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약사·약국] <84>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이야기
지난 4월 말부터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가 약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콧속 깊이 비인두에서 전문가가 검체를 채취하여 검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나 집에서도 손쉽게 코로나 검사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검사 전 손을 깨끗이 씻는다. 제품에 포함된 멸균면봉을 반대편 끝으로 잡고 한쪽 콧구멍 속에 1.5cm 깊이로 넣어 10번 정도 원을 그리면서 문지른다. 동일한 면봉으로 반대쪽 콧구멍 속에 면봉을 넣고 동일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다. 이렇게 하여 면봉에 콧속 점액을 충분히 뭍힌 뒤에 면봉을 용액이 들어있는 통에 넣고 다시 10번 정도 원을 그리면서 저어준다. 마지막으로 면봉을 용기 벽면에 대고 눌러 짜내면서 꺼낸다. 미리 포장박스에 용액통을 꽂아두면 편리한데 꽂는 곳이 잘 안 보인다. 짜장 컵라면 뚜껑에 젓가락 꽂아서 물 버리는 곳을 찾는다는 느낌으로 표시된 부분을 찾아보면 쉽다. 면봉을 용액통에 넣고 휘젓는 과정을 통해 이제 콧속 점액을 용액에 녹이는 과정까지 완료된 상태이다. 노즐캡을 눌러 닫고 검사용 디바이스의 동그란 검체점적부위에 4방울만 떨어뜨린다. 검사 결과는 15분 뒤에 판독하면 된다. 두 줄이 다 나타나면 양성, C라고 표시된 대조선만 나타나면 음성, T라고 표시된 곳 아래만 선이 나타나거나 선이 둘다 안 보이면 무효이다.
검사 결과에 따라 취해야 할 행동이 달라진다. 양성일 경우는 우선 1339콜센터에 확인한 후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 방문하여 PCR 검사(RT-PCR)를 받아야 한다. 음성이어도 발열, 마른기침, 피로감 등의 증상이 있을 경우에는 1339콜센터에 확인한 후 선별진료소에 방문해야 한다. 검사 결과는 15분 뒤에 확인해야 한다. 30분이 지난 뒤 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
기존 유전체 분석 검사가 코와 목의 경계부위인 상기도 비인두 부위에서 채취했다면 자가 검사키트는 비강에서 채취하는 것이 차이다. 면봉을 깊이 넣지 않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검사를 할 수 있다.
편리해서 좋지만 검사 결과 정확하지 않으니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반론도 있다. 정확한 용어는 민감도(sensitivity), 특이도(specificity)이다. 검사 결과 양성이어도 실제로는 양성이 아닌 위양성이 있다. 검사 결과가 양성일 때 실제로 양성일 확률이 민감도이다. 반대로 검사결과가 음성인데 실제 음성일 확률이 특이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임신진단테스트로 생각해보자. 민감도는 검사 결과가 양성일 때 실제로 임신일 확률, 특이도는 검사 결과가 음성일 때 실제로 임신이 아닐 확률이다. 결과 판독 뒤 행동도 비슷하다. 임신 테스트기로 양성이 나오면 정말 임신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선 병의원부터 가야한다. 임신 테스트기로 음성이 나왔는데도 임신 증상이 있다면 역시 확인을 위해 병의원부터 가야한다.
지난 4월 23일 식약처에서 조건부로 신속허가를 받은 항원방식 자가검사키트 2개 제품은 임상시첨 자료를 추가 제출하라는 조건 하에 3개월 동안 사용이 허가된 것이다. SD바이오센서 제품은 민감도 90%, 특이도 96%, 휴마시스 제품은 민감도 89.4%, 특이도 100%로 전문가용 허가를 받은 적이 있다. 코크란 리뷰(Cochrane review)에 따르면 항원 테스트는 코로나19 증상이 있을 때는 감염자를 제대로 확인할 확률이 72%로 높은 편이지만 무증상자일 경우는 확률이 58%로 떨어진다. 증상이 나타나고 1주일 이내에 검사했을 때 실제 감염자가 양성으로 나타날 확률이 78%로 제일 정확하다.
64건의 보고서를 분석한 리뷰에서 연구자들은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의 사용으로 PCR 검사를 해야 할 사람을 선별하거나 접촉자 추적을 하여 검사에 드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자가검사키트를 가정에서 사용할 때 얼마나 정확히 지시사항을 따르냐,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올 경우 자발적으로 콜센터에 연락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실제 효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자가검사키트 검사결과 두 줄(대조선 C, 시험선 T) 모두 붉은색이 나타나 양성인 경우에는 사용한 키트를 비닐 등으로 밀봉 후 선별 진료소 등 검사기관에 제출해 코로나19 격리의료폐기물로 처리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하자.
2021-05-13 12:03 |
![]() |
[약사·약국] <83>물에 대한 속설 정리해보기
카페인 음료도 수분 섭취에 포함된다. 차나 커피 속 카페인이 이뇨제로 작용하므로 수분 섭취에 도움이 안 된다는 속설은 틀렸다. 하루 종일 물 대신 차를 마시는 나라 사람들은 어쩌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차는 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이다. 양으로 봐도 커피보다 차를 세 배 더 마신다. 카페인 음료로 수분을 섭취할 수 없다면 물 대신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지구상에 생존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카페인의 이뇨 효과는 그리 강력하지 않다. 차나 커피로도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
카페인 음료는 섭취 수분에 포함하면 안 된다는 속설의 시작은 1928년 캐나다에서 단 세 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다. 6년 더 채워 백년 되기 전에 틀린 이야기는 그만 하자. 덧붙이면 맹물이 아닌 음식으로도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 식단에 따른 개인차가 있으나 음식으로 섭취하는 수분이 전체 섭취 수분의 20% 이상이다.
커피나 차로 약을 복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선 뜨거워서 그렇다. 약 먹을 때 물은 알약이나 캡슐이 식도에서 중간에 들러붙지 않고 위까지 쭉 내려갈 수 있게 돕는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는 한 번에 마시기 어렵다. 조금씩 마시면 그만큼 알약이 중간에 식도 점막에 달라붙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식도 점막에 구멍이 뚫릴 위험이 있다.
안전하게 알약을 위까지 전달하려면 가급적 미지근한 물로 약을 삼키는 게 좋다. 커피나 차의 카페인도 문제가 된다. 감기약, 두통약, 근육통약에도 카페인이 들어있어서 카페인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약에 따라서는 카페인으로 인해 약효와 부작용이 증가하거나 반대로 약효가 줄어들기도 한다.
하루에 물 2리터를 마셔야 한다는 말도 근거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물 2리터는 미국의 8x8룰에서 왔다. 매일 8온스의 음료를 8잔 마시라는 것이다. 8온스면 240ml이니까 하루 1920ml로 약 2리터가 된다. 하지만 언제 누가 시작한 권고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기억하고 전달하기 쉬운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이 아닌데도 전달력이 좋아 수십 년을 살아남았다. 스토리의 부정적 힘이다.
2008년 미국 신장학회지는 물을 많이 마시면 건강에 유익하다는 속설을 낱낱이 팩트체크했다. 우선 물을 마시면 신장 기능을 향상시키고 독소를 제거한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근거가 없다. 물을 많이 마시면 오히려 사구체여과율이 줄어들어서 신장의 청소기능이 감소한다. 다만 이 연구 결과도 장기간에 걸친 것은 아니므로 결론을 짓기 어렵다.
물을 많이 마시면 다양한 인체 장기에 남아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근거가 없다. 물을 천천히 마시면 단 시간에 마실 때보다 조금 더 천천히 빠져나가긴 한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는 대부분 24시간에 걸친 짧은 시간을 본 것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알 수 없다.
음료 중 거의 유일하게 술은 탈수를 일으킨다. 알코올이 대사되는 과정에서 수분이 빠져나간다. 과음한 다음날 얼굴이 땅기는 느낌이 드는 것은 탈수가 원인이 맞다. 탈수 증상으로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반대로 탈수가 없는 사람이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신다고 피부가 더 촉촉해지진 않는다. 겨울에 물을 충분히 마셔도 핸드크림 안 바르면 손이 튼다.
