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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그들만의 대화>
1988년 10월 3일, 빈의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에서는 카라얀(H. v. Karajan, 1908-1989)이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 필)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연주된 쇤베르크(A. Schönberg, 1874-1951)의 <정화된 밤>이 전반부를 장식하였고 인터미션 후에는 브람스(J. Brahms, 1833-1897)의 교향곡 제 2번이 연주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20분 정도면 끝날 인터미션이 30분이 지나도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카라얀이 대기실에 찾아온 어떤 손님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카라얀은 오랜만에 만난 그 손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방에 들이지 않은 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결국 그 날의 인터미션은 거의 45분이나 소요되고 말았습니다. 브람스 교향곡 제 2번의 전체 연주 시간과 맞먹는 시간이었지요.
카라얀과 음악회 중간에 이토록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그 손님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번스타인(L. Bernstein, 1918-1990)이었습니다. 마침 번스타인은 카라얀의 공연이 열리기 직전인 10월 1일과 2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빈 필)를 같은 장소에서 지휘했었지요.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데 궁금해지는 것은 그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 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일까요?
싱거운 결론이지만, 그 날 어떤 이야기가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갔는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카라얀과 번스타인 모두 그 날의 대화에 대하여 따로 밝힌 바도 없고요. 예술에 대한 열띤 토론이 진행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서로 오랜만에 만난 만큼,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나누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쩌면 카라얀이 당시 악화될대로 악화된 베를린 필과의 관계에 대한 속내를 번스타인에게 털어놓았을 수도 있겠지요. (카라얀은 1980년대 초반, 여성 클라리네티스트 자비네 마이어를 베를린 필 단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단시키려 했는데 이는 양측 사이에 큰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이 갈등은 결국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1954년 1월에 밀라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에서 오페라를 지휘하는 일정이 있었지요. 이후로 두 사람은 빈이나 잘츠부르크에서 때때로 만남을 이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1959년 11월에는 카라얀이 번스타인이 상임지휘자로 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정기 연주회에 객원 지휘자로 등장하여 총 8번의 연주회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는 카라얀이 뉴욕 필하모닉을 그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기록으로 남았지요.
195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 카라얀(좌),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중간), 그리고 번스타인(우)
(출처: wienerphilharmoniker.at)
사람들은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에 놓고 비교하곤 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카라얀 VS 번스타인>과 같은 글들이 종종 실리곤 하지요. 동시대의 뛰어난 지휘자들이 많았지만, 이 두 사람의 스타일이 워낙 대조적이었던 데다가, 번스타인이 미국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정상의 위치에 오른 지휘자였다는 사실도 이러한 라이벌 구도에 한 몫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번스타인이 카라얀이 오랫동안 상임 지휘자로 있던 베를린 필을 거의 지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고, 카라얀이 그를 견제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번스타인은 1979년에 단 한 번 베를린 필을 지휘하였는데, 그 음악회는 베를린 필의 정기 연주회가 아닌 국제 앰네스티 자선 음악회였지요.
세간의 이러한 시선을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이러한 궁금증에 대해 두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알기란 사실 어렵습니다. 공식적인 인터뷰와 속마음이 다를 가능성은 항상 충분하고요. 이 글 첫머리의 긴 인터미션에 대한 에피소드를 소개한 당시 무직페어라인의 감독 안귀얀(T. Angyan, 1953- )은 과거는 알지 못한다고 전제하면서도, 1988년의 만남 당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은 느낄 수 없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그 만남 이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이듬해 7월 16일, 카라얀은 잘츠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귀얀은 3일 후 밀라노로 가서 그곳에서 음악회를 지휘하던 번스타인을 만나 무직페어라인에서 열릴 카라얀의 추모 음악회 지휘를 부탁하였습니다. 번스타인은 그 부탁을 들어주었지요. 추모 음악회는 카라얀의 사망 두 달 후에 열렸습니다. 그 음악회에서 번스타인은 빈 필을 지휘하여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된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의 마지막 현악사중주(Op. 135) 중 느린 악장을 고인을 위해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조금 지난 1990년 10월 14일, 번스타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그들 생애 마지막으로 이루어졌을 1988년 가을의 그 만남과 대화. 마지막이라는 수식어는 그 만남과 대화를 왠지 더욱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카라얀과 번스타인이 남겨놓은 예술을 음미하며 지나치게 라이벌 구도에 그 두 사람을 가두어놓지 말고 그들이 나누었을 예술적, 인간적 교류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추천영상: 번스타인이 빈 필을 지휘하여 연주한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Op. 135)입니다.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입니다. 전곡이 연주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카라얀 추모 음악회 실황은 아니고, 추모 음악회 당일 오후와 그 다음 날 오전 연주회의 편집본으로 보입니다. (추모 음악회는 1989년 9월 16일 정오에 열렸습니다.) 원래의 현악사중주 버전에 비해 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은 소리의 풍성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강점이 있지만, 현악사중주 특유의 긴장감과 깊은 내면으로 향하는 느낌은 그만큼 옅어졌다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음악적인 평가와는 별도로, 이 영상이 카라얀을 추모하는 시기에 촬영되었기에, 느린 악장에서 추모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EBVUGRN_QY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2-09-02 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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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대담한 표절러, 헨델
클래식이 표절을 대하는 자세
표절의혹에 휩싸인 가수 유희열이 결국 인기 장수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하차했다. 이전에도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지만 과거에는 요즘같이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전파력이 크지 않았고 저작권에 대한 인식도 안일했다. 유희열 표절의혹 논란은 시대가 변했다는 방증이다. 특히 젊은 MZ세대는 권리에 대한 인식이 강하고 기성세대의 불공정을 가벼이 넘기지 않는다.
음표 하나하나 엄격하기 이를 데 없어보이는 고금의 클래식에서 표절에 대한 인식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19세기 낭만시대를 거치며 클래식에도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점차 확립되어갔지만, 그 이전에는 표절이 흔한 일이었다. 요즈음 표절이라고하면 남의 것을 훔친다는 인식의 반감이 강하지만 그 옛날에는 암묵적으로 혹은 대놓고 남의 작품을 베끼고 차용하는 일에 관대한 편이었다. 표절의 대가?로 알려진 헨델은 공연수요에 발맞추어 방대한 양의 창작곡을 내놓기에 시간이 부족한 탓에 남의 작품을 수시로 베끼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헨델의 잘 알려진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은 헨델이 분량의 반 이상을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차용한 표절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이 많다보니 피해자중 한 명이었던 작곡가 요한 마테존은 '표절'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입에 올리며 헨델의 행태를 비난했는데 헨델 본인은 주위의 비난에 별로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 그 멍청이들은 좋은 멜로디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
바흐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했던 작곡가 헨델
신앙심이 깊고 성실했던 바흐도 그의 칸타타 130번에 루이 부르주아의 코랄 선율을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거의 매일 교회를 위해 새로운 곡을 써내려갔던 그에게 부담감을 덜어주었을 것이고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무궁무진한 영감으로 거의 고친 흔적없이 완벽하게 곡을 써내려간 천재 모차르트조차 하이든을 표절한 바 있다. 교향곡 37번은 오랫동안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알려져있었으나 하이든 음악에 느린 도입부를 추가하고 목관악기군들을 약간 손봤을 뿐 20세기 초 연구가들에 의해 결국 하이든의 작품으로 밝혀졌다.(모차르트가 평소에 존경했던 하이든을 학습하기위한 용도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모차르트는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처럼 매일 교회나 궁정을 위한 행사용으로 음악을 대량으로 신속하게 제공해야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의 표절은 당시의 안일했던 표절개념을 말해준다.
사실 그 이후에도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바그너,스트라빈스키등 내놓라하는 작곡가들 또한 표절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며 클래식의 역사속에 작곡가들이 기존의 작품들을 차용하거나 약간 수정을 가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재탕한 사례는 늘 존재했다. 리스트의 사위 리하르트 바그너 앞에서 리스트가 바그너가 베낀 리스트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자 그제서야 바그너는 자신이 표절했음을 인정했는데, 리스트가 " 그러니까 남들이 듣지"라고 응수했다는 일화가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작곡가들이 프리랜서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강화하며 지적재산권에 민감해지기 전까지는 표절시비에 있어서 작곡가들끼리 서로 큰 이해심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와 다르게 작곡가가 원작을 자신만의 역량으로 재구성, 재해석한 작품들도 많다. 일종의 '개작'인 것이다. 이것은 표절과는 다른 차원의 고유의 독창성이 부여되는 재탄생된 창작물이다 .그리고 대부분 음악의 출처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브람스의 출세작 '하이든 주제에의한 변주곡'은 하이든의 것으로 추정되는 테마를 가져다가 기능적으로 변주한 낭만 스타일의 관현악곡인데 당시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더러 요즘에도 인기가 높다.
잘 알려진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제1번을 차용하여 멜로디를 얹은 것으로 바로크적인 하모니에 낭만적인 선율이 어우러진 구노의 명작이다. 20세기 폴리스타일리즘의 대가 알프레드 슈니트케는 모차르트의 작품들과 하이든 식의 감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버무린 고전의 패러디를 <하이든식의 모츠-아트>라는 작품에 선보였고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비발디 사계 리콤포즈드>라는 작품을 내놓으며 비발디 사계를 분석하고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작곡'하며 과거와 현대를 아우른 시대적인 하이브리드를 창조해내며 전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표절과 비교했을때 남의 것을 무단이 아닌 공공연히 갖다썼다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편곡, 재구성, 샘플링등 곡을 갖다 쓰는 방식보다는 '내 것인양' 주장하는 행위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헨델을 비롯한 수많은 클래식의 걸출한 작곡가들이 음악 표절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없고 클래식이 이에 꽤 관대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과거의 클래식과 다르게 이제 다른 창작자들의 작품들을 유튜브를 비롯한 음악 플랫폼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컴퓨터를 활용한 작곡 시퀀스 프로그램을 통해 비전공자들도 쉽게 멜로디나 리듬을 여기저기서 따올 수 있으니 작곡에 대한 진입장벽이 더욱더 낮아졌다. 그 만큼 더욱 표절 이슈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고 창작자의 권리보호에 앞장서야 할것이다. 물론 경계가 모호한 '영감이냐 표절이냐'의 담론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2-08-24 14: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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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우주의 별빛만큼 빛나는 희망 찬가, 뮤지컬 ‘시데레우스’
모두가 정답이라 생각하는 일에 반기를 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결국 용기 있는 자들의 외침이 문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다. 마치 성경처럼 여겨졌던 이론에 맞서 정반대를 주장하는 일은 죽음을 각오할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연구를 멈출 수는 없었다.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펴고 힘껏 날아올라 별과 우주가 품은 진실을 향해 다가가려 할 때, 저 멀리 반짝이던 희망이 곧 이유가 됐기 때문이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공연포스터
‘별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뮤지컬 ‘시데레우스’가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지난 7월 26일 서울 종로구 플러스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과학적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갖 어려움에 맞서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실존 인물인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와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창작된 뮤지컬로 작품명은 갈릴레오의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에서 따왔다. 오는 10월 16일까지 공연될 이번 무대는 정상윤, 박민성, 이창용, 기세중, 배나라, 신주협, 조윤영, 박새힘이 꾸려간다.
