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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30> 자동선(紫洞仙) <제10話>
두 사내 마음은 따로따로 가 있다. 사가정은 주선(酒仙)인 이태백(李太白:701~762)을 떠올렸을 것이며 영천군은 시와 노래, 그리고 춤까지 능했던 중국의 설도(薛濤:768~832) 같은 여인을 상상했을 것이다. 중국의 풍류를 즐기는 사내들이 자동선을 한나라 무제(武帝)의 악사 이언년의 누이동생 이부인(李夫人)을 능가했다고 토로하였다.
이 부인은 한무제의 세 번째 부인이다. ‘북쪽에 아름다운 미인이 있어 / 세상에서 다시 없이 홀로 섰다네 / 눈길 한 번에 성이 기울고 / 눈길 두 번이면 나라가 기운다네 / 성이 기울고 나라가 기움을 어찌 모르리오 / 아름다운 미인을 다시 얻기 힘드네...’ 이처럼 경국지색 미인보다 중국의 풍류객들은 자동선을 더 높이 평가했다.
영천군은 그 미인 자동선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데 사가정은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몰라주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사가정은 천수원까지 와서 청교방 거리를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사가정은 한걸음에 청교월(靑郊月)에 들이닥쳤다.
영천군은 중국4대 미인인 양귀비·서시·초선·왕소군을 뺨친다는 자동선이 눈앞에 어른거릴 뿐 딴 것은 거들떠보기도 싫다. 하지만 사가정은 달랐다. 자나 깨나 술이 눈앞에 어른거릴 뿐이다. “여기가 청교월이냐? 그리고 네가 청교월이드냐?” “네 소녀가 청교월이옵니다.” “네 이름 한번 멋지구나! 거두절미 하고 술을 한 잔 하려는데 가능하겠느냐?” “술이야 청루에 없겠습니까? 다만 안주가 떨어져 없는데 어찌 하오리까?” “안주야 네 예쁜 얼굴이면 산해진미보다 훌륭하느니라! 그러나 저러나 영천군 나리가 계시니 너와 같이 예쁜 아이가 더 있어야겠구나?” 영천군은 술도 좋지만 청순하고 예쁘기까지 한 청교월을 보자 나귀를 타고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한 몸인데도 사타구니에서 물건이 꿈틀댔다.
청교월이 반쯤 열린 문을 두어 번 두드리자 득달같이 목단춘(牧丹春)이 들어왔다. 청교월은 영천군을 상대로, 목단춘은 천하의 풍류객 사가정을 상대로 밤이 깊도록 술잔이 오갔다.
사가정은 술로 만족하고 있으나 영천군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그에겐 술보다는 여자가 더 필요한 상태다. 밤은 깊어가고 술 주전자가 수없이 들어왔으나 사가정은 풍류객답게 시흥(詩興)이 점점 더 고조되어 갔다.
하지만 영천군은 한시라도 빨리 술판을 끝내고 계집을 끼고 쌓였던 객고를 풀 생각만 간절한데 술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친구인 사가정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조선팔도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영천군은 믿고 있었는데 지금 사가정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오히려 딴전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체면에 먼저 가 자겠다고 말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청교월에게 약속을 받아내지 못해 선 듯 행동도 못하고 가슴만 마른장작 타듯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어느새 여명을 알리는 ‘꼬끼오’ 장 닭의 새벽 울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잠잘 시간이 이제 별로 없다. 하지만 사가정은 끝없이 술잔이 입으로 갔다. 취할수록 그의 시흥은 더 아름답게 고조되었다. 지금은 대취한 상태다. “봄이 오면 꽃은 가는 곳 마다 있느니라...”라고 사가정이 당시(唐詩) 한 구절을 읊자 목단춘도 지체 없이 수창(酬唱:시를 주고받음)하였다. “봄바람에 버들가지 나부끼네”라고 대꾸해 주었다.
사가정은 처음엔 얼굴이 그리 못생기지는 않았으나 이 외진 청교월에 설마하고 폄훼했었는데 마음을 다시 먹었다. 그리고 그는 목단춘의 손을 덥석 잡으며 감탄은 토로하였다. “이 외진 곳에서 너 같은 재원을 만나다니 기쁨이로다!” “소첩도 이런 곳에서 나리 같은 풍류객을 뵐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했나이다.” 둘은 수창이 맷돌 모양 척척 맞았다.
사가정은 목단춘과 다정하게 수창을 하는 사이에 영천군과 청교월 역시 뜨거운 대화가 오갔다. 사가정은 적당한 틈을 봐 자리를 피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백락천(白樂天:772~846·본명 居易거이)의 시 한수를 읊었다. ‘아름다움에 취해 돌아갈 줄을 모르니 / 술통 옆에서 술을 권함은 사랑인가’ 라고 사가정의 시에 목단춘도 지지 않았다. ‘오늘의 만남은 슬프고도 기쁨이라 / 넷이 헤어져 두 사람씩 같이 가요’ 사가정은 숨이 막혔다. 우습게 봤다가 큰코다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영천군은 청교월과 사가정은 목단춘과 짝이 되었다. 사가정은 목단춘의 등을 어루만지면 자리 뜰 것을 신호하였다. 목단춘이 비록 철지난 꽃이 되었으나 시재(詩材)나 노래·춤 등은 절정에 있다. 사가정과는 맞춤처럼 척척 들어맞는 맷돌 같은 짝이다.
목단춘은 주저 없이 자기 집으로 사가정을 인도하였다. 청교월에서 다시 꼬불꼬불 산속으로 들어갔다. 창문 밖으로 불빛이 새어나왔다. “집에 누가 있느냐?” “예 선비님, 노모가 있사옵니다. 그러나 노모가 있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모는 보기만 하시고 듣지는 못하십니다.” 그들은 연리지(連理枝)부부 같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작아보였던 집은 안으로 들어가니 의외로 넓고 알뜰하고 규모 있게 정돈 되었다. 네댓 칸의 거실 양문으로 방이 있으며 맞은편에 주방이 있다. 쓸모 있는 규모다. 목단춘은 사가정을 내실로 안내하였다. 비단금침이 준비된 내실이다. 사가정은 가슴이 설랬다. 철지난 꽃이라지만 이 외진 곳에 이처럼 알뜰한 여인의 집이 있으리란 생각은 꿈에도 못했었다.
게다가 객고를 마음껏 풀 수도 있는 혼자 있는 여인의 내실로 여인 스스로 끌고 들어 왔으니 오늘은 행운이 덩굴 채 굴러 들어온 것이다. 술까지 적당히 취했으니 방사하기에 딱 맞는 분위기다. 그런데 사가정은 제집처럼 비단금침에 벌러덩 자빠지자마자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기 시작하였다.
너무 피곤했던 것이다. 목단춘이 잠시 부엌으로 가 뒷물을 하고 들어왔다. 사가정이 달려들면 못이기는 척 오랜만에 사내 맛을 보려는 속내다. 그러나 그 꿈은 허사였다. 사내는 제 집인 냥 불룩 나온 배까지 드러낸 채 골아 떨어졌다. “사내 복 없는 년은 할 수 없지!”라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사가정 옆에서 잠을 청하였다. 그런데 그의 손은 어느새 사내 사타구니로 갔다.
2018-12-12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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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9> 자동선(紫洞仙) <제9話>
넓은 정원엔 봄빛이 쏟아지고 있다. 모란꽃을 비롯한 봄꽃들이 화사하게 되었다. 효령대군의 다섯째 아들 영천군(永川君)이 이맛살을 찡그리며 정원으로 나왔다. 일필휘지로 그림이 잘되지 않아서다. 평소 같았으면 마음만 먹으면 생각대로 후딱 그림이 그려졌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엊저녁의 꿈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죽마고우와 같은 서거정과 평양에 갔다. 풍류에 능한 서거정이 앞장서 평양의 주류천하를 즐기려는 속내로 갔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생각했었던 여인들은 모두 중국 사신 영접에 동원되었던 것이다.
영천군은 속이 너무 상했다. 조선의 예쁜 여인들은 왜 중국놈들이 차지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이르자 배알이 꼴렸다. 그렇게 속이 상할 때 그는 술에 의지하였다.
지금이 딱 그 분위기다. “김서방 게 누구 없느냐?” “예 나으리! 불러계시옵니까?” 마침 옆을 지나가던 하인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너 지금 당장 사재 감직장(司宰 監直長)댁에 가서 사가정(四佳亭·서거정徐巨正) 나리를 모셔 오너라!” “예. 나으리...” 하인은 나는 듯이 이웃에 살고 있는 서거정 집에 가 영천군의 말을 전하고 사가정을 모셔왔다. “영천군 나리! 오늘은 무슨 일로 대낮에 나를 부르시오?” 그들은 동갑내기로 출생 신분은 다르지만 동문수학으로 너니 내니 하는 술친구다.
영천군은 왕실에서 알아주는 옥골선풍의 헌헌장부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로 평판이 나 있으며 사가정 역시 26세에 장원급제한 조야(朝野)에서 기대가 큰 인물이다.
사가정은 넓은 정원에 봄꽃인 영산홍·모란·유채 등이 화사하게 피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여인같이 보였다. 지금 영천은 이 꽃들을 보고 술과 계집 생각에 자신을 부른 것으로 직감하였다.
동문수학에 동갑내기인 사가정은 영천군의 마음 움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내다. “이 좋은 날씨에 뭘 하고 있었소이까?” 영천군이 사가정을 반갑게 맞는 어투다. “예 나리, 성상께서 사가독서(賜暇讀書) 특정을 주셔서 독서를 하고 있었나이다.” 사가독서란 촉망받는 젊은 학자에게 독서할 시간을 임금이 주는 일종의 휴가를 말함이다. “허허, 그거 잘됐소이다. 나하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부른 것이요... 사가독서의 특전을 받았으니 축하주를 해야지! 아주 잘 됐소이다...” 연천군은 사가정을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림을 그리다 화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정원에 나왔는데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을 보자 문뜩 술과 계집이 떠올랐던 것이다. 계집하면 술이 떠오르고 또한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사가정이 생각났다.
이때다. 하인이 사랑채에 술상을 차려 놨다고 알려주었다. “이놈아! 옛 시에 춘소화월직천금(春宵花月直千金)이란 말이 있듯이 이 좋은 꽃들을 두고 어찌 침침한 방에서 계집도 없는데 술을 마시라는 것이냐?” 영천군이 사가정에게 눈짓으로 밖에서 마시자는 신호를 보낸다.
그들은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정원에서 술판을 벌였다. “너 장악원(掌樂院)에 가서 김주부를 급히 오라고 하여라...” 옆에 서 있던 하인이 나는 듯이 달려가 김주부를 잡아오듯 데려왔다. 영천군은 김주부를 보자 “우리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좋은데 빠진 게 있어 좋은 아이 두 명을 보내주게! 이거 어디 술맛이 나야지...”라며 입맛까지 다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김주부가 코가 땅에 닿을 듯이 허리를 굽히면서 “영천군 나으리! 황공하게도 지금은 그런 아이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라면서 연신 손까지 비볐다.
여기서 좋은 아이란 남자를 아직 접하지 않은 동기(童妓)를 지칭함이다. 그는 아무리 예쁜 계집이라도 사나이 손이 닿았던 계집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결벽증이다.
옆에 있던 사가정이 입을 열었다. “영천군 나리, 날씨도 좋으니 송도 나들이를 떠나심이 어떠하신지요? 소인도 마침 사가독서 휴가를 성상께서 주셔서 홀가분합니다. 송도엔 지금 자동선(紫洞仙)이란 황진이를 뺨치는 기녀가 있다하옵니다. 한번 찾아감이 어떠하실 지요?” “허허 듣던 중 기분 좋은 소리요! 내 그래도 엊저녁 꿈이 찜찜했는데 잘 됐소이다...” “꿈이 찜찜하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내가 엊저녁 꿈에 송도에 갔는데 청교방 거리에 예쁜 아이들은 중국 사신 영접에 모두 동원됐다는 거야. 그 소리를 들으니 배알이 꼴리어서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어...장녕(張寧)이란 사신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가? 원 쳇쳇...” 꿈일망정 왕손(王孫)으로 마음이 많이 상했던 것 같았다. ‘옛 절은 말이 없어 어구 옆에 쓸쓸하고 / 저녁 해가 높은 나무에 비치어 더욱 서럽구나 / 쓸쓸한 경치는 남은 승려의 꿈속에서나 / 영화롭던 그 시절은 깨어진 탑머리에나 /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 /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 / 송악산 영화롭던 옛 모습 생각하니 / 지금처럼 봄이 가을 같을 줄 어찌 알았으랴 ’ 황진이의 《만월대를 생각하며》다.
조선은 이씨의 나라였다. 역성혁명으로 왕씨의 나라가 이씨의 나라가 됐지만 백성들은 고려때 그대로다. 영천군의 꿈에 보인 평양에서의 중국 사신 영접이 왕손 이전에 같은 사내로서 마음이 퍽이나 많이 상했을 것이다. 아무튼 둘도 없는 죽이 척척 맞는 영천군과 사가정은 마시던 술상을 물리고 평양을 향하여 길손이 되었다.
