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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8> 생동성시험의 한계
근래 생물학적 동등성 (생동성) 시험과 관련하여 물의가 빚어진 일에 대하여 전문가의 한사람으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시험을 부실하게 수행한 사례에 대하여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이 기회를 빌어 생동성 시험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자 적고자 한다.
생동성 시험이란 원개발사가 개발한 약 (대조약, brand 약)을 의사가 처방하였을 경우, brand 약 대신 복제약 (제네릭약, 시험약)으로 대체조제해도 좋을 정도로 복제약이 brand 약과 생물학적으로 동등한지 여부를 판정하기 위한 시험이다.
생물학적으로 동등한지 여부는 브랜드 약 (대조약)과 복제약을 사람에게 경구투여 하였을 때 두 약의 혈중농도 프로필이 통계학적으로 동등한가 여부를 보아 판단한다.
동등성이 입증되지 않은 복제약은 시판은 허용되나 대체조제용 약으로는 선정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모든 나라의 정부는 복제약이 생산 보급되어야 약값이 저렴해지기 때문에 값비싼 오리지날 대조약 대신에 값싸고 품질 좋은 복제약이 많이 생산되어 시판되기를 바라는 정책을 펴고 있다. 반대로 brand 약의 원개발사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까다롭게 하여 후발사의 복제를 막고 싶어한다.
생동성 시험은 그 목적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원초적인 한계도 갖고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점은 생동성 시험을 통하여 시험약이 대조약과 “동등함”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두 제제가 “비동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두 제제가 동등함을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제제간의 혈중농도 추이에 “통계적인 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차이의 유무를 검정하는 통계 (Student's T-test)와 동등성을 입증하는 통계 (BE Test)의 방법론이 다름에 기인한다.
즉 “동등함을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은 아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이는 생동성 시험에 참여한 피험자 (건강한 사람)의 수가 충분하지 못했던 경우에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 피험자 수를 늘려서 시험을 하면 “동등”하다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생동성 시험에 사용되는 대조약의 특성도 제조 번호 (롯트 번호)에 따라 변동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제조번호의 대조약을 사용하여 시험하였느냐에 따라 복제약의 생동성 시험의 결론도 달라질 수 있다.
또 생동성 시험에 사용되는 대조약을 선정하는 기준은 (1) 오리지날 제품 (2)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약, 또는 (3) 국내에 가장 먼저 도입된 약의 순으로 되어 있는 바 결코 과학적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대조약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고, 또 대조약이 가장 우수하다는 증거가 없는 점이 생동성 시험의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기준이 흔들리는 약, 가장 우수하지 않은 기준에 복제약의 품질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한 시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동성 시험을 금과옥조처럼 채택하고 있는 것은 마땅한 대안이 없는 데다가 brand 약 제조사들의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복제약 생산으로 의료복지를 추구해야 할 우리나라가 생동성 시험을 어떤 시각으로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국가적 공감대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8-08-27 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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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7> 여성 상위시대와 모성애
서울대 약대 학생 중 여학생들이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여성이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우수한 존재라고 믿는다.
우선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길다. 더구나 흥미로운 것은 늙어서 배우자가 사망하면 부인의 수명은 늘어나지만 남편의 수명은 오히려 줄어든다고 한다. 남편 수명이 부인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기억력도 여자가 훨씬 좋은 것 같다. 아내는 신혼 초에 남편이 잘못한 일을 평생 되 뇌이며 남편을 압박한다. 남편도 하나쯤은 반박할만한 사례가 있었을 터이지만 좀처럼 기억이 안 나 잔소리를 듣고만 있는다.
그러다 인내력에 한계에 도달하면 그만 “시끄러워!” 소리치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또한 여성은 애 머리 빗기며 다리미질도 하고 찌게도 끓이고 애 책가방도 챙길 수 있지만, 남편은 두 가지만 동시에 하라고 해도 금방 난장판을 만들기 일수이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외통수이다. 남성은 감성 면에서는 더욱 여성의 적수가 못 된다. 많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TV 연속극을 안 보는 것을 교양 있는 행동인척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들이 그런 연속극을 안 보는 이유는 봐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왜 여자 주인공이 울고 짜는지 이해를 할만한 감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남자들은 그저 축구처럼 어느 팀이 몇 대 몇으로 이겼는가 하는 명백한 결말이 나는 이야기만 이해할 뿐이다. 설이나 추석에 시댁에 다녀 온 후 아내가 왜 기분이 나빠졌는가를 사실 남편은 진심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아빠보다 아이들에 대한 권위 면에서도 앞선다. 엄마가 아빠더러 아이 좀 깨우라고 하면 아빠는 아이 침대로 다가가 아이를 살살 흔들면서 “야 일어나 엄마 화났어” 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남편들은 아내를 무서워한다.
얼마 전 TV를 보니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은 이유 10가지를 조사했는데, 연령대를 불문하고 “아내가 무서워서”가 1-3위 이내에 드는 것이었다.
반대로 아내가 집에 늦게 들어가고 싶은 이유 10가지에서는 “남편이 무서워서”는 10위 안에 없고 “남편이 귀찮아서”가 상위에 들었다. 제주도 신혼 여행 중 택시 안에서 신부에게 찰싹 소리가 나게 뺨을 맞는 신랑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게만 보면 세상은 말세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성은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위대하기까지 때문이다.
고릴라에 대해 누군가 실험했다는 결과를 들어 보자. 골방에 엄마 고릴라와 자식 고릴라를 함께 집어 넣고 방에 불을 잔뜩 때고 나서 문을 열어 보았더니 엄마가 뜨거워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자식을 머리에 이고 있더란다.
