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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5> 송덕봉(宋德峰) <제7話>
툇돌에서 귀뚜라미 노래 소리가 요란하다. 한두 마리 노래 소리가 아니다. 합창이다.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대가족이 다 모여 합창을 하는 노랫소리 같다.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엔 더욱 노랫소리가 요란하다.
덕봉이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치고 있다. “나 하직하고 내려가고 싶소...” 말이 가슴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것 같아서다. 이제 겨우 서울 생활에 적응하여 재미를 붙이고 있는데 고향으로 내려가잔 말은 마른하늘에서 벼락을 맞는 심정이다.
고향에 있을 땐 손수 농사를 짓고 살림살이 전반을 건사해야 했지만 서울 생활은 시골살이에 비해 여자의 삶이 한결 수월해졌다. 이제 남은여생은 결코 넉넉한 생활은 아니지만 그렇게 서울살이를 하고 싶은데 뜬금없이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미암의 말에 덕봉은 배신감마저 들었다. 더욱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불쑥 내던지듯 하는 말에 분노감이 치솟았다. 너무 자기 위주여서다.
덕봉이 밤잠을 설침은 벌써 보름째다. 툇돌 귀뚜라미 가족의 합창은 깊어가는 가을과 같이 가고 있었다. 귀뚜라미 가족의 합창은 요란하지만 마음이 울적할 때는 덕봉에겐 위로가 되었다.
덕봉은 마음이 몹시 상할 땐 눈물 없는 울음을 엉엉 울었다. 고향에 있을 땐 아침저녁으로 남편의 입신양명을 위해 정화수 기도를 드릴 때 울었고 서울에선 귀뚜라미 노래에 맞추었다. 덕봉은 가을엔 여전히 소녀처럼 마음이 약해졌다.
덕봉의 외출이 부쩍 늘었다. 아침에 나가면 해가 설핏해져야 들어왔다. 어떤 땐 미암의 퇴근길과 같이 귀가할 때도 있다. 만약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면 다신 한양에 올수 없을 것 같아 하나라도 더 보려는 심사다.
서촌(西村)은 물론이고 피맛골과 중촌(中村)까지 골목골목을 덕봉은 직접 발로 살피고 있다. 조선의 상류계급인 북촌을 비롯한 서촌, 그리고 전문 직종들이 모여 살고 있는 중촌까지 샅샅이 살피고 시골로 내려가려는 속내다.
미암의 결심을 꺾을 수 없어서다. 잠자리에서 승낙을 얻어내지 못한 미암은 며칠 내로 제2의 화촉동방 잠자리를 만들어 또 그 말을 꺼낼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간을 끌고 있을 뿐 한번 내뱉은 말을 거두어들인 적이 미암은 아직까진 없다. 덕봉도 이미 속으론 동의를 해놓고 ‘그렇게 합시다.’ 대답만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즉석에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으면 미암은 동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반세기를 살아온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있어 덕봉의 동의가 필요해 물으면 그렇게 대답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묵묵부답으로 2~3주까지 아무 말이 없으면 그것은 묵시적 동의로 미암은 처리하였다.
고향으로 내려가잔 말도 그런 분위기다. 미암은 육조에 있는 친구들에게 고향으로 간다는 귀띔을 이미 한 상태다. 밤마다 이별주다. 20년을 유배생활을 하다 한양에 입성한 미암은 권력의 무상함을 절감한다. 사대부보다 향반시절이 그립다.
양반이 되어 한양에 올라와서 시골의 정든 사람들로부터 질투를 받는 것이 미암은 즐겁지 않다. 한양 북촌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어도 자식들의 삶을 책임질 수 없어 고향으로 내려 갈 마음이 굳어졌다. 소위 출세보다 행복을 찾으려는 마음이다.
미암은 오늘도 밤이 이슥해서 귀가하였다. 덕봉의 이불속으로 들어오는데 술 향이 맞바람처럼 풍겼다. 맞바람 속엔 향긋한 여인의 살내음도 아침안개처럼 피어났다. “아이~~ 술 냄새! 또 마셨어요?” 덕봉은 단말마처럼 외마디 던지고 획 돌아누웠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였다. “당신은 웬 매일 술타령이에요? 한 푼이라도 더 모아 시골로 내려가야 되지 않아요?” 미암은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라며 덕봉을 등 뒤에서 쓸어안는다. 미암의 손이 거침없이 덕봉의 속곳을 쓸어내린다. 따뜻한 미암의 손길이 둔부를 거쳐 덕봉의 사타구니로 들어간다.
덕봉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미암이 덕봉을 안으며 돌아 누인다. 미암의 술 향이 덕봉의 코에 재스민 향처럼 스며들었다. 죽매와 옥매의 노래와 춤에 흥겨웠던 마음이 아직 식지 않은 상태다. “언제 내려갈 거예요?” 다정한 목소리다.
남녀칠세부동석·삼종지덕·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음성이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으니 겨울이 되기 전에 내려가야지...” 미암은 어느새 덕봉과 얼굴을 맞대는 위치가 되었다.
미동도 하지 않던 덕봉도 수동에서 능동으로 자세가 바뀌었다. 어차피 내어 줄 몸 스스로 열어줄 속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사회에서 여자의 위치는 능동적 자세가 될 공간이 아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능동적 자세가 가능한 공간은 구중궁궐 같은 내실의 부부관계에서나 봄직한 신비스런 장면이다. 어차피 사내들은 여자의 몸에서 쾌락을 즐기는데 부부관계에서까지 관행처럼 수동적이면 너무나 슬픈 존재란 생각이 덕봉의 뇌리를 천둥같이 내려쳤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정도전의 새로 건설한 한양의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한 시조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 중에 두 번째 연 (도성궁원·都城宮苑)인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성이고 / 구름에 둘러싸인 궁궐 오색 찬연해 / 연년이 어원에는 봄 경치가 좋은데 / 해마다 도성 사람 즐겁게 노네.’ 와 칠연《남도행인》(南渡行人)인 ‘남쪽 나루의 물결은 도도히 흐르고 / 나그네들 사방에서 줄지어오네. / 젊은이는 짐 지고 늙은이는 쉬고 / 앞뒤로 화답하여 송덕가 부르네.’ 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팔경시를 다 볼 수는 없어도 두 연의 장관을 보고 내려갑시다.” 덕봉의 명령조 목소리다.
미암의 방사는 오늘따라 싱겁게 끝났다. 덕봉은 이제 감흥이 오르려는데 헛기침을 하며 불두덩에서 내려갔다. 덕봉의 명령조 목소리에 미암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지금까진 들어본 적이 없는 당당하고 거역할 수 없는 위엄까지 있어서다. 사내는 오늘따라 방사가 신통치 않아 밸이 꼴려서 심통을 부리나 생각하는 눈치다. 그들은 새벽닭이 아침을 알리는 천둥 같은 울음소리에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2018-08-22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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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4> 송덕봉(宋德峰) <제6話>
밤이 이슥해서 미암이 귀가하였다. 얼근하게 취한 상태다. 기분이 좋아보였다. “허허 부인이 오늘따라 더 고와 보이오... 오늘 내 전하께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말씀을 올렸소! 그러나 윤허(允許)를 얻어 내지 못했소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치며 부인과 조용히 살고 싶소! 부인 뜻은 어떠하오?” 미암의 입에서 술 향이 덕봉의 얼굴을 덮었다.
미암이 문 여는 소리에 덕봉이 행복한 꿈에서 깨어났다. 덕봉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져 있고 입엔 침까지 흘린 자국이 선명하다. 속곳이 반쯤은 내려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흔적이다. “꿈을 꾸었소?” 미암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아-예!” 덕봉은 반쯤 내려간 속곳을 얼른 추슬렀다. “오늘도 임금이 왔소이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세요?” “당신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랬다. 덕봉의 표정은 꿈에 임금이 현몽하면 얼굴이 복사꽃이 피듯 활짝 피었다.
공적 공간인 사회에 나가지 못하는 여자로서 비록 꿈이지만 조선 팔도를 호령하는 임금을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를 속 시원하게 말 할 수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여서 온몸이 잘 익은 홍시처럼 상기 되었다. 속곳은 열이 올라 자신도 모르게 내렸다.
어떤 땐 속곳을 몽땅 벗어던져 알몸이 된 적도 있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덕봉의 모습을 보면 부부관계를 했거나 하려는 모습으로 착각할 정도다. 지금이 바로 그와 유사한 모습이다. “이리 오구려...” 미암이 덕봉을 덥석 안는다. 손길이 서슴없다.
덕봉도 꿈에서 임금을 위한 옥매와 죽매의 춤과 노래에 흥이 한껏 부추겨져 있을 때다. 미암의 몸놀림이 평소와 사뭇 다르다. 첫날 밤 화촉동방에서 신선하고 풋풋한 사랑의 향기가 온몸에서 아침안개처럼 피어났다. 덕봉이 그렇게 느껴졌다.
방금 꿈에서 만났던 임금이 미암으로 진화되었다. 여름밤의 방안은 용광로 바로 그것이다. 미암은 청루에 들려 친구들과 거나하게 취해 돌아올 때부터 덕봉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마침 덕봉이 꿈속에서 임금 앞에서 죽매는 노래하고 옥매는 춤을 춰 흥을 절정으로 돋우어 주고 있는 찰나였다.
꿈과 현실이 절묘하게 점목 된 황홀한 상태다. ‘천기가 비록 넓다고 하나 / 깊은 규방에선 그 참 모습 보지 못하네. / 오늘 아침 반쯤 취하고 보니 / 사해는 넓어 가이 없도다.’ 《취하여 읊다》다. 부부는 참으로 오랜만의 달콤한 부부관계다. “당신 지금은 이십대 청춘 같아요!” 덕봉이 미암의 가슴을 밀어내며 속삭인다. 만족한 표정이다. 창문으론 휘영청 보름달 달빛이 들어와 벌거숭이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신비스럽게 비추고 있다. “나 하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소. 당신 생각은 어떻소?” 미암이 덕봉의 배위에서 내려오며 불쑥 말을 던진다.
덕봉의 불두덩은 아직 얼얼한 상태다. 미암이 오뉴월 칡소 모양 밀어붙여 화촉동방 이후 처음으로 입에서 단내가 나고 불두덩에 멍이 들도록 뜨거운 사랑을 나눈 후유증이다. 덕봉은 몸과 마음이 하늘을 날 듯 기분이 좋았는데 미암의 갑작스런 물음에 기쁨이 백지장으로 변해 버렸다.
사실 덕봉은 시골생활이 더는 싫다. 16살에 결혼하여 입신양명을 위해 남편 미암은 향반주제에 선비인 냥 가사는 뒷전으로 덕봉이 도맡았다.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신혼 재미로 밤낮이 없을 시절에 가기(家妓)인 죽매와 옥매를 데리고 여자 가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불혹을 넘긴 나이에 한양에 와 겨우 춘몽(春夢·희망)의 화려함을 현실로 보려하는데 고향으로 내려가잔 말은 생지옥으로 가잔 말이나 다름이 없다. “왜 대답이 없소?” 미암이 초점 잃은 시선으로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덕봉에게 다그쳐 물었다.
사랑의 뜨거운 감정이 식기 전에 확답을 들으려는 눈치다. 덕봉은 신혼의 화촉동방 이후 제2의 화촉동방의 즐거움을 느꼈는데 열락의 기쁨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고향으로 가자는 동의를 받으려고 계획된 사랑놀이로 생각되어지자 씁쓸한 기분이 온몸을 감쌌다. “고향으로 가시려면 당신 혼자 내려가세요! 저는 식구들과 이곳에서 살렵니다...” 시선은 천정에 둔 채다.
예전 같으면 방사(房事)가 끝나면 잽싸게 일어나 나가 뒷물을 하고 들어와 미암의 가슴을 파고 들 찰나인데 목석이 된 상태다. 전례 없이 싸늘한 분위기다. 미암은 오래전부터 귀향을 생각했었던 것을 이제야 속내를 털어놨으나 덕봉은 처음 듣는 청천벽력이다. 더욱이 시골살이에서 꿈에서지만 임금을 봤는데 이젠 비록 꿈이지만 같은 한양에서 임금을 볼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때다.
그런데 미암이 귀향하자는 것이다. “당신이 안내려 간다면 나도 가지 않겠소! 나 혼자 어떻게 간다는 말이오? 이제 유배생활은 더 이상을 싫소...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다고 당신과 헤어져 살겠소... 알았소. 이제 당신 생각이 그러하니 다신 귀향 얘기는 내 입밖에도 꺼내지 않겠소!” 미암은 대단히 실망한 표정이다.
