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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8> 짚신도 짝이 있다구요?
1. 결혼은 특권층의 행사
나의 대학 동기들 (평균 나이 65세) 9명이 모이는 ‘함춘약우회’의 자녀는 총 16명인데, 현재 8명이 결혼을 못 하였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40대의 17%가 결혼을 하지 못했고, 2010년 현재 서울에 사는 35-49세 남자 5명 중 1명이 결혼을 해 보지 못 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혹시 처녀는 돈 잘 버는 총각만을 원하고, 총각은 예쁜 처녀만을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총각 처녀가 다들 그런 바램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 서로 만나도 결혼이 성사 되지 않는 것 아닌가? 이제 가죽신은 모를까, 짚신은 짝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러다가는 머지 않아 결혼이란 일부 특권층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대선 후보님들! ‘짚신도 짝이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라고 공약하세요. 그럼 틀림없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나무꾼과 선녀: 애기 셋 낳을 때까지는…
운 좋게(?) 결혼에 성공했다고 해도 안심은 이르다. 여기저기서 이혼 소식이 들려 오기 때문이다. 요즘 애들은 후딱 하면 이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요즘 애들이 아니라 요즘 부모들이 자녀의 이혼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다. 옛날에 나무꾼이 산에 갔다가 연못에서 목욕을 하던 선녀의 옷을 감추는 바람에 선녀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결혼 후에도 선녀는 하늘로 올라가고 싶어서 틈만 나면 옷을 돌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나무꾼은 ‘아이가 셋이 될 때까지는 절대로 옷을 돌려 주어서는 안된다’는 산신령의 경고를 어기고 둘째 아기를 낳은 후 어느 날 선녀의 옷을 돌려 주었다. 그러자 선녀는 두 아이를 양품에 껴안고 하늘 나라로 날아가 버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혼한 신부는 문득문득 결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한다. 맞벌이 생활을 하면서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며느리로까지 살기가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셋 정도 낳고 길러 어느 정도 결혼 생활에 이골이 나기 전까지는, 결코 결혼 생활이 안정되었다고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까지 부부는 온갖 정성과 주의로 상대방을 돌보아야 한다. 마치 인큐베이터에 넣어 기르는 자신의 애기를 돌보듯이. ‘아이를 셋 낳기까지는 결코 결혼 생활이 안정되었다 방심말라.’ 혹시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는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큰 아들이 결혼 하였을 때, 최근의 이혼 풍조를 걱정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였다. ‘만약에 고부 (姑婦)간에 갈등이 생긴다면 너는 네 처 편을 들어라. 나는 네 엄마 편을 들겠다. 만약에 갈등이 심각해져 누군가 갈라서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상황이 된다면, 너는 부모와 갈라지는 선택을 해라. 부모와 자식이 갈라질 수는 있으나 부부간에 갈라지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라고.
3. 감히 시집살이를 시켜?부모들은 흔히 ‘요즘 애들은 얼마나 좋아’ 하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엄청 행복하게 사는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치열한 무한 경쟁, 맞벌이, 육아 등 지금보다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 미래 때문에 우리 부모 세대들 보다 더 깊은 고민을 하며 산다. 부모들은 우선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혼수 타박이나 며느리 구박 같은 행태는 박물관에서도 내다 버려야 할 시대착오적인 바보짓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감히 며느리를 시집살이 (또는 사위를 구박) 시킬 수 있겠는가? 부모들이 온갖 정성으로 신혼 부부를 보호해 주어도 어려운 게 신혼 생활이다. 이쯤에서 부모 세대는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나는 아이들의 결혼 생활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모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모인가? 그 어려운 영예의(?) 결혼을 해 준 우리 자녀들이 부모 때문에 불행해지거나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새삼 나와 똑 같은 생각으로 두 며느리를 품고 사는 아내가 더욱 고마워 진다.
2012-08-22 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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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7> 새로운 약의 창조 3 – 새로운 합성법, 조합화학
인류는 오랫동안 모르핀(아편)과 같은 천연물을 약으로 사용하여 오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야 아스피린처럼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약을 창조하기 시작하였다. 또 이미 존재하고 있던 화합물의 작용을 랜덤(random)하게 스크리닝(screening)함으로써 약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20세기 후반에는 질병의 메커니즘을 고려한 드럭 디자인을 통해 항생물질, 혈압강하약, 항궤양약 같은 획기적인 신약들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약의 작용 기전을 밝히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어떤 물질(천연물이나 또는 유기합성물)에 생리활성이 있다고 밝혀지면, 우선 약으로 사용해 보는 것이 먼저였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사람의 게놈(genome) 정보를 이용하여 신약을 개발하는 ‘게놈 창약(genome 創藥)’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정반대, 즉 ‘게놈(DNA) → RNA → 효소 또는 수용체 → 약(유기화합물)의 창조’라고 하는 새로운 연구 흐름이 주목 받게 되었다. 게놈 정보를 이용하면 약을 창조하기 위한 창약 표적물(標的物, target)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새로운 창약 표적물에 작용하는 리드(lead) 화합물을 발견해 낸 다음, 리드 화합물의 구조를 최적화하는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종래의 신약 탐색에서는 천연물이나 합성 화합물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생물 활성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새로운 유도체들을 합성한 다음, 그 물질에 대해 활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보고 다시 새로운 유도체를 ‘설계 → 합성 → 활성 평가’ 하는 조작을 몇 십~몇 백 번 반복한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등장한 ‘조합화학(combinatorial chemistry, 組合化學)’의 기법을 이용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분자의 크기와 형태, 관능기 등이 다양한 몇 천~몇 만 개의 화합물 군(화합물 라이브러리)을 설계, 합성할 수 있다. 다음, 합성된 화합물에 대해 ‘고속검색 (high throughput screening)’이라고 하는 최신의 평가법을 써서 활성이 있는 리드(lead) 화합물 군(群)을 고른다. 그리고 이 리드 화합물 군의 주변을 상세히 탐색함으로써 신약 후보 물질의 구조를 최적화(optimization)한다. 이런 방법을 쓰면 신약 후보 물질을 발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활성이 있는 리드 화합물을 놓칠 위험성도 낮출 수 있다.
조합화학에서는 종래의 ‘액상 합성법’ 대신 parallel법과 split법이라고 하는 고체상 합성기술을 사용한다. 액상 합성으로 1,000종류의 화합물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1,000개의 플라스크를 나란히 배열해 놓고 반응을 시킨 다음, 각 반응 액을 별도로 추출, 농축, 정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방법으로 1,000개의 화합물을 합성하려면 하루에 3개씩 합성한다고 해도 거의 1년이 걸린다. 이와 달리 고체상 합성법에서는 합성하고 싶은 기질 (약의 원료)을 우선 폴리스틸렌 같은 특수한 고체상 담체(擔體, carrier)에 결합시킨 다음, 반응시키고자 하는 시약 용액을 가하여 반응을 일으킨 후 남은 시약을 용매 등으로 씻어 내면, 만들고자 했던 생성물이 고체상 담체 위에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종래의 액상반응법에서와 달리 번잡한 뒤처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단시간에 많은 종류의 화합물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이나 인간이 창조해 낸 화합물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만 해도 8,800만개나 되지만, 그 중에서 약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합화학처럼 약이 될만한 화학구조를 갖고 있는 물질을 효율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기술은 앞으로의 신약개발 연구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술이 될 전망이다.
