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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9> 통풍약 이야기
통풍은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뾰족한 요산 결정이 발가락 관절과 같은 곳에 쌓이면 염증과 함께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실제로 통풍 발작이 시작되면 홑이불에 발가락이 닿기만 해도 괴롭다는 사람이 많다. 발에 천이 닿지 않도록 막아주는 가드를 사용해서 마치 텐트를 치듯 이불을 걸쳐줘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이다.
하필 이런 통풍 발작은 밤에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2월 관절염과 류마티즘 학회지(Arthritis & Rheumatology)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정부터 이른 아침(자정~오전 7:59)에 통풍 발작이 생길 위험은 낮 시간(오전 8:00~오후 3:59)보다 2.36배 높았다. 통풍 위험을 낮추려고 술을 안 마시고 퓨린 섭취를 줄이는 사람의 경우에도 밤에 통풍 발작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밤에 통풍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정확한 기전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밤에 체온이 더 낮아지고 이로 인해 요산 결정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자는 동안의 체내 수분 감소, 염증을 줄여주는 코티솔 호르몬 수치가 밤중에 낮아지는 것이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주말 밤에 통풍 발작이 시작되면 환자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문을 연 병·의원을 찾는 게 힘들다. 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콜키신 같은 약을 처방받아서 가지고 있는 게 좋다. 콜키신은 통풍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지만 얼른 복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통풍 발작이 시작되고 24시간 이내에 사용하는 게 좋다. 증상이 나타나고 36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콜키신은 백혈구 중에서 호중구가 염증 부위로 이동하는 것을 방해하여 통풍으로 인한 염증을 줄여준다. 20년 전에는 한 시간마다 0.6mg씩 최대 6mg까지 복용했지만, 요즘에는 처음에 1.2mg (0.6mg 알약으로 두 알), 1시간 뒤에 0.6mg을 복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다음 날부터는 하루에 0.6mg 알약을 아침, 저녁에 한 번씩 총 2회 복용한다. 이렇게 저용량으로 복용하면 복통, 설사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콜키신은 자몽 주스와 상호작용이 있고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도 주의해야 하는 약이다. 가까운 약국에 문의하여 이런 상호작용 문제가 있는지 미리 점검해두는 게 안전하다.
소염진통제도 급성 통풍 발작에 자주 사용되는 약이다. 나프록센 같은 소염진통제는 약국에서 처방 없이도 구입이 가능하다. 평소에 두통이나 근육통 또는 생리통에 대비하여 집에 가지고 있는 약을 통풍으로 인한 통증 완화에 사용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복용량이 다르다. 사용설명서의 깨알 글씨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이때는 읽어보고 약을 복용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급성 통풍에 나프록센을 사용할 경우 일반적으로 처음에 750mg을 복용하고 발작이 없어질 때까지 250mg을 8시간 간격으로 복용한다. 500mg씩 하루 두 번을 복용하는 방법도 있다. 한 알에 250mg이라면 처음에 3알 복용 뒤 8시간마다 1알, 또는 하루 두 알씩 두 번을 복용하는 식이다. 콜키신은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지만 나프록센 같은 소염진통제는 식후에 복용해야 속이 덜 불편하다. 자다가 일어나서 복용해야 할 때는 우유로라도 복용하는 게 빈속에 맹물로 복용하는 것보다 낫다. (우유로 약을 삼키면 안 된다는 건 모든 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장용정으로 된 변비약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모두가 소염진통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용 전에 약물 알레르기, 만성질환 유무에 대해 의사, 약사와 충분히 상담해 두어야 한다.
발작이 자주 있을 경우는 병·의원에 방문하여 예방약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지 의논해보는 게 좋다. 하지만 통풍 발작이 있을 때는 참지 말고 얼른 통증, 염증을 줄여주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증상이 생기자마자 약으로 치료하면 이삼일 만에 나을 수도 있지만 증상이 있고 삼사일이 지나 뒤늦게 약을 쓰면 다 낫기까지 이삼 주가 걸릴 수도 있다. 통풍 약도 때맞춰 써야 더 효과적이다.
2021-12-22 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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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8> 체온1도 올리는 게 좋을까
날씨가 쌀쌀해지면 체온 1도 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뜬다. 체온이 1도가 내려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감소하고 체온 1도를 올려주면 면역력이 500~600퍼센트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내려갈 때는 30퍼센트인데 올라가면 왜 500-600퍼센트인가? 계산부터 뭔가 이상하다. 그러니 팩트 체크를 해봐야겠다.
피부 체온은 바깥 온도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몸속 깊은 곳의 심부체온(core body temperature)은 거의 일정하다. 심장, 간, 신장과 같은 인체 깊숙이 자리한 장기들의 온도는 항상 37도로 유지된다. 보통 아침보다 저녁 심부체온이 높고, 자는 시간에 조금 낮아지지만, 변동 폭은 그리 크지 않다. 하루 0.5도 이내의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침입자들이 감염을 일으키면 체온이 올라간다. 열이 나면 불편감을 줄 수 있지만 열 자체는 별로 해롭지 않다. 체온 상승은 면역 반응을 증강시켜 인체가 병원성 미생물과 더 잘 싸울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체온 1도를 올려주면 면역력이 500~600퍼센트 상승한다는 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완벽하지 않다. 항생제나 약의 도움 없이는 감염을 물리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체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40도 이상 고열이 계속될 때는 자연치유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할 때다. 드물지만 약 부작용으로 열이 날 때도 있다. 일부 항생제, 항암제, 항고혈압약, 조현병 치료제를 복용할 때 약으로 인해 열이 날 수 있는데, 특히 이런 약을 복용하면서 과도한 운동을 하면 고체온증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약 때문에 체온조절 능력에 이상이 생긴 경우에도 그대로 방치하면 치명적이다. 약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수 있다. 폭염 속 야외활동이 위험한 것도 마찬가지다. 덥고 습한 날 과도한 운동을 하면 심부체온이 올라 매우 위험하다. 체온은 올리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거다.
