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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3> 내가 바라는 대선(大選)공약 - 적령기에 결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2012년 말이 되면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있을 것이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젊은이들이 적령기에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해 주기를 바란다. 얼마 전 초등학생들의 무상급식이 이슈가 되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급식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급식을 하려면 급식의 대상이 되는 아이의 출산과 육아 문제가 선결되어야 하고, 아이를 낳으려면 젊은이가 결혼을 할 수 있는 사회 여건부터 만들어져야 하는데, 문제의 시발점인 결혼을 제쳐 놓고 맨 나중의 급식부터 이슈를 삼는 것은 순서가 한참 잘못된 일이라 생각한다.내 대학 동기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30을 훌쩍 넘겼는데, 정확하게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처음에는 ‘요즘 애들은 왜 결혼을 안 하려 드나?’라 했었는데, 조금 깊이 생각해 보니 그 애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려면 신랑감은 우선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신랑은 아파트를 마련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신부감이 그걸 제일 원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도 없는 총각에게 시집 올 여자도, 딸을 시집 보낼 부모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자력 (自力)으로 아파트를 구할 (사거나 빌리거나) 수 있는 신랑감이 몇이나 되겠는가? 부모가 부자가 아닌 다음에야 젊은 나이에 아파트를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아파트, 특히 서울의 아파트는 정말 비싸기 때문이다. 신랑감이 운 좋게 서울에 취직을 했다 하더라도 시골 출신은 하숙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의 봉급 중에서 하숙비 내고 가끔 부모님께 용돈을 부치고 나면 저축할 돈이 얼마 남지 않는다. 어느 나절에 돈을 모아 아파트를 구하겠는가? 신부감은 미모 (美貌)가 뛰어나거나 직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미모가 뛰어나면 경제력이 있는 신랑감들이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성형 (成形)을 하는 신부감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성형을 하더라도 미모가 뛰어나게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외모가 수수한 신부감이라면 직장을 갖고 있어야 시집을 갈 수 있다. 대개의 신랑들은 자신의 봉급만으로는 살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맞벌이 아내를 원한다. 옛날에는 ‘여자가 취직은 무슨 취직, 시집이나 가지’라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가기 위해서라도 취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취직하기란 남녀를 불문하고 얼마나 어려운가? 미모가 뛰어나기도, 취직을 하기도 어려우니 여자가 적령기에 시집을 가기가 어려울 수 밖에. 경제력이 있는 신랑감은 되도록 예쁘고 젊고 직장 다니는 신부감을 원하고, 그런 신부감은 잘 생기고 돈 많고 게다가 성격마저 좋은 신랑감을 원한다. 눈이 높아 웬만한 사람은 서로 눈에 차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서른이 후딱 넘고, 서른이 넘어 누군가를 만나보면, 내가 겨우 이런 사람 만나려고 여태까지 기다렸나 하는 마음에 결혼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래저래 젊은이들이 적령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농촌 총각들이 40세 전후 (前後)에 부득이 다른 나라 여자들과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다. 머지않아 도농 (都農)을 불문하고 일부 가진 총각 (부자나 특권층) 만이 적령기에 결혼할 수 있고, 대부분의 총각들은 끝내 결혼을 못하거나 외국 신부들과 결혼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뉴스를 들으니 우리나라 한 주택당 인구가 2.5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독거인 (獨居人)이 늘었기 때문이란다. 특히 혼자 사는 노총각 노처녀 독거인이 늘었다고 한다. 심각한 일이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기본 구성단위인데, 국민의 상당수가 결혼을 못해 가정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그걸 어찌 건강한 나라,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공약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2011-12-28 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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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2> 건망증 (健忘症)
얼마 전 학교에서 퇴근할 때 연구실에서 나와 보니 건물 앞에 내 차가 없었다. 순간 도둑 맞았나 했지만 곧 점심 때 혼자 차를 타고 구내 식당에 갔다가 걸어서 돌아 온 것이 생각났다. 식당에서 동료들을 만나 잡담을 하다가 그만 차를 가지고 간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들과 함께 걸어서 돌아 온 것이었다. 이런 증상을 아마 건망증 (健忘症, absent mindedness)이라고 부를 터인데 건망증은 치매 (dimentia 또는 Alzheimer’s disease)와는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근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내 자신의 기억력 (memory)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나는 특히 예전에 만난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 어떤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고 마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아! 그 사람이었구나, 그럼 그렇게 인사를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하고 후회 (?)를 했던 경험도 많다. 물론 누구인지 끝내 생각이 안 나 기억하기를 포기한 경우고 있다. 얼굴은 생각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는 부지기수 (不知其數)로 많다. 그래서 때로는 사람 만나기가 두렵다. 다행히 (?)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모양이다. 가끔 남의 건망증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최근 내가 위로 받은 사례 4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1: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갔었는데 어떤 부인이 아내의 손을 붙잡고 매우 반갑게 아는 체를 하였다. 아내도 얼떨결에 반갑게 인사를 받긴 했지만 그 부인이 누구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단다. 그런데 나중에 그 부인이 자기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엿들어 보니, 그 부인이 아내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을 하고 인사를 한 것이었다. 허허 웃을 수 밖에. 그 사람이나 아내나 기억력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았다. 사례2: 서울대 P교수는 대덕단지에서 열리는 회의에 자기 차를 운전하고 갔다가 돌아 올 때에는 고속 버스를 타고 왔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려고 아파트 주차장에 가 보니 자기 차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자기가 대덕에 차를 두고 온 사실을 생각해 내었다. 학교 구내에 차를 두고 걸어 온 내 건망증은 쨉도 되지 않아 보였다.사례3: 연세대 K교수는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들면서 하는 회의를 소집해 놓고는 자신은 깜빡 잊고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모임 시간이 지나자 식당에 모인 한 참석자가 전화를 걸어 왜 안 내려 오시느냐 물었다. K교수는 ‘아! 깜빡 했네요. 곧 내려갑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식당으로 가기 위해 연구실을 나섰다. 그런데 식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절친했던 옛 친구를 만났다. 반갑게 대화를 나누는데 그 친구가 점심 때이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K교수는 ‘그렇지, 밥은 먹어야지’ 하면서 무심히 그 친구를 따라 외부에 있는 식당에 갔다. 얼마 후 아까 전화했던 사람이 다시 전화를 해왔다. ‘어디 계시는데 이렇게 못 오세요?’. K교수는 앗! 소리 외에는 아무런 대답이나 변명을 할 수 없었다. 그 일로 K교수는 매우 큰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례4: 우스개 책에서 본 건망증 이야기 하나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씩씩하게 아내의 이름을 부르곤 반말로 이것 저것 시키던 경상도 싸나이가 있었다. 친구들은 그의 싸나이다움을 늘 부러워했다. 그런데 환갑이 지난 어느 날 친구들이 그 집에 놀러 가 보니, 그가 자기 아내를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자기야, 자기야’ 라고. 그 것도 한껏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를 본 친구들이 이구동성 (異口同聲)으로 놀려댔다. “야, 너 옛날의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가고 남사스럽게 ‘자기야’ 가 다 뭐냐?”고. 사나이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야, 너무 놀리지 마, 얼마 전부터 마누라 이름이 생각이 잘 안 나서 그래, 이해해 줘’ 했다나? 독자 여러분, 위로 받으셨나요? 어쩌겠습니까? 나이 먹으면 다 그러려니 하며 서로 이해하며 삽시다.
