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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5> 황진이(黃眞伊) <제26話>
집으로 내려온 진이는 계절이 바뀐 어느 여름날 다시 지족암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젯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샜다. “중놈 주제에 내가 제자로 들어가겠다는데 거절을 해?”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 “천천히 가자! 나는 너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구나...” 사실 진이도 숨이 턱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봄에 지족선사에 당한 모욕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더 관능적으로 춤을 추려한다. 마침 연못엔 연꽃이 절정이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진이가 풍덩 빠졌다. 고혹적 춤을 한바탕 추면 지족선사도 물에 빠진 중생을 그냥 하산하라 매몰찬 말을 못할 것을 노린 계략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했듯이 진이는 기어코 지족선사를 자신의 품으로 오도록 하는 꿈을 접지 않는다.
진이에게 포기는 없다. 그녀가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의 신분으로 바뀐 충격에 장님이 된 역경을 거치면서 사내들에 대한 분노로 기생의 길을 택했으며 그 같은 생각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복수이기도 하다.
모녀는 똑같이 장님이 되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끝내 세상을 다시 보지 못했으나 진이는 기적적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다시 볼 수 있는 광명을 찾았다.
지금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자유인으로 선언한 이후 숱한 역경 속에서도 남성위주 사회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는 것도 그 전략의 하나다. 승무는 독무(獨舞)로 고혹적인 동시에 예술성도 높다.
그 춤을 지금 진이가 춘다. 춤을 추는 주인공의 역량에 따라 춤의 예술성과 내용이 달라진다. 진이의 승무에선 그녀의 삶과 예술의 세계가 농축되어 나온다. 붉은 가사에 장삼을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에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자진머리 등의 장단 변화에 따라 일곱 마당의 춤이다.
신음하듯 움틀 거리는 초장의 춤사위에서부터 열반의 경지까지 범속을 벗어날 수 있다는 법열(法悅)이 불변의 진리와 더불어 표상된다는 말미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뿌리고 제치고 엎은 장삼의 춤사위가 혼화(渾和)로 소쇄(瀟灑:기운이 맑고 깨끗함)속에 신비로움과 정교로움의 조화의 극치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 매력이라고 하겠다.
진이가 결국 이겼다.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버티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복자인 진이의 가슴이 뻥 뚫어진 느낌을 받으며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689~740)의 《만산담에서》를 번개처럼 떠올렸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미워졌다. 30년이나 벽면하며 극락왕생을 꿈꾸었을 한 사내의 영혼을 울린데 대한 자책감과 옹졸함에 울고 싶어졌다.
‘낚시 드리우고 넓은 바위에 앉으니/ 물 맑아 한가롭기 그지없다./ 고기들은 연못가 나무 아래로 모이고/ 원숭이는 섬에 자란 등나무를 타고 논다./ 그 옛날 여인의 허리의 옥을 풀어 주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산에서 전해졌던가./ 그녀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달빛 타고 노래하며 노 저어온다.’ 그랬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다. 어떤 삶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망각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이가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하룻밤에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어 놓고 당나라 시인 맹호연 시를 떠올린 것은 의외다. 30년 벽면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거운 하룻밤의 운우지정으로 접수했으면 통쾌하여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불렀을 터인데 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맹호연은 화가이며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와도 친교가 두터운 도연명을 존경하는 전원주의 시인이다. 그런데 유독 진이가 맹호연의 시를 떠올렸음은 좀 더 지조를 갖고 버텼으면 자신이 뜨겁고 향기로운 가슴으로 품기를 포기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레고리 한 것은 아닌지 보여지는 시다.
지족암에서 진이와 화촉동방의 뜨거운 밤을 보낸 지족선사는 그 후 종적을 감추었다. 조계(曹溪)에 부끄러웠을 것이고 스스로도 맑은 정신으론 대명천지 하늘 아래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낱 기생으로 인해 30년 벽면 수행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세상 사람들을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대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제 정신이 아닌 수도승이었을 터다.
아무튼 성리학 나라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 진이의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양곡 소세양·종실의 후예 벽계수 등 내로라하는 남정네들은 그녀의 품에 들어오면 힘을 못 쓰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명월(진이 妓名)의 신비다. 세상 사람들이 겪어 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명월의 신비는 겪어본 사람도 품을 떠나면 다시 그 신비함에 아리송해 하는 것이 바로 명월의 신비함이다.
진이는 지족암에서 하산 한 후 오늘로 열흘째 몸져누웠다. “이 미음이라도 먹어야 하느니라.” 옥섬이모의 간곡함이다. 옥섬이모는 어머니 현학금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옥섬의 말엔 어머니가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겼다. “알았어요... 거기 놓고 나가 보세요...” 진이의 눈엔 지금도 지족선사가 자신의 음부에 들어와 천둥번개를 맞듯이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표시했던 얼굴 표정이 생생하다. 맹수가 사냥하여 먹이를 한입 크게 물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놀라움과 경이로운 감흥이 함께 섞인 울음의 분위기였다.
진이는 그 표정이 가여웠다. 그리고 지족선사의 “이 작은 절이 움직인다 하여 세상이 달라지겠소이까?”의 말이 새삼 귓가에 생생하다. 다시 진이는 맹호연의 《국화담 주인을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고...》를 떠올렸다. ‘국화담에 다다르니/마을 서편으로 해 이미 저물었네./주인은 높은 곳에 오르러 떠났고/ 닭과 개만 남아서 집을 지킨다.’ 진이가 지족선사를 처음 지족암으로 찾아 갔을 때 위의 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이는 옥섬이모의 애정 어린 간곡함에 그날 오후 흰죽 한 그릇을 먹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이는 언제 자리에 누워 있었느냐는 듯이 그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에 쓰려는지 거문고 연습에 밤낮이 없다. 그런데 거문고 음률이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아닌 처연하고 가슴이 시린 황량한 음률이었다.
2017-06-07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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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4> 황진이(黃眞伊) <제25話>
초하루에 시작된 고려미인의 화장은 보름이 되는 날에 절정을 이룬다. 벽계수와 헤어진 후 송도팔경을 유람하고 진이는 고려미인 화장에 열중이다. 그동안 소세양·이사종·이생 등과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몸이 다양하게 속물화 된 것을 정화하려는 속내다.
기생의 몸이 돈이 되는 사내라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음이나 진이는 여느 기생과는 다르다. 몸은 청루가 즐비한 청교방 거리에 있으나 영혼은 선계(仙界)에 있다. 진이가 기생이 된 것은 사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신분이 바뀌면서 출발되었다.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어느 날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하지만 본래 서녀였으니 사대부집 며느리는 당치않은 일이라며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압력을 못 이겨 포기하고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진이가 기생이 된 사연은 또 있다.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의 상여가 집 앞에 와 멎어 옴짝달싹 하지 않아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 속곳으로 상여를 덮어주어 상여를 떠나보냈다. 영혼이지만 처녀가 총각의 여자가 되었다.
진이는 그 후 더럽혀진 몸으로 기생이 되어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삶으로 갔다. 기구한 삶이다. 지금 고려여인으로 곱게 몸단장과 화장을 하는 것은 천마산 지족암서 30년 벽면 수행을 하는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품으려 하는 것이다.
동그랗고 아담한 얼굴, 자그마한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긴 코, 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과 쌍꺼풀 없이 가는 눈에 정적인 얼굴.... 지금 진이가 그렇게 화장을 하여 30년 벽면 수행하는 지족선사를 보통의 세상으로 데려오려는 속내다.
그 동안 진한 화장으로 하루하루를 세상 남자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으나 지족선사는 사람 자체가 다르다. 청정 인간이다. 진이는 청정 인간이 원할 여인이 되려고 벌써 열흘째 몸을 꾸미고 승무(僧舞)까지 익히고 있다. 진이의 승무는 환상적이다. 남색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갑, 흰 고깔, 붉은 가사, 양손엔 부채를 들어 마치 선녀의 학춤 같은 춤새다.
송도엔 여전히 고려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다. 도성에서부터 고을고을마다 사람들의 풍습과 언행이 아직까지 억불승유(抑佛崇儒) 정책이 착근되지 못한 상태다. 진이가 지금 고려여인이 되어 승무를 추면서 지족선사를 뜨겁고 화려하게 품으려 한다. 쉽지 않은 목표다. 이번엔 아름다운 여인의 승무가 무기다. 이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 청상과부로 변장하여 유혹하려한다. 두 계획이 모두 불교와 연이 닿는다.
천마산의 봄은 아름답다.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엔 못 미치나 천마산도 계절마다 절경이다. 오늘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천마산 지족암으로 향하였다. 지족선사를 뜨겁고 아름답게 품으려는 속내다. 진이 옆엔 옥섬이모가 따랐다. “천천히 걷자! 이 늙은이는 숨이 차서 못 걷겠다!” “길이 멀어요... 자칫 가기도 전에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해요?” 진이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지족선사는 오후 늦게는 매일 지족암 연못가에서 산책을 즐긴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 산책하는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진이가 손을 내밀어 거부한 사내는 없다. 지족선사도 그러하리라 믿고 지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산사의 오후는 짧다. 진이 일행이 지족암에 도착했을 때는 지족선사가 산책을 마치고 선방(禪房)으로 들어가려는 찰나다. 진이는 넙죽 큰절을 하고 제자로 삼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준비한 대로 옥섬이모의 거문고에 맞춰 승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냥 하고// 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4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린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승무》다.
당시 진이가 지족선사 앞에서 추었을 《승무》는 더 고혹적 춤새일 것이다. 술에 장사 없다 하듯이 미녀를 막무가내로 손 사례를 칠 사내가 있을까? 더욱이 천하일색 진이의 고혹적 유혹을 30년 벽면수행의 지족선사인들 마지막까지 석남(石男)인 냥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당나라 헌종 때 위와 같은 역사가 있다. 대 문장가 한유가 불교를 배척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곳(潮洲)의 영산 축융봉에 태전선사가 있는데 고명한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유는 대학자답지 않게 울화가 치밀어 명기(名妓)로 이름난 홍련(紅蓮)에게 10일 내에 태전선사를 파계 시키면 큰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소위 미인계(美人計)다. 하지만 미인계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홍련의 치마폭에 태전선사가 써 보낸 시는 이러하다. ‘십년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 색(色)을 관(觀)하고 공(空)을 관리하니, 색이 공일 뿐이네/ 어찌 조계(曹溪)의 한 방울을/ 홍련의 한 잎새에 떨어뜨리겠는가!’ 이 시를 본 한유는 감탄하여 태전선사에게 불법(佛法)의 요지를 되려 배웠다는 아이러니 한 역사다.
아무튼 진이는 위의 역사를 틀림없이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가지고 주인행세 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싫어한다. 아니 저주한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진이는 사내가 자신의 불두덩 위에서 씩씩대며 황홀경에 빠져 있어도 어머니 품에 안긴 젖먹이 정도의 재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해도 그녀는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속내다.
2017-05-31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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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3> 황진이(黃眞伊) <제24話>
자유인이 된 진이는 마음에 없는 사내와는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화대로만 몸을 팔 때에는 영혼이 통곡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옥섬이모가 꼭 접대해야할 한양손님이라 하여 하룻밤을 잤는데 그 후 보름을 앓았다.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송도가 고려의 수도에서 한양이 조선의 서울이 된 이후 진이의 명성은 절대에서 상대적으로 바뀌었다. 한양엔 물 좋은 미녀들이 많다. 당시 한양에서 송도 진이와 겨뤄 볼 명기(名妓)는 성산월(星山月)과 관홍장(冠紅粧) 등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악원에서 노래와 춤 등을 배워 한양의 한량들은 물론 고고한 학자 관료인 사대부들에게도 밤엔 질펀한 향연의 대상이 되었다. 한양의 물 좋은 기녀들에게 싫증이 나면 그들은 송도에까지 원정 사랑놀이에 빠졌다. 상대는 진이였다.
