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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50> 미국과는 많이 다른 우리나라 대학병원 수련의 교육
1.
사라진 인턴
어머니 병실에서 내가 잠을 자던 간이침대에는 장갑이며 피묻은
솜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어머니는
복수천자 시술 (paracentesis)을 시작할 때처럼 왼쪽으로 모로 누워 계셨다. 어머니 배에 복수를 빼기 위한 관이 보였지만
연결된 용기에는 1/3정도만 찬 것으로 보아 복수가 별로 나온 것 같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어 보니 인턴은 다른 병실로
복수천자하러 갔다고 한다.
좀 기다리니 인턴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아마 간호사가 연락했나 보다. 2월에 의과대학을 졸업해서 3월부터 인턴생활을 시작했으니 병원경력은 고작 5개월에 불과했다. 물어보니 선배의사가 휴가를 가서 자기 혼자 입원환자들의 복수천자 시술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한다.
잘 수련받은 인턴은 복수천자와 같이 간단한 시술을 대부분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턴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좀 어려운 사례 (case)를 만나면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당황하기 쉽다. 그래서,
인턴을 지도 감독하는 전문의 (프리셉터 –
preceptor - 라고 부른다)의 도움을 필요할 때 쉽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턴은 수련의의 신분이기 때문에 프리셉터는 인턴이 수행한 시술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인턴에게 간단한 시술을 혼자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더라도, 인턴을 지도, 감독하는 전문의가 와서 보고 확인한 다음 인턴이 작성한 환자 차트에 같이 사인해야 한다 (attending attestation; 아래 설명을 참조). 이는 수련의가 스스로 독립해서 책임지고 환자를 볼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2.
프리셉터의 확인이 빠진 수련의의 의무기록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위해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작성되었던
의무기록의 일부다. 이 기록들은
수련의 신분인 레지던트가 작성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환자의 외래 담당 전문의가 그 환자가 입원했을 때 지정의가 되는 동시에 그 입원환자를 돌보는 레지던트를 지도, 감독하는 프리셉터가 된다. 그래서, 어머니의 외래 담당
전문의가 어머니에 대한 이 레지던트의 프리셉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레지던트들이 작성한
의무기록에는 어머니 담당 교수가 이들의 기록을 확인해 주는 항목 (attending attestation이라고
부른다)이 빠져 있다. Attending attestation은 수련의들이 작성한 기록이 정확한지
확인해 주고 이들의 환자 평가와 치료계획에 대해 상의하고 동의한다는 프리셉터의 기록과 서명을 담는다. 레지던트는 수련의 신분이기 때문에 환자 치료의 최종 책임을 맡은 전문의의
기록이 따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레지던트가 작성했는데 attending attestation이 빠진
의무기록은 마치 상사의 사인이 빠진, 말단 사원이 작성한 효력없는 보고서와 같은 것이다.
교육적으로도 의무기록 작성은 의사 수련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의무기록은 다른 의료진과의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지던트를 지도하는
프리셉터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을 읽지 않으면 누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 작성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물론,
attending attestation이 없다고 해서 프리셉터가 레지던트의 의무기록을 읽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무기록의 질로 보아 수련의의 의무기록 작성에 대한 프리셉터의 교육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
같다.
3.
투명인간의 역할을 하던 외래의 레지던트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에 완화치료를 받으러 네 번 방문했었다. 그때마다 진료실에는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가 완화치료 담당 교수와 함께 앉아 있었다.
간호사 등 다른 직역이 사진과 이름이 코팅된 명찰을 매달고 다니는 것과는 달리 서울삼성병원에서는 의사가 금색의 명찰을
가슴에 달고 다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의사만 다른 형태의 명찰을 달고 다니는 것은 의사가 일종의 특권직역임을 은연중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병원이
환자치료를 위해 여러 직역들의 협력을 도모한다면 이는 별로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의사를 레지던트라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나라 진료여건상
한 진료실에 두 명의 전문의를 둔다는 것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3주에 걸쳐 네 번 담당 교수를 만나는 동안 이 레지던트는 투명인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질문을 한 적도 없고 담당 교수와
치료방법에 대해 서로 상의하지도 않았다. 단
하나 하는 일이 있었다면 우리와 담당 교수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들으면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로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외래에서 레지던트 수련과정 중 하나가 아마도 바쁜 프리셉터를 대신해서 의무기록을 작성해
주는 것 같다.
이는 내가 경험한 미국 대학병원의 레지던트의 외래 수련과정과
크게 차이가 난다. 과마다 좀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레지던트가 먼저 환자를 진료실에서 단독으로 보면서 문진, 촉진 등을 한다. 이때 전문의인 프리셉터는 대부분 다른
방 (attending room)에 있다. 다음, 레지던트는 환자를 진료실에
남겨 두고 attending room으로 가서 프리셉터에게 문진, 촉진
결과와 함께 자신이 생각한 진단과 치료계획을 말한다 (이를 환자 발표 – patient presentation – 라고 부른다). 이를 바탕으로 프리셉터는 수련의와 함께 진단과 치료계획을 토의하여 결정한
뒤 수련의와 함께 진료실에 있는 환자에게 가서 이을 설명해 주고 환자의 질문에 답한다. 환자가 떠난 후 수련의는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프리셉터는 여기에 attending attestation을 남긴다. 나도 클리닉에서 수련인을 지도할 때 이 모델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모델에서는 진료실 수만 충분하다면 전문의 한 명이 레지던트 2-3명을 한꺼번에 지도, 감독할 수 있다.
과실습 첫 주에는 레지던트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전문의가 처음부터
환자를 보고 레지던트는 전문의가 환자 보는 것을 옆에서 관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사람은 전문의이지 레지던트가 아니다. 왜냐하면,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보았고, 레지던트는 단지 이를 관찰했기 때문이다.
과실습 3주차에서
전문의가 환자 보는 것을 레지던트가 관찰만 하는 경우는 (레지던트가 잘 못하지 않는 이상) 드물다.
레지던트는 수련을 마친 다음에 독립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수련시키기 위해서 전문의의 지도, 감독하에 레지던트는 환자를 직접 혼자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삼성서울병원의 가정의학과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또, 서울대 응급실에서도 전문의와 함께 수련의가 앉아 있었지만 환자 보호자로서 내가 보기에 두드러진 수련의의 역할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환자를 호명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진료실 내에서는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레지던트처럼 투명인간으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아무리 레지던트가 관찰만 하더라도 교육을 위해서 프리셉터가 진단과
치료 계획에 대해 레지던트와 토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문의와의 토의를 통해 레지던트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이나 몰랐던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문의도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토의과정을 통해 수련의가 이를 제기할 수도 있어 환자에게 해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4.
병실에 들어와 보지 않는 병동의 레지던트
어머니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주치의는 레지던트였다. 그런데,
이 레지던트는 행방이 묘연했다 -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왜냐하면, 난 어머니가 5박 6일동안 입원하시는 동안 매일 병원에 있었고 3일밤을 병원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이 레지던트가 어머니 병실에 들어온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입원 당일 환자 병력, 약력을 꼬치꼬치 물어 보며 나를 인터뷰했던 사람은 이 레지던트가 아닌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간호평가와 계획 (nursing assessment and plan)을, 의사는 간호계획과는
촛점이 다른 H & P (history & physical examination)이라는
입원의무기록을 따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난 주치의 타이틀을 가진 레지던트가 올 것이라고 기대를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어머니가 물을 드실 때마다 토하신다고
해도, 통증이 좀 심해진 것 같다고 해도, 복수가 차서 불편해
하신다고 해도 이 레지던트는 들어와 본 적이 없다.
병동에 있으면서도 환자를 보지 않는 레지던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난 굉장히 궁금했다.
병동 중앙에 간호사들이 모여 앉아 있고 컴퓨터가 여러 대 비치되어
있는 곳을 영어로는 nursing station이라 부른다 (한글로는
무엇이라고 불리는지 몰라서 영어를 쓴다).
어머니 병실을 나서면 바로 nursing station이 있었는데 그 레지던트는
컴퓨터 앞에 항상 앉아 있었다. 그럼
컴퓨터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난
이 레지던트가 인터넷 서핑이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레지던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검사 오더하고 결과를 리뷰하며 의무기록을
작성하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이
레지던트는 혼자 20여명의 환자를 맡고 있었는데 이들의 검사를 오더하고, 약을 처방하고, 검사결과를 리뷰하며, 의무기록을 작성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를 직접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환자를 직접 봄으로써 검사결과가 임상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는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예, 구토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음식을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즉,
검사는 단지 환자 정보의 일부분이지 환자를 직접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국 병동의 수련의는
적어도 하루 한 번, 매일 attending과 회진하기 전에
병실에 들어가 문진 (이를 history라고 부른다), 촉진, 청진 (이를
통틀어physical examination이라고 부른다) 등을
하고 이 결과를 다른 검사 결과와 함께 회진 중에 동료 수련의와 프리셉터에게 발표한다.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시리즈의 다른 블로그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입원환자 의료진 운영은 환자를 외래에서 보아왔던 지정의 중심이다. 즉, 병동을 담당하는 레지던트는
각각의 병동 환자들이 외래에서 보아왔던 전문의 (=지정의)들의
지도 감독을 받는다. 이 제도는
병동의 환자 치료에 대한 결정이 지정의의 외래 진료 스케줄에 의존하는 비효율적인 단점외에도 레지던트 교육에도 긍정적이지 않은 면이 많다. 일단 외래 진료 스케줄이 다른 여러 명의
전문의들에 자신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레지던트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힘들다. 미국 대학병원의 여러 과에서는 하루 중 일부의 시간을 레지던트 교육에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학교 병원의 경우, 오후 1시30분에서 한 시간 동안 심순환기 내과 전문의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심순환기 병동을 실습하고
있는 레지던트들에게 강의를 한다. 레지던트들이 오후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이유는 attending이 입원환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 오전에 병동회진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병원처럼
많은 수의 환자를 맡아야 하는데다 스케줄이 제각각인 여러 명의 프리셉터가 있는 경우 레지던트를 위해 교육시간을 따로 떼어내기 어려울 것 같다. 또, 수련의 여러 명과 프리셉터 한 명으로 이루어진 팀체제에서는
프리셉터가 입원환자들을 맡는 기간동안에는 외래 환자를 보지 않기 때문에 입원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레지던트 교육에 신경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동시에 보아야 하는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프리셉터로부터 양질의 교육을 기대하기 힘들다.
5.
휴일에는 보이지 않은 프리셉터
주말을 삼성서울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난 어머니를 담당한 레지던트를 nursing station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레지던트의 프리셉터인 담당 교수는 병동을 찾지 않았다. 간호사도 이를 당연히 여기는지 “교수님이
월요일에 회진할 것”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병원 상황이 달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자를 최종 책임지는 전문의가 환자 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병동을 들르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프리셉터는 수련의 자신이
미래에 환자를 스스로 독립해서 책임지고 돌보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역할 모델 - role model - 이라고 부른다). 주말에 병동에 나오지 않는 프리셉터를 보면서 수련의는 무엇을 배울까?
외래와 병동에서 만난 수련의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방법에 대해 가졌던 여러 의문점을 좀 해소할 수 있었다. 환자들과의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한 것은 수련기간 중 병동 실습에서 환자에게
문진하는 일이 드물고, 외래 실습에서 환자를 독립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또, 환자의 상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는 문진과 촉진/청진 등은 소홀히
하고 검사에만 의존해서 진단과 치료를 하려는 경향도 이러한 수련과정에서 생긴 것처럼 보였다. 또, 대학 교수급 전문의의
의무기록 작성 능력이 미국 의과대학생보다 떨어지는 것도 수련과정에서 프리셉터의 지도 감독이 부족했던 데에
기인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과 교육이 서로 균형잡힌 체계적인 수련과정이 아닌, 일의
수행에 집중된 수련과정으로 보였다. 이런
수련과정에서는 문헌을 읽고, 자신이 수행한 일에 대해 스스로 성찰 (reflection)하고, 프리셉터의 조언 (feedback)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이런 수련과정 때문에 전문의가 처방을 했건 수련의가 처방을
했건 문제가 없었던 약처방을 발견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0-17 1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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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9> 입원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진 운영제도의 비효율성
“담당 교수 왔었어?”
어제 병원에서 잠을 잔 나는 아내와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병실을 나온 시각이 오전 9시쯤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의료진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 오니 11시가 좀 넘어 있었고 나는 곧바로 병원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니, 아직 안 왔어. 이따 오후 3시쯤 온대.”
“어머니 좀 어떻셔? 어제 단 담즙배액관으로 담즙은 잘 나오고 있지?”
“응, 배액관은 아무 문제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복수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셔.”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어머니는 담즙배액관을 달기 이틀 전에 복수천자 시술 (paracentesis) - 주사기로 복수를 빼는 시술 –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계속 정맥으로 수액을 맞고 계신데다 암으로 생긴 복수이기 때문에 다시 금방 찼다.
“어머니 복수 찬 거 어떻게 할 계획인지 모르지?”
“아침에 잠깐 들른 레지던트에게 물어 보았는데 담당 교수가 오면 상의해 보겠대.”
“그럼, 담당 교수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네.”
우리나라와 미국 대학병원 모두 입원환자를 담당하는 의료진은 교수와 레지던트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을 운영하는 방법은 크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경우, 특정 병동을 담당하는 1-2 명의 레지던트가 주치의로서 그 병동에 입원한 모든 환자들의 치료에 관한 실무를 맡고 교수급 전문의인 외래 담당의사가 환자의 지정의로서 레지던트를 지도, 감독한다. 그런데, 병동에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외래 담당의사의 환자들이 입원해 있기 때문에 레지던트 주치의는 여러 명의 지정의의 지도 및 감독을 받는다.