2011-12-14 0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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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1> 사립 경성약학전문학교
1918년 6월 21일 개교한 2년제 조선약학교는 1925년 3년제가 되었고 1930년에 “경성약학전문학교(京城藥學專門學校; 3년제, 이하 경성약전)”로 승격되었다. 승격된 연도는 자료에 따라 1930년 (“약사산고1~3) )과 1928년4)으로 다르지만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1930년이 맞는 것 같다.5) 최근에 입수한 일본 문헌6)에는 1929년 (교장, 동경대학 약과 출신 玉蟲雄蔵)이라고 써 있지만 이에 대한 1차 사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경성약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입학 할 수 있었다. 1932년에는 일본 문부성의 인가를 받은 전문학교가 되었다. 조선약학교와 경성약전의 건물은 현재 서울시 중구 구민회관과 구의회의 부지에 있었는데, 서울대 약대 동창회는 이 사실을 기념하고자 1991년 이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비석에는 1918년부터 1959년까지 이 자리에 학교 건물이 있었다고 써 있지만 1918년은 조선약학교가 설치된 해이고 실제로 학교가 이 자리로 이전한 것은 다음해인 1919년이었다. 조선약학교와 경성약전을 통틀어 교장은 초대 조중응 (사진 1)을 제외하고는 5명 모두 일본인 (児島高里, 吉木弥三, 國峰專吉, 安本義久, 玉蟲雄蔵)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동경제대 의과대학 약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대한의원, 총독부의원, 경성제대 부속의원의 약국장을 겸하고 있었다. 경성약전에는 교수, 강사, 비상근 강사를 합쳐 약 34명이 근무하였는데 이중에 한국인으로는 도봉섭 (都逢涉) 교수 1명 밖에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다 일본에서 제국대학이나 약전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참고로 조중응씨는 1860년 9월 22일에 경성의 남송현 (南松峴)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중협 (重協)이었는데 31세에 개명하였다. 가숙(家塾), 평균관중학동제 (平均館中學東齊)에서 공부하였다. 1883년에 만주, 외몽고, 러시아 바이칼 호수 지방등을 여행하였다. 1885년에 전라도 보성군으로 유배되었으나 1890년에 특사되어 의정부전고과 (議政府詮考課) 주사, 보통문무시험 위원에 임명되었다. 1895년에 외교교섭국장이 되었으나 김굉집 (金宏集) 내각의 와해와 함께 일본으로 망명하여 고마바 (驹場) 농학교 강습생, 외국어학교 조선어 강사로 근무하였다. 1906년에 통감부 촉탁 농사조사원으로 임명되었다. 통감부의 장은 이또 히로부미 (이등박문, 伊藤博文)이었다. 1907년에 이완용 내각의 외무대신에 취임하였다. 1908년에는 농상공부대신으로 취임하여, 1910년 한일병합 후 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자작 (子爵) 작위를 받고 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된 친일파 유력자이었다. 1915년에 약학강습소 소장이 되었고, 1918년에 조선약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19년 7월에 죽었다. 조중응은 한일병합에 공을 세워 정미 칠적 (丁未七賊) 및 경술국적 (庚戌國賊, 8인)에 이름을 올린 대단한 친일파 매국노 (賣國奴)이었다. 그가 얼마나 거물이었나는 이완용, 송병준 및 이토 히로부미 (사진 2의 가운데)와 함께 한 구절씩 휘호를 남긴 서화 (사진 3)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서화는 조선 병합에 의기투합하고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는 ‘정신일도’(精神一到), 이완용은 ‘산하무성’(山河無聲), 송병준은 ‘천재명야’(天載命也), 그리고 조중응은 ‘묵불어’(默不語)라고 적었다. 7) 거물 매국노의 힘을 빌어 우리나라의 근대 약학교육이 시작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엄연한 사실이라 하겠다.1) 홍문화, 약사산고, 동명사 (1980).2) 한구동, 나의 학창시절, 서울대약대동창회보 제2보 (1984).3)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요람 (2007).4) 한국약업100년, 약업신문사 (2004).5) 심창구 외, 한국약학사, 약학회지, 51(6), 361-382 (2007)6) 藥史学雜誌, 日本藥史学会, pp31 (2009).7) http://jeongrakin.tistory.com/492
2011-11-30 1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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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0> 조선약학교 (朝鮮藥學校)의 역사
2009년 일본의 ‘藥史學雜誌’를 보면 ‘한국근대약학교육사 자료-일한병합시대를 중심으로’라는 흥미로운 논문 (Vol. 44, No. 1, pp 31-37)이 게재되어 있다. 필자는 2007년 ‘약학회지’에 ‘한국약학사’라는 제목의 논문 (이하 ‘약학사’, 제51권 제6호 361-382)을 쓴 바 있는 데 그 논문을 보완도 할 겸 일본 논문의 내용 일부를 이하에 소개 한다. 1) 전사 (前史)1910 (明治 43)년에 대한의원 부속 의학교 약제과 (3년제)가 설치되었으나 1년만에 폐지되었다. “당시 조선의 민도 및 습관이 의약분업 제도를 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이따금씩 소수의 약제사를 양성하는 것은 오히려 의학진흥을 방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란다. 졸업생이 있었는지는 불명이다. 2) 약학강습소1915 (大正4)년 6월 자작 (子爵)인 조중응 (趙重應)씨를 소장 (所長)으로 하여 ‘약학강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 강습소는 사립장훈학교 (長薰)로서 야간에 조선인 약업가의 자제를 교육하였다. 3) 조선약학교1918년 4월 15일, 경성에 사는 약종상 (藥種商)인 일본인 2사람 (문헌에 따라 3인)이 대표로 조선약학교의 설립을 청원하였다. 6월 7일에 인가를 얻어 1918년 6월 21일에 자작인 조중응씨를 교장으로 하여 개교하였다 (서울대약대 요람 2007년 판에 1919년 6월에 개교되었다는 기록은 오류인 듯). 교사 (校舍)는 현재 남대문 시장 남쪽 (당시 南米倉町 284번지)에 있는 관청 소유의 건물을 빌렸다 (약학사에서는 종로 6가의 30평 기와집). 1918년 7월 11일에 종로 5정목 (丁目) 29번지 (현재 종로5가 하나은행 부지)로 이전하였다. 1919년 5월에 황금정 8정목 (黃金町 8丁目, 현재 중구 을지로 6가 중앙구민회관 자리)에 있는 훈련원 (訓練院, 구 한국군 연병장) 부지 약 2000평을 총독부로부터 무상으로 받아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약학사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서울약대 동창회는 우리나라 근대 약학의 발상지인 이 자리에 1991년 9월 12일 (당시 회장 한명승) 교적비를 건립하였다. 이 교사는 나중에 약전 (藥專, 약학전문학교)으로 승격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이 학교는 본과 1년 + 별과 (別科) 1년의 총 2년제로 졸업생은 무시험으로 조선 내에서 약제사가 되었다. 