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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5> 김금원(金錦園) <제10話>
삼호정은 꽃대궐이다. 금낭화·해란초·장미·나팔꽃·패랭이꽃이 다투어 피어나 울타리에까지 꽃이 만발하여 꽃대궐을 만들었다. 꽃도 화려하고 향기 또한 울타리를 넘어가 오가는 행인들까지 즐거웠다. 꽃향기를 즐기려 일부러 삼호정을 거쳐 가는 오가는 행인까지 늘었다.
꽃도 꽃이지만 삼호정의 시사가 열리는 날이면 풍악소리에 낭랑한 시낭송 소리를 들으려는 행인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삼호정의 모임 날짜를 어떻게들 알았는지 시사모임 날엔 대문 밖에서 울타리 넘어 까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봄·여름·가을 삼호정은 어느새 육조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김이양·김덕희를 통해 한량들이 삼호정 모임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청까지 해 오기까지 하였다.
오늘은 금원이 얘기 차례다. 내밀한 얘기가 주제로 정해진 첫 번째 날이다. 소실의 내밀한 얘기란 방사(房事)가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삼호정의 멤버들은 좀 사연이 다르다. 단순히 잠자리 대상으로 역할분만이 아니라 시재(詩才)에 뛰어난 재능도 충분히 감안되었다는 사실이다.
금원이 전례 없이 긴장된 표정이다. “오늘 제 얘기가 가볍고 신나는 내용이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할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희 부부가 부득이 이곳을 떠나게 될 것 같아요...” 금원이 금방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 표정이다. “그게 무슨 말이요?” 삼호정의 맏언니 운초가 경악된 표정으로 금원의 말을 다그쳐 물었다.
“예 언니, 실은 대감영감이 최근에 뜬금없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우리도 그런 일이 생기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야. 내가 너무 성급하게 얘기했나봐! 괜히 걱정을 하게 해서 미안해...“ ”대감 어른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무슨 연유가 있겠지....“ 운초의 음성에 갑자기 힘이 빠졌다.
운초는 삼호정이 생활의 제2공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번 오면 딴 회원과는 달리 사나흘씩 친정집 온 것같이 편안히 묵고 갔다. 금원은 그럴 때마다 몇 살 위의 운초를 깍듯한 예의로 대하여 주었다. 시사에선 같은 회원이지만 둘이 있을 땐 언니의 예우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둘이 있으면 예외 없이 죽서 얘기가 나왔다. 오늘 남편 김덕희 얘기를 하다 금원이 불쑥 죽서 시를 읊는다. ‘우수수 낙엽지고 이미 깊은 가을인데/ 홀로 사립문 닫는데 밤은 깊었구나/ 만약에 상사병을 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면/ 정녕 천금을 아낄 사람이 없으리로다.’ 《절구》(絶句)다. 죽서는 역사·경서에 시문까지 뛰어났으나 반벙어리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금원과는 고향의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다.
금원에겐 동생 경춘이 있다. 죽서는 금원에게 피를 나누지 않은 또 하나의 자매 같은 친구다. 그런데 죽서가 이승을 떠나려고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 갓난쟁이가 탯줄을 끊기 직전의 상황과 흡사하다. “아 참! 금원 아우님과 죽서는 고향친구지? 어쩐지 둘 사이가 친자매 같이 스스럼이 없어 보이고 덕희 대감께서도 처제처럼 대하시드라!” “언니도 아직 저와 죽서 사이를 잘 모르셨군요? 그런데 죽서의 삶이 지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태예요...”
금원의 표정에 갑자기 검은 먹장구름이 끼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지난번 모임 때 말도 없이 있다 일찍 갔었구나... 아무튼 오늘은 봉숭아를 톡 건드려야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듯이 부부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얘기만 하십시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상대를 모르고 시문(詩文)에만 열정을 쏟았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삼호정의 안주인인 금원 회원부터 얘기 보따리를 풀어 보시게!” “사실 소실의 잠자리는 뻔하지 않아요? 우리도 여느 소실의 잠자리와 같겠지요... 꽃은 사시사철 활짝 피어있어야 나비가 날아와 달콤한 꿀을 따먹지 않겠어요?” 금원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죽서는 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몸이 더 아픈 모양이다. ‘세상일 모두 잊으니 절로 몸이 한가한데/ 말 한 마리 타고 서쪽으로 와 두 번째 맞는 봄/ 동쪽 누각 매화는 올해도 다시 피었는데/ 맑은 향기는 작은 티끌하나 물들지 않았네.’ 역시 죽서의 《매화》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경산이 벌떡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춘다. 다섯 여인 중에서 몸매가 가장 빼어난 여인이다. 여자가 봐도 정신을 잃을 미모의 소유자다. 사내들은 잠자리에서 여자에게 소위 소녀경(素女經)같이 능숙함을 원하는 동시에 아름다움도 바라고 있다. 하물며 소실은 아무리 부정을 해도 노류장화를 벗어날 수 없다.
화사(이상서 호)가 경산을 소실로 맞아들인 것은 미모와 시제, 그리고 몸매까지 빼어났으니 금상첨화일 게다. 경산이 어느 사대부집 며느리가 되었다면 격조 높은 정경부인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철저한 신분사회에 태어난 죄는 평생 메고 살아야 하는 멍에다. 경산 뿐만이 아니다. 운초·금원·경춘·죽서도 동병상련이다. 오늘따라 경산이 얇은 옷을 입어 육감적인 엉덩이가 출렁이고 있다. 금원도 경산의 춤에 맞추어 거문고를 탔다.
학춤이다. 훤칠한 키의 경산의 학춤은 신선의 자세다. 두 팔을 벌려 날아갈 듯 날개를 접으며 앉을 듯 사뿐사뿐 걷다 다시 창공을 날아갈 듯 두 팔을 벌리는 춤사위로 착 가라앉았던 분위기에 생기가 되살아났다.
학춤으로 땀이 송골송골 솟자 경산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거웃에 엎드리면 뒤에서 불그스레한 음문까지 보였다. “여~~ 경산의 춤 솜씨가 대단하네... 화사대감이 저 학춤에 반했겠네!” 금원이 모처럼 환히 웃었다.
사실 경산의 춤 솜씨는 삼호정에선 처음 보였을 뿐 기계(妓界)에선 알아주었다. 화사가 경산을 품은 것은 춤에 빠져서다. 그들은 뜨거운 잠자리 전에 꼭 경산이 춤을 추어 사내의 욕정을 부추겨 뜨겁고 뼈를 녹이는 사랑을 밤마다 불태웠을 것이다.
2018-01-1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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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4> 김금원(金錦園) <제9話>
오동나무 잎이 꽃처럼 떨어지는 오후다. 빨래 줄엔 제비가족들이 강남 갈 채비에 분주하다. 하늘은 전형적 가을 날씨로 구름 한 점 없는 청자 빛 하늘이다. 그런데 금원의 마음이 전례 없이 무겁다. 죽서의 건강이 심상치 않아서다. 워낙 병약한 몸이지만 무더운 여름을 지내면서 더 쇠약해졌다.
오늘이 삼호정 모임이다. 죽서가 올지도 의문이다. 금원은 집안 분위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오늘은 시보다 생활얘기에 무게를 둘 예정이다. 시사운영은 삼호정 안주인인 금원의 책임이자 뜻대로다. 그래서 오늘은 부부생활을 주제로 삼았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시사가 시작되었다.
무더운 여름엔 만나지 않아 어느새 한달반 만에 만나는 그리운 얼굴들이다. “무더위를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이 운초는 오늘을 학수고대 했어요!” 개회사는 맏언니 운초가 맡아서 하였다. “금원 아우님은 얼굴이 지난번 보다 좋아 보여요? 금슬이 좋은 것 같아요... 뭐니 뭐니 해도 부부는 금슬이 뜨거워야 해요. 세상살이 재미가 어디 있겠어요?” 금원을 바라보며 운초가 무지개 빛깔 같은 은근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금원과 미리 각본을 짠 진행 스케줄이다. 오늘은 시사얘기보다 남녀관계의 얘기인 사랑을 주제로 예술의 꽃을 피워보려는 것이다. “예 운초언니가 잘 보셨네요! 저는 요즘 금슬이 아주 좋아요. 김덕희(金德喜:1800~1853) 대감께서 벼슬길에서 나와 풍류를 즐기면서 저에게도 각별한 사랑을 주시네요! 여자는 역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인 것 같아요...” 말하는 금원의 얼굴이 잘 영근 석류 알 같이 붉게 물들었다. “우리가 길가의 꽃인 노류장화로만은 살수 없지요. 우리도 인간인데 오다가다 마음에 드는 꽃처럼 꺾어갈 수 있는 삶으로 인생을 끝낼 수는 없지 않나요?” 단호한 금원의 포효(咆哮)다.
금원은 금강산 유람을 하고 돌아온 후 새사람이 되었다. 남자로 못 태어났음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위치가 너무나 왜소하고 무능함도 동시에 느꼈다.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은 너무나 많은데 정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것이 조선사회의 서녀 위치다. ‘치장한 사람과 말 모두 영롱하고/ 누각 앞에 줄지어 서니 대열 온통 붉다/ 세 번 울리는 북소리에 나는 듯 달려가니/ 향기로운 먼지 속에 꽃바람이 분다’ 《무제》(無題)다.
사실 금원은 14살의 나이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 유람을 떠난 당차고 기개가 넘치는 소녀다. 철이 일찍 들었다고는 하지만 가녀린 소녀로 감히 쉽게 도전할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금원은 금강산 유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금은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물론 자신이 희망했던 사회적 위치에서는 아니다.
김이양의 소실자리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영혼의 자유를 위해 한동안 김앵(金鶯)이란 이름의 기녀 생활을 하면서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사대부들과 교류도 해봤다.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최대한의 자유인으로 삶을 영위하려 했으나 뜻과 생활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금원은 오늘날의 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녀의 영혼은 남성들이 주도하는 정약용의 중심인 죽란시사와 이덕무·박제가·홍대용 등의 백탐시사와 춤추고 노래하며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우정을 나누고 싶었을 게다.
그런데 그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차선책으로 김이양의 소실을 택했을 것이다. 그녀의 주위엔 영특한 시우(時友)들이 있다. 운초·경산·죽서, 그리고 동생 경춘이 그들이다. 그들은 시우 이전의 삶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현재의 그들은 모두 소실의 위치에 있다. 동병상련의 위치에서 상처 난 가슴을 보듬어 주는 마음을 치유해 주는 정신과의사 역할까지도 하는 정신적 반쪽이기도 하다.
그들이 오늘 한달반 만에 만났다. 삼호정이 결성된 이후 처음으로 긴 공백 끝에 만나는 것이다. ‘죽서의 얼굴이 지난번 만났을 때보다도 더 안 좋아 보이네?“ 금원의 음성에 어느새 촉촉이 물기가 묻었다.
금원과 죽서는 친자매 같이 따뜻하고 가까운 사이다. 친동생 경춘이 질투를 할 정도로 알뜰한 관계다. 경춘이 시샘을 하여 ”언니는 누구 언니야? 죽서 언니야? 이 경춘 언니야?“ 라고 말다툼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편 원주에선 원주댁과 김명원의 사랑놀이가 뜨겁고 뜨겁다. 늦둥이 가상임신으로 뜨거웠던 두 사람 관계가 이젠 떨어져서는 못 사는 연리지(連理枝) 관계가 되었다. 속궁합이 척척 맞아 밤이면 밤마다 날 새는 줄 모른다. 김명원은 그동안 원주댁을 소실이란 생각에 머물러 사실상 관심밖에 있었다.
금원과 경춘이 신동에 가까운 영특함을 보였어도 계집아이라 무릎 위에 앉혔을 때의 애틋함에 빠졌을 뿐 원주댁에 대해선 늘 뜨뜻미지근했었는데 가상임신 소동 이후 마음이 변했다.
원주댁의 진정성에 마음이 흔들렸다. 3~4일 더 머물러 있다 가려던 생각이 어느새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대감 어른, 언제 올라가시려고 그래요?” 원주댁이 이젠 김명원이 조강지처가 있는 한양으로 올라가라고 재촉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내가 집안에 오래 있으면 마음이 쓰여서다. 김명원이 내려와도 바람처럼 왔다가 무지개 같이 사라졌는데 이번엔 벌써 열흘이 훌쩍 지났다.
