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화] 북유럽 및 발틱 3개국 크루스 여행기(3)
노환성(주)에이팜코리아 고문/건국대학교병원약제팀 자문교수
독일-분단 아픔을 경제력으로 승화
스웨덴-'요람서 무덤까지' 복지완벽주의
* 6월 21일(화요일)
독일의 북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항구인 Warnemunde에 아침 7시에 입항하다. 쌀쌀한 바람이 불고 좀 스산한 느낌이 가는 북유럽의 전형적인 날씨이다. 조그마한 항구도시인 이 곳 인근에는 제법 큰 도시인 Rostock이 있으며,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초라하기까지도 한 시골역이, 발코니에서 멀리 보이며, 기차로 베를린을 찾는 이 배의 승객들이 줄을 지어 기차에 오르는 것도 내려다보인다.
우리 일행은 준비된 버스 편으로 3시간이 좋이 걸리는 베를린으로 향했다. 물론 이 도시를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가 있어서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준다. 독일의 지형은 남부지방은 산악지대가 많지만 북부지방에는 산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로서 베를린이 있는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변에서 자주 100m 높이의 풍력발전기들이 늘어서 있는 풍력발전단지가 스쳐 지나간다.
바람을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80-100미터 높이의 이 풍력 발전기는 1980년대부터 원자력 발전을 독일 국내에서는 폐쇄하고 있으면서, 또 자원에 한계가 있는 석유에너지로부터 독립을 해야만 하는 독일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서 독일 북부지방에만 현재 약 30,000개의 풍력발전기가 가동 중이며, 지방 자치단체나 개인 또는 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무조건 정부에서 구매를 해주기 때문에, 풍속 8-10m의 바람이 연중 내내 불고 있는 이 지방에서는 농사를 짓는 것 보다는 더 수익성이 있으며, 또 처음에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설치비 등도 정부에서 융자해주기 때문에 풍력발전기 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간 바람의 양이나 일정한 풍속 여부, 방향, 토지 등 풍력발전에 대한 타당성 조사가 끝나면 독일 정부에서 대 부분 설치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독일 전체 전력소비량의 5%를 충당할 정도로 한 몫을 하고 있는 현실이란다.
실제로 이러한 풍력발전 단지는 발틱해를 항해하는 동안에도 멀리보이는 바닷가에서 가끔 볼 수 있어서, 무공해의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만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도 참고해야 할 일 중의 하나 일 것 같다.
1988년 동서독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교통의 요지가 되어버린 브란덴부르크 문 옆의 공원에는 아직도 베를린 장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출하다가 죽었던 동독 사람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적힌 포스터를 공원의 펜스에 걸어놓고 전시를 하고 있어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그들 사진 앞에 경건하게 머리를 숙이며 꽃을 놓고 가게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작년에 동유럽 여행길에 처음으로 들렸던 이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금년 초에 처음 open 했다는 Holocost 기념조형물 들이 설치된 공원은, 나치에 의해서 학살당한 유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만든 크고 작은 직육면체의 검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넓게 자리 잡은 곳으로서, 이제는 이곳 젊은이들에게 만남의 장소가 되어 있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포츠담 회담이 열렸던 장소 주변에는 동, 서독의 합병 당시에는 황무지에 불과했던 곳이었지만, 합병 후 15년에 걸친 새로운 대규모의 공사가 벌어져서, 이제는 거대한 건물 군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독일 사람들은 이 공사를 피라미드의 대 역사에 비견할만하다고 자랑하고 있단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인 독일과 일본이 이 구역을 2등분하여 각각 한쪽은 일본의 Sony 그룹이, 다른 한쪽은 독일의 자동차회사들이 맡아서 초 첨단의 건물 군을 완성하였기 때문에 베를린의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어서, 두 나라가 포츠담 회담의 아픔을 경제력으로 복수 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고 해서 더욱 흥미롭다.
베를린 구경을 마친 후 다시 아침에 왔던 길을 거슬러서 우리 배의 정박지로 오는 동안 천둥 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량의 비가 쏟아져서, 이곳 북유럽 날씨는 항상 변화무쌍 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해주었다.
9시 30분에 다시 발틱해를 거슬러 북상하면서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향하다.
* 6월 23일(목요일)
그림같이 아름다운 별장들이 숲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섬들 사이로 항해를 해서 8시30분 Sweden 의 Stockholm 에 입항하다. 원래 이 도시는 북유럽의 Venice 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인데, 실제로 배를 타고 입항하면서 살펴본 주변의 경치는 베니스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이 나라의 넓이는 우리나라의 2배 이상이지만 인구는 900만으로서 수도인 이 도시에는 170만 명이 살고 있으며, 입헌군주제로서 국왕이 있기는 하지만 상징적인 존재로서 수상이 권한을 위임받아 통치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대단해서 국회의원의 1/2 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 나라 국토의 50% 이상이 울창한 산림자원으로 덮여있어서 비교적 작은 나라이지만 세계의 10대 임산물 수축 국에 들 정도로 경제상태가 좋아서, 국민소득이 26,000불이라고 한다.
유럽연합에 최근에 가입하여 아직 준비가 덜 된 몇몇 나라를 빼고는 모두 Euro 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중인데, 아직도 자기나라 화폐만의 사용을 고집하는 나라---물론 준비가 안 되었다는 등 나라마다 핑계를 대고 있기는 하지만---는 이곳 스웨덴을 비롯하여 영국, 덴마크 등 3개국이라고 하는데, 북유럽을 여행하게 되는 사람들은 꼭 알아두어야 한 일이다.
항상 복지 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는 이 나라는, 모든 근로자가 43일의 법정 휴가를 갖도록 정 해져 있으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말 그대로 모든 국민에게 18세 까지는 매 달 15만 원 정도의 보조금이 정부에서 지급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16세전까지는 부모의 통장으로 입금이 되지만, 그 이후에는 본인의 통장으로 입금이 되며, 18세 이후에 대학을 가게 되면 30만 원 정도의 대학 보조금에 생활 융자금까지 합한 100만 원 정도가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지급되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청소년들은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단다. 물론 학교에 재학 중 일 때는 대학교까지 일체 무료이며,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미술공부에 필요한 재료까지 국가에서 보조를 해준다고 하니 우리에겐 가히 꿈만 같은 얘기 인 것 같다.
이 나라 사람들이 세계에서 최초라고 자랑하는 것으로서는 중앙은행 제도와 지폐의 사용이 있으며, 자동차의 안전벨트도 이 나라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며 낮에도 모든 자동차가 라이트를 켜게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모든 차량이 시동을 걸면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도록 하고 있단다.
우리 교민은 약 1,000명 정도인데 대부분의 한국인 여성들이 스웨덴의 남성과 결혼을 하고 있으며, 특히 이 나라는 그 동안 58,000여명의 외국 입양아를 받아들인 바가 있는데 그 중 8,400명 정도가 우리 한국에서 입양되었다고 하니, 불행했던 우리의 과거에 새삼 가슴이 찡 해온다.
시내 관광 중 특이한 것으로 항구 근처에 위치한 큰 산에 마련된 방공호 시설을 들 수가 있는데, 비록 중립국이긴 하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피난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따라서 이 들이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통조림 형태로 보관하고 있는데, 정부는 이들 통조림을 매년 일정 한 날에, 유효기간이 가까워오는 것만을 선별하여 시민들에게 아주 싼값에 세일을 한다고 하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부터 약 400년 전에 덴마크 등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건조했다가 전쟁터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진수 식 직후에 침몰했던 배를 약 40년 전에 인양하여 원상을 복구해놓은 Basa 박물관은 이 배가 비록 목재로 만든 전투함이긴 하지만,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늘 자부심을 가져온 우리에게는, 이 배의 엄청나게 큰 규모나 잘 갗추어진 내부시설 등이 우리를 놀라게 해 줄만 했다.
잠자리에 들면서 시간을 한 시간 앞으로 당겨서 맞추어 놓은 후, 모닝콜을 부탁했다. 이 크루스를 하는 동안에는 3시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소련 쪽인 동쪽으로 갈 때는 3차례 시간을 앞으로 바꿔놓아야 하며, 다시 되돌아서 Dover 로 오는 중에는 시간을 뒤로 돌려놓아야 한다.
2005-08-24 16:09 |
![]() |
[문화] 북유럽 및 발틱 3개국 크루스 여행기(2)
노환성(주)에이팜코리아 고문/건국대학교병원약제팀 자문교수
* 6월 19일 (일요일)
어제 도버 항을 떠난 유람선은 밤새 북해를 따라 Norway 방향으로 북진하다가, Denmark반도를 돌아 서면서 다시 남하, 남동쪽에 매달려있는 섬에 위치한 이 나라의 수도인 Copenhagen까지 하루 종일, 그리고 내일 새벽까지 항해만 계속해야 한다.
아침식사를 뷔페로 한 후에 우선 유람선의 내부시설을 잘 익혀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찾아보기 위해서, 11층부터 차례로 내려오면서 둘러보았다. peddle tennis 장과 유료로 이용하는 simulation golf 시설은 11층에 있었으나, putting course는 없는 것이 아쉬웠으며 조깅 코스는 잘 마련되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다.
10층에는 실내와 실외 pool장이 가각 1개 씩 있는데, 이 배 만의 특색은 모두 바닷물을 끌어 올려 만든 해수 풀이기 때문에 좋았으며, 거품 탕은 따듯한 민물로 되어 있어서 몸을 풀기에 알맞았고, 특히 풀장 물의 온도가 약간 높아서 좀 차가운 북유럽의 날씨에도 이용하기가 좋아 보였다.
배의 맨 앞쪽에는 잘 구비된 체련장이 있으며, 사우나는 특히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참 좋았다. 24시간 제공되고 있는 뷔페식당 옆으로 탁구대도 2개 가 있었는데 좀 배의 규모에 비하여 모자라는 것 같았지만 그런대로 이용할 만 했다.
9층부터 6층 까지는 각 class 별로 나누어지는 객실이 있으며 5층에는 승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우선 정찬을 할 수 있는 대 규모의 양식당을 비롯하여 면세점을 포함한 Shopping area, 미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갤러리, 사진관,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는 회의실들, 여러 개의 Bar 들, 그리고 매일 밤 8시30분, 그리고 10시에 호화스러운 공연을 무료로 하고 있는 대극장, 하루에 4차례 영화를 상영하는 Cinema Hall 등이 있었으며, 특히 항해 중일 때만 개장을 하도록 규정되어있는 카지노 "Fortune"에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특히 이 번 항해를 시작하면서 느낀 인상은, 동남아나 일본 등의 동양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지난해의 지중해 크루스에 비하여, 이 배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유럽인들이 승객의 태반을 차지해서 동양인들은 별로 볼 수가 없었으며, 유럽의 여행 중에 항상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일본인 그룹은 별로 볼 수 없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양식당 이용은 점심식사 때에는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자유로 앉을 수 있지만, 저녁의 식사시간에는 크루스 첫날에 각 그룹이나 개인 별로 항해 중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좌석과 시간대를 지정 해주어서 늘 그 좌석에만 앉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같은 웨이터가 시중을 들도록 하는 장점도 있긴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모인 서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약간 아쉽기도 했다.
낮에는 모두 헐렁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던 승객들이, 저녁에 정찬을 하는 때만큼은 모두 하나같이 검정색 양복에 나비넥타이 모습의 정장들을 한 채 양식당을 꽉 매워서, 이것이 유럽 상류사회의 저녁식사 모습인걸로 생각이 되었다. 물론 매일 저녁 양식당을 이용할 때 입어야하는 Formal, Informal 그리고 Casual 등으로 안내되는 Dress Code 가 전 날 저녁에 News Letter에 발표가 되지만, 남자들은 대부분 검정색 정장을 하는 것이 관습인 것 같았다.
