 ‘하현도드리’는 빼고 연주한다. 이처럼 영산회상은 악기 편성을 달리하거나 가락에 변화를 주거나 혹은 몇 곡을 더하거나 뺀 파생곡들로 확장된다.
또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악기가 독주곡으로 또는 몇몇 악기의 앙상블로 영산회상을 연주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악방송은 ‘줄풍류영산회상 프로젝트’를 통해 다채로운 악기 편성으로 연주한 영산회상을 시리즈 음반으로 냈다. 국악방송 누리집(www.igbf.kr)의 자료 공간에서 그 일부를 들어볼 수 있는데 「이세환 거문고」, 「이세환 거문고 황규일 대금」, 「여덟 악기의 조화」 이 세 음반의 첫 곡인 상영산 1장만 비교해 들어봐도 영산회상의 독주와 중주, 합주가 각각 어떤 매력을 지니는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상영산으로 느리게 시작하는 영산회상을 선비들이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들은 수양 음악쯤으로만 여기면 서운하다. 중영산과 세영산으로 가며 닮은 듯 다른 선율로 변주된 음악은 장단을 달리하며 점점 빨라진다. 도드리를 돌아들어 타령과 군악으로 가면 도포 자락 안에 깊숙이 묻어 두었을 선비들의 흥이 넌지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참으로 은근하고 꿋꿋하게 느껴지는 흥겨움이다.
산조 (散調)
(©국립국악원)'
‘민속 음악의 백미’, ‘민속 기악의 꽃’,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선율’, ‘무궁무진한 가락의 보물창고’. 모두 산조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산조는 조선 후기에 생긴 기악 독주곡으로 굿 음악에서 비롯된 시나위에 연원을 둔다. 굿 연행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연주하던 기악 합주곡 시나위를 독주곡처럼 연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얼개를 짜고 선율을 얹어 다듬어 마침내 산조가 만들어졌다. 산조는 대개 4-6개 장단으로 구성되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 판소리처럼 장단을 담당하는 고수가 있는데 북 대신 장구로 반주한다.
산조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가야금 산조로 알려져 있다. 두 번째로 세상에 나온 거문고 산조는 초기에 환영받지 못하였다. 영산회상을 ‘거문고 회상’이라 부르고 연주의 시작을 거문고로 열었을 만큼 거문고가 선비들의 고매한 풍류를 상징하는 악기였기 때문이다. 거문고 산조는, ‘거문고로 감히…….’로 시작했을 따가운 질타를 받았으나 시대가 변하며 중후하고 묵직한 매력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뒤이어 대금, 해금, 피리 등 선율 악기마다 산조가 만들어졌다.
산조는 정형화된 곡이 아니므로 스승에게 배운 가락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고 연주 기량을 발휘해 인정받으면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지영희류 해금 산조’ 하는 식으로 그 연주자의 이름이 붙은 산조가 탄생한다. 현대에 들어 산조를 악보로 남기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산조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한 반면 산조의 즉흥성과 창작성을 잃게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산조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러 형태의 산조 합주와 산조를 소재로 한 창작곡,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 산조 등 흥미롭고 색다른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은 명인들의 가야금 산조에서 권태로움을 맛보았다는 감상을 남긴 바 있다. 위대한 예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낮고 느린 소리의 나른함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억제된 정열과 오기, 기예가 그들의 가야금에 있었다고 했다.
줄풍류의 신명, 산조 자진모리의 권태로움. 무엇이라도 더불어 새봄을 열기에 좋지 아니한가.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1-02-19 1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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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코로나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요즘, 우리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제는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회의, 학습 이제는 공연까지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코로나가 가져온 놀라운 변화 중 하나이다. 덕분에 요즘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로 소파에서 편안히 공연을 접하고 있다는 것은 예기치 않게 누리는 작은 사치이다. 플랫폼의 변화로 좁혀진 거리감은 상대적으로 공연 문화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도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된다. 이에 세계 공연 단체들은 앞다투어 온라인 관객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s://www.wienerphilharmoniker.at>
1940년부터 매해 1월 1일에 열리는 비엔나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새해를 축하하며 왈츠와 폴카를 연주하는, 매년 많은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아 온 공연이다. 특히 매해 신년음악회의 앙코르는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어우러져 모두가 함께하는 분위기에서 막을 내리는 것이 전통 아닌 전통이었다. 그러나 2021년 신년음악회에 라데츠키 행진곡은 있었지만 관객의 갈채는 없었다. 신년 음악회 역사 상 처음으로 무관객으로 공연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90여 개국의 5000만 명의 관객이 공연을 관람했지만 그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공연장만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도 마찬가지였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디지털 콘서트홀이라는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신년 음악회를 송출했다. 디지털 콘서트홀은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자체적으로 공연 온라인 스트리밍만을 위해 만든 플랫폼으로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높은 퀼리티의 공연을 전세계에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두 공연 모두 관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공연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수 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관객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기분 좋은 피로감을 과연 무관중 공연에서 채울 수 있을까?
