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난 슬퍼질 때마다 야한 상상을 해”
창작 뮤지컬의 신화, 뮤지컬 ‘레드북’이 새로운 프로덕션과 함께 돌아왔다. 이보다 앞서 또 다른 히트작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선보였던 작가 한정석과 작곡가 이선영 콤비가 다시금 의기투합해 만든 뮤지컬로, 2016년 창작산실 ‘올해의 뮤지컬’에 선정된 후 본격 개발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2018년 본 공연 개막 당시 관객들과 평단으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더 큰 가능성을 인정받은 작품은 3년 뒤 규모를 키워 지난 6월 서울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관객들과 반갑게 재회했다. 디테일한 무대 연출과 의상에 변화를 주며 몰입감을 극대화한 이번 시즌 공연에는 차지연과 아이비, 김세정, 송원근, 서경수, 인성 등이 캐스팅돼 또 한 번 기대를 모았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적당히 발칙한 이 작품엔 아주 특별한 매력이 있다. 우선 전통적인 여성상과 달리 당차고 외향적인 성격을 지닌 여주인공과 의도치 않게 그 매력에 푹 빠져들고 마는 남주인공, 그리고 저마다 하나둘씩 속 깊은 사연을 품고 있는 조연들까지 누구 하나 뺄 수 없이 애틋한 캐릭터들이 바로 그 주역이다. 로맨틱 코미디답게 알콩달콩한 전개가 펼쳐지다 극적인 순간 위기 상황이 찾아오지만, 서로를 향한 믿음과 응원을 바탕으로 결국 극복해내는 과정도 좋다. 또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함으로써 앞으로 달라질 미래를 꿈꾸게 만든다.
뮤지컬 ‘레드북’은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을 감내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 안나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과정을 그렸다. 음악과 함께 막이 오르면 객석을 채운 관객들은 문제의 서적 ‘레드북’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공연사진 1 <제공 : 아떼오드>
작품의 배경이 된 영국 빅토리아시대 여성은 직업을 갖거나 유산을 상속받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가 파혼을 당한 후 가족마저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안나에게 세상은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지극히 보수적인 사회에서 그저 보통 여성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괴짜 소리를 들어야 했던 안나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확인하길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안나가 모셨던 바이올렛의 손자 브라운이 할머니의 유산 상속 문제로 안나를 찾아온다. 신사 중의 신사답게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변호사 브라운도 처음에는 안나의 남다른 행보에 고개를 젓지만, 어느덧 그 순수한 마음을 응원하게 된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에서 온전히 행복할 수 있었던 안나는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는 여성문학회 ‘로렐라이 언덕’ 회원들을 만나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가 꿈꾼 건 다름 아닌 성인 소설 작가였다. 티 없이 맑은 시대에 과감히 얼룩을 남기기로 한 이들은 글로써 점차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랑잎이 비에 젖듯, 서로 너무나 달랐던 안나와 브라운의 사랑도 자연스레 싹을 틔운다.
세상이 던진 차가운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쏟아지는 편견과 비난 속에서 오로지 자기 길을 찾아가는 안나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본능에 충실한 것이 여성에게만큼은 죄악시되던 분위기를 거부하며,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여겨질 때까지 닫힌 문을 두드리고자 했던 의지도 빛이 난다. 그러던 안나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 노래하면서 눈물 고인 얼굴로 객석을 바라볼 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정이 솟구치는 느낌을 주체할 수 없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감정들은 마치 차곡차곡 넘겨진 책장처럼 모여 ‘레드북’이란 한 권의 멋진 책을 완성했다.
공연사진 2 <제공 : 아떼오드>
어쩌면 이런 안나의 모습이 처음엔 엉뚱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공연을 보는 동안 관객 대부분은 아마도 브라운의 시선을 따라 안나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막막한 상황 속에서 갑자기 올빼미 소리를 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과감한 상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안나를 이해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보다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안나의 솔직함이 점차 이해되기 시작한 순간부터 놀랍게도 그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어느새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한 브라운처럼, 결국 관객 역시 이토록 자유롭고 매력이 넘치는 안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야 만다.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보더라도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현실 속에서 뮤지컬 ‘레드북’은 앞으로 모두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에 적잖은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서로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며 조금씩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어떤 사회든 더 건강하고 희망찬 내일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진짜 이야기 역시 언젠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앞으로 뮤지컬 ‘레드북’이 써 내려갈 새 역사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1-08-03 11:13 |
![]() |
[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어법
무더운 여름, 코로나 4차 대유행 진입 소식에 요즘 만난 지인들이 힘이 빠진다며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든다. 직관적으로 떠오른 아르보 패르트라는 작곡가의 작품 Spiegel in Spiegel(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곡을 몇 분께 추천드렸다. 오래전 이 작품을 처음 듣고 묘하게 심리적 답답함이 무장해제되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은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고 한다.
종을 바라보고 있는 아르보 패르트 (출처 estonianworld.com)
덥수룩한 수염에 마치 속세를 떠나 있는 구도자같은 외모가 시선을 사로잡는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어울릴법하게도 그는 미니멀리즘 작곡가들 중에서도 '영적 미니멀리스트(Holly minimalist)'로 불린다.
1960년대 미국에서 등장한 미니멀리즘 운동에 참여했던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같은 작곡가들은 복잡함을 게워내고 음악의 단순성을 추구하며 반복적인 구조가 돋보이는 음악을 썼다. 당시 널리 퍼져있던 Serialism(음렬주의)의 생경한 음악과는 대조를 이루며 많은 대중들이 반겼을 터. 필립 글래스같은 작곡가는 할리우드의 상업영화까지 아우르며 클래식을 뛰어넘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했다. 그 뒤를 이어 미니멀리즘의 미학은 요한 요한손,막스 리히터와 같은 예술성은 물론 폭넓은 대중성까지 확보한 작곡가들에의해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아르보 패르트와 같은 '영적' 미니멀리스트는 그들과 뭐가 다를까. 반복과 변주의 미니멀리즘이라는 형식은 비슷하지만 먼 과거로 회귀해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음악을 탐구하며 인간 내면의 영성에 다가가는 음악어법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1935년생,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도 사실 처음엔 동시대의 작곡가들처럼 복잡한 음렬주의 사조에 동참했다. 에스토니아에서 첫번째 12음기법 작품을 내놓을 정도로 말이다. 그에게 전환점이되는 작품을 쓰게된 계기는 성경의 한 구절이었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기독교 정신을 담은 크레도(1968)라는 작품은 호평을 받았지만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있던 에스토니아에서 금지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종교음악을 적대시했던 소비에트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그 시기부터 그는 공식적인 작곡활동을 자제하고 중세시대의 그레고리안 성가와 르네상스의 다양한 종교음악들을 탐구하며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한 심층적 음악세계를 구축하였다 . 그리고 1972년 그는 루터교에서 러시아정교회로 개종하면서 특유의 교회적 색채와 신비감을 더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단순히 고리타분한 과거의 종교적 색채가 담긴 음악이라고 치부하기엔 그의 음악에대한 반응은 압도적이었다. 2019년 영화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에게 그 왕좌를 빼앗기기까지 아르보 패르트는 전세계의 현존하는 현대음악 작곡가들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였으니까.
그 비결은 무엇일까. '침묵'이라는데 답이있다. 그는 침묵에관해 자주 언급했으며 한 인터뷰에서 " 침묵은 경외감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의 중심엔 틴티나불리(Tintinnabuli)라고 불리는 그 만의 작곡기법이 있다.
아르보 패르트가 창시한 틴티나불리의 두 성부
틴티나불리는 라틴어로 '종들'이란 의미다. 종은 화려한 멜로디가 아닌 절제된 '울림'의 개념이 강하다. 한음이 때론 청명하게, 떄론 묵직하게 울리고, 사라지는 여운속에 다음 음이 뒤를 잇는다. 음과 음 사이의 행간은 배음과 잔향이 어우러진 일종의 '여백'인 것이다. 울림과 여백의 반복이다.
아르보 패르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종의 울림을 가장 심플한 3화음으로 표현했으며 간결한 온음계 멜로디를 얹어 놓았다. 그리고 이 두 성부가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가는 음악어법이 틴티나불리다.
사실 어떻게보면 너무 쉬운음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그렇지않다. 그 안에는 수학적 질서가 숨어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틴티나불리가 그저 뻔한 감상적인 음악어법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 엄격한 룰 안에서 어떻게 화성이 멜로디 라인과 움직이는지를 디자인했으며 그 엄격함에있어 음렬주의에 비견할만하다"라고 평했다. 그의 음악을 분석해보면 단순한 두 성부의 조합을 여러 포지션으로 변주하여 적용해가는 구조가 치밀하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러 음악을 듣다보면 불필요한 많은 음들을 때문에 듣기 버거운 곡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아르보 패르트는 평소에 그의 음악에서 '음 하나'가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서 음과 음 사이의 행간은 우리를 고요한 심연의 세계로 끌어당긴다.
아르보 패르트의 말이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침묵은 길어야 한다. 이 음악은 침묵에 관한 것이다. 소리는 침묵을 둘러싸고있을 뿐이다".
Spiegel in Spiegel (거울 속의 거울)은 거울의 반사를 통한 무한한 공간 즉 '영원'을 담아냈다. 1978년 에스토니아를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작곡한 작품이다. 영화<그래비티>,<어바웃 타임> 등에 삽입될 정도로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피아노는 아르페지오로 청명한 종소리를 연상시키듯 평화롭게 3회음을 연주하며 그 위에 유영하는 정갈한 멜로디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단선율을 연상시키며 음 하나하나 인간 내면에 돌을 던지듯 고즈넉한 파문을 일으킨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1-07-29 13:25 |
![]() |
[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대략 98억년 동안 인간들을 겁주며 살아오던 존재가 있다. 이름은 비틀쥬스(Beetlejuice). 우리말로 풀어서 말하자면 딱정벌레 쥬스쯤 된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홀로 외롭게 지낸지도 이미 수억년, 자신처럼 오도 가도 못하는 유령 친구가 절실하다는 결론을 얻는다. 어느 날 그의 눈에 이제 갓 죽은 부부 바바라와 아담이 포착된다. 그들이 저승으로 직행하지 못하도록 ‘막 세상을 떠난 망자들의 안내서’를 감추고, 그들이 살던 집의 지박령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다. 한편, 이 시골 저택은 새로운 주인-엄마와 사별한 리디아, 그녀의 아빠 찰스 그리고 리디아를 돌보다가 아빠의 새로운 연인이 된 델리아-을 맞게 된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보게 만들려면 살아있는 인간이 그의 이름 ‘비틀쥬스’를 세 번 불러줘야 한다. 그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언급해선 안 되고, 반드시 연이어 불러야 한다. 과연 비틀쥬스는 이 소동의 승자가 될까? 리디아는 죽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또 아담과 바바라의 운명은 어찌 될까? 새롭게 막을 올린 뮤지컬 ‘비틀쥬스’의 줄거리다.