생강차를 마셔도, 뜨거운 음료나 매운맛 음식을 먹어도 심부체온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뜨거운 음료의 열기나 매운맛 성분의 자극으로 인해 피부 혈관이 확장되고 그로 인해 피부 표면의 체온은 일시적으로 상승한다. 술을 마시면 혈관 확장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더운 느낌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열 손실이 늘어날 수 있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에서 차가운 음료와 뜨거운 음료를 주고 실제 실험한 결과를 보자. 뜨거운 음료를 마시면 처음엔 땀난다. 바깥 공기가 차고 건조한 환경에서 땀이 증발하면서 몸을 식힌다. 결과적으로 차가운 음료를 마셨을 때보다 뜨거운 음료를 마셨을 때 열 손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이 나면 당장은 더운 느낌이 들지만 이내 땀이 증발하며 피부 표면이 시원해진다. 동남아시아처럼 연중 날씨가 무더운 지역에서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추위를 더 예민하게 느낀다고 체온이 낮은 건 아니다. 보통 여성이 추위에 더 민감하지만, 남성이나 여성이나 심부체온 측정값은 비슷하다. 오히려 여성이 조금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체온보다 피부 온도를 통해 추위를 더 잘 느낀다. 기온이 내려가면 여성의 손발이 더 빠르게 차가워져서 손의 표면 온도가 3도 가까이 낮게 측정된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는 배란기가 되면 추위에 더 민감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 쾌적하게 느끼는 실내 온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심부체온은 실내 온도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매운맛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에 추운 나라에선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겨울이 긴 캐나다에선 크림과 설탕을 두 스푼씩 넣은 더블더블 커피가 어찌나 인기인지 결국 사전에까지 올랐다. 본래 사람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에너지원은 음식이다.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열을 더 많이 낼 수 있다. 많이 먹는 자에게 추위란 없다고 내가 가끔 농담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추위를 덜 탄다고 더 건강해지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맞다. 내 말이 그 말이다.
2021-12-08 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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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7> 당지수 이야기
방송에 GI 지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일단 동어 반복이다. GI는 Glycemic Index의 약어이므로 혈당지수라고 쓰거나 그냥 GI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당지수를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있진 않다.
밥이나 빵처럼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 음식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때는 약간의 의미가 있긴 하다. 가령 통곡물로 만든 빵이나 현미밥을 먹으면 그냥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백미밥보다는 당지수가 낮고 그만큼 당분 흡수가 느려져 혈당이 천천히 오른다. 하지만 누가 맨밥만 먹나. 반찬을 곁들여 먹으면 혈당지수가 달라진다.
치즈피자처럼 곡물 도우에 치즈의 단백질과 지방이 더해지면 당지수가 낮아진다.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소화가 어려운 만큼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당뇨환자에게 약 부작용으로 갑자기 저혈당이 오면 초콜릿을 주면 안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초콜릿은 지방 함량이 높아서 당지수가 낮은 편이다. 초콜릿 속 당분은 빠르게 흡수되지 않으니 저혈당인 사람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포도당 캔디나 꿀물, 설탕물, 주스, 청량음료가 낫다. 아카보스를 당뇨약으로 복용 중인 사람은 설탕물도 곤란하다. 아카보스가 소장에서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알파글루코시다아제를 억제하므로 설탕의 소화 흡수가 저해된다. 이때는 포도당 캔디나 주스가 낫다.
당지수가 무용하다고만 볼 수 없으며 여러 음식을 함께 먹더라도 개별 음식의 당지수가 낮을수록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흰 빵에 피넛버터가 통곡물빵만 먹는 것보다야 혈당이 천천히 오르겠지만 그래도 흰 빵에 피넛버터보다는 통곡물빵에 피넛버터가 낫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다 보면 음식 속의 당에 대해서만 집착하게 된다. 당지수만 따지다가 섭취량을 무시하게 되는 것도 문제이다. 수박은 당지수가 높은 음식이지만 밥 한 공기만큼의 당분을 수박으로 섭취하려면 수박 1/4통을 먹어야 한다.
당지수는 탄수화물 50g에 해당하는 음식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식품으로 탄수화물 50g을 섭취한 후 2시간 동안의 혈당 변화를 포도당 50g을 섭취한 경우를 100으로 하여 비교한 상대적 수치이다. 당지수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된 음식의 양은 일반적으로 먹는 1회 분량과는 차이가 크다. 당지수가 낮아 혈당이 천천히 오른다는 방송을 보고 잡곡밥을 배불리 먹으면 탄수화물 섭취량이 늘어나 결국 혈당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에 더해 탄수화물 섭취량까지 고려한 당부하지수(Glycemic Load)를 사용하기도 한다.
당지수가 낮은 음식 위주로 챙겨 먹는다고 장기적으로 건강상 유익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군집이 다르고 이로 인해 동일 음식을 먹어도 혈당치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있다. 장내 미생물 군집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는 중국 음식을 먹으면 금방 배고프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반대로 중국에 맥도날드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햄버거는 먹고 나도 금방 배가 고프다는 불평이 많았다. 햄버거를 간식처럼 생각해서 먹고 나서 또 밥을 먹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아프리카에 남미의 옥수수가 도입된 것은 17세기였지만 지금 아프리카 농부들은 옥수수를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고 불평한다. 이런 차이는 문화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장내 미생물군집의 영향일까? 장내 미생물에 관한 연구가 더 진행되고 24시간 내내 혈당 측정이 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가 더 많이 보급되면 아마도 이런 개인차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듯하다.
당지수 하나 가지고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나눌 수 없다. 당지수를 따져서 혈당 관리에 도움을 받는 당뇨환자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지나치게 당지수 하나에만 집착하지는 말자. 먹는다는 건 복잡한 일이며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2021-11-24 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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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6> 성인 여드름과 약 이야기
마스크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스크네(Maskne)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사용이 늘어나면서 생긴 여드름을 말한다. 지난해부터 유행한 신조어이다. 보통 사춘기까지는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영향을 받아 남성에게 여드름이 더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성인 여드름은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여드름이 가장 많이 나는 시기는 사춘기이고 성인이 되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에 성인 여성의 35%, 남성의 20%가 얼굴에 여드름이 나서 고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50대 이상 성인에게서도 여성의 15%, 남성의 7%가 여드름의 영향을 받는다. 성인 여드름은 대개 사춘기 여드름이 안 낫고 성인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지만, 성인이 되어서 처음 여드름이 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사춘기 때와 달리 주변에 여드름인 사람 수가 더 적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부담이 더 크다.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심하게는 우울증, 불안장애, 사회적 고립 등의 문제를 겪기도 한다. 천식, 간질, 당뇨병, 관절염만큼이나 여드름이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다.
