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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지역민과 상생하는 음악 축제- Bravo! Vail Festival
성큼 다가온 여름,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축제(Festival)의 어원은 ‘Festivus’로 교회 축제일을 의미한다. 종교적 의례에 놀이 요소를 가미해 말 그대로 잘 먹고 마시고 놀자는 의미를 가진 페스티벌. 현재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 록키산맥에 둘러싸인 인구 5천명의 작은 도시, 베일(Vail)도 여름에는 축제의 열기가 가득한 생기 넘치는 도시로 변한다. ‘Bravo! Vail Festival’ 덕분이다. 실내악을 기본으로 시작해 현재는 미국의 중요한 음악 행사 중 하나로 자리잡은 이 축제는 유명 오케스트라들이 대거 참여하고 프로그램과 볼거리가 풍성해 매해 대략 6만 명의 관객이 베일로 찾아든다.
올해 35번째 시즌을 맞이한 ‘Bravo! Vail Festival’은 6월 23일부터 8월 4일까지 6주간 개최된다. 80여 회 공연 중 20회가 오케스트라 공연으로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뉴욕 필하모닉 외에 올해는 세인트 폴 챔버 오케스트라까지 합세해 클래식의 풍미를 한껏 맛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Hélène Grimaud와 Nikolaj Szeps-Znaider의 리사이틀, 뮤지컬 아메리카의 ‘올해의 실내악상’ 수상의 주인공 Danish String Quartet과 Verona Quartet 실내악 연주도 예정되어 있어 축제의 열기가 한층 더해질 예정이다.
올해 베일 페스티벌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이벤트는 바로 ‘Mahler Celebration’이다. 그 중 ‘Mahler Walk’는 하이킹을 하며 음악학자와 숲 해설사에게 숲과 말러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휴식시간에는 금관 4중주로 편곡한 말러 교향곡을 듣는 프로그램으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말러의 음악 세계를 깊이 있게 다루는 시간이다. 숲속 공연장에서 자연과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화음 속에 한껏 빠질 수 있는 이 특별한 경험이야말로 베일 페스티벌의 백미다.
축제 자체도 듣고 즐기고 배울 거리가 풍성하지만 베일 페스티벌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지역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공동체의 분위를 자아낸다는 데 있다. 축제는 관광객의 유입으로 도시의 수입원이 넓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에 불편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해 지역민들의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베일의 시민들은 관광객들을 환대하며 축제의 관객이자 지원군이 되어주는데 이는 일반적인 클래식 행사의 개념에서 한층 발전해 지역민과 상생하는 축제로 거듭난 덕분이다. 40여 회의 지역사회 공연을 통해 지역민을 위한 무료 공연은 물론, 교육 콘서트, 피아노 및 바이올린 실습 트레이닝이 마련되고 Music Makers Haciendo Música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250명의 학생이 무료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1년 내내 배울 기회를 제공하니 지역민들 역시 축제를 반길 이유가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축제가 있다. 바로 올해로 19회를 맞은 ‘평창대관령 음악제’다. 2018년부터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음악감독을 맡아 진행되고 있는 이 음악제는 올해는 ‘마스크’를 주제로 7월 2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다. 손열음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개막공연으로 세 명의 연주자가 마스크를 쓰고 등장해 연주하는 조지 크럼의 ‘고래의 노래’가, 메인 콘서트로는 하차투리안의 가면무도회 모음곡을 편성해 주제 의식을 높였다.”고 밝혔다. 더불어 올해 신설된 현악 오케스트라인 평창페스티벌 스트링즈와 바로크 전문 악단인 평창페스티벌 바로크앙상블도 공개한다고 언급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주춤했던 축제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음을 알렸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역시 아카데미 프로그램에 공을 들여 준비한다. 실내악 프로그램과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개별 악기 마스터 클래스 등 배움의 장을 넓히고자 노력 중이다. 특히 실내악 아카데미는 1주일의 집중교육 기간을 거쳐 실제 무대에 설 기회를 준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또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강원도 곳곳을 찾아 지역주민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의 관광명소, 종교시설, 박물관, 미술관 등 지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해 접근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19년 공연 직전 취소사태를 겪기도 했으나 올해는 공연장 5곳을 선정해 재개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지역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적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베일의 축제를 통해 관객과 아티스트들이 지역민들에게 환영받는 분위기에서 참여할수록 축제의 열기와 매력이 무르익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일 방안 모색은 ‘평창대관령음악제’의 발전에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페스티벌일수록 지역민들의 공감과 지원의 축제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성공을 발판삼아 다양한 지역 페스티벌과 오케스트라가 시도되고 있는 만큼 지역민과 상생하는 페스티벌의 양적, 질적 성장을 통해 모두 함께 즐기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확대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2-07-01 1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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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악장의 조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2년 7월 29일, 5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잘츠부르크에서 차로 30여분 걸리는 조그마한 도시, 장크트 길겐(St. Gilgen) 근교에서 등산을 하다 추락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는 헬리콥터에 실린 채 급히 잘츠부르크의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가 바로 빈 필의 제 1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게르하르트 헤첼(Gerhart Hetzel, 1940-1992)이었기 때문이지요. 사고 당일에도 야나체크(L. Janáček, 1854-1928)의 오페라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From the House of the Dead)> 리허설에 참여했던 헤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틑날 열린 오페라 <죽은 자의 집으로부터> 공연은 헤첼을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요.
헤첼이 빈 필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던 시점은 1969년, 그가 29세이던 때였습니다. 당시 빈 필의 악장 중 한 명이었던 발터 벨러(W. Weller, 1939-2015)가 지휘자로서의 커리어에 집중하기 위해 악장직을 갑자기 사임하였고 이에 악장 오디션이 열렸습니다. 1963년부터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약하던 헤첼은 벨러의 후임을 뽑는 이 오디션에 응시하였습니다.
헤첼은 오디션에서 대단히 뛰어난 연주를 선보이며 결국 합격했지만 사실 빈 필 내부에서는 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헤첼이 빈 출신이 아니며 빈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싶은데 당시 빈 필의 상황을 보면 이는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헤첼 이전의 빈 필 역대 악장들은 빈 출신이거나 적어도 빈에서 공부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74년의 기록을 보면 전체 148명의 단원 중 3/4에 해당하는 109명이 오스트리아 출신이었으며 이 가운데 73명은 빈 출신이었습니다. 전체 단원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였지요. 빈 필은 그들만의 고유한 소리의 전통을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한 악단인데 상당히 국제화가 이루어진 현재보다 60여년 전에는 그 의지가 더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 출신의 독일인이며 독일과 스위스에서 공부
한 ‘이방인’ 헤첼의 등장에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빈 출신도, 빈에서 공부한 것도 아니었지만 헤첼과 빈 필 사이에 연결고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헤첼의 스승이 1938년부터 1949년까지 빈 필의 악장을 역임했던 명 바이올리니스트 볼프강 슈나이더한(W. Schneiderhan, 1915-2002)이었기 때문입니다.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좌)와 헤첼(우)
(출처: Wiener Philharmoniker-Facebook/사진: Vivianne Purdom)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으로 결국 악장으로 선임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헤첼이 내걸었던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빈 필에는 이제 막 퇴임한 벨러 외에 빌리 보스코프스키(W. Boskovsky, 1909-1991)와 발터 바릴리(W. Barylli, 1921-2022), 그리고 요제프 시보(J. Sivó, 1931-2007) 이렇게 3명의 악장이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헤첼은 가장 후임 악장이 될 예정이었는데 이는 연주회에서 선임 악장 중 한 명이 악장으로서 연주하면 후임 악장은 그 옆 자리에서 연주해야 함을 의미했지요. 그런데 헤첼은 “보스코프스키 옆에서 연주할 수는 있지만 바릴리나 시보 옆에서 연주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견을 냅니다. 또 당시 뮌헨 음대의 교수로 재직하던 헤첼은 뮌헨에서 가르치기 위하여 1주일에 이틀은 휴무일(Free Days)을 달라는 것, 그리고 빈에서 뮌헨을 오가는 교통비를 지원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요.
‘이방인’ 헤첼이 이렇게 빈 필 측에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었음에도 빈 필은 이를 수용하고 그를 악장으로 선임합니다. 그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빈 필 악장의 세대 교체를 불러와 보스코프스키는 1970년에, 바릴리와 시보는 1972년에 악장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헤첼은 1969년부터 그가 갑작스럽고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1992년까지 악장으로 활약하며 당대의 빈 필을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이 됩니다. 1970년에는 빈 필 단원들이 주축이 된 빈 실내 앙상블(Wiener Kammerensemble)을 창단하여 실내악 연주와 녹음 활동을 병행하기도 하지요. 빈 필과도 여러 차례 협연 무대를 가졌는데 그중 1984년에 연주한 바르톡(B. Bartók, 1881-1945)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실황 녹음은 명연으로 남아있습니다. 또, 1982년에 밀스타인(N. Milstein, 1904-1992)이 연주 몇 시간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빈 필과의 협연을 취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헤첼이 리허설 없이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던 일화는 그를 추억할 때 늘 회자되곤 합니다.
헤첼을 추억하는 여러 개의 글 중에서 빈 필의 제 1바이올린 주자이자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빈 필의 단장을 역임한 클레멘스 헬스베르크(C. Hellsberg, 1952- )의 글 일부를 인용하며, 헤첼에 대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그가 23년간 악장으로 있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게, 헤첼은 비할 데 없는 모범으로 남아있다.”
