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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8> 튤립 꽃이 없는 복지국가 네덜란드
2007년 4월 ‘약물감시에 관한 국제조화’에 관한 초청강연을 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도시 암스테르담에 간 일이 있었다. 그 곳에 가서 2가지 사실에 놀랐다. 우선 그 곳 노인들은 매달 연금을 받는데, 그 연금을 조금씩만 아껴 쓰면 1년에 1달은 외국에 가서 살 수 있을 정도로 복지가 완벽하였다. 이는 병원비가 무료라 아파도 연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튤립의 나라라는 네덜란드의 길거리에 튤립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거리가 온통 튤립으로 장식되어 있을 줄 기대했었는데, 튤립을 비롯한 각종 꽃들은 유료 식물원 같은데 가야만 볼 수 있었다. 각종 꽃들은 유럽 각지로 팔기에도 바빠 길거리 장식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작년 가을 광화문 광장이 세종대왕 상을 세우는 등 새 단장을 마치고 시민에게 공개되었다. 광장은 온통 온갖 꽃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 꽃을 파 버리더니 스노우 보드 대회니 빛의 축제니 뭐니 하는 행사를 연다고 한다. 그 때마다 광장의 조경은 바뀌고, 무엇인가가 설치되었다. 매스컴의 보도를 보면 이런 행사 하나에 몇 억 내지 몇 십억의 돈이 든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분명히 옛날에 비해 잘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옛날보다 세금도 더 거두어야 하고, 그 돈으로 조경도 잘해야 하고, 행사도 더 많이 해야 한다. 문제는 조경이 너무 호화롭고 행사가 너무 잦아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뿐이 아니다. 서울의 길거리에는 일년 내내 각종 꽃 장식이 넘친다. 또 일년 내내 도로 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늘 다니는 낙성대 길만 해도, 도로에 몇 년 전에 중앙 분리대를 만들어 나무와 꽃을 심더니, 작년에는 다시 중앙분리대를 없애면서 도로를 곡선으로 고쳤다. 이러한 낭비 성향은 나라 곳곳에서 발견된다.
세계에서 분수 (噴水)를 가장 많다는 나라, 성남시청처럼 지나치게 호화로운 지방청사를 짓는 나라, 과연 이런 것들이 우리 나라 분수에 합당한 칭호들인지 의문이 든다. 막말로, 정부나 지자체가 “네 돈이냐 내 돈이냐” 하는 심정으로, 또는 높은 사람들의 생색내기 용으로 길거리를 장식하고 호화로운 청사를 짓는 일에 세금을 마구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노숙자나 쪽방 사람들처럼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추운 겨울을 억지로 견뎌내는 이분들에게 광화문 광장의 조경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아직도 우리는 그들의 형편을 돕는 일에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도 우리의 국민이 아닌가? 아프고 약하고 힘없는 국민들을 보호하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 네덜란드도 길거리에 쓸 돈을 아껴 국민 복지에 사용하고 있는데.
예산을 책정하고 집행하는 높은 분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그분들의 집무실 벽에 노숙자, 쪽방 사람들, 몸이 아파 고생하는 어려운 우리 이웃의 모습을 담은 사진 액자를 걸어 놓기를 제안한다. 그 사진을 보면서도 예산을 낭비하지는 않겠지 하는 기대에서이다. 길거리에 튤립은 없지만, 늙어서 병들어도 정부가 치료비를 전액을 대주는 복지 선진국, 네덜란드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한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2010-01-19 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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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7> 아직 네 집에 도착한 것이 아니란다
십오여 년 전에 온누리 교회의 우리 순(구역) 식구인 50대 중반의 남자 체육교사(이 집사님) 부부가 멀쩡한 직장인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사직하고 보츄아나라는 아프리카 나라로 선교를 떠났다. 그리고 1년도 못 되어 혼자 일시 귀국한 이 집사님을 순예배 (구역예배)에서 만났다. 그는 선교지의 무더움과 생활의 불편함을 설명하면서 사실은 선교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그 곳에 남아 있는 아내에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돌아 갈 날을 연기하고 있노라고 했다. 그러나 물론 그는 얼마 안 있어 보츄아나로 돌아갔다. 그는 다음 해에도 역시 혼자 일시 귀국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그는 1∼2년 선교 생활을 마치면 귀국하고 싶은데, 아내가 그곳에 뼈를 묻자고 하니 어쩌면 좋겠느냐고 하소연(?)을 하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선교사는 선교가 좋아서 오지에 가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선교지가 싫다”라고 하는 고백은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충격은 실망이 아니라 오히려 커다란 감동이었다. “아, 선교사님들도 선교지에 가기가 싫구나, 다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기에 순종하는 것이구나”를 깨달은 이후 선교사님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이화여대 약대에서 활발한 연구를 하던 김 아무개 교수도 벌써 몇 년 전에 학교를 사직하고 캄보디아에서 선교를 하고 있다. 학계에서 전도가 양양하던 그가 학교를 그만 두었을 때, 그의 처남이자 나의 고등학교 동기인 한 친구는 “교수직을 하면서도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다. 당시 내 생각도 친구와 비슷하였다. 아무튼 그 교수는 그의 전성기에 학교를 그만 두고 캄보디아를 택하였다. 캄보디아 생활이 서울 생활보다 더 좋아서 그곳에 간 것은 분명 아니리라.
최근에 교회 설교 시간에 들은 말씀이다. 어떤 선교사가 오랜 기간 동안의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배에는 우연히 루즈벨트 대통령도 타고 있었다. 항구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가 대통령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선교사를 환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에 돌아 와 잠자리에 누운 선교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길을 위해 오지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집으로 돌아 왔는데, 집은 낡아졌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다니, 나는 과연 선교사로 아프리카에 다녀 오기를 잘 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엄습하였다.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들었다. “아무개야, 너는 아직 네 집에 도착한 것이 아니란다” 라고. 그 때 선교사는 깨달았다. 그가 자고 있는 그 집이 그가 영원히 살 그의 집이 아니란 사실을. 그래서 다음 날부터 그는 다시 기쁜 마음으로 선교의 열정에 사로잡힐 수 있었단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이 세상에 있는 우리 집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임시로 거처하는 곳에 불과하다. 나의 영원한 안식처, 영생할 집은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천국에 대한 믿음이 오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의 하루 하루의 동력이 되고 있을 것이다. 온누리 교회에서는 이런 오지의 선교사님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 CGN-TV라는 위성 방송망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어 선교 방송을 내 보내고 있다. 객지에서 모국어를 듣는다는 것, 그것도 방송으로 듣는 것은 그야말로 감격이라고 한다.
