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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52>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가끔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늘 같은 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이지만, 하늘은 단 한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블루와 화이트의 심플한 컬러이지만 늘 색다른 모습과 표정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하늘을 볼 때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곤 한다. 여인의 아름다움도 하늘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이렇듯 자연스럽고 총체적인 것이다. 눈이 크다고, 코가 오똑하다고 그녀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한번쯤 거울을 들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사람의 얼굴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 사람의 얼굴은 신이 만든 걸작 중의 걸작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은 하나하나 뜯어볼 때는 아름답게 보이다가도 전체의 인상을 보면 그렇지 않을 수가 있으며 반대로 또 어떤 사람은, 눈, 코, 입 등 하나하나는 예쁘지 않아도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성형외과에서는 얼굴이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사람을 미인의 기준으로 삼는다. 즉 미인형의 얼굴은 얼굴 길이를 셋으로 나눌 때 이마 위에서 눈썹까지의 길이, 눈썹에서 코끝까지의 길이, 코끝에서 턱 끝까지의 길이가 같아야 한다.
최근에는 동안형 얼굴을 선호하여 턱이 약간 짧은듯한 1:1:0.9~0.8정도의 비율을 미인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얼굴의 가로 세로 비율은 1:1.618을 황금비율이라 하며 눈과 눈 사이 거리는 코 폭과 같을 때 눈동자는 입 폭과 같을 때 이상적인 비율로 본다.
이러한 아름다움의 비율은 타고나는 것이다. 미남미녀는 하늘에서 내려준 사람들이라고 하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성형의학의 발달로 이제는 미남미녀를 사람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어느 정도는 가능해진 시대다.
우스갯말로 ‘부모님 날 낳으시고 의느님(의사+하느님을 합성한 신조어) 날 만드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원판 불변의 법칙’은 성형수술에도 통하는 말이다. 모든 황금비율을 성형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한국 사람은 입 폭이 좁은 경우가 많다. 성형수술로 입을 크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성형으로 입 폭을 넓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웃으면 입이 커진다. 따라서 입 폭이 좁은 게 불만이라면 많이 웃으면 된다. 단, 너무 웃으면 코 폭도 같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나리자처럼 살짝 미소 짓는 표정을 연습하는 것이 좋다.
사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표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황금비율을 가진 미인이라도 죽은 사람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는다.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 예뻐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반듯한 자세, 온화한 표정, 부드러운 말투와 행동과 같은 기본이 갖추어진다면 성형수술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아름다움은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되었다면 성형수술도 그 노력들 중 하나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이다.
2019-06-26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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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51> 얼굴은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다
우리는 얼굴을 통하여 그 사람을 알게 된다.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는 물론이고 동양인 중에서도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심지어 태국인과 베트남인까지도 대개 알아맞힐 수 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고 응답한다.보통 사람의 경우, 전혀 다른 정보 없이 얼굴의 생김새만 가지고도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에 대해 80% 이상 알아내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얼굴만으로 성별, 성격, 교육 정도, 능력 정도까지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짐작이 어느 정도는 맞는다고 여기고 있으며 또 맞는 경우도 많다. 사람은 얼굴에서 의외로 많은 정보를 캐내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얼굴 특징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모든 세포의 핵 속, 그 안의 염색체 속에 있어서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유전자의 지시에 의하여 형성된 얼굴에는 유전자의 영향이 잘 나타난다.
진한 눈썹, 쌍꺼풀 진 눈, 주먹코, 두꺼운 입술, 반대로 흐린 눈썹, 째진 눈, 뾰족한 코, 얇은 입술 등.. 사람의 외형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사람이 가진 유전자 8만개 중에서도 반 수 이상은 뇌를 만드는데 관여하고, 신체 중에서도 얼굴 등 외형을 결정하는 요소는 의외로 간단하다.
아주 단순화 시킨다면 불과 눈, 코, 입 이 세가지 요소로 수십억 인구의 얼굴이 특징지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의 얼굴에 있어 민족간, 개인간의 얼굴 형태 차는 크지 않다. 그 차이는 보통 2~5mm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조그만 차이를 판단의 단서로 삼아 서로의 얼굴을 식별하고 20년 전에 헤어졌던 동창을 알아보고, 50억 인구 중에서 자신의 가족을 가려낼 수 있는 것이다.
얼굴의 구조와 형태는 유전한다. 그래서 가족간 민족간 서로 닮게 된다. 그 닮은 점이 중국인 사이의 공통점을, 일본인 사이의 공통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공통점을 토대로 우리의 머리 속에는 은연 중에 사람에 대한 인상이 자연스럽게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처음 소개 받는 사람에 대해 점잖게 생겼다든지, 까다롭게 생겼다든지 하는 인상을 받는 것은 우리의 경험에 바탕 한 공통점을 토대로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느낌들이다.
우리는 이렇게 형성된 첫인상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첫인상이라는 고정관념으로 그를 상대한다. 이 고정관념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생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후천적인 경험에 의한 것, 교육을 받아 형성된 것 등이 있다. 검은 얼굴이나 주름살에 대한 거부감, 흰 얼굴이나 고운 얼굴에 대한 친근감, 동안형에 대한 관대함과 큰 얼굴에 대한 혐오 등이 그것이다.
얼굴에 대한 더욱 자세한 예를 알아보면 이마는 젊음, 지혜, 이상을 상징하고, 코는 성숙, 권위, 남성스러움을, 입은 적극성, 정신력, 집중력, 여성스러움을 상징한다는 고정관념을 갖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얼굴은 ‘얼이 들어있는 굴’이라는 해석대로 신체 부위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위다.
현대의 얼굴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을 상징하는 신분증이 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증에 크레디트를 더 부여하기 위해 얼굴을 성형하려고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2019-06-12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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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50> 옷 벗기는 의사
성형의 중에 옷을 벗기는 의사가 있다고 한다. 쌍꺼풀 수술 상담을 받으러 온 여자의 옷을 벗겼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새로운 미투 사건 인가 싶다. 하지만 이건 성추행 사건이 아니다. 성형을 만병통치의 약으로 아는 사람과 그걸 이용한 의사의 상술이 어울려 빚은 결과다.