원주의 가을은 한양과 달라 흡사 초겨울 같은 가을이다. 밤마다 뜨거운 살을 섞을 수 있으니 더 좋을 수 없으나 사내가 떠난 뒤가 겁이 났다. 주책없는 몸뚱이가 턱도 없는 욕심을 부릴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아침엔 그래도 밤새 시달린 몸으로 원주댁은 술국을 잊지 않고 끓였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해가 중천에 떴어요...” 원주댁이 김명원의 이불을 휙 걷어치우며 소리쳤다. 오늘은 꼭 한양으로 쫓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설움부터 복받쳐 올라왔다. 그게 소실의 마음인가 보다.
2018-01-10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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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3> 김금원(金錦園) <제8話>
삼호정의 모임은 장안의 화제다. 조선후기 시사(詩社)활동이 주목 받는 것은 양반에서부터 중인계층(여항인閭巷人)까지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대부들의 독점이었던 문화 활동 무대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넓혀졌다.
여자들의 모임으로 삼호정이 단연 눈에 띄는 존재다. 금원·운초·경춘·경산·죽서 등은 이미 여류시인으로 시사사회에선 존재를 인정받고 있었다.
임관(壬亂·1592)을 치룬 이후 조선후기다. 이 시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문예의식이 고양되었던 때다. 사대부 문화에서 중인(中人)계층이 주축을 이룬 여항문화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문화는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세련되어 갔다. 이러한 문화를 주도했던 당대의 특징적인 문화현상 중의 하나가 시사활동이다.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 순수여성 중심의 삼호정 존재는 여성계의 대표성을 뛰어넘어 조선후기 문화흐름에 획기적인 소위 페미니즘적 운동이라 해도 지나침이 아닐 것이다. 시사활동은 신분적 특권과 아울러 문화적 특권을 누렸던 상층 양반들은 뜻이 맞는 이들끼리 시사(詩社)를 결성하여 시와 풍류를 즐겼다.
오늘날 시동인 모임과 비슷한 성격으로 정치·사상적 입장에 따라 분파를 이루면서 서울(한양)과 근기(近畿·서울인근 지방)지방을 중심하여 형성되었다. 조선후기 시사는 학문과 인생에 뜻을 공유하여 예술적 재능을 고무하는 지음(知音)들의 창작활동을 격려, 지원하는 공간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약용은 이치훈·이우수·한치응 등 14명을 중심으로 죽란시사(竹欄詩社)를 결성하였으며 이덕무·박제가·박지원·홍대용 등 연암그룹은 백탑시사란 문학 동인을 만들었다. 백탑은 현재 탑골공원 원각사지 십층석탑을 지칭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시사가 결성되어 음악을 연주하며 술을 마시고 다졌으며 시를 주고받으면서 풍류(風流)를 즐겼다. 이 시기에 주목하는 것은 양반들의 독점이었던 시사활동이 중인계층까지 확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중인들의 거주 중심지는 인왕산과 삼각산 부근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천수경(千壽慶·?~1818) 중심의 옥계시사(玉溪詩社)에 참가했었던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문화 흐름에 금원·운초·경산·경춘·죽서의 삼호정은 문화사회 전체에 관심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녀들의 재능은 남성중심의 시사에 대등하거나 어느 부분에선 앞선 부분흐름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독서세계는 폭 넓고 집중적으로 신분상의 열등함을 문화예술로 극복하려는 생활이여서다.
고독과 여성 특유의 섬세함, 그리고 소외감은 시창작의 에너지다. ‘저녁 무렵 구슬피 울며 기러기들 떼 지어 날고/ 강물 위 구름과 고갯마루 나무에 가슴이 메어진다/ 서로 생각하며 강물에 눈물 뿌리니/ 지난해 삼호정에서 이별하고 물결만 보냈네’ 죽서의 《가을 금원에게》다. 반벙어리에 병약하기 까지 한 죽서의 조용하고 속 깊은 성정이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금원·운초·경산·경춘·죽서는 삼호정이 단순한 시사모임이 아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와 고려의 국교였던 불교를 역성혁명으로 성리학을 국교로 한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처절한 페미니즘 운동의 공간일 것이다.
그녀들은 서녀나 기녀 출신으로 사대부의 소실이 되었다. 하지만 천부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주체할 길 없어 삼호정을 만들어 독자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 밤 달은 한없이 밝은데/ 너랑 나랑 깊은 회포 누가 더 클까/ 은하수 뗏목 빌려 꿈속으로 오리니/ 은하수야 높은 물결 일게 하지마라’ 죽서의 《다시 금원에게》다. 금원과 죽서는 동향인으로 우의가 남달라 두터웠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형제 못지않은 정서 동일체로 호흡이 척척 맞았다. 삼호정이란 독립된 공간은 다섯 여인의 삶이면서 시의 세계 자체다. 삼호정은 그들만의 문화세계에 갇혀있지 않았다. 사대부 중심의 시사와 중인계층의 시사와도 교류를 하였다. 시대흐름을 알기 위한 소통이자 페미니즘 운동이기도 하다.
대표적 인물이 신위(申緯·1769~1847)다. 시·서·화 삼절(三絶)의 문인으로 삼호정 여류시인들과 소통이 자연스러웠다. 불우한 여인들의 정서와 생활상들이 예술창작의 에너지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성주도 사회에서 독특한 신분의 여성들의 정서를 알기 위함에는 삼호정보다 좋은 데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원주댁의 뜻밖의 저돌적 행동에 김명원은 이틀이나 더 머물렀다. 전에 없었던 원주댁의 고집이기도 하지만 김명원이 순순히 져 주기도 처음이다. 사실 원주댁은 현모양처에 티끌만치도 모자람이 없는 여인이다. 원주댁은 어디로 보나 정경부인(貞敬夫人·정·종일품 문무관 아내)의 품위다.
그런데 지금 소실로 있다. 김명원은 늘 마음속으로 미안해 왔는데 오늘 처음으로 앙탈 섞인 고집에 순순히 응해 주었다. 그들의 잠자리는 밤낮이 없다. 금원은 한양으로 올라갔고 경춘은 이웃마을 외가댁으로 며칠 놀러가 집안은 제2의 화촉동방을 즐기는 부부만이 있다. “우리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만납시다. 내 그대를 꼭 정경부인으로 만들어드리리다...:” 김명원은 일합을 즐기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뜨거운 손이 원주댁의 사타구니를 더듬더니 곧 바로 힘을 쓰기 시작하였다.
여자도 일합때 물만 붙었지 정작 활활 타오르지 않은 상태다. “당신이 사나흘 더 있다 가라하지 않았으면 내가 화를 냈을 거야!” 한낮이 어스름 땅거미가 질 때까지 그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엄마 어디계세요?” 이웃마을 외갓집에 놀러갔던 경춘의 목소리에 원주댁은 화들짝 놀라 김명원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삼십이 넘은 원주댁의 얼굴에는 활짝 핀 핑크빛 영산홍 꽃빛깔 같은 웃음이 가득히 피었다.
2018-01-03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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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2> 김금원(金錦園) <제7話>
금낭화·해란초·나팔꽃·덩굴장미들이 정원과 담장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금원은 금낭화를 어느 꽃보다 좋아한다. 다섯 여류시인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꽃을 선택하여 다투어 가꾸었다.
그래서 삼호정의 주인인 금원이 외엔 수시로 들려 분신 같은 자신의 꽃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가뭄이 되면 물을 주고 장마가 지면 웃자란 풀을 뽑아주는 등 정성을 들여 자신의 꽃이 가장 아름답게 피도록 가꾸었다.
그들은 봄·여름·가을 삼계절을 통해 자신의 꽃이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뽑히면 그 꽃을 주제로 시를 짓기도 하였다. 그런데 올 여름엔 반아당(半啞當·죽서竹西호)의 꽃인 나팔꽃이 꽃 중의 꽃으로 뽑혔다. ‘향 피우고 부들자리에 책상다리 하고 앉아/ 책속에서 세월 보내니 마음 절로 편안해/ 꾀꼬리 울음소리 그치자 해는 저물어 가고/ 꽃향기 이제 맑은데 봄은 이미 가버렸네/ 봄바람 따뜻한가 가벼운 옷 입었더니/ 보슬비 싸늘하니 오히려 술 한 잔이 마땅하구나/ 붓 잡고 난간머리에서 한가로이 글자 메워/ 겨우 긴 구절 이루고 누군가 보아주기 기다린다.’ 죽서의 《늦봄에》다.
반아당은 선비 박종언(朴宗彦)의 서녀로 서기보(徐箕輔)의 소실이다. 호(号)에서 읽히듯이 그녀는 반벙어리다. 서녀에 반벙어리이니 죽서의 입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본 듯한 처지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애상적인 시를 많이 남겼다. 죽서는 유교경전과 경사, 그리고 옛 시에 심취하였다.
여름의 죽서 꽃은 나팔꽃이다. 그런데 나팔꽃에 대한 시가 아닌 《늦봄에》 시가 나왔다. 늦봄과 여름의 간극은 그리 멀지 않으나 반아당의 심정이 잘 나타난 시다. 삼호정 멤버들은 처지가 비슷하다. 서녀나 기녀 출신으로 시를 매개로 모인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다. 그 중에서도 죽서의 입지가 더욱 어려웠다. 신체적 결함까지 있기 때문이다.
죽서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고개만 까딱해도 주르륵 소리를 내고 두 볼을 타고 내려올 듯 보였다. 금원이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죽서의 그런 모습은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시를 발표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면 그녀는 언제나 온몸으로 하였다. 그럴 때마다 네 여인은 전염이 되어 울음바다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바로 그런 분위기로 옮아갈 즈음이었다.
금원은 삼호정의 주인이자 멤버의 리더다. 운초는 맏언니로 좌장만 맡고 회의 진행과 운영은 금원이 맡았다. ‘강 서쪽 멋진 경치 삼호정에 다 있으니/ 생각나면 올라 흥겹게 노니네/ 강둑에 비단 같은 봄풀/ 노을 지는 강물 피리소리 흐르네/ 구름 저편 항구에 돛단배 하나 보일락 말락/ 꽃 지는 낚시터에 피리소리 구슬퍼라/ 끝없는 바람안개 모두 걷히고/ 시 넣는 비단주머니만 붉은 난간에서 반짝이네’ 금원의 《삼호정에서 벗들과》다. 거문고에 맞추어 금원이 죽서의 시에 전염되어 울음바다 직전의 분위기를 겨우 벗어났다.
한편 김명원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은 건너뛰어 초겨울에 원주에 내려왔다. 이틀 전에 내려온다는 서찰(書札)이 도착하여 원주댁은 미리 준비에 들어갔다. 내실도 깨끗이 도배를 하고 장미주도 담았다. 신혼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난번엔 내가 경솔했소! 자식에 너무 집착한 탓이요! 자식이 어찌 마음대로 되는 일이요...” 김명원이 주머니에서 은가락지를 꺼내 원주댁에게 끼워주었다. “대감 송구스러워요! 모두 소첩이 부족한 탓이에요.” “아니요. 사실은 내가 자식에 대한 집착이 빚은 황당한 일이요... 오히려 잘 된 일이요! 자식을 난들 어쩌자는 건지...공연이 골치 아픈 일만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겠소? 조선이 언제까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울타리를 벗어날지 걱정이 태산이로소이다...” 김명원은 아들 낳기를 바랬으나 출생 후 사회생활에 대해 걱정을 했던 것이다.
서출(庶出)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터놓고 부르지 못하였다. 금원과 경춘이 미모에 영특하기까지 하지만 사회적으로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녀이기 때문이다. 김명원은 자신으로 인해 서출은 더 이상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름까지 지어 가지고 원주댁을 닦달했었던 자신이 부끄럽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사실 김명원이 아들에 대해 미혹(迷惑)되었었다.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자식 자랑을 하면 자신은 할 말이 없어 딴청을 떨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가렸다. “무자식이 상팔자라 하지 않았던가.”라고 김명원이 자위를 하며 빙그레 웃음까지 보였다. “왜 웃으세요?” 원주댁은 전례 없이 술까지 몇 잔 대작하였다.
독수공방 외로울 때 한잔두잔 했던 버릇이 나왔다. “어 당신 술을 제법 하네!” 김명원은 술 마시는 원주댁을 처음 보았다. 요조숙녀로만 보았는데 지금 술 마시는 원주댁을 상상도 해보지 못하였다. 소실이지만 진작 만났으면 조강지처가 되었을 것을 살을 섞을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달한 술기운에 그들은 어느 밤 보다 더 뜨겁게 하나가 되었다. 여자가 더 적극적이다. 오늘도 마침 배란기다. 아들을 낳아 소실의 책임을 당당히 하려는 속내다. 밤이 깊어 갈수록 제2의 화촉동방은 열기가 더욱 고조되어갔다.