2012-08-08 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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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6> 인생설계: 비전의 사다리 오르기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이미 20세 때 인생의 목표를 세웠었다’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매우 초조해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대학생이던 나는 미래에 대해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이나 인생관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에는 어떻게 방향이 떠오르겠거니’ 하며 한 해 두 해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을 할 때가 되었는데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대학원에 들어가서 생각하자’는 마음에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을 보면 그 때의 내 모습이 떠 오른다. 내가 그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인생의 방향을 세우지 못해 고민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시대를 불문하고 젊었을 때 인생의 목표를 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란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스무 살에 인생관을 정립하신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다. 나는 우리 대학원 학생들이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어렵게 생각하지 먼저,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가장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란 평을 듣도록 노력해라. 그러면 그 다음 길은 저절로 열릴 것이다’라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생은 하늘에 매달린 비전의 사다리 오르기’와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다리는 한 칸을 오를 때마다 시야 (視野)가 넓어져 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사는 도중에 얻은 깨달음을 통해 더 큰 비전을 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먼 곳을 보고자 한다면 사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인생도 젊은 날의 짧은 안목으로 지나치게 먼 훗날을 정확하게 설계할 수 없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일단 네가 속한 그룹에서 좋은 평을 듣도록 노력하라’고 매우 단순한(?) 지침을 주는 것이다. 좋은 평을 듣는 학생은 지도 교수의 강력한 추천서를 받아 좋은 연구를 할 기회를 얻기 쉽다. 다시 그 곳에서 좋은 연구 결과를 내면 훌륭한 학자들과 교류할 기회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면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비전의 선(善)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취가 더 높은 비전을 낳고, 높은 비전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앞에 놓여진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 마치 사다리를 한 칸씩 오르는 심정으로.‘성실히 노력하면 그 다음은 저절로 풀린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예컨대 비전을 품고 사다리를 오르다 보면 많은 ‘은혜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979년 나는 일본 문부성 장학생에 응시하여 선발되었는데, 그것은 지금은 동료가 된 C교수가 2년 먼저 장학생으로 선발된 데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다른 대학에 근무하는 Y교수는 나보다 2년 뒤에 일본 유학 길에 올랐는데, 그는 아마 나나 C교수에게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나나 Y가 C로 부터 자극을 받았던 것은 우리 모두가 유학이라는 비전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다리를 오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사람’이 눈에 띠기 마련인 것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이 생각난다. 아이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간 맹자님의 어머니 이야기인데, 이는 아마 ‘은혜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만날만한 자리’로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만날만한 자리’가 비전의 사다리라고 믿는다. 가수 노사연의 노래말처럼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누군가와의 만남은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사랑하는 제자들이여, 인생의 목표를 세우려고 너무 고민만 하지 말고 지금 여러분 앞에 주어진 사다리의 첫 칸을 착실히 올라가라. 그 다음은 올라가 보면 생각이 날 것이다.’ 내 말이 학생들에게 조그만 위로라도 되었으면 한다. 저는 ‘바담 풍’ 하면서도 제자들은 ‘바람 풍(風)’ 하기를 바라는 훈장의 심정으로 한 말씀 해 보았다.
2012-07-18 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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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5> 사람을 무서워하는 나라, 일본 (12) – 민주주의
그 동안 11회에 걸쳐 일본 사람들의 특징을 나름대로 설명하였다. 오늘은 그 동안 언급하지 않았던 그들의 습관과 문화를 몇 가지 추가하고자 한다. 그들은 신설되는 지하철 역 이름 하나를 정하기 위해 여론 조사를 하고, 화폐에 인쇄할 새 인물을 정하는데 몇 년씩 논의한다. 동경대에서는 같은 연구실 대학원생들끼리도 점심 먹으러 갈 때에 각자 따로 간다. 말을 할 때에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끝에 ‘네~’자를 붙여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한다. 심지어 ‘아노 (저어)’에도 ‘네’를 붙여 ‘아노네 (저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듣는 사람은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소오데스까? (그렇습니까?)’ 또는 ‘혼또 (정말)?’라고 맞장구를 쳐야 한다.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단체 여행을 하면 좀처럼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남학생들은 여행길에 만난 여학생들을 희롱(?)하지 않는다. 식당에 가보면 조용하고 공손한 태도로 손님을 맞는다. 주인과 종업원이 더 떠드는 우리나라 식당과는 딴판이다. 손님에게 물을 따라 줄 때에도 ‘오소레이리마스 (황송합니다)’를 연발한다. 남의 집에 들어 갈 때에는 무릎을 꿇고 신발을 출구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고 들어 간다.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그런단다. 깡패도 놀 때에만 난폭한 척하지 다 놀고 나면 단정한 복장으로 전철을 탄다. 공원에서 정말로 술을 마시지 않고 심야에도 택시들이 신호등을 다 지킨다. 모두 감정 표현을 억제하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인의 긴장된 생활 환경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떤 민족의 사고(思考)와 문화를 한 개의 코드로 읽으려 드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을 두려워 함’이 일본을 읽는 중요한 코드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경 아마추어의 만용(蠻勇)이다. ‘사람을 두려워 함’은 사람간의 정을 쌓는 데에는 방해가 될지 모르지만, 약자(弱者)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마 일본의 민주주의는, 총을 차고 살던 미국의 경우처럼, 이 ‘사람을 두려워 함’을 바탕으로 발전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정서가 없다. 양반은 남의 집 대문에 서서 ‘이리오너라’를 외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일상 대화에 얼큰한 욕을 섞어 쓸 수 있었다. 그만큼 안전한 나라이었다. 그러나 이는 그만큼 약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부족했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랬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은 실로 대견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나도 일본 문화 모두를 ‘사람을 두려워 함’ 이란 코드로 해석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도 깨알 같은 유서를 쓰고, 우리는 ‘긴장 풀라’고 할만한 때에 ‘긴장해 (간바레)’ 라고 하고, 신사(神社)인지 절인지에 가서 빌 때에 부처님 앞에 달린 종을 쳐서 조시던 부처님을 깨운 뒤에 기도를 하고 (조는데 기도하면 효험이 없어서라고 함), 겨울에 어른은 긴 바지를 입어도 아이에게는 반바지를 입히며, 애가 넘어지면 결코 일으켜 주지 않고 제 스스로 일어나게 하고, 남자들이 목욕하는 남탕에 아주머니가 들어 와 태연히 청소를 하고, 표를 받는 젊은 처녀가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목욕탕 안을 들여다 보는 (안전 사고 방지 목적이라 함) 문화 등등은 ‘사람을 두려워 하는 일본’ 이라는 코드 하나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역사와 환경이 다른 남의 나라의 민족성과 문화가 우리와 다를 것임은 정해진 이치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국가 간의 문화의 우열(優劣)을 논(論)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 한국 그리고 일본으로 갈수록 사람을 두려워하는 유전적(genotype) 특성이 심해지며, 이에 비례하여 세 민족의 목소리 크기 (일한중 순), 친절하기, 일을 정교하게 하기, 위생 및 청결도, 질서의식 (이상 중한일 순) 같은 표현형(phenotype) 특성이 달라지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 흥미롭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2012-07-04 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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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4> 너무 많은 것을 알려 들지 마
일식 집에서 모듬회를 시킨 손님이 거만을 떨며 주방장을 불렀다. 여보, 어떤 게 광어고 어떤 게 도다리인가? 주방장 대답 왈, ‘잡숴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이 대답에 살짝 기분이 나빠진 손님 왈 ‘먹어보고 모르겠으니까 묻는 게 아닌가?’ 그러자 주방장도 지지 않고 퉁명스럽게, ‘어차피 잡숴 봐도 모르시겠으면 광어인지 도다리인지 아실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했다나.