환자가 찾아온다. 환자는 쌍꺼풀 수술을 상담한다. 눈만 조금 커 보이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환자는 의사와의 대화에서 점점 더 많은 결함을 발견하게 된다. 눈도 쌍꺼풀 하나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쌍꺼풀 수술과 함께 앞트임과 뒷트임을 함께 시술받기로 한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사의 비평은 코로 옮겨간다. 괜찮아보였던 코가 갑자기 너무 낮아 보인다. 광대뼈를 보고 의사가 너무 튀어나왔다고 이야기한다. 턱도 V라인과는 거리가 먼 사각턱이라고 한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니 그도 그런 것 같다.
눈을 제외하면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겼던 환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추녀로 둔갑한다. 그러나 의사는 수술만 하면 연예인 못지 않은 미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에 환자는 가슴이 뛴다.
의사가 이번엔 가슴 이야기를 꺼낸다. 가슴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가슴수술을 권하기 위해 의사는 상의와 브라를 탈의시킨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가슴이 확실히 빈약한 거 같다. 의사는 간단한 수술만으로 가슴을 풍만하고 탄력 있게 바꿔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예뻐 질 수 있다는 말에 환자는 또 넘어간다. 이번엔 허리, 종아리, 허벅지로 수술 부위가 옮겨진다. 수술 부위를 보려면 하의를 탈의해야 한다. 환자는 하의를 탈의한다. 이렇게 이 의사는 환자의 옷을 벗긴다.
이 의사는 왜 환자의 옷을 벗겼을까? 환자의 몸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환자의 몸을 통해서 성형수술을 팔기 위해서다. 환자의 옷을 벗길 수 있는 유창한 언변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아니 내 양심이 그것을 허락지 않는다.
성형외과에 근무하는 일부 의사들과 직원들의 감언이설은 쇠도 녹일 정도다. 날로 경쟁이 치열해 짐에 따라 의사와 직원들은 언변으로 무장하고 성형이 불필요한 상담자들까지 성형을 감행케 하는 전략을 펼친다. 부끄러운 일이다.
심지어 어떤 의사나 상담실장들은 찾아온 여성 환자를 얼굴을 들고 다니는 게 부끄러울 정도의 추녀로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그런 눈으로 사셨느냐며, 그런 코로 돌아다니면 욕을 먹는다며, 요즘 성형을 안 하는 것은 화장을 안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성형은 예의라는 둥, 시집이나 가겠느냐는 둥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고, 그래도 안 되면 윽박지르는 일이 지금 성형외과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성형외과를 방문해서 무작정 어디를 어떻게 고치면 될까요? 라고 묻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것이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없다. 의사가 어디를 어떻게 고치면 예쁘다고 권유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환자 마음에 들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연한 얘기다. 옷을 사러 가서 점원이 골라주는 대로 사서 입는다고 100%만족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내 얼굴의 단점이 무엇인지 어디를 어떻게 고치고 싶은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독단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충분히 상의해서 동의를 얻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수술 받고 싶은 내용이 어느 정도 결정되었다면 어떤 방법으로 개선할지는 성형외과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좋은 의사라면 어떤 수술을 하면 되는지, 그 수술의 장단점과 부작용을 설명하고 환자의 선택을 도와줄 것이다.
2019-05-29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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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9> 권유와 만류, 자율과 타율 사이에서
“대중들은 게으른 여배우를 싫어한다. 성형한 여배우를 보면 성형했다고 지적하고, 여배우가 안 가꾼 얼굴로 나타나면 또 그것으로 비난한다. 여배우라는 자리가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여배우는 자신을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작품으로 복귀한 후 성형의혹을 받은 한 여배우가 한 말이다. 미모로 평가 받는 연예인에게 성형수술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자기 관리의 중요성은 연예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생을 이모작하라” 등등 요즘 세대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자기 계발, 자기 관리가 일종의 화두처럼 제시되고 있다. “당신은 성공할 자격이 있다.” “자신을 경영하라” “주입식 교육은 가라, 이젠 자기 주도학습의 시대” 등의 구호는 스스로를 계발과 경영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요구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이제 촌스럽다. 문제는 자아의 발견을 넘어 발견한 자아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데 있다. 자기 관리와 자기 경영의 전도사들은 우선 자신을 철저히 대상화하고 객관화하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자아의 식민지화’라고 부른다. 자신의 내부에 야만의 상태로 버려진 미개척지, 혹은 식민지를 찾을 것, 그리고 세밀하게 마련된 프로그램을 따라 관리 경영하여 문명화할 것. 단, 식민지의 거주민인 자아는 그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조치이며, 지금의 상태보다 좋아지는 유일한 방법임을 인정할 것.
분 단위 시간표처럼 세심하게 계획된 자기 관리와 경영 프로그램은 자율성을 바탕을 실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상화하되 그것이 스스로의 자율적 선택임을 끊임없이 각성해야만 성공적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 ‘타율적 자율’이 자기 관리 및 자기 경영의 키워드이다.
성형을 선택하는 사람들 역시 자율과 타율의 미묘한 지점에 놓여있다. 요즘 남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 성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성형을 하는, 혹은 한 이유를 물어보라. 십중팔구 ‘자기 만족을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성형은 취업 등 현실적 필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의 일환’이기도 하다.
인간은 결핍을 느끼는 존재다. 충족되지 못한 결핍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결핍은 자기합리화를 낳거나 보상심리를 작동시킨다.
유명한 우스갯소리를 들어보자. 양발의 크기가 다른 한 부인이 신발을 사러 갔다. 신발가게 점원이 부인의 발을 보고 “한 쪽 발이 더 크시네요.”라고 말하자 부인은 가게를 그냥 나오고 말았다. 다음에 들른 가게의 점원은 “한 쪽 발이 더 작으시네요.”라고 말했고, 부인은 기분이 좋아져 점원이 권해준 신발을 사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의 발은 큰 것보다 작은 게 좋다는 사회적 편견을 활용해 부인의 신체적 결함을 위안해준, 더불어 장삿속을 채운 이야기이다. 생긴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데에도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양발의 크기가 다르다는 현실적 문제는 한쪽 발이 더 작을 뿐이라는 생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남들과는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자기 위안 역시 그다지 견고하지 못하다.