연말 연시 날씨가 추워지면서, 고생을 참고 선교하고 계시는 선교사님들이 생각난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집을 마련해 주고자 헌신하는, 정말로 훌륭한 크리스챤이 결코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2010-01-05 0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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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6> 나이를 먹으면 잘 안 들려
친구들로부터 “아내가 남이 부르는 소리를 잘 못 들으면 늙었다는 증거”라는 말을 들은 어떤 남편이 집에 와서 아내를 테스트를 해 보기로 하였단다. 우선 마루 끝 저만치에서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를 향해 큰 소리로 물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아내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하 이 사람이 벌써 귀가 잘 안 들리는구나” 생각한 남편은 부엌 입구 가까이 가서 다시 물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는 뭐지?” 그러나 이번에도 아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이토록 귀가 어두워졌나?” 싶어 왈칵 마누라가 안쓰러워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내 바로 뒤까지 가서 아내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그제서야 아내는 돌아서며 한마디 했다. “아니 수제비라고 아까부터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라고. 이 말에 남편은 그만 좌절하였다.
늙으면 소리가 잘 안 들린다.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고는 “얘, 지금 방송에서 뭐라고 했냐?” 라고 묻는 일도 많아진다. 그래서 자연히 텔레비전도 크게 틀어 놓게 된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는 ‘청력나이 측정법’ 프로그램이 유행이라고 한다. 이는 10초 동안 음 높이가 다른 9개의 소리를 들려주고 몇 차례 들리느냐에 따라 청력나이를 알려주는 것인데. 9번 이상 들리면 청력 나이 5∼10세, 5번 이상이면 26∼30세, 2번 이상이면 41∼45세, 한번도 들리지 않으면 51세 이상이라고 한다. 한번 http://www.science.go.kr/webzine/20061002/00847.html 에 들어가 청력을 테스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나도 실제로 한번 측정을 해 보았더니, 청력나이는 육체 나이대로 청력 나이가 나왔다. 그런데 매우 신기한 것은 30대인 우리 아들에게는 분명히 들린다는 소리가 내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 청력이 약해져 50대는 1만2,000㎐, 40대는 1만4,000㎐, 30대는 1만6,000㎐, 20대는 1만8,000㎐ 이상을 거의 들을 수 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수 영역이 좁아진다는 의미이다. 왜 그럴까? 사람의 귀 고막에는 청신경전달계인 달팽이관이 연결돼 그 입구에서 고주파를 감지하고, 점차 안쪽으로 갈수록 저주파를 느끼게 되는데, 나이가 많거나 큰 소리를 많이 듣게 되면 달팽이관 입구의 신경세포가 손상돼 고주파 음부터 듣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들을 수 있는 주파수 영역 (음역)이 좁아지면, 즉 간단히 말해서 귀가 어두워지면 일상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게다가 남의 말을 잘 못 들으니 남을 오해도 하기 쉽고, 나만 빼놓고 무슨 궁리들을 하나 싶어 마음이 삐치기도 쉽다. 그래서 귀가 어두운 사람 옆에서 다른 사람과 수군거리는 것은 금물이다. 남의 말이 잘 안 들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늙으면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생각이 굳어진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늙은이는 젊은이의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장모님은 나이 먹어서 잘 안 들리고 잘 안 보이는 것은, 이제 세상사에서 한발 빼라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신다. 늙은이가 젊은이처럼 세상의 사소한 것까지 다 보고 다 듣고 일일이 참견해서는 볼썽 사납단다. 그러므로 나이가 먹으면, 덜 들리고 덜 보이는 것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신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있는가? 어김없이 다가 오는 새 해를 맞으며 잠시 생각에 빠져 본다.
2009-12-22 1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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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5> 겸손은 어려워
조영남 씨의 노래 제목 중에 “겸손은 어려워”라는 것이 있다. 가사 중에는 “겸손하지 못한 점 하나 빼 놓으면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 있을까? 아버지는 늘 겸손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겸손은 어려워”라는 말이 나온다. 오늘은 겸손은 어렵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이 너무 예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내의 친구가 했다는 말, 즉 “못 생긴 사람은 집안에도 많은데 텔레비전에서까지 이런 사람들을 본다면 지겹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그래 이왕이면 잘 생긴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화면이 보기에 더 좋겠지. 나도 예쁜 탤런트가 나오는 프로그램에 눈이 더 가지 않는가? 그렇다. 텔레비전은 시청률을 위해 현실이 아닌 희망사항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미모나 몸매가 잘 생긴 사람은 이를 뽐내고 못 생긴 사람은 이를 부러워하는 문자 그대로 얼짱, 몸짱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한편 점잖은 척 하는 사람들은 사람이 머리가 좋아야지 얼굴이나 몸매만 잘 생기면 무엇에 쓰느냐고 비판한다.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머리가 나쁜 사람들보다 더 성공하기 때문이다. 미모나 몸매는, 최근 성형 수술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타고 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예뻐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크게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머리도 인물처럼 타고 나는 것이지 스스로 노력해서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면에서 인물보다 머리를 자랑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아 보인다.