물을 많이 마시면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식전에 물을 많이 마시면 포만감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고 수프처럼 수분 함유량이 높은 음식을 식전에 먹으면 섭취 열량이 감소한다는 연구도 있긴 하다. 2008년 비만 학회지에 실린 연구는 물 섭취량이 하루 1리터 이하인 비만여성을 대상으로 했다.(이 연구는 음료가 아닌 물 섭취량을 비교했다.)
이들의 물 마시는 양을 하루 1리터 이상으로 늘리도록 하자 동일한 다이어트를 따르면서 하루 물 1리터 미만을 마신 경우보다 평균 2.3kg 더 체중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당분 음료 대신 물을 마시면 섭취 열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해서 적게 먹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너무 큰 효과를 기대하지는 말자.
끝으로 갈증을 느끼기 전에 수분 섭취가 필요하다거나 갈증을 못 느끼는 만성 탈수가 있다는 주장도 근거 없다. 요약해보자. 목마르면 물마시자. 물 많이 마시지 말라는 주의를 듣는 경우에는 너무 많이 마시지 말자. 굳이 하루 8잔을 세가면서 마시지는 말자.
2021-04-28 15:16 |
![]() |
[약사·약국] <82> 새벽에 약을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
새벽에 일어나서 알약을 먹는 경우를 종종 본다. 빈속에 약을 먹으면 흡수가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고 뭔가 더 정성이 들어가는 느낌 때문에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새벽녘에 복용해도 매일 같은 시간에만 복용하면 되는 약도 있다.
하지만 약에 따라서는 이렇게 복용하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지용성 성분의 약이 그렇다. 오메가3지방산은 약으로 승인된 것도 있고 건강기능식품도 있지만 제형은 대부분 연질 캡슐로 동일하다. 보통 말랑말랑한 연질 캡슐 속에는 기름에 녹인 약성분이 들어있다. 오메가3지방산 제품에 TG, EE(Ethyl Ester), rTG의 여러 형태가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 복용해야 제일 흡수가 잘 되는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메가3 지방산 보충제는 식후에 섭취해야 가장 잘 흡수된다. 새벽에 빈속에 먹으면 흡수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아침 식후에 복용해도 흡수 효율이 그리 좋지 않다. 아침부터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리 먹는 사람은 드물지만, 가벼운 식사 뒤에 오메가3 지방산 보충제를 복용하면 흡수되기 어렵다. 저녁 식후에 복용해야 흡수가 잘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비타민D가 인기를 끌면서 연질캡슐 제형이 주류가 되었다. 방송에서 연질캡슐이 흡수가 잘 된다는 이야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타민D 2,000 IU라고 해봤자 0.05mg에 불과하다. 이렇게 양이 적으므로 비타민D를 기름에 녹여 연질캡슐로 만드느냐 일반 정제로 만드느냐 제형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다. 식전에 복용하느냐 식후에 복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비타민D 역시 새벽에 일어나서 빈속에 복용하면 흡수 효율이 가장 떨어진다. 비타민D는 식후에 복용하는 게 좋다.
동일한 원칙에 따라 종합비타민제도 식후에 복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종합비타민제에는 지용성, 수용성 비타민이 모두 들어있다. 수용성 비타민의 경우는 식전에 복용하는 게 흡수가 더 잘 될 수도 있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이에 반해 지용성 비타민은 식전에 복용하면 흡수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 꼭 흡수율을 따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비타민을 섭취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식사를 통해서라는 점도 종합비타민제를 복용하기에 제일 좋은 시간이 식후라는 걸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철분제는 빈속에 복용하는 게 흡수 면에서 제일 좋다. 하지만 빈속에 철분제를 복용하면 오심, 복통, 설사와 같은 부작용이 증가하기도 한다. 이런 부작용으로 철분제를 복용하기 힘들어질 경우에는 식후에 복용하는 게 약을 건너뛰는 것보다 낫다. 철분제를 식후에 복용하라고 권하는 것은 흡수율이 조금 떨어지더라고 부작용을 줄여 약을 더 꾸준히 복용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탄산칼슘, 산화마그네슘과 같은 다른 미네랄 제제는 물에 녹아서 흡수되려면 위산이 필요하다. 칼슘보충제나 마그네슘보충제와 같은 약을 식후에 복용하도록 권하는 이유다.
패취제(patch)를 자르면 서서히 방출, 흡수되어야 할 약성분이 한꺼번에 나와서 문제가 된다는 설명도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경우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펜타닐 패치처럼 약물저장소(reservoir)층과 약물 방출속도 조절층이 있는 막제어형 타입일 경우는 반으로 자르면 절단면을 따라 약물이 저장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위험하다. 반으로 자르는 의도는 약의 용량을 절반으로 줄이려는 것인데 그와 정반대로 약의 용량이 증가하는 셈이 되어 부작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매트릭스(matrix) 제어형 패취제일 때는 원칙적으로 잘라도 된다. 이 때는 중합체 매트릭스 속에 약성분이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으므로 반으로 정확히 자르면 시간당 흡수되는 약물량과 전체 용량도 절반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패취제를 잘라 쓰지 말라고 권고한다. 실제로 사용자가 패취제를 자를 때는 사람에 따라 정확히 반으로 자르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 절단된 패취에 접착력이 떨어져서 잘 안 붙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회용 밴드를 반으로 잘라 붙이면 피부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니코틴 패취제의 경우 주로 매트릭스 타입이지만 잘라쓸 수 없다. 니코틴이 상온에서 휘발성이 강하여 자르면 대부분 공기중으로 날아가 버린다. 약은 성분과 제형에 따라 사용방법이 다르다. 제대로 알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2021-04-14 10:30 |
![]() |
[약사·약국] <81> 바르는 약이야기
연고와 크림은 어떻게 다를까? 연고는 바셀린처럼 조금 더 기름에 가까운 끈적끈적한 타입이다. 크림은 물과 기름이 섞여있는 제형으로 조금 더 촉촉한 느낌이다. 쉽게 말해 크림은 수분감이 있다고 표현하는 타입이다. 대부분의 화장품은 크림 타입이다. 하지만 콜드크림은 크림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음에도 유분감이 크다. 콜드크림은 수분이 유분 속에 분산되어 있는 형태이다. 피부에 발랐을 때의 차가운 느낌 때문에 콜드크림이라고 불린다.
바르는 약에는 수분 함유량이 더 높은 젤이나 로션 제형도 있다. 이들 중에서 어떤 성분이 피부를 제일 건조하게 할까? 정답은 겔이다. 겔이나 로션에는 수분이 많이 들어가는데, 대체로 약성분은 기름에 잘 녹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런 약성분을 물과 함께 녹이려면 알코올 성분이 들어가게 된다. 알코올은 피부를 건조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겔은 건조한 느낌이 들기 쉽다. 게다가 물 자체는 금방 말라버리기 때문에 피부 보습에 큰 도움이 안 된다. 보습을 위해서는 연고, 크림, 겔 순으로 효과가 좋다. (단, 이는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분류이다. 연고 기제로 사용되는 친수성 연고나 PEG 연고는 이름은 연고이지만 물로 잘 씻긴다.)