2019년 초연 당시 관객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면서 존재감을 분명히 한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나 스토리뿐만 아니라 독보적인 무대 연출 덕분에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비스듬히 놓인 반구형의 무대가 스크린 영상과 어우러진 장면들이 마치 우주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느낌이 들 정도로 환상적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일찍이 레플리카 버전 라이선스 계약을 마친 일본과 중국 공연도 함께 이뤄져 더욱 뜻깊다. 최근 한국 창작 뮤지컬을 향한 해외 시장의 관심이 날로 커지면서 우수한 콘텐츠가 해외로 수출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데, 뮤지컬 ‘시데레우스’ 역시 그중 하나다. 그만큼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장르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교육적 가치와 예술적 감각을 두루 갖춘 수작 중의 수작이라 평가받기 충분하다.
작품은 상상과 현실을 적절히 배합해 흥미로운 결과물로 완성됐다. 갈릴레오의 딸인 수녀 마리아는 어느 날 종교재판을 받으러 떠난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방에 숨겨진 편지들을 불태워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런데 편지를 보낸 발신인이 모두 케플러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연에 의문을 품게 된다. 연구에만 몰두하느라 언젠가부터 방문을 걸어 잠근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성장해 종교에 귀의하게 된 딸은 어느새 지구 밖 다른 행성과의 사이만큼이나 벌어져 있었다. 이야기는 그런 마리아의 시선을 따라 과거로 향한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공연장면 <사진제공 : '랑'>
‘세상의 중심은 지구’라는 견해가 믿음으로 굳어졌던 1598년, 케플러로부터 그의 저서 ‘우주의 신비’ 선물과 함께 공동 연구를 제안받은 갈릴레오는 단번에 거절 의사를 전한다. 하지만 케플러는 포기하지 않고 갈릴레오를 설득하려 한다. 그는 “우주는 커다란 거미줄과 같다”고 말하면서 알고 싶은 정답을 찾아가겠다는 의지를 끊임없이 내보인다. 케플러의 가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려던 갈릴레오가 오히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은 그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근거 없는 상상처럼 보였던 가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만나자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으로 변해버렸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케플러의 의견은 신앙과도 같았던 천동설을 완전히 부정하는 이야기였다. 단 한 번뿐이던 강렬한 만남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두 사람의 공동 연구는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갈릴레오가 고배율 망원경을 제작해 천체의 움직임을 직접 관측하게 되면서 기존 역사를 뒤집을만한 대사건이 벌어진다.
물론 뮤지컬 속 이야기는 실제와 꽤 다르다. 두 사람의 연구가 오늘날 과학사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실로 엄청나다. 다만 연구는 온전히 각자의 몫이었다. 케플러는 ‘우주의 신비’가 출간됐을 당시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날 친구를 통해 갈릴레오에게 책을 전달했다고 한다. 갈릴레오도 자신의 견해와 일부 유사한 입장을 가진 케플러에게 반가운 마음을 전했지만 안타깝게도 공동 연구는 이뤄지지 못했다. 두 사람의 성향이나 견해차로 인한 결과였다고는 하나 만약 뮤지컬에서처럼 두 과학자의 협업이 정말 이뤄졌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마리아와 갈릴레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극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극 중에서는 갈등 요소가 두드러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공연장면 <사진제공 : '랑'>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과 눈으로 확인한 진실 사이의 거리는 멀고 멀었다. 그러나 진실을 마주해야 내일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다.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현실 너머 어딘가에 놓인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로이자 힘이 된다. 작품에 담긴 메시지가 일상이라는 항해를 인도할 별빛처럼 반짝일 때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본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주관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유독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2-08-24 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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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공포의 하모니, ‘멘’
관객들을 화끈하게 놀래는 공포영화가 있는가 하면 집요하게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는 공포영화가 있다. 대개 전자는 보다 상업적이고 후자는 마니악하다.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각본가이자 감독, 알렉스 가란드는 상업적인 작품에도 분명 소질이 있는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후자를 택했다. 그의 신작, ‘멘’은 기괴한 비주얼과 영화적 체험으로 가득차 있다.
남편의 죽음을 목도한 ‘하퍼’는 도시 근교 작은 시골 마을의 별장을 빌린다.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과 고풍스런 저택은 곧 그녀의 마음을 치유해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 둘 마주하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위협하거나 해치려 들고, 하퍼는 사투 끝에 눈 앞에서 변태해 가는 역겨운 존재와 대면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 시선의 역사를 보여주는 마지막 신은 충격적이고도 난해하다. 동시대에 사라져버린 비평을 소환한다는 점은 미학적 이미지로 가득찬 이 공포물의 또 하나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뿐 아니라 음악과 사운드도 ‘멘’에서 두드러지는 요소다. 영화 초반부, 하퍼는 별장 근처를 산책하다가 동굴에서 자기 이름으로 하울링을 만들어낸다. “하퍼”, “하퍼”. 처음에는 하퍼의 목소리가 연속해서 되돌아오며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것 같더니 또 다른 목소리가 겹쳐지며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음산하게 변한다. 단 두 개의 음으로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죠스’(스티븐 스필버그, 1975)의 스코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하다. 장면전환에서 사용되는 불협화음과 스크래치 사운드도 스릴러적 요소로 점철된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멘’의 음악은 포티쉐드 밴드의 제프 배로우와 영화음악 작곡가 벤 살리스베리가 맡았다. 알렉스 가렌드 감독 작품으로 두 뮤지션까지 협업한 또 한 편의 영화, ‘서던 리치 : 소멸의 땅’(2018)은 영화사에 있어 손꼽힐 정도의 사운드트랙으로 유명하다.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의 음악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멘’도 감상해보길 권한다.
◆ 윤성은의 Pick 무비
예술의 탄생 과정을 담은 영상에세이, ‘베르히만 아일랜드’
영화감독 커플인 ‘크리스’(빅키 크리엡스)와 ‘토니’(팀 로스)는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포뢰섬을 찾는다. 포뢰섬은 스웨덴의 거장 감독, 잉마르 베르히만이 대표작인 ‘페르소나’(1966)를 비롯해 다섯 편의 영화를 작업했던 곳으로, 오늘날까지 그를 추앙하는 많은 창작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찾는 명소다. 낯선 곳에서도 의연해 보이는 토니와 달리 크리스는 모든 것이 완벽한 작업실에서 숨이 막힐 듯한 부담감을 느낀다. 오래된 연인의 이야기를 쓰고 있던 크리스는 ‘실패와 배신, 흥분의 연속이면서 가끔 찬란히 행복했던 이야기의 마지막장’이 떠오르지 않아 고전한다. 토니에게 고민을 말해 보지만 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토니가 딸을 데리러 간 사이, 크리스는 마침내 결말을 떠올린다.
‘베르히만 아일랜드’(2021)는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창작가의 고뇌, 연인의 사랑, 여성의 인생 등 다양한 주제들이 섬세하게 다루어져 있다. 감독으로서 크리스는 베르히만을 존경하는 만큼 포뢰섬에서 그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망한다. 베르히만은 6명의 아내에게서 9명의 자녀를 두었음에도 창작활동에 열중했을 뿐 좋은 남편이나 아버지였던 적은 없었다. 크리스는 삶과 예술이 양립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지만 그녀 역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각본에 집중하러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크리스가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페르소나이듯 그녀가 쓰고 있는 각본 속 주인공 ‘에이미’는 크리스가 투영된 인물이다. 에이미는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포뢰섬으로 오는데, 오는 길에 옛 연인 ‘조세프’와 조우하게 된다. 지금은 각자 다른 연인이 있음에도 서로에 대한 이끌림을 숨길 수 없는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밀고 당기기를 계속한다. 그러나 점점 더 조세프를 갈구하며 그를 쫓게 되는 에이미에 반해 조세프는 현재 여자친구와 에이미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 하다가 먼저 섬을 떠나 버린다. 그렇게 크리스와 에이미는 공히 연인이 없는 섬에서 정서적으로 홀로 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현실과 비현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경계에 있는 이 영화처럼 두 사람도 조금은 위태해 보이지만 섬의 평화롭고 정적인 분위기가 무게중심을 잡으면서 이야기는 낙관적인 결말로 나아간다.
베르히만의 작업실에서 잠든 크리스가 깨어날 때, 각본이 완성되어 영화화 되었음을 알게 해주는 후반부는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 시퀀스에서는 크리스와 에이미가 가장 확실하게 겹쳐지고 또 분리되기도 하며, 베르히만의 ‘페르소나’에 대한 오마주도 명징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관념과 경험, 그리고 욕망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고 예술이 되는지에 관한 지적 영상에세이 같은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2-08-19 0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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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
국악과 도서관
책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지만 우리 주변에는 도서관이 꽤 많다. '작은도서관', '책쉼터', '북카페' 등의 이름으로 여름 한낮의 더위를 피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꾸며진 곳들이다. 조용하고 시원하고 사색에 잠기거나 음악을 듣거나 마음의 양식을 듬뿍 흡입할 수도 있는 곳, 여름 휴양지로 도서관만한 곳이 또 있을까. 8월엔 보다 한가로이 우리 전통 음악과 함께할 수 있는 장소로 도서관을 소개해본다.