나는 이미자, 패티킴, 나훈아, 조영남 같은 명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어떻게 사람이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를 수 있을까 감탄한다. 가끔은 이들이 얄밉기 (?) 까지 하다. 별로 열심히 연습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도 아무 때나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처럼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죽어라 연습해도 뜨지 않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수들뿐이 아니다. 미술가, 음악가, 운동 선수, 배우, 그리고 정치, 경제, 학문 등 인생살이의 모든 분야에서 천부적인 재능 때문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을 거의 믿지 않는다.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훌륭한 농구선수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는 적지 않은 경우에 사기성 격려문에 불과할 뿐이다. 누군가의 글을 보니, 최선을 다 해 노력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지만, 하늘에 맡길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양 노심초사하는 것도 잘못이란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늘에 맡겨야 할 일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큰 지혜란다.
인물, 머리, 재능, 그리고 설명은 안 했지만 심지어 인격도 모두 본인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그야말로 천부적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물이 좋은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 심지어 인격이 좋은 사람도 스스로 이를 지나치게 자랑하는 것은 모양이 좀 우습다. 물론 사람이니까 우쭐대고 싶은 심정을 다 억누르고 살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랑을 하더라도 적절히 겸손한 태도로 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챤은 이 모든 장점들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알고 범사에 늘 감사한다. 감사하는 사람은 교만해 질 수가 없다. 그래서 감사와 겸손은 동의어이다. 나도 늘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기를 다짐한다. 그러나 겸손도 겸손히 해야 한다. “나보다 더 겸손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하는 교만한 겸손은 솔직한 교만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역겹기 때문이다. 아 “겸손은 어려워!”.
2009-12-08 1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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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4> 한국 약사학 (藥史學) 연구회
약춘 필자는 2007년 4월 일본약사학회(藥史學會)총회 (동경대학약학부 강당)에서 ‘한국의 약학사’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 (강연요지; ‘藥學史雜誌’ 제42권 제1호 게재)을 한 바 있다. 일본의 藥學史雜誌는 올해에 제44권을 발행하고 있다. 그러니까 창간호의 역사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당시 필자는 약학사를 연구하는 일본의 인력과 수준을 보고 기가 죽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약학사 연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을 안타까워했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대학의 김진웅 교수가 우연한 기회에 우리나라에도 이미 약학사 연구의 움직임이 있었던 자료(발기대회 인쇄물)를 발견하였다.
즉 1972년 5월에 김광수, 김일혁, 김조형, 김태봉, 신길구, 우종학, 유경수, 이선주, 이은옥, 장상길, 정동규, 지형준, 한구동, 홍현오 씨가 홍문화 교수를 대표로 하여 발표한 ‘한국약사학 (藥史學)연구회 발기 취지문’을 입수하게 되었다. 발기 취지문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약학사는 본초의 역사로부터 비롯되며 민족의 문화와 더불어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근년의 과정만 치더라도 서양의약의 도입으로부터 이미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오늘날 약학의 발전은 눈부신 바 있으며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질병의 치료와 건강유지를 위한 약학의 사명은 그 중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의 약학도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며 세분화, 전문화를 거듭하고 있으나 과연 그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하였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인가는 체계적으로 고구되지 못하고 있음은 심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약학의 발전과 제약산업의 융성에 발맞추어 한국약학의 특성과 방향을 찾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바탕으로서 약학사는 그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으나 불행히도 아직까지 이 방면을 미개척지로 남겨놓고 있음을 볼 때 심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약사학 연구의 의욕을 북돋우고 나아가서는 한국약학의 특성을 발견 발굴하기 위하여 약사학 연구회를 발기코저 하오니 동학 제현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하는 바이다”.
이 연구회의 회장은 당시 서울대 생약연구소 홍문화 교수, 감사는 서울대약대 이선주 교수, 학술간사는 생약연구소 지형준 교수, 총무간사는 당시 약업신문사 장상길 편집부국장이 맡게 되어 있었다. 이들 외에 한구동, 우종학, 홍현오, 김일혁, 김조형, 김광수, 유경수, 이은옥, 김석찬, 도상학, 유용근, 박경철 씨 등 총 16명이 회원이었다. 총 10개조의 회칙 중 제1조에서는 이 연구회를 영어로 The Korean Society of History of Pharmacy로 부르기로 하였다. 제5조를 보면 연 회비는 1,000원이라고 되어 있다. 1972년 6월부터 1973년 5월까지의 예산안을 보면 회비 수입 7만 원(정회원비 2만원, 특별회원회비 5만원), 찬조금 7만 원, 잡수입 1만 원으로, 총 수입합계 15만 원으로 되어 있다. 아무리 옛날이라고는 하지만 아마도 매우 적은 금액이었던 것 같다.
상기 발기취지문을 보면 그제나 지금이나 약사학 (藥史學) 연구에 관한 우리의 상황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분들의 새까만 후배로서 심히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누구 이 분야를 살려낼 분은 안 계신지…. 약사학은 정년퇴임 했거나 정년을 앞두고 있는 노교수들의 심심풀이 대상으로 맡겨두기에는 너무나 막중한 분야이다. 또 모두 자기 전공 연구에 바쁜 젊은 교수들에게 약사학을 부전공 비슷하게 연구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대안은 오직 하나, 6년제 커리를 짜고 있는 이 참에 약사학 전공자를 약대 전임으로 채용해야 한다. 어찌 약사학 뿐이랴? 약사법규, 약물경제학, 사회약학 등 약학의 울타리 역할을 해 줄 소위 인문약학을 전공자들도 채용해야 한다. 귀가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2009-11-24 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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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3> 귀에 거슬리는 말들
가끔 어떤 말들이 귀에 거슬린다. 단풍 구경을 나온 사람에게 리포터가 “이런데 나오시니까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구경꾼은 “모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보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다. “좋은 것 같다”라니 좋다는 건지 안 좋다는 건지… 이런 경우에는 그냥 “기분이 참 좋네요”하면 좋지 않을까? 가끔 “너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는데, 보통 “너무”는 “너무 힘들다, 너무 비싸다, 너무 크다”의 예에서 보듯 정도가 지나쳐서 좋지 않은 경우에 쓰는 말로 “예쁘다, 맛있다, 멋있다”와 같은 긍정적인 단어 앞에는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너무”를 남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또 아침에 만나 인사할 때 “좋은 하루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되세요”가 영 귀에 거슬린다. “되는”이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에 “되세요”와 같은 명령어체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오늘 하루 잘 보내세요”라고 바꾸어 말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비슷한 예로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이란 말이 한 때 있었다. 이 말도 이상하다.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인지, 안심할 여건이 안되더라도 억지로라도 안심하고 애를 학교에 보내자 라는 취지인지가 불분명하다. 이 말은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학교 환경 만들기”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또 논문 등의 맨 마지막에 잘 쓰이는 표현으로 무엇 무엇으로 “사료된다”가 있는데, 우선 “사료 (思料)”가 너무 어려운 말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슷한 경우에 “생각된다” 를 쓰기도 하는데 사료된다 보다는 알기 쉽지만, 내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되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역시 귀에 거슬린다. 즉 “사료된다”나 “생각된다”는 둘 다 수동태인데 가능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의 능동태로 바꾸어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영어의 “It appears to be …”에 해당하는 우리 말 표현을 “사료된다” 또는 “생각된다”로 생각해서 사용하고 있다면, 이 말 대신 “…인 것처럼 보인다”로 바꾸어 쓰면 어떨까?