추천영상: 헤첼이 설립한 앙상블인 빈 실내 앙상블(Wiener Kammerensemble)이 1991년 가을, 일본에서 연주한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K. 287 영상입니다. 실내악을 연주하는 헤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영상이기도 합니다. 제 1바이올린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에서 빈틈없으면서도 우아하고 산뜻한 그의 바이올린 소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화질과 음질의 아쉬움이 다소 있지만 뛰어난 연주가 이를 만회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xkPOONtB2w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2-07-01 15: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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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평범을 갈망하는 모두에게,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음의 병은 겉으로 드러내면 안 될 치부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대중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는 추세다. 갈수록 더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가 미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Next to Normal)’ 속 주인공 다이애나도 같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평생 지워질 것 같지 않던 멍을 품고 살아가던 그가 과연 오랜 아픔을 이겨내고 자신을 보듬을 수 있을까.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지난 5월 1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했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뮤지컬’이라고 할 정도로 극찬받은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일찍이 2011년 공연을 통해 첫인사를 전한 바 있다. 그 뒤 두 시즌을 더 거치면서 ‘넥스트 투 노멀’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몰이했다. 이번 공연은 마지막 시즌 이후 무려 7년 만에 돌아온 무대다.
오랜만에 올라오는 만큼 뮤지컬계 슈퍼스타와 차세대 슈퍼스타가 한데 모인 새 시즌 출연진 역시 기대를 모았다.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한 이번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는 박칼린, 최정원, 남경주, 이건명, 양희준, 노윤, 이석진, 이아진, 이서영, 이정화, 김현진, 최재웅, 윤석원, 박인배가 함께해 오는 7월 31일까지 보랏빛 여정을 이어간다.
작품은 오랜 기간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 온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았다. 온통 보라색으로 물든 포스터 속에서 나른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마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다이애나의 심리를 의미하는 듯하다. 인물이 내면의 고통과 마주하는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심도 있게 그려냈는데, 이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비슷한 아픔을 지닌 환자를 대상으로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연구하고 또 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그만큼 매우 뛰어난 묘사와 전문성이 돋보인다.
철제 구조물이 층층이 세워진 무대 위로 신비로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선율이 무대를 타고 흐르면 드디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140분에 걸쳐 평범해 보이는 굿맨(Goodman) 가족을 집중 조명한다. 댄과 다이애나, 나탈리, 그리고 게이브는 언뜻 보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듯하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오래전 일련의 사건을 겪은 이후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남편 댄은 그런 아내를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소중한 가정이 흔들리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한다. 하지만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나는 점점 더 심각한 상태에 빠져든다. 불안정한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모범생 딸 나탈리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모든 가족이 각각 한계에 다다르면서 전과 다른 위기에 처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또 각기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 일상과 닮았다. 누구나 평범하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 주변에 머물기조차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만큼은 모두 같았다.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인생이 늘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더라도 상처를 감추기보다 마주할 용기를 내는 인물들의 모습이 큰 감동을 준다.
또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평온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기억마저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음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 하나쯤은 품고 산다는 시대에서 과거의 아픔으로 침전하기보다 직접 대면할 결심을 한 굿맨 가족의 모습이 더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결국은 적극적인 삶의 의지가 우리를 살게 한다는 이야기다.
<사진제공: 엠피엔컴퍼니>
작품에는 놀라운 반전이 담겨있다. 비교적 일찍 드러나는 반전이긴 하나 첫 관람을 계획하고 있다면 본 칼럼에 담긴 작품 소개나 시놉시스에 공개된 기본 정보 정도만 읽어보고 가길 추천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나 의상 색상, 무대 위 소품들도 유심히 봐두면 더 재미있다. 에너지 음료를 손에 들고 다니는 나탈리와 철제 기둥 주변을 맴도는 게이브 역시 눈여겨봐도 좋다.
다양한 장르의 넘버와 만날 수 있다는 점 또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 지닌 매력이다. 록과 재즈, 발라드, 컨트리풍 음악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분위기로 전개되는 멜로디가 매우 인상적이다. 아마도 공연장을 나설 때쯤이면 귓가에 잔잔하게 맴도는 라이브 연주에 한껏 젖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희망 없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누구나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영원한 행복이 없는 것처럼 영원한 고통 역시 존재할 수 없다. 긴 어둠이 지나고 나면 한 줄기 빛이 내리쬐듯, 언젠가 그 끝엔 분명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2-06-23 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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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핀란드 동네 할배의 가르침
핀란드 지휘자 전성시대를 일궈낸 거장 요르마 파눌라
마에스트로는 허름한 바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종이를 꺼낸다. 버스 운행 시간표였다.
90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에 빽백히 적힌 숫자가 가득한 시간표를 식별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결국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다음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드렸다. 영락없이 동네에서 흔히 마주치는 유럽 할배의 모습이다. 핀란드 소재 마에스트로의 집에 2~3일 머물며 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세계적인 거장이라 불리는 분이 번거롭게 버스를 갈아타며 이동한다는 사실이 인상깊었다. 그의 집에서 잠시라도 불을 켜놓고 방을 비우면 전기세를 낭비할 수 없다는 불호령과 함께 소등 명령이 떨어졌다.
요르마 파눌라
최근 명문악단들이 앞다퉈 영입하며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핀란드 지휘자들을 키워낸 마에스트로의 마에스트로 '요르마 파눌라(이하 파눌라)'는 이처럼 놀랄만치 소탈했다. 그가 주최한 콩쿠르 '요르마 파눌라 국제 지휘 콩쿠르'에 운좋게 입상한 덕에 그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 모두 파눌라의 제자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에사페카 살로넨, 에사페카 사라스테, 산투 루발리, 사카리 오라모 등 수많은 그의 제자들이 세계 일류악단들의 수장을 맡고 있다.
예전에는 '지휘'하면 주빈 메타, 마리스 얀손스 등 거장 지휘자들이 수학했던 음악의 도시 빈을 떠올렸는데 이는 옛말이다. 굴지의 매니지먼트들도 언제부턴가 핀란드 지휘자들에게 눈독을 들이며 이례적으로 파눌라의 졸업생 연주회에 수많은 에이전트들을 보내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수많은 유럽의 나라들 중에 클래식의 전통적 주류로 볼 수 없는 핀란드가 배출한 지휘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을 의아해한다. 하지만 핀란드 지휘계의 부흥을 이끈 파눌라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몇가지 시사점이 있었다.
핀란드 음악도들의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얘기할 때 지리적 근거를 들기도 한다.
북유럽의 자연과 더불어 시끌벅적한 엔터테인먼트가 없는 나라다 보니 깊이 있는 음악적 접근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다는 것이다. 파눌라는 우스갯소리로 취미로 할 수 있는 거라곤 숲에 나가 나무를 베어 장작을 패는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는데 단순화된 삶의 패턴 속에 심플하고 깊이있게 사고하게 만드는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가 항상 내게 부르짖던 말은 '지휘대에 올라가면 음악만 생각하라'였다. 본질을 깊이 탐구하고 외적인 불필요한 요소는 배제하라는 그의 주장은 늘 한결같았다.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한국의 마에스트로 성시연은 "무엇보다 앞서 음악을 생각하라"는 그의 말을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으로 꼽았다.
'동료끼리 경쟁하지 말고 서로 도와줘야 함께 성공한다'는 파눌라의 지론 또한 그 결과가 증명해준다. 각자도생에 익숙한 지휘계에서 핀란드 지휘자들은 동료 뿐 아니라 후배들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현재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핀란드의 젊은 지휘자 루발리와 콩쿠르에서 만난 인연으로 그의 선배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의 성공적인 커리어 뒤에는 늘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며 자신을 헬싱키에서 어시스턴트로 기용해줬으며 에이전트 계약에 도움을 준 세계적인 핀란드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를 자주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핀란드의 세계적 거장 에사 페카 살로넨의 영국 집에 드나들며 아낌없는 음악적 조언을 얻었다는 덧붙임과 함께. 현재 그는 그의 선배 살로넨이 몸 담았던 팔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다. 선후배가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기회를 만들고 무대에 세워주는 그들의 문화는 본받을 만하다.
얀텔라겐이란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북유럽의 공통된 정서라고 볼 수 있는 이 단어는 '얀텔의 법칙(Jante law)'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타인보다 높게 여기지 않는 겸손의 미덕이다. '허세'의 반대 개념으로 볼 수 있고 요즘의 플렉스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 민주화된 소통방식에 익숙한 요즘의 단원들에게 핀란드 지휘자들의 수평적인 행동양식은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옆에서 지켜본 세계적인 거장이자 교육자인 파눌라에게서 조금의 권위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소탈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문화는 수평적이되 의사결정은 수직적일 수 밖에 없는 지휘의 특성상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 의사표현은 매우 명확하고 간결한 방식을 강조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물려받은 핀란드의 지휘자들이 현시대의 리더십에 있어 각광받는다는 사실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덧붙여 십대부터 지휘에 입문하여 차근차근 기초와 자질을 쌓아가는 핀란드의 특화된 교육시스템이 핀란드가 한발 앞서 지휘강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원동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빈 국립음대 지휘과 재학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이 평균적으로 30대 즈음에 지휘에 입문하는데 반해 핀란드는 파격적으로 이른 나이에 기악연주와 더불어 지휘도 병행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재 핀란드가 일군 지휘 왕국은 축적된 예술교육 인프라의 산물이다.