간혹, 정말 미용 성형이 필요치 않은 사람이 찾아온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수술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자존감이다. 나는 상담을 통해 그런 사람들을 돌려보내곤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성형외과들이 그/그녀를 유혹한다.
나에겐 환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이 가장 중요한 성형의 윤리이다. 만일 당신이 성형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정말 모르고 있다면 나는 당신 대신 그것을 선택해줄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정말 하고자 한다면, 아무도 당신이 그것을 못하도록 막을 수 없다. 나는 그 실행과 중지의 중간에서, 어정쩡함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해, 당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2019-05-15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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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8> 늘 새로운 얼굴들
80년대는 노동운동을 많이들 했었다. 가장 극단적 선택인 분신을 시도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 중 치료가 끝난 후에도 우울증에 걸리고 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러나 좀 다른 사람을 알고 있다. 노동운동을 했던 한 여성이 있었다. 노조 활동을 하던 중 체포를 피해 창을 넘다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생긴 여성이다.
그녀의 치열한 삶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무료로 수술을 해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수술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흉터가 노동운동의 훈장이라고 했다. 흉터와 훈장의 차이가 놀라웠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삶의 맥락 속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상처 입은 얼굴은 자랑스러운 삶의 스토리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여성을 알고 있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던 한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쌍꺼풀 수술을 받았다. 누가 보더라도 자연스러웠다. 그녀와 절친한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그녀의 쌍꺼풀 수술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우울증을 호소했다.
페미니즘이라는,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에 어긋나는 결정을 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쌍꺼풀 수술이 그녀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너무 큰 짐을 스스로 껴안고 왔던 것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미용성형을 사회의 구조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그들은 여성의 성형수술을 ‘여성 몸에 대한 학대’라고 이야기한다. 성형수술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인 자신을 대상화한 결과이며,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내면화한 상태에서 내리는 ‘끔찍한 선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부 진보나 페미니즘 진영의 말은 정치적으로는 ‘너무나’ 올바르다. 그러나 성형을 했거나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죄의식의 올가미를 씌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결정을 수동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페미니즘이 원하는 사회 구조적인 해결방안의 모색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개인의 결정은 사회 구조적인 틀에서 파생될 수 있다. 역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은 개인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될 것이다.
위 두 사례와 달리 성형수술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경우도 있다. 28살의 남성이었다. 쌍꺼풀이 없고 눈꼬리가 올라간 날카로운 눈을 가진 남성이었다. 심성은 착한 청년인데 외모로 인해 못된 성품이거나 심하게는 범죄자 같아 보인다고 오해를 받았다고 했다.
옆에서 보다 못한 누나가 손을 잡고 데리고 왔다. 쌍꺼풀 수술로 그 청년은 선한 인상으로 바뀔 수 있었다. 그 청년은 단순히 외모만 바뀐 게 아니라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수술 후 보다 밝고 적극적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한 여성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에 수술을 해주려 했었고, 다른 한 여성에게는 수술 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 수술 후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남성에게서 성형의 필요성이 충분하다는 데 자부심을 얻기도 했다.
나는 불필요한 수술을 거절해서 존경을 받았고, 어려운 수술에 성공해서 먹고 살았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며 성형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아왔다. 성형을 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매일 만나는 얼굴이지만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는 얼굴들이 매번 새롭다.
2019-04-30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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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7> ‘얼굴’이라는 스토리
나는 신체적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재건성형으로 새 인생을 찾아주는 것을 목표로 성형외과 전문의를 선택했다. 재건성형에서 미용성형으로 전향하면서 한때는 쌍꺼풀수술이나 코를 높여주는 수술로 돈을 번다는 사실에 자존심을 상해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젠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자존감을 갖게 해주는 것에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미용성형을 하는 나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한 여성이 찾아왔다. 표정이 어둡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손댈 데가 없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수술을 요구했다. 결국 “어떻게 해 드릴까요?”하고 물으니 “예쁘게만 해 주세요.”라고 떼를 쓴다. 예쁘게? 이럴 때 “수술하면 예뻐지시겠습니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할 것인가.
대신 나는 “표정을 조금만 바꿔보세요. 사진을 찍을 때처럼 ‘김치~’하고 거울을 보세요.”라고 권했다. 그녀는 금세 자신이 원하는 예쁘고 건강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항상 이렇게 웃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형의 목표는 자연스러운 얼굴이다. 자연스러움을 벗어난 성형은 성공한 수술이라 보기 힘들다. 얼굴 모양이나 이목구비는 예뻐진 것 같은데 전체적으로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자연스러움이 부족한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만큼 성형은 어렵다.
비교적 간단한 시술인 보톡스 역시 그렇다. 표정근을 마비시켜 주름살을 방지한다는 보톡스도 잘못 사용하면 표정 없는 ‘데드 마스크’를 만들 수 있다.
사실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의 얼굴엔 수심과 불만이 가득하다. 자신의 얼굴을 자책하며 거울 보기를 두려워하고, 심지어 카메라를 들면 기겁을 한다. 자신은 쌍꺼풀 없는 눈이나 낮은 코 때문에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이 이유가 아닌 경우가 많다.
얼굴은 스토리다.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여러 자취가 아로새겨져 있다. 수심과 불만이 가득한 얼굴은 수심과 불만이 가득한 삶을 의미한다. 성형수술은 새로운 스펙을 갖추게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스토리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성형외과계에는 ‘상담을 하는 동안 웃지 않는 사람에겐 수술을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웃음이 없는 사람은 성형을 아무리 잘해도 예뻐지질 않는다. 사람의 인상은 결코 부분적인 이목구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갖지 않는 뺨이나 눈가•입가 등 ‘여백’의 영향이 더 크다.