자신이 얘기하면 ‘그렇게 합시다.’하고 선뜻 동의를 얻어내리라 생각했었던 분위기다. 미암은 덕봉의 천정에 가 있는 시선으로 눈을 돌리며 긴 한숨을 토해내면서 탁자에 놓인 술병에서 술을 잔 가득 따라 단숨에 넘겼다.
덕봉은 가슴이 쓰려왔다. 지금까지 남편의 말에 토를 달거나 반대를 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분명한 거부 표시를 해 힘이 빠지는 표정을 보자 금방 후회가 돼서다. 그렇다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말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남편은 이미 마음이 상할 때로 상해 있을 것이고 자신도 한번 한 말을 금방 뒤집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시골은 싫다. 이제 북촌을 비롯한 한양의 아름다운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재미를 붙여가는 생활에 행복감이 하루가 다르게 충만해져 갔다. 그러나 등을 보이고 돌아누운 남편이 마음에 계속 신경 쓰였다. 부부는 일심동체란 말이 뇌리를 계속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08-14 1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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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3> 송덕봉(宋德峰) <제5話>
북촌(北村)에서 육조(六曹)는 단숨에 달려갈 거리다. 맨 처음에 갈 때는 남편인 미암의 안내로 구경을 했으나 길을 알게 된 후론 틈 날 때마다 덕봉은 육조거리를 살폈다. 조선을 통치하는 관공서를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 보려는 속내다. 직접 벼슬을 하여 당당한 사대부로 남성사회에 일원이 될 수 없으나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라도 뜨겁게 느껴 보려는 열정이다.
오늘도 덕봉은 누룽지를 끓여 점심을 먹고 북촌에서 나와 피맛골로 향했다. 역관(譯官·통역관)들의 집단 거주지인 청계천을 거쳐 육조거리로 와서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의 모습을 살피고 돌아오려는 속내다.
덕봉은 늘 바쁘다. 틈틈이 시(詩)도 쓰면서 살림살이도 올곧게 꾸려가려니 외출을 하려면 시간이 항상 빠듯하다. 특히 임금의 행차가 있는 날은 더욱 바쁘다.
꿈속에서 뵈었던 임금을 직접 뵙고 싶은 욕심이다. 가까운 거리에선 볼 수 없어도 먼발치에서라도 꿈에서 뵈었던 헌헌장부 옥골선풍의 사내와 비교도 해 보고 싶은 속내다. 하지만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파속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임금을 본다는 것은 욕심일 뿐 사실상 불가능하다.
임금의 행차를 어떻게들 알았는지 아낙네들을 비롯한 노인들이 길가의 집을 빌려 미리부터 진을 치고 있어 덕봉으로선 먼발치에서라도 보는 행운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신세다.
당시의 백성들에겐 임금의 행차가 최대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임금은 백성들한테 하늘의 태양이요 생명줄을 쥐고 있는 염라대왕이나 행복과 기쁨을 동시에 베풀 수도 있는 옥황상제와 같은 존재다. 그런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영광과 기적이다.
지난 밤 꿈에도 덕봉은 임금을 뵈었다. 다른 날과 달리 곤룡포를 입은 채로 찾아왔다. 호위무사와 내관을 동반하고 찾아온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땅걸미가 추녀 밑으로 스며들고 있을 즈음이다. 덕봉이 마침 일찍 저녁상을 치우고 죽매와 옥매를 좌우에 앉히고 노래와 춤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다. 미암은 아직 출타해서 돌아오지 않은 집안이다.
임금은 사립문을 열고 제 집 들어오듯 들어왔다. 그리고는 역시 자기 방을 들어오듯 내실로 거침없는 발걸음이었다. “그래. 과거공부는 잘 했느냐? 내 지난번에 왔을 때 너에게 얘기하지 않았느냐! 남장을 하고 과거를 보라고... 과거를 보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느니라... 당분간 사내도 멀리하고...” 어느 때보다도 근엄한 표정이다. 임금의 위엄을 드러냈다.
덕봉은 그때 죽매와 옥매와 어울려 노래와 춤을 즐기려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한여름이라 속곳 바람이다. 죽매와 옥매 역시 반라상태다. 덕봉은 죽매와 옥매가 비록 악기와 무기의 신분이지만 여자끼리 사석에선 친동생같이 주종관계를 잊고 자매처럼 행동하였다.
지금은 죽매와 옥매가 하녀 신분이 됐으나 고려 땐 개성왕씨로 당당한 귀족 신분이었다. 개성왕씨 성골(聖骨)신분이다. 피는 속일 수 없었다. 그녀들은 비록 왕조가 바뀌어 원치 않는 신분으로 바뀌었으나 주인을 잘 만나 비교적 품위를 잃지 않고 새 세상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그랬다. 마침 미암도 없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스스럼없이 세 여자는 편한 차림으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한바탕 즐기려는 찰나다. “어머나! 이를 어쩌나 전하께서 아무 기별도 없이 어인 행차이신지요?” 덕봉이 옷매무새도 고칠 새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윗목으로 뒷걸음질하여 허리를 45도로 굽혀 예의를 갖추었다. 죽매와 옥매도 주인 따라 한 몸같이 행동하였다.
그런데 가관이다. 제 정신으론 차마 보지 못할 행색이다. 세 여인은 모두 속곳 모양새다. 덕봉의 앞가슴인 봉긋한 두 유방이 하늘빛 적삼사이로 희미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며 육감적인 둔부도 임금의 눈엔 자극적으로 보였다.
옥매와 죽매 몸 매무새는 더 가관이다. 빨래를 제때 하지 않은 속곳엔 오줌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청춘의 상직인 싱싱하고 탐스럽기 까지 한 한 쌍의 유방은 저고리론 충분히 가려주지 못하였다.
게다가 평생 이름으로만 들어 볼 임금을 직접 보니 기쁘기보다 당황하여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어허... 부끄러워하지 말고 편히 앉거라. 덕봉 너는 나와 초면이 아닐진대 왜 그렇게 당황을 하느냐? 내 온김에 과거시험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죽매와 옥매 노래와 춤을 한번 보려함이니라... 요즘 재미가 없어 퍼뜩 덕봉이 생각이 나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느니라. 내 사전에 기별을 못 했음은 미안하니라...” 방안은 세 여인의 당황한 숨소리로 뜨겁지만 물속처럼 고요한 가운데 임금의 목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예. 전하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죽매는 거문고에 황진이의 《박연폭포》 ‘한줄기 긴 하늘을 바위 끝에 뿜어내니 / 폭포수 백길 물소리 우렁차구나 / 나는 물줄기 거꾸로 쏟아져 은하수 되니 / 성난 폭포 달래는가 흰 무지개 뚜렷하네 / 어즈러운 물 벽력 골짜기에 가득하고 / 구슬 절구에 부서진 옥 창공에 맑았으니 / 유자여, 여산 좋다 말하지 말게 / 천마가 해동에 으뜸가는 곳이니...’를 멋들어지게 노래하고 옥매는 우아한 학 춤을 추려무나... 좁은 방에서 너무 요란하지 않게 조용조용해야 하느니라!” 임금은 아랫목에서 빙그레 웃음 먹은 표정으로 흐트러진 매무새의 세 여인을 보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사내로 여자를 보는 천박한 시선이 아니다. 하지만 사내는 사내다. 임금도 사내로서 흐트러져 있는 세 여인의 육감적 모습엔 목석일수가 없을 터다. 사내 심볼이 꿈틀댄다. 학춤을 추는 옥매의 엉덩이에 시선이 멈춘다. 예쁜 엉덩이다. 앙증맞다. 아직 사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풋풋한 엉덩이에 임금의 뜨거운 시선이 멈췄다.
청아한 죽매 노래와 거문고 음률이 방안에 가득하다. 임금의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술 한 잔 마실 수 있겠느냐?” “예 전하 소인이 미처 생각을 못해 황공하옵니다.” “아니다. 내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이 잘못이니라. 그러나 너무 나무라지는 말거라. 내 자주 놀러올 것이니라.” 덕봉이 즐겨마시던 탁자 밑 매화주를 45도로 허리 굽혀 술을 따른다. 그런데 그만 임금의 두 눈에 복사꽃보다 더 붉고 예쁘게 솟아있는 한 쌍의 유방을 들켰다.
2018-08-08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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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2> 송덕봉(宋德峰) <제4話>
조선 여인들의 삶은 남자의 운명에 좌우되었다. 남편이 높은 벼슬에 나가면 부인도 덩달아 신분이 높아졌다. 여자들은 대부인, 정경부인, 숙인, 영인, 유인(孺人) 등으로 나뉘었다. 자신이 만드는 신분이 아닌 남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신분이다.
남편의 그림자다. 그림자는 상대가 없어지면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나타나면 그림자로 다시 모습을 보인다. 덕봉도 미암의 그림자다. 덕봉은 자신이 그림자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여 꿈에서 임금을 만났다. 그런데 요즘엔 임금이 부쩍 자주 꿈에 나타났다.
덕봉의 공적사회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수록 임금이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 즈음 미암이 한양으로 올라가 그림자(덕봉)도 따라갔다. 1569년 어느 여름날이다. 임금이 종묘제례를 올리기 위해 나온 모습을 구경하려고 새벽부터 나와 덕봉도 화려한 행차를 신비롭게 살폈다.
덕봉 뿐이 아니다. 아낙네들과 노인들이 양쪽 길가에 인산인해다. 구경거리가 별로 없던 세상이기도 하지만 신비에 싸인 나라님을 직접 볼 수 있어 임금이 종묘제례를 올리려 행차한다는 소식이 저잣거리에 퍼지면 아침부터 노인·아이들·아낙네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길이 막혀 나랏님의 행차가 멈추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다.
인산인해 인파에 덕봉도 끼었다. 당시 임금은 선조대왕이다. 미암은 문정왕후가 섭정할 때 유배생활을 하였다. 어린 명종(明宗:재위 1545~1567)이 즉위하고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자 그녀의 동생 윤원형이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비 맞은 중처럼 날뛰었다.
세도정치다. 명종이 겨우 열 살에 보위에 올랐다. 제 아무리 영민하고 일찍 철이 들어 제왕학을 배웠다 해도 열 살은 아이다. 자연스럽게 어머니 문정왕후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윤원형은 왕후의 동생이다. 오누이가 삼천리금수강산 조선팔도의 호령자다.
실세다. 온통 파평 윤씨의 천하다. 문정왕후 윤씨는 중종의 세 번째 비로 장경왕후 윤씨 오빠 윤임에 의해 왕비 자리에 올랐다. 권력의 중심이었던 윤임이 윤지임의 딸(문정왕후)을 중전으로 밀었다.
윤임은 대윤(大尹)의 영수다. 중종의 세 번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 외척이 윤원형을 중심으로 소윤(小尹)이다. 두 집안은 파평 윤씨로 대윤·소윤으로 갈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원수지간이 되었다. 국모에 오른 문정왕후의 치맛바람이 조선팔도를 휩쓰는 작태가 버젓이 일어났다.
이 광풍에 애꿎은 미암이 희생양이 되었다. 명종 2년(1547년 9월) 양재역 벽서사건이 그것이다. 정언각에 의해 경기도 과천 양재역 벽 위에 ‘위로는 여주(문정왕후), 아래로는 윤원형·간신 이기 등이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망할 것’이란 왕에게 아뢴 벽서다.
이 ‘양재역 벽서’에 미암이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고향(담양)이 가깝다는 이유로 함경도 종성으로 이배시켰다. 미암은 을사사화(乙巳士禍)때 파직되어 21년 만에 복직되었다.
명종때 파직되어 선조가 즉위하여 복직되었으니 한 왕위시대가 흐른 후다. 을사사화는 파평윤씨 집안의 권력싸움이다. 윤임을 대표로 하는 대윤과 윤원형을 영수로 뭉친 소윤의 권력다툼이 빚은 참사다.
윤원형은 요부 정난정의 남편이기도 하다. 정난정은 노비로 출생하여 기녀생활을 거쳐 정경부인까지 오른 희대의 요부다. 역시 미모가 무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미에 약한 것이 사내다. 역사의 뒤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경국지색의 미모다. 문정왕후는 동생 윤원형과 요부 정난정 부부를 앞세워 권력의 광풍을 일으켰다. 화무십일홍이다.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할만하다. 《서경》(書經)목서(牧誓)엔 ‘암탉이 새벽에 우는 것은 집안의 다함이다.’ 하였으니 윤씨를 이르는 말이라 하겠다. 《명종실록》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선 더 혹독한 평가를 받은 윤씨다. 유교국가에서 보우스님을 봉은사 주지로 임명하여 불교 중흥정책을 편 문정왕후에 대한 역사적 갈등인 대목이다.