세계 최고의 악단으로 불리우는 로얄 콘세르트 헤바우 오케스트라는 파격적으로 차기 상임지휘자로 26세의 젊은 핀란드 지휘자 클라우스 메캘래((Klaus Mäkelä)를 점 찍었다. 그 또한 파눌라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다. 제자 자랑 한번 할법한데 언제나 그랬듯 파눌라는 '그에게 잘된 일'이라고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질 뿐이다. 참으로 그답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2-06-23 1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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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빈을 접수한 한국문화의 힘, 한-오스트리아 예술교류의 현장”
합스부르크 왕가(1273~1918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한국민화’가 접수했다. 한동안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까지 겸했던 왕가의 화려했던 삶과 허무한 죽음이 곳곳에 배어있는 빈은 도시 전체가 왕가의 뮤지엄을 연상시킬 정도의 문화유산으로 가득 하다. 올해는 韓·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한경은 수교 기념 3대 프로젝트를 소개한바 있다. 작년 말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지휘 아드리엘김)은 발레 ‘코레아의 신부’를 네이버에서 세계 초연했고, 한경아르떼필하모닉(지휘 김여진)은 지난 5월 롯데아트홀에서 전곡 국내 초연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가 600년展의 숨결 느껴지는 미술품 등 보물 100여점을 소개한 바 있다.
세계 최정상 빈필하모닉(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11월 3일 바그너 ‘파르지팔’ 서곡,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죽음과 변용’,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4일에는 브람스 ‘비극적 서곡’과 교향곡 3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주한다. 무엇보다 최근 관심을 끈 것은 ‘오스트리아 빈 세계박물관(Weltmuseum Wien)’에서 11월까지 홍경택·박대성·김영식 등 24명의 현대작가들이 번안한 《책거리: 우리 책꽂이, 우리 자신》(기획: 정병모 교수) 특별전이 열리는 것이다.
그림1 .수교 130주년 기념 한국 민화 책거리 특별전 개막(좌측 두번째, 전시를 기획한 정병모 교수)
그림2. 수교 130주년 기념 한국 민화 책거리 특별전 개막(출처: 정병모 교수 홈페이지)
빈의 세계박물관(Weltmuseum)에 울린 한국민화 <책거리>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은 ‘수교 130주년 기념 한국 민화 <책거리> 특별전 개막’이라는 성명문을 통해 빈 호프부르크 궁 소재 세계박물관(Weltmuseum)에서 열린 한국 민화 <책거리> 특별전 개막을 축하하는 내용을 게시했다. 오스트리아 정관계 및 문화예술계와 동포사회를 대표하는 참석인사들은 이번 특별전이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오스트리아인들의 이해와 인식을 제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우리 대사관이 지원하고 세계박물관이 주관한 이번 전시회는 한-오 양국 수교 130주년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되었으며, 오는 11월 1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조선과 유럽 왕가의 우아한 매력이 조우한 전시로, ‘책과 물건을 그린 그림’인 31점의 책거리가 현대작가들의 재해석 속에서 미디어아트와 창작 민화로 번안돼 현지 한류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책거리 그림은 학문을 숭상했던 우리 겨레의 생각이 낳은 독특한 민화이다. 여기에는 많은 책들과 붓이나 어의, 종이, 벼루, 또는 꽃과 과일, 악기종류와 안경 및 새와 토끼 등이 책과 함께 그려진다. 민화 중에서도 책거리 그림은 그 독특한 조형성으로 인해서 매우 가치 있게 여겨져 새로운 동시대 미감으로의 변주에 아주 적합한 주제이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유럽 최고의 문화예술 도시로 꼽힌다. 유럽 영토의 절반을 600년 넘게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1273~1918) 시절 꽃피운 음악, 미술, 건축의 전통과 유산이 살아 숨 쉰다. 전성기였던 18~19세기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브람스 등 거장들의 활약에 힘입어 클래식 음악의 명실상부한 수도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빈의 전통예술을 새롭게 수놓기 위한 운동으로 빈 분리파(Secession)가 유행하는데, ‘분리된 서민(secessio plebis)’의 유래처럼 정통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총체적 변화를 추구하는 ‘분리’의 움직임은 ‘한국민화’의 정신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림3. 오스트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민화책가도 전시 풍경 (출처: 정병모 교수)
그림4. Book on Book 책속의 책, LEE Hwa Young 이화영 , 2021 © LEE Hwa Young 이화영 (출처: Weltmuseum Wien)
국내에서 만나는 빈의 국민화가 ‘클림트’, 워커힐 ‘빛의 시어터’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심지 빈(Wien)의 대표작가 클림트를 만나는 기회가 열린다. 워커힐 시어터는 관객이 주체가 되어 온몸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몰입형 예술 전시 ‘구스타프 클림트 전’을 2023년 3월 5일까지 개최한다. 묵직한 문을 열고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빔 프로젝터 불빛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는데, 최근 인기를 끄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이다. 빔프로젝터와 스피커에 둘러싸여 거장의 작품과 음악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고, 청각과 시선을 독점하는 작품들을 통해 19세기 빈의 수도로 온 감각이 이동한다.
제주에서 몰입형 미디어 아트를 국내 최초로 선보인 전시 ‘빛의 시리즈’가 50여 년간 국내 공연문화계에서 상징적 역할을 해온 워커힐 시어터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음악과 미술은 장일범의 유쾌한클래식 팟방 43회 “제주 빛의 벙커: 클림트 展을 보고 (안현정 미술평론가)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561/episodes/23110399”에서 설명과 곁들인 재미난 설명들과 만날 수 있다.
그림5. 워커힐 빛의 시어터, 몰입형 예술 전시 ‘구스타프 클림트 전’
19세기의 빈은 200만에 육박하는 국제도시이자, 전기·철도·자동차 등 현대 사회로서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카페와 살롱에서는 철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전위 문학가들의 지적인 대화가 오갔고 활기가 넘쳤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세계가 종말을 맞게 될 때 나는 빈으로 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이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20년 늦게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농담할 만큼, 세기말 빈의 보수주의는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팽배해 있었다. 이에 대한 반동을 이끈 빈 분리파의 거장 클림트의 흔적, 클림트는 '색채로 표현된 슈베르트의 음악'이라 불리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으며, 신화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사물을 평면적으로 묘사하고, 금박을 붙여 화려하게 장식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대표작으로 <키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 <유디트 Ⅱ> 등이 있다.
어찌 보면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는 빈의 책거리 전시와 한국의 클림트의 전시를 연동해서 살펴보면 ‘근대로의 전환’을 보여준 생생한 문화의 현장이 130년 뒤 한국과 오스트리아 양국에서 펼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2-06-17 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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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문학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만났을 때, ‘무녀도’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보배같은 감독, 안재훈(연필로 명상하기)은 한국단편문학을 애니메이션화 하는 작업을 해왔다. ‘메밀꽃 필 무렵’(2012), ‘운수 좋은 날’(2014), ‘소나기’(2017) 등 한국인들이 사랑한 단편들은 안재훈 감독의 감수성과 재능에 힘입어 스크린에서 또 다른 예술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극장에서 이런 작품들을 만나려는 관객들이 계속 감소하자 안재훈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무녀도’는 단편문학 시리즈의 마지막 프로젝트다.
김동리 원작의 ‘무녀도’는 1930년대,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가치관의 혼란이 생기고 급격한 세대차가 갈등을 불러일으키던 시기를 배경으로 굿을 하는 ‘모화’가족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뮤지컬 애니메이션 형식을 택한 이 작품은 곳곳에 다양한 장르의 삽입곡을 배치했는데 디즈니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팝적인 요소가 강하기보다 공연예술 넘버들의 느낌이 더 살아있다. 영상도 무대에서 배우들이 안무를 하듯 구성해 신선함을 넘어 낯설게까지 느껴진다. 이러한 실험성과 도전정신이야말로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여하게 만든 작가주의적 면모다.
모화와 그녀의 아들 욱이가 대사 대신 부르는 8곡의 넘버들은 무척 강렬해서 긴 여운을 남기는데 목소리 연기와 노래를 모두 담당한 이들은 현역 뮤지컬 배우들인 소냐와 김다현이다. 전통 무속인들의 노래와 양악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중책을 맡은 모화역의 소냐는 노래마다 완전히 다른 창법을 구사하면서 작품의 격을 높였다. 단편문학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해왔던 강상구 음악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모든 것을 쏟아놓았다고 할 만큼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준다. 이전에 안재훈 감독과 함께 작업하지 않았다고 해도 ‘무녀도’의 형식에 국악 크로스오버 예술인인 강상구만큼 적절한 음악감독도 없었을 것이다. 감독은 모화가 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내래이션을 빼고 처연한 음악으로 모든 감정을 끌어올린다. 구세대의 종언, 직업의 종말 등 여러 의미가 담긴 그 신에는 10년 동안 계속된 단편문학 프로젝트와 이별하는 연출가의 심경도 담겨 있었을까.
아쉽지만 그렇게 슬퍼할 것은 없다. MZ세대라면 시즌 2를 기다릴테니.
윤성은의 Pick 무비
송강호라는 선의의 브로커, ‘브로커’
3년 만에 정상개최된 칸영화제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기생충’(감독 봉준호, 2019)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2022),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2) 두 편의 영화가 동시에 경쟁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은 팬데믹 기간 동안 좋은 영화에 목말라 있던 관객들에게 기쁨의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한국영화인 최초 3대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의 주인공은 역시 송강호다.
