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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8> 여동문회 창립 45주년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여동문회가 창립 45주년을 맞아 기념회지를 발간하고 총회(11월 5일)를 열었다. 이 기념호를 통해 월계회(月桂會)를 모태로 하여 발전을 거듭해 온 여동문회의 45년에 걸친 발자취를 정리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기념회지에 축사를 쓰는 영광을 얻었다. 그 내용을 다소 수정하여 이하에 소개한다. ‘서울대 약대 여동문회’가 창립 45주년을 맞이하여 기념회지를 발간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일찍이 1915년에 설립된 약학강습소를 이어 1918년에 문을 연 조선약학교는 1924년에 3명의 여동문을 배출하였습니다. 그 후 1928년까지의 조선약학교 시절에 총 15명의 여동문이 배출되었습니다.조선약학교가 경성약학전문학교로 승격된 시절 (1931~1947, 1~17회)에는 여성의 입학의 길이 닫혀 있어 여동문이 1명도 배출되지 못 했습니다. 그 후 1945년 광복 이후의 사립 서울약학대학시절 (~1950년)에는 총 38명의 여동문이 배출되었고, 1950년 국립서울대학교에 편입된 후에는 오늘날과 같이 여동문의 배출이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여동문회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여동문들의 활동상에 시대에 따른 큰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학부를 졸업 (1971년, 25회) 하기 전에는 물론 그 이후까지도 상당기간 국내 제약회사는 여동문의 취업에 폐쇄적이었습니다. 또 어렵게 취업이 되더라도 결혼하거나 늦어도 출산시에는 회사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약대에 여학생이 많아지는 현상을 우려하곤 했습니다.그러나 제가 2년간 제25대 약대 동창회장을 역임 (2020~2021)하면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러한 상황은 1987년 우리나라에 물질특허 제도가 도입되고 이어서 다국적 제약기업이 국내에 다수 설립되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다국적 기업은 우리나라 기업과 달리 여성의 취업에 남녀 차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사회의 각 방면에서 여동문들이 눈부신 활약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동문님들의 유능함이 드디어 빛을 발(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이제 약학대학 내외에서 여성의 수가 너무 많다는 시대착오적인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제 생각에는 오늘날의 여동문들은 서울대 약대 개교 이래 최고의 전성기(全盛期)를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가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남과 여의 구별은 부질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모교 동창회에서도 머지않아 여동문의 멋진 리더십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코를 거울에 박고는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했답니다. 이 말처럼 현재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유구한 역사(歷史) 속에서 현재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쉽지 않습니다. 현재를 하나의 점(点)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 점 하나만 가지고는 역사의 나아가는 방향을 인식하기 어렵지만, 과거의 점과 현재의 점을 연결하면 비로소 선(線)이 만들어지고 선의 방향도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 선이 장차 어느 방향으로 뻗어 나갈 것인지 그 지향점(指向點)도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자연히 그 지향점이 바람직한 지, 아니면 바꿔야 할지도 성찰해 보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학은 과거에 안주하는 과거학이 아니라 미래의 방향을 탐색하는 미래학(未來學)입니다.저는 대한약학회 내에 약학사(藥學史)분과학회를 창립(2014년)하고, 모교의 약학역사관 설립(2015년)과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100년사’ 발간(2016년)을 주도한 자칭 ‘약학사맨’입니다. 제가 약 45년에 걸친 여동문회의 역사가 정리된 ‘여동문 회지’의 기념호 발간을 남다른 감회로 기뻐하는 이유입니다.마침 지난 10월 10일 우리 나라의 작가 한강님의 2024년 노벨상 수상 발표 소식을 들었습니다. 18번째 여성 수상자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여동문회가 뻗어 나갈 미래를 계시하는 의미 심장한 경사라고 생각합니다. 여동문회의 발전과 여동문회지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4-12-16 0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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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7>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심창구 교수.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의 학술지인 “약학사회지” 제7권이 최근 발간되었다. 실린 글들 중 특히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의 설립배경 및 발전 과정”이라는 논문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이 주제로 열린 좌담회 내용을 필자인 내가 정리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마약류의 남용과 유통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전문 조직이 필요해졌다. 이에 안필준 보건사회부(보사부) 장관이 대한약사회 권경곤 회장에게 마퇴본부의 설립을 제안하였고, 이에 따라 1992년 4월 22일 재단법인 마퇴본부가 대한약사회 주관으로 설립되었다.마퇴본부는 2002년 12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한 법정단체로 전환되었고, 이듬해인 2003년 4월 기획재정부로부터 공익법인(구 지정기부급단체)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 유일한 마약류 예방과 재활전문기관이었던 마퇴본부는 대한약사회 회원들의 회비 납부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이 마퇴본부가 2024년 1월 31일 기획재정부로부터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약사회로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업무 주관이 바뀌었다. 마약의 범람에 따른 예산 등의 문제가 배경이 되었을 터이지만 그동안 마퇴본부를 키워 온 약사회로서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것이다.이 시점에서 마퇴본부의 설립과 발전 과정을 되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에 당시 약사공론 편집국장 및 마퇴본부 사무총장을 역임한 강창덕 총장, 보사부를 출입한 약사공론 정동명 기자, 전 약사공론 신영호 사장 및 조동환 주간 등을 모시고 마퇴본부의 설립과 발전 과정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들어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그 내용을 일부 발췌하여 소개한다.1991년 5월 27일 약사 출신 김정수 장관 후임으로 안필준씨가 보사부 장관이 부임했다. 노태우 정권의 마지막 보사부 장관이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가수 등 연예인들이 마리화나 필로폰 등 마약류 복용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특히 청소년들이 마리화나나 필로폰 등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1991년 노태우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까지 선포하는 상황이었다.약사회에서도 약사의 직능과 관련하여 마약퇴치를 위한 세미나도 여는 등 마약퇴치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정기자는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1991년 가을쯤에 권경곤 대한약사회장이 보사부에 들어오신다고 하여 제가 5층 약정국장실에서 기다렸다가 같이 4층 장관실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약사공론 기자는 대한약사회에서 임원이 오시면 국장실이나 장, 차관실까지 수행도 해드리고 했습니다. 약사회장과 인사를 나눈 안필준 장관이 약사회에 아주 귀한 선물을 주겠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습니다.”“우리나라도 지금 마약이 크게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약제사들이 앞장서서 마약 · 각성제 남용 방지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한약사회가 조직도 잘 되어 있고, 힘도 있는 단체이니 마약퇴치 운동 단체를 만들어 국민 캠페인 같은 것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약은 약사들과 관련이 있으니, 약사회가 맡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기자는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안장관이 대충 이런 내용의 말을 했다고 회고했다.이 제안을 받은 약사회장이 숙고를 하는 와중에 다시 안장관의 독촉을 받아 1992년 4월 22일 ’재단법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설립하게 되었다. 권경곤 대한약사회장이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사무실은 약사회관 1층 서울시약사회 회의실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6월 21일 세계마약퇴치의 날에는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공동으로 장충공원에서 ‘마약류 및 약물 오남용 예방을 위한 국민 대행진’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에는 김대중, 박찬종 등의 정당 대표 등 각계 인사와 6,0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그후 약사회는 인천 부산 등지에 마퇴본부 지부를 설립하고 열정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펴 왔다.이렇게 발전해 온 마퇴본부가 금년에 식약처로 이관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약학사회지를 참조하며 아쉬움을 달래기 바란다.
