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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전통으로 전통 만들기
오래 묵은 것들이 위안을 줄 때가 있다.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골목길, 어김없이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같은 세월을 건너며 오래도록 곁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나달나달 낡아가는 손때 묻은 물건들.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지 않고 제자리, 제 모습을 지키는 것들이 주는 안정감과 안도감이 그리울 때가 많다.
오래된 음악 역시 그러하다. 유행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도, 놀라운 실험 정신을 발휘하거나 화려한 무대 효과를 동반하지 않아도, ‘고담하고 소박하게’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 음악들이 있다. 다시 찾아온 봄, 전통 음악 레퍼토리로 노상 꿋꿋이 이어온 공연들을 만나보자.
부산, 토요신명
국립부산국악원은 개원 이듬해인 2009년부터 토요 상설 공연을 열었다. 지역민에게는 전통 예술 향유의 기회를 선사하고 부산을 찾는 관광객에게는 지역의 유구한 문화유산을 선보이기 위함이었다. 소규모 인원으로 구성한 악․가․무 종합 프로그램으로 초심자나 외국인 관광객 등 국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고 공연 종목의 구성을 달리해 여러 번 관람하는 사람들도 레퍼토리를 골라 볼 수 있도록 했다.
2022년 <토요신명>은 ‘한국의 무형문화유산’, ‘교과서 속 전통음악과 춤’, ‘영남의 풍류’, ‘궁중 음악문화의 숨결’, ‘미래의 전통, 창작의 멋’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상반기 공연을 꾸린다. 눈여겨볼 만한 테마는 지역의 춤과 음악으로 구성한 제3주제 ‘영남의 풍류’다. 영제 시조, 영남 민요, 동래 학춤과 한량무 등 영남 지역 문화재를 무대화하는 데 주력해온 국립부산국악원 연주단의 비기를 살짝이나마 맛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닐까 싶다.
국립부산국악원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남짓한 공연의 실황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2016년부터 2020년 공연까지는 ‘토요상설’ 재생 목록에, 2021년 이후 공연은 ‘슬기로운 온라인 국악생활’ 재생 목록에 올라가 있다.
한편, 토요신명이 있는 그대로의 국악을 조금씩 다양하게 구경해볼 수 있는 공연이라면 매주 수요일에는 보다 기획력이 가미된 공연들이 <수요공감>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른다. 전통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무대로 색다른 국악 공연을 경험하고 싶다면 수요일 저녁에 국립부산국악원 소극장인 예지당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광주, 광주국악상설공연
광주광역시가 2019년부터 이어온 <광주국악상설공연>은 시립국악관현악단과 시립창극단을 비롯해 지역 국악 단체가 대거 참여하는 명실상부 광주의 ‘대표브랜드’ 공연이다. 광주세계광엑스포 주제관을 개조해 마련한 상설 공연장에서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다. 올해도 시립예술단과 함께 창작국악단 도드리, 타악그룹 얼쑤, 판소리예술단 소리화 등 10개 단체가 친근하고 신명 나는 국악 레퍼토리를 준비해 무대에 오른다.
‘광주에 오면 꼭 봐야 할’이란 수식어에서 보듯이 이 공연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행과 공연의 일정을 두루 고려하기는 쉽지 않지만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5일간 오후 5시에 어김없이 열리는 공연이라면 광주에 들른 관광객이라도 관람 계획을 세우기가 한결 수월하겠다.
광주문화예술회관 누리집의 국악상설공연 페이지와 광주문화예술회관 유튜브 채널에서 대부분의 공연 실황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광주에는 광주전통문화관의 토요 상설 공연, 빛고을전수관의 목요 상설 공연 등이 연중 개최되고 있으니 언제 어느 때라도 국악 공연을 즐기기 좋다.
서울, 산조대전
기악 독주곡인 ‘산조’에 대해서는 지난해 이맘때쯤 국악 프롤로그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혹독한 추위 끝에 맞이하는 변화무쌍한 봄날의 불안과 설렘만큼 산조와 어울리는 계절이 또 있을까.
봄볕이 세상을 녹이기 시작하는 이즈음, 서울돈화문국악당 무대에 오르는 <산조대전>은 오롯이 산조만을 만끽해볼 수 있는 공연이다. 3월 16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보름간의 일정이 빼곡하다. 가야금․거문고․대금․해금․피리․아쟁 등 악기별로 다양한 유파가 명맥을 이어온 산조부터 훈․퉁소․생황 등으로 새롭게 창작해 연주하는 산조까지, 중견 연주자의 관록과 신예 연주자의 패기가 빚어내는 산조의 면면을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다.
연주자와 고수의 호흡뿐 아니라 청중의 추임새와 감탄사도 산조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은 140석 규모의 국악 전문 공연장으로 자연 음향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가깝고 음향 기기의 사용을 최소화하여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산조대전은 단출한 공간에서 연주자와 고수, 청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을 경험할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도 한 달여간 마흔여섯 개의 산조가 무대에 오르는 공연을 기획한 서울돈화문국악당은 유튜브 채널에 ‘산조의 정석’이란 제목의 8개 영상을 게시해두었다. 초심자이지만 산조 공연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영상을 통해 산조의 정석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보고 공연장으로 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올해로 2회째 접어든 산조대전이 매년 봄, 산조 공연의 전통을 이어가길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2-03-11 1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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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세대를 아우르는 예술교육 1 - 영유아기
몇 년 전, 필자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우리 아이 첫 콘서트’를 기획, 진행 한 바 있다. 이 공연은 뉴욕 필하모닉의 교육공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한 것으로 5세에서 초등 저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다. 기획 초안을 짜던 당시에는 ‘과연 학부모들이 이 공연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싶어할까?,’아이들에게 의미있는 공연이 될까?‘ 많은 망설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고민이 무색하게 예매 시작 30분 만에 매진을 기록해 관계자들 모두 깜짝 놀랐던 기분 좋은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 아이 첫 콘서트’의 배경이 된 뉴욕 필하모닉의 공연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들은 왜 ‘유아’를 위한 공연을 만들었을까.
1842년 설립된 뉴욕 필하모닉은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이다. 드보르작, 토스카니니, 말러, 스트라빈스키, 번스타인 등 한 번쯤 들어봄 직한 명장들을 배출해냈을 뿐만 아니라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평가되는 지금까지도 정상급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은 1926년 번스타인의 ‘청소년 음악회(Young People’s Concert)를 시작으로 꾸준히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번스타인이 교육자의 입장에서 고민하면서 직접 대본을 쓰고 준비한 이 음악회는 새로운 클래식 팬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음악인을 양성해내는 데 큰 역할을 한 프로그램이다. 1958년부터 영상물로 제작되어 배포되기도 하였는데, ‘음악이란 무엇인가’, ‘관현악이란 무엇인가’, ‘인상주의란 무엇인가’ 등 기초적인 내용을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클래식 입문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EBS에서 방영되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 청소년 음악회는 1996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금난새의 ‘청소년 음악회’의 롤모델이 되었다.
의도도 좋고 프로그램의 내용도 수준급인데다 학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던 콘서트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청소년 음악회의 관람객으로 온 학생들의 동생들이었다. 무려 1시간 30분이라는 긴 공연 시간을 견뎌내기엔 너무 어렸던 아이들은 객석에서 다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고, 2000석이라는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아이들을 다시 집중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이들의 에너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그냥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 만든 공연이 바로 ‘Very Young People’s Concert(이하 VYPC)’이다. VYPC는 대상이 very young people인만큼 유아기의 특성을 철저히 반영해 만들어졌다. 기획 당시 뉴욕필 단원, 사무국 직원뿐만 아니라 음악교육 전문가가 함께 참여했다.
공연은 유아기의 짧은 주의집중 시간을 고려해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 30분은 준비시간으로, 공연의 테마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친숙해질 시간을 가진다. 다음 본 공연이 30분간 진행되고, 마지막 30분은 악기를 직접 배워보는 시간이다. 객석은 어둡지 않게. 공연장 역시 500-600석의 작은 곳을 선택해 진행된다. 공연장은 놀이터처럼 구성되어 신나게 놀면서 공연에 참여할 수 있으며, 중간에 언제든지 환호하고 호응할 수 있다. 일반 공연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사회자’가 있어 객석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프로그램을 아우르는 기본 테마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테면 ‘크게 & 작게 (Loud & Soft)’, 빠르고 & 느리게 (Allegro & Adagio)’ 등으로 음악의 기본 요소를 다룬다. 따라서 공연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의 기본적 지식까지 체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는 것이 이 공연의 가장 큰 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
‘VYPC’의 기획부터 공연까지 쭉 함께 한 콜롬비아 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 로리 쿠스테델로는 영유아기에 경험하는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아이는 음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며 부모나 주 양육자와 소통할 때, 자신을 표현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음성(음악)을 사용한다.”
즉, 영유아의 일상에 녹아든 음악은 세상과 소통하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을 자연스럽게 경험할수록 세상을 이해하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 노래를 부르거나 율동을 하는 것, 연극을 하는 것-이 모두가 상상력을 일으키는 수단인 동시에 감각적으로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이는 창의성의 근간이 된다.
Very Young People’s Concert
이런 관점에서 볼 때 VYPC는 놀이 속에서 음악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이 삶의 자양분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는 프로그램으로 영유아기의 특성과 음악의 접점을 잘 살려낸, 교육과 놀이의 균형이 조화를 이룬 좋은 예 중 하나이다. 예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프로그램마다 교육의 질은 담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나치게 많은 프로그램의 양산 탓이다. 양적인 경험의 확대에 초점을 맞춘 예술 교육의 현실에서-‘청소년 음악회’를 검색하면 우후죽순 쏟아지는 음악회들이 이 현실을 대변한다- 뉴욕필이 오랜 시간 공들여 키워 온 음악교육 프로그램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다양한 경험의 축적도 중요하지만, 모래성처럼 탄탄한 기초 없이 쌓인 경험들은 결국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예술 교육은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기까지 하나의 연결된 축을 토대로 예술과 교육이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뤄 하나하나 단단한 벽돌이 쌓여 근사한 집을 쌓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멘토 삼아 우리나라 교육 실정에 잘 맞춘 우리만의 예술 교육이 차례차례 꽃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2-03-04 1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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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주말의 명화와 오페라>
외국어를 익히는 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인 매체 중 하나가 바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를 이용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가르치는 강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그런 강의를 통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지요. 필자가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을 때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며 독일어와 영어를 더 빨리 습득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시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헐리우드 영화를 오스트리아의 극장에서 보면 대사는 영어로 나오고 자막은 독일어로 나올 테니 독일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같이 습득할 수 있겠구나!’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극장에서는 비(非)독일어권 영화들이 독일어로 더빙이 된 채 상영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었지요. 이러한 시스템을 보면서 생각났던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외국 영화가 성우들의 한국어 더빙을 거쳐서 방영되던 ‘주말의 명화’였지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외국 영화를 더빙을 거쳐서 보는 문화가 이제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현재 TV에서 방영되는 외국 영화들은 대부분 본래의 언어를 살리고 한글 자막이 지원되는 시스템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지요. TV에서 외국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가 이렇게 바뀌어 간 것과 비슷한 변화를 겪은 음악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오페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베르디(G. Verdi, 1813-1901)의 오페라 ‘아이다(Aida)’나 ‘오텔로(Otello)’를 보러 간다고 할 때 그 오페라들이 한글로 공연되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원어인 이태리어로 공연되는 것을 기대하겠지요. 이렇듯 한 오페라가 어느 장소에서 공연되더라도 본래의 언어로 공연되는 관습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굉장히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이나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와 같은 극장들의 아카이브를 살펴보면 이러한 관습이 1950~60년대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어와 같은 동구권 언어의 오페라에 대해서는 이 관습이 적용되는 시점이 더 늦었습니다.) 그러니까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전반만 하더라도, 프랑스어로 된 오페라가 빈에서 공연될 때에는 독일어로 공연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죠.
