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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50> 함께 쓰면 좋은 약 이야기
대개 약의 상호작용이라 하면 약끼리 충돌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약끼리 맨날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친구가 서로 도와주듯 약도 함께 쓰면 효과는 커지고 부작용은 줄어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혈압에 쓰이는 칼슘채널차단제(Calcium Channel Blocker, CCB)와 ARB(Angiotensin Receptor Blocker,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의 조합이다. 혈압약이 혈압을 떨어뜨리는 원리 중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혈관 확장이다. 칼슘채널차단제는 주로 동맥 혈관을 확장시켜서 혈압을 떨어뜨린다.
길이 좁으면 차가 밀리고 길을 넓혀주면 차가 좀 더 쌩쌩 달릴 수 있듯이 혈관을 확장해주면 혈압이 떨어진다. 그런데 만약 넓어진 길이 갑자기 좁아지면 어떻게 될까? 교통 정체가 일어난다. 혈액 순환의 경우도 비슷하다. 혈액은 심장의 동맥에서 세동맥, 모세혈관, 세정맥으로 흐르고 다시 정맥을 거쳐 심장으로 돌아온다.
칼슘채널차단제는 심장에서 조직으로 가는 하행선과 같은 동맥을 확장시키지만 조직에서 심장으로 돌아오는 상행선에 해당하는 정맥은 확장시키지 못한다. 혈액 순환 도로에 체증이 생기면 그 결과는 하지 부종이다. 종아리와 발목 또는 발이 붓는다. 암로디핀 같은 칼슘채널차단제의 흔한 부작용이다. 이때는 이뇨제를 써도 효과가 미미하다.
그렇다면 정맥혈관, 즉 조직에서 심장으로 가는 상행선도 확장을 시켜주면 부작용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게 칼슘채널차단제와 ARB의 조합이다. ARB는 안지오텐신II의 작용을 차단하여 동맥뿐만 아니라 정맥 혈관을 확장시킨다.
실제로 두 종류의 다른 항고혈압약(CCB, ARB)을 사용하면 칼슘채널차단제 한 가지만 썼을 때보다 부종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부작용으로 인해 약 복용을 중단하는 사람의 비율도 1/3로 줄어든다. 이렇게 서로 다른 종류의 항고혈압약 2가지를 함께 사용하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혈압을 떨어뜨리므로 효과도 상승한다.
따라서 더 적은 양으로 효과를 보게 되니 각각의 약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고혈압 환자의 절반 이상이 한 가지 약 성분으로는 혈압 조절이 잘 안 되는데 이럴 때 약의 용량을 늘리는 것보다 종류를 늘려주는 게 효과는 올리고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두 성분을 하나의 알약에 모은 복합제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체중 감량하는 약 가운데도 두 가지 성분이 서로 도와주는 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이어트, 체중 감량을 위해 사용하는 약 중에 날트렉손이라는 약성분과 부프로피온이라는 약성분이 함께 들어있는 약이 있다.
날트렉손은 원래 알코올 중독과 마약성 진통제 의존증이 있을 때 쓰는 약이고 부프로피온은 우울증 치료와 금연보조용으로 사용하는 약이다. 그런데 체중 감량을 위해 쓸 때는 두 가지 약성분이 함께 비슷한 부위지만 다른 방식으로 서로 효과를 높여주어서 포만감을 늘리고 식욕과 식탐을 억제하는 데 효과를 나타낸다.
펜터민과 토피라메이트라는 두 가지 약성분도 함께 사용된다. 펜터민은 식욕을 억제하고 토피라메이트는 포만감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함께 사용하면 효과가 증가한다. 하지만 이렇게 약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는 게 항상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약을 함께 써서 부작용이 증가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펜-펜(fen-phen)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 펜플루라민(fenfluramine)이란 성분의 식욕억제제와 펜터민(phentermine)을 함께 쓰는 조합이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체중 감량 효과는 더 좋았으나 아주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심장질환 발생율이 증가하여 사망한 사람들의 사례가 100건 넘게 FDA에 보고되고 결국 1997년 미국 시장에서 펜플루라민이 회수, 퇴출됐다. 각각 따로 썼을 때는 두드러지지 않았던 펜플루라민의 부작용이 펜터민과 함께 쓰자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약이 좋은 친구인지 해로운 만남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야한다. 알고 보면 약은 사람과 참 많이 닮았다.
2020-01-01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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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9> 핫파스 쿨파스 이야기
운동하다 다쳤을 때 처음엔 쿨파스를 나중엔 핫파스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다음,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 메인에 종종 올라온다. 그렇지 않다. 파스에는 그런 구분이 필요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잘못된 정보가 계속 이어지는가? 직관적으로 보면 맞을 거 같기 때문이다. 핫파스는 온찜질처럼 뜨거운 느낌이고 쿨파스는 얼음찜질처럼 차가운 느낌이다. 오류는 여기서 시작된다. 과학적 정보와 직관이 뒤섞여 잘못된 추론으로 이어진다.
운동하다가 가볍게 넘어지거나 다쳐서 관절이 부으면 얼음찜질을 해서 해당 부위의 혈관을 수축시키고 붓기를 가라앉히길 권한다.
안 움직이는 게 좋고(Rest), 얼음찜질(Ice) 해주고, 압박붕대 해주고(Compression), 아픈 부위를 높여주는 게(Elevation) 좋다는 걸 기억하기 쉽도록 각각의 영어 머릿글자를 따서 RICE라고 한다.
가벼운 부상이 있고 처음 48시간 동안은 RICE가 중요하다. 48시간이 지나고 붓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난 다음에는 반대로 온찜질을 해주는 게 낫다. 통증을 줄이고 경직된 주변 근육을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파스에는 통하지 않는다.
멘톨 성분이 들어있는 쿨파스라고 하여 실제로 체온을 낮추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멘톨은 냉감각을 자극하지만 혈관을 확장시킨다. 이에 대해서는 2018년 6월 국제스포츠물리치료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참고할 만하다.
연구자들은 대퇴부 얼음찜질과 멘톨 함유 젤이 냉감, 피부온도, 피부혈류량, 심부체온, 근육내 온도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했다. 멘톨을 함유 젤을 대퇴부(넓적다리)에 발라주면 시원한 느낌에 더해 피부온도를 낮춰주었지만 심부체온이나 근육내 온도에는 영향이 없었다.
해당 부위의 피부의 혈류량은 증가했지만 대퇴부 동맥혈류에는 차이가 없었다. 젤을 발라준 부위의 피부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멘톨과는 관계없이 젤 속의 액체 성분이 증발하면서 기화열을 빼앗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젤이나 스프레이 제형의 약을 바르거나 뿌려주면 액체 성분이 증발하면서 해당 부위의 체온을 조금 낮출 수는 있으나 붙이는 파스의 경우에는 이런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운동하다가 가볍게 다쳤을 때는 뿌리는 스프레이나 바르는 젤 타입의 약이 붙이는 파스보다 낫다.
요약하면 파스와 찜질은 다르다. 온찜질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냉찜질은 혈관을 수축시킨다. 하지만 핫파스와 쿨파스는 붙였을 때 느낌은 다르지만 혈관을 확장시키는 면에서는 효과가 동일하다. 그렇다고 붓기를 빼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파스 속 멘톨을 비롯한 약성분에 항염 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운동하다 가볍게 다쳤을 때 처음 48시간은 냉찜질, 48시간 이후에는 온찜질이 좋다. 파스는 이런 구분 없이 써도 된다.
단, 파스를 사용한 부위는 온찜질하면 화상 위험이 있으므로 파스나 찜질 중 하나를 선택해서 쓰는 게 안전하다.
전에도 다른 매체에 파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또 파스에 대한 글을 쓴 것은 파스의 사용법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섞인 기사가 포털 메인에 떴기 때문이다.