이 질곡의 세월에서 벗어나 미암은 한양으로 올라왔다. 덕봉을 비롯한 가족 전체가 상경한 것이다. 덕봉은 꿈에도 그리던 서울이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부부애가 더해갔다. 제2의 신혼생활이다. “여보 당신 요즘엔 옥경아를 멀리 하는 것 같네요?” 덕봉의 질투 섞인 목소리다. 미암이 한양에 올라와선 사흘도리로 욕심을 채워 기쁘기도 하지만 몸이 고달프다.
어느새 불혹을 넘어 지천명(知天命·50세)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가 되었다. 곱디고운 피부도 쳐지기 시작하고 눈도 예전 같지 않다. 그런데 미암이 회춘이 되었는지 여자 욕심을 부리고 있다.
마지막 불꽃이 더 뜨겁다. 가뭄에 콩 나듯 화촉동방을 차렸었는데 긴 유배생활을 끝내고 다시 복직되자 새로운 힘이 솟는지 조강지처에 뜨겁게 다가갔다. 덕봉도 싫지 않다.
꺼져가는 불에 기름을 붓듯 다시 불꽃이 화려하게 솟았다. 모닥불을 보고 부나비가 날아들 듯이 마지막 불꽃인 냥 뜨겁고 장엄하다. 미암은 긴 유배생활에서 그리워했었던 조강지처의 은근과 끈기의 사랑을 한꺼번에 만끽 하려는 듯이 지각을 뚫고 터져 나오는 용암처럼 뜨겁고 처절하게 몸부림 쳤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듯이 덕봉의 몸부림이 요철(凹凸)인 냥 움직여졌다. 담양에서의 밤과 서울의 밤은 그렇게 두드러지게 달랐다. 16살의 처녀와 24살의 총각으로 돌아간 미암과 덕봉의 티 없는 사랑의 밤은 동창이 밝아 오는지도 모르는 제2의 밀월은 세월의 무게를 뛰어넘고 있었다.
부부애가 뜨겁고 열정적이자 덕봉의 한양에 대한 호기심과 꿈에서 만났던 헌헌장부 임금을 종묘제례 행렬에서 보자 펴지 못한 야망은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덕봉의 야망은 거기까지였다.
야망은 야망의 자리에 있어야 아름답고 위대하기까지 하다. 현실로 구체화 될 때는 야망의 모습대로 현실화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칠세부동석의 조선사회에선 더욱 그러하다. 덕봉의 야망은 화려한 문화예술로 승화되어 더욱 아름답고 위대한 삶이라 하겠다.
2018-07-25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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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1> 송덕봉(宋德峰) <제3話>
1569년 8월 8일 청명한 여름 오후다. 임금(宣祖:재위 1567~1608)이 덕봉 집으로 찾아왔다. 덕봉의 문재(文才)가 장안에 파다하게 퍼져 궁궐까지 소문이 들어가 임금이 직접 보고 싶다고 찾아온 것이다. 미복(微服:신분이 높은 사람이 신분을 숨김)차림으로 불쑥 찾아 와 덕봉의 시(詩)를 보자는 행차다.
덕봉의 꿈이다. 덕봉은 임금의 꿈을 이번 처음 꾼 것이 아니다. 사모한 애인을 만나듯 꿈에서 임금을 수시로 자주 만난다.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씩 칠월칠석의 만남이 아니다. 그녀는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비몽사몽에서 일금을 만났다.
사회 활동의 간절한 표출이다. 임금은 공적 활동의 최고 핵심적 인물이여서다. 그를 만나면 세상만사가 풀릴 것 같아 꿈에서 나와 만나 여자들의 족쇄 같은 사회적 제약들을 풀어 보려는 간절한 욕구다.
궁궐에선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임금이 세상사를 다스리는 공간이 아닌가! 덕봉은 꿈에서라도 조선팔도 세상사를 쥐락펴락 하는 임금을 만나 자신의 포부를 펴려는 활화산 같은 열정적 몸부림이다.
오늘 또 덕봉은 임금을 만났다. 남편도 없는 은밀한 내실에서다. “네가 시문(詩文)에 뛰어나다하여 내 직접 보러 왔느니라. 네가 덕봉이 맞느냐?” “예 전하. 소인은 미암 유희춘의 아내이며 연산군대에 대사간·우승지·전라감사·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던 이인형의 딸 함안이씨가 제 어머니입니다...” 조선팔도를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호령하는 임금 앞이지만 당차고 어느 사대부 보다 늠름한 태도다.
임금은 오길 잘 했구나 하는 표정이다. “그러하였구나! 네가 사대부로 태어났으면 나라에 큰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구나... 아참 내년에 3년에 한 번씩 치르는 식년시(式年試)가 있느니라. 네가 남장을 하고 응시하거라! 내 미리 너에게 시험 주제를 얘기하여 주련다. 미리 공부를 하여 장원급제 하거라. 내 너를 크게 쓸 것이니라.” “전하 황공하기 그지없사옵니다.!” “그래 네 꿈이 그러하건데 하늘도 무심하지 않아 내 친히 왔느니라... 옥황상제께서 친히 선녀(仙女)를 보내 너에게 꼭 한번 가보란 부탁이 있어 왔느니라... 오늘은 내 바쁜 정무가 있어 이만 가고 며칠 후 또 올 것이다! 그때는 맛이 좋은 술도 준비하고 죽매에겐 노래를 부르게 하고 옥매한테는 춤을 추게 하며 너와 나는 수창을 하여 과인에게 즐거움을 주면 좋겠느니라...” 한여름의 남가지몽(南柯之夢)이다.
덕봉은 점심을 먹고 잠시 오수(午睡)를 즐기는 버릇이 있다. 오늘도 누룽지를 끓여 한술 뜨고 툇마루 기둥에 기대어 흐드러지게 핀 정원의 꽃들을 감상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임금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생생하여 정원의 꽃들을 시야에서 지워버리고 미복으로 갈아입은 헌헌장부 임금만이 눈앞에 또렷이 남았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또렷하고 생생하다. “내 며칠 내로 시험 주제를 가지고 다시 오련다.”는 말이 생생하게 귀에 쟁쟁한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면부지의 임금이 보통의 사대부 차림으로 덕봉 앞에 나타나 옥황상제의 부탁이라며 과거에 대해 말했던 장면이 그녀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꿈속에서지만 맛있는 술과 죽매와 옥매에게는 노래와 춤을 평소와 달리 연마하여 두라고 당부까지 해 놨다.
술도 진달래·철죽·죽순 등을 따 맛있게 담았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윗사람의 부탁을 받고 준비를 하듯 알뜰한 정성으로 서둘러 준비를 하였다. 언제 불쑥 꿈에 나타나 부탁한 것 내어 놓으라고 하면 선뜻 내어놓고 죽매에겐 노래를 부르고 옥매한테는 춤을 추게 하여 임금의 흥을 마음껏 돋워 드리려는 속내다.
그렇다. 덕봉은 그렇게 공적 공간(사회)에서 꿈과 야망을 펼쳐 보고 싶은 포부다. ‘한 쌍의 선학 맑은 하늘에서 우니 / 달 속의 항아가 옥퉁소를 부는 듯 / 만리의 뜬구름 돌아간 곳 / 뜨락 가득한 달빛은 하얀 털로 쓸어 놓은 듯...’ 《우연히 읊다》 이 시는 미암이 무장 현감으로 있을 때 관아에서 지었다는 시(詩)다.
그랬을 것이다. 덕봉은 겉모습만 여자이지 속내는 사내대장부의 웅지(雄志)를 품고 있는 열혈남아(熱血男兒)다. 그런데 꿈에서지만 조선 팔도를 호령하는 임금을 만나 포부를 들켰다.
그때 임금에게 자신의 포부를 미쳐 다 얘기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됐었으나 덕봉으로서는 꿈에서 찰나적이나 울분과 현실에 대한 불만을 다소나마 카타르시스 시킬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덕봉에겐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서 현모양처로 열녀문이나 정려문도 의미가 남다르지만 사대부답게 공적 사회에 나가 사통팔달된 경복궁 앞 육조거리를 휘젓고 다니고 싶은 여장부였을 터다.
하지만 당시 사회에선 불가능했었던 포부다. 더욱이 여자론 꿈에서나 얘기할 수 있었던 야망이었다. 야망과 현실의 간극은 넓다. 사람마다 위치에 따라 다르겠으나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여자의 야망은 야망일 뿐이다.
여인의 한(恨)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된다하지 않았던가! 그 한이 문학이란 예술로 승화되었다. 덕봉의 아름다운 시문들도 그중의 하나다. 만약 미암이 성공적 사대부로 사회생활을 했다면 덕봉이 공적생활을 그토록 선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꿈에서 임금이 말한 것처럼 남장을 하고 과거에 응시하여 당당히 장원급제로 육조거리를 휘젓는 꿈을 꾸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같은 남편 미암은 덕봉의 꿈처럼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덕봉의 숨겨진 야망은 꿈에서나마 꿈틀댔던 것을 임금이 눈치 채고 나타났던 것이다. 오매불망하면 비몽사몽에서 현실처럼 나타나듯 덕봉의 야망이 꿈에서 임금을 통해 투영됐을 게다. 아름다운 여인의 포부다. 그토록 덕봉의 불꽃같은 야망은 주옥같은 시를 통해 표출되었다.
2018-07-18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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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0> 송덕봉(宋德峰) <제2話>
남편의 편지가 왔다. 그런데 냉큼 뜯어보려 하지 않는다. 평소 같으면 도착하자마자 하던 일도 제쳐놓고 뜯어봤는데 지금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왠지 편지를 오늘은 뜯어보고 싶지 않는 눈치다.
덕봉은 가슴이 답답하면 집안 안팎을 뱅글뱅글 도는 버릇이 있다. 사립문을 나와 야산이 멀리 보이는 울타리 뒤에까지 벌써 서너 번은 돌았다. 하녀인 죽매(竹梅)와 옥매(玉梅·가명)도 쫄랑쫄랑 따라 다녔다. 초여름이라고는 하지만 한낮의 햇볕은 따갑다.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입에선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때다. “마님! 치마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라고 울타리를 돌 때 수족처럼 따라다녔던 죽매와 옥매가 한입처럼 동시에 소리쳤다.
덕봉의 집엔 노래하는 악기(樂妓)와 춤추는 무기(舞妓)가 있다. 비록 중앙에까지 뜨르르하는 사대부는 아니지만 지방에선 알아주는 향반이다. 덕봉의 친정인 송준의 집안과 시집 역시 미암도 스물네 살에 이미 호남에서 학문과 문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해가 어느새 뉘엿뉘엿 석양을 만들고 있었다. 점심도 걸렀다. 그런데도 허기가 지지 않았다. 남편의 편지가 왔는데도 뜯어보지 않은 죄책감이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있는 것이다. 편지를 뜯지 않자 남편이 멀리 한양에서 와 자기를 보려 하는데 만나주지 않는 것 같은 태도가 되어 버려 지금 덕봉은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들면 들수록 편지 뜯기가 겁이 났다.
편지를 뜯으면 가슴을 치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지금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던 마음이다. 그런 마음이 지금 덕봉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편지를 뜯어보지 않을 수는 없다. 편지를 뜯어보지 않고 있으니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였다. 기쁨이 넘치는 소식보다는 가슴을 치고 통곡할 벼락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길한 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 같은 예감들이다.
점심도 거른데 저녁도 먹는둥마는둥 시늉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편지는 베개 맡에 놓여있다. 아침에 받은 대로다. 편지는 인편에 와 하루 만에 왔다. 같은 향반인 김덕배(가명)는 처자가 한양에 잘 살고 있어 수시로 하인이 오가며 소식을 전하였다. 그 하인 편에 미암의 편지가 왔다. 김덕배와 미암은 죽마고우로 형아우하는 사이다. 미암이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어 김덕배 처가까지 알게 되어 편지 정도는 하인 편에 보낼 수 있는 관계다.
그 편지를 덕봉이 뜯으려 한다. 그런데 지금 문득 기녀 옥경아가 눈앞을 가렸다. 미암의 혼과 넋을 빼앗는 첩이다. 방굿덕 소춘풍도 울고 갈 빼어난 미모에 노래와 춤에도 능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까지 줄줄이 낳아주니 미암인들 발길을 끊을 수 없을 것이 뻔하다.