어머니를 담당한 레지던트는 췌담도암 병동에 입원한 20명의 환자를 담당했는데, 적어도 3명의 지정의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정의는 입원환자 뿐만 아니라 자신의 클리닉에서 외래환자도 보아야 한다. 그래서, 클리닉 스케줄에 따라 입원환자를 보는 시간이 다르다 – 어머니 담당 교수처럼 클리닉이 오전에 있으면 입원환자를 오후에 보고, 클리닉이 오후에 있으면 오전에 본다. 그런데, 비록 주치의의 명칭을 달고 있기는 해도 레지던트는 수련인 신분이기 때문에, 담즙배액관을 새로이 단 환자의 복수를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하는 등의 환자 치료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어서 지정의가 병동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레지던트가 실무를 맡고 교수급 전문의가 이들을 지도 감독한다는 것은 미국 대학병원도 같다. 하지만, 한 레지던트가 여러 명의 전문의의 지도 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전문의의 지도 감독을 받는 것이 다르다. 또, 입원환자의 치료는 팀 (team)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팀의 모든 환자들의 치료를 책임지는 교수급인 전문의가 주치의 (attending physician)의 명칭을 갖는다 (따라서, 지정의라는 개념이 없다). 한 팀은 주치의 한 명과 1-3명의 레지던트로 구성되어 있고, 레지던트들은 팀이 담당하는 환자들을 나누어 맡는다.
예를 들어, 우리학교 병원의 심순환기 내과에는 4개의 팀이 있다 (팀 A-D). 한 팀은 수련의 2명-3년차 레지던트와 1년차 인턴 (1년차 레지던트는 레지던트라고 부르지 않고 인턴이라고 부른다) –과 심순환기 내과 전문의 한 명로 구성되어 있고 최대 12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또 하나 우리나라 대학병원과 크게 다른 점은 입원환자 팀을 담당하는 전문의는 입원환자를 보는 날 외래환자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입원환자 보는 시간을 전문의의 클리닉 스케줄에 맞출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학교 병원의 심순환기 입원환자를 담당하는 팀들은 모두 아침 8시30분부터 회진을 시작하여 치료에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오전에 내릴 수 있다.
입원환자만을 담당하는 한 명의 전문의가 책임지는 팀제로 운영되는 미국 대학병원의 입원환자 치료는 우리나라 대학병원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오전에 회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머니의 예에서 보듯이, 입원환자 치료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오후까지 미룰 필요가 없다. 그리고, 입원환자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전문의가 입원환자만을 담당하고, 병동에 거의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이화여자 대학교 목동병원에서 벌어진, 오염된 주사제를 맞은 신생아들의 사망사건과 같은 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병동에 담당 전문의가 없었다는 것은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또, 어머니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을 때 주말에는 지정의인 담당 교수가 병실을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입원환자 팀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의가 주말에도 팀과 함께 아침에 회진한다. 뿐만 아니라, 전문의가 입원환자만 담당하고 병동에 상주하기 때문에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입원환자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환자가 입원했을 때 외래에서 만나왔던 전문의에게 치료를 맡긴다는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의료진 운영 제도는 치료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언뜻 이치에 닿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환자를 여지껏 보아왔던 의사가 다른 사람들보다 그 환자를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병원의 전문의는 다수의 입원환자와 더불어 엄청난 수의 외래환자도 함께 보기 때문에 환자 개개인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입원환자의 상태는 빠르게 변할 수 있고 검사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합리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직접 자주 보아야 한다.
“그냥 복수천자만 하고 말았어? 내일 퇴원한 다음에 집에서도 계속 수액을 맞으실 거고, 그러면 금방 도로 찰 텐데… 복수천자를 매일 외래로 받을 수도 없잖아?”
나는 체중이 15 kg정도 줄어든 어머니의 영양공급이 크게 걱정이 되었다.
“담당 교수는 담즙배액관도 달고 했으니 음식을 좀 드실 수 있을 거래.”
“난 배액관 달고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이제는 물만 드셔도 토하시잖아? 그래서, 가정간호사가 와서 수액을 집에서 놓아 주도록 한 것이고.”
“…”
주치의 레지던트는 환자를 직접 보기 보다는 거의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고 지정의는 오후에 2-3분 동안만 잠깐 와서 보고 갔으니 환자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구토증세가 얼마나 심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지 답답했다.
퇴원한 이튿날 오전, 삼성서울병원의 가정 간호사가 수액을 들고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어머니에게 수액을 놓아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복수가 다시 차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음식이건 물이건 드시자마자 바로 토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한 지 이틀만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실 수밖에 없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10-02 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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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8> 입원환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간호인력
어머니는 삼성서울병원 암병동에 8월 4일부터 9일까지 5박 6일동안 입원하셨다. 난 환자보호자로서 매일 어머니곁에 있었고 병원에서 세 밤을 보냈기 때문에 삼성서울병원의 입원환자 케어 시스템이 24시간동안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었다. 삼성서울병원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병원 중 하나이므로 이 병원의 입원환자 돌봄 제도 (inpatient care system)가 우리나라 다른 병원들보다 낫거나 비슷하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3-4개의 컬럼을 통해서 효과적이고 안전한 환자 케어를 위해 우리나라 병원의 입원환자 돌봄 제도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 지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우리학교 병원의 예과 비교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입원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부족한 간호, 의료인력이었다. 난 병동을 돌아보면서 간호사와 의사 한 명이 몇 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지 세어 보았다. 처음에 센 숫자가 너무 황당해서 다시 세어 확인해야 했다 – 왜냐하면, 놀랍게도, 간호사는 1인당12명, 의사는 20-25명의 환자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일반 병동 (Medical/Surgical wards)의 경우, 간호사 1인당 5명을 담당하니 간호사 1인당 12명은 우리학교 병원의 두 배를 약간 넘는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병원 소속 전문간병인이 환자를 같이 돌보기 때문에, 우리나라 병원에서의 간호인력 1인당 업무량은 미국 병원 간호사 1인당 업무량의 두 배를 훨씬 초과하는 셈이다.
이렇게 간호인력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이를 메꾸기 위해 우리나라 병원은 환자보호자를 이용하고 있다. 즉, 환자보호자에게 전문간병인 역할과 간호사 역할의 일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입원하고 조금 있다가 담당 간호사가 들어와서 어머니의 상태를 살펴 보았다. 그러고는 환자가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뼈가 직접 침대 매트리스에 닿기 때문에 욕창의 위험이 아주 높아서 어머니의 자세를 2시간에 한 번씩 바꾸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간호사들이 2시간마다 병실에 들어오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정작 환자 자세를 바꾸는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환자 보호자의 책임이라고 하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환자의 자세를 바꿔 주는 일은 미국에서는 전문간병인이 역할인지라 난 누워 있는 입원환자 자세를 바꾸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시범이라도 보여줄 줄 알았는데 어머니 담당 간호사는 환자 자세 바꾸는 법을 설명한 종이 한 장을 달랑 놓고는 나가 버렸다.
이 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하루 동안 얼마나 소변을 보았는지 계량하고 기록하는 것과 시간에 따라 환자에게 이 약 저 약 주는 것은 미국에서는 간호사의 역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환자보호자인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가족이 입원하면 그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인데 거기에 더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환자보호자에게 맡기는 것이 환자를 안전하게 돌보는 것일까? 또, 환자에게 안전사고가 생겼다면, 누가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나? 예를 들어, 환자보호자가 경황이 없어 2시간마다 환자의 자세를 바꾸지 못해 욕창이 생겼다면 이는 환자보호자 책임인가 병원책임인가? (원래는 병원이 해야 할 일이고 환자보호자가 자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의 책임으로 보인다)
8월 8일 월요일 새벽 5시경, 여느 때처럼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와서는 혈압 등 바이탈을 측정하고는 그날 드릴 어머니 약들을 놓고 나갔다. 이 중에는 진통제인 옥시코돈 (oxycodone) 15 mg 네 알이 들어 있었는데, 한 알씩 6시간마다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전날 어머니가 통증을 많이 호소하지 않아서 두 알만 드렸기 때문에 두 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난 간호사를 바로 찾아 가서 오늘은 네 알이 다 필요없다고 말했다가 크게 혼나고 말았다.
간호사:”아니 왜 이걸 이제 말해 주시는 거예요? 어제 말해 주셨어야죠. 그리고, 약을 환자보호자 마음대로 바꿔주면 안 돼요!”
난 환자보호자의 역할이 부족한 간호인력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간호사는, 그 태도로 보아, 약을 주는 것은 환자보호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환자에게 때에 맞춰 투약하는 것은 간호사 고유의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입원환자 개개인의 약물 투여 기록지 (Medication Administration Record; MAR)를 마련하고 간호사로 하여금 작성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투약을 직접하지 않으면 어떻게 간호사가 무슨 약을 언제 얼마나 투약했는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을까?? 또, 정기적으로 투약하는 약도 환자의 상태를 봐 가며 주어야 하는데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 수련받지도 않은 환자보호자에게 투약을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고 안전한 환자 돌봄일까?
경황이 없는 환자보호자가 제 시간에 약을 주는 것을 잊어 버릴 수도 있고, 환자보호자가 바뀌는 경우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약을 잘못 주거나 빼먹을 수 있다. 또, 옥시코돈 같이 중독성이 큰 마약성 진통제의 경우, 반드시 지정된 환자만이 사용해야 하며 병원은 이런 약들이 본래 의도한 목적을 벗어나서 사용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그런데, 환자보호자에게 이런 약들의 투약을 맡기면 환자가 복용하는 지 다른 사람이 쓰는 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간호사에게 8월 7일에 남은 2알을 이야기하지 않고 병원밖으로 몰래 가지고 나가면 과연 병원은 알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병원도 이제는 환자보호자 대신 전문간병인을 많이 쓰기 시작하는 것 같다. 전문간병인은 환자보호자보다 환자 돌봄에 대한 수련과 경험이 많기 때문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환자 돌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이 아니라 환자가 직접 전문간병인을 고용해야 한다 (물론, 병원이 주선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돈을 주는 쪽은 환자이지 병원이 아니다). 병원 외부 인력을 고용하는 경우, 병원마다 다른 내규를 잘 모르기 때문에 효과적이고 안전한 환자 돌봄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또, 환자 개인정보 보호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다인실 병실이 많은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환자 개인정보 보호가 특히 더 중요하다). 그리고, 간병인은 간호 수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간호인력이 수행해야 할 역할 – 예를 들어, 약물 투여와 기록 – 을 대신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양질의 환자 돌봄을 위해 간병인의 사용과 함께 병원의 간호인력을 확충시켜야 한다.
간호인력 뿐만 아니라 약사인력도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부족하다.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 약사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미국을 방문한 약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알고 있다. 우리학교 병원은 약 700병상인데 100명이 넘는 약사가 활동하고 있다. 반면, 비슷한 규모의 우리나라 어느 대학병원에는 고작 10명정도의 약사만이 고용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학교 병원에서도 입원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은데, 이보다 약 10배나 적은 수의 약사로는 이를 담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입원환자 수 당 최소한의 약사인력을 규정하는 법률의 제정에 정부가 반대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의사 한 명당 환자 수에 대한 것은 의료진 운영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다음 컬럼에서 따로 다루기로 한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9-18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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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7> 환자보다는 의사 중심으로 보이는 대학병원 입원절차
7월말부터
어머니의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7월
중순만 해도 음식을 조금씩 드실 수 있었고 하루에 한 번 10분 정도 산책을 다녀오실 수 있었다. 하지만,
7월 마지막 주부터 구토증세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음식을 드시고 난 다음 구토를 하셨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물만 드셔도 구토를 하시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기운이 더 떨어졌으며 거동을
하기 위해서 휠체어가 필요하게 되었다.
두 가지 원인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는 심해진 황달이었고 다른 하나는 커진 암에 의해 소장이 막히는 소장폐색이었다. 황달이 심해지면 식욕이 떨어지고 구토가
생길 수 있다. 7월 중순만 해도
혈중 빌리루빈 수치가 정상보다 약간 높은 수준 (5미만)이었는데
8월초에는 20에 달하게 되었다. 피부가 너무 노랗게 변해서 휠체어를 타고
밖에 산책을 나갔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사람 황달인가봐”라고
소근거리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소장폐색은
따로 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장이 막히면 물조차도 장으로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구토 증세가
생길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완화치료 담당의사는 황달을 먼저 치료해 보자며 어머니를 먼저 진료했던 췌담도암 센터의 교수에게 진료의뢰를 넣어 주었다. 췌장암이 커져 담관을 물리적으로 막아서
생기는 황달이기 때문에 담관에 스텐트를 넣어서 뚫어 주거나, 담즙을 몸밖으로 배출하도록 인공담관인 배액관을
달아야 한다. 둘 다 가정의학과에서는
할 수 없는 시술이었다.
8월4일 금요일, 우리는 췌담도암 센터의 교수를 외래에서 다시 만났다. 11시30분쯤으로 예약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환자가 너무 많아서 12시 10분이 지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서너
번 구토를 하셔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담당의사는
입원해서 MRI 검사를 한 다음 시술을 하자고 하면서 입원날짜에 대해서는 간호사에게 알아 보라고 했다. 병실 상황을 살펴 본 간호사는 다행히
당일 퇴원하는 환자가 있어 2인실이지만 입원이 가능하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필자 : “오늘 입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간호사: “네, 4시이후에 병실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필자 :”다음주
초에는 안 될까요? 내일 미국에서 손자가 오는데 병원보다는 집에서 맞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하나밖에 없는 손자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가 집에서 만날 수 있기를 난 바랬다. 하지만,
이것이 입원을 늦춰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간호사는 말했다.
간호사 “퇴원하는
환자가 있어야 입원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주에는 입원이 가능할 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빨라야 아마 다음 주 금요일일 거예요.”
동생: “오빠, 다른 사람들과 인터넷에서 알아 보니까 대학병원에 입원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보통은 며칠 걸리고 심지어 몇 주 기다려서
입원한 사람도 많은 것 같아. 오빠
마음은 알겠는데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일주일 더 기다렸다가 어머니가 잘못되면 어떻게 해?”