공연 관계자로서 무관중 공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순수하게 새로운 플랫폼의 활성화를 축하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음을 감사해야할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으로 공연의 주체인 연주자에게 무관중 온라인 공연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 질문에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백주영씨는 “공연이란 관객과 연주자가 하나 될 때 완벽한 무대가 만들어진다”며 "연주는 관객에게 주는 ‘선물’같은 개념인데, 같은 공간에서 ‘선물’을 줄 상대가 없으니 교감을 형성하기가 힘들다"고 답변했다. 아름다운 음악을 면대면으로 나눌 상대가 없으니 연주하며 느끼는 무대의 희열도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무엇보다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같은 공간에서 음악을 느낄 때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나간다고 강조했다.
배우이자 공연기획자인 송승환씨 역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공연의 묘미는 현장성에 있다. 공연을 온라인으로 중계한다? 그런 얘기하는 이에게 나는 생선회를 통조림에 넣어서 팔 수 있냐고 반문한다. 다른 나라를 증강현실로 본다고 직접 여행 가서 느낀 공기와 냄새, 사람들의 체취, 느낌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겠나.”
<사진 출처 : https://www.wienerphilharmoniker.at >
공연장은 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며 공연의 현재를 느끼는 곳이다. 공연장에서 살아 숨쉬는 ‘현장감’을 느끼는 것과 제한된 시청각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동일하다고 말하는 것은 나무 한 그루를 두고 숲이라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2020년에는 공연뿐만 아니라 학습까지 1년 내내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며칠 전 아이와 오랜만에 새 학년 교과서를 받으러 학교에 갔다. 컴퓨터 화면에서만 만나던 같은 반 친구들과 온기를 느끼며 직접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아이는 소풍가기 전날처럼 내내설렌 모습이었다. 교과서를 받는 짧은 시간 내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친구들을 찾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학교 쪽을 자꾸만 뒤돌아 봤다. “엄마, 아까 내 친구가 있었던 것 같던데...”라며.
어쩌면 누군가는 온라인 수업의 장점을 두고 학교를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옷도 갈아입을 필요 없이 컴퓨터를 켜면 바로 교실이다. 아침마다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으니 부모 역시 진을 뺄 일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관중 공연에서 느꼈던 것처럼 아이들도 분명히 느끼고 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을.
온라인 공연과 온라인 학습은 큰 맥락에서 동일하다. 제한된 시청각, 교육과 음악만이 줄 수 있는 의미의 부재.
공연 시간에 늦지는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함,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제 시간에 도착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좋아하는 사람과 공연장에 들어가 좌석을 찾는 시간, 공연이 끝나고 나와 헤어지기 전까지 방금 전의 감동을 이야기하다 기분 좋은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특별하지만 당연했던 일상. 선생님, 친구들과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방과 후 교실에서 사슴벌레와 달팽이를 가지고 와 엄마를 놀래는 ‘당연했던, 그래서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일상이 그립다.