2024-12-16 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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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6> 약학사(藥學史)분과학회 창립 10주년
심창구 교수.지난 10월 22일, 더케이 호텔 서울 대금홀에서 대한약학회 약학사분과학회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미옥 대한약학회장과 나영화 한국약학대학교육협의회 이사장의 축사에 이어 필자(본 분과학회 초대 회장, 현 명예회장)와 김진웅 현회장이 각각 창립 10년간의 활동과 미래전망에 대해 강연하였다.이채롭게도 휴식 시간에 정기화 명예교수가 ‘대양에 새로운 배를 띄우며’라는 자작(自作) 시를 낭송하여 10주년을 축하하였다.뒤이어 약업신문사 함태원 사장이 ‘한국약업 100년’이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약업의 지난 발자취와 앞으로 나아 갈 바에 대해 통찰력 깊은 강의를 하였다. 끝으로 동경대 츠타니 교수가 우리에게는 없는 일본의 기부강좌(寄付講座)의 역사와 육약학(育藥學) 강좌에 대해 소개하였는데, 기부강좌 제도가 약학대학 교수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약창춘추 405 참조).필자는 은사이신 이상섭 교수님의 강권(强勸)에 못 이겨 2006년 시청 앞 프레지던트 호텔의 한 객실에서 일본 약학사 연구팀 10명에게 한국 약학사에 대한 강의를 한 일이 있었다. 이 강의는 2007년 일본약학사 총회(동경대)에서의 특강으로 이어졌는데, 이를 계기로 약학사에 문외한이었던 필자가 약학사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2012년에는 약학교육협의회(당시 이사장 김대경)가 필자에게 '한국약학사'의 편찬을 의뢰했는데 이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약 33명의 전문가의 도움(집필)을 통해 다음해 1월에 819쪽의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이 보고서는 2017년 약업신문사를 통해 ‘한국약학사”라는 814쪽의 책으로 발간되었다.필자는 이 책에서 1) 단군 이래 우리나라 의약제도의 변천사, 2) 약학교육 및 연구 활동, 3) 한국약업 100년사, 4) 신약개발 동향 및 전망 등, 되도록 약학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다루고자 노력하였다. 약학사 분과학회의 창립은 2013년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필자와 김진웅 회장 등은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여 대한약학회(회장 서영거)에 제출하여 2014년 4월 16일 대의원 총회 승인을 받았다. 이 때 적극적으로 도와 주신 서영거 회장께 감사드린다.창립 이후 우리 분과학회는 '근현대 약학 및 약업의 발전사를 조사·정리·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매년 2회의 약학사 심포지엄을 개최해 오고 있다. 2018년에는 공식 학술지인 '약학사회지'를 창간하였다. 금년까지 총 20회의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약학사회지 7권을 발간하였으며 매년 1회씩 뉴스레터를 발간하는 등 나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에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100년사’ 발간을 주도하였는데,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 약학 교육의 초창기 100년의 역사가 처음으로 정리되었음에 큰 보람을 느낀다. 요즘은 1971년 홍현오 선생(전 약업신문 편집국장, 사장)이 저술한 '한국약업사’의 보정판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근대 약업사를 정리한 기념비적인 명저(名著)이다.필자에 이은 발표에서 김진웅 분과학회장은 약학사 분과학회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우선 약학대학 교수를 비롯해 전문적인 역사학 전공 연구자들과의 협력 강화에 나서겠다고 하였다. 즉 신진 역사학자들에게 장학금이나 연구장려금을 지급하고 약계 원로들과 멘토-멘티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그들이 약학사를 연구하는 모티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또 약계에서 활약했던 원로들의 이야기를 녹취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였다.또 약학대학 교육과정에 '약학사' 또는 ‘의약품개발사’ 교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를 위해 표준 교육안(敎育案) 개발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였다.이 날의 심포지엄에는 약 60명의 청중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셨다. 앞으로 우리 분과학회는 김진웅 회장의 리더십과 이영남, 주승재 교수 등의 약학 및 역사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운영위원들의 헌신에 힘입어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을 굳게 믿는다.
2024-12-16 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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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5> 동경대학 약학부의 기부강좌의 역사
심창구 교수.약학사분과학회의 창립 10주년을 맞아 10월 22일 개최된 제20회 심포지엄에서 동경대학 츠타니 교수(津谷喜一郎, Kiichiro Tsutani, 전 의약정책학 교수)가 보내온 강연 초록을 발췌 소개한다.츠타니 교수는 1954년에 설립된 일본약사학회(日本藥史學)의 제6대 회장으로서 우리 분과학회의 창립 총회와 심포지엄(서울)에 참석한 바 있고, 일본의 약사학회지(藥史學會誌)에 필자(심)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한 바도 있다.1. 드라이랩(Dry Lab)의 역사드라이랩은 이제 의학이나 약학에서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츠타니 교수가 조사한 결과, 1893년 동경제국대학 의학부 약학과에 생긴 위생재판화학 강좌가 일본의 드라이랩의 시작이었다.1966년(~ 1976년)에 동경대학 약학부에 부속 약해(藥害) 연구 시설이 설립되었다. 이는 전 세계적인 약해(藥害)이었던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는 사산(死産)과 유산(流産)을 합쳐 약 1,000명으로 추산된다. 그 외의 SMON, AIDS, 소리부딘, 간염 약해 등도 이 시설의 연구 대상이었다. 일본에서 약해가 얼마나 중요한지2020년판 ‘약학 교육 모델 코어 커리큘럼’에 "약해"라는 단어가 17번이나 나온다.2. 기부강좌(寄付講座, endowed chair)의 역사기부강좌는 주로 민간 기업과 같은 학교 외부로부터의 기부금이 그 재원이다. 일본의학회(日本醫學會)는 각 분과회를 연구·교육 내용에 따라 기초부회(15), 사회부회(20), 임상부회(108)로 나눈다 (숫자는 부회 내 분과회의 수). 일본약학회는 10개의 부회로 나누고 있는데, 그 중 ‘환경·위생부회’와 ‘규제과학부회’가 의학회의 ‘사회부회’에 해당된다.동경제국대학 의학부약학과 최초의 기부강좌는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인 1930년에 설립된 장기약품화학강좌(臟器藥品化學講座)이다. 