서울 종로구 지도를 들여다보다 보면 대한민국 역사 문화 중심지는 단연 종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개방한 청와대부터 종묘와 경복궁, 창덕궁 그리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까지 모두 종로구에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 아트선재센터와 대림미술관, 박노수․김환기․고희동 화백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들을 비롯해 우리소리박물관과 돈화문국악당이 위치한 국악로, 소극장들이 즐비한 대학로가 있는 곳도 종로다.
2010년부터 종로구는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반영해 각 분야를 특화한 구립도서관들을 설립해왔다. 생태와 역사, 영어, 전통문화 등등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진 종로구 도서관 중 2017년에 열일곱 번째로 개관한 곳이 ‘우리소리도서관’이다. 우리소리도서관이 들어선 자리는 종로구가 지정한 명예도로 ‘국악로’ 부근이다. 국악로 주변은 예로부터 내로라하는 명인․명창들의 자택과 국악 관련 기관 등이 밀집해 있던 동네다.
우리소리도서관은 국악 전문 도서관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국악 관련 책들을 열람할 수 있는 열람실 외에도 CD, LP, DVD 등 풍부한 비도서 자료들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국악누리방, 소리사랑방 등 다목적실과 옥상의 야외 공연장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공연을 기획하기도 한다. 8~9월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겨레소리, 어디까지 배워봤니?’라는 제목의 서도 소리 강좌와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서도’는 황해도와 평안도를 두루 이르는 말로, 8월에 열리는 교육 프로그램에서는 평안도 배뱅이굿 예능보유자인 박정욱 명창이 강사로 나서 재담․잡가․입창․민요 등 서도의 다양한 노래를 익혀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어 9월에는 8월에 배운 서도 소리를 명창들의 소리로 들어보는 공연 <평양날탕패, 서울에 배뱅이를 전하다>도 개최할 예정이다.
다채로운 국악 체험 프로그램들(출처: 종로문화재단 누리집)
이밖에 국악 자료를 다량 보유한 공간으로, 서초구 국립국악원의 국악박물관 3층에 자리한 ‘공간 이음’과 지난해 개관한 경기도 평택 한국근현대음악관 2층의 ‘한국근현대음악도서관’ 등을 꼽을 수 있다. 두 곳 모두 도서관과 박물관, 아카이브의 기능을 통합한 ‘라키비움’을 지향하는 공간이다. 국립국악원 소장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공간 이음 안쪽에는 북한음악자료실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북한의 전통 음악 자료들을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비치해두고 있다. 한국근현대음악도서관에는 평택에서 태어난 해금과 피리 명인 지영희 선생의 기증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음악관 1층의 지영희국악관에서 민속악 명인의 기증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국악 자료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음악을 보다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는 의정부 음악도서관이 있다. 음악 제작 스튜디오와 공연이 열리는 오픈스테이지, 음악 감상 공간인 오디오룸, 뮤직홀 등이 갖추어져 있고, 비도서 자료로 CD, LP, DVD, 악보 등도 이용할 수 있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여름밤이 당분간 계속될 테다. 전자책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지만, 종이 책이 꿀잠을 부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국악 공연장에 숙면을 취하는 관객이 많은 것을 보면, 국악 역시 우리의 심신을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틀림없다. 또 우리 전통 음악은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훌륭한 배경 음악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래저래 가쁜 일 많은 여름이다. 국악 그리고 책과 함께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라본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2-08-12 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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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한 많은 소리길을 사연많은 무대용 뮤지컬로 재연해내다_뮤지컬 서편제.
전통문화가 대중문화 속에서 빛을 발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서편제’다. 소리길을 찾아 방랑하는 주연 배우들의 모습과 자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서편제는 판소리 창법의 한 유파를 말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명창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던 박유전의 음악적 실험을 이어받은 것으로, 주로 전라도 광주와 나주, 강진, 해남 등지에서 인기를 누렸다. 서편제라는 이름은 이들 지역이 섬진강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인데, 부드럽고 구성지며 애절하게 소리의 끝을 길게 이어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활달하고 우렁찬 동편제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사진제공 PAGE1>
대표적인 서편제 가락이 바로 ‘심청가’다. 특히, 심봉사가 딸을 만나 마침내 눈을 뜨게 되는 부분의 구성진 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매력을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에서도 엔딩 장면에서 남녀 주인공인 동호와 송화의 재회 장면에 등장해 우리 가락의 맛을 멋들어지게 재연해냈다.
무대용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에 속하지만, 스크린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볼거리로 치장돼 있다고도 인정할 만하다. 아무래도 ‘소리’를 듣고 ‘음악’을 즐기는 재미는 현장 예술인 공연이 기계적 재생의 영상보다 날것 그대로의 ‘감칠맛’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슬프게 꺾어지고 서글프게 이어지는 노랫가락에 넋을 잃고 눈물을 떨구게 되는 재미는 이 작품이 지닌 최고의 매력이다. 우리 소리가 객석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며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영화가 무명의 신예 국악인이었던 오정해를 일약 스타덤에 올렸다면, 무대는 초연부터 참여했던 이자람과 차지연 덕분에 완성이 됐다. 특히 이자람은 그토록 자그마한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크기의 소리와 에너지, 선한 기운마저 뿜어져 나오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비를 따라 소리를 배우고, 갈등하고,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 극적 전개는 두말할 나위 없고, 마침내 눈이 멀어 가슴에 한을 품고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나오는 감동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유봉의 죽음은 이 뮤지컬의 백미다. 소리에 한을 심어주려 했던 아비는 딸 송화의 눈을 멀게 만들고, 송화는 그런 유봉을 허무히 죽음 너머로 떠나보내게 된다. 상여가 등장하고 송화는 울음인지 아니면 원망 섞인 비명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절규를 쏟아낸다. 마음에 '한'을 담아 소리를 완성하고자 했던 소리길 여정이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다다르는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순간이다. 무대는 이 극적인 장면을 다시 현대적 양식의 무용극으로 풀어 재구성해낸다. 남녀노소에게 모두 소구하는 명장면이지만 특히 부모를 여읜 중장년층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손수건을 훔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설움과 분노, 회한과 서글픔의 감정을 체험하게 만든다. 무대라서 더욱 북받쳐 오르는 서글픈 희열이자 감동이다.
2010년 초연 무대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네 번의 시즌이 막을 올렸다. 아무래도 한번 만들면 다시 고칠 수 없는 영상물과 달리 공연을 거듭하면서 더욱 치밀해지고 꼼꼼해지는 무대의 속성이 여러 차례 앙코르를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이게 된 배경이 됐다. 덕분에 올초 마니아 관객들 사이에서는 가장 다시 보고 싶은 뮤지컬 공연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올해 올려지는 다섯 번째 마지막 앙코르 공연에선 이자람과 차지연, 유리아, 홍자, 양지은, 홍지윤의 여섯 배우가 번갈아 무대를 꾸민다. 앞선 세 배우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무대적 완성도를 이뤄냈던 여배우들이라면, 뒤의 세 배우는 ‘미스 트롯’을 통해 가창력을 검증받았던 경우들이다. 국악을 배웠거나 전공이었던 경우들도 여럿 눈에 띈다. 어느 배우가 등장하는가에 따라 음악적 감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도 우려되지만, 여러번 객석을 찾고 싶을 만큼 호기심을 자극받게 된다. 여러 차례 무대를 꾸몄던 원숙함을 기대한다면 이자람이나 차지연을, 신선한 변화나 실험을 원한다면 다른 배우들을 도전해보길 권한다.
국악을 적절히 활용했지만, 무대에 등장하는 음악은 사실 그 이상의 다양한 장르가 총망라돼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맨발의 디바’로 유명한 이은미의 노래들을 만든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이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며 음악적 경계를 확장시킨 탓이다.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바로 그가 만든 이 작품 최고의 선율중 하나다. 극장을 나서며 한숨 섞어 흥얼거리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작곡가의 탁월한 대중적 감각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뮤지컬이 흘러간 명작영화나 예전의 히트 대중음악을 활용하는 일차적 이유는 분명하다.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콘텐츠를 무대로 재연하는 것이니 관객 입장에서는 그만큼 신뢰할 수 있을 테고, 제작자 입장에서는 홍보의 부담이나 흥행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마련이다. 말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거양득의 마케팅 전략이자 상업자본의 선택인 셈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적용이 용이한 무대예술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에 나름 사연도 있다. 지금은 PAGE1이 제작사로 참여하고 있지만 초연이 되던 해 명을 달리했던 古조왕연 프로듀서의 한 많은 인생은 특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좋은 작품으로 성장한 무대를 봤다면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싶기도 하다. 창작 뮤지컬 한 편이 완성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 아픔과 희생이 뒤따라야 하나 싶어 숙연해진다. 시장은 늘어나고 돈 버는 인기배우들이나 해외 원작자들도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이들의 사정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어보여 더 안타깝다. 서편제의 소리길이 우리 창작 뮤지컬계의 사정과도 묘하게 닮은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다. 좋은 우리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을 위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2-08-12 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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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화의 지점, 版畫 지도그리기
“Newtro의 관점에서 본 판화지형학의 열린 가능성”
문화사회학에서 사용하는 ‘지형학/위상학’의 개념은 ‘판화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현재적 질문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이후 ‘지도그리기(Cartography)’에 대한 개념은 장르의 한정성에 대한 예술계의 질문 속에서 다양한 논의의 중심 틀로 발전해 왔다. ‘지도그리기’는 지리정보를 담는 인공적인 생산물로서 지도의 의미뿐만 아니라 “예술계 안에서 판화의 생존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라는 판화의 존립여부와도 맥을 같이 할만한 주제이다.