같은 실험을 이번에는 아버지 고릴라와 자식 고릴라에 대해 했단다. 불을 땐 후 문을 열어 보았더니 아버지는 자식을 깔고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암에 걸린 남편 곁에서 온갖 정성으로 간호를 하는 부인을 보기란 전혀 힘들지 않다. 그러나 그 반대의 장면은 정말로 보기 어렵다. 직장 일이니 무어니 핑계를 대고 남편은 보통 아내 곁을 지키지 않는다.
결론, 여성은 남성보다 강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이처럼 위대한 존재임을 고백하오니, 여성들이여 여권이 아닌 모성애로 남편을 긍휼히 여겨 주시길, 그리하면 여성 상위 시대가 결코 나쁜 사회가 아닌 따듯하고 안정된 사회가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2008-08-13 07: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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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 "교육도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한 교수 책무다"
지난 6월 28일 AASP (아시아 약대협회) 회원교수들과 태국의 콘케인 (Khon Kaen) 대학교 약학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콘케인은 방콕의 동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고 이 대학은 태국의 17개 약대 중에서 중상 정도에 위치하는 학교라고 했다.
한 학년 정원은 150명인데 학생들 중 약 70%는 여학생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중 50명은 입학에서 졸업에 이르기 까지 영어로만 수업을 한단다. 마치 중국 심양약학대학에 영어반, 일어반이 중국어 반이 함께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말레이시아에도 영어로만 교육하는 약대가 있다고 들었다. 국제화 시대에 과감하게 영어로 교육하는 이들의 배포에 다시 한번 놀랐다. 우리가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 사회 여론이 어떨까?
이 학교의 연구와 교육에 대하여 모토코 칸케이라는 여교수에게 설명을 들었다.
모토코 교수는 일본 교리츠 약학대학 (현 게이오 대학 약학부)을 정년퇴직한 후 콘케인 대학으로 옮겨 1년째 대학원에서는 물리약학을, 학부에서는 약학전문영어를 강의하며, 대학 차원에서는 미국 등과의 국제 교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1년간 체류 기간을 연장 하려고 한다고 했다. 모토코 교수의 말에 의하면 콘케인 대학의 연구수준은 일본에 비해 많이 낮지만 반대로 교육 수준은 일본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필자도 다른 경로를 통해 태국의 약대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일본 사람의 시각을 통해 들어 보니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로 교육에 열심인가를 물었더니 약대 교원이 모두 85명인데 그 중 20명이 상시 외국에 나가 최신의 교육에 대해 연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귀국해서 강의 교재를 업데이트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대학의 모든 교원들이 모두 영어를 참 잘한다고 생각되었다.
특이한 것은 학장을 비롯한 교원은 모두 부교수 이하로 정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교수라는 칭호를 그만큼 아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모토코 교수는 일본에서 교수로 퇴임한 분이라 이 사람만 교수로 예우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약대는 최근 연구 역량이 매우 좋아 졌다. 예컨대 필자가 속한 서울 약대는 서울대학교 20개 단과대학 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연구업적을 몇 년째 내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면 교육은 어떠한가? 필자의 소감으로는 연구수준이 올라간 만큼 교육 열정은 반대로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물론 강의 수준도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향상되었다고 믿지만, 교수의 총역량 중 교육에 쏟는 비중은 틀림없이 옛날만 못한 것 같다.
특히 실습시간에 대한 교수들의 열정이 너무 떨어진 것 같아 걱정이다. 교육의 열정은 학생들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솟아 나는 것이라면 요즘 교수들은 예전에 비해 제자 사랑을 덜 하는 것은 아닐까?
참 말이 난 김에 모토코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 하나를 추가한다.
교리츠 대학은 금년부터 게이오 대학으로 합병되었는데, 그 바람에 학생의 질도 높아지고 남학생수도 70%에 이를 정도로 늘어 났단다. 연세대와 고려대에 약대가 없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합병이 일어 났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또 게이오 대학은 약사 예비면허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CBT시험과 OSCE 시험에 관한 대비가 일본 중에서도 가장 앞선 대학이라고 한다. 한번 견학을 다녀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을 위하여.
2008-07-30 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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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 중근세 유럽의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下>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이 나타난 이유와 의의
그림1은 원서에 게재되어 있는 칼라 유화의 사진으로 성경의 말씀이나 찬송가 일부가 약사인 그리스도와 함께 그려져 있다.
초상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처럼 천국의 의사로부터 천국의 약사로 바뀌어 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마음의 약”을 담은 조제실의 약 용기가 그림의 주제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약사의 인상이 강하고 의사는 간접적인 인상밖에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중세이래 “최후의 심판” 그림 중에 대천사 미카엘이 “마음의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것이 약사를 나타내는 도구로 그려진 것 같다.
또 당시 민중은 매우 고가인 의사의 치료를 받을 여유가 없어 대개 약국을 방문하여 치료를 받았는데, 이런 그림들은 그런 소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민중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마음의 약”을 나누어 주는 “약사 그리스도”의 그림이 독일 및 이웃 여러나라의 민중 속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17세기초 ~ 19세기는 물론 1968년에도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추상화가 그려진 것을 보면 근래까지도 이러한 사정은 비슷하였던 것 같다.
이들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은 독일의 가톨릭 국가들뿐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도 보급되어 갔다.
이런 그림이 98점이나 발견되는 것은 그림을 그린 목적이 기독교의 선교에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6-19세기에 걸쳐 주로 독일의 약사가 민중으로부터 존경과 호감을 받았음을 뒷받침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하여 약사의 이미지가 향상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 1: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바이에르베르그의 유화, 18세기 후반, H 90 cm x W 71 cm, 독일 바이에르베르그 약박물관) : 책상 위 책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사랑을 품은 사람은 복이 있나니”라고 쓰여 있고, 밑의 종이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라는 문구가 써 있다.