이 우스개 소리로부터 배우는 첫 번째 교훈은 식당 주인은 이런 주방장은 당장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식당이 곧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방장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먹어 봐도 구분을 못하는 주제(?)에 이름이나 알면 뭐 하겠는가?
나는 젊었을 때 각종 학회에 참석하면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줄 알고 여러 학회를 기웃거렸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내 머리로는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실 창의적인 연구를 하는데 생각만큼 광범위한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깨닫게 되었다. 물론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사정이 좀 다를 것이다.
성경 (빌 3:8)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하면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심지어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씀이 있다. 나는 이 말씀을 핑계 삼아 세상의 책들을 잘 읽지 않는다. 세상에 책이 좀 많은가? 예컨대 ‘성공에 필요한 **가지 습관’이라든가, ‘결혼 생활을 잘하기 위한 *가지 지혜’라는 식의 제목을 단 책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있다. 만약에 사람이 그런 책들을 다 읽어야만 지혜로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지혜로워지기는 애 저녁에 다 글렀다. 그 많은 책을 읽을만한 취미도 인내심도 내겐 없기 때문이다. 논문 몇 편 읽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도대체 어느 나절에 그 수많은 교양 서적들을 다 읽겠는가?
글 (또는 책)이란 무엇일까? 꼭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야 지혜로운 사람일까? 예수님을 한번 생각해 본다. 그 분의 제자들과 교인들은 수많은 책을 썼지만, 정작 예수님은 단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으셨다. 책이 아닌 삶으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본질적인 지혜를 주고 계실 뿐이다. 또 고(故)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어찌 수만 권의 책보다 가볍다 할 수 있겠는가?
TV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達人)’을 보면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묵묵히 자기 일에 전념하여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소개된다. 달인들은 책을 쓰지 않는다. 그냥 달인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또 농부나 어부도 대개는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성실함은 그냥 삶에서 묻어날 뿐이다. 이들의 삶의 태도는 어디서 손톱만한 지식이나 깨달음만 얻어도 마치 큰 도(道)나 깨친 사람처럼 글(또는 책)로 옮기려 드는 어설픈 글쟁이와는 사뭇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고유의 역사(歷史)를 쓰며 산다. 진실되고 성실하기만 하다면 그 누구의 삶도 글보다 경시(輕視) 받을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삶은 그림자에 불과한 글의 본체(本體)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고백하기로 하자. 나도 가끔 글을 쓰지만 내가 쓰는 글은, 적지 않은 경우, 그저 재미나 과시욕 때문에 쓴 잡문(雜文)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물론 많은 분들은 고귀한 지식과 지혜를 피와 땀으로 정성껏 글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이 점 오해 없기 바란다. 다만 나는 ‘세상이 너무 자기 표현 재주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글을 쓸 줄 모르는 분들의 진솔(眞率)한 삶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말로’ 생선을 구분하려 드는 겉멋 든 지식인과는 달리 달인은 광어와 도다리를 ‘맛으로’ 구분한다. 무식하다는 소리 좀 들으면 대수랴. 이름은 몰라도 맛있게 회를 먹을 수 있는 형편이면 감사한 거지.
‘나이가 들수록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단순하게 달인처럼 사세요’ 오늘 새벽 교회 목사님 말씀이다. ‘아멘’.
2012-06-21 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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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3> 새로운 약의 창조 2 - 시행착오의 지혜
지난번 글(약춘 101)에서는 ‘세렌디피티(우연)’나 ‘필연’에 의해 발견된 약들을 소개하였다. 어떤 경위로 발견되었던 간에 그 다음에 거치는 과정은 ‘시행착오 (試行錯誤)’의 반복이다. 이번에는 시행착오를 거쳐 의약품으로 개발되는 과정을 설명하기로 한다.
(사례 1) 천연에서 발견된 리드(lead) 화합물을 개량한 약, 아스피린 - 아스피린 (아세틸살리실산)은 버드나무에서 발견된 진통 성분인 살리신을 개량하여 살리실산을 합성하고, 이를 다시 개량함으로써 탄생한 약이다. 약의 개발은 이처럼 최초로 발견된 활성물질(리드 화합물)을 화학적으로 수식(修飾)하여 보다 약효가 강하고 부작용이 적은 형태로 최적화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이 최적화 과정에는 시행착오의 반복이 불가피 하다. 아스피린보다 소염, 진통작용이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은 이부푸로펜, 인도메타신, 디클로페낙 등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하였다.
(사례 2) ‘골라 잡기’로 발견한 물질을 개량한 약, 딜티아젬 - 1960년대부터 약을 발견하는 수법으로 랜덤 스크리닝(random screening)법이 각광을 받았다. 일본의 다나베(田辺) 제약도 전에 항우울제로 개발하려고 합성해 놓았던 1, 5-벤조치아제핀 유도체들이 혹시 다른 생물활성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스크리닝 해 보았다. 그 결과 1,5-벤조치아제핀의 3위치에 산소관능기(-OCOCH3)가 도입된 유도체에 강력한 관(冠) 혈관 확장작용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 계열의 유도체들을 더 많이 합성한 다음, 그 중에서 약효가 좋고 독성이 적으며 소화관에서 흡수가 잘 되는 물질을 하나 선택하여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한 것이 딜티아젬(diltiazem)이다. (사례 3) 약물설계를 통해 합성된 항히스타민제, 시메티딘 - 1930년대 말에 메피라민과 디펜히드라민이라는 항히스타민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항히스타민제임에도 불구하고 알레르기와 염증은 억제하지만, 위산 분비는 억제하지 못하는 모순된 작용을 나타내었다. 이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체에는 알레르기와 염증에 관여하는 수용체(H1수용체)와 위산분비에 관여하는 수용체(非 H1수용체)가 따로 있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비 H1수용체(히스타민H2수용체라고도 부름)에 결합하는 물질을 찾아내면,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1964년부터 제임즈 브락크 박사(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SK&F사(현 Glaxo SmithKline)의 연구진이 과감히 이 가설에 도전하였다. 그들은 히스타민과 화학구조가 비슷한 화합물들을 설계, 합성해서 이들 중에 비 H1수용체에 작용하는 물질이 있나 조사하였다. 비록 초보적이긴 하지만 히스타민과 비H1수용체의 작용 메커니즘을 고려하여 약의 화학구조를 설계하였다는 점에서 역사 상 최초의 ‘약물 설계drug design’라 할 것이다. 이런 시도를 통해 그들은 마침내 세계 최초로 비 H1수용체에 작용하는 약인 브리마미드(brimamide)를 발견하였다. 이 약을 동물에 투여해 보았더니 실제로 히스타민과 비 H1수용체 간의 결합을 방해하여 위산 분비를 억제하였다. 일단 성공이었다. 그러나 브리마미드는 경구로 투여하면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흡수가 잘 되고 부작용이 적게끔 화학 구조를 개량하였다. 그 결과 얻은 약이 위궤양 치료제로 유명한 시메티딘(cimetidine)이다. 위궤양은 그 때까지는 오랫동안 입원해서 치료하거나 때로는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병이었지만, 시메티딘이 개발된 후로는 입원하거나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가벼운(?) 병이 되었다. 할렐루야!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 그 가운데에서 지혜를 얻을 수만 있다면, 시행착오는 과거는 물론 오늘날과 미래의 신약개발에 있어서도 귀중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2012-06-05 17: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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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2> 매뉴얼 공화국
작년 동일본 대지진 후에 일본이 보인 태도 중에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먹을 것도 많고 물도 많은 일본의 난민(難民)들이 느려터진 보급 속도 때문에 마실 것, 먹을 것이 없어서 그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같으면 불도저로 밀어서 길을 내고 가거나, 아니면 헬리콥터를 띄워서라도 물자를 공급했을 것이다.