기존의 지도그리기가 목적 달성을 위한 관습적인 기술 또는 운용이었다면 최근에 대두되는 논점은 “문화적 지도그리기를 포함하는 대안적 위치정하기를 통해 장르의 새로운 지향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지리학적 과정으로서의 판화가 어떻게 미술계(art world) 속에서 판화의 터전을 ‘생성-발전-공존’시킬 것인지를 ‘판화지도 NEWTRO(어제와 오늘)’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판매시스템의 발달은 가상현실과 기계프린트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판화개념의 변화와 표현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장르해체의 시대 속에서 “판화개념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확장시킬 것인가, 기존 질서를 어떻게 (유지 혹은 발전시켜) 지속가능한 구조로 작동시킬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의식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미술 속 판화, 위기인가 대안인가
임영길, 오독부-거미, 17×21×1.5cm(접을 때), 50×75cm(펼칠 때), woodcut on Korean paper, 유황
송대섭_개펄(MudFlat)_23x28cm_monotype_2022
최제이_Deer Hunting 201703 _2017년작_130.0×162cm_Digital Photo collage, acrylic on wood
권순왕, 짜장면을 먹었어요, 30X20X10cm, 고량주박스에 판각, 2021
이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건드린 전시가 지난 2022.7.26.(화)-8.9(화) 사이 강남 유나이티드갤러리 #판화지도_뉴트로 전시에서 소개됐다. 참여작가는 Retro-trans 파트(가나다순)는 김유림, 김이진, 김찬현, 김희진, 민경아, 송대섭, 신상우, 안유선, 양미성, 여우전, 윤세희, 이상미, 이은진, 임영길, 정미옥, 조향숙, 진보라, 채다영, 한규성, 홍승혜 등이고, 새로운 전환(New-trans) 파트는 미디어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권미혜, 권순왕, 김지혜, 성태진, 신혜영, 오태원, 차민영, 최성욱, 최제이, 하임성 등 대표적인 현대판화가들이 참가했다.
판화는 기술발전의 핵심을 최첨단에서 반영해왔다. 15세기 판화기술이 본격화된 이래 판화가들은 가장 빠른 기술력을 지닌 시각화된 복제 이미지를 생산해 냈다. 예술사의 흐름 속에서 판화는 처음의 정보전달자의 위치에서 예술의 한 축을 담당하는 매체로서의 위치를 확보해 왔고, 판화기술의 발전, 예술사와 연동한 시각에서 작가의 창작 의지가 반영된 ‘현대판화가’로서의 가치를 확고히 해 왔다. 21세기 이후 등장하고 있는 복제기술의 발전은 사진과 미디어, 설치와 NFT 등에 이르기까지 판화개념의 확장성을 야기함과 동시에 “굳이 판화라는 장르를 아카데믹한 미술계와 연동해야 하는가?”라는 위기의식 또한 초래한 것이 사실이다.
김유림, 이야기의 이면 5, 2021, Digital Pigment Print, 50x33cm
기존 판화개념과 멀리 떨어진 작품들을 어떤 방식으로 연동해 판화개념의 확장성으로 지칭해야 하는가는 앞으로 지속될 세미나의 논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30여명의 회원이 참가한 이전 전시에서도 제목만 바뀐 채 전시가 지속될 뿐, 판화계를 활성화 시킬 다양한 가능성들이 깊게 논의됐는가는 다시금 생각해볼 문제이기 때문이다.
테크놀로지와 기술복제는 보드리야르가 제시한 상징가치로서의 시뮬라크르 속에서 표현 양식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따라 그 정의와 영역도 확장되었다. 특히 확장성 있는 판화개념을 판화계에서 동의하더라도 이를 미술계와 대중들이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에 따라 ‘위기와 대안’ 그 어느 쪽으로도 해석 가능하다는 점을 회원들 스스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까지도 기술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21세기 현대 판화의 개념을 완벽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판화사의 흐름 속에서 현대판화의 새로운 모색은 다양한 토의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할 필요가 있다.
판화(版畵)의 용어 정립 문제부터 판(版)을 가로지른 넓은 의미에서의 개념해석에 이르기까지, 커뮤니케이션과 미술 이데올로기의 변화 속에서 현대미술가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개인성의 분출은 판화의 기술적 특성(기술과 형식, 의미의 재해석)과 더불어 ‘혁신과 보수의 상호 공존’이라는 틀 속에서 재조합할 필요가 있다.
뉴트로의 관점에서 본 판화개념의 확장
시각적 소통 안에서 판화는 그래픽(graphics)·판화(printmaking)·프린트(prints) 등의 ‘인쇄된 이미지’에 한정하던 시대는 디디 위베르만(G.Didi Huberman)이 제시한 ‘프린트 패러다임’ 이후 단순한 복제에서 동시대적 창작 언어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판화개념을 뉴트로의 관점에서 논한다면 전통영역과 현대영역을 아우르는 정반합의 관점에서 새로운 대안성의 접점과도 만날 수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뉴트로 문화는 문화예술계 전반에 퍼져있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의 융합적 시도로,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을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되새기는 시각의 전환과 확장(Transition and extension of vision; 이하 trans)을 강조한다.
몇 해 전부터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복고 열풍의 관점에서 보자면, 레트로(Retro)라고 불리던 복고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뉴트로(Newtro)’에 해당된다. 뉴트로를 문화사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없는 MZ세대들이 오래된 문화에 갖는 현상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뉴트로를 판화적 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문화의 주체로서 과거와 현재의 개념을 어떻게 판화가 수용할 것인가라는 ‘확장적 정의’로 해석 가능하며 뉴트로에 트렌스라는 메타/변환의 관점을 덧붙인다면 기억의 대상이 아닌 프린트 패러다임 이후의 창작/상상 욕구를 ‘새로운 아방가르드’라는 관점에서 끌어내는 개념 전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경험을 존재하는 것처럼 재현하는 이미지의 힘, 그리고 가상의 이미지에 지배당하고 있는 신세대들과의 접점이 늘 자리하고 있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2-08-05 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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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선민의 공연예술 글로벌 Now!
루체른 페스트벌을 지속 시키는 힘과 비결 – 오케스트라, 현대음악, 그리고 젊은이들
1900년대에 건조된 오래된 증기선을 타고 호수를 가로지르면 병풍처럼 펼쳐진 산등성이와 호수가 만들어내는 절경을 만날 수 있는 곳. 루체른, 바그너가 사랑했던 도시이자 ‘진정한 꿈 속의 도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이곳에는 <지크프리트 목가>가 작곡된 그의 별장이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1930년대 나치의 핍박을 피해 유대인과 지식인들이 둥지를 틀기도 해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이 도시에는 봄,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클래식을 찾는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루체른 페스티벌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인 여름 페스티벌은 올해 8월 8일부터 9월 11일까지 약 5주간 열리며 100여 회의 공연이 시내 곳곳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연간 대략 12만 명의 관객이 찾는 음악 축제의 백미는 단연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과 음향학자 러셀 존슨의 합작 KKL(Kultur-und Kongresszsentrum Luzern)공연장이다. 호수에 떠있는 듯 몽환적이면서 도시에서 가장 모던한 분위기의 이 공연장은 잔향시간을 조절해주는 반향실과 의자 밑의 공기조절 시스템 등을 통해 모든 객석에 완벽한 음향을 구사하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루체른 페스티벌의 시작은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월 25일 바그너의 트립센 별장 정원에서 토스카니니가 지휘를 맡아 열린 갈라 콘서트를 시작으로 라흐마니노프, 푸르트뱅글러, 호로비츠, 카라얀 등 수많은 거장이 축제를 거쳐 갔다.
해마다 100여 개의 콘서트와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세계 일류 오케스트라의 수석급이 총집합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자아내는 화음은 클래식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이미 충분하다. 수많은 이유들이 클래식 애호가들을 루체른으로 끌어당기고 있지만, 페스티벌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지속가능성’이다.
루체른 페스티벌 대표 마이클 헤플리거(Michael Haefliger)는 “페스티벌의 존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과 명확한 주제”라는 것을 강조하며 축제 전체를 구성함에 있어 무엇보다 축제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다고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바 있다. 심포니(Symphony),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미래를 위한 음악(Music for Future)이 페스티벌을 단단히 떠받치는 3개의 기둥이 되고 이를 3개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각각 전두지휘하는 형식이다.
클라우디아 아바도와 루체른 페스티벌 대표 마이클 헤플리거의 고심 끝에 2003년 창단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현대음악 작곡의 거장 볼프강 림이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인 학생 오케스트라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커리어를 이어나갈 보금자리이기도 한 루체른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가 각 테마의 대표주자가 된다.
먼저 프로그램의 가장 핵심이 되는 심포니(Symphony)에서는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베를린, 비엔나, 런던, 클리브랜드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대거 참여해 축제에 풍미를 더한다. 반면, 컨템포러리(Contemporary)와 미래를 위한 음악(Music For Future)에서는 젊은 연주자들과 작곡가들의 활발한 작업을 적극 지원해 고전과 현대의 클래식이 자연스러운 물결을 이루도록 구성한다. 올해의 경우 상주 작곡가 토마스 아데스(Thomas Ades)와 재즈 드러머 타이산 소레이(Tyshawn Sorey)의 곡을 포함, 19곡의 세계 초연곡과 11곡의 스위스 초연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루체른 페스티벌의 구성 외 부분에서 ‘지속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은 페스티벌의 주제 선정이다. 그들은 매년 사회, 정치적 이슈를 반영한 주제를 선정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정체성(Identity), 유년 시절(Childhood), 힘(Power), 열광(Crazy) 그리고 올해의 주제 다양성(Diversity)에 이르기까지 인종, 성별, 종교, 사회적 배경을 아우르는 주제를 음악으로 아우른다. 고전과 현대음악, 재즈, 종족음악 등 다양한 장르는 물론,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을 초청하는데, 올해는 상주 예술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소프라노 골다 슐츠(Golda Schultz)와 재즈 드러머 타이샨 소레이(Tyshawn Sorey)를 선정해 장르와 아티스트의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흑인 작곡가’, ‘걸 파워’, ‘국경 없는 클래식’ 등으로 세부 주제를 나눠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 밖에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주니어 오케스트라 ‘Chineke! Junior Orchestra’, 현재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의 청소년 교향악단을 초청하는 등 사회 전반의 이슈를 고려해 치밀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사회와 음악이 함께 걸어가는 페스티벌을 기획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것이 페스티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가장 현명한 방식이다. 이러한 페스티벌의 구성은 음악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 선택의 폭을 한층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관객들은 양질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이는 다음해 페스티벌 관람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는 클래식 음악계가 추구해야 할 근원적 방향성과 일맥상통한다. 루체른 페스티벌을 ‘진화하는 페스티벌’이라 칭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올여름, 그들의 새로운 행보가 몹시 기대되는 바이며 페스티벌의 한 가운데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필자소개>
박선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예술경영)와 홍콩과학기술대학(MBA)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필하모닉 기획팀 및 싱가포르 IMG Artists에서 근무한 바 있다. 현재는 선아트 매니지먼트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양대학교에서 예술경영을 강의하고 있다.