당시 한양은 변화와 화려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으나 세련 된 멋과 아름다움의 극치 외에 송도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소위 송도삼절(서화담·박연폭포·황진이)외에 삼천리금수강산이 그것이다. 한양의 한량들이 송도에 오면 진이가 누구나 먼저다. 하지만 제일 먼저 찍는 것은 자유지만 상대를 고르는 선택권은 진이에게 있다. 몸의 당사자인 진이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내는 소세양과 이사종이다. 그들과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계약결혼을 맺어서다.
그런데 지금 벽계수와는 이별의 순간이 시계소리처럼 찰칵찰칵 다가옴이 왠지 싫다. 여명이 밝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진이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마음이다. 견디다 못해 “여보! 당신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라고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에게 혼잣말을 하였다. 시간이 꽤 흐른 뒤다.
벽계수의 새벽물건이 벌떡 일어나있다. 사내 물건을 한 두번 본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그 물건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물건을 여자에게 넣고 욕정을 채우는 사내들이나 그 물건이 들어오면 감정이 달아오르는 여자의 심정을 진이는 번개처럼 떠올렸다.
정복감이다. 사내는 자신이 나온 자궁을 다시 정복하는 것이고 여자는 정복자를 사로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전쟁이다. 뺏고 뺏기는 남자와 여자의 영토전쟁에서 진이는 정복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소세양과 이사종, 그리고 벽계수도 진이의 사람으로 넘어왔다. 그런데 지금 그가 날이 밝으면 한양으로 떠나려 한다.
그는 한양에 가서 진이를 정복하고 왔다고 포효할 것이다. 사실은 진이가 벽계수를 포로로 만들었는데 제가 정복하고 영토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호언장담할 것이 뻔하다. 아무튼 벽계수에게 지금까지 어느 남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연정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 이틀 더 있다 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말하고 싶지는 않다. 벽계수 스스로 더 있도록 유도하려는 속내다. ‘낭군께 권합니다./ 귀 달린 금 술잔을/ 가득 따르겠사오니/ 사양하지 마시옵소서./ 꽃피면 비바람 되 심하게 분다지요./ 인생 백년이라지만/이별 없는 날이 몇 날이나 될까요.’ 당나라 우무릉(于武陵)의 시다.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육체의 허기를 채운 벽계수는 새벽 물건이 일어나자 다시 진이를 끌어당겼다. 여자는 생각하지 않고 제 욕심을 급히 채우고는 “내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이틀 더 쉬고 가야겠소!” 라고 빙그레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진이의 생각은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그러면 그렇지. 네 놈이 첫 결심에 떠날 놈이 아니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화대는 넉넉히 받았으니 더 내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각 방을 쓰는 거예요. 당초 계약은 오늘까지니까요“ 진이의 태도가 단호하다.
그러면서 고려가요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를 떠올렸다.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어기던 사람 누구였던가, 누구였던가./ 오리야 오리야/ 어린 비오리야/ 여울은 어디 두고 소에 자러 오는가./ 소 곧 얼면 여울도 좋습니다. 여울도 좋습니다.’ 작자 미상이다.
《만전춘별사》는 정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특히 기녀들 세계에선 비록 돈을 받고 몸을 내주었으나 살을 섞고 나면 야릇하게 정이 들어 헤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었다.
진이도 사랑엔 약하다. 화대를 받고 몸을 내어주어도 영혼까지 울리는 사내가 더러 있다. 벽계수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이 사내를 훌쩍 떠나보내면 두고두고 영혼이 통곡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하루 이틀 더 있는 다니 천만다행이다. 마음속으로 더 있기를 바랐던 것이 성사되어 가슴이 벌렁거리게 기쁘나 표정을 숨기었다. 별방을 써야 한다는 조건도 사실은 일부러 붙인 조건에 불과하다. 바로 옆방인데 문지방만 넘으면 되는 방이다. 분 냄새까지 건너가는 거리다.
이튿날부터 진이는 겸상으로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다정한 잉꼬부부모양 행동하였다. 거기까지였다. 잠자리는 문지방 건너 방에 차렸다. 평소 잠자리 옷차림과 달리 오늘은 남청색 치마에 미색 저고리로 트레머리를 단아하게 틀어 올리고 기초화장만 한 채 자리에 들었다. 창밖엔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진이의 아랫도리엔 속곳이 없다. 벽계수가 문지방을 넘어 올 것이 뻔하여 일부러 입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깊고 새벽닭이 홰를 쳐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다. 한양 사대부와 송도 기생의 자존심 싸움이다.
여명이 밝자 진이는 스스로 부엌에 나가 아침을 지어가지고 들어왔다. “잘 주무셨어요?” 벽계수는 말 대신 빙그레 웃었다. 낮엔 말을 타고 병부교와 대동강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말도 별로 없이 쓸쓸한 표정이다.
이튿날도 진이는 속곳을 입지 않은 채 별방에 자리를 폈다. 벽계수는 저녁을 먹을 때 태상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그리고는 일찌감치 코를 골며 잠들었다. 새벽이 되어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다.
진이가 넘어갔다.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 물건은 물푸레나무처럼 땅땅하고 튼실하게 일어나 있다. 속곳을 입지 않은 진이가 하늘이 되었다. 벽계수는 끝내 모르는 척 진이에게 몸을 맡기고 마음껏 황제가 소녀경(素女經)을 즐기듯 기쁨을 만끽하였다. 벽계수 작전에 천하의 진이가 속은 듯 속아주었다. 진이는 벽계수가 한양으로 가는 길에 예성강까지 배웅하였다.
2017-05-25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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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2> 황진이(黃眞伊) <제23話>
아침밥을 먹고 그들은 상원암(上元庵)을 향하였다.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금강산은 계절마다 산명이 바뀌면서 아름답고 수려하지만 장엄하지 못하다. 하지만 묘향산은 수려함과 장엄함을 동시에 갖추었다.
진이와 벽계수는 발길을 재촉한다. 상원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려는 계획이다. 장관인 만폭동 폭포도 구경하고 바위 위에 절묘하게 건립된 상원암에서 하룻밤의 꿈을 꾸고 정자 인호대(引虎臺)에서 장엄 수려한 묘향산의 절경을 만끽 하려는 속내다.
벽계수는 따뜻한 진이의 손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상원암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 스님들이 이따금씩 오가는 길은 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나마 낙엽이 덮여 있어 전인미로(前人未路)상태다. 넘어지고 자빠지길 수십 여번 끝에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상원암에 도착하였다.
노 주지승과 동자승 둘뿐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잠자리까지 약속받은 진이와 벽계수는 인호대를 향하였다. 인호대는 글자 그대로 호랑이가 사람을 안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향암 마을에 사는 어느 효자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100년 된 산삼을 캐려고 산을 헤매고 있을 때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업어 인호대까지 올려다 주어 산삼을 캐서 병석의 어머니에게 효도를 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한 용연 폭포 밑의 절벽 앞에서 상원암으로 가려던 길손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역시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꼬리로 낙엽을 치우고 길을 안내하여 상원암까지 안내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가을해가 짧으니 빨리갔다 오라는 말을 뒤로하고 진이와 벽계수는 끌어주고 밀어주며 인호대에 올랐다.
발 아래 펼쳐진 오색단풍의 바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여 입을 모아 ‘야호!’ 소리만 외쳤다 "서방님 저기 저 폭포는 산주 폭포와 용연 폭포이고 저기 저것은 천신 폭포입니다. 이곳 인호대외엔 세 폭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즐기는 것을 인호관폭이라 하여 묘향산팔경이라 해요... 지금이 늦가을이라 단풍밖에 볼 수 없으나 봄엔 두봉화(철쭉꽃)가 장관이에요! 해가 짧아졌어요. 이제 빨리 내려가야 되요! 서둘러도 늦을 것 같아요...“ 둘은 서두르다 상주암에 이르러 진이가 바위에 깔린 낙엽을 밟고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벽계수에게 업혀서 상주암에 도착했을 때는 보름달이 창공에 두둥실 떴다. 주지스님과 동자승이 나와 맞았다. “내 뭐라 했소이까. 늦지 않게 서두르라 했지 않소!” 업혀오는 진이를 보고 호된 책망이다. 방에 들어가니 동자승이 저녁상을 가져다주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은 진이는 거문고를 땡겼다. 그리고 조용조용히 《창부타령》(倡夫打令)을 불렀다. “응향각 들어가서 오동향로 구경하고/ 심검당과 관음전, 동림헌과 미타전 망월주를 차례로 구경하고/ 유산길 찾아가서 안심사 돌아드니/ 무수한 부도비는 도승의 유적이라/ 명월은 교교하고 청풍은 소슬이라/ 녹수청산 깊은 곳에 상원암을 찾아가서/ 대해포 구경하니 정신이 쇄락하여 이층철사 휘어잡고/ 인호대 올라가니 송풍은 거문고요 두견성은 노래로다./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는 못하리라. 창부타령 63곡 중 한곡입니다.”라며 진이는 거문고를 벽에다 세우고 일어나 살포시 절까지 하였다.
발목을 접질려 업고 온 감사의 표시다. 벽계수는 진이의 거문고에 맞춘 창부타령에 취해 주지스님의 방으로 가는 것도 잊고 잠에 빠졌다. 사내는 역시 사내다. 진이가 옆에 있는데 그냥 잘 벽계수가 아니다. 비몽사몽이라지만 생시같이 진이의 남자노릇을 하려 덤빈다.
진이도 피곤하지만 사내가 싫지가 않았다. 진이의 몸은 사내를 밥 먹듯이 맞았던 것이 아닌가! 허리띠를 풀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바지를 내리니 비릿한 사내 물건이 뱀처럼 꿈틀대며 들어와 목이 마르면 냉차를 마셨던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진이는 2~3년 기생으로 화대(花代)를 받고 송도를 넘어 한양과 두만강 건너 중국 사신들까지 품어보았다.
조선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이 조선의 중심이지만 송도는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으로 나라가 바뀌어 수도의 기능은 잃었으나 문화의 화려함은 살아있었다.
진이가 이젠 기계(妓界)일선에서 물러났으나 한양의 지체 높은 문객(文客)이나 중국의 묵객(墨客)들은 송도 명월의 달빛아래 하늘의 소리인 거문고 가락에 송도 명주인 태상주를 마셔 보기를 평생의 소원인 소위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꼽고 있었다.
진이는 사내들의 욕망의 온도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황하(黃河)를 허풍을 떨어 강 이름을 붙였듯이 통큰 척 하지만 실제 화대는 짜다. 사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정부의 접대비는 넉넉히 화대를 주며 환대를 부탁받으나 제 돈으로 잠자리를 할 땐 되놈의 본색을 드러냈다. 잠든 사이 화대를 떼먹고 줄행랑을 친 되놈도 진이는 겪었다.
손이 크기로는 조선의 중인(中人)들이다. 북경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중인(역관)들은 떼돈을 벌었다. 그들이 송도에 오면 청교방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거문고 소리와 교성이 거리를 메웠다. 북방민족의 독특한 대륙기질의 본색이다.
송도엔 개성상인이 있다. 고려인삼을 연경에 가서 비단과 보석으로 교환해와 떼돈을 번 백부자(白富子)가 대표적이다. 그는 남산동에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고 왕실도 부러워하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진이한테 첩이 되어 달라는 제의를 여러번 해왔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런 제의가 있은 후론 명월관 출입도 막았다. 자유인의 자격에 흠이 되는 어떤 제의도 진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혼의 자유를 위함이다. 진이도 한 사내에게 마음을 주면 일편단심 목숨을 걸었다.