김명원이 날이 밝자 한양으로 올라가려는 것을 원주댁이 사나흘 더 묵고 가라고 붙들었다. 잠자리를 더 하려는 것이다. 하룻밤으론 임신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임신으로 호들갑을 떨어 구긴 체면을 되찾으려는 속내다.
김명원이 내려온다는 서찰을 받고 또 공교롭게 태몽을 꾸었다. 그날도 원주댁은 점심을 먹고 깜빡 잠이 들었는데 스님이 시주를 달라며 목탁을 두드리다 갑자기 내실로 들어와 자신을 범하고 나가는데 스님이 아닌 송아지만한 범이었다.
비몽사몽인데 사타구니가 얼얼하고 애액까지 흥건하였다. 원주댁은 아들을 낳을 분명한 태몽이라고 확신하였다. 여자가 아닌 소실의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조선사회에서 소실은 잠자리 상대이기도 하지만 아들을 생산해 주는 씨받이 역할도 동시에 있어서다. 원주댁은 그 두 가지 의무를 충실이 이행하려는 몸부림이다. 잠자리 상대로만의 여자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7-12-27 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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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1> 김금원(金錦園) <제6話>
학수고대 했던 늦둥이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나날이 불러오던 배는 김명원이 팔월 한가위에 다녀간 이후 불룩했던 배가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였다. 상상임신 이였었던 것이다. 헌헌장부 김명원에게 첫눈에 반해 소실이 되었으나 연달아 딸만 낳았다. 김명원은 대놓고 얘기는 하지 않았으나 은근히 아들을 바라는 눈치였다.
금원과 경춘에게 아들한테 시키는 교육을 그대로 시키는 것을 보고 원주댁은 김명원의 속내를 눈치 챘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을 마음대로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닐 뿐만이 아니라 일 년에 두서너 번 왔다 하루 이틀 묵고 바람처럼 떠나가는 사내 씨앗을 제때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마침 배란기였었다. 그래서 임신이 적중했으리라 철석같이 믿었다. 입덧에 눈 밑에 기미까지 생겼다. 생리중단에 구토와 유방이 커지고 유두주변 색소까지 짙어지고 하여 임신을 확신했던 것이다. 더욱이 생생한 태몽까지 꾸었다. 태몽도 예사롭지 않은 태몽이었다. 남편과 짙은 사랑을 나누고 정원을 거니는데 둥근 보름달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중에 옥동자로 변해 ‘엄마’ 소리치며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태몽은 이튿날로 이어졌다. 원주댁은 아침에 먹다 남은 보리밥을 냉수에 말아 간단히 점심을 먹고 잠시 눈을 감았는데 비몽사몽에 붉은 태양이 떨어져 내려오는 중에 헌헌장부로 변해 ‘어머니’하며 가슴을 파고들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다. 아들을 낳아 소실의 책임을 다 하리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상상임신이었다. 본가에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비록 소실이지만 아들을 낳으면 소실로서 여자의 책임을 다 하는 동시에 위치도 확고해 지기 때문이다.
원주댁은 임신을 하고서도 생각이 많았다. 아들을 낳아도 문제가 있다는 것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아무리 똑똑하고 학문이 높아도 과거를 볼 수 없는 신분(서자)이니 여자인 금원과 경춘과는 또 상황이 달라 은근히 아들이 아니기를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서자·서녀의 길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해져 있어서다.
벼르고 별러 의원 집에 가서 아이의 건강을 진단했을 때 상상임신으로 밝혀지자 원주댁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내로 태어나 과거도 못 보는 신세에 얼마나 괴로워할까 생각에 이르자 몸서리가 쳐졌던 것이다.
한편 금원은 금강산이 봉래산으로 변하는 늦가을에 집으로 돌아왔다. 금원은 제천 의림지를 시작하여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다 보았지만 미련이 남아 설악산까지 보고서야 귀향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남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세상의 넓음과 화려함을 포효하였다. ‘모든 물 동쪽으로 다 흘러드니/ 깊고 넓어 아득히 끝이 없구나/ 이제야 알았노라. 하늘과 땅이 커도/ 내 가슴에 담을 수 있음을...’ 《호동서락기》 중에서다.
1830년 봄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후 어디에선가 영혼의 자유를 위해 기생을 한듯하다. 원주에서 자라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세상이 넓음을 안 금원이 한양(서울)으로 올라왔을 것이 뻔하다. 김앵(金鶯·금원 妓名)은 이때 김덕희(金德喜·1800~1853)의 소실의 신분이었으며 시인이었던 운초(雲楚·1800~1857·김부용의 호) 역시 소실로 시를 썼던 경산(瓊山)등과 어울렸다.
1841년 87살이 된 김이양의 생일잔치에 금원도 참석했는데 그때 그녀를 김이양은 교서(校書·기생지칭)라 불렀다.
아무튼 그 후 1845년 금원의 나이 29살에 김덕희(金德喜)의 소실이 된다. 금원은 김덕희를 따라 의주로 갔다 벼슬에서 물러난 남편을 따라 용산의 삼호정으로 온다.
이때부터 시사(詩社) 삼호정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봄뜻으로 서로 만나 고운 놀을 아끼며/ 버들 눈썹 처음 펼치니 예스런 뺨이 곱기도 하여라/ 시를 찾으며 꽃 보는 목을 마음껏 누리니/ 누가 선녀들에게 베틀 일을 쉬라했나’ 《삼호정의 벗들》이다.
그해 따라 전례 없는 많은 눈이 내렸다. 한양에서 원주까지 오려면 그때는 날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명원은 꽃피고 새 우는 봄이 되서야 원주에 내려왔다. 사내는 행여 아들이 태어나 아비를 반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원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는 이름(金星)까지 부르며 들어갔다. “금성아! 아비가 왔다! 아비가...” 김명원은 차분하고 전형적인 사대부로 흥분하는 경우가 없다. 원주댁이 15년 동안 경험해 온 김명원 모습이다. 그런데 오늘은 사립문에서부터 아이 이름을 부르며 들어왔다.
원주댁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고역이니 부딪쳐야만 하였다. “대감 소첩이 죽을죄를 지었어요...” 원주댁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김명원 앞에 넙죽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다. “죽을죄를 지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울지만 말고 어서 말을 해 보시오!” 김명원은 원주댁을 일으키며 다그쳤다. “대감, 소첩이 상상임신을 했었어요! 그것을 지난겨울에야 알게 되었어요. 소첩이 아이 건강을 알아보기 위해 읍내 의원 집에 갔었지요... 그런데 의원이 뱃속에 아이가 없다는 것이에요... 소첩은 의원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다그쳐 물었지요. 하지만 역시 상상임신이라는 것이에요...” 말을 마친 원주댁은 다시 엎드려 더 섧게 울었다.
김명원은 상황판단이 잘 안되는지 멍하니 천장을 한참 쳐다보다 밖으로 나왔다. 울타리엔 산수유가 곱게 피었다. 원주댁은 봄꽃 중에 노란 산수유를 유독 좋아한다. 김명원은 산수유 꽃이 많이 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원주댁을 향해 “당신이 무슨 죄요! 자식 욕심을 낸 내가 죄지....”라고 산수유 꽃을 원주댁에 건넸다.
그리고 그는 “내 한양으로 올라가리다! 내달에 과거 시험이 있소...”라고 문밖으로 나갔다. 원주댁이 뒤따라 나갔으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총총히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2017-12-20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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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0> 김금원(金錦園) <제5話>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가을이 되자 원주댁의 배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배가 불어나자 팔월 한가위에 내려온다고 약속한 남편생각이 떠올랐다. 배가 불어나는 만큼 그리움도 같이 더해갔다. “무정한 사람...” 밤이 되면 마음이 더 허전해졌다.
금원과 경춘을 가졌을 때는 가져보지 못한 마음이다. 여자의 마음은 조강지처든 소실이든 같은 것일 터다. 원주댁은 배가 불러오자 복대를 둘렀다. 임신이 어느새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 한가위는 부득부득 다가왔으나 한양에서는 깜깜 무소식이다.
원주댁은 한가위를 향해 나날이 커가는 달을 볼 때마다 사내를 기다리는 마음도 커짐을 느꼈다. 지난봄에 전례 없이 사타구니가 얼얼하도록 뜨거운 방사를 즐긴 후 김명원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사랑이다. 첫딸 금원이 14살이 되어서야 뒤늦게 사내를 통한 사랑에 눈을 뜬 것이다. 김명원은 약속을 지켰다. 그는 원주에 내려올 때는 어떻게든 3~4일 전에 소식을 전해왔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내려온다는 전갈도 없이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특유의 큰기침을 하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옥골선풍의 헌헌장부다. 그 모습에 원주댁은 한 눈에 빠졌다. 첫눈에 서로 반한 그들은 그날로 화촉동방에 들어갔다.
한편 금원은 걷고 걸어서 유점사에 이르렀다. 달빛아래 유점사의 종소리는 신비하면서도 신의 세계로 착각할 정도로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금원은 칠언율시(한구가 칠언으로 된 율시, 율시는 여덟구로 이뤄짐) 한수를 지었다. ‘낭떠러지 하늘과 암자 하나/ 산 북쪽 맑은 종소리 남쪽까지 울리네/ 흰구름 일어 흩어지니 골짜기가 눈앞에 펼쳐지고/ 밝은 달은 연못 속에 고요히 잠겼구나/ 부질없는 꿈에서 불현 듯 깨어/ 고요히 부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네/ 오십삼 부처 계신 맑은 곳에서/ 오래도록 영험한 지혜의 등불을 밝히고 싶구나’ 역시 시제(時題)가 없다.
열네 살의 남장 소녀의 시로 보기엔 너무 성숙하지 않은가! 그러할 진데 가녀린 소녀가 남장을 하고 천하명산 금강산 유람 길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 금원이기에 원주댁은 금강원 유람을 허락했을 게다. 원주댁은 몇 날 몇 밤에 걸쳐 금원의 유람채비까지 준비해 주었다. 딸이 떠나야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어머니는 말리는 척 하면서 은밀히 떠날 채비를 착착 진행시켰다.
남장 차림이다. 금원은 비록 열네 살이나 남자들의 세상에 눈을 떴고 사대부들의 생활에 관심이 높았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천하명산 금강산 유람 길에 올랐다.
금원의 학문세계는 상당한 수준이다. 학자관료 사회인 조선의 웬만한 사대부들도 그녀의 수준에 이르기 어려웠을 터다. 당시 양반가에선 딸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경우 주로 《내훈》(內訓)이나 《여계》(女誡)·《여사서》(女四書)와 같은 현모양처에 필요한 책들을 읽혔다.
하지만 실학에 영향을 받은 아버지 김명원은 여느 집과는 달리 교육을 시켰다. 본가와는 달리 웃어른이 없어 소신껏 남달리 영특한 딸들을 가르쳤다. 금원이 《동몽선습》을 시작으로 《소학》에 사서삼경인 《논어》·《맹자》·《중용》·《대학》과 《시경》·《서경》·《주역》등을 공부하는데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학문의 세계를 넓혀가며 그녀는 덕과 학문을 갖춘 여군자(女君子)를 꿈꾸었다. 그리하여 사내대장부도 쉽지 않은 혈혈단신 여자의 몸으로 남장을 하고 금강산 유람에 올랐다. ‘흐르는 물은 활활 타는 불로 끓으려/ 바위 사이 깊고 맑은 물을 구한다/ 큰 표주박으로 달을 떠 항아리에 담고/ 작은 표주박으로 강물을 떠 병에 담는다’ 소동파의 《강물을 길어와 차를 달이다》 한부분이다.
금원이 즐기는 시인은 고려의 정지상과 이달·이옥봉·허난설헌, 그리고 정약용까지 폭넓다. ‘연잎 무성하고 연밥 많은데/ 연꽃 사이에서 들려오는 처녀의 노랫소리/ 못 저 위쪽에서 보자던 임 만나러/ 물결 거슬러 힘차게 노 저어가네’ 이달의 《대동강》이다. 금원은 이 시를 특별히 즐겨 암송하였다. 그녀의 지적욕구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의지의 표시다. 당시 여자로서는 꿈꾸기조차 쉽지 않은 행동을 금원은 남장을 하고 과감히 도전했던 것이다.