오후에 수영을 한 후 사우나에서, 중국인 얼굴 모습의 사람을 만나 중국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No, I am from the State" 하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해서, 처음 말을 건 나를 머쓱하게 해주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이 동양계 남자는 밴쿠버에서 온 친구 가족과 8명이 함께 왔다고 하며, 매일 새벽 수영장과 사우나에서 만날 수 이어서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북쪽으로 다가가면서 이곳시간으로 저녁 10시가 되어도 밖이 훤하며, 10시30분이 되니까 드디어 해가 지고 어둠이 시작 되는 것이 신기롭게 여겨진다.
* 6월 20일(월요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수영장에서 몸을 푼 후에 거품 탕에 몸을 담그고 안개가 자욱한 덴마크의 섬들 사이를 돌아 나가는 모습을 내려다본다.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앞길이 잘 안 보이는지,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계속 기적을 울려가면서 아름다운 섬들 사이를 요리저리 돌아서 7시 정각에 Denmark의 Copenhagen항에 정박하다.
개인적으로 관광에 나서는 승객들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모두 배 안에 기항지의 여행을 주선하는 여행안내 Desk 에 예약---반나절 관광은 50불, 하루코스는 100불에서 150불 정도이다---하여 여러 코스의 관광에 나서는데 안내는 영어가 대부분이고, 가끔 불어나 스페인어 안내도 있기도 하며, communication에 문제가 있는 한국인 승객들은 미리 크루스 예약을 할 때부터, 기항지에서의 한국인 안내를 포함시켰기 때문에 언어소통에 따른 불편 같은 것을 최소화 할 수 있기는 했지만, 크루스의 여행사에서 주선한 그룹 들이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우리들이 하선을 해야 하는 불편도 있긴 했다.
우리 남한의 1/2 크기의 덴마크는 400여개의 섬으로 있는데 140만의 이 나라 인구 중 58,000명이 살고 있는 코펜하겐은 이 나라 국토의 1/5 을 차지하는 큰 섬에 위치하며 이 나라는 전 국토가 평원으로만 이루어 져서, 해발 174m 높이가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다.
우리나라에 비하여 소형차가 많기도 하지만, 특히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아서 자전거 전용도로가 어디에나 있으며, 특히 이 나라의 수상도 자전거로 통근을 하며 국회의원들도 대부분 자전거로 출퇴근한다니 부럽기도 하다.
북유럽에서 언제나 보는 것이지만 모든 자동차는 대낮에도 의무적으로 라이트를 켜고 다니게 하고 있어서 교통사고의 위험을 줄여주는 장점도 있으며, 도로 옆의 잡초를 Gas 불로 태워서 제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물어보았더니 이것은 환경보호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며, 또 지하수 오염을 방지하기위하여 시민들이 일상으로 사용하고 버린 하수를 9개월 동안이나 저장하여 썩힌 후에, 매년 4월에 가로수 등에 뿌린다고 하니 정말로 믿기가 힘들 정도로 환경보호가 철저한 나라이다.
국민 소득이 36,000불 인 이 나라의 노인 복지 정책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그 한 예로 양노원에 갈 나이가 되면 본인이 아주 시설이 잘 된 노인요양시설에 입소를 하던가, 자기 집에 살면서 셔틀버스를 타고 양노원에 매일 출퇴근을 하던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 집에서 살면서 정부에서 3끼의 식사를 배달 해주는 방법 등 3가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집에서 지내는 경우에는 1주일에 2번씩 집 청소를 해주는 사람을 국가에서 보내주도록 되어 있단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나라에 360개 정도의 교회가 있는데 모든 목사는 국가공무원으로서 교회 일을 관장하는 장관도 있다고 하니 기독교 문화가 이 나라에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짐작하게 하며, 국민이 사망하는 경우에는 모든 장례절차를 교회에서 책임지면서 화장이나 매장은 본인이나 가족이 선택하도록 하며, 대부분 주택가 근처에 자라잡고 있는 공동묘지는 아주 잘 가꾸어진 공원으로 되어 있어서,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는 일이 보통이며, 따라서 공동묘지근처의 아파트나 주택이 값이 더 비싸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원래 이 나라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에게는 코펜하겐은 포르노극장이 잘 알려져 있어서, 개방된 성문화를 갖고 있을 것 같이 생각되지만, 실제로 이 나라의 국민들은 아주 보수적이어서 우리나라처럼 성매매를 하는 국민은 범법자가 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으며, 단지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 에게만 포르노 영화나 사진들을 허용한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듣는 얘기이며, 그러면서도 이 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포르노 영화를 합법화 했다니, 그들의 business mind 가 놀랍다.
그러나 바닷가 해변 근처의 마을에서는 누구나 윗옷은 안 입어도 팬티만 입고 다니면 외출이 허용되며, 특히 나체수영이 가능한 해변도 여러 곳이 있어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다.
코펜하겐을 찾는 사람들이 누구나 들리는 곳은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동상인데 80cm 정도의 조그만 동상이 그동안 폭파를 당하는 등 여러 번 수난을 당한 바 있지만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명소로서, 좀 우스개 소리 같은 얘기이지만 세계에서 "3대 썰렁한 명소" 중의 제 1 이라고 하며 두 번째 명소는 벨지움 브럿셀에 있는 오줌을 누는 아이의 동상, 그리고 세 번째는 독일에서 라인 강 하면 누구나 생각하게 되는 로렐라이 언덕이라고 하니 이 곳 여행을 해본 사람들에게는 공감이 가는 얘기라고 하겠다.
저녁 6시에 출항하여 발틱해를 남하해서 독일로 향하다.
2005-08-22 10:05 |
![]() |
[문화] 북유럽 및 발틱 3개국 크루스 여행기(1)
노환성(주)에이팜코리아 고문/건국대학교병원약제팀 자문교수
* 머리말
삶의 질을 추구하는 요즈음 추세에 맞게 여행의 패턴도 바뀌어 가면서 한때는 서구 사람들에게 조차도 사치스러운 여행으로 생각되어 오던 크루스 여행이 이제는 거의 보편화 되어가는 추세에 있으며, 우리 동양 사람들에게도 점점 즐겨 찾는 여행의 한 분야가 되어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원래 필자는 병원약국에서 약사로서 첫 발을 들여 놓으면서 훗날에 정년퇴직을 하게 되면---이제는 이미 작년의 일이 되었지만---퇴직 기념으로 세계 일주 크루스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막상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알아보니 실제로 세계 일주를 하는 정기적인 크루스를 주관하는 크루스회사도 찾기가 힘들뿐더러, 두 달 이상 걸리는 항해가 너무 지루할 것도 같아서, 그 대안으로 약 2주 정도가 소요되는 여러 대륙의 크루스로 나누어서 참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기에 아주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따라서 작년에는 스페인의 Barcelona를 출발해서 이태리의 Venice까지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남하 했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오는 2주일간의 크루스에, 이집트까지 곁들인 여행을 한바 있으며, 금년에는 마침 대학 동기인 S제약의 L회장 부부가 같이 가자고 해서, 뒤늦게 미국 국적 Celebrity Cruise 회사의 한국대행사인 D 여행사에 신청을 해서 참가하게 되었다.
정상적으로는 크루스여행을 하자면 운항하는 배의 선실 등을 잡아놓아야 하기 때문에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서 미리 예약을 했어야 되겠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갑자기 결정했는데도 운 좋게 빈자리가 있어서 우리 부부도 함께 할 수가 있었다.
크루스 여행을 하려면 비교적 규모가 큰 크루스 운용회사로서 미국국적 회사인 Holiday사와 Celebrity사 그리고 기타 회사 등이 있는데, 모두 이 들 회사의 대행 을 맞고 있는 한국 측 전문 대행사가 있어서 이쪽으로 신청을 하면 더 편리하며, 일반 여행사에서도 모객을 해서 이들 크루스 전문회사에 넘겨주는 경우도 있는 것 같으며,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도 일반여행사에서 모객이 되어 우리와 같은 배에 탔던 한국인 그룹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는 뒷얘기가 있었다.
* 6월 17일 (금요일)
영국의 Dover항을 출발하여 북해를 따라 북상하면서 Denmark반도를 돌아 다시 남하하여 발틱해로 들어서면서 주변의 항구들을 들리며 소련의 Sant Petersburg 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나오면서 발틱해 연안의 3개국을 들린 후 다시 Dover 항으로 귀환하는 Celebrity Cruises사의 "Baltic Bravura 2005"에 참가하기 위해서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KLM(네델란드항공)에 오른 것은 낮 12시 45분이었다.
해외는 자주 나가보았지만 KLM을 타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서,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고 소문이 난 이 항공기는 비록 economy석이긴 해도 다리가 긴 서양 사람의 체격에 맞도록 만들어져서 우리 국적기 보다는 좀 자리가 넓어서 좋았다.
옆자리에는 40대쯤의 Sweden 말뫼에 산다는 남자가 탔는데, 서울 방문이 두 번째라는 이 친구는 대단위 정수 시스템을 설치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스웨덴에 있는 본사에는 불과 30여명이 근무하는 작은 규모의 회사라는데도 한국, 일본 등 에 플랜트 수출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중국까지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해서 새삼 놀라게 했다.
5살과 3살짜리 딸 둘과 함께 사는 부인은 안마기 등과 같은 의료용 기구를 생산하는 회사에 근무한다는데, 이 애들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탁아소에 매낀 후 직장에 다닌다고 하니 우리에겐 부러운 현실일 수밖에 없다.
이 친구는 11시간 반 동안의 긴 비행시간 중에 red wine 과 냉수를 섞어서 마시는데 아마 Amsderdam까지 오는 동안에 포도주 너 댓 병---물론 비행기에서 서브되는 작은 용량의 병이긴 하지만 ---은 마시는 것 같았는데, 다행이도 술주정은 없이 스웨덴어로 된 "Musik and Silent"라는 포켙 북을 내내 읽고 있었다.
암스델담의 쉬폴 공항에 도착하자 잠간 사이에 이 친구가 사라져 버려서, 짐을 꺼내려고 다른 좌석으로 갔나하고 두리번거려도 찾을 수 없기에, 혹시 이 친구가(?) 하고 내 여권과 지갑이 들어있는 호주머니를 만져보기까지 했는데 이상이 없어서, 아마 갈아타야할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여 서둘러서 먼저 나간 것으로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11시간여를 같이 오면서, 여러 가지 얘기도 나누곤 했는데 잘 가라는 인사한마디 없이 가 버린 것이 무척 서운했다.
또 한 가지는 앞자리에 앉은 젊은 친구가 스튜어디스가 해드폰을 수거하는데 잘 못 간수해서 내 자리까지 밀려온 것을, 좁은 좌석에서 어렵사리 몸을 구부려 겨우 찾아서 이 친구의 어깨 너머로 넘겨주었는데도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없어서, 아마 북 유럽 사람들은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처럼 "Thank you" 라고 말해주는 습관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암스델담에서 다시 London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니 이곳 시간으로 오후 6시경이 되었다.
런던에서 운행되는 대부분의 관광버스는 에어컨 시설이 없는 것이 보통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더워서 마치 찜질방 같은 찜통 버스를 타고 힘들게, 런던 시내로 들어와서 빅토리아 역 근처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 6월 18일(토요일)
오전 중에는 토요일어서 행사가 없기 때문에 한가하기만 한 버킹검 궁전을 둘러본 후, 근처에 있는 런던 시민의 쉼터인 하이드파크를 거닐면서 런던사람들 의 휴식모습을 잠시 본 후에 템즈 강변으로 가서, 아직도 런던 시민의 표준시계 노릇을 하고 있는 빅벤이 걸려있는 국회의사당을 멀리서 구경했다.
