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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0> 김삼의당(金三宜堂) <제8話>
꿈은 이루어져야 아름답고 후세에 멋지고 훌륭한 역사가 된다. 그것은 개안이나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삼의당의 화촉동방에서 잉태된 화려한 꿈이 아름답게 실현되리란 기대가 점점 멀어져 가는 상황이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상공업의 번성으로 상업자본의 축적이 이뤄져 중인(中人)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양반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소위 신분세탁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때문에 실력 없는 기존의 사대부들은 3대에 걸쳐 벼슬을 하지 못하면 향반(鄕班)으로 신분이 하향되고 재력 있는 중인들은 속속 사대부 대열에 들어왔다.
상전벽해 되는 시대다. 삼의당이 삶의 모든 것을 받쳐 양가의 영광스런 옛 영화를 부활시키려는 때가 바로 그런 시대적 배경이다. 양반들의 상징인 족보도 이때 양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사대부가 되어 상민(常民)의 신분을 벗어나면 군역 등 각종 노역에 징발되지 않는 위치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인 등 상업자본이 왕성하게 발달한 조선말기인 18세기엔 비정상적으로 족보를 만들어 양반이 되는 사례가 비일비재 했었다.
이 같은 세태에 영의정 등 고관대작에 올랐던 경반(京班)들이 벼슬을 몇 대에 걸쳐 하지 못하여 향반으로 신분이 하향되었을 때 부귀영화를 누렸었던 과거의 향수로 잠을 이루지 못했었을 것이다.
삼의당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을 분위기다. ‘봄바람이 큰 길 위에 불자/ 백마가 꽃잎 밟으며 달리네./ 복사꽃 오얏꽃 다투어 피니/ 집집마다 봄꽃이 가득하구나./ 한식 날 동풍 불며 비가 내려서/ 꽃향내가 큰길가에 깔렸구나./ 자류마 함부로 밟지 않으니/ 떨어진 꽃잎을 아껴서겠지.’ 《큰길》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을 성취하려는 야망을 기대하는 사람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뜬 눈으로 밤을 새기가 예사다. 지금 삼의당의 심사가 딱 그러하다. 더욱이 성리학으로 똘똘 뭉친 남성 중심 시대에 여성이 야망을 핀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뛰지 않고 남편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느껴야 하는 처지에선 석달 열흘 통곡을 해도 속이 풀리지 않을 한(恨)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조선시대 여성들이 처해 있었던 현실의 한계였을 게다. 남녀칠세부동석과 삼종지덕의 굴레에서 인형처럼 살아야 할 숙명이지만 그 운명을 벗어 내려는 피눈물 나는 투쟁적 삶의 현장이 삼의당의 삶이다. ‘하늘 끝 가신님은 소식도 없네./ 사립문은 언제나 쓸쓸히 닫혀 있네./ 긴긴밤 오동잎은 흐느껴 울고/ 처마 끝에선 낙숫물 소리만 나네./ 처마 끝에 물 듣는 소리/ 밤새도록 창 너머서 우는 듯해라./ 금병풍 속에서 혼자 베개를 베고/ 차디찬 등잔 아래 잠 못 이루네.’ 《가을밤 비가 내리네.》다. (시옮김 허경진)
삶이 무섭다. 낮엔 일에 치여 잠자리에 들거나 일하다 허리가 아파 잠시 허리를 펴고 명징한 가을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엔 문득 잊고 있었던 사람이 떠오른다. 화촉동방에서 큰 꿈을 공동으로 세우고 산사에 또는 한양에 있을 사랑하는 이를 떠올릴 것이다. 삼의당은 당연히 남편 하립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뜨거운 살을 섞고 일심동체가 된 부부일지라도 떨어져 있으면 강물처럼 생각이 같이 흐르지 않는다.
지금 삼의당과 담락당(湛樂堂·하립 호)의 관계가 꼭 그러하다. 금지옥엽 곱고 예쁘게 자라 향반 집으로 시집와 온갖 고생을 하며 옛 영화 부활에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하립은 생각이 좀 다르다. 우선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선녀같이 예쁜 아내가 그립고 보고 싶은 욕망이 앞서 책장을 넘겨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아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불타는 젊은 욕망이다. 사실 여자의 야심과 남자의 야망은 같은 듯 다르다. 여자는 긴 호흡이 이어져 분위기까지 조성된 안정된 꿈이 이뤄지길 희망한 반면 남자들은 순간순간 충동되는 감정을 처리가 돼야 긴 호흡이 가능한 동물의 왕국에서나 벌어지는 육식동물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자는 육식동물을 조율하는 입장에서 초식동물로 사내들의 충동적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체질적 한계가 어른거린다.
삼의당과 하립의 관계가 그러했으리라... 아내의 소개로 한양에 올라와 심상규(沈象奎) 집에 기식하면서 공부를 했으나 번번이 과거에 낙방하는 것도 순간순간 충동(아내 생각)으로 공부는 사실상 하는 척만 했을지도 모른다. 욱일승천하는 신진들의 기개에도 밀렸으리라...
심상규의 집엔 책이 많기로 조선에서 으뜸이었으나 하립에겐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삼의당이 심상규를 소개했을 때는 깊은 뜻이 있었으나 하립은 그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심상규는 한 번에 다섯줄을 읽는 총명함을 가졌던 명재상이었다.
삼의당과 하립의 화촉동방에서 탄생시킨 위대한 영광의 부활은 끝내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가세는 더욱 기울어졌다. 19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으나 남원의 봄 풍경은 그래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가을에 과거보러 한양으로 올라갔던 하립은 달랑 괴나리봇짐 하나를 메고 남원 집으로 내려왔다.
이듬해(1802) 봄이다. 남원의 봄은 화창하다. 동백·철쭉·진달래 꽃 들이 마치 금의환향이 아닌 하립을 위로하듯 어느 해 봄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삼의당도 2년 만에 만나 남편에게 집안일은 숨기고 즐겁고 뜨겁게 맞았다.
하립은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에 집에 도착하였다. 삼의당의 모녀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초라한 모습으로 들어오는 하립을 금의환향하는 주인공처럼 맞았다. “아버지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반가워요!” 맏딸 하경(河敬:가명)의 반기는 모습이다. “경이가 어느새 숙녀 티가 나는구나! 시집가야겠구나...” 부녀의 대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삼의당은 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참았던 회한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왔던 것이다.
2017-09-2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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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9> 김삼의당(金三宜堂) <제7話>
해가 뉘엿뉘엿 북악산으로 넘어갈 무렵 하립이 심상규(沈象奎:1766~1838) 집 대문 앞에 닿았다.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비록 과거를 준비하고 있는 향반 주제지만 양반인 냥 주인을 찾았다. 말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문이 열렸다. “게 누구이기에 이렇게 거창하게 주인을 찾느냐?” 하인이 아닌 두실이 직접 나왔다.
서재에서 전국 정세에 대해 골몰하다 정원으로 나와 잘 익은 석류를 감상하고 있을 때 우렁찬 하립의 주인 찾는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어서 오게나 내 오늘쯤 자네가 오리라 생각했었네! 내가 두실이네...” 하립이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두실은 사랑채가 아닌 서재로 인도 하였다.
하립은 두실의 넉넉한 풍채와 고고한 인품에서 풍겨 나오는 위엄과 방대한 책에 압도 되었다. 중국의 4대 기서인 《삼국지》·《금병매》·《서유기》·《수호지》는 물론 제자백가 서책들과 각종 고서를 비롯한 지금까지 들어보지도 못했었던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동서남북 네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이다! 대충 씻고 저녁을 하시게... 나도 안채에 잠시 들렸다 나올 테니 저녁 먹을 준비를 하시게....” 하립과 두실은 세 살 밖에 차이가 없다. 두실이 세 살 연상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분은 한양과 남원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두실은 안에 들어가 저녁을 특별 주문하였다. 하립의 아내인 삼의당의 간곡한 부탁도 있지만 윗대 선조들 사이에도 각별한 우의가 있었다. 하지만 심씨 가문은 한양에서 계속 경화족(京華族:한양에 거주하는 지체 높은 사대부)의 영광을 누리고 있으나 하씨 집안은 그렇지 못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 같은 상황에서 삼의당과 하립이 한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 결혼을 하였다. 삼의당은 조의제문으로 유명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예다. 지금 탁영의 후예가 옛 영화를 재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어 두실은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고 싶은 것이다. “자 우리 한잔 하세! 자네와 나는 나이 차이도 별로 없네. 아마 내가 자네 둘째 형인 이락당 하준과 나이가 엇비슷 할거야! 형처럼 생각하고 당분간 내 집에 있으면서 과거에 열중하게... 방은 서재 옆에 있으니 그곳에 유숙하면 큰 불편은 없을걸세...” 주거니 받거니 대작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멀리 오느라 피곤할거야... 오늘은 푹 쉬고 내일은 나와 북촌(北村)과 육조(六曹)거리를 구경하세! 조선의 심장 중에 심장이야. 이 두 곳에서 조선팔도를 움직이고 있는 걸세!” 술을 마실 때의 차분한 선비 모습은 조선팔도를 움직이는 심장부 중 심장부라고 말할 때는 난세(亂世)를 휘어잡는 영웅의 사자후로 변모하였다.
하립은 서재 옆 아담한 방에 누웠다. 두실이 독서하다 피곤하면 잠시 눈을 붙이는 방이다. 벽에는 신육복의 미인도가 걸려있다. 미인도를 보자 술기운의 하립은 아내 삼의당이 더욱 간절하였다. 갑자기 미인도에 삼의당이 나타났다.
하립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어 두실이 사랑채가 아닌 서재에서 저녁 겸 술을 마신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1만권의 책으로 위엄을 주려 한 것인지 책을 보고 하루라도 빨리 과거에 등과하여 한양의 경화족 복귀에 자극제인지를 저울질 하고 있다. 그는 결국 아내 극성의 후자 쪽에 무게를 두었다.
하립은 두실이 건넨 아내의 편지를 손에 들고 쉽게 뜯지를 못하고 있다. 창문으로 교교한 달빛이 들어와 손 위 편지에 멎었다. 호롱불을 켜지 않았으나 달빛으로 편지를 읽을 수 있는 밝음이다. 북악산에서 들려오는 두견새 소리가 가슴을 흔든다. 고향의 두견새 소리와 다르게 들려서다. 시골 두견새 소리와 한양 두견새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두견새 울음소리에 하립은 순간적으로 손에 들린 아내의 편지 뜯는 것을 잊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쓰여 있는지 하립은 가슴부터 뛰었다. 보나마나 내용이 뻔해서다. 삼의당은 하립과 한날한시에 태어났으나 결혼 후 10년 쯤 연상의 여인이 되었다. 두 집안의 빛났던 영광을 재현하는 것에부터 자녀교육과 집안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진두지휘 하였다. 심지어 부부관계도 그녀가 선생이 되었다.
그래서 하립은 삼의당 앞에선 큰누나에게 막내 동생처럼 행동해야 마음이 편하다. 지금 손에 든 편지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책 읽어도 모름지기 읽기를 좋아해야지/ 배우지 않으면 사람 노릇 못하네./ 십년동안 등불 앞에 나그네 되면/ 조정에 이로운 손님이 되리.’《학문을 권하며 읊다》다.
역시 삼의당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이 보이지 않는다. 여장부다. 초지일관 화촉동방에서 시작된 옛 영화 르네상스를 흔들림 없는 추진 목표다. ‘목동의 피리소리 마을마다 퍼져 나가고/ 나무꾼 노래 소리도 골짜기 마다 들려오네!/ 산머리에 해가 지려하자/ 안개서린 숲이 멀리 아득하구나!/ 어디선가 피리소리 한가락 들려오니/ 아마도 목동들이 돌아오는 게지’ 《목동의 피리소리》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삼의당은 목동들이 피리 불며 소떼들을 몰고 마을로 오듯 남편 하립이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금의환향하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을 것이다. 삼의당은 아마 꿈속에서 남편의 금의환향 모습을 밤마다 봤을 게다.