달랑 몸만 나귀에 실은 채다. 무악재와 북한산 그리고 파주와 장단을 거쳐 천수원(天壽院)에 다다랐다. 이제 송도(현 개성)가 머지않았다. 영천군은 청교방 거리가 눈앞에 아른아른 해 단숨에 송도로 달려가고 싶다. 그런데 풍류객 사가정은 바쁜 것이 없다. “영천군 나리, 이곳 천수원은 고려500년 동안 중국 사신을 영접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풍치가 아름답고 오밀조밀한 자연미에 중국 사신들이 만족해하였던 곳이기도 해요. 원래는 천수사란 절이었는데 조선에 들어와서 천수원으로 개명되었습니다.” 그들은 이튿날 송도팔경(松都八景)의 하나인 청교역에 다다랐다.
청교역하면 고려시인 이제현(李齊賢)의 《청교송객》을 사가정은 떠올렸다.‘작은 시내 깊은 곳에 버들가지 날리고 / 보슬비 개고 나니 풀잎이 연기 같다 / 손님이야 가건 말건 무슨 상관이리오 / 술 한통 옆에 놓고 좋은 산천 즐겨보리’ 그랬다. 사가정은 가는 곳마다 시와 술을 생각했고 영천군은 그림과 여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에까지 소문이 자자하게 퍼진 자동선이 있는 곳에 가까이 갈수록 입에 침이 마르고 마음이 바빴을 터다.
2018-12-05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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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8> 자동선(紫洞仙) <제8話>
청교방 거리에 낙엽이 떨어지자 겨울이 성큼 왔다. 거리 이곳저곳엔 가을꽃들이 아직도 제 세상인 냥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드러내고 팔랑이는데 이따금씩 눈발이 날리기도 한다. 개성의 늦가을은 초겨울과 맞물려있다. 이런 계절이 화화는 제일 싫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그런 계절을 좋아하여 조선에 왔을지도 모른다.
사계절이 뚜렷한 삼천리금수강산이 마음에 맞춤처럼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장녕을 떠나보낸 지 어느새 보름이 지났다. 그의 넓은 품으로 돌아가 알뜰히 사랑을 해주었던 노모와 “새엄마, 새엄마...” 하며 따랐던 두 자매도 보고 싶다.
화화는 찬바람이 세차게 문풍지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그들이 더욱 그리웠다. 날이 저물어 새로운 손님을 맞을 때면 더욱 장녕이 아쉬웠다. 남녀가 성(性)을 공유(共有)할 때 진정한 사랑이다. 그런데 한때 화화는 장녕과 성을 공유했었다. 상대방이 나의 성을 제 것인 냥 필요할 때 쓰며 나 역시 상대방의 성으로 욕망을 채울 수 있을 때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의 동반자라 할 수 있을 터다. 화화는 동정호 악앙루 사건 이후 장녕과 일 년간은 밤마다 그러하였다.
장녕이 다녀간 후 화화는 월궁생활이 짜증나기 시작하였다. 장녕과 몇 년 만에 성을 공유했을 때 부부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하룻밤일망정 즐기고 난 후 여타 사내들에게 자진의 성을 주는 것이 싫어졌다.
노모와 두 자매에 대해 아니 사실혼이었을망정 장녕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방사(房事)에 소극적 자세가 돼서다. 사내들은 줄을 서가면서 화화에게 거액의 화대를 내고 밤을 즐기려는 것은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고 싶어서일 게다.
그런데 장녕이 다녀 간 이후 화화는 죽부인(竹夫人)이 되었다. 화화가 죽부인이 되자 손님이 하나 둘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입소문이 한양에까지 퍼져 나갔던 것이다. “화화 그년 콧대만 세지 잠자리는 별거 아니야!” 란 소문이다.
세월은 화화의 마음도 싣고 갔다. 겨울이 가고 새봄은 어김없이 왔다. 넓은 정원엔 영산홍·목련·유채·복수초 등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화화는 특히 영산홍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올 봄의 영산홍은 보기도 싫어졌다. 장녕과 일 년 동안 알콩달콩 뜨겁게 살았던 집 정원에 영산홍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화화의 마음은 화사한 봄이 아닌 혹한의 겨울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다.
온 정성을 다 쏟아 키운 월궁을 정리하려 한다. 화화는 마음이 떠난 월궁에 하루도 더 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동기 화월(花月)에게 넘기려 한다. 화화는 몸만 빠져 나가고 월궁을 몽땅 화월에게 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금강산 유람 길을 떠나려 하고 있다. ‘물은 유연하여 그릇 따라 일정한 모양이 없고 / 구름은 무심코 생겼다가 쉽게 다시 사라지네 / 봄바람 슬프고 초강에 날이 저무는데 / 원앙새 한 마리 무리 잃고 날아가네’ 이야의 《이별》이다. 사람이 서로 좋아서 만나고 만나면 또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성을 공유했던 남녀는 부득이 문제가 생겨 헤어지면 영혼까지 상처를 입는다.
지금 화화가 딱 그러하다. 동정호에서 전격적으로 사랑을 맺어 사실혼에 들어가 노모에겐 새 며느리로 두 자매한테는 새엄마로, 그리고 장녕에겐 새 아내로 성을 공유하며 살았다. 그 후 헤어졌다 극적으로 월궁에서 몇 년 만에 성을 공유한 방사를 즐겼다. 너무 애틋하였다. 화화는 그 애틋한 추억의 방사를 영원히 사랑의 역사에 남겨두려 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화월에게 월궁을 몽땅 주고 떠나가려 한다.
월궁 정원은 넓다. 어젯밤부터 화월이 화화대신 방으로 들어갔다. 화월을 맞은 손님은 횡재를 하였다. 한양에서 온 사대부가 지난겨울에 신청하여 두 달 만에 월궁에 주인공이 되었다. 훤칠한 키에 옥골선풍의 자태에 화화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여 현기증까지 느꼈다. 화화가 장녕을 처음 봤을 때 느꼈었던 감정이다.
화화는 그런 마음을 안고 오늘 월궁을 떠나려 한다. 정원의 꽃들이 오늘따라 화려하고 더 아름다웠다. 때 아닌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져 화초들의 생기가 더 발랄해졌다.
정오가 지나서야 화월이 손님방에서 나왔다. “손님을 잘 모셨느냐? 그 손님이 너에게 처음이자 좋은 후원자가 될 것이다. 앞으로 너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내가 될 것이니라...” 화화는 애처로운 듯 화월을 쳐다보았다. 화월은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어기적거린다. “여사님, 소녀 죽겠어요!” “호호, 혼이 난 모양이구나... 처음엔 다 그런 것이니라. 차차 좋아질 것이다.” 화월의 표정과는 다르게 헌헌장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온다. “손님께서 엊저녁에 기분이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허허 그러했소이다. 내가 횡재를 했소이다.” “그러셨군요! 선비께선 그 아이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몇 달 전에 모월 모일에 올 선비는 귀하신 몸이니 특별한 여인을 넣으란 부탁을 듣고 화월이를 소첩대신 화촉동방을 치르도록 했던 것이옵니다.” 선비는 그때서야 밤낮으로 붙어 다니는 친구를 떠올렸다. “허허, 그렇게 되었나? 내 그러 하리다. 머리를 올려주란 말이군! 내 다음에 올 때 꼭 그리할 걸세...”말을 마친 옥골선풍의 선비는 대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백마를 타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해가 뉘엿뉘엿 송악산에 걸쳐 월궁 추녀에 땅 그림자가 드리울 때 화화는 괴나리봇짐 하나를 달랑 메고 금강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원래는 조국 중국의 오악(五岳:태산·화산·형산·항산·숭산)으로 가려했으나 장녕이 다시 떠오를까 포기하고 금강산으로 정했던 것이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구태어 / 보내고 그리는 정을 나도 몰라 하노라’ 정한(情限)이 가득 담긴 황진이 시를 속으로 읊조리며 금강산을 향해 화화는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두 눈엔 어느새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화장기 없는 두 볼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화화는 월궁에서 기생생활을 끝내고 평양성 칠성문 밖 선연동에 있는 황진이가 묻혀있는 공동묘지에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그 꿈이 여의치 않을 듯 하여 금강산으로 들어가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를 유람하며 여생을 보내려 마음 굳혔다. 지금 화화는 그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화화 없는 월궁은 한때 변함없는 성업을 했다. 화월이 화화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그림자처럼 행동해서다. 복장·화장·말투에 노래와 춤, 심지어 방사기술까지 화화에게 전수 받았다. 하지만 월궁에서 화화의 존재는 지울 수 없는 대상이었다. 화월의 월궁은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화화가 없는 월궁은 달 없는 밤하늘이었다.
2018-11-28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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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7> 자동선(紫洞仙) <제7話>
개성의 가을은 선계(仙界)로 느낄 정도다. 특히 청교방 거리는 자칫 정신을 잃을 정도다. 골목골목마다 각기 다른 가을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어 한번 길을 들면 자칫 넋을 잃어 방향을 잃기 십상이다. 하지만 화화가 똬리를 틀고 있는 월궁(月宮) 찾기는 밤하늘에 달 찾기만큼이나 쉽다.
장녕은 청교방 거리에서 쉽게 월궁을 찾았다. “화화 여사를 뵈러 왔소이다.” 정원을 서성이던 동기(童妓)에게 용건을 말하자 대뜸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라고 물었다. “우리 화화 여사님은 아무 때나 뵐 분이 아닌데요. 어디서 오신 누구인지 아신 다음 정해드린 날짜에 만나실 수 있는 분이신데요.” 장녕은 기가 탁 막혔다.
중국에서 온 조선 사신들의 말대로다. “어서 돌아가세요! 화화 여사가 아시면 불호령이 떨어져요...” 장녕은 돌아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때였다. 내당에서 거문고 소리와 함께 낭랑한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옥빈의 음성이다. 2~3년 사이에 옥빈은 그렇게 변하여 있었다. 조선 기생이 다 되었다.
그랬다. 화화를 만나려면 조선의 무슨 가문에 몇 대손 누구라는 것을 듣고서야 어느 달 어느 날짜를 정해준 날짜에 만나수 있는 기녀다. 장녕은 옥빈의 거문고 선율을 등 뒤로 하고 월궁을 돌아서 나오자 지난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자기 여자가 되겠다고 애원을 하다 결국 동정호 악앙루에서 성폭행으로 자기 남자를 만들었던 장면이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지금은 정반대가 되었다. 밤마다 소녀경(素女經)을 방불케 하는 여자로 기쁨을 충만 시켜 주었던 추억도 되돌려 놓고 싶고 노모와 두 자매의 성화를 더는 견딜 수 없어 차일피일하다 오늘 개성까지 왔다. 새아가를 찾는 노모의 성화도 성화지만 두 자매의 새엄마를 찾는 등살을 더는 도저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아무튼 장녕은 이튿날 다시 월궁에 들려 동기에게 중국에서 가져온 비단 한 필을 선물로 주면서 어떻게든 빠른 순번이 되도록 백을 썼다. 초가을에 온 장녕은 늦가을이 되어서야 사실혼이었던 아내 옥빈을 만날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송악산에 걸리면 내궁에 들어가 이튿날 정오가 지나야 나올 수 있는 일정(日程)이다. “손님은 용케도 소저(小姐:아가씨)를 찾아오셨네요. 장녕 대인께선 옛날 옥빈을 보러 오신 것 같은데 그 옥빈은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 이 세상 여인이 아닙니다.여기 앉아있는 소저는 조선 기생 화화(華花)일 뿐입니다. 하룻밤 객고를 풀고 가시려고 들어오신 전주 이씨 송도파 이동혁(李東革·가명)으로 보일 뿐입니다. 소저 오늘밤 대인을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장녕은 말문이 콱 막혔다.
중국에서 보았던 옥빈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장녕은 괘씸한 생각이 들어 당장 뛰쳐나가고 싶으나 잠자리에서 애걸하여 어떻게든 데려가려는 전략을 짜려하였다. 적어도 기녀생활을 접고 언제 중국으로 오겠다는 약속은 받아가지고 가야 노모와 두 자매를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더 급한 것이 있다. 옥빈과 뜨거운 교접이다. 성폭행을 당하다시피 하여 옥빈의 남자가 된 후론 밤마다 열락의 밤이었다. 옥빈을 보자 그 밤이 몸서리 쳐지도록 그리워졌다.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 견우와 이별한 후에 / 슬픔에 겨워 벽공에 던졌다오’ 황진이의 《반달을 노래함》이다.
청자빛 비단에 붉은 실로 새겨진 시(詩)가 장녕의 눈에 확 들어왔다. 화화는 황진이 시를 비단에 새겨 찾아오는 손님과 분위기에 따라 시를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지금은 사실혼의 전남편이란 것을 알고 《반달을 노래함》이 수놓아진 비단을 탁자 위에 놓았던 것이다.