다른 문헌에 의하면 1920년 11월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약제사 시험에서 30명의 응시자 중 11명이 합격하였고, 그 중 한국인 이호벽씨 (국산 약사 1호)와 신경휴씨 (국산 약사 2호)가 1, 2등으로 합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마 무시험으로 받은 면허는 조선 내에서만 통용되는 면허이었고, 총독부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하여 받은 면허는 일본 영내 어디서나 통용되는 약제사 면허가 아니었나 추정된다. 본과에서는 매일 5시간씩 수업을 하였고, 별과에서는 매일 밤 3시간씩 수업하였다. 1년 차 본과에서는 수신 (修身), 수학, 독일어, 광물학, 물리학, 화학, 식물학, 분석학, 제약화학, 생약학 과목을 배우고, 2년 차 별과에서는 분석학, 제약화학, 생약학, 위생화학, 약품감정, 약국방, 조제학, 약제학을 배웠다. 이 학교에는 일본인은 심상소학교 (尋常小學校) 졸업생, 조선인은 보통하교 졸업생이 입학할 수 있었다. 학생정원은 일본인 조선인 합쳐서 50인 이었다 (100인이라고 기록된 문헌도 있음). 학비는 1학년은 월 1원 50전, 2학년은 여기에 월 1원의 실습비를 더 내야 했다.1925년 3월 16일에는 고시 제 41호에 의해 조선약학교는 약학교로 공식 인정되었다. 또 1925년에 조선약학교는 2년제에서 3년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3년제로 바뀌었다는 기록은 이 논문에서 처음 보는 기록이다. 1925년부터 교장은 약제사인 국봉전길 (國峰專吉, 다른 문헌에서는 국봉수길 國峰壽吉)씨였다. 1929년 (필자는 약학사에서 1930년을 주장)에 조선약학교는 사립경성약학전문학교 (藥專)로 승격되었다. 藥專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소개하고자 한다.
2011-11-16 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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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9> 재미한인 제약인협회 (KASBP)를 소개합니다
KASBP (재미한인 제약인협회, 이하 협회, 회장 한용해)는 신약개발을 포함한 생명과학 분야의 주요 이슈에 대한 학술정보 교류와 회원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10년 전인 2001년에 만들어진 비영리단체이다. 협회를 설립한 목표는 한국의 제약회사 및 정부출연 연구기관들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한국의 신약연구개발을 돕고, 나아가 한국에서 개발된 기술이 국제적으로 상업화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회원은 주로 미국 제약산업의 심장부인 뉴저지를 중심으로 한 동부지역의 빅파마와 바이오텍에서 근무하는 연구자들과 기업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들은 매년 봄과 가을에 신약개발 분야의 새로운 이슈들과 트렌드를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는데 미국의 기업, 대학, 연구소 및 FDA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금년에는 대웅제약 및 녹십자와 공동주최로 가을 심포지움 (10/28-29)을 열었다. 이번에는 한국인 중 가장 노벨상 수상에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버클리대학 (UC Berkeley)의 김성호 교수가 기조 강연을 하였다. 그는 그간 업계의 주목을 끌어 온 항암제 연구 과정을 소개하는 한편 후배 연구자들에게 생명과학 연구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강조하였다고 한다. 신약 연구 현장에 몸담고 있는 재미 한인과학자들의 수준 높은 연구 발표와 FDA 심사관들과의 열띤 토론도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이 협회 활동의 특징은 FDA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사관들을 대거 초청하여 한국의 제약업계 연구자들과 대면 토론시킨다는 것이다. 이 때 주로 우리말로 토론을 진행한다는 것이 이 협회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이런 프로그램이라면 신약개발 경험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신약연구자들 및 식약청 관계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준 높은 학회는 많다. 그러나 한국어를 통해 한국의 연구자들이 미국의 신약개발 현황에 관한 최신 정보를 효과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곳은 이 협회 외에 따로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정부도 이 협회가 펼친 지난 10년간의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월 뉴욕에서 열린 <한국의료현대화 50주년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하여 이 협회에 공로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이 협회는 젊은 한국인 연구자들을 이끌어 주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즉 대학원생 및 박사 후 연구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 뒤 그들의 연구결과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장래 계획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이 협회의 활동이 점차 알려지면서 회원수도 빠르게 늘어나, 2011년 10월 현재 미국 전역의 제약기업(BMS, Novartis, GSK, Merck, Sanofi, J&J, Pfizer, 등 100여 회사), 60여 개의 아카데미아, 그리고 미국FDA, 국립보건원(NIH) 등 정부기관으로부터 총5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협회는 회원들의 구직 활동 및 한국 제약기업들의 인재 채용과정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따라서 이 협회의 심포지움에 참석하면 인재를 구하는 한국 기업이 어디인지, 그리고 장래가 기대되는 재미 젊은 인재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된다.이 협회의 활약을 보고 있노라면 ‘친정집을 염려하는 시집 간 딸’ 이 연상된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미국의 제약업계에서 기반을 구축한 한용해 회장 (BMS)을 비롯한 협회의 임원들이 친정집인 대한민국의 제약업계를 돕는 일에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시집 간 딸을 보듯 가슴이 뭉클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실무경험에 기반한 이들의 전문성과 애국심은, 불타는 의지 하나로 신약개발 강국으로 도약하고자 수고하는 우리나라의 제약업계에 분명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국내의 많은 기업이 이 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미국의 제약업계 및 FDA로부터 신약개발에 관한 최신 정보를 흠뻑 입수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가르쳐 준다는 데 안 배울 이유는 없을 것이다.
