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 <100> 김부용(金芙蓉) <제13話>
세월은 유수와 같다. 연천은 부용을 위해 새로 마련한 집(녹천정)에 도착하자 구조 설명에 정신이 없다. “먼데서 오느라 수고가 많았느니라! 이 방은 내실이고 이 방은 서재니라! 후원 뒤엔 녹천정이란 초당을 별도로 지었느니라... 나는 그곳에 시우(詩友)들과 퇴근 후에 너와 함께 수창(酬唱)을 즐길 것이다. 이립(而立·30세)을 향해 가고 있는 너도 조용히 시도 쓰고 고전도 읽으면서 내 보필에 신경 쓰느라 못했던 공부도 더 하렴... 중국 고전도 내가 사신으로 갔던 친구한테 부탁하여 구했느니라.” 서재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진귀한 책들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다. “대감, 어린 천첩이 이렇게 호사스런 대접을 받아도 되나요? 천첩은 대감 옆에만 있는 것으로도 행복합니다...” “아니다. 이 늙은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너는 이 정도의 행복은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느니라...” 연천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녹천정에서 평양의 화촉동방처럼 첫 밤을 지낸지도 어느새 계절이 바뀌었다. 부용과 연천은 밤마다 꿈길이다. 연천은 팔십 청년 기분으로 이조판서로서 의욕이 넘친다. 부용과 헤어져 있을 땐 의욕이 꺾여 퇴근하여 밤이 두려웠었다. 그러나 부용을 한양으로 불러 온 후론 출근길이 즐겁고 해 떨어져 퇴근이 학수고대 되었다.
연천의 퇴근길엔 으레 한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왔다. 풍류에 뛰어난 부용을 자랑하고 싶어서다. 따라온 친구들은 말만 들었던 부용을 직접 보자 환호성을 터뜨렸다. “대단한 미모야!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야.” 라며 입에 침이 마르는 것도 잊은 채 칭찬이 하늘을 찌른다.
녹천정은 밤낮없이 수창(酬唱)대회다. 연천의 인기는 날마다 높아졌다. 원래 대시인에다 고매한 인품으로 중앙정부 요인들, 특히 북촌(北村)의 친구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에 재색을 겸비한 부용을 데려와 부러움을 독차지 하고 있다.
인생절정기다. 게다가 왕실의 신임도 높아 조선팔도에선 부러울 것이 없는 사대부 경화족(京 華族)이다. 이 같은 연천의 곁에서 밤낮으로 수발을 드는 부용은 문득문득 이 행복이 언제 낙엽 떨어지듯 예고도 없이 끝이 날까 방정맞은 걱정이 앞섰다. 너무나 많은 나이 차이 때문이다. 지금도 방사를 한 후엔 정신없이 코를 골며 새벽까지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연천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부용은 온몸이 엄동설한 알몸이 얼어붙듯 사지가 떨렸다.
연천은 부용이 갖가지 보약으로 수발을 들어주며 풋풋한 몸으로 사랑까지 듬뿍 받아 심신이 십여 년은 젊어졌다. 그런 자신을 알아차린 연천은 격무를 즐기고 있는 상태다. 그런 연천을 볼 때마다 부용은 상상했던 걱정이 현실이 될까 폭풍 같은 한숨을 토해냈다. ‘차가운 매화꽃이 가지에 혼자 달려 / 비바람에 시달리며 고개 숙였네. / 비록 땅에 떨어진다 해도 그 향기는 남아 있으니 / 흐늘흐늘 버들 꽃에다 어찌 견주랴.’ 《외로운 무덤》이다.
비록 반세기가 넘는 나이 차이의 조강지처가 아닌 소실이지만 자존이 강한 여류시인이다. 사대부집 무남독녀로 태어나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기생의 길을 걷다 경화족 백발노인의 소실이 되었으나 자존심은 꺾을 수 없다는 부용다운 시다. 그 같이 재색이 넘치는 부용에 연천도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듯 꽃다운 젊음에서 뿜어 나오는 회춘만 믿고 정사(政事)격무에 시달려 백발이 하루가 다르게 뭉텅뭉텅 빠지는 것도 잊었다.
새벽잠에서 깨어나면 그의 베개엔 흰머리가 새집을 짓듯 모였다. 연천은 오늘따라 일찍 퇴청하였다.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다. 평소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마침 부용이 잉어 탕을 끓여 놓은 상태다. 장안에서 제일 좋은 잉어를 골라 다렸다. “대감어른, 이제 출사는 그만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이제 이조판서까지 하셨으니 더 바랄 것이 없으신 신분이 아닐까요?” 부용이 초당에 앉아 장안을 내려다보며 연천에게 던진 말이다.
벼슬을 내려놓으란 얘기다. 당찬 말이다. 부용이 아니고선 도저히 얘기할 수 없는 내용이다. 연천이 잉어 탕을 마신 입을 약과로 뒷맛을 정리하고 부용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의외의 말에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부용도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당돌한 부용의 말에 연천이 슬그머니 표정을 바꾸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오늘까지 왔느니라... 네 말처럼 조만간 주상께 윤허를 얻어내야겠다.” 연천의 음성이 떨렸다. 자존심이 상했다는 신호다.
이제 약관을 벗어난 품안의 계집한테 충고를 듣다니 하는 심사일 게다. ‘꿈속에서 고향을 찾아갔다가 / 잠을 깨고는 고향 그림만 보네. / 그 누가 알 텐가 천리 고향의 달이 / 외로운 이내 몸 비추는 줄이야.’ 《새벽에 일어나서》다. (시옮김 허경진)
연천의 분에 넘치는 따뜻한 품속에서 호의호식이 갑자기 짐스러울 때도 있다. 자신은 점점 젊음이 용솟음쳐 가는데 연천은 새벽 베개에 흰머리가 수도 없이 빠져 있어서다. 그럴 때면 고향의 소꿉동무 문칠이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산과 들, 논밭에서 단련 된 칡 같이 울퉁불퉁한 팔다리가 눈앞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꿈속에선 문칠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왔다. 부용도 연천과 잠자리가 성에 안차면 문칠이를 불렀다. 비몽사몽이지만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하는 부용을 오늘 새벽 연천이 처음으로 보았다.
연천은 그날 이후 퇴임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출근을 해서는 마음이 흔들렸다. ‘이조판서 자리는 조선에 하나밖에 없는 벼슬인데 애송이 계집의 말 한마디에 헌신짝처럼 벗어던져?’ 연천은 고민에 빠졌다. 퇴청하여 부용을 보기도 싫다. 보고 또 봐도 더 보고 싶은 부용일 보기가 겁이 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퇴청 길에 육조 근처 피맛골로 발길을 옮겼다.
2018-05-02 09:36 |
![]() |
[문화] <99> 김부용(金芙蓉) <제12話>
하루를 여삼추로 보낸 세월 끝에 연천의 ‘상경하라’는 서찰을 받았다. 부용은 봉황의 날개를 얻은 듯 기뻤다. 하지만 겁도 났다. 성천에선 자신이 재색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한양에 가서는 그러하리란 보장이 없어서다. 한양엔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미인들이 장악원(掌樂院)에 즐비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이제 약관을 살짝 벗어난 난숙한 여인에게 팔십 줄에 접어든 노인의 정력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부용은 어느새 연천의 호의호식의 포로가 되었다. 연천도 나날이 달라지는 체력에 풋풋한 부용의 아름다움에 밤을 새고 나면 회춘(回春)된 기분이었다. 불로장생은 누구나 희망하는 꿈이다. 중국의 진시황이 아방궁을 짓고 이팔청춘 이전의 소녀들을 가까이 한 것도 회춘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연천이라고 무병장수를 꿈꾸지 않을 리 없다. 노래와 춤, 그리고 시와 미모에다 나이까지 50이나 어렸으니 부용은 연천에겐 하늘이 내려준 선녀로 불로장생에 금상첨화 적 존재였을 것이다. 연천은 바쁜 정무 중에도 틈을 내 부용이 상경하여 안락하게 거처할 곳을 마련한다. 경치 좋은 남산 녹청정이다.
한편 부용은 연천을 한양으로 떠나보내고 고향 성천으로 와 수양모 설매의 알뜰한 보살핌 속에 소꿉동무 문칠이와 이따금 어릴 때 추억을 되살리곤 했으나 공허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다. 부용은 이미 몸은 떨어져 있어도 연천과 일심동체가 되어 있었다.
부용은 오매불망 연천을 사모하는 마음뿐이다. 소꿉동무 문칠이가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하며 위로 반 농담 반의 말 “너 이제라도 소꿉장난이 아닌 진짜 내 각시가 되어라.”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평양 감영에서 예방 관속이 찾아왔다. 한양에서 온 손님이 만나자는 소식이다. 부용은 겁이 덜컥 났다. 지금도 기생인 줄 수청을 들라는 통고인 줄 알고 지례 겁을 먹었다. “나는 지금은 기생이 아니고 연천 소실이니라...” 부용이 서슬이 퍼렇게 실린 음성으로 예방관속을 나무랬다. “한양에서 오신 손님도 네가 연천의 소실인줄 알고 너를 보자고 하는 것 같더라.” 예방관속은 예전의 말투가 아니다.
부용은 한양에서 온 손님이란 말에 행여 연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감영에서 보낸 나귀를 타고 평양으로 떠났다. 가마가 아닌 나귀를 타고 떠난 길은 땅거미가 지고 하늘엔 별이 총총할 때에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감사가 툇마루에까지 마중을 나왔다. “먼 길에 부용 명기 수고가 많으셨네! 강참판(강순황)께서 평양에 온 김에 부용 명기를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하여 내 어려운 길을 부탁하였느니라. 양해하여 주시게...” 연천의 소실이 된 이후 관속들의 말투에서부터 품세가 확 바뀌었다. “아닙니다. 천첩 감영 나으리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올 수 있으나 연천어른 체면이 있어 주저하였사옵니다.” 부용다운 깍듯한 예의다.
지체 높은 선비는 부용을 재색을 겸한 여류시인으로 예우하였다. “내 일찍이 부용 시인의 절창 《부용당 청우시》에 매료된 사내요. 이곳까지 왔다 부용 시인을 못 보고가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아 감사 어른께 부탁을 했소이다.” 강참판은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얼어붙었던 부용의 마음도 봄 눈 녹듯 사라지고 가슴 깊이 숨겨놨던 여심도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부용은 경계의 마음을 거두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수창(酬唱)에 끼어들었다. 주거니 받거니 한 수창은 밤이 깊어서야 끝이 났다. 성별을 넘어 그들은 술과 시를 매개로 어느새 진정한 지우가 되었다. 서로 헤어지기 싫은 분위기다. 하지만 헤어져야 할 순간이다.
특히 강참판이 부용과 헤어짐이 안타까워 즉흥시를 썼다. ‘나의 혼은 그대를 쫓아가고 / 빈 몸만 문간에 기대섰네.’ 아쉬움이 가득한 시인의 속내다. 부용이 누구인가! 즉석에서 시를 썼다. ‘나귀 걸음 더디기에 내 몸 무거운가 했더니 / 남의 혼 하나 함께 싣고 있었소.’ 절창의 화답이다. 강참판은 “네가 연천의 소실만 아니었으면...”하고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집에 돌아온 부용은 그 유명한 회문체(回文體)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을 썼다. ‘여의니/ 그리워 / 길은 멀고 / 소식 늦네. / 마음은 거기 / 몸은 여기에 / 수건과 빗에는 눈물 / 님 오실 기약은 없네. / 향각에서 종이 우는 밤 / 연광정에 달이 떠올랐네. / 외롭게 자다 놀라 깨어난 뒤에 / 구름만 바라보며 임을 원망했네.... 중략 / 은장도로 여린 창자 끊기야 어렵지 않지만 / 신 끌고 나가서 오는 사람 눈여겨보네. / 아침저녁 바라보며 그리는 마음을 모르는지 / 어제도 오늘도 아니오니 나만 혼자 속는구나... 중략 / 어지신 임께서 마음 돌이켜 강 건너 돌아와서 옛 얼굴 그대로 촛불아래서 만나주소 / 연약한 아녀자 눈물 머금고 황천길 가서 슬픈 혼백이 달 속에 울며 만나지는 말게 하오’ (시옮김 허경진)
이 얼마나 절절한 호소일까! 사랑하는 연인이자 종교 같은 연천이 되었다. 연천이 없는 부용은 시체나 다름이 없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연천도 팔십 청년을 호언하며 꽃다운 부용을 부실로 맞아 하루도 보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임금의 부름(영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연천도 몸은 한양에 와 있어도 마음은 부용이 곁에 두고 왔다. 하루라도 빨리 한양에 데려오고 싶으나 거처가 문제였다. 가엾고 사랑스런 부용을 아무데나 거처하게 하고 싶지 않다. 북촌의 집 못지않은 아담하고 고풍스런 거처를 마련한 뒤 데려오려는 속내다.