2008-07-16 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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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 중근세 유럽의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上>
일본의 약사학회지 (藥史學會誌, 30,2, 2001)에는 메이죠 (名城) 대학 명예교수인 오쿠다 교수가 쓴 중근세 유럽의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라는 논문이 실려 있다.
그는 1978년 독일 서부의 스튜트가르트 언덕 중턱에 있는 서점에서 “약사로서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B5판 82쪽짜리 작은 책자를 발견하였는데, 이 책에는 바이에른, 오스트리아, 서독, 중북부독일 및 기타 나라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약사로 그려진 그림 38개의 사진 (3개는 칼라, 28개는 흑백)이 게재되어 있었다.
이 그림들은 일부 20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16세기 초에서 19세기에 걸쳐 그려진 것으로, 대개 유화 (油畵)이다. 작은 길가의 예배당이나 순례산의 교회 안에 걸려 있는 그림이라 보존 상태가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다.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일부는 의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은 바이에른 (남부독일 지방)에 35점, 오스트리아 지방에 23점, 알사스. 스위스 지방에 31점, 기타 나라에 9점 (항가리 1, 소비에트 2, 미국 2, 프랑스 2, 스웨덴 1) 계 98점의 그림이 있는 것이 이 책에 의해 밝혀졌다.
당시 유럽에서 약사가 어떠한 존재로 인식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오쿠다 교수의 논문을 적절히 소개하기로 한다.
<의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교부 (敎父)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 교리” 라고 하는 유명한 부활절 설교 중에 “나는 의사이며 약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또 법황 (法皇) 그레고리우스 7세도 “마타이 설교” 중에 그리스도를 천국의 의사로서 또 천국의 치료약으로 비유하고 있다.
1537년 프랑스의 루안 지방에서 그려진 한 그림에는 스스로 치료약에 둘러싸인 그리스도가 약국에서 조제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1630년 경에 그려진 유화에는 약국의 조제실 안에서 처방전을 쓰고 있는 의사 및 조제를 하고 있는 약사가 천국의 그리스도로 그려져 있고 다른 약사와 조수는 일반인으로 그려져 있다.
<약사로서의 그리스도 그림>
1630년경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일련의 유화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은 조제실의 조제대 뒤에 서서 조제용 천칭을 왼 손에 쥐고 있는 천국의 약사로 그려져 있다. 약국에 놓여 있는 용기에는 약국이 제공하는 신앙, 희망, 사랑, 겸손, 자비, 인내와 같은 “마음의 약” 이름이 쓰여져 있다.
또 하나님에 대한 3가지 덕목인 신앙, 희망, 사랑과 크리스챤으로서의 4개의 기본 덕목인 겸손, 친절, 인내, 순종, 그리고 성령의 7가지 은사 중 온유, 경건, 용기, 자비와 같은 어구가 쓰여 있다.
또 그림 중 약국 뒷면에 걸려 있는 그림에는 백합 (순결을 의미), 글라디오러스 (하나님의 은총), 외에 우유, 포도주, 강심수 (强心水), 불안수 (不安水), 역수 (力水) 와 같은 어구가 쓰여 있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시 파괴된 남 티롤 지방의 목판화에는 “중한 병에 걸린 사람도 아픈 사람도, 몸이 약한 사람도 우리 약국에 오시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또 18세기 중엽의 설교자인 Franz Xaver Dorn가 쓴 “참으로 참으로 내 마음이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갖고 기운을 내라.
너의 치유를 위해 은총의 약국은 열려져 있다” 와 같은 시가 쓰여져 있기도 하다.
2008-07-02 13: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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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3> 교양있게 나이먹기
나도 올해로 환갑이 된다. 어떤 은사님이 "늙은이는 종자가 따로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시더니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별로 늙을 생각이나 계획이 없었다.
1983년 조교수로 부임하였을 때 언제 시험감독 같은 데 불려 다니는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기다려졌는데, 어느 순간 말단을 면하는 가 싶더니 이젠 어느덧 내가 고참이란다. 심지어 원로라고 부르는 사람도 보았다. 아, 원로라니!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 서너 명이 저녁을 먹으며 어떻게 노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친구는 부인이나 자식에게 나름대로 최선의 서비스를 다하고 있는데도 때로는 그들로부터 무시 받는 느낌이 들어 서운하다고 하였다.
나도 TV를 보다가 말이 잘 안 들려 아내나 자식들에게 물었다가 면박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그 심정이 100% 이해되었다.
나이 먹어 갈수록 점점 주변 사람이 내게 인사를 제대로 안하는지, 나를 무시하는 듯한 언행을 하면 곧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 이 '섭섭병'은 일종의 노인병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집안 애들에게 어른을 뵐 땐 가능한 한 두 손을 꼭 잡고 여러 번 흔들면서 인사를 하라고 가르친다.