사실 덕봉은 나긋나긋한 여자가 아니다. 학자 가문에서 태어나 자연스런 가풍의 분위기에서 덕봉은 남자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학문과 시의 수준은 전라도에서 알아주는 미암과 별 차이가 없다. 어떤 경우엔 남편인 미암보다 한발 앞서 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뜰의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음악소리 쟁쟁 울려도 관심 없어/ 좋은 술, 어여쁜 자태엔 흥미 없으니/ 참으로 맛있는 건 책속에 있다네’ 지극한 즐거움은 책속에 있다며 미암이 아내 덕봉한테 보낸 《지락》(至樂)이다.
덕봉이 누구인가! 그녀는 남편의 시를 보자 즉각 차운(次韻:이어 시를 씀)하였다.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것이요/ 달 아래 거문고 타는 것도 한가지 한가로움이지요./ 술 또한 근심을 잊게 하며 마음을 호탕하게 하는데/ 그대는 어찌 책에만 빠져있단 말입니까?’ 자칫 가식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는 남편의 고고한 선비 같은 모습에 대해 부인은 인간다운 진실한 정감이 얼마나 소중한 것에 관해 따끔하게 얘기하듯 충고다. 이 모습은 뜨거운 살을 섞고 있는 아내의 태도가 아닌 쉽게 말하기는 버거운 친구 같은 조언이다.
그들은 친구 같은 부부인 동시에 부부 같은 친구로 보이기도 하는 관계다. 하지만 여자문제는 다르다. 시앗(첩)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하지 않았던가! 덤덤하게 남편 대신 살림살이를 도맡아하고 있는 덕봉도 여자문제엔 단호하다.
여자이기 때문이다. 어느 여자가 자기 남편 품에서 새근새근 잠자며 베개 밑 송사를 그냥 웃어넘길 수 있을까? 학식으로 보면 한양에 잘 나가는 사대부에 뒤지지 않으나 시샘은 보통여자와 다를 바가 없다. 미암도 면벽 학자인 냥 아내인 덕봉에게 자랑하지만 남자는 남자인 것이다.
그 같은 미암의 성정을 덕봉은 꿰뚫어 보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기녀 소실 방굿덕을 보고 뒤늦게 실감하였다. 고추 단 사내들은 여자 앞에 가면 동물적 욕망이 주체하기 어렵게 꿈틀댄다는 것을 덕봉은 미암을 보고 깨달았다. 덕봉은 열여섯에 결혼하여 동네 밖을 나가 본적이 없어 박속같이 순수해 보이는 남편은 제 아무리 예쁜 항아(姮娥)같은 여자가 눈앞에서 아양을 떨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생불인 지족선사(知足禪師)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기대가 방굿덕에서 깨졌다. 방굿덕은 미암과 사이에서 딸을 넷이나 낳았다. 덕봉은 하늘을 찌르는 분노와 천하를 잃는 실망감이다. 부부는 믿음으로 맺어진 이심동체로 생각했었던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일심이체(一心二體)가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사려 깊은 덕봉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끝까지 현모양처 자리를 지켜갔다.
지금까지 지켜왔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서다. 더욱이 친정집의 높은 신뢰에 추호만치도 흠이 갈까 언행에 더 조심스럽다. 미암의 어처구니없는 망동에 자신까지 정신을 놓으면 양가 가문에 미칠 어두운 그림자에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역시 덕봉은 흔들림 없는 현모양처다.
2018-07-11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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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9> 송덕봉(宋德峰) <제1話>
깜빡 낮잠을 잤다. 아무리 신간이 고단해도 덕봉이 낮잠을 자는 일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깜빡 낮잠을 잤다. 깜빡하는 사이에 꿈을 꿨다. 송덕봉(宋 德峰·자成仲·아명鍾介·1521~1578)이 서왕모(西王母)를 만나고 왔다. 시어머니 49제를 치운지 이제 이틀이 지난 후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최악의 상태다.
그런데 곤륜산(崑崙山)에 가서 서왕모를 만났다. 곤륜산 반도원에 가서 서왕모 안내로 삼천육백 그루의 복숭아를 일일이 먹어보고 왔다. 그 찰나 같은 시간이었지만 서왕모와 주목왕(朱穆王:BC1001~BC947 주나라 제5대왕)의 질펀한 사랑장면을 부러운 듯 보고 왔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뱀처럼 꼬고 비틀고 뒤집어지고 자빠지는 등 갖가지 체위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면에 덕봉은 민망하여 고개를 돌렸으나 장면은 또렷이 남았다. 묘한 웃음이 나왔다.
또한 요지(瑤池)에서 매년 3월 3일에 수백 명의 미녀들이 참석하여 개최되는 반도성회(蟠桃盛會)까지 보고 온 것이다. 그 사랑 장면이 민망하여 고개를 돌렸으나 웃음도 절로 나왔다. 찰나의 순간에 보고 온 것에 비해 너무나 생생하게 뇌리에 새겨져 눈앞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흰 구름은 하늘에 떠 있고/ 산봉우리 드높이 솟았는데/ 그대 가시는 길은 아득하고/ 산과 내가 우리 사이를 떼어 놓았네 / 바라건대 그대 오래 사시니/ 다시 오실 수 있기를...’ 서왕모가 주목왕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면서 읊은 애틋한 시(詩)다. 이에 주목왕도 선뜻 수창(酬唱)하였다. ‘동쪽의 내 땅으로 돌아가/ 나라를 잘 다스리리/ 만백성이 잘 살게 되면 그대를 볼 수 있으리/ 삼년이 되면/ 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 하지만 주목왕과 서왕모의 재회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이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존재여서다. 서왕모는 이상 세계인 도교(道敎)의 세상이고 주목왕은 보통 인간이 살고 있는 이승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목왕은 여행길에서 신선세상인 도교의 세계로 잠시 들어갔었던 비몽사몽의 체험이었던 것을 덕봉은 찰나의 춘몽(春夢)에서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꼈던 것이다.
덕봉이 열여섯에 결혼하여 춘몽같이 어느새 마흔에 접어들었다. 탄탄대로로만 생각했었던 결혼생활은 꽃길이 아닌 의외의 가시밭길이었다. 신혼살림 이태 후에 미암(眉巖·유희춘柳希春:1513~1577)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집안 살림은 덕봉이 도맡았다.
사십이면 바깥세상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했는데 덕봉은 문득문득 생기 넘치는 사대부 세상에 관심이 더욱 쏠렸다. 끼니를 걱정 할 정도의 집안 살림은 아니지만 모든 가사에 덕봉의 손길이 가야 처리가 가능한 살림살이다.
덕봉의 성격은 사내를 능가할 정도로 호방하다. 남편인 미암은 전형적인 선비다. 덕봉과 미암의 성격이 바뀌었으며 좋을 뻔한 상황이다. 덕봉은 조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내로 태어났으면 딱 좋은 여자다.
그런데 여자로 태어나 미암의 아내가 되었다. 덕봉은 미암의 아내가 된 것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격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 책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는 정적인 스타일 보다 광야에서 포효하는 야성적인 성격의 사내 품에 안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깜빡 잠들었던 춘몽에서 곤륜산에 까지 가서 서왕모와 사랑을 즐긴 주목왕에 미암을 대비시켜 선망했을 게다. 덕봉의 속내는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임금 앞에 나가 백성과 나라를 위해 웅지를 마음껏 펼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녀칠세부동석과 삼종지덕, 현모양처 등 사회적 족쇄에 묶여있는 여자다.
찰나의 꿈에 전율하고 있다. 서왕모와 주목왕의 질펀한 사랑장면이 눈앞에서 생시같이 어른거려 민망하기까지 하지만 속 깊은 내면의 저편에선 자신도 미암과 그렇게 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음을 가벼운 웃음으로 속내를 숨겼다.
사실 덕봉도 여자다. 주목왕이 천하의 미녀인 서왕모와 헤어짐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겨 부득이 떠나면서도 재회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별의 시로 아쉬움을 달래는 그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 대한 열정의 불꽃이다. 미암도 여느 사내 못지않은 열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열정을 불꽃으로 피워 상대에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미암은 그 불꽃이 화려하게 피어나지 않는다.
조선 선비들의 모습이다. 겉과 속이 다른 체면과 실제의 이중성의 딜레마다. 미암도 그러하다. 덕봉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들을 도맡아 살림살이를 챙겨야하는 덕봉은 마음가는대로 행동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춘몽에 곤륜산에 가서 서왕모와 주목왕의 질펀한 사랑장면만 보고 온 것이 아니다. 3천6백 그루의 복숭아밭에서 각각 1천2백 그루씩 나뉘어 있으면서 그 역할이 모두 다른 것도 보고 왔다. 서왕모는 그 다른 세 그룹의 복숭아들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동시에 원래 덕봉은 곤륜산 신선세계에 높은 지위가 보장되었으니 장차 이승을 떠나면 서왕모 바로 밑 서열에서 일하게 될 것이란 약속까지 받았다.
꿈에서 깨어난 덕봉은 긴 한숨을 토해냈다. 꿈이 너무 엉뚱해서다. 그녀는 가끔 임금과 만나는 꿈을 꾸었다. 임금은 만나면 조정의 비위와 대신들의 일탈행위에 성토하기도 하였다. 그런 꿈을 덕봉은 심심치 않게 꾸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생뚱맞게 곤륜산 서왕모와 주목왕의 질펀한 사랑장면을 꿈에서 보고 여자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었다.
현실과 이상의 간격을 덕봉은 잘 알고 있다. 야망은 큰데 현실의 뒷받침이 없으면 허망한 꿈속을 헤맨다는 것을 덕봉은 일찍 터득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마음을 몽땅 빼앗겼던 신혼시절에 그녀는 화려하게 꾸었던 꿈을 반쯤은 접었다.
덕봉은 야물 찬 여자이면서 냉정한 현실주의다. 서왕모와 주목왕의 식지 않은 사랑도 칠월칠석 일년에 한번 만나 사랑을 불태우는 견우와 직녀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2018-07-04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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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8> 김부용(金芙蓉) <제21話>
밤낮 없는 극진한 간병에도 연천의 병세는 별 효험이 없다. 순조대왕과 사돈관계로 조선팔도의 명의가 조제한 명약을 복용해도 뚜렷한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부용은 촉각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연천의 건강이 회복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이다.
정원의 오동나무는 바람이 불때마다 어느새 낙엽을 후드득후드득 떨어뜨리고 있다. 부용은 연천의 그림자 같이 머리맡에 앉아 수족처럼 움직였다. 그러길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 절기다. 늦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기세도 밀려오는 가을바람엔 맥없이 물러섰다. 아침저녁엔 제법 쌀쌀하다.
더위와 싸우던 연천의 병세도 시월 들어 호전기미를 보였다. 미라처럼 미동도 않았던 손을 내밀어 부용의 두 손을 잡기도 하였다. 촉촉이 물기어린 눈도 떠 부용과 눈인사까지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부용아 미안하구나! 내가 너를 데려오지 않았던들 젊은 옥골선풍의 사대부들이 줄을 섰을 텐데... 너의 행복을 내가 가로막았구나!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너의 행복을 찾아 떠나거라...” 연천의 두 눈에서 샘에서 샘이 솟듯 쉼 없이 흘러 베개로 떨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이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자 부용은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저승사자 앞에 가기 직전엔 누구나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는 말이 번개처럼 떠올라서다. “대감마님, 그 당치도 않는 분부 당장 거두어 주시옵소서! 천첩은 대감을 만나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누려보지 못 할 부귀와 영화를 누렸사옵니다... 이제 더 무엇을 바라겠나이까?” 부용은 연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한평생 신세가 기러기 떼 갈리듯 했는데 / 남포의 뱃노래를 어찌 들을 수 있으랴 / 하루 찼다가 비는 것을 옛 나루에서 보았고 / 백년의 걱정과 즐거움은 진군에게서 들었네 / 산 위에는 해 돋아 붉은 햇무리가 둘렸는데 / 바다 기운이 공중에 떠 푸른 구름이 맺혀졌는데 / 저녁 되며 서늘해지기에 자리 떨고 일어섰더니 / 주렵에 성긴 달빛이 어지럽게 부서지네 / 푸른 물 흰 모래에 달빛까지 더욱 좋은데 / 온 강의 낚시꾼들 노래를 부르네 / 가련해라 저 뱃사람들은 이익만을 중히 여기니 / 꿈속에 집 생각이야 저들이 어찌 알랴 / 달빛이 흐릿해서 모래밭 끝을 모르겠네 / 은포가 응당 한강수에 이어지겠지 / 한가락 맑은 퉁소 소리에 사방을 둘러보니 / 어딘지 모를 곳으로 목란배가 떠나가네’ 《오강루에서 1·23》이다.
부용이 그랬을 것이다. 서서히 꺼져가는 연천의 생명력을 보면서 목란배가 떠나가듯 자신에게서 시시각각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안할 것이다. 반세기의 나이 차이에도 세찬 세상의 시름들이 파고 들어오지 못하게 뜨거운 오뉴월 태양처럼 비추어 주었으나 부용에겐 성에 차지 않았을 게다.