호조판서(현 행정자치장관)의 정무를 보면서 틈틈이 짓기 시작한 녹청정은 쉽게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천의 불타는 집념으로 녹청정은 생각보다 일찍 말끔히 마무리가 되어 며칠 앞으로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연천은 서둘러 부용이 타고 올 승교(乘轎)와 노자도 넉넉히 보냈다. 성천과 한양은 엿새 거리다. 연천의 하루는 여삼추다. 연천은 기다리다 못해 말을 타고 마중을 가기로 했다. 엿새째 날에 사인교(四人轎)는 홍제(무악재)에 도착하였다.
마침 그때다. 흰 말이 사인교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연천이다. 부용은 사인교에서 내려 큰 절로 인사를 올렸다. “그래. 오느라 수고가 많았느니라... 어서 집으로 가자!” 연천은 말을 타고 부용의 사인교를 호위하듯 하여 남산 녹청정으로 향하였다.
2018-04-25 09:36 |
![]() |
[문화] <98> 김부용(金芙蓉) <제11話>
이틀이란 시간이 남녀 간의 방사 순간처럼 지나갔다. 정무 마무리와 짐을 챙기느라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운우지락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동창이 밝았다. “부용은 성천 네 집에 잠시 가 있거라! 내 한양에 올라가 네 거처부터 마련할 것이니라...” 부용에게 기다려 줄 것을 신신 당부하고 연천은 뻐꾸기 비둘기 둥지 떠나가듯 떠나갔다.
헛헛하고 상쾌하다. 부용이 호의호식이 짐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노류장화가 어느 날 갑자기 지체 높은 사대부 부실이 되어 둥지 안의 새가 되었다. 노류장화가 비록 신분은 낮고 사회적으로 대접 받는 신분은 아니지만 바람 부는 대로 다닐 수 있는 신세다.
하지만 사대부 부실의 신분은 어항속의 금붕어요 조롱(鳥籠)속의 새 신세다. 언제 어떻게 연천의 부실로 복귀 할지는 모르나 지금 부용은 자유의 몸이다. “어머니 부용이 왔어요!” 안으로 들어선 부용이 어머니부터 불렀다. “어- 네가 벌써 어쩐 일이냐? 기별도 없이 대감어른은 어쩌고 너 혼자 왔느냐?” “예 어머니 연천대감은 엊그제 한양으로 올라가시었어요.” “그랬구나. 그렇게 빨리 올라가시었어? 그래 너는 이제 끈 떨어진 연이 되었으니 어찌 하려느냐? 먹고 살 궁리는 되었느냐?” “어머니는 별 걱정을 다 하세요... 연천대감이 호조판서로 영전되셔 올라가셨어요. 저도 곧 한양으로 올라가게 될 거예요. 어머니도 제가 한양에 가서 자리가 잡히면 모셔갈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설매는 부용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이다.
달콤한 사내 말을 철석같이 믿는 부용이 한심하다는 눈치다. 부용은 긴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 현찰 외엔 믿으려 하지 않는 설매에게 구구한 설명을 한들 별 효과가 없어서다. 노복(奴僕·사내종)이 나귀에 싣고 온 짐을 풀어 평양에서 가져 온 설매 선물을 건넸다. “어머니 이것은 나이 많은 대감 사위가 장모에게 보낸 선물이에요... 중국 사신한테 선물로 받은 것인데 어머니에게 드리는 것이래요.” 원앙 한 쌍이 수놓아진 비단 한 필이다.
설매는 그때서야 눈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 흡족하다는 표정이다. ‘조양에서 한번 헤어진 뒤로 산천이 가로막혀 / 주렴 안이 침침한 채로 낮에도 걷지를 않았네. / 달은 생각도 없이 가볍게 문으로 들어오고 / 바람은 어찌나 당돌한지 또한 자리에 불어오네. / 걱정이 생기면 때도 없이 술을 따라 마시고 / 흥이 일어나면 시를 짓지만 끝내지 못한 것이 많아라. / 다정한 이 몸이라 도리어 병이 되었으니 / 봉래산 가자던 옛날의 약속이 구름처럼 아득하기만 해라.’ 《연천 상공께》다.
평양에서 헤어져 고향 성천에 와 있으니 연천(부군) 생각이 새록새록 할게다. 추우면 따뜻하게 해주고 더우면 시원하게 해주었던 할아버지 같았던 연천이 훌쩍 한양으로 떠난 자리는 봉황이 날아간 둥지 같았으리라... 하지만 재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소꿉동무 문칠이가 툭하면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어서다.
문칠이는 장가가서 돌 지난 딸까지 있어 부용은 부럽기 그지없다. 문칠이가 다녀간 밤이면 꿈에 나타나 사내구실을 하고 가 부용은 즐겁기도 하며 연천에겐 죄스럽기도 하다. 연천이 한양으로 영전해 가기 전에도 문칠이는 이따금 비몽사몽에 나타나 자기 여자인 냥 갖가지 체위로 욕심을 채우고 갔다. 부용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즐기는 태도다.
연천은 삼일이 멀다하고 서찰을 보내왔다. 부용은 서찰을 읽는 재미로 날을 새며 세월을 보냈다. 한두 달 세월이 쌓이자 서찰로는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동안 알뜰하게 보살피며 금지옥엽 사랑해 준 연천으로 부용은 어느새 사내를 알게 되었다. 게다가 소꿉동무 문칠이가 어엿한 장정이 되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문칠이는 떡대도 좋다. 이젠 장가들어 아이 아버지가 되어 돌 지난 딸을 안고 와 부용이 너를 쏙 빼 닮아 예쁘다며 너스레를 떨 때는 연천의 부실이 된 것이 은근히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부용은 “너 네 딸이 나 닮았다는 소문이 유 목민관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지? 말조심 해야 돼” 부용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연천이 유 목민관에게 부탁하여 소꿉동무 문칠이를 부용이 신경 쓸까 장가보내고 전답까지 마련해 주었는데 불륜설이 나돌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부용은 그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한편으론 안타깝고 목마르다.
자신을 닮았다는 계집아이를 안고 와서 너스레를 떨 때면 부아가 나다가도 차라리 문칠이 아내가 되어 농사짓고 오순도순 사는 편이 행복했을 것이란 생각에까지 이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부용은 허벅지를 꼬집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덧없는 세월은 또 흘렀다. 화려한 여름 꽃들이 지고 가을꽃들이 정원에 만발했다. 부용은 자신의 이름과 같은 연분홍 부용을 특히 좋아하였다. 정원 한가운데는 부용이 차지했고 그 주위로 분꽃·방울꽃·하얀 울릉국화 등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연천도 부용과 화촉동방을 치룬 후론 연분홍 부용을 끔찍이 사랑하였다. ‘정자 이름이 사절이라니 / 그 또한 의심스러워라. / 사절은 옳지 않고 / 오절이라야 마땅하리. / 산·수 모두 좋은데다 / 풍·월까지 어울린 곳 / 게다가 미인까지 올라 와 있으니 / 세상에 뛰어난 다섯이어라. 《사절정에 올라》다. (시옮김 허경진)
부용은 재색(才色)에 자신을 가진 듯하다. 《사절정에 올라》 시에 산·수와 풍·월에 자신의 미모를 넣어 오절이 마땅하다고 읊은 것을 보면 당당한 자존이다. 사대부 집 무남독녀로 태어나 10살에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 되어 동기(童妓)로 16살부터 기계(妓界)에 본격적으로 데뷔하여 성천을 넘어 한양에까지 이름을 떨친 명기(名妓)가 되기까지 세파에 시달리며 자존을 키웠다.
더욱이 연천의 부실이 되어 부귀와 영화를 분에 넘치게 누린 후 고향에 내려와 다시 연천의 부름을 기다리며 하루를 여삼추로 보내고 있다. 부용은 요즘 새삼스럽게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란 얘기에 민감하다. 부용이란 이름은 한량세계에 모르는 이가 없다.
성천에 부임하는 목민관은 의례 부용의 수청을 당연시 하는 상태다. 그 같은 사내들의 세상살이를 잘 아는 부용은 연천에게 부탁하여 기적(妓籍)에서 빠져 지금은 연천의 부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018-04-18 09:36 |
![]() |
[문화] <97> 김부용(金芙蓉) <제10話>
세월은 덧없이 흘렀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했듯이 연천의 평양감사 생활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훌쩍 2년이 지났다. 초여름 어느 날이다. 일상화 된 부용과 연천의 수창(酬唱:시를 주고받음)을 즐기고 있을 때다. 한양에서 영전 소식이 날아들었다.
호조판서(戶曹判書)다. 평양감사 임기가 꿈길 같이 지나갔다. 부용의 풋풋한 사랑에 한 달이 하루 같이, 일 년이 한 달처럼 훌쩍 흘러갔다. 영전 해 가는 연천은 가슴이 부풀었으나 부용은 걱정이 태산이다. 연천 역시 영전의 기쁨이 없지 않으나 마음에 썩 드는 것은 아니다. 부용을 떼어놓고 가야 할 형편이여서다. 당장 데리고 가고 싶으나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평양감사 동헌에 딸린 감사의 거처는 위세에 비해 간소하다. 보통 사대부 집 규모다. 유독 꽃을 좋아하는 부용이 들어온 이후 화단엔 철따라 꽃들이 만발하였다. 올 여름엔 더욱 꽃들이 화려하게 피었다. 부용이 풀 뽑아 주고 물까지 손수 주어 주인처럼 곱고 화려하게 만발하였다.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것을 감상하고 있는 부용을 등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연천이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다가갔다. “어느 꽃이 우리 부용이 마음을 사로잡았느냐?” 연천이 등 뒤에서 부용을 덥석 안았다. “어머! 기침이나 하시고 오시지! 애 떨어질 뻔 했잖아요?” “애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왜 겁나세요? 나으리... 천첩이 아이를 낳으면 골칫거리가 생길까 걱정 되세요? 한번 해본 소리예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부용이 연천의 품에서 빠져 나오며 방긋 웃음까지 보였다. “아니다. 내 자식을 낳을 나이가 지나지 않았느냐! 내 그럴 나이에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사실 나는 요즘 내 나이가 20년 쯤 아니 10년 정도 젊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란다... 만약 그렇다면 너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지 않겠느냐!” 연천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먹구름이 지나갔다.
부용이 겁이 덜컥 났다.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가 아픕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 부용이 떠밀다시피 해 연천을 내실로 몰고 갔다. 사내들은 여자 냄새에 약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용이다. 연천은 특히 부용의 체취에 사족을 못 쓴다. 할아버지와 손녀 같은 원앙 한 쌍이다.
초여름이지만 해가 떨어지자 평양의 바람은 제법 서늘하다. “대감 나으리 따끈하게 약주 한 잔 하시죠?” 부용이 준비되었던 완월주(玩月酒)를 꺼내 놓는다. “그거 좋구나. 그렇지 않아도 목이 컬컬한 참이었는데 잘 됐구나! 역시 내 생리를 네가 손금 보듯 알고 있구나?” 연천은 새삼스럽게 부용의 세심한 보살핌에 감탄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차디찬 물에 담가두었던 완월주다. 연천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천천히 드세요.” 부용이 술잔을 뺏으려 할 때는 술이 없는 빈 잔이다. “내 너에게 할 얘기가 있구나. 어제 한양에서 온 서찰(敎旨)은 내게 벼슬을 내린 교지니라... 호조판서인데 모레 한양으로 떠나야겠구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연천은 목이 멘 목소리다. “대감 나으리, 천첩 걱정은 마시고 이곳 정무나 잘 정리하시고 서둘러 올라가세요...” 부용은 너무 갑작스런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태연한 표정을 보였다.
부용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연천을 비둘기 둥지에서 뻐꾸기를 내어 보내듯 하려는 마음을 스스로 맹세하고 있다. 지금도 그러한 마음 상태다. ‘봄바람 부는 역로에 실처럼 비가 내리는데 / 날 저문 서루에서 《죽지사》를 부르네. / 그대 가면서 맑은 대동강 위를 보소 / 정전(井田)을 갈던 그 시대와 옷차림이 비슷하다오.’ 《임을 보내며》다.
부용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통곡하고 있다.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엉엉 울고 있다. “내가 올라가서 네가 거처할 곳을 하루빨리 마련하고 너를 데리러 올 것이다. 몇 달만 기다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부용은 연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먹을거리로 취급하고 욕정을 마음껏 채우고 떠난 세 사또도 비슷한 말을 하고 떠난 뒤론 서찰 한번 없는 노류장화(路柳墻花)로 보는 사내들의 심리를 알고 있어서다.