보통 사춘기에는 남성 호르몬 때문에 피지가 과다하게 분비하고 이로 인해 여드름균(Cutibacterium acnes)이 과다 증식해 여드름이 많이 생긴다. 하지만 성인 여성의 경우 호르몬 변화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생리 전에 여드름이 주기적으로 악화되는 것도 호르몬 변화 때문이다. 유분이 많거나 모공을 밀폐시키는 화장품도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다. 메이크업을 한 뒤에 마스크를 착용하면 유분으로 인한 밀폐효과가 더 커져서 여드름이 생길 수 있다. 마스크네를 막기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 부위에 화장을 최소로 하고 보습제를 발라서 피부장벽을 강화해주는 게 좋다. 바세린은 피해야 한다. 마스크 성능을 저하시킬 수 있고 모공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도 여드름의 악화 요인이다. 스트레스 없는 삶은 불가능하지만 가벼운 운동이나 취미활동 등으로 나만의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찾는 건 도움이 된다. 피임약 복용 시에 여드름이 악화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피임약 복용으로 여드름이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 의사, 약사와 상담해 자신에게 맞는 피임약을 찾아보는 게 좋다.
음식과 여드름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결과에 의하면 식습관과 여드름 사이에 관련성이 있긴 있는 것 같다. 특히 당류와 우유 섭취가 인슐린과 인슐린유사 성장인자(IGF-1)를 증가시켜 여드름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의심하는 연구자가 많다. 특정 음식 섭취 뒤에 여드름이 악화되는 것으로 의심될 때는 이삼 주 정도 해당 음식을 피하는 식으로 테스트해 보는 게 좋다.
여드름이 심한 경우에는 우선 병의원에 방문해 상담부터 받아보는 게 유익하다. 모낭 내 여드름 균을 감소시켜 염증반응을 줄이는 항생제를 먹거나 바르고 비타민A 유도체 계열의 바르는 처방약, 아주 심할 때는 이소트레티노인과 같은 먹는 처방약이 사용된다. 가벼운 여드름에는 과산화벤조일이나 살리실산(2%)이 사용된다. 과산화벤조일은 모공 속에 쌓여있는 각질을 용해시키고 세균 증식을 억제하며 염증을 줄인다. 살리실산은 모공이 막히지 않도록 도와준다. 티눈 제거에 사용되는 살리실산도 같은 성분이지만 농도가 다르므로 반드시 여드름 전용 제품을 써야 한다. 이부프로펜피코놀도 바르는 약으로 여드름 염증을 줄여준다.
과산화벤조일 성분이 함유된 약은 햇빛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할 수 있다. 그래서 가급적 밤에 바르고 낮에 햇빛에 노출을 피하는 게 좋다. 낮에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도 좋은데 유분이 많은 자외선차단제의 경우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어 선택 시 주의해야 한다. 과산화벤조일 성분 여드름 약과 비타민 A 유도체를 동시에 바르면 피부가 지나치게 건조해지거나 피부 자극이 증가할 수 있다. 함께 처방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동시에 사용을 피하는 게 좋다. 얼른 상황이 나아져서 마스크를 벗고 다녀도 될 날이 오길 바란다.
2021-11-10 1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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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5> 추운 날 챙겨야 할 약 이야기
날씨가 추울 때는 고혈압을 조심해야 한다. 이에 대한 경고는 12월이 되어서야 뉴스에 등장한다. 하지만 고혈압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은 10월부터 늘기 시작한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고혈압성 질환에 의한 월별 사망자수를 보면 사망자수가 제일 많은 달은 예외 없이 겨울에 몰렸다. 사망자수가 제일 많은 달은 제일 적은 달 평균치보다 사망자수가 33% 높게 나타났다.
2010년~2019년까지 10년간 심뇌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도 비슷한 패턴을 따른다. 허혈성 심장질환 월별 사망자 수는 날씨가 추운 1월, 3월, 12월이 가장 많았고 뇌혈관질환의 월별 사망자 수도 1월, 3월, 12월이 가장 많았다.
날씨가 추워지면 고혈압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커지는 이유는 뭘까?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교감신경이 흥분한다. 혈당치를 올리고 대사를 끌어올려 열을 발생시키고 피부 근처의 혈관을 수축하여 바깥으로 열 손실을 줄인다. 이 과정에서 혈압이 상승한다. 그런 이유로 여름보다 겨울에 혈압이 상승하고 날씨가 추운 날 혈압이 상승한다. 일교차가 큰 날도 조심해야 한다. 날씨가 추울 때 혈압 변화는 정상인도 나타나지만 고혈압 환자나 고령 환자가 더 취약하기 마련이다. 고령일수록 혈관 벽이 두껍고 딱딱하며 유연성이 떨어진다. 추운 날 혈압이 갑자기 상승하면 혈관이 막히거나 터질 위험이 크다.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 질환 위험이 추운 날씨에 더 커지는 이유다.
바깥 날씨뿐만 아니라 실내 온도도 혈압에 영향을 미친다. 2019년 영국에서 16세 이상 4,659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실내 온도가 1°C 낮아질 때마다 수축기 혈압이 0.48mmHg, 이완기 혈압이 0.45mmHg씩 상승했다. 특히 집에서 운동이나 신체활동이 적은 사람일수록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과한 난방을 피해야 하지만 고혈압 환자가 있을 때는 실내 온도가 너무 낮아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날씨가 갑자기 추워질 때는 난방으로 실내 온도를 유지하고 실내에서도 옷을 여러 겹 입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게 고혈압 환자에게 좋은 선택이다. 유산소 운동은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되지만 날씨가 추운 날 무리하게 바깥에서 운동하는 것은 급격한 혈압 상승을 유발하여 위험할 수 있다. 추운 날은 실내에서 운동하거나 가급적 아침보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한 오후까지 기다렸다가 운동하는 게 안전하다.