지금 벽계수와 관계가 그러하다. 밤마다 뜨겁게 살을 섞고 나니 봄볕처럼 따뜻한 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오늘밤이 새고 내일이 되면 벽계수는 다시 한양으로 간다. 그에겐 사대부의 풍모도 있고 패기도 보였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다. 지금 벽계수는 진이의 몸뚱이에서 욕망을 만끽하고 코를 벌름 거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팽창되었던 물건은 오뉴월 엿가락같이 축 늘어진 채 삐죽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장관이다. 진이도 벌거숭이인 채다. 그녀는 살포시 일어나 학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정인을 떠나 보낼 때만 추는 춤이다. 양곡 송세양과 헤어질 때 마지막 밤에 추고 이번이 두 번째다.
2017-05-17 0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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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1> 황진이(黃眞伊) <제22話>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곱게 갈아입은 묘향산은 단아한 한복으로 차려입은 미인도(美人圖)같다. 묘향산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많아 싱그러운 향기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어 묘향산이라 했다는 산명(山名)의 유례다.
향기가 아침 안개처럼 피어나는 묘향산으로 가는 진이는 마음이 들떠 있다. 보현사에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금강산 등 팔도유람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 들려 어머니를 모셔놓고 떠났다. 어느새 5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묘향산엔 비운의 황태자 양녕대군의 얘기도 숨겨져 있다. 양녕은 태종의 장남이다. 왕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성장하여 일찌감치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때부터 말썽을 일으켰다. 섹스 스캔들이다.
태종에게 무한 신뢰를 받아 다음 보위가 보장되었으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셋째 충녕(후에 세종)에게로 왕위가 넘어가는 비극의 씨앗이 탄생하였다. 세종하면 훈민정음이 우리에게 상기된다. 양녕이 임금이 되고 충녕이 대군으로 끝이 났다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한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양녕은 왕세자 자리에서 내려와 주류 천하 중 묘향산에 까지 왔다. 양녕은 동생 세종의 윤허를 얻어 송도를 거쳐 묘향산 유람에 나섰다. 여기서 기생 정향(丁香)을 만나게 된다. 유난히 형제간 우의가 돈독한 세종이 주색(酒色)에 익숙한 형을 배려한 것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 했다던가? 양녕이 정향을 떼어놓고 떠날 때 그녀 치마폭에 쓴 칠언율시(七言律詩)다. ‘한 번의 이별로 음성 용모 듣고 보지 못하리니/ 초대(楚臺) 어느 곳에서 좋은 때를 찾을고/ 곱게 단장한 얼굴 누가 보리오/ 수심에 잠긴 붉은 낯을 거울만이 알리라./ 밤 달이 수 놓은 베게 엿보는 것도 미운데/ 새벽바람 무슨 뜻으로 비단 휘장을 걷는고// 뜰 앞에 다행히도 정향(丁香)나무 서 있는데/ 어찌 춘정(春情)으로 굳이 꺾지 않으리오// 이별하는 길엔 향기로운 구름 흩어지고/ 헤어진 정자엔 조각달이 걸렸어라/ 가련타 잠 못 이뤄 뒤척이는 밤에 뉘 다시 그대 수심 위로해 주리...’ “혹 서방님께서 지금 소첩이 노래한 이 시를 알고 계신지요?” 진이가 설마 이 시를 알고 있으랴는 음성으로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이나 뜸을 들인 벽계수가 “글쎄다! 처음 들어보는 시인데....”라고 미안하고 계면쩍어 하는 목소리다. “네 서방님 그러셨군요? 이 곳 송도 기방계에선 널리 알려진 노래예요! 양녕대군께서 정향이란 기생과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기 아쉬워 쓰신 칠언율시가 아닌지요?” 진이의 음성에 자신이 붙었다.
보현사로 가는 길이 평탄치 않다. 길마다 낙엽이 떨어져 말발에 치이고 밟혔다. 향나무와 측백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싱그러운 향기는 어젯밤에 벽계수한테 시달린 육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서방님은 소첩의 어디가 좋으셔서 이곳까지 오셨나요?” 벽계수는 진이의 물음에 아무 대답이 없다. 말위에서도 능숙하게 거문고를 타며 노래까지 하는 모습에 그만 기가 죽은 듯해 보이기까지 하다.
진이 말이 끝난 지 한참 만에 “나는 지금 같은 상황이 생길 것을 예상하지 못했소이다.”라고 말 엉덩이에 채찍을 가해 말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만 떠들고 갈 길이나 빨리 가자는 태도다. 말이 달리자 자연스럽게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벽계수 등에 매미처럼 착 붙었다.
산사의 저녁은 일찍 왔다. 특히 늦가을 끝자락의 해는 오후가 되자 금방 저물기 시작하였다. 진이가 4~5년 전에 어머니를 모셔 주지스님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다. “주지스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 예 진이 보살님! 진이 보살님도 그 동안 별일 없으셨지요?” 말은 그렇게 예사롭지 않게 인사말에 대구하면서도 옆에 있는 벽계수에게 시선이 꽂혔다.
보기 드문 헌헌장부에 옥골선풍의 사내다. “주지스님 오늘도 하룻밤 묵고 가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진이 보살님은 우리 절에 특별한 분이시니 언제 오셔도 환영이지요! 4~5년에 쓰셨던 방에 유숙하시지요...” 말은 담담하게 하면서도 진이와 벽계수를 번갈아 훑어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관계로 보는 눈치다. “아참! 진이 보살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사찰에선 잠자리에선 남녀유별이예요!” 주지스님의 남녀유별이란 말에 힘이 들어갔다. “예 주지스님 이 보살진이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저녁 예불에 참석하겠습니다.” 진이는 서둘러 주지스님의 걱정스런 시선을 잠재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내들이 자신을 옆에 두고 밤을 그냥 보내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불타는 사내의 욕정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이 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진이가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주지스님은 사미승(沙彌僧)편에 저녁을 보냈다.
산채나물과 우엉무침에 감자가 들어있는 보리밥이다. 하지만 점심도 거른 저녁상은 꿀맛이다. 저녁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계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주지스님 방으로 가기 전에 번개방사를 치르자는 눈치다.
사랑을 위해 한양에서 송도까지 온 사대부의 표상인 벽계수가 진이를 찾은 것은 수준 높은 시의 세계가 아닌 향기 나는 육체에 끌렸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진이는 사내의 뜨거운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저녁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뜨거운 살을 떼어 놓았을 때는 보름달이 산사의 밤을 대낮같이 밝히고 있었다. “빨리 주지스님 방으로 가세요!” 진이가 벽계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등을 떠밀었다. 벽계수는 욕정을 마음껏 못 채운 표정으로 진이를 다시 한 번 포옹하고 긴 혀를 목구멍까지 넣었다 빼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방문이 쾅하고 닫혔다. 나가고 싶지 않은데 마지못해 나간다는 행동이다. 문밖엔 저녁상을 들고 왔던 사미승이 합장을 하고 서 있다. 숨차게 뜨거웠던 방안 풍경을 사미승은 가슴을 조이며 상상했으리라... 어느새 밤은 깊어 접동새 울음소리가 진이의 가슴에 와 머문다
2017-05-10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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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0> 황진이(黃眞伊) <제21話>
벽계수의 첫날밤 욕망은 진이의 잦은 화장실의 드나듦으로 끝내 불발되었다. 하지만 벽계수는 불만 보다는 만족한 표정이다. 청사초롱의 불빛에 천하미색 진이의 알몸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고서야 즐길 수 없는 장관이 아닐까?
그러나 진이의 생각은 다르다. 감정이 고조되어 비몽사몽 상태에 생사를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나타나 기생의 자손은 너(진이)로 족하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화장실에 드나들면서 벽계수의 욕정을 냉각시켰던 것이다.
배란기엔 방사(房事)를 피하라는 경고다. 여자로 엄마가 되고 싶었던 원초적 욕망을 그 뒤론 접기로 하였다.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사대부집 딸이었을 때 금지옥엽의 신분으로 고관대작집 청혼을 동생 난이한테 빼앗기고 기생 딸로 태어나 부녀(父女)지간의 천륜을 끊고 기생이 된 사건을 되새겼다.
사내들의 욕망의 찌꺼기로 태어난 인생이 어찌 평범한 행복의 삶을 유지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이르자 자신의 욕망이 과유불급임을 깨닫자 소름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벽계수와 첫 방사는 결국 며칠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배란기가 지나서였다. 진이는 새 남자를 만날 때마다 꽃잠(첫날밤)처럼 준비를 하였다. 벽계수와도 그렇게 맞을 채비다. 초야권을 행사한 송모 송도유수와 같이 몸을 내줄 예정이다. 화려한 기생의 몸이 아닌 선계(仙界)에서 잠시 지상으로 놀러와 이승의 남자를 맞는 선인(仙人)의 전인미로의 선녀(仙女)의 자태다.
알몸으로 거문고를 타는 모습에 벽계수의 욕정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하여 다가갈 수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러고 계세요? 이리 오셔서 노래를 부르시던지... 사랑을 하시던지 하세요!” 천하의 벽계수가 여자에게 주눅이 들기는 처음이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을...’진이의 《無題》다.
진이는 삼남과 금강산, 그리고 지리산 등 팔도유람을 하고 온 후 꿈결 같은 현실에 어머니 현학금과 전우치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특별한 남자와 사랑을 할 때는 어머니가 나타나 김시습과 중국의 두보로 변신, 새로운 학문세계를 말해 주었다.
매월당(김시습 호)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세종이 승정원으로 불러 지신사 박이창과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과연 소문대로 ‘국민신동’ 임을 알아본 세종이 “성장하여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장차 크게 등용하리라.”란 전교를 내리며 비단 30필을 주며 가져가게 하였더니 그 끝을 서로이어 끌고 갔다고 하였다.
지금 진이의 눈앞에는 어머니 현학금이 나타났다. 박꽃같이 흰소복 차림에 커다란 거문고를 메고 서 있다. 그럴때면 진이는 빙의(憑依) 상태가 되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분위기다. “진이야, 벽계수는 특별한 분이시다. 천침(薦枕:윗사람과 잠자리)으로 모시면 너의 영혼에 위로가 될 것이다.”
그때마다 소녀경(素女經) 몇 구절을 말해주었다. “네가 평소에 사대부 중 시대부인 벽계수를 사모하고 존경했었지 않았느냐? 그러니 네가 천침할 때 사정하지 않고 사랑만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지 않겠느냐? 그런 몸놀림은 여자만이, 특히 진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방줄술이지! 남자들이 여자를 찾는 것은 방사를 하고 난 후에 정신이 말끔해져 새로운 의욕이 생겨야 되는데 그런 상황은 교접할 때 여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단다. 특히 교접 중 절정에 이를 때 왼손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으로 사내 음낭과 항문사이를 세게 눌러주면 정액이 나오려다 옥경에 머무르며 그 힘이 정력이 된다. 그리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정력은 더 강해진단다. 벽계수 선비와 교접할 때 꼭 그렇게 해 보렴...” 너무 생생한 어머니 목소리에 진이는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태도로 경청하였다.
벽계수는 거문고의 선율과 선녀의 알몸 같은 진이의 모습에 정신마저 몽롱한 상태에서 방사도 꿈속의 천도(天桃) 복숭아를 먹는 듯한 기분이다. 진이가 어머니 현학금이 시키는 대로 벽계수가 숨소리가 높아지자 왼손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사내 음낭과 항문사이를 간질이듯이 눌러주었다.
사내는 시간이 가는 것도 잊은 듯 사랑을 마음껏 즐기다 제풀에 지쳐 진이 배위에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벽계수는 동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와 나신에 머무를 때 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알몸상태다. 진이의 음문에서 밤새 육두질을 마음껏 즐긴 거무칙칙한 옥경은 고개를 툭 떨어드렸다.