좋은 기회? 미국의
우리학교 병원의 입원 제도에 익숙한 나에게는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기회라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받을 예정인 시술은 엄밀히 말하면
선택시술 (elective procedure)이다. 이 시술은 당장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자의 생명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우리학교 병원에서는 이런 경우 입원 예약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병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장 시술을 받지 않더라도, 어떻게
보면, 자리를 잡기 위해서 입원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머니는 입원 다음 날인 토요일 8월 5일 새벽에 MRI검사를
받은 후, 그 다음 주 월요일 8월7일에 시술을 받으셨다 –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그냥 병실만 지키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입원이 반드시 요구되는 검사나 시술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은 입원비를 그냥 챙길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어 보니 우리나라 대형대학병원에 입원하는 절차는 크게 세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입원예약, 둘째는 응급실을
통해서, 세째는 외래진료과를 통하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보기에는 우리학교 병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몇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먼저,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 이용하는 입원예약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 대형병원은 비싼 건강검진을 받을 때나 유명 정치인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입원할 때를 제외하고는 입원예약을 받지
않는 것 같다.
반면, 우리학교 병원은 선택시술로 입원하는 경우에도 예약을 통해 입원할 수 있다. 만약 어머니가 미국에 계셨다면 손자가 온 다음 주에 입원하도록 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로,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외래진료과가 응급실을 통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입원시킬
수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응급실로 갈 필요없이 바로 췌담도암병동에 입원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학교 병원은 외래진료과를
통해도 일단 응급실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외래 심장내과에 방문한 환자의 심부전증상이 심해져 당장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외래 심장내과는 환자를 일단 응급실에 보낸다. 그러면, 응급실의 판단에 따라 환자의 입원이 결정된다 (물론, 외래진료과가 응급실 담당의사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놓기 때문에 대부분 입원된다).
또,
우리나라 대학병원에서는 담당의사별로 입원병실 수가 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 담당의사
이름으로 일정 수의 병실이 배정되어 있어 이 의사가 담당한 환자가 퇴원하면 그 병실로 이 의사의 환자가 입원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당일 입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이 좋게도 어머니 담당의사의 환자 하나가 마침 퇴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관계자들이 응급실을
통하는 것보다 외래진료를 통해야 빨리 입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학교 병원에는 의사별로
병실 수가 배정되어 있지 않아 응급실에 온 순서대로 입원된다. 후속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이는 입원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운영방법과도 크게 관계가 있다.
이상과 같이 입원절차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병원은 환자보다는 의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외래진료과를 통하면
선택시술을 위한 입원일지라도 응급실에서 입원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를 제치고 바로 입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또, 의사 별로 병실 수가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의사의 병실이 비어도 담당의사의 병실이 비지 않으면 입원이 지연될 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한 번도
해당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없으면 입원기회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어머니가 입원하시는 동안,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다른 환자 보호자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지방에서 온
환자의 보호자 같았는데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고 한다.
벌써 한 달째 입원하는 중인데 응급실에서 보낸 3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당일 입원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9-04 10: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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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6>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6 – 처방전 검토와 약사-의사간의 소통
“어, 우루사를 한번에 세 알씩 하루 세 번으로 처방했네.”
어머니의 황달이 심해지면서 나타난 증상 중 하나가 가려움증이었다.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 심한 환자의 경우, 잠도 못 잘 정도라고 한다 – 불편해 하셔서 문헌을 이것저것 찾아 보았다. 황달은 빌리루빈이라는 노란색의 노폐물이 체내에 쌓여서 생긴다. 빌리루빈은 담관를 통해 배출된다. 췌장암이 진행되면 황달이 생기는 이유는 암이 자라서 물리적으로 담관을 막아 빌리루빈이 배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달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췌장암을 없애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이겠지만, 어머니같이 전이성 말기 췌장암의 경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일시적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는 담관에 스텐트라는 작은 관을 삽입하던가 아니면 복부에 관을 삽입하여 이를 통해 담즙을 몸밖으로 배출시키는 배액관을 다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들은 시술을 필요로 하고 어머니의 증상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약물 치료를 먼저 시도해 보고 싶었다. 약물 치료방법으로는 어소디옥시콜릭 산 (ursodeoxycholic acid; 상품명 우루사) 200 mg을 하루 세 번씩 총 600 mg 복용하는 방법이 추천되고 있었다.
어머니의 완화치료를 담당한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의사와 황달로 인한 가려움증 치료에 대한 상담을 했는데 약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서 우루사 방법을 권해 보았다. 의사도 동의하며 처방전을 써주었는데, 나중에 처방전을 받아보니 내 말을 잘못 알아 들었는지 우루사 200 mg 한 알씩 하루 세 번이 아닌 세 알씩 하루 세 번으로 적혀 있었다. 우루사 200 mg 세 알씩 하루 세 번은 흔히 쓰는 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당연히 약사가 확인해서 고쳐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약을 받아 보니 한 포에 우루사 한 알이 아닌 세 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복약지도를 받아 보니 약사는 우루사가 과량으로 처방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의약분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처방전을 여러 사람 – 의사와 약사 –이 검토하게 함으로써 실수를 줄이자는 것이다. 이 처방전 검토에는 적응증, 용량, 용법, 복용 회수, 복용 기간 등이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적응증, 용량, 용법, 복용 회수, 또는 복용 기간이 포함된 처방전을 받았을 경우, 약사는 의사에게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용방법이 아니라는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약사는 약물정보자료집이나 문헌을 먼저 살펴보고 의사에게 연락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우루사는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약사가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사에게 먼저 확인을 하고 환자에게 교부하는 것이 약사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과량이 투여되기 때문에 부작용과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복약지도에서 강조해야 한다.
대학병원 주변 조제전문약국의 예 하나만 들었지만 부실한 처방전 검토는 단순히 그 약국의 문제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전 블로그에서 다룬 내용 중 내 주변 분들이 받은 이상한 처방들은 모두 동네약국이 처방전 검토를 제대로 수행했으면 충분히 수정이 가능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치매나 간질이 없으신 이모님이 무려 1년 가까이 복용하신 뉴옥시탐정도 동네약국에서 충분히 걸러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직업인 대 직업인의 대등한 관계가 아니며 대체조제조차 쉽지 않은 갑을 관계인 우리나라 동네의원과 동네약국 사이에서 동네약국이 이상한 처방전에 대해 의사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의사가 갑으로 군립할 수 있는 것은 이상한 처방을 보내도 조제를 해 주는 약국들이 주변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약국들이 이상한 처방전을 조제해 주지 않는다면 환자가 약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는 반드시 처방을 수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약사를 대등한 직업인으로 보지 않는 의사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약사 자신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 수 있다. 변화를 일으키는 시작이 쉽지는 않겠지만 환자의 건강을 위해, 또, 처방전 검토를 통한 직업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사들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
어머니의 체중이 계속 줄어드니까 의사는 식욕을 높여 주는 메게스트롤 (megestrol)이라는 약을 처방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체중이 주는 이유는 식욕부진이라기 보다는, 췌장암이 진행함에 따라 십이지장이 물리적으로 막히게 되어 음식물을 드실 수 없기 때문으로 보였다. 또한, 메게스트롤은 현탁액 – 액체 - 였다. 그런데, 물을 조금이라도 드시면 다른 음식을 드실 수 없었기 때문에 난 메게스트롤 대신 차라리 음식을 좀 더 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메게스트롤을 어머니께 드리지 않았고 재진 때 가정의학과 의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메게스트롤을 빼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처방전을 받아 보니 여전히 메게스트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필자: “약사님, 메게스트롤을 빼고 다른 약만 받을 수 있을까요?”
약사: “왜요?”
필자:”환자에게 필요없는 약이라서요. 이거 안 드십니다.”
약사: “그런데, 그건 처방을 바꾸는 것이라 안 됩니다. 빼고 싶으시면 병원에 가셔서 처방전을 바꿔오셔야 합니다.”
필자:”제가 필요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마 잊어버리고 넣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도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요?”
약사:”네.”
필자:”거길 언제 다시 가요. 그냥 넣어 주세요. 빼고 먹으면 되니까요.”
약사말대로라면, 현행제도하에서는 처방전이 여러 약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 개개의 약을 각각의 다른 처방으로 보지 않고 모든 약들을 합쳐 하나의 처방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약 하나를 바꾸려고 하면 이는 처방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처방전을 다시 발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온라인 상으로 만난 약사의 말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지불관계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이는 좀 비논리적이며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처방은 “어느 질병에 대한 처방” 등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의미하는데, 처방전이 여러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약들로 구성되어 있으면 처방전에 포함된 모든 약을 “한 처방”으로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동네의원의 경우 환자가 처방전을 다시 들고 가서 바꾸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대학병원의 경우 약국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 않은데다가 환자들로 붐비는 병원에 다시 가서 의사를 만나고 처방전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경우, 나같이 약을 그냥 받고 집에 가서는 빼고 복용할 것 같다. 만약 환자가 복용하기 싫은 약이 급여라면 공연히 건강보험 돈을 들여 복용하지도 않고 버릴 약을 지불하는 것이 되니 경제적으로도 낭비다.
미국의 경우, 처방전에 여러 약이 포함되어 있고 어떤 약에만 문제가 있는 경우 그 약의 처방만 바꿀 수 있다. 또, 환자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약은 의사의 허락을 받지 않고 약국에서 받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약을 받고 말고는 환자의 자유인데 이를 왜 의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 대신, 어떤 약이든 처방할 때 환자가 약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확신시키는 것은 의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약사가 의사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나보고 다시 가서 처방전을 바꾸어 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소수의 의원만을 상대하는 동네약국에 비해 수많은 의사가 발행한 처방전을 다루는 대학병원 근처의 조제전문약국은 처방의와의 의사소통이 수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환자보고 다시 처방전을 받아 오라고 하는 것은 직업의식과는 좀 거리가 있다고 본다). 전화로 연락할 수 있겠지만 의사가 환자를 보고 있는 중이면 의사와의 통화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쓴 처방에 문제가 있으면 나도 약국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데 환자를 보고 있으면 난 전화를 받을 수 없다.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경우, 콜센터가 따로 있어 약국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병원의 전자차트시스템 안의 내 계정으로 보내 준다.
또, 리필 처방전이 필요한 경우에는 해당 약국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전자처방전 전달 라인을 통해 약국이 처방자의 계정으로 직접 리필 전자처방전 발행을 요구할 수 있다. 반면, 삼성서울병원은 처방의가 전자처방전을 약국으로 직접 보내지 않고 수납을 한 다음 환자가 약국을 선택해서 처방전을 보내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약국이 처방한 의사의 계정으로 직접 연락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대학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동네약국에서 받으려고 하는 경우에는 처방한 의사와 약국간의 소통이 더욱 어려울 것 같다. 약국과 처방한 의사와의 소통이 좀 더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8-16 1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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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4>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5 – 환자 중심으로 개선되어야 할 현행 의약분업제도
약국에서 약을 타는 동안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오빠, 나 상가앞 길에서 기다리고 있어.’
암병원은 삼성서울병원 안쪽 깊숙히 위치해 있는데 비해, 약국들은 병원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떨어진 아파트 상가내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주차가 쉽지 않은데다 어머니는 기운이 없으셨기 때문에 나 혼자 약을 타러 가고 동생은 어머니를 모신 차를 몰고 주변을 배회하곤 했다. 그래서, 문자나 전화로 서로의 위치를 알려 주어야 했다.
약 타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처음에는 동네 약국에서 약을 받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어 불편하더라도 대학병원 근처의 약국을 이용하기로 했다. 첫째, 동네 약국이 대학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둘째, 제너릭 약이라도 의사가 “대체조제 불가”를 적으면 동일 성분, 용량, 제형의 다른 약으로 바꿀 수 없는 우리나라의 기이한 대체조제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처방전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병원과 교류가 더 많은 병원앞 약국이 해결하는 데 편하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느 약국에 가든지 처방된 약을 받을 수 있다. 물론, 흔히 쓰이지 않는 약은 약국이 따로 주문을 하든지, 이런 약을 따로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약국 (전문약국: specialty pharmacy)을 통해서 받을 수 있다. 전문약국에서만 취급하는 약의 경우, 의사가 이런 약국으로 처방을 보내고 우편으로 약이 배달되기 때문에 환자가 약이 구비된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약국은 주변 의원들이 주로 처방하는 약을 위주로 구비해 놓기 때문에 환자는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대형 체인 약국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동네 약국들은 상대적으로 소규모이기 때문에 흔히 쓰이는 약들을 모두 구비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일 수 있다. 또, 의사의 개인적인 선호 때문에 처방된 약과 같은 계열중에서 임상적 효과가 다르지 않은 약으로 바꾸기 힘든 현실도 한 몫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차단제들은 임상적으로 서로 효과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학교 병원 약국에서는 단 2 종류만을 구비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전 만난 서울대 병원의 약사에 의하면, 과와 의사마다 선호하는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가 다르기 때문에 서울대 병원 약국은 허가 받은 20여종의 모든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차단제들을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약의 구매와 관리에 드는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병원 자원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너릭에도 상품명을 부여할 수 있는데, 현행 대체제도 하에서는 처방전에 이 상품명과 함께 ‘대체조제 불가’와 임상적 사유를 쓰면 다른 제너릭약으로 바꿀 수 없다. 미국의 동네 약국은 동일성분, 용량, 제형의 약의 경우, 일반적으로 단 한 회사의 제너릭 약만을 구비해 놓는다. 아스피린 81 mg 일반 제형의 예를 들자면, 허가받아 판매되는 수없이 많은 회사들의 제품중에서 자기 약국에 가장 싸게 공급하는 회사의 제품 하나만을 비치한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 약국은, 동일성분, 용량, 제형이더라도, 주변 의원들이 선호하는 회사의 제품들을 모두 구비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만 다양한 성분, 용량, 제형의 모든 약들을 구비해 놓을 수는 없다.