2022-07-29 0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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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한 바이올린에 얽힌 이야기
1936년 2월 28일 저녁, 카네기홀에서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인 브로니슬라프 후버만(B. Huberman, 1882~1947)의 연주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폴란드 태생의 유태인인 그는 당시 최고의 바이올린 제작자인 스트라디바리(A. Stradivari, 1644~1737)와 과르네리(G. Guarneri, 1698~1744)가 만든 바이올린을 하나씩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두 악기를 하나의 케이스 안에 넣어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연주하는 작품에 더 알맞은 악기를 선택해서 연주했지요. 카네기홀에서 열린 그 연주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작품을 과르네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을 때 대기실에 있던 그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1713년에 만들어졌으며 이전 소유자의 이름을 따서 “깁슨-스트라디바리(Gibson-Stradivari/Ex-Gibson)”로 불리우던 이 악기를 누군가가 후버만의 대기실에 들어와 훔쳐간 것이었지요. 사실 이 악기는 1919년에 빈의 한 호텔에서 도둑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도둑은 그 악기를 팔려고 시도했지만 그 때문에 검거되었고 후버만은 자신의 악기를 사흘 만에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카네기홀에서 사라진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경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후버만은 자신의 악기에 대한 보험금 3만 달러를 지급받았으나 그의 악기를 다시 볼 수 없었고 1947년 6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1985년 8월,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한 남성이 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그의 이름은 줄리언 알트만(J. Altman).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했지만 전문 클래식 연주자의 길을 걷는 대신 주로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연주하며 살았던 그는 당시 어린이를 성적으로 학대한 죄로 1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죠. 그런데,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는 그의 아내에게 그가 평생을 감춰왔던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았습니다. 자신이 평생동안 연주해왔던 바이올린이 바로 50여년 전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가 1936년의 그날 밤 이 스트라디바리를 훔친 범인인 것일까요? 알트만은 죽음을 앞두고 아내에게 이 악기에 얽힌 비밀을 밝히는 순간에도 진실을 명쾌하게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아내에게 진짜 도둑인 자신의 친구로부터 그 악기를 100달러를 주고 샀다고 했지만, 아내가 계속 의심하자 그날 밤 자신이 카네기홀 안으로 들어가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를 코트 속에 숨긴 채 홀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지요. 정황상 카네기홀에서 연주를 했던 경험이 있었고 무대 뒤와 대기실로 향하는 길을 잘 알고 있었을 알트만 자신이 범인이라는 데에 무게가 실립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브로니슬라프 후버만 (1930년) / (사진: Boris Lipnitzki/East News)
알트만이 사망한 이후 그의 부인은 오래 전 후버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여 이 악기의 법적 소유권을 갖고 있던 보험회사 Lloyd’s of London에 악기를 돌려주었고 포상금(Finder’s fee) 명목으로 약 26만 달러를 받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그녀의 남편이 악기를 직접 훔쳤다는 이야기를 숨기는 등 남편처럼 정직하지 않은 면모를 보였는데 포상금으로 받은 금액을 남편의 유산에 포함시키지 않아서 남편의 가족들과 유산을 둘러싼 법정 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26만 달러라는 많은 돈을 받았으나 결국 그녀는 가난하게 사망하고 말았지요.
알트만은 자신이 훔쳐 사용하고 있던 악기가 도난당한 후버만의 유명한 악기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악기를 구두약으로 거무스레하게 칠해버렸는데 이를 제거하는 데에 9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오랜 작업 끝에 원래의 불그스름한 광택을 회복한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는 이렇게 50여년 만에 다시 세상에 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1988년 아마데우스 콰르텟의 제 1바이올린 주자였던 노르베르트 브라이닌(N. Brainin, 1923~2005)이 이 스트라디바리를 구입하였고 2001년부터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J. Bell, 1967~ )이 이 악기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브라이닌과 실내악 연주를 함께 하며 잠시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를 연주해볼 수 있었던 벨은 2001년의 어느날 연주를 앞두고 런던의 유명 악기사에서 우연히 그리고 운명적으로 다시 이 바이올린을 만났습니다. 다시 이 스트라디바리를 잠시 연주할 기회를 얻은 벨은 연주를 시작한지 수초만에 “이것은 내 바이올린이야!”라고 생각했고, 이 악기를 반드시 구입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 결심은 결실을 맺어, 원래 독일의 한 기업가에게 팔려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후버만의 스트라디바리는 벨을 통해 지금도 그 빛나는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악기가 다시 세상에 등장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도난사건이 있었던 당시에 후버만이 이 악기를 연주하며 이루고자 했던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지요. 1930년대에 나치의 등장을 보며 앞날을 예견한 후버만은 실력있는 유태인 연주자들을 모아 팔레스타인에서 오케스트라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는 오케스트라 설립 기금 마련을 위해 여러 연주회를 개최했지요. 1936년 카네기홀에서의 연주회도 바로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의 악기는 도난당했지만 같은 해 12월 그가 설립한 ‘팔레스타인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토스카니니(A. Toscanini, 1867~1957)의 지휘로 첫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후에 이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지요. 후버만의 이 계획은 결과적으로 1천여명의 생명을 나치로부터 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진정한 예술가의 목표는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인류애라고 말했던 후버만. 그의 신념이 깃든 이 스트라디바리의 소리가 계속해서 찬란하게 울려 퍼지기를 기대합니다.
추천영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직접 편곡하고 연주한 쇼팽의 녹턴 Op. 9, No. 2 입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서 연주했고 바이올린은 물론 후버만이 한 때 연주했던 바로 그 스트라디바리입니다. 서정적인 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아름답게 빛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니, 후버만이 이 악기를 도난당하고 얼마나 크게 상심했을지 상상하게 되기도 합니다. 벨이 특별한 애정을 표현해왔던 이 스트라디바리의 소리를 감상해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iuCheDo7HQM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2-07-28 1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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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윤영의 뮤지컬 오버뷰 (Musical Over:view)
단 한 번의 연주가 남긴 영원한 울림, 뮤지컬 ‘포미니츠’
<사진자료제공 국립정동극장>
검은 드레스를 입은 배우의 손이 거침없는 연주를 펼친다. 비로소 그가 마지막 건반을 쳐내고 나면 객석은 작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진다. 누군가의 인생이 담긴 연주에 필요했던 시간은 단 4분. 차곡차곡 쌓인 서사의 무게는 그렇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막을 내린다.
뮤지컬 ‘포미니츠(Four Minutes)’가 두 번째 여정을 시작했다. 지난 6월 21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개막해 오는 8월 14일까지 이어질 예정인데 작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어서 더 흥미롭다. 두 주인공의 관계성이 더 뚜렷해졌고 넘버에도 변화가 있었다. 무대 구성의 변화 역시 한눈에 들어온다.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게 정돈된 느낌이 든다.
‘
'포미니츠’는 크리스 크라우스 감독의 동명 영화로도 익숙한 작품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2007년 개봉 당시 독일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일찍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인 거트루드 크뤼거(Gertrud Krüger, 1917~2004)의 삶에 영감을 받고 제작된 영화는 너무나 다른 두 여성이 음악을 매개로 서로에게 위로이자 해방이 되어주는 과정을 그렸다. 물론 뮤지컬도 같은 흐름을 이어간다.
‘포미니츠’가 한국에서 뮤지컬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베테랑 뮤지컬 배우이자 예술감독 양준모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아 무대화를 결심했고 뛰어난 창작진들과 함께 뮤지컬 ‘포미니츠’를 완성해냈다. 뮤지컬은 섬세한 감정 묘사와 격정적인 연기, 폭발할 듯한 에너지가 가득한 무대로 2021년 초연 당시 관객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았으며 같은 해 열린 제15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도 공식 초청돼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과 함께 시작된 공연은 110분 동안 쉼 없이 이어진다. 움직이는 가림막이 있는 뒷벽 위층은 피아니스트, 그리고 아래층은 연기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무대 양옆은 개별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관객들의 시선이 주로 머물 무대 중앙부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고정돼 있다.
작품 배경이 된 루카우 교도소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80대 노인 크뤼거는 이 교도소를 드나들며 여성 재소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인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려 60년 동안 같은 일을 계속해 왔다. 짐작한 대로 그에게도 물론 과거에 겪었던 사건이 잊지 못할 상처가 되어 남아있다. 교도소장을 비롯한 사람들의 무례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레슨을 이어가려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에게 속죄하려는 듯하다.
크뤼거는 살인죄로 복역 중인 10대 소녀 제니를 만나면서 그가 가진 천재적 재능을 알아보고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출전을 목표 삼아 피아노 수업을 듣게 한다. 실제로 제니는 어린 시절 피아노 콩쿠르에서 상을 휩쓸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제니는 수업 첫날부터 교도관 뮈체를 폭행해 독방에 수감되고 방에서 풀려난 뒤에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절대 길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제니도 결국 크뤼거의 진심에 조금씩 마음을 열지만 언제나 그렇듯 위기가 찾아오고 만다.