기억에 확실히 남도록 인사를 하라는 것이다. 잔칫날 간단한 목례를 드렸더니 한참 뒤에 "근데 자네 언제 왔었는가?" 하고 딴 소리를 하시는 어른을 적지 않게 보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친구는 늙어 갈수록 취미를 붙일 수 있도록 부는 악기를 하나 배워야 한다고 했다. 만원만 주면 노래방에서 실컷 불 수 있다고도 하였다. 노래방에서 분다? 참 좋은 아이디어지만 나처럼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익한 권고일 뿐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평소의 지론인 '교양론'을 펼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나의 교양론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교양이 있어야 한다.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교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기술'이 아닌가 싶다. 한번 생각해보자. 흔히 교양하면 독서, 음악 감상, 그림그리기 또는 그림감상 등을 떠올리지 않는가?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혼자서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즉 혼자서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늘 누군가가 찾아주기를 바라거나, 자식이 효도관광을 보내주기를 기다리는 등, 늘 누군가가 놀아주어야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삶은 교양 없는 삶이라는 이야기다.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어린이 TV 프로그램처럼 '혼자서도' 시간을 잘 보낼 줄 아는 늙은이, 즉 교양 있는 늙은이가 노년의 비전이 아닌가 싶다. 악기를 배우는데 열심인 그 친구의 교양 있는 삶에 경의를 보낸다.
나는 어떤가? 낮잠 자기 말고 혼자 잘하는 게 무언가? 학생들과 토론하고 논문 쓰고 교회 다니고 뭐 그런 일로 일생을 살다보니, 골프도 술도 바둑도 모른다.
젊었을 때와 달리 음성이 안 나와 노래 부르기도 재미가 없다.
내가 생각해도 나의 정년 후는 정말 대책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늘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함은 어찌된 일인지.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교양! 정년을 5년 앞둔 내게 주어진 행복한 과제의 하나가 아닌가 한다. 할렐루야.
2008-06-18 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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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2> 약학홍보책자 선택인가? 필수인가?
지난 4월 한일대학원생 공동심포지움을 마치고 주최교인 교토대학 약학부의 학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새로운 약은 어떻게 창조되는가” 라는 제목의 300쪽 짜리 소책자를 선물로 받았다. 우선 이 책의 머리말을 그대로 옮겨 본다.
[암, 알츠하이머병, AIDS 등 획기적인 특효약의 개발이 기대되고 있는 난치병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약의 개발에는 유기화학, 물리화학, 생물화학, 분자생물학, 약리학, 약제학 등 많은 학문영역의 종합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만, 이들을 계통적으로 교육하고 연구하고 있는 곳은 오직 약학대학뿐입니다.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하면 노벨상이 수여되어 온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약학은 학술적인 공헌은 물론 질병치료라고 하는 커다란 사회적인 공헌도 가능한 대단히 매력 있는 학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교토대학 학부 및 대학원의 젊은 연구자, 교수, 그리고 조교수 10명이 자신의 전문영역을 중심으로, 때로는 체험을 바탕으로 “신약은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장에서는 약의 역사와 신약개발의 방법론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6~8장은 실천편으로 감염증 등의 구체적인 질병에 대한 신약을 어떻게 개발하는가에 대해 소개합니다. 특히 7장에서는 세계 최초로 알츠하이머 병 치료약을 개발한 스기모토 교수가 자신이 어떻게 이 약을 개발하였는가를 소개합니다. 9~10장에서는 21세기의 창약 (創藥) 기술인 DDS와 게놈 창약에 대해 해설합니다.
마침 일본의 약학교육은 2006년부터 일부가 6년제로 바뀌는 큰 변혁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교육제도 하에서는 “약을 올바르게 사용” 하고자 하는 약사 직능 교육만이 클로즈업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불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의 개발이 약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기회에 신약개발을 통하여 “혼자서도 수많은 환자의 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는 약학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약학을 약학에 뜻을 세우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상의 머리말을 통하여 6년제 약학교육의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일본 약학대학의 고민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6년제라고 하면 일본 국민들도 “임상약학”은 강화되지만 “약학의 과학적 연구 기능”은 약화되는 것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6년제라고 해서 임상약학 일변도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일본 약대 교수들의 절박한 상황인식이 이러한 홍보성 책자를 만들게 한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 약학대학 관련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된다. 책의 내용은 질병과 신약개발에 대하여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다.
예컨대 아스피린이 어떻게 버드나무과 식물로부터 개발되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이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펼쳐져 있다. 쉽고 재미있지만 내용은 정말 알찼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도 신약개발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어떤 방법으로 약학을 홍보하고 있는가? 약학대학을 방문해도 제대로 된 약학 홍보 책자 하나 받아 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일본과 달리 느긋해 해도 되는 상황인가? 소책자 하나가 만가지 상념에 빠지게 하는구나.
2008-06-04 0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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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1> 한일 SKO 심포지움과 영어
지난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일본의 교토대학에서 서울대와 교토대학 및 오사카 대학의 생명약학 (약제학) 분야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제4회 SKO 합동 심포지움을 열었다. 서울대에서는 필자를 포함한 4명의 교수와 9명의 대학원생이 참여하였고 일본의 두 대학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인원이 참석하였다.
제1회 SKO 심포지움은 2004년 12월 교토대학에서 약화학 관련 분야의 3개 대학 대학원생들이 30개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제2회 심포지움은 2005년 12월 생명과학을 주제로 오사카대학에서 열렸는데 26개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8개의 교수들의 강의도 있었다. 이 때에는 전남대 약학대학도 참여하였다.
제3회 심포지움은 합성화학 및 천연물약학을 주제로 서울대에서 열렸는데 28개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 심포지움은 구두 발표, 특히 영어 구두발표의 기회가 거의 없는 한일 양국의 대학원생들에게 영어로 구두 발표하는 연습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따라서 심포지움의 모든 순서는 영어로만 진행되었다.