가까운 두 나라 간에 왜 이처럼 행동 양식에 차이가 날까? 내 생각에 매뉴얼 대로만 행동해야 하는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대규모 재난 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행동 지침이 미처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본인은 모든 일을 매뉴얼에 정해진 대로 해야 한다. 매뉴얼대로 했을 경우, 설사 나중에 결과가 안 좋더라도 ‘나는 매뉴얼대로 했으니까 내 탓은 아니야’ 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매뉴얼에 안 따르고 내 판단에 따라 임의로 대처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온갖 비난과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결국 사람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매뉴얼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라가 된 것일 것이다.
일본이 매뉴얼 공화국인줄은 나는 1979년 일본에 가자마자 알았다. 79년 어느 봄 날, 약제학 연구실 대학원 생들이 모여 논의를 시작하였다. 주제는 ‘인화성이 있는 유기 용매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실험실 안전에 관한 사항이었다. 예상대로 결론은 ‘실험이 끝난 다음에는 유기 용매 병을 꼭 닫아 두자’는 것이었다. 그 때 한 친구가 의견을 추가하였다. ‘반드시 안쪽 마개를 닫은 후 바깥쪽 마개를 닫자’는 것이었다. 다들 찬성. 그래서 매뉴얼에 안쪽 마개 닫는 방법과 바깥 마개 닫는 방법을 그림과 함께 싣기로 하였다. 여기까지는 참을 만 했다. 그런데 어떤 친구가 물었다. ‘실험이 끝났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냐고. 다시 갑론을박 (甲論乙駁)이 시작되었다. 결론은 ‘실험자가 실험 테이블을 30분 이상 떠날 경우’를 실험이 끝난 상황으로 정의하자는 것이었다. 이 논의 과정에 참여한 한 한국 학생(나)은 거의 돌아버릴 것 같았다. “야, 대충 좀 하자” 소리가 목구멍까지 기어 나왔다.
매뉴얼은 아니지만 비슷한 이야기 하나. 어느 날 실험실 청소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1학기가 끝나면서 대청소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 청소를 하자는 이야기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2주 후 토요일에 하는 청소에 관한 것이었다. 무얼 2주나 앞서 논의하나 보았더니 청소할 때 업무를 어떻게 분장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조수가 실험실 전체 그림을 갖다 놓고 구획을 그어 가며 ‘여긴 네가 하고 여긴 네가 해라’는 식으로 구역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 논의에 적어도 30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몸이 뒤틀리기 시작하였다. 속으로 “야, 그냥 전원이 달려 들어 후다닥 해 치우고, 함께 나가 회식을 하면 되지, 뭘 쪼잔하게 미리 업무를 나누고 야단이냐?’’는 불만이 솟구쳤다.
아무튼 2주 후에 대청소가 시작되었는데, 정말 사전에 정한대로 자기 구역 청소를 끝낸 친구는 다른 친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의리 없이’ 먼저 집에 가버리는 것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청소 당일 빠지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들어 보니 2주전에 미리 공지(公知)를 하였기 때문에 청소 당일에 빠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같으면 ‘갑자기 시골에서 어머니가 올라 오셔서 먼저 좀 가 봐야겠다’며 머리를 긁적대는 학생이 한두 명 나오기 십상(十常)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2주전의 회의는 일종의 매뉴얼이었던 셈이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매뉴얼의 대대적인 보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아마 ‘매뉴얼대로만 해서는 안돼, 사람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의 융통성이 있어야 해’라고 절실히 느끼진 않았을까? 한가지 재난으로부터 정반대의 교훈을 얻는 두 나라 사람의 사고 방식의 차이가 갈수록 흥미로워진다.
2012-05-23 1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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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1> 새로운 약의 창조 1 – 우연의 시대에서 필연의 시대로
지금까지 개발된 약의 역사를 돌아 보면 어떤 물질이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다는 우연한 경험을 근거로 개발된 사례가 적지 않다. 작용 기전도 모르는 채 오랫동안 약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세가지 사례를 들어 본다.(사례 1) 아주 옛날부터 당뇨에 걸린 사람의 오줌이 달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한편 민코우스키 박사는1889년 췌장을 적출한 개의 오줌에 글루코스가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췌장에 당뇨를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1921년 마크라우드 박사는 마침내 돼지 췌장에서 당뇨 억제 성분을 추출, 분리, 정제한 다음 이 물질을 인슐린이라고 이름 붙였다. 1980년에는 유전자 변환 기술을 이용하여 대장균으로부터 ‘사람 인슐린’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사람에게 안전하게 쓸 수 있는 당뇨병 치료제가 개발된 것이다. (사례 2) 고대 중국에서는 이(齒)가 아플 때 작은 버드나무 가지로 이 사이를 문질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말로 이쑤시개를 ‘요지(楊枝)’, 즉 ‘버드나무(楊)의 가지 (枝)’라고 부른다. 1820년대에 버드나무 중에 살리신(salicin)이라는 통증 완화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살리신은 너무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를 개량하여 살리실산을 만들어 보았다. 쓴 맛은 줄어들었지만 이번에는 위장장해가 문제였다. 1897년 독일 바이엘사의 호프만은 쓰지 않고 위장장해가 적은 아세틸살리실산, 즉 아스피린을 합성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아스피린의 해열 진통 작용 기전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971년이었다. (사례 3) 노벨이 살던 1870년대 말, 협심증을 지병으로 갖고 있는 다이너마이트 공장 노동자가 집에서 쉬는 날에 오히려 발작을 일으킨다는 소문이 났다. 이때부터 다이너마이트의 성분인 니트로글리세린을 협심증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의 작용 기전, 즉 니트로글리세린에서 발생하는 일산화질소(NO)가 혈관 평활근을 확장하여 심장 발작을 막아준다는 ‘번듯한’ 기전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70년대 후반이었다.이처럼 우연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것을 영어로 세렌디피티 (serendipity)라고 한다. 그러나 세렌디피티 같은 우연한 경험에만 의지하여 새로운 약을 창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는 성공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이제는 질병의 발증(發症) 메카니즘(즉 건강과 질병의 차이)을 규명하여 치료 표적을 정함으로써 신약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우연의 시대에서 필연의 시대로 옮겨 가고 있는 것이다. ‘필연’의 성공 사례 두 가지를 소개한다.(사례 1) 1989년 일본의 산쿄(三共)사는 푸른 곰팡이로부터 콜레스테롤 생합성효소 (HMG-CoA 환원효소)를 저해하는 메바스타틴이라는 물질을 찾아 낸 다음, 이의 뇨 중 대사체를 약으로 개발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프라바스타틴이다. (사례 2) 또 1983년 일본의 후지사와사는 장기 이식 후의 거부반응이 Helper-T임파구에서 방출되는 인터루킨(IL-2) 때문에 일어나는 것에 주목하여 IL-2의 생성을 억제하는 물질을 찾고자 하였다. 수많은 곰팡이와 방선균을 스크리닝한 결과 1984년 S. 추쿠바엔시스라는 방선균의 배양액이 그런 작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성분을 분리 정제하였다. 이를 장기 이식 후의 거부반응 억제 약으로 개발한 것이 타크로리무스이다. 2003년 완료된 ‘사람 게놈 프로젝트’에 의해 질병의 발증 기전을 유전자 레벨에서 밝힐 수 있게 된다면, ‘필연’의 성공 확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소위 ‘게놈 창약’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갖게 된다. 물론 필연의 시대에도 우연의 가능성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신약개발 만세! 이다.