작품 속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 4분간의 연주다. 탈옥까지 감행하며 결선 무대에 오른 제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 곡을 연주한다. 그 안에는 긴장과 분노, 자유에 대한 갈망, 해방감 등 살아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온갖 감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온몸으로 피아노를 치던 그가 관객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던 모습은 잊지 못할 감동 그 자체다.
마음을 닫은 채 각자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에게 뮤지컬 ‘포미니츠’는 그럼에도 살아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려준다. 방향을 잃고 표류하던 이들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니와 크뤼거가 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뮤지컬 ‘포미니츠’는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되뇌면서도 현재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작품은 그만큼 생동하는 삶의 가치를 확실히 깨닫게 한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눈 앞에 펼쳐질 것이다.
<뮤지컬 포미니츠 공연포스터>
<필자소개>
최윤영씨는 인천국제공항 아나운서와 경인방송 라디오 리포터 등 방송 활동과 더불어 문화예술공연 전문 진행자로 다양한 무대에 선바 있다. 현재는 미디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후 공연 칼럼니스트로서 칼럼을 기고해왔고, 네이버 오디오클립 ‘최윤영의 Musical Pre:view’ 채널을 운영중이다.
2022-07-22 1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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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찬송가를 교향곡으로 풀어내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종교개혁>의 4악장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종교개혁>의 4악장 총보
개신교 의례에서 회중들이 부르는 찬송가는 빼놓을 수 없는 예배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단조로운 선율에 여러절의 가사를 붙여 반복하는 유절형식 구조이다보니 4절 완창에 있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유명한 찬송가(Choral)로 알려진 '내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 ist unser Gott)'는 종교를 떠나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다. 작곡가 멘델스존이 이 익숙한 찬송가를 모티브삼아 각색한 교향곡 5번<종교개혁>의 4악장을 들어봤는가. 21세 청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관현악법적 역량이 돋보이며 드라마틱하면서도 치밀한 전개로 한순간도 지루할 틈을 주지않는다. 짧은 찬송가를 열정적이면서도 장중한 교향곡의 피날레로 둔갑시킨 그의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809년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멘델스존은 유대인이지만 개종하여 신실한 개신교 신자의 삶을 살았으며 그의 독실한 신앙을 작품들 속에 종종 담아내곤 했다.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 텍스트를 택해 작곡한 교향곡 2번 '찬가' 또한 교향곡과 칸타타를 접목시킨 놀라운 작품이며 그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루터가 시편 46편을 인용하여 작사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신교도의 상징적인 찬송가(Choral)이며 루터파 개신교였던 바흐 또한 이를 인용해 칸타타 BWV80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곡한 바 있다. 루터파 개신교의 찬송가는 독일어로 코랄(Choral)이라고 부르는데 그 특징은 윗성부에 주선율이 있고 각 다른 파트들은 수직화성적으로 주선율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나름의 선율적 움직임도 갖고있다.
멘델스존 교향곡 5번<종교개혁>의 4악장의 참신성은 코랄의 합창을 배제하고 순수한 관현악곡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멘델스존의 교향곡 5번 4악장 서두에 '코랄'이라는 단어가 명시되어 있으며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플루트 솔로를 시작으로 목관악기들이 담담히 코랄의 형식을 유지한채 연주한다. 이 짧은 코랄을 모티브 삼아 스펙터클한 변주가 펼쳐지는데 Allegro maestoso(알레그로 마에스토소)에 다다르면 모든 악기들이 포르티시모로 포효하며 상승하는 멜로디 라인을 통해 음악에 힘찬 동력을 선사한다. 제시된 주제를 다른 성부들이 모방하는 푸가토가 뒤이어 전개되는데 치밀한 대위법으로 긴장감을 늦추지않는다. 숨을 고르듯 2주제는 간결한 코랄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관악 합주로 시작했다가 뒤이어 합세한 현악기와 합을 이루어 웅장함을 연출한다.
다시 한번 코랄 모티브를 목관 솔로와 단촐한 현악기 반주로 제시하는데 색다른 음악적 묘미를 보여준다. 재현부 그리고 이어지는 푸가토에 이어 결국 이 작품은 코다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처음에 간결하게 제시된 찬송가는 말미에 이르러 오케스트라 총주로 웅장하게 연주되며 극적인 교향곡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종종 바쁜 일상속에 끝까지 한번에 듣기 힘든 클래식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을 끝까지 듣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830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 300주년에 맞춰 교향곡 5번의 작곡에 착수했던 멘델스존.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초연은 이때 성사되지 못했고 1832년 베를린에서 멘델스존 자신의 지휘로 대중앞에 첫 선을 보였지만 시기를 놓친 탓인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에 상심했던 20대 청년 멘델스존은 "더이상 이 교향곡을 감내할 수 없다. 차리리 불에 던져버렸으면 좋겠다. 이 작품은 출판되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 멘델스존과 그의 종교개혁 교향곡>의 저자 유디트 실버는 "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종교개혁이라는 이벤트에 촛점을 맞춰 작곡한 작품으로써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그 자신 또한 유의미한 교향곡 작품으로 간주한 것 같지 않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결국 1868년 뒤늦게 출판된 탓에 순서상 두번째 교향곡이지만 5번이라는 숫자가 붙게되었다. 당시 멘델스존 자신은 만족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그의 대표적 레퍼토리로 자리매김 했으니 뒤늦게라도 출판이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종교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교회 답창 '드레스덴 아멘'이 등장하는 1악장을 비롯하여 경쾌한 2악장의 춤곡을 지나 마지막 4악장을 예비하는 3악장의 탄식어린 기도를 읆조리는듯한 현악기의 절절함 또한 놓칠 수 없는게 이 교향곡의 매력이다.
이 곡의 핵심은 종교개혁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젊은 청년 멘델스존의 능숙한 작곡기법으로 표현한 신을 향한 열정과 숭고미가 다채롭고 극적인 관현악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곡을 추천하는 이유는 엄숙하고 경건한 기운이 감도는 성악중심의 오라토리오, 칸타타와는 차별화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루터의 코랄을 마찬가지로 인용한 바흐의 엄숙한 칸타타와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3악장은 다음 악장을 예비하듯 끊이지 않고 4악장으로 연결되는데 4악장부터 감상해도 무리는 없다. 담담하게 신앙고백을 읆조리는 플루트 솔로의 시작은 점진적으로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는 효과적 전개를 위한 포석이다. 바그너의 관현악곡을 연상시키듯 힘찬 관악을 역동적으로 받쳐주는 현악기의 날렵한 움직임 또한 감상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코랄의 대미를 이끌어내는 오케스트라 총주에서 전율을 기대해도 좋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구절이 떠오르는 악장이다.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22-07-22 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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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안현정의 컬쳐포커스
여름도시 베니스에 뿌리내린 한국미술의 흔적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을 가다, 1995~2022”
이태리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 아르세날레(Arsenale)에는 매년 현대미술과 건축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베니스비엔날레로 인파가 북적인다. 1895년 창설된 세계 3대 비엔날레(휘트니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하나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문화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행사로 홀수 해에는 미술전을, 짝수 해에는 건축전을 개최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술전이 한해 밀리면서 짝수해 미술전이 개최(4.23~11.27)되는 이례적인 현상을 겪었다.
1995년 설립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출처 : www.arko.or.kr)
주제전시, 국가관 전시, 부대 프로그램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만큼 비엔날레 기간은 ‘베니스 전체가 다양한 문화페스티발의 도시’로 탈바꿈된다. 한국은 1986년 당시 전시관이 없어 이태리관의 작은 공간을 배정받아 참가하다가 마침내 1995년 26번째로 독립된 국가관을 건립하는 쾌거를 이뤘다. 1995년 한국관 개관 첫 회에 전수천 작가가 특별상을, 1997년 강익중 작가, 1999년 이불 작가가 연속 3회 특별상을 받았다. 1993년 백남준 작가는 독일관 대표로 참여하여 당시 독일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한국관 설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 여성과 반전(反戰)
‘예술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서열을 나누지 않는 개성을 추구한다. 3년 만에 찾아온 국제적 예술행사를 이끈 세실리아 알레마니(Cecilia Alemani; 뉴욕 하이라인파크 예술총괄 큐레이터인 총감독)는 초현실주의 화가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이 쓰고 그린 그림책을 바탕으로 한 ‘The Milk of Dreams(꿈의 우유)’를 주제로 삼았다. 200여명(참여 작가의 90%가 여성)의 주제관 작가들은 신체의 변형, 개인과 기술의 관계, 신체와 지구의 연결을 테마(반전과 평화, 흑인과 비주류에 대한 메시지)로 삼았음에도 전쟁 발발로 러시아 예술가들이 중도 포기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한국 작가로는 정금형과 이미래가 초대됐다.
본 전시와 함께 베니스의 팔라초와 성당, 뮤지엄 등에서 펼쳐지는 위성전시(Collateral Exhibitions)들도 세계적인 대가들의 신작들로 채워져 있어, 전체 비엔날레는 보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의 체류는 기본이라는 말이 나온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미국 여성작가 시몬 리(Simone Leigh)가 ‘흑인 여성의 디아스포라=Sovereignty(주권)’를 선보였고,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은 칠레 출신의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와 카타리나 프리치(Katharina Fritsch)라는 여성 거장에게 돌아갔다.
그 밖에 세계적 패션하우스, 프라다의 베니스 비엔날레 병행전시 와 보테가 베네타의 팔라초 그라시 전시 와 연계된 ‘Dancing Studies’ 후원 등이 주목할 만하다. 그럼에도 인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파키스탄 등 아시아 일부 국가들이 참여하지 못한 점은 차후 ‘아시아 관점의 비엔날레’가 명시돼야할 과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2022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 김윤철의 <나선(Gyre)>
보고시안 재단이 주최한 전광영의 전시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ed)>
제59회 한국관 전시는 이영철 예술감독이 기획을,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매터리얼리티’의 연구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철 설치작가가 대표작가로 참가했다. 혼란스러운 오늘의 현실에 주목한 <나선(Gyre)>은 사물·자연·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재조명한 예술·과학·음악이 융합한 전시로, 작가는 무한한 순환 속에서 벌어지는 물질세계의 소용돌이를 중심주제로 보여준다. 예이츠의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영감을 받아 혼란한 오늘의 상황을 미래와의 경계 속에서 다뤘다. 물고기 비늘처럼 구성된 382개의 셀들이 키네틱 장치에 의해 미묘하게 움직이는 작품으로 우주와 인간의 실존을 연쇄적으로 기록했다.