김명원은 아직 등과에 오르지 못했으나 지체 높은 사대부다. 원주댁은 그런 김명원에 한 눈에 반해 소실이 되었다. “금원이한테는 소식이 있었소?” 원주댁이 배가 불러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일합(一合)을 즐기고 다시 술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을 때다. “예, 대감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요...” “당신 얼굴이 많이 안됐소이다.” “그렇게 보이세요? 대감... 알아맞혀보세요. 소첩이 왜 얼굴이 수척해졌는지?” 원주댁은 일부러 배를 더 내밀었다. 원주댁은 참다못해 몇 번이고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소첩이 늦둥이를 가졌어요! 대감이 봄에 오셨을 때 소첩은 마침 배란기였었어요...” “그렇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요...” 김명원은 전례 없이 원주댁을 뜨겁고 사랑스런 표정으로 끌어안았다. “숨이 차요. 그만 놓아주세요!” 김명원의 뜨거운 품에서 가녀린 여인의 울음 섞인 슬픈 음성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원주댁은 배가 부쩍부쩍 불러오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금원과 경춘이 서자라는 신분에서 영특함이 묻혀버림이 가슴 아픈데 한 아이가 더 나오면 어미로서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자신이야 스스로 멘 멍에를 달갑게 받아들이는 입장이지만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엔 용서가 안되었다. 더욱이 김명원은 사내를 바라지만 원주댁은 차라리 계집아이를 원하고 있다. 사내보다 계집아이가 사회생활에 덜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2017-12-13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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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9> 김금원(金錦園) <제4話>
동창으로 여명이 들어오자 원주댁은 김명원의 품에서 조심스럽게 빠져 나왔다. 네다섯 달만의 뜨거운 사내 가슴을 벗어나고 싶지 않으나 술국을 끓이려 억지로 일어났다. 어젯밤에 그토록 뜨거운 방사를 닭이 홰를 칠 때까지 즐겼는데도 몸은 날아갈 듯 가볍다.
젊은 여인에겐 역시 사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봉선화 꽃처럼 발그레하게 상기된 얼굴이다. “이제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셔서 속풀이 국을 드세요!”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콩나물에 북어를 넣어 끓인 숙취 국을 머리맡에 놓았다.
사내는 원주댁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팔을 내밀어 끌어당겼다. 아직 어둠은 추녀 밑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사내는 다짜고짜로 원주댁 위로 올라갔다. 마침 원주댁은 뒷물을 하고 치맛바람이다. 사내는 거침없이 물건을 여음 깊숙이 넣었다. 새벽 옥경이 벌떡 일어나 있을 때 원주댁이 숙취 국을 끓여 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명원은 원주댁에게 아들을 바라고 있다. 한없이 총명한 금원과 경춘을 보고 ‘저 아이 같은 아들을 하나만 얻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으나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이긴 했으나 비몽사몽 사이에서 호랑이 등에 앉아 금강산을 유람하다 원주댁이 숙취 국을 권하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 그래서 그는 행여 사내를 얻을 수 있는 태몽인가 하고 원주댁을 끌어안았다.
원주댁도 싫지 않았다. 오늘 한양으로 올라가면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이 없다. 어젯밤에 달아오른 정염이 아직 잔설(殘雪)처럼 남았다. 그들은 금방 자웅동가(雌雄同家:한꽃봉우리에 암술·수술이 있는 것)가 되었다. 어젯밤 보다 더 뜨거워졌다. “이번엔 꼭 금원이 같은 아들을 낳으소.” 폭풍우처럼 휘몰아친 방사를 끝낸 명원의 말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뜬금없이...” “내 꿈이 하도 기이해서 한 말이오. 내 팔월 한가위에 꼭 다시 내려오리다.” 마침 원주댁은 배란기다.
만폭동 작은 암자에서 첫 밤을 지낸 금원은 다시 유람 길에 올랐다. 정양사로 발길을 옮겼다. 햇빛이 잘 드는 내금강 상마루에 자리 잡은 정양사에는 혈성루라는 누각이 있다. 이곳의 전망은 금강산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정평이 났다. 단발령이 금강산 밖에서 본 것이라면 혈성루는 내금강 깊숙이 들어와 금강산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위치다.
신이 만들어 놓은 듯 한 절묘한 아름다움에 금원은 아낌없는 찬사를 끝없이 토해냈다. 어머니의 만류에도 고집을 부려 오기를 참 잘했다고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 넣었다. 금원은 기기묘묘한 금강산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시 한편을 떠 올렸다. ‘혈성루는 골짜기의 하늘을 누르고/ 산문을 들어가니 그림 같은 숲이네./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곳/ 연꽃 같은 수많은 봉우리에 그늘이 드리우네.’ 역시 《무제》다. 14세의 문학소녀는 뛰어난 통찰력과 신동적 시상이 떠올랐는데 시제(詩題)는 깜빡 잊고 시 쓰는 데만 열중한 듯하다.
한편 아들을 낳아달라던 명원은 먼동이 트자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아침은 드시고 가셔야지요?” 원주댁이 괴나리봇짐을 뺏어 안방에다 내동댕이친다. “ 이 무슨 짓이오?” 명원이 두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소실집이라도 제 집에 들어오셨으면 집주인 뜻에 따르셔야 합니다.” 전에 없이 단호한 원주댁의 태도다.
명원은 원주댁의 전에 없었던 단호한 언행에 행동이 멈칫하였다.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바람처럼 떠나가려던 행동에 제동이 걸렸다. 사실 명원은 원주댁에 할 말이 없다.
소실이라고 차지해 놓고 제대로 해준 것이 없어서다. 물질적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넉넉하게 시랑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양과 원주 사이가 워낙 거리가 멀기도 하지만 한번 내려와도 기껏해야 서너 밤을 자고 갔다. 그런 사이에도 금원과 경춘이 태어났다.
원주댁은 기어코 명원에게 따뜻한 아침밥을 지어 배불리 먹여 떠나보냈다. 명원이 떠난 집안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황량하였다. 늦둥이를 낳아 달라는 말도 생뚱맞지만 간밤에 용광로 같이 뜨거웠던 방사도 낯 뜨거워졌다.
원주댁은 거울 앞에 앉았다. 거울 속의 여인의 두 눈에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 아들을 난들 무슨 영화를 보려고...” 화장을 하려던 분첩을 거울을 향해 힘껏 던졌다. 분첩은 거울 속의 여인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혔다.
원주댁은 두 손으로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대문 옆 작은 정원엔 영산홍을 비롯 봄꽃들이 만개해 있고 울타리로 된 매화향이 바람을 타고 와 반긴다. 말없이 주인을 반기는 꽃을 보자 원주댁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지난 밤에 정신을 잃은 듯이 남자를 탐한 것도 부끄럽고 늦둥이를 낳아달라는 서방의 말을 묵시적으로 동의 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딸만 내리 둘을 낳아 소실의 직분을 제대로 못해준 것이 갑자기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마음이 아프다.
꽃들은 말없이 주인의 사랑에 아랑곳 않고 때가 되면 피었다지고 졌다 간 다시 피지 않는가? 원주댁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던졌던 분첩을 다시 잡아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얼굴을 두드렸다. 팔월 한가위에 내려올 명원에 보일 얼굴이 더 늙어 보이지 않으려는 속내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늦둥이를 낳은들 서자로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신분인 것에 원주댁은 걱정이 앞섰다. 딸인 금원과 경춘도 사랑으로 끝내고 출산은 하지 않았어야 했던 것을 후회가 막급한데 사내로 태어나서 기가 죽어 있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안 낳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배란기가 걱정이다. 덜컥 임신이 되면 어떻게 하나 가슴이 뛰고 새벽녘에 불태웠던 정염이 새삼스럽게 후회가 되었다. 명원이 오뉴월 칡소 모양 날뛰었던 여음은 지금도 얼얼한 채다.
2017-12-06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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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8> 김금원(金錦園) <제3話>
치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섬강과 주천강을 이루어 원주벌을 적신다. 땅이 비옥하여 삼한(마한·진한·변한)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원주는 고구려·백제·신라가 탐낸 지방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북원경이라 불렀으며 감영이 설치된 큰 고장이다.
또한 산자수명(山紫水明)하여 유명한 문인이 많이 탄생한 고장이기도 하다. 금원도 이곳에서 1817년 태어났다. 반아당(半啞堂) 죽서와 경춘도 이곳 출생이다. 원주 출생 유명인이 기라성 같다.
소설 《홍길동》의 저자 허균과 허난설헌, 그리고 그녀의 스승 이달(李達)과 역사학자 한백겸도 이 고을에서 글을 쓰고 학문을 닦았다.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는 임윤지당도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 산자수명에 매료되어서 일게다. 아름다운 산하엔 예나 지금이나 오래 머무르며 자기성찰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금원도 이곳의 뛰어난 산자수명의 자연적인 숨결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인들의 정기가 고스란히 전수 된 DNA를 가지고 태어났다. 금원은 총명발랄하다. 아버지는 한양 본가에서 몇 백리 떨어진 원주에 일 년에 두서너 번 다니러 온다.
금원 어머니는 향처(鄕妻)다. 본가에 있는 경처(京妻)가 조강지처다. 반대로 시골에 있던 사대부가 벼슬길에 올라 한양에 가서 얻은 아내는 경처가 되고 조강지처는 향처가 된다.
금원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향처인 동시에 소실(小室)이 되는 것이다. 금원은 소실의 딸이니 서녀(庶女)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으나 배우자는 마음에 맞는 이를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녀로서 배우자마저 선택할 수 있는 임의가 역시 극히 제한적이었다.
아무튼 금원은 소실의 딸로 태어나 서녀가 되었다. 숙명적 운명이다. 그러나 금원은 숙명적 운명에 순종하려 하지 않았다. 성별을 뛰어 넘는 한 인간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자의 벽을 우선 뛰어 넘으려 하였다. 남존여비 성리학의 조선에선 여자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그녀에겐 우선 급했던 문제였다.
남장(男裝)이다. 그녀는 남자로 변장하고 천하명산 금강산 유람 길에 올랐다. 14살 때다. 그때 사랑채에선 어머니(원주댁:가명)와 아버지(김명원 金明元:가명)의 대화가 있었다. “대감 누굴 닮았기래 저렇게 고집이 센가요?” 원주댁의 애타는 목소리다. “글쎄올시다. 당신을 닮은 것이 많을 것이오. 나야 천생 벽면서생이 아니오? 금원 같은 총명함과 과단성이 있었으면 벌써 등과해야 하지 않았겠소?” “아니에요. 대감어른! 그런 말씀이 어디 있어요? 대감댁이 어떤 문벌인데 금원이 소첩을 닮았어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세요. 대감댁의 위대한 유전자를 받았겠지요...” 원주댁은 공연한 얘기를 하여 등과에 실패한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해서 몸 둘 바를 몰라 하였다.
사실 김명원도 떳떳해야 할 처지는 아니다. “아니요! 내 자네를 사랑만 했지 뭐 하나 똑 부러지게 한 것이 있나! 내 염치가 없지....” “아니에요! 대감이 저에게 왜 해 주신 것이 없어요. 그동안 소첩은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지요.” 원주댁은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술상에서 술을 술잔에 가득 따라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린다. “술이나 드세요. 그동안 하지 않으시던 말씀을 하시네요. 대감도 나이를 드시나 봐요? 금원이 올해 14살이고 경춘이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요... 하루 더 쉬고 올라가세요! 금원이 없으니 집이 텅 빈 것 같아요...” 김명원도 금원이 없어 마음 놓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하루 더 쉬고 올라가란 원주댁 말에 못이기는 척 해가 떨어지길 학수고대하였다.
사실 원주댁은 남편 김명원이 항상 그립다. 그렇다고 터놓고 앙탈을 부릴 처지가 못 되는 소실이다. 남편을 일 년에 두서너 번 밖에 못 보니 늘 목마르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 더 있다 가라고 붙들었다.
여자의 마음이다. 경춘을 이웃마을 친척집에 놀러 보내고 둘만의 밤을 보내려는 속내다. 사춘기를 맞은 눈치 빠른 금원이 있으면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그런데 오늘은 금원이 없어 마음이 편하다. 일 년에 두서너 번 며칠 있다 가버리면 달구어진 몸은 더욱 허전하고 사내가 그리웠다. 뜨거운 밤은 짧다. 새벽을 알리는 홰치는 닭울음소리에 뒤엉켜 한 몸이 되었던 몸을 겨우 풀어 놓았다. 두 사람 모두 오랜만에 만족한 표정이다.