2011-11-02 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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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8> 약학대학은 신약개발 연구의 본산 (本山)- 소책자 머리말 (2)
잘 알려진 대로 신약개발에는 대략 8-15년이라는 오랜 세월과 평균 1.7억불 (최대 5억불)이라는 막대한 돈이 소요된다. 더구나 성공확률도 거의 제로 (0.02% 이하)에 가까울 정도로 낮아서 수만 개의 화합물을 검토해야 그 중 하나가 약으로 개발될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이다. 그래서 모두들 신약개발은 매우 위험한 (risky) 도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질병을 낫게 하되 (有效性) 동시에 인체에는 무해해야 (安全性) 한다는 약의 이율배반적 (二律背反的)인 요건을 동시에 충족시키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돌을 던져 장독대에 앉은 쥐를 잡되 독을 깨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난치병 및 불치병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신약개발은 어렵다고 포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신약개발은 인류의 영원한 숙명적인 과제로 남을지도 모르겠다.전 세계 사람 중 3명 중 1명이 일생을 통해 암에 걸리고 있지만 아직도 확실하게 암을 완치시키는 치료약이 개발되지 못하였다. 만약에 획기적인 항암제 신약을 개발하여 수만~수백만 암환자의 생명을 살려낼 수 있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좋은 신약을 개발하면 연간 최대 매출 1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신약개발의 첫 번째 사명은 무엇보다 환자의 생명을 구함에 있어야 한다. 경제적 이익은 그 다음에 따라 오는 것이다. 신약개발을 총체적으로 교육하는 곳은 물론 약학대학이다. 약학대학의 교육 전략은 간단하다. 학생들에게 신약개발에 필요한 제반 전문지식을 균형 있게 교육하는 것이다. 균형된 (balanced) 지식을 통하여 개발 초기에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물질을 선정하여 약으로서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보증하기 위해 필요불가결 (必要不可缺)한 최소한의 연구를 수행하도록 연구팀을 지휘할 수 있는 안목 (眼目)을 갖도록 학생들을 키우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저자가 머리말에 “약의 개발에는 유기화학, 물리화학, 생물화학, 분자생물학, 약리학, 약제학 등 많은 학문 영역의 총합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들을 계통적으로 교육하고 연구하고 있는 곳은 오직 약학대학뿐이다” 라고 쓴 것은 약학대학 교육의 특징이 바로 이와 같은 ‘균형 잡힌 교육’에 있음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내가 약학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에는 아무도 우리나라에서 신약이 개발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11년 현재까지 총 17 개의 신약과 6개의 천연물 신약, 그리고 28 개의 개량신약 (2010년에만)을 개발하였다. 놀랍고 대견한 반전 (反轉)이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각고 (刻苦)의 노력을 다 한 우리나라 제약업계에 감사드릴 따름이다.2009년 ESI란 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전 세계의 약학대학 중 최근 10년간 가장 많은 연구 논문을 발표한 대학은 자랑스럽게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서울약대)이었다. 서울약대는 교수 1인당 연간 발표 논문 수에서도 서울대학교의 16개 단위대학 중 1등이었다 (서울대 전체 평균 : 0.9~5.4편, 약대 : 6.9편). 최근 서울약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승인된 신약은 대부분이 서울약대 교수 및 동문이 연구 개발한 것이었다. 신약개발과 서울약대의 연구가 상관관계에 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대목이다. 국내의 다른 약대들의 연구 분위기도 서울약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생명을 살리는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blockbuster) 신약이 우리나라에서 개발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나는 이 번역판 책자의 머리말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내려 한다. ‘아무쪼록 이 책이 이 땅의 뜻있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신약개발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위하여 일생을 헌신하기로 결심하는데 있어서 균형 잡힌 안내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라고.
2011-10-19 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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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7> 왜 6년제인가?-소책자 머리말 (I)
요즈음, 나는 일본 교토 대학 (京都大學)에서 2007년에 발간한 “새로운 약은 어떻게 창조하는가?” 라는 작은 책을 번역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의 머리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쓰려고 한다. 2011년은 우리나라 약학대학의 학제가 6년제 (2+4년제)로 바뀜에 따라 첫 신입생이 입학한 역사적인 해이다. 약학대학의 교육연한을 종래의 4년에서 6년으로 늘인 것은 ‘의료복지’를 추구하는 21세기의 시대 상황에 부응하는 교육을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 하겠다. 즉 삶의 질이 향상됨에 따라 사람들은 의약품에 대하여 더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암과 같은 불치병 및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신약이 개발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 약대6년제인 것이다. 물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약학교육의 추세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의약품의 안전성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미국의 경우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입원하는 환자가 응급 입원 환자의 8%에 이르며, 입원 환자의 7%는 입원 중 먹은 처방약 때문에 심한 부작용을 경험하며, 입원환자 1,000명 중 3명이 의약품의 부작용 때문에 사망한다고 한다. 또 1998년의 추계에 의하면 매년 입원 환자 중 10만 명이 약물 부작용 때문에 사망한다고 한다. 실로 참혹한 일이다. 의료복지를 추구하는 21세기에도 이와 같은 참혹한 일이 반복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미국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식약청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올해 7월까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위 10개 일반약 중 최근 슈퍼판매 대상으로 거론되는 진통제 및 감기약 등에 대해 보고된 부작용이 무려 3,958건에 이른다. 놀라운 것은 대표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ER 서방정’에 관한 부작용 보고가 1,275건으로 가장 많다는 사실이다. 의약품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사례도 2008년 193건, 2009년 411건, 2010년 539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10번 이상 부작용이 보고된 의약품의 품목도 2009년 481개에서 2010년 1,495품목으로 급증하였다. 모든 부작용이나 사망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을 것이란 점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약물관련 사고도 미국처럼 참혹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최근 아스피린으로 얼굴 팩을 만드는 방법이 인터넷에 올라와 충격을 주고 있다는 뉴스는 우리가 의약품의 안전성 문제를 얼마나 잘못 다루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약대 6년제는 우선 의약품의 안전 사용에 관한 교육을 추구한다. 그 철학을 임상약학 (臨床藥學, Clinical Pharmacy)이라고 부른다. 종래의 약물 요법은 환자 개개인의 인종이나 개체에 따른 유전적 특성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및 약물 반응성에 대한 유전적 차이)을 무시하고 무조건 ‘성인 1정, 어린이 1/2정 복용” 같은 식의 일률적인 투약을 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최근 발달하고 있는 임상약학은 예컨대 약물유전학 (藥物遺傳學)을 바탕으로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최적의 약물요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처럼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반영한 약물요법을 ‘맞춤약학 (Personalized Medicine)’이라고 부른다. 맞춤약학의 목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약의 부작용에 의한 희생자를 최대한 줄이자는 것이다. 약대6년제가 추구하는 두 번째 목표는 신약개발이다. 잘 알려진 대로 신약개발에는 막대한 돈과 오랜 시간이 요구되며, 따라서 신약개발은 실패 위험도가 매우 높다는 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신약개발의 관건 (關鍵)은 실패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성공확률을 최대한으로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약개발 전반에 대해 균형 잡힌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약대 6년제는 이러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신약개발에 관해서는 다음 회에 계속).
2011-10-05 09: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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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6> 나는 회색분자이다
어두운 어느 날 밤 항해를 하고 있던 선장이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을 보고 신호를 보냈다. “방향을 20도 바꾸시오!” 그러자 저쪽에서도 신호가 왔다. “당신이 바꾸시오!” 기분이 몹시 상한 선장이 다시 신호를 보냈다. “난 이 배의 선장이다!”. 그러자 저쪽에서 다시 회신이 왔다. “난 이등 항해사다!”. 열이 머리 끝까지 오른 선장. “이 배는 전투함이다. 당장 항로를 바꿔라!”. 그러자 회신이 왔다. “여긴 등대다!” 그 순간 선장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이상은 ‘엔도르핀 팡팡 유머’란 책에서 따 온 ‘고집부릴 게 따로 있지’ 라는 주제의 유머이다.