몇 년 전에 들렸던 런던과의 다른 점 한 가지는, 새 밀레니엄을 기념하기위하여 1999년에 만들어졌다는 회전전망대인 London eye를 들 수가 있는데, 지름이 130미터나 되는 거대한 원형 회전식 전망대로서 런던 시가지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런던 시민들은 물론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라지만, 재미있는 것은 앞으로 10년간 사용을 해보다가 런던 시민의 투표를 거쳐서, 이 구조물의 존폐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니 참으로 이 나라가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것이 실감난다.
남쪽으로 향하는 왕복 6차선의 고속도로를 따라 2시간 반의 긴 버스 여행 끝에 영국의 동남단에 위치한 Dover항에 도착하였다.
도버 항은 영국에서 유럽대륙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항구로서, 날씨가 맑은 날에는 유럽대륙이 멀리 보이기도 하는 곳으로서 프랑스나 벨지움---30여 년 전 필자가 벨지움 Ghent대학에 잠간 와 있었을 때에, 벨지움의 항구에서 쾌속선을 타고 영국령인 이 항구에 와서 점심을 먹는 등 하루를 보내면서 구경을 하다가 돌아간 적도 있었다---과는 아직도 여객선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영국 본토와 유럽의 통로역할을 하고 있는 항구이다.
요즈음에는 도버와 프랑스 사이의 해저 터널인 길이 49.9 km 인 유로터널을 만들어서 런던과 파리를 잇는 유로열차가 하루에 몇 차례 다니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불란서와 영국이 합작으로 만든 이 터널을 운용하는 민간 회사가 처음 예상과는 달리, 항공료를 할인해주는 저가 항공회사와의 경쟁에 견디지 못하고 매년 적자를 보기 때문에, 요즈음 파산위기에 몰려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영국 영토인 도버 항에서 미국 국적의 배에 승선해야하기 때문에, 입국수속에 맞먹는 승선 수속을 한 후 각자의 신용카드 번호가 가 입력된 승선카드---이 카드는 배안에서 선실의 room key 역할은 물론 크루스 하는 동안 물건을 살 때에도 신용카드대신 사용할 수 있다---를 받아서 분실하지 않도록 목에 건 후에 Celebrity사 소속의 Constellation호에 승선했다.
2002년에 취항한 91,000 톤급의 Constellation호는 크기가 294m x 32m 로서 승객의 탑승인원은 1,950명, 그리고 승무원은 약 1,500명---원래 승객과의 비율이 2 : 1 이 가장 바람직한 걸로 유람선업계서는 알려져 있다---으로서, 지난해에 지중해 여행 시에 이용했던 Star Princess호의 15만 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크루스 업계에서는 10만 톤 급이면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발코니가 있는 9층 선실에 여장을 풀었다. 적어도 유람선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짐을 다시 꾸려야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모든 옷가지를 옷장 등 에 정리하고 빈 가방은 침대 밑으로 집어넣어서 거추장스럽지 않도록 간수했다.
저녁 6시에 도버 항을 떠나 첫 기항지인 Denmark의 Copenhagen을 향하여 항해를 시작했다.
2005-08-10 09:59 |
![]() |
[문화] 울릉도 및 독도를 다녀와서
부산대학교 약학대학 3학년 송영진
우리나라의 최 동쪽에 위치에 있는 외로운 섬, 올해 유난히 말이 많았던 섬 그로 인해 세인의 관심을 받았던 섬. 그런 독도를 가기위해 우리는 두 달이나 먼저 준비를 했다. 우리나라 땅이라고 하지만 울릉군청에 입도 신청서를 제출해야만 입도할 수 있었고 독도 훼손을 우려해 하루 140명으로 입도 인원 제한을 두었다. 6월초 한창 기말고사 준비기간 느닷없이 입도 금지라는 뉴스보도를 들었다. 보도내용은 입도 신고조차 하지 않고 하선 하며 독도 수비대의 지시에 불응해서 독도 훼손을 우려해서 당분간 입도를 금지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불과 보름 정도 출발일을 남겨둔 우리 일행들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었다. 하늘에서 우리 일행을 도우셨는지 출발 5일전에 독도 입도가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째 날(6월 20일) 6시 30분까지 일행들과 약속장소까지 가기로 되어있었다. 전날 새벽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약속시간에 맞추어 나가기 위해 한시간정도 눈을 붙이고 집을 나섰다. 6시쯤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내가 너무 일찍 나왔는지 일행들 중 나 혼자였다. 졸린 눈을 비비며 버스에 올라보니 다른 일행 분들 두 분이 먼저 자리를 잡고 계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김해에서 오셨다고 한다. 잠시 뒤 교수님, 졸업하신 선배님들, 선·후배 학우들이 제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고 버스는 포항을 향해서 출발했다. 두시간여후 버스는 포항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옆에 자리 잡은 여객선 터미널을 통해 동해안의 수심은 역시 깊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승선할 배는 2000여 톤 급의 썬 플라워 호였으니 말이다. 아침식사를 먹고 일행들은 썬 플라워 호에 승선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의 거리는 260여 길로 미터였다. 썬 플라워 호는 날렵한 몸체답게 3시간 만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빠르면서도 흔들림 없이 운항했기 때문에 일행들 모두 배 멀미로 고생하진 않았다. 하지만 배안에서의 여행은 배의 이름처럼 낭만적이거나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벼랑으로 둘러싸인 도동항은 울릉도가 화산섬이란 것을 말해 주듯 온갖 기인한 모양의 바위들로 도동항을 둘러싸고 있었다. 도동항에 하선한 우리 일행은 미리 나오신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항구 내에 위치에 있는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식탁위엔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고 울릉도의 명물 오징어도 삶아 놓여져 있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미니버스를 타고 2박 3일간 머물게 될 숙소에 여정을 풀어놓고 바로 다음 일정을 맞추기 위해 도동항으로 내려왔다. 도동항에서 4시에 두 시간여 동안 울릉도 주위를 돌아보는 유람선 관광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배시간 까진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서 해안 산책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그제야 도착 후 바쁜 일정에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울릉도가 좀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서 부산항을 매일 보고 자란 나에게 비친 도동항은 여객선 두 척 정도 댈 수 있을 정도였고 조그마한 오징어 배들이 여남은 척 정박해 있었다. 항구의 바닷물은 지금껏 가본 바닷가중 가장 깨끗했다. 따스한 햇볕 아래 에메랄드빛을 띠고 있는 물은 바닥까지 훤히 보여서 항구 주변 횟집으로 들어가기 위 설치해 놓은 배수 호스가 다 보일 정도였다. 도동항을 끼고 좌측으로 가니 해안 산책로가 해안을 따라 꼬불꼬불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뻗어 있었다. 해안을 따라 조금들 어가니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기이하게 형성된 동굴들과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았던 남태평양 어느 섬의 맑은 바닷물보다 더 파랗고 맑은 물을 볼 수 있었다. 일행들은 여신 감탄사를 내뱉어 냈고 조금이라도 기억에 담아 가려는 듯 연신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댔다. 눈을 돌려 먼 바다를 내다보니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장관이었다. 전날의 피로와 시험의 스트레스는 그 순간 싹 사라져 갔다. 아쉬움을 남기고 유람선 시간에 맞추어 다시 항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유람선은 도동 항구를 끼고 우측을 향해 출발했다. 2층 구조로 되어 있었고 관광객을 위해 사방은 뚫려 있었다. 항구가 눈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울릉도 괭이 갈매기가 배 뒤를 바짝 좇고 있었다. 노란 부리와 발은 가진 갈매기는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과자를 받아먹고 있었다. 누군가 과자를 들고 있었는데 달리고 있는 유람선위를 갈매기는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날아서 과자만 채어 갔다. 유람선에 보는 울릉도는 산과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평지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화산 폭발로 탄생한 울릉도는 자신의 상처라도 되는 양 파도에 의해 닳고 부서진 기암괴석들은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도동항으로 다시 들어온 우리 일행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를 향해 올라갔다. 일행들은 바쁜 일정을 소화해서 그런지 지친기색이 역력했다. 저녁식사를 먹고 일행들 모두 모여 내일 독도 입도를 꼭 할 수 있도록 날씨가 맑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다.
둘째 날(6월 21일) 아침 6시에 일어나자 발코니로 나가 날씨를 확인 했다. 독도도 우리 일행을 기다리는지 날씨는 아주 맑았다. 여장을 챙기고 도동항으로 내렸왔다. 7시10분에 우리 일행은 독도까지 우리들은 실어줄 삼봉호에 올랐다. 승선할 때 직원 분은 노란 색으로 만든 독도 입도 허가증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다른 일행들중 수녀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은 입도 허가증을 받지 못하셨다고 직원과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끝내 받을 수 없었다. 독도 입도 하시려면 미리 입도 신청서를 내야 하시는지 모르셨던 모양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던 독도를 가고 있다는 생각에 들뜬 기분이었지만 삼봉호는 어제 탔던 배들과는 틀렸다. 밤에 무리를 했던지 배의 요동은 어제보다 심하게 느껴졌고 선장님 말씀이 독도 까진 80여키로 미터 이지만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셨다. 독도로 가는 길은 그리 쉽지만은 아는 것 같았다. 잠시 배의 의자를 삼아 잠을 청했다. 한 시간쯤 잤다고 생각했을까 눈을 떠보니 주위는 조용했다. 나만 뱃멀미를 하는 게 아니었나 보다 여기저기 잠을 청하고 있었다. 30여분 쯤 더 달려가니 선장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의 목적지인 독도에 조금 있으면 도착하게 될 것이라며 주의사항과 독도에 대해 선장님이 알고 계신 지식을 들여 주셨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이층 가판으로 나갔다. 눈으로 우리의 땅 독도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잠시 뒤 서도와 동도로 이루어진 독도는 눈앞에 나타났다. 위로 높게 치솟은 서도는 하얗게 갈매기들이 뒤덮고 있었고 섬 안쪽으론 바지선이 정박해 있으면서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도에서 유일하게 식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어민들을 위해 이층으로 된 집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조만간 있으면 어민들이 들어와 살게 될 것이며 독도 첫 주민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삼봉호는 동도에 위치에 있는 부두로 들어갔고 그 곳에는 멋있는 독도 수비대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파도가 약한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배는 마구 흔들렸고 접안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독도 입도를 위해 두 달 전부터 준비했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다행히 능숙한 선장님 덕택에 우리 일행모두 독도에 무사히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가슴 한 곁이 뭉클했다. 그리고 섬은 정말 아름다웠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독도, 갈매기들과 정말 푸르고 푸른 바닷물. 부두를 따라 위쪽으로 이어진 길을 보니 수비대원들의 숙소와 경비초소가 보였다. 얼마나 많은 대원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젊음을 받쳤을까.