한편 금원은 금강산 만폭동에 도착하였다. 양사언의 글귀 ‘봉래풍악원화동천(蓬萊楓嶽元化洞天)이 만폭동 바위에 새겨졌다. ’글자 획이 살아있는 용과 호랑이 같아 금방 날개를 돋아 하늘로 날아갈 듯‘ 하다고 실학자 이충환이 《택리지》에 기록하였다.
금원도 양사언의 글귀 옆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었다. 또 한시대의 문신 남효온은 ‘사람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고 바위에 이름을 남기려 하다.’고 질책했지만 금원 역시 촘촘한 이름들 사이에 애써 이름을 끼워 넣었다.
날이 저물어 금원은 작은 암자를 찾아 하룻밤을 의탁하였다. 밤하늘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자 갑자기 어머니가 그리웠다. ‘꽃향기 따라 더욱 새로운 풍경/ 아름다운 꽃과 풀에 지난날 생각하네./ 연초록 나뭇잎은 그림 같은 봄빛/ 우렁찬 물소리 골짜기 가득하네./ 보름 즈음 밝은 달 떠오르고/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 없는 몸이라/ 깊은 산 노을 위로 날아가는 저 학은/ 지난밤 꿈속에서 만난 그 사람이런가.’ 《무제》(無題)다.
금원은 어머니가 몇 날밤을 새워 새로 지어준 저고리 옷섶을 여몄다. 봄이지만 산사의 밤공기가 제법 차갑다. 산사는 각종 봄꽃으로 꽃 병풍을 이루었다. 낙화방초(落花芳草), 떨어지는 꽃과 갓 세상에 나온 또 다른 꽃들이 달빛에 어우러져 꿈속 같기만 하다.
더욱이 만폭동의 물소리까지 밤 공기를 일깨워 마치 이승이 아닌 선계(仙界)에 온 듯이 느껴졌다. 14살 꿈 많은 소녀의 상상의 세계는 날개를 달고 어느새 일만 이천 봉 팔만구암자 사이사이를 날아다니고 있다.
2017-11-29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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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7> 김금원(金錦園) <제2話>
잠자리 얘기로 시작 된 삼호정 시사(詩社)는 맏언니 운초의 수습으로 겨우 진정되었다. 소실의 위치에서 잠자리는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노류장화 개념에서 거두어 준 존재로 생각되어서다. 아무리 빼어난 미색이나 뛰어난 재주를 가졌어도 소실은 소실이지 조강지처는 아니기 때문이다.
삼호정에 모였던 여류시인 운초·금원·경춘·경산·죽서 5인방이 그러했다면 고인들이 격노 할지도 모르겠으나 19세기 사대부 중심의 조선사회는 그러했었던 역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점심을 먹고 난 후 그들은 노량진이 눈 아래 펼쳐진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병약한 죽서는 역시 점심도 먹는 시늉만 하였다. “너는 왜 그렇게 먹질 않니? 내가 오늘 점심을 신경을 많이 썼어... 노량진에 가서 생선을 사와 직접 만든 거야... 건강해야 잠자리도 좋아져! 사내들이란 잠자리를 중시하거든...” 금원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죽서를 바라보았다. “언니 고마워요! 오늘은 그래도 많이 먹은 거야... 집에 있으면 점심은 거의 거르는 것을....” 죽서의 음성에 갑자기 물기가 묻었다. “왜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거야?” “내 건강이야 배냇병신이잖아...” 그렇다.
그녀의 호(號)가 반아당(半啞堂:반벙어리)이다. 배냇 장애인 신체다. 하지만 시재(詩才)는 뛰어나다. ‘꽃이 지는 봄은 첫 가을과 같네./ 밤이 되니 은하수도 맑게 흐르네./ 한 많은 몸은 기러기만도 못한 신세/ 해마다 임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네.’ 죽서의 《만춘》(晩春)이다. 장애인을 한탄하는 시다. 기러기는 계절에 따라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갈수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자신은 마음대로 임이 계신 곳에 갈수 없음을 나타낸 적나라한 절창(絶唱)이다.
금원과 죽서는 고향 친구다. 그래서 둘은 5인방에서 가장 친한 관계다. 나이도 같으며 금원이 생일이 몇 달 앞서 언니로 부르지만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오전엔 금원이 노래를 하더니 오후엔 죽서가 자신의 《만춘》을 낭송하였다. 몸은 거동하기에 조금 불편할 뿐 시를 쓰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러나 장애인이란 칭호가 붙어서 그런지 그녀의 시는 늘 애처롭다.
좀처럼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 “운초언니, 오늘은 이만하고 한강에 나가 뱃놀이나 하는 것이 어때요? 날씨도 청명한데 집에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네요?” 금원의 말에 운초가 반아당의 눈치를 살핀다. 거동까지 자유롭지 못한 죽서가 걱정된다는 표정이다. “괜찮아요. 언니 저는 지금 시상이 떠올라 시를 써야겠어요! 네 사람이 갔다 오세요...” 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하지만 죽서의 표정은 맑은 샘물을 보고 목이 너무 길어 먹지 못하는 기린의 눈망울이다.
한강의 나들이는 결국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삼호정 5인방이 누구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묵계가 있어서다. 그들은 만나면 즐거웠다. 자신들을 사람대접해 주는 이들은 삼호정 인원뿐이다. 사실 사내들은 그녀들을 말하며 움직이는 꽃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일 게다. 그녀들은 다시 태어나면 꼭 사내로 태어나길 소원 1호로 꼽을 것이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운초가 나서고 금원이 수습을 해야 한다. “오늘은 우리 시 낭송을 죽서로 끝내고 서방과 재미있는 얘기나 좀 해보자! 누구 서방이 밤에 제일 신통치 않지?” “언니 서방 얘기는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남자는 벌 나비 같은 존재지요. 저는 삼호정의 호스트로 시 한 수 읊고 오늘은 끝내지요!” 금원의 표정이 단호하다. “그렇게 하자. 오늘은 이상하게 분위기가 무겁고 감정이 가라앉아 있네... 미안하다. 나잇살을 더 먹은 내가 흉허물 없는 얘기인줄 알고 말을 꺼냈는데 그만 실수를 했네. 적어도 잠자리는 비밀인 것을 내가 주책이 없었어... 정말 미안하다.” ‘꽃향기 따라 더욱 새로운 풍경/ 아름다운 꽃과 풀에 지난날 생각나네./ 연초록 나뭇잎은 그림 같은 봄빛/ 우렁찬 물소리 골짜기 가득하네./ 보름 즈음 밝은 달 떠오르고/ 고향이 그리워도 갈 수 없는 몸이라/ 깊은 산 노을위로 날아가는 저 학은/ 지난 밤 꿈속에서 만난 그 사람이런가.’ 《무제》(無題)다.
사실 소실은 본인이 남편을 보고 싶다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신분이 아니다. 사내가 마음대로 바람처럼 와서 마음껏 욕심을 채우고 아침안개 같이 사라져도 앙탈 한번 제대로 부릴 수 없는 조강지처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조선조 당시엔 소위 향처(鄕妻)와 경처(京妻)란 것이 있었다. 교통이 불편하여 벼슬길에 오르면 자연스럽게 조강지처와 헤어져 몇 개월씩 혹은 몇 년이나 본의 아니게 홀아비 생활을 하게 된다. 현지 생활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방책의 현지처가 그것이다. 시골에서 한양으로 온 사대부에겐 경처이며 한양에서 시골로 간 사대부에겐 향처다.
지금 삼호정 다섯 여인은 남편의 신분에 따라 경처와 향처의 자리에 앉았다.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이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여자다. 서녀나 기녀 출신의 소실들 신분은 더욱 제한적이었다. 삼호정의 멤버 운초·금원·경산·경춘·죽서는 천부적 재능인 시문에 뛰어나 제한적이지만 그들만의 공간에서 영혼의 자유를 즐길 수 있었다.
남편의 벼슬에 따라 정경부인(정·종 일품 문무관 아내 봉작)이 될 수도 있는 여인들이었으나 모계 법에 따라 서녀가 되기도 했으며 양친이 일찍 세상을 떠 의지할 곳이 없어 기생의 길을 택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삼호정 5인방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타고난 시재를 마음껏 발휘하여 여류시인으로 역사를 빛냈다. 조선의 여류문학은 서녀와 기생들의 시재로부터 꽃피워졌다.
황진이·이매창·김부용 등 주옥같은 시를 남겨 청사에 길이 남을 절창들이 수두룩하다. 금원·경산·경춘·죽서 등도 그녀들의 작품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불꽃같은 예술은 뜨거운 사랑이 에너지가 되어야 탄생할 수 있는가 보다.
삼호정의 5인방은 사내들이 여자를 더 사랑한 것이 아닌 여자들이 사내들을 더 극진이 흠모하고 순애보 같은 사랑을 받친 역사적 주인공인 듯하다.
2017-11-22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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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6> 김금원(金錦園) <제1話>
봄은 화려하다. 사계절 중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다투어 고개를 들고 나오는 계절이다. 여름은 산하가 온통 가슴 설레는 청록색이어서 좋고 가을은 가슴 뿌듯한 풍성한 수확이 기다리고 있어 즐겁고 겨울은 새봄을 맞을 준비로 바빠 숨 막히는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있어 금원이 봄 다음으로 좋아하는 절기다.
삼호정(三湖亭·현 원효로서 마포로 넘어가는 삼개고개)의 봄은 더 없이 아름다웠다. 갖가지 봄꽃들이 만발하고 작은 연못엔 금붕어들이 원앙을 이루어 노닐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웃자란 대나무들은 올 들어 더욱 몰라보게 컸다.
1847년 금원(金錦園:1817~1851)이 31살이 되는 봄이다. 오늘은 운초(金芙蓉:1800~1857·호)·경춘(瓊春)·경산(瓊山)·죽서(竹西:1817~1851)가 오는 날이기도 하다. 삼호정 동인이 모이는 날이다. 삼호정은 규당(奎堂) 풍류문사 김덕희(金德熙)가 짓고 김금원이 마음껏 사랑을 나누는 공간(별장)인 동시에 삼호정 동인들이 시 짓고 노래를 즐기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삼호정 동인(한국 최초 여류 동인)이 모이는 날이면 금원이 정원에 나와 운초를 기다렸다. 오늘도 금원은 운초를 기다리기 위해 정원 앞에서 서성댄다. 남편은 일찌감치 외출하였다. 운초는 항상 경산·경춘·죽서 보다 조금 일찍 온다. 맏언니로서 시뿐만이 아닌 언행에도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삼호정의 안주인인 금원은 운초(김부용 호)를 깍듯한 예의로 대우하였다. 자신보다 17년이나 연상으로서 시가 좋아 모여 언니동생 하지만 어머니뻘도 되는 연배다. “언니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오늘은 봄바람이 제법 쌀쌀해요! 꽃샘추위 같아요...”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거실에 그들은 마주 앉아 녹차를 마신다. “금원이 너 표정이 퍽 밝아 보인다. 어젯밤에 서방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모양 같구나! 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서방의 사랑이 제일이다. 시도 좋지만 서방의 사랑을 소홀히 하지 말거라!” “참 언니가 오늘따라 언니답지 않은 말씀을 하시네... 우리 주제에 사랑 타령 할 처지인 가요?” 금원이 운초를 빤히 쳐다보았다.
금원과 운초가 얘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 경산·경춘·죽서가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언니들 멋져 보여요!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시기에 우리들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얘기꽃을 피우세요?” “그랬구나. 언니께서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셔서 그만 너희들이 들어오는 것도 몰랐네... 미안하다.” “재미있는 얘기가 무엇이기에?” 토끼눈처럼 반짝이며 호기심을 높였다. “여기 너희들을 기다리는 녹차가 있느니라! 어서들 와서 차부터 마시고 시회(詩會)를 벌이자꾸나...” 금원이 운초와 나누던 얘기를 서둘러 끝내고 삼호정에 모이는 본론으로 들어가려 한다.