이 여백을 연출하는 것이 표정근육이다. 30여 개의 미세한 근육이 서로 밀고 당기며 다양한 감정을 연출한다. 쌍꺼풀과 오똑한 콧날과 갸름한 턱선이 있다고 해도 그것들을 생기 있게 만들어줄 표정과 웃음이 없다면 예뻐 보이지 않는다. 표정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이목구비조차 사막 위에 세워진 단조로운 조형물일 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얼굴의 색감이다. 밝은 표정을 지으면 얼굴의 온도가 올라간다. 표정근육이 움직이면서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발그레한 혈색이 돈다. 밝은 표정 하나로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얼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표정근육과 얼굴의 색감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다. 눈꺼풀이나 코의 모양을 바꿔주고, 턱이나 광대뼈를 깎아 얼굴의 틀을 교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성형을 해서 완벽해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도록 계기를 부여해주는 일이다.
얼굴에서 결핍이나 장애를 찾는 게 아니라 사랑을 가지기. 물론 그 결핍이나 장애가 개인과 사회라는 두 축 모두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2019-04-17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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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6> 가장 예쁜 코를 만들어 주세요
“코를 고치고 싶어요.”
밉지 않은 코였다. 하지만 더 예뻐질 수도 있는 코였다. 예전 같으면 나는 오히려 수술을 하지 말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용의학시대다. 성형이란 삶의 과잉이 아니라 삶의 윤택이다. 하루 세끼, 끼니를 때우기에 급급했던 시대, 옷이란 단지 몸을 가리는 도구에 불과하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지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어떻게 미각을 향유할지를 고민한다. 이제 성형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소통의 방식이 되었다.
“어떻게 고치고 싶나요?” 환자의 대답을 기다리며 나는 머릿속으로 코의 모양을 그려본다. 코의 연골과 콧구멍의 모양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대답을 기다린다. 누구처럼 고치고 싶다고 할까? 아니면 크게? 자연스럽게? 짧은 시간 나는 이런 저런 모양을 그려본다.
“선생님 세상에서 제일 예쁜 코를 만들어 주세요.”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수많은 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코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겠다. 한숨이 나오려한다. “그럼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코를 만들어 드리죠.”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는 성형의가 있다면 그 대답은 진실이 아니다. 그저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다.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고 더 많은 수술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한 립서비스일 뿐이다.
성형의는 절대미감을 가지고 있는가? 절대미는 존재하는가? 나는 길게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얼굴도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코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보통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면 곤혹스러워하는 쪽은 환자다. 절대를 믿고 왔는데, 절대가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순간 절대적인 해법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무능한 의사로 낙인 찍힐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세상에 절대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오똑한 코를 원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오똑한 코가 콤플렉스가 됩니다. 중요한 건 나와 어울리는 내가 원하는 모습을 찾아가는 겁니다.”
“여기가 유명하다고 해서 온 건데. 제일 예쁘게 해 준다고 해서…….”
이야기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차근차근 다시 설명을 했다.
“고맙습니다. 만약 제일 예쁘게 해 준다는 소문이 났다면 그건 얼굴에 어울리는 코를 만들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먼저 코 수술을 하고 싶은 이유를 말해보세요.”
환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을 한다. “실은 친구가 제 코가 너무 낮다고 해서요. 그러고 보니 코 라인이 뭉툭한 것도 같고요. 그리고 코의 크기에 비해서 콧구멍도 너무 큰 거 같아요.”
이제야 말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처음 그 환자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성형외과를 찾은 그 환자의 용기도 어쩌면 대단한건지도 모른다. 자신의 중요한 일을 다른 사람의 말에 맡길 수 있는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니 말이다. 이것은 내 주관이 상대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결과다. 그래서 내 주관을 상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형에서도 마찬가지다.
성형은 의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소통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또한 성형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형의를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존재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는 가차 없이 돌팔이로 몰아버린다. 그러나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성형의는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말을 하는 성형의가 있다면 그가 바로 돌팔이일 것이다.
2019-04-03 0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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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5> 거울 앞에 선 어린 학생에게
중국 고사에 곡식의 싹을 빨리 자라게 하려고 당겼더니 모두 말라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장(助長)이라는 한자어가 거기에서 나왔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얼굴에 관심이 많다. 초등학생용 화장품이 따로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성형수술을 받는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엄마를 졸라서 성형외과에 오는 경우도 많다. 성형외과 의사 앞에서 학생의 표정은 한없이 밝지만, 학생의 손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방문한 엄마의 표정은 어둡다. 학생의 고집에 못 이겨 성형외과를 오기는 했으나 너무 어린 나이에 수술을 시키는 것이 영 꺼림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형 할 가장 좋은 나이는 몇 살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눈 수술은 육체의 성장과는 관계가 없다. 의학적으로 필요할 경우 100일 된 어린아이도 문제없이 쌍꺼풀 수술을 할 수 있다.
안면윤곽이나 코 성형의 경우라면 성장하면서 모양이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육체적 성장이 끝난 후에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성형과 내면의 성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자기 성찰의 힘이 부족하고, 자기 결정에 익숙하지 못한 어린 학생들이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몸은 컸지만 정신적인 성숙이 되어 있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욕망을 책임질 정도의 내면의 힘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형수술을 한다고 방금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온 것처럼 수술이 끝나자마자 예뻐지는 것이 아니다. 수술부위가 붓고 흉터가 생기기 때문에 수술 직후의 외모는 눈뜨고 보기 싫을 정도의 모습이다. 수술직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1~2주가 지나면 더 이상 견디기 싫어진다.
성숙한 어른들도 자연스러워지기 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든데, 아직 성숙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라면 조급함이 더 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술 후 바뀐 모습에도 적응해야 하는데 미적 기준이 완전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이라면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어느 날 예쁘장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찾아왔다. 그 전부터 눈과 코, 얼굴 윤곽을 고치고 싶었는데, 마침 장학금을 탔으니 얼굴 성형 외에 가슴 성형까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슴 성형은 심지어 성인도 하기 주저하는 공격적 수술이다.
처음엔 당돌한 아이로만 여겼다. 설득 끝에 가슴 성형은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고집을 꺾지 않는 아이에게 나는 부모님과 함께 오라고 했다. 결국 나는 부모님까지 설득해 눈 수술만 하기로, 그것도 간단한 매몰법을 사용해 하기로 타협을 보았다.