이 강좌는 기본적으로 웻랩(Wet Lab)이었다. 이 강좌의 설립에 관여한 사람은 게이마츠 (慶松, 1876-1954)로 그는 나중에 국회의원, 일본약사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전후에는 참의원 의원을 지내는 등 기획력과 실행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이러한 인물들이 기부강좌의 설립을 주도하였다.전후인 1958년에 약학과는 약 80 년간 소속되어 있던 의학부에서 약학부로 분리 독립하였다. 그 후 의약분자설계학 (1990.4-1995.3), 기능병태학 (1994.1-, 1996.4부터 임상약학), 의약경제학 (2001.4-현재: 드라이랩, 2006.4부터 의약정책학), 창약이론과학 (2001.4-?) 파마코비즈니스 이노베이션 (2002.9-?, 드라이랩), 의약품정보학 (2004.10-현재: 드라이랩, 육약학(育藥學)으로 변경), 산학연계 공동연구실 (2004.10-?), 아스텔라스 창약이론과학 (2007.4-?) 등의 기부 강좌가 약학부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3. 드라이랩 기부강좌인 "육약학(育藥學) 강좌" (https://lab.ikuyaku-ut.jp/about)동경대학 약학부에 설치된 육약학 강좌는 "의약품의 적정 사용"을 위해 지역 약사와 의사에게 필수적인 우수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새로운 정보를 창출하는 것이 설립 목표이다.육약학은 신약 개발 단계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부작용의 증거, 유해 사건, 약물 상호작용, 사용법, 적용법, 사용상 주의 사항, 적응증 외의 사용법 등의 실태를 조사하고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학문이다.츠타니 교수는 처음에는 도쿄와 후쿠오카, 가라쓰를 연계해서,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해서 ‘의약품 라이프타임 매니지먼트 (DLM)’라는 연구를 통해 의약품 적정 사용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약물 치료에 있어서 약학대학(약학부)가 의사와 약사를 연계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츠타니 교수의 육약학 관련 서비스는 ‘대학이 의약품 시판 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4-11-11 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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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4> 약학의 특성-9. 규격의 국제성
심창구 교수.두 약품을 건강한 2군(群)의 지원자들에게 교차(交叉, cross over)로 경구 투여하였을 때 두 약품의 생체이용률(生體利用率, bioavailability, BA)이 동일하면 두 약을 생물학적으로 동등(同等)하다고 평가합니다. BA는 약물의 흡수 속도(rate)와 정도(extent)로 나타냅니다. 두 약품의 BA가 같은 지 여부를 평가하는 시험을 생물학적동등성(生物學的同等性, bioequivalence) 시험(생동성시험, BE Test)이라고 부릅니다.오리지날 약(브랜드 약)과 BA가 동등함이 입증된 복제약(複製藥)을 제네릭(generic)이라고 하는데, 약사는 의사가 처방한 브랜드 약 대신 제네릭을 써서 대체조제(代替調劑)할 수 있습니다. 생동성은 브랜드 약 제조회사가, 다른 회사가 복제품을 만들어 싸게 파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개념입니다. 즉 브랜드 약과 BA가 동등하지 못한 복제약을 브랜드약의 대체약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987년부터 이 생동성 제도를 도입하여 BA가 동등함이 입증된 복제약이 아니면 제네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BE Test를 통해 두 약의 동등성을 입증하려면 적지 않은 돈과 기간이 소요됩니다. 결국 BE Test는 복제약의 시장 진입을 막거나 늦추는 장치로 작동하게 되었습니다. 오리지날 약을 개발한 회사는 이처럼 그럴 듯한 과학을 명분으로 제네릭의 시장 진입을 견제하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생동성시험은 굉장히 명분이 있는 시험입니다. 옛날에는 흡수(BA)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얼마나 흡수가 되는지 확인도 안해보고 약을 판매했어요. 그래서 흡수가 불량한 의약품이 시판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BE Test가 도입되면서 모든 회사가 BA를 관리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국산의약품의 품질도 한 차원 높아졌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복제한 제네릭은 BE Test를 해 보나마나 거의 100% 오리지날 브랜드 약과 품질이 동등하게 되었습니다.나는 1980년대에 국내 최초로 BE Test의 파일롯 스터디를 수행한 후 이 시험을 국내에 도입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도입하자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 바람에 ‘생동성 전문가’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그런데 사실 BE Test는 제네릭약에 일방적으로 불합리한 시험입니다. 브랜드 약의 BA를 모방하려면 ‘브랜드 약의 BA는 항상 일정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브랜드 약의 BA가 제조 롯트(lot)별로 다르다면 제네릭은 어떤 롯트의 브랜드약과 동등하도록 만들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그런데 BE Test 규정에는 브랜드 약의 BA가 롯트에 관계없이 일정해야 한다는 당연한 규정이 없는 거예요. BE Test의 이런 불공정성은 개선되어야 마땅합니다. 오늘날 과학은 무역 장벽의 구실이 되기도 합니다. 화산(火山)이 많은 일본의 쌀은 수은(水銀) 함량이 높아서 식품공전(CODEX) 규격상 국제 통용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학자들이 코덱스 회의에 참여하여 일본 쌀 정도의 수은 오염은 허용하기로 규정을 바꾸었다고 합니다.의약품 원료도 순도(純度, purity)가 얼마 이상이 아니면 국제적으로 유통될 수 없습니다. 이런 품질 기준은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 같은 기구에서 정합니다. 원료의 순도는 원래 100%이어야 바람직하지만 어떤 원료는 심지어 90%만 넘어도 허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ICH 회원국들의 제약회사가 그보다 높은 순도의 그 원료를 만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반영한 것입니다.그래서 일본 쌀의 경우처럼 우리도 우리의 입장을 국제기준에 반영할 수 있도록 국제회의에 멤버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행히 식약처는 2016년 6월부터 ICH의 정식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불합리한 의약품 기준이 설정되는 것을 견제할 수도 있고, 어떤 사항은 우리의 높은 수준을 국제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을 빙자한 무역 장벽에 대한 인식도 필요해 보입니다.