심혈관계 위험 증가를 생각하면 추운 날일수록 혈압약 복용을 잊지 말아야 한다. 꾸준한 항고혈압약 복용은 심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불행한 사건을 막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약 복용 여부와 관계없이 심근경색, 뇌졸중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119에 연락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은 갑작스러운 가슴통증이 30분 이상 지속되거나 호흡곤란, 식은땀, 구토, 현기증 등이 나타날 때 심근경색을 의심하라고 권한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몇 분씩 있다가 없다가 하면 심근경색을 의심해봐야 한다. 한쪽 마비, 갑작스러운 언어 및 시각장애, 어지럼증, 심한 두통 등은 뇌졸중의 조기 증상이다. 누군가 뇌졸중이 온 것처럼 보일 때는 웃을 때 얼굴 한쪽이 쳐지진 않는지, 팔을 올려보도록 할 때 한쪽 팔이 힘없이 내려가진 않는지, 말을 해보도록 할 때 느리고 어눌해지진 않는지 테스트해봐야 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119에 연락하여 빠른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추운 날씨는 천식, 만성기관지염과 같은 호흡기 질환 증상도 악화시킨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마시면 기도가 붓고 좁아져서 숨쉬기 힘들어진다. 추운 날씨로 기도 주변 근육이 수축하므로 더 숨차다. 추운 날씨에 부득이하게 외출해야 할 경우 천식 증상 악화를 대비해 속효성 기관지 확장약 흡입제를 잊지 말고 휴대해야 한다.
날씨가 추워지고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 독감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고령자, 호흡기 질환, 만성질환자에게 독감 예방 백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독감 백신을 맞고 2주가 지나야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으므로 독감 유행에 앞서 10월~11월에 미리 맞는 게 중요하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변이가 잦아 매년 접종이 필요하다. 현재 65세 이상 어르신, 생후 6개월~13세 어린이, 임신부는 무료접종이 가능하다. 나는 무료접종 대상은 아니어서 1주일 전에 비용 내고 접종받았다.
2021-10-27 0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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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4>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언제 나오나 싶던 코로나19 경구치료약이 곧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제약회사 머크에 따르면 임상시험 결과가 긍정적이라 연구가 조기 종료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개발된 코로나19 치료제들이 모두 주사제 형태로 치료를 위해서는 병원 방문이 필수적이지만 이번에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된 몰누피라비르는 경구치료제이다. 경구라는 말은 먹는 약이라는 의미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쓰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읽는 사람 생각 안 하고 어려운 전문용어를 쓰는 관례를 못 바꿔서 그렇다. 네이버 의약품 사전에서 아무 약이나 하나 검색해보자. 일반인이 알기 쉽게 쓴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독성 표피 괴사용해, 과립구 감소, 메트헤모글로빈 혈증 같은 전문용어가 난무한다.
몰누피라비르라는 약 이름도 어렵긴 하다. 원래 이런 약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입에 착 달라붙는 이름을 짓는 데는 관심이 없다. 약의 성분명치고 쉬운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약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제약회사 마케팅 부서에 많다. 그래서 약의 상품명은 기억하기 쉽다. 타이레놀은 상품명, 아세트아미노펜은 성분명이다) 대신 성분명에는 그 약에 대한 추가 정보가 들어있다. 몰누피라비르(molnupiravir)에서 맨 끝의 vir는 항바이러스제라는 의미이다. 피라비르(-piravir)는 RNA 의존 RNA 중합효소(RNA-dependent RNA polymerase)를 저해하는 약물이란 의미이다. 원래는 피라진이나 피리미딘 화학구조를 가진 화합물에 붙여졌던 게 이제는 범위가 조금 넓어졌다. 몰누피라비르는 바이러스의 RNA 중합효소를 억제하진 않아서 피라비르의 원래 의미에 정확히 들어맞진 않는다. 하지만 RNA 중합효소의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유전암호에 오류가 생긴다. 뒷부분이 이렇게 어려운 대신 이름 앞부분은 재미있다. 이 약을 개발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몰누는 토르의 망치에서 온 이름이다. 맞다. 어벤저스에 나오는 그 토르다. 토르가 휘두르는 망치 이름이 묠니르(Mjolnir)다.
3상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몰누피라비르가 토르의 망치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코로나19 환자 775명을 대상으로 한 관련 임상시험에서 하루에 2회, 200mg 캡슐로 4알씩 약을 5일 동안 복용한 경우 가짜약(placebo)을 복용한 사람에 비해 입원 가능성이 50% 정도로 낮아졌다. 가짜약 복용군은 입원율이 14.1%였고 몰누피라비르 복용군은 7.3%였다. 몰누피라비르를 복용한 그룹에서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지만, 플라시보를 복용한 그룹에서는 8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약은 먹는 약이다. 먹는 약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생활치료센터나 집에서도 복용이 가능하다. 부득이하게 백신 접종이 불가능했거나 면역 저하로 백신 접종 뒤에도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약 복용으로 병원 입원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이 약이 언제 승인되어 출시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긴급사용을 승인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출시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도 구매를 협의 중이다.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이때는 바이러스는 빠르게 증식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 몸의 면역계가 방어 공격 준비가 덜 된 상태. 임상시험에서는 최근 5일 동안 증상 있었던 사람에게 투여. 하지만 바이러스 복제를 막는 식으로 작동하는 약이므로 일찍 복용할수록 효과가 더 좋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증상이 진행된 경우에는 효과가 떨어졌다는 초기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12시간 간격으로 하루 2회씩 5일 동안 복용할 경우 200mg 캡슐 40개가 필요하다. 약값은 나라마다 경제 수준에 맞춰 다르게 책정될 예정이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10회분 40알의 약값이 700달러이다. 한화로 83만원 수준이다. 미국에서 항체치료제의 1/3 가격이다. 약값도 주사제보다 저렴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약을 먹으면 되니까 그만큼 병원비도 절약된다.
몰누피라비르는 처음부터 제약회사가 개발한 건 아니다. 미국 에머리 대학교에서 원래 베네수엘라 말 뇌염 바이러스 치료약을 개발하다가 발견된 약물이라고 한다. 인플루엔자, 에볼라, 코로나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번에 코로나19 치료제로 연구되었다. 산학협력이 제대로 되면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낸다.
