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대형종합병원에서 근무중 뇌출혈으로 사망한 간호사 사건 – 당근과 채찍을 병용해야
신재규 교수의 'From San Francisco'
편집부 기자
입력 2022-08-2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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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종합병원에서 근무중 뇌출혈으로 사망한 간호사 사건 – 당근과 채찍을 병용해야
지난 7월말 서울의 한 대형종합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뇌출혈으로 사망한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당시 간호사는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쓰러졌음에도 당일 그 병원에는 개두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아무도 없었다. 이 병원에는 개두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두 사람 있었지만 사건 당일 한 사람은 해외학회에, 다른 한 사람은 지방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호사는 수술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사망한 것이다. 의료시스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병원에서 일하던 사람조차도 의사가 없어서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할 수밖에 없다면 의료시스템에 접근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일반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작년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내 주변에서도 벌어졌었다. 경기도 남부에 사시던 친척어른께서 추석 이틀전 뇌출혈으로 쓰러지셔서 근처에 위치한 큰 대학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었다. 하지만 그 병원에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어르신은 경기도 북부의 다른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했고 이 바람에 수술시기를 놓쳐 약 6개월간 의식을 잃고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
이 두 사건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대형병원은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언제든지 치료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필수의료인력이 모두 자리를 비울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과 무관한 일반회사도 회사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부서의 인력은 공백이 없도록 하는 것이 기본적인 운영원칙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이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니... 더욱 심각한 것은 그 간호사와 친척어른의 예로 보아 이는 어느 특정한 병원에 국한된 것이 아닌 우리나라의 많은 병원들에 만연한 문제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으로 낮은 의료 수가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드는 것 같다. 의료 수가가 원가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병원이 비용은 많이 들고 이를 보전하기 힘든 부서의 의료인력, 예를 들면, 개두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들을 적게 둔다는 것이다. 또 의료인력도 수련기간은 상대적으로 길지만 업무량과 위험도가 높고 수가가 낮아 수입은 적은 신경외과와 같은 분야로 진출을 꺼린다는 것이다. 나도 낮은 수가와 필수의료기피현상이 문제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과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의료 수가를 현실화하고 의료진이 필수의료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당근만으로는 병원들이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인력을 고용하고 배치하는 관행을 충분히 제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원이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언제든지 치료할 수 있도록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난 의료사고에 대해 병원이 받아야 할 징계와 벌칙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교할 때 의료수가가 낮지만 징계와 벌칙도 낮다. 어쩌면 징계와 벌칙의 정도는 수가에 비해 훨씬 더 낮은 지도 모른다. 의료기관이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 (즉, 우리나라의 건강보험과 미국의 메디케어)에 고의로 부당청구해서 받는 징계와 벌칙의 예를 들어 보자. 이 경우,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해당 의료기관이 민사와 형사소송을 당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런데, 징계와 벌칙의 수준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훨씬 낮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기관은 부당청구한 금액 또는 일부를 되돌려 주고 형사처벌로 3년이하의 징역이나 최대 3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의료기관은 일단 부당청구한 금액의 세 배에 달하는 금액까지 정부에 돌려 주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부당청구건당 벌금을 따로 내야 한다. 즉, 부당청구가 10건 있었으면 각 건에 대해 벌금을 따로 내야 하는 것이다. 또 형사처벌로 징역형, 벌금형, 또는 둘 다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징역형 또는 벌금 중 하나만을 받지만 미국은 둘 다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해당 의료기관이 일정기간동안 정부보험을 가진 환자들을 받지 못할 수 있다.
65세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메디케어 가입자이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이들을 받지 못하게 되면 큰 시장을 잃게 된다. 이처럼 정부보험에 대한 부당청구관련 벌칙과 징계가 중하기 때문에 미국의 의료기관 중 일부는 의료기관 내부종사자가 정부보험에 청구를 요청했을 때 그 내역에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는 감사부서를 자체적으로 두고 있을 정도다.
또, 미국의 의료기관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환자가 사망했을 경우 환자의 가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지게 되면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한다. 이 금액도 상당해서 우리돈으로 10억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만약 개두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를 상주시키지 않아 간호사가 사망한 우리나라의 대형종합병원이 15억을 배상해야 한다면? 아마도 병원은 자진해서 개두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진을 키우고 고용할 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문제를 징계와 벌칙 같은 채찍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병원이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적을 위해 운영하는 것을 제어하려면 수가인상과 같은 당근과 더불어 채찍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채찍은 병원의 재정적 상태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이런 황당한 일로 환자가 사망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건을 막을 수 있다.
<필자소개>
-서울대 약학대학, 대학원 졸업
-University of Florida Doctor of Pharmacy-University of Miami Jackson Memorial Hospital Pharmacy Practice Residency
-Universityof Florida Cardiovascular PharmacogenomicsFellowship
-현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임상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