이제 당신과는 인연이 다하였으니 한바탕 놀고 나가라는 신호다. 장녕도 그럴 생각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하였다. 월궁은 옥빈의 작지만 아름다운 왕국으로 느껴졌다. 손님을 받아도 손님의 뜻대로가 아니고 옥빈의 마음대로다. 장녕이 말해들은 자동선이 그러했다는 것을 옥빈이 들은 대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사신들의 영혼을 몽땅 빼앗은 자동선에게 복수하려는 속내다.
그런 옥빈의 마음을 장녕이 알리 없다. 장녕은 마음을 굳혔다. 데리고 가지 못할 바에야 맘껏 즐기고 가자는 작심이다. 집에서 마지막 밤은 옥빈이 열락의 밤을 만들었고 오늘은 장녕이 자동선과 혼백이 지쳐 잠들게 했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옥빈을 즐겁게 해주려는 속내다. 상황이 바뀌어 장녕이 옥빈의 영혼을 빼앗으면 마음이 변해 언젠가 돌아올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도 버리지 않았다.
일정이 시작되었다. 저녁을 물리자 녹차 한 컵이 올라왔다. 옥빈의 반라자세다. 풍만한 몸매는 아니지만 사내가 정신을 잃을 몸매다. 전에는 미처 몰랐던 짜릿한 자태다. “어서 마시세요! 다 마시고 샤워를 하셔야지요. 장녕 대인께선 소저의 손님이시니 이곳 규율을 지키셔야 합니다.” 단호한 어조다.
빨간 장미가 연잎처럼 떠있는 장미탕이다. 옥빈은 전라로 들어왔다. 탱탱한 한 쌍의 유방에 약간 푸른빛이 나는 거웃이 더 매력이다. 봉긋하게 나온 아랫배는 사내들의 손에 길들여진 듯 솜털조차 보이지 않았다. “돌아앉으세요. 소저가 등을 씻어 드릴게요... 장녕 대인을 특별히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오시기 전에 이곳 규율을 못 들으셨는지요?” 옥빈의 손이 거침없이 사내 물건으로 왔다.
김장 때 잘 자란 무를 씻듯 사내 물건을 쭉쭉 훑으며 씻었다. 약간 아프지만 기상천외한 즐거움이 밀려왔다.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 밖에 없는데 /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 바라거나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역시 황진이의 《꿈》이다.
지금 화화는 사실혼이었던 장녕의 물건을 기녀 신분으로 씻으며 무슨 생각에 있을까? 여자의 손이 닿자 장녕의 물건은 금방 방사할 기세다. 사내는 물 위를 벌러덩 누웠다. 물건이 하늘을 향해 우뚝 섰다. 옥빈의 입이 거침없이 물었다. 물건은 방사 태세다. “침대로 가시죠!” 온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화화는 장녕 옆에 섰다.
둘은 침대에 가자 거침없이 붙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겁지겁 자기 욕심을 채웠다. 장녕이 더 열정적이다. 집에서 옥빈이 저돌적 행동이 생각나서다. 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땐 동창으로 햇빛이 들어와 나신의 남녀를 비추고 있을 때다. “화화 여사님. 아침 드실 시간인데요?” 동기가 시간을 얘기할 때는 정오가 다 되어서다.
늦은 아침을 끝내자 월궁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장녕이 월궁에 온지 이틀이 지났다. “장대인 밖에 압록강까지 타고 갈 말이 준비 되었으며 노모와 두 자매 선물이 말에 실려 있을 겁니다. 편안히 가셔 다신 조선 땅에 발을 들여 놓지 마세요! 소저는 볼일이 있어 먼저 나갑니다.” 옥빈은 대문 밖에 준비되었던 말을 타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장녕도 옥빈이 준비한 말에 몸을 싣고 압록강까지 와 대기하고 있던 배로 건너가 총총히 고향으로 향하였다.
2018-11-21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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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6> 자동선(紫洞仙) <제6話>
개성의 청교방 거리는 기녀들의 집단 거주지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주 고객이지만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이 큰 손님들이다. 중국을 오가는 조선의 사신단 에는 역관(통역)이 반드시 동행하였다. 그들이 사신무역의 주역이다.
조선에선 인삼과 종이 등이 주력상품이고 중국에 가선 비단·도자기·서책 등을 들여왔다. 그들은 떼돈으로 소위 대박을 쳤다. 청교방 거리에선 그들이 들어오는 날엔 밤낮없이 노랫가락이 거리를 메우고 기녀들의 분향이 진동하였다. 흡사 잔치 날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조선역관들이 몰리는 기녀가 생겼다. 기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인공은 중국여자라는 것이다. 조선의 역관들이 중국에 갔을 때 조국의 체면을 생각하여 차마 청루를 찾을 수 없었으나 국내에 와서는 마음 놓고 중국 기녀 집으로 몰렸던 것이다. 조선기생이야 한양에 가도 얼마든지 있다는 생각에서다.
중국 기녀란 옥빈(妓名화화華花)이다. 그녀는 화려한 꽃이란 기명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자동선이 고고한 인품과 높은 학문의 식견으로 사대부들은 물론 중국의 한림학사 장녕까지 휘어잡은 조선기녀 세계가 어떠한가 직접 체험을 위함이다.
장녕의 마뜩찮은 태도 때문이다. 입만 열면 자동선의 얘기다. 동정호 악앙루의 기습 옥빈의 장녕 성폭행으로 그들은 결국 부부가 되었다. 장녕에겐 제 발로 걸어 들어온 복덩이다. 옥빈의 밤마다 달콤한 육탄공세에도 장녕의 자동선에 대한 집념은 꺾일 기세가 아니다.
옥빈은 자동선의 잠자리 대리여인에 불과하였다. 노모와 두 자매를 정성껏 보살펴도 장녕의 사랑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영혼은 조선기녀 자동선에 가 있고 꺼풀인 육체만 옥빈의 옆을 서성거리고 있다. 자존심이 강한 옥빈은 그런 것이 마음을 병들게 하였다. 노모와 두 자매의 사랑보다 옥빈에겐 장녕의 뜨거운 사랑이 절실하다. 그러나 장녕의 사랑은 옥빈에게로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부부생활은 일년 만에 끝이 났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누구도 아쉬움이나 미련이 있어 하는 표정이 아니다. 오가다 첫눈에 반해 사랑을 나누다 헤어져 기던 길을 다시 가는 남자와 여자 표정이다. 오히려 홀가분해 하는 눈치다.
그동안은 잘못 끼워진 단추로 인해 어색했던 옷을 바로 잡지 못했던 것을 바로 잡아 입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가람에 꽃은 지려하는데 / 만나는 날은 아직 아득하구나 / 한마음 맺지 못한 사람이라 / 공연히 풀로 동심(同心)을 지으려하네’ 설도(薛濤:768~831)의 《춘망사》(春望詞)를 남기고 옥빈은 바람처럼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점심때가 돼도 안보이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도 옥빈은 보이지 않았다. 서재엔 엊저녁에 읽던 책이 그대로 펼쳐진 채다. 장녕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찬장엔 숟가락 한 쌍이 가지런히 깨끗이 씻긴 채다. 장녕은 처음으로 저녁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홀아비 삼년동안에도 해보지 않던 밥 짓기다.
그런데 해가지고 어둠이 깔려도 옥빈이 나타나지 않자 어젯밤 방사할 때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전례 없이 격렬한 교접이었다. 장녕이 두어 번 절정을 느끼는 사이에 옥빈은 전례 없이 온몸을 불사르듯이 “사랑해요!”를 헛소리처럼 외쳐댔던 상황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결국 그들의 결혼생활은 극적으로 이뤄졌다 극적으로 끝이 났다. 옥빈이 조선의 개성 청교방 거리로 숨어들어서다. 여자의 자존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장녕을 성폭행으로 자신의 남자로 만들었으나 그 남자는 끝까지 옥빈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잠자리는 하되 사랑하지는 않았다. 옥빈이 교접을 보채면 마지못해 귀찮은 표정으로 응수 해 주었던 것이다.
옥빈은 손님을 선택하여 맞았다. 중국 손님들은 받지 않고 조선의 남자들만 받았다. 조선의 사내들도 골라골라서 맞았다. 옥빈은 낮엔 조선여자로 행세하고 밤엔 철저한 중국여자로 변신하여 조선의 사대부들을 녹였다. 그녀와 한 번 잠자리를 한 사내는 비몽사몽 상태로 사흘이 멀다 하고 옥빈을 찾았다.
옥빈을 찾는 사내들이 줄을 서서 자기 날짜를 학수고대하였다. 입소문은 개성을 넘어 한양에까지 화화바람이 거세다. 사내들은 화화바람을 황하(黃河)바람이라 불렀다. 조선 사대부들이 화화라 부르면 옥빈을 지칭하는 것으로 청교방 거리에선 알아들었다. 화화가 소속되어 있는 청루 월궁(月宮)은 일 년 열두 달 인산인해다. 자기 순번을 기다리는 사대부들이 들끓어 주변 술집도 덩달아 성업을 즐겼다.
화화의 상술은 뛰어났다. 봄엔 초선, 여름엔 양귀비, 가을엔 서시, 겨울엔 왕소군이 되어 조선 사대부들을 품었다. 중국의 사대 미인들을 말로만 들었지 보지는 못했으니 사내들은 화화의 변신에 황홀경에 취하여 즐길 뿐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 기막힌 보너스(景品)가 붙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다 와서 즐기고 간 고객엔 고객이 제일 좋은 날을 선택하면 하루 밤을 화대(花代)없이 여자노릇을 해주는 기발한 경품이다.
하지만 2~3년이 되어도 경품을 즐긴 사내는 없다. 일 년에 화화와 뜨거운 살을 섞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네 번을 잤다 해도 계절마다 한 번씩 자기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워서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어라’ 황진이 《소세양을 보내며》를 붉은 비단에 날아갈 듯한 필체로 새겨 탁자위에 놓여졌다.
화화가 누구를 대상으로 시에 정한(情恨)을 드러냈다. 장녕일 수도 있고 조선 사대부 중 사랑하고 싶은 사내가 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를 표현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화화는 겉으론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나 외롭고 고독한 여자다. 압록강을 건너와 조선 여자가 되어 장녕을 휘어잡은 조선 여자의 기술을 익히려다 지레 지쳐가고 있어서다. 중국여자가 조선여자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18-11-14 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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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5> 자동선(紫洞仙) <제5話>
아침 동정호는 상쾌한 아침을 알렸다. 악앙루에서 하룻밤을 잔 장녕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났다. “서방님, 잘 주무셨어요?” 옥빈의 깍듯한 아침인사다. 화촉동방을 치른 새색시 모습이다.
온 세상을 얻은 듯한 즐겁고 신나는 표정이다. “옥빈여사가 어떻게 여기 있소이까?” 장녕은 어젯밤의 뜨거운 방사를 까맣게 잊고 있다. “어젯밤에 장녕 대인이 이 옥빈을 여자로 만들어 주셨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알아듣게 말해 보시오...” “옥빈이가 말한 대로예요. 장녕 대인께선 어젯밤에 술이 너무 취하셔서 기억이 안 나시는 모양인데 이 옥빈을 여자로 만들었어요! 40년을 숫처녀로 있었는데 이제 비로소 남자를 안 여자가 되었어요...” 옥빈은 행복한 웃음을 얼굴 가득히 꽃이 활짝 피듯 피웠다.
장녕은 어젯밤의 일을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가위에 눌린 듯 가슴이 답답하고 아랫도리가 얼얼했던 것만 아련히 떠올랐다. 꿈속을 걷는 기분이다. “아무튼 일어나셔서 술국을 드세요! 옥빈이 준비한거예요... 동정호에서 나가 주막에까지 가서 사가지고 온것이예요!” 당당히 화촉동방을 치른 신부의 태도다.
사실 장녕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마음속으로만 사랑을 했지 입 밖으론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해본적이 없는 옥빈이 신부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기분이 뻑적지근하게 좋은 것이다.
장녕이 상처한지 올해로 3년째다. 여자가 목마르게 그리울 때다. 그럴 때 생각지도 못한 옥빈이 나타났다. 속으로만 사랑했던 여자다. 흠모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나타나 자청하여 장녕의 여자가 되어주겠다고 애걸하고 있다. 하지만 장녕은 옥빈을 선뜻 받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자동선의 환상에 빠져있다. 불혹이 넘은 장녕에겐 자동선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중국의 변방 국가인 조선에 그토록 예쁘고 재능이 있는 미녀가 있을 줄은 몰랐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던 미녀다. 허리 밑의 쾌락을 즐기려 했었는데 그녀 재능의 포로가 되었다.
옥빈도 흠잡을 데 없는 재녀다. 왕소군과 서시의 장점만 빼어낸 인형 같은 여인이다. 장녕이 조선에 사신으로 가지 않은 채 옥빈을 만났던들 허겁지겁 받아들였을 게다. 그러나 조선의 자동선을 보고 와서는 옥빈이 청루의 여인 중에 한 여인으로 보일뿐이다.