2021-10-13 1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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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3> 연휴에 살펴봐야 할 약 이야기
명절 연휴에는 가정상비약에 관한 관심이 커진다. 하지만 상비약보다 중요한 약이 하나 있다. 바로 만성질환 약이다. 고혈압, 당뇨, 우울증 같은 질환으로 약을 복용 중인 사람이 평소 복용하던 약을 갑작스럽게 중단하게 되면 증상이 악화되거나 금단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남은 약의 수량이 연휴 기간 내내 충분한지 미리 살펴봐야 한다. 평소 약을 잘 복용해온 만성질환자의 경우 연휴 때 갑자기 약이 떨어지면 단골약국에서 부족한 약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연휴 기간 중 장시간 자동차나 배를 타고 여행해야 한다면 멀미약을 챙겨두는 게 좋다. 멀미로 인한 오심 및 구토, 어지럼증을 예방에는 항히스타민제가 주로 쓰인다. 멀미약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졸음이다. 먹는 약이 귀 뒤에 붙이는 약보다 안전하다. 귀 뒤에 붙이는 패치형 멀미약은 어린이에게 부작용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으로 방향감각 상실, 기억력 손상, 불안, 환각, 착란 등이 나타난다. 자동차나 배를 타기 30~60분 전에 미리 항히스타민제 멀미약을 복용하는 게 좋다. 여행 시간이 길 때는 차를 탄 상태에서 4~5시간 지나 한 번 더 복용해야 할 수도 있다.
아직 낮 기온이 높다. 연휴 기간에도 식중독을 조심해야 한다. 음식은 충분히 가열 조리하고 냉장 보관해야 한다. 복통, 설사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때는 즉시 병원에 가야 한다. 가벼운 설사만 있고 배가 심하게 아프거나 열이 나지 않을 때는 로페라미드 성분의 알약 지사제나 디옥타헤드랄스멕타이트 성분의 물약 지사제를 사용할 수 있다. 설사가 멈춘 뒤에는 복용을 중단해야 변비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두통이나 가벼운 열이 날 때를 대비해서 해열진통제(아세트아미노펜) 또는 소염진통제(이부프로펜)를 준비해야 한다. 가끔 소염진통제는 해열이 안 되는 걸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다. 소염진통제도 해열에 효과가 있다. 약효를 놓고 보면 보통 소염진통제가 일반 해열진통제보다 조금 낫지만, 소염진통제는 빈속에 복용하면 속쓰림, 위장 장애와 같은 부작용이 있으므로 반드시 식후 복용해야 한다. 백신 맞은 뒤 통증에도 둘 다 복용이 가능하다.
연휴 기간 중 과도한 음주를 하고 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진통제를 찾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과음 뒤에는 가급적 두통약 복용을 피하는 게 좋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진통제는 음주 뒤 간독성이 커진다. 음주 뒤 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숙취 증상 완화에 약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위장관 출혈과 같은 부작용 위험이 크다. 과음, 과식으로 속이 쓰릴 때는 제산제 또는 위산분비억제약을 복용한다. 제산제는 빈속보다 식후에 복용하는 게 효과가 2~3시간 정도로 더 오래간다. 파모티딘 성분의 알약 위장약은 제산제보다 약효가 오래가므로 1~2정을 하루 한 번 복용하면 된다.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때는 깨끗한 물 또는 식염수로 씻고 지혈한 뒤에 습윤 드레싱을 붙여준다. 상처가 세균에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항생제 크림이나 연고를 바를 수 있다. 상처가 깊거나 지혈이 안 될 때, 사람이나 동물에게 물려서 상처가 났을 때는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가을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항히스타민제도 미리 준비해두어야 한다. 항히스타민제에 따라 졸음 유발 정도에 차이가 있다. 감기약은 대부분 졸린다. 알레르기약의 경우 세티리진 성분은 간혹 졸리고 로라타딘 성분은 덜 졸리지만, 약효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다. 펙소페나딘 성분은 졸음을 유발하지 않는다. 이들 항히스타민제는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는 환자를 얼른 응급실에 이송해야 한다. 알레르기 증상으로 눈이 가려워서 안약을 쓸 때는 안약을 넣고 눈을 1~2분 감고 있는 게 좋다. 개봉한 후 1달이 지난 안약은 세균 오염 위험이 있으므로 폐기해야 한다. 연휴 때 밤에 쓰려고 보면 하필 약의 사용기한이 지난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연휴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상비약이 사용기한 이내인지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끝으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약이 필요한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말자. 휴일지킴이 약국을 검색하면 휴일에도 운영 중인 약국을 확인할 수 있다.
2021-09-17 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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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2> 음식 이야기가 즐거운 이유
지난 7월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란 책을 냈다. 음식에 관한 한 정답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정답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과 요리의 기본은 과학이기 때문이다. 가령 ‘라면을 두 개 끓일 때 물을 두 배로 넣는 게 좋은가 아니면 물의 양을 줄이는 게 나은가’라는 질문에는 답이 존재한다.
라면을 두 개 끓일 때는 물의 양을 20퍼센트 줄이는 게 좋다. 표면적이 넓을수록 기화가 더 빠르게 일어나고 국물이 줄어든다. 같은 냄비에 물을 두 배로 넣고 끓이면 냄비 표면적은 그대로여서 물이 덜 날아간다. 그래서 단순히 한 개일 때의 두 배로 물을 넣으면 국물이 싱겁게 된다. 일상 음식에는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러 질문이 숨어있다. 그저 매일 같이 오랫동안 먹는다고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정답은 없다. 어떤 답이 존재하는지 사실을 들여다봐야 비로소 음식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속설과 사실은 다를 때가 많다.
요즘 과일은 너무 달아서 당뇨환자에게는 해롭다는 주장은 어떤가? 연구 결과는 이와 상반된다. 2013년 덴마크 연구에서 2형 당뇨환자에게 과일 섭취를 제한하도록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했다. 그 결과 혈당 조절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고 과일 섭취 제한 그룹의 과일 섭취량만 줄어들었다. 이전보다 과일이 단맛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개인적 선호도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과일이 건강에 나쁘다고 안 먹도록 하는 경우보다는 과일 섭취에 제한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더 건강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 섭취량을 고려하지 않고 과식한 뒤에 과일까지 더 먹어서 배를 꽉꽉 채우는 게 좋을 리는 없지만, 당뇨라고 과일을 무조건 피할 이유도 없다.