핫파스, 쿨파스에 대한 불필요한 구분에 더해 파스를 붙일 때 피부가 가려운 사람이라면 로션이나 크림을 바르라는 설명도 덧붙여진 기사였다. 역시 잘못된 정보다.
로션이나 크림을 바른다고 파스 속 접착제 성분에 대한 보호막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지만 만약 그런 보호막이 생긴다면 파스 속 약성분도 제대로 흡수되지 않을 것이다.
파스의 접착제 성분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붙이는 타입의 파스보다 바르는 젤이나 뿌리는 스프레이 제형을 고르는 게 좋다.
약에 대한 방송이나 기사에 종종 잘못된 정보가 실리는 것은 이전에 누군가가 잘못된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전에 알려진 내용과 최신 연구결과가 다른데 정보 업데이트가 덜 되어서 그런 경우도 있다.
전문가일수록 약에 대해 말할 때 조심스럽게 재확인을 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에게 필요한 약에 대한 지식은 직관이 아니라 과학에 근거한 정보다.
2019-12-18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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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8> 오래쓰면 안 되는 약 이야기
오래 쓰면 안 되는 약을 모르고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약이 코막힐 때 쓰는 비충혈 완화 분무제이다. 요즘 같이 춥고 건조한 날씨에 찾는 사람이 많은 약이다. 그런데 비충혈 완화 분무제에는 “7일 이상 계속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보통 약국에서는 이보다 짧게 3일-5일 이상 계속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약을 계속 해서 쓰게 되면 약으로 인해 코막힘이 더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을 쓰면 막힌 코가 뚫리고 안 쓰면 더 심하게 막히는 악순환이 생기지 않으려면 코막힘 완화 스프레이는 필요한 경우에만 짧게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게 좋다.
두통, 근육통, 생리통, 치통에 사용되는 진통제도 오래 쓰면 안 되는 약이다. 진통제 사용설명서에는 복용시 주의 사항으로 다음과 같은 경고가 적혀있다.
“의사 또는 약사의 지시 없이 통증에 10일 이상(성인) 또는 5일 이상(소아) 복용하지 않고 발열에 3일 이상 복용하지 않는다. 통증이나 발열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될 경우, 또는 새로운 증상이 나타날 경우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한다.”
의사, 약사의 지시 없이 오래 쓰지 말라는 경고문이 다소 고압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런 경고를 발할 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진통제를 열흘 이상 써야할 정도로 통증이 있다면 우선 그 원인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통약을 한 달에 15일 이상으로 너무 자주 복용하면 약으로 인한 두통이 생길 수 있다. 진통제를 안 쓰면 머리가 아프고, 쓰면 좀 나아졌다가 다시 더 심한 두통이 찾아오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진통제를 오랫동안 복용하면 생기는 다른 부작용 문제도 있다. 이부프로펜, 나프록센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위장 출혈이나 궤양 위험을 증가시키고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단기간 사용시에도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나 장기 사용시에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러한 위험은 처방약이나 비처방약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약국에서 조제한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는 경우에는 의사, 약사와 상의하면서 부작용을 모니터링하게 되므로 약을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소염진통제의 장기 복용으로 인한 위장관련 부작용을 막기 위한 다른 약을 함께 쓰기도 한다.
오래 쓰면 안 되는 약을 구분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약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설명서에 표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위장약에는 다음과 같은 주의사항이 쓰여 있다.
1)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는 경우
2) 이 약은 14일 이상 복용하지 않는다.
음식을 삼키기 어렵거나 삼킬 때 통증이 있는 경우, 속쓰림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나 어지러움, 식은땀, 현기증과 함께 속쓰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숨이 가빠지면서 가슴통증이 나타나는 경우에도 약의 복용을 즉각 중지하고 의사, 약사와 상의할 것을 경고한다.
단순히 체한 게 아니라 심각한 다른 질환의 증상으로 속쓰림과 소화불량이 나타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가치료의 예외에 해당하는 이러한 경우를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다. 약국에서 일반약을 구입할 때 먼저 약사와 상담하는 것을 습관으로 하는 게 좋다.
끝으로, 모든 약을 오래 쓰면 안 되는 건 아니다. 원인을 알고, 장기 치료를 필요로 하는 증상에 쓰는 약은 오래 써야 한다. 고혈압, 당뇨, 우울증과 같이 장기적 치료와 관리를 필요로 하는 만성질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만성질환용 약이라고 오래 써도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 약물 치료의 부작용보다 치료 상 유익이 훨씬 크기 때문에 이때는 약을 오래 쓰는 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부작용이 생길 확률을 낮추기 위해 약의 사용량을 가능한 한 최소로 낮춰서 쓰는 것이 원칙이다. 오래 쓰면 안 되는 약도 있고 오래 써야 하는 약도 있다.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고 써야 약이다.
2019-12-04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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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7> 혈압약 복용시간 이야기
“혈압약 자기 전에 복용하라” 아침 복용보다 저녁 취침 전에 혈압약을 복용하면 더 효과적이어서 심장발작과 조기사망 위험을 낮춘다는 소식이 건강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0월 22일에 발표된 대규모 임상시험 연구결과에 따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스페인에서 평균 나이 60세인 19,08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여 무작위로 전체의 절반은 자기 전, 절반은 아침에 일어나서 혈압약을 복용하도록 하고 6.3년 추적 조사한 것이다. 이 기간 중에 10명에 한 명 정도의 참가자에게 심장발작, 심부전, 뇌졸중,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나타났다.
이번 스페인 연구 결과에서 놀라운 것은 아침 복용자 집단과 저녁 복용자 그룹의 혈압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고 밤에 아주 조금 더 잘 떨어지는 정도였지만, 혈압약을 언제 복용하느냐에 따라 심장발작, 뇌졸중과 같은 해로운 결과가 나타나는 비율에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 전 혈압약을 복용한 그룹은 아침에 혈압약을 복용한 그룹보다 사망을 포함한 모든 심뇌혈관질환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45% 적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뇌졸중은 49%, 심부전은 42%, 심근경색은 34%, 심혈관질환 사망률은 56%가 낮았다.
쉽게 말해 항고혈압약을 저녁에 복용한 환자들의 경우에 사망 위험이나 심장마비, 뇌졸중, 심부전을 겪을 위험이 절반 정도로 낮았다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일까? 아직 분명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는 동안에 혈압이 15%정도 떨어져야 정상인데 열 명에 한 명 꼴로 야간 수면 중에도 혈압이 안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고, 이 경우에 심혈관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은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불안한 사람이라면 24시간 혈압계로 하루 중 혈압의 변화를 체크해볼 수 있다. 야간 고혈압 환자가 아니더라도 아침에 깨어나서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몸에서 혈압을 올릴 준비를 하게 되는 게 정상이고 이를 위해 혈압을 올려주는 호르몬 분비가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면 보통 처음 4-6시간 동안 한 시간당 수축기 3 mmHg, 이완기 2 mmHg씩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 이로 인한 오전 혈압 상승이 심혈관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오전에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빈도가 더 높다는 통계자료도 있다.
혈압약 복용 뒤에 너무 어지럽거나 피곤하다고 느끼는 경우 또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밤에 자는 동안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혈압약 전체 또는 일부를 자기 전에 복용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를 보고 모든 사람이 아침에 먹던 혈압약을 저녁 복용으로 바꿀 필요는 없다. 이 부분은 우선 담당 의사와 상담이 필요하다. 저녁에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밤에 복용하면 약을 깜박 잊었을 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복용하기가 힘들다. 자는 시간이나 저녁 식사 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면 매번 약 복용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약에 따라서는 이뇨제처럼 저녁에 복용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뇨제를 밤에 복용하면 소변이 마려운 나머지 자다가 깨서 화장실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건강 뉴스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이지만, 혈압약 저녁 복용에 대한 긍정적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한다.