부용은 완월주에 얼큰히 취해가는 연천을 위해 거문고를 키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마친 부용은 황학무와 금사무를 연이어 춘다. 취기에 흥이 돋워진 연천은 거문고를 손수 켜 부용의 춤에 맞추었다. 밤은 덧없이 깊어갔다. “부용아! 이제 그만 자자꾸나. 오늘따라 몹시 피곤하구나...” 금사무가 중간쯤 추어져 갈 때다. 부용은 연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춤을 멈추고 연천의 품에 안겼다.
땀으로 범벅이 된 부용의 옷은 연천의 손이 닿자 스르르 벗겨졌다. 참으로 예쁜 몸매다. 춤으로 단련 된 몸매에 사내들의 손길에 긴장되었던 알뜰한 피부다. 얼음모양 투명하며 백설처럼 흰 피부에 욕정을 안 느낄 사내는 없다. 램프 불에 드러난 부용의 알몸이다.
어젯밤에 봤던 몸매가 아닌 듯 보였다. 삼단 같은 머리, 억센 사내들의 손에 시달린 앙증맞게 붙어있는 한 쌍의 유방, 물 흐르듯 안정된 배 밑에 봉긋이 솟아있는 불두덩 밑에 빗으로 빗어 내린 듯 한 거웃이 음모를 호위하듯 송긋송긋 솟아 있다. 상계(上界)에서 방금 내려와 목욕을 마친 선녀같다.
연천은 냉큼 손을 대지 못한다. 신성해 보이기까지 해서다. ‘성천을 한번 떠난 뒤로 그리움은 하염없는데 / 뜨락의 꽃은 비처럼 뚝뚝 떨어지는구나. / 처마 밑의 까치소리에 게으른 꿈을 깨고 보니 / 꿈속에 고향 가던 길이 실낱처럼 또렷해라.’ 《빗속에 느낌을 쓰다》다. (시옮김 허경진)
연천이 떠난 부용의 삶은 모래알 같은 심사다. 운우지락의 대상에 불과했었다고 생각되지만 봉황처럼 큰 그늘에서 세상 시름 모르고 살았던 몇 년이 꿈속같이 아쉽고 허전하다.
몇 년 동안 떠났던 성천의 집은 을씨년스럽고 낯설다. “한 몫 단단히 챙겼느냐?” 수양모 설매의 부용을 맞는 첫마디다. “어머니는 부용이 아무렴 어머니를 굶길까 걱정이세요?” 수양모 설매 등 뒤에 한마디 쏘아붙이고 부용이 방으로 들어갔다.
2018-04-11 09:36 |
![]() |
[문화] <96> 김부용(金芙蓉) <제9話>
봄의 평양은 색향(色香)이기도 하지만 자연풍광이 조선팔도에서 으뜸이다. 송(宋)나라 사신 서긍(徐兢·1091~1153)은 평양을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마치 무릉도원 같다’ 서술하였다.
고려는 고구려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고구려에서 ‘구’자만 빼서 국호로 정했다. 대륙으로 뻗어 나아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려는 정복욕과 고려청자를 만들어 내는 세련미에 서긍은 넋을 빼앗겼다.
부용은 서화담과 황진이 관계를 자신과 연천의 관계로 비유하기도 한다. 황진이는 서화담을 사랑하려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해 제자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부용은 평소에 존경했었던 연천을 사랑하게 되어 뜨거운 품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행복이다. 그러나 황진이는 서화담을 얻지 못한 반면에 그녀가 원하는 사내들을 품고 풍류와 시작(詩作)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용은 둥지 안의 새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육체의 허기가 있을 때마다 소꿉동무 문칠이를 떠올렸다. 마음의 간음이다. 문칠이를 목욕재계 시켜 깔끔한 옷을 입혀 놓으면 헌헌장부다. 연천도 옥골선풍 헌헌장부지만 팔십 줄에 가까운 모습에선 문칠이 같은 떡대는 찾아볼 수 가 없다.
부용의 분에 넘치는 몽니다. 하지만 고목의 그늘에서 아직 쭉쭉 창공으로 뻗어 나아갈 청죽(靑竹·翠竹취죽)이 시들어가는 느낌을 부용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말 타면 종 세우고 싶은 것이 인간의 속내다. 부용이도 더욱이 여자인데 그런 생각을 안했을 리 없다. 분에 넘치는 호의호식을 할 때면 더 좋은 조건의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부용이 성천에서 평양으로 온지도 어느새 해를 넘겼다. 겨울에서 봄이 되었다. 수양모 설매의 걱정을 깜빡 잊고 있었다. “대감 나으리, 소첩 성천에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부용이 연천의 가슴에 폭 싸여 병아리 같은 가슴을 팔딱거리며 말하였다. 연천의 손은 어느새 탱탱한 부용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다. 손아귀에 들어온 깃털이 뽀송뽀송한 새끼 참새인 냥 내려다보며 연천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연천엔 왜 가겠다는 거냐?” 자못 궁금한 표정이다. ‘긴 성을 끼고 대동강이 질펀하게 흐르네. / 난간에 기대었더니 고깃배라도 탄 듯 해라. / 어디서 눈발이라도 떨어지는지 / 물 빠진 모래밭에 흰 갈매기가 내리네.’ 《연광정에서》다. (시옮김 허경진)
부용의 시는 지금 읽어 봐도 장면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게 하는 자연주의적인 동시에 리얼성까지 담겼다. 자연주의적인 것은 그녀가 성적·신분적으로 사회적 제약에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도 작용했겠으나 성적(여성)차별에 더 무게가 실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 같은 사례는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이매창(李梅窓) · 황진이(黃眞伊) 작품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뜨락에 봄이 깊어 새소리 들리기에 / 눈물이 얼룩진 화장 얼굴로 사창을 걷었네. / 거문고를 끌어다가 《상사곡》을 뜯고 나자 / 동풍에 꽃이 지고 제비들만 비껴나네’ 매창의 《봄날의 시름》이다. 또한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청산》이다. 위의 시(詩) 모두 알레고리(allegory·비유,풍유)한 작품이다. 상대는 모두 터놓고 ‘내 남자다.’라고 자랑할 수 없는 지체 높은 상대다. 그래서 그녀들은 삼라만상에 비유하여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토로하였다.
부용도 그러했으리라... 호의호식으로 마음은 신선들의 세상인 천상(天上)에 가 있으나 몸은 속세의 시름과 욕정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다. 부용은 연천의 뜨거운 시선을 의식하며 다시 입을 떼었다. “대감 나으리의 깊은 사랑에 설매 어머니 생각을 그만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천첩이 보살펴야 할 노인인 것을...” 부용의 호수 같은 맑은 두 눈에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그득히 고였다. “허허... 내 그럴 줄 알고 성천의 목민관 유관준 사또에게 각별히 부탁했느니라... 그리고 너의 소꿉동무도 좋은 혼처를 구하여 결혼까지 시켰느니라. 너는 아무걱정 말고 천부적 시작(詩作)을 게을리 하지 말지어다!” 부용의 두 눈에 가득했던 눈물이 주르르 복사꽃 빛깔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연천은 부용이 성천에 있을 때 신경 쓸 대상들을 유관준을 통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 부용으로부터 알뜰한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초봄의 깊은 밤이다. 오늘도 연천은 애주가가 주막에 잠시 들려 몇 잔의 술을 마시듯 서둘러 맛있게 방사를 즐기고 깊은 잠에 빠졌다. 부용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 다리가 떨렸다. 육체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다.
부용은 서둘러 고향 성천으로 마음을 돌렸다. 일년 사이로 신임 사또에게 수청을 들며 괴로웠던 추억을 되살렸다. 그때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픈 추억이었는데 얄밉게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오뉴월 들소 모양 거친 풀무질이 지금은 아쉬움이 되었다.
첫 남자 우동진(禹東振·가명)은 부용의 붉은 처녀성 선혈을 보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부실(副室)이 되어 줄 것을 간곡히 청하기도 하였다. 그때 부용은 처음으로 사내를 아침 안개처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둘째남자 박지문(朴之文·가명)에게 먹이를 찾는 야수로 보여 어렴풋이 들었던 사내에 대한 그리움이 정나미가 떨어졌다.
셋째남자 김풍수(金風秀·가명)는 목민관이라 보다 주색잡기에 능한 한량이었다. 그런데 세 사내 중에 지금 그 남자가 문득 부용의 추억의 주인공으로 부각되었다. 그는 부용과 강선루를 자주 찾았다. 한량답게 부용의 거문고에 맞춰 춤과 노래를 아끼지 않았다. 옥골선풍의 헌헌장부는 아니지만 어딘가 귀티가 풍기는 풍채다.
지금 부용은 김풍수가 아쉬운 새벽녘이다. 연천은 초저녁에 맛있는 방사를 즐기고 꿀맛 같은 잠을 잔 뒤 새벽 정기로 오뉴월 엿가락처럼 늘어졌던 물건이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모양 봉긋이 잠방이를 들추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
2018-04-04 09:36 |
![]() |
[문화] <95> 김부용(金芙蓉) <제8話>
동창이 밝고 햇살이 방안 가득한데도 방안은 고요하다. 동창이 밝기 전에 정원에 나와 산책이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인기척조차 없다. 부용과 연천의 방 분위기다. 연천이 꽃다운 부용과 운우지락을 만끽했을 것이다. 부용이 연천의 소실로 들어온 후 연천은 아침 산책을 거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오늘이 그런 아침이다. 연천의 가슴에서 부용이 깊은 잠에 빠졌다. 연천의 손은 부용의 사타구니에 가 있다. 부용의 거웃엔 아직 사내 애액이 뒤엉킨 채 그대로다. 운우지락 후 뒷물을 하지 않아서다. 부용의 잦은 모습이다. 20대 여자와 80대 남자의 운우지락 후 상태다. 사내는 회춘(回春)하는 기분이고 여자는 청춘을 나날이 빼앗기는 기분일 게다.
아마 부용과 연천의 관계가 그러 했으리라... 사내 손이 계집의 음문을 장난감 다루 듯 눌렀다 잡아당겼다 집어넣었다 한다. 튀어나온 곳(클리토리스)을 눌러 보기도 하고 두 손가락으로 조몰락거리기도 해 본다. 그럴 때마다 계집은 움찔움찔 하면서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척 하고 있다. 사내의 기분을 깨지 않으려는 배려다. 계집의 음문을 가지고 놀 때는 대개 새벽녘이다.
새벽 물건이 일어나 있을 때다. 또 위로 올라가 힘없는 노라도 젓고 싶으나 노욕이라 생각하고 낮에 정무 볼 부담 없어 흥을 계속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내는 계집의 음문을 가지고 장난감 놀이를 즐기고 있는 터다. 사내가 날마다 음문을 가지고 장난감 놀이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초저녁 방사가 신통치 않았을 때 예외 없이 새벽에 계집의 음문을 괴롭히면서 즐거워하기도 한다.
부용이 고향 소꿉친구 문칠이 연천이 손장난 놀이를 할 때마다 비몽사몽에 나타나 사내구실을 하고 간다. 초저녁에 성에 안찬 정욕을 가득 채워주고 가는 것이다. 그럴 때 계집의 음문엔 다시 애액이 흘러나와 사내 손에 닿을 때 사내는 자신의 손이 사내구실을 한 줄 알고 즐거워 손을 떼곤 하였다.
부용은 연천이 음문을 가지고 장난감 놀이를 할 때엔 예외 없이 비몽사몽 상태가 되었다. ‘일엽편주를 모래밭에 대니/ 청산유수가 진사의 집일세/ 마을에 닿기도 전에 이름부터 좋아서/ 봄바람에 떨어진 꽃잎들이 뜨락에 가득해라.’ 《행화촌》(杏花村)이다.
부용도 기생 살이 보다 차라리 소실 살이가 편하리라 생각하고 나이 차이가 많더라도 고고한 인품의 연천을 택하였다. 하지만 마음에 흡족하지 않은 부분도 없지 않다. 여자는 사랑하는 이에게 목숨을 바치고 사내는 자기를 알아주는 상대에게 양심을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부용은 연천에게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각오가 되었다.
그런데 간간이 푸른 창공에 한조각 구름 인 냥 뜨거운 육체가 입술을 깨물도록 그리워질 때가 있다. 문칠이다. 문칠이는 담하나 건너 이웃집 총각으로 논밭 농사일로 굳은 떡대가 우람하나 순진하기 그지없는 어린아이 같다. 지금 부용의 몸뚱이는 그런 문칠이가 새벽녘이면 눈물겹도록 그리워졌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이다.