세대 차이는 누구도 대신 채워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재화(財貨)같은 것이 아니다. 용광로 같이 뜨거워져야 할 잠자리에서 어설프게 방사를 즐기고 새벽까지 코 골며 부용을 내버려 둘 때 여자는 젊은 문칠이를 문득문득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욕망이 이성의 판단을 앞지를 때가 있다. 잠자리에서가 대표적이다. 소위 베개 및 송사가 전형적 욕망의 송사다. 사내는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코맹맹이 소리에 오금을 조여 오면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된다. 여자들은 그런 사내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적절할 때 필요에 따라 전술과 전략으로 사용한다.
부용도 연천과의 잠자리에서 그런 경우가 수도 없이 발칙한 판단을 했을 터인데 혀를 깨물며 물리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여자여서 영명사를 찾아가 속세를 아예 떠날 생각까지 가졌었다.
지금 부용은 온기가 서서히 떨어져 가는 연천의 손을 잡고 영명사의 묘허스님의 말을 되새긴다. ‘연천대감을 배반하면 안 되느니라...‘ 부용은 연천의 손에 힘을 넣었다. ’풍류와 기개는 산수의 주인이시고 / 경술(經術)과 문장은 재상이 될 재목이셨지 / 십 오년 살아오다가 오늘 눈물 흘리니 / 높고 넓은 덕 한번 끊어지면 누가 다시 이으랴...‘ 《십오 년 정든 임을 여의고》다. (시옮김 허경진)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 했다던가! 부용도 연천이 이승과 점점 멀어져 가자 여생을 생각했을 것이다. 북촌 본가에선 계륵같이 생각하니 이제 갓 삼십을 넘어 한창 난숙한 부용은 앞이 캄캄할 게다. 연천의 여자란 대자보 같은 이름이 붙어 재취도 엄두를 낼 형편이 아니다.
부용은 이제 초당마님도 연천의 소실도 아닌 끈 떨어진 연이나 다름이 아닌 신세가 될 처지다. 바람 부는 대로 떠 다녀야 하는 주인 없는 나룻배가 되어 질 운명의 찰나다. 사람의 마음은 더욱이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 했듯이 연천의 손의 온기가 점차 식어가자 부용의 마음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가는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성천의 문칠이가 “삼년을 기다릴 것이다.”라고 물기 어린 음성으로 애타는 마음을 호소했었던 장면이 부용의 눈앞을 가렸다. 하지만 부용은 입술을 깨물며 지우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리라 다짐하였다. 만약 연천이 조상의 묘에 동반하여 정경부인 반열에 올려주지 않았던들 지금과 같은 결정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부용도 여자이기 때문이다. 부용은 황진이(黃眞伊:1511~1551)·이매창(李梅窓:1573~1610)과 함께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역사에 창연하다. 작품으론 《운초집(雲楚集)》·《조선역대여류문집(朝鮮歷代女流文集》 등이 있다. 김부용의 트리오 여류시인은 한국의 여류문학사에 영원히 창작의 에너지원이 되어 역사의 꽃을 피울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탄생시킨 꽃 중의 꽃이다. 황진이·이매창·김부용 만이 시를 쓴 것은 아니다. 그녀들이 소위 노류장화라 하여 천대하면서도 사대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로서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남겼다는데 의미가 있다. 위대한 문화예술은 그렇게 혹독한 대가를 지불해야 탄생이 가능한가 보다.
2018-06-2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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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7> 김부용(金芙蓉) <제20話>
홍주(洪州)·결성(結城)·천안(天安) 등지 선조들 성묘 준비에 초당은 부산하다. 부용과 연천의 동반 외출은 처음이다. 선조들의 성묘 길에 부용을 동반 한다는 것은 파격적 예우다. 그것도 정식 부인 자격으로 선조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이 아닌가...
부용은 며칠 전부터 들떠있다. 잠도 설치고 있다. 연천의 정식 아내면 정경부인(貞敬夫人)의 봉작이 붙는다.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격일지 몰라도 연천과 같이 외출을 한다는 것이 부용에겐 얼마나 큰 사건이란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1844년 새털구름 한 점 없는 가을 날씨의 어느 날이다. 부용과 연천은 각각 말을 타고 나들이 길에 올랐다. 부용이 연천과 나란히 말을 타고 동행한다는 것을 부인으로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지금 나들이 길은 성묘행차다. “대감마님, 천첩을 이렇게 대명천지에 동행하셔도 괜찮으신지요?”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느냐! 이제 부용은 어엿한 내 생애의 반려자인 것을... 너는 이제 천첩이니 하는 소리는 말거라...” 부용이 나갔다 돌아온 후 연천의 배려는 더욱 두터워졌다.
삼호정 멤버로부터 부용이 연천의 몸 달아 했었던 얘기를 들은 후론 은근히 몸을 높이려는 자세로 보이기도 하였다. 북촌의 조강지처도 없는 상황에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총명한 부용은 충분한 고려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마음뿐 알뜰한 보살핌은 더 두터워졌다.
잠자리에서 특히 더 뜨겁게 몸을 달구었다. 그러나 연천의 하루가 다르게 식어져 가는 잠자리 횟수와 즐기는 패턴도 점점 식어져만 갔다. 사내가 물러서면 여자는 더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갔다. 부용과 연천의 잠자리가 그러한 관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나이는 역시 나이다. ‘비단창 아래서 잠이 깨니 달 바퀴는 서쪽으로 지네/ 한강수 풍류세월이 꿈속에 아득해라 / 숲속에서 맑은 바람 불어 발을 걷어 올리니 / 마음만 적막한데 뱁새 한 마리가 깃들었네 / 산수는 시로 읊어 작은 벼루 서쪽에 놓으니 / 서울 남쪽의 풍류세월이 창 너머 아득해라 / 성 머리의 가는 버들이 오동나무 아니니 / 어찌 뒷날에 늙은 봉새 깃들길 바라랴!“ 《연천대감의 시를 차운하다》다.
나이가 들면 몸과 같이 마음도 늙어야 하는데 마음은 되려 아이로 돌아가고 있다. 연천은 조상 성묘(1843)에 부용을 동반한 이후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연로한 몸에 성묘 길에 무리가 겹쳐 감기로 몸져눕게 되었다. 그동안 뼛속까지 사랑했던 부용을 만천하에 ‘내 마누라다.’라고 공개적으로 내세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선조들의 묘역에까지 동반하여 갔었던 것은 부용이가 명실 공히 연천의 여자라고 공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은 초당에서 시우들과 수창을 하며 재색만 뽐냈지 조선 특유 유교사회와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연천의 옆에서 당당히 부인(정경부인)역할을 여보란 듯이 했었다.
연천의 조강지처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부담이 없어서인 동시에 이 기회에 부용을 소실에서 정실로 인정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기도 하다. “대감마님, 대감마님은 이젠 이 세상에선 부러울 것이 없으시겠어요? 남은 판서 하나도 하늘의 별따기 보다도 어려운 것을 대감마님은 예조·이조·호조 등을 두루 거치고 임금(순조)과 사돈관계까지 맺었으니 부귀영화가 하늘에 닿았어요! 대감마님...” “다 네 덕이니라! 네가 퇴임을 권하지 않았던들 내 어찌 스스로 사임을 생각했겠느냐?” 연천이 손을 뻗어 부용의 손을 꼭 잡았다.
뜨거운 손이다. 전례 없이 뜨겁고 따뜻한 체온이 실렸다. 그런데 부용은 느껴지는 뜨거운 손의 체온이 서서히 식어져가는 감이 느껴졌다. 조상의 성묘를 다녀온 후로 변화를 보이는 연천의 체온이다. 부용은 불길하다. ‘꽃피고 떨어지는 것은 사사로운 마음이 없건만 / 새 날고 물고기 뛰는 것은 누구를 위한 건가 / 정다운 한마디에 산은 다시 저물어 가건만 / 가을되니 시름이 일어 천리 떨어진 것을 어찌 견디랴 / 오늘밤 밝은 저 달을 누구와 같이 볼까 / 떠다니는 인생이라 만나기 힘들어라 / 바람과 이슬 가득한 하늘엔 사람도 보이지 않고 / 갈꽃 덮인 십리 길에 강물만 아득해라’ 《황강에 먼저 가신임을 생각하며》다. (시옮김 허경진)
부용은 감지했을 터다. 연천이 조상의 성묘에 자신을 동반한 것과 연로한 연세에도 자손들과 같이 가지 않고 노복(奴僕·사내종) 몇 명만 데리고 다녀온 것에 대해 짐작을 하고 있을 게다. 마지막 성묘가 될 것이란 예감이다.
아무튼 연천은 벼슬이 내려질 때마다 선조들에 감사해야 하며 찾아가 인사를 올려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으며 이번에 큰마음 먹고 다녀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이다. 부용도 소실의 자리에서 조강지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이 되었다.
이제 연천은 이승을 떠나도 아쉬운 깃털 하나도 남기지 않고 조상들 앞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용을 조상들 앞에 가서 안동김씨 여인으로 떳떳이 신고하고 온 후론 큰 짐을 벗어 놓은 듯한 표정이다. 일개 기생신분에서 정경부인 자리로 올려줘 기라성 같은 안동김씨 선조들 묘에서 비록 예식을 번듯하게 치러주지는 않았으나 평소에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벗어던져 이승의 삶에서 점점 멀어져 가면서도 아쉬움이 없는 밝은 미소를 짓고 있다. 어미젖을 마음껏 빨아먹고 잠드는 이 세상에선 단 한 장면 밖에 없는 표정이다.
부용의 마음엔 먹구름이 끼었다. 연천이 이승을 떠나면 훌쩍 고향 성천으로 갈까도 생각중이다. 문칠이가 목말라했던 표정이 대보름달처럼 눈앞을 가렸다. 이렇듯 갑자기 떠날 것을 알았으면 묘허스님과 헤어진 후 고향에 주저앉았을 것을 하는 방정맞은 생각까지도 문득 떠올랐다.
그렇게 했으면 지금쯤은 아이를 낳고 촌부의 아내로 밤마다 깔깔대며 사랑의 잠자리를 보낼 수 있으리란 생각에 이르자 눈앞에서 반혼수상태에 있는 연천이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활화산처럼 솟구쳐 올랐다. 부용의 진정한 마음이다.
2018-06-20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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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6> 김부용(金芙蓉) <제19話>
초당은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모양 을씨년스런 분위기다. 부용이 뻐꾸기 모양 훌쩍 떠난 뒤로 시우들마저 발길이 뚝 끊어져 연천은 즐기던 아침 산책도 중단하였다. 부용이 있을 때는 쌩쌩 돌아가던 집안이 삐걱거리다 아예 멈춰버린 상태다. 화단엔 여름 꽃들이 일찍 내린 서리에 축축 쳐졌으며 연못의 금붕어들도 몇몇 마리는 시체로 둥둥 떠 있다.
연천은 평양감사를 통해 부용의 동태를 손금 보듯 보고 있다. 부용이 대문을 나서자 나귀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칠이는 내다보지도 않는다. 밤새 술을 마시고도 꼿꼿이 앉아 부용을 잡아먹을 듯이 뜨거운 눈초리를 한 번도 거두지 않았다. 부용의 몸이 몽땅 타들어갈 듯한 뜨거운 눈초리였다.
“초당마님! 성천대감이 보낸 나귀입니다. 이것을 타시고 한양으로 올라가시랍니다...” 성천 예방아전이 깍듯한 예의를 갖추며 연천의 서찰을 내밀었다. ‘운초 보시게! 이 서찰을 받는 즉시 한양으로 오시게. 운초 없는 세상은 태양이 없는 캄캄한 세상이야...’ 서찰을 읽은 부용은 나귀에 올라 바람처럼 한양을 향하였다.
사흘 만에 초당에 닿았다. 어둠이 깔리는 저녁이다. 연천이 문밖에서 서성이다 부용을 반색 하며 맞았다. 밤마다 꿈속에서 부용을 만났는데 어젯밤엔 화촉동방을 치렀다. 연천은 부용을 보자 나귀에서 번쩍 들어 아이를 품듯 품어 안으로 들어갔다.