따뜻한 밥보다 찬밥을 먹어야 살이 덜 찐다는 말은 사실일까?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기대할 정도는 아니다. 효과가 미미하다. 찬밥에는 저항성 전분 함량이 높아서 소화가 더디 된다. 하지만 찬밥과 더운밥의 저항성 전분 함량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2015년 인도네시아 대학 연구에 따르면 더운밥 100g에 저항성 전분 함량이 0.64g, 10시간 실온에서 식힌 찬밥의 100g에 1.30g이다. 이론상 저항성 전분 함량이 높은 찬밥을 먹으면 혈당치가 서서히 올라가고 소화 흡수가 덜 되는 만큼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반찬 없이 밥만 먹는 경우는 드물다. 식사 후 소화흡수 속도는 더운밥, 찬밥의 저항성 전분에만 관계되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음식을 곁들여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방, 단백질, 섬유질이 풍부한 반찬을 곁들여 먹으면 맨밥만 먹을 때보다 소화 흡수가 느려진다.
게다가 찬 음식보다 따뜻한 음식을 먹었을 때 포만감이 더 오래갈 수도 있다. 온도가 낮으면 냄새가 덜하고 반대로 음식이 따뜻하면 풍미 물질이 더 많이 휘발되어 음식 냄새가 더 진해진다. 따뜻한 음식은 그런 진한 풍미로 인해 뇌가 포만감을 더 오래 느끼도록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찬 음식이 위에서 장으로 더 빠르게 배출된다. 똑같은 밥인데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면 헛배 부르고 배가 더 빨리 꺼지는 이유다. 소화 흡수에는 여러 변수가 이렇게 복잡하게 작용한다. 굳이 살이 덜 찔 거라는 생각에 찬밥을 먹을 이유는 없다.
찬밥이 더운밥보다 빨리 배고픈 것은 문화적 학습효과일 수도 있다. 중국인은 햄버거를 먹고 나면 배가 고프다고 느끼고 미국인은 반대로 중국 음식을 먹고 나면 배가 고프다고 불평한다. 찬 음식을 먹으면 배가 더 빨리 고픈 것도 식문화로 인한 심리적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여러 답이 가능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이렇게 여러 요소가 작용하는 복잡한 현상이다. 질문이 생겨나는 게 당연하다. 그 질문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음식에서 얻을 수 있는 묘미이다. 그러니 음식 너머의 이야기를 알게 될수록 삶이 더 즐거워질 수밖에 없는 거다.
2021-09-08 1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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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1> 가장 좋은 약국 사용법
약국 사용설명서 또는 약국 활용법이 방송 주제가 될 때 단골 아이템이 있다. 조제료 할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일에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 사이에 30%의 할증이 적용되고 주말과 공휴일은 하루 종일 할증이 적용된다. 전에는 토요일 오전 9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는 할증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주5일제가 정착하면서 바뀌었다. 2015년 10월부터는 토요일 오전 9시~오후 1시에도 30% 가산이 적용된다. 이런 야간 할증은 전체 약값에 대한 게 아니라 조제기본료, 복약지도료, 처방조제료에 적용되는 것이다. 처방조제료는 일수에 따라 다르다. 건강보험에서 전체 약값의 70%, 본인 부담금이 나머지 30%이므로 야간 할증으로 더 내는 금액은 약 360원~1,500원 정도이다. 3일 치 처방이라고 하면 주말에 조제할 경우 429원이 가산된다. (2021년 기준)
요약하면 전체 약값에 할증이 붙는 게 아니다. 애초에 처방약에는 마진이 붙지 않는다. 약국에서 값비싼 약을 조제하는 환자는 고가의 약이니 그만큼 약사 이윤도 클 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약 조제 시 약사의 이윤은 총조제료뿐이다. 마찬가지로 야간, 휴일 조제 시에도 약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요금에만 할증이 적용된다. 이런 제도를 만든 취지는 평일 야간, 휴일에도 문을 여는 약국 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위의 계산이 뭔가 복잡한 느낌이다. 그래서 약국에 와서 야간 조제를 하면 본인 부담금으로 10,000원 내던 걸 13,000원 내는 걸로 생각하여 화를 내는 고객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오백 원을 더 내는 거다. 방송에서 약국 사용법을 소개할 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길 때도 있었다. 다행히 요즘 방송에서는 대체로 이런 설명이 제대로 나온다. 처방전을 평일 낮 시간대에 미리 약국에 맡겨 두고 나중에 찾으면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거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크건 작건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기억해두면 좋은 조언이다. 하지만 약국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비용 절감 효과도 이 방법이 훨씬 크다. 약국에 방문할 때마다 자신의 만성질환 유무와 복용 중인 약, 알레르기 유무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진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다.
반대로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약국 사용법은 특정 약을 달라며 아무런 추가 상담 없이 계산만 하고 약국을 뜨는 거다. 예를 들어 전립선 비대증으로 원래부터 소변볼 때 힘들어하는 중년 남성이 약국에서 감기약을 산다고 생각해보자. 그냥 감기약일 뿐이지만 전립선 비대증 환자의 경우에는 위험할 수 있다. 보통 종합감기약에는 콧물과 재채기 증상을 완화하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 성분이 들어있다. 성분 정보에 클로르페니라민, 트라이프롤리딘이 적혀 있다면 그런 약이다. 감기약에는 이에 더해 비충혈 제거제 성분도 들어있다. 코막힘 증상을 완화하는 약이다. 이들 약 성분은 소변을 보기 어렵게 만든다. 대개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안 그래도 소변을 보기 어려웠던 전립선 비대증 환자에게는 위험한 부작용이 될 수 있다. 배뇨 곤란이 아주 심해져서 소변을 아예 못 보게 될 지경에 이르면 응급실에 방문해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병원비만 드는 게 아니다.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직장에 출근도 어려워진다. 개인적 비용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때나 건강기능식품을 구입할 때나 세 가지 정보를 약사에게 미리 알리는 걸 습관으로 하자. 기억하고 있나 머릿속으로 확인해보자. 맞다. 만성질환 유무, 복용 중인 약, 약물 알레르기 유무 세 가지이다.