부용이 젊은 여자다. 마음은 호의호식하고 있어 콧노래가 절로 나와도 몸뚱이는 흥이 아닌 짜증이 날 때가 다반사다. 지금이 딱 그러할 때다. 토요일 저녁 일요일 새벽이 대부분 그러하다. 정무의 부담이 없어 과한 술에 흥까지 솟구쳐 직성 껏 부용을 즐기고 깊은 잠에 빠진다.
이때 문제가 생긴다. 과한 술은 물건이 쉽게 일어났다 성급하게 서두르다 초장에 풀이 죽어 버린다. 아랫목까지 데워지지도 않았는데 불이 꺼진 것이다. 여자는 이럴 때 화가 난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않은 물건 가지고 문턱만 간질이고 마니 속이 상한 것이다.
부용은 그런 방사가 허다하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에 불만을 터트릴 만치 그녀는 어리석지 않다. 아름다운 현실이 아니더라도 운명이려니 하고 인내하는 것이 상책이라 마음을 다독이었다. 외화내빈의 삶이다.
부용이 어느새 평양감사 연천의 소실 살이가 해를 넘겼다. 금강산엔 진달래 등 봄꽃들이 만발하였고 대동강엔 수양버들이 봄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대감 나으리, 언제 대동강 뱃놀이를 한번 가면 어떨까요?” 부용이 연천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말을 꺼냈다.
연천의 소실이 되어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는 연천이 부용의 마음을 세심히 알아서 챙겨주듯 챙겼다. 아비가 딸의 마음을 알아서 챙겨주듯 챙겼다. 그런데 부용은 그 챙겨주는 것들이 마음에 늘 꽉 찼던 것은 아니다.
세대차이다. 19살에 만나 한해가 지나 20살의 봄이다. 기생으론 환갑의 나이라지만 여자론 꽃다운 나이다. 연천이 불두덩 위로 올라와 재대로 일어나지도 않은 물건으로 헐떡일 때마다 부용은 떡대가 좋은 문칠이를 떠올렸다.
육체의 허기를 마음으로 풀려 해도 육체가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아서다. “대동강 뱃놀이를 가자는거구나! 그거 어렵지 않지. 나는 금강산으로 봄꽃 구경을 가려 했는데...” 연천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부용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하자는 대로만 있었기 때문이다. ‘닭은 복사꽃 핀 지붕 위에서 울고/ 말은 버드나무 문 앞에서 우네/ 나더러 봄 술을 권하는 이도 없어/ 지겨운 한 낮에 책도 집어 던지고 낮잠을 자네.’ 《낮잠》이다. (시옮김 허경진)
그렇다. 만족한 삶은 없다. 부용도 그러했으리라... 소실이 아닌 여류시인으로 깍듯한 예우로 수창을 하며 정신적 샹그릴라(천상의 세계)를 즐기고 있으나 문득문득 육체의 허기에 몸부림 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문칠이와 비몽사몽 상태에서 방사하는 꿈으로는 마음을 위로할 수 없어서다. 한해 두해 세월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몸과 마음의 요구가 점점 대담해져 부용이 걱정이 태산이다.
욕망의 길과 신념의 길이 있다. 지금 부용이 그 두 길의 선상에서 갈등한다. 욕망의 길에 만족은 신념은 텅 빈 공터다. 욕망의 길과 신념의 길이 모두 만족한 삶은 쉽지 않다. 어느 한쪽이 희생돼야 다른 한쪽이 빛을 낸다.
부용은 욕망의 길은 포기하고 신념의 길을 선택하여 주옥같은 그 많은 시를 남겼으리라... 부용의 창조적인 동시에 헌신적인 삶을 영위하지 않았던들 오늘날에 전해지는 그녀의 작품이 문화예술인들의 영혼에 뜨거운 에너지로 작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018-03-28 09:05 |
![]() |
[문화] <94> 김부용(金芙蓉) <제7話>
성천에서 평양은 하루해 거리가 아니다. 부용과 유관준은 꼬박 이틀 걸려 평양에 도착했다. 사또는 말을 탔으나 부용은 판교(板橋·기생이 타는 가마)를 타고 와 더욱 시간이 걸렸다. 초겨울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유관준이 서두르는 바람에 부용이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였다.
자기를 알아준다는 유사또의 말에 감동되어 속곳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고 서둘러 따라나섰다. 부용이 감기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기침까지 간간히 터져 나왔다. 성천과 평양 사이는 거리가 꽤있는데 속옷을 단단히 챙겨 입지 않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사부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유사또는 큰 절로 연천에게 인사를 올렸다. “허... 참... 늦기는, 이렇게 먼 길을 정사에 바쁜 목민관이 직접 찾아오다니... 서찰이나 보내면 됐지...” 연천은 온화한 웃음으로 제자 유사또를 맞았다. “참, 성천의 목민관이 자주 바뀐다는데 자네는 오래 좀 있게나... 그래 자네가 가보니 목민관이 자주 바뀌는 이유가 어디 있든가?” “예 사부님 아직 정무를 모두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참! 사부님, 소생에게 시가 아름답고 멋스럽다는 시 《부용당청우시》(芙蓉堂聽雨詩)의 작가 부용을 데리고 왔습니다. 지금 밖에 와 있습니다.” 부용이 밖에 와 있다는 말을 들은 연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문을 박차고 나갈 태세다. “어서 들라하라!” “제체례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사부님?” “여기는 동헌도 선화당도 아니고 내 처소니라... 어서 날씨도 차가운데 안으로 들라하라!” 연천이 성큼성큼 문가로 걸어가 문을 열고 밖에 서 있는 부용을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내 천재 여류시인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이야... 어서 이리 앉으시게!” 연천은 부용에게 아랫목을 내어주었다. “아니옵니다. 대감어른 천첩(賤妾)은 윗목도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아니올시다. 지금부터는 시기(詩妓) 부용이 아닌 여류시인 부용이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하시오! 아랫목에 앉아 몸을 녹인 다음 그 유명한 《부용당청우시》를 직접 낭송해주면 내 더 없는 행복이라 생각하겠소이다.” 연천은 부용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부용이 그때 불과 19살이고 연천은 77살이다. 무려 58년이란 세월의 강이 놓여있는 남과 녀의 관계다. 옆에 있는 유관준은 끼어들 분위기가 아니었다. 눈치 빠른 부용은 벽에 세워져 있던 거문고를 켜며 자작시 《부용당청우시》를 낭송하기 시작하였다.
천상의 목소리가 비 오듯 켜지는 거문고 소리와 어울려 방안은 금방 선경(仙境)의 세계로 바뀌었다. 연천은 흥에 겨워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자 이제 부용시인이 몸도 녹았을 터이니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지! 자자 내가 즐겨 마시는 소곡주를 마십시다. 소곡주는 백제 의자왕이 즐겨 마셨다하여 유명해진 술인데 구하기 쉽지 않은 술이나 오늘 같은 즐거운 날에 그까짓 소곡주가 뭐 대단한가...” 연천은 좀처럼 웃음이 없는 사대부인데 지금은 웃음이 만면에 가득하다.
옆에서 목석같이 분위기만 지켜보던 유관준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사부님! 실은 부용이 이미 연천 사부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생이 연당에서 연꽃을 감상하며 부용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우연찮게 사부님이 《부용당청우시》에 대해 말씀해준 얘기를 했더니 그때 이미 부용이 사부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이 평양감사 부임을 축하하는 뜻에서 부용을 선물로 데려왔습니다.” 선물이란 말에 연천은 그윽한 표정을 짓는 동시에 야릇한 어두운 그림자가 번개처럼 지나갔다. “유 목민관이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은 고마운데 선물이라니... 사람을, 더욱이 천하의 여류시인 부용을...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지...” 말끝을 흐린 연천이 부용의 표정을 살폈다.
이때다. 거문고 음률에 맞춰 《부용당청우시》의 낭송을 마친 부용이 입을 열었다. “천첩이 유 목민관에 애걸하여 따라왔습니다. 대감 나으리 마음에 드시면 지금부터라도 손발이 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감격하여 목이 멘 목소리다. ‘갈대밭에 바람 일어나니 이슬이 반짝이네/ 넓은 들판은 끝이 없어 시름겹게 하네/ 흘러가는 물처럼 빠른 세월을 어찌 견디랴/ 봄꽃 가을 낙엽에 이 몸만 가여워라’ 《시름을 풀다》다.
열 살까지는 무남독녀로 금지옥엽처럼 컸으나 갑자기 부모를 잃고 기적에 올랐다. 천애고아로서 생계가 막막한 부용은 기생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인생인지 따져 볼 겨를도 없이 발을 들여 놨다. 벌써 몇 년째다. 꽃다운 청춘을 오다가다 객고를 푸는 사내들의 품에서 아양을 떨며 보냈다.
이제 날개를 접고 둥지를 틀고 싶은 때다. 그때 마침 유 목민관이 연천을 얘기하였다. 날개를 접을 우연이자 절호의 기회다. 노 시인에겐 젊음이 필요했고 세상시름에 지친 천재여류시인은 큰 그늘에서 쉼이 절실할 때다. ‘가랑비에 엉킨 안개가 저녁 들며 개이자/ 참새들은 좋아라고 처마 끝에서 울어대네/ 화창한 봄 날씨에 초목들은 자라나고/ 쇄락한 기운이 강산을 새로 씻었네/ 바느질 할 생각도 없이 마음이 산란해서/ 여기 저기 손가는 대로 책장을 뒤적이네/ 시름은 나날이 게으름과 더불어 쌓이니/ 꽃바람이 성안에 가득 불어오면 어찌 할거나/ 《이른 봄》이다. (시옮김 허경진)
그렇다. 백프로 만족의 삶은 어디에도 없다. 부용도 이놈저놈의 품에서 마음에도 없는 아양을 떠는 기생의 삶을 접었으나 칠순을 넘어 팔순이 가까운 연천이 마음에 꽉 차지는 않을 것이다.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의 감성에 노인내가 나는 연천이 마음에 흡족하지는 않았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붕정만리(鵬程萬里)를 향해 끝없이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나 날개가 짧다. 세상 시름을 접고 시인의 삶만 영위하고 싶은 것이다. 성천에서 고단한 기생노릇이 너무 고달팠다.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으려는 찰나에 유사또가 나타났다.
유사또 역시 색이나 밝히는 목민관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부용의 생각을 유사또는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이틀 밤을 꼬박 유혹의 몸짓을 해 봤으나 끝내 부용의 이불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부용은 사내구실을 못하는 고자로 생각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기리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던 현실이다. 부용은 연천을 일찍 여윈 아버지 겸 기둥서방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2018-03-21 09:36 |
![]() |
[문화] <93> 김부용(金芙蓉) <제6話>
초겨울의 강선루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강선루 밑으론 비류강이 이슬 같은 물이 흐르고 홀골산 열두 봉이 손에 잡힐 듯 병풍처럼 버티고 있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 후 한바탕 춤을 추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눈에 보이는 듯한 꿈속 같은 곳이다.
그 아름다운 풍광을 두 손을 꼭 잡고 구경하는 한 쌍의 남녀가 있다. 부용과 유관준이다. 목민관과 기생의 사이가 아닌 다정한 연인처럼 보인다. “어젯밤엔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느냐? 내 숙소가 워낙 협소하고 구차하여 여자들이 편히 쉴 곳은 못되느니라.” “아니옵니다. 조용하고 아담하여 소녀는 꿀 같은 잠을 잤사옵니다. 나으리는 술을 드시다 거문고를 키시다 밤을 꼬박 새우신듯하옵니다.” “그랬느니라... 나는 혼자 자는 버릇이 있어 누가 옆에 있으면 잠을 이루지 못해 그러했느니라! 양해를 하려무나...” “아니옵니다. 소녀가 방해가 되었다면 다음부터는 부르지 마시옵소서...” 부용은 밤마다 불러달라는 말을 반대로 했다. 반어법이다.
370여칸이나 되는 강선루를 모두 구경하려면 며칠은 묵어야 한다. 산해진미의 음식을 먹어가며 팔도에서 나는 명주(名酒)를 마시고 주지육림을 즐기려면 그러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곳이다.
하지만 신임사또 유관준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사내다. 술과 거문고만 있으면 잘 노는 사내다. 여자가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부용은 아니다. 연천이 떠올라서 일게다. 부용이 연천의 소실이 된다면 정경부인의 반열에 오른다.
하룻밤 객고를 푼 다음 후에 정경부인이 되면 평생 얼굴을 못 들고 있을 상황이 눈앞에 어른거려서다. 하지만 강선루에 올라와서는 마음이 조금씩 변해갔다. 부용을 품지는 않더라도 춤과 노래는 즐기고 싶은 게다. 한양에서 놀던 끼를 해동제일루인 강선루에 와서 자제는 쉽지 않은 충동이다.