잠겼던 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용이 떠날 때 모습 그대로다. “부용아, 그래 여행은 잘 다녀왔느냐? 여행을 하고 싶으면 나하고 같이 가면 좋겠느니라! 이제 나도 백수가 됐으니까 눈치 볼 것도 없이 삼천리금수강산을 쉬엄쉬엄 다닐 수 있단다. 앞으론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 부용은 불호령이 떨어지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연천의 뜻밖의 말에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잠시 일망정 욕망의 갈증에 눈이 어두워 문칠이를 찾아 갔었던 자신이 너무 치졸하게 생각되었다. 부용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아니옵니다. 대감어른! 천첩이 행복에 겨워 엉뚱한 생각을 잠시 가졌었습니다. 천첩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려주시옵소서...” 부용은 연천대감의 발부리에 납작 엎드려 울면서 호소하였다. ‘해가 길어 꾀꼴 새는 살구 그늘에서 지저귀는데 / 미인은 수놓은 발 깊숙이 고즈넉이 앉았구나 / 끝없는 버드나무에 봄바람을 가져다가 / 백년의 굳은 마음을 가지마다 맺고파라/ 《평양기생 백년춘에게》다.
사실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길사람 속은 알 수 없다 하였다. 사반세기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매일 화촉동방 같은 사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생리적인 차이도 있을 수 있고 생각의 차이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연천의 하해(河海)같은 이해력으로 부용을 사랑을 뛰어넘는 지우(知友)로 생각한다 해도 남과녀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소위 질투란 것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사랑이 없으면 몰라도 뜨거운 살을 섞는 관계엔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질투란 안개가 존재한다.
연천과 부용 관계도 그런 경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용이 연천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나가 서너 달을 지내다 돌아왔다. 외간 남자와 바람이 나 나갔다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연천으로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이 많은 연천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잠자리가 성에 안차서 그랬는지 아니면 한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재색을 갖춘 부용이 할아버지 같은 사내와 살을 섞고 있어 창피하여 뛰쳐나갔나 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을 터다.
지금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천은 부용의 싱싱하고 뜨거운 살에 늙어 서러운 마음과 몸을 회춘시키려 안간힘이다. 연천은 부용이 평양 영명사에 있을 때 그녀가 참여하여 수창을 즐겼던 삼호정시단(三湖亭詩壇) 멤버(김금원·박죽서·김경산·김경춘) 들을 일일이 만나 보았다. 그녀들도 부용의 동태에 대해 모르고 있다. 더욱이 부용은 그녀들과 십여 년이나 위였으니 시와 처지가 같아 어울리긴 했어도 마음을 툭 터놓고 내밀한 얘기는 주고받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용은 연천의 따뜻하고 넉넉한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맑은 강물이 곱게 모여서 거울처럼 단장하고 / 산은 쪽진 머리에다 풀밭은 치마 같아라 / 헤어지는 나루에는 수 없는 새들이 날아와 나래치고 / 꽃 덮힌 물가에선 이름 모를 향내가 나네 / 소나무 창가로 달빛이 스며들어 이불이 엷은데 / 오동잎 바람에 흔들리자 이슬 더욱 반짝이네 / 봄 제비와 가을 기러기가 모두 약속을 지키니 / 미리부터 슬퍼하며 애태울 필요가 없네’ 《삼호정에서 저녁에 바라보며》다. (시옮김 허경진)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듯이 늘 가까이 있으면 고맙고 귀한 존재인 줄 모른다. 부용도 연천의 존재를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용은 목탁처럼 머리를 빡빡 깎고 출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마음이란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온다 해도 전 같지 않다. 상처를 치유해도 흔적이 남듯 떠났던 마음엔 보일 듯 말 듯 쓰린 앙금이 남는다.
연천은 제자리로 돌아온 부용에게 눈물겨운 정성을 들인다. “올 가을엔 나와 같이 여행을 떠나자.” 감로주 몇 잔에 연천의 얼굴이 연산홍 빛깔이다. 흰 머리에 상기된 얼굴이 선인(仙人)처럼 보였다.
부용은 잠시 방정맞은 생각으로 영명사까지 갔다 온 자신이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다. “천첩 오늘따라 피곤하여 일찍 자리에 들어야겠사옵니다.” 속곳 속에 풍만한 엉덩이가 연천의 뜨거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직 자시(子時)도 안됐는데 램프불이 꺼졌다. 평소 같으면 술기운에 수창을 즐겼을 분위기다.
2018-06-13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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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5> 김부용(金芙蓉) <제18話>
산사의 가을이 여느 해보다 일찍 왔다. 여름의 끝자락이려니 할 때 어느새 가을은 화단을 점령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다. 산봉우리에 있으려니 하면 골짜기에 와 있고 서둘러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때는 산사의 정원에까지 이미 와 있었다.
여름에 온 부용도 신사를 떠날 채비를 끝냈다. 묘허스님에겐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녀도 행동으로 봐 짐작은 했으리라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심전심이다. 묘허스님도 부용의 행동에서 한양의 연천대감 품으로 돌아갈 마음을 눈치 채고 말을 아끼고 있다. 본인이 말할 때까지 서로의 표정만 살피고 있는 상태다.
부용이 아침저녁 예불에 참여하지 않은지 벌써 사흘째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는 저녁녘이다. “언니 나 내일 한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어요.” 저녁을 먹는 자리다. 묵묵부답인 묘허다. 부용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반응이라 의아해 한 표정이다.
침묵이 한참 흐른 뒤다. “너는 연천의 손길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예술인이라 하는 족속들의 속성이야! 황진이도 화담을 잊지 못해 하지 않았느냐? 기녀들이 기적을 떠난 뒤에도 괴로워하는 것이 뱀처럼 혀를 날름대며 주위를 맴도는 사내들의 손길이 몸서리쳐지도록 싫은데도 막상 떠난 뒤엔 그 손길이 아련히 그리워지는 자신의 이율배반적 생리에 몸부림치는 것이야... 또한 그런 것이 여자인 동시에 세상의 반을 담당하고 있는 인간의 책임이기도 하단다...” 또 한 차례 찰나적 침묵이 흐른 뒤 “아무튼 잘한 결정이다! 축하한다...” 하였다. 그런데 묘허의 두 눈에선 소나기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헤어지기는 싫다는 몸부림의 징표다. 부용은 성천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때 연천이 사준 옥 목걸이를 풀러 묘허스님에게 건넸다. “언니 그동안 고마웠어요! 아침을 먹고 떠날 거예요. 이거 별거 아니지만 저 보고 싶어질 때 보세요... 언니 말대로 저는 사내 손길에 길들여진 몸뚱인가 봐... 몸은 이곳에 와 있는데 마음은 남산 초당에 가 있으니 출가를 할 수 있겠어요?” 부용의 얼굴엔 씁쓰레한 웃음기가 먹구름처럼 흘러갔다. ‘높은 다락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며 헤어지니 / 술에 취한 채로 한세상 살아 가세나 / 나무 뒤에선 매미가 가을 오기를 재촉하고 / 하늘 끝까지 이어진 풀밭에는 저녁노을이 더욱 붉어라 / 시름이 그치지 않아 잎 위에 구름이 이는데 / 헤어지는 아픔 달래지 못해 술만 따르네 / 우리네 인생 쉬 늙을게 문득 깨달아지니 / 그대 이제 가면 어떻게 지내려나’ 《금앵과 헤어지면서》다.
부용의 발길은 한양이 아닌 성천으로 향했다. 번개처럼 소꿉동무 문칠이가 보고 싶어져서다. 이제 한양으로 올라가면 다시는 성천에 올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기녀 생활 때 기거했었던 집도 정리하고 수양모 상청(喪廳)에도 들리려는 것이다.
수양모가 위독하다는 서찰을 받고도 내려와 며칠 동안만이라도 수발을 했으면 마음이 덜 무거웠을 터다. 친모였으면 그러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수양모였으니 눈을 감으면서도 그녀는 야속하고 서러워 했을 것이 뻔하다. 뒤늦었지만 상청에 들려 큰절을 하고 속죄를 빌려는 부용의 속내다.
문칠이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문서방! 부용이 왔네.” 문칠이는 마침 가을걷이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 길이었다. “문서방, 나야! 부용이야. 부용이를 몰라보는 거야?” 남장을 한 부용을 문칠이는 빤히 쳐다보고 반색을 하는 표정이 아니다. 그 행색이 뭐냐는 표정이다.
문칠이는 수양모의 외가 동생으로 설매 장례를 도맡아 치뤘으며 지금은 상청까지 모시고 있다. “내 너무 늦었지? 용서해줘...” 부용이 문칠이 두 손을 잡았으나 사내 손은 뜨겁지 않다. 문칠이는 지금 홀아비다. 연천이 주선하여 결혼시킨 여자는 출산 중 사망했으며 딸도 설매의 보살핌을 받다가 돌을 넘기지 못하였다.
원망스런 문칠이의 눈초리가 부용의 아래위를 훑었다. 뜨겁고 원망스런 눈초리다. 부용이 전율을 느꼈다. 문칠이보다 세 살 위다. 당장 자빠뜨릴 자세다. 입이 굳게 닫혀 입술을 깨물며 참는 눈치다. ‘사람 더딘 강 위에는 비만 추적추적 내리는데 / 난간가에 이르니 해는 벌써 져 버렸네 / 산 빛이 어둑해서 저편 기슭을 알아보기 힘들어 / 외로운 배만 꿈속처럼 구름 속을 헤매네’ 《황강 노인을 기다리며》다. (시옮김 허경진)
가을 해는 노루꼬리처럼 짧다. 문칠이는 저녁 대신 술을 마시잔다. 문칠이 눈이 충혈 되었다. 부용에게 남자 노릇을 하고 싶은 눈치다. 부용은 사내표정을 잘 읽어 본다. 독심술 못지않은 동물적 감각으로 사내들의 마음을 꿰뚫었다. 지금 문칠이가 부용을 품으려한다. 전엔 감히 욕심을 낼 처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부용은 오십 여년이나 차이가 나는 소실이고 문칠이는 홀아비다. 밤새 여자를 품어도 새벽에 다시 물건이 일어날 칡 넝쿨 같은 청춘이다. 부용도 그 뜨거운 용광로에 뛰어들어 용해되고 싶다. 하지만 봉조하 연천의 모습이 눈앞을 막았다. “언제 올라 갈거니?” 문칠이의 혀 꼬부라진 소리다. “날이 새면 곧장 올라가야지!” “꼭 올라가야 되니?” 문칠이의 올라가지 말고 나와 살자는 간절한 눈치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지킨 부용은 먼동이 트자 “내 집은 문칠이 아우가 알아서 처리해줘...” 말을 남기고 바람처럼 대문을 빠져 나갔다. 연천이 학수고대하는 한양을 향하였다.
묘허스님과 헤어질 때는 발길이 무거웠으나 문칠이를 보고 떠나는 발길은 날듯이 가볍다. 연천과 방사를 한 후 성에 안차 비몽사몽에 나타났던 문칠이까지 보고 떠나니 몸이 바람처럼 날렵하다.
게다가 밤새 술까지 대작해 줬으니 마음까지 후련해졌다. 고향 성천을 깨끗이 정리하고 연천에게만 몸과 마음을 받쳐야겠다고 생각하니 하루라도 빨리 남산 초당에 가야한다는 발길이 깃털처럼 가볍다.
2018-06-06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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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4> 김부용(金芙蓉) < 제17話>
새벽 종소리에 묘허가 놀란 고양이처럼 발딱 일어났다. 부용의 손을 잡은 채였다. “언니 나는 좀 더 있다 일어날게.” “그렇게 하려무나. 오느라 피곤 할텐데 오늘은 아무 말 말고 푹 쉬어라...” 네 심정 뻔하지 하는 말투다. 부용은 잠이 덜 깬 상태다. 속내를 다 드러내고 속 시원하게 말을 하고 싶어 한양에서 허위단심 달려왔는데 믿거라 한 묘허의 표정에 숯검정같이 부용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부용이 묘허와 마주 앉았다. “언니~ 나 언니 곁에 있고 싶은데...” 말끝을 잇지 못한 부용이 묘허의 표정부터 살핀다. 어제 절 앞 얼음장 같은 표정이 선명하게 떠올라서다. “글쎄다. 여기가 아무나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며칠간 있으면서 네 마음을 정해도 늦지 않을 거다.” 부용은 어제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묘허스님의 언행에 한숨 돌리는 표정이다. 당장 한양으로 올라가라고 내칠까 걱정이 태산이었었다.
녹차향이 전례 없이 상큼하다. “네 진짜 속내를 털어 내봐! 그냥 해 본 소리가 아닌 남은 여생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속내를...”묘허의 표정이 단호하다. 아릿아릿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다.
출가 십여 년에 몸에 밴 불가(佛家:문수보살)의 모습이다. “알았어요. 언니 제가 한양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그냥 장난삼아 온 것이 아니에요... 저도 몇 밤 몇 달을 고심 끝에 뻐꾸기 비둘기 둥지 떠나듯 훌쩍 떠나 온 것이 아니에요!” 부용의 목소리엔 울음이 묻어있다.