일행들은 사진을 찍으면서 부두 끝으로 갔다. 그런데 부두 밑의 자갈밭이나 숙소로 이러진 길을 수비대원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했다. 오직 50여 미터 되는 부두에서 입도 시간 30분을 보내야만 했다. 입도의 기쁨이 싹 사라져버렸다. 힘들게 독도에 들어왔는데 부두에서만 보내야 한다니, 바로 옆에서는 KBS 환경 스페셜 촬영한다고 바닷가를 헤엄치며 다니는데 많이 섭섭했다. 하지만 내가 대원들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면 또 다시 독도로 들어오는 길은 막히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좋게 생각하고 부두에서 독도를 감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30분을 짧았다. 그사이 선장님의 승선하란 소리가 들려왔다. 난 독도를 뒤로 한 채 배에 승선했지만 마지막까지 교수님께선 아쉬움이 남으셨는지 가장 마지막으로 승선 하셨다. 선장님은 우리의 아쉬움을 눈치 채셨는지 바로 도동항을 향해서 출발하지 않으시고 독도를 한바퀴 선회해 주셨다. 서도를 기점으로 돌면서 독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부두에서 본 독도는 독도의 참모습이 아니었다. 물개 바위를 비릇해 서도의 갈매기들, 가파른 벼랑 기이하게생긴 바위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모 방송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적도 있다고 하는 독도의 한반도였다. 서도의 암석들 사이로 튀어 나와서 초목들로 이루어진 지형이었는데 꼭 한반도 지도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독도가 난 대한민국 땅이라고 알리는 것 같았다. 나와 일행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멀어져 가는 독도를 보면 이층 갑판에서 독도가 사라질 때까지 쭉 서있었다. 승무원께서 그런 우리들에게 여러 말씀을 해주셨다. 30여 년째 삼봉호를 타고 독도를 다니지만 올 때마다 독도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자갈밭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손발톱을 깍아와서 묻고 가는 경우도 있어서 훼손의 우려 때문이라고 하셨다. 돌아오면서 난 동해안 제일 끝 섬, 무한한 자원의 보고, 우리의 영토, 천혜의 섬 그 어떤 수식어로도 독도의 참 모습은 표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동항에 다시 들어온 우리 일행은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일정에 맞추어 도동약수 공원과 독도 박물관을 찾아갔다. 항구에서 6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약수터 이었지만 경사가 대부분인 섬이라 20분 정도 걸어야 도착 할 수 있었다. 땀도 흘렸고 시원한 약수도 흐르고 한 컵 받아서 물을 마셨다. 그런데 시원할 줄로만 생각했던 약수는 목으로 내려가기 전에 도로 다시 입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탄산과 철성분이 함유된 약수이었다. 특히 철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피 맛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장기간 복욕시 몸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란 문구도 있었다. 마시고도 기분이 찜찜한 약수터였다. 독도 박물관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독도에 관한 고문서들이 대부분 전시 되어있었다.
둘째 날 일정을 마친 우린 마침 그날 일행 중 생일을 맞이한 학우가 있어 깜짝 파티를 해주기로 계획하고 초코파이와 맥주 몇 병을 사서 숙소로 향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마련된 야외무대로 모였다. 둘째 날 처음으로 숙소 이곳저곳 가보게 되었는데 첫날부터 다녀볼걸 하고 후회를 들게 할 정도로 야외무대 시설은 대단히 좋았다. 야외 수영장과 그네식 의자, 나훈아 아저씨의 콘서트 공연, 저 바다 멀리 떠 있는 오징어 배들, 그윽한 보름달 아래에서 여정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보냈다.
삼일 째(6월22일) 아침 8시부터 마지막 일정인 울릉도 육로 관광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미니버스에 탄 우리 일행은 전날 삼봉호의 뱃멀미와 밤에 무리를 했던지 다들 많이 지쳐보였다. 기사 아저씨께서 우리 일행은 복 있는 분이라고 하셨다. 울릉도에서 바람불고 비 오는 날 빼면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은 일년 중 60여일 정도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있는 3일 동안 궂은날 하루 없이 날씨가 좋았으니 말이다. 파도도 높아서 독도입도도 못하고 많이들 돌아간다고 하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우리 일행은 다들 착한사람들만 온 게 분명하다. 도동부두를 따라 사동, 남양, 태하, 천부, 섬목, 나리분지를 향했다. 첫날 유람선을 통해서 바다위에서 보았던 곳이라 나리분지를 제외하곤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육로를 통해서 가는 중간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을 보며 작년 매미 태풍 피해를 입은 지역이라고 설명하시는데 실로 매미의 위력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했다. 나리분지로 가는 길은 기사님 말씀처럼 대단히 가파랗다.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가 나왔다. 몇 채의 집들이 모여 분지 중아에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분지 주변엔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교수님 말씀으론 옛날에는 천궁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는데 지금은 대부분 더덕이 심어져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뽕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마침 열매가 열려 있어서 오디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시큼하기 도하고 향긋하기도 하고 때론 달콤하기도 했다.
육로관광을 마치고 도동항으로 온 우리 일행은 울릉도에서만 먹어볼 수 있다는 성게 미역국과 홍합밥을 점심으로 먹고 두 시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나물과 특산품 몇 가지를 사고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남아서 봉래폭포에 가보려고 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작년 매미의 피해로 길이 끊어져서 갈 수 없다고 하니 많이 안타까웠다. 오후 4시 썬 플라워 호에 승선했고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울릉도와 나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준 독도를 뒤로 하고 포항으로 향했다.
2005-07-04 09:19 |
![]() |
[문화] 백두산 생약자원조사 및 중국 여행기<上>
백두산 생약자원조사 및 중국 여행기
우리땅 끝자락 백두산을 마음에 담아
부산대학교 약학대학 박종희 교수는 지난 6월 생약반 학생 20여명과 함께 북경대학 약대 등 중국 여행을 겸한 백두산 생약자원 조사를 다녀왔다. 조사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대학원 생약학연구실 이유진씨의 여행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19일
고대하던 백두산 산행 및 중국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저녁에 싸놓았던 짐을 들고 설레는 맘으로 김해공항 국제선으로 향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을 위해 이동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순간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중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저 우리가 여행할 곳이 중국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에 "니 하오" 인사를 건넸다.
짧게 한마디씩 배운 중국어로 이름을 묻는 등 간단한 인사를 건네며 이동버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비행기에 오르고 기내에선 중국어 안내방송이 나오고 이제야 여행이 실감났다.
기내에서 다시 중국 사람들을 만나 식사도 함께 하며 아저씨가 중국 여행지 및 간단한 역사도 설명해주며 우리가 중국 여행하는 것에 대해 많은 관심과 호의를 보여주셨다.
한참 중국얘기에 빠져 있다보니 벌써 북경에 도착. 아저씨께서도 많이 아쉬워 하셨지만 다음에 중국여행을 하게되거나 다시 한국을 찾게되면 서로 좋은 가이드가 되어주기로 약속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북경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다 연길가는 비행기를 갈아탔다. 연길에 도착하면 하루 일정이 끝나는 줄 알았더니 연길에서 백두산 입구 온천산장까지 6시간 이상 소요되는 대장정이 남아있었다.
백두산 산장까지의 여정이 시작되기 전 연길의 유명한 냉면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버스에 올라탔다. 백두산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는 한적한 농촌 마을의 풍경이 스쳐 지나 가끔 우리내 읍내 같은 도시를 지나가곤 했는데 너무 어두워진 밤이라 풍경을 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구불구불한 산 도로를 타고 몇시간을 가자 오늘의 도착지인 백두산 숙소에 도착했다.
새벽2시. 하루종일 이동하는데만 시간을 보냈지만 여행의 시작이 참 기분 좋은 그리고 너무 즐거웠던 하루였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 얼른 짐정리 하고 잠들었다. 백두산 산장에서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20일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며 마음 깊은 곳에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전해져오게 만드는 단어. 백두산 올라가는 날이다. 다행히도 날씨가 좋았다. 기상상태가 좋을 때 천지를 보기위해 서둘러 준비해야 하기에 빨리 아침을 먹고,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백두산의 장관과 천지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백두산의 중국 이름인 장백산 입구라는 커다란 매표소가 나왔다. 기념으로 장백산 표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우비와 물을 챙기고 추위를 예방해 옷을 껴입고 산행을 시작했다.
2000년에도 찾았던 백두산… 넓고 푸른 평원이 펼쳐져 있기도 하고 험한 낭떠러지가 있기도 하고… 4년전에 찾았던 천지는 안개가 끼어 3시간쯤 추위속에 기다리다 안개가 개어가는 멋진 천지를 봤었는데 올해는 어떤모습의 천지를 볼 수 있을까 많이 설레고 기대하며 오르는 길이라 그런지 그다지 힘들지 않게 한걸음 한걸음 더해갔다.
백두산은 여전히 멋진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오르는 길가에 노란색 꽃들이 산바람에 살랑거렸다. 교수님께서 두메양귀비라고 하셨다. 백두산에서만 자생하며 황색의 꽃을 피우는 우리나라 특산 두메양귀비. 산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참 예뻤고, 정상 가까이에서는 나무가 자랄수 없어 풀밖에 없는 평원 가운데 간간히 보이는 노란색 꽃이 생명감을 주고 군락을 이루는 모습이 참 예뻤다.
교수님은 두메양귀비에 대해 설명 해주며 사진기를 놓지 않으셨다. 계속해서 오르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림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발아래 구름이 걸려있고 시원한 산맥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붉고 굵은 글씨체로 `흑풍부'라고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흑색바람이 분다는 흑풍부. 백두산은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현무암이 많아서 바람이 불면 검게보여 이곳의 이름을 흑풍부라고 지었다고 한다.
흑풍부의 계단을 올라가니 장백폭포가 내려다 보였는데 정말 시원하고 멋진 장관이었다. 장백폭포가 내려다 보이는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고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도 여러장 찍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여기서부터는 차를 대절해서 올라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우뚝 솟아있는 천지의 모습이 보이고 발 아래로는 도로가 지그재그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날씨가 너무너무 좋아서 오르자마자 너무나도 맑게 개인 깨끗한 천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감동… 감동… 또 감동인 순간!! 이렇게 맑고 깨끗한 천지를 보기는 정말 힘든일이라 그러는데 우리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 되었다. 교수님의 말씀 ?여기가 극락이고, 곧 천국이다? 그 말씀 한마디가 천지에서의 감동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 하다.
천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소원을 빌기도 하며 천지의 장관에 푹 빠져 한참을 헤매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갈 준비를 했다. 다시한번 돌아보고 다시한번 돌아보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 도로를 금새타고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다시 장백폭포 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오전에 흑풍부에서 내려다보던 장백폭포를 아래에서 올라가 바로 앞에서 보니 가슴이 벅차 오를 정도로 시원하고 멋졌다.
장백폭포 옆을 따라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을 한참 올라 천지 수면 가까이로 오르면 천지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같은 천지지만 참 다른 풍경을 가진 곳이었다.
내가 어디 서있는가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닿는 범위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그 모든 것의 전체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천지 수면 가까이에서 본 천지의 풍경은 드넓게 곳곳에 퍼져 분포한 노란 만병초와 함께 어우러져 정말 평안한 모습을 지닌 곳이었다. 이곳에서도 그 모습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싶은 맘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다 천지물에 손 한번 담궈 보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폭포쪽으로 내려왔다.
장백폭포를 구경하고 온천물에 삶은 달걀을 하나씩 먹고 하산하여 다들 오늘 하루를 흐뭇해하면서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은 멀리 있지 않았다. 장백산 온천에서의 온천욕은 지난 하루 동안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씻고 나서는 숙소의 식당으로 갔다. 밥을 먹으면서 산에 올라갔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쉬다가 민속공연을 관람하고 백두산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아쉬움에 숙소 주위를 산책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산을 오르는 것은 힘겹기는 하지만 다시 내려와야하는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오르는 것은 그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 시원하게 살을 스치는 산바람속에서 자신의 존재감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루밖에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너무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천지의 모습을 마음 깊숙히 담으면 많은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4-08-13 16:41 |
![]() |
[문화] 지중해 크루즈와 이집트 여행기<完>
나일강이 낳은 5천년 고도(古都) 룩소르
당시 생활상 그대로의 벽화와 람세스2세 조각이 장관
5월30일(일)
아침 8시 30분에 나일강의 하류에 있는(그러나 위도상으로는 카이로의 북쪽에 있다)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버스는 달린다.