그때다. “사또 나으리! 바쁘신 일과에 소녀를 위해 이곳까지 오셨는데 술 한 잔이 없어서 되겠는지요. 소녀가 나으리의 허락도 없이 아랫것을 시켜 간단하게 주안을 준비해 왔습니다.” 비류강 근처 고목 밑에 자리를 폈다. 안주는 빈대떡에 순대, 술은 옥로주다. “안주는 간단하나 주위의 절경의 경치를 산해진미로 생각하시고 즐겁게 옥로주를 즐기시옵소서...” 부용이 새 신임사또에게 술을 따라드렸던 옥(玉)잔으로 권하였다.
유관준은 부용의 고고한 인물과 풍겨 나오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듯 따르는 대로 술을 마셨다. 부용도 몇 잔 마시고 흥에 겨워 성천의 고유 춤인 황학무(黃鶴舞)와 금사무(金獅舞)를 마음껏 추어 보였다. 유관준도 술이 얼근하게 취해 덩달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내로 태어나서 부용을 보고 색이 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지금 유관준이 딱 그러하다. 그들은 홀골산에 해가 걸리자 서둘러 하산하였다. 연인 같은 부용과 사또는 주막에 들려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맹세를 한 부부인냥 다정스럽게 막걸리와 순대로 저녁을 때우고 어제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다. 예방 아전이 서찰을 가져왔다. 연천이 보낸 유관준이 성천 목민관에 부임한 것을 축하한다는 서찰이다. 유관준은 빙그레 웃음 띤 얼굴로 부용을 바라보며 평양감사 연천대감이 보낸 서찰인데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스승의 서찰을 먼저 받았다고 말을 꺼냈다.
내일 당장 평양으로 축하인사를 떠나야겠다는 말이다. ‘성천의 붉은 기생이/ 푸른 비단 치마를 입었네/ 치마폭마다 봄바랑이 일고/ 걸음걸음마다 향기로워라/ 황학이며 금사자며/ 맞아서 춤을 추는데/ 강선루 위에/ 선녀들이 내려왔구나.’ 《기생들의 춤을 보면서》다.
거나하게 취한 유관준은 부용이 무섭기까지 하다. 자칫 순간의 취흥에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을 경우 평생 스승을 못 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온몸에 소름이 두드러기처럼 솟았다.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할 땐 유관준은 거문고에 시름을 실었다.
지금이 그때다. 강선루에서 부용이 욕망을 한껏 부추겼는데 유관준은 석남(石男)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용을 스승에게 선물로 받쳐야겠다고 마음먹고부터는 조심스럽고 정경부인으로 어른거려서다. “나는 동헌에 나가 할 일이 있으니 부용 너는 피곤할 텐데 일찍 자거라...” 사또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동헌으로 총총히 나갔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부용은 사또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원망스럽다. 뭇 사내들은 부용이하면 물불 안 가리고 부나비처럼 달려드는데 유관준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강선루에서 황학무와 금사무로 흥을 돋워 주었는데도 미동도 않는다. 부용은 춤을 출 때 살짝살짝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엉덩이까지 보였으며 저고리를 추켜올려 젖가슴도 보였다. 하지만 유관준에겐 통하지 않았다.
스스로 음문에 색기가 작동하였다. 소꿉동무 문칠이가 떠올랐다. 동갑내기지만 산으로 들로 나무를 하러 다닌 몸은 이젠 당당한 사내가 되었다. 그 문칠이가 나타났다. 지금 부용은 남자가 필요하다. 소꿉동무 문칠이는 소꿉놀이에서 엄마 아빠 역할 놀이도 한 사내다. “네가 어쩐 일이냐?” “으응. 내가 산에 갔을 때 잘 익은 산딸기가 있어 너 주려고 따가지고 왔어...” “그래! 고맙다.” 산딸기를 나누어 먹은 그들은 스스럼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때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나무그늘로 숨어들었다. 부용은 소나기에 옷이 흠뻑 젖어 전신이 드러났다. 문칠이는 거칠게 부용을 쓸어안았다. 풋사랑이다.
부용이 비몽사몽에서 깨어났을 때는 동창이 밝아오고 있었다. ‘서루에서 취하여 내려와/ 돌다리를 건너니/ 강바람이 비를 몰아와/ 차가운 창문으로 들어오네/ 부용 휘장 안에서/ 잠도 오지 않는데/ 가을 물 긴 하늘로/ 기러기 한 쌍이 날아가네.’ 《가을》이다. (시옮김 허경진)
그렇다. 열길 물속은 볼 수 있어도 한 길 사람 속은 볼 수 없다. 지금 유관준과 부용이 딱 그런 관계다. 불타는 청춘의 마음을 숨기고 고고한 체면을 지키는 사또와 절세미인을 몰라주는 부용은 꿈에서 그만 소꿉동무와 불장난을 치고 말았다. 꿈에서지만 부용은 유관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스스한 눈으로 잠에서 깨어난 부용에게 사또는 불쑥 말을 꺼냈다. 며칠 전부터 준비했던 말이다. “내 연천대감 축하인사에 너를 동행하려는데 네 마음이 어떠하냐? 지금 당장 떠나련다.” “나으리 소녀에겐 잠시 시간을 주셔야 하옵니다. 짐 정리를 해야 하옵니다.” 서둘러 짐정리를 한 그들은 평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2018-03-14 09:36 |
![]() |
[문화] <92> 김부용(金芙蓉) <제5話>
연인 같은 남녀가 연당 앞을 거닐고 있다. 코스모스 등 가을꽃들이 퇴장하자 아침저녁으론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기러기 가족들이 활모양으로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다. “춥지 않느냐? 옷이 여전히 여름옷이 아니더냐? 내가 한 벌 해주마! 마침 내가 한양에서 중국 사신한테 선물로 받은 비단 한필을 필요할 때 쓰려고 가지고 온 것이 있느니라...” “아니옵니다. 소녀 열이 많아 옷을 가볍게 입는 버릇이 있사오니 걱정을 거두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아니다. 나도 사내인데 한번 한 말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 오늘 저녁에 나와 같이 있다 내일 아침 갈 때 가져가거라! 그리고 내일도 날씨가 좋으면 강선루로 산책을 가면 어떠하겠느냐? 네가 시간이 나겠느냐?” “예. 나으리 소녀야 나으리가 동행을 원해 주신다면 영광이옵니다. 소녀는 이곳에서 강선루가 그리 멀지 않아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하면 비류 강가에 있는 사절정(四 絶亭)에 들려 세상 시름을 씻어 보내고 강선루에 올라가서는 돌덩이 같은 가슴을 활짝 열어 구름에 실어 보내곤 했었습니다.” “역시 시인다운 모습이구나!” “황공하옵니다. 소녀 초면에 나으리 앞에 버릇없이 굴어 죄송하옵니다.” “아니다. 구김살 없고 솔직한 네 모습이 더욱 아름답고 곱구나...” 해가 저물어 그들은 숙소로 돌아왔다.
사또 숙소는 간단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하다. “성천의 명 시인을 이렇게 초라한 곳으로 모셔서 미안하이... 내 스승 연천 김이양(淵泉 金履陽)께서는 선비가 재물을 탐하면 인격을 높이지 못하고 세상 시름에 매몰되면 학문의 깊이를 이루지 못한다 하셨느니라. 내 비록 그 경지에 까진 이르지는 못한다 해도 그분의 높은 뜻을 존경이라도 하려 하느니라. 아 참! 내 깜빡 할 뻔 했구나! 연천 스승께서 부용당청우시(芙蓉堂聽雨詩)를 네가 지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맞느냐?” 부용은 너무도 뜻밖이라 잠시 어리둥절하여 사또를 쳐다볼 뿐이다.
침묵이 잠시 흐른 뒤에 사또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부용의 시를 낭송하였다. ‘옥구슬 일천섬을/ 유리반에 쏟아 붓는구나/ 알알이 동그란 모양이/ 물나라 신선이 빚은 환약일세. 《부용당에서 빗소리를 들으며》다.
“사또께선 그 시를 어찌 아시옵니까? 그 시는 몇 해 전에 황해감사께서 부용당에 납시었을 때 마침 그때 비가 쏟아져 소녀가 끼가 발동하여 지었습니다.” “그래 역시 네가 지은 것이 맞구나...” 사또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표정을 아낌없이 보였다.
부용은 헌헌장부 사또가 오늘 저녁은 폭풍우 같은 운우지락을 즐길 것으로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지난 사또들이 짓밟은 옥문(玉門)도 이젠 정상이 되어 어느 사내도 감당할 상쾌한 상태다. 하지만 신임 사또 유관준은 밤이 깊어가고 옥로주(玉露酒)가 서너 병이 비어져도 잠자리에 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참다못한 부용이 먼저 “나으리 이제 곧 동창이 밝아올 때입니다. 취침을 하셔야지요?”라고 합방(合邦)을 유도하였다. “벌써 그렇게 되었느냐? 네가 피곤한 모양이구나? 내일 강선루로 유람을 가려면 잠을 자야겠구나. 나는 술을 좀 더 마실 테니 잠자리가 불편하더라도 네가 먼저 자려무나...” 사또는 부용을 여자로 보지 않는 눈치다.
부용은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성천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양까지 명기로 소문이 파다하여 물건 달린 사내들은 부용을 품으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이 사또는 썩은 나뭇등걸 보듯 하는 태도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저고리와 치마를 손수 벗어 횃대에 걸고 속옷 바람으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불 밖으로 백합보다 더 흰 두 다리를 내어 놓고 엉덩이를 치켜 올려 세웠다. 사내를 유혹하는 여자의 자세다. 부용 스스로 사내가 아쉬운 것이다. 그 동안은 세 사또를 비롯하여 숱한 사내들이 욕심을 채우고 갔으나 그녀 자신은 고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용에게 사내가 필요하다 몸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사내는 부용을 썩은 나뭇등걸로 보고 있는 상태다. ‘맑은 가을 달빛이/ 빈 다락에 가득 찼는데/ 취한 몸으로 조용히/ 조그만 배에 올랐네/ 차가운 강물 저 멀리로/ 한밤중에 무엇이 보이던가/ 가벼운 바람이 갈잎에 불어와/ 잠자던 갈매기를 깨우네“ 《강가의 밤은 고즈넉한데》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부용이 사또를 유혹해도 추호만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창밖의 부엉이 울음소리에 깜빡 들었던 잠을 깼을 때도 사또는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부용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로 보였다. 하지만 사내는 끝내 부용의 이불로 들어오지 않았다.
날이 새고 동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왔다. 부용이 일부러 잠결인 냥 이불을 걷어차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속곳 바람의 여체를 드러냈다. 뭇 사내들이 주무르고 빨아 불룩 나온 앞가슴에 백합보다 더 희고 얼음장처럼 투명한 두 다리를 그대로 보였다.
사내는 마른 침을 삼키고 거문고를 켜기 시작하였다. 부용은 자는 척 하면서 헌헌장부 신임사또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네 놈이 그렇게 버텨봐야 결국 내 음부로 들어와 고개를 숙이고 말거야... 네 놈도 물건이 달려 있겠지!”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별렀으나 사내는 이불속으로 끝내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닭 울음소리에 정신이 퍼뜩 드는지 켜던 거문고를 술상에 기대어 놓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엔 별들이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반짝이고 있다. 이불 속의 여자를 방에다 두고 나와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들어가 폭풍우 같은 욕정을 채우고 싶으나 입술을 깨물고 참고 있는 것이다.
존경하는 스승 연천의 여자로 만들려는 속내다. 급한 마음에 운우지락을 즐기면 ×동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용은 이불 속에서 사내가 덤벼들면 온갖 체위로 뼈를 녹이는 즐거움을 주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사이 비몽사몽에 수양모 설매가 나타나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 잡아끌어서라도 합방을 해야지!”라고 다그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에는 혼자 덜렁 누워 있으며 술상 옆에는 거문고가 부용을 지키듯 외롭게 서 있다.
2018-03-07 09:36 |
![]() |
[문화] <91> 김부용(金芙蓉) <제4話>
신임 사또(유관준 劉寬埈)가 부임한지 일주일이 지났으나 부용을 불러들이지 않는다. 전임 사또들은 부임하자마자 기생 점고(點考·기생이름 열거)를 하며 그녀들을 총동원하여 성대하게 환영회를 여는 것이 관례로 되었으나 이번 사또는 사뭇 다르다.