연고는 그 자체에 물이 안 들어 있어서 특별히 보존제나 유화제가 필요없다. 하지만 크림은 물과 기름을 섞어서 만들어지는 에멀젼이다. 수분이 있으면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크림에는 미생물 오염을 막기 위한 보존제를 넣어주어야 한다. 간혹 보존제에 피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같은 약성분이 들어있는 로션이나 크림보다 연고를 사용하는 게 낫다. 아토피성 피부나 피부가 건조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연고가 상대적으로 보습이 잘 되면서 자극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연고가 끈끈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보습을 위해 크림, 로션, 연고를 사용할 때도 바셀린 같은 연고타입은 효과는 오래가는데 끈적거려서 사용에 어려움이 있고, 크림이나 로션은 사용에는 편리한데 효과가 금방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같은 약성분이 들어있어도 제형이 연고냐 크림이냐에 따라 효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약 성분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경우, 연고나 겔이 크림이나 로션에 비해서 더 잘 흡수되어서 효과가 잘 나타난다. 연고는 겔이나 크림에 비해 바른 부위에 더 오래 머물기 때문에 약성분이 오랫동안 흡수되고 약을 바른 부위를 보호해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은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연고는 기름진 성질 때문에 제거하기 어렵고 진물이 나는 부위에는 바르기 힘들다. 상처 부위에 진물이 날 때 연고를 바르면 제대로 펴 발라지지 않고 들뜨게 되므로 이때는 가급적 동일 성분의 크림을 발라주는 게 낫다.
약의 흡수를 높이기 위해 흡수촉진제 등을 넣어 특수하게 제형 설계한 연고나 크림도 있다. 이렇게 같은 약이라도 제형이 여러 가지이므로, 자신에게 맞는 제형을 골라서 쓰는 게 좋다.
연고나 크림은 사용상 지시사항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환부(질환 부위)에 적당량을 바른다고 쓰여 있다. 적당량이 얼마인가를 알려주는 설명이 없다. 적당량은 약성분에 따라 다르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 연고는 얇게 펴서 바른다. 구체적으로 사용량은 손끝마디단위(finger tip unit, FTU)를 따른다. 성인의 손가락 끝마디에 연고를 한 줄 짜냈을 때 0.5그램 정도 되는데 이걸 1 FTU라고 한다. (연고 튜브 노즐이 표준 5mm 직경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이다.) 1 FTU는 양손 손가락과 손바닥면을 바르기에 충분한 양이다. 한 손으로 치면 손가락 전체와 손등, 손바닥을 바를 수 있는 양이다. 부위에 따라 스테로이드 연고나 크림을 바르는 양이 다르다. 계산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는 스테로이드 연고는 아껴 쓴다는 걸 원칙으로 생각하고 바르면 된다. 상처에 바르는 크림이나 페이스트는 경우에 따라 두껍게 발라야 할 때도 있다. 친숙한 제형의 약이라도 제대로 알고 써서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자.
2021-03-31 10:41 |
![]() |
[약사·약국] <80> 코로나19 가짜뉴스와 언론이야기
코로나19 관련 오보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국내 한 언론사인 K일보는 지난주 기사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의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이상반응을 보이거나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유럽 일부 국가가 해당 백신의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고 썼다. 대형 오보이다. 백신 사용이 전면 중단된 게 아니다. 백신을 맞은 뒤 사망 사례가 나오자 이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해당 제조단위(batch) 백신의 사용을 잠정 중단한 것이다. 이해하기 쉽게 집에 있는 상비약 중 하나를 집어 박스 포장을 확인해보자. 사용기한 바로 위에 20543, 20016같은 제조번호가 적혀있다. 제조단위(batch)란 대량으로 약품을 생산할 때 하나의 생산주기에 만들어낸 묶음이다. 만약 약품을 만드는 원료에 불순물이 들어가서 리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전체 약품이 문제되는 게 아니라 불순물이 혼입된 원료가 투입된 특정 생산분(batch)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제조번호만 리콜하면 된다.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이번에 특정 제조단위의 백신에 대해 접종 중단을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백신 자체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특정 제조번호가 붙은 생산 분량에 대해 혹시라도 혈액 응고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불순물 혼입이나 품질상 문제가 있었는가 보기 위해 해당 생산분에 대해 사용을 중단한 것이다. 집에 있는 상비약의 예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집에 있는 감기약의 제조번호를 확인해서 해당 제조번호면 사용을 중단하고 버려야 하지만 제조번호가 다르다면 아무 문제없이 그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이다.
제조단위(batch)에 대한 이해가 없이 단어 하나를 빼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 등 5개국이 AZ 백신 사용을 중단한 것처럼 보도되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제조번호가 ABV 5300인 백신만 사용이 중단되고 나머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그대로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오보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다행히 3월 11일 오후에 일부 매체에서 팩트체크 기사를 내보냈고 다음 날인 3월 12일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오스트리아, AZ백신 전체 중단 아닌 특정 일련번호 중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 정부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에 숨진 11명 중 8명의 사례에 대해 접종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발표를 했을 때도 같은 맥락이다. 동일 요양병원, 같은 제조번호의 백신을 맞은 사람에 대한 조사 결과 중증 이상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혹시라도 해당 병원의 백신 접종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특정 제조번호 제품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의미인 것이다. 관련하여 조금 더 쉬운 설명을 한 기사가 없었던 점은 아쉽다.
코로나19와 관련한 오보가 이어지는 것은 오보를 거를 만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H언론사에서 자사 백신 보도에 대한 열린편집위원회 회의 내용을 보도한 기사를 살펴보자. 한 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신은 불확실한 것이 맞다. 안정성이 100%라고 전문가 중에서도 누구도 말을 못 한다.” 틀렸다. 백신의 안정성에 대해 말하는 전문가는 없다. 논점은 안정성(stability)이 아니라 안전성(safety)이다. 100% 안전한 약은 없다. 그러나 백신처럼 부작용 위험이 낮고 기대되는 유익이 큰 약은 있다. 안전성과 안정성을 헷갈리면서 백신의 안전성을 논할 수 없다. 틀린 내용을 거르지 못하고 그대로 내보낸 것은 언론사의 역량 부족이다.
일부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기네스 펠트로가 김치를 먹고 코로나19를 극복했다는 기사가 그런 경우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의료책임자인 스티븐 포위스 교수가 기네스 펠트로가 추천하는 해결책들 중 일부는 NHS에서 추천하는 해결책이 아니라고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치의 효과를 칭송하는 국내 기사가 이어졌다. 포위스 교수의 다음 발언을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기사를 쓴 것 같다. “코로나19를 심각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바이러스처럼 가짜정보가 국경을 넘어 이동하며 변이하고 진화한다.” 그렇게 가짜뉴스가 국경을 넘는 게 한국 언론 때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1-03-18 10:45 |
![]() |
[약사·약국] <79> 코로나19 백신과 진통제 이야기
2월 26일부터 국내에서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이와 관련해서 약에 대한 질문이 하나 생겼다. 백신 접종 전에 진통제를 복용해도 되는가? 결론부터 살펴보자. 백신 접종 전에 진통제 복용은 피하는 게 좋다. 그러나 접종 뒤에 통증이나 불편감이 있으면 의사에게 문의하여 진통제를 복용할 수 있다. 아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한국어 안내문을 보자.
“통증이나 불편함이 있으면 백신 접종후 생기는 통증과 불편함에 대해 이부프로펜, 아스피린, 항히스타민제, 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일반 의약품을 복용해도 되는지 의사에게 문의하세요. 이러한 약물을 정상적으로 복용하는 데 방해가 되는 다른 의학적 이유가 없다면 백신 접종후 부작용 완화에 이러한 약을 복용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 예방을 위해 백신 접종 전에 미리 약을 복용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약이 백신 효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https://korean.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expect/after.html )
백신 접종 전에 해열제를 피하라는 뉴스는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퍼졌다. 그런데도 한국 식약처에서 공식 자료를 아직 내놓지 않은 것은 아쉽다. 대부분의 뉴스는 미국 CDC에서 내놓은 논평이나 안내 자료를 인용해서 보도됐다. YTN 와이파일은 이에 대해 자세히 다뤘는데 세계보건기구의 논평을 인용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백신 접종 시 주의사항과 관련해 백신 접종을 앞두고 이부프로펜 성분의 소염진통제를 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은 ‘이부프로펜이 우리 몸의 면역물질 생성을 억제할 수 있어 이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https://www.ytn.co.kr/_ln/0134_202102140700020292 )
이 뉴스에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 우선 세계보건기구에서 백신 접종을 앞두고 소염진통제를 피하라고 권고한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이 소염진통제에 대한 논평을 한 것은 작년 3월이다. 이부프로펜과 같은 소염진통제보다는 아세트아미노펜 같은 해열진통제를 쓰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세계보건기구는 이부프로펜 사용을 피할 것을 권고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대변인이 올해 백신 접종과 해열제 사용에 대해 권고를 했는데 보도가 많이 안 된 것인지 아니면 YTN 와이파일에서 작년과 올해 뉴스를 혼동하여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기사 출처를 링크로만 달아주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문제다.) 기사로 다룬 매체는 많지만 한국 식약처에 관련하여 사실 확인을 하고 나서 보도한 기사는 드물다. 의약관련 이슈에 대해 제대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가 늘어나길 바란다.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나서 주사 부위 통증이나 몸 전체에 발열, 오한, 피로감, 두통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정상적 면역 반응이다. 실제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나타나는 면역 반응이 경우에 따라 제어되지 않고 염증 과잉으로 인체에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에 반해 백신을 맞은 뒤의 면역 반응은 진짜 바이러스가 들어올 때를 대비하기 위한 통제된 면역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접종 전에 진통제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인가?