실제로 원래 프랑스어로 지어진 생상스(C. Saint-Saëns, 1835-1921)의 ‘삼손과 데릴라(Samson et Dalila)’와 마스네(G. Massenet, 1842-1912)의 ‘베르테르(Werther)’는 독특하게도 각각 독일 바이마르(1878년)와 빈(1892년)에서 초연이 되었는데 두 오페라 모두 독일어로 공연되었습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출신의 모차르트(W. A. Mozart, 1756-1791)가 이태리어로 지은 오페라 ‘돈 지오반니(Don Giovanni)’는 빈에서 1950년대까지도 독일어로 공연되었지요.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ropolitan Opera, 이하 메트)는 앞서 언급한 두 오페라 극장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 흥미롭습니다. 1883년 창단된 메트에서는 초기에 극장장 측이 한 시즌의 모든 공연에서 사용될 언어를 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첫 시즌에는 모든 오페라들을 이태리어로 공연하였는데 그 다음 시즌에 새로운 극장장이 오자 그 언어는 독일어로 바뀌었지요. 이런 과정을 거친 메트에서는 오페라를 가급적 본래의 언어로 공연한다는 방침이 20세기 중반 이전에 이미 자리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같은 영어권에 속해 있지만 역사가 메트보다 100년 이상 깊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보다 빠른 행보였지요.
1921년부터 1929년까지 메트에서 매년 보리스 고두노프에 출연했던 샬리아핀
(출처: metopera.org)
오페라 공연에서의 언어에 대한 탐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하나의 무대에서 하나 이상의 언어들이 사용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메트에서 공연된 프랑스 오페라에 대해 정리한 글에 따르면 1890년대에서 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 무대에서 어떤 가수들은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어떤 가수들은 이태리어로 노래하는 상황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유명한 베이스 가수 샬리아핀(F. Chaliapin, 1873-1938)은 메트에서 무소르그스키(M. Mussorgsky, 1839-1881)의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에 출연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태리어로 부르는 와중에 혼자만 러시아어로 부르기도 했지요. 푸치니(G. Puccini, 1858-1924)의 ‘토스카(Tosca)’가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것은 1910년인데 당시 기록을 보면 독일어와 이태리어가 동시에 사용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신기하기까지 여겨지는 이러한 관습이 적용된 무대가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여전히 현지의 언어로 공연하는 오페라 극장들이 존재하고, 러시아어나 체코어처럼 오페라 장르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언어로 된 작품들을, 어디에서나 본래의 언어로 공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을 넘어가며 오페라를 본래의 언어로 공연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요.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관습이 앞으로는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지금은 알지 못하는 그 변화 속에 오페라가 언어의 장벽을 지금보다 더 뛰어넘어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안겨주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추천영상: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원어인 이태리어가 아닌 독일어로 녹음된 음반을 소개합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이 음반에는 헬렌 귀덴, 프리츠 분덜리히,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같은 명 가수들이 출연했지요. 분덜리히가 독일어로 부르는 ‘축배의 노래’를 감상해 보세요. 소프라노 헬렌 귀덴의 파트가 웬일인지 많이 삭제되어 아쉽지만 분덜리히의 아름다운 음성은 굉장히 인상적이고 독일어로 노래했다는 것은 아쉽다기 보다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분덜리히가 이태리어로 공연한 실황을 들어보면 독일어 버전보다 첫 소절이 보다 힘차게 들리는데 이는 실황과 스튜디오 녹음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겠지만, 확실히 언어의 차이가 크게 느껴져서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MMlQfxvmdU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2-03-04 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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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공포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차가운 초상,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
<사진제공 : 모먼트메이커>
스타 배우가 선보이는 완벽한 무대만큼 반가운 무대가 바로 신인들의 열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무대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새 시즌으로 돌아온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은 신예다운 패기와 더불어 작품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반갑다. 베테랑 배우들로 이끌었던 이전 시즌 공연들과 달리, 이번 사연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대학로의 신인 배우들을 상당수 합류시켜 화제가 됐다. 캐스트가 공개됐을 당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으나 본격적인 막이 오르자 곧 호평이 줄을 이었다. 그만큼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한 모습이다.
뮤지컬 ‘미드나잇’은 아제르바이잔 작가 엘친 아판디예프(Elchin Afandiyev)의 희곡 ‘지옥의 시민들(Citizens of hell)’에 기반해 제작된 작품이다. 영국 라이선스 뮤지컬로 ‘액터뮤지션’과 ‘앤틀러스’ 두 버전으로 나뉘는데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아도 넘버와 가사, 무대 디자인 등 여러 면에서 꽤 다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점을 고르라면 역시 배우가 직접 악기를 다루며 연기를 하느냐에 달려있다. 2017년 초연을 올린 ‘미드나잇 : 앤틀러스’에 이어 이듬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라이선스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의 경우, 연주자가 따로 있는 ‘앤틀러스’와 달리 배우들이 연기뿐만 아니라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바이올린을 각각 맡아 연주한다. ‘액터뮤지션’은 상대적으로 단조로운 무대 위에 펼쳐진 배우들의 흥겨운 라이브 연주, 역동적인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또 뒤로 갈수록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속속 드러나는 반전이 꽤 충격적인데, 그런 과정에서 인간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조명해 매우 흥미롭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드라마가 워낙 뚜렷한 데다 인물들의 심리 변화 역시 두드러져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작품은 1937년 12월 31일, 자정을 앞둔 늦은 밤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독특하게도 등장인물 모두 이름 없이 맨과 우먼, 비지터, 플레이어, 피아니스트로 설정돼 있다. 이 중 플레이어는 총 4명이며, 각자 번호를 부여받고 오프닝과 회상 장면 등에서 역할에 맞춰 활약한다.
<사진제공: 모먼트메이커>
스탈린의 커다란 초상화가 걸린 공간에서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한 여성(우먼)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남편(맨)을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그 와중에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이 엔카베데(내무인민위원회,NKVD)에게 강제로 끌려간다. 불안감이 더해가는 도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리고 곧 맨이 귀가하는데, 우먼은 아직 바깥에 있는 요원들을 의식해 국가를 향한 남편의 충성심을 마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맨이 여전히 불안한 우먼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곧 있으면 끝날 1937년의 마지막 밤을 즐기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암시장에서 몰래 입수한 음반과 샴페인을 꺼내 둘만의 파티를 즐기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을 엔카베데 소속 비밀경찰이라 주장하는 낯선 남자(비지터)였다. 동료 요원들이 너무나 많은 사람을 끌고 가다 보니 자신까지 챙겨가는 걸 잊은 모양이라던 비지터는 갈수록 더 제멋대로 굴며 맨과 우먼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지터가 방문한 이후 잘 가던 시계들이 모두 멈추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그 뒤로 세 사람의 어색한 조우는 충격적인 비밀들을 드러내며 절정으로 향한다.
등장인물들은 누군가의 고발과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환경 속에서 매일 밤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연방 공산주의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기는 매일같이 피와 비명이 난무했던 공포의 시대였다. 어디서든 고발이 들어가면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곧바로 숙청 대상이 됐다. 뮤지컬 속 배경과 같은 상황이다. 의심과 불안 속에 가려졌던 진실이 끝내 거짓된 평안을 깨부수던 순간 온몸에 흐르는 전율이 여전히 생생하다.
주 무대인 아파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네모난 형태의 문들만 제외하고 별다른 장치 없이 뻥 뚫린 벽으로 제한된 공간을 설정한 모습은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투명하지 못했던 부부와 대비돼 더욱 아이러니하다. 이곳을 타락으로 물든 영혼과 지옥에서 지켜보는 영혼, 그리고 심판자를 자처하는 존재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넘나들며 압박한다. 관객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의 이기심과 배신, 희생, 위선 등과 마주하며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 1월 19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 : 액터뮤지션’은 오는 3월 28일까지 계속된다. 공연장이 크지 않은 데다 좌석 사이 또한 여유롭지 않아 적잖은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공연에 몰입하다 보면 금세 잊힌다. 무엇보다도 배우들로부터 전해진 신선한 에너지가 가까이서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 참 좋다.
‘미드나잇’이란 제목처럼 한밤에 내린 어둠이 빛을 가리고 모든 이들의 눈과 귀를 막았어도 여전히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을 꿈꾼다. 해석하는 바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품이 전하고자 했던 궁극적 의미는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한 비극의 페이지가 아니라 마지막 커튼콜에 담겼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번 시즌만큼은 더욱 그렇다. 영원한 멈춤이란 없듯, 끝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던 밤도 결국 밀려났다. 희망이 절실한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나보길 추천하는 이유다.