하립은 떨리는 손으로 삼의당의 편지를 뜯었다. ‘심대감 댁의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으신지요? 집 떠나면 고생이라 하지 않던가요? 집 걱정은 제 몫이니 걱정 마시고 얼마 남지 않은 과거에 전념하세요... 참 금년은 풍년이 들 듯 하네요... 풍부한 일조량으로 벼가 잘 영글었어요... 그리고 당신이 셋째 아버지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떠나던 날 짓궂게 괴롭힌 날이 공교롭게도 배란기였던 거예요... 아무리 좋아도 남의 집은 남의 집이에요. 부디 몸 건강하세요. 당신의 아내 삼의당 拜’
2017-09-20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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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8> 김삼의당(金三宜堂) <제6話>
집을 떠나 한양으로 가는 하립의 발길은 한강에 이르자 가벼워졌다. 지난 번 과장에서 떨어졌던 선비들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한심하기도 하지만 자기와 같은 처지의 향반이 하나둘이 아니란 것에 다소의 위안이 되어서다.
하립은 한양에 올라가면 아내 삼의당이 소개해준 1만권의 장서가인 심상규(沈象奎:1766~1838)의 집에 유숙하며 공부하게 되었다. 심상규는 노론의 거두로 북학파(北學派)로 이용후생을 역설하는 실용주의자다. 하립은 8년 동안 고향과 한양을 오고가는 사이에 북학파의 주요 인물들과 교류도 하게 되었다.
북학은 이용후생지학(利用厚生之學)이라고도 하며 18세기 실학사상 중 청나라 문물을 수용, 농업과 상공업을 발달시켜 민생안정과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것이다. 홍대용·박제가·박지원·유득공 등이 주장하여 북학파 또는 중상학파와 이용후생학파라고도 하였다.
하립의 집안은 두실(斗室:심상규 호)이 선조 때 잠시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두실은 정조가 붕어한 뒤 신유년(1801) 정치 파동 때 채지영 등의 무고로 홍원과 남원에 한때 유배되었을 때 향반의 신분이었으나 영의정까지 지낸 하연(河演)집안이란 내력으로 자연스럽게 교통이 이루어졌을 게다.
남원은 여인들이 엮어낸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우선 춘향과 이몽룡의 흥미진진한 애기다. 춘향전은 영조(英祖:1694~1776)시대에서 순조(純祖:1790~1834)시대가 시대적 배경인듯하며 장소는 전라도 남원이다.
남원은 예향의 고장인 동시에 스토리텔링의 최적지다. 지금은 삼의당과 하립이 주인공이다. 춘향전의 실제 주인공으로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17591824)와 남편 서유본(徐有本)이 있다. 빙허각이씨 아버지는 평양감사를 지낸 이창수이며 어머니는 문화 유씨다.
빙허각이씨는 15세에 서유본과 결혼했다. 그들은 한시(漢詩)로 대화를 할 정도로 학식이 높았다. 빙허각은 남편 서유본 보다 3살이 위인 연상의 여인이다. 그녀는 남편이 공부만 열심히 하여 가문의 옛 영화를 부활시키기 위해 누에치고 베를 짜고 백합주를 손수 담아 남편의 기를 살려주어 흥을 돋워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빙허각은 아버지의 둘째부인 문화 유씨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소학을 익혔으니 그녀의 총명함은 시댁에서조차 감탄을 할 정도였다.
이처럼 남원엔 판소리의 고장과 예향(藝鄕)의 품격과 역사를 갖고 있으며 전통 또한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아마 삼의당이 조선이 아닌 유럽에서 남자로 탄생했다면 바이런과 키즈, 그리고 셀리 같은 시인들도 감탄을 아끼지 않을 시인이 됐을 것이다. ‘교산에 들어 앉아 문을 닫고서/ 새벽까지 글을 읽으시겠지요./ 악양지 공부는 이미 넉넉하고/ 두자미(杜甫 문장비유) 학업도 다 마치셨지요./일찍이 선대 유업을 이어 받았건만/ 이름 세우는 게 어찌 이리도 늦으실까/ 이듬해 봄빛이 찾아오면/ 다시 낙양으로 향하시겠지요.“ 《산에 들어간 낭군께 부치다.》다.
그랬다. 삼의당은 수년째 남편 하립의 등과를 학수고대했으나 번번이 낙방하였다. 그러나 삼의당은 실망하지 않고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을 팔아 가사에 보태고 남편의 학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머리까지 잘라 팔았다. 여인에게 머리는 왕조시대 정조에 버금가는 상징적 대상이었으나 남편이 등과하여 가문을 일으키는 데에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삼의당은 아마 여자도 과거를 볼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응시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성리학을 주제로 하는 과거는 남성들의 독무대였다. ‘떨어진 꽃이 뜰에 가득하지만/ 아이야! 잠시 쓸지 마라라./ 조각조각 남은 봄이 흩어진 거니/ 하나하나 꽃과 풀로 점 찍힌 거지/ 마루의 제비가 차고 올라가거나/ 산의 새가 물고 날아가겠지./ 사랑스럽고 아쉬워 실컷 보아도 싫지 않으니/ 사창의 발을 빨리 걷어야겠네.’ 《낭군을 모시고 떨어지는 꽃을 보며 읊다.》다. (시옮김 허경진)
여자는 역시 여자다. 아마 집 주위엔 살구꽃·벚꽃·개나리·오얏꽃·진달래 등 온갖 봄꽃들이 제각각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벌 나비들을 유혹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화창한 봄날에 자연의 이치에 따라 봄꽃들이 만개하여 벌 나비들은 이 꽃 저 꽃을 찾아 마음껏 희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잊고 있었던 남편을 문득 떠올렸을 새댁의 속내일 터다.
여자와 남자가 결혼하여 한 가지 목표는 예나 지금이나 부귀영화다. 그리고 낮엔 그 목표를 향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밤엔 한 이불 속에서 숨겼던 부위를 서로 어루만지며 뜨거운 밤을 보낸다. 보통 결혼한 부부의 낮과 밤의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삼의당과 하립은 결혼 초부터 상대방의 속살을 있는 대로 알기도 전에 목표를 위해 헤어져 있어야 했다. 양가가문의 옛 영화를 재현하자는 화촉동방의 약속 때문이다.
화려한 꽃들에 벌 나비들이 희롱하며 날아드는 것과 발정난 개들이 흘레붙는 것을 보고 난숙한 여인의 사내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원초적 생리일 터다. 화촉동방의 숨이 멈출 듯한 뜨거운 살을 섞은 운우지락이 번개처럼 떠올라 허벅지를 꼬집고 다리를 비비꼬며 밤을 지새는 날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성리학의 사회인 조선을 뒤흔든 섹스스캔들은 유감동과 어우동이 대표적 사례다. 유감동은 세종 시대이며 어우동은 성종 통치 시대다. 두 임금은 모두 성군으로 칭송 대상이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스 후처 황후 메사리나는 다음증(多淫症)환자다. 이 시대 사람들은 하루에 5~6회 섹스가 정상이라고 생각했었다나... 16세기 르네상스 속담에 1회는 시식(試食), 2회는 신사의 예의, 3회는 숙녀의 의무, 4회는 아내의 권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요조숙녀인 삼의당이 행여 그런 사랑을 하립에게 희망하지야 않았겠으나 남녀 간의 성정은 위와 같은 속성도 있었기에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의 고전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2017-09-13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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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7> 김삼의당(金三宜堂) <제5話>
화촉동방보다 더 뜨거웠던 방은 동창이 밝았는데도 인기척이 없다. 삼의당과 하립의 방이다. 며칠 전에 한양에서 내려와 오늘은 다시 산사로 들어가기 위해 끔찍이 사랑한 삼의당과 헤어져야 하는 날이 밝았다. 삼의당은 부부관계를 하고 남편이 잠들자 바람처럼 방을 빠져 나왔다. 남편이 몇 달을 한양에서 지낼 때 입을 옷 등을 준비가 덜 되어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다.
하립은 그것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다. 몇 달을 참았던 욕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방문이 열렸다 닫혔다 할 정도로 심하게 코를 골며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삼의당도 몸이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첫날밤 이후 처음으로 호되게 시달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싫지 않았고 항상 아련히 기다렸었던 것으로 다가와 부부가 척척 호흡이 맞았던 것을 삼의당은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까지 나왔다.
그것이 부부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입신양명의 꿈이 하루 속히 이루어져 하루라도 빨리 일년 365일 한 이불속에서 뒹굴었으면 하는 생각이 갑자기 소름이 끼치도록 목말라졌다. 삼의당은 속으로 나도 여자임엔 틀림이 없었구나 하며 대책 없이 날뛰는 욕망을 조용히 다독이었다. 남편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조선 말기 향반들의 삶의 모습이다.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주는 좋은 직업은 2~3천여 개에 불과한데 학통에 붙어 거웃거리는 선비들과 논공행상에 매달린 이들과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 등에서 공을 세운 이들까지 벼슬길에 오르려 아귀다툼이다.
하립과 같이 향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입신양명 파들도 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다. “또 왔어! 이번엔 꼭 등과해야지...”라고 겉으로라도 덕담을 해주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네 놈은 이번에도 뻔한데 또 왔어?’ 하고 아예 무시하는 이도 있다.
그럴 때면 하립은 당장 짐을 챙겨 고향으로 달려가려 할 때마다 아내가 앞을 가려 참고 또 참았다. ‘스물일곱 살 아내와 남편/ 몇 해나 긴 이별을 했던가요./ 올 봄에도 장안으로 가신다니/ 두 뺨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르네요./ 늙은 말은 밤새도록 여물 먹었는데/ 나그네 길 떠나는 건 왜 이리 더딘지/ 몽당치마 어린 여종이 부엌에 와서/ 기장밥을 새벽에 벌써 지었다고 아뢰네요./ 원앙금침 잠자리에 새벽닭이 일찍 울어/ 천리 먼 길 낭군님의 짐 보따리 차리네./ 늙은 종은 문 열어 말 끌고 나가 부싯돌로 불붙여 담배 태우네.’ 《서울(한양)에 가시는 낭군께 드리다.》다.
삼의당의 두 눈에선 소낙비가 쏟아지듯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밤새 떡방아를 찧고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 아내의 눈물을 보자 하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먼 윗대 영의정 할아버지 하연(河演:1376~1453)이 비몽사몽에 나타나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향반에 머물러 있으려느냐?”고 야단 겸 분발하라고 사라졌다.
아내가 어젯밤에 따라준 술잔에도 하연 할아버지 모습이 언뜻언뜻 비쳤다. “그만! 그만 하시오. 내 곧 당장 한양으로 떠나야겠소... 친구와 약속한 것을 깜박 잊고 잊었소!” “아니에요 서방님! 시험날짜는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하루 더 쉬고 가셔도 넉넉하지 않을까요?” 삼의당은 남편 하립이 친구와 약속을 깜박 잊어 지금 당장 떠나야겠다는 말이 자신이 권주가까지 부르며 장도에 오르는 자신을 위함에 미안해하는 말이란 것을 아내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어젯밤의 뜨거운 운우지락을 화촉동방 이후 처음이라 한 번 더 기쁨을 누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도 하였다. 여자는 여자의 세계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의식적으로 지성적 행동이 필요하여 때와 장소에 따라 그리고 대상에 따라 지성적 판단에 의한 주인공이 되지만 여성 본연의 위치로 오면 역시 여성적 일 수밖에 없다. ‘성남의 밭두덕에서 뽕 따는데/ 곱디고운 흰 손이 어른거리네./ 젊은이의 휘둥그레 놀란 눈/ 바라보며 부러 오래 머뭇거린다.’ 《밭두덕의 뽕나무》다. (시옮김 허경진)
여자의 본심일 게다. 남편 하립이 과거 공부한다고 산사에 있다 한양 길에 오르기 위해 집에 들려 며칠 쉬는 사이에 부부의 뜨거운 밤은 짧디 짧다. 열여덟 살에 부부의 연이 되어 화촉동방의 뜨거운 살을 섞은 향기로운 체향(體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초야에 세운 입신양명을 위해 헤어져 살았다.