이번 연구가 무작위로 진행되었고 대규모이긴 했지만 스페인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라는 한계가 있고, 특정 약에 대한 게 아니라 다양한 혈압약 조합을 그대로 써서 각각의 약효에 따른 차이를 분석할 수 없었다는 한계도 있었다. 블라인드 처리가 되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두 집단 간의 차이를 더 정확히 파악하려면 한쪽에는 가짜약을 아침, 진짜 혈압약을 저녁, 다른 한쪽에는 진짜 혈압약을 아침, 가짜약을 저녁에 주는 식으로 하여 플라시보 효과를 제거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장기간 동안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다.
훌륭한 연구 결과이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부족하다. 근거가 더 쌓일 때까지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단, 자신의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말이다.
2019-11-20 0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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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6> 알아두면 쓸데있는 전립선비대증 이야기
나이가 들수록 몸의 반항이 심해진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머리숱은 줄어들고 적당한 길이를 유지해야할 코털은 콧구멍 밖으로 삐져나온다. 커지지 않아도 될 중년 남성의 전립선은 비대해져 소변을 시원하게 보기 어려워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공통적으로 의심하는 요인 하나는 남성호르몬이다. 전립선 상피세포는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고 소멸할 때를 잊어버린 것처럼 장수하여 전립선 비대증을 일으키고 반대로 두피의 모낭은 모공의 크기가 줄어들고 모공 파괴가 촉진되며 머리털이 빠진다.
불행히도 코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는 세상에 매우 드물어서 코털에도 정말 남성호르몬이 관여하는지는 아직 모를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알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남성형 탈모나 양성 전립선 비대증에 사용되는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 또는 두타스테리드(dutasteride)와 같은 성분의 약을 복용하고 나서 코털 가위를 쓸 필요가 없어진 사람이라면 한때 두꺼워진 코털 역시 남성 호르몬 때문이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들 약물은 테스토스테론이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으로 변환되는 것을 막아 전립선 크기를 줄여주고, 소변 흐름을 개선시킬 수 있다. 보통 1년 정도 복용하면 전립선 크기가 15-20%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단점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짧게는 3-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린다. 그래서 증상을 빠르게 줄여주는 알파차단제와 함께 쓰는 경우도 많다.
전립선은 방광 바로 아래 요도를 둘러싸고 있다. 그러니 전립선이 점점 커지면 방광에서 소변이 나오는 흐름을 방해하여 방광 속에 가득 찬 소변을 비우기가 힘들어진다. 시간이 지나 이 문제가 악화되면 소변을 완전히 배출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알파차단제는 방광의 기저부 근육, 즉 요도를 둘러싼 근육을 이완시켜서 길을 조금 넓혀준다. 그만큼 소변보기도 수월해진다.
전립선은 남성에게만 존재하므로 전립선 비대증 또한 여성에게는 나타날 리 없지만 알파차단제는 여성의 경우에도 배뇨장애와 같은 문제가 있을 때 사용되는 약이다.
남성보다 적긴 하지만 여성의 방광 경부나 요도에도 알파수용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도 잔뇨감을 줄이고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도록 사용될 수 있다.
독사조신, 프라조신과 같은 알파차단제는 원래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었던 약이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알푸조신, 탐술로신과 같은 알파차단제는 혈압에는 영향이 적고 또한 비교적 적은 양을 쓰기 때문에 혈압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
하지만 여전히 혈압을 떨어뜨려주는 작용이 있긴 있어서, 항고혈압약과 함께 복용하면 처음 1-2주 동안 저혈압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오랫동안 복용하면 어느 정도 적응하여 큰 문제가 안 되지만 항고혈압약이나 전립선약의 복용량을 늘리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에는 저혈압이 심해져서 어지럽거나 피로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알파차단제에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이 있어서 이로 인해 복용 초기에 코막힘, 두통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면서 부작용이 줄어든다. 전립선 비대증이 있는 분들은 감기약을 조심하라는 말을 듣게 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코막힘 증상을 완화하는 감기약 성분이 알파차단제와 정확히 반대 역할을 하는 약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감기약 속의 항히스타민제도 소변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전립선 비대증 환자가 무심코 감기약을 복용했다가 소변을 아예 못 보게 되어 병원 응급실까지 실려 갈 수 있는 이유다.
쏘팔메토와 같은 건강기능식품의 효과는 불분명하다. 효과를 봤다는 사례는 간혹 있지만 그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건강기능식품의 경우에는 약보다 효과가 완만하고 개인차도 큰 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는 게 좋다.
타달라필이라는 남성발기부전 치료약을 저용량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전립선 주위의 평활근을 이완시켜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2019-11-06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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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5> 강아지 구충제와 항암제 이야기
펜벤다졸은 강아지용 구충제다. 지난 4월 영국신문 데일리메일의 인터뷰 기사에서 소세포폐암으로 진단받았던 미국 오클라호마의 조 티펜스라는 사람이 이 약을 먹고 암에서 나았다는 경험담을 소개하여 화제가 됐다. 9월에는 같은 내용이 한국어 유튜브 동영상으로 올려져 인기를 끌며 약이 품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조 티펜스는 2016년에 암 진단을 받고 2017년에 암이 간, 췌장, 방광, 위장, 골수 등으로 퍼져서 생존기간을 3개월로 예측한다는 걸로 듣고 펜벤다졸 투약을 시작했다. 티펜스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222mg씩 3일 복용 후 4일 쉬는 식으로 매주 반복했다고 한다. 이후 3개월이 지난 PET 검사에서 암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다.
암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경험담이다. 하지만 아직 조 티펜스의 경험담만으로 펜벤다졸을 암 치료에 이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는 강아지용 구충제만 복용한 게 아니라 다른 항암신약 임상시험에도 참여했으며 토코페롤, 커큐민, 대마유 등의 다른 건강기능식품도 함께 복용했다. 조 티펜스의 경험만으로는 이들 중 어떤 약이 효과를 낸 것인지, 순전히 우연에 의한 일이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펜벤다졸은 먹어도 체내로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약이다. 펜벤다졸과 구조가 비슷하며 사람에게 사용되는 메벤다졸이란 구충제의 체내 흡수율이 10%에 못 미친다.
추측건대 펜벤다졸 222mg을 복용해도 실제 체내로 흡수되어 작용할 수 있는 분량은 22mg에 불과했을 테고 이 정도로 적은 양으로 효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구충제로 사용할 때는 이렇게 체내 흡수율이 낮은 점이 유리하다. 몸속으로 흡수가 잘 안 되므로 전신 부작용은 적게 나타나고 장내에 그대로 남으니 기생충 박멸에는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벤다졸, 펜벤다졸과 같은 기존 약의 항암효과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 유명한 다른 사례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벤 윌리엄즈 교수가 있다. 그는 1995년에 50세에 악성뇌종양으로 진단 받았는데 여드름 치료약(isotretinoin), 항고혈압약, 수면제 등의 암과는 관련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약으로 치료를 시도했고 놀랍게도 암이 완치되었다. 그는 2013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한두 사람의 사례만으로 약효를 입증할 수는 없다. 연구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기존 약의 새로운 항암효과를 알아내도 제약회사는 특허가 이미 만료된 약으로 돈을 벌기 어렵다. 그러나 기존 약 중에서 특정 표적에만 작용하지 않고 여러 곳에 다양하게 작용하는 약들에 미처 몰랐던 약효가 숨어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일단의 연구자들이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ReDO(Repurposing Drugs In Oncology)라는 비영리 프로젝트를 통해 기존 약의 항암효과를 연구 중이다. 당뇨약(메트폴민), 고지혈증 치료제(스타틴), 구충제(메벤다졸), 위장약(시메티딘), 무좀약(이트라코나졸), 여드름치료제(이소트레티노인) 등의 약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희망적이지만 반대로 강아지용 구충제에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ReDO 프로젝트에서 현재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리스트에 올려둔 약의 가짓수만 291개이고 이 중에 약간이라도 근거가 있는 게 70종이다.