하지만 여긴 조선이 아닌 중국이다. 장녕에겐 당장 부양할 70이 넘은 노모와 어린 딸 자매가 있다. 그런데 옥빈은 가정에서 알뜰히 살림을 할 현모양처로 보이지 않아 장녕이 지금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펑펑 쓰면서 데리고 노는데 딱 맞는 여인쯤으로 장녕의 눈에 보여서 걱정이 태산일 터다. “옥빈여사. 정녕 재가 그렇게 좋습니까?”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이 옥빈은 이미 장녕 대인의 여자가 되었어요. 대인 어른께서 어떤 행동을 하셔도 이 옥빈은 흔들리지 않는 그림자가 될 것입니다.” 옥빈의 말은 단호하다. 본인이 자청하여 비록 장녕의 여자가 되었지만 네가 나의 처녀성을 짓밟고도 딴청을 떨 수는 없을 것이란 자신감이 붙은 말투다.
사실 장녕도 옥빈이 싫다기보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처지다. 상처한 주제에 70이 넘은 노모와 아직 손이 많이 갈 어린 두 자매가 있는 가장이다. 옥빈을 데려다 놓으면 밤엔 마음껏 욕정을 채울수 있고 낮엔 노모와 두 자매를 맡기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장녕은 그 기대가 허망하게 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선뜻 옥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악앙루 3층엔 지금 둘밖에 없다. 어떤 짓을 해도 세상에 알려질 우려가 없는 장소다.
장녕은 문득 재능이 너무 뛰어나 여러 시인 묵객(墨客)들과 교류하다 세상사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한 여류시인 이야(李冶:713~840)의 시를 떠올렸다. ‘전날 서리가 한창일 때 떠나더니 / 이제 안개가 짙을 때 돌아왔네 / 서로 만나도 와병 중이라서 / 말을 하고프나 눈물이 먼저 흐르네 / 도연명의 술을 애써서 권하고 / 사령운의 시를 전처럼 읊는다 / 우연히도 술에 함께 취하니 / 이것 말고 무얼 더 하리오...’ 특별한 남자 친구 육우(陸羽)가 병석의 이야를 찾아왔을 때 읊은 <호상와병히육홍점지>(湖上臥炳喜陸鴻漸至)다.
지금 장녕은 자동선의 환상에 빠져 여타여인에겐 마음 쓸 여유가 없는데 옥빈이 나타났다. 게다가 옥빈의 주도로 교접까지 한 상태다. 옥빈의 사내가 된 입장이다. “그래 옥빈여사 내가 그렇게 좋소?” 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물은 말이다. 옥빈은 기가 막히는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옥빈이 속곳 바람이다. 앞이 훤히 터진 속곳이다. 그 터진 곳으로 음문이 드러났다. 엊저녁 장녕의 배위에서 힘을 얼마나 썼는지 아직도 음문이 벌겋게 충혈 된 채다. 사실 장녕도 옥근 언저리가 지금도 얼얼한 상태다.
그는 애써 옥빈의 음문에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옥빈은 어차피 벌어진 일 거리낌이 없다. 일부러 다리를 벌려 충혈 된 음문을 보이려했다. 이래도 네 놈이 엊저녁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모른단 말이냐는 태도다.
옥빈이 천애고아 행세를 하는 이유가 있다. 고려로 귀화한 쌍기(雙冀:?~975)의 후예여서다. 옥빈은 쌍기 외가의 후예다. 쌍기는 후주(後周:951~960) 사절단의 일원으로 와 그만 병이나 돌아가지 않고 고려에 귀화하였다. 그는 광종에게 과거제 실시를 주창하여 고려가 혁신적으로 과거제도를 도입케 한 인물이기도 하다.
옥빈은 그 쌍기 외가의 피붙이다. 후주의 역사는 불과 9년이다. 그런데 그때 사신단원으로 쌍기가 고려에 왔다. 섬광(閃光)같이 나타나 후주의 사람이 탄탄한 역사의 고려에 와 보니 모든 것이 부러웠을 것이다. 그는 와병중이라 했으나 조국이 싫어 귀국하지 않고 귀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아버지 쌍철(雙哲)도 고려에 귀화해 높은 벼슬을 즐겼다.
옥빈이 쌍기네 먼 친척이다. 그녀는 철저히 신분세탁을 하였다. 양친 부모 형제도 없는 천애고아로 세상에 알렸다. 가문을 중시하는 중국은 옥빈이 재능이 뛰어나고 미모까지 지녔으나 신부감과 며느리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자의 여자가 되려했으나 나타나는 사내가 없었다. 그래서 40세까지 본의 아니게 정조를 지켰다. 옥빈이 기다리다 못해 본인이 앞장서 장녕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었다.
2018-11-0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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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4> 자동선(紫洞仙) <제4話>
개성 유수의 융숭한 대접을 받고 귀국한 장녕은 날마다 즐겁다. 친구들에게 자동선과 질펀한 방사 얘기부터 대동강 뱃놀이에서 흥미진진한 무용담을 털어 놓는 것이다.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한림학사다. 날마다 바쁜 일이 없으니 동정호(洞庭湖) 나들이가 일과다.
오늘은 장녕이 친구 서무(徐武·가명)·왕부(王傅·가명)·장문(張文·가명)·옥빈(玉嬪·가명)을 초청하여 조선 사신으로 가서 개성의 무용담을 털어 놓으려는 속내다.
제일 연장자인 왕부가 일찌감치 왔다. 장녕보다 두 살이 위다. “형님이 제일 먼저 오셨군요. 아랫것들은 늘 지각이에요? 오늘은 벌주를 마음껏 먹여야겠어요! 허허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기 서무와 장문, 여자 친구 옥빈까지 함께 오고 있네요.” 장녕이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은 듯 싱글벙글 이다. “어 형님 오랜만이에요. 조선에 가서 재미를 톡톡히 보신 것 같네요? 얼굴이 환해요.” 막내 장문의 너스레다.
오늘 모임은 조선에 사신으로 갔다 온 보고 대화다. “장녕 오빠 오랜만이에요! 가끔 불러주세요. 혼자서만 재미 보시지 마시고... 섭섭해요. 오늘도 저만 쏙 빼고 초청을 하셨네요! 서무 오빠께서 같이 가자고 해서 왔어요. 불청객이라고 냉대는 하지마세요...” 옥빈이 미간을 찡그리며 편치 않은 속내를 감추었다.
옥빈은 장녕을 짝사랑하고 있다. 청혼을 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주위를 빙빙 맴돌며 서성댄다. 미녀에다 시재(詩才)까지 뛰어나 제2의 설도(薛濤)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천애고아다. 어디서 태어난 누구 자손인지 아무도 모른다.
옥빈 자신도 현재만 알고 있을 뿐 과거는 하얀 백지상태다. 장녕이 옥빈이 청혼해 오기 전에 먼저 마음에 들어 청혼을 하려고 신상을 알아보았으나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포기한 여인이다. 그런 이후로 장녕은 옥빈에게 마음을 접었다. 하지만 옥빈은 장녕과 달랐다. 끝까지 평생을 걸고 도전하려는 한(恨) 같은 태도다.
그들은 만나면 술 한 순배가 돌아가면 으레 시 낭송이 있다. 오늘은 홍일점 옥빈이 낭송을 맡았다. ‘예부터 들어오던 동정호 / 이제야 악양루에 올랐네. / 오나라와 초나라는 동남으로 갈라지고 / 천지만물은 밤낮으로 물위에 떠도는구나. / 친척과 벗은 편지 한 장 없고 / 늙고 병든 몸에 외로운 배 한척뿐이네. / 관산의 북녘은 한창 전란중이라 /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노라.’ 두보의 《악양루에 올라》다. 옥빈은 시 낭송 내내 눈물을 흘렸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옥빈의 눈물 때문이다. “자자, 술을 드시오! 옥빈여사께서 이 좋은날에 웬 눈물이요?” 장녕이 분위기를 추스른다. 장녕은 옥빈의 눈물의 뜻을 알고 있다. 하지만 둘 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라 서로 모르는 척 한다. 가슴은 활화산 같이 타오르고 있으나 의연한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약점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그러하다.
지독한 남녀다. 죽도록 사랑하면서 죽도록 속내를 보이지 않는 남과 녀다. 자기 마음을 자기만 알고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철저한 자기사랑주의자다. 하지만 동료들은 장녕과 옥빈이 떨어져서는 살 수 없는 연리지(連理枝) 관계이나 헤어져 살 수밖에 없는 관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척하여 당사자는 정말 모르는 줄 알고 있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다. 옥빈은 장녕을 보자 눈빛이 샛별처럼 빛난다. 장녕도 예외가 아니다. 두 눈빛이 부딪칠 때마다 천둥번개가 칠듯하지만 지축을 울리는 소리만 없을 뿐이다. 서무·왕부·장문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척 딴전을 부리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그들이 덜 민망하도록 하려는 속 깊은 배려다.
옥빈은 한림학사는 아니지만 재색이 뛰어날 뿐만이 아니라 시문(時文)도 한림학자 못지않은 수준이다. 서무·왕부·장문·장녕의 모임엔 예외 없이 옥빈이 나타났다. 막내 서무와 오누이 관계를 맺어 장녕이 나타나는 모임엔 옥빈도 그림자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서무의 치밀한 작전이다.
지금은 그런 분위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둘만 남기는 작전 전개다. 오후가 되고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리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세 남자는 화장실에 갔다 온다는 구실로 한사람씩 자취를 감추었다. 결국 장녕과 옥빈 둘만이 남았다.
그들은 서무의 치밀한 작전이란 것을 눈치 채면서도 역시 모르는 척 하고 분위기에 휩싸인다. 장녕은 넷이 권하는 술에 만취상태다. 옥빈도 많이 마셨으나 여자 이태백 별명처럼 비교적 말짱한 상태다.
옥빈은 손수 거문고를 타면서 유우석(劉禹錫:7720~842)의 《동정호를 바라보며》를 낭송이 노래가 되었다. ‘가을 달빛 어지러진 호수 / 바람 잔 수면은 옥을 갈아 놓은 듯 / 멀리 동정산수 바라보니 / 하얀 은쟁반 위의 푸른 소라 하나’ 청아하고 맑은 옥빈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서글프게 악양루를 아침안개처럼 감싸 안았다.
옥빈의 노래가 끝나자 장녕이 고목처럼 벌러덩 자빠져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기 시작하였다. 더운지 배를 드러내고 두 다리를 힘껏 벌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옥빈이 용기를 내기로 하였다. 장녕을 자기 남자로 만들려는 속내다. 세 남자가 빠져나간 것은 옥빈에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서무의 알뜰하고 치밀한 계획이다. 가위에 눌린 듯한 장녕은 두 팔을 벌려 허우적거린다. 그런데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눈을 뜬 장녕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벌거숭이 옥빈이 위에서 교접을 하고 있다. “장녕씨 내 평생 처녀로 늙어 죽을 수는 없지 않은지요? 이렇게라도 해서 숫처녀를 면하려고 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옥빈은 사내 물건을 일으켜 옥문 깊숙이 넣어 절정의 기쁨을 즐기고 장녕의 기분은 아랑곳 않고 알몸인 채 밖으로 나갔다.
휘영청 밝은 달은 해무(海霧)로 자욱한 동정호를 신비한 선계(仙界)처럼 만들었다. 알몸의 옥빈이 해무 속으로 항아(姮娥)의 모습같이 걸어가고 있다.
2018-10-31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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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3> 자동선(紫洞仙) <제3話>
오후가 되자 장녕의 행동이 바빠졌다. 귀국 채비를 서두르는 분위기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압록강을 건너도록 되어 있어서다. 그런데 속으론 어떻게든 자동선과 방사를 한 번 더 하고 가려는 속내다. 대동강 뱃놀이를 한 번 더 하고 가려고 배를 큰 것으로 빌려 칸을 막았다.
술상을 준비하는 제일청은 별도 칸에 있어 보이지는 않으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다. 척하면 천리라고 자동선은 사내들의 심리 읽는데 신기에 가깝다. 숨소리·눈동자·손동작 등에서 마음의 행로를 읽는다.
지금 장녕은 자동선을 자빠뜨려 방사를 하고 싶은 속내다. 송악산에 뉘엿뉘엿 저녁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자 장녕의 목소리가 낮아지면서 말수가 빨라졌다. 술잔도 자주 비웠다. 마음이 급한 상태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 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은 모르던가 /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자동선이 거문고 음률에 맞춰 황진이 시를 연이어 낭송하였다.