사하라 사막의 한 가운데에 왕복 2차선의 고속도로를 만들어서 거의 직선으로 되어 있는 도로를 3시간 반 동안 달리는 동안, 군데군데 푸른 농장들이 자주 눈에 띄어서 사막은 모래일뿐 이라는 생각을 날려 보내게 했다.
이집트 최대의 휴양지인 이 도시는 지중해에 인접하고 있어서 카이로가 매일 37~38도를 오르내리고 있는 동안 에도 30도 내외로 시원하기 그지없다.
세계 최초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유물로 남아있는 이 도시에 세계 각국에서 도움을 받아 건축해 놓은 최신식의 도서관은 정말로 아름답게 잘 지어진 건축물이었는데 이 도서관의 건축에 도움을 준 나라의 이름들이 입구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Korea는 찾아 볼 수가 없어서 서운했다. 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삼성그룹에서 몇 십만 권의 책을 기증했다고 하니 그것으로 위안이 되었으며, 세계 각 나라의 문자들을 새겨 놓았다는 정면의 큰 대리석 벽면에 `서울(비록 제대로 새겨지지는 못했지만)'이라는 우리 한글도 발견 할 수가 있어서 반가웠다.
카이로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는 사막의 단조로움이 모두를 잠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5월31일(월)
새벽 6시 30분 국내선으로 1시간쯤 걸리는 이집트 남쪽 즉 나일강의 중류쯤에 위치한 룩소르로 향했다. 이곳 이집트의 항공사는 시간을 잘 안 지키기로 소문이 났는데 역시 새벽 비행기도 30분쯤 늦게 출발했다.
대낮에는 섭씨 40도가 넘는 폭염이지만 그늘 아래만 가면 서늘한 것이 습도가 낮아서 그렇단다. 따라서 한낮인 오후 2시에서 4시까지는 관광을 못하고 에어컨이 들어오는 호텔의 로비에서 쉴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약 5천년전 이집트 신왕국인 테베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고도로 발달했던 건축물과 유적들이 가는 곳마다 널려 있는 것 같았다. 룩소르 신전은 특히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벽에 새긴 벽화들이 볼만했으며 실물같이 섬세하게 만들어진 람세스 2세의 얼굴 조각도 참으로 볼만 했다.
우리가 파리에 가면 볼 수 있었던 오벨리스크도 이곳에 서 있었던 것 2개중 한 개를 뽑아다가 세워놓은 것이라고 하니 외롭게 서 있는 한 개의 오벨리스크가 여러 가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당시 왕들이 자기 무덤의 도굴을 막기 위해서 나일강 건너 산 속의 깊숙한 계곡에 만들어 놓았다는 왕들의 무덤들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서 철저하게 도굴이 되어 속이 텅 빈 겉모양들만 남아있지만, 유일하게 이 시대의 한 왕인 투탕카멘의 무덤만이 고스란히 도굴되지 않고 발견되어 미라로 된 이 왕의 시신과 부장품들 등 많은 유물이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고 하니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라는 카르낙 신전은 너무나 더워서 감히 올라갈 생각도 못하고 멀리서 그 웅장한 전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 돌아오니 밤 12다. 내일(아니 정확하게는 오늘) 낮 12시에 카이로 공항을 출발하는 대한항공으로 귀국길에 오르자면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짐을 꾸려야 하기 때문에 또 잠을 설쳐야 했다.
여행메모
1. 크루즈 여행은 밤에는 항해를 하고 아침에는 여러 도시를 관광 하면서도 늘 짐을 꾸려야 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2. 유람선 위에서는 항상 우측통행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좁은 통로를 지날때에는 여성, 어린이, 노인에게는 `after you' 하고 양보해주는 미덕을 갖자.
3. 유람선 내에 있는 모든 시설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어떤 시설이 있는지 답사를 하면서 철저하게 알아두자.
4. 요금을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식사 시 한잔 또는 한 병의 포도주나 캔이나 병에 든 음료, 칵테일 등이며, 미장원이나 마사지도 유료이다.
5. 유람선 내에서 사진사가 수시로 찍어 대는 사진은 사진실에 전시된 후에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찾지 않아도 되므로, 사진이 찍히는 순간에는 활짝 웃으면서 자연스러운 포즈를 잡아주자.
6. 모든 승객에게 딱 한 번인 선정초청 만찬을 위해 정장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꼭 한복을 준비해야 하는지는 좀 생각해볼 일이다.
7. 매일 새벽에 각 선실로 배달되는 News letter에는 양식당에서의 저녁식사에 입어야할 옷의 종류를 알려주는 Dress code와 승객을 위한 모든 스케줄이 나와 있으므로 잘 살펴보아야 한다.
2004-08-09 09:22 |
![]() |
[문화] 지중해 크루즈와 이집트 여행기<4>
로마를 느끼며 당시 우리선조가 떠오르다!
5월24일(월)
아침 8시에 터키(Turkey)령의 쿠사다시(Kusadasi)항에 닻을 내린다. 원래 이 유람선은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불(Istanbul)에 기항하도록 되어있었는데, 금년 초엔가 이스탄불에 수많은 사상자를 낸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 당국에서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미국 국적인 모든 유람선은 이스탄불에 기항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스탄불에서 자동차로 9시간이 걸리는 서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 쿠사다시항에 입항, 에페소(Ephesus)관광을 하도록 바뀌었단다.
필자에겐 원래 이스탄불을 몇년전에 학회참석차 와본 경험이 있어서 오히려 기독교문화의 유적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에페소를 방문하게 된것이 더 좋았다. 원래 에페소는 기원 후 1세기경만 해도 아주 번창했던 항구도시로서 한때는 로마제국의 주도로서 화려했던 도시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아테네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번영을 누렸단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 도시는 기원전 330년경에 유명한 알렉산더대왕이 진군하여 로마의 영토가 되어 발전을 구가했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기원전 100년경에 로마의 어떤 장군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가 다시 기원후 10년경에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이 도시가 빛을 보면서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로마에 부속된 수도가 되어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역할을 했었다.
1700여년이 지나는 동안 끊임없이 산에서 밀려 내려오는 토사가 이 도시를 완전히 흙속에 매몰시키고, 바다마저 메꾸어서 이제 이 유적지는 그 옛날에 선창으로 향하는 큰 길이었다는 기둥들만 남아 있을 뿐 바다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 되었다.
기독교가 전파될 당시에는 성서에 나오는 바울 사도가 이곳에 와서 포교를 했으며 성경에 있는 에베소서를 쓴 곳 이기도하는 이 도시는, 찬란했던 로마의 유적들이 고스란히 발굴되고 있어서 그 당시의 도서관, 유곽, 신전, 체육관, 사도요한의 교회 등 규모가 크고 찬란했던 그 옛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당시에 지어졌던 야외극장은 지금도 터키에서 가장 큰 극장이며 시원한 여름날 저녁에는 음악회가 열린다고 하니, 1900여년에 살았던 로마인들의 사상과 생활모습이 관광객들을 감탄하게 만들었으며, 우리 선조들은 그 무렵에 무엇을 하고들 계셨을까 하는 공연한 상념에 잠기기도 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수난 이후 말년을 보냈다는 마리아의 집은, 수년 전에 바티칸에 의해 성모 마리아가 정말로 살았던 집으로 공인되기도 해서 이제는 아주 잘 관리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옛날에 이스라엘 땅으로 부터 바다를 건너 어떻게 이 멀고 먼 터키의 에페소까지 오게 되었으며, 이 집이 위치한 곳은 우리가 버스를 타고도 힘겹게 한참동안을 올라가야 하는 험한 산 속인데 이 험한 산길을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찾아와 말년을 보냈는지 언뜻 짐작이 안가는 일이다.
지금은 기둥과 벽들만 남아 있는 세례요한의 무덤위에 정복자였던 로마의 한 황제가 건축했다는 바실리카 성전(Basilica of St. John)의 웅대한 모습은 옛날의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기도를 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옆에서 이슬람교도 몇 명도 이 요한의 무덤 앞에서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오후 5시에 쿠사다시 항을 떠나 최종 목적지인 이태리의 베니스를 향해 북상을 시작한다.
5월25일(화)
오늘과 내일은 온종일 항해만 계속한다. 터키에서 뱃머리를 다시 북쪽으로 돌려 이태리의 동쪽해안을 따라 북상을 하는데 이 배의 최종 목적지인 베니스(Venice)는 장화모양으로 생긴 이태리반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낮과 밤 이틀간 계속해서 항해만 해야 한다.
그동안 밤에 잠을 잘 자긴 했지만, 밤새 항해를 하고 새벽에 항구에 기항하여 버스에 갈아타고 관광을 해왔기 때문에 약간 지치기도 했는데, 이틀간 항해만 하는 유람선에서 쉬며, 못해본 행사에 참여도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특히 항해만 계속하는 날에는 유람선에서 승객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이 많아서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한국에서 온 승객들에게는 배 후미에 위치한 바의 장소를 하루에 2시간씩 빌려 한국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 못 봤던 `공동경비구역'과 `취화선'을 처음으로, 그것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오후 2시 17층에 위치한 퍼팅 라운지에서 putting tournament가 열린다고 해서 참가했는데 40여명의 신청자 중에서 우리 한국 사람이 20여명이나 되어서 과연 Golf Korea를 유람선 안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5명씩 한 조가 되어 1번 홀에서 제일 작은 점수로 홀인하는 사람들을 모아 다시 경기를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경기에 대비해서 연습도 좀 하기는 했지만 1회전에서 낙마를 하고 말았다. 실력보다는 운이 많이 작용하도록 만들어진 코스여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5층에 위치한 Fitness center와 사우나 등도 승객들이 많이 이용을 하는데, 사우나는 동양인,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아서 서로들 인사를 나누며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5월26일(수)
오늘도 하루 종일 아드리아해역을 북상하는 항해만 계속한다. 유람선 소식에 오후 2시부터 탁구대회가 있다기에 그동안 틈틈이 아내와 연습한 실력을 발휘해 보려고 15층 수영장 위쪽 갑판에 위치한 탁구대 5개가 마련된 행사장에 나가서 참가 신청을 했다.
30여명이 신청을 했는데 서양인보다는 단연 동양인이 많은 것 같다. 1회전에서는 영국에서 온 덩치 큰 젊은 친구와 맞서게 되었는데 15점을 이긴 사람이 한세트를 이기는 것으로 해서 3세트 경기를 했다.
세트 스코어 1대1에 마지막 게임에 듀스까지 가는 열전 끝에 간신히 1회전은 이길 수 있었다.
2회전에서는 인도네시아 젊은이하고 붙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서비스 할때마다 한 점도 따내지를 못해서, 아내의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2대0으로 지고 말았다. 좀더 침착하게 리시브를 하고 서브도 좀 신경을 써서 넣었더라면 한번 해볼 만한 상대였는데 너무나 아쉬웠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크루즈여행의 마지막 밤인 12시 정각에 5층 홀에서 샴페인 잔 500여개로 피라미드를 쌓은 후 위에서부터 샴페인을 쏟아 폭포를 만들게 하며, 또 이 샴페인을 나누어 마시면서 춤을 추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것은 유람선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행사였다.