펜벤다졸 하나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때는 몰랐다가 이렇게 많은 기존 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뭘 어떻게 먹어야 하나 혼란스럽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이번 강아지 구충제 논란에서 조금 부정적 입장을 취한 이유이기도 하다. 효과에 대한 일말의 기대는 있어도 아직 확실한 근거가 없고 정확히 얼마만큼을 어떻게 얼마동안 사용해야 할지, 부작용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사람용 구충제 메벤다졸도 항암 효과에 대한 연구가 여러 건 진행되었으며 강아지용 구충제인 펜벤다졸과 비슷하게 작용하지만 많은 양을 사용할 경우에는 부작용이 있다.
과거 기형 유발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었다가 항암제로 다시 출시되었던 탈리도마이드도 마찬가지로 부작용이 없는 약은 아니다. 언젠가 기존 약에서 부작용이 덜하고 항암 효과가 높은 또 다른 약을 찾아내기를 바라마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친 기대를 하지는 말아야 할 이유다.
2019-10-16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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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4> 삼키면 안 되는 약이야기
약을 사용하다보면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액체 성분의 약이 그렇다. 입에 넣었다고 무조건 삼켜서는 곤란하다. 구강청정제처럼 입을 씻어내는 약은 뱉어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삼켜야 할 수도 있다.
삼키지 말아야 하는 약으로 치과 치료를 받고 나서 자주 사용되는 클로르헥시딘액이 대표적이다. 이 약은 주로 치과에서 수술 후에 살균 소독이나 염증 완화에 자주 사용된다. 보철(의치)에 의한 염증, 아구창 등의 구강내 칸디다감염증, 치은염, 인두염, 아프타성 구내염에도 사용한다.
이 약은 구강용으로 입안에 작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므로 삼켜서는 안 된다. 만약 실수로 삼키면 어떻게 될까?
크게 긴장할 필요는 없다. 클로르헥시딘 구강용은 농도를 0.5%로 희석시켜놓은 것으로 실수로 한두 모금 삼켰다고 특별히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다.
대부분의 약성분이 체내로 흡수되지 않고 그냥 빠져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을 삼키거나 구강용이 아닌 손소독용의 고농도 제품을 삼키면 자극이 심할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약이지만 삼키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약의 용도 때문이다. 먹을 수 있는 약성분이 들어있지만 입안에만 작용하도록 제형이 설계된 약은 먹을 필요도 없고 삼켜서도 안 된다. 요즘 자주 광고되는 약 중에 구내염으로 입안이 헐어서 아플 때 입안을 헹구어 내거나 가글하는 액체 성분 소염진통제가 그런 경우다.
여기에는 디클로페낙이라는 소염진통제 성분이 들어있는데 약성분 자체는 먹는 소염진통제에 들어있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용도가 구내염을 위한 것이므로 입안에서 헹구거나 가글했을 때 효과가 있고 이에 대한 인정을 받아서 약으로 승인된 것이므로 가글 뒤에는 뱉어내야한다.
그러나 실수로 삼킨다고 해서 크게 위험하진 않다. 일단 약이 적게 들어있다. 먹는 약으로 나온 경우 한 알에 이 성분이 50mg 들어있는데 이 약은 한 포에 11mg 정도로 1/5 정도가 들어있다. 삼켜서 특별히 문제가 될 양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켜서 유익한 효과를 볼 정도의 양도 아니며 원래 용도대로 가글했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는 약이므로 사용법에 따라 사용을 권한다. (가글 뒤에 뱉어내도 약성분 일부가 흡수되기는 한다. 하루에 두세 번씩 일주일을 이 약으로 가글을 해도 먹는 약 한 알을 삼켰을 때 흡수되는 약에 비해 흡수되는 약성분의 양이 1/50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약이 적게 흡수된다.)
이런 약을 삼켜서는 안 되는 것은 약성분 외의 다른 성분이 먹는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강용 약에는 입안에 상쾌한 느낌을 주기 위해 소르비톨과 같은 당알코올, 보존제로서 벤조산나트륨과 같은 성분이 들어있는데 먹는다고 크게 해가 되지는 않지만 굳이 삼킬 필요도 없다.
구강청정제는 제품에 따라 알코올을 함유한 경우도 있어서 삼키면 안 된다. 구강청정제를 쓰고 나서 음주 단속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대개 20% 내외, 해외 유명브랜드 제품의 경우에는 알코올이 26.9%까지 들어있다. 전보다 알코올 도수를 낮춘 요즘 소주보다 더 센 술인 셈이다.
그러니 알코올 함유 구강청정제로 입을 헹구고 나서 음주 측정기를 불면 입안에 남아있는 에탄올 때문에 술을 마신 것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술을 사기도 쉽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국내와 달리 규제가 엄격한 북미에서는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못 사 마시니까 구강 청정제를 사서 마시기도 한다.
구강 청정제 속 향료로 인해 위장점막에 엄청나게 자극적인데도 그렇게 해서까지 알코올을 섭취하려는 걸 보면 알코올 중독이 무섭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구강 청정제는 가급적 알코올이 안 들어있는 게 음주 운전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더 안전하지만 구강 건조를 막고 입속 세균총 균형을 유지하는 면에서도 낫다.
하나만 더 살펴보자. 입에서 헹군 뒤에 삼켜야 하는 약도 있다. 니스타틴이라고 하는 약을 구강캔디다증 치료에 종종 사용하는데 이때는 진균감염이 주로 구강점막에 있지만 위와 장의 점막에도 감염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입에서 충분히 헹군 뒤에 삼키도록 한다. 이 경우는 삼킬 것을 미리 감안하여 제형이 만들어졌으므로 안심하고 삼켜도 된다.
2019-10-02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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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3> 몸이 붓게 하는 약 이야기
약을 복용하고 나면 다음날 얼굴이 붓거나 팔다리가 부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몸이 붓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으로는 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 피임약, 칼슘채널차단제 계열의 혈압약, 로시글리타존과 같은 당뇨약이 대표적이다. 왜 이런 부작용이 생길까?
나트륨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걸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예로 밤에 라면을 국물까지 다 먹고 잔 다음날을 생각해보면 된다. 하루 섭취 권장량에 해당하는 2그램 가까운 나트륨(소금으로 환산하면 5그램)을 섭취하고 나서 그대로 자면 소변으로 내보낼 시간이 없다.
이때 나트륨이 몸에 머문다는 건 수분도 함께 붙잡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다음날 얼굴이 붓는 것이다. 약으로 인한 부종도 기본적으로 나트륨이 빠져나가는 걸 방해하여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약마다 차이가 있다.
혈압약이 부종의 원인이 된다고 하여 모든 혈압약이 그런 것은 아니다. 고혈압 치료에 흔히 사용되는 이뇨제는 오히려 붓기를 빼준다. ACEI, ARB 계열의 혈압약은 몸이 붓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몸이 붓는 것은 주로 동맥혈관을 확장시키는 혈압약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대표적으로 미녹시딜, 다이아족사이드와 같은 혈압약이 이런 부작용이 흔한데, 요즘에는 이런 약은 고혈압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다. 칼슘채널차단약이라고 하는 혈압약, 암로디핀, 니페디핀은 자주 사용되는 항고혈압약으로 세동맥 혈관을 확장시켜서 몸이 붓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부작용이 생기는 원리를 알면 부작용을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피는 동맥에서 정맥으로 흐른다. 세동맥은 도로를 확장해서 차가 많이 들어오는데 세정맥은 도로가 그대로면 길이 갑자기 좁아지니까 혈관내액이 유출되어, 즉 새나가서 부종이 생기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은 세정맥도 넓혀주는 것이다. 그래서 칼슘채널차단약과 ACEI 또는 ARB 계열의 항고혈압약을 함께 쓰면 칼슘채널차단약이 세동맥을 확장시켜주고 ACEI가 세정맥을 확장시켜서 부종이 줄어든다. 말하자면 상행선과 하행선을 모두 넓혀 교통 체증을 막는 것이다.