고집 (固執)이 센 사람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 융통성이 없고 남에 대한 태도도 교만하다.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남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별로 없다. 그래서 고집은 옹고집의 예처럼 대체로 나쁜 이미지를 갖는다. 예컨대 정치가들의 고집이 그러하다. 신문이나 티브이에서 여야 정치가가 논쟁하는 것을 보면 상대방의 주장은 백 퍼센트 틀리고 내 주장은 백 퍼센트 맞는다고 잘도 우긴다. 마치 우기기 시합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때 그들은 뻔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고집이 반드시 나쁜 이미지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독립투사의 고집은 존경을 받는다. 온갖 고문, 박해 및 위험에도 굴하지 않았던 독립투사의 고집보다 더 센 옹고집이 어디 있겠는가? 옹고집이라 해도 이런 고집은 소신 (所信) 또는 신념 (信念)이라는 고상한 단어로 불리는 것이다. 문제는 고집과 신념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가가 자기 철학을 일관 (一貫)되게 밀고 나갈 때 소신을 가진 정치가라는 칭송을 듣기도 하지만 까딱 잘못하면 융통성이 없는 독불장군 (獨不將軍)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반면에 사고 (思考)가 너무 유연하면 우유부단 (優柔不斷)하다거나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기 쉽다.
나는 집사람으로부터 ‘회색분자 (灰色分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는 내가 누가 무어라고 하면 금방 ‘그렇네요’라고 수긍 (首肯)을 하다가도, 다른 사람이 다른 주장을 하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하는 태도를 잘 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어느 한쪽 의견이 전적으로 옳고, 그 반대편 생각은 전적으로 틀린 경우를 그다지 많이 보지 못하였다. 대개의 논쟁은 양쪽 의견 모두에 일리가 있으면서 동시에 양쪽에 문제점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양쪽 이야기를 들어 보고 균형 잡힌 판단을 하려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태도 아니겠는가? 그런걸 회색분자라고 한다면 그래 좋다 나는 회색분자이다.
여담이지만, 나를 회색분자라고 놀리는 아내는 충청도 출신이다. 충청도 사람은 원래 고집이 세다. 나의 주관적 관찰에 따른 엉터리 결론이다. 그러므로 (?) 아내의 고집도 장난이 아니다. 예컨대 결혼생활 약 40년 동안 아내가 나한테 사과를 한 적은 거의 없다. 나는? 나는 물론 여러 번 사과하였다. 잘 못한 일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아내는 내가 보기에 분명한 경우에도 사과하지 않는다. 왜 사과를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충청도 사람들은 사과를 할만한 잘못을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나? 내게는 그게 충청도 사람의 고집으로 보였지만, 아내에게는 그게 충청도 사람의 자부심으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과연 그게 고집일까 자부심일까?
각설하고, 과연 어떤 자세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 고집, 소신, 신념을 가지고? 아니면 유연하고 균형 잡힌 사고 또는 회색분자적 사고 방식으로?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러나 나에 관한 한 나는 끝내 회색분자로 살다 죽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의 주장을 여론인 것처럼 대중들에게 주입 전파하려 드는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고집스런 태도는 영 내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의약품의 슈퍼 판매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들은 확신에 차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혹시 ‘나는 다 알고 있다’는 교만으로 ‘배를 등대에 부딪히게 만드는’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겸손한 회색분자 선장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2011-09-21 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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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5> 성경 말씀-너무 가까운 사이는 깨지기 쉽다?
우리 부부는 1988년에 미국 인디아나 주에 있는 퍼듀 대학에 방문 교수로 약 10개월간 체류하면서 본격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퍼듀 한인 교회’ 이었다. 그 때 그 교회는 한국에서 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시고 정년 퇴직하신 박창환 목사님이란 분이 새로 부임하셔서 처음으로 목회 (牧會)를 시작하실 때이었다. 박목사님은 교수 출신이라 그런지 설교도 차분하게 대학 강의처럼 하셨다. 또 성품이 인자하셔서 외로운 유학생들이 아버지처럼 따르곤 하였다. 그 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 부부를 격려하시며 세례를 주셨는데, 그 세례가 계기가 되어 우리 부부는 부족하나마 지금까지 교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박목사님은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토요일 오후에 성경 공부반을 개설하셨다. 나를 비롯한 10명 정도가 수강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중 나이가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해 보니 성경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맨 앞자리에 앉아 고개를 바짝 들고 필기를 해 가며 목사님 강의를 경청하였다. 몇 달 후 귀국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강의를 더 이상 못 듣게 되는 것이 가장 아쉬웠던 기억이 새롭다. 목사님은 그 때 요한복음을 강의하셨는데, 강의를 듣고 내가 제일 놀란 것은 단지 몇 줄의 글에 엄청날 정도로 많은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성경의 의미도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예컨대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복음이란 예수님인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인가, 아니면 그런 내용이 써 있는 성경책을 말하는가 등 생각할 점이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성경은 내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책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훗날 내가 성경책을 잘 읽지 않는 훌륭한 핑계가 되었다. 아무튼 성경에는 혼자서 해석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 적지 않아 보인다. 오래 전 주일에 목사님이 설교하신 마태복음 10장 34-39절도 그러하다. 거기에 써 있는 예수님의 표면적인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들과 아버지, 딸과 어머니, 며느리와 시어머니 간에 불화 (不和)를 만들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있나?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목사님은 믿음의 길에 그만한 어려움이 있다는 취지의 설교를 하셨지만, 나는 내 멋대로 다른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어떤 두 사람이 갑자기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이 친밀하게 지내더니, 얼마 가지 않아 서로 얼굴도 보기 싫어하는 원수 사이로 변하는 걸 몇 번이나 본적이 있다. 그 때, ‘아하 친구를 너무 가깝게 생각하면, 금방 실망을 하게 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앞의 성경구절에 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 관계가 오래 갈 수 없다는 말씀인가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 관계 중에서 부자 (夫子), 모녀 (母女), 고부 (姑婦) 간의 관계보다 더 가까운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관계도 너무 가깝고 직접적이면 오히려 서로 상처받아 깨지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 관계 사이에 하나님이 개입되어 계시면, 둘 사이는 다소 멀어지고 간접적이 되지만, 그래서 일견 예수님이 불화 (不和)를 일으키시는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래야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람간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돈을 벌 때도, 돈을 쓸 때도, 또 무릇 세상의 어떤 일을 보거나 행 (行)할 때도, 나와 그 행위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 예컨대 안경을 통해 사물을 볼 때에도 안경의 렌즈는 하나님의 시각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돈을 기부할 때에도, 내 의 (義)를 들어내지 않으려면 교회를 통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않을까? 성경을 자의적 (恣意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깨달았던 내가 또다시 내 맘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언젠가 목사님께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여쭈어 보아야겠다.
2011-09-07 0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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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4> 참된 성공이란?