막상 심포지움을 시작해 보니 학문에는 일본학생이, 발표에는 우리학생이 앞서는 모습이었다. 우리 학생들은 대개가 유창한(?) 영어로 일본 학생들을 압도하였는데 필자의 젊은 시절과 비교해 보면 격세지감이 들었다. 학생들의 발표가 끝나면 좌장을 맡은 양국의 교수들은 예외없이 “active discussion”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청중으로 참석한 학생들, 특히 일본 학생들은 좀처럼 토론에 참여하려 들지 않았다. 우선 영어로 말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음을 심포지움이 끝난 다음날 관광버스를 타보고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다음날 교토의 ‘하루 종일’코스의 관광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에는 한국인 8명과 일본인 10명 정도가 타고 있었다. 우리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관광 내내 모두가 질문 한마디, 잡담 한마디 없이 조용히 안내양의 안내 멘트만 듣고 다녔다. 오전 관광이 끝나고 모두 같은 식당에 들어 가 점심을 먹을 때에도 일본인들은 행여 숨소리가 옆 사람에게 들릴까 조심하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식사를 하였다. 잡담을 하며 즐겁게 식사를 즐기려던 우리들 마저 숨을 죽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었다.
일본인들이 이처럼 조용히 관광을 하는 것은 그들의 “사람을 무서워하는 민족성” 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남의 집을 방문해도 자기 신발을 집밖 쪽으로 가지런히 놓고 들어 가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 일본인들이다. 그렇다. 이처럼 사람을 무서워하는 일본학생들에게 처음 만난 한국인에게 영어로 질문을 하라는 것은 어쩌면 두렵고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각종 국제학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일본 학자들은 아마 엄청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죽을 각오로 극복해 낸 영웅들일지도 모른다.
일본사람에 비하면 우리는 때로는 무례할 정도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비교적 사람을 쉽게 대하고 ‘정’도 쉽게 주고 받는다. 이는 우리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즉 연구 수준을 높이고 영어로 말하고 듣기를 조금만 더 연습한다면 우리나라의 젊은 약학자들이 국제학회에서 활약할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내년도 오사카에서 열릴 제5회 SKO 심포지움이 또 하나의 발전의 전기가 되기를 기원하며.
2008-05-21 0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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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 의약품안전성은 사회문화적 이슈
2007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제3회 세계약학회의 (PSWC)”가 열렸다. 필자는 이 학회의 심포지움에 초청을 받아 “ICH, CIOMS, ISOP, ISPE and other acronymic vehicles to enable harmonization of pharmacovigillance”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바 있는데, 이와 관련한 필자의 소견을 이에 소개한다.
의약품의 사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성과 유효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의약품의 안전성이 ‘과학’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인자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 FDA가 2000년 출혈성뇌졸중 위험 문제로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한 phenylpropanolamine (PPA)에 대하여 우리나라는 2004년 사용 금지 결정을 내렸지만, 영국 등은 그 사용을 제한은 하되 금지하지는 않았으며, 세계에서 13개국 (2005년 WHO자료) 이외에는 이 약물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어떤 나라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약물이 다른 나라에서는 판매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과 만나게 된다. 만약 약물의 안전성이 오직 과학에 의해서만 판정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PPA의 사용에 관한 제한 내용은 나라에 관계없이 일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인종에 따른 유전적 차이 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어떤 약물에 대한 안전성 판정 기준이 나라별로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은 의약품의 안전성이 과학 이외의 다른 인자들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늘날과 같은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러나 과학에만 의존하지 않고 문화사회적 요인까지도 고려하여 안전성을 평가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어떤 나라의 의약품 안전에 대한 요구 수준은 그 나라가 처해있는 경제 수준, 의료수준, 제약산업의 기술 수준, 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등 사회문화적인 제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빈국이 미국에서와 같이 최고도의 안전성이 보장된 의약품의 유통만을 고집하는 것이 오히려 불합리하다 할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사회문화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과학’을 강조하면서 최고의 품질, 최고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선진국끼리의 담합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ICH 같은 국제기구들이 회원국인 미국, 일본 및 EU 만의 입장을 고려하여 고도의 안전성이 확립된 의약품만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게 규정한다면, 이는 결국은 ICH 회원국이 만든 의약품만 지구상에서 유통되게 만드는 셈이 된다.
다른 나라는 그만한 수준의 의약품을 생산할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기구들이 진정으로 인도적인 측면에서 의약품의 안전성 문제를 고민하고자 한다면 각 나라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 나라에 알맞은 “안전성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의사결정 알고리즘’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과학을 자랑하는 선진국이 감당해야 할 몫이요, 보편적인 인류애를 실현하는 길일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의약품의 안전성을 과학으로만 바라보고 푸쉬하여 무역장벽을 높이려 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국제기구의 발전을 위하여 건배!
2008-05-07 0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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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 올바른 약의 사용과 약가 (藥價)
지난 2008년 3월 26일 서울대 구내의 호암 교수회관에서는 대한약학회 주최의 제2회 팜월드 심포지움 "우리나라의 약제비관리체계, 이대로 좋은가?" 가 열렸다.
실제로 진행된 내용은 단순한 '약제비' 개념을 뛰어 넘어 '약물의 적정사용과 약가' 라는 한차원 높은 것이었다.
이 심포지움의 마지막 순서에서 필자는 외람되게도 다음과 같은 요지의 "총평"을 하게 되었다.
21세기 약물 사용과 관련한 정부의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환자로 하여금 right drug을 right price 에 사용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일이다. right drug 이란 특정 환자에게 안전하고 유효하며 꼭 필요한 약을, 양적으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고, right price란 그렇게 선택된 약이 적정한 가격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환자의 safety를 존중함으로써 인권을 존중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의료보험 재정도 절약함으로써 국민의 복지를 향상해야 하는 정부의 당연한 사명이라 할 것이다.