2024-10-28 0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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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3> 약학의 특성 – 8. 규제
심창구 교수.제약(製藥)산업을 제약(制約)산업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다른 산업에도 규제(規制)는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약산업에 특히 규제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규제는 다들 싫어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선거철만 되면 각종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발표해서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그러나 규제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쁜 규제는 나쁘지만 좋은 규제는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기차와 철로(鐵路, rail)의 관계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기차는 철로 위로만 달리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철로 위로만 달리라고 제한하느냐? 아무 데로나 다닐 수 있게 하자며 철로를 없애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장 기차가 달리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사실 철로는 규제가 아니라 기차가 빠르고 안전하게 달리도록 돕는 가이드라인입니다. 의약품관련 규제도 제약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주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쁜 규제입니다. 그런 규제는 폭이나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철로처럼 기차를 제대로 달릴 수 없게 만듭니다. 제약산업의 발전을 가로막습니다.과거 우리나라의 규제는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앞뒤가 모순되거나 애매하거나 필요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규제에 제약산업이 순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고생한 사람들은 아예 이런 규제들을 통째로 없애자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그러나 규제를 아주 없앨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의 보장은 정부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우리는 의약품 관련 규제의 품질을 높여 나쁜 규제를 좋은 가이드라인으로 바꾸어야 합니다.우리나라의 의약품 관련 규제의 품질이 불량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규제전문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의약품에 대한 규제 수준은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전문가의 안목의 높낮이에 의해 결정됩니다. 따라서 그 동안 우리나라 규제의 품질이 불량했다는 것은 약학자를 비롯한 평가과학 전문가의 수준이 미흡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가과학 수준이 낮으면 규제의 품질을 높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품질이 불량한 규제 하에서 세계최초의 신약이나 우수한 의약품이 개발되기는 어렵습니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자 할 때에, 무슨 시험을 어떻게 해서 어떤 결과를 제출하면 정부가 승인해 줄지 미리 알 수 없는 환경에서는, 관련 규정(規定)과 규제는 기업을 괴롭히는 걸림돌에 불과합니다. 정답을 모르는 선생님이 가르치는 반에서 전교 1등 학생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불량한 규제 밑에서 세계최초의 우수한 의약품이 개발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정교하게 만들어진 규정이 사전에 공지되어 있는 상황이면 개발자는 이 규정대로만 시험을 진행하면 되므로 불필요한 시험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지요. 이 때 비로소 규제가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사실 우리의 규제 수준이 과거에는 좀 험악했습니다.또 개발자가 시험성적서를 규제 당국에 제출하면 그 때부터 규제기관 담당자들이 정답이 무엇일까 공부를 시작하는 바람에 시간이 엄청나게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수많은 신약개발 경험을 축적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규제 수준도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수준의 규제(선생님)가 있어야 세계 최고의 의약품(우등생)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스마트한 규제, 즉 부족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규정이 미리 제시되어 있는 환경 하에서의 신약개발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제약기업의 개발 수준이 눈부시게 높아졌기 때문에 정부 규제의 품질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여야 합니다.이 시점에서 평가과학(評價科學)의 본산(本山)임을 자처하는 약학은, 우리나라의 의약품관련 규제 수준을 세계 최고로 높이기 위한 노력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약대 후배 교수님들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2024-10-02 1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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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2> 약학의 특성-7. 외부 전문가 활용의 필요성
심창구 교수. 응용과학, 특히 신약개발, 바이오의약품, 개인맞춤약학, 노인약학 등 최신의 화두가 넘쳐나는 약학에 있어서는 그 교육에 외부 전문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신약개발만 예로 들더라도 연구와 개발의 단계가 얼마나 길고 복잡합니까? 이 모든 단계에 대한 교육을 전임교수만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구나 학생수가 적은 약대로서는 전임교수 채용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전문가를 비전임으로라도 모셔서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눈을 학교 밖으로 돌려보면 벤처나 제약회사 등에 신약개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계세요. 그분들 중 약대 출신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의 경륜이 약학 교육에 피드백되는 경로가 사실상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초빙교수 등으로 모셔서 강의도 듣고 학생들이 현장에 가서 실무 훈련도 받게 하고, 또 전임교수들이 그분들과 공동으로 대학원생 지도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이처럼 외부 전문가가 합류하면 전임교수들과 학생들이 신약개발 현장의 치열함, 박진감을 피부로 느끼게 되어 교육과 연구가 한층 효과적이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약대가 신약개발의 메카다, 약대 안에 신약개발 관련 전문가가 망라되어 있다’라는 평판을 듣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서울대의 경우, 전임 학장 때 신약개발 최고 전문가인 K 박사님을 초빙교수로 모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주 학교에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의 지도도 함께 할 의향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세미나 한두 번 부탁한 다음에는 부르지 않는 거예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초빙교수로 발령을 받은 분들도 원래 이러는 건가하고 적극적으로 학생 교육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학교의 교수회의나 무슨 토론회 등을 할 때 매번 전임 교수들끼리만 모이는데, 그건 현명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임교수나 초빙교수나 학생을 교육한다는 측면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초빙교수를 배제하고 전임교수들끼리만 교육을 논(論)하다니요?초빙교수는 학교측에서 필요해서 어렵게 모셔온 분들인데, 임명 후 방임하는 것 같은 대접은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 결과이겠지요? 초빙교수들도 본인이 약대 초빙교수임을 잘 밝히지 않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이름만 걸어 놓은 거지 뭐’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합니다. 어느 분에게 왜 초빙교수임을 밝히지 않고 지내냐고 물었더니 ‘뭐 학교에서 하는 일도 없는데 초빙교수라고 말하고 다니기가 쑥스럽다’는 겁니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이래서는 약대에 훌륭한 외부 전문가들을 모실 수 없습니다. 이분들의 고견을 약대 학생 교육에 반영함으로써 학생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을 매우 보람 있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전임교수가 초빙교수에게 소홀한 이유는 우선 전임교수들이 너무 바빠서 초빙교수를 활용할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신 대학 당국이 나서서 전임교수와 초빙교수 간의 협조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식이나 무슨 토론회 또는 종강파티 같은 것이 있을 때마다 꼭 초빙교수들을 모시는 것도 협조 분위기를 만드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또 하나는 전임교수들이 현장 전문가의 필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긱합니다. 나는 1974년도부터 약 3년간 제약회사에 다닌 경험이 있는데, 회사 현장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해도 학교에 달려가 자문을 구할 교수님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어요. 교수님들께 현장 감각이 없다는 사실을 제가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임교수님들도 수시로 현장 견학을 다녀 보시면, 약학교육에 있어서 현장 전문가를 초빙교수로 모셔 도움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이상에서 1) 다양한 현장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초빙하여 그들의 경륜을 교육과 연구에 반영하고, 2)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약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공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2024-09-19 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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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1> 본인이세요?