<사진제공 : 모먼트메이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2-02-25 1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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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고집소통(固執疏通)
카리스마로 단원을 휘어잡는 지휘자의 시대는 저물었다. 지휘자들은 이제 시대에 발맞춰 단원과의 친밀한 소통과 더불어 자연스러운 협조를 구하는 방식의 리더십을 구사한다. 민주적 리더십이 대세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휘자의 본분은 음악적인 부분에있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전히 상당수의 메이저급 오케스트라들이 음악 앞에서 지휘자의 비타협적인 모습에 후한 점수를 쳐준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훌륭한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고집스러움'을 꼽기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뛰어난 악단일수록 '예술적 완성도'를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는 사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비엔나 유학시절 수많은 리허설들을 참관했는데, 명지휘자들이 명망있는 비엔나의 오케스트라들과 리허설할때 소통은 민주적이되 음악 앞에서는 양보할 줄 모르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는 자타가 공인하는 비엔나 필하모닉(이하 빈 필)과의 리허설에서조차 예외없이 원하는 바를 구현해 내기위해 혹독하게 연습시키는 리허설로 유명했다. 매번 단원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공연을 통한 결과물이 좋았기때문에 단원들도 당시 그의 뚝심을 높이 평가해주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지휘자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또한 리허설에서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오케스트라를 가르치는 듯한 자세를 견지했는데, 빈 필은 그를 비엔나 신년음악회에 초대하는 등 이례적으로 예우했다. 아르농쿠르는 한 인터뷰에서 " 반드시 연주자는 시대적 음악언어를 숙지해야하며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리스크 두려워하면 안된다. 극한의 상황에서 최고의 예술이 발현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단원들이 가장 꺼려하는 '가르치는 듯한 자세'가 그에게 예외적으로 통한건 왜일까.
단원들의 불쾌함보다 그의 음악적 '소신'을 더 쳐줬기 때문이다. 그가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드 높은 이상으로 나아갈때 심적인 불편함은 있을지언정 함께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빈 필의 단장을 지냈던 베르너 레젤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전설적인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반추하며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빈필은 쉽게 만족하는 지휘자를 원하지 않는다, 클라이버는 항상 우리의 도전의식을 북돋우며 놀라운 연주를 만들어냈다". 여기서 악단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예전에 독일의 한 명문 방송악단과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지휘할 기회가 있었는데 리허설을 마치려던 차 오보에 주자가 "금관악기와 밸런스가 안맞는다"며 더 연습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있다. 당시 30대 젊은 나이라 일거에 단원들 앞에서 위축이되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위한 연주 또한 가벼이 여기지않는 명문악단다운 자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면 오케스트라의 발전이 더딘 경우, 상당수 역량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적정선에서 만족하려는 경향이있다. 지휘자의 미숙함으로 인한 불필요한 리허설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노력하면 예술적 완성도에있어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할만한 구색정도에 만족하는 악단이라면 상황에따라 타협하는 지휘자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일류 악단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낮을 것이다. 요즘에도 변함없이 높은 수준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얘기하보면 대부분 이구동성 말한다. 적당히 눈치보며 단원들 비위나 맞추는 지휘자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성 마틴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를 창단해서 세계적인 단체로 키워냈으며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지휘자 네빌 마리너가 타계했을때 독일 부고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가 'kompromisslos(타협할 줄 모르는)'라는 단어다. 언론들은 최고의 음악적 퀄리티를 위해 도전을 거듭한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어젯밤, 작년에 창단한 악단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을 이끌고 연주할때마다 어려운 모차르트 교향곡 연주를 마쳤다. 단원분들이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주었다. 지휘자보다 더 타협할 줄 모르는 단원들이 있어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게는 음악적 타협점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부끄럽기도 했다. 뛰어난 오케스트라가 결국 뛰어난 지휘자를 만든다는 말이 떠오른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2-02-25 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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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되살아난 복고문화, 아날로그 감성을 되살리다,
“뉴트로 감성, 코로나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문화코드”
뉴트로 열풍, 곰표 브랜드의 유행
흘러간 유행의 여러 요소들을 되살리는 복고(復古, Restoration)는 ‘레트로(resto) 문화’의 관점에서 대중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복고 혹은 레트로는 되살아난 과거를 뜻한다. 이를 트렌드에 맞게 적용한다면, 흘러가버린 옛 유행의 요소들이 되살아나 새롭게 적용되는 현상으로 정의될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이, 몇 년 전의 유행은 시시하게 느껴지지만 한참 지난 유행은 거꾸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최근 불고 있는 복고문화는 경제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주된 주체가 된 30~50대의 복고 취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무한도전의 토토가·응답하라 시리즈·히든싱어·복면가왕 등은 아날로그 시대의 감수성을 오늘에 되살림으로써, 90년대의 시·공간을 현재에 되살리는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복고적 스타일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며, 과거의 문화를 자신과 연결시켜 ‘현재의 문제점’을 타진하거나 새로운 대안으로 기능한다.
복고, 트렌드 문화를 재정의하다
문화에 있어 복고주의적 경향은 1960년대부터 나타났는데, 1910년대에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재해석과 관련이 있었다. 미국 뉴욕의 모마(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가 1960년에 개최한 《아르누보 포스터전》과 영국의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의 1963년 《알퐁스 무하(Alphonse Mucha)의 포스터전》, 1966년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작품전》 등은 60년대 아르누보의 재(再) 유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복고에 대한 열망은 디자인 트렌드를 정의하는 나침반과 같다. 1920~30년대의 아르데코 양식은 빅토리아 시대의 향수를, 1940~50년대의 유기적 곡선 양식은 1960년대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의 전조현상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과거시대의 제품을 그대로 재생산하거나, 복고 스타일을 오늘에 맞게 양산하는 방식을 유행시켰다. 이는 80년대 이후 비주류 혹은 저항 문화에서도 드러난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통한 일러스트·키치적 콜라쥬·패러디 등은 정돈되지 않은 조잡한 복고취향을 시각매체에 드러내면서, 일종의 레트로 스타일을 명품하우스로부터 패션·자동차·패키지·공예 등으로 까지 확산시켰다. 이렇듯 과거의 문화스타일은 새롭게 차용(借用), 번안되어 ‘절충된 융합(compromised fusion)’의 과정을 겪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역시 사고의 자유로운 교환과 신자유주의라는 거대담론 속에서 ‘친근하고 익숙한 복고취향’을 디자인 트렌드로 정의하는 원인이 되었다. 오늘날 복고는 단순한 역사의 재현이 아닌, 과거의 모든 요소들이 절충과 융합을 통해 나타난 형태이자 다양한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재정의 된 것이다.
뉴트로 열풍을 보여주는 장수 프로그램 복면가왕
아날로그가 창출한 뉴트로 열풍, 뉴 아날로그 시대
되살아난 아날로그 감성들은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회자시킨다. 카메라나 다이어리, 종이책과 패션에서도 코로나로 집콕하는 이들에게 과거회귀 본능을 '세련된 아날로그'로 되돌려 놓는다. BTS나 유명 걸그룹이 지나간 80-90년대 노래들을 리메이크 하는 현상은 20대 이전의 청소년들이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감성을 갖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가 주는 편리함과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비효율적 아날로그가 힙하고 핫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날로그 트렌드가 익숙한 새로움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뉴트로, 새로움(new)과 복고를 합친 이 말은 80-90년대 코듀로이, 청청패션, 골덴패션을 유행시키고 빅로고 패션을 재확산시키는 경향을 낳았다. 만화방같은 '방'문화의 재확산은 디지털시대에 자취를 감췄던 만화방이 일종의 스타벅스 같은 개인성을 존중하는 '다문화살롱'의 역할을 하게 만들고 있다. LP바가 다시 유행하고 사라져가던 음악저장매체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현상들은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새 앨범을 LP로 발매하는 현상마저 낳았다. 과거에 대해 추억하는 MZ세대가 늘어나면서 이러한 제품과 서비스 역시 늘어나고 있다.
뉴트로 열풍의 중심에 있는 익선동 한옥골목
뉴트로 열풍을 보여주는 LP문화
레트로 열풍을 만난 밀가루 브랜드 '곰표'가 대표적이다. 그간 곰표는 패션, 화장품, 식품, 주류 등 다양한 제품과의 콜라보 마케팅을 진행해 2030 젊은 층부터 4050 중장년 세대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 곰표가 내놓는 상품들은 잇따라 히트를 치며 '잇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특별한 광고 없이 이러한 레트로 브랜드가 대박을 터뜨리는 비결은 브랜드 자체의 단단한 인지도와 익숙한 마스코트 덕분이다. 과거 유행하던 브랜드를 현대화된 제품에 그려 넣어, 당시 특유의 복고풍 서체와 패키지 디자인을 재현하는 것은 아날로그 시대를 다시 읽으려는 뉴아날로그 시대의 뉴트로 열풍 때문이다. 뉴트로는 단순히 과거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을 더해 재탄생시킨다는 의미가 중요하다. 뉴트로를 통하여 세대 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화현장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을지로, 익선동의 한옥골목 등은 뉴트로 열풍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성세대가 주로 다니던 허름한 노포가 특별한 장소로 인식되는 오늘날, 우리는 낡은 외관의 문화를 새롭게 재정의하는 멋진 융합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2-02-18 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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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여민락 & 아름다운 나라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올 입춘 한파는 유독 매서웠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마지막 시련이길 바란다. 동토를 녹이고 새로이 움튼 것들로 세상을 채우는 일은 시간이 꽤 걸릴 듯싶다. 그 시간을 단축하는 데에는 지도자의 자질이 한몫할 것이다. 하루속히 스산한 시절이 지나고, 따스한 기운이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종대왕은 새로운 대통령의 사표로 늘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세종 연간에 이루어낸 여러 분야의 눈부신 치적 못지않게 그를 사랑받는 임금으로 만든 것은 빛나는 성과 이면에 내재한 ‘애민 정신’일 것이다. 이미 500년 전에 고유한 문자를 가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를 만든 이 위대한 왕이 무엇 때문에 밤낮없이 한글 창제에 골몰했는지는 훈민정음 서문에 오롯이 남아 전해진다.
여민락[與民樂]
성종 대의 성현 등이 편찬한 악학궤범樂學軌範 서문에서도 세종대왕의 업적을 엿볼 수 있다.
세종대왕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 음률에 정통하였다. …… 기장[黍]이 해주에서 나오고 채석[採石]이 남양에서 나왔으니 …… 기장을 취하여 율[律]을 정하고, 돌로 편경을 만들고 또 가락을 만들고 이로 인하여 악보를 만들어서 절주[節奏]의 질서를 살피었다.