내가 약 50년 전에 졸업한 인천 창신 초등학교에서 발간하는 ‘학촌’이라는 교지에 ‘동창회장’으로서 축사를 쓴 일이 있었다. 7 년 전 일이다. 나는 고심 끝에 “여러분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썼었다. 그 후 지금까지도 가끔 과연 ‘성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성공을 향해서 모두들 치열한 삶을 산다. 그런데 그들이 꿈꾸는 성공이란 대개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 (君臨) 하는 모습이 아닌가 한다.그러나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도 생기는 것처럼, 성공한 자, 즉 가진 자가 생기면 반면에 갖지 못한 자가 생기게 된다. 가진 자가 자신의 승리를 자랑할 때, 갖지 못한 자는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 소위 루저 (looser)라고 생각하기 쉽다. 가진 자는 흔히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에 진 자가 이긴 자에게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때로는 나처럼 살아야 한다고 TV에 나와 남을 훈계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성취를 즐긴다. 지난 8월 2일 내가 섬기는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담임목사가 급환으로 운명하셨다.생전에 그 분은 늘 “성공이란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선의 (善意)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살았다. 비록 평생을 병환과 사역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지만, ‘선한 영향력’이 참된 의미의 성공이라면, 그는 빛나는 성공의 삶을 살아낸 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 중에는 부모를 잘 만나 거저 이룬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과 뛰어난 재능, 그리고 훌륭한 성품의 결과로 자수성가 (自手成家)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 특히 자수성가한 사람의 성취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의 성공의 밑받침이 된 재능, 성품, 인물, 건강, 그리고 성실한 태도 같은 특성은 그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타고 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성취가 자신의 잘남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타고난 “주어짐”의 결과임을 깨닫는 순간 그는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감사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되며. 성실하게 되고, 갖지 못한 자를 이해하게 된다. 주위 사람에게 군림하는 대신 온유하게 되며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갖지 못한 자’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가진 자가 비로소 성공자가 되는 순간이 아닌가 한다. 지난 7월 교회 멤버들과 충북 보은에 있는 시골 교회에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사과 농사를 주로 하는 100여 호의 농가 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교회이었다. 교인 수 10명도 안 되는 이 작은 교회를 8년째 지키고 계신 목사님은 50대의 여자 분이셨다. 왜 이 목사님은 돈, 명예, 권력, 지위 중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이 시골에서 그 고생을 사서 하고 계실까? 정말로 그 분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하였다. 교회에 딸린 비 새는 방 하나가 그의 재산의 전부이었다. 어디 간들 이보다 못한 “가짐”은 있을 수 없었다. 가진 자가 성공자라면 이분은 분명 실패자일 것이다. 그러나 선한 영향력이 성공의 지표라면 이 분의 성공은 결코 하목사님의 성공보다 작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도를 목적으로 이 동네 분 들에게 말씀드렸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우십니까? 그러나 이 목사님이 여기 계시다는 사실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라고. 그리고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다. “하나님 이 목사님의 인생도 성공임에 틀림없지요?” 라고. 동창회장으로서의 축사는 이렇게 끝났다. “여러분, 정말로 성공한 사람이란 남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에게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키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은 위로하고 도와주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 되면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2011-08-24 0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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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3> 논문은 ‘비오는 달밤’에 쓰는 것이 아니다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경기도 약사회에서는 제6회 경기약사학술대회와 관련하여 회원들에게 논문을 공모하였다. 영광스럽게도 본인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 논문들을 심사할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여기에 심사 소감의 일단을 피력하고자 한다. 우선 바쁜 일과에도 불과하고 많은 분들이 논문을 작성하여 응모한 사실에 경의를 표한다. 금년에 응모된 논문은 총 21편이었다. 작년의 32편보다는 조금 줄어 든 숫자이다. 21편의 논문의 저자로서는 개국약사가 16, 제약회사 생산부가 3, 병원약제부가 1, 보건소가 1명의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경기지부가 15편, 서울지부가 5편, 인천지부가 1편이었다. 다룬 주제로는 DUR, 일본약국의 현황, 심야약국 등 신선하고 시의적절한 것도 있었으나 대체로 건보재정 문제, 불용재고약 문제, 약국경영 개선문제, 카드 수수료 문제 등 작년과 비슷한 내용이 많았다. 제약회사에서 나온 논문은 무균제제라든지 GMP 또는 제품표준서에 관한 것으로 논문이라기 보다 해설문이라고 봐야 할 내용이었다. 병원약제부에서 나온 논문은 반납해야 할 약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었고, 보건소에서 나온 논문은 약물남용 (특히 술) 교육에 영화관람을 활용하자는 내용이었다. 적지 않은 논문들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소감은 약사사회에 답답한 문제들이 적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약국을 개설한 약사의 입장에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 몇 년째 해결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울러 약사의 정체성 확립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논문들이 많았다. 모두들 누군가 나서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았다.그 다음으로 느낀 것은 대부분의 논문들이 주장하고 싶은 내용에 대한 의욕은 컸지만, 이를 설득력있게 논리적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논문의 형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하였다. 논문은 대개 제목, ‘서론 (또는 배경 및 연구의 목적), 연구 방법, 연구 결과 및 고찰, 결론, 문헌 소개’ 순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형식을 전혀 무시한 논문이 많았다. 꼭 그 형식에 따라야만 하느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안 따를 이유도 없는 내용의 논문들이었는데 말이다. 그 결과 논리의 기승전결 (起承轉結), 즉 논리 전개가 약한 것이 대부분의 논문들의 공통적인 약점이었다. 논문의 제목을 예로 들어 보자. 제목은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분명하게 압축한 것이어야 하는데 두리뭉실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 듯한 표현을 쓴 논문이 많았다. 이러한 표현은 독자로 하여금 논문의 핵심 주장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 뿐이다. 옛날에 자칭 국보 (國寶)라시던 국문학자 고 양주동 박사께서 방송에 나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자기가 쓴 시 (詩) 중에 ‘비 오는 달밤’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사실 비오는 날에는 달이 뜨지 않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이지만 시의 세계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며 껄껄 웃으시는 것이었다. 나는 ‘시의 세계’는 그런 건가 보다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논문이란 시가 아니다.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논리를 전개해야 그 주장에 설득력이 생긴다. 예컨대 ‘건강기능 식품 판매는 약국경영에 도움이 된다’라는 주장을 펴고자 한다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지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막연한 주장만 가지고는 독자가 설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사회과학 분야의 논문도 자연과학 분야의 논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끝으로 아무리 노벨상을 받은 저명한 자연과학자의 논문도 여러 사람의 악의적인 (?) 비판을 수용 또는 반박해 낸 다음에야 비로소 잡지에 실릴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약사님들의 논문도 다시 한번 엄격한 비판 과정을 거친 후 관련 잡지에 싣도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사님들 파이팅!
2011-08-10 1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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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2> 약물상호작용2, 비처방약도 상호작용을 일으키니 조심 !