참가자가 너무 많으니까 우리 한국에서처럼 모두의 어깨를 잡고 긴 줄을 만들어 기차놀이를 하였는데 유람선의 마지막 밤을 즐기는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2004-07-28 15:45 |
![]() |
[문화] 지중해 크루즈와 이집트 여행기<3>
고대 로마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
콜로세움·카타콤베 관광, 폼페이서 당시 높은 생활수준 느껴
5월20일(목)
밤새 바닷길을 달려 아침 7시 정각에 로마 인근에 위치한 치비타베키아항의 부두에 닻을 내린 후 1시간 30분 가량 버스로 시골길을 달려 중·소형의 낡은 자동차들로 무척 붐비는 로마시에 입성했다.
우선 교황이 있는 바티칸 신국을 방문, 성베드로성당에 들어선다. 학회 참석 길에 몇년전에 들렸을 때 보다 관광객에 대한 몸 수색이 더 심하다. 특히 스페인의 어떤 성직자가 추기경으로 추대되는 의식을 준비중이라고 해서 박물관의 입장도 허락되지도 않았지만, 이 나라에서 온 관광을 겸한 가톨릭 신도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큰 소리로 자랑을 하면서 길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로마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숨어서 예배도 보던 지하무덤인 카타콤베(Catacombs)는 여러개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발굴이 아직 안된 곳의 미로까지 합하면 수십 킬로미터가 넘을 거라고 하니 그 시절의 어려웠던 기독교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원 후 4∼6세기에 걸쳐 사람과 동물의 싸움을 구경하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Colosseum)은 겉모양만 먼발치로 구경하고,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큰 소나무 아래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세계 각 나라에서 온 각양각색의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루 동안 그것도 출항시간에 맞춰 대충대충 구경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크루즈 여행이 갖는 단점인 것을, 로마관광을 마치고 다시 유람선이 정박 중인 항구로 되돌아오면서 느낀 소감이었다.
저녁 7시에 나폴리(Naples)를 향해 출항했다.
5월21일(금)
오전 7시에 나폴리에 입항했는데 부두의 수심이 얕아서, 시가지가 멀리 보이는 외항에 닻을 내렸다. 폼페이(Pmpeii)의 유적과 소렌토(Sorrento)를 관광 할 버스가 즐비하게 늘어선 부두까지는 작은 연락선을 타고 상륙할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는 모든 이태리의 도시가 마찬가지이지만, 이 나폴리에서는 소매치기에 특별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서기 79년에 폭발한 베수비우스(Vesuvius)화산(아직도 분출을 준비하고 있는 휴화산이다)의 화산재에 의해 매몰된 로마인의 휴양지를 겸한 고대 도시인 폼페이는 당시 로마인들의 높은 생활수준과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필자가 20여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당시에 매몰되었던 한 귀족의 저택과 유물들 그리고 웅크린 채 죽어간 하녀의 시신까지 볼 수가 있었는데, 워낙 관광객이 많이 몰리니까 이제는 대부분 유물을 박물관에 따로 보관하고, 그저 폐허된 돌로 만들어진 벽과 기둥들, 그리고 하수시설까지 설치된 당시의 도로들만 보여주고 있어서, 2000여년 전 화산재에 의해 폐허가 되었던 이 도시의 참상을 이해하기엔 좀 모자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음악을 전공한다는 가이드에게 오 솔레미오를 이태리어로 배우며 합창을 하면서 드라이브 해본 소렌토언덕의 절벽 길은 역시 장관이었다. 천 길의 낭떠러지 위에 만들어진 도로는 대형버스가 서로 비켜가기는 좀 아슬아슬한 좁은 2차선의 도로였지만 나폴리를 찾는 관광객이 한번씩은 꼭 들르는 드라이브 코스여서 그 큰 버스들이 용케 잘도 비켜서 지나들 간다.
130유로화가 옵션으로 더 필요하다는 카프리(Capri)섬 관광은 비용에 비하여 별로 볼 것이 없을 것 같아서 취소하고, 저녁나절은 무더위를 피하여 냉방이 잘된, 이제는 내집 같아진 유람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카프리섬은 그리스를 향해 배가 남진을 하는 동안 이 섬 근처를 통과하기 때문에 준비해간 망원경으로 멀리서라도 이 섬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후 7시에 이태리를 떠나 그리스(Greece)의 아테네(Athens) 항을 향해 출항을 했다.
5월22일(토)
오늘은 온종일 항해만 하는 날이다. 아테네항까지는 기항하는 곳이 없이 24시간 정도 항해만 계속한다. 우선 아침에 수영장에 가서 30분 정도 수영을 한 후 핀란드식 건식 사우나로 몸을 추스린 후 15층에 있는 뷔페식당에 가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아침 일찍부터 수영장 옆에 준비된 편한 의자들에는 일광욕과 독서를 즐기려는 승객들로 발을 디딜틈이 없을 정도였다.
5월23일(일)
아침 6시에 그리스(Greece)령 피레우스(Pireus)항의 부두에 정박했다.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눈부신 태양이 작열하는 그리스는 우리가 책에서 읽어본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의 고향으로, 유럽문화의 고향이라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수도인 아테네는 도시에로의 인구 집중현상이 심해서 그리스 전체인구의 반이 넘게 이 도시에 살고 있으며, 요즈음은 2004년 하계올림픽의 준비로 시가지 전체가 온 통 부산한 모습들이다.
한 낮에는 섭씨 34∼35도를 넘나드는 온도여서 무척 따갑지만 의외로 습도가 높지 않아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오히려 시원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언덕이 가장 잘 마주 보이는 맞은편 산에 있는 필로포스(Philopos)언덕에 올라 내려다보는 아테네의 시가지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면 소크라테스가 말년에 갇혀 있었다고 전해지는 동굴이 있는데, 그는 독이 든 술잔을 마시기전까지 두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이 동굴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녹이 슨 철창문으로 동굴을 막아놓고 있는 형편인데, 이 도시의 더 유명한 관광지에 가려서 별로 찾아보는 관광객도 없는 것 같아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고대 그리스의 상징인 아크로폴리스는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그저 사람들 틈에 떠밀려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지어졌다는 유명한 파르테논신전이 있는데 비록 대리석 기둥들만 남아 있고 또 일부는 보수중인 곳도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큰 규모가 우리를 놀라게 했으며, 학생시절에 서양사 시험문제에 잘 나오던 이노니아식, 고린토식 건축물의 실제 기둥을 볼 수 있어서 감개무량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그리스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 사상가, 정치가 등 논객들이 모여서 연설도 하고 논쟁을 했던 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터였는데, 이곳이 유명한 아고라 시장터로서 시간이 없어서 멀리서 내려다만 보고 지나칠 수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1896년 제1회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 스타디움도 볼 수 있었는데 성화대가 경기장 입구에 낮게 자리 잡고 있어서 아직도 관광객을 위한 성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금년 8월에 하계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란다.
오후 5시에 터키를 향해 출항해야 하는데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배가 떠나지 않았다.
모든 승객들은 갑판이나 발코니에 나와 무슨일인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출항시간이 지났는데도 배에 오르지 못한 승객이 있었기 때문인것 같았다.
모두들 통상적으로는 보기 힘든 일인지라 신기해서 부두의 출입국관리소를 내려다 보고 있는데, 여자 승객 2명(다행히도 동양 사람은 아니었다)이 양손에는 쇼핑한 보따리를 들고 허겁지겁 뛰어 오고 있다. 모두들 박수를 처서 환영겸 야유를 해준다.
2004-07-21 11:01 |
![]() |
[문화] 지중해 크루즈와 이집트 여행기<2>
차가운 지중해에 처음 발을 담그다
깐느·니스 거쳐 피렌체 르네상스 문화 살아 숨쉬는 듯
5월17일(월)
시차 때문에 좀 이른 시각인 새벽 4시에 일어나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사우나로 몸을 푼 후에 선내 곳곳을 살펴봤는데, 오후 3시 출항에 맞춰서 아직도 수많은 승객들이 단체로 또는 개인적으로 속속 승선들을 하고 있다.
아침은 15층에 있는 뷔페식당에서 했는데 초특급 호텔의 뷔페식단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문자 그대로 호화판이었는데 단, 병이나 캔에 든 음료나 주류는 모두 유료로 되어 있어서, 24시간 문을 여는 식당을 잘 이용해야 했다.
식당이나 갑판에서 또는 선실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들 새로운 항해에 대한 기대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서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어떻게 바르셀로나까지 오게 되었느냐 등등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오후 3시에 첫 기항지인 프랑스의 칸(Cannes)항을 향해 운항을 시작했다. 유람선은 정박하고 있을 때보다도 배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더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모든 면세점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며, 5층에 자리 잡은 카지노도 몰려드는 고객들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저녁식사는 캐주얼이나 정장이 필요한 6층 양식당에서 a la carte로 달팽이 요리가 전채요리로 나오는 불란서 요리로 했다. 한국에서 온 단체고객들은 5층의 양식당에서 영어가 통하는 가이드가 손님들에게 설명을 해주면서 주문을 받아서, 종업원에게 다시 통역을 하느라고 너무 부산들하며, 한국에서 준비해온 김, 고추장, 김치 등을 가져다 먹는 등이 우리 취향하고는 잘 맞지 않아서 우리부부는 따로 6층 양식당에서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우아하게 저녁식사를 하기로 정했다.
5월18일(화)
아침 7시 정각에 마침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의 외항에 닻을 내린다. 뷔페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첫 번째의 관광을 위해 8시에 하선을 하는데 수많은 작은 배들이 승객을 나누어 싣고서(이것은 tendering이라고 불리 운다) 10여분을 달려 부두에 내려놓는다.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40여대의 버스 중 우리 버스를 찾아 올랐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니스(Nice)를 거쳐 모나코(Monaco)로 향한다. 산과 바다를 끼고 니스에서 모나코의 몬테카를로(Monte Carlo)까지 가는 길은 정말 절경중의 절경이어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는 얘기가 전연 빈말이 아닌 것 같다.
니스에서 몬테카를로로 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곳도 멀리 올려다 보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 우아했던 왕비가 바람을 피우다가 왕실의 사수에 의해 위장된 교통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가이드한테 전해들었다. 믿거나말거나 이지만 왕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왕은 아직까지 결혼을 안 하고 혼자 산다는데, 특히 동양여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도시인 몬테카를로는 자동차 경주와 카지노 그리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 의한 수입으로 충분히 운영을 해 가는데, 흥미 있는 것은 13세기경에 지어진 성 니콜라스성당 안에 유일하게 꽃이 헌화될 수 있도록 허용된 곳이 그레이스 왕비가 잠들고 있는 묘소였다.
니스로 와서 오랜만에 한식으로 점심을 한 후, 크고 작은 조약돌로 이루어진 해변에서 지중해 바닷물에 처음으로 발을 담가 보았다. 아직은 수영을 하기에 물이 좀 차가웠지만 햇볕이 뜨거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가족이나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칸에서는 영화제가 열리고 있어서 해변가에 위치한 거리는 인파로 무척 붐볐다.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대회장 주변의 도로에는 포토라인을 쳐놓고 수백 명의 기자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도로 한가운데를 영화제의 사무국에 의해 발행된 명찰을 가슴에 자랑스럽게 단 영화제 관련 인사들이 활보를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오후 6시에 이태리의 리보르노(Livorno)항을 향해 출항을 했다.
5월19일(수)
오전 7시에 기울어지고 있는 탑이 있는 피사(Pisa)와 꽃의 도시 플로렌스(Florence)에 가기 위해 이태리령 리보르노항의 부두에 배가 정박했다.