‘초록물고기’,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변호인’, ‘사도’,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는 한국영화사의 맥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20세기말부터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해왔다. 완벽주의자적 기질로 세밀하게 표현해내는 그의 캐릭터들은 각 작품마다 미장센으로서 딱 맞는 색깔로 자리잡았고 이제 관객들은 그가 출연한 작품이라면 ‘믿고 본다’고 할 만큼 그의 작품 선택이나 연기력에 신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송강호와 국내에서 티켓파워를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외국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만남은 영화제작 소식부터 화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란 듯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합작해냈다.
그러나 베일을 벗은 ‘브로커’에 대한 관객의 호불호는 갈린다. 빚에 시달리는 ‘상현’(송강호)은 베이비박스에 놓여진 아기를 정상적인 경로로 아이를 입양할 수 없는 부모들에게 넘기고 커미션을 챙기는 브로커다. 역시 돈이 궁한 베이비박스 직원 ‘동수’(강동원)가 그와 함께 하는데 ‘우성’이라는 아이를 빼돌려 작업을 하려는 과정에서 엄마 ‘소영’(이지은)이 찾아온다. 소영 또한 돈을 준다는 말에 그들과 동행하게 되고 형사들이 이들의 수상한 여행을 뒤쫓으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영화에 대한 실망은 우선, 시종일관 물건 취급당하는 아기의 존재에 대한 불편함에서 찾을 수 있다.
아기의 눈썹을 운운하며 가볍게 던져지는 대사에는 사실상 칸영화제에서 에큐메니컬상을 수상할 만큼의 철학적 고민이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 변화나 서사 전개에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상현보다 더 비중이 높은 소영만 봐도 그녀가 왜 아이를 낳았는지, 왜 범죄자가 되었는지, 왜 상현 일행을 따라다니는지 납득할 만한 필연적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인상적인 몇몇 대사가 서사와 상관없이 허공에 부유한다. 이런 무중력 상태에서도 그 대사들을 잡아낸다면 훌륭한 관객이다.
송강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탄탄한 필모그래피에서 예외적인 작품으로 남게 될 이 영화에서 논리를 세우고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우유부단하고 서툴고 따뜻해서 브로커 노릇이 힘들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고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상현을 만들어냈다.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은 비단 ‘브로커’에서의 연기뿐 아니라 배우 송강호에게 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이 흩어진 서사의 실타래를 다시 모으게 된다는 것은 ‘브로커’에 가장 필요했던 송강호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2-06-17 0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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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
판소리 제와 완창
우리의 판소리를 다채로운 음악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기회, 뮤지컬 서편제가 오는 8월에 관객과 다시 만난다. 2017년 네 번째 앙코르 공연 이후 5년만이다. 연출가 이지나, 극작가 조광화와 함께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 소리꾼 이자람, 뮤지컬 음악 감독 김문정 등이 의기투합해 2010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이다. 공연을 거듭하며 완성도를 높여 더뮤지컬어워즈의 최우수 창작뮤지컬상, 한국뮤지컬어워즈의 작품상을 비롯해 다채로운 수상 기록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앞서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제작해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서편제 역시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만 백만 관객을 동원했다. 대한민국 3대 영화상(대종상,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의 작품상을 석권하였으며, 김수철이 만든 영화 음악도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흥행을 기록했다.
원작 소설의 제목이자 영화와 뮤지컬의 제목이기도 한 '서편제'는 판소리의 한 유파(流派)를 가리킨다. 판소리는 전승되는 지역의 특색 및 계보에 따라 섬진강 서편의 서편제와 동편의 동편제, 충청 이북의 중고제로 구분한다. 동편제가 웅장하고 묵직한 표현이 많은 반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구슬프게 노래하며 기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소리꾼들이 활동 영역을 넓히고, 계보에 관계없이 여러 스승을 사사(師事)하면서 그 경계가 점차 희미해졌다.
판소리 완창 공연은 1960년대 박동진 명창에 의해 시작되었다. 판소리 한 바탕의 이야기를 전부 풀어내는 완창 공연은 길게는 여덟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판소리 완창 공연에서는 ‘○○○제 심청가’, ‘○○○바디 심청가’와 같은 제목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때의 ‘제’는 소리꾼 ○○○이 재창작한 심청가 한 바탕이란 의미로, ‘바디’와 같은 말이다. 같은 춘향가 한 바탕이라도 소리꾼 개인의 역량과 개성이 담긴 곡으로 인정 받아 오래도록 불린 곡에는 그 소리꾼의 이름이나 호에 '제' 또는 ‘바디’를 붙여 '김세종제 춘향가', '정정렬 바디 춘향가', '동초제 춘향가' 하는 식으로 부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디는 제자들이 대를 이어 전하며 오늘에 이른다.
6월 18일(토) 국립극장에서는 왕기석 명창이 부르는 ‘미산제 수궁가’ 한 바탕이 펼쳐진다. 판소리 수궁가는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육지에 간 별주부와, 그에 속아 용궁으로 갔다가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건지는 토끼의 이야기다. 판소리 중에는 유일하게 동물을 인격화한 우화(寓話)로, 아기자기하게 풀어내는 풍자와 해학이 백미다. 미산제 수궁가는 송흥록부터 유성준, 정광수 등으로 이어지는 동편제 계보의 미산 박초월 명창이 새로이 구성하였으며, 시김새가 화려하고 구슬픈 서편제의 특징이 동편제와 조화를 이룬 바디다.
이번 완창 공연 무대에 오르는 왕기석 명창은 전라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로, 국립창극단에서 30년간 공력을 쌓으며 탁월한 무대 장악력까지 겸비한 소리꾼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스승은 미산의 제자이자 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수궁가) 보유자인 남해성 명창이다. 여성 명창들에게서 이어진 소리가 그를 통해 어떻게 완성되는가 목도할 기회가 될 것이다.
이어 7월에는 동편제 본고장인 남원에서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판소리 완창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국립민속국악원이 완창 판소리 무대의 정착과 대중화를 위해 마련해온 <소리 판> 공연은, 판소리 완창이 가능한 만 19세 이상의 소리꾼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해 출연진을 구성한다.
7월 14일에는 유하영 명창의 ‘박초월제 수궁가’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유하영 명창의 스승은 또 한 사람의 전라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보유자이자 남해성 명창을 사사한 박양덕 명창이다. 판소리와 남도 민요로 대통령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유하영 명창은, 진도 씻김굿의 마지막 단골이라 일컬어지는 채정례 명인을 사사하기도 했다. 어린이 공연의 방귀쟁이 할머니부터 씻김굿 공연의 무당 역할까지 소화해내는, 다재다능한 소리꾼이 벌이는 수궁가 한판 역시 눈여겨볼 일이다.
이 밖에 ‘한승호제 적벽가’를 시작으로 ‘강산제 심청가’, ‘동초제 춘향가’와 ‘김세종제 춘향가’, ‘박초월제 흥보가’ 등이 무대에 오른다. 공연에 곁들여지는 해설 외에도, 소리꾼의 내력을 자세하게 소개한 프로그램 북과 판소리 사설집 등을 제공하므로 초심자도 한번 시도해 볼 만하다. 올해는 남원시립도서관에 위치한 지리산 소극장에서 오후 3시부터 열리는데,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7시간까지 이어진다 하니 시간과 더불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2-06-10 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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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추억의 타임머신 영화가 무대로 되살아나다_뮤지컬 백 투 더 퓨처
스티븐 스필버그가 3부작(trilogy)으로 제작했던 흥행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를 기억하는 중장년층들은 많다. 프란시스 코폴라로 대변되는 ‘대부’ 세대가 있고 요즘 학생들은 ‘해리 포터’ 세대라 부르는 것처럼 ‘백 투 더 퓨처’ 세대도 엄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이제는 무대로 이 콘텐츠를 기억하게 될 사람들도 늘고 있다. 바로 뮤지컬 ‘백 투 더 퓨처’다.
특히, 첫 출발점이었던 시리즈의 1편은 정말 큰 사랑을 받았다. 특이할 것도 특별하지도 않은 미국 어느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형, 누나와 함께 살던 막내아들 고교생 마티는 가깝게 지내던 괴짜 이웃 브라운 박사가 스포츠카 드로리안을 개조해 타임머신을 만든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는 타임머신의 연료인 플로토늄을 구하기 위해 몰래 거래하던 브라운 박사가 테러범들의 총을 맞는 위기가 닥치고 좌충우돌 소동 끝에 마티는 30년 전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 영화의 제목인 ‘백 투 더 퓨쳐’는 과거에서 다시 미래(혹은 현재)로 돌아가야 하는 주인공이 치르는 절체절명의 복귀작전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매료시켰던 것은 과거로 간 마티가 역사(?)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우연한 실수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운명적 만남을 방해한 것이다. 마티는 다시 현재(미래)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버지 조지와 어머니 로레인을 사랑하는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실패한다면 형이나 누나는 물론 자신마저도 ‘무(無)’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로리안을 타임머신으로 구동시킬 플로토늄을 과거에선 구할 수 없다는 것. 결국 마티와 젊은 브라운 박사는 그 시절 학교 시계탑을 망가뜨린 번개를 대체 에너지로 활용하는 차선책을 강구해낸다. 마티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현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게하며 관객을 쥐락펴락했던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영화는 1985년에 만들어졌다. 미래에서 온 아들에게 사랑에 빠진 엄마의 성적 호기심 가득한 10대 시절 모습이나 복역 중인 사기꾼 막내 외삼촌은 어려서부터 아기 침대 철창 속에 넣어야 울음을 멈췄다는 익살은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1985년의 미국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이라는 말에 “그 영화배우가? 말도 안돼!!”라며 실소를 터트리는 촌철살인의 유모도 빠뜨릴 수 없는 매력이었다. 촘촘하고 창의적인 스토리의 힘은 230억원 제작비로 만든 1편을 자그마치 20배가 넘는 4,700억원의 글로벌 박스 오피스 기록을 세우게 만들었고, 3편까지 이뤄진 시리즈는 모두 1조 1,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왜 문화산업이 굴뚝 없는 미래산업인지를 여실히 증명시켰다.