Wallace박사는 주제 강연을 통해 미국이 right drug의 선택과 관련하여 왜 PBM (pharmacy benefit management)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어떻게 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가를 설명하였는데, 우리의 의료 사정이 미국과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은 safety와 재정이라는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미국과 같은 방향의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철학과 노하우를 좀 더 철저하게 이해하고 배웠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나라도 이미 금년 4월 1일부터 의약품의 적정 사용 (right drug 사용하기)을 사전에 점검하기 위한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로 한 바 있다.
다만, 약물의 price와 관련해서는 우리의 여건이 미국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같은 성분의 약이라면 처방과 조제시 되도록 값이 싼 제네릭으로 대체하도록 권장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만, 신약이나 개량신약에 대해서도 무조건 싼 약가 (藥價)만을 강요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나치게 '싼 약가정책'으로 인하여 국내 제약산업이 붕괴되게 된다면 복지의 수단으로서의 의약품의 사명도 달성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궁극적으로는 "싼 약가정책" 의 지속도 불가능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약품은 인류를 위한 "복지의 수단" 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모든 국민이 이 '복지의 수단'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고품질의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의약품은 동시에 "제약산업"의 산물임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복지와 산업"간의 균형을 취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예컨대 최근의 "생동성 파문"을 보면 정부가 과연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요컨대 복지부는 의약품의 복지적 특성, 즉 안전성과 약가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수립하고, 지식산업부는 의약품의 산업적 특성, 즉 제약산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도록 함으로써, 복지와 산업간의 건전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시점에 의미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한 약학회에 감사드린다.
2008-04-23 0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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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정신과 약학사
지난 2월 24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전대통령의 송별을 위한 장차관들의 만찬 모임에 전 식약청장의 자격으로 참석한 바 있다.
약 230여명이 참석했는데 이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청와대기록담당자"로부터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참여정부는 그간 대통령 기록물의 완전한 보존과 활용에 역점을 두고, 이를 위해 2007년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e-지원 시스템, 업무관리시스템을 통해 생산된 전자문서 116만 건을 포함한 총 350만여 건의 기록을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겼다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할 때 기록한 메모지도 전부 수거 분류해서 보관하였다고 한다. 이는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역대 대통령기록물 총 33만여 건 (이중 14만 건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기록물)의 10배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한다. 대화에 참여했던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참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 과거의 대통령들은 왜 기록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을까?
잘 알 수는 없지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거나 아니면 기록을 남김으로써 후세에 구설수가 발생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후자가 이유라면, 대통령의 투명한 통지를 위해서라도 상세한 기록의 보존은 반드시 법으로 강제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기록의 평가'라고 본다면 역사를 쓰기 위한 첫 단계는 '기록과 보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우리 약계는 과연 후세의 역사를 위해 오늘날 기록을 충실히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20개 약대의 홈페이지에 들어 가 보았더니 그 기록의 양과 질이 매우 부실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대학이 최소한도의 역사라도 잘 정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왜 우리는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가? 우리는 원래 그런 민족인가?
그러나 조선시대의 '조선실록'을 보면 우리의 기록정신은 적어도 조선세대에는 절대로 나쁘지 않았었다. 그 훌륭한 기록정신이 근현대에 와서 왜 나빠지게 되었는가는 전문가들이 연구할 대상이겠지만, 아무쪼록 노무현 대통령의 이번 조치가 우리로 하여금 '조선실록'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일본의 기록문화는 가히 '지독'해 보인다. 작년에 발간된 '일본약학사학회'의 간행물을 보았더니, 크고 작은 학회들과 각종 회의 등에 대해 어찌나 상세하게 기록했던지 실제로 일어났던 일보다 기록된 내용이 더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깨알같은 유언을 남기는 일본인이라고 하더니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약학에 대한 기록은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빈약해 보인다. 그나마 단군신화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를 다룬 고 김신근 교수의 '한국의약사 (2001)'와, 근세 이후를 다룬 홍현오 선생의 '한국약업사(1972)' 그리고 약업신문사의 '한국약업100년(2004)' 같은 극소수의 역작이 없었다면 어찌할 뻔했는지 아찔한 생각이 든다.
앞으로 약대나 제약계를 정년 퇴직하시는 원로분들을 중심으로 본인들이 겪은 크고 작은 개인사(個人史)들이 속속 발간되기를 기대해 본다.
훗날의 약학사를 위한 디딤돌을 하나씩 놓으시는 원로님들을 뵙고 싶다. 대한민국 약학사 만세!
2008-04-09 0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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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 우리나라 최초의 4년제 약대는 이화여대
필자는 약학회지 최근호 (제51권 제6호, 361-382, 2007)에 실린 한국약학사 라는 논문을 통하여 우리나라 4년제 약대의 효시가 이화여대 약대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9월 경성약전 (서울대약대의 전신)은 사립서울약학대학(이하 사립서울약대) 으로 개명하고 동년 10월 초 약학대학 중 가장 먼저 개강하여 정상 수업을 시작하였다.
학제는 여전히 전문부 3년제였으나 1948년에 전문부와 학부로 개편되면서 희망자는 1년을 더 수학하여 총 4년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1948년 8월 우리나라 정부가 수립되었다. 사립서울약대 전문부(3년제)는 1948년 6월 제1회(92명), 1949년 2월 제2회(97명), 1949년 7월 제3회(94명), 1950년 5월 제4회(110명) 졸업생을 배출하고 그 존재를 마감하였다.
한편 4년제 학부는 1950년 3월에 제1회(11명), 1950년 5월에 제2회(11명)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로부터 4년을 빼면 1946년에 4년제가 도입된 셈이다. 물론 1946년 당시에는 4년제라는 제도가 없었다.