진이는 먼저 일어나 부엌으로 가 손수 잔죽을 쑤었다. 진이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잔죽을 들고 벽계수에게로 다가갔다. “엊저녁엔 즐거우셨어요?” 벽계수는 아직도 알몸인체 빙그레 웃음만 보였다. 황홀했다는 눈빛이다. 지금 벽계수의 눈엔 전설로만 듣던 진이가 서왕모(西王母)로 보였다.
복사꽃 빛깔의 의상에 머리엔 금빛으로 장식 된 면류관을 쓰고 있다. 신선세계의 여왕 모습이다. 엊저녁엔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거문고의 음률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더니 지금은 서왕모의 모습으로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진이가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경외의 존재로 다가옴을 느꼈다.
벽계수는 잔죽을 받아 물먹듯 마셨다. 저녁도 변변히 먹지 않은 채 밤새 교접으로 힘이 고갈 상태다. 벽계수는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묘향산 단풍구경을 가면 어떠하오?” 라고 등뒤로 말을 던졌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현의 송도팔경의 《북산연우》(北山煙雨)를 낭송하였다.
진이는 첫 음절에 알아듣고 거문고 음률을 맞추었다. ‘만 골짜기에 연기 빛은 움직이고/ 천 숲속에는 비 기운이 서리네./ 오관산 구룡동의 동쪽에는/ 옛 병풍이 들러있는 듯하네./ 바위 뿌리 나무는 짙은 청색이요/ 시냇가의 꽃은 홍색으로 난만하네./ 끊어진 무지개 있을락 말락 할 적에/ 새 한 마리 날아 가물가물 사라지네.’ 낭송이 끝났는데도 진이의 거문고 음률은 방안에서 울림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진이의 거문고 음률은 하늘의 소리라 하더니만 그 말이 맞소이다! 내가 오길 정말 참 잘했소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진이의 명성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평생 한이 될 뻔 했소이다.” 벽계수는 거문고를 켜던 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놓을 줄을 모른다. 이때다. “진이 아씨! 아침이 준비되었어요!” 동기(童妓)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들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거실로 나왔다.
2017-04-26 0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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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9> 황진이(黃眞伊) <제20話>
봄의 송도가 아름답고 수줍은 소녀 모습이라면 만추의 송도는 칠보단장한 설중매 같다. 꽃과 벌 나비가 아울리듯 명월관은 진이가 없어도 옥섬이모의 장사수완이 뛰어나 한량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명월관은 송도 장안에서도 빼어난 경치를 뽐내는 자남산을 낀 자남동에 자리 잡았다. 자남산(子南山)은 남산·용수산(龍首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서편에 영웅호걸을 키운다는 젖을 머금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산명(山名)이다.
송도엔 자남산의 정기를 받아 유명인이 많다. 왕건·서경덕·정몽주·최충헌·함유일·이성계·정도전 등도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자라며 생활을 했던 인물들이다. 여자지만 황진이도 빼어 놓을 수 없는 여중호걸(女中豪傑)이다. 진이는 뼛속까지 송도여인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녀는 이생을 떠나보내고는 며칠 동안 후원을 맴돌며 마음을 정리하더니 말을 타고 아침에 나갔다 해질 무렵에 들어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진이는 전설적 인물 전우치(田禹治)를 떠올렸다. 지금 그가 곁에 있으면 북간도 등에 가서 활을 쏘며 말 달리기를 했으리라고 황당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우치는 서경덕과 도술경쟁을 하다 패하자 자취를 감추고 송도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엔 한양에 가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이때 한양에는 절조(節操)높은 사대부로 종실의 벽계수(碧溪水·이종숙 세종 17번째 아들 영해군 손자)가 있었다. 그런데 벽계수에게 황진이 애기가 들려왔다. 벽계수는 허봉과 절친한 관계다. 또한 허봉과 이달과는 막역한 관계로 황진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알아 허봉이 이달을 벽계수에게 소개하여 주었다.
이달은 삼당(三唐)시인으로 미모·노래·기예 뿐 만이 아니라 시(詩)에도 능한 진이의 마음을 얻을 계책을 귀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벽계수는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묘책을 이달에게 사사 받았다.
한편 송도에 있는 진이는 벽계수의 절조 있는 사대부란 소문을 들었다. 그는 왕실의 후예로서 진이의 유혹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혼을 내 쫓아 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오기가 발동한 진이가 벽계수를 송도로 유인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와 여자의 소위 성(姓) 대결이다. 진이는 지인을 한양으로 보내 벽계수에게 송도의 아름다움을 속삭여 벽계수가 오도록 교사시켰다. 벽계수는 말로만 듣던 색향(色香)에 경치까지 빼어나다는 속삭임에 넘어가 송도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마침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다. 진이는 벽계수가 경치가 빼어난 천수원에 와 있음을 알고 그곳 근처에 가서 자신의 시 《청산리 벽계수》를 거문고 음률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여간들 어떠리’ 벽계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지금까지 한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천상의 목소리에 시 또한 자신을 비웃는 듯 한 내용에 놀라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진이가 벽계수에게 다가가 왜 나를 쫓아 버리지 못했느냐고 묻자 멋쩍은 듯 멍하니 명월(明月)의 밤하늘을 쳐다만 보았다.
진이는 명월관으로 벽계수를 안내하였다. 벽계수는 한양에서 벌레처럼 사대부의 체면에 먹칠을 할 그녀를 쫓아버릴 수 있다고 호언했던 말이 허언이 됐음을 깨달았다. 사랑채에 마주 앉은 벽계수와 진이 사이엔 눈치 빠른 옥섬이모에 의해 술상이 놓여졌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송도는 한양에 비해 생기가 없어요. 이 술(태상주 太常酒)이 독합니다.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조금씩 마시세요!” 진이는 말과는 다르게 벽계수가 단숨에 잔을 비우자 잔 가득히 태상주를 따랐다.
말로만 듣던 진이를 앞에 앉히고 술을 마시는 벽계수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다. 그는 술상 밑으로 손을 내려 여의봉처럼 일어난 옥경(玉莖)을 힘껏 쥐어 보았다. 현실이 분명하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그들은 술병을 비웠다. 벽계수는 진이의 술 상대가 못되었다.
진이를 당대엔 대적할 술꾼이 없다. “술 그만 드시고 주무시죠!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진이가 손수 술상을 치웠다. 벽계수는 진이가 따르는 술잔을 거침없이 비워 인사불성이 되었다. 진이는 다시 거문고 음률에 맞춰 서경덕의 《봄날》인 ‘성곽 밖이라 속된 일 없고/ 산빛 짙은 창 안에 자니 늦게 일어나네/ 봄 찾아 골짜기 시냇물가 거닐면서/ 예쁜 꽃가지를 눈에 띄는 대로 꺾어 보네’를 타면서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가득하다.
잠결에도 거문고 소리를 들었는지 “이제 잡시다.”라고 말하면서 벽계수가 두 팔을 벌려 진이를 찾았다. 진이는 술상을 치우고 알몸이 되었다. 어차피 자기를 보러 온 벽계수는 자신을 품을 것이니 스스로 사내를 품으려는 속내다.
벽계수 가슴은 뜨거웠다. 소세양과 이사종의 가슴과는 또 다르다. 뜨겁고 따스한 가슴을 보자 딴 마음이 생겼다.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다. 지금 진이는 배란기다. 종실(宗室) 후예인 벽계수와 관계에서 2세가 탄생되면 얼마나 훌륭한 아이가 나올까 생각에 이르자 한시라도 빨리 사내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비몽사몽 상태가 되면서 어머니가 나타났다. 생생한 생시 모습으로 “그것은 아니 될 생각이다! 기생 후손은 너로 족하다. 진이 너는 기적에서 나와 자유로운 영혼의 여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너를 기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우니라... 법적 문제보다 도덕적 굴레가 더 무서우니라.” 라고 말을 하고 어머니는 사라졌다. 벽계수의 뜨거운 사타구니에서 불두덩을 지나 가슴으로 올라오면서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진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만이요!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신육복의 미인도에서나 볼 아름다운 나부의 뒤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벽계수는 불타는 욕정을 자제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벌거숭이 진이는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2017-04-19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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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8> 황진이(黃眞伊) <제19話>
봄의 금강산에서 한 계절이 훌쩍 지나 가을이 되었다. 유점사에서 시작된 금강산 유람은 시계사와 표훈사를 거치는 동안 장안사(長安寺)에서 풍악의 계절 가을을 맞았다. 졸기한 진이의 역마살이 절정에 이르렀다. 숱한 사내들의 뜨거운 가슴을 드나들었던 석녀(石女)의 태도에서 팔도유람을 통해 본래 여심(女心)을 찾았다.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지나가는 바람에 낙화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어느 날이다. 장안사에서 점심을 먹고 오수를 즐기고 있을 때다. 이생이 저잣거리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두 주먹으로 훔쳤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생겼느냐?" 진이는 이생의 처음 보는 행동에 궁금증이 폭발하였다.
이생은 입을 떼지 않고 돌아앉아 통곡을 끊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니까? 내 말이 우스워?“ 앙칼진 진이의 폭언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데요!” “아버지와 결별했다면서 울긴 왜 울어?” 진이는 문을 탕 닫고 밖으로 나왔다. 실컷 울라는 배려다.
이생이 진이 곁을 떠나가려 한다. 사내는 자기 성(姓)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진이는 이생을 보고 새삼 깨달았다. 본인도 진이란 본명과 기명을 동시에 쓰고 있으나 아버지 황씨(黃氏)성의 굴레를 성(姓)을 바꾸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지금 당장 한양으로 떠나가려무나. 사내대장부가 일구이언이냐? 나도 사대부집 천재 신동에서 서녀(庶女)신분으로 떨어져 장님기생의 딸이 되자 청천벽력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날로 황진사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니 내 몸엔 황진사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런지 문득 떠올랐느니라. 그렇거늘 넌들 별수가 있겠느냐? 내 생각 말고 어서 떠나가려무나...” 진이는 그렇게 속 시원히 말해놓고 걱정이 태산이다.
사실 혼자 무전걸식이란 어렵다. 하늘아래 의지할 때 없는 여자인줄 알면 향기와 꿀이 있는 벌 나비가 날아들 듯 비렁뱅이 사내들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비록 문전걸식하는 신세지만 사내들이라 생리현상을 어찌 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당장 떠나가라고 소리쳤으나 막상 떠나가면 어쩌나 가슴 졸이고 있다. “아니에요. 아씨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소인이 아씨를 송도 명월관까지 모셔다 드리고 가렵니다. 지금 당장 간들 임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분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어 이 이생은 그 분의 자손이 분명하니 늦게라도 찾아가 절을 하고 상청에 술 석잔을 올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에서입니다. 소인 한양에 갔다 다시 와서 진이아씨 하인노릇을 계속하렵니다.” 말을 마친 이생이 진이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진이 속내도 같다. 훌쩍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되돌아온다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삼남(충청·전라·경상)과 지리산을 연리지 모양 붙어 다니는 동안 속 깊은 정이 들었던 것이다. 밤에는 부부 아닌 부부로서 남녀관계를 수도 없이 해오지 않았던가! 지금 당장 떠나가면 진이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지 않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날 밤은 더욱 뜨거워졌다. 장안사의 가을밤은 낭만적 분위기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창문으로 신비스런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산사의 밤은 물속처럼 조용하여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발정 난 고양이 울음이다. 영락없는 아이 울음소리 같다. 오늘따라 발정 난 고양이가 대웅전 뒷방 근처에 와서 목청을 높였다. 진이는 이생이 한양으로 가겠다는 말이 귀에 거슬려 그가 몸을 달라면 서슴없이 내어주었다. 여자로서 먼저 얘기 할 수는 없으나 눈치를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순한 양이 되었다.