노인의 경우는 약국 방문 시 이런 정보를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89.2%가 만성질환을 갖고 있고 만성질환을 3개 이상 가진 경우도 46.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중 46.6%가 5개 이상 약물을 처방받았다. 약국을 한 곳만 이용한다면 어떤 처방약을 복용 중인지 약사가 알 수 있지만 여러 약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환자가 정보를 주지 않는 이상 전부 알기 어렵다. 기억하기 어려우면 처방전이나 약 봉투 사진을 찍어서라도 약국 방문을 대비하는 게 좋다. 알레르기 정보 역시 자신이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런 정보를 약사에게 알리고 상담을 받아 약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이며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약국 사용법이다.
2021-08-25 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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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0> 모기 물렸을 때 쓰는 약 이야기
작년은 거의 안 물리고 지나갔다. 올해는 벌써 여러 번 모기에 물렸다. 정확히 언제 물렸는지는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해 모기는 물지 않는다. 사람의 피부에 빨대처럼 생긴 주둥이를 찔러 넣고 흡혈한다. 이렇게 찔러 넣을 때 바로 따끔한 걸 느낄 수도 있지만 모르고 지나갈 때가 더 많다. 몇 분 지나서 물린(찔린) 곳이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하지만 보통은 전날 물린 곳이 다음 날 부어오르며 간지럽다. 하지만 48시간이 지나서야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언제 물렸는지는 내 피를 빨고 사라진 모기를 잡아도 알아내기 어려운 문제이다.
여러 사람 중에 왜 굳이 나를 물었을까도 알아내기 쉽지 않다. 모기는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피부를 통해 발산하는 열로 사람의 존재를 감지하고 다가온다. 체취에 따라 모기가 더 잘 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미식가 모기라도 이 사람 저 사람을 찔러보면서 누가 더 맛있나 봐가면서 물고 다닐 여유는 없다. O형 혈액형이 모기에 잘 물린다는 일본 연구 결과가 한 건 있긴 하지만 신빙성이 떨어진다. 현재까지 사람의 피부에서 찾은 냄새 물질이 500종 이상이다. 이 중 어떤 물질이 나를 모기에게 더 인기 있는 존재로 만든 것인가는 아직 연구 중이다. 모기 종마다 선호하는 냄새가 다르기도 하다. 모기 기피제는 모기가 싫어하는 냄새를 풍기거나(DEET) 모기가 냄새를 감지하기 어렵게 만들어서(이카리딘) 모기에 물리는 걸 막아준다. 반대로 모기가 좋아하는 냄새 물질로 모기를 유인하는 장치도 언젠가는 나오길 바라는 사람이 많을 거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
모기에 물리면 간지러운 것은 모기 침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기 침 속의 화학물질에 대한 면역 반응은 대개 간지럽고 붓는 정도로 그치지만 아주 드물게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킬 수도 있다. 몸 전체에 두드러기가 나고 목과 기도가 부어올라 호흡곤란이 생길 수 있는 치명적 반응이다. 하지만 모기 물려서 아나필락시스가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벌에 물렸을 때 더 위험하다.
일단 모기에 피를 빼앗긴 걸 알아차리고 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긁지 않기 위한 예방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가려워서 자꾸 긁으면 2차로 세균감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약이 없을 때는 우선 얼음 팩을 천으로 싸서 부은 곳을 냉찜질해주는 게 좋다. 냉찜질은 가려움증 완화에도 도움이 되고 혈관을 수축시켜 부기를 빼주는 효과 면에서도 유익하다. 뜨거운 숟가락은 절대 피하자. 모기 침에는 포름산이 없고 피부에 뜨거운 숟가락을 가져다 댄다고 그런 성분이 분해되는 일도 안 생긴다. 그냥 화상을 입을 뿐이다.
모기에 물려도 안 가렵고 별 티도 안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굳이 약을 바르지 않아도 며칠 지나 저절로 사라진다. 하지만 자꾸 가려울 때는 긁는 것보다 얼른 약을 쓰는 게 좋다. 벌레 물린 데 바르는 약에는 항히스타민제(디펜히드라민), 국소마취제(디부카인), 반대자극제(살리실산메틸, 멘톨, 캄파)가 들어 있다. 이들 성분은 통증, 가려움증을 줄여준다. 벤잘코늄염화물 성분의 의약외품은 의약품에 비해 효과가 떨어지니 제품을 구매할 때 주의해야 한다. 30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어린이용 약품을 사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캄파 같은 성분이 드물지만, 경련을 유발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자꾸 긁는 걸 막기 위해 붙이는 약(플라스타)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30개월 이하의 유아에게는 사용을 피한다. 생후 30개월까지는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간다. 언제 떼어서 입에 넣을지 모른다.
약을 발라줘도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먹는 항히스타민제를 추가하거나 히드로코티손과 같은 약한 스테로이드 연고를 사용해볼 수 있다. 하지만 세균감염이 의심되거나 통증이 심할 때는 먼저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해야 한다. 모기는 기피제를 사용해서 안 물리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물려서 가려울 때는 긁지 말고 약을 쓰자. 뜨거운 숟가락은 잊자. 적재적소에 약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센스 있는 현대인이 되자.
2021-08-11 1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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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89> 궁금한 약 수면제 이야기
대체로 처방 없이 약국에서 구매 가능한 비처방약은 부작용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수면제는 약국에서 처방 없이 사는 비처방약보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처방받아서 약국에서 타는 처방약이 더 효과적이고 부작용 면에서 나을 수 있다. 약국에서 판매되는 비처방약 수면제도 안전하기는 하다. 미국 FDA는 항히스타민제인 디펜히드라민을 ‘자가 치료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수면보조제’로 분류했다. 수면제는 크게 나눠서 잠이 안 올 때 졸리도록 유도해주는 수면유도제와 계속 졸리게 해서 7~8시간을 잘 수 있게 도와주는 수면제로 나눌 수 있다. 처방약을 수면제, 비처방약을 수면유도제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처방약으로 쓰이는 수면제를 수면유도제라고 부르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비처방약 수면제는 약효가 생각보다 오래간다. 보통 약효가 7~8시간 지속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졸음이 낮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경우에 낮에 운전이나 기계 조작을 하면 매우 위험하다.