워낙 인기를 누려서인지 또 다른 시리즈에 대한 제안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다음 편 계속(To be continued)이라는 자막으로 끝났던 1, 2편과 달리 3편에서 끝(The end)라는 자막이 등장하며 모든 이야기가 종결됐음을 선언해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시리즈 혹은 요즘 인기를 누리는 리부트(reboot) 작업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물론 원작자가 애초 구상한 이야기의 촘촘한 연계가 잘 짜여진 퍼즐같은 구조였기에 새 이야기가 다시 만들어지기 어려운 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영화 속 주인공인 마티 역의 마이클 J. 폭스가 뜻하지 않게 파킨슨병을 앓게 된 것도 새 시리즈를 만들지 못한 중요한 이유였다. 그가 빠진 ‘백 투 더 퓨처’는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선택한 것은 오히려 다른 도전이었다. 영화가 원작인 무대용 뮤지컬을 의미하는 무비컬(Movical)로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무대에서 라이브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발상의 전환이 워낙 매력적인데다 노래와 춤 그리고 무대만의 마법 같은 비주얼 효과는 상상만으로도 흥미로운 실험이 아닐 수 없었다. 2021년 여름 런던 중심가에 있는 아델피 극장에서 공식 오프닝의 첫 막이 올랐고, 지금까지도 연일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뮤지컬 ‘백 투 더 퓨쳐’에는 극작가 밥 도일, 프로듀서이자 원작자이며 연출가인 로버트 저메키스, 작곡가 앨런 실베스트리와 글렌 발라드 등 영화 제작진이 거의 모두 고스란히 참여했다. 덕분에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파워 오브 러브’나 과거로 돌아간 마티가 부모님의 무도회에서 직접 연주하는 척 베리의 ‘자니 비 굿’은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덤으로 라이브 연주까지 더해져 더욱 실감나게 전개된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엔딩씬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앨런 실베스트리의 유명한 선율이 담긴 영화음악 역시 스크린과 똑같은 박진감을 담고 극장을 가득 메운다. 영화를 추억하는 중장년층은 물론 원작을 모르는 요즘 신세대도 충분히 흥미로운 무대의 완급과 묘미를 적절히 담아냈다.
이른바 ‘싱크로율’ 높은 배우들의 연기도 감탄과 탄성을 자아낸다. 마티 역의 올리 돕슨이나 브라운 박사 역의 로져 바트, 그리고 아버지 조지 맥플라이 역의 휴 콜스나 어머니 로레인 베인즈 역의 로자나 하이랜드는 마치 그 시절 빅 스크린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영화와 흡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미는 타임머신 자동차다. 갈매기 날개 모양으로 문을 위로 들어 올리는 2인용 스포츠카인 DMC 드로리안이다. 사실 이젠 단종된 모델이기도 하다. 뮤지컬이 시도되며 포드자동차가 자사의 모델을 활용하면 제작비를 부담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 있었다는 후문도 있지만, 원작자와 제작진은 거절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백 투 더 퓨쳐’에는 반드시 드로리안이 필요하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특히,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둥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마지막 무대다. 시리즈 1편의 마지막 장면처럼 타임머신이 하늘을 날아 시간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객석 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날아와 180° 회전한 드로리안이 다시 백 스테이지쪽으로 날아 사라지면 공연장은 떠나갈 듯한 기립박수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무대로 만들어진 뮤지컬 ‘백 투 더 퓨쳐’는 또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잉태해낼까. 세계 공연가의 흥미로운 도전이 만들 ‘미래’가 궁금하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2-06-10 0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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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 4 – 마무리 그리고 나아갈 방향
지난 3개월 간 국외의 대표적인 음악교육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다. 각 프로그램의 주체인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베네수엘라 정부는 그들만의 철학과 교육적 체계성을 갖고 평생교육의 성격을 띤 음악교육을 실천하고 있으나 각 프로그램의 특징에 초점을 맞춰 구술하고 싶었기에 필자 임의로 연령대별로 프로그램을 소개했다는 것을 덧붙여두고 싶다.
연령대별 특성이 잘 반영된 지점을 찾아 영유아기 음악교육 프로그램으로는 뉴욕 필하모닉의 ‘Very Young People’s Concert’,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초등교육 프로그램 ‘Vocal Heros’, 마지막으로 청소년기 음악교육 프로그램으로 ‘El Sistema’를 소개할 수 있었다.
뉴욕필
‘Very Young People’s Concert’는 놀이 속에서 음악을 긍정적으로 경험하고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삶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놀이와 교육의 균형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클래식을 처음 접하는 영유아들이 음악을 쉽고 즐겁게 배워 삶 속에 자연스럽게 음악이 녹아들 수 있게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구성 과정에 뉴욕 필 단원, 사무국 직원뿐만 아니라 음악교육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교육의 질을 높였다는 것이 특히 눈여겨 볼 점이다.
또래집단의 동질감이 중요해져 자칫 자기 표현력이 떨어질 수 있는 초등교육 시기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Vocal Heros’는 음악을 통해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기표현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내향적인 아이들을 위해 리허설 참관부터 순차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이들의 감정을 존중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이 오롯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베를린 필 보컬 히로즈
마지막으로 소개했던 ‘El Sistema’는 교육이 아이들의 성장과 진로에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던 처음의 취지를 넘어 직업교육의 장으로 확장되어 참여자와 프로그램 모두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다.
엘 시스테마 시몬 볼리바리오케스트라
교육적 효과가 입증된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계획, 구성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간략하게 세 가지 정도로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무엇보다 양보다 질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프로그램 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욕 필하모닉의 ‘Young People’s Concert’로 뉴욕 필하모닉 단원, 교육자, 기획자가 모두 함께 프로그램 구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에 교육적 효과, 재정적 지원 방향, 음악의 질까지 고려한 양질의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했다.
둘째, 전폭적인 재정 지원과 투명한 운영과정이다. 엘 시스테마의 경우 교육적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었지만 아쉽게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정치적 연관성에 의혹이 제기되며 프로그램의 순수성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2019년 장지영 칼럼니스트가 올댓아트에 기고한 ‘엘 시스테마의 어두운 그림자와 불안한 미래’를 통해 엘 시스테마와 정치적 연관성이 프로그램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후원 및 재정의 순수성과 투명한 운영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공공성에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프로그램이 성장하기 위해 기본적인 기회의 장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보이고 있으나 수도권에 한정되어 아쉬운 경우가 적지 않다. 2020년 뉴욕 필하모닉 어린이 교육공연은 기금 모금을 위한 행사이긴 했으나 데이비드 포스터, 제이미 번스타인 등 유명 인사들의 적극적인 홍보 덕에 국내외로 많이 알려졌다. 그 덕에 초연 이후 미국 각지에서 일반적인 교육 공연으로 이후에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으로도 이어졌다. 국내 다수의 프로그램도 수도권을 벗어나 전역에서 많은 아동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는 자연스레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연결되리라 본다.
그 밖에도 세계의 여러 예술단체들이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행 중이다.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음악교육을 실천하는 것은 그들이 누구보다 음악이 삶에 주는 위안과 음악을 통한 전인적 성장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어린 시절부터 문화 예술을 접할수 있는 기회 자체는 많아졌으나 그 모두가 양질의 경험을 제공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고 아쉽게도 여전히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즐기고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으로 여기려면 경험의 양은 물론 질 역시 확보되어야 한다.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그리고 노년기까지 전 생애가 음악을 즐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음악교육은 필수적이다. 음악을 즐기는 태도는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지만 마음의 넉넉함과 바쁜 일상에 잠깐의 쉼표를 위해서라도 음악을 적극적으로 향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양질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힘써주기를 바라며 필자 역시 참여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2-06-03 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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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1982>
“친애하는 000 씨에게,
우리가 악장 자리에 여성을 고용하지 않음을 알려드리게 되어 매우 유감입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에 이미 많은 여성 연주자들이 있으나 가능하다면 맨 앞 자리는 남성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이와 같은 태도가 이상하다고 여기겠으나 오케스트라의 맨 앞 자리는 남성이 앉는 것이 더 낫다고 인생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
황당한 내용의 이 편지는 1982년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마들렌 카루초(M. Carrozzo, 1956- )가 취리히 쳄버 오케스트라의 악장 오디션에 지원했다가 악단측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오디션에 초청되지 못한 이유가 실력과 경력의 부족이 아니라 그녀가 단지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요. 스위스 출신의 카루초가 이 말도 안되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분노할 즈음에, 그녀가 지원했던 다른 오케스트라로부터 오디션 초청장이 왔습니다. 그 오케스트라는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였습니다. 1882년 창단되어 100년 동안 여성 연주자를 채용한 적이 없었던 악단이었지요. 바이올린 주자를 뽑는 당시 베를린 필의 오디션에는 카루초를 포함한 총 13명의 연주자가 초청받았습니다. 카루초는 그 13명 중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결국 12명의 남성 연주자들을 제치고 베를린 필의 단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베를린 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지요.