원작은 1988년 개봉됐던 괴짜감독 팀 버튼의 동명 타이틀 영화다. 원래 영화제목이 ‘비틀쥬스’였지만, 1989년 처음 우리나라에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되었을 때는 ‘유령수업’이란 제목이 쓰였다. 사실 비틀쥬스라는 이름은 오리온자리의 알파성인 베텔게우스(Betelgeuse)를 스펠링대로 발음되는 대로 읽은 것이라는 후문도 있다. 뭔가 미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하면서도 기괴한 존재라는 설정인 셈이다.
영화는 1,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글로벌 박스 오피스에서 7,37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 그때까지만 해도 신인감독에 불과했던 팀 버튼을 일약 스타덤에 등극시켰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도 세간에 신드롬이 될 정도로 화제였는데, 연기파 배우로 유명한 델리아 역의 캐서린 오하라나 아빠 찰스 역의 제프리 존스, 순진한 유령 부부로 나왔던 알렉 볼드윈과 지나 데이비스, 저승 심판관 주노 역의 전설적인 여배우 실비아 시드니, 풍만한 몸매(?)로 여러 작품들에서 약감의 감초같은 조연 역할을 잘 소화해내던 오소 역의 글렌 쉐딕스까지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주인공으로 나왔던 비틀쥬스 역의 마이클 키튼이나 리디아 역의 위노나 라이더는 이 영화로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도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뮤지컬은 물론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이다. 워싱턴 내셔널 극장에서 트라이 아웃 공연을 거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캣츠’와 ‘맘마미아!’가 상연됐던 윈터 가든 극장에 2019년 4월 25일 첫 둥지를 틀었다. 장기 공연될 것으로 예측되던 이 작품은 그러나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브로드웨이의 모든 극장들이 문을 닫자 2020년 3월 10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팬데믹이 지나가면 다시 막을 올릴 것이 기대되는 흥행작 1순위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사진제공 세종문화회관>
뮤지컬 ‘비틀쥬스’는 스캇 브라운과 앤서니 킹이 공동 집필했으며, 뮤지컬 ‘킹콩’으로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주목받은 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에디 퍼펙트가 작사 및 작곡을 맡았다. 연출로는 뮤지컬 ‘물랑루즈’로 흥행파워를 입증한 알렉스 팀버스가 참여했으니 요즘 표현으로 ‘핫’하고 ‘힙’한 브로드웨이 황금 제작진의 작품이라 인정할 만하다. 여기에 ‘해밀턴’, ‘디어 에반 핸슨’ 등 매년 새로운 작품으로 토니상을 휩쓰는 데이비드 코린스가 무대 디자인을 만들었고, 뮤지컬 ‘라이온 킹’의 마스크와 인형들을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퍼펫 디자이너 마이클 커리까지 가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주인공 비틀쥬스로 나왔던 알렉스 브라이트만도 단연 이슈의 중심이었다. 그는 바로 직전 같은 극장에서 막을 올렸던 전작 무비컬 ‘스쿨 오브 록(School of Rock)’에서 록 음악에 미친 괴짜이자 가짜 선생 드위 핀 역으로 열연을 펼쳐 토니상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인기 배우다. 이 작품 ‘비틀쥬스’에서도 영화 못지않은 괴짜 주인공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재연해 절대적인 추앙과 팬들의 사랑을 집중시켰다. 이미 극장 환경이 익숙한데다 애드립도 많은 스탠딩 코미디같은 작품의 성격이 그의 재능과 맞물려 큰 상승효과를 일으킨 셈이다. ‘비틀쥬스’에서의 활약으로 토니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다시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수상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유령을 볼 수 있는 겁 없는 10대이자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리디아 역으론 소피아 앤 카루소가 등장했다. 2001년생인 그녀가 이 작품에 합류할 때 나이는 불과 18살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데뷔가 이미 2013년 12살의 나이때 이뤄졌다는 점이다. 다양한 작품에서 가히 천재소녀의 모습을 보여준 재원이라 부를 만하다.
뮤지컬은 영화를 재연했다기보다 영화와 효과적인 차별화를 통해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추구하고 있다. 세세한 줄거리나 극 전개도 그래서 영화와는 사뭇 다른데, 덕분에 영화를 추억하는 사람들에게 뮤지컬은 다시 신선하고, 뮤지컬을 본 사람이라면 영화를 꼭 다시 보고 싶어지는 재미를 담아내게 됐다.
<사진 제공 CJ EMN>
2021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막을 올린 한국어 공연은 미국 이외의 국가나 문화권에서는 처음 시도된 글로벌 확장 버전이다. 원작 제작진의 배려로 한국적 유머도 대폭 가미되어 우리말의 재미도 물론 잘 담아냈다. 주인공 비틀쥬스로는 유준상과 정성화가 캐스팅됐다. 특히, 개그맨 출신인 정성화는 마치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찰떡궁합의 무대를 선보인다. 물론 연기파 배우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유준상 역시 꽤나 만족스런 무대를 만들어낸다. 유령 특훈을 받게 되는 겁 많고 소심한 신참 유령 아내 바바라 역으로는 김지우와 유리아가, 작고 귀엽지만 당차고 에너지 넘치는 리디아 역으로는 홍나현과 장민제가, 바바라의 남편인 아담 역으론 이율과 이창용이, 가정교사 겸 새엄마 역인 델리아 역으로는 신영숙과 전수미가 등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건 앙상블이다. 쉬지 않고 다양한 유령들(?)로 변해가며 춤추고 노래한다. 치밀하고 꼼꼼한 안무와 동선은 근래 봤던 어떤 라이선스 뮤지컬보다도 높은 완성도를 선보인다. 비주얼적인 완성도, 화려한 세트, 자동화 장치와 기상천외한 소품은 이 작품의 명성을 고스란히 재연해낸다.
왜 뉴욕 타임즈가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재미있는 집(Fun house)”이라고 했는지, 또 롤링 스톤스가 “마치 끝내주는 놀이기구처럼 관객들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놀라게 하는 작품, 흥이 폭발하는 즐거운 시간!” 같은 표현을 썼는지 무대를 만나면 금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특히, 팬데믹의 혼란 속에서 웃을 준비 아니 작정을 하고 공연장을 찾은 이들의 열광적인 박수 소리는 왠지 찡한 감동마저 느끼게 만드는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올 여름 놓치면 제일 후회될 기분 좋은 뮤지컬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1-07-23 10:01 |
![]() |
[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예술권력을 흔드는 MZ세대의 도전, 아트플랫폼 레볼루션”
최근 들어 플랫폼 비즈니스가 각광이다. 아티스트를 대중과 연결하는 ‘아트 플랫폼’은 젊은 MZ세대들의 온라인·모바일 라이프스타일과 코로나 이슈 속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10여년의 기간 동안 앱 기반의 플랫폼은 기하급수적인 수량만큼 자기혁신을 거듭해 왔다. 과거 아날로그 감수성을 기반 한 음악공연과 미술전시는 ‘온라인플랫폼’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잘나가는 음악가들의 가상공연이 현실이슈보다 부각되고, 블루칩 작가들이 온라인플랫폼을 통해 거래되는 현상을 주도하는 이들은 대개 청년 스타트업 회사들이다. 대형기획사와 전속갤러리로 움직이던 예술권력에 도전하는 오늘의 신(新) 문화현상에 주목해보자.
스타트업과 연계된 ‘플랫폼 레볼루션’의 시대
프랑스어 plateforme을 어원에 둔 플랫폼(platform)은 다른 곳으로 진출하기 위해 이용하는 발판이자 수단을 뜻한다. 대개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창출을 하도록 연결하는 ‘매개 비즈니스’이다. 예를 들어 음악회나 미술작품을 실연, 창작하는 아티스트들을 대중들과 연결하는 ‘인터파크 예약 시스템’ 같은 것이 1차적 성격의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대중참여를 이끌기 위해 인프라를 개방하고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취향을 수집(빅데이터)하여 이를 만족시키는 거버넌스(governance)를 구축한다. 아트플랫폼의 목적은 아트컨텐츠를 매개하여 사회적 통화(자금 혹은 전자화폐 등)를 교환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모든 참여자가 가치를 창출하고 매개 수수료로 영리를 취하는 것이다.
플랫폼의 중요 요소는 예술(예술가)-매개자(플랫폼)-향유자(대중)이다. 컨텐츠를 매개한다는 점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플랫폼은 공연자의 음반이나 아트(콜라보)굿즈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공예품 장터 앱 ‘아이디어스(www.idus.com)’ 같이 상품을 위주로 중계하였다. 더 발전한 형태인 네이버 아트윈도(2016년도 7월 오픈)는 예술가의 원작을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코로나 시대의 대안으로 갤러리라는 물리적 공간을 없애고 대중이 예술작품을 구매하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에 크게 기여해 왔다. 이를 주도하는 네이버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지원을 위해 다양한 신생 플랫폼을 연결하는데, 네이버라이브·아트윈도 등에 다양한 아트플랫폼이 입점하는 식으로 이때 네이버는 ‘온라인 백화점’ 같은 역할을 한다. 새로운 인큐베이터 기능을 하는 플랫폼 가운데 각광받는 것은 미술품을 렌탈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 ‘오픈갤러리’이다.