발음이 귀에 거슬리는 경우도 있다. 일부 아나운서나 방송진행자가 단어의 장단음을 틀리게 발음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영등포 시장 (市場)에 간 시장 (市長)님”에서 “시”는 각각 길게 발음해야 하지만, 배가 고프다는 의미로 “시장하다”고 말할 때의 “시”는 짧게 발음해야 한다.
끝으로 귀에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틀린 약업계의 용어 몇 개를 소개한다. 대표적인 것이 “엑기스”인데 옳은 표현은 물론 “엑스”이다. 원래 추출물 extract의 약자인 Ex를 일본 사람은 엑기스라고 읽는다. 일본어 발음의 한계 때문이다. 우리는 우수한 국어의 덕택으로 이를 엑스라고 발음할 수 있는데도 오랫동안 이를 엑기스로 읽어 왔다. 우스운 일이다.
최근에 엑기스 대신 엑스를 표준어로 바로 잡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엑기스에 익숙해 있어서 엑스라고 하면 “엑기스” 같은 느낌이 안 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캅셀 (캡슐)이나 리모나아데 (레모네이드)도 일본인의 발음을 그대로 가져와 우습게 된 용어들이다. 한편 충진제 (충전제), 평량 (칭량), 상등액 (상징액), 활탁제 (활택제) 등은 한자를 잘못 읽어 틀리게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말들이 가끔 귀에 거슬린다는 것은 나이를 먹었다는 징표일까? 아니면 환갑이 지났어도 아직 귀가 순해지지 (耳順) 않고 철이 덜 들었다는 징표일까? 만추(晩秋)의 한 때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2009-11-10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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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2> 칭찬은 교육의 기본 기술
오늘은 칭찬이 교육의 기본 기술이라는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모 대학의 L교수는 남의 칭찬을 잘 한다. 그가 자주 하는 표현은 아무개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그의 칭찬을 받는 사람보다 칭찬을 하는 그가 더 인격적으로 훌륭해 보인다.
칭찬을 하려면 먼저 그 대상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미워하면서 칭찬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이 겸손해야 한다. 저만 잘 난 줄 아는 사람은 남이 우습게 보여 칭찬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속은 꽉 찬 사람일 것이다. 그래야만 남을 칭찬할 정도의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은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는 책이 나와 있는 것처럼 듣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칭찬은 교육의 기본이 되는 기술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림을 잘 그린다는 선생님 칭찬을 들은 후 미술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예수님도 수난을 받으시기 전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면서 당시 보잘것없던 제자들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그 칭찬대로 제자들은 후일 성령 세례를 받고 난 이후 정말로 믿음의 본이 되었다. 이처럼 칭찬은 또한 신뢰의 표시이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칭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칭찬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야단침, 깎아 내림, 비난, 잔소리, 질책, 비판, 충고, 저주, 불신 대충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이런 것들은 칭찬과 달리 상대방을 삐뚜로 나가게 만들기 일쑤이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설교를 통하여 “잔소리로 아내나 남편의 버릇을 고치는데 성공한 사람 있느냐?” 물으신다. 목사님 말씀대로 뼈아픈 지적, 날카로운 비판, 솔직한 충고, 이런 것들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으로 정작 당사자의 결점을 고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심지어 부부지간에도 상대방의 결점을 지적하는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늘 강조한다. 직장의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솔직한 대화는 당사자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기 십상이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 특히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틈틈이 “나는 네가 남들과 달리 허튼 행동을 하고 다닐 애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며 내게 특별한 신뢰를 보여 주셨다. 이런 말을 듣고도 기대에 어긋난 행동을 즐겨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조금 삐뚜로 나가볼까 하다가도 어머니의 이 말씀이 생각 나 행동을 바로잡곤 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니는 학력은 별로 없으셨지만 본능적으로 신뢰와 칭찬이 효과적인 교육 방법임을 체득하고 계셨던 것 같다. 또한 우리 아버지는 대학생인 내가 친구들과 사랑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기색이면 결코 방문을 열지 않으셨는데,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을 공인하지 않음으로써 나에 대해 신뢰를 되도록 오랫동안 유지하고자 하셨던 것 같다.
교직에 있는 나로서 스스로 안타까운 것은 나이가 들수록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예전만 못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금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칭찬에 열심일 것을 다짐해 본다. 집에서도 되도록 비난, 잔소리, 질책, 비판 대신 칭찬을 하면서 살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칭찬은 듣는 사람의 기분은 물론 칭찬을 하는 사람의 기분도 좋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기분 좋은 나의 인생 후반을 위하여 남을 칭찬하는 마음을 주시길 하나님께 기원한다.
2009-10-27 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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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1> 커닝은 비열한 범죄 행위
금년도 1학기에 서울약대 학생들의 커닝 사건이 매스컴을 탄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커닝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커닝은 사실 예전에는 대개의 학생들이 흔히 하는 행위이었다.