지금 또 헤어져야 할 순간에 삼의당이 한양으로 떠나 갈 남편을 위해 권주가를 불렀다. 향반으로 사회적 신분이 떨어지긴 했어도 그녀는 포은 정몽주의 문인 정우(鄭寓)의 딸이다. 그런데 지금 기방(妓房)에서 기녀가 찾아 온 한량을 위해 부름직한 권주가를 열창하였다. 여인의 한이 맺힌 권주가다. 똑같은 노래의 가시일지라도 장소와 대상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삼의당의 권주가는 입신양명을 학수고대 하는 처절하고 눈물겨운 노래다.
하립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루 더 아내와 뜨거운 운우지락을 즐기고 이튿날 한양 길에 올랐다. 발길이 천근만근이다. 과거는 시간이 흘러 세월의 무게가 쌓일수록 점점 더 자신이 없어졌다.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자신이 더 붙어도 신통치 않은 상황에 아내의 그리움이 점점 더 커져 책을 펴 놔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아내의 성화에 떠밀려 한양 길에 올랐으나 결과는 뻔해 보였다.
몇 년 전에 본 얼굴들이 떠올랐다. “자네도 또 왔군! 큰 꿈 버리고 이왕 왔으니 한양구경이나 실컷 하고 요릿집에 가서 몸이나 풀고 내려갑시다.” 수차례 떨어진 향반 자제들의 푸념이다. 하립도 아마 이들 사이의 한 인원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는 소론이 득세했던 영조시대다. 영조는 사색당파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그 유명한 탕평책을 썼다. 그때 나온 음식이 탕평채였다. 당시 당파의 싸움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그때 괜찮은 직업은 2~3천개에 불과했다니 쟁탈전이 오늘날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소위 지식인 그룹인 학파로 모였던 인재들은 이해가 맞아 떨어진 붕당을 이뤄 당파가 되었다.
2017-09-06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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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6> 김삼의당(金三宜堂) <제4話>
진양 하씨 집안은 영의정의 후예라고 내세우긴 하지만 그건 먼 조상의 얘기에 불과하다. 7대조의 교리(校理:홍문관 정5품) 벼슬 현달로 끝이 났다. 그나마 세거지인 안산에서 남원으로 낙향한 후 증조부 이래로는 벼슬길과는 멀어졌다. 하씨 집안이 평민으로 몰락하지 않으려면 하립의 대에서 기어코 등과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삼의당의 친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삼의당의 남편 하립의 등과로 출사(出仕)의 꿈은 기울어진 친정집 뜨락에도 따뜻한 봄볕이 쏟아지길 기다린 야무진 야망이 도사리고 있다. 새색시 독수공방은 그처럼 두 집안의 운명이 그녀의 가녀린 양 어깨 멍에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시험을 치러 어사화를 머리에 꽂고 마을을 휘돌아 위세를 떨쳐야 할 주인공은 아내 삼의당처럼 심정이 절박하지 않다. 몸은 산사(山寺)에 있어도 마음은 삼의당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펼쳐 몇 장을 넘기지 못하여 아리따운 삼의당의 곱고 항아(嫦娥:달속의 전설의 선녀)같은 자태가 책장을 덮어 더 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입신양명의 꿈을 학수고대하는 삼의당이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독수공방을 극복하는 심정을 알 리가 없다.
담락당(湛樂堂) 하립은 오늘의 상황이 삼의당 같이 절박하지 않은 것이다.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지 않았던가! 지금 하립의 입장이 딱 그러하다. 사랑하는 아내 삼의당과 비단 같은 살을 비벼대며 뜨거운 입김을 토해내는 정사장면 문득문득 눈앞을 가려 끼니가 어려운 집안 사정은 염두에도 없는 것이다. ‘얇은 적삼은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데/ 일 년 중 오늘밤 달이 가장 둥글구나./ 낭군님께선 옷 보내주기를 기다릴 텐데/ 힘들여 다듬이 질 하자니 밤이 깊어가네.’ 《옷을 다듬이질 하며》다.
지금은 옷이 지천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옷은 일일이 여인의 손길이 가야했다. 제조에서 재단에 이르기까지 여인의 손길이 가지 않으면 남자들은 의관을 제대로 갖출 수가 없었다. 삼의당의 친정이 향반으로 지위가 하향되어 있었어도 삼의당이 밥 짓고 설거지까지 하지는 않았다. 이제 삼의당은 출가외인 신세다. 친정보다 몸 담고 있는 시집이 더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시집온 후 뼛속까지 하씨 집안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이 과거를 통해 입신양명하면 시집은 물론 친정까지 빛을 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된다는 옛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남편의 사회생활도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랐듯이 조선시대에서 신분의 격침도 여자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하씨 집안의 환경은 꼭 그런 것도 아닌듯하다. ‘달밤에 함께 꽃구경하며 꽃과 달과 당신이 있으니 우리집 같은 곳은 세상에 다시없을 것’ 하립이 이처럼 아내에 깊은 사랑을 표시했으며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긴 하나 야심만만하거나 성취욕은 아내인 삼의당에 미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아내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입신양명의 작전으로 공부 하러 간 산사와 과거 보러간 한양에서 하립은 끊임없이 그리움과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그립고 슬픈 생각이 들 때면 당신의 얼굴을 보듯 보내온 글들을 읽는다.’라고 애절한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삼의당은 그럴 때면 어미가 철부지 아들을 달래듯 편지로 독려와 미래를 얘기하며 다독였다. ‘여자들은 여려서 마음이 아프기 쉬우니/ 그리운 마음 들 때마다 시를 읊지요./ 대장부는 바깥일에 힘써야 하니/ 고개 돌려 규방 속은 생각하지 마세요.’ 《서울계신 낭군께》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삼의당은 여장부다. 남편 하립에겐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다스릴 터이니 당신은 열심히 공부하여 장원하면 더욱 좋고 등과하여 끊어진 사대부의 맥을 다시 이어 달라는 애절한 호소다. 하지만 하립은 삼의당의 뜨거운 야망의 절박함 같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아니었다.
과거를 십여일 앞둔 어느 무더운 여름밤이다. 과거에 몇 번 실패했으나 포기할 수 없는 양가의 유일한 희망이 하립의 양 어깨에 달렸다. ‘당신께 술을 권하오./ 당신께 권하니 당신은 사양 마오./ 유령과 이백이 모두 무덤의 흙 되니/ 한잔 또 한잔 권할 이 뉘리오./ 당신께 술을 권하오/ 당신께 권하니 당신은 더 드시오./ 인생의 즐거움은 얼마나 가랴./ 나 당신을 위해 칼춤을 추려하오./ 당신께 술을 권하오./ 당신께 권하니 당신 실컷 취하오./ 부질없이 상머리의 돈 지키긴 싫소./ 오래오래 눈앞의 술잔 대하고 싶소...‘ 현모양처인 삼의당이 과거보러 한양으로 떠나갈 남편 하립에게 애틋하고 파격적인 밤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박제(剝製)되지 않은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으나 남자의 자존심을 최대한 살려준 술상 머리다. 그리고 질펀한 방사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이 화촉동방의 기분이 채 가시지 않은 신혼부부다.
여름이라 미끈덕 거리는 신혼부부 욕정은 끊임이 없다. 이제 남편이 훌쩍 한양으로 떠나면 독수공방은 다시 시작된다. 이성이 욕망에 밀려 나갔다. 여인의 욕망은 사내를 배 위에서 밤새 내려놓지 않았다.
한미한 향반 집에 술이 넉넉할 리 없다. 아마도 낙방한 낭군이 낙향하여 다시 공부하며 등과할 때까지 도전을 위해 삼의당은 시아버지 몰래 밀주를 마련했으리라... 권주가(勸酒歌)를 들으며 생전처음 칼춤까지 춘 아내의 가슴 아픈 입신양명의 야망에 물러설 수 없이 또 다시 괴나리봇짐을 지고 동창이 밝자 한양 길에 올라야 한다. 천근만근의 발길이다.
과장(科場 )에 하도 여러 번 나타나 알아보는 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하립과 같은 향반의 자제들이 대부분이다. 오늘과 같이 청년실업이 조선말기 때도 비슷하였다. 기존의 세력들이 한번 잡은 밥줄(벼슬)을 놓지 않으려고 학통(學統)으로 모인 사대부들이 이익집단화 되어서다. 소위 사색당파(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폐해다. 당시 육조거리를 중심으로 괜찮은 벼슬은 이천 여개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2017-08-30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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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5> 김삼의당(金三宜堂) <제3話>
시아버지 하경천은 며느리 삼의당을 보고 기쁨이 넘쳤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조의제문을 제자 김일손이 사관(史官)으로 사초에 실어 무오사화가 일어나 젊은 나이인 34살에 유명을 달리한 뼈대 있는 집안의 후예에 은근한 자부심이 발동했으리라...
하지만 하경천 집안은 너무 가난하다. 체면도 최소한의 호구지책이 유지되어야 가능한 사대부의 현실이다. ‘깊은 규중에서 자라나/ 얌전히 천성을 키운다./ 일찍이 《내칙》편 읽어/ 집안 정사 훤히 알았네./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고/ 지아비에겐 반드시 공경할지니/ 잘하는 것도 잘못도 없이/ 순종으로 정도를 삼을 뿐...’ 하립의 부친은 ‘양반은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사고방식에 갇혀있는 전형적 성리학 신봉의 시골 샌님이다.
그런 그가 삼의당의 짐 속에서 위의 시를 보고서는 안심을 하였을 터다. 그의 시는 어쩌면 삼의당의 고도의 위장술이었을지도 모른다. 삼의당은 하립과 결혼하기 이전부터 누군가와 결혼을 하면 그를 통하여 입신양명의 야망을 조심스럽게 키워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 사주까지 같은 하립과 결혼하여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입신양명의 목표를 세운 야심찬 새색시가 되었다.
하경천은 무오사화의 주인공 김일손의 후예라는 지체 높은 집안의 겉모습만 보았지 삼의당의 깊고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경천동지할 야심(등과)은 미처 알아보지 못한 시아버지였다.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번성한다 했으니 경천은 며느리를 잘 맞아들였다. 문제는 아들 하립이다. 사내들은 장가를 들면 신부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하립도 예외가 아니다. 예쁘고 고운데 시문(詩文)까지 뛰어난 색시 곁을 한시인들 떠나고 싶은 사내가 있을까? 행여 그런 사내가 있다면 오히려 어딘가 모자라는 축에 들어갈 것이라고 쑥덕거릴 것이 뻔하다.
아무튼 삼의당과 하립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뜨거운 살을 섞어도 거뜬히 일어나 주경야독할 열정이 넘치는 건강한 남녀다. 그래서 삼의당은 처녀시절에 꿈꿔왔었던 야망을 남편 하립을 통해 실현하려는 속내다.
그래서 그녀는 어쩌다 산사에 있던 남편이 연락도 없이 집에 불쑥 나타나면 때론 즉석에서 되돌려 보내기도 하였다. 꿀맛 같았던 화촉동방의 운우지락의 환상을 못 버리면 과거 준비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돼서다. 그럴 때면 도끼눈으로 발길을 돌리곤 하였다. 삼의당도 독수공방이 싫다. 빨래터에 가면 동네 아낙들이 놀려대는 소리도 귀가 아프도록 듣는다.
이젠 이골이 날만도 한데 “남편은 언제 어사화를 꽂고 온답디까?”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쓰리다. 그리고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 딸 미혜의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이 조금씩 무너져 내려갔다.
하지만 삼의당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자신의 욕망과 시집의 처지가 한 궤의 것임을 절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 하립은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온 집안이 과거에 희망을 걸고 있는 아들이다. 큰아주버니 하호는 일찌감치 과거를 포기하고 자영농 길에 들어섰다.