음의 높이를 정하는 율관과 제례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기인 편경을 만드는 과정은 세종실록에도 기록되어있다. 그간 중국에서 가져다 쓰던 율관과 편경의 국산화는 세종대왕의 자주정신을 엿볼 수 있는 장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세종실록 59권에는 새로 만든 편경의 시연 모습이 담겨 있다. 편경은 두께를 달리한 경돌을 틀에 달아 ‘각퇴’라는 이름의 채로 두드려 소리내는 악기다. 악기의 소리가 맑고 아름다운 것에 매우 기뻐하던 세종이 문득 경돌 한 장의 소리가 약간 높다고 지적한다. 돌을 갈 때 가늠하기 위해 그어놓은 먹선이 남아있었기 때문인데 먹선만큼을 마저 갈자 바른 소리가 났다. 세종대왕이 탁월한 음감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세종대왕이 작곡했다고 전해지는 음악들 역시 그의 음악적 재능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여민락[與民樂]’이다. 세종실록에서는 여민락을 ‘임금이 용비어천가를 관현에 올려 느리고 빠름을 조절하여 만든 음악’으로 소개한다. 역대 왕의 치적을 칭송하는 내용의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삼아 만든 음악이지만, 제목에는 백성과 더불어 즐기고자 하는 뜻을 여실히 드러냈다. 궁궐 안에서 연주되는 궁중 음악이었으나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거나 환궁할 때에 연주하도록 했다니 먼발치에서나마 백성들도 더불어 즐길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종대왕이 작곡한 여민락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노랫말이 없는 기악곡으로 바뀌었으며 악기 편성과 빠르기의 변화, 가락의 변주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여민락에서 파생된 음악으로 여민락만[與民樂慢], 여민락령[與民樂令], 해령[解令] 등이 있으며, 네 곡을 아울러 여민락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종대왕이 작곡한 곡은 오늘날 여민락만이라고 불리는 곡이다. 여민락 시리즈는 오는 봄,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여민락 공연(©국립국악원)
아름다운 나라
여민락이 백성을 위하는 위정자의 마음이 담긴 곡이라면, 창작곡 ‘아름다운 나라’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의 소박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곡이다.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하나하나 그려낸 노랫말에는 이 땅의 풍경을 정겹게 바라보는 고운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아름다운 나라’는 크로스오버 성악가 신문희가 무니(MOONY)라는 이름으로 2008년에 낸 음반 「The Passion」을 통해 발표했다. 음반 소개에는 신문희가 국가무형문화재 가곡 보유자인 홍원기 명인을 사사하였으며, 이 곡이 전통 성악의 창법을 아우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곡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학교 교육 과정에서는 창작 국악으로 구분하고 굿거리장단을 곁들여 배우도록 하고 있다. 원곡의 반주는 장구 장단으로 시작하며 가야금, 대금, 피리, 해금 등 국악기 음색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웅장하게 어우러진다.
발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름다운 나라’는 여전히 국가 행사 등에 자주 쓰인다. 한자어나 구호처럼 느껴지는 거창한 가사를 비장하거나 엄숙하게 불러야 할 것 같은 노래들과 달리 쉽고 시적인 우리말 가사와 리듬을 타며 감상할 수 있는 경쾌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리메이크한 음원도 많은데 송소희, 하윤주 같은 국악인들과 국악을 전공한 트로트 가수 양지은, 김다현, 김태연 그리고 뮤지컬 배우 카이가 부른 곡 등이 음원으로 출시된 바 있다. 또 유튜브에서는 국방부 군악대가 선보이는 ‘아름다운 나라’와 송소희가 포레스텔라와 함께 부른 ‘아름다운 나라’를 감상할 수 있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2-02-18 1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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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당신도 발렌타인데이를 기다리나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When I Fall in Love’
많고 많은 로맨스 영화들 중에서도 발렌타인데이 시즌마다 회자되는 작품들이 있다. 남녀 주인공이 발렌타인데이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하 ‘시애틀’, 노라 에프론, 1993)이 대표적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공간 설정은 할리우드가 사랑한 멜로드라마의 고전, ‘러브 어페어’에서 본딴 것이다. ‘러브 어페어’는 1939년 이후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지만 이 영화 속에서 직접 차용한 것은 데보라 카와 캐리 그랜트가 나오는 1957년작이다.
결혼을 앞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부자(父子)의 사연에서 운명을 느낀 ‘애니’(멕 라이언)는 고민 끝에 ‘샘’(톰 행크스)에게 만나자는 편지를 쓴다.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마법 같은 사랑, 한 순간에 빠져드는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이 영화에는 독특한 점들이 있다. 주인공들이 마지막 신에서야 정식으로 만나게 되므로 러브신이 전혀 없다는 점, 샘의 아들 ‘조나’(로스 맬링거)가 먼저 애니에게 호감을 느끼고 아빠와 애니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은 내용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삽입곡들이다.
루이 암스트롱, 지미 듀랜트의 곡도 있지만 ‘시애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삽입곡은 역시 자막이 올라갈 때 나오는 ‘When I Fall in Love’일 것이다. 클라이브 그리핀과 셀린 디온이 커버한 이 노래는 빅터 영이 작곡하고 넷 킹 콜이 처음 불렀는데, 지금까지도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곡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몇 년 후인 1996년에 넷 킹 콜이 나탈리 콜과 듀엣으로 부른 버전보다 오히려 모던하고 감각적으로 편곡된 것이 특징이다. ‘내가 사랑에 빠질 땐 영원한 사랑일 거예요’로 시작해서 ‘내가 사랑에 빠질 땐 당신과 함께 사랑에 빠진 때죠’로 끝나는 에드워드 헤이만의 가사는 영화의 끝맛을 더욱 달달하게 돋우기에 충분하다.
방금 만나서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탄 두 남녀의 사랑이 운명이고, 마법이라는 걸 믿게 만들면서. 삶이 너무 팍팍해서, 나이가 들어서 이런 사랑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시애틀’이 필요하다. 영화음악이 제일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연애 세포를 깨우는 일이니까.
윤성은의 Pick 무비 /
영화를 향한 장이머우의 러브레터, ‘원 세컨드’
지난 4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개막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 전세계인들의 축제로서의 의미 상실 등 논란도 많지만 시원한 눈과 빙판에서 펼쳐지는 멋진 경기만 떼어놓고 보자면 집콕 생활로 인한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개막식에 대해서도 호평과 혹평이 혼재했다.
유명 인사들을 앞세우는 대신 11,600 제곱미터에 달하는 HD LED 무대로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어린이들의 공연으로 감동적인 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는 시대정신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가 있었던 반면, 문화 공정이 엿보이는 의상 선택에는 국가적 비난이 쏟아졌고, 의미만 부각시켰던 성화점화 방식에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번 개막식을 총연출한 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장이머우였다.
장이머우의 필모그래피 안에는 이번 개막식만큼 논쟁적인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붉은 수수밭’(1988), ‘국두’(1990) 등 초기작들에서 중국 서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세계영화계의 이목을 끌었으나 일각에서는 그의 영화들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품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시각적 스펙터클, 이미지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영웅’(2002), ‘연인’(2004), ‘황후화’(2006) 3부작은 사실 중국 내셔널리즘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했다.
2010년대에도 그는 ‘5일의 마중’(2014)과 같은 명작과 ‘그레이트 월’(2016) 같은 망작을 함께 내놓았다.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 장르 영화와 비장르 영화를 오가는 연출적 스펙트럼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련의 작품들에 중국에 대한 예찬과 비판이 묘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보면 비상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달 27일에 개봉한 그의 연출작, ‘원 세컨드’(2020)는 어떨까. 우선, 이 영화는 당장 장이머우판 ‘시네마천국’(쥬세페 토르나토레, 1988)이라 불릴 만큼 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짙게 묻어난다. 의문의 남자, ‘장주성’(장역)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딸이 영화 상영 전에 틀어주는 뉴스에 나온다는 사실을 듣고 영화가 상영될 마을로 간다. 그러나 자기와 남동생을 괴롭히는 동네 아이들에게 전등갓을 빚진 ‘류가녀’(류호존)의 방해가 만만치 않다. 쓸모없는 필름으로 전등갓을 만드는 게 유행이기 때문이다. 딸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온 마을이 동원되어 사막 모래에 다 망가진 영화 필름을 복원하고 상영하게 되는 과정이다.
처음 보는 영화도 아니건만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면 마을 잔치처럼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숨을 죽이고 영화를 감상했던 시대의 풍경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묘사된다. 문화대혁명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빌어 동시대 중국의 문제점들을 말하려는 날카로운 시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국가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인물들이나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 모두 70대의 노장에게는 연민과 향수의 대상일 뿐이다. 대신 ‘원 세컨드’는 영화를 향한 열정과 순수에 방점을 찍는다.
필름을 복원하는데 진심인 사람, 좀 더 좋은 자리에서 영화를 보려고 다투는 사람, 보고 싶은 장면을 무한 반복해서 돌려 보는 사람, 이 모두가 우리 영화의 역사와 과거와 추억 속에도 있었다. OTT 산업의 도약과 영화관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조금이라도 서운함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눈가가 촉촉해질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2-02-11 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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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진귀한 공동수상 이면엔 특별한 사연이 있다_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제6회 한국뮤지컬어워즈가 열렸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공연예술 분야를 얼어붙게 했지만, 이번 어워즈에서도 등장했던 것처럼 ‘쇼는 계속돼야 한다(Show must go o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문화와 예술이 어떤 방향성을 지니고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는지를 다시 곱씹어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수상식은 늘 감동과 눈물이 교차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올해 가장 이목을 집중시켰던 순간은 단연 남자 신인상 수상부문이었다. 전례없는 공동수상이 이뤄졌는데, 바로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세 주인공 꼬마들이었다. 제법 어른스럽게 “함께 공연하는 모든 사람들, 선생님들께 영광을 돌린다”는 수상소감을 내 객석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번 3기 빌리들의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 공연장을 찾아달라는 부분에서는 웃음도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모습을 만나는 것은 언제든 반갑고 행복한 순간들이지만, 대한민국의 빌리들은 그 중에서도 더 특별한 존재들이 아닐까 싶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처음 막을 올린 곳은 2005년 5월 11일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팔레스 극장에서였다. 물론 개막초기부터 화제를 몰고 다니는 대박 흥행을 이어갔고, 대부분의 예상처럼 세계 각지에서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무대용 뮤지컬에서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달드리가 연출을 맡았고, 안무 역시 스크린에 참여했던 피터 달링이 동참했다. 영화를 제작했던 워킹 타이틀이 뮤지컬 제작에서도 주관사로 참여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원작 영화의 제작진이 고스란히 무대에 관여함으로써 작품의 일관된 이미지를 이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탄광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는 사실 대본을 쓴 극작가 리 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모티브를 차용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영화의 제작진이 무대로 고스란히 이어짐으로써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해내게 되는 바탕이 됐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사회적 리얼리즘이 가미된 성장영화로 특징지을 수 있다. 사회적 리얼리즘이란 코믹한 설정이나 재미있는 이야기 안에 실제 우리가 살고 있거나 살았던 현실의 진짜 고민들을 담아 풍자해내는 일련의 문화예술적 성향을 말한다. 배꼽 잡는 드라마와 코믹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해당 문화콘텐츠를 감상한 후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이 알싸한 뒷맛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류의 작품들이 지니는 특별한 묘미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도 마찬가지다. 상업 무대의 콘텐츠로서는 드물게 사회적 리얼리즘을 반영한 이 뮤지컬은 무노동 무임금을 주창하며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영국 마가렛 대처 수상과 보수당 정권의 또 다른 단면을 시골 탄부의 가정에 맞춰 그럴싸하게 풍자해낸다. 왕립 발레 스쿨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은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한 걸음에 달려간 노조 사무실에서 사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된 탄부들의 마지막 파업이 절묘하게 교차된다든지,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파업 현장을 떠나 굳은 표정으로 탄광으로 향하는 아버지가 시위대의 항의를 막기 위해 쇠창살이 붙어있는 ‘닭장차’를 타고 탄광으로 들어가는 모습 등은 관객들에게 무거운 정적을 드리울 만큼 깊이 있는 현실감을 전달한다. 무작정 화려하거나 환상적이지도 또 결코 달콤하지도 않지만, 콧등이 시큰해지는 묵직한 감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 만날 수 있었던 씁쓰름한 사회풍자와도 엇비슷한 무대적 체험들이다.