1982년에 카루초가 경험한 일들은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여성 단원들이 많이 있다는 악단에서는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오디션에 참가조차 못했는데 100년 동안 여성 연주자가 없었던 악단에서는 오히려 성별에 상관없이 실력으로 평가받았으니까요. 또 “여성 연주자들은 앞 자리를, 즉 악장이나 수석 같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 안된다”라는 식의 인식이 20세기 초중반이 아닌 20세기 후반에도 버젓이 자리했다는 사실이 무척 의아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2015년 빈에서 리허설 도중 지휘자 래틀과 상의하고 있는 카루초
(출처: berliner-philharmoniker.de)
사실 성별 비율로 볼 때 오케스트라는 오랫동안 남성이 지배적인 단체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여성 연주자가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 처음으로 고용된 것은 1913년인데 그 전에는 여성 연주자들은 오로지 여성들로만 구성된 이른바 '여성 오케스트라'에서만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수 있었지요.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미국의 오케스트라 단원들 중 8% 정도만 여성 연주자들이었는데 이 비율은 1982년에는 26% 정도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201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이 비율은 40%가 되지요. 영국의 오케스트라의 경우 여성 연주자의 비율은 44%인데 반해 유럽 대륙의 경우 36.6%로 떨어집니다. 여성 연주자의 비율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올라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비율을 명성 높은 오케스트라나 악장이나 수석 주자 같은 주요 직책으로 한정한다면 현재도 그 비율은 전체 여성 연주자의 비율보다 여전히 상당히 떨어진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안에서의 성별 비율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이런저런 흥미로운 지점들을 던져줍니다. 2010년대 후반에 직업 오케스트라에서의 여성을 연구한 한 음악학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오케스트라에서는 여성 연주자 비율이 32%정도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데 그 원인으로 예전의 정치적 상황을 들었습니다.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던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의 여파가 제 2차 세계대전 후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었지요.
또, 악기에 대한 성별의 선입견이 세대와 상관없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하는데 연구를 위해 베를린의 한스-아이슬러 음대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을 때 타악기를 전공하는 한 남학생이 “여성이 타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인다”라고 말한 것에서 이를 실감할 수 있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의 남녀 비율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요? 연주자들의 나이를 45세까지로 한정해 본다면 남녀 비율은 상당히 동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일부 오케스트라에서 35~45세 나이 구간에서는 여성 연주자의 비율이 더 높게 나온다고도 하고요. 남성 연주자의 비율이 압도적인 오케스트라의 모습은 곧 추억 속 영상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겠지요.
1982년, 첫 여성 베를린 필 단원이 되었을 때 26세이던 카루초는 40년간 제 1바이올린 주자로 활약하였고 어느새 은퇴를 앞두고 있는 베테랑 단원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카루초를 포함하여 21명의 여성 연주자들이 베를린 필에서 활약하고 있지요. 카루초가 처음에 여자 대기실이 없어서 임시로 지정된 카페트도 없는 방에서 연주를 준비해야 했던 일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일화가 된 지 오래입니다.
베를린 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그녀의 은퇴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모두의 축복 속에 베를린 필에서의 그녀의 커리어가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바래봅니다.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2-06-03 0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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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온갖 사랑스러움의 집합체, 뮤지컬 ‘차미’
#뮤지컬 #추천 #Cha_Me #차미
차미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 PAGE1>
SNS는 어느새 우리 삶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휴대전화가 보편화 되고 인터넷에 기반한 디지털 미디어 관련 산업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자연스레 뒤따른 결과다. 코로나19의 확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대면 소통이 어려워진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한 소통에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적어도 SNS 공간에서만큼은 대부분 행복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네모난 틀 안에 박제된 일상은 마치 누군가의 ‘좋아요’를 숙제처럼 갈구하듯 제법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들만 남게 됐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포스트 하나를 올릴 때도 꽤 신중한 고민이 뒤따른다. 검색을 유도할 해시태그는 필수다. 아마도 SNS를 활용해 본 적이 있다면 곧장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로맨틱 힐링 뮤지컬 ‘차미’가 돌아왔다. 지난 2020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올라온 무대로 눈에 띄게 더 화려해진 모습을 선보이며 개막부터 시선을 끌었다. 2016년 우란문화재단의 ‘시야 플랫폼:작곡가와 작가 프로그램’에서 출발해 4년에 걸친 개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뮤지컬 ‘차미’는 특유의 밝은 분위기와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소재, 경쾌한 음악들로 일찍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초연 때 네이버 공연TV를 통해 전 캐스트 온라인 생중계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당시 실시간 채팅으로 확인한 관객 반응 역시 호의적이었다.
2022 뮤지컬 차미 공연장면 1<사진제공 PAGE1>
재연은 더 강력해졌다. 무대 중앙부를 가득 채운 LED 화면은 관객들의 몰입을 돕기에 충분하다. 덕분에 드라마 역시 한층 뚜렷하게 강조된다. 여기에 신구조화가 돋보이는 출연진도 기대를 모은다. 먼저 유주혜, 이아진, 홍나현이 주인공 차미호를 맡아 사랑스러우면서도 소심한 인물을 그린다. 그리고 ‘SNS 속 자아’ 차미 역으로 이봄소리, 정우연, 홍서영, 이채민이 캐스팅돼 무대에 오른다. 내면에 담긴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아날로그 인간’ 김고대 역은 조풍래, 기세중, 안지환, 황순종이 맡았으며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왕자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오진혁 역으로는 박영수, 고상호, 진태화, 차서원이 함께한다.
작품은 평범한 취업 준비생 차미호가 SNS 속에 꾸며둔 자아 ‘차미(CHA_ME)’와 직접 만나게 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혼자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고 쌓여 가는 지원서에 점점 지쳐가던 차미호도 SNS에서만큼은 그저 누구나 꿈 꿀만큼 완벽한 인물이었다. 눈부시게 예쁜 모습이 담긴 인생샷을 찍어 올리면서 실시간으로 하트를 받을 때마다 현실에서 누리지 못한 사랑을 받는 기분에 취해가던 그는 타인의 일상까지 훔쳐 와 자신의 일상처럼 포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차미가 미호의 눈앞에 실제로 나타난다.
차미는 미호가 바랐던 모든 일을 이뤄주겠다며 손쉽게 취업에 성공하고 캠퍼스 인기남이자 짝사랑 상대였던 오진혁 선배까지 남자친구로 만들어 버린다. 게다가 SNS를 꾸미기 위해서라면 소비를 아끼지 않는 모습까지 보인다. 처음에는 미호도 차미가 자기 대신 누리는 일상을 보면서 만족한다. 그런데 가짜가 진짜를 완전히 대신하려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호는 어느 순간부터 그림자같이 변해버린 자신의 상황에 불안해진다. 하지만 미호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친구 김고대가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고대는 미스터리한 비밀을 품은 오진혁과 차미를 주시하고 자연스레 차미와 미호 사이에 맺은 동맹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2022 뮤지컬 차미 공연장면 2 <사진제공 PAGE1>
이처럼 뮤지컬 ‘차미’는 소재 자체가 무겁지 않은 데다 SNS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즐겁게 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트렌디한 분위기로 전개되는 작품에 ‘옹고집전’, ‘레디메이드 인생’과 같은 고전으로부터 따온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또 유쾌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진정한 자아 찾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금도 괜찮다"고 말하는 위로의 메시지 역시 반갑다. "이제부터 나를 사랑해보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하던 미호의 모습은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전하는 응원처럼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꼭 인정받지 않아도 충분하고 하물며 나 자신으로부터도 인정받을 필요조차 없다는 이야기가 꽤 뭉클하게 다가온다. 완벽한 그림이 되지 못할지라도 모두 그 자체로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격려, 이것이 바로 뮤지컬 ‘차미’가 가진 힘이다.
지난 4월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플러스씨어터에서 개막한 이번 시즌 뮤지컬 ‘차미’는 오는 7월 16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속도와 경쟁으로 물든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되찾는 여정에 함께 하고 싶다면 뮤지컬 ‘차미’와 만나보자. 온갖 사랑스러움이 모여 전하는 긍정에너지가 평범했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2-05-27 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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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베를린에서 개최된 막스 리히터의 초연 현장
잠들기 위한 클래식
막스 리히터의 현대인을 위한 자장가
클래식의 연금술사라 불리며 현대음악은 대중과 괴리가 있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며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로 떠오른 막스 리히터(Max Richter).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매개하는 그가 내놓은 'Sleep (잠)'이라는 작품은 잠이라는 주제를 다룬 곡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1966년생으로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의 뒤를 잇는 포스트 미니멀리스트, 최근 대세로 떠오른 네오 클래식 작곡가로 분류되며 최근 가장 핫 한 작곡가로 손꼽힌다. 할리우드 영화 '컨택트(Arrival)'를 비롯하여 무려 8편이 넘는 영화들과 넷플릭스 드라마에 삽입되었던 'On the nature of daylight'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획득했고 비발디 사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음반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는 22개국 클래식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Sleep'은 잠못드는 현대인을 위한 자장가다. 2015년 이 음반을 내놓으며 막스 리히터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서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소위 들으면 잠이 온다는 클래식이 아닌 잠을 잘 자기 위한 클래식이라는 점에서 반어적인 어필이 느껴진다. 작곡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스탠포드 대학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맨 교수와의 협업을 통해 수면 사이클을 분석하여 진지하게 내놓은 이 작품의 길이는 장장 8시간이 넘는다.