오픈갤러리는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기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가의 1~3%라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그림렌탈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대미술관에 근무하던 홍지혜 디렉터가 아카데믹한 미술관 권력보다 ‘한집에 그림 한 점’이라는 대중예술의 실현을 위해 경영학회(S&D)를 함께하던 박의규 대표와 공동설립한 대표적인 아트플랫폼 스타트업이다. 그림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홍디렉터는 “원작을 사기엔 비싸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의 그림렌탈 서비스를 이용해 내 공간에서 계절마다 교체해가며 프라이빗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서비스 이용의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일조 7월8일자 ‘아트 인사이트’를 집필한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는 “내 취향·열정 보여줄 수단”으로 미술시장의 디지털化 속에서 X세대를 추월한 밀레니얼 컬렉터들의 급부상 현상에 대해 상세히 다뤘다. 다수의 갤러리들이 ‘온라인플랫폼’과 NFT를 활용한 청년스타트업 회사들과 손잡는 이유도 예술 향유자와 예술을 매개하는 문화가 변화하는 지각변동의 장, 이른바 “아트플랫폼 레볼루션”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아우라가 붕괴된 ‘조각투자’, 예술투자 플랫폼의 다변화
미술시장이 투자 플랫폼과 만나면서 재테크 카테고리에서 떠오르는 ‘조각투자’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전체 작품이 아닌 부분을 나누어 주식처럼 보유하는 조각(piece)을 소유하는 것으로, 비싼 예술작품을 조각내 원하는 만큼 투자해 수익을 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의 경우 저작권을 NFT 방식으로 저장해 그 소유권 조각(일종의 퍼센트 방식)으로 보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과연 아우라가 있는 원본 작품을 쪼개는 것이 가능할까. 과거 직장이나 예술을 ‘획일적/절대적/평생’ 개념에서 이해하던 과거 세대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다.
조각투자는 부동산, 예술작품, 무형의 음악과 기록물에 이르기까지 소유권을 나눠갖는 방식이다. 이 역시 새로운 아트투자 플랫폼의 현상으로, 아직 그 실익여부나 가치판단은 정착되지 않은 ‘진행형’이므로 유보할 부분이지만, 바야흐로 아트 플랫폼의 홍수 속에서 이를 주도할 이들이 기존세대가 아닌, 미래 세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표적인 아트플랫폼 기업으로 음악저작원은 ‘뮤직카우(www.musicow.com)’를 미술작품은 ‘TESSA’를 들 수 있다. “음악이 안정적인 자산이 된다.(Music becomes Cashcow)”를 모티브로 삼은 세계 최초 음악 저작권 거래 플랫폼 뮤직카우는 ‘저작권료 옥션’ 이라는 독특한 서비스를 운영한다. 아티스트의 저작권료 지분 공개를 통해 누구나 음악 생태계 구성원으로서 저작권료를 공동 소유할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의 투자 서비스를 도입했다. 저작권료를 공유한 아티스트는 팬들이 상승시킨 옥션 저작권료를 통해 창작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곡에 대한 팬심을 확인할 수 있으며, 옥션을 통해 해당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해당 곡에 대한 이용에도 영향을 주어 저작권료가 상승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티스트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서비스를 매칭해주는 플랫폼부터 예술가가 자금을 직접 모으는 펀딩플랫폼까지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향유자(수요자)와 연결해주는 신생플랫폼들은 기존 예술권력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자금으로 전환 가능한 거래소의 불안정화와 도박 같은 리스크 속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작게라도 소유하고 싶은 MZ세대의 특성을 활용한 새로운 아트 플랫폼들은 ‘청년 스타트업’과 함께 계속해서 새로운 변화를 선도할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1-07-22 09:43 |
![]() |
[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극장가를 흉흉하게 만든 코로나 시대에도 꽤 꾸준히 개봉한 장르가 있으니, 스릴러와 호러다. 상대적으로 충성도 높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공포를 뚫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적지 않다. 이제 무더위기도 기승이고, 백신 접종률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런 장르의 영화들은 더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대 스릴러 영화에서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향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제는 클래식으로 불리는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들은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식에 있어 말 그대로 교과서적이다. 환경과 사회는 많이 달라졌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변하지 않았기에, 소위 ‘히치콕 스타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버나드 허먼은 ‘현기증’(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1963) 등을 함께 한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히치콕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만큼 버나드 허먼의 음악이 히치콕 영화들에서 갖고 있는 지분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이코’의 오프닝 타이틀 음악에서 버나드 허먼은 현악기의 날카로운 고음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영화의 장르와 톤 앤 매너는 물론 범인의 정체까지도 암시한다. 그만한 일반적인 공포심이 아니라 심리적 불안감을 조장하고 히스테리를 유발하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저 유명한 샤워실 살인장면에서는 현대 영화음악에서 더 많이 사용하게 된 기법이 엿보이는데, 살인마가 여성을 난도질 하는 행위를 모사한 것 같은 짧고 강렬한 사운드를 사용했다. 이 테마는 두 번째 살인에서도 반복되는데 이 때는 보다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새를 박제하는 취미를 가진 범인의 정체가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다음 장면에 대한 복선을 깔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놓치지 않는 그의 음악은 장르영화 연출가들에게 히치콕의 작품이 그런 것처럼, 동시대 영화음악 작곡가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히치콕과의 오랜 콜라보레이션이 너무 유명한 탓에 허먼의 다른 작업들은 자주 언급되지 않지만 그는 사실 숱한 명작들의 음악에도 참여했다. 할리우드 영화사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종종 으뜸으로 꼽히는 ‘시민케인’(오손 웰즈, 1941)은 그의 영화 데뷔작이며, 누벨바그의 기수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검은 옷을 입은 신부’(1967)에서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1975)는 그의 유작으로, 허먼은 이 작품의 음악을 완성하고 래리 코헨 감독과 저녁을 먹으며 차기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호텔로 돌아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가 일평생 음악으로 연출해왔던 영화들만큼 극적이면서도 치열하게 작업했던 대가에게 걸맞는 숭고한 임종이었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나이 드는 것이 두려운 당신에게, ‘웬디’
어린 시절, 웬디가 피터팬의 그림자를 꿰매주고 남동생들과 함께 네버랜드로 날아가는 이야기에 가슴 설렜던 이들에게는 ‘피터팬’을 재해석한 벤 자이틀린 감독의 ‘웬디’(2020)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기차와 배를 타고 가는 네버랜드, 노인들이 등장하고 팅커벨은 없는 ‘피터팬’이라면 낯선 것이 당연하다. 제임스가 후크선장이 되는 과정은 꽤 잔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초반의 생경함을 견디고 나면 ‘웬디’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각색영화의 세계를 맛보게 해줌과 동시에 새로운 영화적 경험까지 선사한다.
9년 전, 장편 데뷔작 ‘비스트’(2012)로 전세계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던 벤 자이틀린 감독은 모두가 알고 있는 동화에 환경과 인간의 교감이라는 자신의 관심사를 접목해 다시 한 번 훌륭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영화에서 점점 더 연출가의 개성이나 독창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에 반드시 주목해 봐야 할 작품이다.
어린 웬디는 식당을 하는 엄마를 돕고 있다. 엄마와 쌍둥이 형제(제임스와 더글라스)를 사랑하지만 이 작은 마을에서 엄마의 인생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것, 이대로 아무 모험도 해보지 못한 채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끔찍하게 느껴진다. 어느 날 밤, 웬디는 기차 위에 탄 흑인 소년, 피터팬을 발견하고 형제들과 함께 그를 따라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섬이다. 웬디는 나이 들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신비한 세계를 경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이 곳에는 마음에 근심이나 슬픔이 가득해지면 금방 노인으로 변해 버리는 무서운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 아이들의 리더격인 피터팬은 겉모습도, 행동과 사고방식도 변해 버린 사람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그가 아니라며 노인들을 배척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글라스가 사라지고 제임스가 늙어가기 시작하자 웬디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다.
제목이 암시하듯 웬디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 영화에는 환경 및 자연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 있으며, 성별과 인종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자연과 문명의 길이 충돌하면서 그 접점을 찾아나가는 것처럼 어린이와 노인도 그 간극을 극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후반부는 더욱 감동적이다. 벤 자이틀리 감독이 창조한 피터팬은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위대한 모험이다.’ 이는 곧 마흔 살을 눈 앞에 둔 감독의 고백이기도 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우리의 일상은 어쩌면 하루하루 위대한 모험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득 가속도가 붙는 세월과 자신의 나이, 노인으로서의 삶이 두렵게 느껴지는 모든 연령층의 관객에게 추천한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1-07-22 09:15 |
![]() |
[문화] 국악 Prologue!
국악 프롤로그가 일 년을 채웠다. 열두 번에 걸쳐 소개한 스물네 개의 국악은 국가나 시도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재 종목을 우선순위로 하되, 비전공자로서 처음 접했을 때 인상 깊었던 레퍼토리 위주로 골랐다. 궁중 음악과 춤, 민간에서 연행되었던 음악과 춤, 연희 등 갈래별 배분도 염두에 두었다. 감동과 재미를 주고 때로는 위안이 되었던 국악의 낱낱을 소개하고 싶었으나 매번 노려보다 내려놓고 만 주제들도 있다. 창작 국악, 퓨전 국악 등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국악’도 그중 하나다. 국악은 전통 공연 예술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이지만 오늘날의 국악은 전통 음악과 춤으로만 한정 지을 수 없다. 경계를 허물고 더 큰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국악방송이 주관해 온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이하 한국음악프로젝트)’는 전통 음악에서 출발해 한국 음악으로 나아가는 예술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 일조해왔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신진 예술가들은 전통 음악의 가능성을 증명해내는 한편, 자신들의 존재와 음악을 세상에 알렸다. 제1회 대회 대상을 거머쥔 프로젝트 락樂의 ‘난감하네’가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최초의 국악아카펠라 그룹 토리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소개된 바 있는 숨[su:m]과 고래야, 영화 해어화에 수록된 ‘사랑 거즛말이’의 원곡을 부른 정가 앙상블 소울지기를 비롯해 정민아, 차승민, 고영열, 장서윤 등 왕성히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이름을 역대 수상자 명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도밴드는 프랑스 서부 해변의 파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바다’라는 곡으로 2018년 한국음악프로젝트 본선 무대에 섰다. 이때만 해도 서도밴드의 절반 정도는 피리, 가야금 등 국악기 연주자로 꾸려졌다. ‘바다’는 동서양 악기의 풍성한 선율과 다양한 리듬이 어우러지며 듣는 이를 이채로운 풍경 속으로 이끄는 곡이다. 이후 서도밴드는 자신들만의 영역을 개척해나간다. 밴드 구성을 단출하게 하고 자신들의 장르를 ‘조선팝’이라 명명한다.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는 비록 장려상에 그쳤으나 이듬해 차례로 열린 대한민국대학국악제와 KBS 국악신예대상에서 모두 대상을 차지했다.