아들 둘이 모두 과거에 매달릴 수 없어 일종의 역할분담이 이루어졌다. 형은 자영농을 하고 동생은 등과하여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에 삼의당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과거 분위기로 온 집안이 들어갔다. 삼의당의 어깨에 온 집안 식구의 관심이 쏠려있다. 그 같은 집안의 분위기에 삼의당의 마음은 무겁고 아프다.
남편은 과거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다는 속내를 편지에 털어놓을 때마다 삼의당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사실 그녀는 초야를 치르면서 인생설계를 말하지 않았던들 남편의 뜻에 따라 삼종지덕의 현모양처 길을 묵묵히 따랐을 게다.
하지만 친정과 시집의 오늘의 현실이 너무나 초라하다. 그 같은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삼의당 처지가 포기할 수 없는 하립의 ‘입심양명’의 꿈이다. ‘밝은 달이 담 머리로 솟아오르니 쟁반도 같고 거울도 같구나./ 방문에 주렴을 내리지 말아야지/ 들어오는 달빛을 가릴까 염려되네./ 같은 달이 두 곳을 비추지만/ 두 사람은 천리나 떨어져 있네./ 바라건대 저 달의 빛을 따라서/ 밤마다 임의 곁을 밝혀 보고 싶어라.’ 《가을밤》이다. (시옮김 허경진)
화촉동방의 뜨거운 열정의 사랑의 향기가 채 증발되기도 전에 삼의당과 하립은 입신양명을 위해 간헐적 별거를 시작하였다. 그들의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열정이 어떠하였을까? 맨 뒤 시 구절(句節)인 ‘밤마다 임의 곁을 밝혀 보고 싶어라’는 새색시의 초야의 뜨거웠던 몸과 마음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낮에는 밥 짓고 집 안팎 일 하느라 까맣게 잊었던 남편 생각이 독수공방에 들어가면 몸서리쳐지도록 그리울 것이 뻔하다. 하지만 삼의당은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등과를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와 오순도순 손잡고 세상시름 떼어놓고 자영농으로 행복을 찾으려는 남편을 따르고 싶으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향반(鄕班)에서 더 이상 떨어질 신분이 없기도 하지만 친정의 영남학파 비조(鼻祖)격인 김종직의 수제자 집안과 시집의 영의정 하연(河演:1376-1453)의 한없이 퇴락한 양가의 명예를 르네상스 시키는 것을 이제 와서 포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삼의당의 야무진 꿈이자 야망이다. 조선시대에선 사대부만이 가슴을 펴고 살 수 있는 사회다. 사대부는 3대를 계속 벼슬을 못하면 평민이 되어 지배계급이 되려면 등과를 하거나 전쟁 등에서 공을 세워 유공자 등이 돼야 가능한 신분이다.
삼의당과 하립의 집안은 향반이 된지 오래다. 삼의당의 눈물겨운 입신양명운동은 두 집안을 동시에 음지에서 양지로 옮기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명예회복 운동이다. 그 거대한 운동의 선봉에 가녀린 여인이 앞장섰다. 낭랑18세를 갓 넘긴 삼의당이다.
2017-08-23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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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4> 김삼의당(金三宜堂) <제2話>
새 며느리를 본 시아버지 하경천(河 經天)은 흡족한 표정이다. 자신도 윗 선조는 대제학에 영의정까지 한 종실(宗室) 다음으로 빛나던 가문 이였었다. 하지만 사돈 댁 역시 김일손 후예로서 더 이상 가문으로는 더 바랄 수 없는 명문가다. 그러나 두 집 모두 현재론 시골 향반으로도 체면이 제대로 서지 않는 허울뿐인 사대부 후예다.
가슴 부푼 초야의 신혼부부는 하늘이 맺어준 낭만적 확신에 차 있다. 지적 교류를 하며 삶의 목표를 함께 세우는 서로 대등한 반려라는 자부심이 첫날부터 도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주거니 받거니 한 시에서부터 시작된 첫날밤은 부부라기보다 절친의 죽마고우 분위기였다.
성리학이 통치철학의 조선사회에서 종고지락 또는 금수지락이라 말하는 이상적인 유교적 부부관계라는 자부심이라 하겠다.
화촉동방의 뜨거운 열기가 식기도 전에 그들은 삶의 목표인 입신양명 작전에 들어갔다. 맛만 본 초야를 치른 신랑은 곧 산사(山寺)로 공부 길에 올랐다. 첫날밤의 열정적 입신양명은 꿈같았던 신혼의 달콤한 사랑의 감정이 식기 전에 등과(登科)소식을 기다렸으나 열여덟짜리 새색시가 열여섯짜리 딸의 어미가 될 때가지 과거응시 되풀이로 생이별이나 다름없는 별거 생활이었다.
부부는 초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생이별을 견디어냈다. 그러나 사내는 돌아오고 싶다는 호소를 여자는 매몰차게 질타하며 설사 돌아온다 해도 밤에 방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초야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잠자리 거부다.
사실 조선시대에서 신분상승은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이 유일한 방법이다. 높은 벼슬을 한 부모의 덕으로 음서직(蔭敍職) 혜택이 있으나 하립의 입장에선 더욱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한 희망이다. 조선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사회에서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만이 유일한 신분상승의 기회다.
때문에 처사들이 대부분 낙향하여 농사를 지으며 주경야독하며 과거에 응시하여 등과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 하립과 삼의당이 신혼의 달콤한 사랑의 꽃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행동으로 옮긴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사내가 여자의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았다.
글씨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아내 삼의당의 곱고 고운 자태만이 눈앞에서 어른거려 건성으로 보는 책은 공부의 효력이 없다. 시간만 흘러갈 뿐이다. 문제는 하립이 아닌 부인인 삼의당의 독촉으로 마지못해 자존심이 상한 채 하기 때문이다. ‘고요한 사창에 날이 저물어/ 꽃잎 떨어져 땅에 가득하고 겹문은 닫혔네./ 하룻밤 그리움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고 싶으면/ 비단이불 붙잡고 눈물 자국 살펴보소...’ 김삼의당의 《봄날 규방의 노래》다.
그랬다. 새색시도 신랑이 그립고 보고 싶어 허벅지를 꼬집을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초야에 세운 목표인 과거를 통한 입신양명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여인의 한(恨)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했지 않았던가! 더욱이 삼의당은 조의제문 사건의 후예가 아닌가! 한번 세운 목표에 물러설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남편 하립이었다. ‘봄빛이 어김없이 우리 집에 찾아들어/ 푸른 버들이 늘어져 땅바닥을 쓰네./ 발 아래로 제비들 짝지어 날고/ 울타리 위아래에 복사꽃 몇 그루 피었네./ 꽃들이 피어나니 강산은 보기 좋건만/ 낭군님의 금의환향은 어찌 이리 늦어지나/ 겹문 닫고 홀로 있노라니 적막하기만 해/ 님 그리는 한 조각 꿈을 또 하늘가에...’ 《봄날 괴로운 노래》(2)다. (시옮김 허경진)
그럴 것이다. 한동네에 살아서 아련하고 어렴풋이 알고 있다 천생연분으로 부부가 되어 화촉동방을 치렀으나 상대방의 체온이 식기도 전에 헤어졌다. 삼의당의 주도로 남편 하립의 입신양명으로 가문의 르네상스 운동을 위해 계획된 헤어짐이다. 삼의당은 하립이 장원급제하여 좌의정과 영의정 반열까지 오르면 정경부인을 꿈꾸었을 게다.
그렇게 되면 양가의 쇠락해질 때로 쇠락해진 가문의 영광이 일시에 회복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의 공부는 아내의 열망에 이르지 못하였다. 가세는 더욱 기울어졌다. 삼의당은 새색시 노릇은 염두에도 못 내고 밥 짓고 빨래하고 논밭에 나가 일까지 하는 상머슴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끄럽거나 힘들지도 않았다. 남편의 입신양명의 화려한 꿈이 있는 아름다운 노동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창이 밝으면 일어나 집안청소하고 아침지어 시부모에게 아침 드리고 딸을 업고 들고 산으로 나물을 하러 다녔다.
남의 시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친정에서 시집가서 밥 짓고 나무하고 나물하러 갔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조롱에도 삼의당은 추호만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삼의당은 하립이 장원급제하여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반열에 올라 정경부인을 열망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가의 쇠락해진 가세가 일시에 회복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니라....
하지만 노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는 별 수 없는 꿈 많은 열정이 넘치는 갓 결혼한 여인의 마음이다. 뒷동산에 진달래, 산수유, 산철죽 등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것을 이따금씩 찾아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딸 하미혜(가명)는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며 “엄마 우리 아버지는 언제 집에 오셔?”라고 묻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삼의당은 딸을 덥석 안아 뜨거운 키스를 해주며 “아버지는 지금 산사(山寺)에서 공부하고 계시어 올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꽂고 오실거야!” 라고 말하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화촉동방에서 세운 입신양명의 르네상스는 시간이 흘러 세월이 쌓여도 가까워지는 징후가 보이기는커녕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하립의 아내 그리움은 향수(鄕愁)를 넘어 병으로 옮아갈 상황이다. 삼의당은 틈틈이 편지를 보내 위로와 은근한 위협조로 남편 하립을 품안의 아이처럼 어르고 미래에 대한 화려한 약속을 하면서 입신양명 금의환향할 날을 학수고대 하고 있다.
2017-08-16 0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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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3>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話>
전라도 남원의 교룡방 기슭 서봉방의 김씨(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집에 신방이 차려졌다. 1786년 화창한 어느 봄날 뜨거운 방이다. 혼례를 마친 새색시가 새신랑과 마주 앉았다. 화촉동방을 밝히고 합환주(合歡酒)라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아닌 낯익은 얼굴들이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인연을 맺어짐으로써 만나게 되었음을 즐기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새신랑 하립(1769~1830)은 대뜸 신부에게 시를 건넸다.
‘만나고 보니 둘 다 광한루 신선들/ 오늘은 분명 옛 인연이 이어진 것/ 배필이란 본디 하늘이 정하시는 것/ 세간의 중매들 모두 어지럽게만 구오...’ 수줍어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라 고개조차 들 수 없을 새 신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酬唱·시를 불러주고 받음) 하였다. ‘열여덟 살 신선 열여덟 살 선녀/ 깊은 방 꽃 촛불에 좋은 인연 한해 한달 태어나 한 마을에 사니/ 이 밤 우리 만남이 어찌 우연일까요!’ 이 얼마나 당돌하고 자신에 찬 신부였을까?
사실 그들은 단순히 천생연분으로만 말하면 이도령과 춘향을 뛰어넘는 연분이었을 것이다. 이도령(남원부사 아들)과 춘향(퇴기월매 딸)의 광한루 그네뛰기에서 극적인 조우로 인연이 되어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로 죽을 고초를 겪으면서도 정조를 지키는 여인의 정절을 하립과 삼의당은 그들의 얘기를 전해 들었으리라....
그들은 한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 사주까지 같은 범상치 않은 인연의 남녀다. 이럴 때 쓰라고 ‘천생연분’이란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들은 분명 조선팔도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기적 같은 연분으로 오늘 화촉동방의 불을 켰다.
당시 열여덟이면 오늘날 22~23세의 나이는 되었을 청춘남녀다. 아무리 절제된 언행으로 시작되었어도 초야다. 오다가다 힐끗힐끗 보아오기 18년의 세월 속에 그들은 이미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싹이 터 상당 수준으로 성장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리워하며 보아오기 18년 오매불망 기다렸던 어느 누구도 간섭이 없는 화촉동방이다. 유교가 국교인 조선은 철저한 남녀칠세부동석이며 삼종지덕의 사회다. 그런데 삼의당은 생각이 좀 다르다. 사내가 잘못하면 어찌 여인이 따를 수 있겠느냔 것이다. 남녀 평등의 사고를 가진 규수다.
더욱이 삼의당은 대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후예로 시(詩)에도 능통한 재원이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출사하여 한양의 육조거리를 주름잡고 다닐 그녀다. 그러나 벼슬길이 막혀 낙향하여 겨우 처사(處士:초야에 있는 선비) 대접 받기에 급급한 집안형편은 삼의당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이제 결혼을 했으니 남편을 통한 입신양명이다.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수제자 김일손의 후예로서 비록 아녀자 일망정 남편을 통한 그때 영광을 재현하려는 불타는 포부다. 연산군(燕山君)시대에 훈구파의 공격에 사림파의 첫 희생자다.