몸이 붓게 하는 약으로 또 하나 기억해둬야 할 게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이다. 이 약은 신장에서 혈관을 확장시키고 나트륨 재흡수를 막는 프로스타글란딘의 합성을 막아서 부종을 악화시킬 수 있다. 소염진통제로 인한 부종은 일반적으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붓기도 가벼운 수준이지만 고혈압이 있거나 심부전이 있는 경우에는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만성질환이 없고 약 복용 중에 일시적으로 몸이 붓는 느낌이 있을 때는 크게 걱정할 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현재 고혈압이나 심부전, 신부전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심장이나 신장 기능이 저하된 경우 또는 신독성 약물 복용 시에 몸이 붓거나 체중 증가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경우, 숨쉬기가 힘든 경우에는 즉시 병원 방문이 필요하다.
신장은 대표적인 배설기관으로서 우리 몸속으로 들어온 약을 내보내는데 중요하다. 일부 약물은 신장을 통해 배설되는 과정에서 신장에 유해하게 작용하여 신장독성을 일으킨다. 아미노글리코시드, 페니실린, 세팔로스포린, 시프로플록사신 등의 항생제, 시스플라틴 등의 항암제가 대표적 예이다. 이들 약을 사용 중일 때 간혹 신장독성으로 인해 몸이 붓거나 체증 증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약 때문에 몸이 붓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해서 약부터 끊어서는 곤란하다. 약으로 치료 중이었던 질환이나 증상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작용을 무시하고 넘어가도 위험하다. 의사, 약사와 충분한 상담을 통해 대응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약으로 바꿔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존의 약을 계속 사용하면서 용량을 줄여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약 부작용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때때로 직면하게 되는 현실이기도 하다. 미리 잘 알아두면 혹시 모를 위험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19-09-18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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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2> 잠 안 오는 약이야기
평소에 잠을 잘 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이 안 오면 당황스럽다. 공포영화나 납량특집 웹툰을 보고 잔 것도 아닌데 무서운 꿈을 영화처럼 생생하게 꾸다가 깨는 일은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스트레스, 야식 때문에 잠이 안 오는 날도 있다.
하지만 숨은 원인이 약일 수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카페인은 이해하기 쉬운 예다. 커피나 차를 많이 마신 날 잠이 안 오는 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이 때 섭취량과 시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오전에 한두 잔은 괜찮은데 하루 3-4잔을 마시거나 오후 3-4시 이후에 마시면 불면증에 시달린다는 사람이 많다.
잠이 안 올 때 술을 마시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술은 수면에 방해가 된다.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에 들 수 있지만 자다가 중간에 깨는 게 문제다. 알코올이 인체의 수면을 조절하는 체계를 교란해서 잠이 안 오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매일 같이 술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가진 사람일수록 초반에는 잠을 잘 자다가 중반 이후에 깨어나서 다시 자기 힘들어할 가능성이 높다. 알코올 자체도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지만 알코올이 이뇨제로 작용하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중간에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깨니까 수면의 질이 좋을 수가 없다. 평소보다 생생한 꿈을 꾸거나 걱정, 불안이 가득한 꿈을 꾸게 되기도 한다.
무서운 꿈이나 생생한 꿈을 꾸게 하는 또 다른 숨은 원인은 니코틴이다. 금연 때문에 니코틴 패치를 사용 중인 경우 밤에 자기 전에는 떼고 자는 게 좋다.
밤에 패치를 붙이고 잠이 들면, 수면장애나 악몽 또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꿈을 꾸는 자각몽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아침에 패치를 붙이면 밤에는 떼고 자도록 권하는 이유다. 술 마시고 담배를 많이 피운 날 액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한 꿈에 시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무서운 꿈의 숨은 원인 중 하나가 감기약이다. 막힌 코를 뚫어주는 비충혈제거약이 특히 문제가 된다. 감기약 속의 슈도에페드린, 메틸에페드린 같은 비충혈제거제 성분은 뇌 속으로 흘러들어가 중추신경계를 자극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일시적으로 덜 피곤하고 정신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일부 사람들이 감기와 무관하게 감기약을 습관적으로 마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소에는 차분하던 사람이 약을 먹고 나서 불안해지거나 신경이 과민해질 수 있다.
잠을 자다가 식은땀을 흘리면서 깨거나 무서운 꿈을 꿀 수도 있다. 감기약과 카페인 음료를 함께 마시면 이런 효과가 더 증가할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려면 자기 직전에 감기약을 복용하기보다 두세 시간 전에 복용하거나 또는 비충혈제거제가 들어있는 감기약은 저녁에는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
이런 약 부작용을 모르고 밤에 감기약을 먹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악몽 속에 깨어나 귀신이 보인다며 병원 응급실을 찾는 사례도 종종 들린다.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약은 그밖에도 많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와 같은 우울증 치료약, 기관지를 확장시키는 천식약, 항히스타민제, 스테로이드, 여성호르몬제도 드물지만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니코틴 대체제 외에 금연치료제로 사용되는 부프로피온, 바레니클린도 불면, 비정상적인 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약 때문에 불면증이나 악몽을 꾸는 게 의심된다고 해서 약 복용을 스스로 중단해서는 곤란하다. 자칫하면 치료 중인 질환이 악화될 수 있다. 잠재적 원인 중 하나가 약일 수는 있으나 불면증, 악몽의 원인은 다양하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의 증상으로 잠을 못 이루는 것일 수도 있다.
우선 의사, 약사와 상담을 통해 약이 정말 문제의 원인인지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현명하다. 예를 들어 불면증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약을 저녁에 복용 중일 때는 약을 아침에 복용하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복용 중인 약의 용량을 줄여주거나 다른 약으로 바꿔주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2019-09-04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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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1> 약을 끊고 싶다면 약을 도와주세요
약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2017년 덴마크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자. 40-60세 성인 1,069명에게 질문했다. “당신이 심장질환을 겪을 위험이 크다는 진단을 받았다. 예방을 위해 약과 생활습관 개선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호하는가?” 962명은 생활습관 개선을 택했다. 열에 아홉은 고혈압 약 대신 생활습관을 조정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혈압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이 약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한다. 영양제처럼 이름은 약인데 음식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아닌 이상 약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질적 화학물질로 여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으니, 약을 적게 먹고 싶다면 약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 30-45분씩 걷기처럼 가벼운 운동을 일주일에 세 번 해주면 혈압이 떨어진다. (수축기 10.3mmHg/이완기 7.5mmHg) 과체중일 경우 체중을 4.5kg 줄여주면 혈압이 떨어진다. (7.2/5.9) DASH로 알려진 고혈압을 막기 위한 식단(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을 따라 식습관을 조정하면 혈압이 상당히 많이 떨어진다. (11.4/5.5) 하루 마시는 술을 2.7잔 줄여도 혈압이 떨어진다. (4.6/2.3) 하루 섭취하는 나트륨을 1.8g 줄이면 (소금으로 치면 4.5g에 해당한다) 혈압이 떨어진다. (5.8/2.5) 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혈압 수치와 비교하면 효과가 그리 강하진 않다. 하지만 최소한 약을 더 적게 먹는 데 도움이 된다.
고혈압 약을 끊을 수도 있다. 역시 약을 도와주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보통 혈압약을 끊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혈압 상태로 돌아간다. 짧게는 이삼일, 길어야 6개월이다. 그러나 드물지만 혈압약을 끊고 나서도 1-2년 이상 정상 혈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에 언급한 생활습관 조정 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일수록 고혈압 약을 끊고 나서도 정상 혈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생활습관 조정을 해준 사람의 경우 39%가 약을 끊고 나서 4년이 지난 시점에 계속해서 정상혈압을 유지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비율이 5%에도 미치지 못했다.