나도 약용식물학과 생약학 시험시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 커닝한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이지만 두 과목은 식물 이름, 사용부위, 산지, 등 너무 암기할 내용이 많았다. 나처럼 정성껏 커닝 페이퍼를 만드는 사람은 양심적인 학생에 속했다. 더 성의가 없는 학생들도 많았다. 후일 모 제약회사의 유능한 사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P군은 시험 시간에 양말을 벗고 맨발로 책상 밑에서 교과서를 뒤적이며 커닝을 했다.
재미난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현재 교수가 된 C군은 마침 군대에 간 K군을 위해 독일어 답안지 한 장을 더 작성하였다. C군 뒤에 앉아 있던 G군은 그 답안지가 보고 싶어 C군을 졸라 답안지를 넘겨 받아 베끼다가 감독교수에게 들키고 말았다.
G군은 마침 군대에 간 친구의 답안지를 자기가 써 주고 있었노라고 둘러댐으로써 C군을 범죄 라인에서 제외시켜 주었다. 감독교수는 놀랍게도 G군의 우정을 가상하다고 판단해 K군의 답안지는 제출을 허용하고, 대신 G군은 부정행위자로 적발하였다.(말이 되는가?) 그 결과 군대에 간 K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일어에 A학점을 받았고, G군은 나중에 군대 갔다가 복학한 후에도 독일어 학점을 따느라고 큰 고생을 하였다.
C군은 나중에 감독교수의 연구실에 조교수로 채용되었는데, 당시에 독일어 시험시간에 답안지를 한 장 더 쓴 부정행위의 시발점이 C군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도 C군을 조교수로 채용하였을까? 작은 일 하나에 운명이 갈린다는 이야기가 실감되는 사건이다.
더 재미있는 사건은 현재 모 제약회사의 사장인 L군의 역시 독일어 시험 커닝 사건이다. 같은 클래스의 P 양은 시험공부를 철저히 하였기에 자신 있게 답안지를 1착으로 제출하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P양은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벤치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L군을 목격한 것이다.
먼저 나온 학생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P양은 아직까지도 그 연유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나, 실은 L군은 처음부터 시험장에 들어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대신 독문과에 다니는 친구가 시험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L군 왈, 나보다 더 독일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꼭 답안을 쓸 필요가 있을까?(나 참) 이처럼 당시 (1967∼1971년)에는 커닝은 좋게 말해 대학생의 문화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옛날에는 관행이고, 문화이고 심지어 미담이었던 것들이 오늘날에는 범죄로 인식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옛날에는 참외 서리, 수박 서리 등은 무슨 낭만적인 행위로까지 미화되곤 했다. 길 거리에 침을 뱉고 담뱃재나 꽁초를 차밖에 몰래 버리는 행위,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행위 등도 과거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관행이었다. 위장 전입이나 탈세, 논문의 이중 게재 등도 옛날에는 관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행위들은 비열한 범죄 행위로 분류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대학생도 당연히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더 이상 커닝 같은 비열한 범죄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다짐해야 한다. 정의 사회를 구현해야 할 미래의 주인공인 대학생들은 정정당당하게 세상을 살기를 다짐해야 한다. 비록 위장전입 같은 범죄가 용납되고 있는 현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것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그리고 더욱 바뀔 것이다.
2009-10-13 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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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 병상단상 (病床斷想)
지난번에 39번째 글로 “암투병과 하나님 은혜”에 대해 쓴 바 있는데, 운명처럼 이번에는 그 뒷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금년 8월 8일 (토)에 배가 아파서 하루를 버텨도 낫지 않길래 9일 (일)에 보라매 병원 응급실을 찾아 갔다.
내가 94년 직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자 응급실 의사들은 치료에 자신 없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94년 나를 수술했던 박재갑 교수에게 부탁하여 밤 중에 서울대 본원으로 병원을 옮겼다. 진단 결과 창자가 유착된 것으로 밝혀져 응급으로 수술하게 되었다.
개복 수술을 담당한 박규주 교수의 말에 의하면 창자가 엉망으로 유착되어 있어서 하나하나 떼어 낼 수 밖에 없었으며, 심하게 손상된 소장의 15센티미터는 절단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총 7-8시간에 걸친 대 수술이었다. 수술 후에는 심한 장 유착의 후유증으로 남들과 달리 꼬박 한달 간이나 방귀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변통이 되지 않아 큰 고생을 하였다.
이번이 3번째 개복 수술이었는데 이번이 그 중 고통이 심하였다. 다행히 직장암이 재발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만약에 암까지 재발한 경우였다면 그 고통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하였을지도 모르겠다.
병실에 누워 괴로운 나날을 보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 그래서 입원해 있는 동안 매주 찾아 와 준 친구, 병간호를 하는 아내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준 교회 동료, 심신이 피곤한 아내의 말동무를 위해 자주 와준 여동생들에게 말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다. 반면에 꼭 달려 와 줄 것 같던 사람들이 와 주지 않아 섭섭하기도 하였다. 92년 돌아가신 어머니는 10달 동안 입원해 계실 동안 누가 병문안을 오나 안 오나에 유독 관심을 보이셨었다.
그 때는 그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막상 내가 아파 보니 그 심정을 절절히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달리 크리스챤인 나는 병문안을 오지 않은 사람들을 섭섭해 하지 않으려고 무진 노력 하였다. 아무튼 아픈 사람에 있어서의 위로란 건강한 사람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아프다 보면 자연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수술 직후 내 팔뚝에는 진통제 주사가 하나 달리게 되었는데, 내가 버튼을 누르면 일정 범위 내에서 진통제의 투여 속도가 빨라져 통증을 덜 느끼도록 되어 있었다. 진통제를 투여해도 얼마나 온 몸의 통증이 심한지 만약에 생명을 켜고 끄는 버튼이 진통제 버튼처럼 내 팔뚝에 달려 있다면 그 버튼을 눌러 생명을 끄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그 순간에는 죽는 것보다 두려운 것이 통증이었다.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니 생각도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 듯 했다. 물론 크리스챤임을 상기함으로써 그러한 불경스러운 생각을 애써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아무튼 세상의 모든 환자들이 지독한 통증없이 나름대로 자신의 병을 앓아 낼 수 있으면 정말 다행이겠다.