백신 접종 뒤에 염증 반응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염증이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백신 접종 뒤 약간의 염증은 필요하다. 열을 낮추고 염증을 줄이는 것은 면역 반응을 방해하여 백신의 효과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아직 논란이 있다. 관절염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매일 꾸준히 진통제를 복용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계속하여 복용하면서 백신을 접종해야 할 수도 있다. 궁금할 때는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의사, 약사와 상담이 필요하다.
2021-03-05 10:00 |
![]() |
[약사·약국] <78> 클럽하우스와 약 이야기
구정을 앞둔 주말 클럽하우스라는 말하는 SNS가 화제였다. 미리 가입한 친구 덕분에 초대장을 받아 들어가 보니 신세계였다. 언뜻 보기에는 다자간 통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토론을 주재하는 모더레이터가 있다. 손을 드는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거나 뮤트하는 권한이 모더레이터에게 주어지므로 온라인 컨퍼런스와 비슷한 모양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하지만 화면을 공유하거나 문자로 채팅하는 게 없이 그저 음성으로 대화만 할 수 있다.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에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누구나 손을 들면 스피커가 될 수 있으니 참여가 쉽다. 유명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무엇보다 편집을 기본으로 하는 방송, 유튜브 같은 매체와 달리 즉흥적 대화가 가능하다. 채팅처럼 기록이 남는 게 아니라 대화 내용이 바로 사라지는 휘발성도 클럽하우스의 매력이다.
실제 사용해보니 클럽하우스가 약을 소재로 한 대화에 딱 맞는 매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송에서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사회자 또는 청취자의 질문을 듣고 답하게 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시간적 제한이 크고 그러다 보니 질문을 다 받기 어렵다. 클럽하우스로 30분 동안 약에 대한 질문을 받아보기로 했다. 클럽하우스라는 열린 공간에서 사람들이 약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가장 궁금한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참여자 수가 많진 않았지만 질문은 공통적이었다. 어떻게 약을 끊느냐 하는 것이었다. 약 복용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일 궁금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가이고 또 하나는 이 약을 먹는 동안 나에게 어떤 부작용이 생길 것인가이다. 약 복용의 이유가 고혈압 때문이든 고지혈증 때문이든 마찬가지다. 약 복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끊을 궁리를 하는 게 사람이다. 약사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환자와 공감하며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환자가 아닌 약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면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나 역시 그렇다. 2019년 8월 21일자 칼럼에서 고혈압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이 약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써놓고도 막상 클럽하우스에서 그런 질문을 받고 나니 놀라웠다. 약국에서는 의외로 그런 질문이나 상담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약을 타가면서 그 약을 끊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캐나다에서 약사로 근무할 때 혈압약(항고혈압약)을 하루 건너 하루 복용하는 방식으로 끊을 수 있는지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걸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건 약국에서 그런 질문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답은 ‘그럴 수 없다’이다. 하루 건너 하루로는 약의 혈중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하루에 반 알을 복용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고 의사, 약사와 상담 하에 시도해야 할 일이다. 이런 식의 감량은 본인의 의지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연령, 혈압의 조절 정도, 생활 습관의 조정 여부 등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아직 클럽하우스는 생소한 SNS이고 국내 이용자 수도 많지 않은 듯하다. 아이폰에서만 가능하고 안드로이드 폰에서는 아직 제공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볍고 손쉽게 대화와 토론할 수 있는 이런 매체가 늘어날수록 약에 대한 대화 역시 늘어날 듯하다. 궁금한 점에 대한 질문과 동시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도 많아질 것이다.
약국은 아직도 정체된 모습이다. 약 포장의 사용 설명은 언제 봐도 어렵고 깨알 글씨는 커질 기미가 안 보인다. 약과 건강기능식품의 과대포장도 여전하다. 수시로 포장을 바꾸는 제약회사의 관행도 여전하다. 약 포장이 바뀔 때마다 이게 같은 약인지 다른 약인지 헷갈려 하는 소비자의 목소리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하면 약 사용을 줄일 수 있는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약을 복용한다는 게 가능한지 약의 실제 소비자와 약사가 반복해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양한 매체를 용해야 한다. 클럽하우스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약사, 약국, 제약회사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2021-02-17 10:33 |
![]() |
[약사·약국] <77> 탈모에 도움이 되는 약 이야기
탈모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약을 쓰면 도움이 되는 경우와 약을 써도 별 소용이 없는 경우다. 먼저 원형 탈모를 살펴보자. 동전 모양으로 머리가 빠지는 원형 탈모는 인구의 2%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증상의 정도나 범위에는 차이가 있지만 원형탈모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다. 특별히 약을 쓰지 않아도 1년 내에 저절로 낫는 환자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이런 경우에는 특정 약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임상 시험을 제대로 시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스테로이드를 해당 부위에 주사하기도 하고 바르는 약이나 면역억제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들 약에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하지만 실제로 원형 탈모가 왔을 때 그걸 경험하는 사람의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뭐라도 써서 빨리 낫고 싶은 마음이 크다.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으로 대응하다가 비용을 낭비하는 사람도 종종 본다.원형 탈모의 경우 가만히 둬도 낫는다는 사실을 악용해서 검증되지 않은 고가의 장비나 약초를 권유하기도 한다. 본인이 원형 탈모가 아닌가 의문스러울 때는 가까운 병의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부터 받자. 약으로 치료해볼 것인가 아니면 기다려볼 것인가는 개인적 선택이다. 하지만 약물 치료를 받기로 결정할 경우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지 않는다. 현대 의약학에 대한 지식이 머리카락과 지갑을 동시에 지켜줄 수 있다. 안드로겐성 탈모(남성형 탈모)는 원형 탈모에 비해 훨씬 더 흔하다. 미국에서는 40세~49세 남성의 53%가 안드로겐성 탈모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반해 한국 남성의 40-49세 안드로겐성 탈모 비율은 11%로 매우 낮은 편이다. 