방송과 공연을 통해 선보인 ‘사랑가’와 ‘이별가’, ‘언제까지’, ‘내가 왔다’ 등은 판소리 춘향가에서 가져왔으나 언뜻 들으면 팝이나 재즈밴드의 음악 혹은 뮤지컬 OST처럼도 들린다. 최근 발표한 첫 음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만의 색깔로 변주한 민요 강강술래와 뱃노래를 함께 실었는데, 주로 클래식이나 팝 음반을 내는 유니버설뮤직에서 발매되어 주목받기도 했다.
경로이탈은 2019년 한국음악프로젝트의 대상 수상 팀이다. 팀 이름에서부터 추구하는 바가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경로 이탈의 다음 단계는 새로운 경로의 탐색이다. 그들이 설정한 기존 경로는 민요다. 그들에게 대상을 안겨준 ‘팔자아라리’는 정선엮음아리랑을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곡이다. 사이렌 소리로 시작해 귀에 착 감기는 밴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전주에 이어 랩처럼 노랫말이 쏟아진다. 민요의 사설에서 골계미만 남겨 두고 변주한 가사에서는 취업과 결혼, 육아 등 현대인의 애환이 느껴진다.
올해 3월부터는 ‘민요의 유혹’이란 테마로 매달 하나의 에피소드를 이루는 음원을 발표하고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 ‘굿밤타령’이 제일 먼저 소개되는 등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12월까지 8개의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되어야 전체 줄거리를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 경로이탈답다. 지금 들을 수 있는 4곡은 ‘군밤타령’, ‘너영나영’, ‘옹헤야’, ‘까투리타령’ 등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민요를 바탕으로 판소리의 요소를 가미했다. 그러나 담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모두 지금 현재다. 옛 사람들이 민요를 통해 시름을 달래고 고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그들의 음악에서도 민요 본연의 쓰임새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느껴진다.
오는 8월 5일,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본선 무대의 막이 오른다. 총 10개 팀이 미발표 창작곡으로 무대를 꾸민다. 공연은 국악방송 유튜브와 페이스북, 라디오 그리고 지난해 개국한 국악방송tv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동서고금의 시대를 뒤흔든 예술가의 뒤에는 그의 예술 세계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곤 했다. 어쩌면 이날이 우리가 될성부른 예술가의 풋풋한 시절을 목격하고 기억할, 그리고 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감동을 함께할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1-07-19 11:03 |
![]() |
[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
멘토링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친구이자 아들의 스승인 ‘멘토’에서 유래된 말이다.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멘토’,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멘티’로 통칭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뀌어 선배가 후배에게 조언을 하는 행사, 프로젝트 등에 모두 멘토링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한 멘토가 멘티에게 그들의 경험을 나누며 멘티의 자존감 향상, 대인 관계 능력 증진, 진로 등 본인의 삶에 대한 길잡이와 같은 역할을 하며 멘티는 긍정적인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어떤 분야든 배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승이 필요 하듯 예술 분야 역시 스승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있었다.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멘토 크리스티안 고틀로브 네페와 그를 롤모델로 삼았던 루트비히 판 베토벤, 폴 고갱, 조르주 쇠라, 폴 세잔과 같은 신예 화가들을 육성하는 데 일생을 바쳤던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 형성되어 온 멘토-멘티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려 예술 후원 차원에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럭셔리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이다.
롤렉스의 멘토링 프로그램인 ‘롤렉스 멘토와 프로테제(멘티) 예술 이니셔티브’는 각 예술 분야의 거장과 신인 예술가들에게 일정기간동안 멘토링 관계를 주선해 2002년부터 약 30쌍의 멘토-프로테제 관계를 후원해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 시각 예술, 무용, 영화, 문학, 연극, 건축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세대와 문화의 차이를 넘을 소통의 장을 열어가는 중이다. 롤렉스는 멘토-멘티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 역할을 자처할 뿐만 아니라 멘토링 기간 동안 주요 경비를 지원하고, 기간이 끝나고 난 뒤에도 필요한 기금 신청을 받아 프로테제를 꾸준히 지원한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각 분야 걸출한 사람들이 롤렉스의 멘토로 선택되어 활동 중이다. 시각 예술의 영국 최고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 무용의 혁신적인 안무가인 트리샤 브라운, 영화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인 마틴 스콜세이지, 문학의 아프리카 최초의 노벨 문학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 연극의 토니상 뮤지컬 부분 최우수 수상자인 쥴리 테이무어, 건축의 프리츠 커 상을 수상한 피터 줌터가 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멘토-프로테제 음악 분야 사례로는 2020년에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인도의 전통 악기 타블라 최고 연주자인 자키르 후세인과 미국의 드럼 연주자인 마커스 길모어가 있다. 프로테제 즉 멘티로 선택된 마커스 길모어에게는 ‘오케스트라 곡 완성’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목표 달성을 위해 롤렉스는 같은 타악기 연주자이면서 작곡 경험이 많은 자키르 후세인을 주선했다. 자키르 후세인은 마커스 길모어에게 ‘리듬과 어우러지는 멜로디’를 생각하라고 한 뒤, 오케스트라 전체를 리듬 악기라고 생각을 하고 작곡을 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고, 마커스 길모어는 자키르 후세인과의 멘토링을 통해 첫 오케스트라 곡을 써보겠다는 목표를 달성하여 미국 작곡가 오케스트라가 초연을 했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스승과 제자의 피상적 관계를 넘어 ‘국경을 초월한 타악기의 힘’을 함께 느낄 수 있었고, 나아가 ‘오케스트라 작곡’이라는 목표를 달성해냄으로써 멘토링 프로그램의 목표인 멘티(프로테제)의 성장을 이뤄냈다. 2018년에 진행된 세계적인 미국의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와 일본계 페루인 작곡가 파우치 사사키 역시 인상 깊은 멘토링 프로그램 사례 중 하나이다.
미국의 박사 과정 대신 멘토링 프로그램을 선택한 사사키는 필립 글래스와의 멘토링을 통해 LA와 뉴욕에서 사는 것에 대한 장단점, 작곡가로서의 시간 관리를 비롯해 곡을 쓰는 과정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특별한 과정을 경험했다. 파우치 사사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과 영화 음악 작곡 뿐 아니라 입을 수 있는 음향장치인 새로운 차원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멘토와 프로테제의 관계이자 동시에 함께 작곡을 해 나가는 동지애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했다고 한다.
롤렉스의 ‘롤렉스 멘토와 프로테제(멘티) 예술 이니셔티브’의 멘토들은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프로테제들과 계속 인연을 유지해나간다. 그 동안 많은 프로테제들이 롤렉스의 지원하에 커리어의 발전을 이루었다. 롤렉스의 멘토링 프로그램은 예술가 개개인의 성장을 넘어 전 세계의 예술적 유산이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믿는다.
인생에 있어서 멘토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멘토를 만나 내적인 성장을 경험한다면 그 이후의 삶은 질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멘토들의 가르침을 받은 멘티들은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롤렉스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를 겪은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만 성장을 이룬 것 뿐만 아니라 내적 성장 역시 경험했기에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꾸준히 멘토링 관계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멘토를 만나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는 아이들이 몇이나 있을까? 선생님, 주변의 어른들, 선배들-많은 이들이 그들의 멘토를 자처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형식적인 멘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멘토이자 멘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삶이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앞서 걸은 자들을 적극적으로 본받고 따라오는 이들에게 좋은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모두가 지금보다 덜 혼란스럽고, 더 긍정적인 방황을 하지 않을까? 건강한 멘토-멘티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1-07-19 10:49 |
![]() |
[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백신공급이 전 세계적으로 원활히 진행되면서 조만간 하늘길이 다시 열리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상상을 해본다. 많은 이들이 다시 여행한다면 가장 가고 싶은 도시로 꼽는 곳은 단연코 뉴욕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센트럴파크, 자유의 여신상, 타임스퀘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등 대표적인 도시의 랜드마크를 차치하더라도, 뉴욕 치즈케익과 스테이크, 32번가의 한인타운, 소호와 첼시마켓 등 한국인들이 손꼽는 미식 장소만도 여러 곳이다. 그럼에도 뉴욕하면 떠오르는 여행은 현대미술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모마, 메트로폴리탄뮤지엄, 구겐하임미술관, 그리고 세계 3대 비엔날레가 열리는 휘트니미술관 등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일주일간 뉴욕에 머문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뮤지엄 5곳을 엄선해 소개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외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숨은 보석들
센트럴 파크 속에 자리한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1954년 대규모 개축으로 근대식 전시장을 완비하여 규모나 내용면에서 세계 굴지의 종합미술관으로 발전하였다. 입구에는 십 수 년째 아리랑과 애국가를 부르는 거리연주자가 발목을 잡는다. 수집품은 이집트 미술, 그리스 미술, 중세미술, 유럽회화, 미국회화, 아시아미술 등 다양하지만,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는 장소는 이집트 시대 도시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이집트 중앙정원이다. 이집트 유물은 고대 근동아시아의 영향 속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유적과 함께 비교 대조해 보아야 하며, 이를 이은 지중해 넘어 아르카익과 전성기 그리스의 조각들은 반드시 봐야 할 소장품들이다. 머무는 시간이 부족하다면 과감히 생략하고 2층으로 올라가 회화작품을 감상하자. 후기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잇는 엘그레코·렘브란트·베르메르와 인상파를 비롯한 19세기 페인팅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아시아관을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데 작지만 알찬 한국관(1998년 6월 개관)에 들러 해외에서 우리미술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감상하는 시간도 갖기 바란다.
주소 1000 Fifth Ave. (at 82nd St.)
전화 +1 212 731 1498
홈페이지 http://www.metmuseum.org
이용시간 주중 10:00-17:30 / 금요일 10:00~21:00 / 주말 토요일 10:00~21:00 / 일요일 10:00-17:30
미국 최고의 수집품을 보고 싶다면, 프릭 컬렉션
프릭 컬렉션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사업가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의 저택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1913년부터 1914년까지 토머스 헤이스팅스에 의해 설계되었다. 프릭이 죽은 이후 1930년대에 존 러셀 포프에 의해 확장되어 1935년 12월에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또한 프릭 컬렉션은 회화와 조각뿐 아니라 앤티크 가구나 도자기까지 13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유럽의 고급 예술품들로 채워져 있다. 주로 르네상스 이후의 15-18세기의 유럽회화가 컬렉션의 중심을 이루는데 로코코,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등 고상하고 우아한 양식들이 대다수이다. 프릭 사망 후 그의 딸이 1935년 미술관으로 재단장하여 저택을 선보인 이후 컬렉션 수집은 다방면으로 넓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베르메르와 드가,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들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컬렉션이 실내정원과 어우러져 있어 뉴욕을 방문한다면 꼭 방문해야 할 개인 컬렉션이다. 알아둘 점은 이곳은 내부 정원공간과 외부공간을 제외하고 촬영이 불가능하고 프릭 컬렉션은 열 살 미만은 관람이 금지되어있다.