또 하나 병상에서 내가 확인한 것은 나의 지론대로 아내들은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입원한 남편 곁에서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일상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은 그 수도 적고 정성도 아내에 미치지 못한다. 나 역시 9월 10일까지 병원에서 아내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면서, 아내가 하늘이 내려 주신 천사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다시는 아프지 않도록 건강에 조심하여야겠다는 것이었다. 회복을 허락하신 하나님! 은혜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다시는 아프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09-09-29 10: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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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9> 암투병과 하나님 은혜
나는 1994년 5월12일 직장암 3기(정확히는 C2 phase) 판정을 받고 같은 달 16일에 개복 수술을 받았다. 그 때의 나이가 47세, 그야말로 한창 때이었다. 수술한 의사는 내 나이는 암세포에게도 한창 때라며 내 예후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하였다. 부득이 인공 항문을 달고 몇 주간의 방사선 조사를 받은 후 1년 반 동안 항암제 (5-FU) 주사를 맞았다. 다시 개복 수술을 하여 인공항문을 제거하고, 정기 검사를 받다 보니 어느덧 세월이 흘러 금년으로 15년이 지났다. 이제야 비로소 나았나 보다 생각이 든다. 나는 내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모른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적으로 생각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성경을 보면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울면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15년간의 생명을 연장 받았다. 그 동안 은근히 15년이라는 숫자에 신경이 쓰였었는데 올해로 15년을 넘긴 것을 계기로 이제부터는 그런 신경 안 쓰며 살고자 한다.
나는 수술 이후 지금까지 홍삼 엑스 또는 선삼이라는 인삼 제품을 열심히 복용하고 있다. 수술 후 5년까지는 지방이나 고기를 먹지 않는 등의 노력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잘해서 병이 나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처럼 조심하면 모든 사람들의 암이 다 낫는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론은 아무래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는 그 동안 죽을까 봐 지나치게 두렵지 않았고, 또 암에 걸린 내 인생이 억울하지도 않았었는데, 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의 결과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은 환자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며 병을 고쳐 주셨다. 나는 그리스찬이다. 그럼 예수님은 나의 믿음을 보고 내 병을 고쳐 주셨는가? 과연 내 믿음은 그처럼 굳건하였는가 생각해 본다. 물론 나는 그 동안 달리 방법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치유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솔직히 하나님의 치유가 내게 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는 못했던 같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를 고쳐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 가에서 38년간이나 못 걷던 환자를 일으켜 걷게 하셨다.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님을 별로 믿지 않았는데도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하용조 목사님은 누구를, 왜 고쳐주시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헤아릴 길 없는 하나님, 예수님의 선택의 문제라고 하신다.
암 환자들은 나를 보면 희망을 갖는다. 특히 3기에서 살았다고 하니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아내는 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을 암환자들에게 열심히 조언한다. 예컨대 고기를 줄이고 야채를 많이 먹어라, 되도록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을 하라 등등. 그러나 나는 나처럼 하면 모든 암환자들이 낫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조언에 신중을 기한다. “암은 이렇게 이겨라” 따위의 말도 하지 않는다. 고귀한 생명이 걸린 문제에 대해 경솔하게 조언하려고 하지 않는다. 실제로 암을 이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고는 권한다. 하나님 은혜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좋은 의사, 좋은 약, 좋은 식생활 등을 만나거나 소개받는 것도 다 하나님 은혜의 영역에 속한다.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2009-09-15 1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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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8> 담배는 바보나 피우는 거다
나는 1967년 대학생이 되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1976년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끊었다. 단번에 끊은 것은 아니고 한번 끊었다가 실패하곤 다시 도전해서 성공하였다. 담배를 끊은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갓난 아이 때문에 집 바깥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궁상스러움이 싫었고, 두 번째는 담배를 피우면 오후에 컨디션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장모님은 내가 담배를 끊는 걸 보시고 내가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단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1971년 육군에 입대해 보니 매일 모든 군인에게 화랑담배가 지급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별로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던 사람마저 군대에 들어가서 담배를 배우게 된다. 나라에서 모든 남자를 흡연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지금은 군대에서도 희망자에게만 담배를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도 잘못이다. 오히려 군대에 가서 담배를 끊는 사람이 많다고 할 정도로 군대가 금연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면 좋겠다.
내가 담배를 끊고 보니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돈도 들고 냄새도 나고 더구나 몸에도 나쁜 담배, 한마디로 백해 무익한 담배를 내가 왜 피웠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머리가 매우 나쁜 바보이거나, 아니면 인간성이 아주 나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머리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분명히 몸에 나쁘고 심지어 확실한 발암성 물질이라고 하는 담배를 제 돈을 내서 사서 피울 리가 없지 않은가?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몸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들을 사서 먹는다. 둘째로 인간성이 괜찮아 자기 주변에 참된 친구를 한 명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의 간절하고 집요한 설득 때문에라도 담배를 계속 피울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해로운 흡연을 말리지 않을 친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충격 좀 받으라고 일부러 좀 과격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보나 인간성 나쁜 사람으로 몰리기 싫으면 당장 금연하시라.
요즘에는 여자 특히 여대생들도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 같다. 나는 남자는 피워도 되고 여자는 피우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여자는 임신하고 아기를 낳을 몸이기 때문에 여자 몸이 남자 몸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을 더 싫어할 따름이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남자도 그렇겠지만 특히 여자는 몸을 소중하게 관리하여야 한다. 그래서 특히 여자는 흡연으로 몸을 망칠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서울대 병원의 박재갑 교수 (전 국립 암센터 원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제 우리나라 TV의 드라마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사라졌다. 정말 잘된 일이다. 지금부터는 바보거나 인간성이 나쁜 사람이 담배를 피우지 멋진 주인공은 결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잡게 되기를 바란다. 내친 김에 앞으로는 담배뿐만 아니라 술 마시는 장면, 특히 여자가 술 마시는 장면도 TV 드라마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나는 담배나 술 (과음)은 멋있는 사람은 결코 하지 않는, 좀 심하게 말하면 정상적인 사람은 할 리가 없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소리치고 싶다.