어차피 가야 할 사람인 줄 알고 잡은 척 하자는 속내다. “대인군자께서 이 시를 혹 아시는지요? 풍류를 즐기는 사대부라면 모를 리 없는 황진이의 시 옵니다.” “그 시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구나! 어디 황진이에 대해 말해 보거라...” “대인군자께선 혹 서경덕이란 성리학자를 아시는지요?” “아다마다. 서화담(徐花潭:서경덕 별칭)을 지칭 하느냐?” “그러하옵니다.” “ 그 서화담은 중국에도 잘 알려진 성리학자가 아니더냐! 그런데 황진이와 서화담은 어떤 관계더냐?” “예 대인군자어른, 황진이와 서화담은 사제지간이옵니다.” “여자가 어떻게 성리학자의 제자가 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니까 거기에 기가 막힌 사연이 있사옵니다. 다 들어보시겠는지요?” “암 듣고말고! 여부가 있겠느냐?” 장녕의 말이 더욱 빨라졌다.
자동선도 장녕의 변화되는 언행에 긴장감이 온 몸에 배어오나 침착성을 잃지 않고 모르는 척 말을 이어갔다. “예 대인군자어른, 사실 황진이 언니께선 서화담을 사랑했었지요. 사랑을 고백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육탄공세까지 해봤으나 역시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깊은 황진이 언니는 포기하지 않고 작전을 바꾸어 제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제자가 되는데도 쉽게 되지 못했지요... 남자 제자들이 수십명이 되는데 천하일색 황진이가 들어오면 공부하는 분위기가 흐려질까 봐 서지요.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황진이가 서화담의 홍일점 제자가 되었습니다. 흠모했던 사내를 사랑은 할 수 없어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일단은 성공한 작전이 아닐까요? 천재 시기(詩妓) 황진이의 승리였습니다.” 장녕의 손은 어느새 자동선의 허리 밑으로 들어가 사타구니를 더듬고 있었다.
사내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여기선 아니 되옵니다. 정 급하시면 청교방 집으로 가시지요... 여기선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하지만 장녕은 막무가내다. 칸막이 옆에서 제일청이 말 한마디도 빠뜨리기 않고 듣고 있다. “자동선 아씨! 술이 모자라시죠?” 눈치 빠른 퇴기 제일청이 태상주를 들고 나타났다. 장녕은 기분이 상한 듯 서둘러 손을 빼고 딴척을 떤다. “그랬구나. 천재 황진이가 흠모했던 사내 곁으로 가 밤낮으로 볼 수 있으니 상사병에는 걸리지 않았겠구나. 하지만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느니라...” 속이 타는지 장녕이 술잔을 연거푸 비웠다.
그리고는 무언가 포기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내 곧 귀국길에 오르려한다. 네가 압록강까지 배웅을 해 줄 수 있겠느냐? 내 사례는 톡톡히 하련다.” 장녕의 두 눈에 이슬이 고였다. 자동선은 갑자기 장녕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나라에서 한림학사까지 지내는 대인군자가 일개 기녀에게 마음을 뺏겨 눈물을 보이자 측은지심이 발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붙들 생각은 없다. 압록강까지 배웅을 가 줄지도 생각중이다. 장녕도 생각이 복잡하다. 자동선이 하루 더 있다 가라고 붙들면 못이기는 척 주저앉겠는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사신의 책무는 후하게 처리했으나 귀국하여 축하 받을 일만 남아 하루 이틀 늦게 귀국한다고 누가 뭐랄 신분이 아니다.
그러나 장녕은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자동선의 눈치로 봐 배안에서 번개 방사를 해 줄 분위기는 아니어서 귀국 할 마음을 굳혔다. 개성 유수에게 뱃놀이를 하다 귀국하겠다고 하여 말이 강가에 대기하고 있다. 속곳 속으로 손을 넣고 치근댈 때는 성가시어 떼놈은 할 수 없어 하며 꼴도 보기 싫다가 막상 떠나간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장녕은 칸막이 뒤에서 술상을 준비하고 있는 퇴기 제일청과 뼈를 녹이는 방사가 자동선과 한 교합인줄 알고 한 번 더 욕정을 채우려다 끝내 성사를 못하고 떠나는 표정이 비가 안와 직녀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견우의 표정이다.
자동선은 압록강까지 배웅하기로 마음먹었다. 욕정을 다시 한 번 채우려다 끝내 이루지 못하고 국경을 넘어가는 대국의 묵객(墨客)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조선여인의 따뜻한 배려다. 자동선의 뇌리엔 수많은 사대부들의 얼굴이 겹쳐져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장녕도 그 중의 한 사내다. 안타까운 것은 퇴기와 술기운에 질펀한 사랑을 하고 자신과 방사를 즐긴 줄 알고 떠나가고 싶지 않아 속을 태우는 것에 마음이 쓰여서다. “안녕히 가세요! 사신으로 또 오시면 소저가 또 정성껏 모시겠사옵니다.” 자동선은 말을 마치고 매몰차게 돌아섰으며 장녕은 여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다.
강바람이 오늘따라 거세다. 장녕의 머리가 바람에 등 뒤로 휘날린다. 장녕은 퇴기 제일청과 질펀한 사랑을 자동선의 방사로 알고 귀국하여 친구들에게 무용담을 털어놓을 것을 생각하니 여인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2018-10-24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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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2> 자동선(紫洞仙) <제2話>
새벽 닭 울음소리에 장녕은 눈을 떴다. 상쾌한 기분이다. 잠자리에 들면서 거침없이 자동선을 끌어안고 욕심을 채운 장면이 눈앞에 선명하게 어른거린다. 하도 힘을 넣어 욕심을 채워 아직도 아랫도리가 얼얼하고 화끈화끈하기까지 하다. 그때였다. 자동선이 머리 맡에 앉아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며 술국을 권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더 예쁘다. 방금 선계(仙界)에서 내려온 선녀 모습이다. 장녕은 청순한 자동선을 보자 문득 전설의 서왕모(西王母)를 떠올렸다. 지금 장녕은 자동선의 수청을 받은 줄 알고 있다.
싱글벙글 만족한 표정이다. “이 술국으로 속을 풀어야 하옵니다. 이 술국은 북어와 콩나물을 넣고 대인군자를 위해 소저가 직접 끓인 것이옵니다. 어젯밤에 과로하셨습니다. 폭음에 방사까지 즐기셨으니 소저 걱정이옵니다.” “그러하느냐? 너는 방사기술도 으뜸이더라... 소녀경(素女經)을 읽었느냐?” “대인어른께선 별것을 다 물으시네요. 소전 부끄럽사옵니다.“ 자동선은 정말 어젯밤에 수청을 들은 듯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자동선의 수줍은 표정을 본 장녕은 어젯밤의 뜨겁고 행복했던 방사를 떠올렸다. 기쁨과 환희의 웃음이 나오고 또 아랫도리가 꿈틀댔다. “자동선아! 내가 듣기로는 대동강 뱃놀이가 기가 막히게 좋다는데 나와 함께 할 수 있겠느냐? 오늘 저녁에 국경을 넘어야 함으로 오전밖에 시간이 없느니라...” 진지한 말투다. “예 대인군자께서 부탁을 하시는데 소저 어찌마다 할 수 있겠사옵니까?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아니다. 네가 괜찮다고 하면 내가 개성 유수한테 준비를 시키고 너는 나와 동행만 해주면 되느니라!” “그렇게 해주시면 더욱 좋사옵니다. 그런데 소저와 동행할 한사람이 있사옵니다.” “그게 누구냐?” “예 대동강 수양버들 뱃놀이에 술이 없어서 되겠는지요? 소저의 어머니를 동행하여 주안상을 준비하겠사옵니다...” 장녕과 자동선은 개성 유수가 준비한 백마를 타고 퇴기 제일청은 나귀에 주안상을 싣고 따랐다.
대동강 뱃놀이는 유명하다. 강 양쪽으로 수양버들이 바람이 불면 마치 선녀들이 춤을 추는 듯하여 신선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벌써 먼저 온 뱃놀이 배들에서 풍악이 울려 퍼지고 기녀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흘러가는 세월이 아쉬운 듯 대동강 뱃놀이는 봄·여름·가을까지 밤낮이 없다.
배는 타는 신분에 따라 배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울긋불긋 비단으로 치장한 것은 사대부들의 것이고 보통 옷감으로 햇빛을 가린 것은 돈을 번 중인(中人)들의 배다. 조선은 엄격한 계급사회다. 뱃놀이에서도 신분이 분명히 갈리었다. 계집의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자동선은 중국의 사신을 따라 왔으므로 울긋불긋 호화선의 주인공이 되었다.
거문고 가야금 소리에 기생들의 노래 소리가 바람에 춤추는 수양버들과 어울려 이승이 아닌 선경인 듯하다. 장녕 표정이 굳어졌다. 적이 놀라는 표정이다.
문득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 조국 중국의 동정호를 떠올리는 듯하였다. “대인어른 어떠세요? 대동강 뱃놀이 재미를 누구한테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대장부라면 한번쯤은 보고 즐길만해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분 냄새의 얼굴을 장녕에게 바짝 다가대며 자동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몸까지 바짝 붙여 장녕의 아랫도리에 닿았다. 자동선의 신비롭고 자극적인 체취에 장녕의 물건이 고개를 들어 음부에 닿는 것을 여자는 느꼈다. ‘옅은 안개 짙은 구름 한낮은 수심으로 길기만 하고 / 금수 향로 서뇌향은 타오른다. / 좋은 시절 또 중양절이라 / 옥 베개 비단주렴엔 / 초저녁 스산함이 스며드누나. / 동쪽 울타리에서 황혼이 지도록 술 마시니 / 국화의 그윽한 향기 소매에 가득 하구나. / 임 생각 타는 심정 잊혀진다 말하시오. / 주렴을 거두노니 가을바람 부는데 / 사람 꼴 국화보다 말랐구나./ 이청조의 《취화음》(醉花陰)이다.
자동선이 거문고 음률에 시를 낭송해도 장녕의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대인군자께선 무슨 걱정이라도 있사옵니까?” 자동선이 몸을 바짝 밀착시키며 다시 말을 붙였다. 그때서야 장녕이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을 벌려 자동선을 뜨겁게 품었다.
그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까지 아침이슬처럼 보였다. “내 너를 두고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고 그리워지느니라. 내 조선에 눌러 살수도 없고 내일 중국으로 떠나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질지 걱정이 태산 같구나!” 장녕의 손은 어느새 속곳을 비집고 들어가 자동선의 그곳을 더듬고 있었다. “이곳에선 아니 되옵니다. 참으셨다 저녁에 정성껏 모시겠사오니 이곳에선 대인군자답게 점잖게 뱃놀이를 즐기시길 바라옵니다.” 말을 마친 자동선은 억센 장녕의 뜨거운 품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당나라 만당(晩唐)시인 이상은(李商隱·813~858)의 시 《무제》(無題)를 낭송하였다. ‘만남이 어렵 듯 헤어짐도 어려워라 / 봄바람이 무력하니 꽃들도 시드네. / 누에는 죽어야 실이 다하고 / 초는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른다네. / 새벽 단장에 머릿결 변해 수심일고 / 밤중에 읊다보면 달빛만 싸늘하겠지 / 봉래산 가는 길이 예서 멀지 않으니 / 파랑새야 몰래 임을 찾아 주려무나...’ 자동선이 시낭송을 끝내자 장녕의 표정이 조용해졌다.
너무 놀라는 표정이다. 사내 품에서 아양을 부려 화대나 푸짐하게 받아내는 기녀로 봤던 눈치다. 중국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조선의 기생쯤 생각했다. 마음을 싹 바꾼 표정이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내 너를 한낱 기생으로 봤음을 사과하느니라! 중국에 가면 너의 이름을 널리 알리겠느니라...” 말을 마친 장녕은 술잔을 연이어 비웠다. “아니옵니다. 태상주는 독주라 그렇게 빨리 드시면 몸이 상하시옵니다.!” 자동선이 장녕의 술잔을 빼앗아 자신이 마신다.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로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자동선이 있어 행복한 사내들이로다. 내 귀국길을 하루 연장하고 내일 대동강 뱃놀이를 한 번 더 즐기고 가리라...” “그렇게 하시면 소저도 더없는 영광이 되겠사옵니다...” 대동강 바람은 늦봄이지만 해가 떨어지면 싸늘하다. 장녕은 내일 대동강 뱃놀이를 약속하고 개성 유수 객사로 총총히 말고삐를 돌렸다. 자동선의 체취가 아쉬운 듯 몇 번이고 되돌아올 듯 돌아보곤 하였다.
2018-10-1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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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1> 자동선(紫洞仙) <제1話>
명(明)나라 사신 장녕(張寧)이 자동선(紫洞仙)을 보자 짐짓 놀란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눈치다. 자동선의 아름다움에 놀란 자신의 눈이 뭣을 잘못 봤나 의심이 났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미인으로 생각한 여인은 양귀비·초선·왕소군·서시 등 4대 미인을 말하는데 조선에서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한 자동선을 보고는 그만 생각이 바뀌었다.