사초(史草)에 조의제문 사건으로 촉발된 무오사화(戊午士禍)가 그것이다. 삼의당은 먼 선조이나 그의 영민한 생각으로 남편 하립을 통해 재현하고 싶은 속내를 초야에 드러낸 당찬 신부다. ‘책 있어도 모름지기 읽기를 좋아해야지/ 배우지 않으면 사람 노릇 못하네./ 십년 동안 등불 앞에 나그네 되면/조정에 이로운 손님이 되라....’ 삼의당의 《학문을 권하며 읊다》다.
이 얼마나 강렬한 입신양명에 대한 욕구일까? 그러나 그녀는 과거를 볼 수 없는 여자가 아닌가! 아마도 그것이 안타까워 초야에서도 장래에 대한 설계도를 토로 했을 것이다.
하립은 삼의당이 시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첫 수작(酬酌:술을 주고 받음)부터 시였다. “두목(杜牧:803~852)의 ‘평생 오색실 순 임금의 옷을 기어드리려네’라는 싯구가 좋아 늘 외웁니다.” “아니 하필 그런 구절을 좋다하오? 남자라면 모르지만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싯구인데?” 남성의 사회적 성취에 대한 포부를 읊은 것인데 새색시가 제일 즐긴다는 말에 하립은 의외라는 표정이다.
하립은 아직 삼의당의 뜨겁고 장대한 야망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사실 신랑으로선 더욱이 첫날밤이라 부부금슬을 노래하거나 시부모에 대한 효성을 다짐하는 《시경》(詩經) 구절쯤을 예상했던 것이다.
삼의당은 거침이 없다. 그녀는 열다섯 살에 지었다는 《어른이 되는 날》을 줄줄이 외웠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데 남녀가 구분이 있을까요? 여자의 도움 없이 역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있었던가요?” “사람의 도리로는 효성이 첫째인데 어째서 그것을 제쳐놓고 임금에 대한 충성을 얘기하기에 급급하오?” “입신양명해서 부모님께 현달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효라고 공자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방법으로 임금한테 충성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요?” 하립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가집 모두 한때는 한양 육조거리를 누비며 명문가의 행세를 했었으나 지금은 초야에 묻혀 처사 노릇하기도 버거운 가세다. 그리하여 삼의당은 동갑내기 남편을 통하여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다시 일으키려는 야망에 불타고 있다.
한 동네에서 18년이나 살아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하지만 단오명절 등에서 그네뛰기·널뛰기 등에서 귀동냥으로 하립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던 관계로 부부가 됐으니 스스럼없이 평소의 생각을 털어놓는 것이다. 더욱이 한날한시에 태어나 사주까지 같아 자신의 생각을 한 몸처럼 느끼리라 철석같이 믿는 눈치다.
삼의당은 어떠한 일이 닥쳐도 남편을 한양 육조거리를 주름잡는 사대부를 만들겠다는 굳은 내조를 결심하고 스스로 불을 끄고 사내 품에 안겼다. 그들은 밤새 뜨거운 살을 섞느라 동창이 밝아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2017-08-09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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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2> 황진이(黃眞伊) <제33話>
서경덕이 없는 화담은 꽃이 없는 정원과 같다. 꽃이 하나둘 사라지자 날아오던 벌 나비도 날아들지 않는다. 사시사철 피고 지던 꽃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었다. 정원에 꽃이 사라지는 것도 쓸쓸한데 문하생들마저 하나 둘 화담을 떠나갔고 허엽과 진이만 덜렁 남은 어느 늦가을 오후다.
진이도 스승을 잃은 슬픔이 하늘에 닿았는데 허엽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20여명의 문하생들 중에서 가장 높은 사랑을 받았었다. 그러던 중 진이가 들어온 후 진이에게 사랑의 일부가 빼앗기긴 했으나 허엽은 석가가 가섭(迦葉·한자음 가엽)을 아끼듯 장남 서응기(徐應麒)보다 더 믿고 의지했었다.
그래서 그는 거동이 불편할 때에는 의례 태휘(太輝·허엽의 자)등에 업혀 자리를 옮겼다. 임종 직전 꽃 못에 가서 목욕할 때에도 태휘 등에 업혀 갔었던 것도 아들 등보다 편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토록 사랑을 독차지 했었던 태휘는 스승을 더나 보내고 난 후엔 넋이 나간 모습이다. 보다 못한 진이는 위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바다로 치달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중략... 진시황은 그 옛날 평락관에서 잔치 벌일 때/ 한 말에 만 냥 술로 맘껏 즐겼더라네./ 여보시게 주인님 어서 돈이 모자란다 하시는가./ 어서 술 사오시게나 함께 한잔하세./ 오화마 천금주 따위/ 아이 시켜 들고 가서 술과 바꿔오게/ 우리 함께 만고의 시름 잊어나 보세.’ 당나라 시인 주선(酒仙)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를 떠올리며 술과 노래로 슬픔에 젖어 있는 태휘를 위로하였다.
진이는 비록 여자지만 여성 특유의 따뜻함과 호방함으로 화담뿐만이 아니라 문하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중에서도 태휘와 유독 가까웠다. 그런 그가 지금 어버이 같았던 스승을 잃은 슬픔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자 진이가 시기(詩妓) 모습으로 돌아가 술과 노래로 위로를 하여 주고 있다.
진이는 태휘와 헤어진 후 한동안 화담에 더 머물다 다시 송도로 내려왔다.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또 문득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을 회상하였다. ‘무슨 생각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고요./ 글쎄올시다. 웃을 수밖에요./ 물 따라 복사꽃잎 아득히 흘러가는데/ 이곳이 딴 세상 속세가 아니라오.’ 그랬다. 진이가 화담에 들어올 때 사실은 공부가 아니었었을 것이다.
진이의 기생 진출에 대한 두 가지 설이 있다.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결국 죽었는데 진이의 집 앞에 와 상여가 옴짝달싹 하지 않아 속옷을 덮어주자 떠나가 처녀가 속옷을 주었으니 순결에 흠결이 생겨 기생이 되었다는 얘기와 황진사의 딸인 사대부집에서 고이 커오다 청혼이 들어오자 서녀 주제에 소실이나 가야한다며 동생인 난(蘭)에게 청혼자리가 돌아가자 충격으로 기생이 되었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아무튼 진이는 기생이 되었다. 숱한 사내들을 품었으나 성에 차지 않아 오매불망 마음속에 두었던 화담을 공략하였으나 실패하여 제자로 주저앉았던 것이다. 화담은 순순히 진이를 제자로 받아 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진이가 문하생으로 들어오는데 태휘의 공이 컸다. 그런 사연이 있는 그들은 같이 있으면 연인 같은 부부 모습으로 보이고 부부 같은 연인 같이 비쳐 동료 문하생들로부터 질투를 받기도 하였다. 그런 그들이 이젠 헤어져 각자 갈 길을 가고 있다.
진이도 어느새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었다. 그녀가 비록 기생의 신분이었으나 학문의 수준은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경지의 수준이었다. 시·서·화 속칭 3절(三節)을 넘어 노래·거문고·가야금·춤에 이르기까지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라고나 할까?
조선의 3대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1573~1610) · 김부용(金芙蓉:1812~1851) · 황진이(黃眞伊)를 꼽는다. 이매창과 김부용도 뛰어난 시기였으나 황진이가 단연 으뜸일 것이다. 그러하여 송도와 한양을 넘어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까지 소문이 퍼져 사신들이 오면 송도 유수에 청을 넣어 자고 가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는 풍문까지 나돌았다.
진이는 기생 이전에 국제적으로 여류시인으로 예우를 받았던 것이다. 한양의 이름께나 있는 사대부들은 송도를 찾지 않은 이가 없다. 중국과는 외교관계로 주청사(奏請使)와 접반사(接伴使)로 왔다 예외 없이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처럼 송도를 지날 때 진이를 거쳐 가는 것을 사나이들의 자랑같이 되었다.
하지만 진이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기생이지만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기생이 아니었다. 기명(妓名)인 명월(明月)처럼 하늘 높이 두둥실 떠 있는 명월을 어찌 마음대로 품을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명월이 하늘에서 내려와 마음에 드는 사내들을 뜨겁게 품었으리라...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쳣나니./ 잔(盞) 잡아 권(勸)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 임제(林悌:1549~1587)의 시다.
서도 병마사로 부임하던 길에 생전에 교분이 있던 황진이 무덤을 찾아 시조를 읊으며 명복을 빌어주었다. 사실 남녀 간의 교분은 사랑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조선사회에서 다 자란 사내와 계집이 오가는 사이는 사랑이란 다리가 놓여있는 관계다. 임제와 진이도 그러한 사이였을 것이다.
진이의 유언은 《어우야담》에 전해진다. “나는 살아서 성품이 번잡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소. 죽은 후에도 나를 산골짜기에 장사 지내지 말고 마땅히 큰길가에 장사 지내주오.”라고 하였다. 현재 진이는 평양성 칠성문 밖에 있는 선연동 기생들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진이는 죽어서도 사나이들의 가슴을 끝없이 흔들었다. ‘거친 무덤에도 해마다 봄꽃은 찾아와/ 꽃으로 단장하고 풀로 치마 둘렀네./ 이 많은 꽃다운 혼들 아직 흩어지지 않고/ 오늘도 비되고 구름이 되네.’ 석주(石州) 권필(權韠:1569~1612)의 《선연동》이다.
2017-07-26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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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1> 황진이(黃眞伊) <제32話>
화담 스승의 오늘 목욕을 하였다. 1546년(명종원년) 7월7일이다. 허엽에 업혀가는 화담의 모습을 진이는 뒤따라가며 살폈다. 애벌레가 성충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가고 남은 껍데기(번데기) 같이 보였다. 허엽의 뒤를 따라가며 진이는 스승의 위기지학(爲己之學:자기 자신의 수양을 위한 학문)에 대한 가르침을 떠올렸다.
그는 움직임 보다 멈춤을 강조하고 마음의 정(靜)을 주로 가르쳤다. 물론 스승은 멈춰야 할 경우 세심한 상황판단을 주문했으며 동(動)을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세상의 인연을 끊고 면벽으로 생을 보내라는 것은 아니며 세상과 인연이 열리면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마음을 먼저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정암(靜庵:조광조 호)이 기묘년에 큰 화를 당한 것은 너무 크게 너무 멀리 움직이려 했기 때문이라며 더 나가고 싶을 때는 참을 수 있는 지혜를 정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이라고 따끔한 충고다.
진이는 좀더 일찍 화담을 찾았을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지금 허엽의 등에 업혀가는 화담의 모습에서 세상으로 나가 천하의 도(道)를 바로 잡고 싶어 했던 그 누구보다도 배우고 익히기를 즐겼던 성인(孔子)의 모습을 느꼈다.
아마도 허엽도 자신의 등에 업혀있는 화담을 진이의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 검불 같은 스승을 생각했으리라... ‘허유(許由·BC2323~BC2244, 요순시대 현인)는 억지로 요(堯)임금의 요청을 사양한 게 아니요/ 성인의 조정 움직일 재주 없음을 스스로 안 것이지/ 태평시대에 발 들여놓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니/ 홀로 더나가 자유로이 거닐며 사는 게 좋을 듯하네.’ 서경덕의 《또한 수 지어 올림》을 회상해 낸 듯하다.
진이는 허엽을 동생처럼 생각하다가도 문득문득 질탕하게 살을 섞었던 이생을 떠올리곤 하였다. 특히 하루 종일 20여명에 이르는 문하생들의 밥 짓고 빨래하는 일에 지쳐 파김치가 되어 누웠을 때 번개처럼 금강산과 지리산 등을 유람하며 이생과의 스스럼없었던 장면들이 잊히지 않고 천장에 방금 있었던 일같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스승은 허엽과 진이의 모습을 오누이 같아 보기 좋다고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다. 부엌에서 밥 짓고 설거지를 할 때도 허엽은 동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도와주었으며 빨래할 때도 바구니를 들어주는 등 알뜰살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손이 우연히 부딪칠 때면 싱긋 웃으며 정겨운 교감이 짜릿하게 오고갔다.