주소 1 East 70th Street New York, NY 10021
휴관일 월요일
홈페이지 www.frick.org
이용 시간 화~토요일(10:00~18:00) / 일요일(11:00~17:00)
재오픈한 맨하탄의 별, 뉴욕현대미술관 MOMA
뉴욕 현대미술관(모마 MOMA)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더불어 뉴욕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술관이다. 록펠러 패밀리의 지원으로 설립된 미술관으로 설립 당시 미국 최초의 현대미술 전문 뮤지엄이었다. 지금은 현대 미술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2004년 리모델링 후 건물의 구조부터 전시 작품 그리고 입점 매장까지 구석구석 현대미술의 정신이 살아 숨 쉰다. 중앙의 빈 공간을 중심으로 전시된 회화와 조각 작품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옮겨 다니며 작품 감상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직선의 흰색 벽들에 예쁘게 표구된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또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게 설계되어 “사람과 미술이 하나가 된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입장료는 20달러로 뉴욕의 뮤지엄 중 가장 비싸다. 무료로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2020년 10월 21일 리뉴얼후 재오픈 했다.
위치 11 W. 53rd St.(5th Ave.와 6th Ave. 사이)
전화: 212-708-9400
홈페이지 www.moma.org
이용 시간 월 · 수 · 목 · 토 · 일: 10:30~17:30 / 금요일: 10:30~20:00
유기건축의 핵심, 구겐하임미술관 외관
성공신화가 작품이 된 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뮤지엄 마일(Museum Mile)’로 불리는 맨해튼 5번가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미술관이 바로 구겐하임미술관이다. 달팽이를 연상케 하는 이곳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1957년 문을 열었다. 나선형 구조로 설계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약 9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이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구겐하임은 랜드마크로서 문화 시설의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일 출신의 솔로몬 구겐하임은 화가이자 초대 미술관장 등을 맡았던 힐라 르베이의 권유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 비구상 작가들의 작품 수집에 열중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의 컬렉션은 미술관이 협소해질 만큼 방대해졌다. 솔로몬은 1943년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비구상 회화들을 위한 ‘영혼의 사원’을 지어 달라”고 의뢰했다. 평생 자연과 건물이 하나 되는 ‘유기 건축’의 철학을 내세웠던 라이트는 당시 62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도발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손꼽히는 소장품은 칸딘스키 컬렉션이다. 구겐하임이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고있는 이유가 수준 높은 컬렉션이나 기획력 때문만은 아니다. 구겐하임은 다른 미술관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글로벌경영 성공신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위치 1071 Fifth Avenue(at 89th Street) New York, NY 10128-0173
홈페이지 www.guggenheim.org/
이용 시간 일~수요일(10:00~17:45) / 금요일(10:00~17:45) / 토요일(10:00~19:45)
첼시로 이전한 휘트니미술관의 전경
동시대미술의 핵심, 첼시지역과 휘트니미술관
첼시 주변은 수많은 아트 갤러리가 모여 있는 구역으로 세계의 유명한 갤러리가 밀집해 있고 한국의 티나킴갤러리가 최근 장소를 옮겨 가고시안 갤러리와 마주하고 있다. 이 지역의 핵심은 역시 세계3대 비엔날레의 하나인 휘트니비엔날레가 열리는 휘트니미술관에 있다. 원래 휘트니미술관은 뉴욕의 전통 갤러리 지역인 메디슨 에비뉴 75번가에 가면 피라미드를 엎어놓은 듯한 건물이었던 것이 최근 동시대 미술의 중심인 첼시지역으로 이전했다. 휘트니 미술관은 1930년 미국 전역에 철도를 건설한 ‘철도 왕’ 밴더빌트 가문의 손녀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여사가 수집한 700여 점의 컬렉션으로 시작됐다. 조각가이기도 했던 휘트니 여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능한 작가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작품을 사들인 것이 컬렉션의 시초가 되었다. 무명의 젊은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하는 ‘행동하는 미술관’으로, 대표적인 컬렉션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드워드 하퍼’ 컬렉션이다. 하퍼는 20세기 도시인들의 고독을 정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미 1920년대부터 하퍼의 재능을 알아본 휘트니 여사의 선견지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퍼의 부인인 조세피니 나비슨 호퍼 여사가 무명의 호퍼를 알아봐 준 미술관에 감사의 표시로 작품 약 2,500여 점을 기증, 휘트니 미술관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는 단일 기증으로는 휘트니 미술관 사상 가장 큰 규모이다. 이로 인해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에서 호퍼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위치 945 Madison Ave.(75th St.)
전화: 212-570-3600
사이트 www.whitney.org
이용 시간 월, 수, 일요일: 10:30~18:00 / 목~토요일: 10:30~22:00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1-07-09 09:33 |
![]() |
[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영원불멸의 사랑이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뮤지컬 ‘드라큘라(Dracula)’를 보고 나면 새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더욱더 궁금해진다.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사랑, 가슴 아픈 마지막을 예감하면서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 사랑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죽음을 초월한 세기의 로맨스, 뮤지컬 ‘드라큘라’가 지난 5월 20일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막을 올렸다. 4연으로 돌아와 오는 8월 1일까지 이어질 이번 시즌 공연은 더욱더 화려해진 영상미와 조명으로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고, 작품의 특징인 4중 턴테이블 장치를 활용해 공간 감각을 확대했다. 또 ‘드라큘라’와 초연부터 오랜 인연을 맺어온 실력파 김준수, 거부할 수 없는 지닌 전동석, 섬세한 연기로 짙은 여운을 남기는 신성록이 주연으로 나서 눈길을 끈다. 여기에 조정은·임혜영·박지연(미나 역), 강태을·손준호(반헬싱 역), 조성윤·백형훈(조나단 역), 선민·이예은(루시 역) 등이 함께 무대에 올라 환상적인 호흡을 맞춘다.
뮤지컬은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의 동명 원작 소설(1897년 작)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지킬 앤 하이드’의 명곡들을 만든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을 맡았고, 돈 블랙과 크리스토퍼 햄튼이 대본과 가사를 썼다. 소설 속 드라큘라는 동유럽 흡혈귀 설화에 나오던 이미지처럼 그저 잔혹한 악마에 지나지 않지만, 뮤지컬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캐릭터에 인간적 면모를 부여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신을 저주한 죄로 400년이란 긴 시간을 외로이 감내해 온 남자가 환생한 사랑과 다시 만나, 그를 되찾고자 애쓰는 모습이 애절하고도 가슴 아프게 각인된다.
2001년 첫 공연 이후 여러 차례 수정과 워크숍을 거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드라큘라’는 이후 스위스, 일본, 오스트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공연되다 2014년에 이르러 마침내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나게 됐다. 초연 당시 약 2개월 만에 10만 관객을 동원해 눈길을 끌었으며, 흥미로운 전개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특히 한국에서 선보인 뮤지컬 ‘드라큘라’는 다른 국가에서 공연됐던 작품에 비해 드라큘라 캐릭터가 훨씬 더 젊게 그려진다는 차이점을 갖는데, 이는 ‘초대 드라큘라’ 김준수의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무대 양옆을 둘러싼 촛불들이 흔들리고,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리면 본격적인 막이 오를 준비가 모두 끝났다는 신호다. 무대 중앙에 비친 형체의 존재감이 조금씩 더 짙어지기 시작한 순간, 검붉은 피로 물들어가는 흰 십자가가 드라큘라의 귀환을 알린다. 드라큘라 백작의 초대로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 인물들은 마치 회오리를 만난 듯, 예상치 못한 삶의 풍랑에 빠르게 휩쓸리며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흥미롭게도 극 중 모든 캐릭터는 어떠한 ‘선택’을 내릴 순간에 처하게 되는데, 과연 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 상상해보는 경험 또한 신선한 재미다.
클래식 선율을 타고 흐르는 팝과 록의 조화도 뛰어나다. 그만큼 뮤지컬 ‘드라큘라’엔 누구나 좋아할 만큼 매력 있는 넘버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 깊은 ‘Fresh Blood’와 미나를 향한 간절함이 스민 ‘She’, ‘Loving You Keeps Me Alive’는 각기 다른 감성으로 대비되며 비극적 감회를 솟게 한다. 또 미나의 단독 넘버 ‘Please Don’t Make Me Love You’, 마지막을 눈앞에 둔 연인의 ‘Finale’도 빼놓을 수 없는 추천곡이다.
인간이 가진 보편적 욕망과 내밀한 속내, 이상적 사랑을 모두 담은 뮤지컬 ‘드라큘라’.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난 사랑을 앞에 두고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묘한 감정이 낯설지만은 않다. 끝없이 펼쳐진 파멸의 길로부터 진실한 사랑에게 구원받고 비로소 평안을 되찾는 모습은 무엇인지 모를 희망을 꿈꾸게 하기도 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온몸을 휘감은 감동, 짜릿한 전율을 여러분과 꼭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사진 출처 '오디컴퍼니'>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1-07-02 13:19 |
![]() |
[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초견이 나쁘고, 리듬 감각이 없다.”
1896년, 당시 21세였던 어느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 오디션에 응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러한 평가를 받으며 탈락하고 말았지요. 냉정한 평가를 하며 그를 떨어뜨린 인물은 당시 빈 필의 악장이었던 로제(A. Rosé, 1863-1946)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탈락시킨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이름은 바로 크라이슬러(F. Kreisler, 1875-1962). 대단히 뛰어난 연주자이자 ‘사랑의 슬픔(Liebesleid)’ ‘사랑의 기쁨(Liebesfreud)’ 그리고, ‘아름다운 로즈마린(Schön Rosmarin)’ 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을 남긴 작곡가로서 늘 기억되는 인물이지요.