두 눈에선 어느새 구슬 같은 눈물이 주르르 무릎으로 떨어졌다. “너 같은 여자는 밤마다 사내가 그리울 거야! 나도 그랬어... 사내들이 징그럽고 저주스러워 출가했는데 얼마 동안은 사내손길이 그리워 밤잠을 못 잤어. 자의든 타의든 밤마다 사내 손길이 오르내리던 몸뚱아리가 길이 들어져 있었어. 그것이 여자의 생리인가 했었어. 그것을 떨쳐 버리는 데에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었단다...” 말을 마친 묘허의 입에서 갑자기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날은 길고 산은 깊어 풀 향내 짙어 졌으니 / 봄이 가버린 길이 묘연해 찾아내지 못하겠네 / 그대에게 묻노니 이내 몸이 무엇 같던가 / 저녁 하늘 끝에 외로운 구름만 보이네’ 《늦은 봄에 동문을 나서며》다. (시옮김 허경진)
묘허의 긴 한숨에 부용은 더 불안하다. 오늘 당장 한양으로 떠나가라 할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이다. 묘허스님도 부용이 빤히 쳐다보자 긴장이 되는지 마른 입술에 침을 칠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야! 네 인생 네가 선택하는 거야. 스스로 선택했으니 끝까지 후회 말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묘허스님은 또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리고 무언가 깊이 생각한 듯 창밖을 응시하다 손으로 모자를 벗으며 반들반들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 머리가 스님의 상징이지 보통 여자들은 머리를 싹싹 밀지는 않지. 속세와 인연을 끊는 대표적 상징일 게야... 세상 여자들이 머리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거야... ” 목탁처럼 반들반들한 머리를 가리킬 때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떨림은 찰나였으나 부용의 가슴은 한나절처럼 긴 시간으로 태풍같이 흔들었다. 그때다. 묘허는 하얀 종이에 붓으로 정성스럽게 쓴 시를 보여주었다. 시는 이러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초기 불교 경전 《숫타니 파타》에 나오는 ‘연꽃’을 노래한 시다.
부용은 금방 알았다. 떠날 때 떠나도 묘허스님에게 심려를 덜 끼쳐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아침, 저녁 예불도 더 열심히 나갔다. 산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건성이었으나 차츰 분위기에 빠져들자 적극적이 되었다.
아예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고 싶은 충동까지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묘허스님의 설득에 마음이 서서히 풀려갔다. “운초 없는 세상은 사막이야...” 란 연천대감의 말도 생생하게 귀에서 맴돌며 떠나가지 않았다.
본인이 있으면 있을수록 묘허스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연천대감에 대한 그리움은 무지갯빛처럼 피어남을 느꼈다. 묘허스님이 말한 사내 손에 길들여진 몸뚱이가 근길 거려짐을 실감나게 되었다.
산사의 여름은 노루꼬리 같이 짧다. 싱아, 금낭화, 해란초 등이 화려하게 피어나는가 하면 가을꽃들인 부용, 구절초 등이 소리치며 피어났다. 묘허스님은 해란초를 유별나게 좋아했는데 피어있는 시간이 짧아 꽃이 질 때마다 그녀는 남몰래 통곡하였다.
박모 사또가 연모하여 가을이면 해란초를 2~3일에 한 번씩 선물을 했다는 것이다. 속세를 떠나 영명사로 출가를 했는데도 옛정에 목매 짝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철따라 찾아와 넉넉한 보시(布施)를 했다는 애틋한 얘기다. 그는 평생을 묘허스님을 잊지 못하고 총각으로 늙어갔다는 사연이다.
부용은 묘허스님의 과거를 더 깊이 알기 전에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날짜만 잡으면 되는 상태다. 알만 낳아 자란 뻐꾸기가 비둘기 둥지를 떠났다가 비둘기가 되어 집을 찾아가는 심사다. 떠날 마음으로 막상 짐을 챙기려니 짐이 별로 없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나뭇가지를 떠나는 산새모양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마음은 벌써 초당에 가서 연천의 품에 안겼다. 한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혀 행동이 가벼워졌다. 예불도 더 열심히 하였다. 정숙하고 진지하여 출가 십여 년이 넘는 묘허스님이 무언가 마음의 변화가 있나보다 느낄 정도다.
머리를 깎고 아예 스님의 되겠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묘허스님은 가슴이 답답하고 빡빡머리의 부용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지만 물어볼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두 여인은 아침상을 사이에 놓고 서로 먼저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2018-05-30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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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3> 김부용(金芙蓉) < 제16話>
화단엔 봄꽃들이 만개하였다. 연천이 육조로 출근 할 때는 부용이 직접 꽃들을 가꾸었으나 퇴임 후론 손을 놓았다. 연천의 정성어린 가꿈에 화단은 어느 해보다 화려한 봄을 맞았다. 흰목련·연분홍자목련·노란유채·흰영산홍 등의 자태가 눈부시다. 그 중에서도 흰 영산홍이 화단을 더욱 빛내고 있다.
부용은 초당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 아버지의 딸에서 뭇 사내들의 노리개인 기생의 길에서 연천의 회춘 마중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 구석에 싹터온 생각이었으나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연천이 목에 생선가시처럼 걸리었다. 젖먹이 같이 자신에게 전적으로 매달려 있는데 뻐꾸기 비둘기 둥지 떠나듯 훌쩍 떠나 버리면 연천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부용은 그 같은 현실이 눈에 선하다.
북촌의 조강지처는 부용이 초당으로 들어온 이후 남남이나 다름이 없다. 허울뿐인 조강지처다. 그런 상황에서 부용이 초당을 훌쩍 떠나면 연천은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일 게다. 하지만 부용은 초당을 떠날 채비를 착착 진행시킨다.
영원히 떠나갈 듯이 사시사철 갈아입을 옷을 몇 달 전부터 챙겼다. 하인들이 눈치 채지 않게 주로 새벽녘까지 깊은 잠에 빠졌다. 연천은 평소엔 부용을 죽부인(竹夫人)안고 자듯 품에 꼭 안고 잤다.
틈틈이 지난겨울부터 부용은 연천이 일 년 열두 달 계절에 따라 벗고 입을 옷을 차곡차곡 준비해 놨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쉽게 떠날 날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 때문이다. 하지만 떠나가야만 한다. 접었던 날개를 펴고 한번 날개 짓에 구만리를 난다는 봉황처럼 거침없이 창공을 훨훨 날고 싶은 것이다.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날짜를 잡았다. 4월 어느 달 밝은 새벽녘 남장을 한 부용은 날랜 걸음으로 평양을 향하였다. 산 넘고 물 건너 9일 만에 평양에 닿았다. 평양에 오니 연천대감이 감사로 있을 때 연을 맺어 용광로 같이 뜨거운 밤으로 사랑을 꽃피웠던 시절이 눈앞을 가렸다.
부용은 그럴 때마다 무거운 발길을 재촉하여 달콤한 추억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어차피 연천의 따뜻한 품을 벗어나려 했으니 하루라도 빨리 잊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붉은 여뀌 꽃이 피어 처음으로 성 밖에 나왔으니 / 산과 물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개었네. / 긴 방죽 버들 숲에는 가을빛이 들렸는데 / 나루 멀리 어인일로 임을 따라 예까지 왔나. / 꿈속에 여러 생각을 끝내 이루지 못했네. / 달을 보려고 난간에 기대었더니 이슬만 차가운데 / 고깃배 불빛이 저 멀리서 두어 곳 반짝이네.’ 《오강루에서 한밤중 생각하다》다.
말 타면 종 세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망이다. 마음에도 없는 웃음과 교태를 부려야 했던 부용도 기생의 몸에서 고관대작의 정실은 아니지만 부실로 호의호식하다 보니 더 뜨거운 욕망이 발동하였다. 비단 옷에 고기반찬에 맛있는 밥만으론 욕망이 충족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허위허위 열사흘 만에 묘허(妙虛)스님이 있는 영명사(永明寺)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부용이 깜짝 놀랄 상황이 벌어졌다. 절 입구에 묘허스님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언니 언니가 아냐? 언니가 어떻게 여길 나와 있어요?” 부용은 묘허스님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그랬구나. 네가 결국 오고 말았구나! 나는 꿈이 하도 심란해서 행여나 하고 며칠째 나와 있는 거야. 네가 뭐가 아쉬워 이곳을 찾았느냐?” 싸늘한 표정이다. 부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을 반갑게 맞아 주리라고 허위허위 달려왔는데 뜻밖에 얼음장 같은 표정에 서운하기까지 하였다.
산사(山寺)의 낮은 짧다. 해는 어느새 서산에 걸렸고 영명사 추녀엔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였다.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시장 할 텐데 요기부터 하고 너의 얘기는 저녁 후에 듣자구나...” 준비를 했던지 동자(童子)승이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다.
시래깃국과 묵은지 한쪽에 감자가 섞인 옥수수밥이다. 배가 고프지만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아 반이나 남겼다. “다 먹어라! 여긴 그 밥과 반찬밖에 없느니라... 초당생각을 하면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묘허스님의 경고다.
묘허스님과 몇 마디 말도 못하고 자리에 들었다. 영명사 대웅전 뒤 암자에 누웠다. 다정한 자매같이 두 손을 꼭 잡고 자리에 들었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갈 듯 했으나 무거운 침묵만 흐른다. 부용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절 입구에서 싸늘한 묘허스님의 표정이 떠올라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묘허스님도 부용의 행색으로 봐 잠시 바람을 쐬러온 것이 아닌 출가(出家)의 모습이 보여 역시 어떤 말을 해야 될까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어젯밤 들판에서 봄을 보내고 돌아와 / 깊은 시름 견디지 못해 술잔을 들었더니 / 아직도 석류나무에 붉은 꽃이 피어있어 / 때때로 울타리 넘어 찾아오는 벌 나비들이 보이네./ 《봄을 보내고 서다》 (시옮김 허경진)
묘허스님은 부용보다 네댓 살 위다. 퇴기스님이다. 누구보다 부용의 생각을 잘 안듯하다. 묘허스님은 입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산사의 밤은 깊어가고 서쪽 새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부용이 동창이 밝아 눈을 떴을 때는 묘허스님의 손을 꼭 잡은 채다.
몸은 평양에 와 있어도 마음은 초당에 두었다. 묘허스님의 손은 따뜻하다. 고향 성천 언니다. 결혼했으나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과부가 되었다. 몹쓸병(결핵)에 걸린 것을 모르고 결혼했으나 남편이 명을 재촉한 것이다. 사내는 밤마다 색을 밝혀 짧은 인생을 더 단축시켰다.
사내 집은 대대로 부농이었다. 병이 깊어 백약이 무효로 장가나 보내 총각 귀신을 면하게 한 것이다. 초희(묘허) 부모는 그런 것을 알고 서둘러 결혼시켰다. 논 열 마지기에 밭을 주는 조건이다. 남편 3년 상을 치루고 묘허는 영명사로 출가하였다.
그녀도 출가 전에 앵두기명(妓名)으로 잠시 기적에 있었다. 묘허스님은 운초가 태어나기 전엔 성천에서 알아주는 미인이었었다. 벌써 스님 삼년 차다.
2018-05-23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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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2> 김부용(金芙蓉) <제15話>
북촌(北村) 본가는 축제 분위기에 들떠있다. 연천의 맏손자 현근(賢根)이 순조의 부마(駙馬:임금 사위)로 간택 되어서다. 연천의 집안에 연이은 행운이다. “대감어른 감축 드립니다. 이제 대감 위엔 임금이 있을 뿐입니다.” 부용은 술잔에 감로주를 가득 따르며 연천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나도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너(연천)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고맙다! 이 같은 홍복이 다 네 덕이로다... 네가 나에게 오지 않았던들 이처럼 큰 홍복은 없었을 것이니라.” 부창부수다. 현재 누리고 있는 홍복이 서로 상대가 만들어 준 것이란 덕담이다.
연천은 부용에 대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 부용 또한 연천의 보살핌으로 오늘날 호의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터다. 부용은 다만 현재 누리고 있는 홍복이 어느 날 갑자기 아침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걱정이 태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연천이 이조판서 자리를 내어 놓고 나온 날부터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 보여서다.
사실 연천은 벼슬자리를 내어 놓으니 긴장이 풀려 맥이 딱 떨어진 상태다. 입맛도 떨어지고 그렇게 좋아 보이던 부용이 마저 심드렁하게 보였다. 육조에 나가면 각조 판서들이 모두 친구나 후배들이여서 한가할 틈이 없다. 해가 떨어지면 서로 한잔 사겠다며 연천을 붙들었다.