즉 당시에 3년제 전문부로 입학했던 학생 중 일부가 1948년에 추가로 생긴 학부(4년제)로 옮겨 1년을 더 공부(총 4년)하고 1950년에 졸업한 것이 최초의 4년제 졸업생이 아닌가 한다.
사립서울약대는 1950년 한국전쟁 (6.25)시 부산으로 피난을 가 있었는데 1950년 9?28수복 후 문교부(文敎部)는 아직 부산의 가교사를 쓰고 있던 사립서울약대를 4년제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에 편입시키고 전문부는 폐지하였다 (9월 3일 각의 결정).
그래서 1951년 9월 29일 졸업생(18명)부터 국립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생(제5회)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이로써 약학교육은 4년제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서울대약대는 1953년 9월부터 을지로 6가에 있던 교사로 복귀하였고, 1959년 5월 종로구 연건동에 있던 서울대음대와 교사를 교환(이전은 8월)하여 1975년 7월 말까지 16년 간 사용하다가, 1975년 8월부터 관악산에 있는 서울대 종합캠퍼스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는 1945년에 행림원(杏林院, 의약대학을 이렇게 부름) 약학과(정원 100명)를 신설하였다.
1945년과 1946년 신입생은 전문부(3년제)와 학부(4년제)의 이중 구조로 모집하였다가 1947년 6월 20일, 21일 양일간에 걸쳐 편입시험을 시행하여 응시자 전원을 4년제 학부에 편입시켰다.
편입시험에 응시하지 않은 학생 43명은 1948년 7월에 3년제로 졸업(3년제 제1회 졸업생)하였는데, 이로써 전문부는 끝나게 되었다. 1949년 7월에 첫 4년제 약학사 졸업생(55명, 제2회 졸업생이라 부름)을, 1950년에는 제3회 졸업생 44명을 배출하였다.
이렇게 보면 이화여대의 약대 4년제는 49년 7월에서 4년을 뺀 1945년에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1946년 4년제를 시작하여 1950년 3월에 첫 4년제 졸업생을 배출한 사립서울약대보다 입학에서는 1년, 졸업에서는 8개월 정도 앞선 것이다.
이화여대 행림원(의약대학) 약학부는 1954년 약학대학으로 승격하였다. 요컨대 이화여대를 우리나라 약대 4년제의 효시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4년제 약학교육의 효시는 서울약대가 아닌 것이다.
2008-03-26 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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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6> 아시아약학대학협회 (AASP)와 우리의 아시아 이니시어티브
지난해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AASP (Asian Association of Schools of Pharmacy)의 제3회 컨퍼런스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다. AASP는 2000년 10월, 시드니에서 열린 FAPA 모임 뒤에 약학교육 관련자들의 합의에 의해2001년 4월 태국에서 아시아의 약대 교수들 (16개국 54개 약대로부터 약 105명) 이 모임으로써 태동되었다.
제 1회 컨퍼런스는 2004년 6월 중국 북경에서, 제2회는 2005년 11월 태국의 방콕에서 열렸으며, 제4회는 2009년 말레이시아의 페낭에서 열리게 되었다.
AASP는 아시아 대륙은 물론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Asia Times Online이 정의하는 기타 아시아 지역 39개국 406개의 약학대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필자는 2006년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이사가 된 이래 필리핀의 Cebu (금년 1월) 및 대만의 타이페이 (금년 6월)에서 열린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이번 컨퍼런스에는 우리나라에서 20여명 (이중 10여명은 전주우석대)이 참석하였다. AASP는 주로 아시아 각국의 약학교육에 관하여 논의하는 것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예상과 달리 각국의 “약학대학협의회”와 같은 단체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고 있지 않다.
이 것은 아마도 각국의 약대협의회장 또는 학장의 임기가 대개 2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들을 주축으로 모임을 구성할 경우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 각국에 약학교육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직 깊은 교육에 관해 깊은 논의를 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AASP는 현재 부득이 교육문제와 약학 양측을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무튼 이 모임은 아시아 약학인들 특히 태국, 필리핀,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의 약학인들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최근 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약학과 약업을 둘러싼 각국의 이니시어티브 쟁탈전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약학 질서에 일본이라는 새로운 축을 추가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약학대학 (중국약학대학교 및 심양약학대학교)를 갖고 있다는 강점을 살려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고 있다.
동남 아시아 각국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던지 또는 약학의 수준이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서로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의 입장은 약간 어정쩡하다. 높은 학문 수준으로 아시아에 어필하기에는 일본에 밀리고, 연대감으로서도 동남아 각국 간의 오랜 친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아시아 지역에서 우리나라가 소외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다소 학문 수준이 낮은 AASP와 같은 아시아 지역 학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라는 지역 내에서 아시아인들끼리의 이해와 친목은 우리나라의 미래 발전은 물론 아시아라는 공동가치 개발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도 언제가 EU와 같은 바람이 불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일본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높은 수준의 학회와 함께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다소 친목 중심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발걸음은 부지런해야 한다.
2008-03-12 0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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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 일본약학사학회와 고령화 사회
작년 (07년) 4월 14일 필자는 일본약사학회 (藥史學會)총회 (동경대학약학부 강당)에서 ‘한국의 약학사’라는 특별강연 (강연요지; ‘藥學史雜誌’ 제42권 제1호)을 하였다.
