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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3> 복받는 인생
나는 인생이란 조각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조각배 안에서 우리는 성실하게 노를 저어야 한다. 또 경솔한 행동을 하여 배가 전복되지 않도록 조심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배의 항해가 반드시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바다에 태풍이 불면 아무리 성실히 노를 저어도 배가 풍랑에 침몰할 수도 있다. 항해 중에 심한 태풍을 만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인생도 성실하게만 산다고 해서 반드시 끝내 성공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에 커다란 사건이나 사고를 만나지 않아야 한다. 커다란 사건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는 삶은 그 자체가 복 받은 삶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앞 둔 신랑 신부에게 그런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한다. 그렇다. 내가 성실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가 이다. 성경 시편 1장1절에는 복을 받는 사람의 조건이 써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성경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사는 방법을 일러 주신 책이므로, 마치 전자 제품 제조업자가 만든 사용 매뉴얼과 같다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성경대로 살지 않는 것은 매뉴얼대로 전자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 그 인생은 고장이 나기 쉬울 것이다. 요컨대 시편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향유하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가지 추가하고 싶은 것은 “범사에 미리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미리”인데 어떤 일이 잘 되고 나서 감사하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 것 같은데, 일이 되기도 전에 감사부터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늘 불평 불만을 늘어 놓는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또 늘 부정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은 일에 대한 비전이 없다. 그 사람은 이미 복을 못 받은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범사에 늘 미리 감사하는 사람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고 친절하며 온유하게 대할 것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게 된다. 또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므로 주어진 일에 대해 비전을 갖게 된다. 그 일은 잘 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범사에 미리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복을 이미 향유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어서 언제 왜 어떤 복을 주시는지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다. 그저 하나님 말씀을 믿으며 성실하게 사는 것까지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길 일인가 보다. 나도 나름대로 어려운 순간도 많이 지나 왔지만, 지금 이순간 되돌아 보면 나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문제도 그렇지만 직장이며 가정이며 그 밖의 모든 소소한 일까지 정말 모두 하나님 은혜로 오늘날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늘에 누리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었다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지난 일을 되돌아 보면 나는 분명히 분에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 몽땅 감사할 일 뿐이다. 이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면서 앞으로 다가 올 인생도 미리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대해 보고자 한다.
2009-05-26 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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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2> 1등의 운명
절친한 두 친구가 밀림 속을 탐험하고 있었다. 그때 저만큼 앞에서 먹이를 발견한 굷주린 호랑이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 왔다. 그러자 한 친구가 갑자기 허리를 굽히고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한 친구가 “아니 어짜피 호랑이의 걸음을 이기지 못 할텐데 운동화 끈은 왜 조여 매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껄걸 웃으며 “자네보다 빨리 뛰기만 하면 나는 살 수 있네”라고 말하고 쏜살같이 혼자 도망쳐 버렸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 그만 둔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쓴 책, “왕도는 없고 정도만 있다”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몇 년 전 교회의 ‘크리스챤 CEO 과정’에서 같이 공부하던 중에 저자로부터 받았다. 이 이야기는 냉랭해져 가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고 한다. “바람처럼 달려오던 호랑이는 뒤에 처진 사람보다는 앞에 뛰어가는 건강한 사람이 더 맛있을 것 같아 열심히 앞 사람을 쫓아갔다”.
멋진 반전이다. 의리 없는 친구가 죽게 되었다니 고소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교육에 극성인 우리나라 젊은 엄마들이 떠오른다. 엄마마다 모두들 자기 애를 일등 짜리 애를 만들 욕심으로 과외다 뭐다 해서 안 시키는 것이 없다. 일등 만드는 것이 정말 좋은 일인지 여부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공부도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고 본다. 나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했어도 농구 선수는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키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천부적으로 두뇌가 나쁘거나 적성이 다른 곳에 있는 아이는 아무리 닥달해도 공부를 잘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아이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는 것은 날보고 “너도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될 수 있으니 열심히 노력해라” 라고 하는 것처럼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말이 될 것이다.
과외 같은 사교육의 문제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공부로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초·중·고 학생들을 지나치게 밤 늦게까지 공부시키는 것은 일종의 아동 학대 행위가 아닐까? 따라서 마음 같아서는 밤 늦게까지 과외 시키는 부모를 모두 아동 학대 죄로 처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창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시절에 이런 학대를 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젊은 시절의 학대에 의한 후유증을 앓아야 할지도 모른다. 통계까지는 모르지만 점점 눈이 나빠지고 등뼈가 휘는 등 건강에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조금 확대 해석하자면 지나친 과외는 모든 국민을 쇠약한 체질로 만드는 원흉이다. 몸이 쇠약해지면 병에도 잘 걸릴 것이니 과외는 또한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애가 실력이 달려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인 경우, 이를 가만히 두고 보는 걸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또 조금만 더 알려 주면 실력이 늘어 나 공부에 자신감을 갖게 될 것 같은 경우에도 과외를 시키지 말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내 부탁은 과외를 시키더라도 제발 웬만큼 시키라는 것이다.
애를 일등 만드는 것이 애써 노력해서 애를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 후 7개월 된 예쁜 우리 손녀의 미래를 내다보며 공연한 걱정에 한 말씀하였다.