한국 남성의 경우 머리가 빠지는 비율이 낮은 대신 머리가 가늘어진다. 여성 탈모와 유사한 패턴이다. 두피를 보면 숱이 많은 상태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머리카락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짧은 모발의 비율이 늘어난다.미녹시딜은 본래 항고혈압약으로 개발되었다가 탈모치료약으로 재발견된 약이다. 미녹시딜을 두피에 발라주면 모낭으로 연결되는 피부의 혈액 흐름을 증가시키고 모낭을 비대하게 만들어서 모낭의 성장기를 연장시킨다. 미녹시딜을 발라주면 휴지기 모낭이 다시 성장기로 들어가면서 처음에는 머리가 더 빠지는 경우도 있다.미녹시딜을 바르고 첫 두 달 동안에 머리가 더 빠진다고 약의 사용을 너무 일찍 중단해서는 안 된다. 하루 두 번씩(여성의 경우 제품에 따라서는 한 번씩) 최소한 4개월 정도 꾸준히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모발이 자라는 효과가 안정될 때까지는 12-18개월이 걸리므로 1년 이상 꾸준히 써보고 나서야 약효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미녹시딜은 탈모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약이 아니다. 효과를 보려면 최소한 4개월이 걸리는 것처럼 반대로 사용을 중단하면 4개월 이내에 탈모가 다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안드로겐성 탈모는 DHT라는 남성호르몬 때문에 점점 더 악화된다. DHT는 테스토스테론보다 더 강력하게 앞머리 부위에 있는 모낭 DHT 수용체에 결합한다. 그 결과 모발 단백질 합성이 저하되고 모발 성장이 줄어든다. 그런데 얼굴 모낭에서는 DHT가 반대 작용을 하여 모발을 성장시킨다. 나이 들면서 남성호르몬의 작용이 정수리 모낭에서는 머리가 빠지는 쪽으로 작용하고 코털, 귀털 같은 다른 부위의 털은 더 길고 두껍게 자라도록 만드는 것이다. 머리숱은 줄어드는데 코털과 귀털은 자꾸 더 자라는 배후에는 DHT라는 남성호르몬이 있었던 것이다.운동선수들이 오남용하여 종종 문제가 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탈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남성호르몬 수치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남성형 탈모의 치료약인 피나스테리드는 이와 반대로 남성호르몬 전환을 막아서 탈모를 줄여준다. 테스토스테론이 효소에 의해 DHT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DHT는 안드로겐 수용체에 테스토스테론보다 5배 더 강하게 결합하므로 탈모 진행을 더욱 가속화한다. 피나스테리드는 여성에게는 사용할 수 없는 약이지만 남성 탈모 환자의 경우 탈모가 줄어들고 모발 성장을 증가시켜준다. 이 약 역시 3-6개월은 매일 복용해야 효과를 보기 시작하고 눈에 띌 정도로 효과를 보려면 1년은 복용해야 한다.이 약 또한 탈모의 근본 원인을 치유하는 약은 아니다. 아직 그런 약은 없다. 약 복용을 중단하면 탈모가 다시 진행된다. 효과도 사람마다 달라서 탈모 전처럼 머리숱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탈모 진행을 늦추는 정도에 불과한 효과에 만족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약을 잘 알고 쓰면 탈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2021-02-03 15:55 |
![]() |
[약사·약국] <76> 구충제 이버멕틴에 코로나19 치료 효과 있을까
“구충제 이버멕틴, 코로나19 치사율 최대 80% 낮춰” 지난 1월 5일 SBS, 연합뉴스, 헬스조선,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다수의 국내 언론에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기사의 출처는 모두 동일하다.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 메일이다. 아직 정식 게재된 논문도 아니다. 영국 리버풀 대학의 바이러스학자 앤드루 힐이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 다음 달에 발표된 자신의 메타분석 연구 결과라며 밝힌 내용이다.데일리 메일 기사에서는 연구 자료가 마치 일부 유출되기라도 한 것처럼 슬라이드 몇 개를 올려놓고 있다. 하지만 이게 특종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미 지난 12월 27일 유튜브에 앤드루 힐 본인이 공개한 내용이다. (https://youtu.be/yOAh7GtvcOs) 이버멕틴이 코로나19 치사율을 낮추는 데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 약은 주로 열대지역에서 강변사상충과 같은 기생충의 구제에 사용되는 약이다. 옴 치료에도 사용한다. 이버멕틴이 코로나바이러스를 막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가 있다. 이 약이 세포내에서 임포틴importin이라고 하는 핵 수송 단백질을 억제하는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하면 이 단백질을 강탈해서 숙주가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걸 막는다. 결과적으로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감염되는 세포가 더 늘어난다. 이버멕틴은 바이러스가 임포틴을 강탈해서 쓰지 못하도록 막는다. 말하자면 테러범이 버스를 강탈해서 쓰지 못하도록 버스 타이어에 자물쇠를 채워 버리는 것이다.작용 기전상 예상되는 이런 효과는 실험실 연구에서 실제로 나타났다. 지난 4월 호주 모나쉬 대학 연구팀은 이버멕틴이 코로나19의 원인 바이러스(SARS-CoV-2)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정식 논문으로 <항바이러스 연구> 학회지에 실렸다. 이버멕틴이 실험실 배양 세포에서 48시간 내에 바이러스를 99.98% 감소시켰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연구 결과만으로 코로나19 치료에 이버멕틴을 쓰면 되겠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실제로 미국 COVID-19 치료 가이드라인 위원회는 코로나19 치료에 이버멕틴 사용을 하지 말도록 권고한다. 예외적으로 임상 시험에서만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세포 수준에서는 강력한 효과가 나타난 것 같은데 왜 현장 치료에서는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가?실험실 배양 세포에 약을 투입할 때와 인체에 약을 투여할 때 결정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약의 농도다. 실험실 배양 세포에 효과를 낸 정도의 약을 우리 몸에 약을 넣어주려면 인체 사용이 허용된 양의 100배나 되는 엄청난 양을 써야 한다. 항바이러스 효과를 나타내는 농도는 마이크로그램 수준이고 인체 허용된 치료 용량에서 이버멕틴의 혈중 농도는 나노그램 수준(20–80 ng/ml)이다. 1마이크로그램은 1000나노그램이다. 약물 분자에 따로 눈이 달려있지 않으므로 항바이러스 효과를 내려면 엄청난 양을 쓸 수밖에 없다. 실험실 배양 세포에는 약액을 넣어주면 바로 전달되지만 실제 인체 내에서는 약물 분자를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에만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니 약이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감염된 세포에 충분한 양을 보내기 어렵다. 하지만 양을 늘려서 100배를 투여하면 부작용, 독성도 함께 늘어난다. 과학자들이 이버멕틴에 대한 후속 연구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장밋빛 환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는 이유다.앤드루 힐이 유튜브와 데일리메일을 통해 공개한 메타분석 연구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집트, 방글라데시, 이란 등 11개국에서 진행된 임상시험을 분석해서 치사율이 80%까지 줄었다는 것이지만 문제는 분석에 사용된 임상 시험이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사용한 약의 용량도 저마다 다르고 연구 방법에도 많은 오류가 있다.게다가 다수의 연구가 아직 정식으로 심사를 거쳐 논문으로 게재되지 못한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투여량의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버멕틴에 대해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근거가 더 확실한 백신은 두려워하면서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영약처럼 믿지는 말자.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맞을 수 있을 때 백신부터 맞자.