이 항구에서 버스로 1시간쯤 시골길을 달려서 큰 소나무 가로수가 특징인 피사에 도착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물체의 낙하시험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사탑은 원래 바로 이웃에 있는 두오모 성당의 종탑으로 1350년 경에 완성되었다.
그 당시부터 약간씩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매년 몇 센티미터씩 기울어지고 있어서 어느 날엔가는 이 사탑을 볼 수 없는 날이 오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이 중의 하나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 기울어진 사탑 안에 오늘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10유로나 되는 비싼 돈을 내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려는 관광객들로 긴 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리브 농장이 자주 보이는 시골길을 1시간쯤 동쪽으로 달려서 꽃의 도시로 알려진 플로렌스(이곳 사람들은 피렌체라고 부른다)를 찾았다. 16세기 중엽에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투스카나 지방의 수도로서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유명한 이 도시의 한 가운데는 아르노 강이 서서히 흐르고 있다. 신곡을 쓴 단테가 애인과 데이트를 했다는 아름다운 강변의 도로와 베키오다리 등 여러 개의 다리들이 이 도시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파리의 쎄느강, 런던의 테임스강, 부타페스트의 다뉴브강, 피렌체의 아무르강 등은 소설 등에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거의 모두가 흙탕물이 급류를 이루어 흐르거나, 개울물 정도 이어서, 우리 서울의 한강처럼 맑고 깨끗하면서도 수량이 풍부한 강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의 동상이 있는 언덕의 광장에서 내려다보는 피렌체는 꽃의 도시라고 불려지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으며, 두오모성당에는 관광객이 너무 많이 줄을 서서 감히 들어가 볼 엄두도 못 낼 정도였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 도시에는 최고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우피치미술관이 있어서 그 당시의 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었으나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갈릴레이 갈릴레오 등 수 많은 선구자들의 활동무대였던 이 도시를 반나절 동안의 관광으로 끝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리인 것 같았다.
리보르노항구에 돌아와 승선한 후, 오후 6시에 선수룰 남쪽으로 돌려 치비타베키아(Civitavecchia)항을 향해 출항을 했다.
2004-07-15 09:16 |
![]() |
[문화] 지중해 크루즈와 이집트 여행기<1>
바르셀로나 가우디 건축물에 `혼' 느껴
中·舊소련 영토 넘어 12시간 비행기 여정 후 크루즈 탑승
5월15일(토)
미국 국적의 Princess 유람선회사에서 2004년에 제1차로 운항하는 Voyage 9411(from Barcelona to Venice)의 Star Princess호에 승선하기 위해 인천공항을 출발 한 것은 점심시간이 좀 지난 오후 1시 30분이었다.
출항지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Barcelona)로 가는 직항기가 없어서, 프랑스 파리로 가서 다시 이 항구 도시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몇 년 전 동남아시아 쪽의 크루즈 여행 경험은 있었지만 서양사람을 위주로 하는 유럽의 지중해 연안의 크루즈(유람선여행)여행, 그것도 2주일이 필요한 긴 유람선 여행은 처음이어서 자못 흥분되기도 하고 또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여행을 떠날 때에는 늘 갖게 되는 느낌일 것이다.
37년여의 병원약사와 15년간의 교수생활을 지난 2월말에 정년퇴임하고 첫 번째 맞는 우리부부의 긴 여행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준비를 착실히 했다.
우선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크루즈 여행 쪽을 찾아봤으나 시간과 일정이 맞지 않아서 여러 차례 다른 곳을 알아보던 차에 10여년 전에 악연(이런 일은 요즈음 세상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주일간의 크루즈 여행을 예약한 다음, 출발 당일 20여명의 크루즈 여행객이 약속된 시간에 김포공항에 나가서 비행기 티켓과 크루즈 승선권을 지참하고 와야 할 직원을 기다리는데, 출항지인 싱가포르 행 비행기가 떠난 후에도 여행사 직원이 나타나지를 않아서, 모든 일정을 취소 할 수밖에 없는 황당한 일이였다. 해당 여행사에 자초지종을 알아보았더니 담당 직원이 간밤에 과음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해서 모처럼 잡은 고객들의 여행을 망치게 한 일이 있었다)이 있었던 한국 H유람선사에서 L클럽 회원부부들이 주체가 되어 단체로 떠나는 지중해 크루즈가 있으며, 크루즈 말미에 이집트여행도 추가가 된 상품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합류가 가능하다기에 여기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출발 전 공항에서 알아보니까 필자가 탄 비행기로 46명, 그리고 먼저 파리로 떠난 팀이 30여명 해서 한국에서만 80여명이 이번 지중해 크루즈에 동참을 한다니 이젠 한국에도 크루즈의 열풍이 서서히 몰려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과 舊 소련 영토를 가로질러 파리까지 12시간 반의 긴 여행은 기내 영화 한편과 비행기에서 대여해주는 단편소설을 읽으며 지루하지 않게 보낸 후,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18시 30분에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유럽연합(EU) 덕택에 간편해진 입국수속을 끝내고 10여분을 걸어서, 연결 비행기가 출발하는 탑승구를 찾아 저녁 8시에 바르셀로나로 출발하는 에어프랑스의 중형 여객기를 탈 수 있었다.
마침 옆자리에는 운 좋게도 바르셀로나 교외에서 산다는 스페인 아가씨를 만나 도착 할 때까지 가족과 생활 등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2시간동안의 여행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이 아가씨는 오늘 오전에 여행객들을 파리에 데려다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데 자기네들은 유럽연합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어서, 마치 국내여행을 하는 거나 같이 쉽게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를 오고갈 수 있어서 아주 좋단다.
흥미 있게도 여행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도시가 어디냐는 물음에 미국의 뉴욕이 가장 좋아서 지난여름에는 뉴욕에서 4일간을 보내고 돌아 왔는데 또 가고 싶다고 해서 역시 스페인의 젊은 여자가 보는 뉴욕의 다른 점이 있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밤 11시에 바르셀로나 중앙역 건물 위에 세워진 호텔에 묵다.
5월16일(일)
아침 식사 후 유람선에 승선할 한국인이 80여명이 되니까 세 그룹으로 나누어 모든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필자가 속한 B그룹은 다행스럽게도 개인별로 참가한 14명이 한 그룹이 되어서, 대형 리무진에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모든 관광들을 하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1992년 하계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 주경기장은 규모나 높이가 남산의 1/2정도 되는 야트막한 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올림픽 경기의 꽃인 마라톤에서 우리의 황영조 선수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더 길고 가파른 몬주익 언덕의 코스에서 막판 스퍼트를 해서 우승한 기념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어서 우리 한국인 관광객을 즐겁게 해주었다.
1800년대의 세계적인 건축가였다는 가우디(Antonio Gaudi)가 살았던 저택은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가우디가 설계한 공원 및 시내 곳곳에서 가우디의 앞서가는 생각을 나타내는 건물들을 볼 수 있었으며,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인 미완성의 대성당 등에서도 이 천재 건축가의 혼을 느낄 수 있어서 “죽은 가우디가 산 바르셀로나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도시는 가우디 일색이었다.
오후 5시에 항구에 정박 중인 미국 국적의 Star Princess호에 승선했다. 승선 절차는 여느 출국 수속과 똑같았으나 각자의 여권은 회수했다가 크루즈의 마지막 날 하선 시에 돌려주기로 하며, 한국에서 미리 배정받은 선실 번호가 적힌 짐표(baggage tag)를 각자의 짐에 붙여만 놓으면 승선 한 후 각 선실로 운반되는데, 특이한 것은 그때그때 팁을 주는 것이 아니라 크루즈 기간동안 하루에 10불씩 계산하여 총 130불을 미리 내거나 신용카드로 결제하도록 해서 양식당을 비롯하여 침대정리에 이르기까지 유람선 안에서 승무원에 의해서 베풀어지는 모든 서비스에서 팁에 대한 신경을 전혀 안 쓰도록 되어 있었다.
크루즈 여행 동안의 모든 지불은 선실 문을 열수 있는 카드키를 사용하여 사인한 후 마지막 날 각 객실로 배달되는 사용 명세서에 의해 각자의 신용카드에서 결제되도록 만들어져서, 항해 중일 때만 문을 여는 각종의 면세점에서의 shopping이나 각종 지불에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데 카지노 또한 항상 배가 운항중일 때에만 개장을 하도록 되어 있다. 신기한 것은 카지노에서는 미국 달러만이 사용되고 있었다.
Star Princess호는 2002년에 건조된 미국국적의 119.000톤급 유람선으로, TV 드라마인 `사랑의 유람선'으로 유명한 회사의 소속인 배중의 하나로서 총 길이는 약 300미터, 넓이 30미터, 2,600명의 승객이 탈 수 있으며 종업원만 해도 1,200명이나 되는 떠다니는 특급 호텔인데, 식당은 24시간 open하는 뷔페식당을 비롯하여 5개가 되며 수영장만 해도 어린이용까지 합쳐서 6군데나 있었다. 그밖에도 병원, 대극장 2개, 도서관, 헬스클럽, 사우나, 인도어골프장, 탁구장, 미니 테니스장 등 바로 거대한 운동장이나 다름없었다.
2004-07-02 16:59 |
![]() |
[문화] 약초산행기/고대문명 속 약용식물을 찾아서(下)-안데스에서 아마존으로
정시련
·영남대 약대 교수
▶높은 계곡 속의 도시, 라파즈(La Paz)의 밤 풍경
어디를 가나 밤의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듯이 라파즈에서도 그러했다. 학회 기간 중 어느 날 저녁 시내 야시장 구경을 나갔다. 밤 자정이 넘도록 상점은 물론 길거리 노점상들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죽옷, 신발, 모자 등 의류로부터 식빵, 팝콘에 이르기까지 온갖 식품들, 질병치료용과 무속신앙 의식에 쓰이는 기이한 동식물 민속약재들까지 다양했다. 도심지역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물건을 사는 이는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러웠다.
또한 하루는 주최측에서 주선한 민속음악과 춤을 자랑한다는 한 대형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피로를 달래는 기회도 있었다.
식사는 낯선 음식들이 많았지만 대단히 훌륭했다. 그곳의 음악은 속이 빈 나무로 만든 크고 작은 독특한 피리들을 이용하여 연주하는 구슬픈 노래가 많았다.
특히 어디서나 Yesterday 곡조를 연주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춤은 주로 들짐승들의 형상을 인신화한 가면극으로 꾸며 안데스 산 속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특징을 보였다. 늦은 밤 돌아오는 험한 길거리의 모습에서는 수없이 많은 노숙자와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왠지 마음을 무겁게 하였다.
▶넓고도 아름다운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아름다운 도시, 봄이 시작되는 9월의 아르헨티나는 험준한 안데스에서 벗어난 우리에게는 더없이 아름답고 포근했다. 한국과는 지구의 정 반대에 위치하여 계절도 정반대이고 시간도 밤낮이 꼭 12시간 바뀐 상태였지만 이미 Bolivia에서 적응이 잘 되어 신체적으로 아주 편해졌다. 더욱이 이제 막 봄이 시작되어 한국의 초여름 같은 화창한 날씨의 멋진 기후였다.
아름다운 도시, 화사한 기후, 체 게바라(Che Guevara)와 같은 인류애 넘치는 진정한 혁명가를 낳은 나라, 게다가 먹을 것 입을 것 모두가 값싸고 풍성하여 여행객에게는 더없이 좋은 도시였다.
밤의 도시는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와 춤, 탱고의 아름다운 예술성에 매료되어 더욱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부터 이 교수와 나는 매일 저녁 남미산 포도주 한 병을 마시며 남미지역 특유의 음식으로 식도락을 즐길 수 있었다.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 환상의 도시?