2009-05-06 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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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1> 정년퇴임과 시간 보내기
환갑이 지나고부터 부썩 정년 퇴임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선배 교수의 정년 퇴임식에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 정년퇴임식을 하는 교수마다 자신의 일생을 정리한 책자를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인생의 추억이겠지만 과거의 화려함이 오늘날 자신이나 참석자들에게 무슨 큰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인생이 다 그런 거지 하면서도 쓸쓸한 바람이 이는 것을 어찌 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교수는 흔히 정년 퇴임식을 하는데 회사나 다른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왜 퇴임식을 별로 하지 않는가 생각해 보았다. 아마 퇴임식을 마련해 줄 제자들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무튼 다른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퇴임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변의 사람들은 나보고 정년 퇴임 이후에 대비한 준비를 하라고 권고한다. 어영부영 하다가는 얼떨결에 정년 퇴임을 해 당황하게 된단다. 한 고동학교 동창 친구는 플룻과 섹스폰을 배운다면서 나보고도 아무 악기라도 하나 배우란다. 다른 대학에 근무하는 선배 교수는 부는 악기는 혈압에 나쁘니 기타나 아코디온을 배우란다. 자기는 이미 연주에 심취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여행을 다녀 보라는 권고도 있다. 다만 모텔이나 여관이 더러우니 시트와 베게는 갖고 다니라는 조언도 첨가한다. 아닌게 아니라 퇴직 후가 걱정이다. 지금은 미래가 아닌 하루 하루의 일을 생각하기에도 체력이 부치지만 정년을 맞이한 후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나는 교양 있게 늙어 가기 위해서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악이나 미술 또는 영화 감상 등은 모두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대상이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기술 또는 취미가 바로 교양이다. 나는 혼자 하는 취미 생활 중에서 마음에 딱히 와 닿는 것이 없다. 악기는 음악 지식이 없어서 자신이 없고, 영화 감상은 좀 나은데 매일 구경가기도 좀 그렇다. 내가 잘하는 게 무언가 생각하다가 옛날에 배운 당구를 다시 쳐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당구도 혼자서는 못 치고 적어도 한 명의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 참, 글을 쓰는 것도 혼자 하는 것이니 교양 있는 취미 생활이 되겠구나 싶다. 사실 그래서 “약창춘추”를 취미 삼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글 쓰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직 30회 밖에 못 썼는데 벌써 쓸 내용이 고갈된 느낌이다. 어짜피 잡문을 쓰기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쓰지 않고는 못 견딜 절심함이 없는 상태에서 쓰는 글은 정말로 잡문에 불과해 진다.
얼마 전 아내가 나를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하는 말이 이제 정년 퇴임하면 아내를 졸졸 따라 다니는 신세가 될 것이니 지금부터 자기를 따라 다니는 연습을 하란다. 귀찮아 하고 의미없어 하지 말고 쇼핑이나 아이쇼핑을 즐기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여지껏은 무어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쇼핑 등을 시간 낭비로 생각해 왔는데 이제 생각을 바꾸어 아내를 따라 다니되 억지로가 아닌 기쁜 마음으로 따라 다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정년퇴임 후의 시간 보내기를 걱정하기에 앞서 정년 후에도 건강이 따라 줄 수 있을 지가 사실 더 걱정이 된다. 솔직히 이제는 여기 저기 쑤신 데도 많고 이것 저것 먹는 약도 많다. 그런데 정년 후 시간이 남아 무료해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 아닌가 싶다. 게을러서인지 자꾸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2009-03-31 0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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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0> 새해의 소망-갈릴리 호수
새해가 맞이하여 소망을 생각해 본다. 이스라엘에 가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갈릴리 호수가 정말로 아름답다고 한다. 갈릴리 호수는 해저 212m에 있는 호수인데, 이 호수 물이 넘쳐 흐르는 강이 요단강이고, 요단강이 흐르다 멈추는 곳이 해저 400m의 사해라 한다. 사해의 주변은 갈릴리 호수와 정반대로 황량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성경의 맥을 잡아라’라는 강의와 책으로 유명한 문봉주 장로는 갈릴리 호수와 그 주변이 아름다운 이유와 반대로 사해 주변이 황량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갈릴리 호수의 물의 기원은 허몬산의 눈 녹은 물과 호수 밑에서 솟는 샘이라고 한다. 늘 새로운 물이 호수에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 이 물은 호스를 채울 뿐만 아니라 호수를 넘쳐 쉼 없이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갈릴리 호수는 물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을 흘려 보내고도 있는 것이다. 반면에 사해는 요단강으로부터 물을 받기는 하되, 그 물은 사해에서 증발하여 사해를 넘쳐 흐르는 물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요단강 물의 종점이 사해이다. 갈리리 호수의 주변이 아름다운 것은 두 가지 경로로 맑은 물을 받을 뿐만 아니라, 받은 물을 요단강으로 넘쳐 흘려 보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대로 사해 주변이 황량한 것은 요단강 물을 받기만 할 뿐 흘러 넘치는 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갈리리 호수가 눈 녹은 물과 샘물을 받듯 한가지 경로 이상의 경로로부터 많은 복을 받고, 또 그 받은 복이 넘쳐 주변에 흐르게 하는 인생이 스스로는 물론 그 주변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인생을 축복 받은 인생임과 동시에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사해와 같은 인생은 나름대로 받은 복을 저만 혼자 감싸 안고 주변에 흘려 보내지 않아, 스스로는 물론 주변을 황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은, 주변에 가면 무언가 얻어 먹을 것이 있는 느낌을 주는 그런 인생이 되라는 말씀을 하신다. 공연히 근처에 가고 싶고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바꾸어 말하면 잘나기는 했으나 찬바람이 쌩 하고 나는 인생이 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냉철한 이성보다는 따듯함이 묻어 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필자의 새해 소망은 우선 갈릴리 호수와 같이 많은 복을 받는 것이다. 동시에 필자를 만나는 사람마다 덩달아 복을 받는, 다시 말해서 필자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그래서 주변이 온통 다 복을 받는 그런 한 해, 그런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나만 복을 받고, 주변이 온통 황량해지는 그런 사해와 같은 새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고 믿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비결은 성경 말씀대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축복의 통로가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예수님의 계명인 이웃을 사랑하기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웃을 사랑하기란 애써 예수님을 닮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여 많은 복을 받고, 예수님을 애써 닮아 많은 복을 나누어 줌으로써, 갈릴리 호수처럼 스스로와 주위가 아름다워지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2009-03-10 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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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9> 약학 소고 (藥學 小考) - 2