끝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한마디를 경고 (실은 부탁)!. 제발 차 타고 다니면서 담뱃재나 꽁초를 차 밖으로 버리지 말라. 차 바깥 세상이 모두 당신의 재털이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보고 설마 재털이 속에 사는 신세가 되라는 것인가? 내가 덩치만 컸다면 이런 사람을 결코 묵과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튼 담배는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독물임에 틀림없다. 담배 없는 나라, 건강한 우리 나라를 꿈꾼다.
2009-08-18 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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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7> 파마포럼
2009년 6월1일 대한약학회 주최로 ‘한국 제약산업의 글로벌화 전략 및 육성 정책’에 관한 제4회 파마 포럼이 서울대 호암 교수회관에서 열렸다. 필자는 이 포럼의 좌장으로서 다음과 같은 총론 발제를 하게 되었다.
오늘 ‘한국제약산업의 글로벌화 전략 및 육성 정책’이라는 주제의 팜월드 포럼의 좌장을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함과 동시에 분에 넘치는 외람 된 일로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은 그 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왔고 그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켜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 왔다. 이 점은 우리 모두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의약품은 분명 복지의 수단이다. 그러나 의약품을 복지의 수단으로서만 바라보면 제약의 산업으로서의 특성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즉 제약산업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되고 육성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잃게 된다. 그런데 서투른 규제는 산업을 고사시킬 수도 있다. 나는 제약 주권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자기 국민의 건강을 지켜 줄 제약 산업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온전한 주권을 갖추었다 말하기 힘들다는 의미에서이다. 아시아에서 나름대로 제약주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 뿐이라고 한다. 주권국가다운 면모를 위해서도 제약은 산업으로서 간주되고 육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제약산업은 OECD 국가인 우리 나라의 위상에 걸 맞는 규모와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제약산업에 희망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근래 15개 남짓의 신약이 개발되는 등 분명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에 무언가 한번 모멘텀을 가하면 우리나라 제약산업도 세계적인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아른 거른다.
우리의 제약 산업은 분명 방법만 찾아내면 반도체 산업에 뒤지지 않는 멋진 도약을 이룰 것이란 희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자리는 이미 죽은 산업을 전면적으로 살려 내기 위한 그런 자리와는 다르다. 오늘 이 포럼은 희망을 살리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짧은 포럼을 통하여 제약산업을 살리는 100점 짜리 답안이 마련되리라고는 보지 않다. 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발전 방안에 대하여 길을 제시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이 포럼은 새삼스런 의미를 갖는다.
인생은 얼마나 빨리 출세하느냐 보다 얼마나 바른 방향으로 출세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쁜 방향으로의 빠른 출세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제약산업의 발전도 어쩌면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긴 안목으로 바라볼 때 최선인 발전 방향을 찾아내야 하겠다. 오늘 이 포럼을 통하여 바라는 것은 우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점점 더 다수의 사람들이 컨센서스를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컨센서스야 말로 민주주의의 힘이고 변화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오늘 이 자리에 바쁜 가운데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 많은 청중들과 3분의 연자들, 그리고 4분의 패널들의 발표와 토론을 통하여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발전 방향에 대하여 어떤 공감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본 포럼의 최소한도의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라 믿고 싶다.
아무쪼록 이 자리를 통하여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글로벌화 전략 및 육성 정책에 대해 어떤 컨센서스에 도달하고 이로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모멘텀이 마련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09-08-04 0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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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6> 사자와 소의 결혼
내가 다니는 온누리 교회에는 장로사관학교, 아버지학교, 결혼예비학교 등 무슨 학교라는 이름이 붙은 강좌가 많다. 오늘은 결혼예비학교에서 우리 아들이 배웠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학교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가 몇 주 동안 함께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우는 과정이다. 사실 우리는 대개 나이가 차면 그냥 결혼하면 되는 줄 알지만 이렇게 대책없이 결혼하는 것은 어쩌면 위험한(?) 모험일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아들과 며느리를 통해 이 과정이 매우 유익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이 과정의 수강을 권하곤 한다. 이 과정의 커리큘럼은 다양하지만 전 강의를 통해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남자와 여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예컨대 남자가 운전하고 있을 때 옆에 앉은 부인이 “여보 오른 쪽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하면 남편은 일부러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성향이 있다는 사실도 가르친다.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도 감명을 받은 내용은, 결혼을 해서 부부가 살 때에 각자가 서로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사자와 소가 결혼을 했단다. 사자는 토끼를 사냥하면 가장 맛있는 살코기 부분을 소에게 갖다 바쳤다. 그러나 소는 사자의 성의에도 불구하고 토끼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한편 소는 가장 부드러운 풀을 뜯어다가 사자에게 바쳤다고 한다. 소도 그 풀을 먹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마침내 사자와 소는 서로 상대방을 서운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가장 좋은 고기 또는 풀을 갖다 주었는데 성의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어쩌면 입에 대보지도 않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자와 소는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부간에 있어서도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기 나름대로는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 최선이라는 것이 사자에게 있어서 부드러운 풀, 소에게 있어서 연한 토끼 고기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상대방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기 쉽다.
서운한 감정이 반복되다 보면 부부간에 갈등은 심각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부부는, 특히 신혼 부부는 내가 상대방에게 베푸는 최선이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최선인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혼을 앞 둔 예비 신랑 신부들은 물론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명심할만한 좋을 말씀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에게 서운해하기”는 부부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도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부딪히게 되어 있다. 어쩌면 이러한 사고 (思考)의 충돌 속에서 용케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신기하기도 한다. 기독교에서는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그런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야말로 인간 스스로를 교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인생은 너의 것” 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어찌 그렇게까지 훌륭해질 수 있겠는가? 기독교에서는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 이라고 믿는다. 내 인생이 내 생각, 내 능력대로만 전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믿음의 작은 증거이다. 부부 사이에 하나님을 모셔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를 하면, 마치 사자와 소 같던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되면 결혼생활의 파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할렐루야.