두 남녀는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자칫 더 다가갔다가 속마음을 들킬까 겁이나 한치의 앞으로도 더 나가려 하지 않는다. 천재일우로 만들어진 오늘의 소중한 기회를 한여름의 번개처럼 찰나의 순간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혀를 깨무는 자제다. 스승의 불호령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눈만 뜨면 아침안개처럼 피어나는 행복을 가능한 길게 누리고 싶은 것이다.
화담은 목욕을 하고 와서 진이가 백옥같이 깨끗하게 빨아놓은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누웠다. 한 폭의 동양화 같다. “스승님이 무겁지 않으셨어요?” 진이가 허엽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검불 같았소이다.” 허엽의 목 메인 목소리다. 허엽은 아마 목욕을 하는 화담을 보고 예감을 했으리라... 지상에 잠시 내려왔던 선인(仙人)이 이제 소임을 다하고 선계(仙界)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것으로 짐작한 듯한 표정이다.
진이는 허엽의 진지한 표정에서 무지개 같은 것이 떠오름을 느꼈다. ‘나이 들어 그저 조용한 것이 좋아/ 모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었네./ 돌이켜 보건데 별 방책이 없는 지라./ 고향에 돌아오는 수밖에요/ 솔바람에 허리띠 솔솔 푸리고/ 산 달은 거문고 타는 내 모습 비추네./ 그대 궁통이 이치를 물으시는가./ 갯가에서 들리는 어부노래 그 아니 흥겨운가.’ 왕유(王維:699~750)의 《장소부(張少府)에게》를 회상한 듯하다.
진이도 문득 비몽사몽에 화담이 학으로 변해 금강송 위에 앉았다 훌쩍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곤 하였다. 더욱이 꽃 못에 가서 목욕을 하고 깨끗이 빨아 놓은 옷을 갈아입고 누운 모습을 보자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우연이겠으나 허엽과 진이의 마음에 똑같이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여자는 남자를 ‘너는 내 사내야’ 라고 마음먹었고 남자는 ‘너는 내 여자야’하는 속내가 일어나고 있었다.
더욱이 화담이 병석에 눕자 곁에서 같이 수발을 들자 부쩍 더 가까워졌다. 바늘 가는데 실 가듯 그들은 부엌에서부터 빨래터에 가는 길까지 잠자리에 들기 전엔 떨어지는 경우가 없을 정도다.
박지화 등 여타 문하생들은 서책을 놓고 여가를 즐길 때는 예외 없이 진이와 허엽얘기다. “쟤네들 부부 같아! 벌써 무슨 일 있었겠지?”라고 수군대다가도 진이가 둥굴레차를 가지고 가면 시치미를 떼고 격물치지 얘기를 했었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눈치 빠른 진이가 그런 분위기를 모를리 없다.
하지만 진이는 그런 정도의 분위기에 동요를 느낄 그녀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사내들의 끈적끈적한 시선이 궁둥이와 불룩 나온 앞가슴에 와 있음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허엽도 같은 마음일 터다. 화담의 병수발을 핑계로 천하의 재색인 진이와 지근거리에서 호흡을 같이하다 어쩌다 손발이 부딪히면 아픔은 잊고 가슴이 뛰는 흥분의 기분에 들떠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녀 간의 오묘한 마음이 오갔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육체는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한 곳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스승의 병 수발을 신명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부부 이상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듯해 보였다.
오후가 되자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침 꽃 못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던 문하생들이 빨래를 걷어가지고 왔다. 진이와 허엽은 방문턱에 나란히 앉아 그들을 맞았다. 하늘에선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자 진이와 허엽은 한 몸같이 동시에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2017-07-19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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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60> 황진이(黃眞伊) <제31話>
늦은 아침을 먹던 선비들이 무엇에 놀란 듯이 일제히 초당 쪽으로 몰려갔다. 초당 옆엔 화담 연못이 있다. 못의 동쪽으로 금강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으며 나무 밑엔 이름 모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리고 그 꽃들 중앙에 널따란 바위가 있다. 지금 그 바위 위에서 화담 스승이 학춤을 덩실덩실 추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려고 몰려갔다. 화담이 학춤을 출 때엔 새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새로운 지식을 얻었을 때 기쁨을 못 이겨 추는 춤이다. 20평 남짓 넓이의 바위 위에서 하늘로 훌쩍 날아갈 듯 두 팔을 벌려 껑충껑충 뛰어 비상했다가 아래로 내려올 때에는 두 손을 흔들어 급격하게 떨어짐을 예방하기 까지 하였다. 흰 수염이 학의 깃털처럼 펄럭이었으며 나비 날개같이 금방 부서질 듯한 흰 옷들의 펄럭임이 학의 두 날개로 보였다.
진이가 맨 앞에 섰다. 선인(仙人)의 춤이다. 진이의 손에는 어느새 거문고가 들렸다. 손이 춤에 맞추어 현란하게 움직이었다. 화담의 학춤의 동작이 바뀔 때마다 거문고의 음률과 진이의 노래도 변화되었다. 흥에 겨워 춤에 몰입한 화담은 제자들이 모두 나와 춤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을 게다.
화암(花岩:필지 작명) 주위엔 마치 병풍처럼 둘러있는 백양나무들로 앞이 확연히 내다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이까지 나와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 장면을 상상도 못할 터다. 사실 화담은 진이가 자신의 문하로 들어오는 자체를 마뜩해 하지 않았다.
사내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에 홍일점이 들어오면 분위기 흐릴까 걱정이 앞서서다. 그것도 보통 여자가 아닌 천하의 재색(才色) 황진이가 아닌가! 그 같은 화담의 마음을 꿰뚫은 진이는 더욱 언행이 정제되었다.
평상시엔 오누이 같은 분위기의 허엽과 얘기를 주로 하며 스승과 대화엔 학문 외엔 입을 일체 다물었다. ‘시냇가 초가집에 한가로이 사노라니/달 밝고 바람 맑아 흥이 절로 난다./ 바깥손님 오지 않고 산새만 우짖는데/ 대 숲에 자리 옮겨 누워서 책을 본다.’ 고려 말 삼은(三隱:정몽주·이색)의 한 사람인 길재(吉 再·1353~1417)의 《뜻을 펴다》를 염두에 둔듯하다. 지금 학춤을 추고 있는 화담이 길재의 마음과 유사할 것이라고 진이는 보고 있는 것이다.
진이는 이따금씩 화담과 특정 주제에 대해 날카롭게 토론을 벌렸다. 그럴 때마다 화담은 귀찮다는 기색 없이 결론이 나올 때까지 상대하여 주었다. 그럴 때마다 화담의 표정엔 기쁨의 무지개빛이 얼굴 전체에 환하게 피어나기도 하였다. 여자라고 문하에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큰 후회를 할 뻔 했다는 표정이다.
한 번은 정치에 대해 물었다. 화담은 명분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라 갈파하였다. 그는 개성이 다 다른 문하생들에게 그들의 학문에 맞춤옷 같이 학문의 세계를 가르쳤다. 배움에 뜻이 깊은 응길(應吉:홍인우 자字)에게는 《소학》(小學)을 논했고 화살 맞아 다친 새의 가련한 신세를 꼭 되갚아 주겠노라 안타까워한 태휘(太輝:허엽 자字) 한테는 《근사록》(近思錄)으로 마음을 다스리라 하였다.
화담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뻔히 알면서도 멀찍이 떨어져 있으며 신선놀음을 즐긴 듯하다. 여러 번 출사할 기회가 있었으나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속세의 물결에 물들지 않으려는 신선의 마음일 게다. 그는 잠시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이승에 휴가 왔다 갈 신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노니는 몸 하늘 가운데 있으니/ 걷는 발길에 구름안개 밟히네./ 신선공부 애쓸 것 없이/ 한가한 마음으로 세월 보내네.’ 화담의 《산놀이》를 불현 듯 떠올렸을 것이다.
화담은 때 묻지 않은 주기론의 비조(鼻祖)이며 조선 최고의 지성을, 진이 자신은 속세에 찌든 여인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화담에 들어왔음이 후회되기도 하였다. 청정지대에 있는 유생(儒生)들에게 누가될까 온몸이 고슴도치처럼 움츠려 들었다.
그래서 진이는 허엽과 박지화 외에는 우연히 만나게 되면 고개를 끄덕 인사를 할 뿐 의도적으로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허엽과 박지화는 진이가 밥 짓고 빨래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스스로 도와주어 어쩔 수 없이 눈만 뜨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허엽은 여섯 살 아래고 박지화는 두 살이 적다. 세속적이고 생물학적으론 서로 그리워 할 대상이다.
천하재색 진이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와 눈만 뜨면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으니 이 얼마나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 진이 자신도 문득문득 욕정이 꿈틀댈 때면 허엽이 이사종으로 보이고 박지화는 벽계수로 보여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진정 시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두 사내도 마찬가지다. 화암에 가서 빨래하는 진이를 보면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토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빙그레 웃음을 지어보였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치마를 무릎까지 추켜올리고 빨래하는 진이의 모습을 멀찌감치 뒤에서 보고 있는 두 사내의 표정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걸음에 달려가 끌어안고 사내역할을 하고 싶을 게다. 그들은 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30년 벽면 수도승 지족선사가 하룻밤 운우지락으로 파계하였다는 소식을 알고 있다.
헛기침을 서너 번 한 허엽이 “그만 내려갑시다. 내려갔다가 빨래가 다 되었을 즈음 다시 올라옵시다.”라고 말을 하면서도 그의 뜨거운 시선은 실팍한 진이의 엉덩이에 가 있었다. “예 그렇게 하시죠! 형님...” 박지화의 뜨거운 시선 역시 뭇 사내들의 욕망을 채워주었던 터질 듯 볼륨이 있어 보이는 엉덩이에서 아쉬운 시선을 거두며 허엽의 발길을 따랐다.
그렇게 진이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뜨겁고 멀리 하기엔 너무 그리운 존재로 화담의 유생들 가슴을 휘어잡았다. 두 사내는 빨래하는 진이의 뒷모습을 목욕을 준비하는 알몸의 여인을 상상하며 운우지락을 즐겼으리라...
2017-07-12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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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9> 황진이(黃眞伊) <제30話>
뜬눈으로 밤을 샜다. 화담을 극적으로 만난 황홀감이 진이는 현실같이 않아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심장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진이지만 화담 앞에서는 수줍은 일개 여인이고 싶어서일 게다.
화담의 아침은 일찍 찾아왔다. 어제의 비로 삼라만상은 세수와 목욕을 한 듯 깨끗하여 아침 해에 흐릿하게 보이는 샛별(金星)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진이는 뻑뻑한 눈을 부비고 일어났다. 집을 떠나 화담으로 올 때 맞은 비로 흠뻑 젖었던 옷이 말끔히 말랐다.
화담에 도착하여 화담스승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비가 계속 조금씩 쏟아졌다. 그 비로 사위가 젖어있어 그녀의 옷도 마르지 않았던 것을 말리 사이도 없이 너무 피곤하여 그냥 곯아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동창이 밝아오는 즈음 진이가 깨어났다.
그런데 화담이 진이 옆에서 자고 있다. 밤새 진이가 화담 곁에서 잤던 것이다. 하지만 진이의 몸엔 밤새 사내 손길이 왔다 간 흔적은 티끌만치도 찾을 길이 없었다. 너무 피곤하여 집에서 준비하여 온 육포와 만두 등으로 태상주를 마신 것 까지는 생각이 났으나 그 후론 기억이 없다.