이는 2006년 12월 20일 서울 시청 옆 프레지던트 호텔의 조그만 객실에서 이상섭 서울약대 명예교수님의 소개로 오쿠다준 (奧田俊) 名城大 명예교수를 비롯한 일본약학사 연구회원 수명에게 고 김신근 서울약대 명예교수님의 역저인 ‘한국의약사’ (2001, 서울대 출판부)의 내용을, 그리고 작년 3월8일 서울대천연물과학연구소에서 동경대 약대의 츠타니 키이찌로 (律谷喜一郞)교수를 비롯한 일본의 근대약학사 연구그룹에게 같은 내용의 강의를 반복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5000년간의 약학사를 1시간 강의에 맞게 압축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후 이 강연 내용에 최근의 약계 역사를 추가하여 ‘한국약학사’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약학회지’ 제51권 제6호 (2007)에 게재하게 되어 이 일에 발을 들여 놓은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보람도 느끼고 있다.
오늘은 일본약사학회에 가 보고 놀란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번째 놀란 것은 ‘藥學史雜誌’의 연조가 40년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또 그 내용이 얼마나 상세한지 실제로 있었던 일보다 기록의 양이 더 많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었다. 부러웠다. 그리고 약학사에 관한 학회나 연구자, 연구논문이 거의 없는 우리 현실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한국약학사’ 논문을 집필하게 되었고, 이 때 한약분쟁이나 의약분업, 그리고 6년제 실시 과정 등을 상세히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두번째 놀란 것은 일본약사학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대개 상당한 고령자 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약대를 정년퇴임한 교수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 학회의 이사회에 참석해 보니 약 30명 참석자의 평균 연령이 82세 정도였으며 90이 넘은 분도 3분이나 계셨다. 과연 일본은 고령화 사회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고령화 사회라는 증거는 TV에서도 보인다. 일본 TV의 연예 프로그램의 사회자 중 70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급 사회자가 적지 않은데, 이는 싱싱한 (?) 젊은이만 사회를 보는 것인 줄 아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었다.
세번째로 놀라운 것은 이 분들이 몇 시간에 걸친 회의를 전혀 지루해 하지 않으며 예산 및 결산 등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같으면 젊은이에게 시켜도 좋을만한 일들을 어르신들 스스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고 있었다.
만약에 궂은 일은 젊은이에게 시키고 고령자는 대접만 받으려고 했다면, 일본의 고령화 사회는 이처럼 건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요컨대 일본이 오늘날과 같은 건실한 고령화 사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한다’라는 고령자들의 자주독립정신의 덕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학사 연구의 필요성은 일본보다 우리에게 더욱 시급하고 절실하다. 그러나 약학사를 젊은 사람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무리이다. 그들에게 당장에 닥친 일들이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이제 약학사는 약대를 정년퇴임하신, 그래서 젊은 사람들보다 시간 여유가 있으실 것 같은 명예교수님들께서 맡아 주시면 어떨까 한다. 그래야 비로서 우리나라도 참다운 고령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참다운 고령화 사회를 위하여 건배!
2008-02-26 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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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 21세기는 맞춤약학 시대 (下)
21세기의 꿈인 맞춤약학 은 환자의 유전적 특성 검사를 통해서 실현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하여야 한다.
첫째, 환자로 하여금 약물유전학적 검사에 대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환상을 갖게 해서는 안된다. 이는 아직 약물유전학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전자뿐만 아니라, 식사, 환경 및 의료와 같은 외부 인자도 약물요법의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검사는 도입초기에는 비쌀 것이기 때문에 부자만 이 검사의 혜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보험회사도 이 비용을 부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셋째, 제약회사는 소수인종 이나 유전적으로 약효가 안 나타나는 그룹 또는 부작용위험그룹 으로 검사 결과가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신약을 개발하기 꺼려 할 것이다. 만약에 그런 그룹을 위한 약이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약은 대단히 비쌀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런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기술이 발달해도 별 혜택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넷째, 사람의 유전적 특성을 세밀하게 분류해 놓으면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문제가 생길 우려가 높다. 예컨대, 약이 잘 안듣는 사람, 또는 약으로 치료하기 힘든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은 보험료를 더 내야 보험에서 받아 주려고 할지도 모른다. 또 자신이 병에 걸리면 치료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이 알거나 또는 스스로가 알게 될 때에 받게 될 정신적인 문제도 심각한 문제이다.
다섯번째, 의사나 환자는 물론 가족이나 고용주 또는 보험회사에 대해 이 정보를 어느 정도 엄격하게 괸리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약물유전학적 검사의 보급과 이를 통한 맞춤약학의 실현을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은 이 검사의 윤리와 안전의 수준에 대해 국제적인 합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특히 선진국과 비선진국간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1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시험하고 분석할 때에 FDA의 가이드라인을 따르도록 하는 '생명윤리및안전에관한법률' 을 공포하였다.
이런 접근법을 통해 한 나라의 윤리와 안전에 관한 수준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부당한 비판으로부터 이 검사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가끔 과학의 특정 분야에 대해 사회가 오해를 해서 그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소비자 단체나 매스컴의 의견에 부단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가 약물유전학의 윤리적인 측면에만 관심을 가지고 지나친 규제를 강요한다면, 결과적으로 이 기술의 발전에 의해 혜택을 볼 수도 있었던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게 도기 때문이다.
셋째 이 비싼 기술이 부자 환자에게만 혜택을 주게 되지 않도록, 그리고 제약회사가 유전적 특성면에서 소수인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의 개발을 회피하지 않도록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넷째,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 공개되어 병의원이나 직장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없도록 유전정보를 엄격히 관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약물유전학적 검사를 통해 맞춤약학 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지나치게 서둘지 말고 겸손하고 양심적인 태도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지 않던가?
2008-01-16 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