심창구 교수.오늘은 최근 여기 저기에서 수집한 유머 몇 개를 소개한다.1. 잔소리는 무서워1) 전철에서 할머니가 계속 영감님에게 계속 잔소리를 해 댔다. 영감님이 뭘 잘못하신 모양이다. 오랫동안 잔소리가 끝나지 않자 영감님은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쓰여 죽을 지경이었다. 그 때 전차가 역에 서며 차문이 열렸다. 그 순간 영감님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여기서 내려야 해, 얼른 내립시다”. 영감님은 긴가 민가 하는 할머니 등을 밀어 전차 밖으로 나가게 했다.그러곤 영감님은 재빨리 몸을 돌려 전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차문이 닫히자 할머니는 차 밖에서 당황하며 손짓을 했지만 영감님은 모른 척했다. 할머니 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영감님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에이, 집에 가서 한번 되게 혼나고 마는 게 낫지 원…”2) 하나님이 남자인 아담을 먼저 만든 후 아담의 뼈로 여자인 이브를 만드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이 물었다. 왜 하나님이 남자부터 만드셨을까? 라고.이에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여자를 먼저 만드셨으면 남자를 만드실 때, ‘여기를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저렇게 만들어 주세요’ 하는 여자의 잔소리 때문에 엄청 고생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아직까지도 남자를 못 만드셨을지도 모르겠단다. 하나님도 여자는 감당하기 어려우신 모양이다.2. 착각어떤 50대 남자A가 어떤 치과를 처음 방문하였다. 대기실에 걸린 치과 의사의 면허증을 보니 30년 전의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와 이름이 같았다. 혹시 그 친구? 하며 진료실 의자에 누웠는데, 나타난 의사를 보니 대머리에 얼굴 주름이 많아 그 친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한번 물어나 보자 생각해서 “혹시 대한 고등학교 나오지 않으셨어요? 물었더니, 의사 왈 “네 맞습니다.” 하는 것이었다.기대에 차서 A가 또 물었다. “몇 년도에 졸업하셨어요?” 그러자 의사가 “19OO년에 졸업했습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죠?” 했다. 그 말을 듣고 확신에 찬 A는 “야 너 우리반이었잖아, 반갑다!!” 라고 소리쳤다.그러자 그 늙고 뚱뚱하고 대머리에 주름투성이인 그 의사가 A를 주의 깊게 살피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선생님 혹시 그 때 무슨 과목을 가르치셨지요?” A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우리는 각자 자기가 친구들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줄로 착각하며 산다네요. 3. 중독미국 이야기이다. 몇 년째 매일 아마존에 주문을 하던 아내가 어제 처음으로 아마존에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오늘 아마존에서 배달원이 우리집에 찾아와 노크를 하며 물었다. “사모님, 별일 없으시냐고”.4. 천국과 지옥생물 시간에 선생님이 “고래는 매우 큰 동물이지만 목구멍이 좁아 사람을 삼키지는 못한다”고 가르쳤다. 그러자 작은 소녀 하나가 물었다. “선생님, 성경을 보면 고래가 요나를 삼켯는데요?” 살짝 기분이 나빠진 선생님은 “물리적으로 목구멍이 좁아 사람을 삼킬 수 없다니까”라고 했다.그러자 소녀가 말했다. “제가 천국에 가면 요나에게 물어봐야겠어요. 고래가 삼켰다가 내 뱉어서 산 것 맞냐구요”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다. “얘야, 만약에 요나가 천국이 아니라 지옥에 가 있으면 어쩌지?” 그러자 소녀가 바로 대답했다. 그럼 선생님이 요나에게 물어보시면 되겠네요.5.성실어떤 청년이 오랜 공부 끝에 공무원 시험에 붙어 드디어 동사무소에 출근하는 첫날이었다. 감격에 찬 청년은 ‘민원인들에게 잘 봉사해야지’ 하는 다짐을 하며 책상에 앉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인사를 한 후 청년이 물었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할머니는 “사망신고하러 왔는데요” 라고 하셨다.친절한 청년 공무원이 다시 물었다. “혹시 본인이신가요?”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깜짝 놀라 되 물었다. “꼭 본인이 와야 되나요?’ 라고. 그러자 청년이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본인이 오시면 수속이 빠르지요”그 후로 그 동네에서는 사망신고까지는 자기 손으로 하고 죽는 게 유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는 교훈이 전설로 남았다고 한다.
2024-08-30 1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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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00>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심창구 교수.1967년 학번인 내가 약대에 다닐 때에는 (즉 라떼는) 실습 시간에 견학을 갈 때가 많았다. 종근당이나 한독약품 또는 유유산업 같은 제약회사의 공장은 물론, 삼양라면, OB맥주, 해태제과, 애경유지 같은 식품, 화공(化工) 회사의 공장, 그리고 구의동 수원지(水源池), 신탄진 연초공장, 부여 홍삼 공장 같은 곳에도 견학을 갔었다. 학교 측에서 이처럼 견학을 많이 보낸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돈 안 쓰고 실습 시간을 때우기 위한 방편이었다. 최근 조윤상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에 의하면, 당시 실습 담당 조교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안 들이고 실습을 시킬 수 있을까를 늘 고심했다고 한다. 예컨대 유기제약(有機製藥) 실습에서는 원료 화학약품의 가격이 싸면서 반응 시간이 긴 합성(合成)을 과제로 선택하는 것이 노우하우(know-how)였다. 금방 합성이 끝나는 반응을 고르면, 남는 시간에 다른 실험을 시켜야 해서 다시 돈이 들기 때문이었다.사정이 어떠했든, 학생들은 외부 견학을 학내 실습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리포트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견학은 반쯤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견학을 간 곳은 구로동에 있는 종근당 공장이었다. 아마 1967년이었던 것 같다. 그 때 거기에서 처음으로 토끼 항문에 온도계를 꽂아 파이로젠 테스트(pyrogen test)를 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 테스트는 그 후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해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견학은 지식과 견문을 넓히는데 유용하였다. 그러나 그 날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견학 후 받은 대접이었다. 회사(종근당)는 우리들 전원(약 80명)을 고급(?) 버스에 태워 영등포 시내로 데려가 비싼 설렁탕 한 그릇씩을 사 주셨다. 그 버스가 회사 버스였는지 전세버스였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1969년인가 위생화학 실습시간에 도봉구에 있는 삼양라면 공장을 견학한 일도 기억에 남는다. 삼양라면이 국내 유일의 라면 회사로서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때는 정부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하여 쌀 대신 밀가루 음식, 즉 분식(粉食)을 장려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 ‘삼양라면’은 새로운 형태의 간편 식품(fast food)으로 국민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면(麵)을 돼지 기름에 튀겼기 때문에 라면을 끓여 놓으면 기름이 동동 뜬 국물이 고소하고 맛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때의 오리지날 ‘삼양라면’을 즐겨 먹는다. 내게는 그 후에 나온 값비싼 사발면이 더 맛이 없었다.라면 공장 건물 밖에는 라면 생산용 돈지(豚脂) 드럼통이 작은 산더미처럼 야적(野積)되어 있었다. 나중에 이 기름이 공업용이냐 식품용이냐 하는 문제로 언론에서 난리를 친 일도 있었다.공장 견학이 끝나자 회사측은 기념으로 라면 다섯개가 들어 있는 포장(德用包裝) 한 개씩을 주었다. 당시 라면 다섯 개는 학생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횡재(橫財)를 한 기분에 우리들 너댓명은 버스를 타고 뚝섬으로 갔다. 뚝섬에는 1학년 때 2주에 한번씩 하루 종일 실습을 했던 약초원(藥草園)이 있었고, 그 옆에는 유원지가 있었다.뚝섬에 도착해 보니 벌써 점심 때가 지났다. 배가 고팠지만 돈이 없는 우리들 앞에 라면이나 국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나타났다. 그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 라면 5개 다 드릴 테니 2개만 끓여 주실래요?”라고 흥정(?)을 걸었다. 다행이 아주머니가 응해 주셔서 각자 라면을 배불리 먹고 유원지에서 놀다 온 생각이 난다.역시 그해의 위생화학 실습 시간에 영등포역 근처에 있는 OB 맥주 공장을 견학한 일도 생각난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커다란 발효 탱크를 보았다. 그러나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에서 난생 처음으로 맥주를 공짜로 시음(試飮) 할 수 있었던 것과, 견학이 끝났을 때 OB맥주라고 쓰인 유리컵인지 재털이인지를 한 개씩 기념품으로 받은 일이었다.그 당시에는 너무 자주 견학을 다닌 것이 문제(?)였다면, 요즘에는 반대로 너무 현장 견학을 가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2024-08-22 2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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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99> 약학의 특성-6. 목적이 이끄는 강의와 연구