하지만 죽서가 막무가내다. “금원언니가 얼굴이 왜 빨개졌어요? 운초 큰언니가 무슨 얘기를 했기에... 운초 큰언니가 얘기해주세요! 우리들 셋 모르게 할 얘기가 있어요?” 옆에 있던 경춘과 경산도 “그러게 말이예요! 우리가 들어오니깐 왜 얘기가 뚝 끊어졌어요?” 라고 죽서를 거들고 나섰다. “별 얘기 아니야! 오늘따라 금원이 얼굴이 정원의 꽃처럼 화려하고 예뻐 어젯밤에 규당에서 황홀한 사랑을 받았느냐고 물어보고 있던 중이었어... 여자란 서방한테 따뜻한 사랑을 받을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겠어? 사실 우리들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사랑의 노리개야...”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언니는 무슨 그런 말을 하세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영혼의 자유를 위해 이렇게 우리들만의 공간을 갖고 인생을 즐기고 있는데요.” 눈치 빠른 금원이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랬다. ‘봄은 가고 꽃 이미 졌는데/ 해당화만이 붉게 피었구나./ 이 꽃마저 지고나면/ 헛되고 헛된 봄날이여.’ 금원의 《무제》(無題)다.
삼호정에 모이는 다섯 여류시인은 모두 양반의 서녀 또는 기녀 출신의 소실들로 시재(詩才)엔 뛰어났으나 자식도 똑같이 없었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정하기까지 할 것이다. 시의 내용처럼 해당화마저 지고나면 헛되고 헛된 봄날이 될 것이란 구절이 그녀들의 심정일 게다. 꽃다운 그녀들의 얼굴에도 예외 없이 세월의 무게가 조금씩 나타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눈가와 이마에 주름살이다. 금원은 어느새 세월의 흔적이 하나둘씩 나타난 것을 발견한 듯 하다. 눈 아래 기미가 언뜻언뜻 보이고 탱탱했던 엉덩이 살에 긴장감이 빠졌다. 잠자리에서 남편의 손이 유방에서 엉덩이를 스치듯 음문으로 갈 때 금원은 엉덩이에 긴장감이 빠졌음을 실감하였다.
병치레를 안고 사는 죽서에겐 잠자리 사랑얘기에 귀가 솔깃했으리라... “내가 오늘 조금 일찍 왔어! 그래서 사사로운 얘기를 금원아우와 하다 그만 아우들한테 들켰네! 사실 우리들에겐 어찌 보면 사랑이란 사치스런 욕심일지도 몰라! 벌 나비들이 꽃에 날아와 꿀만 빨아먹고 날아가듯이... 그리고 뻐꾸기가 비둘기 둥지에다 새끼를 키우듯이 말이야!” 운초의 음성에 갑자기 울음기가 섞였다. “언니, 갑자기 언니답지 않게 그래! 자 우리 기분 전환으로 노래나 한 곡조 부르자고...” 금원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벽에 세워두었던 거문고를 켜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운초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미안하다. 내가 공연한 말을 꺼내 분위기를 흐려놨네. 나는 오늘따라 금원이 얼굴이 정원에 활짝 핀 연산홍같이 아름답고 생기가 있어 보여 어젯밤에 남편한테 뜨거운 사랑을 받았느냐고 농담을 했는데 그만 내가 실수를 했어. 미안해 아우님들! 나이 들면 그렇다니깐!” 운초가 경산·경춘·죽서를 끌어다 의자에 앉히며 분위기를 정돈하였다.
‘달 뜬 다락 가을 깊고 옥 병풍 허전하네./ 서리 친 갈밭에는 저녁에 기러기 앉네./ 거문고 아무리 타도 임은 안 오고/ 연꽃들만 못 위에 맥없이 지고 있네.‘ 허난설헌의 《규원가》다. 다섯 여류시인들의 10개 동공엔 어느새 수정 같은 눈물이 금방이라도 금원의 무릎으로 떨어질 듯하다.
2017-11-15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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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5>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3話>
햇살이 따갑다. 가을 햇살이 따갑고 일조량이 풍부해야 곡식알이 잘 영글고 작황이 넉넉해진다. “올해엔 추수가 풍부할 것 같아요!” 삼의당이 피를 뽑다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하립을 쳐다보며 말했다. 삼의당의 손엔 피가 한 옴큼 들렸으나 하립의 손엔 네댓 개의 피가 들려 있을 뿐이다.
초보 농부 하립은 아직 피를 구분할 줄 몰라 삼의당이 뽑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다. “여보 당신은 천천히 하세요! 농부도 되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십 수 년 걸려 배운 농부 모습이에요. 당신은 제 곁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 저는 행복하답니다. 당신이 등과하면 한양 기생 년들이 그냥 놔뒀겠어요? 제겐 당신의 과거 낙방이 전화위복이에요.” 하립은 삼의당의 말이 허언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더 아프다.
금지옥엽으로 커온 삼의당이 시집와선 농부가 되었다. 결혼할 땐 온 근동의 처녀들이 부러워한 혼처였었다. 그러나 결혼 후 생활은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과거등과에 한없이 매달릴 수는 없다.
어느새 불혹을 지나 지천명(知天命:50)이 가까워지는 세월이다. 삼의당의 말이 남편 하립을 위로 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덜컥 등과하여 한양에 머무르게 되면 향처로 독수공방이 두렵기도 한 것이다.
하립은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여자가 하립을 한번 보면 샘물에 버들잎 빨려들 듯 빠져드는 사내를 방치할 수 없는 삼의당의 여심이다. 삼의당의 솔직한 속내다. 삼의당이 하립으로 정혼이 결정되기 전엔 근동의 모든 처녀들의 관심이 온통 쏠렸다. 그러자 삼의당이 결정되자 축하와 질시가 동시에 폭발하였다.
양가 집안의 형편으로 보면 입신양명이 목숨보다 더 절박한 현실이다. 하지만 삼의당의 속내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 결혼 첫날 약속한 조상의 옛 영화 재현을 위해 십수년 사실상 과부나 다름없었던 생활이 더는 겁부터 났다.
이젠 여자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태도다. 더욱이 늦둥이 걱정이 태산 같다. 이제 등과하여도 벼슬길이 그리 길어 보이지 않은 것도 작용하였다. 그럴 바에야 착실한 농부가 되어 탄탄한 향반집안을 늦둥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마음을 그렇게 정하고 나니 부부는 날마다 동창이 밝아야 뜨거운 살이 떨어졌다.
늦정에 불이 붙었다. ‘서봉촌(봉서방)에서 낳고 자라/ 내 동산 밑에 자리 잡고 사네./ 초가 몇 칸을 깨끗이 치우고/ 상에 가득한 시(詩 )서를 즐겨 읽네.’ 《시골에 살며 짓다》다. 사실 삼의당의 마음이 당시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꽃을 보면 꽃처럼 아름다워지고 싶고 오색찬란한 무지개를 보면 무지개 같이 화려하게 되어 뭇사내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 여심이 아니던가! 삼의당도 그런 여심이 틀림없었으리라... 그러나 양가 집안의 현실이 너무 가라앉아 있어 삼의당으로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에선 여자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아마 여자에게 과거 응시권이 있었다면 삼의당이 직접 양가 희망인 옛 조상의 영화 재현을 단번에 실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는 여자에겐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였었다.
아침저녁 하인들의 돌봄으로 시작하여 해떨어지면 자리끼까지 챙겨 주는 사대부 댁의 꿈을 실현하리라 당찬 포부를 가졌었던 것을 지천명이 가까워서야 부질없는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무정하게 흘러간 세월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그들 부부생활이 어느새 한 세대가 가까웠으나 실제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산 생활은 불과 7~8년에 지나지 않았다.
하립은 입신양명을 위해 한양을 오가는 길과 주막에서 황금 같은 세월을 보냈고 삼의당은 삽과 괭이를 들고 논밭에서 보냈던 것이다. 또 다시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게다. ‘밤이 차츰 기울어 새벽이 가까워 오는데/ 뜨락에 가득한 가을달이 더욱 밝구나./ 이불에 기대어서 억지로 꿈꾸다가/ 님 곁으로 이를 무렵에 놀라서 잠 깨었네./ 새벽의 밝은 달이 서편 성을 비추는데/ 성 위에서 그 누군가 피리를 불며 가나./ 가여워라 깊은 규방의 외로운 촛불이여/ 시름에 겨운 이 몸은 꿈도 이룰 수 없네.’ 《가을밤 규방에서 지은 노래》다. (시옮김 허경진)
이젠 남편과 뜨거운 살을 마음껏 부딪칠 수 있어도 잠결에 헤어져 살았을 때의 꿈을 꾸었다. 그럴 때마다 삼의당은 숨이 턱에 닿도록 뜨거운 호흡을 토해내며 쌓이고 쌓였던 정욕을 마음껏 채우고 깊은 잠에 빠진 하립의 아랫도리를 움켜잡아 보았다.
현실이다. 그때서야 삼의당은 알 수 없는 한숨을 조심스럽게 토해내며 잠을 청했다. 잠을 청하면서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과거포기를 사당에 가서 선조님들에게 말씀드려야 하는데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다. 삼의당은 남편이 당당히 등과하면 친정에 가서도 사당에 입신양명을 화려하게 신고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꿈을 과감히 포기해야한다. 산 시간보다 살 세월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늦둥이에게 다정한 부모 모습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젠 한날한시에 태어나 부부가 되었으니 죽을 때도 한날한시에 이승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부모를 잃은 설움을 한 번에 끝내주고 싶은 게다.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 꿈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이제 남은 꿈은 한날한시에 이승을 떠나는 기대다. 18세기 향촌 아낙의 희망·좌절·욕망·시련·체념을 삼의당은 온몸으로 겪었다. 남편의 등과 포기를 현실로 받아들인 삼의당의 건강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꿈을 포기한 여인의 심신(心身)이다. 남편과 함께 지은 농사는 어느 해보다 풍성하다. 하지만 가을걷이를 마친 삼의당은 결국 자리에 누웠다. 부자의 극진한 간호에도 별효과가 없다. 자리 보존하고 누운 지 이십일 만에 삼의당은 미라가 되었다. 물을 겨우 넘길 뿐 곡기를 넘기지 못했다.
늦둥이 영진은 약지를 깨물어 뜨거운 피를 어머니 입에 넣었다. 삼의당은 늦둥이 효성으로 생명을 일주일 더 연장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한 54세의 이승 삶을 정리하였다. 남편 하립은 삼의당보다 6년 더 살고 전북 진안군 백운면 덕현리 부인 곁으로 갔다. 또한 마이산 입구 광암바위에 마주보는 곳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2017-11-08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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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4>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2話>
하씨 집안의 영광 재현의 꿈 실현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하립의 향시(초시) 합격이 본시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의당은 하늘이 무너지고 갑자기 장남이 된 듯이 앞이 캄캄하지만 헛기침으로 자신을 지키려 애쓴다.
지금 무너지면 늦둥이 꿈마저 잃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다. 하지만 입맛이 떨어지고 시르시름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경재가 사망하자 손자 영진(榮進)이 제일 슬피 운다. 설움이 북받쳐 정신을 잃기도 하였다. 삼의당은 낳기만 했지 키우기는 할아버지가 키웠다. 삼의당은 철저한 농부가 되었다. 늦둥이였지만 비교적 순산을 해 하루 이틀 쉬고 논밭으로 나갔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했는데 삼의당은 그 말을 철저히 지켰다.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추수할 때까지 삼의당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 않는 한 논밭으로 나갔다. 논밭으로 나가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농작물을 보면 세상시름에서 밀려났다.
어쩌다 집에 있으면 여자의 욕망이 꿈틀댄다. 화려하게 꽃단장하고 광한루로 나가 옛 친구들을 만나 얘기꽃을 피우고도 싶고 남편들에 대한 불만도 풀어놓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삼의당은 그럴 때마다 허벅지를 꼬집어 재빨리 현실로 돌아왔다. 부질없는 허망한 욕망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늦둥이 영진이를 출산하고는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삼의당은 늦둥이를 낳고는 이틀 밤을 소리 없는 울음으로 날을 샜다.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했는데 늦둥이에겐 언덕이 없다.
하립은 삼의당의 성화에 떠밀려 마지막으로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부부 농부가 되었다. 부부는 옛 조상의 영화를 재현을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하다. 사반세기에 걸쳐 얻어낸 것이 고작 향시였다. 삼의당은 더 이상 옛 영화 재현에 매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하립은 꾀죄죄한 괴나리봇짐 하나는 메고 어둑어둑한 저녁에 귀향하였다. 하지만 삼의당은 목욕재계하고 술상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하립은 주막에서 이미 전작이 있는 상태다. “미안하오! 나는 벼슬 할 재목이 못되나 보오...” 울음이 섞인 목소리다. “아니에요! 당신은 훌륭했어요... 세상이 당신을 알아주지 않았을 뿐이에요. 우리는 최선을 다 했어요. 후회가 없는 과거에요! 이제부터는 훌륭한 농부가 되어 영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 단호한 삼의당 목소리다. “어느새 밤이 깊었네요. 이 술은 당신이 귀향할 때 대접해 드리려고 제가 손수 담은 삼의당주(酒)에요... 드셔 보세요...” 삼의당은 두 잔에 가득 부어 서로 권하였다.