의사에게 처방받고 약국에 가서 처방된 약을 받아야 하는 의약분업은 원래 환자에게 좀 불편한 제도이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약분업제도는 환자 중심이 아닌 처방자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환자에게 더욱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병원이나 의원에서 바로 약을 탈 수 있었던 예전의 제도가 환자에게 가장 편리하겠지만 난 이 제도도 환자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의원에서 약을 타게 되면 바쁜 의사보다는 간호사가 복약지도를 할 가능성이 큰 데, 안타깝지만 간호사는 이 직능을 위해 수련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또, 처방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특히, 앞서 글들을 통해 여러 번 지적했듯이, 동네의원이 발행했건 대학병원이 발행했건 처방자의 사고과정에 의문이 들거나 실수가 많은 처방이 우리나라에는 이상하게도 많다. 따라서, 처방자가 약을 직접 주게 되면 이런 실수와 의문점들이 걸러지지 않게 되어 환자에게 해가 일어날 수 있다. 환자가 어떤 약을 그동안 사용해 왔는지에 대한 정보 – 약력(medication history) - 는 약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 중 하나다. 그리고, 이 정보는 한 곳에서 관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이다. 그런데, 환자가 여러 의원과 병원으로부터 약을 받는 경우에는 환자의 약력이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약이나 중복된 약을 쓸 수도 있어서 효과적이고 안전한 약의 사용이 어렵게 된다.
의약분업에 따른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통합적인 약력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은 동네약국이라고 생각한다. 환자 집과 가까워 접근이 용이하고 환자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약국에서만 약을 받는 경우, 환자가 그동안 사용한 약에 대한 정보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어 약력관리가 통합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Zuckerberg San Francisco General)에서는 환자가 원하는 약국에 온라인으로 처방을 보내 주고, 환자의 약력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면 그 약국으로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어느 병원에서 처방을 받든지 동네약국에서 약을 불편없이 받을 수 있는 환자 중심적인 의약분업제도로 개선해야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임상약학과 교수
2018-08-01 1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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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3>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4 –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복약지도
“항생제 처방 받으셨네요. 아침, 저녁 하루 두 번 식후 30분에 드세요.”
약봉투의 ‘아침’과 ‘저녁’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동네약국의 약사가 설명한다.
동그라미 치는데 열중하느라 내가 듣고 있는지, 보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는다. 또,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저 짧은 두 문장 말하는 게 전부였으니 복약지도에 걸린 시간은 단 10초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는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바빠서 그러나보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없었던 다음 번 방문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복약지도’하는 것으로 보아 이 약사에게 복약지도란 약봉투의 복용법란에 동그라미를 쳐 주는 것으로 보였다.
이런 주마간산격인 ‘복약지도’는 대학병원 근처 조제전문약국이라고 불리는 약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단, 말로 약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 예를 들면, 이뇨제 – 색깔있는 펜으로 이를 약봉투에 친절하게 써 주는 것이 크게 다른 점이었다.
물론, 최대한으로 효과를 얻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약복용법에 대해 말로 설명하면서 봉투에 표시를 해 주는 것은 말로만 설명하는 것에 비해 환자가 약복용법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환자가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이들의 복약지도에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첫째, 약복용법외에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약을 사용하기 위해 환자가 꼭 알아야 하는 다른 사항들, 예를 들면, 적응증, 부작용 등이 빠져 있었다. 두 약국에서는 적응증, 부작용, 약물상호작용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담은 복약안내문을 따로 주었기 때문에 아마도 약사들이 굳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습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듣기나 보기 중 하나만 하는 것에 비해 듣기와 보기를 동시에 하는 경우 학습의 효과가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복약안내문을 보면서 말로 함께 설명해 주는 것이 환자의 이해를 더 돕는 방법이다. 또, 복약안내문은 대강의 일반적인 정보만을 담고 있는데, 환자 개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환자의 상황에 맞는 정보를 제공해 주기 힘들다.
둘째, 복약지도전에 환자가 약이나 질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생략되었다. 복약지도는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돕기 위해 환자에게 약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가르친다”이다. 그런데, 위 두 약사는 약에 대해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복약지도를 끝냈다. 이는 과연 가르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학생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하면 학생은 지루해 할 것이고, 아는 것에 비해 너무 어려운 것을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약지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약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기 전에 환자가 약과 질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드시 물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 것 같기는 하지만) 처방할 때 의사가 설명했을 수도 있고, 혹시 의사가 준 정보와 다르면 환자가 혼동할 수 있으므로 보통 “의사가 이 약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했나요?” 라고 물어 보면서 복약지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동안 가르친 것을 학생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다시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하나에 대해 설명이 끝난 다음, 또는 설명할 것이 많은 약의 경우 (예, 와파린), 중간중간에 그동안 설명한 것 중 중요한 점을 환자가 이해했는지 물어 보는 것이 좋다 (teach back method). 예를 들어, 복용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지금까지A 약에 대해 설명해 드렸는데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제가 설명한 것을 잘 이해하고 계신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에 가셔서 이 약을 드실 때 하루에 몇 번 드시라고 말씀드렸나요?”라고 물어 볼 수 있다.
만약, 흡입제처럼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했다면 사용하는 것을 한 번 보여 달라고 해서 확인해 보야야 한다. 또, “지금까지 설명드린 것 중 혹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나 설명을 더 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하면서 환자에게 질문의 기회도 주어야 한다. 설명을 확인하고 질문의 기회를 주는 것은 복약지도 중간중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끝난 뒤에도 해서 환자가 약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다음 약국문을 나서도록 해야 한다.
세째,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말과 글 뿐만 아니라 눈 맞춤, 말의 속도, 동작 등의 비언어적인 부분도 중요하다. 그런데, 위 두 약사의 복약지도에는 이 부분이 간과되었다. 환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짜고짜 약봉투에 동그라미만 치면 환자가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또, 표정을 통해서 환자가 설명을 이해하고 있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설명을 하는 중간중간 환자를 쳐다 보아야 한다. 또, 말의 속도와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도 환자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너무 빨리 말하거나 너무 느리게 말하면 이해가 떨어질 수 있다. 또 중요한 부분에서는 속도를 좀 늦춰서 설명하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복잡하게 설명했지만 환자와 대화 (conversation)한다고 생각해 보면 될 것 같다. 서로 대화가 되려면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질문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눈도 마주치고 말의 속도와 억양을 상황에 따라 조절하며 적절한 제스쳐를 써 가면서 이야기해야 대화가 제대로 진행된다. 또, 상대방이 잘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되도록 쉬운 말로 풀어 쓰게 되며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면서 대화를 하는 게 보통이다. 복약지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대화하듯이 진행해야 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도록 돕기 위해 가르친다는 복약지도의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복약지도료를 건강보험에서 따로 지불해 주고 있다. 이는 약사 직역의 일부로 복약지도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인정에 걸맞도록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서, 약사들이 좀 더 복약지도에 대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
2018-07-17 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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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2>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3 – 부실한 우리나라의 암 정보 사이트
“오빠, 동행에서 봤는데 담즙 배액관을 달면 황달이 좀 나아진대.”
어머니의 황달이 점점 심해지자 동생은 인터넷을 찾아 보았나 보다.
“동행?”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암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인터넷 카페야.”
7만여명이 가입되어 있는 이 카페는 암환자와 보호자들이 치료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온라인으로 교류함으로써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좋은 카페였다. 동생은 카페에 직접 가입해서 췌장암 환자의 보호자들이 올린 글을 찾아서 읽고 새로운 올라온 글이 올라 오는지 매일 체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카페에는 검사 결과의 해석, 환자의 식사관리, 암에 대한 의학정보처럼 전문적인 공간이 개설되어 있었는데 이 공간들조차도 전문가들이 아닌 환자 보호자들이 작성, 대답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인지 의심스러웠다.
“오빠, 그래도 여기가 가장 나아. 다른 곳은 내용이 별로 없어.”
좋은 치료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암과 치료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불필요하고 때로는 해가 될 수 있는, 민간요법과 같은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환자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료진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의료진이 환자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제한되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다른 곳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국가기관과 전문가 집단의 웹사이트들이 정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기관에 따라 정보의 질이 들쭉날쭉하고 사용자 위주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와 보호자들이 정보를 쉽게 얻기에 불편하다. 국가암정보센터, 사단법인 대한암협회, 대학병원들의 암병원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췌장암의 정보를 한 번 살펴 보자.
국가암정보센터는 “내가 알고 싶은 암”이라는 곳을 통해 일반인을 대상으로100여종의 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내가 알고 싶은 암”에서는 각종 암에 대한 통계, 진단, 치료 등 기본적인 사항들을 그림과 함께 비교적 쉬운 언어로 잘 설명해 놓고 있다. 또, “암정보 나눔터”의 애니매이션들은 암치료 과정 중 겪을 수 있는 여러 부작용들을 증상별로 나누어 친근한 캐릭터들을 이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아래 사진 국립암센터 제공>
사단법인 대한암협회의 웹사이트는 기본정보, 발견 및 예방, 징후 및 증상, 치료 및 부작용, 자료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췌장암의 경우, 발견 및 예방과 징후 및 증상에 대한 정보만 제공되고 있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한암협회 웹사이트는 암치료에 관한 전문가들의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 특히, 암정보 자료실에는 암에 대한 자료는 전혀 없고 연간 기부금 사용내역 명세서들만 잔뜩 올라와 있다.
반면, 대학병원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대한암협회 웹사이트보다 좀 나아서 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얻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삼성서울병원의 암교육센터 웹사이트는 각종 암에 대한 증상, 진단, 치료, 부작용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담은 책자들을 암교육센터자료로 올려 놓고 있다. 단, 이 자료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검색이 필요하며, 웹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것보다 pdf로 올려져 있는 자료가 훨씬 더 자세하고 유용하기 때문에 pdf를 내려받아야 한다 (이 pdf 자료들은 병원 환자에게 직접 제공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국가기관과 전문가 단체가 제공하는 암정보는 정보의 전달 방식에도 개선할 점이 많다. 예를 들어, 대한암협회의 췌장암에 관한 사이트는 췌장의 구조와 역할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건만, 췌장 그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또, 어려운 용어를 불필요하게 많이 사용하고 있다. “간엽성 종양”, “선암종”, “신경내분비 종양”,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형술”, “혈청 종양지표”, “공장” 등이 예다. 삼성서울병원의 췌장암 자료는 그런대로 쉬운 말로 쓰여져 있지만 “낭성 종양”, “상피내 임종”, “림프절”, “고식적 항암화학요법”, “표재성 혈전성 정맥염” 등 여전히 어려운 용어들이 섞여 있어 일반인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전문용어를 꼭 사용해야 한다면, 처음에는 용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이해를 도울 것이다.
국가암정보센터의 웹페이지는 비교적 쉬운 용어를 쓰고 그림, 애니매이션 등을 활용하고 있지만 사용자가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지 않다. 먼저, “내가 알고 싶은 암” 페이지의 디자인은 매우 햇갈린다. 첫 페이지를 열면 그 암에 대한 요점이 한 페이지로 정리된 요약설명이 나온다. 그런데, 이 페이지 윗 부분에는 요약설명, 개요 (“암이란”), 예방, 진단, 치료, 생활가이드 등으로 연결하는 테이블이 나오는데, 이 테이블이 이런 정보들로 연결해 준다는 것이 뚜렷하지 않다 (일부 테이블은 빈칸이라 더욱 그렇다). 그래서, 국가암정보센터의 홍보실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난 요약설명만이 그 암에 대해서 제공하는 모든 정보인 줄 알았다. 또, 왼쪽 편의 “전체 암보기 아래”에 바로 “위암”, “대장암”, “폐암”, “유방암” 등 흔한 암들을 늘어 놓아서 전체 암보기에는 이 암들만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게 디자인 되어 있다. 또, “암정보 나눔터”의 애니매이션의 많은 내용이 “암환자 생활백서”와 겹치지만 두 란이 서로 하이퍼링크 (hyperlink)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사용자는 비슷한 정보를 다른 두 곳에서 따로 찾아야 한다.
반면, 미국 국가기관이나 전문가 단체는 풍부한 내용을 사용자가 찾기 쉽도록 제공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National Cancer Institute)와 미국 암협회 (American Cancer Society) 사이트에서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자세하며, 그림을 이용하고, 쉬운 영어로 쓰여져 있다. 예를 들어, 국립암센터 사이트는 췌장암에 대한 정보를 치료 (treatment), 연구 (Research), 원인과 예방 (Causes & prevention), 정기검사 (screening), 통계 (statistics), 새로운 치료법 (New directions in treatment), 대처를 돕는 일반적인 정보 (general resources on coping) 등으로 나눠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설명된 정보에 관련된 사이트로도 링크를 걸어서 정보습득이 쉽도록 돕고 있다. 특히, 페이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른 곳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사용자는 페이지를 읽은 뒤 쉽게 관심있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국가암정보 센터의 페이지는 페이지 상단에 테이블이 위치하고 있어 사용자는 페이지를 다 읽은 다음 다시 위로 올라가야 한다.
이 두 사이트외에도 국립의학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일반인들에게 의학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들라인플러스(MedlinePlus)도 개략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 괜찮다. 췌장암에 관한 사이트에는 각 항목별로 국립암센터 등 관련된 사이트들의 링크가 연결되어 있어 질문에 따라 가장 좋은 웹사이트를 알 수 있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사이트도 많은데 췌장암의 경우 췌장암 활동 네트워크 (pancreatic cancer action network)가 대표적이다. 전문가, 환자, 보호자 등으로 구성된 이 네트워크는 환자, 보호자의 경험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이 검증한 과학적인 정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환자의 정신적 후원과 지역사회의 연결도 돕고, 모금을 통해 췌장암 연구도 지원한다.
구글에서 “pancreatic cancer”를 검색하면 미국 국립암센터와 암협회의 환자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면, 네이버에서 “췌장암”을 검색하면 지식백과에 연결된 “난공불락의 췌장암”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암 알아야 이긴다” 시리즈가 나온다 (그나저나 환자와 보호자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난공불락”이라는 말은 삼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또, 구글에 “췌장암”을 검색하면 췌장암-위키백과와 췌장암을 다룬 신문기사들만 뜬다. 그런데, 국가암정보센터나 대한암협회 사이트는 네이버나 구글 검색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없다. 아마 검색회사도 이들 기관에서 제공하는 자료가 아무나 작성할 수 있는 위키백과나 때로는 상업적이기도 한 신문기사보다도 내용이 부실하거나 사용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환자들을 위해 정부기관과 전문가 단체가 분발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7-02 1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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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1>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2 – 전이성 암 환자들이 완화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2 – 전이성 암 환자들이
완화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삼성서울병원의 췌장암센터에서의 첫 진료날, 담당의사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 완화치료 (palliative care)에 진료의뢰를 넣어 주었다. 이는 서울대 병원의 의사와는 대조적인 태도였다 - 어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받던 날 동생이 완화치료에 대해서 물어 보니까 그 의사는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서 완화 치료에 진료 의뢰하는 것을 거부했었다.