2009-07-21 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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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5> 솔직한 대화는 독(?)
나는 주례를 설 때 부부간에 대화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특히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면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들도 주례가 무슨 그런 말을 하나 잠시 난감해 한다. 내 말의 취지는 부부간에 갈등이 있을 때 솔직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내게 분명히 결점이 있는 경우에라도 상대방이 이를 지적하면 고맙기는커녕 기분만 나빠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의 인격은 그 정도밖에 성숙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시작한 대화가 자칫 큰 싸움으로 발전하여 부부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대화, 특히 솔직한 대화를 삼가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은 예컨대 교회 현관에 오물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걸 주제로 누가 왜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세미나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런 세미나는 어떤 사람을 곤란한 입장에 빠지게 하는 등 큰 분란만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가? 처방은 간단하다. 이런 때는 오물을 먼저 본 사람이 조용히 치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취할 태도인 것이다. 부부간의 갈등도 원인이 무엇일까 상대방과 밤새 세미나 (대화)를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어둠은 어둠과 정면 대결하여 싸운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어둠과 맞닥뜨려 싸우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둠을 없애려면 전등을 켜면 그만이다. 어둠은 빛이 오면 그냥 물러나게 마련이다. 부부간의 갈등을 어둠으로 본다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 문제와 정면 대결하는 “솔직한 대화”가 아니다. 전등을 켜듯, 무언가 다른 방법을 통하여 부부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부부간에 듣기 좋은 소리 골라 하기”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듣기 좋아 할만한 말만 해 줘 보라. 칭찬을 해도 좋고 “여보 사랑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또는 심지어 거짓으로라도 이렇게 말해 보라. 그러면 놀랍게도 전등이 켜져 어둠이 혼비백산 도망가듯 갈등은 어느덧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좋은 소리 골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억지로라도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기 바란다. 솔직한 대화 너무 좋아하지 말고. 솔직한 대화는 상대방 상처에 뿌리는 소금처럼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솔직함은 부부간이 아닌 다른 인간 관계에서도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직장의 상사가 “오늘은 너와 내가 지위의 상하 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자”고 제안할 때가 부하 직원이 가장 긴장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상사와의 대화 시에도 솔직한 대화는 화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장님, 저번에 저한테 그렇게 말씀 하셨을 때 솔직히 많이 서운했습니다”라는 식의 감정 표현은 부장의 마음을 더욱 엇나가게 만든다.
앞서 말한 대로 솔직한 지적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고매한 인격자는 세상에 드물기 때문이다. 대신 상사의 장점을 억지로라도, 거짓으로라도 칭찬해 보라. 칭찬에 감동한 상사가 정말로 좋은 사람으로 변화될지도 모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도 있지 않은가? 이러고 보면 대화란 솔직히 하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바른 소리보다는 따듯한 사랑의 말이 인간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부부가 해로(偕老)하고, 정년까지 직장에 잘 다니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좋은 말만 골라 하기”를 실천하기를 제안한다.
2009-07-07 1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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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4>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지난 5월 24일 봉하 마을에 다녀 왔다. 23일 새벽에 일어난 사건,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조문하기 위해서였다. 노무현 정권에서 식약청장을 지낸 나로서 조문을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리라. 그러나 그런 도리 때문에만 조문을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한다. 그래서 기꺼이 (?) 간 것이다. 사실은 생전에 찾아가 뵙고 싶었는데 차일피일하다가 결국 돌아 간 후에 조문하게 되었다.
나는 식약청장이 되기 전까지는 노무현 대통령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사람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에서 이상을 추구하느라 고생한 분이 그분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권력기관을 이용한 통치를 싫어했고, 품위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격식없는 솔직한 대화를 즐겼다.
심지어 최초로 국민의 지지가 낮아 도중에 사임하는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것도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었던 것 같다. 재신임 파문은 그래서 일어난 것이리라. 그의 이러한 이상들은 현실에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 정치라지만 이상이 없는, 즉 꿈이 없는 정치는 그가 택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스스로 한 말이다.
보수 언론들은 처음부터 그를 싫어하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고자 열심이었다. 결국 그들은 노무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는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많은 국민들이 노무현을 욕하였다.
심지어 폭탄이라는 비난을 들어 가면서까지 세금을 올려 향상시킨 그 복지의 수혜자인 서민층마저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다. 온 국민이 욕을 하더라도 적어도 서민층만은 그를 지지했어야 마땅하다.
이는 언론이 형성한 여론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를 비난하고 욕하였었다.
그랬던 많은 국민들이 이제 봉하마을로, 또 전국 각지의 빈소로 그의 서거를 조문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조문객이 의외로 많은데 정치권도 국민들도 스스로 놀라는 모습이다. 여권에서는 조문이 반정부 움직임으로 이어질까 민심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씁쓸한 것은 정치적 이해때문에 노 전대통령과 거리를 두어 왔던 일부 정치인들이 이제는 다시 친노무현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노 전대통령을 추모하는 국민들이 이처럼 많지 않았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노 전대통령의 서거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사람 인심이 다 그런거지 하고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노 전대통령을 이처럼 많은 국민들이 추모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우선은 인간적으로 그의 죽음이 너무나 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를 특히 좋아하는 골수 팬들은 물론이고 평소에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싫어했던 사람들까지도 그의 자살은 너무나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떤 교수가 분석한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그가 추구하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음에 대한 비난이었지 그가 추구한 가치 자체에 대한 비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가 추구했던 정치적 경제적 유토피아에 대한 국민들의 동경심은 그의 서거를 맞이하여 더욱 절실해 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우리는 소위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를 뿐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는 것이 공존 공영의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삼가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비는 바른 자세가 아닐까 한다. 오호 통재라.
2009-05-27 11: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