막상 몇 년을 부부같이 붙어 다니다 보니 계약결혼을 했었던 소세양과 이사종에게선 찾아보지 못했었던 어떤 사내다운 믿음과 멋까지 느꼈던 것이다. 지금은 단 하루도 곁에 이생이 없으면 못살 것 같다. “그래 너는 한양에 갔다 이 진이 곁으로 다시 오겠다는 것이냐?” 이생은 진이 배 위에서 감정이 고조된 상태다.
여자의 자궁내로 들어온 사내는 이성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진이는 소세양과 이사종을 겪으면서 터득하였다. “흐흐흥... 물론이죠!”이생의 방사(房事)격동은 더욱 거칠어졌다. 진이도 서서히 달아올랐다. 날이 새면 헤어질 남녀가 깊어가는 밤이 아쉬운 듯 점점 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떨어졌다 다시 결합되길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공교롭게도 발정한 고양이가 상대를 부르는 울음에 진이와 이생의 고조된 교성이 묻혀버렸다. 진이는 문득 자작시 《무제》(無題)를 떠올렸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 모르던가/ 있으랴 하드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그랬다.
소세양과 이사종도 떠나가지 못하게 붙들었다면 아마 그들도 진이 곁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이는 잡고 싶었으나 떠나보냈다. 지금 이생한테도 똑같은 마음이다. 한양에 갔다가 금방 돌아오란 말이 혀끝까지 나왔으나 다시 삼켜버렸다.
전례 없이 뜨겁고 격렬한 방사였다. 진이는 거액을 받고 초야권을 주었을 때 봉선화꽃 빛깔의 선혈까지 비쳤다. 처녀성 보증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그곳이 아리고 쓰리고 아프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 해는 어김없이 떴다. 산사의 아침은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인기척 보다 빠르다.
장안사에도 진이는 어머니를 모셨다. 유점사·표훈사·신계사, 그리고 장안사까지 진이는 정성껏 시주를 올리고 일만 이천 봉에 모두 기도를 부탁하였다. 극락왕생 기도를 부탁할 때엔 꼭 진학금과 황진이란 이름을 밝혔다.
진이는 장안사를 떠날 때 비교적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그리고 이생이 고마웠다. 이생이 동행하여 주지 않았으면 팔도유람은 불가능했으며 금강산의 4대 명찰에 어머니 극락왕생의 일만 이천 봉에 기도도 엄두도 못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이는 명월관에 도착하자 이생을 떠나보낼 준비에 들어갔다. 옷도 새로 해 입히고 일주일을 밤마다 잠자리를 해 주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신뢰와 속 깊은 정까지 들었다. 사실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으나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여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 성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생은 일주일 내내 동창이 밝을 때까지 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진이가 아쉬운지 예성강을 건널 때는 강 건너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흔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2017-04-12 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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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7> 황진이(黃眞伊) <제18話>
봄의 금강산은 그림 같다. 아침을 먹지 않았어도 진이는 신이 났다. 진이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사찰마다 어머니 극락왕생 기도를 올릴 생각이다. 금강산의 4대 사찰(장안사·유점사·신계사·표훈사) 중에 이번엔 표훈사(表訓寺)로 가는 발길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머무르고 있는 보살들의 우두머리 법기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사찰이다.
진이는 이 사찰에 어머니를 모셔드리고 싶다. 금강산의 4대 사찰에 모두 어머니를 모셔 극락왕생이 되도록 본인이 생존해 있는 동안 사월초파일에 예불을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표훈사엔 어머니가 평소에 스시던 오동나무 거울을 징표로 모셔 4새 사찰 중에 모사(母寺)로 삼으려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예불음식은 신계사에서 사서 올리려 한다. 신계사 계곡에서 연어가 잘 잡혔는데 불교에선 살생을 금하여 보운(普雲)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연어가 계곡에 못 올라오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진이는 신계사의 음식이 정갈하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사월초파일이면 음식을 사서 표훈사에서 기도를 올렸다.
지금 진이는 신계사를 향해가고 있다. 이때다. 옆에서 거문고를 메고 묵묵히 따르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아씨, 신계사 연어 얘기는 유명한 전설이에요! 소인이 아버지와 헤어지고 팔도를 헤맬 때 이곳도 다녀갔지요... 신계사 연어가 맛도 천하제일이고 크기도 천하으뜸이라 사월만 되면 미식가들이 팔도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요! 그리고 신계사 코앞에서 한량들이 술판을 벌려 생선냄새와 기생들의 분 냄새가 골짜기를 메웠어요...” 이생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일갈하였다.
이생은 소문난 재담꾼이다. 그런데 진이 곁으로 오자 말수가 적어졌을 분만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경우 외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이생이 지금 입을 열었다. “아씨 신계사 개천에 연어가 많은 건 사실이나 지금은 제철이 아니에요! 가을이 돼야 살이 통통하게 찐 연어가 팔딱팔딱 뛰어 올라오는데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되었어요...” 아쉬운 듯 말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럼 이젠 신계사 계곡에서 연어를 볼 수 없다는 거냐?” 진이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단풍철 가을이 되면 옛날 같지는 않으나 자연현상인 연어 회귀가 없기야 하겠어요? 하지만 보운스님의 신통력에 밀려 요즘엔 예전만 못하다고 해요...” 진이는 속으로 걱정이 태산이다. 생전에 생선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연어예불(禮佛)이 수포로 돌아갈까 염려다.
그때 이생이 귀띔을 해주었다. “아씨 그러나 방법은 있어요. 조선팔도 한량들이 가을이 되면 기생들을 끼고 구름처럼 밀려오는데 개성상인들이 그냥 보고만 있겠어요? 딴 지방에서 잡은 연어를 이곳으로 가져와 장사를 하지요... 신계사 길목 주막에 가면 언제나 연어가 있어요!” 이생의 말을 들고서야 진이는 얼굴 가득했던 수심의 구름을 거두었다.
점심때가 되자 신계사 길목 주막엔 사람들이 제법 북적이었다. 그들은 주막에서 연어를 사고 신계사 절밥을 사서 표훈사로 향했다.
봄꽃이 절정이다. 현학금은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진이는 문득 퇴계 이황의 《매화》를 떠올렸다. ‘뜰 앞에 매화 나뭇가지 가득 눈꽃피니/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기러기 슬피울제 생각마다 산란하네.’를 낭송하고 진이는 대불 앞에 꼬꾸라져 통곡하였다. 모녀기생의 기구한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난 그들은 졸음에 빠졌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한방으로 들어갔다. 주지스님은 진이를 남자로 보고 있다. 헌칠한 이생과 여자 키론 작지 않은 진이를 보통 사내로 보았던 것이다. 별로 씻지도 못한 두 남녀는 서로의 체향(體香)에 만족해하고 있다. 진이의 월경 주기다. 그런데 이생이 치근덕거린다. 거절하면 삐져 말을 잘 듣지 않을까 진이는 되도록 원할 때 몸을 열어주었다. 진이 자신도 싫지 않아서다.
이생은 번듯한 사대부집 아들이다. 그런 사내를 종 부리듯 부리긴 쉽지 않다. 그런데 진이는 이생을 종 부리듯 부리고 이웃들에겐 하인이라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졸기(卒妓·기적에서 나온 기생)의 몸을 열어주었다고 허물이 못될 것이다. 진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생이 원해오면 못 이기는 척 조금씩 조금씩 몸을 열어주었다.
이생과의 팔도유람이 어언 3년째다. 삼년 사이에 셀 수도 없이 몸을 주었으나 허리아래만 열었지 위로는 꼭꼭 닫았다. 이생도 억지로 보채지 않고 스스로 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진이가 온몸을 열려한다. 진이는 이생과 방사를 할 때 임신을 가장 경계하였다.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 때도 임신을 가장 경계하며 살을 섞었다. 졸기 몸에 임신을 하면 놀림감이 되기 때문이다. 모전여전(母傳女傳) 소리 듣기가 죽기보다 싫다. 그것도 현모양처의 모전여전이 아닌 기생의 모전여전이 아닌가!
그래서 진이는 어엿한 여자 사대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비록 여자로 태어났으나 이 나라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학문의 세계를 가려는 게다. 사장(詞章)이면 사장, 경륜(經綸)이면 경륜에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겉이 여자다. 그것도 색향(色香)이란 송도의 명월(진이 名技)이 아닌가! 그래서 진이는 조선팔도를 휘돌아 경륜을 배웠다. 사장과 학문의 세계는 사대부들이 봐도 쉽게 겨루려 들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이의 속내를 알아주는 사대부는 아무도 없다. 계약결혼을 하고 밤낮으로 욕심을 채운 소세양과 이사종만이 이해하여 주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사내들은 똑같다. 여자를 허리 밑으로 눌러 정복대상으로 생각하는 동물적 속성이 사내들에겐 잠재해 있다. 진이는 그런 속성을 소세양에게서 똑똑히 느꼈다. “아씨 장안사로 떠나시죠! 장안사 가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려요. 어둡기 전에 들어가야지요...” 말이 떨어지자 진이가 발딱 일어섰다. “갑시다!” 이생은 이미 거문고를 메고 있었다. 진이는 짐이 없으니 일어서면 떠날 채비가 되었다.
둘은 손을 잡고 다정한 부부인 냥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진이와 이생의 모습이 소리꾼과 고수(鼓手)의 모습 같다. 산사의 낮은 짧다. 어느새 산새들이 추녀 밑으로 날아드는 저녁이다. 진이는 서슴없이 주지스님을 찾아 유숙을 청하였다.
몇 년 사이에 노련한 비렁뱅이가 되었다. 저녁을 한술 얻어먹고 거문고를 벽에 세우고 목침을 베자 방이 떠날 갈 듯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이생은 진이가 잠들자 버릇처럼 진이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2017-04-05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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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6> 황진이(黃眞伊) <제17話>
지리산에서 금강산으로 오는 사이에 겨울이 훌쩍 지났다. 이사종과 삼년이나 한양에 살았으나 자유의 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엔 가보지 못해 이번엔 관심 있는 곳을 둘러보려 하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장악원(掌樂院:현 국립국악원)이다. 소세양과 계약결혼을 했을 때 자기 소실로 들어와 장악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하여 이론은 더 배워 후세에 남기면 어떠냐고 제의했을 때가 떠올라서다.
이제 진이는 기생이 아니다. 떳떳한 자유인이다. 하지만 한량들은 진이가 여전히 기생으로 알고 돈으로 사려한다. 진이는 그것이 싫고 남자의 여자가 아닌 여자의 남자들은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들을 뛰어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조선은 사대부(士大夫)의 나라다.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조선에선 엄격한 신분제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이 뚜렷하다. 사(士) 다음에 농(農)이 있음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사대부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면 대부분 고향과 시골로 내려간다. 다음 과거에 나올 생각에서다. 장사 등 직업을 가지면 아예 과거 볼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내로 태어났으면 등과(登科)하여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금의환향하여 사대부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을 게다.
그런 사대부의 나라에서 진이는 여자의 남자를 찾았다. 소세양·이사종·지족선사·이생 등을 품었으나 화담 서경덕은 끝가지 노력했으나 스승으로 삼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양의 풍류객들은 새로운 것을 찾았다. 한양기생들에게선 더 이상 새로운 사랑과 풍류를 찾을 수 없어 색향 송도의 명월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진이는 화대를 받고 몸을 내주는 것이 싫었다. 자유를 찾아 아버지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나 사내들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
불을 본 부나비 같이 달려드는 사내들을 피하여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자유의 몸으로 돌려 놓으려 했던 것이다. 기생이 아름답고 학문이 아무리 높아도 기생은 기생이다. 시기(詩妓)·악기(樂妓)·의기(義妓)·무기(舞妓) 등이 그 이름이다. 진이는 그것이 싫었다. 기명(妓名)인 명월(明月)이 있으나 그녀는 진이(眞伊)를 고집하였다.