2012-05-09 09: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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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00> 할아버지 학교가 필요해
우리 부부는 어느덧 큰 아들로부터 두 명의 손녀, 그리고 작은 아들로부터 한 명의 손자를 얻었다. 작은 며느리는 전업 주부를 선언하고 제 손으로 애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맞벌이 부부인 큰 아들 내외가 낳은 다섯 살짜리와 세 살짜리 손녀를 봐 주고 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삼 일은 아침 일찍 큰 아들 집으로 출근한다. 자동차로 10분 걸린다. 아내는 출근하는 며느리 밥상을 차리고 나는 어린이집에 데리고 갈 두 손녀에게 밥을 먹인다. 두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밥을 잘 먹어야 예쁜 공주가 될 수 있다’는 둥 별 소리를 다 해 가며, 때로는 쫓아다니며 먹여야 한다. 대충 먹인 다음에는 물수건으로 얼굴을 씻기고 옷을 입힌다. 옷을 입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다섯 살짜리는 때때로 꼭 무슨 옷을 입어야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한편 세 살짜리는 신발은 꼭 제 손으로 신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운다.그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에 가서 내 차에 두 손녀를 태운다. 큰애에게는 안전 벨트를 채우고, 작은 애는 아직 어려 아내가 안고 탄다. 다행히 어린이집은 15분 거리에 있다. 아내는 작은 애를 ‘꽃사과반’으로 데리고 가고, 나는 큰애를 ‘진달래반’으로 데리고 간다. 작은 애는 할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울더니 얼마 전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이빠이”다. 그 뒤 나는 아내를 우리 집에 태워다 주고 학교로 출근한다. ‘1단계 임무 완료’이다.저녁이면 나는 아침의 역순(逆順)으로 2단계 임무에 돌입한다. 즉 오후 6시에 학교에서 나와 어린이집에 들러 미리 와 있는 아내와 함께 애들을 태우고 큰 아들네로 간다. 참,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는 큰 애가 우리 집에서 ‘한글나라’ 공부를 하기 때문에 우리 집에 데리고 갔다가 아들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아들 집에 오면 아내는 저녁 밥상을 차린다. 아들 내외가 퇴근하면 여섯 식구가 식사를 함께 한다. 역시 시간이 걸린다. 식사를 마쳤다고 ‘일과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애들과 놀아야 한다. 어찌나 애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잠시도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큰애는 특히 ‘역할 바꾸어 놀기’를 좋아한다. 자기가 ‘엄마’가 될 테니 나보고는 ‘자기’의 역할을 하란다. 그리고는 진짜 엄마처럼 나에게 이런 저런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고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나보고 결혼을 하잔다. 어디서 보았는지 ‘입장’에서부터 ‘주례사 듣기’, ‘애기 돌보기’ 등을 함께 하자고 조른다. 이런 식으로 안아주고 업어 주고, 엄마 아빠 놀이와 소꿉놀이의 상대가 되어 주다 보면 옆구리가 결리고 허리가 아파 온다. 우리 집으로 돌아 오고 싶어진다. 그러니 큰 손녀는 저녁 9시 반에서 10시 반이나 되어야 ‘퇴근’할 수 있도록 우리를 ‘풀어’준다. 일주일의 나머지 나흘 중 이틀은 외할머니가 와서 봐 주시고 나머지 이틀 즉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아들 내외가 애들을 본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당번이 아닌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스스로 큰 아들네 가서 애들과 논다. 스스로 생각해도 심각한 애들 중독 현상이다. 우리가 하도 큰 아들네 애들과만 노니까 작은 아들 내외는 살짝 서운해 하기도 한다. 손녀들과 놀면서 깨달은 것은 손녀들과 노는데도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화영화 ‘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의 이름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 또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그리고 인어 공주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겨우 대화가 된다. 바람직하기는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의 작동법을 숙지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만화, 동요, 율동, 그림 그리기, 동영상 등 아이가 좋아할만한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신혼 부부 학교’나 ‘아버지 학교’처럼, 교회 같은 곳에 ‘할아버지 학교’가 생겼으면 한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좋은 할아버지 노릇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배움에 끝이 없다’는 말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2-04-25 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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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9> ‘우리’라는 ‘우리’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쓰기 좋아한다. 심지어 자기 부인을 ‘우리 와이프’라고 말할 정도이다. 외국인들은 ‘our wife’ 라는 이 표현에 황당해 한다고 한다. 우리가 이처럼 ‘우리’라는 표현을 애용하게 된 것은 옛날부터 농어촌 등에서 함께 모여 일하던 공동체 습관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라는 말의 어감 (語感)은 서구인들이 쓰기 좋아하는 ‘나’라는 말보다 덜 야박해 보여 좋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네’라는 표현에는 왠지 모를 따듯함이 묻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 ‘우리’라는 표현에 한두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생겼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 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우리’의 크기를 너무 작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다. ‘우리 나라’의 경우처럼 제법 큰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우리 식구, 우리학교, 우리 팀, 우리 지역’처럼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일컬을 때 ‘우리’란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우리’란 말을 ‘남’이란 말의 반대어(反對語)로 사용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 편’ 소속이 아니면 ‘남의 편’으로 보고, 심하면 ‘적(敵)’으로까지 본다. 이럴 때의 ‘우리’에서는 ‘우리끼리만’이라는 배타성(排他性)이 엿보인다. 사전을 보면 ‘우리’라는 단어는 ‘돼지우리’와 같이 ‘짐승을 가두어 기르는 곳 (畜舍)’ 또는 ‘울타리’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말 장난 같지만 우리는 우리를 너무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오늘날 보수 또는 진보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각각 자기들 나름대로의 ‘우리(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우리’라고 부르는 것 같다. 