약학은 종합과학이다. 신약개발은 혼자 할 수 없다. 화학, 생물, 물리뿐만 아니라 면역학, 미생물학, 독성학, 약리학, 약제학, 분석화학, 유전학 등 수많은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의 힘을 합쳐야 한다. 이렇게 해도 수만 개의 후보물질에 대해 수십억 원의 돈을 들여 10여 년 간 연구해야 하나의 신약이 탄생할까 말까 할 정도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신약개발이다. 이처럼 신약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신약개발을 주도하는 사람이나 회사는 다양한 전공의 우수한 연구자들을 채용하고 훈련시켜 효율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교향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악기 전공자들이 모여서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약학대학에서는 신약개발 전반을 공부한다. 오직 약학대학만이 신약개발의 전 과정을 교육시킨다. 약학은 피아노 전공이나 바이올린이 아니라 지휘자학 전공과 같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악기 전반을 이해하여 전체적으로 하모니를 이루게 하는 지휘자학 말이다. 신약개발은 너무나 확률이 낮고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리스키한 과제이기 때문에 지휘자의 판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성공도 못할 과제를 오랜 세월 계속하면 막대한 돈이 낭비된다. 도박에서의 타짜는 카드를 손에 쥐는 순간 카드들 버릴까 배팅할까, 그리고 얼마나 배팅할까를 칼같이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신약개발에서의 타짜 (명 지도자)도 연구하고 있는 물질에 대해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투자해야 할 것인가를 가능한 한 연구 개시 초기에 칼같이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오케스트라에 명지휘자가 중요하고 축구팀에 명감독이 필요하듯 신약개발팀에 명 지도자가 대단히 중요한 이유이다. 약학대학은 명지도자의 배출을 목표로 교육을 한다. 신약개발의 인프라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가 국제경쟁력을 갖는 좋은 방법은 명지휘자, 명감독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축구가 월드컵 4강에 들었을 때, 히딩크 감독의 공로가 컸던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약은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물질이다. 지구상의 어떤 보석보다도 더 비싼 것이 약이다. 그래서 약학은 인류의 생명을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 오는 학문이다. 웬만한 신약개발 하나면 자동차 수백만 대를 수출하는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반 공산품의 이익률이 수%에 불과한 반면 신약의 이익률은 30%에 이르기까지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신약개발을 21세기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10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그러나 경제에 앞서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약의 본질이다. 좋은 약 하나는 수만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다. 페니실린이 개발되고 나서 인류의 평균수명이 10년간 연장되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 오늘날 수술이 발달되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이 구해지지만, 마취제, 항생제, 수액제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약으로 극복하지 못한 질병이 얼마나 많은가? 예컨대 일생을 통하여 서너 명 중 한 명이 암에 걸리지만, 암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항암제는 아직 개발되지 못하였다. 만약 획기적인 항암제를 우리가 개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겠는가? 약학은 이와 같은 기적의 신약개발을 꿈꾸는 설레임의 학문이다.
2009-02-24 1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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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8> 약학 소고 (藥學小考) -1
새해를 맞이하여 진부하지만, 약학이란 어떤 학문인가를 2회에 걸쳐 다시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약학은 약이란 물질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약은 인체의 생리적 조건이 정성 상 상태를 벗어나지 않도록 예방해 주거나, 비정상 상태의 생리적 조건 (병)을 정성적 상태로 되돌리는데 (즉,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물질이다. 약이란 물질은 화학적으로 또는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다. 화학이 물질 자체에 관심을 갖는 학문이고, 생물이 생명현상에 관심을 갖는 학문이라면, 약학은 물질이 생명이라는 현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상호작용을 물리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상호작용의 원리가 마침내 밝혀졌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약학이란 약이란 물질이 생명현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화학과 생물 및 물리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임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약학은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열쇠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건강과 병들음, 노화, 생로병사와 같은 생명현상의 비밀은 자물쇠와 같다. 우리는 열쇠를 이용하여 자물쇠를 열고 싶다. 생물학이 자물쇠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화학은 열쇠를 만드는 방법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약학은 아직껏 열 수 없었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새로운 열쇠를 설계하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수많은 헌 열쇠 꾸러미 중에서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선택하여 자물쇠를 여는 방법을 연구한다. 새 열쇠를 설계하는 분야를 새로운 약을 창조한다고 해서 창약학 (創藥學) 또는 신약개발학이라고 부른다. 헌 열쇠를 사용해서 자물쇠를 여는 분야를 기존의 약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용약학 (用藥學) 또는 임상약학 (臨床藥學)이라고 부른다.
약학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학문이다. 원시인도 경험을 통하여 나름대로 초근목피 중에서 통증을 멎게 해주는 약물을 발견해 내는 창약과 이를 가공하는 조제학 그리고 환자에게 사용하는 용약학을 발전시켜 왔다. 물론 당시에는 영혼을 다스리는 무속과 약학 떠는 의학이 분리되지 않았었다. 세월이 가면서 무속이 분리되어 나가고 또 의학과 약학도 분화되어 발전되어 왔다.