크라이슬러(좌) © by Aime Dupont, N.Y./New York Times
로제 (우) © 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 Bildarchiv
빈 태생의 크라이슬러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불과 7세에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고 10세에 우등으로 졸업한 뒤에는 파리로 건너가 파리 음악원에서도 바이올린과 작곡을 배웠지요. 파리 음악원 역시 우등으로 졸업하게 됩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겨우 12세였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미국으로 연주 여행을 가서 50여회의 연주회를 소화해내기도 했지요. 비록, 그 이후 6~7년 정도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던 긴 공백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각광받았던 그가 오디션에서 위와 같은 평가를 받으며 탈락했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로제의 평가는 과연 정당했던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로제가 크라이슬러의 뛰어난 연주 실력에 두려움을 느껴 그를 오디션에서 탈락시켰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악장으로서 같이 연주하다보면 크라이슬러와 로제의 실력이 비교되는 상황이 자연스레 올 것이고 이것이 로제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이지요. 어쩌면 조금은 사실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비록 오늘날 로제보다 크라이슬러가 더 유명하다고는 해도 불과 17세의 나이에 빈 필의 악장으로 발탁될만큼 대단한 실력을 지녔던 로제가 단순히 경쟁자 제거 차원에서 크라이슬러를 떨어뜨렸다는 추측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크라이슬러가 탈락한 것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견해는 두 사람의 연주 스타일 차이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음을 아래 위로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비브라토(Vibrato) 주법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지요. 로제가 연주에 있어 비브라토를 상당히 억제하는 방식을 취한 반면, 크라이슬러는 비브라토를 보다 풍부하게 구사하였습니다.
악장과 그가 속한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파트의 연주 스타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음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히 개인간의 연주 스타일 차이를 넘어서는 문제였습니다. 더군다나 크라이슬러가 오디션을 보았던 때는 로제가 악장으로 취임한 지 이미 15년 정도가 흘렀을 때였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사회는 오늘날과 같이 세계화된 것이 아니어서 각 오케스트라가 지닌 고유의 소리가 더 잘 살아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요. 이를 고려해보면 로제의 연주 스타일은 당시 빈 필 현악 주자들의 스타일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비브라토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로제의 스타일은 1930년대 말까지 이어진 그의 긴 악장 재임 시절 내내 지속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1920년대에 있었던 오디션에서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가 비브라토를 풍부하게 구사하자 즉시 “염소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내지 말라”고 말했던 일화에서도 실감할 수 있지요.
결국, 크라이슬러가 뛰어난 기량을 지녔음은 분명하지만 그의 연주 스타일이 당시 빈 필이라는 오케스트라와는 맞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그의 오디션 탈락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설명은 오늘날에도 명성있는 오케스트라에 지원하는 뛰어난 연주자들에게 종종 적용되고 있기도 하지요.
각자가 지닌 고유의 소리를 지켰다는 점에서, 크라이슬러의 빈 필 오디션 탈락은 결과적으로 서로에게 윈윈이 되었습니다. 오디션에서 떨어진 지 2년이 지난 1898년, 크라이슬러는 다시 빈 필 단원들 앞에 섰습니다. 이번에는 오디션 지원자로서가 아니었습니다. 브루흐(M. Bruch, 1838-1920)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하기 위해서였지요. 이듬해에 베를린 필과도 처음으로 연주한 그는 점차 자신의 커리어를 넓혀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음악가로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추천영상: 바흐(J. S. Bach, 1685-1750)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중 아다지오 악장을 로제와 크라이슬러 그리고 시게티(J. Szigeti, 1892-1973)가 연주한 음원입니다. 로제와 크라이슬러 사이의 스타일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지요. 간결한 로제의 소리와 풍부한 크라이슬러의 소리를 비교해가며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6S7pBpUaLu4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07-02 13:08 |
![]() |
[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브람스의 멜로디에 대한 이해
작곡가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흠모했던 브람스의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녹여내었다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작년 방영되었을때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사강의 연애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직관적으로 떠올랐지만, 그보다도 질문 자체가 개인적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비엔나 유학 시절 브람스 교향곡 1번 1악장을 공부하며 '무엇이 좋은 멜로디인가'라는 담론속에 헤맸던 기억. 브람스가 작곡한 멜로디들이 종종 직관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가 아니었다는 얘기.
사실 '음고의 변화를 통한 연속적인 흐름'과 같은 멜로디에 대한 이론적 정의를 몰라도 사람들이 인식하는 멜로디는 상당히 직관적이다. 귓가에 맴도는 가락을 비롯해서 따라부르는 악구들이 대부분 멜로디 아닌가. 놀랍게도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브람스가 멜로디에 있어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일각의 평은 사실이다. 대학시절 음악이론 교수님께서 했던 충격적인 말. "브람스가 총애했던 작곡가 드보르작이 브람스 보다는 멜로디 훨씬 잘 쓴다". 실제로 드보르작의 음악은 대부분 귀에 착 감기는 맛깔스러운 멜로디가 압권이다.
19세기 동시대를 살았던 두 작곡가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의 일화속에서 엿볼 수 있는 멜로디에 관한 담론. 둘은 독일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서로의 명성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1887년 겨울,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브로츠키라는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초대로 둘은 처음 대면한다. 평소에 브람스를 일컬어 '재능 없는 자식'이라고 평가절하했던 차이코프스키는 브람스를 직접 만나고 나서 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은 느꼈지만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여전히 그의 음악을 흠모하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게다가 이러한 의견까지 내놓았다. "러시안적인 관점에서 브람스는 멜로디를 창조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그의 음악적 아이디어는 핵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실제적인 멜로디를 듣기 힘들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브람스의 멜로디는 멜로디답지 못하다는 말 아닌가.
여기서 차이코프스키가 간과한 점은 멜로디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감성 충만한 사운드를 지녔으며 명징한 멜로디가 돋보인다. 반면 바흐를 필두로 독일의 고전미를 계승한 브람스의 음악속에는 짜임새 있는 구성과 논리라는 틀이 존재한다. 그 틀안에 견고한 대위법 및 화성과 얽힌 멜로디는 그 모습이 명징할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멜로디의 전체적인 형(形)이 불분명할 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브람스가 흠모했던 클라라 또한 그녀의 일기속에 교향곡 1번에 대해 "선율에 대한 열정이 없다"고 쓴 기록이 있다.
사실 신고전주의자로 불리우는 브람스의 아카데믹하고 논리적인 음악적 접근은 그 이전 세대의 베토벤과도 맞닿아있다. 베토벤은 '모티브(짧은 음악적 동기)'라는 개념을 극대화 시킨 인물이다. 그 유명한 베토벤 5번 '운명' 교향곡의 모티브 '따따따 다'를 멜로디로 간주하기엔 짧다. 하지만 이 작품은 '네 음'의 모티브를 기반으로 설계하여 쌓아 올린 완벽한 음악적 구조를 자랑한다. 세계적인 지휘자 번스타인이 한 TV 인터뷰에서 베토벤을 훌륭한 멜로디스트라고 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베토벤의 음악어법은 모티브에서 멜로디를 생성해내는 것이다". 결국 베토벤이 탁월한 건 음악적 '구성'이라는 덧붙임과 함께.
차이코프스키가 브람스의 음악에 대해 "지나치게 콘트롤 되어있다", "음악을 어렵게 쓴다"라고 했던 말은 이 '구성'이라는 지점과 맞물려있다. 브람스는 단순한 '멜로디' 중심의 음악이 아니라 논리적인 음악어법으로 멜로디 뿐 아니라 구조적 짜임새와 질서까지 꾀했던 것이다. 번스타인의 저서 '음악론'에 보면 "사람들이 바흐의 푸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멜로디가 충분히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일맥상통한다. 브람스의 음악이 처음엔 직관직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곱씹을수록 브람스 특유의 서정성이 밀도 높은 조형미와 조화를 이루며 미적 쾌감을 준다는 중론은 내적 논리가 탁월한 음악이라는 방증이다. 브람스는 자주 들을수록 점점 깊이가 느껴진다는 말은 역시 일리가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브람스의 음악을 지금처럼 쉽게 유튜브나 음원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었다면 그 또한 브람스의 음악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브람스 교향곡 4번은 브람스 자신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자평했던 곡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악장을 추천하고 싶다. 1 주제는 음이 3도씩 하향하는 모티브 구조다. '시-솔','미-도','라-파#','레#-시'... 역시 브람스는 자칫 식상할 수 있는 이 음들의 배열을 하행,상행식으로 짜임새있는 구조로 도치시키며 멜로디스럽게 빚어낸다. 보통 1악장의 서정적인 1주제가 멜랑콜리를 자아낸다고 하는데 하향하는 모티브 구조가 일조한다. 이와 대조적인 트럼펫의 기운찬 팡파레 모티브는 브람스 특유의 양면적인 구성을 보여주는데 멋진 균형미를 선사한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1-06-24 09:39 |
![]() |
[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살인, 욕망, 부패, 폭력, 착취, 간통, 배신의 세계로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깃거리죠.” 막이 오르면 등장하는 뮤지컬 ‘시카고(Chicago)’의 첫 대사다.
1975년 초연됐다. 사실 70년대 브로드웨이 공연가는 흔히 침체기 혹은 암흑기라 명명한다. 급격하게 줄어든 관객 탓이다. 안방극장이라 불리는 TV가 등장했고, 젊은이들의 문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부모가 아이들 손을 잡고 공연장을 향하지 않았다. 뉴욕 상업 공연가의 절반 가량이 문을 닫았다는 기록도 있다. 대중문화의 모든 것이라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컬 산업으로선 그야말로 ‘때 아닌 날벼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바로 이 시기 브로드웨이 불세출의 명작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시카고’다. 1920년대 격변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여동생과 바람난 남편을 죽인 보드빌 여가수 벨마 켈리와 남편 몰래 만나던 애인이 이별을 선언하자 복수를 한 유부녀 록시 하트가 얼렁뚱땅 언론과 배심원을 속여 어떻게 무죄 선고를 받는가가 주요한 줄거리다. 돈만 밝히는 변호사 빌리 플린과 교도소장 마마 모튼, 하이에나처럼 썩은 냄새 나는 사건만을 쫓는 선정적인 언론과 기자들이 공모자로 가세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무죄 방면된 두 살인녀가 자신들처럼 정직한(?) 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 미국을 찬양한다는 대사가 나오면 뒷맛 씁쓸한 이 작품의 묘미는 절정을 이룬다.
대부분 흥행작들이 그렇듯, 이 뮤지컬 역시 수많은 뒷이야기와 풍자 속에 감쳐진 진짜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감상법이다. 늘 그렇지만 공연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기’ 마련이다.