내가 진단 당일부터 동생에게 서울대 병원 의사에게 완화치료에 대해 물어보라고 한 이유는, 어머니와
같이 다른 장기로 전이된 암 (전이성 암; metastatic
cancer)을 진단받은 경우, 초기부터 종양치료와 더불어 완화치료를 함께 받는 것을 고려하라는
미국 임상종양학회의 권고 때문이다. 이는 종양치료만을 받는 것과 비교했을
때 완화치료를 치료초기부터 함께 시작할 경우, 수명 증가, 삶의
질 증진 등의 치료 결과가 더 좋다는 임상시험들의 결과보고에 근거한다.
삼성서울병원 담당의사가 진료의뢰를 넣은 당일 오후, 우리는 완화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를 외래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난 가정의학과 (Family Medicine)가
완화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좀 의아했다.
왜냐하면, 내가 일하는 클리닉이 가정의학과 소속이라 미국에서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 미국에서 가정의학과는 가족과 지역사회의료 (community medicine)를 강조하며, 일차의료 (primary care)를 담당한다. 따라서, 가정의학과가 완화치료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따로 독립된 완화치료과 (Palliative Care Service)가 있어 여기에서 완화치료를 제공한다. 어머니가 완화치료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우리나라 여러 병원들에서 제공하는 완화치료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완화치료과가 따로
있는 병원은 없어 보였으며 대신 종양의학과나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차의료라는 것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정의학과가 일차의료만을
담당해서는 존립이 어려워 완화치료로도 진료영역을 넓힌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미국과 같은 수준의
전문적인 완화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진료를 받기 전에 좀 걱정되었다.
삼성서울병원의 완화치료 센터는 췌담도암 센터에 비해 훨씬 한산했다. 진료실 앞에 걸려 있는 예약환자 리스트를 보니, 10분 단위로 3-4명이 예약되어 있었던 췌담도 센터와는 달리, 단 1-2명만이 예약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정의학과 의사는
어머니를 거의 10분동안 볼 수 있어서 우리는 증상완화를 위한 약물치료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첫째, 췌담도암 센터 담당의사가 복수 증상 완화를 위해 처방한 퓨로세마이드 (furosemide)에 의한 저칼륨혈증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스피로노락톤(spironolactone)을 처방하기로 했다. 스피로노락톤은 칼륨이 오줌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줄여 혈중 칼륨의 농도를 높인다. 또, 이
약은 퓨로세마이드와 함께 간경변에 의한 복수의 치료에도 사용하기 때문에 난 이 계획에 동의했다. 또, 가정의학과 의사는 혈중
전해질 검사 오더를 넣어 주어 다음 주에 어머니의 혈중 칼륨을 검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둘째, 가정의학과 의사는 통증의 정도, 부위, 빈도를 묻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통증약인 트라마돌/아세트아미노펜 (tramadol/acetaminophen) 효과 등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았다. 어머니께서
한 알씩 하루에 네 번 드시면 통증이 그런대로 조절된다고 하셔서 바꾸지 말고 그대로 쓰자고 해서 동의했다.
셋째, 변비약에 대해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비사코딜(bisacodyl)을 그대로 사용하자고 했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환자와 가족들의 호소와 우려에 대해 잘 들어 주었고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내가 의사라고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재진에서 어머니에게 “의사인 아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약물 치료에 관련한 결정을 할 때 나의 의견과
동의를 구했다. 진료실에는 레지던트인
듯한 다른 의사도 함께 앉아 있었는데 (삼성서울병원에서는, 다른
직종과는 달리 의사들은 금빛 뱃지로 된 명찰을 달고 다니기 때문에 의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분이 차트를 작성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가정의학과 의사는 진료동안 내내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완화치료 진료를 마쳤을 때, 지금까지 대형병원에서 받은 어떤 진료보다 가장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나올 수 있었다. 또, 어머니와 동생도 의사가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환자와 가족의 의견을 구하고 치료에 대해 설명해 준 것에 대해
고마와했다.
어머니 예에서 보듯, 병원에서 의료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러 과와 직역간의 협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소화기 종양내과의사같이 내시경 등의 시술 (procedure)과
항암치료가 주 전공인 경우에는 완화치료와의 협진을 통해 약물치료에 관한 실수를 줄이고 증상완화를 위한 약물을 좀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큰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환자로 그렇게 붐비던 외래 암센터에 비해 완화치료 진료 대기실은 한산한 것으로 보아, 아직 많은 전이성 암환자들이 완화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삼성서울병원 담당의사에게 완화치료 진료의뢰를 직접 요구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도 완화치료의 혜택을 빨리 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따라서, 병원들이 종양내과와
완화치료와의 협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전이성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암교육 프로그램에도 완화치료를 포함시켜 좀 더 많은 환자들이
완화치료의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6-18 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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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40>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1 – 실수가 많은 대형병원 의사들
7월14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섰을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건너편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숲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숲이 바라다 보이는 창아래 놓여 있는 의자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좁고 바글바글했던 서울대 암병원보다 널찍해서
사람이 많았어도 덜 붐벼 보였다.
암환자 초진은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먼저 초진안내 데스크에서 자원봉사자를 만나서 접수해야 했다. 자원봉사자는 명예교수 뱃지를 달고 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웃으면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우리에게서 받은 서울대 병원의 영상기록을 병원 시스템에 등록한 다음, 자원봉사자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몸무게, 키, 혈압을 기계로 재서 기록하고
췌담도암 센터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로비가 비교적 여유로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췌담도암 센터는 환자들로 매우 붐볐다. 대기실 의자가 충분치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서서 기다려야만 했을 정도였다. 어머니 담당의사의 진료실 앞에는 당일
진료받을 환자들 리스트가 고지되어 있어서 볼 수 있었는데 난 그 엄청난 숫자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전 8시 40분부터 11시 10분까지
2시간 30분 동안의 공식적인 진료 시간동안 무려 50명의 환자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12시까지 진료한다고 가정한다하더라고 환자 1인당 4분이 채 안되는 진료 시간이다. 서울대 병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평균 진료 시간이었던 것으로 보아 거의
모든 대형병원들이 중증 환자 한 명 보는데 3-4분 정도만 할당하나 보다.
1주일전
서울삼성병원에 예약전화를 걸었을 때 바로 다음 날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난 꽤 의아해 했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진료를 그렇게 빨리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클리닉조차도 의사로부터 진료의뢰를 받은 다음, 환자를 보기까지 보통 2-4주는 걸리는데 이는 다른 클리닉보다 좀
빠른 편에 속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다음날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서울대 병원에서 받을 자료 준비로 인해 진료예약을 1주일 미루어야 했지만 난 이 빠른 속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세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담당의사는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의사와 간호사 둘이 진료실에 있었던 서울대 병원과는 달리 담당의사 옆에
여자 한 분이 더 앉아 있어 총 3명이 진료실에 있었다. 이 분은 담당의사가 진료하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컴퓨터에 적으면서 약처방과 검사 오더 등을 도와주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수련의사가 지도교수와 함께 외래환자를 보기 때문에 난 처음에
이 분을 수련의사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으니 진료를 도와주는 직원이라고 한다.
의무기록을 혼자 검토하고 작성하느라 바빠서 환자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서울대 병원의 의사와는 달리 도와주는 직원이 있어서 그런지 삼성서울병원의 담당의사는 진료시간 내내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억양과 전반적인 태도가 신경질적이었던 서울대 병원의 의사와는 달리 삼성서울병원의 담당의사는 친절했다. 하지만,
짧은 진료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전공이 내시경적 치료라 그런지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약물치료에서
많은 실수를 했다.
의사: “저희한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요?”
우리로부터 그동안의 췌장암의 진단과정과 어머니가 더 이상 항암제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대 병원의 영상기록을 검토한
후 담당의사가 질문했다.
필자: “어머니께서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셨지만 암의 진행에 따른 통증, 복수 등에 대해서는 치료를 받고 싶습니다.”
의사: “3주전에
찍은 서울대 병원에서 영상을 보니 복수가 차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군요.”
어머니: “그런데, 복수가 그동안 더 는 것 같아요. 숨이 차지는 않지만 누워 있을때 불편해요.”
의사: “복수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사기로 뽑기는 그렇고 이뇨제를 한 번 써 봅시다. 그런데, 암에 의해 생긴 복수라서
이뇨제가 잘 듣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일주일 써 보면서 효과가 있나 살펴 보죠.
일단 하루에 반 알씩 드셔 보세요.”
필자: “퓨로세마이드
(furosemide) 말씀하시는 거죠?”
의사: “예.”
필자: “반 알이라
하면 10 mg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의사: “그렇습니다.”
하지만, 수납을 하고 나중에 원무과로부터 교부받은 처방전에는 반 알이 10 mg이 아닌 20 mg 였다 (즉, 한 알이 40 mg). 용량에만 실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퓨로세마이드는 혈중 칼륨 농도를 낮춘다. 그래서, 보통 약을 시작하기
전과, 약을 시작한 후 1-2 주 후에 혈중 칼륨 농도를
체크한다. 담당의사와의 진료가
끝나고 난 어머니의 혈중 칼륨 수치가 궁금해졌다.
진료일 전에 서울삼성병원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세지에 따라, 혹시 받을 지 모를
검사를 위해 어머니는 진료일 전 날 저녁이후부터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다.
그런데, 진료당일에는 아무런
검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당일 어머니의 혈중 칼륨 수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지고 온
서울대 병원 의무기록이 생각이 나서 찾아 보니 약 20일 전 어머니의 혈중 칼륨 수치는 3.5 mmol/L였다. 이는 정상 범위 (3.5-5.0
mmol/L)의 가장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만약 이 수치를 유지한 채로 퓨로세마이드를 시작하게 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저칼륨혈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당의사는 칼륨 보충제를 처방하거나 혈중 칼륨 수치를 모니터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따로 오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 “어머니가
통증약으로 그동안 울트라셋 (Ultracet: 트라마돌 (tramadol)과
아세트아미노펜 (acetaminophen) 복합제) 한 알을
하루에 4번씩 드셨는데 이제는 잘 듣지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센 통증약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을까요?”
의사: “그럼 세타마돌을
한 번 써 보죠.”
난 우리나라 의약품의 상품명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었다.
필자: “세타마돌의
성분이 뭐죠?”
의사: “코데인 (codeine)과 아세트아미노펜입니다. 한 알을 하루에 4번씩 드세요. ”
그런데, 진료가 끝난 다음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니 세타마돌은 울트라셋과 똑같이 트라마돌과
아세트아미노펜의 복합제였다. 각
성분의 양도 37.5 mg과 325 mg으로 동일했다. 기억이 잘 안 나면 찾아봐야 하는데 그냥
대답했던 것이다 (그런데, 옆에 앉아서 컴퓨터에 처방 오더
넣는 일을 도와 주시던 분은 세타마돌에 코데인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었다). 또, 코데인은 트라마돌과 같이
비교적 약한 진통제에 속하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췌장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는 좀 더 강한 모르핀 (morphine)이나
옥시코돈 (oxycodone) 등을 쓰는 것이 좀 더 적절했을 것이다.
필자: “어머니가
변비가 있으세요. 그런데, 코데인은 변비를 일으키잖아요. 서울대 병원에서 락툴로스 (lactulose)를
처방받으셨지만 드시지 않고 그동안은 둘코락스 (Ducolax: bisacodyl)를 하루에 2알씩 드셨어요.
처음에는 한 알을 드셨는데 한 알은 별로 효과가 없고 두 알을 드셔야 변을 보십니다.”
의사: “둘코락스는
가장 센 변비약이예요. 그러니, 락툴로스를 먼저 써 봅시다.”
네? 가장 센 약을
한 알도 아닌 두 알을 먹어야 효과가 있는데 더 약한 약으로 바꾸자고요??
다행히 오후에 완화치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위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만약, 완화치료 진료를 당일에
받을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손에 땀이 난다.
서울대 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은, 미국처럼
몇 주 기다리지 않고, 아픈 환자가 예약전화한 다음 날에 바로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의료접근의
효율은 높지만 의료의 질은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것 같다. 두 병원에서 만난 의사들은 모두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만날 때마다 거의 매번 진단이나 처방에서 실수가 발생했고 어떤 실수는 너무 기본적인 것을 놓친 것이어서 대형병원의 경험많은
의사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왜
이런 실수들이 가장 믿을 만하다는 대형병원 의사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일까? 대형병원들이 효율을 위해 기본을 너무 간과하는 것이 아닐까?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6-05 1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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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39>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10 –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약
“이모님, 지금 무슨 약 드시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좀 봐 드릴께요.”
77세로 고령이신데다가
우리집과 비교적 먼 거리에 떨어져 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이모님은 우리집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해서 말기암에 걸린 동생을 위로해 주셨다. 전에 이모님이 심방세동 (atrial fibrillation)으로
와파린 (warfarin)을 드시고 계신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모님이 복용하고 계신 약에 대해서
조언해 드리고 약물상호작용도 체크해 드리고 싶었다.
“이게 내가
먹는 약들이야”.
이모님이 주신 리스트에는 5개의 약들이 적혀 있었다.
아스피린 (Aspirin) 100 mg 하루에 한 번
심바스타틴 (Simvastatin) 20 mg 하루에 한 번
졸피뎀 (Zolpidem) 5 mg 취짐전에 한 번
에티졸람 (Etizolam) 0.5 mg 취침전에 한 번
뉴옥시탐정 (성분명: 옥시트라세탐, oxytracetam) 800 mg 하루에 두 번
이모님이 건강하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예상보다 많은 종류의 약을 드시고 계셔서 좀 놀랐다. 이모님께 드린 상담 내용이 비교적 길어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각각의
약에 대한 상담 내용을 적응증 별로 나누어 정리해 본다.