약학은 응용과학 (applied science)이다. 먼저 자물쇠의 비밀을 연구한 다음, 이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설계하는 일, 그리고 수많은 세상의 열쇠 중에서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고르는 일 모두가 화학, 생물, 물리 지식을 어떻게 (how)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응용과학이다. 왜 (why) 그런 일이 일어날까를 연구하는 순수과학 또는 기초과학 (pure science)과는 관심사가 다르다. 요즘에는 약학을 응용과학이라기 보다 평가과학 (評價科學, regulatory science) 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어 나고 있다. 평가과학은 어느 것 (which)을 선택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는 새로운 과학이다. 완벽하게 안전한 약은 없다. 항암제는 부작용이 심해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안전성의 잣대를 높였다 낮추었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판단이 어렵다. 이런 병에 이 정도의 부작용을 갖는 약을 시판하도록 허용해야 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의식 수준이나 전통, 관습 등까지도 망라한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지식이 필요하다. 약학은 평가과학의 대표적인 학문이 되었다.
2009-02-11 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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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7> 일본 학회의 세계화 움직임과 우리
필자는 2008년 10월 31일부로 일본약물동태학회(JSSX)의 펠로우로 선정되어 상패를 수여 받았다. 이는 2005년 11월 6일에 미국약학회(AAPS)의 펠로우로 선정된 이래 두 번째의 일이다.
사실 필자는 일본약물동태학회에 펠로우 제도가 이미 있어서 올해에도 몇 명의 국내외 학자를 펠로우로 추가 선정하는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펠로우 제도를 올해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일본 학자 31명과 대만학자 1명, 그리고 필자, 이렇게 총 33명을 펠로우로 선정한 것이었다. 펠로우로 선정된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다가도 동경대학의 스기야마 교수 등 나머지 32명의 찬란한 업적을 보면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일을 계기로 왜 일본 학회가 한국과 대만 학자들까지 펠로우로 선정하였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한 일본 약학자들은 일본의 약학, 그 중에서도 약물동태학 분야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은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언어 문제도 있고 해서 일본 약학을 세계의 중심이 되게 만들지 못 하였다. 실력은 최고인데 왜 늘 미국 중심의 학회에 따라 다녀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의 약학을 세계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방법론으로 생각한 것이 일본 학회의 국제화이고, 이를 위해 우선 일본이 아시아 지역의 맹주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일단계로 한국이나 중국, 대만의 협조가 불가결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대표적인 약물동태학자 스기야마 교수가 국제약물동태학회(ISSX)의 회장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추진했던 일이 아시아태평양약물동태학회(APISSX)의 창설이었다. 스기야마 교수의 부탁으로 필자는 2006년 5월 제1회 APISSX 학회를 제주도에서 개최하였다. 그 결과는 대 성공이었고 이를 계기로 필자는 그 후 이 학회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갖게 되었다. 제1회 행사의 성공에 탄력을 받은 APISSX는 제2회 학회를 2008년 5월 중국 상해에서 개최하게 되었고, 제3회 학회를 2009년 5월 태국의 방콕에서 열게 되었다.
이렇듯 아시아 지역에서 이니시어티브를 쥐기 시작한 일본 학자들은 JSSX를 일본 국내의 학회를 뛰어 넘는 국제학회로 만들기에 착수하였다. 즉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할 때 적어도 한 세션을 APISSX와 공동으로 조직하여 영어로 진행하도록 하였다. 필자 등은 이러한 일본 측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데, 아마 이 협력이 필자에게 펠로우라는 칭호를 주도록 만들었던 것 같다.
필자가 이들의 생각에 적극 호응하고 있는 이유는 일본이 세계 약물동태학계의 새로운 태양으로 부상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학회는 우리에게 거리적으로 먼 느낌이 있고, 솔직히 우리가 미국 학회에서 주역이나 조역을 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많아 보인다. 이에 반하여 일본 학회는 반드시 우리나라와 협력하지 않고서는 세계적인 학회로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본 학회의 세계화 움직임은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친일파" 다운 견해일지는 모르지만 일본 학회의 세계화 움직임을 적극 후원하고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우리 학회의 세계화를 위해서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2009-01-07 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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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6> 한국의약품법규학회와 평가과학
지난 11월 25일 제4회 한국의약품법규학회 총회 및 학술대회가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총회에서 필자가 회장으로서 한 인사말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유효성과 안전성은 의약품 등의 가치를 결정짓는 2대 요소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유효하고 얼마나 안전한 제품이 유통되도록 허용할 것인가는 규제기관과 생산자 및 소비자의 지대한 관심사임과 동시에 이들 간의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유효하고 완벽하게 안전한 제품을 유통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처럼 완벽한 제품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규제수준에 합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학회의 영문 명칭에 Regulatory Sciences라는 단어를 쓰고 있고, 이를 법규학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Regulatory Science를 평가과학이라고 부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가과학이란 국민 다중의 복리를 위하여 유효성과 안전성의 수준을 어떤 레벨로 정할 것인가를 여러 가지 인자들을 평가한 후에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순수과학이 why에 주목하고, 응용과학이 how에 주목한다면 Regulatory Science 즉 평가과학은 which에 주목합니다.
오늘 오전 세션에서 의약품 등의 제품에 어떻게 표시를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를 토의하였고, 오후 세션에서는 화장품의 규제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와, 신약개발 時 의약품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전 연구 검토를 의무화 할 것인가를 토의할 예정입니다. 이런 주제에 있어서 규제기관과 생산기관 또는 소비자 간의 이해가 충돌하게 됩니다.