화담은 처음엔 마뜩찮은 표정이었으나 태상주가 몇 잔 들어가자 마음을 푸는 표정이었다. 온화한 분위기이나 눈 속에 눈이 있는 눈으로 꿰뚫어 보는 시선에 진이는 생애 처음으로 전율을 느꼈다. 무서움이 아닌 강렬한 사나이의 힘이 투사(投射)되는 시선이다. 그런데 그 사내가 밤새 자신의 옆에서 잤다. 그러나 옷깃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사나이 손끝이 왔다 간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진이는 바람처럼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허엽이 벌써 나와 있었다. “잘 주무셨소?” “예 소녀는 잘 잤습니다만 선비님들은 어디서 주무셨는지요?” “예 우리들은 저 위에 또 초당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다 잠이 오면 자고 자다 깨어나면 다시 공부합니다! 딱히 밤과 낮이 없소이다!” 진이는 허엽에게서 알 수 없는 따뜻한 정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뜨거운 살을 섞었던 소세양·이사종·이생, 그리도 송도 유수 등 숱한 사내들이 자신의 몸뚱이에 목을 맸던 이들에게서 느꼈던 정이 아닌 또 다른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그런데 문득 허엽에게서 화담의 그림자가 보였다. 허엽은 진이보다 다섯 살이나 아래다. 그런데 그에게서 화담의 그림자를 찾았다.
하지만 진이는 표정을 꼭꼭 숨겼다. “텅 빈 누각에서 자다 일어나 문득 발을 들어보니/ 비 지나간 산 빛 더욱 짙어졌네./ 볼수록 화공도 그려내지 못할 저 경치/ 높은 봉우리 구름 걷히니 푸른 꼭대기 드러나네.‘ 서경덕의 《비개인 뒤 산을 보며》를 떠올린 듯하다.
아침 해가 중천에 뜨자 선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박지화·이지함·박인헌·장가순·홍인우 등이 초당에서 내려왔다. 좁은 방에 콩나물 시루같이 사내들이 질서정연하게 화담 스승을 중앙으로 둘러앉았다. 시래기국에 감자가 섞인 옥수수밥이다. 화담은 몇 숟가락을 먹는 시늉을 하다 국화차 한 잔을 마시고 밖으로 나갔다.
제자들도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밥그릇을 비우고 초당으로 돌아갔다. 허엽과 박지화가 남았다. 셋은 국화차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허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명월은 이곳에 어찌 왔소이까?” 진지한 표정이다. 이곳은 청루가 아니란 의미가 담긴 말투다. “화담 스승의 문인이 되려 합니다.” 당찬 진이의 언사(言辭)다.
허엽과 박지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퇴기인 주제에 무슨 고매한 화담 스승의 문인이 되려는 얼빠진 소리냔 표정이 역력하다. 하지만 진이가 누구인가! 세상 사내들의 심리를 독심술로 읽듯 꿰뚫어 보는 기능이 있지 않은가!
몸과 마음으로 기계(妓界)에서 터득한 세상살이의 지혜다. “소녀는 선비님들의 수발을 들으러 왔습니다. 소녀 아직 학문이 미천하여 어찌 화담 스승님의 문인(門人)이 되겠습니까?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어깨 너머로 익히다 학문이 쌓이면 문인으로 받아 주십사 찾아왔습니다.” 논리가 정연한 진이의 말에 허엽과 박지화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화대를 받고 몸을 팔았던 퇴기로만 보았다간 큰코다치겠다는 표정이다. “허엽과 박지화 선비님께선 스승님께 소녀가 이곳에서 선비님들 수발을 들 수 있도록 말씀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허엽과 박지화는 국화차를 마시며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묵시적 동의가 이루어진 눈치다. ‘높이 자란 대나무 맑은 개울가에 있고/ 그 안의 정자는 작고도 그윽하다./ 세월은 아직 여름에 속하지만/ 바람과 이슬은 이미 가을이로다./달빛이 숲 사이로 새어 나오고/ 샘 소리는 섬돌 아래로 흐른다./ 누가 이 밤의 정경을 알겠는가./ 끝없이 뻗어있어 거둘 수 없다.’ 소옹(邵雍)의 《높이자란 대나무》 8수 중 둘째수를 회상 한 듯하다.
진이는 화담의 홍일점 문인이 되었다. 화담의 그림자가 되어 수발을 들었다. 술을 즐기는 화담을 위해 태상주는 명월관에서 2~3일에 한 번씩 가져왔으며 안주인 육포도 가져왔으나 산에서 버섯 등 산나물은 진이가 직접 채취하여 만들었다.
화담에게선 향긋한 선향(仙香)이 풍겼다. 그의 옆에 있으면 술에 취한 듯 선향에 취하여 온몸이 노곤해져 정신까지 몽롱해졌다. 진이는 그럴 때마다 비몽사몽의 꿈속에서 화담이 이사종으로 변신하여 숨 막히는 정사를 즐겼다. 이사종만이 아니다. 벽계수와 이생, 그리고 소세양까지 차례로 나타나 자기 여자라고 멱살잡이하며 싸웠다.
그런 모습에 사내들이 자신을 먹이를 보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무리처럼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노류장화를 넘어 고깃덩어리로 보이는 신세가 처량하여 신세타령까지 하게 되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잠꼬대를 하였다.
진이는 특별 배려로 화담과 같은 방을 쓰고 있다. 화담이 올 들어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옆에서 수발을 들라는 제자들의 회의에서 내린 결정사항이다. 진이가 잠꼬대를 할 때면 화담은 “황선비, 황선비...”라고 흔들어 깨웠다. 화담의 따뜻한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라 깨는 진이의 눈앞엔 화담이 아닌 옥황상제의 모습이 보였다.
2017-07-05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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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8> 황진이(黃眞伊) <제29話>
마음이 답답하고 세상의 갈피가 보이지 않을 때면 진이는 박연폭포를 찾았다. 폭포수 앞에서 노래가 아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가슴이 조금은 열려지기 때문이다.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생기가 넘치는 세상을 보고 송도에 들어서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진이는 여자들 중에서 뜻이 높고 협기가 있는 자’ 로 평했으며 허균(許筠·1569~1618)은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서 ‘성품이 활달하여 남자와 같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고 높이 평가 하였다.
그렇다. 진이는 예쁜 여자로 태어났으나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한혈마를 타고 만주벌판을 질풍노도처럼 달리고 싶어 하는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의 기개를 닮은 여장부다.
그런데 그녀는 고려의 수도가 아닌 조선시대의 송도에서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대부집 딸로 출생한 것으로 15년 동안 금지옥엽 호의호식하며 성장하여 신동소리를 들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서녀 신분으로 바뀌어 기생(妓生)의 길로 들어섰다.
숱한 사내들의 품을 통하여 세상살이를 살펴봤으나 진이는 성에 차지 않았다. 사내들은 진이를 정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그들을 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자 특유의 정복 심리다. 사내는 여자에게 들어오면 죽는다. 정복이 아닌 포로가 되는 신세다.
진이는 숱한 사내들을 품어 봤으나 마음에 들고 존경할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다. 진이는 문득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을 번개처럼 떠올렸다. 화담이라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존경의 대상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진이는 어느 때 보다도 곱고 단아하게 차려입었다.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仙女)모습이다. 어깨엔 자신의 키 만한 거문고가 메어져있고 손엔 송도 명주인 태상주와 간단한 안주가 들려졌다.
화담을 공략하러 가는 길이다.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다. 진이는 비를 맞으면서도 《대학》(大學)은 젖지 않도록 가슴에 품었다.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호소하러 가는 길이다. 술과 거문고는 자신의 재능을 보여 주려는 속내다.
지체 높은 사대부집에서 천하의 소리꾼과 바람둥이들에게서 세상살이를 체득한 당돌한 계집이다. 진이의 명성은 송도를 넘어 한양은 물론이고 중국의 사신들은 조선에 오면 그녀를 찾아 자고 가는 것을 최고의 예우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중국의 사신뿐만이 아니다. 그들을 보내고 영접하는 조선의 관리들도 명월관에 들려 진이를 탐하였다.
화담도 제자들의 얘기를 통하여 진이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진이가 화담을 뵈러 가겠다고 연통을 넣고 갔으나 집에 있지 않았다. 진이가 화담의 제자가 된다면 홍일점(紅一點)이 되는 것이다.
화담의 문하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많다. 행촌 민순, 사암 박순, 초당 허엽, 술한 박민헌, 토정 이지함, 지채 홍인우, 수암 박지화, 연방 이구, 동강 남언경, 죽계 마희경, 이재 차식, 남봉 정지연, 이소재 이중호, 척암 김근공, 사재 장가순 등 그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있다.
이 같은 문하에 진이가 군침을 흘린다. 그녀가 존경하며 사랑하고 싶어질 사내가 행여 생길까 기대를 하는 속내다. 하지만 화담의 문하생이 되는 길이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았다. 당나귀 등에 화담이 즐긴다는 음식과 태상주를 싣고 화담에 도착했을 때는 집안이 텅 비었다.
아름다운 집이다. 진이는 마음속으로 화담선생님의 거처가 선인(仙人)들이 산다는 동리(東籬)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악산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오관산 화곡이 그곳이다. 오관산은 산봉우리가 다섯 개 나란히 서 있어 멀리서 보면 왕관처럼 보인다. 기암괴석이 둘러선 화곡에는 봄엔 진달래와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기슭을 불꽃처럼 물들이고 가을엔 붉은 단풍이 타올라 절경이다.
화곡을 한참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움푹 패어 이루어진 연못 화담(花潭)이 있다. 서경덕은 화담 곁에 초당을 짓고 세속과는 거리를 둔 채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하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곳에 진이가 오늘 나타났다. ‘붉은 나무 병풍처럼 둘러친 산에 어른거리고/ 푸른 시냇물 거울 같은 웅덩이로 쏟아지네./ 신선세계 가운데 거닐며 시 읊으니/ 갑자기 마음이 맑고 깨끗해짐 느끼네.’ 서경덕의 《대흥동》을 떠올렸을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말끔히 개고 반짝 해까지 났다. 비온 뒤의 날로 청자 빛의 상쾌한 분위기다. 초당 주위엔 여름 꽃들이 만발하였다. 비까지 내려줘 활짝 핀 꽃들이 생기발랄함으로써 화담은 더욱 아름다운 신선들이 산다는 동리로 보였다.
진이는 피곤함도 잊은 채 화담 주위와 초당 곁을 살폈다. 연못엔 이름 모를 고기들이 춤을 추며 노래라도 하는 듯이 즐거워 보였다. 연못 주위엔 나팔꽃과 해란초, 그리고 금낭화와 패랭이꽃까지 다투어 피어 또 다른 꽃의 세상을 만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꽃 그림자들이 화담을 감쌀 때 두런두런 인기척이 났다. 화담 일행이 연못 앞으로 드러났다. 진이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다. 허엽이 다가와 당나귀에 실린 짐을 받아 광에 들여놓고 진이를 화담에게 소개해 주었다.
진이의 얼굴이 활짝 핀 나팔꽃 빛깔로 변하였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어요./ 이 산중에 계시긴 하지만/ 구름이 자욱하여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779~843)의 《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다》를 회상한 듯하다.
하지만 진이는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다. 진이는 화담을 만난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니며 숱한 남자와 뜨거운 살을 섞으며 사랑을 찾아 봤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 진이 그녀가 찾아 헤매는 사랑하는 사내는 22살이나 위인 화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어렵사리 황홀한 기분으로 꿈속에서도 마음대로 못 뵈었던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다.
2017-06-28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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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7> 황진이(黃眞伊) <제28話>
몇 년 만에 극적 해우로 정염을 불태운 진이와 이생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제 정신을 찾았다. 동창으로 새벽달이 들어와 알몸뚱이 남녀를 감싸고 있다. 접동새 울음이 멀리서 들려오고 있다. 밤새 풀무질을 하고도 성이 안찼는지 이생의 손이 진이의 사타구니로 뱀처럼 기어온다.
진이도 싫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사내의 살 내음을 맡은 지 얼마만인가? 한양에도 송도에서도 진이가 마음만 먹으면 사내는 굴비를 꿰듯 꿸 수 있으나 그녀는 화담 서경덕 같은 사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제2 화담(서경덕 호)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순간 진이의 삶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그녀가 존재하는 한 제2의 화담 찾기는 지속될 것이다.