동이족(東夷族)은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미인까지 있어 그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장녕은 명의 황제(英宗)의 명을 받고 조선에 왔다 임무를 마치고 송도(松都·현 개성)에 들려 중국에까지 천하제일의 명기(名妓)로 소문이 난 자동선을 보고 가려던 길이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소문으로만 듣던 자동선을 보고 가야 귀국해서 친구들과 만나게 되면 조선에 갔다 왔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지금(세종20년) 장녕은 자동선 앞에 앉았다. 장녕은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개성 유수(유병림 가명)에게 사신으로 오기 전에 청을 넣어 오늘 극적으로 자동선을 만나게 되었다. 조선의 사신에 임명될 것이란 소문을 듣고 미리 서신을 보낸 결과다.
그런데 장녕이 긴장하고 있다. 개성 유수 유병림에게 자동선에 대해 정보를 미리 입수하였다. 자동선은 가무에 뛰어나고 시와 서예까지 탁월하여 웬만해선 수청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금 자동선과 거리는 술상이 전부다. 팔을 벌려 안으려면 충분한 거리다. 중국에서 소위 한량으로 회자되는 그가 자동선 앞에서 긴장한 얼굴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답지 않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 속내(잠자리)가 드러날까 우려에서다.
장녕은 여자를 만나면 꼭 잠자리를 성사시켰다. 그런데 지금 자동선을 품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불안하다. 만약 잠자리를 성사 시키지 못하고 돌아가면 친구들은 사정은 모르고 물건을 잘라버리라고 핀잔을 퍼부을 것이 뻔해서다. “대인군자(大人君子)께서는 뭣을 그토록 골똘한 생각에 빠져 계신지요? 술도 별로 안 드시고 어디가 편치 않으신가요?” 자동선이 거문고 음률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추고 술상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꺼냈다.
자동선은 장녕에게 어떻게든 술을 많이 마시게 하려한다. 그래야 잠자리에 들더라도 사내구실을 못할 만큼 먹여야 수청을 피할 수 있고 인사불성이 되면 대리기생을 넣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장녕이 두서너 잔을 연거푸 마신 후론 술잔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할 뿐 시원스럽게 마시지 않고 있다. “대인군자께선 소저가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죠? 딴 아이를 부를까요?” 자동선이 춤을 추고 나서 목이 탔던지 태상주(太常酒:개성명주)를 단숨에 한 잔을 들이켜고 말을 다시 건넸다. “아니다. 아니야. 너의 자색(姿色)에 취해 내가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느니라!” “호호호! 대인군자께선 농담도 잘하시네요! 이 자동선이 눈치 없어도 사내들의 마음을 대충 읽을 줄 압니다... 어서 마음 놓으시고 마시고 즐기세요! 소저가 시(詩) 한 편을 낭송해 드리겠습니다. 대인군자께선 시를 좋아하실 것 같네요?” ‘봄도 다 가는데 왜 이리 못 견디게 고향이 그리운가 / 몸져누우니 긴 머리 빗는 것이 원수로다. / 대들보의 제비는 종일 무어라 지저귀는데 / 장미향기 미풍타고 방안으로 스민다.’ 이청조(李淸照:1084~1155)의 《춘잔》(春殘)이다.
장녕은 이청조의 《춘잔》을 듣고는 더욱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어떻게 우리나라 여류시인 이청조를 아느냐?” 말을 마친 장녕은 술상을 발길로 걷어차 밀어내고 자동선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손을 자동선의 허리 밑으로가 속곳 속으로 들어갔다. “대인군자께선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대인군자면 대인답게 행동을 하셔야지요!” 서릿발 같은 자동선의 말에 전광석화 같았던 장녕의 행동이 고목(枯木)처럼 멈추었다.
사십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장녕이 조선기생 자동선의 말에 기가 질린 것이다. 이청조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여류시인(訶)인데 조선의 기생이 그녀의 시까지 암송하고 있어 자신이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국격에 손상이 갈까 사신으로서 걱정이 앞섰다.
바로 그때다. “대인군자 어른!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입니다. 아무리 초면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요? 술기운에 넘치는 욕정에 교합을 하면 개·돼지나 다를 바가 없지요! 소저는 비록 기녀지만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내친김에 설도(薛濤·768~832) 선배의 시까지 낭송해 드릴게요. 그리고 격식을 차려 방사(房事)를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말을 마친 자동선은 《봄날 들판에서 구경하며 놀다가 손처사께 부치다.》를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하기 시작하였다. ‘고개 숙여 오랫동안 서 있었죠. 장미 향해서요. / 사랑은 영릉 땅 향초 닮아 옷을 물들이네요. /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벽계의 손처사님 / 백로는 동쪽으로 가고 제비는 서쪽으로 나네요. / 오늘 아침에 눈 닿는 대로 화초를 감상하는데요. / 꽃무늬 비단치마 수놓은 융단이어요. / 소매가득 머리가득 손을 아울러 쥐고서 / 사람들이 알게 하지요. 꽃보고 돌아가는 것을요...‘ 자동선이 시를 낭송하는 사이에 장녕은 술을 자작하여 연거푸 마셨다.
자동선이 시를 다 낭송할 때엔 장녕은 고주망태가 되었다. 자동선이 바라던 대로다. “대인군자님 이제 그만 드시고 잠자리로 드시죠...” 향초향이 은은히 풍기고 원앙 한 쌍이 수놓아진 비단이불이 깔려져 있으며 붉은 연산홍 빛의 촛불까지 일렁이어 신비하기 까지 한 분위기다.
이제 자동선은 장녕의 품안에 들어간 여자가 되었다. 장녕은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이불 위에 벌러덩 누우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대인군자 어른, 소저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자동선은 바람처럼 방을 빠져 나갔다. 자동선이 나오자 대기하고 있었던 퇴기 제일청이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을 껐다. 고주망태가 된 장녕은 능수능란한 잠자리 기술에 능한 제일청과 만리장성을 쌓았다.
2018-10-10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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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20> 송덕봉(宋德峰) <제12話>
청자 빛 하늘에 오곡이 무르익은 목릉성세(穆陵盛世)다. 때는 선조(宣祖·1567~1608)대로 허난설헌(1563~1589), 이매창(1573~1610)ㅏ 황진이(1520~1560), 그리고 송덕봉을 일컬어 조선의 4대 여류시인이라 한다. 송덕봉과 허난설헌은 사대부집 딸이며 이매창과 황진이는 기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시문(詩文)에 뛰어난 재원이었다. 사내로 태어났으면 장원급제하여 북촌에 거주하며 육조거리를 휘젓고 다닐 사대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였다. 황진이는 소세양·벽계수 등이 기녀인 그녀를 신주 모시듯 사랑했으나 정작 본인이 사모했던 서화담은 끝내 품지 못하였다.
이매창 역시 그가 끔찍이 사랑하였던 유희경과 마음껏 사랑을 펼치지 못했다. 천재시인 허난설헌은 금지옥엽 성장하여 출가하였으나 남편 김성립과 금슬이 좋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고부간 갈등 등으로 결국 제명을 살지 못하고 26살에 요절하였다.
선조시대를 목릉성세라 하지만 여성들에겐 그런 화려한 용어가 해당되는 시대가 아니었다. 일방적 남성 주도 사회였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사회에서도 네 여인은 주옥같은 시들을 남겼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의 대표시다.
황진이는 누가 말해도 사내로 태어났으면 한번쯤 자빠뜨리고 싶은 여자다. 그런데 그녀는 남자에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자고 싶은 상대를 골랐다. 그것이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무기다. 남성 절대사회에서 여자가 남자와 잠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여자였었다.
이매창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시기(詩妓)였으나 허균을 비롯한 내로한 사대부들로부터 알뜰한 보호를 받았던 어성으로서 정조를 지켜가며 시로 욕망을 자제할 수 있었던 여류시인이었었다. 그녀는 욕망의 화신이 아닌 사랑의 아우라였다. ‘서창 대나무에 달그림자 너울거리고 /복사꽃 핀 뜨락에는 떨어진 꽃잎 춤을 추네. / 홀로 난간에 기대 잠도 꿈도 못 이루는데 / 마름 따는 노래만 멀리 강가에서 들려오네.’ 《밤중에 앉아서》다.
허난설헌은 네 여류시인 중에 가장 극적인 인물이다. 26년이란 찰나 같은 삶에서 주옥같은 시와 산문 등을 남김은 여류사에 기념비적 존재일터다. 곤고한 삶을 시로 카타르시스 시킨 대표적인 여류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결혼상대를 보고 출가 시킨 것이 아닌 가문을 보고 결혼을 시켜 천재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잃은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그녀는 곤고한 삶에서도 문학으로 역경을 극복하여 오늘날 여류문인으로 역사에 찬연히 빛나고 있다. ‘자주 빛 퉁소 소리에 구름이 흩어지자 / 발 밖에는 서리가 차가워 앵무새가 우짖네. / 밤 깊어져 외로운 촛불이 비단 휘장을 비추고 / 이따금 드뭇한 별이 은하수를 넘어가네. / 똑똑 물시계 소리가 서풍에 메아리 치고 / 이슬지는 오동나무 가지에선 밤벌레가 우네. / 명주 손수건에 밤새도록 눈물 적셨으니 / 내일 보면 점점이 붉은 자국이 남았으리라.’ 《임을 그리며》다.
이제 덕봉이다. 여자팔자 뒤웅박 신세라며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에 따라 신분이 바뀐다. 덕봉도 어엿한 사대부 부인이 됐으나 결코 순탄한 결혼생활이 아니었다. ‘가고 또 가서 드디어 미천령에 이르니 / 동해는 가이없어 거울처럼 고르네. / 아낙네는 무슨 일로 만리길을 왔나 / 삼종의 의리는 무겁고 이 한 몸은 가벼워서라네.’ 만인에 회자되는 《마천령 위에서 짓다》다.
그랬다. 그녀들은 역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독특한 삶에서 그녀들만의 문학세계를 만들어 오늘날에도 화수분 마냥 끝없이 문학의 향기를 피우고 있다. 예술의 힘이다. 곤고한 삶이었으나 사랑하고 소중하게 아끼었으므로 그 같은 문학을 창조해 냈으리라...
덕봉의 시대는 조선 전기 문화는 절정기였으나 정치적 갈등이 표면화 되면서 당쟁이 심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조선 전기 사회가 송두리째 붕괴되고 유교이념을 재정립하면서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기 전 이전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적이지만은 않을 시기다. 상속이나 혼인제도 등에서 여성에 대한 처별이 본격화 되기 전이었다.
조선 전기라고 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덕봉은 그 같은 차별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소위 페미니스트다. 덕봉보다 1년 앞서 태어난 신분은 다르지만 당당히 일방적 남성 주도 사회에서 노류장화가 아닌 사내사냥을 하여 페미니스트(세대)가 된 황진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하겠다.
덕봉은 남편인 미암에게도 당당히 거리낌 없이 자기주장을 하였다. 현모양처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인간으로 성(性)의 구별 없이 역할과 주장도 똑부러지게 살았다. 덕봉은 친정아버지 비석 세우는데 미암의 소극적 태도에 “내가 시어머니 장례 등에 며느리 역할을 소홀하지 않았는데 장인에 대한 사위 역할이 부실하다.”고 신랄하게 항의한 태도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고 당시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무튼 조선 후기로 들어가면서 가부장제가 강화되어 장자 위주의 상속으로 제도가 바뀌고 딸의 지위가 아들에 비해 약화되어 열녀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덕봉은 사회의 제한적 분위기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미암이 기록한 《미암 일기초》에 남아있다. 덕봉의 시문은 정교·고아한 멋을 지녔으며 성품은 영민하였다. 시집으론 《송씨시고》(宋氏詩藁)가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하지만 덕봉은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일재 이항, 죽천 박광전과 더불어 호남의 5현으로 불리는 미암 유희춘의 부인으로 추호만치도 부족함이 없는 위치다. 그리고 그녀는 호남 제일의 여류시인이란 호칭이 더 붙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덕봉이 조선 여류문학을 태동시킨 주인공으로도 꼽히는 것이다. 천재시인 황진이를 조선여류문학 태동의 시원(始原)으로 봄이 대세다.
2018-09-27 1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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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9> 송덕봉(宋德峰) <제11話>
부부관계란 빛과 그림자 같아 오래 살다 보면 권태기도 있다. 젊었을 땐 여자가 고분고분 그림자로 있다 이립(而立·30)이 지나 불혹(不惑·40)이 가까이 오면 남성화 되는 경향이 있다. 이때 권태기도 생길수도 있으며 부부간에 크고 작은 갈등도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암과 덕봉에겐 권태기란 없다. 낙향 후 하루하루가 뜨거운 사랑이 더 뜨겁고 깊어져 갔다. 밤마다 그들의 방에선 박장대소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미암이 귀양살이로 비록 몸은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늘 덕봉의 곁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한양 벼슬에서 내려와 고향으로 왔다.
덕봉의 뜻대로 되었다. ‘황금 띠를 둘렀으니 선비로서는 극진한 영화 / 돌아와 초당에 누워 건강을 돌봄이 어떠하오. / 벼슬을 사양할 수 있다고 일찍이 약속했으니 / 뜨락에서 달을 보며 돌아오길 기다리오!’ 미암이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에 올랐을 때 덕봉이 보낸 시다.