큰 호평을 받고 있는 베니스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에서 펼쳐진 전광영의 한지 조형작업 <재창조된 시간들(Times Reimaged)>은 시공간의 필연성을 ‘관계 맺음=인연’ 속에서 해석한다. 글로벌한 문화후원단체 보고시안 재단이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 전시(4.21~11.27)로 주최했고,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와 세계적 큐레이터 마누엘라 루카 다지오가 공동 기획했다. 한국적 에너지의 접점인 ‘집합(Aggregation)’을 확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기념비적 전시라는 평이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와 하종현을 비롯해 이건용, 전광영 등 한국미술 대표 작가들의 전시도 개최중이다. 박서보 작가는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베트남 출신 작가 얀 보가 기획한 전시에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작품 등과 함께 참가했다. 하종현 작가는 4월 21일부터 8월 24일까지 팔라제토 티토에서 베비라콰 라 마사 재단 주최로 한 회고전을, 실험미술 선구자로 꼽히는 이건용 전시는 갤러리현대 주최로 4월 20일부터 7월 3일까지 개최한 바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홈페이지에서 러시아전쟁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설립
– 1895년 설립 이탈리아 황제부부의 은혼식 기념
– 1893년에 베니스 시의회가 1895년 비엔날레 개최 발표
* 전시
– 개최시기 : 미술전(홀수년), 건축전(짝수년)
– 참가국 : 평균60여개국 200여명의 작가
– 조직 : 22명의 이사회가 전체 총괄 – 시대표:12명 / 연방정부:10명 / 이사회에서 매2년마다 전시담당 디렉터와 운영담당 디렉터 선임 / 자문위원:16명(베니스시 각계인사)
* 예산
– 베니스시부담:50%+국가부담:50%
- 행사비(본전시+특별전+아르세날레전+전시부대행사)
- 각국가관의 전시는 자국이 부담
* 전시구성 : 본전시(주제전) -특별전(3-4개)
- 아르세날레전(비엔날레 총감독이 작가선정)
- 국가관전(파빌리온식: 국가별 커미셔너가 작가선정)
- 기타 전시관련 행사
* 시상제도 :
- 황금사자상(3개부분-국가관상, 개인작가상, 35세 미만 젊은 작가상), 평생공로상, 특별상(해마다 시상여부 다름)
- 심사 : 국제적인 미술계인사
* 베니스비엔날레 2022 브로슈어 다운로드
https://static.labiennale.org/files/arte/Documenti/brochure-arte-2022-c.pdf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2022-07-15 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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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늙지 않는 영화음악 ‘Top Gun Anthem’ / 탑건: 매버릭
‘범죄도시2’(감독 이상용)에 이어 극장가의 열기를 지속시켜주고 있는 고마운 작품은 ‘탑건: 매버릭’(감독 조셉 코신스키, 2021)이다. 1986년작 ‘탑건’의 후속편이기는 하지만 36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어 시리즈물로서의 홍보효과는 약한 편이었다. 그보다는 가능한 한 CG를 배제한 항공 촬영의 몰입감, 주연 배우 탐 크루즈의 실제 전투기 조종 등이 화제가 되었고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꾸준히 관객들을 모으고 있다.
토니 스콧 감독과 톰 크루즈의 실질적 출세작인 ‘탑건’은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이라도 귀에 익숙할 만큼 좋은 영화음악을 많이 남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한스 짐머가 새로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탑건: 매버릭’에서도 전작에 사용되었던 스코어와 삽입곡들을 다수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영화 초반부터 엔딩 크레딧까지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Top Gun Anthem’은 현대적으로 편곡되어 더 입체적인 사운드로 감동을 증폭시킨다. 과연 명곡은 늙지 않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스코어다.
아쉽게도 1편에서 ‘매버릭’(톰 크루즈)과 ‘찰리’(켈리 맥길리스)가 사랑을 나눌 때 흘러나왔던 ‘베를린’의 설렘 가득한 노래, ‘Take My Breath Away’는 빠져 있다.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하고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한 이 곡을 뺀 것은 하나의 시그널로 읽히는데 1편의 오프닝을 역동적으로 장식했던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 같은 곡을 다시 사용한 것을 보면 액션신과 스펙터클에 무게감을 주고자 했던 연출 의도와 상통하는 선곡으로 볼 수 있다.
각인되는 선율보다는 영화음악도 사운드의 일부처럼 디자인해왔던 한스 짐머가 ‘탑건’의 음악들을 해석하고 편곡한 방식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탑건: 매버릭’은 영화음악 팬들에게 즐거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윤성은의 Pick 무비
복합적 장르에 담긴 사랑의 단순한 본질, ‘헤어질 결심’
최연소로 경감에 진급한 ‘해준’(박해일)은 산 정상에서 떨어져 죽은 남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에게 매력을 느낀다. 서래도 피의자인 자신에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주고 일도 잘 하는 해준이 멋있어 보인다. 두 사람은 묘한 긴장감 속에서 점점 더 가까워지다가 서래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고 유부남도 개의치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마침내’ 그 긴장의 끈도 놓고 만다.
그러나 결국 해준은 서래가 그녀의 남편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음이 붕괴되는 슬픔 속에서 그녀를 떠난다. 13개월 후, 그들은 각자의 배우자와 함께 안개로 유명한 이포의 한 시장에서 조우한다. 서래는 헤어질 결심으로 다른 남자와 결혼까지 했지만 해준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은 범죄 수사물의 외피를 쓴 멜로드라마로 보이나 근본적으로 두 장르를 결합시켜 새로운 장르를 모색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범죄 수사 과정에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서래가 범인인가 아닌가에만 모든 단서가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궁극적 장르는 멜로드라마가 분명하다. 그러나 영화 곳곳에 범죄 수사와 사랑의 공통점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어 있어서 장르를 단정짓기는 쉽지 않다.
‘헤어질 결심’에서 보여주는 수사와 사랑은 공히 집요한 관찰을 낳고 불면증이나 극단적 선택을 유발하기도 한다. 중심 서사와 상관 없이 끼워넣은 것 같은 ‘홍산오’(박정민)의 치정 사건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의 본질이기도 하다. 홍산오는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까지 했어도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걸고 그녀를 지켜준 수배자로 해준에게 검거되기 직전 자살한다. 서래 또한 죽음을 택함으로써 해준의 ‘미결사건’으로 남아 둘의 사랑을 지속시키고 싶어한다. 이처럼 수사와 사랑이라는 두 개의 소재를 끝까지 치밀하게 직조시킨다는 점은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다.
그러나 두 개의 장르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맛을 낸다고는 해도 어렵거나 모호하지는 않다. 안개가 많은 이포를 배경으로 정훈희와 송창식의 노래 ‘안개’가 삽입되고 서래가 초록색인지 파란색인지 애매한 색깔의 원피스를 입기는 하지만 비평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영화의 주제만큼은 명확하다. 이포라는 공간의 주제곡이자 이 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한 ‘안개’는 이명세 감독의 ‘M’(2007)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첫사랑이었던 ‘민우’(강동원)와 ‘미미’(이연희)가 기타를 치며 함께 불렀던 ‘안개’는 미미가 교통사고로 죽고 난 후 민우의 기억 저편에서 계속 아련하게 들려온다. “내가 떠난 뒤에 당신이 아주 괴롭고 아팠으면 좋겠어. 우리가 흥얼거렸던 그 노래 때문에 내가 보고싶어서 가슴을 치고 괴로워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미미의 메시지는 서래가 해준에게 남기는 마지막 대사들과 직결된다.
중년의 사랑도 첫사랑처럼 잊혀지고 싶지 않고 남겨지기 보다는 떠나는 존재가 되고 싶기는 마찬가지다. 품위 있는 남자와 꼿꼿한 여자의 사랑도 본질적으로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어쩌면 이 단순함이 영화의 스타일보다 더 긴 여운을 남길 요소가 아닐까.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22-07-15 0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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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악 Prologue!
한여름의 전통 예술 축제들
7월 초부터 전국이 찜통더위다. 한여름은 공연 비수기이지만 시원한 공연장에서 혹은 야외 공연을 즐기는 피서를 계획해보는 것도 좋겠다. 때마침 전통 공연 예술 기관의 큰 행사들이 올해 7, 8월에 집중되어 있다.
2022 여우락 페스티벌 –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국립극장
지난 7월 1일 개막한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은 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여름 한가운데 자리매김한, 대표적인 우리 음악 축제다. 2010년 시작한 여우락 페스티벌은 매년 새롭게 진화하며 레퍼토리를 확장해왔다. 2022년에는 무려 열두 개의 공연이 달오름극장과 하늘극장, 문화광장 등에서 열린다. 11개 유료 공연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올패스 패키지’는 지난 5월 예매를 시작한 당일 매진됐다. 여우락 페스티벌이 지난 10여 년간 쌓아 올린 저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눈여겨볼 만한 공연으로 공명과 일렉트로닉 밴드 이디오테잎이 함께 만드는 무대를 꼽고 싶다.
지난해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후 호평이 쏟아졌던 이들의 공연을 올해는 야외 문화광장에서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결성한 지 20년이 넘은 국악 그룹과 10년 전 데뷔해 독보적 존재감을 지닌 일렉트로닉 밴드가 뿜어내는 시너지에 흠뻑 빠져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출연진 다수가 함께 꾸미는 합동 공연 형식의 <여우락 Extension>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미 각자의 공연에서 컬래버레이션 무대를 선보인 예술가들이 이합집산하여 어떤 무대를 새롭게 창조해낼지가 관전 포인트인데 구체적인 공연 내용과 출연진이 공개되지 않아 더욱 기대를 모은다.