River of January의 뜻을 지닌 이곳을 뭐라고 할까? 커다란 물소 뿔 같다고나 할까? 아니 차라리 시인 Cristovao Leite de Castro가 표현한 것처럼 아름다운 젖가슴을 연상하는 수많은 바위산 봉우리, 수없이 많은 높고 낮은 봉우리들이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조화를 이루었다. 그리고 도시에는 온통 유쾌한 사람들, 그래서 이곳 특유의 춤과 노래인 삼바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조용히 심각하게는 살 수 없는, 유혹과 열정이 넘실대는 도시라 해 두고 싶다. 나만의 환상이었는지? 아무래도 이곳을 가장 실감나게 묘사한 Cristovao Leite de Castro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The skirt - the waves of the sea; The curved waist - the beaches; The breast - the mountains; The hair - the forests; The silhouette - the gracefulness of the carioca woman; And at the foot of the statue the ibis.
▶아마존 (Amazon), 그 거대함과 신비로움
Rio를 떠나 Amazon 중심부 Manaus라는 18세기의 유명했던 도시로 날아갔다. 비행기는 고도 10,000m 시속 1,000km로 비행하여 구름 속을 몇 시간 달리다가 서서히 고도 4,000m에 접근해 내려오니 구름인지 바다인지 모를 희미한 큰 흐름의 굽이진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엄청난 장관을 상상해 보시라!
Amazon지역에 도착하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산소를 생산하는 밀림지역이니 그럴 수밖에… 강 위에는 거대한 선박들이, 강가 곳곳에는 홍수에 대비하여 나무 기둥 위에 높이 지은 어민들의 집들이 보였고, 또한아마존을 따라 배를 타고 거슬러 정글 가까운 곳에는 물위에 떠 있는 원주민의 집들이 특이하였다. 이곳의 생태계는 아직 대부분 원시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보지 않은 사람에게 더 이상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울창한 정글 속엔 위험한 짐승들이, 시원한 강, 아름다운 수련(water lily)속에 몸을 숨긴 난폭한 악어(alligator)가 호시탐탐 먹이 사냥을 노리고 있었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라리아를 전파하려는 모기(mosquito)가 생물학적 공습을 시작해 오고 있었다.
▶이구아수 폭포(Iguazu Waterfall), 신선들의 놀이터였던가?
아마존의 감격을 온 몸에 지니고 하루 꼬박 걸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국경에 위치한 남미 최대의 규모이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Iguazu 폭포로 날아갔다. 밤 12시가 조금 넘어 Iguazu Sheraton Resort Hotel에 도착했을 때, 여행사의 무성의로 야기된 실망은 평생 잊지 못할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기에 충분하였다.
Bolivia 여행사 직원의 실수로 방이 없었다. 밤 1시경, 폭포 옆 정글 속 호텔, 객실은 없고, 갈곳도 없고, 그 막막함을 상상해 보라! 우여곡절 끝에 겨우 방을 얻어 잠을 청했지만 여행사 담당자가 사뭇 괘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다음날 아침. 서서히 어둠이 걷힐 때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풍경은 “경탄 스러움 뿐!” 지난밤의 악몽 같았던 고생조차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새로운 경이로움을 온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한쪽은 밀림이요 다른 한 쪽은 거대한 물 벽의 폭포였다. 이건 옛날 옛적에 신선들의 놀이터였음에 틀림없었다.
이날 낮에 나는 따스한 봄의 햇살을 느끼며 트럭을 타고 광활한 밀림 속의 여러 가지 낯선 식물을 관찰할 수 있었고, 고무보트를 타고 열두 폭 산수화처럼 전개되는 조용한 강줄기를 따라 강 속과 주변의 생태계를 살펴보며 천연물 자원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실감하였다.
그리고 모터보트 선장에게 운명을 내 맡기고 난폭하게 흐르는 폭포하류에서부터 거슬러 올라 폭포 바로 밑을 돌아 나올 때는 오싹 전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때 온 몸은 물에 빠진 제비와도 같았다.
▶거칠게 느껴진 상파울로(Sao Paulo)
남미 여행 3주가 지나는 마지막 무렵에 환상에 사로잡혔던 Iguazu를 떠나 다음으로 도착한 Sao Paulo는 내게는 거칠게만 느껴졌다. 지금까지와 같은 감탄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인구 2천만의 거대도시 상파울로에서 인상에 남는 것이라면 넓고 험한 도시, 많은 사람, 그리고 깨끗하고 한적한 공원 이비라뿌에라 (Park do Ibirapuera) 뿐 이었다. 아마도 어쩌면 긴 여행의 마지막 기착지에서 다소 심신이 지친 탓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여행을 마치고...
안데스에서 아마존! 그저 감탄뿐이었다.
`이런 곳에도 문명이 있고, 사람은 어디서나 또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3주일간의 가슴 벅찼던 여행을 끝마치면서 남미의 화사한 봄을 멀리하며 가을이 물 들어가는 10월 5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진1> 이구아수 폭포
<사진2> 이구아수 폭포주변 생태계
<사진3>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간 아마존 답사
2003-11-12 13:49 |
![]() |
[문화] 약초산행기-고대문명속 약용식물을 찾아서<上>-안데스에서 아마존으로...
정시련
·영남대 약대 교수
▶ 안데스(Andes) 해발 4,100m를 향하여
2003년 9월 14일,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새삼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비행기에 올랐다. 1968년 내 나이 아직 20대! 그 좋은 시기에 난생처음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때의 심경과 유사했던 것은 낯선 문명의 흔적을 찾아 세계의 오지 안데스 산과 아마존 정글을 간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인천공항을 떠나 뉴욕과 마이애미를 거쳐 2박3일 33시간만에 볼리비아(Bolivia) 수도 라파즈(La Paz)의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국제공항에 내렸다.
그곳은 봄이 시작되는 9월의 차가운 새벽 5시, 온도는 섭씨 4도. 그러나 해발 4,100m에 위치한 공항(세계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국제공항)은 왜 그리도 춥던지!
입국수속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아슬아슬 비탈길을 내려가다 문득 타고있던 차를 주목하게 되었다. 택시의 빽 미러는 파손 된지 오래인 듯, 보이지 않았고 핸들도 온전치 않았으며, 문짝도 투덜렁렸다. 이런 차를 타고 약 40분을 내리 달려 국제학술행사장으로 정해진 시내 호텔로 갔다.
길거리엔 이른 새벽인데도 여기 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이 보였다.
호텔은 3,600m 정도의 높이에 있어 낮은 산소량과 고도 때문에 그곳에 머무는 일주일 내내 적지 않게 고생했다.
▶ 티티카카(Titicaca) 호수와 티와나쿠(Tiwanaku, 스페인식 표기:Tiahuanaco) 문명을 찾아
학회행사 일주일 기간 중 하루는 고대문명을 찾아가는 날이 있었다. (참고 : UNESCO 주관 국제인류식물학회) International Ethnobotany Symposio로서 여러 문화권에서 인류와 식물의 관계, 즉 문화, 식품, 의약 등에 관련된 식물을 대상으로 한 학술회의였다. 이 학회에는 우리대학 이승호 교수가 동행하였고, 본인은 이 행사 첫날 개회 때 사회를 맡았으며 `한반도 전통의약의 과거와 현재'라는 강연을 하였다.)
첫째로는 안데스 산맥 속 해발 3,800m 높이에 있는 호수 (제주도 반 만한 면적으로 남미에서 두 번째로 크고 세계에서 군함이 다니는 유일한 호수) Titicaca의 장관과 그 주변에 있었던 고대와 현재의 문명을 둘러보는 것이었다〈사진 1〉. 또 다른 하나는 이 호수에 이웃하며 아직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BC 1,500년경에서부터 잉카(Inca) 이전까지의 신비롭기까지한 웅장한 석조 궁전 유적지가 있는 Tiwanaku 문명지대였다〈사진 2〉.
기대에 부풀어 호텔을 떠나 두 시간 여,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고 검문소를 지나 시골길로 접어들자, 그 전날부터 농민과 시민 데모가 일기 시작해 (그 뒤에 계엄령이 선포되더니 몇 일전 2003년 10월 중순에는 대통령이 하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도로가 차단되고 안전이 위협을 받기 시작하여 안전한 길을 찾아 돌고 돌아가며 겨우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도중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원래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특히 티티카카 주변에서 15000여년전 그곳 원주민들이 처음으로 담배를 발견하고 신이 내린 신령스런 식물로 여겨 애용하며 중미, 북미, 유럽, 급기야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담배 오백년의 이야기 2003, 참조) 오늘날의 커다란 문제 거리로 인식되는 그 담배에 관하여 무엇인가 배우고 느끼려 하였으나 그럴 형편이 되질 않아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음은 큰 아쉬움이었다.
티티카카 호수를 이웃하여 약 4,000년 전 이 높은 곳에 석조궁전을 건립했던 Tiwanaku 문명의 놀라움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안데스의 웅장함을 둘러보며 감탄과 경이로움으로 가슴 벅차 말을 잃어버린 하루였다〈사진 3〉.
주변을 둘러보니 끝없는 평지가 분지를 이루었고 멀리 사방으로 둘러싼 해발 7,000m 이상의 병풍 같은 산 위를 하얀 눈 얼음이 띠를 두른 듯 그 경관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엔 내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절감했다.
<사진1> 티티카카 호수에서.
<사진2> Tiwanaku 문명지대.
<사진3> Tiwanaku(Tiahuanaco) 해발 3,870m.
▶ 안데스(Andes) 7,300m 위용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고
학회를 마친 다음 날 우리는 안데스산 속 높은 해발 4,100m 지점까지 아슬아슬하고 험준하며 원시적 상태를 지닌 좁은 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여행한 뒤 걸어서 해발 약 4,200m 전후까지 다녀왔다〈사진 4〉. 이교수가 지참한 고도계는 4,000m에서 마비가 되어 더 이상 정확하게 얼마를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여기서 걸어다닌 왕복 2시간은 무척이나 힘겨웠다. 구름과 산, 얼어붙은 눈과 그 속에 하나의 미미한 점(point)으로 살아 움직이는 우리들 모습… 안데스의 장엄함과 자연의 신비를 감상하며 이런 곳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 대해 한없이 감사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충만했다. 그리고 그저 감탄뿐이었다.
<사진4> 안데스 산 7,900m 위용을 바라보며.
누군가 `무엇이냐?' 라고 내게 물으면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내 인생관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말할 것이다.
문득 사르트르(Sartre)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으로 평가받은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르헨티나의 명문가 출신인 그가 어떻게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어렵고 고통받는 남미사람들을 위해 혁명가로 변신했는가?'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키고도 영광은 뒤로 남기고 또다시 험준한 이곳 볼리비아 안데스의 산악지대에서 혁명군으로 살았던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꽃다운 39세에 포로로 잡혀 이곳에서 처형당한 뒤 이 험준한 안데스의 계곡 속으로 버려진 혁명가이자 시인이었던 그의 글 하나가 들려오는 듯 하였다.
“내 나이 열 다섯 살 때/나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가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그리고 그 죽음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하나의 이상을 찾게 된다면/나는 비로소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 이곳 깊은 계곡어디에서 또는 높은 산 위 하늘에서 마치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시가 연기와도 같은 구름 속으로 그의 넋이 떠돌고 있을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의 모습이었다. 하늘과 어우러진 산, 안개 가득한 깊은 계곡, 이 사이를 스쳐 지나는 구름과 바람을 느끼며 심호흡을 할 뿐 더 이상 아무런 상념도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2003-11-10 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