심창구 교수.오늘은 약대 교수님들은 자신의 강의와 연구가 앞에서 언급한 약학교육의 목적과 잘 맞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서울대 약대는 다른 단과 대학에 비해 연구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초창기에 학문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약대가 이렇게 발전한 것은 놀라운 발전입니다.그러나 근대 약학 교육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10년이 지난 오늘날, 약대 교수님들의 연구 방향에 제안 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즉 약대의 연구는 인력이나 연구비 같은 자원이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약학 교육의 목적에 초점이 맞도록 연구를 효율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연구 대상은 무한합니다. 예컨대 전 세계 음식점에 있는 젓가락 개수를 다 조사해서 국가별로 그래프를 그리는 연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를 어디에 써먹겠습니까?근래 비약대 출신 연구자들이 대거 약학대학에 교수로 합류하면서, 나 같은 약대 출신 노교수들이 가끔 우려하는 바가 있습니다. 혹시 비약대 출신들이 ‘나한테 약학 교육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 마라, 나는 그저 내 전공만 잘 강의하고 논문만 잘 쓰면 돼’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요.아무래도 비약대 출신 교수들은 약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테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도 비약대 출신 교수들에게 약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로 내가 현직일 때 이분들을 위해 약학의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급 전문가를 몇 번 초청해서 조찬 강의를 마련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정작 비약대 출신 교수들이 여기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 거예요. 살기(?) 바빠서 약학에 대한 개념 정립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몹시 아쉬웠습니다.사실 현장을 잘 모르는 것은 약대 출신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창약, 제약, 용약, 사회약학이라는 약학 고유의 목적을 추구하는 현장에 있어서 내 연구와 강의가 어느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아요.이처럼 교육과 연구의 목표가 표적(target)을 지향하지 못하고 있으면, 식당의 젓가락 세기와 같은 쓸데없는 연구를 하게 될 우려가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약대 교수들은 자신의 강의와 연구의 방향이 약학 고유의 목적에 잘 맞도록 조준(照準)되어 있는지 총구(銃口)의 가늠자를 끊임없이 수정해야 합니다. 서울대 약대 동문 중 제약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해마다 모여 ‘제약관악포럼’을 엽니다. 내가 참석해 보니까 거기에서 ‘약대의 교육과 연구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등 매우 절실하고 유익한 제안이 많이 나와요.그런데 막상 그 이야기를 들어야할 약대 교수들이 그 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포럼 측에 ‘그 중요한 이야기를 일회적으로 주장하는 데 그치지 말고 문서로 만들어 약대에 건의해 주면 고맙겠다. 그러면 현실에 둔감한 교수들도 그 의견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여러 번 말했어요. 아쉽게도 아직 건의문을 작성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다 보면 각자 내 일하기가 워낙 바빠서 약학의 거시적 목적 등을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교육학을 전공한 교수를 한 분 전임으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그를 통해 약학 교육 전반을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이제 고루(固陋)한 과거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차원에서 약학교육의 미래를 과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약개발 등 현실이 교육을 앞서 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내 경험에 의하면 교수는 부임 5년 이내에 자기 연구를 일정 수준의 궤도에 올려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못한 분은 ‘언젠가 연구에 있어서 홈런을 치겠지’ 기대를 받았던 분도 끝내 별 일(?)없이 정년을 맞더라구요.시간이 흐를수록 약학 고유의 ‘목적이 이끄는 강의와 연구’에 교수의 역량을 집중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내기 어려워집니다.후배 교수님들의 분발을 응원합니다.
2024-07-24 1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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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98> 요나고 여행과 사무라이
심창구 교수.지난 5월 17-19일 친구 세 부부가 2박 3일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오랫동안 해외 여행을 못한 데다가 내가 작년 11월에 무릎 수술을 받아 잘 못 다닌 한(恨을 풀 겸 간 패키지 여행이었다.인천에서 출발하여 돗토리현(鳥取縣) 요나고(米子) 공항, 사카이 미나토시 (요괴거리), 미사사(三朝) 온천, 모래 미술관, 모래언덕, 구라요시시(倉吉市) 신마치 온천, 아다치(足立) 현립 미술관, 마츠에성(松江城), 유시엔(由志園) 정원을 둘러 오는 일정이었다. 일정도 느슨하고 비용(1인당 100만원 정도)도 큰 부담이 되지 않아 우리 팀에게 적합하였다. 돗토리현 중 우리가 다닌 곳은 일본의 서부 산악지대로 동해를 사이에 두고 우리나라 울진과 마주보고 있는 지방이다.우리 팀 20여명을 안내한 사람은 마치 강의를 하고 싶어 가이드가 된 사람 같았다. 사실 나는 여행 가이드가 말이 많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차창 밖 풍경을 조용히 즐기거나, 피곤할 때 졸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가이드의 설명은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건강의 중요성 외에 그가 강조한 것은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입력된 한국 사람이 많다고 하면서 그 오류를 바로잡아 주는데 열심이었다. 예컨대 ‘1) 일본 사람들은 생선회를 좋아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육류 고기를 좋아한다. 2) 일본인들은 조금 먹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상황이 좋으면 엄청 먹는다. 3) 일본인들은 남을 두려워해서 마트에 가서도 자판기를 통해 물건을 사기를 좋아하며,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등을 힘주어 강조하였다. 마지막 대목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일본인’이라는 내 지론(持論)과 같아서 특히 흥미로웠다.마지막 날에는 최근 일본 국보(國寶)로 지정된 마츠에 성을 구경하였는데, 나무로 지은 천수각(天守閣)이 특히 예뻤다. 조그만 배를 타고 성 주위의 해자(垓子)를 유람한 것도 재미있었다.그러나 가장 흥미 있었던 것은 그 성을 구경할 때 가이드가 사무라이(侍)에 관해 설명을 해준 내용이었다.그에 의하면 ‘사무라이는 각 성의 성주(城主)가 성을 지키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다. 누가 외부에서 성을 뺏으러 공격해 오면 이에 맞서 싸우는 무사들이라는 말이다. 나중에 사무라이 일부가 성 주변에 천막을 치고 큰 힘을 휘두르는 바람에 막부(幕府)라는 말도 생겼다고 한다.성을 둘러싼 전투는 사무라이가 전담하는 일이었다. 일반 농민들은 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농민의 입장에서는 성 뺏기 전투가 크게 공포스러울 것도 없었다. 성주가 바뀌면 세금을 새 성주에 바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이 의병(義兵)을 일으켜 침입자와 싸우는 일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의병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첫번째로 놀란 것은 도처에서 의병이 일어나 관군(官軍)과 함께 왜군과 싸운 일이었다고 한다. 두번째로 놀란 것은 한양을 함락시키고 보니 성주인 임금(선조)이 의주로 피난을 가 한양성이 비어 있는 일이었다.봉건국가였던 일본에서는 전투에 진 성주는 자결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다른 성으로 도망가 봤자 거기 성주가 살려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은 상황이 달랐다. 중앙집권국가라 전국이 다 임금의 영토여서 임금은 아무데라도 피난 갈 수가 있었다.조선성에 성주인 임금이 도망가고 없다? 왜군은 이런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임금이 있었으면 임금의 항복을 받아 전쟁을 완벽하게 끝내려고 했는데, 임금이 없어졌으니 누구의 항복을 받아야 하나 혼란스러웠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조의 도망은 역설적으로 신(神)의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다.가이드에게 그럼 닌자(忍者)는 뭐냐고 물어봤더니 닌자는 사무라이의 정보원 정도로 크게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아무튼 이번 여행은 이모저모 재미도 있고 배운 것도 많은 여행이었다. 다만 제대로 배운 것인지는 차차 검증을 해 볼 생각이다.