의약품법규학회는 이러한 이해 충돌 당사자들 간의 불필요한 오해와 충돌을 완화해 보자는 취지에서 2004년 4월에 창립되었습니다. 법규학회의 방법론은 기본적으로 평가과학적 접근입니다. 쉽게 말해서 완벽한 유효성과 안전성이라는 이상과, 생산, 유통 및 소비 과정에서의 제한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평가과학적인 방법론에 따라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의약품법규학회는 지난 4년 동안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만, 처음에 생각했던 포부에 비하면 4년간의 성취는 매우 미미해 보입니다. 이는 식약청과 제약업계, 화장품업계, 건식업계 여러분의 뜨거운 협조에도 불구하고, 회장인 저의 능력이 부족한데 원인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다만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 우리 학회를 대폭 발전시킬 수 있는 분을 새로운 회장님으로 선출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앞으로 새 회장님과 함께 법규학회의 발전을 축원하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각종 유효성 안전성 규제수준이 합리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우리 학회가 규제기관과 생산기관 및 소비자 모두의 선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인사말씀 뒤에 진행된 신임회장 선출에서는 2008년 말로 대한약학회장의 임기를 끝내는 전인구 교수(현 의약품법규학회 수석 부회장)를 만장일치로 새 회장으로 선출하고 회장단 등의 구성을 신임회장에게 위임하면서 총회를 끝냈다. 학회장을 마치면서 재정 면에서 많은 부족함이 있었던 점, 그리고 학회지인 "의약품법규학회지"를 창간하였으나 논문 투고가 부족하여 학술지를 제 때에 잘 발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던 점 등이 특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8-12-24 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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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5> 약의 날
지난 11월 19일 롯데호텔 (잠실) 3층 크리스탈볼룸에서 제약유통 세미나, 의약품안전정책 세미나, 기념식, 축하 리셉션 및 자선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제22회 약의 날 행사가 열렸다.
약의 날은 1953년 11월 12일 약사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동년 12월 18일에 제정 공포된 것을 뒤늦게라도 기념하기 위하여 1957년 11월 18일에 제1회 기념행사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2회 약의 날부터는 10월 10일에 개최되었는데 이는 10월 10일에 대한약전이 공포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1972년 제 16회 약의 날까지 매년 10월 10일에 약의 날 기념식을 해 왔었다. 그러다가 1973년에 약의 날, 귀의 날 등 각종 보건과 관련된 기념일들이 "보건의 날"로 통폐합 조치되는 바람에 약의 날 행사는 오랫동안 중단되어 왔다.
그러다가 필자가 식약청장으로 취임한 뒤 부활되어 2003년 10월 10일에 제17회 약의 날 부활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다. 그 후 2004년에는 10월 8일, 2005년에는 11월 18일, 2006년에는 11월 15일, 2007년에는 11월 15일, 그리고 금년에는 11월 19일에 약의 날 기념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2003년 3월 3일 식약청장에 취임하고 보니 식품 관련으로는 식약청이 주관하는 "식품 안전의 날"이라는 기념식이 있었다.
유공자에게 훈장도 수여하는 등 상당히 의미가 있어 보이는 행사이었다. 과거에 약의 날이라는 행사가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식품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약품에 관한 기념행사가 없는 것이 못 내 아쉬웠다.
그래서 제약협회나 약사회 등 관련단체와 접촉하여 약의 날을 부활시킬 생각이 없는가를 타진하였다.
관련단체장들과 일련의 모임을 가지면서 필자는 만약에 관련단체 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약의 날을 식품안전의 날처럼 식약청이 주관하면 어떨까 망설이고 있었다.
식약청이 주관하면 우선 예산이 책정되기 때문에 경비 조달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경우와 달리 약과 관련된 유공자들에게 훈장도 수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민간 주도의 기념일을 관 주도의 날로 만들면 어쩐지 그 가치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또 관련단체들도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약의 날을 민간 주도로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식약청은 약의 날이 부활될 수 있도록 뒤에서 행정적인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드디어 2003년 10월 10일에 제17회로 부활된 약의 날 기념식이 코엑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코엑스 주변 삼성로의 교통이 참석자들의 차량으로 마비될 정도의 전국의 의약품 관련 산업에 종사자들이 모이는 큰 행사를 치루고 싶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의약품 산업의 크기와 중요성을 정부와 국민들에게 부각시키고 싶었다.
실제보다 작게 그리고 낮게 평가된 의약품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약의 날 기념식 참석도 추진하였으나 축하 영상 메시지를 받아 행사장에서 상영하는 정도로 만족하였던 기억도 새롭다.
아무튼 부활된 약의 날 행사가 정착되어 가는 것에 큰 기쁨을 느끼며, 앞으로 약의 날 행사가 단순한 기념식으로 끝나지 않고 약과 약업인의 가치를 한 단계 제고시키는 모티브로 작동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08-12-10 0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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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4> 우리나라 약학연구의 현황
우리나라 약학연구 논문의 뿌리는 아무래도 대한약학회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1914년 1월 일본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약학회”가 설립되었는데, 1945년 광복이 되면서 해체되고 1946년 4월 13이리에 서울약학대학에서 한국인을 중심으로 한 “조선약학회”가 창립되었다.
1946년 12월 14일에 서울약학대학에서 개최된 첫 학술모임에서 총 6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연구결과가 논문 형태로 인쇄된 것은 1948년 3월에 창간된 “약학회지”가 처음이었다. 1951년에는 “조선약학회”가 “대한약학회”로 개칭되었으나 학회지의 이름은 여전히 “약학회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한약학회는 1977년에 영문학회지인 Archives of Pharmacal Research도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 잡지는 1996년부터 미국 ISI사가 정하는 SCI (Science Citation Index)의 리스트 (expanded)에 등재되었으며, 2007년부터는 미국 Springer사가 출판하고 있다.