영화와 무대의 공통점도 있다. 단연 손꼽을 만한 것은 역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다. 무대를 통해 만나는 아역 배우들의 춤과 연기는 가족 뮤지컬이라는 마케팅적 요소로서의 장점도 되지만, 무엇보다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감탄하고 미소짓게 되는 마술 같은 효과를 잉태해낸다. 피아노에서 몸을 비틀어 반회전 점핑을 하고, 발레의 기본 동작에 맞춰 터닝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대라서 더욱 현실감도 느껴지고, 생동감도 넘쳐나는 최고의 순간들이다. 여기에 죽은 엄마와 발레 선생이 함께 등장해 노래하는 ‘편지’ 장면이나 미래의 자신과 만나 함께 이중무를 꾸미는 시퀀스 등은 뮤지컬이라서 느낄 수 있는 감성적 체험을 더욱 극명하게 객석으로 전달해준다.
사실 뮤지컬의 주인공인 빌리 역은 오디션 때부터 이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부 영화팬들은 영화에 나왔던 배우 제이미 벨이 무대에 서기를 간절히 기대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영화가 제작된 2000년 당시 그는 11살이었지만, 뮤지컬이 만들어진 2007년에는 이미 청년으로 자라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빌리 역은 영국 전역에서 펼쳐진 오디션을 통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세 소년 - 제임스 로마스와 조지 맥과이어 그리고 리암 모우어에게 돌아갔다. 체력적인 문제로 성인 배우처럼 매일 무대에 설 수 없어 세 소년이 번갈아 무대를 꾸몄는데, 이제 겨우 열 살을 넘긴 어린 나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역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묘사해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결국 세 소년은 이 작품에서의 연기로 영국 무대 최고의 권위인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 기록은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이자 무대로서는 희귀한 공동수상 기록이었다. 흥미롭게도 토니상에서도 이 기록은 똑같이 재연됐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던 세 아역배우 - 데이비드 알바레즈와 키릴 쿨리쉬 그리고 트렌트 코왈릭이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하게 된 것이다. 결국 희귀한 공동수상의 기록은 대서양을 건너 뮤지컬의 양대 산맥에서 똑같이 재연되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해 냈다. 물론 전술한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제 한 줄을 더 보탠 흥미로운 사례가 됐다.
영국의 국민가수인 엘튼 존이 작곡한 뮤지컬 음악들은 특유의 수려한 선율들로 잘 포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한 그는 최근 뮤지컬 공연가에서 맹활약중이다. ‘라이언 킹’의 음악도 그가 아프리카 뮤지션들과 함께 만든 선율들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수준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선보이는데, 특히 주제가격인 ‘전기’와 죽은 빌리의 엄마와 발레 선생이 함께 노래하는 ‘편지’는 공연을 본 후 음악만 들어도 울컥해지는 감수성을 담아내 이 뮤지컬의 최고의 명장면으로 통한다. 종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두르길 바란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jwon@sch.ac.kr)
2022-02-11 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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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특별인터뷰 ] 일본 아몬드 뮤직 마쓰다 아유코 대표
아유코 마쓰다씨는 현재 일본 아몬드 뮤직 대표이자 중국 선전(深圳) 심포니 오케스트라 홍보이사, 한중일 동아시아 문화도시 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마쓰다 대표는 특히 한류와 K컬쳐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토대로 아시아를 아우르며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대사로서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에 본지는 현재 도쿄에 머무르고 있는 마쓰다대표와의 서면인터뷰(영어)를 진행했다. <편집자 주>
한류와 K컬쳐 해박한 이해 토대, 아시아 전역에 강한 영향력 전파
Q. 마쓰다 대표는 한국문화와 예술, 협동(cooperations)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위해 한국의 예술가들과 함께 진행하고 계신 일들이 있는데, 어떤 성과들이 있었는지요?
제가 일본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되었던 2001년, 한국의 정명훈 지휘자님을 특별 예술 고문을 맞이해 함께 일을 한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미 세계적인 슈퍼스타인 정명훈 지휘자님과 함께한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음악적으로도 대중성으로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정 지휘자님을 통해 한국의 독주자들을 일본을 초청해 함께 연주할 수 있었음은 물론, 한국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함께 공연을 하면서 느낀 한국 관객들의 따뜻하고 열정적인 박수는 언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복잡하고 슬픈 한일 역사가 아닌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그때 느낀 감동은 너무나도 친밀했고 ‘음악의 기적’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국적, 종교, 나이, 성별 등을 불문하고 마음이 하나되는 그런 감동이었죠.
음악이란 만국의 공통어입니다. 우리가 희망하고 음악을 공유하는 경험을 함께 한다면, 이는 세계평화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기적 같은 순간들을 음악을 통해 가능한 많이 경험하고 알리고 싶어 시작하게 됐습니다.
Q. 최근 한국의 문화 컨텐츠가 세계 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저는 어머니와 함께 한국 사극을 챙겨보고 사극에 나왔던 장소를 함께 방문할 정도로 한국 문화의 열렬한 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한국 문화는 처음부터 보편적인 매력을 지닌 현대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져 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한국 문화 생산자들은 상업적으로 매우 정통해 있습니다.
10년 전 K-POP이 일본에 전파되기 시작할 무렵, 미국에서는 레이디 가가가 활동을 시작했고, 음악 소비는 이제 청각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듣는 음악’만으로는 사람의 감각을 만족시키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해 음악은 이제 시각적인 평가도 함께 받게 되었습니다.
비디오가 메인 주인공이고 음악이 비디오를 지원해 주는 일명 ‘뷰직(Viewsic)’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탄생할 만큼 시각적인 표현은 중요 해졌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했습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 사이에서 뮤직비디오 다운로드가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K-POP이 전세계 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현대인들이 원하는 ‘음향이 있는 비디오’의 환상적인 조합 덕분일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정부는 2000년부터 IT 산업과 문화사업을 주류 경제정책으로 추진해 오고 있으며, 한국의 많은 대학과 직업학교들은 음악 및 영상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의 꽃을 피웠다고 생각합니다.
Q. 마쓰다 대표는 클래식음악에 대한 저서를 비단 일본어로 뿐만 아니라 한국어 및 중국어 번역판으로도 출간하셨고, 대단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저서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저술 동기랄까,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이 책은 대만에서 중국어로 출판되었으며, 현재 베이징 출판사가 제작중인 중국어 간체 번역본이 올 가을에 출시될 예정입니다. 제가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홍보외교 총감독으로 활동할 당시, 제 주요 업무 중 하나가 후원자들을 모은 것이었습니다.
종종 음악 산업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과 만날 일이 있었는데, 클래식 음악과 음악을 좋아하고 후원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후원에 참여하고 있는 사업 간부들 중 클래식 음악을 조금 알고 있지만 더 많이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들을 위해 문화 핸드북을 집필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시 비즈니스 북을 출판하기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출판사를 알게 되었고,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나의 경험 및 지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일본 비즈니스 출판계 1위를 차지하고 있던 다이아몬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일본을 이끌어갈 사업가들의 교육에 있어 예술 문화가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계 속 일본의 위치를 생각하면서 다이아몬드 출판사와 함께 꾸준히 일하고 있습니다.
Q. 마쓰다 대표는 원래 피아니스트셨지만,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올리면서 역량을 입증해 오고 계십니다.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홍보이사(PR director),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진행한 여러 활동, 일반사단법인 생산노화연구기구(IRPA)의 홍보이사 등 대단히 눈에 띄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신 동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음악 외에도 다양한 공부를 함께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음악으로 대학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의 연주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를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소름 끼칠 정도의 감동 끝에 깊은 고요함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바뀌는 순간, 그토록 모두를 하나로 묶는 음악의 힘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음악을 배우겠다는 각오로 나가사키에 위치한 기독교 영향을 받으며 오랜 역사를 간직한 갓스이 여자 대학(Kwassui Women’s University)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활 동안 저는 대학에 있는 작곡가, 작곡가에 영향을 받은 철학자, 그리고 음악에 관련된 책들을 모두 읽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적은 없을 정도로 매진했죠.
당시 저는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저의 대학생활은 음악의 위치를 찾는 과정이었고 음악에 관심이 있는 많은 문학 작품들과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역사를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 시간동안 미래의 문화외교관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을 문화, 사회, 경제의 삼박자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예술을 사회, 경제와 연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것은 제가 스스로 일하고 일을 시작하게 된 배경입니다.
일본에서 음악가와 음악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환경이 때로는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환경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야심 차게 그 차이를 아는 경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단순이 음악산업 뿐만 아니라 기타 다른 다양한 산업에서도 경험을 쌓아야 일본의 사회경제 구조를 더 잘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집필하는 도중에, IRPA라고 알려진 한 기관에서 세계적인 노화방지 연구자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인간의 뇌에서 음악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음악’이 저의 모든 커리어를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Q.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의 산업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에 따라 문화가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고, 예술가들의 삶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이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고 있는지, 특히 국가 또는 기업의 지원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클래식음악계에 주안점을 두고 설명해 주십시오. 현재의 상황에 대응하는 방안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또한 듣고 싶습니다
그동안 일본 음악산업은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더디었던 터라, 온라인 공연 유통까지 빠르게 진출한 중국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일본이 드디어 따라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은 ‘눈으로 듣는 것’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대유행과 함께한 지난 몇 년 동안 이미지로 작업하는 음악가들의 수는 증가했습니다. 마치 새로운 분야의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 산업에 뛰어든 느낌마저 듭니다.