우리 몸에서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주요 과정은 흡수, 분포, 소실이다. 흡수 과정에 대해서는 항생제인 테트라싸이클린을 우유와 함께 복용하면 우유 중의 칼슘이 테트라싸이클린과 복합체를 형성하여 테트라싸이클린의 위장관 흡수가 나빠지는 사례를 들 수 있다. 또 케토코나졸을 H2 수용체 차단제와 병용하면 후자에 의해 위액의 산도 (酸度, pH)가 변하여 케토코나졸의 용출과 흡수가 나빠지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분포 과정에 대해서는 페니토인을 발프로인산과 병용할 때 후자가 전자의 혈장단백 결합을 치환함으로써 혈장 중 페니토인의 활성형 (비결합형) 농도가 높아져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소실과정에 대해서는 아세트아미노펜 (두통약; 상품명 타이레놀)과 술과의 상호작용을 들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CYP2E1이라는 간 효소에 의해 간독성 물질인 NAPQI로 대사되는데, 술을 마시면 이 효소의 발현이 증가되어 NAPQI의 생성이 촉진된다. 1996년 안토니오라는 미국 사람은 그의 간 손상이 타이레놀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제약회사로부터 5백만불을 보상받는 판결을 받아낸 바도 있다 (1996년 1월 17일 자 Washington Post 지). 미국의 FDA는 1997년부터 2006년에 이르기까지 약물상호작용에 관한 6개의 안내서 (guidance)를 발간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대사 단계는 물론, 막수송체 (膜輸送體, membrane transporter)를 매개한 체내 이행 단계, 그리고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상호작용, 생약 (한약)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까지, 상호작용을 일으키는지, 일으킨다면 얼마나 일으키는지를 연구하는 방법, 그리고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상세한 안내를 하고 있다.FDA의 홈페이지 (www.fda.org-drugs, -Guidance, Compliance & Regulatory Information-Guidances (Drugs)-Clinical pharmacology)에 들어가면 “대사 단계에서의 약물 상호작용” 과 “막수송 단계에서의 약물상호작용”에 대해 그 유무 (有無)와 정도를 판정하는 그림 (decision tree)이 나와 있다. FDA에 신약 신청 (IND)을 하고자 하는 회사들에게 친절한 길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식약청 (KFDA)에서도 병용 금기 약물 또는 특정 연령대 사용 금기 약물을 공고하고 있다. 그 공고에 따르면 병용해서는 안 되는 약물 조합의 수는 2009년 말 현재 190가지를 상회하고 있다. KFDA는 또 수시로 “의약품안전성 서한”이라는 공문을 통해 의사와 약사에게 특정 약물상호작용에 대해 주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예컨대 2009년 5월 19일에는 클로피도그렐 (동맥경화 용제)과 프로톤펌프 저해제 (위산과다 및 위궤양 치료제, 예; 오메프라졸, 란조프라졸, 라베프라졸 및 에스에프라졸)를 동시 복용하면 후자가 전자의 대사를 억제하여 심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되도록 이 두 약을 병용하지 말라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또 같은 해 5월 22일에는 독사조신, 테라조신, 프라조신 같은 양성전립선 비대증에 쓰는 약을 발기부전 치료제인 PDE-5 억제제 (예: 실데나필, 타다라필, 바테나필 등)와 병용하면 증후성 저혈압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니 신중하게 처방, 투약, 복약 지도해 달라고 당부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도 있다. 이처럼 두 가지 이상의 약을 병용할 때의 부작용은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알려진 비처방약이라고 해도 처방약과 함께 복용하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가 동시 또는 비슷한 시간에 한약을 복용하거나, 특별한 보양식을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제약회사는 그런 경우에 대해서까지 연구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괜찮겠지 방심 말고 전문가와 상담하자”. 이것이 정답이다.
2011-07-20 0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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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1> 약물상호작용 (1), 허가받은 약이라고 다 안전한 것은 아니다
최근 연달아 일간지와 월간지 기자로부터 약물 상호작용이 정말 심각한 문제가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또 일반약의 일부는 수퍼에서 팔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경솔한 논의를 보면서, 일반인도 알기 쉽도록 약물상호작용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약물상호작용이란 어떤 약의 약효가 병용 (倂用, 함께 복용함)한 다른 약물에 의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현실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약물을 병용하는 환자가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상호작용의 경우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응급 입원 환자의 8%는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입원하며, 입원 환자의 7%는 입원 중 먹은 처방약에 의해 심한 부작용을 경험하며, 입원환자 1000명 중 3명이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1998년의 추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입원 환자 중 약물 부작용에 의해 사망하는 환자의 수가 매년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998~2003년 사이에 미국에서 약물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시장에서 퇴출된 약은 10가지나 된다. 예컨대 1997년 바이엘사에서 개발된 고지혈증 치료제 세리바스타틴 (Cerivastatin, 상품명: Lipobay)을 다른 고지혈증 치료제인 젬피브로질 (gemfibrozil, 상품명: Lopid)과 병용하였더니 횡문근변성을 일으켜 52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는 1998년 이후의 시판후조사 (Post-marketing surveillance, PMS) 로 밝혀진 사실인데, 결국 바이엘사는 2001년 세리바스타틴을 시장에서 철수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병용이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까지를 고려하면 약물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빈도는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물상호작용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50년 보거라는 사람은 페니실린과 프로베네시드 (probenecid)를 병용하였을 때 페니실린의 혈중농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현상을 한 잡지에 보고하였는데, 아마 이 것이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약물상호작용이 아닐까 한다. 이는 프로베네시드가, 신장에서 페니실린의 요배설을 담당하는 OAT1이라는 막수송체의 활성을 저해함으로써, 페니실린의 요배설을 지연시켰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 결과 페니실린의 약효를 오랫동안 지속시켜 주었는데, 이처럼 최초로 보고된 약물상호작용은 바람직한 상호작용이었다. FDA는 겨우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약물상호작용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기 시작하였다. 간 조직을 이용하여 약물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다. 드디어1992년에는 터페나딘 (terfenadine, 알레르기성 비염약, 상품명: Seldane) 과 케토코나졸 (ketoconazole, 피부항균제, 상품명: Nizoral)을 병용하면 심장독성 (Torsades de Pointes)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이는 이 두 약물을 5일간 함께 먹던 22살 된 부인이 심계항진 (心悸亢進,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과 어지러움 증 때문에 응급실로 이송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터페나딘은 간에서 CYP3A4라는 효소에 의해 대사되는 약인데, 케토코나졸 같은 CYP3A4 저해제 (예: 에리스로마이신이나 자몽주스 등)와 함께 먹으면 대사되지 않고 혈중에 고농도로 잔류함으로써 이와 같은 부작용을 나타낸다. 터페나딘은 1985년 FDA의 시판허가를 받은 후 92년에는 미국 10대 다빈도 (多頻度) 처방약에 들어 갈 정도로 잘 팔리던 약이었는데, 결국 1998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허가를 받고 오랫동안 잘 팔리는 약이라고 해서 반드시 안전한 약이라고 장담할 수 없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궁합이 맞지 않는 다른 약과의 만남 (병용)은 혼인 중매만큼이나 신중을 기해야 할 일인 것이다.