신임 사또 유관준은 부임하자마자 육방 관속을 동원으로 불러 정사(政事)파악에만 열중이다. 그러길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다. 그동안 설매의 성화에 밀려 부용은 매일 목욕재계하고 꽃단장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부임 일주일 만에 사또의 부름을 받았다. 부용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동안 네 사또들은 낮엔 목민관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헛기침을 해가며 거들먹거렸으나 밤엔 부용의 육체에 혼백을 빼앗겼다.
더욱이 사장(詞章·시가와 문장)에서는 체면 유지에 급급하였다. “부용아 너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면 후일에 큰 후회를 할 것이니라...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느니라! 이번에 온 사또는 젊은데다 한양에서 알아주는 사대부라고 부임하기 전에 소문이 파다했다.” 설매는 입에 게거품까지 물었다. 부용은 그 소문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부용은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사장학을 시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사또가 보내온 가마는 평교자(平交子)로 종일품 이상이 타는 것으로 뜻밖의 예우다. 부용의 가마는 분 냄새가 진동하는 내밀한 방이 아닌 춘당지(春塘池)에 있는 연당(蓮堂)이었다. 해질 무렵의 연당은 그림같이 아름답다.
올해 따라 연꽃이 어느 해 보다 탐스럽고 아름답게 피었다. 꽃과 꽃 사이론 금붕어들이 쌍쌍이 노닐고 있어 정욕을 한껏 북돋아주는 분위기다. 더욱이 천하의 부용을 보고도 색욕을 느끼지 않는다면 설매의 말마따나 고자일 것이 분명하다. ‘맑은 노래 한가락을 바다와 하늘이 내려주고/ 붉은 빛 열두 난간을 달빛이 띄웠네./ 운모 병풍 머리 은 촛불 아래에서/ 미인의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나네.’ 《부용당》이다.
부용은 비록 기생 신분이지만 자신감에 찬 당찬 꽃다운 여인이다. 지난 네 사또들에겐 부름을 받고 객고를 푸는 여자에 불과 했다면 이번 사또에겐 당당히 사대부 대(對) 기생신분을 뛰어 넘는 여류시인의 자격으로 사장(詞章)을 얘기하고 싶은 충동이 앞서 나갔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힌 사장을 총동원하여 신임 사또와 겨뤄보려는 태도다.
사내가 여자를 보면 우선 육체의 허기를 채우려 한다. 앞서 거쳐 간 목민관들이 하나같이 그러하였다. 부용이 신임 사또와 하룻밤을 자고나면 며칠은 끙끙 심하게 앓는다. 몸이 천근만근이 된데다 마음까지 상해 문밖출입을 사나흘 하지 않는다.
밑이 빠지는 것 같이 아프기도 하고 마음에도 없는 사내 물건과 노폐물(애액)이 자신의 소중한 물건에 들어와 인정사정없이 육두질을 해 대도 싫은 내색을 할 수 없는 처지가 한없이 섧고 세상의 사내들이 동물처럼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들이 배위에서 육두질을 하며 헐떡일 땐 맹수가 먹이를 뜯어 먹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여 소름이 끼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부용은 자신도 모르게 ‘아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내 가슴을 밀쳐내며 소리를 질러 대면 기분이 좋아서 그러는지 알고 육두질을 사내는 더욱 거세게 몰아쳤다. 증오스럽기 까지 한 찰나다.
들어와 있는 물건을 쑥 빼고 벌떡 일어나고 싶어도 그 뒷감당이 무서워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참아야만 하였다. ‘하늘이 맑은 바람을 보내 시원한데다/ 좋은 밤이라 달그림자까지 둥글어라.’ 기러기는 길이 멀다 걱정하고/ 갈매기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하네./ 강가의 풀들은 의원 덕분에 알았고/ 산속의 꽃들은 그림 대신에 보았네./ 마음속의 일을 조용히 생각하느라고/ 붓을 멈추고서 구름 끝을 바라보네.‘ 《붓 멈추며》다. (시옮김 허경진)
남과 녀의 결합은 사랑이 매개다. 하지만 기생과 사대부(남자)와의 결합은 재화다. 또한 고을 사또에게 기생의 수청은 자의와는 상관없는 일종의 의무다. 기생의 운명이다. 부용은 기생신분이다. 사장에 아무리 뛰어나도 기생의 신분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부용은 신임 사또와 사장을 겨뤄보려 벼르고 있다.
예방아전을 따라 부용은 연당에 도착하였다. 신임 사또는 연당 밑에 내려와 부용을 맞았다. “네가 부용이더냐?” “예 나으리! 소녀 부용이라 하옵니다. 불러주셔서 황공하옵니다.” “부용 네가 역시 소문대로 다르지 않구나? 내 좀 더 너를 일찍 봤어야 됐는데 정무 파악 하느라 좀 늦었느니라...” 신임 사또 유관준은 부용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스승 김이양(金履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부용이 김이양(金履陽)의 소실(小室)이 되었을 때를 벌써부터 염두에 두었던 터다.
제체례(除體禮·기생을 소개하는 예)를 마친 부용은 연당에 올라 유관준과 마주 앉았다.“ 역시 부용답구나... 오늘 저녁 나와 수창을 하면서 감로주(甘露酒)를 마시고 달구경을 하면 어떠하겠느냐?” 부용은 은근히 사장 대결을 희망했으나 헌헌장부 젊은 사또가 막상 제의하자 선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열흘 가까이 기다리고 기다린 신임 사또 만남이 수창이나 하잔 말이 나오리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신임 사또가 부용을 부르면 술이 거나하게 취해 맹수가 먹이를 잡아먹듯 밤새 아래위를 오르내리며 육체의 허기를 채우는 것이 수청의 전례였다. 그런데 오늘 맞는 목민관은 고자인지 부용을 보고 감로주를 마시며 달구경을 하면서 수창을 하잔다.
부용이 기녀생활 4년 동안에 처음 맞는 사내와 밤을 새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젊은 사내 본심이 언제 돌변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한껏 물오른 몸을 준비하고 있다.
2018-02-28 09:36 |
![]() |
[문화] <90> 김부용(金芙蓉) <제3話>
해가 홀골산에 걸리자 설매가 부산을 떨기 시작하였다. “부용아 아마 곧 연락이 오겠지! 너는 준비가 다 되었느냐?” “예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는 목민관을 모실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요!” 부용이 벌써 다섯 번째 사또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용을 거쳐 간 네 명의 목민관은 지천명(知天命·50)을 살짝 넘긴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만 앞서 배위에서 헐떡이다 제 풀에 지쳐 떨어지기가 일수다. 그런데 이번에 올 사또는 젊고 헌헌장부라 부용이 기대와 긴장이 동시에 되었다. 젊은이 혈기왕성하여 밤새 오르내릴 것이 뻔하니 걱정도 되는 동시에 살짝 기대도 부풀었다. 여자가 되어보고 싶은 것이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어도 부용에게 연락이 없다. 수양모 설매가 대문을 들락날락 야단법석이다. 행여 부용 대신 어느 기생이 수청을 들까 걱정이 앞서서다. 부용도 은근히 속이 상했다. 성천에서 자신을 넘어 신임 목민관의 수청을 들 기생이 있다면 부용의 자존심이 일시에 꺾인 사태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지고 새벽으로 접어들자 부용도 마음이 바빠졌다. 그렇다고 선화당(宣化堂)으로 달려갈 수는 없다. 예방(禮房) 아전이 아침에 와서 신임사또가 오늘 부임하여 오니 수청들 준비를 당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화당에선 정작 아무런 전갈도 오지 않고 있다.
화초장(花草欌·부용의 집)은 어느 때보다도 화려하게 꾸몄다. 대문 앞엔 청사초롱이 대낮 같이 밝혀졌고 정원의 작은 연못엔 금붕어들이 쌍쌍이 노닌다. 목민관이 선화당이 아닌 부용의 집으로 올 경우를 생각하고 내실을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원앙 한 쌍이 서로 마주보며 분위기를 띄웠다. ‘울타리 아래 노란 국화가 피어/ 먼 하늘까지 가을빛 한가지 일세/ 은하수가 기울어 북극성까지 닿고/ 달은 들추어내져 서쪽 다락에 걸렸네./ 돌아가는 기러기가 내 꿈을 흔들고 쓸쓸한 귀뚜라미가 나그네 시름을 자아내네./ 문장은 참으로 작은 솜씨이니/ 내 몸 돌보려는 계책이 치졸한 걸 늦게야 깨달았네.’ 《새벽에 일어나서》다.
여름이라도 성천의 새벽은 싸늘하다. 가을 날씨와 흡사하여 상념에 젖기에 알맞은 기온이다. 부용이 지금 그 상념에 젖어들었다. 앞서 네 명의 사또는 부용이 단골로 처녀 수청을 들었는데 이번의 목민관은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성천 제일의 부용을 부르지 않고 어느 년과 뜨거운 살을 섞고 있을까에 까지 생각이 이르자 온 몸에 열이 뻗쳤다. “엄마 아직도 선화당에선 아무 소식도 없어요?” 라고 소리소리 치고 싶은 심정이다. 자존심이 발기발기 찢기는 기분이다.
그때다. “신임 사또 그 자식 고자 아냐? 성천 제일 부용을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수양모 설매가 대문 밖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들어온다. 부용도 울화가 치밀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다. “어머니 이리 들어오세요... 오늘 아니면 내일 소식이 오겠지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부용이 오히려 설매를 위로하였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편하냐? 기생 열아홉 살이면 노인 측에 드는 거야. 언제까지 네가 성천 제일 기녀 노릇을 할줄 아느냐? 올해만 지나면 기생 환갑이란 스무살이 되는 거야. 너도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오뉴월 장다리 크듯 그는 동기(童妓)들이 수두룩해... 내가 듣기론 네가 어릴 때 모습하고 똑같은 동기가 선화당에 있다는 거야...” 턱까지 치밀어 올라온 가쁜 숨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긴 장죽에 엽연초를 담으면서 설매가 기염을 토해냈다. ‘거울 속의 여윈 얼굴이/ 세상 밖의 사람 같아라./ 차가운 매화 그림자는/ 대쪽 같아라./ 사람을 만나도/ 인간세상 일을 말하지 말라./ 그래야 인간세상/ 탈없이 산단다.’ 《스스로 위로 하다》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부용은 일찍이 세상을 알았다. 오십이 넘은 노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금지옥엽으로 컸으나 너무 일찍 세상에 던져져 세파에 익숙해졌으리라... 하지만 부용도 여자다. 지금까지는 성천에 새로 목민관이 오면 으레 자신의 차지로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전례가 깨지는 것 같아 부용은 울화가 치밀었다.
온 몸에서 열이 펄펄 났다. 당장 선화당으로 마음이 달려가잔다. 새로 부임한 사또는 학식도 있는데다 장래가 촉망되는 사대부란 말을 들어 은근히 기다렸는데 정작 임지에 와선 깜깜무소식이다.
하지만 부용은 아침에 일어나서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수청을 들란 소식을 기다렸다. “이 신임 사또 자식은 고자인가 아니면 아예 몽둥이가 없는 놈인가?” 설매는 날이 새면 대문을 들락날락하며 똥마려운 강아지 모양 안절부절 이다.
설매도 한때는 성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잘 나가는 명기였으나 이젠 퇴기로 부용의 뒷바라지를 하는 신세다. 부용이 어느새 이십 줄에 접어들자 설매는 걱정이 되었다. 부용이 한창일 때 한몫 잡아 노후를 준비해야 되는데 신임 사또가 부용을 부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부용은 설매의 밥그릇이다. 밥그릇에 밥이 가득하고 화대로 금은보화와 옥비녀 등이 들어와야 되는데 신임 사또는 아예 부용을 부르지도 않아 걱정이 태산이다. “부용아! 내가 직접 선화당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어느 년이 수청을 들었나...” “어머니 그러지 마세요! 이 부용이 체면이 있지 제발 며칠 더 기다려 보세요...” 설매는 마지못해 부용이 옆에 앉으며 장죽에 엽연초를 다시 채운다.
담배 연기가 이무기 모양을 하더니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설매는 담배연기 용을 보고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새로 부임한 목민관이 부용의 알뜰한 배려로 선정을 베풀어 한양으로 영전하는 상상을 했으리라... 설매가 부용이 잘되길 자신의 부귀영화 이상으로 염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신세가 안타까워서다.
설매도 한창 일 때는 사방팔방에서 오라고 하여 손사래로 자존심을 지키다 좋은 시절 다 놓치고 늘그막이 한심스러워 졌기 때문이다. 기생인생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설매다. 지금 부용의 아름다움도 비온 뒤에 화려하게 피어난 무지개 빛깔로 밖에 보이지 않아서다.