먼저 기자들이 그렇다.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사건만 쫓는 뮤지컬 속 신문기자들은 온갖 자극과 센세이션만을 찾아다닌다. 꼭두각시처럼 록시를 무릎에 앉히고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이야기를 꾸며대는 변호사 빌리 플린의 기자회견에 꼼짝없이 농락당하는가 하면, 결심공판의 마지막 순간에는 기관총으로 수십명을 살해했다는 또 다른 경악할만한 법정 살인사건을 취재하려 우르르 몰려나간다. 심지어 “보이는 것과 본질은 다르다”는 빌리의 마지막 변론과 함께 여성스러웠던 메리 선샤인 기자의 가발이 벗겨지면 굵직한 팔뚝의 우락부락한 사내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요즘 온라인상에서 흔히 거론되는 ‘기레기’들처럼 언론이나 기자들의 속성을 발가벗겨 버린 것 같아 “시원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과 ‘낚시질’이 판을 치는 요즘 인터넷 세상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뮤지컬에 등장하는 신문기자들의 모습은 오늘날이 아닌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이라는 역사적 배경과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바로 일전신문(Penny Paper)시대의 전형적인 선정주의 언론, 떼거리 저널리즘을 적나라하게 풍자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선 급격한 산업화가 등장했고 도시화도 빠르게 전개됐다. 신문이 지닌 박리다매의 경제적 가치를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미국 17개 도시에서 일간지를 발간했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와 자극적인 보도로 최고의 발행 부수를 기록했던 조지프 퓰리처가 피 튀기는 신문 판매 경쟁을 벌였다. 퓰리처가 발행했던 ‘뉴스 월드’의 일요일판에선 노란 옷을 입은 소년이 등장하는 만화가 연재됐는데 워낙 큰 대중적 인기를 누리자 허스트의 ‘모닝 저널’이 바로 이를 흉내 내는 등 온갖 자극과 선정적 보도 경쟁이 판을 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때 생겨난 이름인 ‘옐로우 저널리즘(황색 언론, Yellow Journalism)’이란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파행적인 언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퓰리처상은 그 당시 선정적인 언론보도로 엄청난 부를 쌓았던 퓰리처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재산 일부를 들여 만든 콜롬비아 대학 신문학부 창설 기부금으로 제정된 것이다. ‘갈 때까지 간’ 신문이 스스로 자정(自淨)의 의미를 담아 만들어낸 이른바 인위적인 권위인 셈이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신문기자들은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봐야 더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풍자적인 이미지와 존재들이다.
오랫동안 우리말 무대가 인기를 누리면서 새로운 스타 탄생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시카고를 거쳐간 여배우들로는 옥주현, 인순이, 전수경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바쁘다. 하지만 단연 히로인이라면 역시 최정원이다. 그녀는 우리말 초연 당시 록시로 나왔으며 지금은 벨마로 변신해 한국어‘시카고’의 산 증인이라 불린다. 오로지 변함없는 것은 그녀가 어떤 역할로 무대에 등장하면 늘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열정을 뿜어낸다는 ‘사실’뿐이다. 최정원의 일거수일투족에 쏟아지는 관객들의 웃음과 박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꽤 만족스러운 볼거리다.
2021년 코로나 19의 팬데믹 속에서 막을 올린 올해 앙코르 무대에선 뮤지컬 배우 윤공주, 가수 출신의 실력파 배우 아이비, 최근 블루칩으로 급부상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민경아 가 등장한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였던 티파니도 티파니 영이라는 무대명으로 합류했다. 정식 오디션을 통해 선발돼 화제가 됐는데 직접 무대와 안무를 구상하고 참여해 제작진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아이돌 스타들의 무대가 일취월장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마케팅 차원을 넘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반가운 만남도 자주 볼 수 있어 반갑다.
2000년대 초반엔 뮤지컬 영화도 인기였다. 변호사 빌리 플린 역의 리차드 기어도 좋았지만, 르네 젤위거와 캐더린 제타 존슨이 펼치는 관능미 대결은 지금 다시봐도 여전히 짜릿하다. 영화는 무대의 흥행과 반비례가 아닌 비례관계였다. 영화가 무대로부터 거리를 두는 파격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무대를 아는 사람들은 영화의 변신이 궁금해 스크린을 찾고, 영화로 처음 ‘시카고’를 접한 사람들은 원작의 예술성이 궁금해 공연장을 찾는 경우가 흔했다. 비대면의 일상화가 낯설지 않은 요즘이지만 무대와 영상을 비교해가며 감상해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같은 배경 탓이다. 기억해둘 만한 요즘 문화예술계의 핫 트렌드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1-06-18 11:22 |
![]() |
[문화] 국악 Prologue!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춤 혹은 음악과 더불어 자연을 만끽하기에 여름만한 계절이 또 있을까. 지난해에는 수많은 축제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온라인 개최로 방향을 틀었다. 현장감이 생명인 공연을 영상으로 즐기는 것만큼이나 온라인 축제 역시 맥 빠지는 일이다. 지난 일 년간 터득해 축적한 요령을 십분 활용해 올해는 현장 참여가 가능한 축제들이 하나둘, 조심스레 열리고 있다.
전통 음악에 현대적 감성을 덧입힌 프로그램으로 시작 전부터 매진 사태를 일으키는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과 국립국악원의 ‘우면산별밤축제’가 7, 8월에 시작된다. 지난해 끝내 온라인 축제로 전환해 진행한 ‘북촌우리음악축제’와 ‘서울국악축제’도 매년 이즈음 열린다.
전국 각지에서는 본고장의 전통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축제들이 마련된다. 음력 5월 5일 단옷날을 앞두고 시작되는 강릉단오제를 비롯해 경북 경산의 자인단오제, 전남 영광의 법성포단오제 등이 온‧오프라인 프로그램을 꾸려 시민들과 만났다. 전북 남원의 판소리 축제인 ‘대한민국 판놀음’, 전남 진도의 ‘굿음악축제’가 오는 6월 26일까지 열린다. 7월엔 부산의 ‘영남춤축제’가, 9월에는 전주의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안동의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호남의 소리
호남이 소리의 본고장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전주, 남원, 고창, 광주, 목포, 보성, 영암 등등 걸출한 명인 명창들을 배출하고, 그들이 터 잡아 민속악의 예술성을 꽃피운 고장들이 즐비하다. 남서쪽 끝에 자리한 보물섬, 진도(珍島)도 그중 하나다. 인구 삼만 명 남짓한 진도에는 씻김굿, 들노래, 강강술래와 북놀이, 만가(挽歌), 남도잡가, 농악, 뱃노래 등 국가무형문화재와 전라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들이 진진하다. 명인 명창들이 밭을 매고 고기를 낚는다는 이곳에서 무악 즉 굿 음악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굿음악축제’가 열린다.
굿을 할 때 부르는 노래와 춤, 반주 음악의 가락과 장단은 판소리와 민요, 시나위, 산조 등 민속악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문을 연 2004년부터 남도 음악에 관한 학술회의를 매년 진행해 온 국립남도국악원은 2010년부터 ‘굿음악페스티벌’이라는 부제를 얹어 본격적으로 남도의 굿 음악을 연구하고 알리는 일에 나섰다. 2017년부터는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국 곳곳에서 연행되는 놀이굿, 풍물굿 등으로 주제를 다양화했다. 올해 ‘굿음악축제’의 주제는 천도굿으로, 오랜만에 진도씻김굿을 다룬다.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인 진도씻김굿은 대대로 무업을 이어온 세습무들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춤과 음악 그리고 노래가 모두 예술성 짙은 공연 예술로 발전해 왔다. 진도씻김굿보존회의 공연은 6월 26일(토) 무대에 오를 예정이며 사전 예약 신청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진도씻김굿 공연]
진도씻김굿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2007년 타계한 박병천 명인이다. 진도씻김굿 보유자였고 가무악에 두루 능해 남도 민속 예술의 거장이라 일컬어진다. 그의 생애를 광주MBC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굿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영상 속 예인의 삶을 만나고 나면 진도씻김굿에 매료될 기회를 얻게 된다. 그가 남긴 몇 장의 음반도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굿 음악을 재료 삼아 시대와 소통하는 ‘바라지’의 음반 역시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씻김굿을 만나볼 수 있는 매개가 된다. ‘비손’과 ‘입고출신’ 두 장의 음반에는 오래전부터 굿 음악이 목표했던 바, 해원과 축원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영남의 춤
안동 하회마을을 비롯해 대구, 고성, 통영, 진주, 사천, 김해, 밀양, 부산에 이르기까지 영남 각 지역에서는 탈춤, 북춤, 칼춤, 학춤, 한량무 등 다채로운 전통 춤을 전승하고 있다. 국가 또는 시도 지정 문화재로는 오광대, 야류 등 탈춤 종류가 가장 많다.
북춤도 밀양, 대구, 부산 동래 등에서 전한다. 밀양백중놀이에서 추는 오북춤과 대구의 날뫼북춤, 전남 진도의 진도북놀이는 모두 북에 끈을 달아 어깨에 둘러메고 춘다. 하지만 세 지역의 북춤을 비교해보면 북을 치는 방식이나 춤사위 등 그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한편 부산 동래에서 전해지는 동래고무는 중앙에 큰 북을 두고 무용수들이 두드리며 추는 궁중 춤, 무고(舞鼓)와 닮았다.
궁중의 춤과 비교해볼 만한 춤 종목들은 또 있다. 진주의 진주검무는 궁중 춤의 검기무와 닮았다. 전복(戰服)을 입은 여성 무용수가 칼을 들고 추며 춤의 대형이나 춤사위도 비슷하다. 궁중에서 춤을 추던 이들이 지방에 내려와 전수했다는 설, 민간에서 유행하던 춤이 궁중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선후가 어찌되든 궁중과 민간 모두에서 사랑받은 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래학춤 역시 학의 모양을 본떠 춘다는 점에서 궁중의 학춤과 같다. 그러나 궁중의 학춤이 의상부터 학의 모양을 재현하는 것과 달리 동래학춤은 도포에 갓을 쓰고 춘다. 선비 차림의 무용수들이 하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추는 동래학춤은 궁중 춤과는 또 다른 우아함이 돋보인다.
[동래학춤 (ⓒ 국립국악원)]
전승되는 종목이 많은 만큼 영남에는 춤을 추며 그 맥을 이어온 이들이 많다. 그런 춤꾼들이 모여 전통 춤의 진수를 펼치는 자리가 ‘영남춤축제’다. 2017년 시작해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영남춤축제’는 원로 무용가부터 젊은 춤꾼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활동하는 무용수들이 영남의 전통 춤과 전통 춤을 변주한 창작 춤들을 다채롭게 선보여 왔다. 올해도 축제는 7월 중순부터 한 달간 이어지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 등 부대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된다.
