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유럽 제약界 "아! 옛날이여"
제약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과거와는 판이하게 수준이 높아진 소비자들에게 어필할만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미국의 메이저 제약기업들 사이에서 영업력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이는 제약 및 바이오테크놀로지, 생명공학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분석업체로 새로 발족된 이밸류에이트 파마社(Evaluate Pharma)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전체내용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밸류에이트 파마社는 수년 前 바클리 드 조에트 웨드社(Barclay de Zoete Wedd)에서 헬스케어 연구책임자로 활동했던 조나단 드 파스가 설립했다.
'1988년~2002년 세계 50대 베스트셀링 의약품' 보고서는 오는 2002년에 이르면 세계 톱 랭킹 의약품 25개 중 20개 정도가(그리고 톱 랭킹 10개 중 8개) 미국기업에 의해 판매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같은 분석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제약산업을 좌지우지해 왔던 유럽의 경쟁업체들을 자극하는 내용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consensus estimates)에 따르면 유럽 제약기업들은 2002년도에 상위 25개 의약품들 가운데 불과 3개만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로섹'(오메프라졸) ▲스미스클라인 비참의 '팍실/세록사트'(파록세틴) ▲그락소 웰컴의 '에피버/제픽스'(라미부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는 10년 전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하겠는데, 당시 유럽 제약기업들은 세계 베스트셀러 의약품들 중 절반 이상을 과점했었다. 반면 같은 기간동안 미국의 경쟁사들은 상위 50개 의약품에서 지난 88년에 19개에 불과했던 자신들의 몫을 지난해에는 32개로 증가시켰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이밸류에이트 파마社에 따르면 유럽 제약기업들 가운데서도 가장 향후전망이 불투명한 곳으로 스미스클라인 비참, 그락소 웰컴, 제네카 등 영국계 기업들이 꼽혔다. 이밸류에이트측은 이들 기업들이 최근 5년간 잇따른 특허만료로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미국의 동종기업들과는 달리 아직까지 블록버스터 신약들로 이를 대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영국기업들이 바이러스 질환이나 편두통·전이성 암·암 화학치료요법에 수반되는 구역·백신 등 혁신적인 신약들을 잇따라 내놓았으나, 미국측 경쟁사들처럼 성공의 기회를 포착하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미국기업들은 어떻게 이처럼 호조를 보일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하겠는데, 이에 대해 보고서는 "미국의 의약품 판매여건이 유럽에 비해 좋은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그같은 차이를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국기업들은 이른바 '라이프스타일 드럭'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하다는 측면에서 이점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이자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실데나필), 설/화이자의 COX-2 저해제 '셀레브렉스'(셀레콕시브), 머크의 '바이옥스'(로페콕시브)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보고서는 미국기업들은 생명을 구하는 약물이 아니라 고통을 경감시키고 노화의 부담을 덜어주는 약물을 개발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것이 미국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스트셀링 의약품들 가운데 약 50% 정도가 노화와 관련된 약물이지만, 이 보다 흥미로운 것은 早期老化와 관련된 것이 급성질환 치료제들 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는데, 이는 20년 전에는 무시되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지질저하제들과 우울증 치료제, 호르몬 대체요법제들이 미국 기업들에 의해 판매되고 있는데, 이는 '삶의 질'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약물들이다.
이밸류에이트 파마社는 미국 이외의 제약기업들 입장에서 날로 확대되고 있는 격차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것이 단순히 순환적 현상의 하나일 뿐이며, 기업들이 부침을 겪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아직도 개발의 여지가 충분한 틈새가 많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그러나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이같은 변화의 시기가 유럽기업들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산업은 유전자학(genomics)과 같은 신기술들을 속속 받아들이고 있어 수준높은 연구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 R&D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품목으로 기대될 경우 미국기업들은 유럽의 경쟁자들에 비해 많은 투자비를 지출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고 있는데, 경쟁의 장에서는 큰 물고기가 큰 것을 물기 마련이며,("as in any competitive field, the big fish get the best bites,") 마케팅 능력을 입증받은 미국기업들이 바로 이같은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제약기업 순위통계를 보면 메이저 기업들만이 자리를 독점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잖은 블록버스터 신약들의 성공 여부를 완전하게 가려내기는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즉,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일부 대형품목들(large-selling products)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또는 이윤은 적겠지만 고만고만한 제품들을 여러 개 내놓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밸류에이트社는 "업계 선두주자권에 올라서고자 하는 제약기업들에게 대안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형품목들을 확보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특허가 만료됐을 때 매출액 감소를 상쇄시킬 수 있을만한 여력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
보고서는 "물밑에서는 이미 치열한 전쟁이 시작됐으며, 제약기업들은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R&D 및 마케팅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이같은 모든 요인들이 유럽 제약기업들에게 M&A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M&A를 성사시켰을 경우 R&D 투자능력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을 것임에도 불구, 이것이 경영자들로 하여금 무엇이 미래를 위한 최선의 대안인가를 선택하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최근 합병한 제약기업들은 규모측면에서 업계통계상 순위가 뛰어 올랐지만, 톱 셀링 품목 랭킹에는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보고서는 "2002년 이후로는 블록버스터 의약품들이 의료의 급속한 진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해 조기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으로 보았다.
보고서는 "기술진보가 미래에 제약업계의 발전을 견인할 것인지를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이덕규
1999.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