연천이 술자리 초청 인사로 제일 순위로 꼽히는 것은 부용 때문이다. 잠자리가 주제다. 연천은 육조거리에서 부러움 대상 1호의 재미를 톡톡히 즐겼다. 산수(80)를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데 대해 이구동성으로 축복과 박수를 받았다. 부용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원동력이다. 초당은 초당대로 연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연천이 퇴임 후 풀이 죽어있자 부용이 그동안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었던 끊긴 발길을 다시 불렀다.
초당은 다시 수창 열기로 가득하다. 역시 부용의 치맛바람이다. 부용이 오라하니 그 이튿날로 부나비처럼 사내들의 발길이 붐빈다. 연천의 표정도 한결 생기가 돌았다. “봉조하 대감 홍복이 하늘에 닿았소...” 뜸했던 발길이 다시 북적대자 연천의 표정이 밝아져 보이지만 한편으론 어두운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였다.
시우들의 발길이 뜸해 부용을 몽땅 차지했었는데 다시 초당이 왁자지껄하게 되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초당마님에 대한 질투심이 발동하였다. “봉조하 대감, 농담을 좀 해도 괜찮겠소?” 점잖기로 육조거리에서 이름난 전 예조판서 최길준(崔吉俊·가명)이 연천과 부용을 번갈아 보며 말을 꺼냈다. “하하하... 좋다마다요. 우리 사이에 무슨 농담인들 못하겠소!” 연천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해 놓고 걱정이 앞섰다. 부용이 민망해 할까 봐서다.
최대감이 입을 열었다. 옥골선풍의 헌헌장부다. “어느 선비가 말을 타고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있는 냇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스님과 동행하게 되어 선비가 스님에게 내 시 한 수 읊을 터이니 스님께서 수창해 주시게 하며 ‘시냇가에 홍합이 열려있네’ 하였더니 이때 스님도 거침없이 응수 하였다네. ‘말 위에 송이버섯이 발동하네.’ 했다네.” “하하하... 홍합과 송이버섯을 섞어 전골을 만들어 먹으면 천하의 일미가 되겠소이다.” 옆에 있던 전 형조판서 김덕태(金德太·가명) 대감의 박장대소다. 부용은 자신이 지금은 봉조하 대감의 소실로 초당마님 초당마님 하지만 기생 출신이란 인식이 깔려 있음을 느꼈다.
사내들이란 늙어도 제 버릇 못 고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부용은 가슴이 소녀시절로 돌아갔다. 하지만 분위기를 깰 수는 없다. 부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대감 밖에 첫눈이 탐스럽게 내리고 있사옵니다.”라고 외쳤다.
이때 옆에서 묵묵히 있던 전 공조판서 강운우(姜雲雨·가명) 대감이 시 한 수를 읊었다. ‘눈 쌓인 남산을 곰이 달려간다.’ 라고 일필휘지로 썼으나 웅(熊)자에 그만 점 네 개를 빼고 능(能)자를 썼다. 강대감이 “운초께서 수창해 주시오” 하였다. 운초는 웅자를 능자로 썼음을 금방 알았다. “북촌사람이 돌아오니 크게 짖는다.”했다. 강대감이 웅자에 네 점을 빠뜨린 것을 알고 자신도 개견자(犬)에 점 하나를 빼고 대(大)자를 썼다.
이 때 박장대소를 하며 강대감이 일갈하였다. “내가 남산적설에 대해 북촌인귀까진 좋았는데 웅주주(熊走走)에 대폐폐(大吠吠)는 대(大)보다 견(犬)으로 고쳤어야...” 강대감은 부용이 의식적으로 틀리게 쓴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연천도 “강대감의 말이 옳은 듯 하이...”라고 거들었다.
이때다. 부용은 복사꽃 빛깔의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꾸를 하였다. “대감께서 곰에게 발 네 개를 달아 주신다며 소첩인들 개에게 귀하나 주는 것을 어찌 아끼겠나이까?” 좌중의 시우들은 부용의 말을 듣고 비로소 강대감이 웅자를 능자로 잘못 쓴 것과 부용이 견자를 의식적으로 대자로 틀리게 쓴 것을 알고 모두 운초의 천재적 시재(詩才)에 다시 한 번 감탄을 자아냈다. ‘외로운 꾀꼴새 울기를 그치고 실비는 비껴 내리는데 / 저녁노을이 창에 덮이자 푸른 비단이 따뜻해라. / 가는 봄 붙잡아 둘 계책이 전혀 없으니 / 꽃병에다 매화나 꽂아 두어야겠네.’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다. (시옮김 허경진)
그랬다. 자연의 변화와 흐름에 부용은 자신의 심정을 시로 표현했으리라... 아무리 호의호식이 좋아도 생리적인 목마름까지 비껴 갈 수는 없을 터다. 천둥 번개 치는 여름밤이다. 동토(凍土)를 뚫고 삼라만상이 산과 들에서 기지개를 켜는 봄이면 역시 고향 소꿉동무 문칠이가 눈앞을 가렸을 것이다.
연천을 비롯한 초당을 찾는 시우들은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더 구부러져 가고 부용의 몸은 더욱 난숙해지고 생리적 욕망도 강렬해 졌다. 초당의 수창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부용은 왠지 마음이 더 불안해갔다. 석양(夕陽)이 더 뜨겁다 하지 않았던가! 그 뜨거운 불이 꺼질까 부용은 밤마다 걱정이 태산이다. 벙어리 냉가슴이다.
2018-05-16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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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01> 김부용(金芙蓉) < 제14話>
출근하여 자리에 앉을 때마다 연천은 부용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 퇴임 하셔서 여생을 즐기세요!” 조선 팔도에서 어느 누구도 못할 말을 부용은 서슴없이 했다. 괘씸하기도 하고 신통하기도 하였다. 귀엽고 귀엽다. 하지만 팔십 평생을 지켜온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아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천번만번 옳은 얘기다. 연천 자신을 위한 애정 어린 충언이다. 연천도 생각이 조석으로 바뀐다. 일찍이 벼슬길에서 나온 강대감·최판서·김대사헌 등이 초당에 와서 부용과 여유롭게 수창을 즐기는 것을 볼 때마다 사임을 결심하지만 하루 이틀 마루다 보면 한 달을 훌쩍 넘기곤 하였다.
초당엔 시우(詩友)들로 북적인다. 연천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고 부용이 손님들이다. 부용은 낮엔 시우들의 것이고 밤이 되어야 연천의 몫이 되었다. 그런 상황이 연천은 은근히 시샘이 발동까지 되었다. 그럴 때면 벼슬길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하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순조(純祖·1790~1834)가 순순히 윤허를 해주지 않아서다.
초당은 시우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한양에 내로라하는 기생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부용만한 재색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다. 초당의 시우들은 모두 연천의 친구들이다. 평양감사 시절 사귄 시우들로 처음엔 그들이 초당을 찾아 주는 것이 반가웠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부용 때문이다. 낮이나 밤이나 독차지해야 되는데 육조로 출근을 하면 부용은 시우들 것이 되었다. 시우들은 연천과 비슷한 연배로 몇 해 전에 퇴임하여 말년을 즐기고 있는 이들이다. 시우들은 그렇잖아도 오갈 때가 없어 이따금씩 청루를 찾곤 하였으나 이젠 초당으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이곳에 오면 부용이 반갑게 맞아주고 겨울엔 따뜻한 차와 여름엔 시원한 차를, 어쩌다 끼니때가 되면 요기까지 해결이 되었다. 게다가 조선팔도 어느 곳에 가도 여류와 즐길 수 없는 수창까지 할 수 있으니 그들에겐 초당이 바로 동천(洞天:경치가 뛰어난 천국 같은 곳)이었다. ‘이슬 차가운 은하수에 나무 그림자도 기울었는데 / 《월명가》 노래를 누구 집에서 부르나 / 주렴을 드리고 《황정경》글자를 자세히 살피노라니 / 향 등 앞에 몇 송이 꽃이 되었다가 떨어지네.’ 《한가한 밤에 혼자 앉아서》다.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연천은 순조의 퇴임 윤허를 어렵게 얻어냈다. 천하를 얻은 기분이다. 평양감사에서 이조판서로 영전 되었을 때 보다 더 기쁘다. 이젠 자나 깨나 부용과 같이 있을 수 있어서다,. 순조는 퇴임하는 연천에게 봉조하(奉朝賀)란 새 벼슬을 제수하였다. 봉조하란 그 품계에 종신토록 녹을 주는 동시에 국가에 의식이 있을 때 조복(朝服)을 입고 참여하는 특별 예우하는 제도다.
연천이 퇴임하는 날에 초당엔 큰잔치가 벌어졌다. 마치 큰 벼슬을 하여 영전해 가는 분위기다. 부용도 연천이 이조판서로 영전할 때도 이토록 즐거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연천에게 이젠 벼슬을 할만치 했으니 스스로 퇴임하여 여생을 즐길 것을 간청했는데 그를 받아들여 더욱 기쁜 것이다. 연천도 같은 마음이었으나 벼슬살이 재미에 빠져 있을 때 부용의 용기 있는 간청에 용기를 얻어 임금의 윤허를 얻어냈다. “대감어르신 축하드립니다.” 부용의 환한 미소가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마침 그때는 시우들이 모두 떠나간 후다. 연천이 이때 팔십 삼세 때다. 부용은 겨우 이십오 세이다. 부용이 한창 온몸에 푸름이 넘칠 시기다. 재색으로 똘똘 뭉쳐진 부용은 매일 찾아드는 시우들에겐 더 없는 로망이 되었다. 자기네 여자로는 만들 수는 없어도 마음 놓고 눈요기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천이 퇴임을 해 초당에 버티고 있자 시우들 발길이 예전과 같지 않다. 아무래도 주인 있는 여자에게 언행이 조심스러워서일 게다.
연천은 그런 분위기가 좋다. 시우들이 와 북적거리면 자기 여자인 부용에게 자신이 되레 언행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럴 때면 부용이 시우들과 공동의 여자 같이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연천은 아예 시우들 발길이 뚝 끊어졌으면 하는 속내다.
하지만 부용의 마음은 다르다. ‘만리바람 받으며 높은 언덕에 오르니 / 들색과 산빛에 모두 이끼가 끼었네. / 내 몸이 나뭇잎처럼 가벼워 / 눈 깜짝할 사이에 흰 구름까지 날아갈까 봐 두려워라.’ 《약산동대에 올라》서다. (시옮김 허경진)
소실의 마음일 게다. 여자가 시집가서 조강지처로 아들 딸 낳고 당당하게 살아도 아쉬울 터인데 소실의 처지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반세기가 넘는 나이 차이에 자신은 기생이었다. 사내의 욕심으로 소실의 자리에 올랐다.
부용이 시문과 노래와 춤, 그리고 미모까지 지녀 사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으나 조강지처가 아닌 소실의 자리다. 연천은 어느새 팔십(傘壽)을 지난 백발노인이다. 지금은 연천이 버티고 있어 호의호식하고 있으나 그가 떠나면 끈 떨어진 연 신세다.
부용은 그것이 두렵다. 잠자리도 거부하고 싶은 것이다. 씩씩거리고 기운차게 하지도 못하는 교합을 한 날엔 예외 없이 늦잠이다. 그럴 때면 부용은 고향 성천의 소꿉동무 문칠이가 눈앞을 가린다.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몸뚱이가 그를 원하고 있다. 코를 드르렁 골고 있는 연천이 그 순간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오뉴월 버드나무 같이 쭉쭉 뻗어 나가는 여자의 욕정이다.
부용도 이따금 그러하다. 오뉴월 울퉁불퉁 자란 가을 칡뿌리 같은 억세고 뿌듯한 사내 가슴과 음부를 가득 채워주는 물건이 몸서리 쳐지도록 그리운 것이다. 하지만 연천은 그것이 하루가 다르게 멀어져 갔다. 하지 못하면 더 바래지고 멀어지면 더 아쉬운 것이 남녀관계다.
연천은 벼슬 복도 있지만 여자 복도 있다. 부용 같은 재색은 아무에게 주어지는 여자가 아니다. 손녀 뻘 되는 나이 차이에도 부용은 연천에게 모든 것을 받치고 있다. 연천의 복이다. 남존여비 조선사회에서 연천과 부용의 사이는 남녀관계를 뛰어넘는 지우(知友)의 인연일 게다.
어쩌면 연천과 부용의 관계는 여존남비(女尊男卑)의 보이지 않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특수한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반세기가 넘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려는 고육지책일지도 모른다.
2018-05-09 0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