‘축제’라는 말에도 ‘페스티벌’의 어원에도 신성과 유희가 공존한다. 마치 한과 흥을 한몸에 품은 우리 음악, 우리 춤과 결을 같이 한다. 마음을 달래고 기운을 북돋우는 힘. 전통 예술 축제에서 얻어올 것은 그것이면 족하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1-06-18 11:06 |
![]() |
[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영화계 불황 속에서도 꾸준히 개봉하고 있는 장르가 있다면,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전연령대를 타겟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상에 몰입감을 더하고 지루함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디즈니사는 첫 장편이었던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데이비드 핸드, 1937)부터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삽입된 넘버들은 주지하다시피 시대를 뛰어넘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세대차나 개인의 취향차는 있겠지만 디즈니 클래식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인어공주’(존 머스커 외, 1989), ‘미녀와 야수’(게리 트러스데일 외, 1991), ‘알라딘’(존 머스커 외, 1992)의 장면 장면을 수놓았던 명곡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알란 멘켄은 소위 디즈니 르네상스라 불리는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디즈니의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이 시기에만 아카데미상을 네 작품에서 8개(오리지널 송, 오리지널 스코어)나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음악에 흐르는 긍정성과 낭만성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겠으나 ‘언더 더 시’(Under the Sea),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처럼 사뭇 다른 분위기와 화법의 음악들을 공히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타고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즐거움과 희망, 다양한 사랑의 감정이 흘러넘치는 그의 노래들은 모두 아이들도 즐길 수 있을 만큼 쉽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미녀와 야수’에서 그토록 다른 두 인물이 팔짱을 끼고 긴 계단을 내려와 춤을 출 때 흐르는 로맨틱한 음악은 이종간의 이질감이나 위화감을 모두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든다. 디즈니의 판타지는 바로 이런 순간들에서 알렌 멘켄의 음악으로부터 결정적 마법의 힘을 얻어 실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즈니 르네상스는 벌써 역사 속의 이야기지만, 우리는 실사화 되고 있는 디즈니 클래식 작품들에서 계속 그의 음악을 듣는다. 좋은 콘텐츠의 힘은 세월에 녹슬지 않음을 실감하게 하는 위대한 선율들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내 안의 그녀를 대면하다, ‘크루엘라’
오랜만에 극장가가 뜨거워지고 있다.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저스틴 린)가 개봉 10일 만에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올해 최단기간 흥행성적을 기록한데 이어 디즈니사의 ‘크루엘라’(크레이그 질레스피)도 박스오피스에 합류해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극장을 찾지 않는다고 했던 관객들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피로감이 누적된 요즘은 극장에 볼 만한 작품이 없다는 불만을 내놓고 있던 차, 시원한 액션과 볼거리가 있는 할리우드발 영화들이 반갑다.
‘크루엘라’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월트 디즈니사가 도디 스미스의 소설을 애니메이션화 한 ‘101마리 달마시안의 개’(클라이드 제로니미 외, 1961)에 나오는 악녀다. 빌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 그러나 그녀도 원래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 등 때문에 ‘조커’(토드 필립스, 2019)와 비견되기도 하는데, 한 인물의 전사를 따라가면서 그의 변화에 논리를 부여한다는 지점에서는 확실히 유사하다.
‘크루엘라’에도 세상과 인간에 대한 실망과 혐오가 분노로 바뀌고 파괴적인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조커’가 동시대의 다른 영화들보다 다소 고요하고 느리고 집요하게 한 남성의 내면을 파고드는 작품이라면 ‘크루엘라’는 시끄럽고 빠르고 경쾌하게 한 여성의 행위를 포착해낸다. 전자가 극사실주의 회화라면 후자는 캐리커쳐에 가깝다. 어린 관객들을 위해 악행의 수위는 낮추는 대신 수 백 벌의 멋진 의상으로 시각적 자극을 더한 것도 ‘크루엘라’의 특징이다.
‘에스텔라’(엠마 스톤)는 어릴 때부터 자기 안에 사회적 통념이나 기본 질서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살아가려 하는 또 하나의 성향, 혹은 존재를 억누른 채 살아간다.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소매치기들과 어울리며 성인이 된 그녀는 이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기회를 잡고자 한다. 곡절 끝에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 ‘바로네스’(엠마 톰슨) 남작부인의 눈에 들어 재능을 펼치지만 에스텔라는 바로네스가 엄마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때부터 에스텔라는 잠자고 있던 내면의 크루엘라를 깨워 복수를 감행한다.
가능한 한 선하게 살아가려던 크루엘라의 ‘에고’(자아)는 ‘수퍼에고’(초자아)의 자리를 ‘이드’(원자아)에게 내어주며 욕망을 불태운다. 고마움이나 연민 같은 감정과는 거리가 먼 크루엘라가 오직 바로네스의 몰락을 위해 폭주하면서 두 사람의 화려하고도 스릴 넘치는 맞대결이 펼쳐진다. 종극으로 가면 이 영화는 ‘조커’ 보다 여성판 오이디푸스 신화에 가까워진다.
머리카락이 흑발과 금발로 양분된 크루엘라의 모습은 선과 악, 두 가지 측면을 형상화 한 것이다. 사실 양쪽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그 헤어스타일이 크루엘라의 대표적 이미지라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인정하고 꺼내놓는 것 자체가 철저히 사회화 된 우리들에게는 금기시되어 있기 때문일까. 오히려 에스텔라보다 크루엘라가 매력적이고, 원한이 없는 이들에게는 크루엘라가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늘 우리 안에 있고, 외면하기 보다 대면하고 다스려야 할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1-06-11 17:41 |
![]() |
[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 갖고 계신 휴대 전화기의 전원을 꺼주시고, 악장 사이의 박수는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
공연장에 가면 음악가들이 무대로 입장하기 전에 흔히 들을 수 있는 안내 멘트입니다. 휴대 전화기에 대한 언급은 30년 전만 해도 들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현재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안내가 되었습니다. 공연 도중 누군가의 휴대 전화기가 울리는 바람에, 공연의 분위기를 순간 망쳐놓았던 사례들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요. 이러한 안내 멘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만약, 위의 안내 멘트를 18세기 후반에 살았던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가 들었더라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모차르트 살았던 시기는 휴대 전화기는 고사하고 전화기도 없었던 때였으니 휴대 전화기에 대한 안내에 대해서 모차르트는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며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안내 멘트인 ‘악장 사이의 박수 금지’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모차르트는 분명 이런 반응을 보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도대체 왜 안된다는 거지?’
모차르트 당대에는 악장 사이에 청중의 박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한 악장의 연주 도중에 박수가 나와도 놀랄 일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1778년 7월, 파리에 연주여행 차 머무르던 모차르트가 그의 아버지에게 썼던 편지 중에는 이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 교향곡이 시작되었습니다. … 최초의 알레그로 한 가운데에, 틀림없이 성공하리라 생각했던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과연 모든 청중은 일제히 열광하였습니다. 그리고 큰 박수가 쏟아졌지요. 저는 이 곡을 쓸 때 이것이 어떤 효과를 낼 지 알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마지막으로 다시 되풀이 되도록 해 놓았습니다. …”
편지에서 모차르트가 연주 도중에 나온 청중의 열광적인 박수 갈채에 흡족해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심지어, 청중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며 곡을 설계했다고도 밝혔지요. 이 편지 전체를 보면 모차르트는 파리 청중의 이러한 즉각적인 반응이 다른 도시들의 청중과 비교해서 특별히 더 열광적이라든가, 독특하다는 식의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곧 청중이 곡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대에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1824년,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교향곡 9번이 빈에서 초연되었을 때에도 청중이 2악장이 끝나자 열광적인 박수 갈채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66년, 옛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렸던 고별 갈라 공연에 자리한 청중들
(사진: Don Hogan Charles/The New York Times)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이러한 기록들은 오페라 공연에서 보여지는 청중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오페라 공연이야말로 청중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지요. 가수의 아리아가 끝나면 극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가 나오기도 하고 야유가 나오기도 하니까요. 환호가 넘칠 때에는 가수가 방금 불렀던 아리아를 다시 한 번 부르는 일도 드물지만 발생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도의 차이야 물론 존재하겠지만, 오페라 공연에서는 청중의 즉각적인 반응이 오늘날까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데에 반해 다른 장르의 공연에서는 청중이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의례껏 그들의 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변한 것은 흥미롭습니다.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는 성공적인 공연을 이끌어낸 음악가들을 향해 보내는 찬사로서 늘 인식됩니다. 때로는 마지막 음이 아직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청중이 박수를 보내는 경우도 있지요. 열광적인 박수와 더불어 음악가들을 향한 또 하나의 찬사가 있습니다. 바로 침묵이죠. 보통 침묵은 조용히 끝나는 작품에서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 음이 말 그대로 사라져가며 끝나는 말러(G.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9번 연주가 끝난 직후 숨 죽이며 얼마간 그 순간을 조용히 지켜주는 청중이 있다면 음악가들을 포함하여 그곳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이 받는 감동은 더욱 더 클 것입니다. 침묵이 꼭 조용히 끝나는 곡에서만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전, 루체른에서 하이팅크(B. Haitink, 1929- )가 지휘하는 브루크너(A. Bruckner, 1824-1896)의 교향곡 8번 공연을 관람한 적이 있었습니다. 1시간이 훌쩍 넘게 진행되는 이 장대한 작품은 힘차고도 장엄하게 끝을 맺는데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청중이 박수를 치자, 하이팅크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 음의 울림이 박수소리에 묻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죠. 이런 경우, 그 울림이 4~5초 정도만 홀에 온전히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청중은 꼭 공연장에 자리한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온라인을 통해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도 청중이지요. 이 역시 30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던 것이었습니다. 온라인의 청중들은 박수와 침묵 대신 이모티콘이나 댓글 등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와 공연에 대한 만족도를 나타내지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청중 문화의 변화는 흥미롭습니다. 100년, 200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의 청중이 자리할까요? 그 때에도 박수와 침묵은 여전히 음악가들을 향한 찬사의 대표적인 표현 수단일까요? 어떠한 방식으로든 음악가에게 소중한 청중의 존재가 공연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추천영상: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2012년 루체른 실황이고요. (영상의 설명에는 1999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2012년이 맞습니다.) 마지막 음이 끝나고 상당히 긴 침묵이 이어진 후에야 박수가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침묵도 감동적인 음악적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WLP6kqcmPRI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06-11 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