생활습관이 원래대로 돌아가면 고혈압도 재발할 가능성이 90%가 넘는 셈이다. 약으로 치료를 시작한 시점에서 혈압이 낮을수록 단 한 가지 혈압약으로 혈압이 조절되는 사람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고혈압 약의 가짓수가 적다는 건 그만큼 약을 잘 도와주고 있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젊은 고혈압 환자일수록 성공적으로 약을 끊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 방송이나 인터넷 기사에서 고혈압 약을 끊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혈압약을 끊으면 신속하게 고혈압 상태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다.
불행히도 이때 특별히 자각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약을 끊고 나도 괜찮다고 안심했다가 고혈압 상태를 방치하여 뇌졸중, 심근경색, 심부전, 만성신장병, 치매와 같은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로는 약물 치료 이전보다 혈압이 더 높아지기도 한다. 일부 약물의 경우 갑자기 중단하면 그로 인한 금단 증상으로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심혈관계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스스로 약을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기보다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조심스럽게 감량해나가는 게 좋다.
평생 혈압약의 도움 없이 정상 혈압을 유지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나이들면 항고혈압약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당뇨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항우울증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으며 항고지혈증약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약 이름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고혈압과 싸우거나 우울증과 싸우거나 고지혈증과 싸우는 약이다. 약이 이들 질환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약을 도와줄 수도 있고 약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여서 해당 질환을 도와줄 수도 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현명한 선택을 위해 하나만 기억하자. 싸움의 결과를 거두는 건 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2019-08-21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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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0> 전자담배와 약의 제형 이야기
전자담배로 갈아타고 나서 불면증이 생긴다. 말이 안 될 거 같지만 사실이다. 평소 커피를 즐겨마시던 흡연자라면 그럴 수 있다. 커피 속 카페인을 대사하는 효소 때문이다.
담배 연기 속에는 약 7000종의 엄청나게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이들 중 70종은 발암물질이다. 이토록 해로운 연기를 매일 같이 들이마시는데 우리 몸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간에서 CYP 1A1, 1A2, 2E1과 같은 대사효소의 발현을 끌어올린다. 쉽게 말해 흡입되어 들어온 화학물질을 얼른 청소해서 내보내기 위한 공기정화시스템을 더 열심히 가동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담배 연기로 인한 해를 전부 막을 수는 없고,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역으로 발암물질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효과는 있는데, 바로 카페인의 대사도 빨라진다는 것이다. 담배 연기 속 화학물질을 내보내려고 더 많이 만들어낸 효소가 카페인을 청소해서 내보내는 일도 함께 맡고 있기 때문이다. 흡연자가 커피를 여러 잔 마셔도 아무 걱정 없이 잠잘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뒤에서 열심히 일하는 대사효소 덕분이다.
그런데 전자담배에는 종전의 궐련형 담배와 달리 불로 태울 때 발생하는 연기 속 화학물질이 거의 없다. 화학물질이 안 들어오니 인체도 굳이 청소를 위한 대사 효소를 더 많이 준비할 필요가 없다.
궐련형 담배에서 전자담배로 바꾸고 나면 그런 이유로 체내 대사 효소가 원래 수준으로 돌아간다. 금연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전처럼 하루 너댓 잔의 커피를 마셨다가는 불면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CYP 1A2로 대사되는 약물(디아제팜, 에스트로겐, 메타돈, 니페디핀, 와파린, 테오필린)을 복용 중인 사람도 금연이나 전자담배로 바꾸고 나서 약의 용량을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자담배는 궐련형 담배의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금연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니코틴 흡수가 빠르기 때문이다. 약의 효과는 약성분이 얼마나 빠르게 흡수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북미에서 아편계 진통제나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메타돈 유지요법이라는 치료가 대표적인 예다.
치료를 원하는 마약중독자들에게 메타돈이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매일 약국에 와서 마시도록 한다. 메타돈은 지속시간이 매우 길고 입으로 삼키는 방식으로 복용했을 때는 효과가 매우 느리게 나타나서 마약중독자들이 혹시라도 마약을 사용했을 때 느끼는 도취감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며 동시에 금단증상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자담배와 달리 금연보조제의 중요한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니코틴 패치, 껌, 로젠지(사탕) 등의 금연보조제에도 담배와 똑같은 니코틴이 들어있다. 하지만 흡수 속도가 다르다. 담배는 니코틴을 뇌에 가장 신속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담배를 피우면 15초 만에 니코틴 성분이 뇌 속으로 들어간다. 흡수가 빠를수록 약의 효과가 강하게 느껴지고, 그럴수록 중독성이 크다. 담배를 끊기가 어려운 이유다. 이에 반해 금연보조제는 소량의 니코틴이 서서히 흡수되도록 하므로 담배를 피울 때와 같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덜하다.
담배 대신 니코틴을 넣어주는 약을 니코틴 대체제라고 부르는데, 이같은 약을 사용했을 때 니코턴의 혈중농도는 담배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낮은 수준이라서, 오히려 담배에 대한 욕구를 줄여준다. 낮은 수준으로라도 니코틴의 혈중 농도가 계속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에서는 담배를 피워도 그로 인한 보상감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코틴 대체제를 사용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위험하다. 흡연만 할 때보다 혈중 니코틴 농도가 더 높아져서 그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이다.
니코틴 껌은 껌처럼 계속 씹는 게 아니라 두 번 씹고 나면 잇몸과 뺨 사이에 껌을 물고 있어야 하는데 이 역시 혈중 니코틴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약을 서서히 흡수시키기 위함이다.
이렇게 혈중 니코틴 농도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때 금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배고플 때 음식을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지만, 계속해서 조금씩 간식을 하고 있던 중에는 밥맛이 떨어지는 원리와 비슷하다.
똑같은 니코틴이지만 금연을 도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커피 속 카페인에 둔감하게 만들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약은 성분에 따라서만 달라지지 않는다. 제형도 중요하다.
2019-08-07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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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9> 약도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2년 전 한 TV 프로그램 작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스피린을 원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그보다 한 해 앞서 2016년 인터넷매체에 아스피린으로 머리를 감고, 발의 각질을 제거하고, 옷에 묵은 때를 제거한다는 이야기가 기사화되고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전파된 적이 있었다.
그런 속설이 1년이 지난 2017년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마침내 방송 제작진에게까지 들어가 그 주의 아이템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나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방송에서 약에 대한 잘못된 속설에 대해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답했다.
아스피린과 아스피린이 분해되어서 생기는 살리실산은 다른 약이다. 살리실산을 두피에 바르면, 각질을 녹이고, 약간의 항균 효과가 있어서 비듬이나 지루성 피부염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스피린에는 그런 효과가 없다. 아스피린을 가루내어 물에 타서 발라도 비듬이나 지루성 피부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화학 구조의 차이 때문이다. 아스피린의 화학명은 아세틸살리실산이다. 물에 녹이면 살리실산으로 가수분해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다. pH 7.0, 실온에서 물에 녹이면 절반이 분해되는 데 약 52시간이 걸린다.
아세틸기는 아스피린의 작용 기전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살리실산에는 항혈소판 효과가 없고 항염 작용도 아스피린보다 약하다. 반면 아스피린은 살리실산과 같은 산이 아니라 에스테르여서 각질을 녹이는 효과가 없다.
아스피린은 가정에서 실수로 과용량을 복용해서 사고가 많이 나는 약이고, 특히 어린이들이 뭔지도 모르고 다량을 삼켰다가 응급실에 실려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보관시 어린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도록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 약이다.