우리는 그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쌓였을 때 만들어지는 정서적 공감대. 온라인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냄새와 온정을 연주자, 관객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1-02-09 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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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멜로디는 정말 귀에 익숙한데 무슨 영화의 OST인지, 아니 영화음악인지 아닌지조차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곡이 있다. 고전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문 리버’도 그런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하, ‘티파니’)’(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 1961)은 트루먼 카포티 원작,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 오드리 햅번 주연 등 크레딧 만으로도 당시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세월을 뛰어넘는 유명세에 있어서만큼은 영화 첫 신부터 마지막까지 다양한 편곡으로 연주되는 테마음악에 밀린 것 같다. 여주인공, ‘홀리’(오드리 햅번)가 직접 노래를 불러야 했기에 철저히 오드리 햅번의 음역과 음색에 맞춰 작곡된 노래임에도 말이다.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한 헨리 맨시니는 1950년대부터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했지만 노래 작곡가로서의 역량은 입증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작사에서도 처음에는 그에게 ‘티파니’의 스코어 작곡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맨시니가 이 곡을 감독과 프로듀서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들은 이 노래야말로 홀리의 인생과 영화의 분위기를 함축한 명곡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영화음악이 팝 뮤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맨시니는 ‘문리버’를 적당한 길이로 편집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도록 했고, 그 결과 ‘티파니’는 음반 판매에 성공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맨시니는 오케스트라와 재즈를 보완해 이전까지 영화에서 잘 들을 수 없었던 종류의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작곡가다. ‘티파니’에서도 그는 악기수를 많이 줄이는 시도를 했는데, 세 개의 노트로 이루어진 소박한 멜로디의 느낌과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 홀리의 상처와 피로감이 잘 묻어나는 가사까지 얹어지면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명품 드레스를 입은 시골 처녀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데에도 조니 머서가 쓴 서정적 가사의 역할이 크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티파니’ 속 햅번의 목소리로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윤성은의 Pick 무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도, ‘소울’
코로나19 1년. 팬데믹이 바꾸어 놓은 것이 비단 우리의 일상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들과 명절을 보낼 수 없고, 영화관에서 연인의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실 수도 없고, 여행의 기쁨도 누릴 수 없었던 나날들 속에 사람들의 인생관은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가 지금 꿈꾸어야 할 ‘뉴노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삶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늦게까지 음식을 나누거나 마음껏 소리 지르며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 예전에는 잘 몰랐던 그 시간의 소중함에 흠뻑 감동하는 날들 말이다.
픽사의 신작, ‘소울’(감독 피트 닥터, 2015)의 메시지는 코로나19의 교훈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픽사는 첫 장편이었던 ‘토이 스토리’(감독 존 라세터)부터 지금까지, 인생 좀 아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다. 늘 새로운 기술을 시도할 뿐 아니라 인문학적 주제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는데 큰 역할을 해온 것이다. ‘소울’이 얼어붙은 극장가의 구원투수가 된 것은 이러한 관객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작들이었던 ‘인사이드 아웃’(감독 피트 닥터)이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시각화했고, ‘코코’(감독 리 언크리치, 2017)가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담고 있다면, ‘소울’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 시공간들에 대한 21세기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유 세미나’로 불리는 생전의 세계에서는 천사나 황새의 도움 대신 생명체들이 별똥별 떨어지듯 지구로 뛰어내린다. 대신 그 전에 그들은 경험이 풍부한 멘토를 만나 각자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평생 소원해왔던 재즈 클럽 연주를 앞둔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유 세미나로 떨어진다. 그가 가슴 속의 ‘불꽃’을 찾아주어야 할 멘티는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22’(티나 페이)다. 마음이 다급한 조는 통행증을 만들어 자기에게 주면 유 세미나에 계속 머물 수 있다고 22를 설득한다. 의기투합한 두 인물은 지구로 떨어지는데, 하필 병원에 있던 조의 몸 속에는 22가, 치료 고양이의 몸 속에는 조가 들어가게 된다. 인간의 몸으로 지구를 처음 경험하게 된 22와 고양이가 된 조의 모험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유쾌하다.
‘소울’에도 어른들의 코 끝을 찡하게 만들 만한 주제가 들어있다. 삶에 대한 목표가 어떤 직업이나 특정 이벤트, 혹은 물질에 있다면, 그것을 막상 이루었을 때 허무함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생애 최고의 연주를 마치고 난 후, 조는 그토록 꿈꿔왔던 무대에 매일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조가 연주하는 순간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 또한 지루한 일상 정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22가 그랬듯 코 끝을 간질이는 피자 냄새, 부드러운 바람이 뺨에 닿을 때의 감촉처럼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보는 것,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1-02-09 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