문관과 무관에게 주는 품계다. 종2품(從二品)의 하계로 가정대부(嘉靖大夫)와 가의대부(嘉義大夫)보다 아래 자리다. 사대부로 벼슬길에 올랐는데 종2품으로 만족할 리 없다. 출사한 김에 우의정·좌의정, 아니 영의정까지도 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덕봉은 미암이 높은 벼슬보다 건강한 남편을 더 희망했나 보다. 그래서 이제 그 꿈이 이루어졌다. 가깝고 가까운 길을 두고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서 겨우 제자리로 왔다.
지방의 향반(鄕班)에서 중앙무대인 육조거리에 까지 올랐다가 약삭빠른 사대부들의 권력다툼의 희생양이 되어 2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갔다. 그립고 목마른 조강지처 품으로 돌아왔다.
덕봉의 간절한 희망이기도 하지만 미암의 꿈이기도 하였다. ‘눈이 내리니 바람이 더욱 차가워 / 그대가 추운 방에 앉았을 것을 생각 하노라. / 이 이슬이 비록 하품이지만 / 차가운 속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으리...’ 미암이 한양에서 덕봉에게 보낸 시다.
덕봉도 지체 없이 시로 답한다. ‘국화 앞에 비록 눈발이 날리지만 / 은대(승문원)에는 따뜻한 방이 있으리 / 차가운 방에서 따뜻한 술을 받으니 / 속을 채울 수 있어 매우 고맙소...’ 한양에서 미암이 따뜻한 방에서 소위 호사를 하고 있음이 아내 덕봉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며 보낸 시에 답시로 따끈한 술로 위로하고 있음을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덕봉과 미암은 빛과 그림자 같은 부부인 동시에 시를 쓰는 문학 동료이기도 하다. 시로 안부를 묻고 답하는 과정을 보면 애틋한 사랑이 아쉬워 눈물겹도록 그리워함을 애써 숨기며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나는 잘 있으니 당신이나 걱정하라는 답신이다.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의 모습이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 귀향하여 낮이나 밤이나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숨 가쁜 사랑이 나날이 더 화려하고 신비스럽게 깊어간다. 밤이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이 그들 부부는 동창이 밝아올 때마다 동시에 시퍼런 멍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높이는 여악 삼천 길과 같고 / 맑기는 소양강 8·9월 가을 같네. / 다시 양춘의 생물하는 뜻이 있어야 / 바야흐로 군자의 강유가 덕을 이룬다네. / 맑기가 어지 상수의 가을 같습니까? / 당신의 시 자랑 겸양이 없는데 / 젊은 시절 색욕을 없애버리고 / 사물에 무심하면 과연 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랬다. 덕봉은 미암보다 8살이나 어리지만 정신적 연령은 오히려 네댓 살 위의 누이 같다.
성장과정에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 보다 철이 빨리 든다고 하는데 덕봉과 미암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외지에 나가 있는 남편이라 마치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를 보는 어미 심정 같아 보이기까지 하다. 어쩌면 미암은 그 같은 아내의 태도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결혼 때도 미암은 덕봉의 코치를 받았다. 미암은 키가 작다. 신부 집에서 반대를 한 것을 나이 어린 덕봉이 부모님을 설득하여 어렵사리 부부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덕봉은 미암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세심한 배려가 사내에겐 때론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미암은 “당신이 문 밖에 나갈 때는 코가 먼저 나가네!”라고 하자 덕봉은 서슴없이 “당신은 길 갈 때는 갓끈이 땅에 끌려간다.”고 응수하였다. 자나 깨나 척척 맞는 부창부수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뼈가 있는 얘기라 하겠다.
남편을 지나치게 감시하지 말라는 뼈 있는 얘기와 키가 작은 것을 빗대 잘난 척 하는 남편을 제압하는 여자의 재치가 엿보인 일화라고 할 수 있다. 16세의 신부와 24세 신랑의 결혼생활은 순탄해 보일 듯 했으나 의외로 가시밭길이었다.
35세 때부터 시작된 귀양살이는 55세에 유배생활이 끝났으나 곧바로 한양 벼슬길에 올라 헤어졌던 부부생활로 복귀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40년 5개월 결혼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40여년 중 20여년은 유배생활로 빼앗겼으며 실제 한 지붕 아래 오순도순 결혼생활은 17년9개월에 불과하였다.
당시 조선시대의 주거환경을 오늘날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지역적인 거리로 소위 향처(鄕妻)와 경처(京妻)라는 것이 있었다. 벼슬을 하여 한양으로 올라가면 수발 들 여인이 필요할 때 생기는 아내가 경처며 고향에 있는 조강지처가 향처다.
남존여비시대의 산물이다. 하지만 덕봉은 지혜롭게 대처하였다. 15세 연하의 여자 방굿덕과 미암 사이에서 네 딸이 출생했으나 그녀는 의연하게 처신했다. 미암은 귀양살이에서도 여자는 늘 곁에 두었다.
그러나 덕봉은 가장 없는 살림살이 챙기기에도 버거워 남편의 외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여인의 삶의 모습일 게다. 덕봉이 그렇게 살아 오늘날 전라도가 낳은 제일의 여성 문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2018-09-19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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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8> 송덕봉(宋德峰) <제10話>
동창이 밝았는데도 미암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어젯밤의 방사가 힘에 붙였던 것 같다. 덕봉은 콩나물국을 끓였다. 숙취에 좋다고 하여 미암이 깨어나면 먹이려 하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독서나 산책을 할 시간이 훨씬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미암은 여전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이따금씩 잠꼬대까지 한다.
한양 육조거리에서 꿈같았던 생활이었는지 간간이 깔깔대는 웃음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다가도 땅이 꺼지는 한숨소리도 이따금씩 터졌다. 길고 길었던 유배생활이 교차하는 꿈이었던 것 같다. “여보 이제 일어나셔야 되요.” 덕봉이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미음을 흔들어 깨우자 와락 두 팔을 벌려 안았다.
덕봉이 깨워주길 기다렸던 것 같다. 입에선 여전히 술 향이 풍겼다. 방안에 술 향이 가득하다. “빨리 일어나세요. 방문을 열어 술 냄새를 없애야 겠어요...” 하지만 미암의 두 팔에 힘은 점점 더 세어져 덕봉은 다시 미암의 품으로 들어갔다. 새벽 그것이 일어난 것이다. 미암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덕봉은 온힘을 다해 뜨거운 품에서 빠져나왔다. 어젯밤의 심한 관계로 아직도 사타구니에선 불이 났다.
덕봉은 무결점의 현모양처 위치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자리를 지키려한다. 게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서울 육조거리를 활보하는 사대부로서도 흠결 없는 선비가 되려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잦은 꿈에서 임금을 만났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꿈에서라도 실현하려는 간절한 욕망이다. 그렇게라도 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을 카타르시스 하려는 절규다.
낙향하여 그 절규는 더 강렬해 졌다. 북촌에 살았을 때는 육조거리와 피막골을 오가며 잠재된 이상이 실현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제시켰다. 하지만 낙향해서는 그나마 볼 수 없어 마음은 정처 없이 떠돌고 애달프다. 이처럼 마음이 공허하고 무기력 할 때엔 미암과 장기를 두었으나 그것도 이젠 시들해졌다.
장기와 바둑은 덕봉이 미암을 못 당하였다. 미암이 덕봉의 의중을 꿰뚫고 슬슬 전략적으로 져주고 있는 것을 아내는 아직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대개 귀양살이에서 독서와 바둑, 그리고 여자가 삼락(三樂)이다.
미암도 그 삼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사실 군자(君子)의 삼락은 구존(俱存·양친이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하며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럼이 없으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암은 귀양살이에서도 여자를 뚝 떼어놓고 살지 못하였다. 함경도 종성에선 방굿덕이 대표적 여자다. 그녀는 미모는 좀 빠지지만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서슴없이 하는 입안의 혀 같은 존재다.
문제는 사내들의 섹스욕구다. 여자와 달리 사내들한테는 섹스욕구가 목이타면 물을 마시고 싶은 갈증처럼 밀려오는 증상일 게다. 사실 하고나면 허무하기 까지 하지만 끝없는 갈증을 느끼는 것이 사내들의 색욕이다. 섹스에너지는 무한한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되기도 하고 어두운 그늘의 페이소스(비애감)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두 얼굴의 야누스이기도 하다.
덕봉은 지금 미암 정서의 조정자로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결혼생활 반은 귀양살이로 보내 애틋한 부부애를 쌓지 못하였다. 이제 낙향하여 못 다한 부부애를 오롯이 채우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미암은 미암대로 여자의 생리를 터득하였고 덕봉은 덕봉대로 남자에 대한 정서를 관념화 하였다. 그 중에 부부관계가 가장 문제가 크다.
노류장화(路柳墻花)로 다루었던 욕망분출을 미암은 낙향하여서는 덕봉에게도 그러려는 태도로 여자는 느끼고 있다. 어느새 불혹의 끝자락에 까지 왔다. 몸은 늙어 손자, 손녀들의 박 넝쿨에 박처럼 주렁주렁 달렸는데 여자로서 감정은 화촉동방 때나 별반 변한 것이 없다.
여자는 나이 들수록 철이 든다지만 남자는 지천명(50) 지나 이순(60)이 넘어가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했는데 미암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암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동복으로 귀양 온 신재 최산두 밑에서 동문수학 관계다. 하서와 미암의 우정은 남다르다. 1540년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 하서가 전염병에 걸려 위독한 상태였었다. 이때 미암은 문과에 급제0하여 성균관 관원이었던 그는 하서를 데려다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케 하였다.
그 후 그들은 서로 반쪽 같은 관계가 되었다. ‘술에 취해 꺾었다오. 버들가지 하나 ’ 이별의 순간은 다가오는데 한없는 이 정을 어이하리. / 말리라, 내일이면 머나먼 길을 뜬다지. / 저 달이 몇 번이나 밝아야 그대 돌아오려나. ‘ 하서가 미암의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길을 앞두고 이별주를 마시며 읊은 시다. 마치 사랑하는 여인을 기약 없이 멀리 떠나보내는 연인의 애달픈 심정의 표현이다.
이에 미암 역시 유배지에서 시로 화답하여 주었다. ‘종성은 천하의 궁벽한 곳 / 티끌 모래 날로 일어 자욱만 하네. / 사투리를 잃지 않는 십년 나그네 / 부질없이 고향 꿈만 꾸고 있다네. / 북쪽 변방 아무도 불어오는 사람 없는데 / 하서 혼자 나를 생각하며 / 삼백자나 되는 시를 새로 적어 보내 / 털끝만큼 어긋나다 크게 그르쳤음을 말해주네’ 그랬다. 그들은 뜨거운 살을 섞는 아내 못지않은 우정의 꽃을 피웠다.
미암은 친구 복도 많았으나 아내 복도 차고 넘쳤다. 덕봉은 미암의 아내인 동시에 문학을 하는 동료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밤엔 연리지(連理枝)같이 뜨겁고 뜨거운 부부가 되었고 낮엔 끌어주고 밀어주는 동료가 되어 학문의 세계를 넓혔다.
미암은 덕봉을 당나라 문종 때 효성이 지극하고 현모양처인 상곡부인(上谷夫人)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덕봉은 미암이 첩과 사이에서 얻은 딸까지 차별 없이 가족으로 품은 아내의 도량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 아내에 그 남편이다.
덕봉이 있었기에 미암이 있었으며 미암이 그녀의 남편이었기에 덕봉이 당나라 문종 때에 상곡부인으로 까지 비유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덕봉은 여자론 휘(諱)는 종개(鐘介), 자는 성중(成仲), 호는 덕봉(德峰)을 가진 흔치 않은 인물이다. 덕봉은 그녀의 전남 담양군 대곡면 집 뒷산의 산 이름이기도 하다.
2018-09-12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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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7> 송덕봉(宋德峰) <제9話>
길지 않은 서울생활을 덕봉은 지난봄에 접었다. 정들자 이별이다. 그동안 갈고 닦은 기예(技藝)를 동네(北村) 정인들에게 마음껏 베풀고 떠나 마음이 후련하다. 미암이 고향으로 내려가자 했을 때 부랴부랴 낙향했으면 아쉬운 마음이 컸을 터인데 겨울 한철을 더 지내고 떠나 섭섭한 마음을 덜게 되었다.
덕봉은 노후를 철저히 준비하였다. 생활비를 쪼개고 또 쪼개어 모았던 돈으로 논과 밭을 사들였다. 담양으로 낙향한 덕봉 부부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생활은 별반 달라진게 없다. 덕봉의 치밀한 노후계획의 소산이다.