한편 한국생약학회는 1970년부터 “생약학회지”를, 1995년부터는 영문학회지인 “Natural Product Science”도 발간하고 있다. 한국약제학회는 설립된 1971년부터 오늘날까지 “약제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끝으로 1992년 설립된 한국응용약물학회는 1993년부터 국문 학회지인 “응용약물학회지 (The Journal of Applied Pharmacology)”를 발간하다가 2008년도의 제16권 제1호부터는 제호를 “Biomolecules & Therapeutics”로 바꾸고 영문으로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국내에서 연구된 약학 관련 논문은 주로 이상에서 언급한 잡지에 게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2007년말까지 이들 논문집에 발표된 논문의 총수를 합쳐보면 9147편에 이른다. 이로부터 약학 연구가 해마다 활발해 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약학 연구의 발전 현황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ISI사의 SCI급 국제 학술지에 우리나라가 약학자가 발표한 연구논문을 통계이다.
최근 필자 등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내 약학자가 SCI 급 국제잡지에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은 1979년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1979년 2편, 1980년 1편, 81년 1편, 82년 1편, 82년 2편, 84년 3편이던 SCI급 논문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매년 11~15편에 이르다가 1990~1994년도에는 24, 28, 42, 52, 85편에 이르고, 1995년부터는 85, 182, 221, 301, 456, 495, 535, 639, 713, 818, 984, 1099, 1099, 1302편 (2007년)으로 문자 그대로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연구가 활성화 된 것은 제약기업 주도의 연구 개발 사업 (주로 1987 ~ 1989년), 과학기술부 지원의 국책연구개발 사업 (1990~1991년), G7신의약사업 (1992~1997년),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기술사업 (1998년 이후) 등의 연구비 지원과 함께, 대학교수의 능력을 SCI급 논문 수 등으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정착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현재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국내 제약업계이지만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해 나가고 있는 우리나라 약학의 기개로 미루어 머지않아 블록버스터 신약의 개발과 같은 밝은 미래도 기대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2008-11-26 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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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3> 가송 약학상
필자는 지난 10월 23일 대한약학회 가을 총회 및 학술대회에서 제1회 가송 (可松) 약학상을 수상하였다.
한편으로 영광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상이란 인생이라는 연륜이 흘러감에 따른 흔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송구스러움을 다소나마 잊고 동시에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가송약학상은 학술업적 외에 약계에 끼친 공로가 많은 사람에게 주는 것을 전제로 동화약품 윤광렬 명예회장이 설립한 가송재단에서 후원하는 상이다.
가송재단은 ‘기업이윤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고자 2008년 4월 설립된 재단으로, 다양한 장학사업과 학술지원에 관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먼저 장학 사업은 매년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기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장학생이 성장하여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도록 관리할 계획이며, 학술지원은 학술진흥단체 및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인류발전을 위한 학술연구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금년도에 처음 제정된 상이 가송약학상과 가송의학상이다. 윤도준 재단 이사장은 “‘동화약품은 그 동안 좋은 약을 만들어 사회에 봉사한다’는 기업 이념 하에 희귀의약품 센터 운영 등 국민 보건 진흥을 위한 다양한 공헌을 해 왔다”며 “이번에 재단 설립을 계기로 설립자인 윤광렬 명예회장의 뜻을 받들어 국가 발전에 기여할 핵심인재 양성과 학술분야 발전에 더욱 힘쓰도록 하겠다”고 뜻을 밝혔다.
이 상을 수상하며 그 동안 필자가 약계에 무슨 공로를 끼친 바 있나 회상해 보니 변변히 이룬 것 하나 없는 부질없는 발자취만 보일 뿐이다.
돌이켜 보면 한약분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KBS의 여의도 법정이란 프로그램에 약계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약사회에 의해 차출된 것이 필자가 약계의 현안에 발을 들여 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한약을 약사와 한의사 누가 다루어야 옳은가를 토론한 후 전화를 통해 시청자의 여론을 조사하였는데, 나름대로 당당한 논리를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조직적인 여론 몰기의 결과로 한의사 지지보다 적은 지지를 받았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 후 의약분업이라든지 약대 6년제 등의 현안이 생길 때마다 타의반 자의반으로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이처럼 중요한 현안에 어떤 형태로든지 미력을 보탰다는 사실에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현실의 문제와 무관하게 상아탑의 고고함을 즐기며 일생을 보내고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현안에 관여해 오게 된 것은 솔직히 필자의 애국충정이 대단해서라기 보다, 필자의 마음이 약하여 주변에서 끌어들이는데 피하지 못하고 빠져 든 측면이 큼을 고백한다.
식약청장 시절에 ‘약의 날’을 부활시키는 작업을 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당시 이를 위해 동분서주해 준 식약청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 드린다. ‘약의 날’ 행사를 통해 약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고양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지금도 충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음은 아쉬운 일이지만 일단은 사라졌던 ‘날’이 다시 살아 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무튼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가송약학상을 수상하는 바이다. 첫 수상자는 미약한 업적으로 수상하였지만 앞으로는 진정 훌륭한 공적으로 당당히 이 상을 수상하는 분 들이 많이 나오시길 진정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2008-11-05 0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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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2> 요즘 아이들은 행복한가?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요즘 애들은 얼마나 행복하냐, 우리 때는 정말 먹을 것도 놀 것도 없었지” 하는 이야기를 흔히 나누게 된다. 그러나 나는 실은 우리 세대가 가장 행복한 세대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특히 나처럼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전기불도 못 보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피아노도 없고 축구공도 야구공도 없고 마이크도 없고 무엇도 무엇도 없는 그런 여건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다가 인천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 전깃불과 야구공 등을 보게 되었다.