2021-01-20 09:54 |
![]() |
[약사·약국] <75> 겨울철 비염약 이야기
겨울에도 비염이 악화되는 경우가 있다. 알레르기 비염이 아닌 경우도 있다. 급격한 온도 변화나 냄새로 인한 혈관운동성 비염, 코막힘 완화 스프레이를 너무 많이 써서 나타나는 약물성 비염이 대표적이다.결로 현상으로 인해 집안에 곰팡이가 증식하고 이로 인해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일단 원인이 분명할 때는 그 원인부터 제거하는 게 먼저다. 곰팡이가 눈에 띈다면 제거해야 한다. 개가 고양이 털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실내에서 함께 사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알레르기 원인물질에 대한 접촉을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다. 필요에 따라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약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처방 없이 사용하는 약으로 항히스타민제가 대표적이다. 이 약은 진정작용이 있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와 진정작용이 없는 2세대 항히스타민제로 나뉜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는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여 중추신경계에 들어갈 수 있어서 진정작용이 나타나지만 2세대 항히스타민제는 그렇지 않다.보통 감기약에 들어있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는 졸음을 유발하고 주의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운전이나 기계 조작을 해야 하는 경우는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 심하게는 전날 저녁에 약을 먹고 나서 다음날 낮까지 졸릴 수 있다.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얼마나 졸음을 유발하느냐 하면 그 부작용을 반대로 이용하여 수면유도제로 사용될 정도이다. 실제로 처방 없이 구입 가능한 수면유도제는 대부분 항히스타민제이다. 약이 정말 안 졸린가에 대해서는 약사와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감기약이나 알레르기 비염약 중에 졸음이 덜하다고 표시된 약에도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들어 있는 제품이 흔하다. 이들 제품이 덜 졸리다는 건 다름 아닌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졸음을 유발하는 약과 카페인을 함께 먹는다고 졸리지 않은 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졸릴 수도 있고 안 졸릴 수도 있다. 절대 졸면 안 되는 상황을 앞두고 이런 약을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항히스타민제 중에서도 클로르페니라민, 디펜히드라민과 같은 1세대가 특히 졸음을 유발하는 진정 작용이 흔하게 나타나고 2세대 가운데 세티리진은 전체 복용자의 10%에서 진정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로라타딘도 2세대 항히스타민제이지만 권장 용법보다 많은 양을 복용하면 졸릴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펙소페나딘, 데스로라타딘, 레보세티리진과 같은 항히스타민제를 3세대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들은 졸음 부작용이 2세대보다 더 줄어들어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음을 유발하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감기약에 자주 쓰이는 건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고 자면 낫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기 증상 완화에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가 2, 3세대 항히스타민제보다 조금 낫긴 하다.하지만 그렇다고 감기에 이들 항히스타민제 사용을 무작정 권하기는 어려운데 1세대 항히스타민제의 부작용으로 항콜린 작용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폐쇄각 녹내장이나 전립선비대증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사용을 피하는 게 좋다. 먹는 항히스타민제 대신 뿌리는 비충혈제거제 스프레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들 약은 막힌 코를 뚫어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너무 자주 연속으로 사용하면 약물성 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약을 안 쓰면 더 심하게 코가 막히고 비염 증상이 악화되는 것이다.이에 대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5일 이상은 비충혈제거제 스프레이를 연속으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콧속이 가려운 증상이 동반되거나 알레르기가 아닌 혈관운동성 비염일 때는 비충혈제거약에 더해 항히스타민제를 함유한 스프레이를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코를 식염수로 세척하는 것도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콧속 점액질을 씻어내고, 그와 동시에 호흡할 때 묻어 들어온 먼지와 이물질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알레르기 증상은 인공눈물이나 안약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그러나 항히스타민제는 주로 가벼운 알레르기 증상에 사용하는 약으로, 증상이 심한 사람은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아, 콧속에 뿌리는 스테로이드분무제 같은 처방약을 타서 쓰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끝으로 누군가 비염을 완치하는 약이 있다고 소개할 때는 아직 그런 약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좋다.
2021-01-06 10:00 |
![]() |
[약사·약국] <74> 약의 이름 이야기
약은 이름이 두 개다. 상품명과 성분명이 있다. 상품명은 소비자 판매를 위한 이름이고 성분명은 약 속의 주성분이 되는 화학물질의 이름이다. 타이레놀이라는 약은 상품명(Trade name)이고 성분명은 아세트아미노펜이다. 성분명은 약효물질의 이름이며 일반명(Generic name)이라고도 한다. 약품의 주성분이 되는 약효물질의 화학명까지 포함하여 약 이름은 세 개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학명은 약사, 의사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생활에서도 상품명과 성분명에 대해서만 알아두면 충분하다. 약 이름이 둘이라고 반드시 둘 다 알아둬야 할 필요는 없다. 일단 상품명과 성분명 중 하나라도 확실히 기억하면 된다. 보통은 상품명이 더 기억하기 쉽다. 상품명은 브랜드명이기도 하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자사의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므로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짓고 브랜드명을 열심히 광고한다.이 과정에서 유명세를 얻으면 브랜드명이 일반명으로 변하기도 한다. 아스피린은 이 약을 개발한 독일 바이엘사에서 지은 상품명이지만 이제는 일반명으로 쓰인다. 한미아스피린장용정이란 약 이름에서 아스피린은 브랜드명이 아니라 일반명이다. 약 성분이 원래와 다른 용도의 약품에 사용되면서 상품명을 새로 짓는 경우도 있다. 탈모치료약 중에 이런 것들이 많다. 피나스테리드는 1992년 양성전립선비대증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아 프로스카라는 상품명으로 시판됐다.그런데 이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피나스테리드에 머리털이 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남성형 탈모증이 있는 사람에게 6개월 사용으로 모발이 30퍼센트 정도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1997년에는 같은 성분의 약이 프로페시아라는 새로운 상품명의 탈모치료제로 출시되었다.두 약품은 약성분은 동일하지만 함량이 다르다. 프로페시아정에는 피나스테리드가 한 알에 1mg, 프로스카정에는 한 알에 5mg 들어있다. 새로운 용도로 승인을 받으면 특허 만료 시점도 길어진다. 피네스테리드의 경우 전립선비대증 용도인 프로스카는 2006년에 특허가 만료되었지만 탈모치료제 프로페시아는 2013년에 만료됐다. 동일 성분의 약효물질을 함유한 약을 새로운 용도로 승인받으면 특허권도 연장되니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공들여 연구할 가치가 있다. 보통 상품명만 알고 있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위험한 경우가 생긴다. 약 이름은 다른데 실은 똑같은 성분이 들어있는 약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타미노펜이라는 약품에는 타이레놀과 동일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있다. 모르고 둘을 같이 먹으면 동일 성분이 중복되어 부작용 위험이 커진다. 하나의 약 성분이 다양한 약품에 사용되는 것도 성분명을 알아둬야 할 이유가 된다. 국내에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들어있는 약만 해도 2천 종이 넘는다. 약의 성분 정보에는 상품명이 아니라 성분명이 적혀 있다. 성분정보에 타이레놀이라고 쓰여져 있진 않다는 이야기다. 기왕이면 성분명까지 알아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실제로 환자가 감기약을 복용하는 중에 다른 통증을 없앨 목적으로 따로 진통제를 먹을 경우 같은 성분을 과다하게 복용할 수 있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해열진통제를 과다 또는 중복 투여하면 간 손상 위험이 높아진다. 미국에서 타이레놀 제조사가 나서서 하루 최대 복용량을 4000mg에서 3000mg로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에는 약 이름 때문에 헷갈리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전에는 상품명이 탁센이면 성분은 나프록센인 식으로 성분명과 상품명이 일대일로 짝을 맞춘 제품이 주류였는데 최근 들어 이런 암묵적 규칙이 깨졌다. 상품명은 이지엔6인데 뒤에 뭐가 붙느냐(애니, 프로, 스트롱, 에이스)에 따라 성분명은 이부프로펜, 덱시부프로펜, 나프록센, 아세트아미노펜으로 달라진다.이제는 탁센마저 탁센400이라는 상품명을 달고 이부프로펜 성분의 소염진통제로 판매된다. 브랜드를 내세워서 판매량을 늘리려는 의도이겠으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혼동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최근 트렌드가 안전한 약품 사용의 측면에서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고민해볼 시점이다.