이럴 때면 진이는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떠올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그랬다. 진이의 집념은 서릿발 같다. 숱한 사내들을 품에 안았으나 화담으로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30년 면벽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겁게 품었으나 그녀의 펄펄 끓는 가슴을 식힐 남심(男心)은 아직 찾지 못하고 오늘도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진이는 전국을 바람처럼 거침이 없이 마음 가는대로 나도는 남사당을 찾았다. 진이의 기질과 딱 맞는 느낌을 받았다. 구경꾼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단원의 한사람으로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생이 나타났다.
하룻밤 정도는 미륵(彌勒)같은 존재일지는 모르나 진이의 마음을 채워줄 영혼의 사내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새벽 운우지락을 한바탕 즐기고 낮 동안은 밤새 뜨거운 살을 섞으며 육체의 허기를 채울 때와는 다르게 뜨악한 분위기로 있다 날이 저물자 다정한 부부모양 남사당패 놀이마당을 찾았다.
낮에는 논·밭으로 나가 일하고 해가 서산으로 고개를 숙이자 농부들은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몇 백 년은 됐을 소나무 밑에 차려진 남사당놀이는 어둠이 깔리자 횃불로 사위를 밝히고 판이 벌어졌다.
진이는 어름사니 재주에 마음이 쏠렸다. 기생이 되기 전에 남사당을 알았다면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 생각하였다. 언듯언듯 횃불에 비치는 얼굴이 당차 보였다. 자신보다는 어려보이지만 줄 위에서 날렵하게 자유자재로 재주를 부리는 개성 있는 연기에 매료되었다.
진이는 어름사니가 부러웠다. 몇 년 전에만 이 같은 남사당놀이를 알았다면 기꺼이 입단하여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앞섰다. “뭘 그렇게 골돌이 생각하고 보시오? 가서 국밥으로 저녁이나 먹읍시다...” 이생이 잡아끄는 대로 국밥집에 가서 이화주(梨花酒)에 국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주막으로 온 이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오뉴월 들소모양 진이에게 달려들었다. 한바탕 제멋대로 육체의 허기를 채운 후 “나하고 아주 삽시다. 지난번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에 갔더니 나는 할 일이 없었소이다. 나는 아버지가 싫어 집을 뛰쳐나왔는데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 않고 유산을 남기셨더라고... 그 유산이 만만치 않아 우리 둘이 넉넉히 여생을 즐길 정도야! 그 동안 나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지 않소?” 의기양양한 이생의 말투다.
진이의 귀엔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광평의 쇠처럼 굳은 심지 일찍 알았으니/ 내 본래 잠자리 같이 할 마음 없었네./ 다만 하룻밤 시 짓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풍월을 읊으며 꽃다운 인연을 맺고 싶을 뿐...’ 고려시대 기생 우돌(于咄)의 《국섬에게》다. 진이가 이생이 자기와 평생을 같이 살자는 제의에 갑자기 우돌의 시가 떠올라 사내 손을 버러지인 냥 소스라쳐 떨쳐버렸다.
진이에게 남자는 화담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몽주가 단심가로 고려 충신으로 영원히 남았듯이 진이가 번개처럼 포은(정몽주 호)의 단심가를 떠올린 것은 이승에선 화담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끝내려 하는 것이다.
포은은 이방원이 《하여가》 (何如歌)로 회유했으나 끝까지 버티다 선죽교에서 포살되었다. 목숨을 건 고려 충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포은은 역사에 영원히 역사로 살고 있다.
진이도 그렇게 하려는 의지다. “왜 대답이 없소? 아버지에게 성(姓)은 받지 않았으나 유산을 받아 어차피 불효자로 찍혔으니 진이의 남자로 여생을 살고 싶소!” “이생 서방님은 아직도 진이의 마음을 모르고 계십니까? 삼남을 비롯하여 금강산·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저의 온갖 것을 다 보고서도 더 보고 싶은 것이 남았습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 진이는 어는 한 남자의 여자로 애초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말을 퍼붓고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이 총총하다. 몸에선 이생의 정액이 비릿하게 풍겼다. 유람할 때 수없이 느꼈던 익숙한 향기 같은 냄새다. 몇 년 전의 일이 어젯밤 정사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갈피를 못 잡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이 진이가 부리나케 남사당놀이 마당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구경꾼들의 요란한 함성과 박수에 신명나는 예쁜 어름사니는 줄 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렸다.
저벅저벅 이생도 진이 뒤를 따랐다. 남사당놀이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보름달은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자 하늘의 자리를 내어주며 서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넓디넓은 하늘의 자리에서 떠나기가 서러운지 붉은 태양이 아침 하늘에 불쑥 솟구치고서야 겨우 자리를 비켜주었다.
태양은 천상 사내여서인지 보름달이어도 여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하늘자리를 계속 버티지 않았다. 진이는 말로는 이생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나 마음 한 구석엔 따뜻한 양지를 만들었다. 이생 정도면 마음을 터놓고 투정을 부리며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세양과 이사종은 넘치고 처졌다. 어쩌면 이생이 자기에게 딱 맞는 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화담이 홀연히 나타나 학춤을 추며 힐긋힐긋 진이를 훔쳐보았다.
2017-06-21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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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6> 황진이(黃眞伊) <제27話>
한양 손님을 통해 진이는 남사당(男寺党)에 대해 오래전부터 정보를 모아왔다. 남색사회(男色社會)에 대한 관심이 발동하였다. 진이가 이제 조선사회에서 더 이하 신분은 없는 남사당에 뛰어들 태세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리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들 가네...’ 그랬다. 민요로까지 나돌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다.
바우덕이(金巖德:1848~1870)를 지칭한다. 그런데 340년 전에 진이가 남사당에 매료되어 수년 동안 그들과 지냈다. 위의 노래는 최근의 것이다. 조용했던 마을이 오랜만에 떠들썩하다. 뙤약볕 아래 논밭 일로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피던 농사꾼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마을 처녀들은 멀리 숨어서 가슴을 조이며 놀이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대낮 같이 환하게 흔들리는 횃불아래 춤추는 그림자들, 그 위로 어지럽게 퍼지는 흥겨운 풍물놀이.... 마당 한가운데에서는 남사당패들의 신나는 놀이가 한창이다. 풍물놀이에 이어 버나(대접)돌리는 묘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살판(땅재주)이 이어졌다.
그런데 구경꾼 속에서 남사당놀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진이가 눈에 띄었다. 송도에선 보기 어려운 남사당놀이를 보기위해 한양에 까지 내려왔다. 조선의 상층부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보고 몸으로 체험하여 봤으니 이제는 최하층민인 천민의 세계도 보려함이다. 고려를 연성(軟性) 국가로 조선은 경성(硬性) 국가로 진이는 보고 있는 것이다.
지족선사와의 뜨거웠던 하룻밤도 외롭고 쓸쓸하고 사내 살 냄새가 아쉬울 때는 새록새록 그리워졌다. 사내들은 진이를 뜨악해 한다. 돈을 주고 육체적 기쁨을 맛보려는 족속은 많은 화대가 부담이 되어 쉽게 품을 수 없으며 돈은 많으나 신분이 너무 낮으면 상대조차 해주지 않아 진이는 이래저래 기명(妓名·명월明月)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외로운 존재다.
지금 남사당패의 흥겨운 놀이판의 구경꾼들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엔 찬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남사당패놀이는 점점 열기가 더해 간다. 매호씨(어릿광대)와 살판쇠(땅재주꾼)가 나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입을 쩍 하고 맞추어 “안암팍이 분명하니 앞곤두부터 넘어가는데 휙휙”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손을 짚더니 한 바퀴 공중회전을 하였다. 어둠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구경꾼들이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살판쇠는 다시 뒷걸음질을 치는가 싶더니 다시 손을 짚고 뒤로 한 바퀴 사뿐히 돌았다가 입으로 휙휙 소리를 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두 손으로 거꾸로 서서 걷다가 금세 한손으로 거꾸로 걷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살판쇠는 “잘하면 살판이고 못하면 죽을 판이렷다.”라 하고 신명나게 껑충껑충 위로 뛰어 몸을 틀고는 공중회전을 하려는 듯 몸을 솟구쳤다. 그 밑에서 벌겋게 불을 담은 놋화로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살판이 끝나자 보기 드문 미녀 어름사니(줄타기 재주부리는 광대)가 나와 매호씨와 줄고사를 올렸다. 꽹과리, 징, 장구소리에 날라리까지 합세하였다. 줄고사가 끝나자 장삼에 고깔 쓰고 중 모양을 한 여자 어름사니는 키를 훌쩍 넘게 매단 줄 위로 오르면서 재담 한마디를 했다. “중 하나 내려온다. 중 하나 내려온다. 저 중 거동 보소. 억단(얽었담)말도 빈말이요...”라고 맑은 목청으로 중 타령을 뽑았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기예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와 횃불 조명으로 음영이 짙은 미모에 구경꾼들은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구경꾼 속의 진이는 고독이 휘오리가 점점 더 세어져갔다. ‘내가 임을 그리며 울고 지내니/ 산 접동새와 난 처지가 비슷하구나./ 나에 대한 말은 진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을 아!/ 지는 달 새벽 별만이 아실 것이리/ 넋이라도 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아아!/ 내 죄 있다 우기던 사람이 그 누구입니까?/ 나는 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나에 대한 뭇사람들의 거짓말이여/ 슬픈 일이로다. 아아!/ 임이 나를 아마 잊으셨는가./ 아아, 님이여! 내 말씀 다시 들으시고 사랑해 주소서...“ 《정과정》에 나오는 고려가요다.
그렇게 하늘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진이(明月)는 몸서리 쳐지도록 외로운 것이다. 소세양·이사종·벽계수·이생, 그리고 화대를 주고 육체의 허기를 채우고 벌·나비가 꿀만 빨아먹고 훨훨 날아가듯 사내들은 모두 제 둥지로 가버렸다. 정작 진이의 뻥 뚫린 가슴을 메우려 할 때는 사내들은 옆에 있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그럴때다. 진이는 품에서 태상주를 꺼내 병 채로 마셨다. 이때다. 누군가 술병을 가로챘다. “안주도 없이 독주를 마시면 안 되오! 저리 가서 국밥과 함께 드시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헐레벌떡 진이 곁을 떠났다 여자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진이가 한양으로 왔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하던 때다. 화대도 없이 어떻게 육체의 허기를 채울 수 없을까 궁리를 하며 서성대고 있을 때 극적으로 진이와 해후하였다. 사내 좋고 여자도 싫지 않을 상황적 분위기다.
남사당 놀이판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높이 있는 미녀를 더 자세히 보려고 일어 선 구경꾼들을 앉히는 소리에 놀이판이 잠시 소란해졌다. 그 사이 어름사니는 장삼을 벗어던지고 전복(戰服)차림이 되어 갖은 걸음으로 재주를 부렸다. 앞으로 뒤로 걷다가 줄을 타고 앉아 화장을 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앞으로 가다가 뒤로 두 발로 뛰어 돌아앉기도 하였다.
어름사니가 움직일 때마다 멍석 깔린 마당에 그림자가 출렁이었다. “여기에 이러고 있을 것이오? 밤도 깊었소이다. 어서 주막으로 갑시다! 안성엔 삼남(충청·전라·경상도) 지방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오... 국밥이 아주 맛이 좋소!” 이생은 진이의 등에 손을 얹고 독수리가 먹이를 채가 듯 주막으로 몰고 갔다. 진이는 진이대로 이생은 또한 이생대로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를 마신 후 운우지락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익숙한 부부모양 말이 필요 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오랜만에 해우 한 연인 같이 거칠 것이 없다. 이생이 들어가면 진이가 깊이깊이 받아 물레방아 돌 듯 척척 맞아 돌아갔다. 뒷산의 소쩍새도 그들의 운우지락을 응원하듯 목청껏 노래 불렀다.
2017-06-14 0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