옛날 같았으면 나는 눈 수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또 시대가 달라졌다. 쌍꺼풀 만든다고 테이프 붙이고 신경 쓰는 것보다 간단한 수술로 자신감을 찾는 게 더 나을 것이었다. 나는 어느덧 내 절대적인 기준보다 환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먼저 고려하게 되었다. 때로는 의사로써 말려야 할 일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아닌 환자의 처지에서 수술을 고려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다만 거울 속 얼굴을 외면하던 그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스스로의 참된 욕망과, 내면의 힘과,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외면하지 않는, 외면의 아름다움만을 경배하지 않는 현명한 여인으로 자라줬으면 좋겠다.
타인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은 시들지 않는 꽃이다. 내 것이 아닌 욕망으로 성형을 원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계절에 앞서 꽃을 피우려 하지 않는 나무를 기억하기 바란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나무는, 때를 기다리며 뿌리부터 줄기, 잎새 하나하나를 먼저 튼실하게 키우는 법이다.
2019-03-20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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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4> 얼굴을 사랑하는 법
참된 표정을 소유했던 한 스님이 있었다. 또 스스로를 '바보'라 칭했던 성직자가 있었다. 지금 나는 예전에 세상을 떠나신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한 분은 ‘바보’로, 또 한 분은 ‘무소유’로 세상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신 분들이다.
성형의의 입장에서 감히 두 분의 얼굴을 바라본다면 어찌 고쳐야 할 곳, 또는 고칠 수 있는 곳이 없겠는가?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그 분들의 얼굴에서 평화와 겸손, 그리고 사랑을 읽었다.
하나의 종교가, 아니 온전한 하나의 삶이 그 분들의 얼굴에 웅숭깊은 표정을 새겨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분들의 얼굴에서 욕망과 가식을 비워낸 진심과 진실을 발견한다. 내면과 외면이 아름답게 일치한 결과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자연스럽게 표출하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나에게 가장 즐겁고 어려운 수술은 내면의 얼굴을 드러내주는 수술이다. 훌륭한 조각가는 대리석만 봐도 거기에서 무엇을 꺼내야 할지를 안다고 한다.
돌이 품고 있는 형상을 드러내기만 할 뿐 인위적으로 모양을 만드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이 있을 리 없는 차가운 대리석 속에서 형상을 읽어내는 조각가에 비하면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겨우 환자의 내면을 읽어내는 나는 하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영감에 의존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의술을 연마하고 환자와의 소통에 힘쓰는 의사이다. 환자의 내면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수술은 이미 반쯤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얼굴에 배어나오기 힘든 가치이다.
두께가 1cm에 불과한 얼굴 피부가 빙하보다 두껍게 내면을 가둬놓기도 한다. 그럴 때 얼굴은 내면의 감옥이 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그 감옥의 빗장을 아주 조금 풀어 주는 것이다. 그 변화는 놀랍다.
얼굴을 바꾸면 내면이 바뀌고, 내면이 바뀌면 얼굴이 바뀐다. 이 간단한 전환에 성형의 보람과 의미가 깃들어 있다.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같다. 관건은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주는 데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 예쁘게 보이는 눈, 코, 입, 윤곽을 만들어주는 게 얼굴 성형의 목적이 아니다. 나에겐 환자 자신의 내면이 드러날 수 있는, 또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얼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얼굴을 성형하면서 모두 다른 얼굴, 다른 표정을 지닌 얼굴들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노력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수술 후에 다시 만난 환자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르지만 아름다운 얼굴들로 바뀌어 있었다. 각자의 삶이 다르듯이 개성이 다르고 내면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마, 눈썹, 눈, 코, 광대뼈, 입, 턱 등등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게 도와준다면 자연스럽게 개성도 살아난다. 개성은 V라인 얼굴이나 짙은 쌍꺼풀로, 혹은 유행하는 수술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는 6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똑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조차 서로 완전히 닮지는 않는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남과 다른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2019-03-06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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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3> 아직도 살아있는 이름 ‘야매’
야매라는 말이 성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살기도 힘들었다. 디자인 그런 건 따지지도 않을 때다. 세상을 지배하는 담론은 더 싸게, 더 오래, 더 튼튼하게였다. 싸고 튼튼하고 오래간다면 그 보다 더 좋은 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기회비용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다 좋을 순 없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사람은 적어도 몇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
예전엔 많은 사람들은 야매를 선택했다. 이빨도 야매, 성형도 야매였다. 야매는 가짜, 짝퉁, 사이비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의사가 아닌 사람이 돈을 받고 수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야매를 선택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야매는 싸다. 그리고 쉽다. 거기에 불법시술자의 달콤한 말이 더해진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상실하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야매를 받았다.
야매 시술의 대표주자는 파라핀 같은 이물질을 얼굴에 넣는 주사시술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선풍기 아줌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지 않더라도 야매로 시술한 이물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물질은 완전히 제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물질을 맞았더라도 모양에 문제가 없고 염증이나 불편한 증상이 전혀 없다면 잊어버리고 사는 게 최선이다. 이물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딱딱해져서 덩어리처럼 뭉치고 피부와 유착이 되어 울퉁불퉁한 피부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물질을 제거하기 어렵더라도 울퉁불퉁한 부위에 지방을 주입하여 평평해 보이게 만들면 어느 정도 개선되어 보인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처음부터 ‘영원히’ ‘완벽하게’라는 말에 현혹되어 야매 시술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최근에는 이런 불법 야매 시술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지금도 현실에는 또 다른 많은 야매들이 존재한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쉽게 현혹되는지 알 수 없다.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평범한 주부, 직장인, 학생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그건 옛날에나 벌어지는 일들이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
술만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다. 마취제만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과 달콤한 말들, 거리에 넘쳐나는 간판들과 광고, 최신이라 불리는 숱한 시술법들 또한 사람의 이성과 감각을 마비시킨다. 그럼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들도 지극히 비상식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문제는 성형을 단순한 상품으로 이해한다는데 있다. 상품은 반품이 가능하다. 반품이 안 된다면 쓰지 않으면 된다.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지불한 금액은 잃어버린 셈 치면 된다. 그러나 성형은 반품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성형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돈보다 더 큰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이 장사를 위해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기에 급급하다.