거기까지는 그런대로 좋지만 걱정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을 ‘남이나 적’으로 간주(看做)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 방식을 ‘진영(陣營)의 논리’라고도 부르는 모양인데, 진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은 온통 ‘우리 편’과 ‘적’과의 싸움터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세상이 싸움터이면 인생은 필연적으로 싸움일 터이다. 그런 세상, 그런 인생에 무슨 평화와 평강(平康)이 있겠는가? 우리는 세상이 진영간의 싸움터로 바뀌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싸움터로 만들 권리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모두가 진영이라는 ‘작은 우리(울타리, 틀)’를 깨고 드넓은 밖으로 나오도록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크기를 키우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배타적 집단으로서의 ‘우리’의 틀이 아니라, 우리와 반대되는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포용하는 ‘이해의 폭’으로서의 ‘우리’를 확장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대립된 진영 간에 공감하는 영역(공감대; 共感帶)이 발견될 것이고, 이 공감대가 넓어질수록 진영 간의 대립에 의한 사회적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우리의 삶에 평화와 평강이 찾아 오게 될 것이다. 최근 ‘힐링 캠프’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 탤런트 차인표씨가 인도와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헌신하는 내용을 보았다. 또 얼마 전에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하여 현지에서 순교하신 이태석 신부님의 일대기를 보았다. 진한 감동이었다. ‘우리’의 개념을 ‘인류’ 전체로 확대하고 있는 이런 분들의 고귀한 삶이 있기에 아직 지구에 평화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정치판이 ‘작은 우리’간의 진영 싸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각 진영의 투사(鬪士)를 지도자로 오해해서도 안 된다. 이제 진영 간의 화해를 이끌어 낼 포용력을 갖고, ‘인류’ 전체를 ‘우리’로 이해하는 비전을 가진 ‘점잖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총선의 날 4월 11일을 맞는 간절한 소망이다.
2012-04-12 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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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8> 기다렸다 말할 걸
며칠 전 대학 후배 댁 혼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어떤 후배 하나가 나를 따라와서는 “선배님, 저기 앉아 있는 분이 누구세요?” 물었다. “내 친구 K야”라고 대답했더니, 그 후배 얼굴이 하얘지면서, “아 큰일 났네”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접시를 들고 K 옆에 앉았더니 그 친구 왈, 저 후배가 아는 척을 하길래 “야 너 요새 혈색 참 좋다”고 했더니 그 후배 답하여 가로되 “야 임마, 네 혈색이 더 좋다”고 했다나. 순간 머리가 띵 했지만 ‘아마 저 녀석이 날 잘못 알아 본 모양이구나’ 생각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후배는 곧 우리 자리로 오더니 “선배님, 제 동기로 잘못 알고 죽을 죄(?)를 졌습니다. 용서해 주세요”하며 사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자네가 알고도 그랬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말 때문에 낭패를 본 사례 몇 가지가 머리에 떠 올랐다.
내가 군대 사병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사례1) 정기 휴가를 나갔다가 귀대하면서 ‘마리아 상사’라고 별명이 붙은 선임하사 댁에 들렀다. ‘마리아 상사’란 말끝마다 “이O의 XX들 말이야” 하는 그의 말 버릇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그 댁에 들른 것은 무언가 뇌물을 좀 바쳐 귀대 후의 내 신분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어둑어둑한 방안에 들어 가 인사를 마치는 순간, 부엌 쪽 문이 열리며 한 노인네가 밥상을 들고 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인사성 바른 나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되십니까?”라고. 그런데 그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내가 크게 실수한 느낌이 엄습하였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선임하사의 침통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냐, 우리 마누라야”라고 하는. 그 때 나는 “아! 이제 나는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비슷한 실수는 수십년이 지난 요즘에도 반복되고 있다. (사례2) 오랜 만에 옛 제자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냥 “잘 지내?” 라고 만 하는 것이 좀 그래서 한번은 “그래 지금 어느 회사 다니지?”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제자 대답 왈, “지난번에 D제약 다닌다고 말씀 드렸었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괜히 물어 봤네 생각하며 머쓱해 한 적이 있었다. (사례3) 한번은 어떤 영악한 제자를 만났는데 그는 내가 이름을 물어 보기도 전에 “교수님, 저 누군지 또 모르시죠?” 라고 선수(先手)를 치는 것이었다. 아마 얼마 전에도 내가 그 제자의 이름을 몇 번 물어봤던 모양이다. (사례4) 이 정도의 망신(?)은 약과이다. 언제인가 나이가 좀 든 제자가 찾아 왔길래 “이제 너도 장가가야지?” 했더니 “교수님, 지난번에 딸 낳았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하는 게 아닌가?
나의 대학 동기 C도 비슷한 경험을 하였다고 한다. 그가 처음 약국을 열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를 업고 약국에 와서, “우리 아이가 감기가 들어서 그러니 약 좀 주세요” 했단다. C는 친절하게도 업힌 아이의 이마에 손을 대고는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여태 무얼 하셨어요?” 하며 아주머니를 좀 나무랐다.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내 친구를 바라보더니, “약사님, 얘는 안 아파요, 아픈 애는 집에 있는데요” 했다나. 그 친구는 그 때 결심했단다. ‘조금만 기다리자. 그러면 상대방이 다 말하게 되어 있다’ 라고.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리하기로 결심하였다. 즉, 오랜만에 누구를 만나면 그냥 온화하게 웃으며 기다리기로 하였다. 괜히 아는 척, 자상한 척 먼저 말을 걸었다가 불필요한 망신을 자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기다렸다 말하기’는 제법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기다리면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고 자기 이름, 직장, 가족 상황을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설명해 주게 되어있는 것이다. 혹시 나처럼 순간 기억력이 부실한 분들은 이 ‘기다렸다 말하기’를 한번 시도해 보시면 어떨른지.
2012-03-28 1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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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7> 제네릭이 어때서?