명월이라 부르는 손님은 받지 않았다. 진이를 상징하는 명월관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다. 이제 명월관은 있어도 명월은 없고 진이만 남았다. 묘향산의 보현사를 시작으로 두류산의 골짜기 골짜기를 거쳐 한양을 들러 고향 송도에 왔다. 이제 여자의 남자를 데리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려 한다. 1만2천봉 골짜기 사찰을 찾아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 것이다.
진이는 첫 걸음으로 유점사(楡岾寺)를 찾았다. 주지스님을 찾아 정성껏 시주를 하고 어머니 현학금에 대한 기도부터 올렸다. 두류산의 천왕봉까지 올라갔다 온 진이는 전신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금강산은 두류산에 비해 정감이 가는 동네 산이다.
대웅전 뒤에 자그마한 방을 배려 받아 그들은 짐을 풀었다. 짐이래야 거문고와 타고 온 말이 전부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곯아 떨어졌다. 오뉴월 엿가락처럼 녹초 된 상태에도 이생의 손은 진이의 사타구니를 찾았다.
주지스님은 진이도 사내고 보고 한방에 넣었다. 송도에서 진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몰골이 말이 아니라 주지스님은 사내로 착각했을 것이다. 이생의 손이 사타구니로 오면서 진이는 어느새 그곳에 뜬금없이 달콤한 꿀이 나오면서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비몽사몽 상태가 되었다.
이생의 손이 그곳에서 재미를 보는 사이에 진이는 어릴 때 송도로 돌아갔다. 버드나무 부드러운 바람을 훑고 보슬비 꽃다운 들에 날리는 동교(東郊)와 비단처럼 밭이랑 펼쳐있고 맛 좋은 막걸리에 취한 농부들의 흥겨운 노랫소리의 서교(西郊)에서 깔깔대며 어머니와 뛰어놀았던 시절로 빠져들었다.
진이는 팔도유람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사대부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엔 내색을 할 수 없었으나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린 상열지사(相悅之詞)의 애틋했었던 순간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들 절간에 송화 꽃은 떨어지고/비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떠나려 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水) 두 사람을 아꼈으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총교송객》(靑郊送客)이다.
그랬다. 남녀가 만났다 헤어짐에 어찌 석남(石男)·(石女)가 될 수 있을까? 진이가 제아무리 여중호걸(女中豪傑)이라 하여도 가녀린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어느새 진이도 이십 고개를 넘어 삼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호의호식하며 허리 밑으로 사대부와 한량들을 줄을 세웠던 나날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사랑을 하면 정이 들고 뜨거운 살을 섞으면 욕심이 생겨 헤어지기 싫은 것이 남녀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진이를 거쳐 간 사내들은 수도 셀 수 없을 만치 많으나 그중에서도 소세양과 이사종이 특히 이따금씩 몸서리쳐지도록 간절하다.
한양이 남성적 도시라면 송도는 여성적 도시다. 진이는 송도에서 소세양과 삼십여 일을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사종과는 육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송도와 한양을 오가며 사랑의 싹을 키워 꽃피웠다.
지금 삼남(三南·충정·전라·경상) 지방을 휘돌아 다시 송도에 오니 흘러간 애틋한 세월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다. 밤새 이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나 몸은 오히려 가뿐해졌다. 처음엔 못이기는 척하다 차츰 몸이 달아오르자 여러 사내를 통하여 터득한 사랑의 기술이 저절로 나왔다.
이생의 물건이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따라 움직여 호흡을 맞춰 주었다. 이생은 의아해 하면서도 모르는척하며 처음으로 진이에게서 흡족한 욕정을 채웠다. 진이는 동창이 밝자 아침도 거른 채 산행에 나섰다. 고향에 다시 돌아오니 힘이 다시 솟아났다.
2017-03-22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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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5> 황진이(黃眞伊) <제16話>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오를 때 진이와 이생은 다정한 부부모양 두 손을 꼭 잡고 천왕봉(天王峯)에 올랐다. 곱게 물든 단풍에 천지사방이 불속처럼 뜨겁게 아름답다. 진이는 천왕봉에 오르자 태양을 향해 삼배하며 역시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어머니가 진이를 황진사에게 맡기고 송도를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풍문을 들었을 뿐 그 후 종적을 몰라 늘 염두에 두고 극락왕생을 기도하였다.
엄수(嚴守) 거문고 스승한테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타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어언 십 수 년이 지났다. 예성강에 장님 시신이 떠올랐다는 소식에 비만 오면 거문고를 타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풍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어머니 현학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확신이 선지 오래다.
아침 해가 불끈 솟은 태양을 보고 어머니를 위해 극락왕생을 빌은 진이의 전신에 맥이 풀렸다. 상무주암에서 방사까지 즐기며 여유 있게 휴식을 취하고 올라왔으나 체력이 바닥이 났다. 밤은 깊었으나 만공산에 명월이 가득하다. 춥고 배도 고프다.
상무주암에서 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허기를 메웠으나 몸이 떨리고 눈이 들어갔다. “내려갑시다. 더 있을 수가 없네...” 진이는 이생에게 업히다시피 하여 오후 늦게 상무주암에 도착하였다. 기진맥진 상태다.
진이는 몸이 아무리 무거워도 거문고는 갖고 다닌다. 정신이 혼미하고 육신이 녹초가 되었어도 거문고를 타면 영혼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내일 금강산을 향해 떠날 생각인데 지금 몸 상태론 불가능한 상태다. 이생이 진이를 부축하여 말에 몸을 맡긴다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녁을 먹고나니 몸은 더욱 파김치가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진이는 거문고에 세상 시름을 떠 넘겼다. 주지스님에게 맡기었던 거문고를 찾아 타기 시작하였다. 중국 죽림칠현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다. ‘깊은 밤 잠 못 이루어/ 일어나 앉아 거문고를 타려니/ 엷은 휘장으로 밝은 달빛 비치고/ 맑은 바람 옷깃에 스며드는데/ 외로운 큰 기러기 들판에서 애처롭게 울고/ 둥지를 찾아드는 새 북쪽에서 우짖는다./ 배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근심스런 심사에 홀로 마음만 상할 뿐이네‘ 그랬다. 이생이 옆에서 손발이 되어 보살피나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사종과 6년간 계약결혼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조선팔도 유람 길에 여자 혼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다. 서로 필요한 관계인 남자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생은 어느새 표정만 봐도 지금 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완적의《영회시》가 진이의 거문고 음률을 타고 상무주암의 밤공기를 휘감았다. “손님의 거문고 솜씨가 천하의 일품이네요!” 족히 넘어 보이는 주지스님이 혀를 차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아씨가 누구인지 아시고 하는 말씀이세요?” 옆에 있던 이생이 노복(奴僕·사내종)의 모습으로 어깨를 으슥해 보이며 주지스님의 말에 끼어들었다. “이 아씨가 누구신가요?” “예 우리 아씨는 그 유명한 명월(明月) 아씨예요. 그런데 지금은 해어화(解語花·말하는 꽃·기생)가 아니에요...” 주지스님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쩐지 거문고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거문고를 타면 중국 장강(長江)에서 흑두루미가 날아온다는 현학금의 따님이신가요?”라고 말하며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어머님에 비하면 이 진이는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조용히 수행하시는 주지스님께 속세의 바람을 불어 넣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동창이 밝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아닙니다. 소승도 출가하기 전엔 송도의 한량이었지요! 그때 현학금의 거문고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진이는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주지스님이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 얘기를 하여 지금 당장 떠나고 싶으나 산사(山寺)의 밤이다.
진이는 ‘잘 쉬고 갑니다. 송도에 오시면 명월관을 한번 찾아오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여명이 밝자 주지스님에게 인사는 않고 떠났다. ‘송도에서 놀았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하루 이틀 더 쉬었다 떠나려 했었으나 서둘러 금강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말 등에 오른 진이는 이인로의 《매화》(梅花)를 떠올렸다. ‘고야산(姑射山·신선이 사는 곳) 신선의 얼음 같은 살결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그린 입술에 새벽이슬 구슬을 마시네./ 속된 꽃술들이 봄에 붉은 빛으로 물듦을 못마땅하게 여겨/ 요대(瑤臺·신선이 사는 달)를 향해 학을 타고 가려하네.’ 그랬다. 진이의 마음이 평정을 잃을 때는 늘 시를 떠올려 거문고 선율에 의지했었으나 말 등 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진이의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였다. 진이의 노래는 절창 이사종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금강산을 향하는 말 위가 아니라면 거문고를 타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꽉 막힌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이생은 말을 천천히 몰았다. “형님, 제 허리를 꼭 잡으세요! 길이 험해 말 등이 요동이 심합니다...” 진이는 느슨하게 잡았던 이생의 허리에 힘을 넣었다.
늦가을의 새벽바람은 제법 쌀쌀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속까지 텅 비어 오한이 솔솔 몰려오고 있다. “형님 추우시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막이 있습니다. 올라올 때 봐 두었지요!” 이따금씩 몸서리치는 진이의 몸 흔들림을 이생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명이 밝고 아침 해가 새벽안개를 걷었을 때 주막에 도착하였다.
산에서 먼저 내려온 사람들은 벌써 국밥을 먹고 주막을 떠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모 여기 고기도 넉넉히 넣어 국밥 두 그릇과 모주 두 잔도 주시게...” 이생이 진이를 안아 말에서 내려놓고 성큼 주막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돈이야 진이가 내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행동을 해주는 이생이 고맙고 같이 오길 참 잘 했다고 생각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지금도 또 그런 생각을 하였다.
밤엔 때때로 잠자리 상대가 돼주고 낮엔 충실한 노복 행세를 해주니 입안의 혀가 따로 없음이다. 국밥 한 그릇에 모주 한 잔은 산에서 내려온 그들에겐 더 이상의 성찬이 없다. “너는 모주 한 잔 더 하려무나!” “아닙니다. 한 잔으로 족합니다.” 남장한 진이의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여자 아냐? 하는 표정들이다. 진이와 이생은 따가운 시선을 등 뒤로 하고 주막을 총총히 나와 말 등에 올랐다.
2017-03-15 0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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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4> 황진이(黃眞伊) <제15話>
보현사를 떠날 때 진이는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다시 한 번 관음전에서 빌었다. 팔도를 두루 다닐 발길이 보현사를 다시 찾을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두류산(頭流山:지리산의 별칭)으로 가려는 발길이다.
두류산은 산 이름부터 진이와 예사롭지 않은 산이다. 신선들이 금강산으로 가려다 두류산이 너무 아름다워 그만 주저앉은 이들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 아름답고 수려한 산에 명월리(明月里)가 있다.
진이는 어젯밤 꿈에 중국 진(晉)나라 죽림칠현들을 만났다. 고려의 강좌칠현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원조(元祖)격인 죽림칠현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의 사창회(詞唱會)에 초청되어 고려의 청풍(淸風)을 뽐냈던 것이다.
죽림칠현들은 말로만 듣던 명월의 등장에 신선이 나타난 듯 황홀해 하며 깍듯한 칙사 대접을 해주었다. 진이는 칠현 중에도 혜강(嵇康)을 좋아하였다. 고려의 강좌칠현 중에 함순을 경모했듯이 그날 이후 진이는 수장(首長)격인 혜강을 마음속에 두었다. 진이는 두류산으로 들어가면서도 엊저녁의 죽림칠현과의 사창회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이는 그들의 은둔생활이 이해되었다. 중국의 죽림칠현들을 꿈에서 본 이후 고려의 강좌칠현에 대해 궁금증이 더욱 폭발하였다. 죽림칠현이 현실정치에 혐오감을 느껴 출사하지 않고 술과 시로 세월을 낚듯이 고려의 강좌칠현 역시 무인정권(武人政權)에 대한 불신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사실 진이도 기생이었던 시절 돈 뭉치를 들고 찾아와 자신을 첩(少室)으로 들어와 달라고 한 한량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돌려보냈다. 영혼의 자유를 위해서다.