그러나 이미 방송을 준비한 제작사로서는 아이템을 버리기가 어려웠던 것인지 이번에는 사용 기한이 지난 아스피린으로는 괜찮지 않냐며 다시 인터뷰를 요청했다. 사용 기한이 지난 약은 약국에 반납해서 폐기처분하도록 해야지 원래 용도가 아닌 다른 용도에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답했다.
나는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제작진은 포기하지 않았고 다른 전문가와 인터뷰하여 기어코 방송을 내보냈다.
다른 방송사에서 디아제팜을 과용하면 죽을 수도 있냐는 질문을 해온 적도 있었다.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신경안정제를 과용하면 졸리고 무기력해지며 운동실조증과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는 있으나 단독 복용으로 사망에까지 이르는 경우는 드물다.
알코올이나 다른 중추신경억제제와 함께 복용했을 때는 부작용이 더 심해져서 호흡억제에까지 이를 수 있다. 방송사에서 예상한 답이 아니었지만 그게 문제의 상황에 맞는 답이었다.
하지만 역시 다른 전문가와 인터뷰하여 디아제팜은 치사적이라는 식으로 방송이 나갔다. 기본적 사실 확인 없이 그저 방송 제작진의 입맛대로 답하는 전문가는 존재한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가장 최근에는 파스에 대한 또 다른 낭설을 인터넷에서 봤다. 파스 속 살리실산메틸이 분해되면 메탄올과 살리실산으로 분해되어, 메탄올은 공기중으로 날아가고 살리실산이 피부로 흡수된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설명을 덧붙여서 그래서 메탄올이 증발하는 덕분에 시원한 느낌을 준다고 설명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참신한 이론이지만 철저히 틀렸다. 파스 속 살리실산메틸이 피부로 12-20% 정도 흡수되는 건 맞고 일부는 피부의 가수분해효소에 의해 메탄올과 살리실산으로 분해되는 것도 맞다. (파스에 함께 넣는 멘톨과 캠퍼가 이를 억제하므로 실제 대사는 간에서 주로 일어난다.)
하지만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흡수된 뒤다. 이미 흡수된 피부 속에서 메탄올이 소량 생겨난다고 문제가 될 일도 없지만 이렇게 생겨난 메탄올이 선택적으로 날아가거나 날아가면서 시원함을 주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체내에서 대사, 배설되는 게 맞다. 파스에 대해서는 유독 틀린 설명이 많다. 캡사이신 성분의 파스를 붙이면 뜨거운 것은 혈관 확장 때문이 아니고 TRPV1 온도수용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멘톨 성분의 파스를 붙이면 차가운 것은 혈관 수축 때문이 아니고 TRPM8 온도수용체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얼음찜질을 할 때는 혈관수축이 되지만 차가운 파스는 느낌만 차가울 뿐 혈관은 확장하므로 얼음찜질을 대신할 수 없다. 약의 전문가로서 약사는 스펀지처럼 아무 정보나 빨아들이면 안 된다. 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의심과 질문을 해봐야 한다. 거짓정보를 가려낼 수 있어야 진짜 약의 전문가다. 아는 약이라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2019-07-17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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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8> 장내가스를 줄이는 방법
높은 산에 올라가면 방귀가 잦아진다. 과자 봉지를 높은 곳에 가져가면 외부 기압이 낮아져서 봉지가 부풀고 내려오면 쪼그라드는 것처럼, 우리 대장 속 가스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부풀어서 방귀가 더 자주 나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비행기를 타면 뱃속에 가스가 차는 듯한 느낌이 심해질 수 있다. 산 정상에 오르지도 않았고 하늘을 날고 있지도 않은데 뱃속에 가스가 부글거리는 듯하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음식, 약물, 장내 세균총의 변화 또는 질환으로 인해 장내 가스 생성량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뱃속에 가스가 만들어지는 기전은 다양하다. 위와 소장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대장으로 넘어온 음식물 찌꺼기가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위산 중화과정이나 영양 성분의 대사과정에서도 생겨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뱃속에는 약 200mL 의 가스가 들어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 트림과 방귀를 통해 제거되는 가스의 양은 적게는 500ml부터 많게는 1.5리터에 달한다.
평소보다 장내 가스가 더 많이 생겨도 별 느낌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조금만 가스가 늘어도 민감하게 반응하여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먼저 원인이 되는 음식이나 생활습관을 찾아 조정해주는 게 좋지만 약으로 증상을 줄이고 싶다면 시메티콘, 디메티콘 성분의 소포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소포제란 거품을 없애는 약이란 뜻으로 위장에 생긴 가스 기포의 표면장력을 줄여 기포를 터뜨리거나 합쳐지도록 하여 가스 제거를 쉽게 해준다. 시메티콘, 디메티콘은 덩치가 큰 실리콘 중합체여서 체내로 흡수가 안 되어 전신 부작용이 드문 안전한 약이다.
다만 이들 성분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고,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혹시 장폐색과 같은 심각한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먼저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우유 속 유당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이 있을 경우는 우유와 유제품 섭취로 인해 가스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유제품 섭취를 피하면 제일 좋고 유당을 제거한 우유를 마시거나 우유 대신 발효유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막상 살다보면 우유와 유제품을 전적으로 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유당불내증이나 과민성대장증상 환자의 경우에 프로바이오틱스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유제품에 더해 양파, 샐러리, 당근, 양배추와 같은 채소 콩류, 사과, 살구, 자두와 같은 과일도 가스 생성량을 늘릴 수 있다. 무를 먹고 트림하지 않으면 보약이 된다는 농담 속 진실은 무는 장내 가스를 생성하는 식품이란 것이다. 소르비톨과 같은 당알코올 성분이 들어간 껌이나 캔디도 많이 먹으면 가스와 복통을 유발할 수 있다. 지방질이 많은 식품도 장내 가스로 인한 증상을 악화시킨다.
생크림 케이크, 수플레, 스펀지케이크, 밀크셰이크, 탄산음료처럼 자체적으로 공기를 품고 있는 식품도 가스 증상을 악화시킨다. 감기약이나 알레르기약에 들어있는 항히스타민제 성분도 장운동을 늦춰 가스로 인한 증상이 증가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식사 습관도 가스와 관련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음식을 삼킬 때 공기도 삼키게 된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을 수는 없지만 게걸스럽게 삼키지는 말아야 한다. 음식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는 습관이 가스를 덜 삼키고 증상을 줄이는 데 좋다. 담배를 피우거나, 껌을 씹거나, 사탕을 빠는 것도 공기를 더 많이 삼키게 하므로 가스 증상을 줄이려면 피해야 하는 습관이다.
장내 가스 증상이 여러 달 지속되거나 너무 자주 생기는 경우, 복통이 심하거나 부위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 40세 이후에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난 경우, 위장관 출혈이나 체중 감소를 동반한 경우는 병의원에 방문하여 상담받기를 권한다.
2019-07-03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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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7> 해외여행자를 위한 알쓸신약
해외여행자 수가 계속 늘고 있다. 2018년 한국인 출국자 수는 2,870만 명으로 9년 연속 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해외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준비물이 약이다. 상비약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만성질환자의 경우에는 평소 복용하는 약부터 미리 챙겨둬야 한다.
여행지에서 고혈압약이나 당뇨, 천식약을 구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처방약이고 설사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경우에도 원래 쓰던 약과 동등한 것인지 확인이 쉽지 않다. 여행 중간에 만성질환 치료약이 떨어져서 복용을 중단하게 될 경우 대단히 위험하다. 여행이 원래 계획보다 늘어날 경우에 대비하여 넉넉한 분량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방문하는 국가의 언어에 능통한 경우가 아니라면 해외에서 증상이 악화되어 병의원을 방문할 경우를 대비해 자신의 병명과 상태를 영문으로 적은 처방전을 준비해두는 게 좋다. 간혹 입국 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영문 처방전을 미리 하나 가져가는 게 안전하다.