1) 아스피린
“이모님, 와파린은 안 드세요?”
“응, 의사가 아스피린으로 바꿨어.”
“위장출혈같은
출혈로 입원하신 적 있으세요?”
“아니.”
“의사가
왜 아스피린으로 바꿨는지 아세요?”“아니. 그냥 바꿨어. 왜?”
“이모님은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있으시죠?”
“응, 그래.
의사가 그랬어.”
“의사가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있으면 왜 아스피린이나 와파린을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나요?”
“기억이
안나.”
“이모님이
가진 종류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심방세동이라고 불러요.
심장에는 네 개의 방이 있잖아요 - 위에 두 개, 아래 두 개.
위에 있는 두 개의 방을 심방이라고 하고 아래에 있는 방들을 심실이라고 불러요. 심장에서 피는 위의 심방을 거쳐 아래에 있는 심실로 내려 가죠. 그런데,
심방세동에 있으면 심방이 제대로 수축을 못해서 피가 심실로 잘 내려 가지 않아요. 그렇게 되면 심방에 피가 고여 있게 되요. 그런데,
피가 고여있게 되니 피딱지인 혈전이 생기기 쉽죠. 그리고, 이 혈전은 심방에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심실로 내려갈 수 있어요.
그런 경우, 심실은 동맥으로 전신의 피를 공급하니까 심방으로부터 내려온 혈전이
동맥을 따라 뇌로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뇌에 있는 혈관이 막히게 되죠. 이게 중풍이예요. 다시 말하면, 심방세동은 혈전을
만들어 뇌 혈관을 막히게 해서 중풍을 일으킬 수 있어요. 그래서, 심방세동이 있는 환자들은
혈전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약을 복용해야 해요.”
“그렇구나. 그래서,
아스피린을 먹는 거야?”
“예. 아스피린 같은 약을 항혈소판제라고 불러요. 혈소판은 우리 혈액에 있는 성분으로 피가 났을 때 서로 엉겨붙어 혈전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그런데, 항혈소판제 말고도 항응고제라는 약들도 있어요. 예전에 드셨던 와파린이 항응고제죠. 혈전을 만드는데에는 혈소판 외에도 혈액이 응고하는 데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효소들이 필요해요. 항응고제는
이런 효소들이 작용하는 것을 막죠. 그런데,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를 비교해 보면 심방세동에서는 항응고제가 혈전을 막는데에 있어 더 효과적이예요. 반면, 출혈의 위험은 더 높죠.”
“그러면
뭘 써야 해?”
“심방세동
환자들은 모두 다 똑같은 정도로 혈전의 위험이 있는 게 아니예요. 어떤 분은 높고 어떤 분은 낮죠. 그런데, 이 위험의 정도는
나이, 성별에 따라, 또 고혈압, 당뇨병 같은 동반질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미국 심장학회와 심장내과학회는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혈전을 방지하는 약을 고르도록 권고하고 있어요. 혈전 위험이 높지 않으면 아스피린을 써도 되고, 높으면 항응고제를 권하고 있어요. 이모님같이 출혈의 위험이 높지 않고, 연세가 75세 이상이며 여성인 경우, 미국에서는 항응고제를 씁니다.”
“그럼 항응고제로
바꿔야 하는 거야?”
“나라마다
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지만 의사랑 한 번 이야기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알았다. 의사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2) 심바스타틴
“심바스타틴은
왜 드세요?”“콜레스테롤이 높대. 그런데, 금년에 내가 건강검진 받았을 때 나쁜 콜레스테롤은 80이라고 했어.”
“그 정도면
괜찮네요. 심바스타틴 드시기 전에는 나쁜 콜레스테롤이 얼마였는지 기억하세요?”
“아니.”
“심바스타틴 20 mg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한 30%에서 50% 정도 떨어뜨리니까 복용 시작전의 수치와 비교해서 이 정도 낮춰졌으면 약이 잘 듣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근육 통증 같은 것은 없으시죠?”“없어.”
“제 생각에는
그냥 계속해서 드시면 되겠어요.”
3) 졸피뎀과 에티졸람
“졸피뎀은
왜 드시는 거예요?”
“응, 내가 불면증이 있거든. 그래서, 오랫동안 복용해왔어.”
“잘 들어요?”
“응. 이거 먹으면 잠 잘 자. 그런데,
예전에는 10 mg을 잠자기 30분전에 먹었는데
한 2년 전엔가 5 mg으로 줄이더라고. 대신,
에티졸람이라는 것을 졸피뎀과 같이 먹으라고 하면서 줬어.”
“그럼 졸피뎀 5 mg하고 에티졸람 0.5 mg을 주무시기 전에 같이 드시겠네요?”
“맞아.”
“아침에
피곤하고 그렇지 않으세요?”
“그렇지는
않아. 왜?”
“에티졸람은
밤에 잤더라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곤하게 느낄 수도 있거든요. 또 기억이 잘 나지 않게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연세 많은 분들에게는
넘어질 수 있는 위험이 커서 노인들에게는 사용을 피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
“에티졸람없이
졸피뎀 5 mg만 드셔본 적은 있으세요?”
“없어.”
“졸피뎀은
그동안 10 mg을 써 왔었어요. 그런데, 약 3년전에 미국의 식의약품 안전청에서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그동안의 임상 데이타를 분석했어요. 이 분석에서 남성환자와 달리 여성 환자에게
졸피뎀을 10 mg으로 주게 되면 혈중농도가 너무 높아져서 부작용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그래서,
2014년 12월에 미국 식의약품 안전청은 여성 환자에게 졸피뎀을 사용할 경우 하루에 최고 5 mg만 주도록 허가사항을 바꿨어요. 우리나라 식약청도 미국 식약청에 따라 졸피뎀 허가사항을 바꿨는데 이모님
의사도 아마 이에 따라 졸피뎀 용량을 줄인 것 같아요.”
“그럼, 에티졸람은 필요없는 거야?”
“그렇게
보여요. 아마도 의사가 여성환자에게
왜 졸피뎀의 최고허가 용량을 줄이게 되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식약청에서
용량을 줄이라고 해서 줄였으니 다른 약을 더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준 것 같아요.”
“그러면
에티졸람을 그만 먹을까?”
“에티졸람과
같은 약을 갑자기 끊게 되면 잠이 안 오게 될 수 있으니 1주일 동안은 반 알만 드신 다음 완전히 중단하세요.”
“알았어. 그렇게 해 볼께.”
4) 뉴옥시탐정
“얘야, 그런데 뉴옥시탐정은 뭐니? 의사가 작년 8월에 딜티아젬 (diltiazem)에서 바꾼 거야.”
“예?? 딜티아젬과 뉴옥시탐정은 같은 용도로 쓰이는 약이 아닌데요. 딜티아젬은 심방세동에 쓰이고 뉴옥시탐정은 치매, 간질에 쓰이거든요.”
난 이모가 치매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모에게 여쭤보았다.
“이모, 간질 있으세요?”
“아니.”
“그러면, 의사가 뭐라고 하면서 뉴옥시탐정을 주었어요?”
“아무 말
없었어. 난 딜티아젬과 같이 심장약인 줄 알았는데. 의사에게
가서 물어 봐야 겠네.”
난 너무 황당해서 의사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알아보니 그 의사는 조선일보 명의 시리즈에
실린 분이었다. 유명한 의사이니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그로부터 약 2주쯤 지나서 이모의 약이 궁금해서 여쭈어 보았다.
“이모, 에티졸람은 어떻게 하셨어요?”
“네 말대로
반 알을 1주일 먹고 끊었어.”
“잠은 잘
주무세요?”“응. 졸피뎀만으로도 잠 잘 자고 있어.”
“잘 되었네요. 근데 의사는 만나 보셨어요?”
“응. 의원에 가서 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 접수를 하고 간호사에게 뉴옥시탐정이 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뇌영양제래. 그래서 내가 뇌영양제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왜 주었냐고 물으니까 뇌건강을
위해서 원장님이 주신 것 같다고 하더라고.
기가차서. 달라고
한 적도 없는 것을 왜 주었는지 몰라. 원장을
만나 물어보니 자기가 처방을 해 놓고는 내가 하루에 몇 번 복용하는지도 모르더군. 치매도 없고 간질도 없는 나한테 왜 처방했느냐고 따지니까 한다는 소리가
그 약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약이래.”
“의사가
그런 소리를 해요? 드셔도 되고
안 드셔도 되는 약이면 왜 처방했대요?”
“거기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더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 처음 처방하던 날 뉴옥시탐정이 의사 책상에 놓여져 있었고 그걸 보고 처방한거 같아.”
“그럼 아마
제약회사 직원이 다녀간 다음인 것 같군요.”
“그럴지도
몰라. 생각할수록 괘씸해. 나도 찾아보니까 뉴옥시탐정은 수면장애도
일으킬 수 있대. 불면증있는 사람한테
그런 약을 주다니. 그래서, 더 이상 안 먹겠다고 하고 그냥 나왔어. 그리고, 병원도 바꿀 생각이야.”
“잘 하셨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나한테만 있겠니? 환자들은 잘 모르니까 의사들은 돈벌려고 자기 맘대로 하는 것 같아.”
이모는 약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내셨다.
“또, 약국에 가서 뉴옥시탐정은 심장약도 아닌데 왜 나한테 조제해 주었냐고 물어 보니까 약사가 자기도 그 약이 심장약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처방의사와의 관계 때문에 그랬다고 그래. 그러면서, 약사는 나한테 기억력이
좀 좋아지지 않았냐고 묻더라. 웃기지도
않아. 환자보다는 처방전 줘서
돈 벌 수 있게 해 주는 의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가 봐. 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5-21 1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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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38>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9 – 암환자와 가족들을 혹하게 하는 민간요법
“ 이거 효험이 있다고 하니 한 번 해 보렴.”
7월 어느 날 무더웠던 한낮, 외삼촌이 카톡 메시지를 보내셨다. 메시지에는 부추와 요구르트로 말기 췌장암 환자가 완치되었다는 내용을 담은 블로그가 연결되어 있었다 – 블로거의 할아버지가 서울대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었는데 매일 노지 부추와 요구르트를 믹서에 함께 넣고 갈아서 마셨더니 암이 다 없어졌더라는 이야기였다.
증거에 입각한 치료 (evidence-based medicine)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는 검증되지 않은 방법을 이용하는 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신 어머니는 한 번 해 보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고지식한 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 부추와 요구르트는 음식이니 적어도 해는 끼치지 않을 것 아니야. 그러니 한 번 해 볼까? 어머니는 나와 같이 나가서 재료를 사오고 싶어 하셨다. 아마 노지 부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들을 믿고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런데, 난 걱정이 되었다. 체중이 거의 10 kg이나 빠지고 물도 잘 드시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바깥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열기가 좀 식는 저녁무렵에 나가서 사오는 게 좋지 않을까? 어머니도 이 계획에 동의하셨다.
기운이 없으신 어머니는 저녁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주무셨다. 그동안 난 그 블로그를 다시 찬찬히 읽어 보며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환자인 할아버지는 항암주사 치료를 받는 동안 노지 부추와 요구르트 요법을 쓰고 계셨구나. 가만 있자.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은 면역기능이 떨어지니까 익히지 않은 생야채나 생과일을 먹으면 안 되잖아?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생야채인 부추를 계속 드시고 계셨네?! 그럼 심각한 감염에 걸릴 수 있을텐데…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떤 의도로 썼는지 모르지만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거짓말을 하다니!! 지금도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화가 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꽤 인기가 있는지 수없이 많은 블로그와 카페에서 인용하고 있다.그런데,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소개받은 민간요법은 단지 부추와 요구르트에 국한되지 않았다 – 말기 폐암 환자가 시도해서 폐암이 완치되었다는, 우유와 계란은 피하고 감자, 고구마와 야채만을 이용한 식단 (그런데, 우유와 계란이 암세포를 더 잘 자라게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올리브유에 볶은 토마토 (다른 기름에 볶으면 효과가 없단다), 어떤 말기암 환자를 완치시켰다는 쑥과 비름나물 요법 등등. 소개해 주신 분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모두 다 한 번씩은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물도 마시기 힘든 췌장암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결국은 내가 다 소비해야만 했다.그래도, 차가버섯은 어머니께서 가장 오랫동안 시도해 본 것이었다. 친한 친구분이 러시아에서 제조된 차가버섯 가루를 사오시면서 너무나 간곡하게 권유하셨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차가버섯 상품들은 면역강화, 항암효과 등을 광고하고 있었는데 꽤 인기있는 건강기능식품으로 보였다. 문헌을 검색해 보니 차가버섯의 항암작용을 보고한 논문들이 좀 있었다. 주로 러시아, 중국, 우리나라 등에서 발표한 논문들로 모두 배양된 암세포를 이용하거나 쥐 등 동물을 이용한 실험결과들이었다. 하지만,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항암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차가버섯은 여러가지 제제로 팔리고 있었다 - 버섯 자체로 파는 것도 있었고 캡슐로 되어 복용이 편리한 것도 있었으며 친구분이 사오신 것처럼 가루로 된 제제를 물에 타서 복용하는 것도 있었다. 직업이 약사인지라, 차가버섯 가루 물을 만드는 일은 내가 도맡았다. 그런데, 만들 때마다 항상 궁금한 점 몇 개 있었다.
1)얼마나 많은 양의 물에 얼마나 많은 양의 버섯가루를 넣아야 할까?
2)얼마의 양을 얼마나 자주 드려야 하나?
어떤 물질이 약으로 효과를 내려면 적절한 용량과 횟수로 복용해야 한다. 너무 적게 복용하면 효과가 없고 너무 많이 복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허가받은 약들은 임상시험 결과에 따라 효과는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용량과 횟수로 사용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용량과 횟수는 암세포 배양시험나 동물시험에서는 알 수 없고 반드시 임상시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암세포 배양시험이나 동물시험은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사용하는 용량보다 훨씬 많은 용량 - 보통 몇 배 이상 - 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적절한 용량과 복용횟수는 대상 환자에 따라서, 또, 제형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항암제라도 대장암환자냐 췌장암환자냐에 따라 용량과 횟수가 다를 수 있다.