금지옥엽으로 커온 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오자 원래 신분인 서녀(庶女) 위치로 떨어져 사대부 집 소실로 들어가라고 권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아버지 황진사와 절교를 선언하고 기생이 되었다. 진이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보현사를 떠나 두류산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삶을 진이는 절정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금강산으로 가려던 신선들이 놀았던 산에서 자신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진이가 명월관을 퇴기 이모 옥섬에서 임대 등으로 호구지책을 해결하라고 맡기고 유랑 길에 오른 것도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사내들만 사람으로 대접하고 여자들은 성적 대상 정도로 취급되는 사회 풍조에 무언의 저항이다.
그래서 진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학문과 조선의 성리학, 《삼국지》(三國志)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사실 진이의 학문세계는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남명 조식, 하서 김인후 등에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가 있다. 그래서 그녀를 거쳐 간 사대부와 한량들은 한결같이 성적 상대로 찾아왔다 떠나 갈 때는 경모의 대상으로 가슴에 묻었다.
오후 늦게 실상암(實相庵:일명 見性庵)에 도착하였다. 사람도 말도 지쳤다. 그들은 주지를 찾아 찾아온 연유를 말하자 주지는 선뜻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리고 “남자는 나와 같이 자고 진이 아씨는 그 방에서 주무세요.” 주지스님의 진이 아씨란 말에 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스님, 스님께서 어떻게 이 진이를 아시는지요?” 라고 다그쳐 물었다. “아- 예... 소승은 진이 아가씨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찰(寺刹)에선 합방을 금하고 있사오니 양해하시고 남자 분은 저와 하룻밤 지내시지요! 자세한 얘기는 다음 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진이는 밤새 뜬 눈으로 날을 샜다.
비몽사몽에도 강좌칠현에 대한 꿈을 꾸었다. 이인로의 《산거》(山居)를 중얼거렸다. ‘봄은 가도 꽃은 아직 있고/ 하늘은 갰지만 골짜기는 절로 어둑하네./ 소쩍새 한낮에 울고 있으니/ 비로써 깨달았노라. 깊은 골에 사는 줄은....’ 시 암송을 마치자 때마침 새벽 종소리에 진이가 화들짝 비몽사몽에서 깨어났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여 뻑뻑한 눈을 부비며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때 “소승 덕송(德松·가명)입니다. 진이 아가씨, 일어나셨는지요?”라고 주지스님이 아침 예불을 알렸다. 진이는 서둘러 일어났다.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보현사에서 극락왕생을 위한 기도를 했는데 실상암에 와서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예불을 마친 덕송 스님은 진이를 따로 불렀다. “아씨 차를 드시지요!” 잔잔한 미소에 호수같이 깊은 두 동공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지나갔다. “소승을 몰라보시겠는지요? 아씨가 어릴 적 사랑채에 자주 드나들던 김구덕 입니다.” 김구덕 이란 말에 진이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아저씨, 이런 꼴로 뵙게 돼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흡사 짐승 울음소리다.
김구덕은 진이 아버지 황진사와 죽마고우다. 젊었을 때는 황진사 집에 수시로 드나들며 진이를 며느리 삼자고 까지 했던 관계다. 김구덕은 황진사와 달리 과거에 등과하여 한양 중앙무대에 진출하였으나 정암과 정치노선이 달라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가장의 종적이 묘연해 지자 집안은 물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오늘 이곳에서 진이와 극적으로 해후한 것이다. 관가에서 사방팔방으로 찾았으나 이곳까지 발길이 닿지 않았다. “아씨 하산을 하시더라도 소승을 봤단 말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진이는 정암과 생각이 달라 부자지간의 연을 끊은 이생의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진이와 이생은 말을 실상암에 맡기고 다시 길을 떠났다. 두류산은 깊고 넓다. 그들은 걷고 걸어 오후 늦게 지눌(知訥)스님이 불교계 개혁을 위한 결사체인 정혜사를 조직하여 운영해 온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도착했다. 주지스님을 찾아 허기부터 해결하였다. 주지스님은 두 남자를 법당 뒤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단풍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더 할 수 없이 안락한 곳이다. 진이는 어제 밤을 뜬 눈으로 새 금방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비몽사몽에 가위에 눌린 듯 숨이 차고 아랫도리가 아파왔다. 산 속 해는 일찍 넘어가 어느새 방안은 어두웠다. 이생이 짐승이 되어 헐떡이고 있다. 바지만 내려진 채 이생이 욕심을 채우고 있는데 잠결이지만 진이도 감흥이 올라 엉덩이를 맞추고 있었다.
2017-03-08 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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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3> 황진이(黃眞伊) <제14話>
밤새도록 사랑놀이를 하고도 진이와 이생은 피곤한 기색 없이 말에 올랐다. 말 등엔 거문고와 점심에 먹을 간단한 음식이 실렸을 뿐이다. 어차피 얻어먹으며 유람생활을 할 것을 이것저것 가지고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묘향산을 출발하여 지리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 갈 생각이다. 그래도 진이의 속주머니엔 외숙부가 건넨 비상금이 있다.
진이는 자신의 몸뚱이를 여행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다. 돈이 떨어지면 이 절 저 암자를 찾아 구걸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몸을 달라면 주려는 속내도 가졌다. 그런 생각까지 하니 무서울 것이 없다. 호위무사로 이생이 있으니 짐승한테 물려 갈 염려도 없으니 진이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생은 이생대로 마음이 즐거웠다. 아버지는 포의(布衣:벼슬 없는 선비)로 정암(靜庵:조광조 호)과 의기투합 했었으나 곤궁하여 그를 배신하여 선비로서 자격이 없다하여 15살의 이생이 이름을 버리고 팔도를 유랑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 한양에서 진이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정암과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면 출사는 못했어도 높은 학문의 세계에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버리고 세월을 낚으며 팔도를 유랑했던 것이다.
이생이 진이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그토록 조선팔도 사내들이 품에 넣고 싶어 했던 명월을 매일 곁에 두고 밤잠까지 할 수 있으니 횡재 중에서도 상 횡재한 사내가 되었다.
그들은 묘향산 보현사에 다다랐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하늘을 덮은 고목들로 밤 같은 분위기다. 그들은 길 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으나 허기가 졌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주지스님을 찾았다. 진이도 남장차림이다. 이생만이 진이를 여자로 알고 있을 뿐이다.
주지스님은 저녁을 주고 방까지 내주었다. 허기를 채우자 그들은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이생이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코에 선향(仙香)이 들어왔다. 보현사 특이의 향이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으나 선향은 점점 더 짙게 느껴졌다.
옆에서 곤히 잠은 진이한테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향기였다. 이생은 처음엔 자신이 진이한테 홀려 느끼는 착각이려니 생각하기도 했으나 진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선향이 자신을 구름처럼 휘어 감았다.
꿈이 아니었다. 창문으로 푸른 달빛이 들어와 진이의 얼굴에 머물러있다. 신선이 누워 있는 것이다. 이생인 진이를 여자로 보고 사내 역할을 하려던 욕망을 접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묘향산엔 향목·동청(冬靑) 등 향기로운 나무들이 많아 묘향산(妙香山)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생은 처음엔 그런 향기려니 생각했었는데 방안에 점점 더 향기로운 향이 짙어졌다.
진이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향기로운 향취가 안개처럼 퍼졌다. 진이는 어느새 이생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세상 가는 곳 마다 환락의 장소에는/ 음악소리가 호화로운 집 울리지만/ 쓸쓸한 산가(山家)에슨ㄴ 즐길만한 것 없어/ 하늘이 새들 시켜 피리퉁소 불게 하네.’ 원감(園鑑)의 《새벽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를 떠올리며 잠꼬대를 하였다.
명월이 이생의 품에서 꿈틀댔다. 첫날의 합방은 얼떨결에 몇 번의 방사를 했으나 태상주 기운에 비몽사몽 상태라 진이의 깊은 맛을 미쳐 느껴보지도 못하였다. 이제 흡족하고 멋지게 즐길 수도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왠지 명월이 무서워졌다.
둘이 있을 때엔 형 아우로 하고 뭇사람들이 있을 때는 상전과 하인으로 하자 했는데 첫날부터 상전으로 느껴졌다. 여자가 분명한데 젖먹이가 어미를 대하는 심정이다.
진이의 체온이 서서히 옮겨져 오고 있다. 진이의 두 팔이 벌어져 이생을 끌어안았다. 이생의 숨결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진이가 쾌락의 대상이 아닌 예사롭지 않은 경계해야 하는 존재로 느껴져 무서워져서다. 진이는 더욱더 뜨거워진 몸으로 이생을 끌어당겼다.
그때 진이의 입에서 시가 나왔다. ‘기다려도 기다리는 사람 오지 않고/ 스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오로지 숲 속에는 새들만 있어/ 지저귀는 소리에 술 생각이 나는구나.’ 이인로(李仁老)의 《천수사 벽에 쓰다》다. 진이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으나 고려 여인으로 긍지를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벤치마킹한 강좌칠현(江左七賢)을 경모(敬慕)하였다. 칠현 중에서 특히 문장에 뛰어나고 절행(節行)으로 추앙받는 함순(咸淳)을 늘 마음속에 두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역시 강좌칠현의 일원인 이인로의 작품을 진이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암송하였다.
지금 진이가 꿈속에서 함순을 만나고 있으면서 입에서는 이인로의 시가 나왔다. 이생은 진이를 가슴에서 떼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으슥한 밤이다. 산사(山寺)의 깊은 밤은 적막하다 못해 무덤 속 같이 고요하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았으나 진이가 깼다. 이생이 옆에 없자 진이도 밖으로 나왔다. “밤이 깊었소! 잠을 더 자고 일찍 길을 떠납시다.” 말을 남기고 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오란 말투다. 이생은 잠시 아버지를 떠올렸다. 영웅심에 들떠 정암을 고발하고 순간적으로 들떠있던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버리고 비렁뱅이가 된 것에 대한 반추(反芻)다.
이생 아버지의 정암 모함으로 촉발된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숱한 사림파 선비들이 죽거나 벼슬에서 쫓겨났다. 사대부 집안의 체면이 아니다란 신념으로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팽개치고 팔도를 유랑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대단한 도덕군자도 아닐진대 라고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총총히 진이가 다시 들어간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온 이생은 마음을 굳게 먹고 진이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진이도 말없이 사내가 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주었다. 명월관에서 첫 방사를 할 때보다 이생은 몸과 마음이 흡족하였다. 몸과 마음을 흡족히 나눈 그들은 산사의 새벽종이 울리기도 전에 총총히 발길 닿는 대로 길을 재촉하였다.
2017-02-28 1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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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2> 황진이(黃眞伊) <제13話>
가을에 한양으로 떠났다 가을에 송도로 돌아왔다. 3년 사이에 송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진이는 문득 이제현의 송도팔경 중 《용산추만》(龍山秋晩)을 떠올렸다. ‘지난해 용산에 국화꽃 피었을 때/ 술병 들고 산 중턱에 올랐네./ 한줄기 솔바람 부니 모자가 떨어지고/ 붉게 물든 단풍잎 옷에 가득한 채/ 술에 취해서 부축 받으며 돌아왔네.’ 시를 다 읊은 진이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늦가을의 보름달이 두둥실 떴다.
명월(明月)이다. 진이의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졌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이다. 이사종과 계약결혼을 연장하지 않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명월관은 그동안 가꾸지 않아 정원 등에 잡풀이 우거져 집 전체가 폐가처럼 보였다. 옥섬은 나이 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다.