어느 초등학교에 교육감이 시찰을 나왔다. 지구본을 하나 들고 5학년 수업시간에 들어 가 반장에게 물었다. “이 지구본이 왜 23.5도 비뚤어져 있는지 아나?” 반장 왈, “제가 그런 게 아닙니다. 원래 사올 때부터 그렇게 삐뚤어져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교육감은 담임 선생님에게 물었다. 담임 선생님은 “반장 말이 맞을 겁니다. 걔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화가 치솟은 교육감은 이번에는 수행하던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은 지구본을 한참 이리저리 조사하더니 드디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 이거 국산품이군요. 국산품이 다 그렇죠 뭐”. 교육감은 말문을 닫고 발길을 돌렸다. 이 우스개 소리는 국산품의 품질이 형편 없었던 옛날에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국산 TV가 소니 제품보다 비싸게 팔리고, 중국산 농수산식품을 국산이라고 속여 파는 시대가 되었다. 그 정도로 국산품의 품질이 좋아진 것이다. 최근에는 한류 (韓流)의 덕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국산 의약품이 나설 차례이다. 최근 한 제약기업이 ‘제네릭’을 발매하기로 결정을 하고서도 이 사실이 매스컴에 크게 보도되는 걸 꺼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네릭이란 특허 보호 기간이 끝난 외국 회사의 약을 모방하여 만든 약인데 시중에서는 흔히 ‘복제약’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제네릭을 법적으로나 매스컴에서나 ‘후발의약품’이라고 부른다. ‘복제약’은 웬지 남이 만든 약을 불법으로 손쉽게 베꼈다는 뉴앙스를 풍기지만, ‘후발의약품’은 조금 나중에 만든 약일 뿐이라는 한결 밝은 뉴앙스를 풍긴다. 앞서 말한 회사는 점잖은 회사가 복제약을 만든다는 세간의 오해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도 제네릭을 ‘후발의약품’으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복제약’ 이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나는 신약뿐만 아니라 제네릭을 만드는 일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우수한 품질의 제네릭을 값싸게 만들어 환자에게 제공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 제네릭 생산을 조금도 꺼림칙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최근 이스라엘의 ‘테바’라고 하는 제네릭 전문 회사는 BMS를 제치고 세계 11위의 거대한 회사로 성장하였다. 화이자 같은 미국의 메이저 제약회사들도 최근 속속 제네릭 제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의 제네릭 관(觀)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국산 제네릭과 관련하여 다행인 것은 이들의 품질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제약회사의 역사는 제제가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제제를 만드는 기술에서 우리가 어느 나라에 뒤질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식약청의 인증이 이를 입증한다. 무조건 오리지널 회사가 만든 약의 품질이 더 좋은 줄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오해이다. 오리지널 회사가 새로운 신약의 개발에 있어서 우리보다 우수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제네릭 약을 합성하고 제제로 가공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들보다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제네릭은 이미 구조와 제법이 다 공개된 약이기 때문이다. 제네릭은 오리지널에 비해 싸게 만들어 팔 수 있다. 신약개발 비용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싼 제네릭은 국가 의료보험 재정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신약은 신약대로, 제네릭은 제네릭대로 장려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오리지널과 품질이 똑 같아 한다며 특히 제네릭을 규제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막상 제네릭이 따라 가야 할 오리지널의 품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 예컨대 오리지널 약의 용출 (溶出)이 로트 별로 달라져도 이를 규제하는 아무런 조항이 없는 것이 실정이다. 이제 정부는 제네릭을 보다 공정한 자세로 밀어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 회사들도 어깨를 펴고 말해야 한다. “제네릭이 어때서?” 라고.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다. “이거 국산 맞죠?” 하는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날, 그 날이 바로 국산 의약품의 한류 시대가 열리는 날이 될 것이다.
2012-03-14 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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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6> 좋은 말만 하고 살기
부부들에게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천차만별의 대답이 돌아 왔다. 어떤 사람은 “미쳤어, 당신과 또 결혼하게?” 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배우자는 “와 다행이다, 나는 혹시 나 혼자만 안 하겠다고 하면 미안해서 어떡하나 했는데 당신도 안 하겠다니 정말 다행이다. 우리 오늘 처음으로 서로 의견이 맞았네, 그치?” 했다나. 대답하기에 입장이 난처한 어떤 이는 아예 ‘차라리 다시 태어나지 않겠어요’ 했단다. 어떤 남편은 아내의 점수를 딸 욕심으로 “예 저는 다시 아내와 결혼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단다. 그러나 돌아 온 아내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왜 자기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해? 나한테는 물어 보지도 않고. 당신은 바로 이런 게 문제야”라고. 아 아내들은 무섭다. 아부도 사랑도 내 맘대로 고백해선 안 되는 모양이다. 어떤 남편은 처가에 가서 술을 마신 후 장모님 듣는 데서 “나는 다시 태어나면 아내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단다. 장모님을 비롯한 처가 식구들은 벌떼같이 들고 일어 나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봐” 했단다. 그 사위가 목소리를 깔고 답하여 가로되 “아내가 또 다시 나 같은 남편을 만나 고생하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처가 식구들이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을 했다나 어쨌다나. 우리는 살면서 말을 잘 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태반이므로 당연히 말을 잘 해야 좋은 인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때로는 ‘말이 인생의 다이다’ 라고 까지 생각한다. 그만큼 말이 중요한 것이다. 혹자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하면 뭐하냐’고 묻는다. 그럴 때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진짜 번지르르한 말이란 ‘상대방이 듣기 좋아하는’ 말이라고. 내 생각에 ‘말을 잘 하는’ 기술은 실은 ‘상대방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골라 하는 기술’이다. 나는 ‘말 잘하기 또는 듣기 좋은 말 하기’에는 최소한 2단계의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단계는 ‘겉으로라도 듣기 좋은 말만 하기’를 훈련하는 과정이다.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칭찬하기 따위를 훈련해야 한다. 이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나 어찌어찌 해서 대충 수련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거든, 얼른 다음 단계인 ‘진심으로 상대방을 좋게 생각하기’를 훈련하는 과정으로 넘어 가야 한다. 부족한 채라도 2단계로 넘어 가야 1단계도 완성되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나는 내 인격의 수양을 위해 ‘화나도 참기’의 1단계 수련과, ‘근본적으로 화 안나기’ 의 2단계 수련에 도전하기를 결심하였다. 내게 1단계는 문제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워낙 내가 왜소하여 실제로는 상대방에게 화를 냈어야 하는 상황에도 대부분 화를 참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2단계이었다. 부글부글 끓는 화를 ‘참기’로만 누르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화를 너무 참으면 암에 걸린다는 말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1994년에 직장암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그래도 부족한 채로 목사님 설교 등을 의지하여 2단계 수련에 도전하였다. 그 결과인지 지금은 예전에 비해 훨씬 화나는 일이 줄어 들었다 (혹시 진짜인가 나를 시험해 보려는 독자가 안 계시길 바란다). 좋은 말하기와 인격 수양은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1단계 수련을 쌓다 보면 2단계 수련도 어느 정도 저절로 되는 것 같다는 점이 그렇다. 겉으로라도 듣기 좋은 말만 사용하다 보면 (이상 1단계) 어느 새 속마음도 부드러워져 상대방을 좋게 생각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이상 2단계). 바른 말이나 뼈 아픈 지적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그런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 솔직하게 나눈 대화 때문에 관계가 악화된 된 사례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부부에게 말한다. ‘부부간에 솔직한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직장인에게도 말한다. ‘상사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말라’고. 앞으로 좋은 마음으로 좋은 말만 하고 삽시다. 이로써 나와 독자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인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2012-02-15 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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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5> 2개 국어 : 냐옹 아니 멍멍