또, 같은 종류의 암을 가진 환자라도 제형에 따라 흡수 속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용량과 복용 횟수는 제형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차가버섯을 가공하능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제형이라도 제조사에 따라 주요 성분의 함량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제조사마다 알맞은 용량과 횟수가 다를 수 있다. 차가버섯의 알려진 부작용으로는 신장결석이 있다. 문헌보고에 의하면 일본의 한 간암환자가 차가버섯 가루를 하루에 찻숫갈 4-5술의 용량으로 6개월 동안 복용해서 발생한 신장결석때문에 신장투석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이는 차가버섯에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옥잘레이트 (oxalate)라는 성분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품이라 안전한 줄 알았지만 너무 많이 복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따라서, 신장결석 등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머니께 너무 많이 드리지도 너무 자주 드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런데, 차가버섯은 임상시험 연구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난 차가버섯 가루물을 어떤 농도로 만들어서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자주 드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차가버섯 가루 상품의 설명서에는 얼마의 양을 얼마의 물에 녹여 얼마의 양으로 얼마나 자주 복용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임상시험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지시를 따랐어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다행히, 차가버섯 가루물은 어머니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어머니께 뭔가를 해 드리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을 빼고는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효과를 찾을 수도 없었다. 약으로 허가를 받으면 상업적으로 더 큰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가버섯이 민간요법에 머무르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5-04 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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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37> 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8 – 의사소통 수단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의무기록
“의무기록에
모든 정보가 다 있으니 이를 그대로 다른 병원에 주면 돼요.”
담당의사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런데, 막상 서울대 병원에서 의무기록을 받아 보았을때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의료진이 작성한 기록이 부정확, 불명확, 비논리적이어서 전문가들이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서울삼성병원으로 옮겼을 때 담당의사가 서울대 병원 의사나
다른 의사가 쓴 기록은 읽지도 않고 검사결과만 보았나 보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기록하는, 소위 차트라고 불리는 것은 SOAP
노트 (note)이다. SOAP은 여기서는 비누가 아니라 Subjective, Objective, Assessment, Plan의 첫 글자로 노트를 구성하는 네 부분을 각각 지칭하는 약자이다. Subjective (주관적) 부분에는
환자가 의사에게 호소하는 것 - 예를 들면, 증상 – 을, Objective (객관적)
부분에서는 의사가 관찰한 것 – 예를 들면, 검사결과 - 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정보 – 환자의
주관적인 것과 의사가 관찰하고 검사한 객관적인 것 –을 바탕으로 환자의 상태를 평가 (Assessment) – 진단 – 하고, 이에 따라 계획 (Plan)을 세운다. 이처럼 SOAP 노트는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평가하고 계획을 짜는 논리적인 글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작성자의 임상적
사고과정 (clinical reasoning)을 알 수 있다.
SOAP 노트는
작성자와 다른 의료진과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보통, 환자를 오랜 기간동안 여러 번에 걸쳐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 재진) 작성자는 SOAP노트를 통해 과거의 환자 상태와 치료 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음으로써 현재 환자 상태와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환자를 다른 의료진에게 진료의뢰할 경우, SOAP 노트는 그 동안의
환자 상태와 치료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수단이다. 그래서, 난 환자를 보기 전에
내가 이전에 쓴 SOAP 노트와 다른 의사들이 쓴 SOAP 노트를
반드시 읽어 본다.
이처럼 SOAP 노트는 임상에서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기 때문에 SOAP 노트에 담긴 정보는 정확해야 한다. 또, 명확하게 기재하여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작성자의 임상적 사고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노트가 부정확, 불명확하거나
작성자의 사고과정을 이해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환자의 상태와 치료 방법에 대해 오해할 수 있어 환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어머니가 담당의사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이었던 7월 6일에 쓰여진 의사의 SOAP 노트를
살펴보자.
담당의사의 7월6일자 SOAP 노트
먼저, Subjective부분 - S)라고 시작하는 부분 – 을 보자. 단 두 줄로 되어 있다는 것이 먼저 눈에
띈다.
“Indigestion
Epig pain after food 3MA wt loss
7 kg DM: - anorexia –“
또 하나 특징은 문장이 아닌 단어만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아는 어머니의 상태와 그날의 기억을 통해 해석해 보기로 한다.
소화불량 (indigestion)
윗배 (epig = epigastric) 통증(pain) 음식을 먹은 다음 (after food) 3 개월 (month의 약자로 보통은 mo를 쓴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아 MA는 month를 말하는 것 같다) 체중감소 (wt loss = weight loss) 7kg. DM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DM은
일반적으로는 당뇨병 – diabetes mellitus – 의 약자로 쓰지만 어머니는 당뇨병이 없었으므로
여기서는 다른 뜻인 것 같다). 식욕부진 (anorexia).
이를 바탕으로 담당의사가 의도했다고 생각한 것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면 환자는 지난 3개월동안 음식을 먹은 뒤 상복부 통증이 있어 왔고 이로 인해 체중이 7kg빠졌으며 식욕도 떨어졌다.
담당의사가 영어로 썼으니 영어문장으로 바꾸어 보면, The patient complains of epigastric pain
particularly after eating, which has been ongoing over the last 3 months. During this time, she has lost 7 kg and
developed anorexia.
문장으로 쓰니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은가?
단어들만 나열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볼 때 작성자 자신조차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국에서 내가 본 모든 SOAP 노트들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도 문장으로 작성한다.
그런데, 이 기록은 정확할까? 우리나라 의료경험기 7에서 기술했듯이 7월 6일 방문에서 어머니가 의사에게 호소한 것들은 1) 항암제를 맞은 후
속이 더 안 좋아져서 더 이상 맞고 싶지 않다; 2) 거리가 멀어서 병원을 바꾸고 싶다; 그리고 3) 진통제, 위장관
운동 촉진제, 췌장효소제를 충분히 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음, Objective부분을 살펴본다. 담당의사는
Objective 부분에 세 가지 검사 (CT, 간과 췌장
조직, 췌장암 지표) 결과와 어머니가 2주전에 맞은 항암제 이름과 용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7월 6일 당일 어머니는 혈구수 측정 (Complete Blood Count -
CBC) 등의 새로운 혈액 검사를 받았고, 담당의사가 그 결과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이 기록은 빠져있다. 또, 미국의 SOAP 노트에는Objective 부분에 검사 결과 뿐만 아니라 바이탈과 촉진, 청진 등으로 의사가 수행하는
physical exam이라 불리는 검사결과도 함께 기록하지만 이 둘은 하지 않았으므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복수가 있었기 때문에 복부 physical exam을 해서 그 결과를 기록해 놓았으면
재진 때나 다른 의료진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평가와 계획 부분은 함께 묶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노트에서도 Assessment
& Plan로 함께 묶어 놓았듯이 둘은 논리적으로 서로 밀접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먼저, A)로 시작하는 평가 부분을 보자.
“panc Ca
body 53mm with liver 2017. 6. 22
GemAbrax
PV invasion with E. varix
Ascites SAAG 3.8-1.4”
이를 Subjective부분에서 썼던 방법으로 풀어보면 환자는 췌장 (panc = pancreas)의 몸 (body)
부분에 크기 53 mm의 암 (Ca = cancer)이
있으며 이는 간 (liver)으로 전이되고 간문맥 (PV =
portal vein)으로도 침윤 (invasion)되어 식도에는 정맥류 (E. varix = esophageal varices)가 발생되어 있다. 그리고, 복수 (ascites)가 있으며 혈청과 복수 알부민 농도 차이 (SAAG =
serum to ascites albumin gradient)는 2.4 (= 3.8-1.4)였다. 또, 환자는
2017년 6월 22일에
Gemcitabine과 Abraxane을 맞았다.
P)로 시작하는
계획 부분을 보면
“Reject
chemo Tx BSC 진단서”
이는 아마도 “환자는
항암치료 (chemo Tx)를 거부했고 진단서를 달라고 요청했다” (BSC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인 것 같다.
평가부분에는 Objective부분에 들어가야 할 검사결과 (SAAG)가 들어 있어 혼동을 준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문제점
요약 (problem representation)이 들어가야 하는데 빠져 있다는 것이다. 임상 사고과정에 관한 이론 (clinical reasoning theory)에 의하면 주관적,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어떻게 요약하느냐에 따라 진단과 치료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문제점을 요약하는 능력은 비유하자면 흩어져 있는 여러 그림 조각들 (즉, 주관적, 객관적인
정보)을 하나로 묶어 보여줄 수 능력이다. 그런데, 주관적, 객관적인 정보에는 시그널도 있지만 노이즈도 많다.
왜냐하면, 환자가 호소하는 것들과 모든 검사 결과가 다 진단과 치료에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그널만을 골라 내서 이를 종합적으로 묶어 요약해 낼 수
있는 능력 – problem representation - 은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임상적 기술 (skill)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학교 의과대학 레지던트 교과과정에서는 clinical reasoning과목과 임상 수련과정을 통해 문제점 요약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연습시킨다. 그리고,
SOAP 노트의 평가 부분을 쓸 때에는 문제점 요약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한다.
또, 계획은 평가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즉, 평가에 따라 논리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트의 평가 부분에서 암의 진행 정도를 언급하고 있는데, 계획
부분에서는 환자의 항암제 치료에 대한 결정과 진단서 발급 요구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가 계획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지 않다. 또, 계획
부분에는 어떤 치료와 처방을 했는지, 환자 교육, 재진 계획
등도 기록해야 한다. 특히, 치료와 처방에 대한 기록은 작성자 본인 뿐만 아니라 환자를 보는 다른 의사들에게 치료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된다. 담당의사는 당일
진통제, 위장관 운동촉진제, 췌장 효소제 등을 처방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또, 복수에 관한 환자 교육도 빠져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읽어 보면
환자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진단서만 받고 간 줄 알 것이다.
어머니가 호소한 것과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요약해 보았다.
P) 특별한
기저 질환은 없었지만 2주 전에 간 전이성 췌장암 진단을 받고 gemcitabine과
Abraxane을 시작한 73세의 여성 환자가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면서 더 이상의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집이 멀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싶다며 의무기록를 요청한다 (또는
요청함).
73-year old woman with no significant past
medical history who was diagnosed with pancreatic cancer with liver metastasis
(stage IV) and received the first dose of the first cycle of gemcitabline and
Abraxane 2 weeks ago refuses additional chemotherapy due to intolerance and
requests medical records to transfer to another hospital due to long travel to
the clinic.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계획을 다시 써 보면
P) 1. 항암치료를
중단한다. 대신 증상완화치료를
계속 진행한다:
- Tramadol
(진통제 이름) 25 mg 1 정 통증이 있을
때 매 6시간마다
-
Mosapride (위장관 촉진제 이름) 5
mg 1정 식전 30분전 하루 세 번
- 췌장 효소제 1 정 음식과 함께 하루 세 번
2. 체중이
24시간동안 1-2 kg 증가하면 병원에 연락하라고 교육함.
3. 병원 전원
요구에 따라 진단서 발급해 줌.
영어로 바꾸어 보면
P) 1. Stop chemotherapy. Continue supportive care:
- Continue tramadol 25 mg PO Q6h PRN for pain
- Start mosapride 5 mg PO TID 30 min before each
meal
- Start pancreatic enzyme formulation 1 tablet
TID with each meal
2. Patient educated to seek medical attention if
body weight increases by 1-2 kg over a 24-hour period.
3. Issued medical records per patient’s wish to
transfer to another hospital.
어머니는 외래로 담당의사를 세 번 만났기 때문에 다른 – 6월 22일과 6월 15일 -SOAP 노트도 읽을 수 있었다. 이 두 노트를 보고 왜 7월
6일자 노트에 어머니가 호소한 것들이 Subjective 부분에
기록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6월 22일자 노트
6월 15일자 노트
놀랍게도, 빨간 박스로 표시된 Subjective 부분인
“Epig pain after food 3MA wt loss 7 kg DM: - anorexia –“은 7월
6일자 노트와 단어 하나 바뀌지 않고 똑같다. 즉, 이 부분은 6월15일 이후 계속 복사와 붙이기를 반복한 것이다! 검사 결과나 진단은 바뀌지 않으니 복사와
붙이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아 왔고 이해하지만 방문때마다 달라질 수 있는 환자의 호소를 기록하는 Subjective
부분을 복사와 붙이기를 하는 것은 처음 본다. 이렇게 복사와 붙이기를 계속 할 것이면 환자를 다시 볼 필요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재진부터는 검사한
다음 그냥 돌려 보내고 초진 때 환자가 호소한 것을 이용해서 평가하고 치료하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부정확하고, 불명확하고 비논리적인 문제점들은
단지 담당의사의 SOAP노트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이 블로그에서 따로 다루겠지만,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쓴 노트들도 비슷한 문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 병환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 우리과 교수 하나가 내게 다른 의사의 의견 (second opinion)을
받아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자기한테 한국에서 받은 의무기록을 보내면 우리학교 병원의 종양내과 의사를 연결해 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서울대 병원에서
받은 의무기록을 안 보내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 이 SOAP
노트들을 보면서 이를 발행한 병원의 수준을 어떻게 보았을까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기 때문이다.