2011-07-06 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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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0> 약제학의 변신(4) – 왜 맞춤약제학인가?
해마다 대학 신입생이 소위 사발식이라고 하는 ‘막걸리 마시기 대회’ 에서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죽는 것은 그 사람 몸 안에 알코올을 분해하는 간효소가 부족하거나 없어서 마신 술의 알코올이 몸 안에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술은 문자 그대로 독(毒)이다. 만약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1950년 한국동란에 참전한 미군 흑인병사에게 항말라리아 약인 프리마퀸을 투여하였더니 복용자의 약 10%에서 빈혈이 나타났다고 한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이들에게는 이 약을 대사시키는 효소(G6PD) 레벨이 낮아 이 약의 혈중농도가 높아져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었다. 2000년 10월 3일 미국 Fortune지에는 ‘DNA의 비극’ 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995년 현재 9살인 마이클이란 소년은 어떤 양부모에게 입양된 후 강박장애와 주의결핍 과잉반응 때문에 ProzacⓇ(fluoxetine)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사망하였다. 부검을 해 보니 이 약의 농도가 너무 높게 나타나, 양부모가 아이를 살해할 목적으로 이 약을 과다복용 시켰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소년에게는 이 약을 대사시키는 CYP2D6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양부모는 아이에게 이 약의 상용량을 먹였을 뿐인데, 이 아이가 약을 대사시키지 못해 약물이 체내에 과잉으로 축적되어 약물의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결국 양부모는 살인 누명을 벗게 되었지만, 만약에 마이클이 이런 특성을 가진 환자라는 사실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리 알고 있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안타까운 사고이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식약청에서도 치오리다진이라는 향정신성 약물의 경우 Cyp450 2D6란 효소 레벨이 낮은 환자(한국인의 7%)에게 처방할 수 없도록 조치한 바 있다. 약의 부작용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약효도 문제가 된다. 한 조사에 의하면 시판되고 있는 항암제와 알쯔하이머약은 약 30%, C형간염바이러스약, 골다공증약, 관절염약은 50% 이하, 심부전약과 천식약은 60% 정도의 환자에 대해서만 약효를 나타낸다. 이는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약을 투여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맞추어 약을 투여하면 치료효율을 훨씬 높일 수 있다. 예컨대 유방암 환자에게 Herceptin (trastuzumab) 이라는 약을 투여하면 10% 정도의 환자만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검사를 하여 Her2 유전자를 발현하고 있는 약 30%의 유방암 환자에게만 이 약을 투여하면 반응률은 무려 다섯 배(50%)나 높아진다. 이 약은 유방암 세포 표면에 과잉으로 발현되어 있는 Her2 유전자와 결합함으로써 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약 (항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맞춤약(제)학은 이미 현재의 우리 생활 속에 들어 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맞춤약(제)학의 근원이 이제마 (李濟馬; 1838-1900) 선생의 사상의학 (四象醫學) 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사람의 체질을 태양 (太陽), 태음 (太陰), 소양 (小陽), 소음 (小陰)의 4가지로 나누고, 이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 생각은 오늘날 사람의 유전적 특성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맞춤약학의 정신과 상당히 일치한다. 약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결코 막연한 구호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응급 입원 환자의 8%가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입원하며, 입원 환자의 7%는 처방약에 의해 심한 부작용을 경험하며, 입원환자 1000명 중 3명(매년 입원환자 중 10만명)은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약물의 부작용을 방치할 수 없다. 맞춤약(제)학이 나서야 한다.
2011-06-22 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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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79> 약제학의 변신 (3) –분자약제학에서 맞춤약제학으로
이미 약창춘추 3 및 4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1998년 미국 내에서 입원한 환자 중 약 10만 명이 약물부작용으로 사망한다는 추정 통계가 발표되었다. 놀라운 통계이다. 죽지는 않았지만 고통을 받은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는 몇십만이 될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죽거나 고통을 받을까? 그 이유는 환자의 인종이나 개인차를 무시하고 모두에게 같은 약을, 같은 양으로, 같은 방법으로 투여하는 종래의 약물요법과 투여방법 (dosage regimen)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수십만명의 생명을 죽이고 괴롭히는 구태의연한 약물요법은 확 바꾸어야 한다. 인간유전체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유전학이 발달함에 따라, 약물의 약효를 결정짓는 3대 요소는 막수송체, 대사 효소 및 수용체이며, 이는 인종은 물론 개인에 따라 매우 심하게 변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한국전쟁시 흑인 병사에게 항말라리아 약인 프리마퀸을 투여하였더니, 그들 중 약 10%가 빈혈을 호소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에게는 G6PD라는 유전자가 부족하여 이 약을 대사시키는 효소 레벨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인종차이를 무시하는 종래의 약물 투여방식은 위험하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면 관계상 생략하지만 수용체 또는 막수송체의 인종간 및 개인간 차이에 의해 약물의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례에 대한 보고도 점점 늘어 나고 있다. 이제 군화 (軍靴)에 발을 맞추듯 ‘약에 환자를 맞추는’ 획일화된 종래의 투여법은 안된다. 더 이상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약물요법은 ‘개개인의 발에 군화를 맞추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즉 환자 개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비추어 가장 잘 맞는 약을, 가장 적당한 용량으로, 가장 좋은 방법에 따라 투여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의 약학을 “개인맞춤약학 또는 맞춤약학 (Individualized Medicine, Personalized Medicine, Tailored Medicine)”이라고 부른다. 약제학은 앞서 언급한 바 있는대로 ‘이상적인 약물 송달’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학문이다. 따라서 약제학은 숙명적으로 ‘맞춤약학’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아니 반드시 그리 되어야 21세기에 약사의 직능이 존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의사도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감안하여 처방을 쓰는 시대가 될 터인데, 그렇다면 약사도 환자의 유전적 특성을 고려하여 처방을 검토하고 복약지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따라서 약대6년제의 목표도 임상약학이라는 다소 애매한 목표를 뛰어 넘어 당연히 ‘맞춤약학 시대의 대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왜 약대를 6년제로 연장 하여야 하나? 라고 하는 국민적 의문에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약제학이 맞춤약학 시대를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상약학도 있고 약물학도 있지만 약제학 이야말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상적인 약물송달’을 실현하기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자생물학의 뒤를 이어 약물유전학 (pharmacogenetics)을 약제학의 새로운 지적 (知的)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만약 약제학이 ‘맞춤약제학 (Individualized Pharmaceutics)’’으로의 변신에 실패한다면, 약제학은 물론 약학, 특히 약사의 직능은 조만간 그 설 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약학대학도 그 존재의의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높은 위상을 잃을 우려가 크다. 더 큰 문제는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에 대한 국민들의 수요에 부응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맞춤약제학으로의 변신은 이처럼 약제학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제학의 또 한번의 변신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2011-06-08 1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