솔직히 나는 그렇게 설명을 잘 할 자신이 없다. 아니 그런 자신이 없다기보다는 그렇게 쉽게 성형을 이야기하고 권할 자신이 없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성형은 광고 문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우스의 클릭으로 상품을 신청하고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는 상품이 아니다.
게다가 상품을 설명할 때, 판매자는 상품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대신 단점은 극소화하기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광고의 범람 속에서 소비자는 차단된 정보만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의학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못쓰게 된 상품은 버릴 수 있지만 내 몸은 버릴 수 없다. 내 몸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되묻고 싶다. 내 소중한 몸을 기술자에게 맡기겠는가? 아니면 의사에게 맡기겠는가? 이건 상식이다. 그러나 상식이 쉽게 무너지는 게 또한 현실이다.
2019-02-20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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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2> 내 것인 얼굴, 남의 것인 얼굴
흔히들 성형 수술이라고 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술이라고 생각한다. 성형 수술은 무엇보다 얼굴을 중심으로 행해진다. 성형의에게는 얼굴이 미적 추구의 직접적 대상일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거기에 대한 욕망이란 무엇인가를 따지기 전에 먼저 일상적 용어인 ‘얼굴’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자.
얼굴이란 무엇인가? 얼굴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인간만의 육체적 부위이다. 얼굴은 개인의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 사회의 욕망이 투영되는 특정한 신체 부위인 것이다. 얼굴과 성형, 그리고 욕망의 관계를 쉽게 말할 수 없는 까닭이 우선 여기에 있다.
국어사전은 ‘눈, 코, 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이라고 얼굴을 정의한다. 그럼 얼굴은 머리가 있는 동물들에게도 존재하는 기관이 아닌가? ‘벼룩도 낯짝이 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낯짝’은 얼굴을 비하한 말이지만 말이다. 사전적 정의를 넘어 얼굴은 ‘얼이 드나드는 굴’로 풀이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얼과 혼을 소중히 여겨, 신이 나면 ‘얼씨구’하며 흥을 돋우고, 정신 나간 사람은 ‘얼빠진 친구’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얼의 굴’이란 정의를 사용한다면, 동물들에게 머리의 앞면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정 얼굴이라 부를 만한 신체 기관은 없다.
얼의 변화, 즉 표정 역시 인간에게만 있다. 동물에게는 눈, 코, 입, 그리고 수많은 근육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표정이 없다. 동물들의 얼굴은 소통을 위해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얼굴을 통해 타인과 소통한다. 얼굴도 언어 못지않은 의사소통의 매체이다. 얼굴에 있는 30여 개의 표정 근육으로 만들 수 있는 1만개 이상의 표정을 통해 인간은 감정과 정보를 교환하고 고도의 사회성을 표출하는 것이다.
찰나에 불과한 눈동자의 움직임이 때로는 수 천 마디의 글과 말이 못 담는 감정을 드러낸다. “사랑해!”라는 말이나 글 보다 물빛을 머금은 눈, 미세하게 떨리는 볼, 살짝 벌려진 입술이 사랑의 진실을 더욱 잘 전달한다. 진심을 담아내는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다. 진심어린 표정 속에서 자신감과 자기 면목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내 얼굴이 때론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 눈이 아닌 다른 이의 눈으로만 보는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 아니다. 다른 이의 눈은 사랑하는 사람의 눈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직장 동료, 혹은 사회 공동체의 눈일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이의 눈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도, 가능한 일도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에서처럼 인간의 얼굴은 사회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이의 눈만으로 내 얼굴을 보는 순간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약점과 결핍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 사람의 눈에 내 광대뼈가 너무 튀어나와 보이지는 않을까? 처진 눈꼬리 때문에 면접관이 나를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낮은 코가 사람들의 웃음거리는 되지 않을까?
사랑 받을 수 없는 얼굴과 사랑 받기에 최적인 얼굴, 면접에 떨어질 얼굴과 면접에 철썩 붙을 얼굴이란 관상학자의 생계 수단일 뿐이다. 나는 성형의로서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그런 얼굴이란 없다.” 스스로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는 얼굴, 참된 표정이 있을 뿐이다. 남의 얼굴로 짓는 표정에 진심과 진실이 깃들기란 밧줄이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2019-02-07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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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1> 차별 받지 않으려는 절실함
흔히들 성형수술을 ‘남들보다 눈에 띄게 예뻐지기 위해’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성형수술의 욕망 속에는 남들만큼만 되고 싶다는 평범한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성형수술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남들과의 관계에서 동등해지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구별짓기’와 주류에 의한 차별이 존속하는 사회에선 ‘남들과 같아지기’는 일상적인 욕망이다. ‘성형수술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엘리자베스 하이켄의 <<비너스의 유혹>>에 따르면 유대인의 코, 흑인의 입술과 함께 아시아인의 실눈은 늘 성형의 주요 대상이었다.
성형을 원하는 아시아인들은 미국 사회가 아시아인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된 이유를 ‘작고 가는 눈’에서 찾았다. 자신들이 가진 아시아인의 전형적인 실눈이 ‘재미없고 즐길 줄 모르는 인간형’, ‘책벌레’에 ‘졸리고 지루한 인상’을 준다고 여겼다.
결국 쌍꺼풀 수술은 동양에서 서구세계로 옮겨온 이주민에게 ‘피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비서구에서 온 이주민들은 앵글로색슨계 백인을 닮고 싶어 했고, 미국 사회의 주류 속에 편입하고 싶어 했다. 아시아인의 쌍꺼풀 수술은 유대인의 코 성형, 흑인의 입술 수술과 더불어 ‘미국 주류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자격지심에서 주류 백인의 생각과 관점, 외모 기준을 내면화했다는 하이켄의 설명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나는 아시아인들이 ‘쌍꺼풀 수술’을 선호하는 이유가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라기보다는 본능 및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얻은 경험의 소산이라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외꺼풀’보다는 ‘쌍꺼풀’이 사회적으로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신체기관이다.