진이는 이생(李生)을 불러들였다. 명월관을 정리한 뒤 금강산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진이가 부르면 조선팔도에서 몇몇 사내를 빼고는 안 올 사람이 없다. 한양에 이생은 밤새 연락을 받고 이튿날 저녁 늦게 송도에 도착하였다. 이사종이 천하의 소리꾼에 헌헌장부로 진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 사내였다면 이생은 왠지 마음이 편해 긴 여행에 동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순수한 사대부로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이라 더욱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세양과 이사종을 통해 사내들의 내면에 있는 여자에 대한 깊은 생각도 이젠 정립되어 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내들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조선팔도 사내들은 허리 밑으로 어느 누구든 정복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어머니 현학금이 연산군의 사랑놀이 대상의 여자가 되기 싫어 약을 먹고 장님이 되었으며 진이 자신도 금지옥엽 귀염을 독차지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서녀(庶女)신분이 된 충격으로 한 때 장님이 되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문제는 사내들이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임금인 연산군이었으며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다. 그 같은 신분이 세습되어진 자신은 기생신분이었을 때 어느 때부터는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 아닌 꽃이 주인공이 되어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진이는 지금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심하였던 것을 행동하려 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두터운 사대부 벽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이사종과 3년을 살고 와서 그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가는 송도의 향기를 보여주고 싶고 여근속(女根谷)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선덕여왕(善德女王)의 기개를 되살리려는 야심도 생겨서다.
사실 퇴기이모 옥섬의 얘기가 천번만번 옳아 잠자리에서 입증되는 사례를 진이는 수도 없이 실천해 왔다. 겉으론 천하를 쥐고 흔들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호언장담 하지만 그 말은 계집 앞에서 기죽기 싫어 허언(虛言)을 했음이 날이 새면 드러나지 않는 사내는 진이는 지금껏 몇 명보지 못하였다.
송도는 여성적 도시이고 한양은 남성적 도시임을 진이는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한양의 사대부들이 평양을 색향(色香)이라 함도 진이는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터득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자신의 자유영혼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이 산지식이 되었다.
사내가 이젠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자신이 품으면 조선팔도 어느 사내도 어린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이는 한양에선 미처 몰랐던 것을 송도에 와서 삼봉(정도전의 호)의 《한양찬가》가 얼마나 사내다운 시(詩)인가 새삼 느꼈다. 익제(이제현의 자)의 《송도팔경》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화(詩化)했으나 《한양찬가》는 왕업(王業)의 위대함을 노래 불렀다.
진이는 어느새 삼봉의 팬이 되었다. ‘줄지어선 관청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새벽달에 관가는 물과 같으니/명가(鳴珂:말굴레 장식품)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한양찬가》중 《열서성공》(列署星珙)이다. 진이는 거문고에 두 도시의 찬가를 동시에 실었다.
이번엔 《송도팔경》중 《자동심승》(紫洞尋僧)이다. ‘바위 옆을 돌아 냇물 건너가며/ 숲을 헤치고 봉우리 밑을 올라가네./ 사람을 만나 절을 물어보니/ 종소리 나고 연기 나는 데로 향해 가라하네./ 풀에 맺힌 이슬은 짚신을 적시고/ 송화가루는 중의 적삼에 점찍어 놓네./ 탑 앞에 앉아 세상만사 잊고 있으니/ 산새는 어서 돌아가라 재촉하네.’ 그랬다.
거문고를 가슴에 품은 진이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다. 옆에 있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왜 그리 슬픈 표정이요? 금방 울 듯하오!” 진이의 거문고 소리가 끝나자 옥섬이모가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우선 목부터 축이세요... 이 진이가 소문으로만 듣던 이생 선비님을 모시려고요...” 이생은 벙벙한 표정이다.
조선 사내치고 명월을 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내가 없는데 자신을 명월이 스스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꿈만 같기 때문이다. “자 어서 한잔 드세요!” 진이가 손수 잔 하나 가득 따라 권한다. 이생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인이 하듯 진이의 말에 따랐다. 태상주는 독한 술이다. 주거니 받거니 태상주 몇 병이 삽시간에 비워졌다.
해는 어느새 땅거미로 변했다. “이제 그만 잡시다.” 진이가 잠자리에 앞장섰다. 진이는 잠자리에 들면 늘 옥섬이모의 말이 떠올라 꽃잠을 연출하였다. 사내들은 누구나 여자는 자기가 처음이기를 바라는 심리를 알고 있어서다.
진이는 술상을 뒤로 밀어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농익은 복숭아 빛의 한 쌍의 유방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생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진이의 도발에 남성성이 삽시간에 고개 숙였다. 기가 죽었다. 창문으로 아직 석양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이리 오세요! 나를 품으려고 허겁지겁 오신 것이 아닌가요? 자 이 진이를 마음껏 보시고 즐기세요!” 진이가 홀라당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생이 누구인가! 어엿한 사대부 집 헌헌장부인데 지금 시기(詩妓) 진이 앞에서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어서 오늘 저녁은 이 명월을 마음껏 즐기세요! 그리고 팔도강산 유람 할 때는 제가 상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내일이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연인처럼 연리지로 떨어지지 않았다.
2017-02-22 0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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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41> 황진이(黃眞伊) <제12話>
이별의 날을 세어 나가는 이사종의 마음은 촌각이 아까웠다. 그는 아침저녁 잠시 진이를 볼때도 표정을 유심히 살폈으며 열흘에 한번은 나들이를 꼭 나섰다. 송도도 아름답지만 한양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육조거리와 사대문 안팎의 풍광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봄에는 성 밖 북둔(성북동)으로 함께 말을 타고 복사꽃 장관 속을 거닐었고 홍인문 밖 낙산아래 휘늘어진 봄버들 길도 구경시켜주었다. “어떻소? 한양 풍광 영미가 마음에 드오?” 진이는 묵묵부답이다.
진이의 몸은 한양에 와 있어도 마음은 송도에 가 있었다. 한양이 역동적이면서 마음에 조금씩 정이 붙어 가면 갈수록 고향 송도가 그리워지고 종적을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몸서리 쳐지도록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착 달라붙어지는 이사종과의 하루하루도 싫지 않았다. 기생의 길로 들어선 이후 손에 물 한 방울 걸레질 한번 안 해본 자신이 지금은 부엌에도 들어가고 걸레질도 하는 보통의 아낙이 되었다. 이사종의 덕분이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진이는 이제야 알았다.
한참 침묵이 흐르는 사이에 진이와 이사종을 태운 말은 한강 노들 녘에 다다랐다. “이 진이는 한양에 와서 늘 삼봉의 《한양찬가》중 《서강조박》(西江漕泊)에 관심이 높아요. 《한양찬가》는 이제현의 《송도팔경》을 연상케 하는 시(詩)지요! 그 중에서도 《제방기포》(諸坊碁布)에 매료 됐어요...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네요. 진이가 점심을 간단하게 준비했어요!” 진이는 간단히 먹을 것과 송도의 명주 태상주를 꺼냈다. “허허허, 언제 점심 준비까지 했소이까? 나는 이곳을 잠시 둘러보고 종로 피맛골에 가서 요기를 하려 했는데...” 이사종은 그윽한 표정으로 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태상주 한병을 비운 그들은 흐드러지게 늘어진 버들이 바람에 춤을 추는 분위기에 맞추어 노래를 주고받는다. 이사종은 《송도팔경》에서 《백악청운》(白嶽晴雲)을 불렀고 진이는 《한양찬가》 중에 《열서성공》(列署星拱)을 절창하였다.
피맛골에 들려 옥인동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조강지처 정씨가 도끼눈을 뜨고 불호령을 떨어뜨렸으나 이제 계약결혼 3년이 얼마 안 남아 눈을 감아 주는 분위기다. 오히려 정씨가 아쉬워하는 태도다. 진이가 시어머니에겐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었고 아들에겐 선생님이 되어주어 고마운 존재가 되었었다.
어느새 그들은 날카롭게 물어뜯는 적에서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로 발전하였다. 진이의 헌신적 노력이 만들어 낸 가족적 분위기다. “형님, 제가 송도에 가더라도 형님의 따뜻한 사랑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진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밥상을 정씨한테서 받고는 두 눈에서 눈물을 와락 쏟아냈다. 더욱이 이사종과 겸상차림이었다.
계약결혼 만기는 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떠날 때까지 잠자리를 매일 허락한다는 조강지처 정씨 말에 이사종은 밥을 먹다말고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진이 내 그동안 독하게 대한 것 양해해 주시게! 자네도 내 처지가 돼보면 여자마음 알걸세...” 정씨는 정말 아쉽고 미안했다는 표정이다. 무거운 침묵이 잠시 흐른 뒤 정씨는 주섬주섬 밥상을 정리해 들고 나갔다.
3년 사이에 조강지처와 소실은 언니동생이 되었다. 떠날날이 다가오자 진이는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잠자리도 매일 밤 양해를 받았으나 되도록 피했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나 몸은 행동이 보여 떠날 때일수록 아름답게 정리하고 싶어서다. 이사종은 매일 밤 운우지락을 하려 했으나 진이는 매정하게 거절하였다. 한양의 마지막 밤에 최후의 몸을 활짝 열어 주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달이 휘영청 밝은 보름밤이다. 그날만은 진이가 아닌 명월(明月)이 되어 철저한 이사종의 여자가 되었다. 송도로 갈 날짜가 내일이다. 진이는 오랜만에 거문고를 꺼냈다. 그동안 첩살이를 하면서 거문고를 탈 만큼 여유 있는 생활이 아니었다. 아무리 너그러운 조강지처라도 첩이 예뻐 보일 여인은 이 세상엔 없다. 씨앗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오랜만에 거문고 꺼내 타면서 《한양찬가》 중 《북교목마》(北郊牧馬)를 불렀다. ‘숫돌같이 평평한 북녘들 바라보니/ 봄 오자 풀 무성하고 물맛도 좋아/만마가 구름처럼 모여 뛰놀고/목자는 마음대로/여기저기 서성이네.’ 진이의 노래에 이사종이 곧바로 이었다.
《송도팔경》 중 《청교송객》(靑郊送客)이다. ‘들 절간에 송화꽃은 떨어지고/ 비 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 떠나려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受) 두 사람을 아꼈으랴!’ 노래를 마친 이사종은 진이를 덥석 안았다. 진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거문고를 팽개치듯 옆으로 제쳐놓고 이사종의 품에 안겼다.
이 밤이 밝으면 진이는 이사종의 여자가 아니다. 사내는 성급히 달려들었다. 여자도 그런 사내가 싫지 않았다. 오늘밤은 영원히 밝지 않기를 그들은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한 몸이 되었다. 이사종이 진이의 두 다리를 벌리고 밀고 들어왔다. 뜨거운 신음소리를 내는 진이의 두 눈엔 알 수 없는 눈물이 쉼없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파도에 배가 흔들리듯 이사종은 진이의 몸에서 신명나게 연자방아를 찧는다. 뜨거운 살이 교합되자 이사종이 몸을 틀어 진이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으려 한다. “아니 됩니다. 더렵혀진 몸입니다...” 진이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아니요. 내가 당신을 깨끗이 씻어 주리다. 이 시간 이후 당신은 옥황상제께서 이승으로 잠시 휴가를 보낸 선인(仙人)이 되는 겁니다...” 이사종은 돌아누운 진이를 다시 돌려서 정성껏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화냥년(환향년)들이 세검정에서 몸을 씻듯 깨끗이 정화시켰다.
그리고 이사종은 금방 코를 골며 잠들었다. 알몸이다. 반듯한 이마와 깊이 그늘져 감긴 눈과 오뚝한 콧날에 꼭 다문 입과 턱... 진이는 밤이 새도록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이사종의 모습을 가슴속에 담았다. 먼동이 트면 말을 타고 송도로 갈 준비가 되었다. 이사종도 이제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2017-02-15 0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