음악 매니지먼트사 소속 아티스트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산업의 구성이 앞으로는 크게 바뀔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코로나는 몇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작업 방식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저 자신도 아직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음악가들과 제작진들도 새로운 사업 기회의 문을 아직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Q. 일본 아몬드 뮤직 대표, 중국 선전(深圳) 심포니 오케스트라 홍보이사 등을 맡고 계시면서 한‧중‧일 동아시아문화도시위원회 고문까지 겸임하고 계십니다. 하고 계신 역할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중‧일 동아시아문화도시위원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제 역할을 전체적으로 하나의 직업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음악을 통해 서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몬드는 현재 음악을 기반으로 한 기업 브랜딩 디자인과 CSR활동 기획, 음악 중심의 도시개발 등에 대한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내년에 진행 예정인 ‘일ㆍ중 국교 정상화 50주년’, ‘일ㆍ베트남 국교수립 50주년’ 등 국책사업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 덕분에 회사나 단체로부터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최근 선전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국제적인 이미지 발전을 위해 저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죠.
제가 ‘동아시아 문화도시 실행위원회’에서 맡은 일은 한ㆍ중ㆍ일 문화교류 사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공감을 높이고 사업 내용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일ㆍ중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31일 중국 춘절을 축하하기 위해 도쿄타워 점등식점등 기념식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다음으로 동아시아 문화도시 프로젝트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지휘자 아드리엘 김과 정민이 오이타현에서 지휘를 맡게 되어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일본 투어가 아직 1년 이상 남아있지만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한국을 방문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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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코 마쓰다 프로필
아유코 마쓰다 아몬드 뮤직 대표(CEO)는 갓스이 여자 대학(Kwassui Women’s University)피아노, 오르간학과를 졸업한 후, 나가오하 리릿 홀(Nagaoka Lyric Hall)에서 예술 고문을 맡고 있던 작곡가 아키라 미요시(Akira Miyoshi)와 함께 나가오카시 예술문화진흥재단(Nagaoka City Arts and Culture Promotion Foundation)에서 기획 및 홍보 업무를 맡으며 직업 경력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나가오카 리릭 홀의 5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했으며, 일본 공연 뿐 아니라 영국에서의 공연을 위해 올드버러 뮤직 페스티벌(Aldeburgh Festival Music Festival)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브리튼(Britten)의 오페라 ‘컬류 강(Curlew River)’과 ‘스미다 강(Sumida River)’의 노(NoH) 공연을 결합한 공연은 ‘일본 2001(Japan 2001)’과 영국 국가 행사의 일환으로 선정돼 영국과 일본에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후 마쓰다대표는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입단, 예술 문화 산업을 넘어 일본 우정 주식회사와 산업 성장 플랫폼 주식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관리 역할을 맡았다. 특히 이 기간동안 회사와 고객의 CSR 활동에 관여했으며, IGPI가 후원하고 지원하는 회사의 성장을 지원했다.
2013년에는 도쿄 필하모닉 홍보외교국장으로 복귀해 도쿄 필하모닉 100주년 기념행사 및 월드 투어, 한일 수교 50주년, 일중 수교 45주년 등 주요 행사와 프로젝트에서 커뮤니케이션과 협상을 담당했다. 2018년 11월 아몬드 주식회사(Almond Co., Ltd.,)를 설립했으며, IGPI 고문, 선전 심포니 오케스트라 국제 홍보 담당자, 검마 심포니 오케스트라(Gumma Symphony orchestra) 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쓰다대표는 ‘클래식 음악의 폭넓은 역사’와 ‘클래식 걸작의 폭넓은 역사’라는 제목의 저서를 일보에서 출간한 바 있으며 한국에서는 ‘클래식 상식사전’과 ‘클래식 칸타타’라는 책이 발매되었다.
2022-02-11 1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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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마음이 따뜻한 개척자, 로스트로포비치
파블로 카잘스 이후 ‘첼로의 천재’라고 불리는 로스트로포비치. 일명 ‘슬라바’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첼리스트로 일컬어지며 당대 한계에 부딪혔던 첼로주법을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구소련 태생으로 1927년에 태어났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를 하였고, 이후 서유럽을 드나들며 왕성한 연주 활동을 펼쳤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은 1970년대. 작가 알렉산드로 솔제니친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솔제니친을 자신의 집에서 보호해주었는데 이 사건으로 외국 공연이 제한되었고 소련의 주요 도시에서 연주 기회가 줄어들었다. 결국 1974년, 로스트로포비치는 가족과 함께 소련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을 결심했고 1978년 소런 시민권을 박탈당했다(1990년 다시 재획득하기는 했다). 한편, 이 사건이 그에게 다른 의미에서는 음악가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는데 바로 미국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것이다.
필자는 뉴욕 필하모닉 재직 당시 이 다사다난한 인생의 주인공과 운 좋게 함께 일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덕분에 그의 귀여운 모습을 목격할 기획도 있었는데 그가 10시에 리허설 스케줄이 잡힌 날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9시 55분이 되어도 그가 공연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 매니저였던 필자는 출연자 입구로 내려가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잠시 후 조그마한 키의 그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게 말을 걸려던 순간, 그가 “저는 오늘 지휘를 하러 온 로스트로포비치라고 합니다! 시계가 고장 나 늦었어요! 죄송합니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웃음이 나오는 걸 꾹 참고 그를 무대까지 안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날의 특별한 경험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리허설을 무사히 마친 후 그가 나를 따로 찾아와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따로 전했던 것이다. 민망할 정도의 인사가 끝난 뒤 할 말을 찾던 그 때 그의 바흐 무반주 모음곡 앨범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주말 아침마다 나를 깨워준 음악이 바로 그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였던 것이다. 그의 과분한 감사 인사에 용기를 얻어 “주말 아침마다 엄마가 틀어주신 당신의 무반주 소나타를 들으며 일어났어요. 덕분에 주말이 몹시 행복했죠. 당신의 연주를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전 너무 자랑스러워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내 연주를 그렇게 들어줘서 고마워요. 음악은 아름다운 것이죠. 음악은 어떤 것이라도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나를 힘껏 안아주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위엄 있는 지휘자 대신 포근한 할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생각난다.
이 순간을 함께 했던 또 한 사람. 뉴욕 필하모닉 前 퍼스널 매니저 칼 쉬블러는 이후 나에게 또 다른 그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미국 무대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그가 뉴욕 필하모닉과 연주할 때는 항상 첼로 수석의 악기를 빌려 연주했고 악장 옆에 KGB 요원이 앉아있었다고 한다. 왜인지 물으니 당시 구소련에서 로스트로포비치가 서방으로 도주할 것을 우려해 악기 외국반출을 금지시켰고 연주 중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KGB 요원을 배치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았던 따뜻한 할아버지 로스트로포비치의 모습과는 상반된 그의 일화를 들으며 그가 음악가로서나 인간으로서 얼마나 힘든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스트로포비치가 음악가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존경받고 존중받는 점은 구소련 체제 속에서 어려움을 헤쳐나온 것 뿐만 아니라 젊은 음악가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냈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르치, 에브기니 키신,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위 사진> 등 이미 이름만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최정상의 연주자들. 그리고 한국의 첼리스트 장한나까지 모두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제자 사랑은 무대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그는 연주를 시작할 때 협연자를 앞세우고 지휘자가 뒤따라가는 일반적인 무대 등장 대신 아르헤르치, 벤게로프와 손을 꼭 잡고 함께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은 아미 자식의 손을 잡은 아버지의 모습 같다.
사실 백스테이지에서의 그는 까다로운 아티스트이다. 음식에 대한 취향도 까다롭고 전석 매진인 자신의 공연 초대권을 공연 시작 5분 전에 요청하고, 정열적인 지휘 탓에 공연 도중 지휘봉을 부러뜨리기도 한다. 그의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은 단 1분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만들어낸 음악을 뒤에서 듣고 있자면 그 요구들은 별 것 아닌 일로 금방 잊히고 만다. 세상이 인정하는 거장인 그가 아직도 음악 앞에서 순수하게 감사하며 겸손해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다시 한 번 진정한 음악의 의미를 떠올리며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보고 겪고 들은 이야기 속에서 로스트로포비치의 모습은 전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길을 안내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 넘치는 감사함을 표현한 따뜻한 할아버지. 친구를 위해 체제의 감시까지 묵묵히 버텨낸 자유의 수호자. 한계에 부딪힌 첼로주법을 발전시킨 발명가. 젊은 음악가들을 끊임없이 발굴해내는 선구자까지. 과연 그의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가 있을까. 필자는 감히 그에게 ‘개척자’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다. 음악을 통해 소련을 넘어 미국에서 자유를 표현하고 제자들의 손을 이끌어 국제무대의 길을 열어주는 그의 모습은 마치 음악의 새로운 대륙을 발견해내는 개척자의 모습 같다.