제4회 대한민국 판놀음 ©국립민속국악원
한편, 전북 남원에서는 지난 7월 6일 개막한 제4회 대한민국 판놀음이 한 달 동안 펼쳐진다. 개․폐막 공연을 제외하고 총 8개의 다채로운 창극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7월 13일 공연하는 <가인춘향>은 사회적 기업인 ‘문화예술조합 섬진강’이 한옥 자원을 활용한 야간 상설 공연으로 제작한 작품으로, 대한민국 판놀음이 펼쳐지는 춘향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는 특별히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여러 버전의 소설 춘향전과 판소리 춘향가를 두루 소재로 삼아 ‘춘향전’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선보이는데, 전통 예술을 소재로 재기발랄한 극 작품을 선보여 온 사성구 작가의 작품이다.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서 출발한 두 편의 공연,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과 <광대가 리골레토>도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판소리 레미제라블-구구선 사람들>은 소리꾼과 고수들이 모인 창작집단 입과손스튜디오가 ‘레 미제라블’ 속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엮어낸 작품이다. 원작의 작품 의도와 내용에 판소리의 ‘토막 소리’라는 개념을 버무려 각색한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광대가 리골레토>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을 재창작한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를 판소리와 정가, 무가 등을 더해 소리극으로 꾸몄다. 공작이 귀족들을 농락하는 데 일조했던 리골레토가 소중한 딸의 파멸을 맞닥뜨리게 되는 비극이 젊은 소리꾼들의 소리를 통해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영남춤축제-춤, 보고 싶다 ©국립부산국악원
부산에서는 지역의 춤을 특화한 영남춤축제가 7월 12일부터 한 달간 이어진다. 첫날에는 ‘영남춤, 올리고 싶다’라는 제목의 특강이 열린다. 토크쇼 <무용담-사무치다>의 매진 사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진옥섭 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이 영남 춤 이야기로 다시 한 번 관객들을 열광케 할 예정이다. 13일에는 석봉스님을 비롯해 김온경, 김진홍, 권명화, 이윤석 등 걸출한 원로 예술가들이 개막 공연에 나서 본격적인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7월 14일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춤 워크숍의 참가 접수가 시작된다. 권명화류 소고춤, 말뚝이춤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조금만 배우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전통 춤을 본고장에서 직접 배워볼 수 있는 기회다. 궁중 춤인 포구락과 박접무, 영남 춤인 진주교방굿거리춤, 통영검무 등 오랜 세월 이어온 전통 춤의 진면목과 이 춤들이 지닌 창작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전통vs창작>, 소극장에서 30명의 춤꾼이 홀로 무대를 채우는 <한국전통춤판>도 우리 춤의 참 멋을 새삼 깨닫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굿음악축제-북녘의 굿과 음악 ©국립남도국악원
전남 진도의 굿음악축제는 올해, 북한의 굿 음악을 소재로 한다. 만구대탁굿과 평안도 다리굿 등이 이북5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북한의 굿을 접할 기회는 사실 흔치 않다. 이번 축제는 7월 15일, 국립국악원 북한음악자료실이 소장한 <평양굿: 다리굿, 잔상굿> 영상의 상영회로 문을 연다. 북한에서 조사한 평양굿의 실상이 담긴 자료다. 이튿날 이어지는 학술회의에서는 황해도 만구대탁굿과 평안도 굿, 함경도 망묵굿 등을 다룬다. 오후에는 함경도 망묵굿과 황해도 만구대탁굿 공연이 야외 공연장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다리굿과 망묵굿은 모두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굿의 일종이다. 지난해 굿음악축제에서 진도씻김굿과 부산기장오구굿 등 한반도 남쪽의 천도굿을 주제로 삼은 바 있다.
유튜브에 남아있는 영상을 참고하면, 남북 굿 음악의 차이를 보다 쉽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1박 2일간 진행되는 굿음악축제는 사전 신청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데, 올해는 사흘만에 마감되었다. 그러나 개별 프로그램에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공연장을 벗어나 달빛 마당에서 관람하는 북녘의 굿과 음악 그리고 여귀산 자락의 밤바람과 멀리서 들려오는 귀성포구 파도 소리로 더위와 시름 모두 씻어내는 휴식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2022-07-08 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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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국내 창작 뮤지컬이 라이선스 뮤지컬로 탈바꿈돼 금의환향하다_뮤지컬 투란도트
해마다 여름이면 뮤지컬로 뜨거운 도시가 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바로 딤프(DIMF)가 열리는 대구광역시다. 지난 2년여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 축제가 올해 16회를 맞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소식이다.
축제에 참여하는 작품들 모두 면면이 반가운 존재들이지만 올해는 특히 개막작이 시선을 끈다. 창작 뮤지컬로 대구에서 사랑받던 ‘투란도트’를 슬로바키아에서 다시 각색해 내한무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대형 공연장의 인기 뮤지컬의 경우 대부분 외국 원작의 작품들이어서 ‘재주는 한국인이 피우고, 돈은 외국 원작자들이 챙긴다’는 곱지 않은 비판의 대상이 되던 우리나라 뮤지컬계가 역으로 공연권을 수출해 다시 우리 무대에서 선을 보이는 금의환향의 사례라 부를 만한 사건이어서 흥미롭다.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뮤지컬 산업의 현재를 반영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마저 든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오페라가 원작이다.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아름답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공주 투란도트와 그녀를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진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다. 오페라에서는 공주와 결혼하려면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과제가 등장한다. 문제를 풀면 사랑을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운명적 상황이 동양 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호기심과 맞물려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흔히 ‘공주는 잠 못 들고’로 잘못 알려진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는 원래 ‘아무도 잠들지 말라’는 의미다. 내기에서 이기지 못해 화가 난 투란도트 공주에게 칼라프 왕자는 자신의 이름을 건 마지막 내기를 하게 되고, 그래서 새벽의 약속된 시간 안에 왕자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진 그 누구도 잠들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은 명을 달리한 이탈리아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로 글로벌한 인지도와 사랑을 받았었다.
뮤지컬의 줄거리는 오페라와 뿌리를 같이 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조금 다르다. 막이 오르면 전쟁에 패한 티무르 왕이 아들 칼라프 왕자와 어린 여시종 류와 함께 등장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을 헤매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닷속 왕국인 ‘오카케오마레’.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칼라프는 우연히 아름다운 공주 투란도트를 보게 되고 한눈에 반해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고 싶다는 야망을 갖게 된다.
문제는 투란도트 공주가 어머니의 저주로 인해 단 한 번도 사랑을 경험해보지도 혹은 느끼지조차 못하는 존재라는 것. 오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주는 자신과 결혼하려면 목숨을 걸고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구애했던 수많은 왕자들은 단 한 개의 수수께끼도 풀지 못한 채 그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칼라프 왕자는 과연 미궁의 수수께끼를 풀고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게 될까. 그리고 투란도트 공주는 칼라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왕자를 짝사랑하는 시종 류는 끝까지 왕자의 이름을 비밀로 하고 자신의 목숨으로 왕자를 지켜낼까. 뮤지컬 ‘투란도트’를 통해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뮤지컬에서는 오페라가 아닌 뮤지컬만의 음악과 시도들이 등장한다. 전술했듯이 이야기 배경은 바닷속 가상의 세계인 ‘오카케오마레’로 바뀌었고 노래들도 모두 새롭게 변화됐다. 제작진의 면면을 보면 더욱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김종욱 찾기’ ‘형제는 용감했다’ ‘싱글스’ 등으로 유명한 장소영 음악감독과 ‘로미오와 줄리엣’ ‘애니’ ‘소나기’ 등을 만든 유희성 연출이 우리말 초연 무대에서 콤비를 이뤘기 때문이다. 제작은 대구에서 이뤄졌지만, 지역의 작품이라기보다 대한민국 정상급 제작진이 참여해 빚어낸 공동의 산물이라 인정할 만하다. 배우들의 연기나 무대,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무대 배경 등도 수준급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특히 개인적으로 제일 크게 박수 보내고 싶은 것은 음악적 완성도다. 요즘 가장 바쁘다는 장소영 작곡가의 세심한 배려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눈앞이 침침해... 하지만 뚜렷해져, 저 먼 곳은”이란 가사가 등장하는 티무르의 노래나 “오직 나만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할 수 있다는 4중창은 꽤나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감상을 남긴다. 중장년층 관객이라면 절로 한숨마저 쉬게 만드는 절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현대 문화산업 콘텐츠들이 지니고 있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매력은 이번에 내한한 슬로바키아 버전의 뮤지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페라에서 기인한 중국풍의 이미지 대신 현대적인 실험과 도전의 정신이 가미됐다. 덕분에 칼라프 왕자는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등장하고 여시종 류는 너댓개의 가방을 이고 지고 다니는 모습으로 구현된다. 요즘 관객들에게도 적절히 소구될 수 있는 재해석의 묘미가 색다른 맛을 잉태해낸다. 아크릴로 치장된 세트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적막한 바닷속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은 황량한 투란도트의 마음같은 차가운 푸른 빛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연극적 요소를 한층 강화한 극 전개는 압축되고 축약됐던 우리말 원작보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하고 설명적인 연극적 틀거리로 대체됐다. 붉은 넥타이와 흰 양복 차림의 피에로들은 서양 극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광대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무엇보다 같은 뿌리에서 다른 열매를 맺는 유연한 사고와 예술적 실험의 결과물이 무대를 즐기는 재미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올해 딤프에는 영국산 주크박스 뮤지컬인 ‘더 콰이어 오브 맨’, 새로운 창작 뮤지컬인 ‘산들’과 ‘인비저블’, ‘봄을 그리다’, ‘브람스’, ‘메리 애닝’ 그리고 초기 개발단계인 독회(Reading) 공연들과 대학생 뮤지컬 작품들이 선을 보인다. 초기 개발단계의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재미는 물론 딤프가 지닌 흥미로운 속성이지만 역시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국적의 작품들을 축제기간에 만날 수 있다는 비교불가한 이 축제만의 묘미다. 코로나 19로 잠시 멈췄던 대구 뮤지컬 축제는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계의 입장은 물론 지역의 균형발전이나 특화 전략이라는 측면에서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관계자들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2022-07-08 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