주거니 받거니 한 술자리는 금방 새벽이 되었다. 꼬끼오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에 부부는 새벽이 옮을 알았다. 얼큰한 술기운에 아스라하게 잊었던 화촉동방을 떠 올리며 그들은 한 덩어리로 뭉쳤다. 서로 더 뜨거워지려고 깊이 넣고 더 깊이 받았다. “당신 몸놀림이 이상해요... 한양에 가서 과거 공부는 하지 않고 기생집에만 다녔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 몸놀림이 예전 같지 않아서요!” 하립은 대답 대신 엉덩이에 힘을 한껏 넣어 디 깊이 더 강하게 사랑을 주었다.
삼의당도 만족한 몸놀림이다. 부부는 동창으로 여명이 들어올 때까지 한 몸이 되었다. ‘문 앞에 돌아온 백마는/ 낙양의 구름을 밟고 왔겠지/ 아이 불러 소식을 물어야지/ 누가 요순임금을 만났느냐고’ 《과거시험 뒤에 스스로 읊다.》다. 그랬을 것이다. 삼의당은 남편이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임금에게 어사화를 받아 머리에 꽂고 금의환향하기를 학수고대했을 터다.
하지만 그 꿈은 꿈으로 끝이 났다. 지금 자신의 배 위에서 욕정을 채우고 있는 하립은 한양의 사대부가 아닌 향시에 머문 향반이다. ‘노을은 비단 되고 버들은 안개 같으니/ 인간세상 아니라 별천지일세./ 서울에서 십년동안 분주하던 나그네가/ 초당에 오늘은 신선같이 앉으셨네.’ 《초당에서 낭군을 모시고 읊다》다. (시옮김 허경진)
삼의당은 기가 막힌다. 머리 잘라 팔고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과거 뒷바라지를 했으나 고작 향시였다. 하지만 현신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삼의당은 현실을 부정할 만큼 현실을 모르지 않았다.
부부는 이튿날 나란히 논밭으로 나갔다. 하립은 즐거운 표정이다. 입신양명이란 멍에를 벗어던져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다. 가난한 향반의 논은 평지에 있지 않고 산골짜기에 있다. 벼가 제법자라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하늘 푸른 물결을 이루었다.
“올해엔 풍년이 될 듯해요...” 삼의당의 표정이 퍽 밝아보였다. “저는 사실 당신이 정작 과거에 등과하면 어쩌나 걱정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당신이 만약 장원급제하여 승승장구하면 한양에다 경처(京妻)를 두면 저는 향처(鄕妻)로 전락되지요. 그러면 저는 뭐에요? 머리 자르고 패물 팔아 과거 뒷바라지를 했는데 단물은 한양에 있는 경처가 빨아먹잖아요! 그렇게 되는 것을 은근히 걱정했단 말이에요....” 부부는 땡볕에서 일을 하다 잠시 나무그늘에 앉아 얘기꽃을 피웠다. 과거를 포기한 하립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삼의당의 내면에서 나오는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 같은 속내다.
하립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자 빛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초점 없는 표정이다. 삼의당의 말이 편한 마음으로 들렸을 리가 없다. 그대 밤나무 위에서 후드득 꾀꼬리 한 마리가 날아갔다. “덥지요? 조금 더 올라가며 차디 찬 샘이 있어요.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어요. 제가 감자떡을 만들어 가지고 왔어요...” 삼의당은 남편 하립이 과거에 등과하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을까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마을에서 같은날 같은시에 태어나 온동네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 부부가 되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삼의당 마음 같지 않다. 시아버지 경재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하립의 계속 된 낙방과 무관하지 않다. 시아버지는 이제나 저네나 하고 초하루와 보름엔 과거공부가 시작되고부터는 빠지지 않고 사당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삼의당의 정화수 기도와 시아버지의 사당의 기도도 효과 없이 화려했었던 조상의 옛 영화 재현은 향시로 만족해야만 하였다.
2017-11-01 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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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3>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1話>
집안은 온통 축제 분위기다. 학수고대 했었던 향시에 하립이 합격하였다. 옛 영화 재현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1810년 하립의 나이 42세 때다. 무려 24년의 형설지공이다. 사실 하립이 과거를 쉽게 통과할 실력이 넉넉하지는 않으나 유독 인연이 닿지 않음도 없지 않다.
하립이 봐도 부아가 치미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 아무리 봐도 합격이 불가능해 보였던 이가 합격의 방(榜)이 붙은 것을 볼 때 하립은 맥이 탁 풀리곤 하였다. 시험관이 누구냐가 문제다. 그런데 하립은 시험관의 행운이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아는 시험관이 들어오면 컨닝이 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시험지 자체를 바꾸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몇 년 전엔 망나니로 소문이 났던 이가 장원을 한 사건이 터졌다. 시험지 부정사건을 무마하려고 장원을 자치한 박무영(가명·朴武榮)은 사실은 신동이였다는 소문까지 퍼트렸다. 부정사건은 끝이 없다. 문제는 괜찮은 자리가 이천 여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괜찮은 자리에 앉으려고 동인(東人)·서인(西人)으로 갈리어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 겉으로는 학문을 중심으로 학파(學派)를 이루어 패거리가 되어 상대파를 비난하여 조정에서 내쫓고 그 자리에 자기파가 들어가는 권력쟁탈전이 일어났다.
생존경쟁이다. 이런 와중에 동인이든 서인이든 어느 쪽이던 서야 한다. 그렇게 하여 최소한의 방어망 속에서 자신의 진로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하립에겐 그런 지원 세력이 없었다. 한양에 오르내리길 수십 번을 했으나 끝내 등과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초시는 200~300냥이면 합격여부가 가능하다. 생원·진사로 늙어 죽는 향반이 수두룩하였다. ‘듣자니 서울의 화려한 집에는/ 문학하는 선비가 많다지요./ 문장은 비단에 수놓은 듯 하고/ 풍화는 청아가 무성하다지요./ 재주는 구양수(歐陽脩:1007~1072)와 소동파(蘇東坡:1037~1101)가 맞서고/ 시는 이백(李白)·두보(杜甫)와 같다지요./ 오로봉(중국 여산 동쪽 오로봉) 빌어다 붓으로 삼고/ 한강물 끌어다 글은 쓴다지요.’ 《낭군께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셨기에》다.
삼의당은 시의 내용처럼 일필휘지로 과거 시험지를 서서 등과를 학수고대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립의 과거 운은 향시까지다. 과거부정사건은 사회체제를 위협할 정도다.
삼의당은 오로봉(봉우리)으로 붓을 삼고 한강물로 먹물로 하여 왕희지(王羲之)의 필치로 율곡이이처럼 청산유수 같이 써서 장원급제로 유가(遊街:합격자 축하행렬)하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립의 학문이 높아지는 것과는 달리 합격의 기대감은 반비례 되어감을 삼의당은 피부로 느껴왔다.
간간히 두실의 편지가 한양에서 하립의 소식을 전해왔다. 삼의당의 옛 영화 재현의 열정을 하립은 미처 100%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 식년시(3년마다 치르는 과거)를 마지막으로 그때 등락여부에 만족하기로 결심하였다. 삼의당은 과거등과에 인생을 걸다 삶을 모두 잃을까 두려워서다.
그들은 벌써 옛 영화 재현에 사반세기를 투자했으나 향시에 머물러있다. 18세의 신혼부부의 야망은 향시의 여울목에 이르러 더 나가지 못하고 개미 쳇바퀴 돌 듯 돌고 있는 것이다. 삼의당의 결심이 필요한 때다. 삼의당의 결심이 없는 한 하립은 남원과 한양 길에서 삶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게 될 것이다. ‘조용히 창밖으로 나와 거니니/ 창밖의 해가 더디기만 하구나./ 꽃 꺾어 머리에 꽂으니/ 벌과 나비가 지나가다 기웃거리네.’ 《꽃을 꺽으며》다.
여자는 그러하다. 꽃을 꺾어 아름답게 꾸미면 벌 나비가 날아들어 꿀을 따며 즐기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삼의당은 사랑하는 남편 하립은 과거준비로 산사 아니면 한양에 보내 사실상 별거나 다름이 없다.
낭랑 18세에 만나 운우지락으로 날 새는 줄 모를 꿈결 같은 시기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면 반쪽을 찾아 몸부림 칠 때다. 삼의당도 밤마다 하립이 아쉬울 것이다. ‘얼굴도 붉고 꽃도 불어서/ 마주 대하니 둘 다 붉구나./ 일색이고 도 일색인데/ 붉은 얼굴이 붉은 꽃보다 더 예쁘구나.’ 《꽃을 마주하고》다. (시옮김 허경진)
삼의당은 하립이 향시에 머물러있자 과거 포기 쪽으로 마음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 애기를 적당한 시기에 말해야겠다고 마음의 준비가 삼의당은 필요하다. 한날한시에 태어나 결혼까지 결심한 것은 화려했었던 선대 영광의 재현이 가능하리란 희망도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반세기가 흘러 겨우 향시에 올라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상황에 삼의당은 눈물을 머금고 화려한 야망을 접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올가을엔 온통 황금 들녘이다. 삼의당과 경재 시아버지의 지원으로 거름 주고 여름에 피 뽑아 준 2천여 평의 논에도 올 곧게 벼가 영글었다. 그날도 삼의당은 오전엔 밭에서 일하고 오후엔 논에가 벼를 베고 해가 서산에 걸리자 터덜터덜 무거운 발길로 집을 향하고 있을 때다. 동구 밖의 한 사내가 보였다.
하립이다. “미안하오!” 사나이 음성이 아니다. “아무 말도 마세요!” 삼의당은 남편의 말을 막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난 그들은 사반세기 전 화촉동방으로 돌아갔다. 뜨거운 욕망은 이성적 판단을 앞질렀다. 삼의당은 하립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 여인의 욕정이 폭발하자 사나이 정욕도 맞불을 태운다.
제2의 화촉동방의 열기는 날 새는 것도 잊었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소!” 하립의 정욕은 여인의 잠자던 욕정을 일깨워 새벽닭이 울 때가 돼서야 겨우 진정 되었다.
새벽닭 울음에 하립이 깊은 잠에서 깼다. 알몸인 삼의당이 품에 안겨있다. 사내 심볼은 여전히 빳빳이 새벽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하립의 손이 삼의당의 사타구니로 갔다.
여자의 몸이다. 사내 손이 닿자 번개같이 반응이 왔다. 남과여는 다시 낭랑18세로 돌아갔다. 나이를 생각하지 않은 낭랑18세 육체는 아침안개처럼 초저녁과는 달리 일합(一合)으로 힘없이 격정을 잠재웠다.
2017-10-25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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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2> 김삼의당(金三宜堂) <제10話>
하미(둘째딸)가 화촉동방을 치르고 시집으로 간 집안은 강남으로 떠난 제비 둥지 모양 스산하기까지 하다. 하미와 남편 하립까지 있을 땐 온갖 꽃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집안의 행복을 축복해 주는 분위기로 느껴졌는데 그들이 떠나자 똑같은 풍광이 비웃음 같이 느껴졌다.
삼의당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괭이를 어깨에 메고 밭으로 나갔다. 새싹들이 파릇파릇 대지를 뚫고 새 생명을 신고하고 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이다. 문득 처녀 때 추억이 떠올랐다.
이웃집 아이들과 바구니를 들고 산과 들로 냉이와 고들빼기를 캤던 장면이 눈앞을 가렸다. 광한루에 가서 산수유 밑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던 장면들도 동시에 어제일 같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자 밭에서 일손이 잡히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부녀가 비운 자리가 너무 컸다. 밭에 나갔던 며느리가 점심때가 되지 않았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마당을 서성이던 시아버지와 마주쳤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보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 한마디도 없이 사랑채로 들어갔다. 시아버지 뒷모습에서 왜 일은 하지 않고 벌써 들어왔느냐는 분위기를 느꼈다.
삼의당은 방으로 들어가 수건도 벗지 않고 벌러덩 누웠다. 하미가 훌쩍이며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떠나던 모습이 20여년 전 자신이 친정집에서 어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떠날 때가 떠올랐다.