로스트로포비치를 통해 들여다 본 음악가의 삶에는 아름다운 선율처럼 평화로운 시간들만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의 삶에서 아주 작은 면면을 훑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삶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징하게 드러난다.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인내.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
당대 최고의 음악가와 잠시나마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내 아이들도 저렇게 강인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부모의 욕심이지만 우리 아이들도 ‘개척자’가 될 수 있는 용기 더 나아가 그 용기를 지탱할 수 있는 끈기가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2-02-04 1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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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리사이틀과 협주곡>
1946년 10월,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N. Milstein, 1904-1992)은 피아니스트 요세프 블랏(J. Blatt, 1906-1999)과 함께 미국 의회 도서관(The Library of Congress)에서 리사이틀을 가졌습니다. 당시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1. 비탈리: 샤콘느
2.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3. 밀스타인: 파가니니아나
------------휴식--------------
4.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앙코르는 밀스타인이 편곡한 쇼팽의 <녹턴>과 비에니아프스키의 <스케르초 타란텔라>가 연주되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구성이 조금 독특하지요? 분명 피아노와 함께 연주했던 리사이틀인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리사이틀에서 원래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된 작품을 연주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옮겨서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원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되었던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예나 지금이나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조합으로도 활발히 연주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점을 협주곡이라는 장르로 옮겨보면 양상이 다릅니다. 오늘날 협주곡은 대부분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음악회에서 연주됩니다. 협주곡을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는 경우는 음악대학교에서 열리는 학생들의 음악회, 콩쿠르, 그리고 오디션 등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일반적인 리사이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요. 사실, 독주 악기와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이 매우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오늘날 연주자가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협주곡을 굳이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1946년의 밀스타인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수많은 작품들을 제쳐두고 왜 굳이 협주곡을 골랐을까요? 사실 ‘왜 굳이 협주곡을 골랐나’라는 질문은 밀스타인을 비롯하여 20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음악가들에게 굉장히 의아하게 여겨질 것이 분명합니다. 피아노 리사이틀이 아닌 기악 리사이틀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은 절대 낯설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뉴욕의 카네기홀(Carnegie Hall)이나 빈의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처럼, 역사가 깊은 연주홀의 프로그램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카네기홀은 홀이 개관한 1891년부터, 그리고 1870년 개관한 무직페어라인은 1926년부터 열렸던 음악회의 프로그램 목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20세기 초에는 리사이틀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당연할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협주곡이 연주되지 않은 리사이틀이 더 적었지요. 다만 빈에서는 1930년대 후반에 리사이틀에서 협주곡이 연주되지 않는 경향이 이미 뚜렷해진 반면 뉴욕에서는 이 경향이 빈보다는 조금 늦은 1950년대에 본격화되었다는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20세기 전반만 해도 기악 리사이틀이라고 하면, 피아노 리사이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바이올린 리사이틀이었는데 여기에서 연주된 협주곡들은 상당히 다양합니다. 모차르트, 멘델스존, 브루흐, 비외탕, 그리고 비에니아프스키의 협주곡들은 그 중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작품들이지요. 오늘날에는 드물게 연주되는 브루흐의 협주곡 2번이나 비외탕의 협주곡 4번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1946년 10월 8일에 열린 밀스타인의 리사이틀 프로그램 책자 중 일부분. 하루 앞선 7일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열렸던 리사이틀은 녹음되었고, 후에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출처: The Library of Congress 홈페이지)
그렇다면 당시 리사이틀에서 협주곡은 언제 연주되었을까요? 서두에 언급된 밀스타인의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보면 협주곡이 리사이틀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리사이틀에서 무게감 있는 소나타가 후반부에 배치되는 프로그램 구성을 떠오르게 하지요. 이러한 구성은 빈보다는 뉴욕에서, 그리고 20세기 초보다는 중반에 열렸던 리사이틀에서 더 발견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 구성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다 보편적인 구성은 협주곡이 리사이틀 초반에, 그러니까 2번째나 3번째 순서에 등장하는 것이었지요. 음악회에서 휴식(Intermission)이 언제 행해졌는지 알 수 있는 무직페어라인의 기록을 보면 이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협주곡은 대게 휴식 전, 그러니까 전반부의 마지막 순서로 연주되었지요. 전반부에는 소나타와 협주곡 등 무게감 있는 작품들이 배치되고 후반부에는 라벨의 <치간느>처럼 연주자의 기교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화려한 작품들, 그리고 오늘날에는 앙코르 무대에서 연주될법한 소품들이 자리하는 구성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아닌 피아노와 함께 하는 협주곡 연주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요? 우선, 단점으로는 음향적인 측면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다양한 악기로 구성되어 있는 오케스트라 파트를 피아노로 옮기게 되면 색채와 입체감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겠지요. 또 오케스트라 악기에 적합하게 설계된 음형이 피아노에는 잘 들어맞지 않을 수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반면 독주자가 지휘자를 통해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는 것보다 피아니스트 한 명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더 편하고 용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청중은 독주자의 소리를 더 자세하고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고요.
리사이틀에서 협주곡을 연주하는 관습은 이미 옛 것이 된 지 오래입니다. 지금 대세를 이루고 있는 관습도 시간의 흐름 속에 점차 변해가겠지요. 음반으로는 드물게 남아버린 옛 관습과는 달리, 현재와 앞으로 등장할 관습의 기록은 풍성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잘 남겨지기를 바래봅니다.
추천영상: 본문에서 언급했던 밀스타인의 1946년 리사이틀 실황은 음반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아닌 피아노와 함께 연주된 멘델스존의 협주곡 음반은 희소성 면에서 매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밀스타인의 멋진 연주가 그 가치를 높입니다. 별도의 편집은 없었을 것이라 예상되는 녹음은 건조하며, 밸런스도 바이올린에 보다 치우친 면이 있는데 이는 분명 단점이지만 동시에 밀스타인의 연주를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장점으로도 작용합니다. 군더더기 없고 생동감 넘치는 그의 연주를 이 특별한 버전으로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ag5Z8L4jG10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2-02-04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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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건반 위로 펼친 치유의 노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당신은 사랑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건 쓰지 않건,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해줄 것입니다.”
말 한마디에 담긴 힘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특히 소통이란 키워드가 연일 주목받는 요즘 같은 시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어떤 외적 표현으로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절한 위로가 필요한 순간 누군가 문득 건넨 한마디는 때때로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동력이 된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돌아왔다. 2016년 초연 이후 5주년을 맞이한 이번 공연은 지난 2021년 12월 11일에 개막해 오는 3월 6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6%를 차지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매 시즌 관객들의 연이은 발걸음에 힘입어 작품이 가진 존재감을 분명히 했다. 음악이 워낙 중요한 역할을 하는 뮤지컬이다 보니 연기자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현악 4중주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데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 연주와 어우러진 클래식한 작품 분위기가 ‘라흐마니노프’의 특별함을 배가한다. 익숙한 멜로디가 자주 흘러나오기 때문에 뮤지컬을 사랑하는 관객들뿐만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라면 누구나 반갑게 볼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5주년을 기념하는 시즌인 만큼 공들인 출연진 역시 시선을 집중시킨다. 우선 작품의 첫출발을 알렸던 박유덕과 안재영, 김경수, 정동화가 이름을 올렸고 여기에 정욱진, 박규원, 김현진, 임병근, 정민, 유성재가 같이 무대에 올라 각각 라흐마니노프와 니콜라이 달로 열연한다. 배우마다 공연 기간이 다르므로 필요한 경우 일정을 미리 확인해두면 좋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위대한 천재 음악가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Sergei Vasilievich Rachmaninoff)의 생애 가운데 일부를 바탕으로 창작됐다. 후기 낭만파 음악의 대표주자로서 작곡과 피아노 연주, 지휘에도 능했던 그는 뛰어난 실력과 섬세한 감성으로 러시아 음악계로부터 기대를 받으며 유망주로 성장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발표한 교향곡 1번이 생각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자 크게 좌절해 3년여에 걸친 기간 동안 은둔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중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의 사촌 형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슬럼프에 빠진 그를 치료하겠다며 찾아온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던 라흐마니노프도 음악적 공감을 바탕으로 니콜라이 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나 오랜 기간 품어 온 트라우마는 쉽게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진심을 묻던 두 사람은 점차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있던 상처와 마주하게 되고, 끝내 믿음과 위로를 통해 어려웠던 현실을 극복하기에 이른다.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들어온 무대 벽면 악보들은 그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강도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장치다. 무대는 가운데 경사진 바닥 구조물을 중심에 두고 상하 2단으로 나눠 연주자와 배우가 각각 활용한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면서 직접 피아노와 비올라를 연주하고 극 흐름에 맞춰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그 배턴을 넘겨받아 본격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형태다. 사실상 무대 위에 오른 모두가 연기자인 셈이다.
극 중 넘버 상당수는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명곡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새롭게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 제2번(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이 완성되는 장면은 오래도록 진한 잔상으로 남는다. 묵직한 저음으로 시작한 피아노 독주가 현의 선율과 만나 화음을 점차 증폭시키면서 화려한 멜로디를 펼쳐낼 때면 인물이 느꼈을 감정 변화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음을 다독이는 대사들도 인상 깊다. 말 때문에 상처받고 또 그로 인해 오해하기 쉬운 세상에서 작품은 언어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한다.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 박사가 제시한 ‘자기 암시 기법’을 통해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 메시지가 반복해 전달되는데 이런 흐름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누구나 겪을 법한 성장과 치유 과정을 통해 불완전함 속에 숨겨진 빛을 찾는 여정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88개의 건반을 자유로이 아우르던 열 개의 손가락이 고통을 딛고 전한 음악은 변치 않을 희망이 되어 오래도록 우리 곁에 함께 할 것이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2-01-25 1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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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사진: Joseph Haydn (1732~1809)
나폴레옹의 자비
하이든 인물탐구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1732–1809). 교향곡의 형식을 정립한 작곡가이자 모짜르트, 베토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빈 고전파 3인방으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하지만 모짜르트, 베토벤과 같은 드라마틱한 천재로서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서인지 비교적 덜 회자되는 인물이기도 한데 18세기 당시는 어땠을까. 하이든은 유럽 음악계의 슈퍼스타였으며 생전에 모짜르트, 베토벤보다 유럽 전역에서 더 큰 인기와 명예를 누린 사람이었다. 게다가 77세까지 살며 장수했던 몇 안되는 작곡가였다.
잘 알려진 흥미로운 일화. 1809년 나폴레옹의 비엔나 침공 당시 하이든은 병상에 누워 미처 피신하지 못했다. 포탄이 오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속에 하이든의 안위를 걱정했던 나폴레옹은 군사들로 하여금 보초를 서게함으로써 마에스트로를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지켰다. 한때 유럽을 제패했던 권력자가 한 예술가를 예우했다는 사실은 전유럽에 걸친 하이든의 인지도와 그에대한 존경심을 말해준다.
30년간 에스테르하지 가문 휘하에서 궁정악장으로 활동하다가 1790년 정년퇴직한 하이든을 열렬히 맞아준 영국의 반응 또한 이례적이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 1791년 영국의 공연기획자 잘로몬의 권유로 런던을 처음 방문했던 하이든은 이미 유명인사였다. 그의 작품들은 이전 부터 런던에 출판되어 널리 연주되고 있었으며 영국의 매스컴은 그의 첫 방문을 떠들썩하게 다루었다. 3일 동안 모든 신문들이 일제히 그에 관한 기사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영국의 음악학자 찰스 버니는 런던시민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으며 "하이든의 기악곡들만큼 영국인들에게 관심과 즐거움을 선사한 작곡가는 없었다"고 했다. 영국의 왕족들 또한 그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성 제임스 궁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를 찾은 황태자는 가장 먼저 하이든에게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영국 왕 조지 3세는 영국에 계속 머물 것을 권유하였다. 당시 하이든은 "런던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고 싶어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두 차례 큰 환대속에 방문한 런던여행을 통해 그의 대표작인 12개의 런던 교향곡들이 탄생한다.