1971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이 발전한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못했다. 1978년 일본 동경대학으로 유학을 가보니 카메라, 가전제품을 비롯한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심지어 수퍼에 가서 물건을 사면 비닐 봉지에 담아 주는 것마저 신기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가게에서는 책이나 공책으로 만든 종이 봉투에 물건을 담아 주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3년 귀국해서 교수가 되고 보니 용기를 내면 중고 자동차를 살만한 나라 형편이 되었다. 그 후 사정은 급격히 좋아져서 아파트가 흔해지고 각종 전자제품이 싸게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우리 친구들은 약국을 하면서 돈을 벌면 자식에게 피아노를 사 주는 성취감을 맛보았다.
우리는 옛날에는 그처럼 가보기 어려운 외국을 여러 번씩 다니고 있다. 옛날에 거의 굶던 우리가 임금님 수라상보다도 더 잘 먹고 있다. 우리 세대는 모든 면에서 크나큰 성취를 경험하였다. 우리는 운 좋게도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을 성취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떤가? 물질적으로는 물론 예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족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애들이 성장하면서 어떤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 애들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날 때의 아파트가 사실상 더 할 수 없이 크고 화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우리 세대처럼 지하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자기 집을 마련하였을 때의 성취감을 누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 자가용차가 있는 요즘 애들은 포니 중고차를 살 때, 그리고 다시 신형 차를 살 때의 성취감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각종 성취감을 못 누리는 반면에 어릴 때부터 영어다 무어다 해서 학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답답할 것이다. 우리 세대 특히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학원이라는 말, 과외라는 말도 모르고 초등학교를 마쳤다. 공부라고는 학교 수업이 전부이었다.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는 요즘 애들을 보면 우리 때보다 훨씬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린이와 젊은이들의 삶이 너무 고되 보인다.
흔히 “요즘 애들은 너무 풍족해” 라고 말하지만 사실 오늘날 부모 밑에 있을 때 너무 풍족한 것이 그들에게서 성취감을 앗아가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성세대는 자라나는 젊은 세대를 잘 이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성취감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황량하겠는가? 그 황량할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 젊거나 어린 세대들을 잘 이해하고 배려할 새로운 책임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좋은 시대를 잘 지내 왔어, 늙은 것이 한편으로 다행이야” 라고 스스로 위로하기에는 젊은 이들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 보이는 요즈음이다.
2008-10-21 1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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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1> 멜라민 사건
멜라민 사건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멜라민은 분자식C3H6N6, 분자량 126.12의 물에는 잘 녹지 않는 백색 결정성 물질이다. 주로 멜라민 합성수지의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 합성수지는 내연성 및 내열성이 있어 바닥 타일, 화이트 보드 및 주방용 플라스틱 제품 등에 널리 사용된다. 합성수지는 그 원료인 멜라민이 용출되지 않는 한 식품안전의 문제를 일으킬 일이 없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는 멜라민이 식품안전상의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 그런데 중국에서 우유에 물을 탄 후 멜라민을 첨가한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우유 중 질소 양을 정량 함으로써 우유의 함량을 검사하게 되어 있는 우유시험법을 교묘히 이용한 악질적인 사건이다. 물을 탄 우유에 질소화합물인 멜라민을 첨가하면 진한 우유와 같은 시험결과가 얻어지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멜라민은 경구투여 할 때 급성 독성이 낮고 생식장기 및 피부에도 별 영향이 없으며 유전독성이나 발암성도 없으나 반복투여 시 주로 방광 및 신장에 축적되어 결석을 일으킨다.
비의도적으로 평생 동안 섭취해도 건강상 유해한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내용일일섭취허용량 (TDI)은 미국 FDA에서는 0.63 mg/체중 kg/일, 유럽 식품안전청에서는 0.5 mg/체중 kg/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멜라민 137ppm이 검출된 카스타드 제품을 60kg 성인의 경우 낱개포장 40개 이상씩, 20kg 어린이의 경우 낱개포장 13개씩 매일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는 한, 또 멜라민 1.5ppm이 검출된 커피프림 제품은 60kg 성인이 20kg 이상의 커피프림 (커피 약 3,700잔 ~ 4,000잔 이상에 해당)을 매일 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는 한 신장염, 신장결석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영유아 5만여 명이 신장결석 등의 병에 걸렸다는 기사는 이 물질의 위험성이 예상외로 클 수도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처럼 식품원료로 허용되지 않은 물질을 우유 등에 첨가하는 것은 명백한 사기이자 범죄 행위이다.
오늘날은 우리의 식탁을 국산 식품으로만 차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전체 수입량의 약 1/3이 식품일 정도로 우리의 식탁은 국제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수입식품들을 일일이 검사 (전수검사)해서 합격된 식품만을 통관시킬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설령 의심이 가는 수입식품 컨테이너가 있다고 해도 항구 내에 냉동창고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컨테이너를 해체한 후 전수검사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수입불량식품 문제를 일부라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수입식품의 검사 시스템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외국 식품을 수입하는 업자들도 무조건 싼 식품을 들여 다 팔 생각을 고쳐야 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염가의 식품이라면 안전문제를 일으킬 개연성이 높은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잘못된 식품 (및 원료)을 수입한 업자들에게 죄를 엄중히 묻도록 법을 고쳐야 할 것이다.
도둑 하나를 경찰 열 명이 막지 못한다고 했던가? 식약청이 아무리 활약하더라도 불량식품 제조업자와 수출입업자가 건재(?)하는 한 완벽하게 불량식품을 차단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답답하지만 불량식품업자가 없어질 그 날까지 소비자가 눈을 부릅뜨고 식탁을 지키는 길 이외에 좋은 수가 없어 보인다. 결국 국민의 의식 수준이 식탁의 안전수준을 결정짓는 것이 아닐까?