우선 쌍꺼풀은 눈동자를 더 많이 노출하게 만든다. 눈의 흰자위는 홍채의 움직임을 돋보이게 해 시선의 방향을 상대방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쌍꺼풀이 지면 눈 자체가 강조돼 보일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눈알이 더 많이 드러나면서 동공이 더 크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이란 표현대로 호감을 느끼는 사람을 본 순간 동공은 팽창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듯한 ‘커다란 동공의 소유자’에게 곧잘 매력을 느낀다. 쌍꺼풀 수술은 “나는 당신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신호를 만드는 ‘호감’ 수술로 볼 수 있다.
쌍꺼풀이 호감형의 아름다운 외모로 변화시켜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더불어 눈을 보다 편하게 뜰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신체 기능을 복원시켜준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자기계발’과 ‘스펙 보강’ 차원에서 벌어지는 ‘쌍꺼풀 수술의 일상화’는 평범한 사회로의 편입을 꿈꾸는, 평범치 않은 여성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그 옛날 미국으로 이주한 아시아 여성들의 선택과 맥이 닿아 있다. 더불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절실히 원하는 사회적 자아의 보편적 욕망의 실현으로도 읽을 수 있다.
<<비너스의 유혹>>에 나오는 어느 이주민 여성의 말은 성형의인 나에게 여전히 예사롭지 않은 울림을 준다. “나는 얼굴을 바꾸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내가 원했던 것은 다만 친구들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2019-01-23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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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40> 아침버섯과 매미 그리고 최신성형
《장자》에 ‘아침 버섯은 초하루와 그믐을 모르고 매미는 봄가을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침에 잠시 났다 해가 지기 전에 사라지는 버섯, 봄과 가을을 모르는 매미, 이들이 비유하고 있는 것은 바로 눈앞의 상황에만 급급한 사람들일 것이다.
수술 실패 후 후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당장 값이 싸고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조급증이 있는 것. 기술자의 달콤한 말에 자신도 모르게 성형을 결정하는 것은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눈앞의 상황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자신에게 달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에 눈이 먼 의사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리는 환자들 역시 자신의 눈앞의 상황에 매몰되어 자신을 결정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빼앗는 많은 요소 중의 하나가 최신 수술이니 신개념이니 무통이니 하는 것들이다. 물론 성형의학의 발전은 나조차도 놀랄 때가 있을 정도로 빠르다.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수술 기법이 많아진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많은 의문을 가진 환자, 그리고 인터넷의 정보만으로 자신이 의사가 된 줄 착각하는 환자에게 다양한 수술 기법과 효과에 대해 최대한 설명하려 한다. 그럼 환자들은 되묻는다. “왜. 이렇게 유명한 병원에서 이런 수술법은 없는 거죠?” 순간 나는 당황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백지장 차이임을 곧 깨닫는다. 많은 성형외과들이 광고를 한다. 성형외과의 광고 중에는 내가 모르는 수술법이 많다. 그 수술법이 무엇인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나는 쓴 웃음을 짓는다.
최신 수술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수술은 기존의 것을 자기화해서, 달리 말하면 좀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용어를 붙여 세상에 선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기계, 최신 의료장비를 구비했다는 광고 역시 작은 차이를 포장한 의료 마케팅인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 기존의 수술이나 기계를 자기화해 그 병원이나 의사만의 효과적인 치료행위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라식 수술이 처음 시작된 건 20여 년 전 러시아에서였다. 그때 러시아에서 하던 수술은 각막을 칼로 절개하는 수술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수술법을 받아들인 미국의 의사들은 레이저를 사용했다. 레이저를 사용하자 예측가능하고 정교한 시력 교정술인 라식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청출어람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설픈 모방은 ‘지화위귤’을 만들 수도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이 새로운 것을 가미하려다 본래의 정수를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 환자들이 자주 묻는 수술법 중에는 ‘자연 유착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정식 수술명칭이 아니다. 라식 수술에 레이저를 도입한 것과 같은 혁신적인 의료기술이 아니다. 그냥 쌍꺼풀 수술을 마법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용어를 갖다 붙인 것 뿐이다.
사실 단순히 용어일 뿐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의료기술에 있어 정확하지 않은 수술명칭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연 유착법이라는 것이 유착을 만들어 쌍꺼풀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보니, 어떤 병원에서는 실로 묶어서 만드는 매몰법을, 어떤 곳은 절개를 해서 흉터로 유착을 만든다는 의미로 절개법을 자연유착이라 부른다.
수술이 잘 된 경우라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수술이 잘못되어 수정을 원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된다. 정확한 수술법을 모르다 보니 수술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절개법으로 한 경우라면 절개법으로, 매몰로 한 경우라면 매몰법으로 수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연유착법이라는 용어로는 어떤 수술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의사란 의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충실한 도우미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의료행위나 치료행위란 상품을 사고파는 구매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환자가 받아야 할 정확한 수술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덧붙여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한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환자가 수술에 대해 필요이상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진다면 그에 대해 믿음을 주는 것 또한 의사의 역할이다.
2019-01-09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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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39> 아름다움, 그 원초적 욕구
아마도 대부분의 여성이 그러하리라. 외출을 앞 둔 여성의 마음은 들뜬다. 여성은 화장대 앞을 떠날 줄 모른다. 그 여인이 느낄 설렘은 화장이라는 행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곱게 분을 뿌리고 붉은 입술연지를 세심히 바르고 향긋한 향수를 뿌려 화장을 완성시키고 나서야 여성은 비로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 미소의 뒤편에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서야 여성은 화장대를 떠나 집 밖으로 향한다.
어떤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으면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화장은 타인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이야기한다. 화장을 통해 어떤 이는 자신이 문명인임을 느낀다. 그들에게 화장은 원활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시키고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매개체다.