2020-12-16 23:41 |
![]() |
[약사·약국] <73> 자몽주스-감기약 상호작용의 진실
자몽주스와 감기약을 함께 먹으면 안 된다는 뉴스가 가끔 눈에 띈다. 산성의 자몽주스가 감기약 흡수를 방해하여 약효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철저히 틀린 정보다. 하지만 이런 가짜 정보도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왜 이런 틀린 정보가 양산되며 걸러지지 않는가 어떻게 이런 정보 오류를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판매되는 종합감기약에는 자몽주스로 흡수가 방해받는 항히스타민제가 들어있지 않다. 항히스타민제 중에 펙소페나딘(상품명:알레그라)이라는 약물만 자몽과 상호작용이 있다. 이 약은 알레르기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용도로 쓰는 약이다. 감기약이 아니다. 알레르기 비염 약 중에서도 다른 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펙소페나딘 성분만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다른 항히스타민제와 다르게 OATP(organic anion transporter, 유기음이온운반체)를 통해 흡수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자몽주스, 오렌지주스, 사과주스와 같은 과일주스에는 이 약성분과 흡수를 두고 경쟁하는 유기산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 이로 인해 약의 흡수가 줄어들게 되면 약효를 제대로 낼 수 없다. 조금 복잡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이다. 약의 실제 사용자를 위해 요약하면 알레르기 비염 약 중에서도 특정 성분(펙소페나딘)이 들어있는 경우만 과일주스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기약에는 이 성분이 들어있지 않다. 펙소페나딘은 졸음 유발이 거의 없는 이른바 3세대 항히스타민제이다. 감기약에 들어있는 항히스타민제는 대부분 졸음을 유발하는 1세대이다. 이들은 과일주스를 마신다고 하여 흡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감기약 성분 중에 기침을 줄이기 위한 약성분 덱스트로메토르판과 자몽이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는 있다. 종합감기약에 들어있는 정도의 양으로는 크게 문제를 일으킬 수준은 아니지만 이 성분의 기침약만 단독으로 복용 시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자몽과 감기약의 상호작용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나열식 기사다. <감기약과 먹으면 ‘독되는 음식’ 6가지>, <감기약 먹을 때 꼭 알아야 할 주의사항 7가지>와 같은 식으로 나열하는 기사는 피해야 한다. 이런 나열식 기사가 포털에서 인기를 끌고 조회수가 높다 보니 제목을 이렇게 다는 언론사가 많다.하지만 6, 7가지를 나열하는 기사는 유독 저품질인 경우가 많다. 약의 상호작용에 대한 여러 기사를 조합해서 쓰다 보니 정보가 뒤섞여 오류가 생긴다. 게다가 여러 가지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거나 전문가의 감수를 통하지 않고 얼른 써내다 보니 틀린 정보가 섞여 들어가기 쉬운 것이다. 약에 관한 한 나열식 뉴스는 그냥 클릭을 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그래야 포털 뉴스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지 못할 거고 틀린 정보 때문에 혼란을 겪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틀린 정보로 기사를 쓰고 나서도 고치지 않는 것 역시 문제다. 블로그이든 신문기사이든 간에 잘못된 정보는 고쳐야 맞다. 자몽주스와 감기약 속 항히스타민제에 대한 오류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는 대한민국정부 정책공감 블로그이다.(https://blog.naver.com/hellopolicy/150166154657)제목에는 2017년 게시물로 되어 있지만 블로그 게시일자는 2013년 4월 17일이고 댓글도 2013년 4월 17일자로 달린 걸 봐서는 7년 전에 올라간 글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틀린 정보를 담고 있는 <감기약 먹을 때 꼭 알아야 할 주의사항 7가지>는 2015년 하이닥 기사(https://news.v.daum.net/v/20150114171807394 )이며 <감기약과 먹으면 ‘독되는 음식’ 6가지>는 2016년 리얼푸드 기사(http://realfoods.co.kr/view.php?ud=20161125000604 )이다.이런 식 기사의 또다른 문제점 중의 하나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정보 오류를 수정하지도 않은 채 매년 반복된다는 거다. 이런 악순환을 막으려면 틀린 것으로 확인된 내용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틀린 부분에 표시를 하고 수정하거나 기사 상단에 틀린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경고문이라도 달아야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잘못된 정보를 조합해서 또 다른 잘못된 기사를 쓰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철저히 조사하고 제대로 쓰자. 그렇게 쓴 기사만 클릭하자.
2020-12-02 20:42 |
![]() |
[약사·약국] <72> 비듬약 이야기
찬바람이 불면 머리에서 어깨로 눈이 내린다. 진짜 눈이면 아름다우련만 피부 제일 바깥의 각질층이 비늘처럼 벗겨져 떨어지는 인설(鱗屑)이다. 헤드앤숄더(Head&S houlders)라는 비듬 샴푸 제품명이 아마도 이런 모양에서 착안한 게 아닌가 싶다. 춥고 건조한 날씨에 피부 각질층이 일어나며 가려운 것은 손발과 같은 다른 부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비듬의 경우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두피에는 피지가 분비되고 그걸 먹고 사는 말라세지아라는 효모가 있다.효모는 곰팡이와 함께 진균에 속한다. 효모가 지방분해효소로 피지를 분해하여 유리 지방산과 활성 산소종을 만들어내면 이게 피부를 자극하고 심하면 염증을 일으킨다. 유산균이 우유 속 유당을 먹고 나서 유산(젖산)을 만들면 그게 다른 세균의 번식을 방해하는 것처럼 효모가 피지를 먹고 내놓는 산물도 다른 정상 피부 세균의 생존에 방해가 된다.그리하여 두피의 정상 세균총을 교란하게 되는 것도 염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지루성 피부염의 경우에 그런 염증을 포함한 증상이 더 심하고 범위도 넓다. HIV에 감염된 환자의 경우 지루성 피부염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것을 두고 면역 조절 기능과 관련성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지루성 피부염에 바르는 스테로이드나 바르는 칼시뉴린 억제제와 같은 면역조절제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겨울에 비듬이나 지루성 피부염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들 효모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춥고 흐린 날이 이어지면서 두피가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줄어들면 자외선 살균 효과도 떨어진다. 반대로 여름에는 증상이 나아진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남성호르몬은 피지 분비를 촉진하므로 비듬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이 생긴다.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 피지가 증가하고 지루성 피부염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감정적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으로도 증상이 악화된다. 무스, 젤, 헤어스프레이는 제품에 따라 두피를 더 기름지게 하여 자극을 줄 수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항불안제로 사용되는 부스피론이나 조현병에 쓰이는 클로프로마진, 할로페리돌과 같은 약도 지루성 피부염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듬과 지루성 피부염의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의심이 되는 요인은 많지만 각각의 관계가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고 증명하기 어렵다.그렇다고 하여 약이 없는 건 아니다. 항진균제인 케토코나졸과 같은 약을 두피에 발라주면 효과가 있다. 보통 사용하기 편리하게 샴푸 타입으로 된 약을 사용한다. 머리를 물에 적신 뒤에 약을 바르고 거품을 내면서 두피를 마사지해준다. 이때 바로 헹궈내면 접촉시간이 짧아 약효를 제대로 보기 어려우니 최소한 3분에서 5분 정도 기다렸다가 헹궈야 한다.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을 사용하면 비듬이 줄어든다. 처음 2주~4주는 주2회 이상 쓰다가 증상이 나아지고 나면 재발 방지 차원에서 주1회 쓰면 된다. 징크 피리치온이나 셀레늄 설파이드 같은 성분의 샴푸도 마찬가지로 항진균 효과를 나타낸다.이들을 사용할 때도 바르고 최소한 5분 정도는 두피와 접촉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가 헹궈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살리실산, 유황도 각질을 녹이는 효과로 약간 도움이 될 수 있고 콜타르도 냄새 때문에 기피하는 약이긴 하지만 지루성 피부염의 염증과 가려움증을 완화하는 용도로 종종 쓰인다. 항진균제 같은 성분을 먹는 약으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먹는 약은 바르는 약으로 효과가 없거나 증상이 아주 심해서 어쩔 수 없을 때만 쓰는 게 원칙이다. 먹는 약으로 복용할 경우는 전신 부작용이나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에 더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항진균제가 효과가 있으니 결국 비듬의 원인은 효모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케토코나졸 같은 항진균제에는 염증을 낮추는 작용도 있는데다가 일부 연구에서는 이 약을 바른 뒤에도 정작 효모 수는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듬은 보기 좋지 않다는 미용 상의 이유로 관리가 필요하지만 지루성 피부염은 이보다 증상이 훨씬 심각하다. 후속 연구로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게 되어 더 나은 치료약이 나오길 기대한다.