2008-10-08 0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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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 연구와 논문
환갑을 지나면서 가끔 나의 연구생활을 뒤돌아 보게 된다. 남은 연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부쩍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개수로는 제법 많은 논문을 썼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논문은 거의 없어 보인다.
몇 년 전 박사과정 학생이 나에게 “많은 사람이 심각한 질병으로 죽어 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공부를 그만둘까 합니다” 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일견 무례해 보이는 말이지만 실은 나도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도 내지 못하고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다. 그러나 능력이 부쳐서 못하는 것 뿐이다. 다만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도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견 쓸 데 없어 보이는 연구도 필요한 법이다” 라고 겨우 달래서 학위를 마치게 한 일이 있었다.
본질적이고 큰 의미가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 것은 모든 연구자 공통의 바람일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 면에서 힘이 부쳐 그리 못할 뿐이다.
나는 정년까지 남은 5년 미만의 기간이나마 정말로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영어로는 연구를 research라고 하는데 가만히 글자를 들여다보면 re와 search를 합친 단어로 보인다. 그렇다면 연구란 search를 다시 하는 것, 말하자면 남이 한번 뒤진 주제를 가지고 다시 뒤적이는 것이란 의미가 아닌가?
교수는 연구논문을 써야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publish or perish”, 즉 “연구논문을 발표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연구의 결과물로 논문이 써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연구를 설계하는 경향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논문 쓰기 쉬운 옛 주제를 다시 뒤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논문은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를 평가하는 가장 강력한 잣대가 되었다.
한동안은 소위 SCI 급 학술잡지에 몇 편의 논문을 냈느냐로 연구자를 평가하더니 이제는 impact factor 가 얼마인 잡지에 냈느냐가 연구자의 우열을 판단하는 지표가 되었다. 이 impact factor는 학문분야별로 사정이 달라서 생물학 관련 학술잡지는 매우 높은데 반하여 화학이나 물리학,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약제학 분야는 그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다.
따라서 생물관련 분야 연구자만 높은 평가를 받기 쉽다는 불만도 타 분야 연구자의 입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Impact factor로만 연구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이제껏 거의 아무런 잣대도 없어 왔던 연구자의 업적 평가가 나름대로 가능하게 된 것은 impact factor의 공이라 하겠다.
특히 연구 업적의 경쟁도 올림픽에서 메달 따기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impact factor 높은 논문 쓰기는 민족성(?)에 딱 맞는 종목이 되고 있다.
아무튼 크게 보아서는 이러한 점수 열풍이 우리나라 과학계의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학자의 SCI 급 과학 논문수가 이제 세계 12 순위 (2007년 업적)를 달리게 된 것이다.
다만 이제는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에서 벗어나 인류를 위해서 의미 있는 연구를 한 결과가 높은 점수의 논문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나는 못하면서 남들에게 바라는 결례를 용서하기 바란다.
2008-09-24 0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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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9> 나의 주례사
나의 주례사의 예를 소개한다.
오늘 사랑하는 아무개 군과 아무개 양의 결혼 주례를 담당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방안이 어두울 때 이 어두움을 물리치기 위하여 어떻게 합니까? 수건을 휘두를까요? 어둠과 씨름을 할까요? 그러나 어둠과 싸워서는 어둠은 결코 물리쳐지지 않지요.
어둠은 전등의 스위치를 찰깍 켜면 간단히 사라집니다. 살다 보면 어둠과 만나는 일이 있을 겁니다. 그 때에 어둠과 싸우지 말고 전등을 키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전등을 키느냐구요?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예수님이 문밖에서 기다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문만 열면 됩니다.
문을 열면 예수님이 방 안으로 쑥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전등불을 킨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 오시면 어두움은 즉시 완벽하게 사라지게 되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 전지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와 합력하여 천국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방문을 열어 빛을 받아들일 것인지, 천국을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는 우리에게, 신랑 신부에게 맡기셨습니다. 방문 열쇠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복을 주시고자 결정하셨습니다. 복을 받고 안 받고는 이제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성경에 범사에 미리 감사함으로 예비하신 만복을 향유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함은 방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사람은 오늘 결혼식을 하지만 서로 상대방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무슨 공을 세웠습니까? 내가 상대방을 낳았습니까? 길렀습니까? 취직을 시켰습니까? 그 직장을 만들었습니까? 어찌 보면 공짜로 다 완성되어 있는 상대방을 얻게 된 것 아닙니까? 너무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누구에게 감사합니까? 우선은 부모님께 감사하지오. 그리고 오늘 날, 이런 상황이 있도록 도와 주신 모든 환경들,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살아서 천국을 경험합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가정이 있습니다. 반면에 돈이 많아도 불행한 가정도 있습니다. 누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 것일까요?
내 마음에 감사함이 있느냐 없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지요. 자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과 합심하여 천국을 경험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신랑 신부는 결코 부모님 가슴에 찬바람이 스미는 언행을 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합니다. 그냥 감사하십시오, 사랑하십시오. 자식 사랑은 절제를 해야 하고 부모님 사랑은 억지로 해야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을 억지로라도 사랑하십시오. 신기한 것은 억지로 한 사랑도 나중에는 참 사랑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비밀이지요. 부부이건 부모 자식 사이이건, 돈을 벌건 출세를 하건, 감사와 따듯한 사랑 위에 서 있지 않으면 그 성취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새 가정을 이루어 출발하는 이 시점에, 복을 주시고자 방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감사와 사랑이라는 열쇠로 방문을 열어 드림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만복을 받아 이 땅 위에 천국과 같은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지혜로운 신랑 신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행복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그런 인생을 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008-09-10 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