여자 팔자다. 금지옥엽으로 키워 시집보내면 성씨(姓氏)도 없어지고 남의 집 사람이 되는 것이 당연시 하는 풍습이 삼의당은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에 자꾸 걸렸다. 남편과 옛 영화 재현에도 해가 갈수록 회의감이 들어갔다. 본인이 바라는 옛 영화 재현의 열망만큼 하립은 그렇게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자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곤 하였다.
지금 마음이 그러하다. 한양으로 떠나가던 남편의 뒷모습이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아내의 성화를 못 이겨 떠밀려 마지못해 가는 뒤태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집에 들려 며칠을 마음껏 운우지정을 즐기고 떠날 때마다 마음은 여자 옆에 두고 몸만 덜렁덜렁 떠나가는 모습처럼 보여 삼의당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삼의당의 마음도 더 무거워져 갔다. 이번의 남편 뒤태를 보고는 ‘과거를 포기해야겠다.’ 쪽으로 마음을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되지도 않을 일 계속하다 보면 오히려 좋게 만나 백년해로를 약속한 부부관계에 발목이 잡힐 우려도 삼의당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농부 삼의당은 아침에 논밭으로 나가면 해가 떨어질 무렵에야 집에 들어오곤 하였다. 허둥지둥 저녁을 지어 시아버지께 올리고 몇술 뜨고 방으로 들어가면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런데 생리가 끊어지고 체한 것 같이 속이 더부룩하면서 메스껍기까지 하였다. 배도 조금씩 불러왔다.
늦둥이다. 삼의당은 가슴부터 메어왔다. 아이야 삼신할머니가 주신 것이니 낳을 수밖에 없으나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아들을 출산하면 특히 시아버지가 좋아하겠지만 또 딸을 낳으면 친정으로 돌아가야 할 형편이다.
대(代)를 잇지 못하면 소실이라도 들여야 할 정도로 하씨 집안은 가난하지만 가문의 적통(嫡統)을 중시하였다. 삼의당이 하씨 집 며느리로서 옛 영화 재현에 힘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들을 낳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책무다.
그래서 지금 배가 불러오고 있는 것이 꼭 아들이길 삼의당은 선조님들에게 밤마다 정화수 기도를 하고 있다. 하립이 서울에서 오기 하루 전의 꿈도 예사롭지 않다. 광한루 완월정(연못) 앞을 친구와 거니는데 갑자기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가 튀어나와 품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꿈은 꿈이려니 생각했었는데 봄이 가고 여름이 되자 배가 불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왔다. 여름이 가고 또 가을이 지나 섣달그믐이 되어 해산달이 되었다. 마흔이 넘어 얻은 늦둥이는 생각과는 달리 순산하였다.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더 닮았다. 아버지인 하립은 기쁨보다는 먹여 살릴 걱정이 앞서는지 반가운 표정이 아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대를 이을 수 있게 되었다면서 전례 없는 행복한 표정으로 사당에서 몇 번이고 황공해하는 인사를 올렸으며 친정에선 아들을 못 낳다 늦둥이를 출산하자 대를 못 잇는 죄인의 심정을 털어냈다며 축하 미역과 쌀에 잉어까지 사서 보냈다. ‘석양에 자리 깔고 꽃 그늘 속에 앉으니/ 깊은 숲속 새소리 듣기 좋군요./ 막걸리 석 잔에 노래 한가락 부르니/ 청풍명월 주인의 마음이네요.’ 《낭군과 함께 읊다》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을 것이다. 하립이 화촉동방에서 뜨거운 살을 숨 가쁘게 섞으면서 철석같이 약속한 ‘옛 영화 재현’을 실현하여 말년에 고향으로 귀향하여 만화방초가 흐드러지게 핀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멋진 노년을 꿈꾸었을 터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은 오뉴월 남가일몽의 상황으로 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 와중에 불혹(不惑·40세)을 넘겨 늦둥이를 출산하였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삼의당은 기쁘기도 하지만 아들(河榮進)의 장래 걱정이 앞섰다. 끼니가 간데없는 살림에 입신양명 하도록 뒷바라지가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영진은 외가 탁영 김일손과 친가 경재 하연의 장점만 속 빼 닮아 걷기에 앞서 말을 하고 두 발로 걷자 할아버지 서재에 들어가 글을 읽기 시작하였다.
영재다. 친 할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외할아버지까지 신이 나서 “영진이는 영의정 감이야! 우리가 힘을 합해 과거를 도웁시다.”라고 손을 맞잡고 다짐하였다. 늦둥이로 인해 웃음을 잃었던 양가에 희망의 등불이 켜졌다.
삼의당도 하늘을 뚫는 기쁨이 넘쳤으나 어른들 앞이라 입을 열지 못하고 표정까지 숨겼다. 늦둥이에다 먹는 것도 신통치 않아 젖꼭지를 물고 칭얼댈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가난한 향반 늦둥이 어미의 처지다.
2017-10-18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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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71> 김삼의당(金三宜堂) <제9話>
결혼준비에 온 집안이 분주하다. 둘째딸 하미(河美·가명)를 시집보낸다. 과거준비로 한양에 간 하립은 결혼 날짜를 2~3일 앞두고 내려오기로 되었다. 없는 살림에 결혼 준비라 해도 사실상 크게 할 일이 없다. 머리까지 잘라 팔아 남편 과거 뒷바라지를 하고 있으나 딸 시집 갈 때 주려고 장롱 속 깊숙이 감추듯 넣어두었던 것을 주려한다. 옥비녀와 쌍가락지다. 이번엔 시집가는 둘째딸 하미에겐 옥비녀를 주려한다. 맏딸 하련(河戀·가명)은 쌍가락지를 주었다.
1787년 어느 봄날이다. 꽃 궁궐로 소문이 난 삼의당의 집은 이름처럼 온통 봄꽃으로 병풍이 되었다. 이번에 시집가는 둘째 하미는 꽃 궁궐의 공주처럼 아름답고 곱다. 딸은 그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과 같이 하미는 삼의당을 쏙 빼닮았다. 이웃마을 심연택(沈演澤·가명)의 자제가 몇 년전부터 하미를 따라 다니는 것을 삼의당은 눈치를 챘다.
심씨네도 향반 처지다. 향반 집 딸을 따라 다니는 상대가 고관대작의 자제 일리가 없다. 삼의당은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으나 당사자의 뜻에 따라 만남을 인정하여 화촉동방을 치르게 되었다. 내실엔 하미의 화촉동방이 차려졌고 건넛방에는 20여 년 전에 초야를 치른 부부가 한 이불속에서 뜨거운 살을 비비고 있다.
하립이 삼의당의 손을 끌어당긴다. 화촉동방을 치르면서 만졌던 그 손이 아니다. 섬섬옥수는 간데없고 손등은 거북 등처럼 거칠고 딱딱해졌다. 하립은 삼의당을 뜨겁게 쓸어안았다. 하립의 뜨거운 눈물이 삼의당 얼굴에 주르르 떨어졌다. “왜 그래요? 당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소첩이 자청한 일인데요. 당신은 자책 하시지 않아도 돼요. 이 소첩의 정성이 부족하여 선대께서 우리의 희망을 들어주시지 않으신 거예요... 이번 과거엔 틀림없이 등과하실 거예요...” 삼의당이 하립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하늘엔 밝은 달빛이 가득, 뜰엔 꽃이 가득한데/ 꽃 그림자 어울린 데다 달그림자까지 어울렸네요./ 달빛인 양 꽃인 양 낭군님 마주보고 앉았노라니/ 세상의 영욕 따위야 누구네 집에 있는 이야긴지요.’ 《낭군과 달빛 속 노닐다가》다.
지금 삼의당은 하립의 뜨거운 품속에서 깊은 상념에 잠겼을 게다. 옛 영화의 재현이 집안의 최대 숙원이지만 그 꿈이 점점 멀어져 감을 분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하립은 품안에 들어온 삼의당을 뜨겁게 달구었다. 내실에선 둘째딸이 화촉동방을 차렸고 건넛방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한 이불속에서 뒹굴고 있다. 삼의당의 등살에 밀려 과거공부를 핑계로 산사로 한양으로 쫓기듯 다니면서 웅크리고 있었던 하립의 정욕이 일시에 폭발하였다.
하립은 아마도 내실에 딸의 뜨거운 화촉동방을 자신의 20여 년 전의 초야를 떠올리면서 삼의당의 마른 등걸 모양 뻣뻣해진 몸의 아래 위를 오르내리며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립은 이삼일 후엔 다시 한양으로 가야할 몸이다. 낮에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흥겨운 술잔을 돌려 아련한 흥취에 젖은 상태다.
한양 두실대감댁에 있을 때 고급 요리 집에 두실과 동행하여 가본 적이 있다.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기생을 봤으나 하립은 아내 삼의당이 눈앞에 어른거려 거들떠보지도 않자 “왜 기생이 마음에 들지 않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딴 아이를 부르지! 자네 과거 준비에 힘이 들거야... 그리고 집 떠나면 고생이야... 내 애기 해 놨으니 오늘은 여기서 객고도 풀고 아침에 집으로 오게....” 라고 했던 두실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하립은 아득히 멀어진 18살 때의 화촉동방을 떠올리려 했던 것이다. 복사꽃보다 더 곱고 함박꽃 보다 더 희고 수양버들처럼 낭창낭창한 삼의당을 떠올리며 숨죽였던 욕정을 채우려 한다. 그런데 지금 품안에 있는 삼의당은 그 옛날 여자가 아니었다.
석녀(石女)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리 달구려 해도 뜨거워지지 않았다. “소첩은 생각하지 마시고 서방님이나 즐기세요! 소첩은 여자이길 포기한지 오래예요! 큰딸과 둘째딸 출산 이후 소첩은 당신의 아내에서 두 딸의 어머니가 되었고 경재 시아버지 며느리로 살기로 결심했어요...” 삼의당의 목소리엔 울음이 섞였다.
하지만 사내는 달랐다. 아내 배 위에서 춤도 추면서 노래도 부르며 욕심껏 놀았다. 한양 술집에서 장악원 출신 기생과 합방했을 때를 떠올리며 한껏 흥을 돋웠다. 하립은 등골에 송골송골 땀까지 솟았다. “좋으셨어요?” 석녀모양 미동도 않던 삼의당이 뒤처리도 하지 않은 채 하립을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올시다! 당신이 어울려 주지 않으니 도무지 흥이 나야지... 당신이 많이 변했어...” 멋쩍고 아쉬운 말투다. “당신만 좋으셨으면 됐지요! 소첩은 그것을 첫날 밤 이후 잊고 산지 오래예요...” 삼의당의 말끝에도 여자로서 떨쳐버릴 수 없는 성정이 깃들은 어투였다.
삼의당은 지금 배란기다. 잠자리를 거부하고 싶었으나 며칠 후엔 다시 한양으로 떠날 남편을 뿌리칠 수 없었다. 또 삼의당은 딸만 둘을 낳았지 대를 이을 아들을 출산하지 못해 시아버지한테 항상 죄의식을 갖고 있는 상태다.
더 늦기 전에 하씨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도 남편이 욕심을 채우고 내려왔어도 당장 뒤처리를 하지 않음도 행여 임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효도는 내 어버이에게서 시작하고/ 공경은 내 형제에게 먼저 하는 것/ 참으로 이 두가지만 채울 수 있으면/ 천하에 다른 것 채울게 없네./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은/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지만/ 다섯 가지 가운데 신(信)이 가장 귀하니/ 그것으로 날마다 내 몸을 살피리라.’ 《무제 無題》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삼의당은 한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하립과 결혼하여 첫날밤 황홀했었던 마음을 아름다운 추억의 창고 속에 감추어 놓고 하씨 집안의 며느리로 충실함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하립의 여자로서가 아니라 하씨 집안에 들어와 대를 잇는 아들을 어떻게든 낳아야겠다는 마음에서 뒤처리를 미적미적 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을 마음껏 채운 하립은 코를 골며 금방 잠에 빠졌다. 삼의당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잠에 빠진 하립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서 야릇한 배신감이 생겼다. 좀더 적극적으로 풀무질을 해주었던들 고개 숙였던 욕정이 되살아 날수도 있었는데 하는 마음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남녀관계란 참으로 신묘한 것이란 생각이 들자 동창이 밝고 해가 불쑥 떠오름이 공연히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2017-10-11 0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