상비약도 챙겨가야 한다. 여행지에서도 쉽게 약을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상비약을 빠뜨렸다가 낭패를 보기 쉽다.
하지만 막상 해외여행을 나가서 상비약이 없으면 곤란할 때가 많다. 약사인 나도 해외여행 중에 상비약을 사러갔다가 낭패를 겪은 경우가 있다. 의외로 약성분이 영어로 적혀있는 나라는 많지 않아서 해당국가의 언어를 읽지 못하면 원하는 약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나라 언어를 상당히 잘 구사하는 분들도 약에 대해서는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경우를 종종 본다. 해열진통제, 가벼운 설사에 대비한 지사제, 소화제, 종합감기약, 멀미약, 가벼운 상처 치료를 위한 연고, 일회용 밴드, 거즈, 반창고, 모기기피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미리 챙겨두는 게 좋다.
상비약을 준비했다고 끝은 아니다. 사용방법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사용하면 오히려 위험하다. 각각 어떤 경우에 쓰는 약인지 정도는 미리 알아둬야 하고, 사용 전에는 뒷면의 일반의약품 정보와 첨부문서를 확인해야 한다.
2-3분 시간을 내어 설명서를 읽어두면 약을 잘못 사용해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 약 사용을 중지하고 현지의 병원이나 약국을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도 약 사용 설명서에서 찾을 수 있다.
상비약을 챙겼다고 모든 걸 상비약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어떤 경우든 증상이 심할 때는 병의원을 가야 한다. 가벼운 열이 있거나 가벼운 근육통 등이 있을 경우 해열·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지만, 고열, 심한 근육통, 또는 갑자기 쓰러진 경우에는 얼른 현지 병의원에 방문하는 게 낫다.
가벼운 설사가 있을 때는 지사제를 사용할 수 있지만 복통, 고열을 동반하는 감염성 설사일 경우는 현지 병원을 방문하거나 또는 병원에서 미리 처방을 받아 항생제를 준비했다가 사용하는 게 좋다. 약을 써도 이틀 내에 설사가 멈추지 않을 때도 현지 병의원에 방문해야 한다.
여행 시 짐을 챙기다 보면 가져가야 할 물건들이 점점 늘어나 가방이나 캐리어가 제대로 닫히지 않을 지경에 이른다. 이때 짐의 부피를 줄이려고 상비약 포장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건 좋지 않다.
약의 용량, 용법, 사용상 주의사항, 사용기한이 적혀있는 포장 박스를 버리면 상비약을 챙겨 가서도 막상 써야할 때 제대로 쓸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연고나 크림 같은 약을 다른 용기에 담아가는 것도 약의 품질을 저하시킬 수 있어서 추천하기 어렵다. 포장을 벗겨가면 다른 약과 혼동될 우려도 있다. 다른 짐의 부피를 줄이고 약은 가급적 원래 포장된 상태로 가져가는 게 좋다. 여행 중일 때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상비약은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그래도 상비약을 깜박 잊은 경우는 생긴다. 현지에서 약을 구입해야 할 때는 현지 약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끝으로 해외에서 좋다는 약이 이름만 다를 뿐 국내에 있는 약과 동일한 제품인 경우도 많으니 구입 전에 잘 살펴보길 권한다.
호주나 뉴질랜드 여행을 갔다가 파나돌(파라세타몰)이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성분 약인 줄 모르고 사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2019-06-19 0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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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6> 반드시 알아둬야 할 모기 기피제 이야기
벌레는 안 물리는 게 최선이다. 야외활동이 많은 여름철, 벌레에 안 물리려면 곤충 기피제 사용법에 대해 잘 알아둬야 한다. 시중에 다양한 제품이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곤충 기피제는 DEET(디에틸톨루아미드) 성분 또는 이카리딘 성분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남들보다 모기에 더 잘 물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유 중의 하나가 체취나 땀 냄새로 인한 것이다. 모기는 이산화탄소, 체열, 땀, 피부 분비물의 냄새를 감지하여 흡혈대상을 찾는다. DEET 성분의 모기 기피제를 피부와 옷에 뿌리면 곤충이 싫어하는 냄새의 증기를 발생시켜 모기와 진드기, 벼룩 같은 곤충을 쫒아낸다.
하지만 그 효과가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니다. 농도에 따라 30% 함유 제품은 5-8시간, 20%는 4-6.5시간, 10%는 2.5-4.5시간으로 효과 지속 시간이 짧아진다. 반대로 농도가 높을수록 피부자극과 같은 부작용이 심해진다는 단점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피부 자극이 DEET보다 적고 독성도 낮은 이카리딘 성분 기피제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이카리딘은 모기가 사람 냄새를 맡는 것을 방해하여 효과를 내며 모기와 진드기를 쫒아내는 효과가 있다. 역시 농도에 따라 효과 지속 시간이 달라진다. 10% 함유시 모기 기피 효과는 5시간, 진드기 기피 효과는 7시간 정도 유지되며 20% 함유 제품은 모기로는 7시간, 진드기로는 8시간까지 효과가 지속된다.
연중 이맘때면 방송과 인터넷에 천연성분 기피제에 대한 정보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향유, 시트로넬라 오일, 콩기름, 유칼립투스 오일, 티트리 오일 등을 함유한 이들 천연성분 기피제는 모기에 대한 기피제로서 DEET보다 효과가 떨어진다. 2017년 식약처에서 제조중지 및 신규품목 허가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모기 기피제는 어떻게 써야 효과적일까? 우선 제품 사용설명서를 읽어봐야 하지만 일반적 원칙은 노출된 피부와 옷 위에 뿌리거나 바르되 적당한 양만큼만 사용해야 한다. 옷으로 덮인 피부에는 바르지 말아야 한다. 사용설명서 상의 지속시간을 확인하여 시간 간격을 잘 맞춰 재사용해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저농도의 제품으로 성인이 발라주는 게 좋고, 특히 손, 입, 눈 주위에는 바르지 않는 게 좋다. 2세 이하 유아는 이카리딘 계열의 제품이 낫다. 곤충 기피제는 찢어지거나 상처가 난 피부에는 뿌리지 않는 게 원칙이며 스프레이 타입일 경우 얼굴에는 뿌리지 않고 먼저 손에 뿌려서 얼굴에 문질러주는 게 안전하다.
야외활동을 마치고 귀가해서는 비누와 물로 피부에 남아있는 기피제를 깨끗이 씻어줘야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쓰면 모기 기피제도 미세먼지처럼 작용할 수 있다. 분무제는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사용해야 한다.
자외선 차단제와 모기 기피제를 둘 다 써야 할 때도 종종 있다. DEET 성분은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쓰면 피부로 더 많이 흡수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자외선 차단제를 20-30분 전에 먼저 발라서 충분히 스며들도록 하고 모기 기피제는 나중에 나가기 직전에 뿌린다.
모기밴드는 믿지 않는 게 좋다. 밴드를 찬 팔 주변에나 조금 효과가 있을까, 그다지 효과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휴대폰 앱도 효과에 대한 근거가 미약하다. 진한 색상 옷을 입으면 모기에 더 잘 물린다는 속설도 틀린 이야기다. 다만 밝은 색상 옷을 입고 야외에 나가면 벌레가 달라붙었을 때 더 잘 보여서 쫒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벌레엔 안 물리는 게 최선이지만 모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곤충이다. 2015년 한 해 전 세계에서 72만5000명이 모기로 전염되는 말라리아, 뇌염, 황열병, 뎅기열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말라리아는 백신이 없으며 위험지역 여행 시에는 예방약 복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세계적으로 100개국이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며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북아프리카 일부, 동남아시아 등이 위험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여행 전에는 가까운 병원, 보건소에 문의하거나 또는 질병관리본부 웹사이트에서 내가 여행할 지역이 혹시 말라리아 위험지역인지 확인하자.
2019-06-05 09: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