2020-11-18 09:00 |
![]() |
[약사·약국] <71> 코로나19 시대의 금연 보조제 이야기
코로나19 때문에 금연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영국에서 코로나19 유행 이후 금연한 사람은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금연단체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41%가 코로나19가 금연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금연은 훌륭한 선택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코로나19로 중증 질환에 걸릴 확률이 더 높으므로 금연상담전화, 모바일(휴대전화) 금연지원서비스, 니코틴보조제(껌, 패치 등)와 같이 검증된 방법을 통해 즉각 금연할 것을 권고한다. 마스크를 쓰면 손으로 얼굴을 덜 만지는 게 코로나19 감염을 줄이는 이유 중 하나로 생각된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흡연할 수는 없다. 담배와 손가락에 입이 닿게 되므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증가한다.게다가 담배 연기 속의 수많은 독성물질은 흡연자의 심혈관, 폐, 면역 기능을 손상시킨다. 흡연자는 심혈관계 질환, 암, 만성 호흡기 질환과 같은 질병에도 취약하다. 흡연자가 코로나19를 앓게 될 경우 더욱 위험한 이유다. 금연패치, 금연껌과 같은 니코틴 대체제는 니코틴 금단 증상을 줄이면서 금연 성공률을 높여준다. 코크란 리뷰에서 2018년 64,640명을 대상으로 한 136건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니코틴 대체제를 사용할 경우 금연 성공률이 50~6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배 대신 니코틴 껌이나 패치에 중독되는 거 아닌가 반문할 수 있다. 담배와 달리 이들 금연보조제는 니코틴이 서서히 흡수되도록 만든 것이라 중독될 위험이 낮다. 니코틴 껌은 주의가 필요하다. 니코틴 대체제 껌은 담배보다는 니코틴 흡수가 느리지만 패치보다 빠르다.하루 20개비 이하를 피우는 경우 2mg, 하루 20개비 넘게 피우는 경우나 2mg으로 실패한 경우는 4mg으로 하루 8~12개의 껌을 씹다가 점차 줄여나간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그냥 껌 씹듯이 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니코틴 껌은 계속 씹기만 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중간 중간에 멈추고 파킹을 해줘야한다. (파킹parking은 잠시 놓아둔다는 의미다.) 국문 사용설명서에는 “쉬어가며 씹기”라고 되어 있는데 그냥 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껌을 씹다가 입 안에 얼얼한 느낌이 들거나 니코틴 맛이 느껴지면 멈추고 껌을 뺨 안쪽과 잇몸 사이 공간에 두어야 한다.이렇게 접촉시켜 주는 동안 껌으로부터 방출된 니코틴이 뺨 안쪽의 구강 점막을 통해 흡수된다. 일부는 흡수되지 않고 침과 함께 삼켜져 딸꾹질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니코틴 껌을 씹었더니 속이 울렁거린다거나 트림이 나온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냥 껌을 씹듯 씹기만 하면 니코틴 대부분이 입속이 아닌 위장 속으로 들어가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게다가 니코틴이 위장에서 흡수되면 간에서 대사되어서 효과가 금방 떨어진다. 국문 사용설명서에는 얼마 동안 껌을 볼 안에 둬야 하는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냥 잠시라고 쓰여 있다. 영문 홈페이지 설명에는 약 1분으로 되어 있다. 얼얼한 느낌이 사라지면 니코틴 방출이 끝났구나 생각하고 다시 씹어주면 된다. 다시 얼얼한 느낌이나 니코틴 맛이 나면 뺨 안쪽과 잇몸 사이에 두고 얼얼한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약 1분 동안 기다린다. 니코틴 패치를 사용할 때도 시간이 중요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찾는 사람에게는 24시간 패치를 붙여주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수면장애나 비정상적 꿈을 꾸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그럴 때는 낮에 16시간 동안만 붙였다가 자기 전에 니코틴 패치를 떼고 자는 게 좋다. 껌이든 패치든 NRT 제제를 사용하는 동안은 니코틴 과잉으로 인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다른 어떤 형태의 담배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약의 실제 사용자는 구체적 시간과 사용 방법이 궁금하고 이유가 궁금하다. 소비자에게 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알려주기만 하던 과거의 관례는 이제 바꿔야 한다.2018년 1월 기고한 첫 번째 칼럼에서 쓴 것처럼 심지어 HIV 치료약도 어떻게 바이러스와 싸우는지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복약이행률이 높아진다. 금연 보조제도 마찬가지다. 약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2020-11-04 17:27 |
![]() |
[약사·약국] <70> 약의 상호작용 이야기
약의 상호 작용에 대한 이야기는 늘 대중의 관심을 끈다. A약과 B약을 함께 복용할 때 효과가 떨어지거나 반대로 부작용이 증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약과 약의 상호작용에 더해 약과 음식의 상호작용이나 약과 건강기능식품의 상호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의하면 약과 약의 충돌이 생길 확률은 한 사람이 약을 네 가지 이상을 사용할 경우 급격하게 증가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복용 중인 사람은 특별히 주의가 필요하다. 약과 약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으면 이상적이겠으나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상호작용도 있다. 약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한 가지 특정 약을 복용 중일 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는가에 집중되어 있고 여러 가지 약을 복용 중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아무리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치더라도 실제 환자가 약을 복용할 때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을 모두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신약이 승인되어 판매가 시작되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판 후 조사(post-marketing surveillance, PMS)를 통해 부작용이나 약물 상호작용에 대해 계속 추가 자료를 모아야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컴퓨터로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약의 상호작용을 전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찾아내는 일도 가능해졌다. 대표적으로 2011년 미국에서 약을 복용중인 환자들이 인터넷 검색 엔진에 어떤 부작용에 대해 찾아보는가를 분석하여 약과 약의 상호작용을 찾아낸 사례가 있다.연구진은 항우울제와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를 함께 복용할 때 상호작용을 찾아냈다. (연구를 주도한 러스 알트만의 Ted 강연 동영상으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 자막도 있고 내용도 흥미로우니 꼭 한 번 보시길!https://www.ted.com/talks/russ_altman_what_really_happens_when_you_mix_medications?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연구진은 먼저 고혈당과 관련된 키워드 50가지를 파록세틴이라는 항우울제와 함께 찾아보는 사람(기준보다 2% 증가), 프라바스타틴이라는 이상지질혈증 치료제와 함께 찾아보는 사람의 비율(기준보다 3% 증가)의 비율을 살폈다. 다음 단계로 파록세틴과 프라바스타틴, 두 가지 약을 고혈당 키워드와 함께 검색하는 사람의 비율을 확인해보았더니 기준보다 무려 10%나 증가했다.두 가지 약을 함께 복용하는 사람들이 유독 다른 사람보다 고혈당에 대해 찾아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 두 약을 함께 복용할 경우에 상호작용으로 고혈당 부작용이 증가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러한 상호작용이 약을 중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대개 이들 두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에 혈당에 이상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약인 프라바스타틴과 항우울증 약인 파록세틴이 왜 이런 상호작용을 일으키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른다. 약과 약의 상호작용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왜 그런 건가 자세한 기전을 밝혀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앞서 언급한 파록세틴과 프라바스타틴의 상호작용은 왜 그런가 밝혀내기 위한 후속 동물실험 연구 결과가 3년이 지나 2014년에 발표되었는데 연구자들은 두 약을 함께 복용하면 인슐린 분비를 줄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두 약을 함께 복용할 경우 체내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종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다행히 모든 약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약과 약의 상호작용이 있다고 해서 항상 심각한 수준의 독성이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부작용을 모니터링하면서 약 복용을 계속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특정 약을 중단하고 다른 약으로 바꿔줘야 할 때도 있다.이들 상호작용을 모두가 외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행중인 의약품 안심서비스-DUR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상당부분이 걸러지고 약사가 약을 조제할 때 상호작용이 있는지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추가로 상호작용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약이 처방약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고 건강기능식품이나 음식이 복용 중인 약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약의 상호작용을 피하려면 새로운 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을 구입하기 전에 항상 약사와 상담을 해보는 게 좋다.
2020-10-21 16: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