2018-02-21 09:36 |
![]() |
[문화] <89> 김부용(金芙蓉) <제2話>
어젯밤에도 부용은 잠을 설쳤다. 새로 부임하는 사또에 대한 소문이 날마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헌헌장부에서부터 계집에 사족을 못 쓰는 색골에까지 무성한 얘기가 날아들어 부용은 잠이 오지 않는다. 부용은 성천 목민관의 단골 수청 기생으로 되었다. 성천엔 3~40명의 기생이 있으나 부용과 견줄만한 기생은 없다. 과연 군계일학이다.
부용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강선루(降仙樓)에 올랐다. 강선루 아래로는 대동강이 지루인 비류강이 흐르고 있어 관서(평남)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이다. 비류강에 비친 강선루는 해동 제일 루로 불리며 명성을 날렸다.
1천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에 시설 또한 중국 사신들도 입을 떡 벌려 감탄을 하였다고 한다. 신성강 건너엔 홀골산의 열두 봉우리(무산십이봉)가 비류강에 비쳐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며 머리까지 감았다 하여 강선루라 지칭했다는 작명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무튼 부용은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우울할 때면 예외 없이 강선루를 찾았다. 오늘도 그러하다. 강선루는 성천객사 동명관 중에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여 부용과 닮았다하여 사또들이 즐겨 찾는 동명관의 부속건물이다.
동명관은 고구려 동명왕때 건축하여 고려 충렬왕때 개축되어 3백70여칸의 거대한 객사다. 객사엔 학선과·집선관·승진관·영롱관·봉래관·반선관·소요헌·헌허각·도명헌·노운각·강선루·십이루 등 빼어난 부속 건물들이 즐비하다.
중국 사신들이 오면 이곳에서 주지육림의 성대한 환대를 받는데 사신들의 등급에 따라 접대하는 기생과 장소가 결정되었다. 강선루에서 접대가 최고의 예우다.
성천의 사또들도 한양에서 지체 높은 손님이 오면 예외 없이 강선루에서 부용을 합석시켰다. 부용은 성천을 넘어 한양은 물론이고 중국의 사신들에겐 조선에 오면 품고 싶은 제일의 여인으로 회자되고 있다. ‘술이 지나치면/ 본성을 잃기 쉽고/ 시를 잘 지으면/ 사람은 가난하게 되네/ 시와 술을/ 비록 벗한다 하더라도/ 멀리도 말고/ 또한 가까이도 마오.’ 《술손님에게》다.
부용은 비록 나이 어리나 세상을 꿰뚫어 보고 있다. 네 살 때부터 글(한문)을 읽었으며 열 살때엔 당시(唐詩)와 사서삼경을 줄줄이 외는 신동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는 부용에게도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열 살 되던 해 가을에 아버지가 갑자기 병사했으며 이듬해 봄엔 어머니마저 아버지를 따라갔다.
무남독녀의 부용은 천애고아가 되었다. 가난한 선비집안의 무남독녀 천애고아 부용은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이때 등장한 노파가 퇴기 설매다. 설매도 한 때는 성천에서 알아주는 명기였으나 이젠 장죽에 엽연초를 넣어 피어 물고 전성기의 애틋한 얘기보따리에 시름을 달래는 퇴기다. 그때 부용이 갑자기 천애고아가 되어 그녀의 먹이사슬에 걸려들었다.
퇴기와 명기는 공생관계다. 설매는 요즘 말로는 매니저다. 그런데 새로 올 목민관은 헌헌장부에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사대부로 알려졌다. 설매는 어떻게든 이번 사또에게서 만 냥은 뽑아내야겠다고 작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용은 설매와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수양어머니인 설매와 부용은 항상 입씨름이 끊이지 않았다. 수청을 들 때 베개 밑 송사로 뭉텅이 돈을 뜯어내라는 주문을 입이 닳도록 하지만 부용은 사내가 주는 돈만 받아왔다.
기녀신분이지만 몸값을 흥정해 가면서 수청을 들 수는 없다는 자존감이다. ‘무산의 노란 단풍잎이/ 늦가을을 전송하는데/ 십이루에서 술잔 잡고/ 바람을 맞네/ 만섬이나 되는 시름을/ 눈으로 모두 씻어내니/ 물처럼 푸른 하늘에/ 구름만 떠 있네.’ 《강선루에 올라》다. (시옮김 허경진)
무남독녀 천애고아 천재소녀가 본 세상이다. 만섬이나 되는 시름을 술로 풀 수는 없을 터다. 특히 짓궂은 사또에게 걸리면 밤새 한잠도 못 잔다. 방중술의 비서(秘 書)인 《소녀경》을 읽었다며 갖가지 체위를 요구하는 사또도 있다. 시키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화대(花代)도 제때 주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행패(과중한 부역)가 돌아갔다. 그래서 부용은 새로 부임하는 목민관의 수청을 들을 때면 순한 양이 되었다.
사내들의 성향은 각양각색이다. 계집을 보면 다짜고짜로 섹스에 몰입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질이 급해 토끼모양 할딱할딱하다 잠에 빠지기도 하며 심볼을 넣고 밤새 들락날락하는 사내도 있다. 그래서 부용은 달다 쓰다 말없이 여자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부임하는 목민관은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란다. 그 사또가 오는 날이다. 부용은 밤새 꿈에서 새로 온 목민관한테 시달렸다. 그 목민관은 관음증 환자다. 시·노래·춤에도 능하고 재물까지 넉넉하다하여 부용은 수양어머니 설매 말대로 한 만냥을 뜯어 낼 작심을 하고 성심껏 모시려 했는데 그는 끝내 합방은 하지 않는다. 부용은 벌거숭이인 채 시를 읊고 노래와 춤까지 곁들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방사(房事)하지 않고 밤새 눈요기만 즐겼다. 부용은 화가 났다. 사내가 자신을 여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다. 밤은 어느새 동창이 밝아오고 있다. 사내는 여전히 부용의 얼음조각 같은 알몸을 즐길 뿐 품으려 하지 않았다. “선비님! 선비님은 이 부용이 여자로 보이지 않습니까?” 참다못한 부용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선비는 부용을 아래위로 훑어볼 뿐 미동도 않은 채 눈만 껌뻑일 뿐이다. 이때다. 인근 사찰에서 새벽 종소리가 나자 선비는 자리를 떴다.
남가일몽이다. 꿈은 꿈으로 끝나지 않았다. 부용의 마음은 더욱 헝클어졌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념에 빠져 들었다. 작고 후 한 번도 보이지 않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보여 몸 둘 바를 몰랐다. 새 사또에 대한 궁금증이 무지개 빛깔처럼 피어오르며 어느새 이젠 오랫동안 헤어졌었던 정든 님을 기다리는 자세가 되었다. 직녀가 견우를 기다리는 심사다.
2018-02-14 09:36 |
![]() |
[문화] <88> 김부용(金芙蓉) <제1話>
녹두꽃 빛깔의 하늘엔 새털구름이 몇 가닥 떠 있을 뿐 화창한 날씨다. 늦여름이지만 새벽공기는 달콤할 정도로 신선하다. 그런데 부용(金芙蓉·기명秋水·호雲楚·1820~1869)은 잠을 설쳤다. 신임사또가 열흘 후에 부임한다더니 모레 온다는 전갈이다.
환영을 준비하라는 전갈이 왔다. “부용아 새 사또가 모레 오신단다. 너도 준비를 해야겠다.” 수양모 설매(雪梅)가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부용은 엊저녁에 잠을 설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강선루로 나가 머리를 식히려고 채비를 서두르는 찰나였다. “어디 나가려느냐?” “예 어머니 머리가 아파서 강선루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려고요...”
“새 사또께서 모레 오신다는데 준비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번에 오시는 사또는 젊은 사또래. 인물도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로 인심까지 좋다는 소문이야! 젊은 사또가 열흘 후에 오신다더니 모레 오시는 것을 보면 네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모양이야... 이 기회에 우리 한몫 잡자! 어느새 네 나이도 열아홉이 되었어. 기생나이 이십이면 환갑이 되는 거야. 우물쭈물하다 너도 내 꼴이 되기 십상이야... 젊은 사또는 너를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들거야! 이때 한 만냥 받아내야 돼...” 부용은 설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천(成川)사또는 이상하게 자주 바뀌었다. 일년을 겨우 넘길 뿐 이년을 채우는 사또는 지난해 떠난 이기연(가명) 뿐인데 그의 후임으로 서희순(가명)이 온다는 전갈이다. 옥골선풍의 젊은 사또라는 말에 부용도 마음이 쏠렸다.
이왕 수청을 들 바에야 헌헌장부 젊은이한테 몸을 여는 것이 마음도 편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든 사또는 욕심이 있어 밤새 아래위로 오르내리기만 하지 정작 사내구실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부용이 어느새 사내를 접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숱한 사내들이 욕정을 채우고 떠나갔으나 마음을 흔들었던 남정네는 한사람도 없다. 그런데 젊은 옥골선풍의 사또가 온다는 말엔 왠지 궁금해져 갔다. 어차피 수청을 들을 바에야 늙수그레한 사또보다 헌헌장부의 젊은 사또에게 몸을 내어주는 편이 나으리란 생각이 들어서다.
열두살에 기적에 올라 4년 후인 열여섯살에 성천 명기(名妓)가 되어 새로 부임하는 사또의 단골 수청 기생이 되었다. 성천 사또가 자주 바뀌는 이유는 명기인 부용이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한다. 소문에 불과한 얘기지만 아무튼 일년을 겨우 넘기나 싶으면 예외 없이 새 사또가 오곤 하였다.
이유도 다양하다. 몸이 안 좋아 사직하는 사또에서부터 늙은 부모 봉양까지 임금이 들으면 사임을 윤허(允許·임금이 허가함)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이다. 그런데 사실은 성천 명기인 부용을 오래 차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천 사또로 부임을 희망하는 인물이 너무 많아 눈치가 보이기도 하지만 생명에 위험을 느껴 일년 정도로 스스로 이유를 만들어 떠나간다는 얘기도 나돈다.
부용과 한번 합방을 하면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얘기다. 시와 노래, 그리고 춤에 미모까지 뛰어나 성천의 오절(五絶)이라 할만하다. 송도의 황진이(黃眞伊)·박연폭포(朴淵瀑布)와 서화담(徐花潭)을 ‘송도삼절’이라 한데에 비유한 것이다.
사실 부용은 평양 황진이·부안 이매창(李梅窓)과 함께 조선의 3대 시기(詩妓)로 꼽히고 있다. 세 시기 모두 기생으로 천부적 문재에 뛰어나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예술의 창조적 에너지 메카로 세월의 물레방아를 돌리고 있다.
부용은 기생으로서 절정기다. 기력(妓歷) 3년이지만 그동안 거쳐 간 사또들이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사대부들이다. 사또라는 지방 목민관에 불과하지만 부용을 품으려고 경쟁적으로 성천 사또를 지망하는 현실적 배경이다. 이번에 부임해 오는 옥골선풍의 젊은 사또 역시 부용을 품으려는 것이 숨길 수 없는 뜨거운 속내일 게다.
성천 사또는 부용과 같이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지면 잠자리에 든다. 일심동체다. ‘옥 같은 얼굴 얼음 같은 살결이 애틋하게 여위었는데/ 봄바람에 열매 맺고/ 푸른 가지도 돋았는데/ 그치지 않고 봄소식을 알려주니 인간세상의 한스런 이별보다 오히려 나아라.’ 《지는 매화》다.
아무튼 모레 부임해 올 헌헌장부의 사또가 하루 전에 꿈에 먼저 나타났다. 부용은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그동안 숱한 사또들은 기녀는 그냥 몸을 내주는 고깃덩어리 취급을 하여 석녀(石女)가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게 마음이 앞서고 가슴이 설레기까지 한다. 부용 자신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서방님 소녀 인사 올립니다. 소녀는 며칠 전부터 서방님을 기다렸습니다.” 부용은 나비가 꽃에 앉듯 사뿐히 치마를 걷어 올리며 신임 사또 앞에 절을 올렸다.
“그랬구나! 나를 왜 그토록 기다렸느냐? 나를 어떻게 알고 네가 기다렸느냐?” “소녀 기생 신분으로 성천에선 소식이 비교적 빠르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성천 명기 부용이 답구나...” 말을 마친 사또는 부용을 덥석 안아 방으로 들어가 화촉동방을 즐겼다.