2024-07-10 1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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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97> 종속변수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심창구 교수.지난 5월 2일 제대(1974년) 50주년을 기념하여 군대 동기 몇몇이 전주에서 1박2일 모임을 가졌다. 부부 동반으로 만나는 이 모임은 올해로 35회가 되었다.모임 둘쨋날 아침 콩나물 해장국 집에서 함께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한 전우의 아내가 남자들 식탁에 와서 “콩나물 좀 더 갖다 드릴까요?” 물었다. 남자들은 다들 “됐어요” 라고 사양했다. 그러나 그 부인은 남자들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커다란 콩나물 접시 하나를 갖다 놓으며 “더 드세요” 하는 것이었다. 유레카! 순간 나는 크게 깨달았다.아!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다 남편의 의견을 듣지 않는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구나,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구나!젊었을 때 아내와 옷을 사러 갔을 때, 아내가 나보고 내 옷을 고르라고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 골랐더니 그건 내게 안 어울린다며 결국 아내 마음대로 내 옷을 샀다. 그 후 나는 옷을 선택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커피숍에 갔을 때 우유 없는 메뉴를 골라 달라고 부탁해 버릇했더니, 이제는 아내 없이 혼자서는 메뉴를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식당에 가서 내가 고민 끝에 메뉴를 고르면 아내가 ‘당신 그거 싫어하잖아!’ 하곤 한다. 순간 ‘내가 이거 싫어하던가?’ 헷갈린다. 얼마 전부터는 아예 메뉴 결정권을 아내에게 넘겼다. 얼마나 편한 지 모르겠다.나이가 들수록 아내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대부분 아내와 함께 다닌다. 젊었을 때는 아내가 나를 졸졸 따라다녀 주길 바랐다. 아내가 나의 종속변수가 되어주길 바랐던 것이다.지금은 내가 아내의 종속변수로 산다. 아내와 외출 시 내가 주차하고 나면 벌써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독립변수인 아내가 그 새를 못 참고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종속변수인 내가 찾아 나서야지 도리가 없다. 경륜이 쌓이면서 아내를 찾아내는 노우하우도 늘었다. 옷 가게에서 발견할 확률이 제일 높다. 나는 아내의 종속변수가 되어 간다는 사실에 익숙하다. 자존심 상할 것도 없다. 남편을 떼어 버리고 혼자 나다니는 아내가 대세(大勢)인 오늘날, 아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직도 자신이 독립변수인 줄 알고 아내를 휘어잡으려 발버둥치는 남편들을 보면 안쓰럽다. 아내를 휘어잡아?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라, 그런 남편이 있나. 만약 있다면 그 가정은 좀 위태한 상황이 아닐까?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부터 아내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77세 영감이 체득(體得)한 교훈이다.왜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해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훨씬 길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남편은 아내를 못 이긴다. 오죽하면 “청년이여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결혼 전에 바꿔라, 결혼하면 티브이 채널 하나 네 마음대로 못 바꾼다”라는 말이 있겠는가?여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수명 외에도 차고 넘친다. 예컨대 대부분의 아내는 암에 걸린 남편을 극진히 간호한다. 반면에 남편들은 이런 저런 핑게를 대고 아내 곁을 지키지 않는다. 심지어 아내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떤 암 수술 전문의는 ‘남자들은 다 나쁜 놈들이예요’라고 했다.한 실험에서 침팬지 모자(母子)를 작은 방에 가두어 놓고 방바닥이 뜨거워지도록 아궁이에 불을 땠더니 엄마는 자식을 머리에 이고 발을 동동 구르더란다. 다음으로 부자(父子)를 넣고 관찰했더니 글쎄 아버지가 태연히 아들을 깔고 앉았더란다. 이처럼 부성애는 모성애의 발바닥도 못 쫒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해력, 기억력, 수다 등에서도 남편은 결코 아내의 적수(敵手)가 되지 못한다. 내 생각이 아니다. 어느 원로 교육학자의 주장이다. 이제 남편들은 다 항복하자. 더 이상 버티지 말자. 아내가 콩나물을 갖다 주면 잠자코 먹자.수명, 사랑, 이해력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한 아내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로 순종하는 자유를 향유하자. 유비무환이 아닌가?
2024-07-10 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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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96> 약학의 특성-5 커리큘럼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약학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의약품의 창조(창약학), 제조 (제약학), 사용(용약학) 및 사회성 (사회약학)에 관한 전문 지식과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교수를 잘 뽑고 강의 커리큘럼을 효율적으로 짜야 합니다.학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4분야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지식들을 교육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집합의 크기가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대한 누락이나 부족, 또는 중복이 없도록 완벽에 가까운 강의 커리큘럼을 구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얼마전 50~60년전에 약대를 졸업한 대선배들을 만나, 최근의 약대 커리큘럼을 보여드렸더니 ‘학과목 이름이 너무나 친숙하다’고 신기해(?) 하더군요.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말이지요. 혹자는 그 구태의연함의 원인이 약사국가고시 과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만, 이유를 막론하고 첨단과학의 물결 속에서 약학의 존재가치를 드높일 수 있도록 커리큘럼 개혁을 해 오지 못한 점은 다 같이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약대 교육에서 강의 요목(要目, syllabus) 중에 어떤 요목은 중복되고 어떤 요목은 누락되어 있다면, 이는 그 대학의 교수진이 특정 전공에 중복 또는 누락되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균형을 잃은 교수진이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서울대 약대의 전임 교수의 수가 50명을 넘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 약학교육 110년사에 기념할 만한 숫자이지요.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특정 전공에 다수의 교수가 몰려 있는 반면, 꼭 필요한 전공의 교수는 없거나 모자라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만약에 교수 50명의 전공이 각자 다 다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전공 지식을 균형있게 교육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전공의 중복에 따른 일부 강의 요목의 중복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또한 약학교육의 목표에 대한 교수들의 컨센서스를 도출할 때에 보다 중심이 잘 잡힌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종래에는 예컨대 약제학 교수가 한 명 정년 퇴임하면 그 자리를 다시 약제학 전공 교수로 채우는 식으로 교수를 채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새로운 전공 분야를 교육 과정에 도입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약대의 교과목 이름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교수 채용제도 탓이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1980년초에 직접 봤던 일인데요, 일본의 동경대학에서는 한 전공의 교수가 퇴임을 하면 다른 전공의 교수들이 모여 그 자리를 어떤 전공으로 채울까 논의합니다. 만약 학문 발전 추이(推移)상 그 전공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하루 아침에 그 전공을 없앨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인지 오늘날 동경대를 비롯한 일본 약대의 커리큘럼은 우리에게 생소한 과목 이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다행히 서울대 약대는 지난번 오유경 학장(현 식약처장) 때부터 교수 공채 제도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어떤 전공의 교수가 정년 퇴임을 하면 그 자리를 반드시 같은 전공의 교수로 채우지는 않도록 바꿨다고 합니다. 대신 미리 신규 채용이 필요한 전공의 우선 순위를 정해 놓고, 그 순서에 따라 교수를 채용한다고 합니다.요즘은 과거와 달리 약학 및 생명 과학 영역의 인재 풀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마음만 잘 먹으면 새로운 전공의 교수를 얼마든지 모셔올 수 있습니다. 다만 노파심에서 한 말씀 추가하자면, 새로운 전공을 도입하거나 전공의 우선 순위를 정할 때에 현장의 실무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교수들은 현장을 잘 모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교수진을 잘 갖추고 나면 강의 실라버스를 1~6학년에 걸쳐 합목적적으로 배열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락되거나 중복된 부분은 없는지, 학년별 수준에 맞게 단계적으로 잘 배열되어 있는지 끊임없이 검토해야 합니다. 요컨대 1) 교수를 잘 뽑고, 2) 커리큘럼을 끊임없이 개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2024-06-19 2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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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95> 약학의 특성 - 4. 대표적인 평가과학