그들 부부는 나이 들어 고향에 내려와 밤마다 젊었을 때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밤이 짧다. “세월이 흘러도 당신 키는 크지 않네요?” 덕봉이 정원에 활짝 핀 목련과 영산홍에서 시선을 떼어 미암에게로 옮기며 한 짓궂은 말이다. 미암에게 키 이야기처럼 싫은 것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미암의 키 얘기를 불쑥 꺼낸 이유가 궁금하다.
이제 시골에 내려왔으니 화려했었던 한양생활은 잊고 결혼 초로 돌아가 검소하지만 알찬 여생을 보내자는 귀띔이다. 미암은 귀양살이에서도 여자를 곁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함경도 종성의 20여년 귀양살이에서도 방굿덕이 곁에 있었으며 전라감사 때엔 옥경아를 가까이 하였다.
고향에 내려와서는 조강지처 덕봉이 있다. 밤마다 뜨거운 살을 섞을 수도 있는 여자도 밤이 아닌 벌건 대낮에도 마음이 맞닿으면 격렬한 숨결을 교환이 가능한 남자와 여자다.
기녀 출신인 옥경아는 노래까지 조예가 제법이다. ‘머리를 고쳐 끼워 옥비녀를 갈아 꽂으오리다. / 다른 이가 지나가되 임이 혼자 일컬으시니 / 그에 더 한 일이 있으리까...’ 미암이 임금의 은혜에 대한 시(詩)인데 소실 옥경아가 불렀다. 미암이 옥경아에게 지어준 시는 이렇다. ’옥의 경이여 온화하면서도 쟁그랑 소리가 난다. / 마음으로 사랑하노니 / 어느 날인들 잊으리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고 지고한 사랑이다.
사대부가 부른 순애보 같은 사랑이었을 터다. 남자에게 여자란 무엇일까?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투기(妬忌)는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속하여 내쫓기는 신세다. 호방한 덕봉에게 질투란 어떤 것일까?
미암이 벼슬길과 귀양살이 때는 소위 질투란 것을 숨기고 없는 척 했었다. 다만 없는 냥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의 본색이 어디로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늘그막에 고향에 내려와 밤낮 한울타리에 있으니 문득문득 흘러간 20여년의 보이지 않던 세월에 대해 궁금증이 폭발하였다.
특히 잠자리를 요구해 올 때 더욱 그러하다. “당신 나이가 들어도 여색을 밝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네요! 오늘은 피곤하니 참으세요...” 덕봉이 미암의 손을 찰거머리를 떼어 내 버리듯이 뿌리쳤다. 하지만 미암이 순순히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허엄! 소리 없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덕봉의 속곳을 한 번에 무릎 밑까지 내리고 행동부터 서두른다. 입에선 술 향이 아침 안개처럼 퍼져 덕봉의 코에까지 풍겼다. “오늘 또 술을 자셨어요? 그놈에 술은 하루도 거르지 않네요! 그 주막에 황진이 같은 계집이라도 있어요? 육조 출근 하듯 하시게요...” 어디 두고 보자는 경고성 음성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등을 보이다 돌아누우며 몸을 열었다. 칠거지악에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지만 덕봉은 부부관계를 합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것도 현모양처로 해서는 안 되는 처사로 생각하고 있다.
미암의 20여년의 귀양살이는 덕봉에게 많은 것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첫째 사내를 멀리 할 수 있는 석녀(石女) 수준의 냉혹한 자기절제가 가능해 졌으며 둘째론 머슴이 필요 없을 정도의 논과 밭의 일을 주도하는 경작이 몸에 뱄으며 셋째로는 주경야독의 철저한 여장부의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미암은 30여년의 지난 오늘날에도 화촉동방을 치른 나긋나긋한 소녀 적 덕봉으로 보고 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천지가 넓다고 말들 하지만 / 그윽한 규방에서 참뜻을 몰랐네. / 오늘 아침 얼큰히 술 취하고 보니 / 사해가 끝없이 넓은 것 알았네...’ 덕봉의 《취한 기분으로 부르다》다.
여자가 남자로 변할 수는 없다. 남자인 냥 언행을 할 수는 있어도 여자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바뀔 수는 없다. 덕봉이 딱 그러하다. 이제 미암이 벼슬길에서 시골로 내려와 한 이불속에서 매일 밤 뒹굴다 보니 사내의 예상치 못했던 행동들이 소실들과의 생활이 상상으로 되살아났다.
특히 부부관계가 그러하다. 은근히 이상한 체위를 요구하기도 하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방사에 요조숙녀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행동이다. 오늘도 그러한 행동을 해와 처음엔 등을 보이다 마지못해 돌아누워 응해주고 있다. 몸에 밴 듯한 미암의 행동에 갑자기 저항을 하면 자존심을 상해할까 걱정에서다. 자존심이 강한 남편의 체면에 손상을 주고 싶지 않은 아내의 깊은 속내다.
변형 체위다. “당신 방굿덕과 옥경아에게선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지만 여긴 그런 곳이 아니에요. 당신 주위에서 방굿덕과 옥경아 말고도 응로화, 숙지, 막개, 자문선 등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무슨 이유지요? 늘그막에 몸조심 하세요... 이제 겨우 사대부 체면이 갖추어 졌는데 체신 떨어뜨리지 마세요!” 그러나 미암은 욕정을 다 채우고 내려왔다.
술기운이 온 몸에 번지면 그는 원초적 사내로 돌아가는 것을 안 덕봉은 말없이 몸을 열어주고 잠재우는 것이 낙향하고부터 상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열여섯 여자와 스물네살 사내가 만나 한 몸이 되었으나 그들은 늘 그리워 하였다. 입신양명이 두 사람의 꿈이었으니 뜨거운 욕망은 잠재우고 알뜰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었다.
길지 않은 한양생활에서 그들은 또 동경의 세상이 생겼다. 꿈 많던 화촉동방 같은 뜨거운 부부생활이다. 지금 그들은 평생 꿈꿔왔었던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촌음을 아껴가며 하루하루를 여삼추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자고나면 새로운 세상처럼 펼쳐졌다.
2018-09-05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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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116> 송덕봉(宋德峰) <제8話>
죽매와 옥매가 정도전(鄭道傳·1345~1398)의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에 맞춰 노래와 춤을 저녁이면 연습에 열중이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정이들은 이웃들과 연회를 베풀려는 속내다. 죽매는 노래하고 옥매는 춤을 출 때 덕봉은 시를 낭송하려는 계획에서 벌써 보름이 지났다.
오늘도 미암은 자정이 다 되어 귀가하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사람 좋기로 육조거리에서 소문이 난 미암이 고향으로 내려간다니 그동안 사귀었던 친구들의 이별주가 줄을 섰다. 더욱이 긴긴 유배생활에서 벗어나 이제 한양생활에 재미를 붙였을 텐데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소문에 친구들은 놀라워한다. 아쉬워하는 이도 있겠으나 경쟁관계에 있는 인사는 쾌재를 부를 것이다.
그랬다. 조선시대 육조거리 중심으로 좋은 직업을 동인(東人)·서인(西人)을 비롯한 학파(學派)들이 전쟁에서 상대방을 무찔러 얻은 전리품처럼 차지하려는 사대부들의 생활터전이다. 사색당파의 치열한 당쟁도 깊이 속을 들여다보면 밥그릇 싸움으로 직결되었다.
처음엔 학문으로 연결되어 모인 학문의 전당이 과거를 통해 육조거리로 진출하는데 징검다리역할이 되어 학파가 정파(政派)로 진화하였다. 그들은 결국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파는 내쫓고 자기파를 심는 밥그릇 쟁탈전이다.
미암은 그런 꼴을 더는 보기 싫어 귀향하여 향반(시골양반)자리로 되돌아 가려한다. 고기도 놀던 데가 좋다고 미암이 한양생활에서 겉돌고 있었다. 긴 유배생활 끝에 복직되어 비단옷에 귀한 먹거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유배생활이 몸에 배었던 미암이 어쩔 수 없이 의관을 직위(종2품 참판)에 맞게 입어야 하는 허례가 마음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는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으나 고향(해남)이 가깝다는 이유로 삭풍이 휘몰아치는 함경도 종성으로 옮겨졌다. 낯설고 물 설은 곳이다. 긴 유배생활 끝에 복직되어 한양 북촌에 둥지를 틀었다. 아들, 딸, 며느리 등 대가족이 서울로 올라왔다.
덕봉의 알뜰한 내조 끝에 권력의 핵심들이 거주하는 북촌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미암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겠다는 통고다. 미암은 한번한 말은 되돌리려 하지 않는다. 첫마디에 동의가 없으면 열흘이고 한 달이고 상대가 지쳐 마지못해 양해할 때까지 기다리는 고집통이다.
이번에도 덕봉은 한 달 만에 동의를 말했다. 부부관계를 하려는 분위기에서 “언제 내려갈 거예요?”가 그것이다. 이번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겨울한철 미뤄진 것은 폭설이 핑계다. 《진신도팔경시》배경을 구경시켜 준다는 미암의 약속도 핑계거리가 되었다.
미암의 몸놀림이 여느 때와 달리 세차고 신나보였다. 얼굴엔 환희의 기쁨이 가득하다. 쳐다보는 덕봉의 마음도 전례 없이 용솟음친다. 둘은 금방 뜨겁게 한 덩어리가 되었다. 미암이 덕봉의 귀향에 동의에 대한 보답이라도 해주려는 듯이 보였다. 덕봉도 그렇게 생각하고 요철(凹凸)을 척척 맞추어 주었다.
미암 부부는 친구 같은 부부인 동시에 부부 같은 친구이기도 하다. 덕봉의 학문은 미암에 뒤지지 않는다. 어느 부분은 앞서는 경우도 있다. 덕봉은 다복한 가정의 막내딸이다. 위로 정노·정언·정수 세 오빠가 있으며 언니도 있다.
덕봉은 한양에까지 알려진 명문가는 아니었으나 담양에선 소문난 가문에서 남녀차별없이 경전과 역사서를 공부하며 성장하였다. 그녀는 언문(한글)뿐만이 아니라 한문과 사서(四書:논어·맹자·중용·대학) 등을 공부하여 여사풍이었다. 임란(1592) 이전까지는 여성들에게도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가정교육 등이 실시되어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불교국가인 고려의 사회적 분위기가 남아있었으리라...
덕봉은 북촌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보습에서 번뜩이는 예지와 시문과 역사에 성리학까지 해박한 지식에 이웃 사대부 댁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덕봉이 처음 북ㅍ촌에 들어왔을 때 소실과 그의 가솔까지 불러들여 중양절(重陽節·9월9일) 잔치를 벌였듯이 담양으로 내려가기 전에 다시 중양절 잔치를 벌이려 한다. 이웃과 이제 정이 푹 들었는데 헤어지려니 마음이 아프고 섧기까지 해서다.
못 다한 알뜰한 정을 중양절로 때우려 한다. 중양절엔 국화가 있어야 하는데 마침 정원엔 노란국화가 한창이다. 남편 미암에게도 어둡기 전에 돌아오라 당부했으며 죽매와 옥매와 함께 덕봉이 아침부터 음식 준비에 부산하다.
마침 가을바람이 불어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전형적 가을 날씨다. 죽매의 노래와 옥매의 춤이 가히 일품이다. 죽매는 노래뿐이 아니다. 거문고까지 능숙하게 연주하여 잔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경사스럽게 고당의 위에서 모시니 / 추풍에 해 비치는 때로다. / 거문고 노래에 흥취가 일어나니 / 이 모임을 백년이나 기약하네.’ 사위 윤관중의 시(詩)다. 이에 미암의 외아들 정렴이 수창(酬唱)한다. ‘백발의 부모님이 당상에 함께 계시니 / 색동옷을 입고 이때에 춤을 춘다. / 우리 집의 무한한 즐거움은 / 이밖에 다시 무엇을 바라리오.’ 이에 미암이 받는다. ‘대궐에서 은총을 받던 날 / 국화를 순 잔에 띄우는 때 / 한 집에 친한 이 오륙인이 / 함께 태평의 때를 즐긴다.’ 부창부수라 했다. 덕봉이 그냥 있을 리 없다. ‘옛날 남북으로 헤어져 있을 때 / 어찌 이때가 있을 줄 알았으리요. / 맑은 가을 좋은 명절에 모이니 / 천리에서 서로 가액이라도 한 듯 하여라.’ 이렇듯 중양절의 잔치는 시와 노래, 그리고 춤까지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는 연희가 벌어졌다.
미암이 20년의 귀양살이에 덕봉의 생활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 시어머니까지 모셨다. 시어머니가 작고하자 덕봉은 미암이 없어 소홀히 한다는 말을 들을까 더욱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 미암은 귀양살이로 본의 아니게 임종을 보지 못하는 불효가 되었다.
이제 귀향하여 미암이 시묘 살이 하듯 지근거리에서 묘소를 참배하려한다. 이승에서 못 받은 효도 저승에서 알 리 없으나 미암은 그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다. 귀향을 서두르는 것도 사실은 그러한 속내다. 그런 미암의 깊은 속내를 덕봉도 알 리 없다.
2018-08-29 09: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