부용의 남가일몽(南柯一夢)이다. ‘부용화가 곱게 피어 연못 가득 붉어라/ 사람들 말하기를 내 얼굴보다 예쁘다네/ 아침녘에 둑 위를 걷고 있노라니/ 사람들이 부용화를 왜 안보고 내 얼굴만 보나.’ 《부용화가 더 예쁘다더니》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부용은 시·노래·춤·거문고에도 뛰어났으며 미모까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성천의 오절이라 지칭했으리라... 내일 모레 부임할 헌헌장부 사또도 열흘 후에 부임하리란 소식을 뒤엎고 칠일이나 앞당겨 오는 것도 성천의 명기인 부용을 하루라도 빨리 품으려는 욕심에서 서둘러 오는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부용의 마음도 여느 사또와 달리 점점 더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2018-02-07 09:36 |
![]() |
[문화] <87> 김금원(金錦園) <제12話>
여인들의 삶은 고려 때까지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신라에 세 여왕(선덕·진덕·진성여왕)이 탄생된 것만 봐도 여성의 삶이 조선조와는 확연히 달랐다. 고려 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왕건의 부인이 29명이나 되었으니 치맛바람이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 뻔하다.
이같은 여인의 삶은 1392년 조선이 건국 된 뒤 여권신장이 아닌 퇴보의 역사였다. 아내는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여필종부 사회다. 이 시대에 금원이 출생하였다. 금원은 여자로 태어났으나 여자이길 거부 하였다. 하지만 여자였다.
여자이길 거부하며 남자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강산 단독 유람 길에 올랐다. 14살 때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만구암자를 두루 본 뒤 설악산까지 보고 한양에 다다랐다. 세상 천하를 다 보고 왔어도 자유영혼의 여성이 설 곳은 찾을 길이 없었다.
잠시 기생의 길을 걷다 소실이 되었다. 서녀(庶女)의 몫이다. 벗을 수도 누구에게 떠넘길 수도 없는 숙명의 멍에다. 금원은 멍에 같은 숙명의 길을 벗어보려고 고군분투해 보았으나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사대부 소실 자리다. 금원은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남장을 하고 사내들의 세상을 마음껏 보았다. 하지만 여자가 남장을 하고 남자로 살수는 없는 사대부 나라다. 금원은 결국 여자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리 남자 중심의 나라지만 그대로 순종만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금원은 글쟁이가 되었다. 대명천지에서 조선의 심장인 육조를 비롯한 사대부들이 포효하는 세상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웅지를 겨룰 수 있는 자유영혼이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문학의 삶을 선택했던 것이다. ‘호수가 버들은 푸른 실처럼 늘어져/ 봄날 암담한 마음을 아는 것일까/ 나무 위 꾀꼬리 하염없이 우니/ 임 보내는 슬픔 이기지 못하겠네.’ 금원의 자작시 칠언절구(七言絶句)다.
금강산을 유람하고 금원은 원주 관아 기생이 되어 금앵이란 기명(妓名)을 얻었다. 이때 홍우건·신위·서유영 등 당대 유명한 문신들과 알뜰한 교우를 맺었다. 기생은 규방의 아낙보다 행동에 비교적 자유스러웠다. 금원이 원한 삶은 아니지만 단순히 웃음을 파는 노류장화가 아닌 시적 재능을 인정받고 한 인간으로 존중받게 되자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사대부 김덕희는 금원의 남다른 재주와 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시를 주고받은 것이 인연이 되어 부부가 되었다. 금원에게 결혼은 그것도 떳떳한 조강지처가 아닌 소실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금원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기생은 소실이 되거나 면천(免賤·천민이 평민이 됨)이 되어도 평생 꼬리표가 붙었다.
홀아비 신세 과부가 알아주듯 기생의 애환은 역시 기생이 알아주었다. 운초와 김이양도 시재가 뛰어난 운초의 재능으로 이어졌다. 금원·운초·경산·경춘·죽서도 시가 매개가 되어 삼호정에서 우의를 키웠던 것이다. 하지만 금원은 자나 깨나 현실생활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였다.
김덕희와 뜨거운 잠자리도 문득문득 떠올랐다. 금원도 여자다. 여자는 지아비의 따뜻한 사랑이 최고의 행복이다. 덕희 대감의 알뜰한 사랑을 받을 때가 금원이 여자로 태어났음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을 게다. 그러나 금원은 지적 호기심에 밤낮으로 조바심을 하였다.
금원은 《호동서락기》를 쓰기로 작심했다. 《호동서락기》엔 연유가 있다. 호(湖:충정도)·동(東:금강산·동해안)·서(西:관서지방)·낙(洛:한양)을 지칭하였다. 금원이 14살에 남장을 하고 유람했던 곳을 담은 여행기다.
물론 사대부들에 의해 금강산 유람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불과 14살 소녀가 남장을 하고 조선천하를 유람한 여행기는 《호동서락기》가 최초일 것이다. ‘두곡의 풍류는 금앵을 일컬으니/ 교방의 가무로 일찍 이름이 알려졌네/ 봄 앞의 채필은 수놓은 것처럼 보이니/ 담화(澹畵)와 신시(新時)에 모두 명성이 있네.’ 서유경이 금원에게 《관동죽지사》 11수를 지어준 시 중의 일부분이다. 이처럼 당시 지체 높고 학문으로도 인정받는 사대부들이 금원의 시재에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서유경 뿐만이 아니다. 당시 호방하고 진취적 학문의 소유자들은 금원을 단순히 노류장화에서 사대부의 소실로만 보지 않았다. 여류시인이자 학자로까지 보았다. 그들도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여행기 《호동서락기》를 보고는 더욱 놀랐을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금원을 ‘규수사마자장’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칭송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호동서락기》는 1850년 금원이 34세 되던 봄에 탈고하여 이듬해에 출간하였다. 추사 김정희도 금원이 쓴 김덕희 제문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금원은 《호동서락기》에서 금강산뿐만이 아니라 명승지를 두루 섭렵, 경관 묘사에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절제된 음률로 시로도 남겼다. 그래서 뜻깊은 사대부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조선엔 여류문인들이 많았다. 사대부들의 사회에서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자신들의 끼와 재능을 발휘하고 싶었으나 사회는 그 공간을 주지 않았다. 기생이나 소실은 조강지처보다 행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삼호정의 소위 5인방은 소실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사대부집의 고명딸로 태어났으면 정경부인이 되고도 남을 재원이었으나 서녀의 멍에를 메고 나와 그들은 소실이 되었다. 만약 운초·황진이·이매창·허난설헌·금원·경산·경춘·죽서 등 샛별 같은 여류시인들이 없었던들 조선의 여류문학은 불모지였을지도 모른다.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피어난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류문학의 세계다. 또한 생각이 깊고 미래를 내다 본 뜻 깊은 사대부들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도 아름답고 찬란한 여류문학의 세계를 창조하는데 언덕이 되어 주었다.
그들은 그녀들을 노류장화로만 보지 않고 시우(詩友)로도 당당한 상대로 인정해 주는 아량을 아낌없이 보였던 것이다. 그런 대우와 아량이 그녀들에겐 천군만마의 응원이 되었을 게다.
그래서 그들은 성별을 뛰어넘는 진정한 시우가 되었다. 아름다운 문학의 세계다. 금원은 그런 문학의 세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을 것이다.
2018-01-31 09:36 |
![]() |
[문화] <86> 김금원(金錦園) <제11話>
오늘따라 삼호정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봄이 되었는데도 봄 같지 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지난 모임 때 금원이 이곳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모이면 떠날 줄 모른다. 조만간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들은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분위기다.
삼호정 회원들은 어느 땐 밤을 꼬박 새기도 한다. 지금 그런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해가 서산에 걸렸는데도 누구 한 사람도 갈 채비를 하지 않는다. 전 같으면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가 되면 영감이 올 때가 됐다면서 하나둘 떠나갔는데 오늘은 네 여인 모두 갈 눈치가 아니다.
마침 덕희 대감은 육조(六曹) 친구와 약속이 있어 하룻밤 자고 내일 오기로 되었다. “여러분 오늘은 우리 집에서 야시회(夜詩會)를 하면 어떨까요? 마침 덕희 대감께서 육조친구와 약속이 있어 가셨는데 내일 오신 다네요...” “장악원 기생들과 회포를 푸시겠네요?” 죽서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사대부들이 금원언니를 규수사마자장(司馬子長)이라고 하는데 덕희 대감께서 이젠 학문세계에서 언니한테 밀리실 거예요...” 그랬다.
1843년 27세 때 서유영·신위·홍우건 등 금원과 교유했던 여러 사대부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녀를 규수사마자장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였다. 사마자장은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원을 규수사마자장이라고 당대의 석학인 신위·서유영·홍우건 등의 기록에 남겼다. 규수자장(子長·사마천의 字)인 금원은 비록 김덕희의 소실의 위치에 있으나 당시 여항문학계에선 알아준 여류시인임엔 틀림없는 역사다.
그런데 금원이 오늘 삼호정의 모임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덕희 대감이 육조친구 이조참판(吏曹參判·종2품)을 만나는데 새로운 벼슬 얘기가 나올 것이 뻔해서다.
죽서의 말이 끝나자 금원이 벌떡 일어나 《정선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한 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명사십리 아니라면 해당화는 왜 피나/ 모춘 삼월이 아니라면 두견새는 왜 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노래를 계속 부르려 했으나 울음이 복받쳐 끝냈다.
“뭐가 그렇게 슬프냐?” 운초가 벌겋게 충혈 된 금원의 두 눈을 유심히 쳐다보며 따지듯 물었다. “별 것 아니에요. 제가 강원도 원주 출생이잖아요! 노래를 부르다 보니 정선아리랑의 전설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을 뿐이에요...” 금원이 자신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쉽게 수습하려 했으나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여장부를 넘어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당한 규수사마자장으로까지 불리는 금원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노래를 부른 내면엔 무엇인가 깊은 사연이 있으리란 생각이 든 것이다. “언니 왜 그래? 속 시원하게 얘기해봐! 행복은 나누면 커지고 불행은 나누면 작아진다고들 하잖아...” 친동생 경춘과 죽서의 말이 한입처럼 동시에 나왔다.
금원의 목소리는 사내음성처럼 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지금 정선아리랑이 꽃 울타리를 넘어 행인들이 오가는 길가로 아침안개처럼 굽이굽이 넘어가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의 발길이 하나둘 멈추더니 어느새 2~30명은 되었다. 그들 중엔 소리를 듣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소리 없이 닦아내며 훌쩍이는 이도 있었다.
《정선아리랑》은 고려유민의 한이 깃든 소리다.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신의 영혼의 절규다. 그런데 《정선아리랑》을 들으며 오가던 행인 중에 불사이군의 후예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정선아리랑》은 고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함부열 등 72현이 두문동으로 들어갔다. 이때 전오륜(全五倫)도 두문동으로 들어갔다. 7명의 친구들과 정선 남면 서운산 거칠현동(南面 瑞雲山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겨 끝까지 충절을 지키며 흠모와 망향에 대한 고달픔을 한시로 읊었는데 후세인들이 이를 노래로 부른 것이 《정선아리랑》이 되었다.
이 같은 《정선아리랑》의 전설을 금원이 어떻게 알았는지 지금 속으로 통곡하면서 불렀다. 소리가 끝이 나자 오가며 듣던 행인들도 하나둘 제 갈 길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몇몇은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지 행여 소리가 더 계속 흘러나올까 서성대고 있었다.
어느새 해는 떨어지고 밤은 깊어갔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산수유 등에 비쳐지자 신비스럽기도 하지만 푸른빛이 밤공기에 잦아들자 으스스한 분위기가 돌았다. 소리를 듣던 행인들의 발길이 끊기자 삼호정 주위는 물속처럼 조용해졌다.
금원은 소리를 끝내고 술잔을 돌렸다. 자신이 목이 타기도 하지만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도 필요하였다. 금원은 오늘 모임이 삼호정 시회의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하면서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부평초처럼 한가롭게 이곳저곳 떠돌다/ 부지런히 산에 오르고 물가에도 갔었네/ 고향으로 가고픈 마음 달래 기쁘게 맑은 물을 쫓아가니/ 서울의 바람과 연기도 조만간 걷히리라.’ 역시 《무제》(無際)다.
아마도 남편 김덕희가 중국 청나라 사신으로 임명되어 가리란 확신이 섰던 때인 듯하다. 사신을 따라 갈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다녀온 후의 삶이 어떻게 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인 듯해 보인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의 노류장화인 기생이나 소실의 신분은 그러하였다.
하지만 삼호정의 멤버인 금원·운초·경산·경춘·죽서는 벌나비가 날아가 꿀만 빨아먹고 바람처럼 떠나간 해어화(解語花)만은 아니다. 한국 최초 여류시인 동호인의 모임인 삼호정이었다. 여필종부의 제한된 사회적 공간에서 역사에 영원히 남을 문학사를 창조해 낸 아우라(Aura)의 아우성이었다.
2018-01-24 0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