이글맨 교수는 깊은 수면상태의 신경세포가 가진 리듬을 분석하는데 집중했고 막스 리히터는 “음악을 통해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의 가장 적절한 지점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Sleep 속의 음악을 들여다보면 미니멀리즘 특유의 반복성에 튀지 않는 미묘한 음악적 변화들의 사이클을 감지할 수 있으며 이는 과학적인 분석이 토대가 되어주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피아노, 현악기, 오르간, 여성보컬, 전자음악이 빚어내는 사운드는 차분하게 무의식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혹은 우주를 홀로 유영하는 듯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러닝타임 8시간의 앨범 속 음악은 31개의 트랙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음악은 끊이지 않고 논스톱으로 이어간다. 8시간을 산정하여 인간의 수면 사이클 기반으로 설계된 음악이니만큼 텔레그래프지로부터 '가장 긴 클래식 음악'으로 언급된 바 있다.
2016년 3월 15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초연 무대 또한 화제를 모았다. 주최측은 침대를 제공했고 침낭, 베개 등은 관객이 직접 지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밤 10시에 시작한 공연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는데 깊은 숙면을 취한 관객들 뿐 아니라 잠들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맨 정신으로 감상했던 관객들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막스 리히터는 이 곡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사람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감상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시드니 오페라, 필하모니 드 파리등 세계적인 공연장들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수많은 현대인들이 그의 자장가를 찾았다.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내놓은 8시간짜리 디지털 음원과 1시간 분량의 발췌음반 모두 성공을 거두며 음악을 통한 그의 선한 의지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히트곡 'On the nature of daylight'이 수록된 음반 <블루 노트북>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폭력 메시지를 담았듯 그는 음악의 메시지적 효용가치를 십분 활용하는 작곡가다. 1948년 채택된 인권선언문을 70인의 목소리에 담은 라는 앨범 또한 좋은 예이며 그가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로 인정받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Sleep은 막스 리히터가 인간의 수면 사이클을 반영하여 작곡한,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음악이라는 점에서 그의 선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숙면이 힘든 분들 뿐 아니라 깨어있는 이들에게도 단순한 수면음악을 뛰어넘어 사운드가 불러일으키는 미적 쾌감과 정신적 환기를 가져다주는 음악으로 적극 추천한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gYQfsGYI1Y4&list=PL0VMUYmhGI3Oqfb0V7X5R2EXoFkrJXOIj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2-05-27 1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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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21세기 MZ아트 아방가르드, 만춘(晩春)의 문화체험”
성수동 한복판 서울숲 바로 옆에 자리한 갤러리아포레 지하에는 다양한 융복합예술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보타니컬아트 팀보타전시회 TEAMBOTTA BOTANICAL ART EXHIBITION : 탐의 숲’이 한창이다. 이를 기획한 디자인오키즘(DESIGNOKISM)은 조경 전문회사다. 국립한글박물관 조경(2015), 예술의전당 예술가의 숲(2016), SM엔터테인먼트 실내 조경(2017), BOTANICA-PURPLE ELEPHAN(2018), 팀보타63 보타닉 이펙트(2020) 등을 기획연출하며 꾸준히 입지를 다져왔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조경 작업을 넘어 예술과의 결합으로 영역을 확장한 시도지만 이전에 비해 더욱 넓어지고 깊어졌다.
팀보타 포스터
팀보타 머스타드블루 ‘탐의 숲’ × 신세계 등 아트콜라보
아티스트 프로젝트 그룹 팀보타(TEAMBOTTA)는 영화 ‘신과함께’ ‘부산행’의 미술감독 이목원, 일본 할리데이비슨 수석디자이너이자 가죽공예장인 김현, 보타니컬 조각가 정지연 등 40여 명의 아티스트가 함께하며 시작했다. 전시를 기획한 이학성 디자인오키즘 대표는 이전부터 “우리 모두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자연의 풍요로움에 대한 갈망이 있다.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멈추고 머물러야 하며 무의식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의 과정에서 현실에는 없는 탐의 영역을 추구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양준보 팀보타 공동설립자는 “조경이 건축의 일부 정도로 치부되고 화훼 시장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예술이 거기에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을 합치게 됐다”며 “어느덧 순수회화, 음악, 미디어아트, NFT, 기업콜라보 등이 함께 하다보니 전방위적 오감전시가 됐고”고 덧붙였다.
그림 1.2 <팀보타 탐의 숲> 전시 내부연출 (출처: TEAMBOTTA 인스타그램)
그림3. 양종용 작가의 <이끼 달항아리>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그대로 담은 〈팀보타 머스타드 블루 ‘탐의 숲’〉은 자연을 소재로 한 설치 미술을 도심 속 숲으로 안내해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체험형 오감전시’다. 보는 것뿐만 아니라 식물의 향까지 그대로 재현하는 이색적인 경험은 숲속의 방, 뿌리의 방 등 총 6개의 방 속에서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 속 판타지 세상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에 함께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연작(YUNJAC)은 ‘자연이 만든 작품’이라는 의미를 브랜드에 담은 화장품 브랜드로, 자연의 순환과 생명 에너지를 전시와 더불어 구현한다. 재생하는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 이끼를 주된 테마로 선보인 작업들도 주목할 만한데, 최근 미술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양종용 작가의 ‘이끼시리즈’와 협업해 산불피해로 고통받고 있는 강원도 산지에 이끼기증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MZ세대 ‘SNS 인증샷 성지’ 21세기 아방가르드의 선두에 서다.
디지털 대전환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MZ세대들의 향유지향이 온오프라인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오프라인 전시를 갈망하던 사람들은 다양한 전시 속에서 현장감 넘치는 가상체험을 만날 수 있다. 팀보타가 안내하는 자연의 세계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피톤치드 가득한 숲 속으로의 여행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그 안에서 다양한 아트콜라보가 대중성과 예술성을 아우른 체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1차 미디어아트 시즌에서는 미디어아티스트 한호작가와 콜라보를, 2차시즌에서는 서울예대 조상 교수와의 콜라보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지휘자 아드리엘 김이 이끄는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과의 숲속 판타지 음악 여행도 예정돼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영선 대표가 이끄는 맨션나인의 전속작가들과 함께 NFT 아트를 단돈 2천원대에 소장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몽환적 늪지와 은은하게 깔린 안개 사이로 느껴지는 숲의 향연, 나무를 테이블 삼아 블랜딩한 시그티쳐 티가 연작의 전초 라인에서 모티프를 따온 향과 어우러져 ‘묘한 향연’을 펼친다.
그림4. <팀보타 탐의 숲> 맨션나인 전속작가들 NFT (출처: TEAMBOTTA 인스타그램)
팀보타는 관통하는 스토리텔링은 역시 ‘내가 탐하는 모든 것’을 드러내 ‘나 자신’을 들여다보라는 ‘자전적 미학에세이’다. 스토리부터 컬러까지, 전시 내 다양한 구성요소에 현대를 신화한 상징적 모티브가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오롯이 관람객들의 몫이다. 기존 아카데믹한 전시들이 작가위주의 일방향적 전시체험을 강조했다면 이 전시는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다양한 발견이 가능한 전시다. 직접적인 노출을 최소화하면서 관객들이 자신의 감각을 최대한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전시’를 매개한 ‘자기발견의 장’인 것이다. 팀보타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세대만의 ‘힙한’ 공간이 아니다. 새로운 아방가르드를 통해 혁신적인 예술체험을 원하는 우리 모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전시이기 때문이다.
· 전시 기간 : 2022.03.20 ~ 2022.08.20.(오전 10시 ~ 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
· 전시 장소 :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2길 32-14(성수동1가, 갤러리아 포레) G층 1관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2-05-20 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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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어느 예술가의 초조한 시간, ‘틱, 틱... 붐!’
예술가라면 대개 가난을 경험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집세를 못 내 주인에게 매일 시달리고, 마약의 유혹과 에이즈의 공포에 잠식당해 있으면서도 저마다 자기가 믿는 예술이라는 종교를 향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순수 예술가들은 화려한 도시의 한 켠에 그림자처럼 존재해왔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 19세기 초반 파리 뒷골목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그렸다면, 뮤지컬 ‘렌트’는 그것을 20세기 중반 뉴욕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버전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어 토니상과 드라마 부문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던 이 작품의 작곡가이자 작사가는 안타깝게도 36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친 조너선 라슨이다. 그는 ‘렌트’의 첫 프리뷰 전날 밤, 드레스 리허설을 한 후 집에서 찻잔에 물을 따르다 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이 되어 버린 ‘틱, 틱... 붐!’ 은 마치 그런 비극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 것만 같은 작품이다. 막 서른 살이 된 조너선 라슨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자전적 1인극은 강렬한 록음악과 친근한 발라드가 공존하는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공명이 큰 ‘렌트’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영화판 ‘틱, 틱... 붐!’은 배우이자 음악감독인 린-마누엘 미란다가 연출하고 넷플릭스에서 제작했다. 조너선 라슨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세계 대한 이해도가 높은 영화로 오스카상 2개 부문의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노래, 춤, 연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앤드류 가필드는 더 많이 주목 받아야 마땅하다.