쥐를 좇던 고양이가 쥐를 거의 덮치려는 순간, 쥐가 자기 집인 쥐구멍으로 쏙 들어 가 버렸다. 아쉬운 표정으로 쥐구멍 앞에서 앉아 있던 고양이는 갑자기 멍멍 개소리로 짖기 시작하였다. ‘아이구, 십년감수 (十年減壽) 했네’ 하며 가쁜 숨을 몰아 쉬던 쥐는 한참 동안 개 짖는 소리만 들리자 ‘이제 고양이가 갔나 보네’ 하며 슬그머니 쥐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물론 고양이는 이 때다 하고 잽싸게 쥐를 낚아채었다. 쥐를 입에 물고 이렇게 한 말씀 하시는 것이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엔 2개 국어는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니까”. 유머 책에서 본 이야기이다.얼마 전 교회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옆에 있는 애 엄마가 더 고마워 하였다. 평소에 영어 배우기를 싫어하던 자신의 애도 “아 이제는 정말 영어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나 보다” 이해했을 것이라며 말이다. 초등학교 학생이 영어를 배울 정도로 오늘날 영어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 되었다. 문자 그대로 고양이(우리나라 사람)도 개소리(영어)를 해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2년 전 영어 학원 개원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학원은 원어민 (原語民) 선생들이 영어 회화를 잘 가르치기로 소문이 난 체인형 학원이었다. 이 학원에 다니면 미국에 가지 않아도 누구나 영어를 술술 말할 수 있게 된단다. 그렇다면 이런 학원이야말로 영어 때문에 미국 등지로 처자식을 떠나 보내는 ‘기러기 아빠’를 줄여 주는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 학원 사업은 일종의 ‘애국 사업’이라는 취지의 축사를 하였다. 애한테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애와 엄마를 미국에 보내고, 한국에 혼자 남아 뼈빠지게 돈을 벌어 이들에게 부치는 아빠를 ‘기러기 아빠’ 라고 부른다. 내 기억에 기러기 아빠의 역사는 삼십년도 넘은 것 같다. 기러기 아빠의 숫자도 수만 명을 넘은 느낌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강남에서 조금 삽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들을 미국 등에 보내고 있다. 실제로 강남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고 있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애들을 미국에 보냈다. 그리고는 나더러 왜 애들을 한국에서만 공부를 시키냐고 질책하기도(?) 하였다. 내 보기에 그 식당은 애들 뒷 감당하기가 힘들 정도로 영세해 보였지만, 그 사람은 애들을 미국에 보낸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운 것 같았다. 기러기 아빠들이 미국 등지에 부치는 돈은 막대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에 악 영향을 미치는 규모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돈보다도 더 큰 문제는 적지 않은 기러기 아빠들의 가정이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와 아내를 미국에 보낸 아빠들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10년 이상 ‘기러기’ 생활을 하게 된다. 아빠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이런 가정을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이런 가족을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 그 정도로 기러기 아빠들의 생활은 비참(?)하다는 이야기이다. 내 친척 동생도 10여 년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였는데, 그 동안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져 고생을 하였고 애꿎은 형수는 다 늙은 시동생 뒤치다꺼리에 없던 병까지 얻었다. 오랜 기러기 생활 끝에 이혼을 당하는 아빠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가정이 완전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들에게 국내에서 영어를 잘 가르치는 일은 경제와 가정 양면에서 국가적으로 매우 중차대한 일이 되었다. 그러므로 무슨 특단의 대책이라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예컨대 학생들에게 아무개의 회화책을 강제로 외우게 하거나, 아니면 원어민 선생이 가르치는 영어학원을 장려해서라도 국내에서 영어 회화를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스마트 폰이 발전하면 자기 고유의 언어로 말해도 자동으로 상대방 언어로통역되는 그런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어쩔 수 없다. ‘개소리로도 짖을 수 있는 고양이’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냐옹, 아니 멍멍”
2012-02-01 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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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94> 훌륭한 삶들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느 교회에서 원로 목사 한 분이 청중들에게 인사 말씀을 하게되었다. 원로목사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일등 항해사인 어느 남자가 아들과 아들의 친구를 자신의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갔다가 큰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게 되었다.
운 좋게 항해사는 구명 밧줄 하나를 손에 잡게 되었다. 이 밧줄은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항해사는 이 밧줄을 누구에게 던져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 하였다. 자기 아들에게 던질 것인가, 아니면 아들 친구에게 던질 것인가? 아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아들 친구는 아직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순간 항해사는 자신의 아들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지금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아들 친구는 이대로 죽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항해사는 아들을 향해 ‘아들아 사랑한다’고 외치고 아들 친구에게 밧줄을 던졌다. 결국 아들은 죽었고, 아들 친구는 살아 남았다.
예배 시간이 끝나자 몇몇 사람이 담임 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오늘 원로 목사님이 하신 이야기는 감동적이긴 하지만, 현실성이 없습니다. 자기 아들 대신 아들 친구를 살릴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라고. 담임 목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까 말씀하신 원로목사가 그 항해사이고, 그 항해사가 살려 준 아들 친구가 바로 납니다”라고.
이상은 며칠 전 기독교 TV에서 어느 중국계 미국 목사가 설교한 내용이다. TV 속 목사님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심정을 이 항해사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신 것이었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얼마 전 큰 비극이 있었다. 어느 장로님의 큰 아들이 혼자 산에 갔다가 갑자기 절벽에서 추락하여 죽은 것이다. 갑작스런 비보에 장로님 내외분은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믿음이 좋으신 장로님 내외는 “우리 아이가 천국에 갔다는 것은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견디지 못 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 아이를 만지며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슬픕니다” 라고 했단다. 결국 두 분은 아드님이 천국에 갔다는 믿음으로 그 비극을 잘 감당하고 지낸다.
얼마 전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는 감동 이상이었다. 그 분의 삶은 인간이 훌륭해질 수 있는 한계를 수십 단계 높여 놓으신 것 같았다. 소록도에서 음성 나환자와 몇 십 년을 같이 보내시는 스페인 출신의 신부님 이야기도 감동 자체이었다. 이런 분들의 삶은 감동이라는 흔한 말로 표현하기에 벅찬 지고지순 (至高至順)한 것이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훌륭한 삶들이 의외로 많음에 놀라게 된다. 시골에서 열명도 채 안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교인들을 돌보고 계시는 목사님들의 삶도 감동이다. 묵묵히 진정 어린 봉사를 하며 사시는 분들도 정말로 많다. 주변을 둘러볼수록 훌륭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음에 유구무언 (有口無言), 할말을 잃게 된다.
이 세상의 삶 (이생)은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 (영생)에 비하면 긴 밧줄의 손잡이보다도 짧다고 한다. 짧은 이 생의 의미는 영생 (永生)의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시민권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생의 고난과 짧음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의 시민권을 얻는 방법은 오직 이 생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뿐이란다. 한편 “내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 나라”란다. 요컨대 예수님을 믿으면 이 생에서도, 죽어서도 천국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들 대신 아들 친구를 살린 항해사도, 아프리카에서 순교한 신부님도, 그리고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인 장로님도, 모두 천국을 믿는 믿음으로 이 땅에서 평강의 천국을 사셨거나 사시는 분들이다. 하늘에 모든 영광을 돌림으로 땅 위에서 진정한 평강을 누리신 분들이다. 이분들의 훌륭하신 삶에 경의를 표한다. 할렐루야.
2012-01-18 08: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