양질의 의료에는 양질의 기록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을 포함한 많은 미국 병원들이 의료진 평가
도구의 하나로 의료진이 작성한 SOAP 노트를 본다. 또, 양질의 기록은 양질의
의료진을 배출하는 데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학생들과 수련하는 사람들은 선배들이 작성한 SOAP 노트를 읽으면서
그들의 임상적 사고과정을 배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양질의 기록을 위해 병원과 학교들이 교육을 강화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야 할 것 같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의무기록은 어머니의 허락을 미리 받아 올립니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4-09 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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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36> 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7 – 환자를 고려하지 못하는 의사소통기술
<36>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7 – 환자를 고려하지 못하는 의사소통기술
학회참석 때문에 한 주동안 담당의사가 환자를 보지 못해서 그런지 서울대 병원 췌담도암 클리닉은 환자로 붐볐다. 환자 수로 보아 진료예약 시간보다 1시간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았을 텐데 모니터를 보니 고작 약 15분만 지연되고 있었다. 대기실에는 동네병원처럼 바이탈을 측정하고 환자의 상태를 묻는 간호사가 없었다. 대신 담당의사에게 배정된 7번 진료실에 차례가 된 환자를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어머니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다. 어머니는 항암제 치료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셨고 우리는 병원을 옮기기로 했기 때문에 의사가 몇 가지 조언을 해 주길 기대했다. 먼저, 어머니는 내가 문헌을 보고 말씀드린 자료에 따라 결심을 하셨기 때문에, 난 오랫동안 췌장암 환자를 치료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항암제 치료의 득과 실에 대한 의사의 조언을 기대했다. 그리고, 췌장암이 진행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합병증들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 듣고 싶었다.
어머니는 이미 복수가 좀 있었고 암이 진행함에 따라 복수가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집에서 모니터하며 어느 경우에 응급실로 모시고 가야 하는 지 궁금했다. 또, 췌장암이 커지면 담관을 막기 때문에 담즙이 배출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황달이 생기고, 치명적일 수도 있는 담관염이 발생할 수 있다. 일시적인 방편이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치료로는 담관에 스텐트를 삽입하여 뚫어주거나 외부에서 간에 직접 관을 넣어서 담즙을 빼는 방법이 있다. 병원을 옮긴다면 이런 시술을 잘 하는 병원으로 옮기고 싶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었다.
의사: “어서 오세요.”
인사는 하는데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같이 온 나와 동생에게는 눈길하나 주지 않았고 앉으라고 하지도 않는다. 환자 보호자이거니 했겠지만 환자가 모르거나 환자를 보충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 가려면 환자보호자가 구체적으로 누군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클리닉에서 환자보호자를 처음 보면 항상 이름과 환자와의 관계를 묻는다. 또, 함께 앉아서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대화해야 상대방이 좀 더 편하게 느끼기 때문에 의자가 부족하면 난 다른 방에서 의자를 가져온다.
의사: ” 오늘 한 혈액검사는 괜찮던데 항암제 맞고 좀 어떻셨어요?”
여전히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어머니: “항암제 맞고 속이 불편해서 잘 먹을 수가 없었고 또 힘들었어요. 계속 맞으면 제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아서 더 맞지 않으려고요.”
의사: ”항암치료를 받지 않으면 급격히 나빠질텐데. 환자가 싫다면 어쩔 수 없죠.”
필자 :”’급격히’라 하면 얼마나 빨리를 말씀하시는 거죠?”
의사:”한 3개월?”
“한 3개월?”이라고 대수로운 것이 아니란 듯이 이야기하는 의사의 대답에 나는 분개했다 - 이봐요, 어머니는 몇 주전까지 건강하다고 생각하시던 분이예요. 이런 분에게 당신이 지금 한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겠어요? 말기암 환자를 많이 봐와서 어머니도 그런 환자 중 하나라고 생각했겠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고요. 또, 환자 가족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고요. 그렇다면, 이들을 고려하면서 전해 줘야 할게 아니예요? 환자 손을 잡는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고 적어도 환자와 눈을 마주치면서, 그렇게 단답식 문제에 대답하듯이 “한 3개월?”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약 3개월 정도밖에 시간이 남은 것 같지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잖아요! 또, 힘들겠지만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 기대 수명이 연장되고 암의 진행에 따른 통증도 좀 덜 한 것 같으니 다시 한번 고려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도요! – 이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어머니를 봐서 참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병원을 옮기려고 한다니 의사는 어차피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을 거면 서울대 병원은 더 이상 올 필요없다고 이야기한다. 병원을 옮기는데 필요한 서류를 만들어 줄 테니 의무과에서 그동안의 차트와 함께 받아 가란다. 그리고는 진통제를 처방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집에서 무슨 약을 드시고 계셨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위장관 운동 촉진제와 췌장효소제를 함께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췌장암 진행에 따른 여러 합병증에 대한 대처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어서 내가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담도 스텐트 시술도 서울대 병원에서 굳이 할 필요가 없으니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하라고 한다. 또, 식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체중이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1-2 kg 늘게 되면 복수가 커져서 그럴 수 있으니 체중을 매일 재라고 한다.
이게 다였다. 그나마 내가 이것 저것 물어봐서 5분이나 걸렸지 비전문가 보호자를 동반했다면 3분이면 끝났을 진료였다. 이런 식의 진료이니 환자가 그렇게 많아도 고작 15분만 지연된 것이었다. 이렇게 짧은 진료시간에다가 환자와의 의사소통기술이 부족하니 많은 환자들이 병상태와 치료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을 것 같았다.
진료실 문을 닫고 나왔을 때 동생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어머니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어머니가 희망을 잃을까하는 것이었다.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치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은 어머니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통증 조절, 합병증에 따른 증상 완화, 심리 안정 등등. 특히, 어머니는 통증에 대해 크게 두려워 하셨고 마음도 우울해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은 환자를 도와줄 수 있는 완화치료와 전문심리상담사 서비스가 있는 병원들에 대한 정보를 줌으로써 계속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를 기대했었다. 이렇게 계속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은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헤쳐 가는 데에 환자와 가족에게 모두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와의 마지막 만남일 지 모르는 데도 진료가 끝났을 때 잘 가라거나 잘 되기를 바란다는 인사도 하지 않던 의료기술자에게 이런 것을 기대하던 내가 우리나라 의료현실을 너무 몰랐던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3-08 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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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약학] <35>우리나라 의료 경험기 6 – 동네 의원과 3차병원 긴밀한 협력 뒷받침할 제도 필요
어머니는 지난해 6월22일에 췌장암 진단을 받은 뒤 담당의사와의 재진 예정일인 7월 6일까지 2주 동안 동네의원을 4번이나 방문해야 했다. 첫 두 번은 서울대 병원에서 빼먹고 처방해 주지 않은 진통제와 위장관 운동 촉진제를 받으러 갔었고, 나머지 두 번은 항암제 부작용으로 생긴 방광염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동네의원을 이용하기로 한 이유는 서울대 병원이 차로 한 시간이상 걸리는 데다 외래진료를 받으러 가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경우 진통제와 위장관 운동 촉진제 처방과 방광염 치료는 암전문의가 아닌 일차의료 제공자 (primary care provider)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동네의원에서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의사를 만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당일 진료를 원하는 경우에도 전화를 해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당일 진료를 받고 싶지만 예약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응급 클리닉 (urgent care clinic), 예약을 받지 않고 진료를 하는 Walk-in 클리닉, 또는 병원 응급실 (emergency department)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응급 클리닉과 walk-in 클리닉은 많지 않은데다 병원 응급실처럼 대기 시간이 매우 길다. 반면, 우리나라 동네의원은 예약이 필요없고 당일 진료를 위한 대기 시간도 길지 않아서 이용하기가 매우 편리했다.
동네의원의 시설과 진료순서는 내 클리닉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의 가정의학과나 내가 진료를 받는 Kaiser 병원과 많이 달랐다. 아파트 주변 상가 2층에 위치한 동네의원은 소화기 내과 전문의 두 명이 동업하여 연 것인데 실내가 깨끗했고 조명, 나무 바닥 등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다. 사실, 저소득층에게 의료를 제공하는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은 시에서 운영하는데다, 내 클리닉은 지은 지 50년도 넘은 벽돌 건물안에 있기 때문에 최근에 만들어진 동네의원과 시설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 참고로, 이 벽돌 건물은, 1980년대 초 세계 최초로 에이즈 환자를 입원, 치료했던 자부심이 넘치는 곳이다 –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이 운영하는 Kaiser 병원의 인테리어도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인터넷으로 광고하는 다른 동네의원들의 사진을 보니 다 적어도 이 수준의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서 상당히 놀랐는데 이렇게 꾸미지 않으면 환자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미국 병원에서의 진료순서는 접수 → 대기 → 간호사 → 의사 순이다. 즉,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담당 간호사가 호명한다. 담당 간호사는 환자를 진찰실 (exam room)로 데리고 가서 체온, 혈압, 맥박, 호흡수, 통증 정도 등 소위 바이탈 (vital)을 측정하고 방문 이유, 약물 알러지 (allergy) 여부 등을 묻고 모두 차트에 기록한다. 간호사가 진찰실에서 나가면 좀 있다가 의사가 와서 진료하고 차트에 기록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병원에는 진찰실이 여러 개 있고 의사는 한 진찰실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있는 진찰실로 돌아다닌다. 그런데, 진찰실에서 간호사가 문진하고 바이탈을 측정하면 환자의 개인정보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환자에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설과 돈이 충분치 않은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서는 진찰실이 부족해서 간호사가 간호사실이나 복도에서 바이탈을 측정하고 그 다음 의사가 와서 환자를 자신의 진찰실로 직접 데리고 간다. 하지만, 간호사실과 복도는 대기실과는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
우리나라 동네의원의 진료순서에서는 간호사 문진과 바이탈 측정 단계가 없었다. 대신, 환자가 원하면 스스로 측정할 수 있도록 대기실에 자동 혈압측정계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측정계는 고정된 커프 (cuff)에 팔을 밀어 넣어 혈압을 측정하도록 되어 있는 방식으로, 혈압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었다. 혈압은 커프 사이즈와 환자의 측정 자세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 자동혈압측정계는 커프 사이즈를 팔의 크기에 따라 조정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자세에서 혈압을 측정해야 하는지 모르는 환자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 측정한 혈압이 부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또, 환자가 스스로 측정하면 누가 그것을 차트에 기록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이 방식의 혈압계는 3차의료기관인 서울대 병원과 서울삼성병원의 외래 진료 대기실에서도 비치된 것으로 보아 환자 스스로 혈압을 측정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이용되는 방법인 것 같다.
의사가 환자를 보기 전에 간호사가 먼저 바이탈을 측정하고 방문이유, 약물 알러지 등을 기록하면 의사는 좀 더 효율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 클리닉의 예를 들면, 혈압이 높거나 맥박이 빠르거나 해서 바이탈에 이상이 있는 환자가 있는 경우, 간호사는 내가 환자를 데리러 갈 때 항상 미리 알려 주는데 이는 내가 환자에게 무엇을 물어 볼 지, 진찰실에서 혈압을 다시 측정할 지 등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또, 간호사가 차트에 기록한 방문이유를 보고 이전에 비슷한 이유로 방문했는지, 그렇다면 어떤 치료를 받았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를 차트에서 미리 찾아 보고 환자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바이탈은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고혈압 환자에게는 당연히 혈압이 필요한 정보이고, 어머니처럼 방광염 증상으로 방문한 경우에는 체온이 중요하다. 특히, 어머니는 항암제를 최근에 맞았었기 때문에 방광염 증상과 함께 체온이 높다면 응급실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방광염으로 두 번 방문하는 동안 간호사는 한 번도 체온을 측정하지 않았다. 의사도 두 번째 방문에서야 체온을 측정했다 (다행이 정상체온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눈길을 끈 것은 각종 광고였다. 각종 건강검진 광고부터 마늘주사, 미백주사 등의 광고가 포스터 형태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의료수가가 낮아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런 상품들을 팔아야 하는 모양이다. 또, 진료시간 안내 광고도 눈에 띠었는데 난 그 엄청난 근무시간에 놀랐다: 평일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7시, 토요일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반, 그리고 심지어, 주요 명절, 석가탄신일, 성탄절만을 제외한 공휴일에도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까지 환자를 받고 있었다.
전세계 IT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조차 병원에서는 아직도 간호사나 의사가 환자를 호명하여 진찰실로 데리고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동네의원이든 종합병원이든, 순서가 되면, 대기실에 걸려 있는 모니터에 환자 이름과 진찰실 번호가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가 스스로 해당 진찰실로 가면 되었다. 호명하면서 서로 인사하고 하고 안부도 묻고 하는 인간적인 관계보다는 편리함이 우선인 듯 하여 좀 씁쓸했다.
알콜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병원균 (예를 들어, Clostridium difficile)이 있기 때문에 의사와 환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미국 병원의 진찰실에는 비누를 쓸 수 있는 개수대가 비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동네병원과 대학병원의 진찰실에는 개수대가 없어서 의아했다. 아마도 우리나라 의사들은 촉진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개수대가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3차병원 외래진료 의사들과는 달리 동네병원 의사는 매우 친절했다. 특히, 어머니의 위염을 진단한 의사는 자신이 좀 더 빨리 3차병원으로 진료의뢰를 내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감이 있었는지 어머니 손도 잡아 주고 질문에 자세하게 대답을 해 주는 등 매우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그리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자기 어머니라면 항암제 치료를 받게 할 것이라면서 항암제를 적극 권했다. 뿐만 아니라, 복수에 대해 묻자 무료로 복부 초음파 검사를 직접 해 주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어머니 치료로 만난 3차병원의 의사들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대부분의 3차병원 의사들은, 제발로 걸어오는 환자들 수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사무적이고 퉁명스러운데다 어떨 때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동네병원의 약 사용에서 의아하게 느낀 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3차 병원 의사들에게도 똑같이 발견한 문제였기 때문에 동네병원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의료교육 자체의 문제로 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컬럼에서 다루기로 한다).
암과 같은 중병으로 3차병원에서 진료를 받더라도 경미한 질환은 접근이 편하고 더 친절한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동네 의원에서 수행한 검사결과와 처방한 약의 목록이 3차병원 의사에게 전달되고, 3차병원의 검사결과와 처방한 약의 목록이 동네 의원에 전달되는 등, 동네 의원과 3차병원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부족해서 환자나 보호자가 이를 대신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지 잘 모를 것 같다. 따라서, 환자의 치료가 동네에 기반한 일차의료제공자 중심으로 이뤄어지면서 3차병원과의 협력을 뒤받침할 수 있는 의료 제도로 개선해 나간다면 중환자라도 방광염같이 간단한 질병이면 굳이 번거롭게 3차병원을 이용할 필요가 없이 동네병원을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소개>
-서울대약대 대학원 졸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
-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부교수
2018-02-08 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