주인공 ‘존’(앤드류 가필드)은 식당 웨이터로 일하면서 8년 동안이나 준비한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숍 공연을 앞두고 불안과 신경과민에 시달린다. 때마침 여자친구는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고 하고, 에이즈에 걸린 친구들도 하나씩 숨을 거두는 상황에서 마지막 곡이 써지지 않는 그는 일분일초가 초조하기만 하다.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를 구원한 것이 결국 그 답답함에서 우러나온 선율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조너선 라슨을 그토록 괴롭혔던 여주인공의 노래, ‘Come To Your Senses’는 워크숍 장면에서 공개되는데,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선율의 발라드가 여배우(바네사 허진스)의 맑은 목소리와 현실 여자친구를 교차시키는 편집을 통해 힘있게 연출되었다. 공연예술과 영화의 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그래도, 우리는 가족 ‘봄날’
가족이란 단어만큼 이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을 것처럼 사랑스러웠다가도 남에게는 함부로 못할 날카로운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기 일쑤인 것이 가족이다. 비혼과 저출생, 1인 가구의 시대에는 핏줄보다 자주 만나는 친구나 이웃이 곧 가족이라는 말이 점점 더 기정사실화 되어 간다. 그러고 보면 명절에도 여행을 다니는 인구가 많아졌다. 벌써 경조사 외에 진짜 가족이 필요한 날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여기, 부고 때문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있다. 왕년에 큰 형님으로 힘 깨나 썼던 ‘호성’(손현주)은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을 만난다.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지만 동생 ‘종성’(박혁권)은 형이 사고라도 칠까 안절부절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배우를 꿈꾸는 아들 ‘동혁’(정지환)은 아버지가 부끄럽기만 하다. 호성은 가족들의 눈치 속에서 예전에 자기를 따르던 조폭들을 하나 둘 부르기 시작한다. 곧 장례식장 복도는 업소에서 보낸 화환으로, 빈소는 조폭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로 자욱한데, 아들과 부조금을 세던 호성은 기상천외한 사업을 떠올린다. 곧 호성의 주관으로 장례식장에서는 밤새 한 판 게임이 벌어지고 여러 지역에서 모인 조폭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봄날’(감독 이돈구)은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나 서먹서먹한 장남 호성과 그가 만들어낸 장례식장의 엉뚱한 풍경,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에 (살아서) 등장하는 3대에는 혼인 관계가 없고 모두 유전자를 공유한 직계가족이다. 해준 것 없어도 울 아버지니까 제대로 상을 치러드리고 싶고, 전과자라도 가족이라서 남이 욕하면 화가 나고, 조폭일지언정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식들에게만큼은 인정받고 싶은 각 인물들의 심리가 잘 살아있다. 근래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한 가장 유쾌한 블랙코미디로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씁쓸한 감정까지 웃음으로 감싼 솜씨가 300만원 짜리 장편데뷔작(‘가시꽃’)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이돈구 감독의 재능을 다시 느끼게 한다.
코로나 사태로 가정의 달을 무색하게 지낸 지 3년째, 이번 달에는 부모님과 나들이라도 갈 수 있을까. 여의치 않다면 팝콘을 먹으면서 ‘봄날’처럼 신파 없는 가족 영화 한 편 같이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2-05-20 1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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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천재 화가의 비극적 삶을 무대로 만나다_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학창시절 배낭여행으로 들렸던 남부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작열하는 태양이 정말 시간을 멈춰버릴 듯한 느낌 때문이다. 주도인 엑상프로방스를 중심으로 개성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들이 이어지며 관광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많은 유럽의 지역들이 그렇지만, 종교와 왕권이 대립하던 유럽 역사와 관계된 장소를 찾아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여행방법이다. 유럽사에서는 한때 군주가 종교를 넘어서는 힘을 얻어 두 명의 교황이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프로방스 지방엔 왕이 임명한 ‘또 다른 교황’이 머물렀는데, ‘아비뇽 유수’로 잘 알려져 있는 도시 아비뇽이 그 배경이다. 공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비뇽 연극제’로도 유명한데, 축제가 열릴 때면 아비뇽의 교황청을 중심으로 오래된 시가지와 길거리에 가득한 인파 속에 휩싸여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공연들을 여럿 만끽할 수 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서는 해산물 요리인 ‘부이야베스’를 즐길 수 있고, 님의 고대 원형경기장을 찾아 투우를 관람할 수도 있다.
그래도 프로방스에서 가장 잊지 못할 도시를 한 곳만 꼽으라면 아마 아를일 것이다. 지중해를 향해 도도히 흐르는 론 강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남부 프랑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일년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아를은 특히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각별한 곳이다. 바로 고흐가 말년을 보냈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정말 고흐의 그림 속 풍경 같은 정취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쇠구슬 놀이인 페탕크를 하는 사람들, 뜨거운 햇볕 아래 강렬함을 뿜어내는 해바라기 등을 넋 놓고 바라보다보면 정말 누구라도 예술적 영감을 자극받을 것 같은 감흥에 휩싸인다. ‘스태리 스태리 나잇’이란 첫 소절 노랫말로 유명한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와 FM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으로 쓰였던 ‘별이 빛나는 밤’의 진짜 배경인 좁다란 골목길 레스토랑, 또 빨래하는 처자들이 있던 랑글루아 다리 등은 위대한 천재화가의 흔적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감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굳이 고흐의 맹렬한 추종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고 이색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랑스 여행의 백미다.
요즘 우리 공연가에 프로방스와 아를, 그리고 고흐를 만날 수 있는 뮤지컬 한 편이 큰 인기다.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다. 비운의 화가였던 빈센트와 화상(畵商)이었던 테오, 단 두 명의 배우가 100분가량 무대 속 이야기를 통해 고흐의 작품과 예술세계, 비참했던 생애와 눈물 자아내는 죽음을 절절히 펼쳐낸다. 형 빈센트와 동생 테오는 실제로 700여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형제애가 두터운 사이였는데, 뮤지컬에서는 이를 마치 2인칭 관찰자 시점처럼 상황을 구현하며 객석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형의 자살 이후 마치 시들어가는 꽃잎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형처럼 세상을 떠나는 테오의 모습에 객석 곳곳에서 흐느낌이 들리는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대중적 소구와 감성적 공유에 효과적인 완성도를 이뤄냈음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전술했듯이 무대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한다. 하지만 뮤지컬에 나오는 인물은 이들만이 아니다. 물론 테오가 선보이는 1인 다역의 멀티 캐릭터도 인상적이어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마치 등퇴장한 듯한 재미를 쏠쏠히 즐길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지닌 제 3의 주인공이 또 있다. 바로 고흐의 작품들이다. 처음 공연장에 들어서면 하얀 세트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어 밋밋하게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러나 극이 시작되면 다양한 색감과 이미지들로 치장되며 화려하게 변신한다. 3D 매핑 기술을 활용해 황량해보이던 무대 세트에 수십 점에 이르는 고흐의 작품들을 쉬지 않고 투사시키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돌출되는 간단한 세트 이동을 활용해 단순히 이미지의 투영만이 아니라 입체적인 공간 감각을 구현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그림 ‘아를의 침실’에 그려진 바로 그 가구가 무대에서 실재하는 듯한 이미지로 재현되기도 한다. 정말 아를에 있는 그의 방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 변화나 재배치의 재미를 통해 작품과 작가간의 교류를 형상화하는 장난스런 표현도 흥미롭다. 비주얼적인 완성도만 보자면 가히 뮤지컬을 통한 미술 관람이라는 색다른 즐거움으로도 인정할만하다. 물론 극 전개에 따라 작품의 탄생이나 뒷이야기 등도 함께 이해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뮤지컬의 초반부에선 그림을 활용해 이미지를 완성해내는 비주얼적인 볼거리가 관심을 끈다면, 중반 이후부터는 묵직한 스토리의 힘이 감동을 자아낸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중으로부터의 외면받자 점차 정신적 방황을 겪게 되는 모습이나 높은 도수로 악마의 술이라 불렸던 압상트에 얽힌 일화들, 고갱과의 만남과 좌절, 스스로 귀를 잘라버린 유명한 사건 등이 무게감 있게 펼쳐진다. 장면 장면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천재 화가의 심리적 갈등과 방황이 안타깝다. 극적 상상력이 이야기의 재미를 높여주기도 한다. 결국 스스로의 환각에 싸여 잘못된 삶의 선택을 하는 과정에 대한 묘사는 단연 압권이다. 광기에 싸여 세상을 노래하던 그가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고 총소리와 함께 너른 벌판위로 날아오르는 까마귀 무리가 하얀 세트를 가득 메운다. 흡사 아키로 쿠로사와 감독의 영화 ‘꿈’에서 고흐의 작품들 속으로 들어가 그와 만나는 주인공의 마음까지도 연상케 한다.
아를에 가면 정말 고흐의 그림과 똑같이 꾸며놓은 장소도 있다. 화려한 색감과 강렬한 이미지를 그림 속 풍경 그대로 고스란히 재연해놓은 생폴 정신병원의 앞마당 정원이다. 고흐 그림의 강렬한 색채가 정원의 화초들에 똑같이 채색돼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고흐가 바라봤던 세상의 빛깔이 정말 그림 속 이미지와 엇비슷했을 것이라는 추론의 반영이다. 정신병의 영향이거나 압상트로 인한 알콜 중독이 빚어낸 환각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쓸데없는 호기심도 세상엔 없을지 모른다. 그저 그가 머물고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던 그 벌판과 거리, 자연을 거닐며 뮤지컬을 통해 만났던 장면들과 선율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 넘쳐날 체험이기 때문이다. 무대로나마 그 감흥을 맘껏 즐겨보길 추천한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2-05-20 09: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