심창구 교수. © 약업신문약학의 특성을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약학의 평가과학(評價科學)적 특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과학은 크게 순수과학, 응용과학, 그리고 평가 과학의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우선 순수과학(pure science)이란 ‘사물의 메커니즘(why?)’ 즉 왜 그럴까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두번째, 응용과학(applied science)은 얻어진 지식을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how to apply?)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마지막 세번째 과학인 평가과학은 좋고 나쁨의 판단의 기준을 어디 (which)에 놓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영어로는 regulatory science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규제과학, 일본은 평가과학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평가과학의 대표적인 학문이 바로 약학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약학의 사명 중 하나는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저울질해서 특정 질환의 환자에게 써도 좋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약의 좋고 나쁨을 고정된 한 개의 기준으로 잘라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어려운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국가 기관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입니다.예컨대 항암제는 얼마나 안전하면 암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감기약에 대해서는 사소한 부작용만 있어도 개발을 승인하지 않는 식약처가, 항암제에 대해서는 탈모나 구토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경우에도 곧잘 개발을 승인합니다.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암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개발을 승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약의 승인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두 팔 저울을 사용하여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할 때에 두 팔의 받침돌을 어디에 놓아야 할까요? 이는 그 약을 무슨 병에 쓸 것인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의 역할은 법으로 치자면 마치 검사와 변호사의 의견을 종합하여 판결을 내리는 판사와 비슷해 보입니다. 이처럼 사안에 따라 저울의 받침대 위치를 바꾸어 가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매우 균형 잡힌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약학 교육의 사명입니다.순수과학자나 응용과학자들은 어떤 메카니즘을 규명하거나 응용가능성을 발견하면 금방 흥분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폴리머(polymer)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국제 학회에 가 봤더니, pH나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로운 기능성 풀리머를 발견했는데, 이 물질이 새로운 의료용 물질로서 그 응용성이 크게 기대된다는 식의 발표가 많았습니다.그래서 제가 질문을 했습니다. 그 폴리머를 사람에게 쓸 수 있겠냐고요. 그랬더니 그거는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래요. 자기는 이런 메커니즘이 재미있어 연구를 할 따름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재미있어서 연구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그러나 인체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리 기능성이 좋아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은 새로운 약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쉽사리 그분들의 흥분에 동참할 수가 없었습니다.약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기능성(유효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부작용(안전성)을 걱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폴리머의 신기한 기능성을 확인하고도 그 응용성에 대해 쉽사리 낙관하지 않습니다. 흥분하지 않는 것은 물론 종종 비관적인 견해를 갖습니다. 새로운 물질 하나를 얻었다고 흥분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 머쓱해지는 사례를 많이 봐 왔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약학자들은 흔히 매사에 소심(小心)하다는 평을 듣습니다. 유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고려하고 평가해보면 그 물질의 앞날에 대해 걱정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평가과학자인 약학자가 기꺼이 감당해야 마땅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약학의 평가과학적 특성, 그리고 이에 따른 약학자의 소심성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이야기는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2024-05-22 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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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94> 약학의 특성 - 3. 교육의 목표
이제 오늘 강의의 본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약학 교육의 목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아래 개념도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약학의 첫번째 목표는 새로운 약을 창조해 내는 창약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창약학이란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낸 용어인데요, 약학에서는 약물 분자의 창조로부터 신약개발에 이르는 과정에 필요한 제반 지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두번째 목표는 우수한 의약품을 경제적으로 제조하는 제약학입니다. 여기에서 유위해야 할 것은, 의약품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안목(眼目) 없이 우수한 의약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제약학은 평가 기술에 기반한 기술이자 과학이라는 점입니다. 세 번째 목표는 개발, 제조된 의약품을 환자에게 가장 유효하고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 즉 용약학입니다. 대표적인 과목이 임상약학(臨床藥學)이지요. 네 번째 목표는 위에서 언급한 약학의 3대 핵심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회와의 소통입니다. 이런 학문 분야를 사회약학(social pharmacy)이라고 합니다. 핵(核)에는 세포의 정체성이 들어 있지만 세포막이라고 하는 보호막이 없으면 핵도 세포도 결국 고사(枯死)하게 됩니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약학의 핵심 가치를 살리기 위한 사회약학의 중요성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약학 교육의 기본적인 목표는 이상에서 언급한 창약학, 제약학, 용약학 및 사회약학이라는 4대 분야에 대해 균형 감각을 갖춘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교과목을 통해 방대한 양의 지식을 교육해야 하고, 따라서 매우 긴 기간에 걸친 교육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학부 과정에서는 부득이 4대 분야에 공통으로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우선적으로 교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림에서 4개의 원이 겹치는 중앙 부분에 해당되는 지식입니다.조금 전에 ‘균형 잡힌’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창약 등 특정 목표에 편향된 지식만 가지고는 약의 창조, 제조 및 임상 응용 단계에 있어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특정 악기 연주에 편향되어서는 안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이야기는 뒤의 ‘평가과학’ 편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균형 잡힌 약학 지식을 갖추는데 필요한 지식을 종합적으로 다 가르치려 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려면 아마 10년을 가르쳐도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중복이나 누락되지 않도록 효율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관건(關鍵)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커리큘럼을 정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서울대 역사상 최초로 교육전문가인 김 박사님을 약학 교육 담당 교수로 모신 이유가 바로 커리큘럼의 효율화에 있을 것입니다.한편 공통 기본 지식만 강조하다 보면 약학의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낮아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약학의 대학원 과정에서는 그림에서 중복도가 낮은 부분을 교육하게 됩니다. 즉, 학부에서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지식을 교육하고 대학원에서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교육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대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할 때는 보편적인 약학의 초급 전문가로 출발합니다. 그후 경험을 쌓으면서 고급 전문가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때에 대학원에서의 공부가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다 경륜이 더 쌓이면 각 분야의 리더로 성장할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이 때에는 전문적인 지식에 더하여 다시 보편적인 지식이 필요해집니다. 약대 학부 때의 균형 잡힌 교육이 리더의 균형 잡힌 판단력에 다시 큰 힘을 발휘한다는 말씀입니다.요컨대 약학 교육의 목표는 창약 제약 용약 및 사회약학에 대한 균형 잡힌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05-16 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