어쩌면 화장이란 실제 자신의 모습과 다른 왜곡된 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은, 아니 모든 사람들은 더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머리를 만지고 옷을 고르는 것도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적이다. 내 모습으로 체화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과 성형의 경계는 무엇일까? 화장이 시작되듯 성형도 그렇게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 현대는 미용의학의 시대다. 그렇다면 화장의 욕구처럼 성형에 대한 욕구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먼저 화장에서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화장품은 고대로부터 있었을 것이다. 시집갈 때, 신부의 볼에 찍었던 연지곤지도 일종의 화장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개념에 부합하는 공식적인 화장품은 근대에 들어서 나타난다. ‘박가분’은 우리나라 최초의 허가받은 화장품이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박가분’은 당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1920년대 화장품 최초의 공산품으로 인정받는 ‘박가분’은 포장에서부터 여심을 뒤흔들었다. 상자에는 인쇄된 라벨이 붙어 있었고 ‘박가분’은 그 속에 담겨있었다.
당시에 인쇄된 라벨과 번듯한 상자는 발전한 서구문명을 상징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박가분’을 소유한 뭇 여성들은 지금의 명품을 소유한 것처럼 자신감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박가분’은 당시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참담했다. 피부를 하얗게 보이게 하기 위해 ‘박가분’에 납 성분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도전과 오류에서 시작된다. 지금이야 내가 다 알지도 못할 별별 성형법이 등장하지만 성형의 시작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요즘 인터넷에 나도는 성형법을 모두 알지 못한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술법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최신형 성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그런 길은 의사보다는 기술자로 가는 길이다. 분명한 것은 ‘박가분’의 등장이 또 다른 화장품을 만드는 자양분이 되었듯 이전의 방법은 이후의 길을 가는 이정표가 된다는 것이다.
상품으로써의 화장품은 근대 이후에 유입된 서구 신식 문명일지 모르나 화장이라는 풍습 자체가 이 땅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고대사 문헌에는 화장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조상들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신라시대에도 여성들은 지금의 향수 같은 향낭을 차고 다녔고 연지와 분을 발랐다. 이처럼 미를 추구하는 전통은 인간의 오랜 삶 속에서 계속 되었던 보편적 현상이다. 그리고 그 보편적 현상이 지금은 성형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대 인도에서 잘린 코를 가져다 붙인 기록이 남아 있다. 현대에는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부상 군인치료를 위해 기술적 발전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한국에서 성형의학의 시작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행하던 언청이 수술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성형의학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시작은 미의 추구보다는 손상된 신체의 복구와 교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발전된 성형의학 기술은 인간의 오랜 염원인 미의 추구 욕구와 결합하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2018-12-26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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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38> 성형에 중독되지 마라
성형은 드라마틱하다. 외모의 변화가 내면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성형은 사람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성형이라는 드라마에 너무 빠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모든 것에는 도가 있다. 공자의 <<논어>><선진>편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이 말을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본래 ‘지나침과 모자람은 같다.’라는 뜻이다. 지나친 것도 모자란 것도 모두 좋지 않다는 말인 것이다. 성형을 통해 아름다워지는 것은 좋다. 그러나 너무 지나쳐 도를 넘게 되면 중독에 이르게 된다. 성형중독은 일종의 강박관념이고 정신병이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 난다. 도도하고 허영심 많고 머리가 나쁜 것으로 인식되어온 미남 미녀들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이들은 자기관리에 능하고 현명하며 세련된 능력자로 격상되었다.
반면 착하고 후덕하며 명민하게 그려졌던 추남 추녀들은 폐쇄적이고 괴팍하며 무절제한 루저(looser)라는 시선을 받는다. 이렇듯 외모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합의도 변해왔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두고 오늘날은 루키즘(lookism)이 지배하는 시대라고 한다. 인종•성별•종교•이념 등과 같은 전통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외모가 인간을 판단하는 새로운 차별요인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S라인의 몸매, V라인의 얼굴, 동안의 비결, 얼짱, 몸짱, 꽃미남, 꽃미녀, 미중년 등… 이 시대의 우리들은 온 사회가 선망하는 외모를 갖기 위해 수능성형, 취업성형, 웨딩성형, 관상성형, 황혼성형 등을 행한다. 마치 개인의 중요한 인생사마다 성형이 등장하는 듯 하다.
쌍꺼풀부터 안면윤곽, 쇄골 융기, 전신 1mm 시술까지 성형의 분야도 다양해 졌다. 칼 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간단한 주사만으로 원하는 외모를 갖는 것도 가능해졌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인 드니 디드로는 ‘나의 옛 실내복과 헤어진 것에 대한 유감’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썼다. 어느 날 디드로는 친구로부터 진홍색 비단으로 만든 아주 우아한 실내복을 선물 받는다.
디드로는 낡았지만 편안했던 옛 실내복을 버리고 선물 받은 실내복을 갈아입었다. 붉은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실내복을 입은 디드로는 문득 자신의 잠옷과 책상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여겼다.
얼마 후 디드로는 실내복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책상을 샀다. 그러자 이번에는 서재 벽에 걸린 벽걸이 장식이 초라해 보였다. 역시 새것으로 바꿨다. 나중에는 옷장, 의자 등 서재의 모든 걸 다 바꾸고 말았다. 낯설게 변한 서재에서 디드로는 말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정든 것들을 다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 일화에서 ‘디드로 효과’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성형에도 ‘디드로 효과’가 있다. 성형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성형하는 행위를 성형중독이라고 한다. 습관적으로 성형수술을 계획하고 그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며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성형하고자 하는 이들을 성형중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자율이 높은 사금융 대출 상품 중 성형대출도 있다 하지 않은가?
이들은 현재의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한다. 더 성형하면 더 예뻐질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성형수술을 통해 달라진 외모에 대한 드라마틱한 경험의 쾌감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더 독한 것을 찾는 마약중독자처럼 더 큰 쾌감을 얻고자 성형수술을 행하는 것이다.
성형에 중독된 사람은 지속적인 관리와 성형중독을 혼돈하는 사람들이다. 피부를 관리하면 피부가 좋아진다. 운동을 하면 몸이 좋아진다. 그러나 관리라는 선을 넘는 순간 중독이 되고 중독은 자신을 망치게 된다. 운동 중독으로 자신의 몸을 망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많은 박피로 인해 자신의 피부를 망치는 사람이 있다. 성형도 마찬가지다. 관리의 수준을 넘어서면 자신의 몸을 망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형 중독의 이면에는 사회적 변화가 함께 한다.
2018-12-12 09: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