불운한 천재들과는 달리 재정적인 성공과 더불어 생전에 당대최고의 음악가로 명성을 누렸던 그에겐 남다른 운이 따랐던 것일까. 그는 동시대의 천재 모짜르트와 같은 후배를 살뜰하게 챙길 줄 알았던 성품과 타고난 현실감각을 갖춘 예술가로서는 보기 드문 전인적인 인재였다.
29세의 나이에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취직하며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기 전까지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여섯살부터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며 음악교육을 받아야했고 지인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고에 늘 시달리던 예술가였다. 거리악사, 음악교사등 음악을 통한 수입외에 작곡가 밑에서 잡일까지 도맡았다. 하지만 그는 인색하기보다는 온화하고 남을 품을 줄 아는 넉넉한 인품의 소유자로 성장했으며 늘 유머가 떠나지않는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1788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의 비엔나 공연이 끝난 후 라주모프스키 공작이 주최한 파티에서 참석자들은 작품에 대한 혹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던 하이든에게 의견을 물었을때 그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 내가 이 논란을 잠재울 순 없겠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는 사실입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신분이나 위신에 연연하지않고 관계를 중시했는데 유언장에 하인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내용을 넣기도 했다. 에스테르헤지 가문의 후작이 하이든의 퇴직 이후에도 그와 친분을 유지하며 그를 예우했던 기록은 그의 성실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너무나 유명한 일화로 잘 알려져있듯, 여름궁전에 머무르던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떠날 기미를 안보이자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궁정악단 연주자들이 집에 가지못하자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하이든은 꾀를 내어 우회적인 메세지로 그의 '고별'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연주자들이 촛불을 끄고 한명씩 무대에서 사라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결국 후작은 음악적 함의를 간파하고 연주자들을 집으로 떠나보냈다고 한다. 탁월한 공감능력과 따뜻한 유머가 넘치는 하이든의 캐릭터를 어렵지않게 떠올릴 수 있다.
공감과 소통에 능했던 그에게서 비즈니스 맨으로서의 수완도 엿보인다. 영국 BBC에서 제작한 '영국음악의 탄생'이라는 다큐멘터리의 내용 중에 하이든이 일찌기 영국이라는 마켓에서 큰 수익을 거둘 것을 짐짓 짐작하고 런던 여행을 택했다는 대목이있는데 수긍이가는 내용이다.그는 실제로 에스테르하지 후작 밑에서 몇십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1년만에 런던에서 벌어들였다. 하이든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데도 성공했다. 파리의 귀족 도니 백작에게서 파리에서 연주될 교향곡들을 의뢰받았는데 모차르트의 31번 '파리' 교향곡과 비교해서 5배나되는 거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특히 출판사들과 거래할때 수익을 극대화하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 악보 저작권에 밝았던 그는 출판사들과의 협상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며 불공정한 거래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음악학자 제임스 웹스터는 그의 이러한 면모에 대해 어린시절 가난의 굴레 속에 하이든이 겪었던 고난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 비지니스 관계가 아닌 친척, 음악가,하인들과의 관계에서는 관대했으며 자선연주회에도 열심이었던 사람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감성의 중용의 미덕을 갖춘 예술가로 당시에 존경을 받았으며 어쩌면 특히 현시대에 배울 점이 많은 아티스트일지도 모른다. 이제 현실감각과 공감능력이 결여된 채 예술만 알아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 아닌가.
'장학퀴즈'의 시그널 음악으로 익히 알려진 트럼펫 협주곡 3악장 만큼이나 귀에 쏙 박히는 명쾌한 테마를 가진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 1악장을 추천한다. 그 존재가 잊혀져있다가 풀케르트라는 음악학자에 의해 1961년 프라하에서 악보가 발견되었는데 1761~1765년 사이에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가에 재직할 당시 작곡되었다. 200년간 잠자고 있었던 이 작품은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이 깃든 작품으로 첼로 협주곡 레퍼토리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mooB5Q-0FIE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2-01-25 14: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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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처포커스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모호한 메타버스 생태계의 모든 것”
밀레니얼과 더불어 시작된 디지털 시대는 PC통신을 거쳐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전화기·오디오·카메라·PC 등 모든 전자기기가 스마트폰 하나로 통합됐고, 개인화된 미디어가 보편화되어 앱과 콘텐츠에 따른 문화취향이 손안에서 이루어지게 됐다. 2020년대의 코로나 팬데믹은 온라인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심화, 확장시켰고 이제 대부분의 미디어와 콘텐츠는 메타버스(Metaverse; 로블록스·포트나이트·제페토 등이 상용화)안에서 통합될 일을 남겨두었다. 메타버스를 분석해온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2000년 중반 메타버스를 네 유형으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라이프로깅(Lifelogging; 디지털 공간에 삶의 일부를 공유),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세계(Virtual Worlds)를 설명하고, 메타버스가 구현하는 융복합 양상을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을 통한 생산과 소비라고 예측했다. 놀이와 일이 혼합되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수익창출모델이 뒤섞이면서, 생산자와 소비자(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모호한 생태계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디지털 속에서 어떻게 문화를 이해하고 준비해야 하는가.
<그림1>.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와 같은 IT산업 종사자들의 새로운 생태계는 부의 순위를 바꾸고 있다.
디지털 시대, NFT와 문화예술의 관계
21세기 정보통신 기술이 집약된 메타버스와 NFT를 기반으로 변해가는 예술시장은 창작과 감상에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먼저 최근 불고 있는 NFT(Non Fungible Tokens)에 대해 알아보자. NFT는 동일한 가치의 다른 것과 대체 불가능한 특징을 갖고 있는 블록체인 상의 고유한 자산을 말한다. 블록체인은 온라인 거래 관련 정보를 여러 주체가 나누어 기록하고 보관함으로써 거래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보장해주는 분산형 데이터 처리기술로, 비트코인·도지코인·이더리움 같은 암호자산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경제를 움직이는 상징이다. 2세대 블록체인 기술인 이더리움은 다양한 응용서비스와의 연계 기능으로 인해 각광을 받아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한 가상화폐 시장을 선도하는데, NFT가 바로 이더리움 기반의 응용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유일성으로 인해 NFT는 각각 고유의 증명기록을 갖다. 그 기록은 소유권이 변하더라도 변경하거나 없앨 수 없다. 마치 고유의 등록번호처럼 NFT 기반의 모든 디지털 콘텐츠는 변조가 불가능한 고유한 증명기록을 갖는 셈이다. NFT는 음원이나 영상, 미술작품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문화예술 디지털 자산에 적용가능한데, 디지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거래되기 때문에 소유자의 익명성이 보장된다.
<그림2>. 대표적인 NFT 마켓플레이스 OPENSEA
NFT를 통해 미술작품이 처음 거래된 14년 뉴욕 뉴뮤지엄의 ‘Seven on Seven’이라는 프로젝트로부터 불과 7년, 2021년 4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미술작가 비플의 NFT 작품이 700억 원 넘는 가격에 판매되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제 이러한 방식은 음원이나 영상자료로 까지 확장되고 있다. NFT 시장의 긍정적인 영향은 예술작품의 가치 보존과 거래 편의성 증진이다. 디지털 예술작품은 특성상 무한한 복제가 가능지만, 특정한 디지털 콘텐츠의 고유성과 유일성을 입증해주는 메타데이터적 특성은 소유자가 시장가치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말 그대로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통한 거래는 프로버넌스(소유기록)를 명확히 정리해줄 뿐 아니라, 전통적인 아트마켓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NFT 마켓플레이스(OpenSea,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X의 클립드롭스 등) 서비스를 열어준 것이다. 창작자와 소비자가 직접 디지털 미술작품을 자유롭게 거래하는 장은 신진아티스트들이 장벽 없이 온라인 마켓을 통해 작품을 거래할 수 있는 편리한 장을 열어, 작품구매의 위계를 최소화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수백만 점의 디지털 아트는 미학, 예술사, 시장적 기준이 제대로 않아 향후 전망을 고려하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마켓플레이스가 작가를 선별하고 큐레이션 하는 ‘플랫폼이나 앱’ 등이 등장했는데, 이는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게임컨텐츠 회사들이 무분별하게 뛰어든 경우가 많아 주의를 요한다. 그러므로 전문성에 대한 축적과 작품선별에 대한 보장은 철저하게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엔 메타버스 전시관을 통해 NFT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사례 등이 늘고 있으며, 손이 아닌 AI에 의한 창작(구글 Deep Dream, 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 CAN-Creative Adversarial Network 등)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가상자산에 이해, 마켓플레이스를 비롯한 NFT 생태계 등은 감상보다는 투자에 특화된 모델이므로, 기술진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실제 예술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림3> 구글 Deep Dream이 구현한 반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변형회화
NFT 시대의 저작권 이슈와 전망
디지털 작품은 실제 작품의 원형을 가진 아티스트와 이를 2차 가공하는 테크니션 사이에 “창작자가 누구인가”라는 저작권의 공유 문제가 발생한다. 아날로그 원작이 없는 짤이나 밈, 웹툰 같은 디지털 작품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유명작가의 아날로그 작품을 디지털 작품으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은 확장된 문제를 낳게 된다. 디지털 작품을 소유한다 해서 저작권까지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저작권이 소멸된 작품을 NFT로 만든다고 해서 시장에서 모두 용인해주지 않을 경우도 존재한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가상공간의 활용이 다각화 될수록, 복제권·전송권·전시권·배포권·공연권 등의 문제는 산재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의 작품 창작과 공연 및 전시 관람은 이제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갖가지 새로운 플랫폼 모델을 창출한다. 현실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디지털 교류와 소통방식은 이동성, 편의성은 증대를 낳았고,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자유로운 활용을 가능하게 했다. 스크린 터치가 아닌 오감(五感)의 상호작용을 통한 디지털 수익창출 모델은 팬데믹 상황이 종료된다고 하더라도 메타버스와 NFT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생산-유통-소비를 이어갈 것이다. 21세기의 디지털 기술을 상징하는 메타버스나 NFT가 우리 문화예술의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할지 명확하게 예측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문화예술의 새로운 장을 만드는 바로 그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계를 새롭게 구성할 아티스트, 예술행정가 및 조력자, 감상자 및 관람객 등 모든 주체의 책임과 역할이 함께 어우러질 때 진정한 4차 혁명의 성공이 도래할 것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2-01-21 1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