불면증 치료에 있어서 비처방약 수면제는 일시적으로만 써야 한다. 쉽게 말해 때때로 잠이 잘 안 오는 경우에 띄엄띄엄 써야 한다. 만성 불면증 환자에게는 효과 있다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디펜히드라민 같은 항히스타민제는 오래 쓰면 진정 효과에 대해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떨어진다. 건강한 사람이 비처방 수면제를 매일 쓰면 4일째 되는 날 진정 효과에 대한 내성이 발생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비처방약 수면제는 일주일에 4회 이하로 필요할 때만 쓰는 걸 권장한다.
불면증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다른 질환의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디펜히드라민을 일주일 넘게 연속으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먼저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하여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상담을 받아보아야 한다.
모든 주의사항을 숙지한 뒤에 비처방약으로 항히스타민제 성분의 수면제를 사용해보기 원하는 경우 보통 하루 1회 잠들기 30분~1시간 전에 복용하며 가장 낮은 용량부터 시작해야 한다. 처음 복용하는 사람은 연질 캡슐보다 정제가 낫다. 요즘은 정제보다 연질캡슐이 효과가 빠르다는 광고를 많이 하지만 그런 건 그냥 마케팅이다. 흡수 속도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정제는 반으로 쪼개서 적은 양을 복용할 수 있지만 연질 캡슐은 그런 게 불가능하니 용량을 조절할 수 없다. 25mg 정제로 반 알(12.5mg) 또는 한 알을 먼저 복용해보고 효과와 부작용에 따라 복용량을 조절하는 게 안전하다. 항히스타민제 계열 수면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다음 날까지 졸음이 지속되는 것 외에도 신체 운동성 저하, 몽롱한 시야, 목마름 등이 있다. 또한 항콜린작용이 있어서 협심증, 부정맥, 녹내장, 전립선 비대증, 배뇨곤란, 호흡곤란 등이 있는 환자는 복용을 주의해야 한다. 하루 복용량인 50mg을 초과해서 복용해도 효과는 별 차이가 없다. 부작용만 커진다. 심하게는 호흡곤란까지 나타날 수 있다. 비처방약 수면제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용법 용량을 지켜야 한다.
약물 상호작용도 조심해야 한다. 항히스타민 성분 수면제를 복용하는 동안에 다른 수면제, 감기약, 해열진통제, 진해거담제, 다른 항히스타민제를 함께 복용하면 과도한 진정 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이미프라민계 항우울약이나 항파킨슨약과 병용 시 요로폐색, 변비 등의 부작용이 증가할 수 있다.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할 때는 항상 지금 복용 중인 약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처방약과 비처방약을 모두 알리는 것을 습관으로 해야 한다.
처방약이든 비처방약이든 수면제를 복용하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위험한 습관이 될 수 있다. 어쩌다 한 번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을 조금 마시면 잠이 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술을 많이 마시고 나면 중간에 자다 깨서 수면장애를 경험하기 쉽다. 게다가 저용량 알코올의 수면 촉진 효과는 내성이 빠르게 생긴다. 결국 자려고 마시는 술의 양이 늘어나고 그러면 선잠이 들어 몇 시간 자다가 깨어서 잠을 못 자는 악순환이 생긴다.
술이나 약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수면 습관을 개선하는 게 좋다. 매일 자러 가는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하자. 자기 전에 따뜻한 목욕도 좋다. 잠자는 환경을 조용하고 어둡게 한다. 오후에는 과도한 카페인 섭취를 피하자.
2021-07-28 1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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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88> 약국에 갈 때마다 말해야 하는 것
약국에 가면 이것만은 반드시 이야기해야 하는 정보가 몇 가지 있다. 만성질환 유무, 복용 중인 약,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약물 알레르기에 대한 것이다. 약에 대한 알레르기는 약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약을 복용하고 나서 가볍게는 두드러기, 심하게는 호흡곤란과 같은 심각한 알레르기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
약물 알레르기 중 미디어를 통해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은 아나필락시스이다. 약물 알레르기 반응 중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급성 과민반응이다. 약에 대한 폭발적 면역반응으로 두드러기, 혈관부종(주로 얼굴에 나타나며 눈두덩이나 입술이 심하게 부풀어 오른다), 복통, 호흡곤란, 저혈압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다. 약만 원인은 아니다. 벌에 쏘이거나 알레르기 유발 음식을 먹고 생길 수도 있다. 백신 접종 뒤에도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있을 수 있다. 보통 알레르기 항원 노출 후 15분 이내에 이런 반응이 나타나므로 백신 접종 뒤에 최소 15분~30분을 병원에 머무르도록 한다. 하지만 아나필락시스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모든 원인으로 인한 경우를 다 합치면 0.05~2% 정도로 나타난다. 이런 중증의 알레르기 반응보다는 소염진통제 과민반응 같은 약물 알레르기가 더 흔하다.
소염진통제 과민반응을 예전에는 피린계 특이체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피부가 가렵고 붉어지거나 두드러기가 나는 등의 증상이 흔하지만 간혹 혈관부종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경우는 금방 목이 부어오르고 호흡곤란과 같이 치명적인 과민반응이 생길 수 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거나,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입할 때 항상 자신이 소염진통제에 과민반응이 있다는 이야기와 구체적으로 어떤 과민반응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걸 습관으로 해야 한다. 소염진통제에 대한 과민반응은 엄밀히 말해 알레르기인 경우와 가성 알레르기 반응으로 나눌 수 있다. 특정 화학구조의 약물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라면 그 계열의 약만 피하면 된다. 하지만 가성 알레르기는 약물에 대한 면역 반응이 아니고 소염진통제의 기전상 류코트리엔 같은 염증성 물질이 체내에 축적되기 때문에 생긴다. 이때는 세레콕시브처럼 COX-2만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소염진통제를 쓰면 과민반응이 생기지 않는다. 아세트아미노펜도 한번에 650mg까지는 쓸 수 있다. COX-2를 억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번에 1000mg(일반 정제로 두 알)을 복용하면 아세트아미노펜도 COX-1를 약하게 억제하여 과민반응이 생길 수 있다. 소염진통제에 과민한 사람의 20%가 아세트아미노펜 1000mg 이상을 복용하면 과민반응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으니 한 번에 한 알까지만 복용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주의할 점은 음주 후 약 복용이다. 술마신 뒤에는 약에 대한 과민 반응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이 면역세포(비만세포)를 자극하여 알레르기반응을 촉진시키는 물질을 더 많이 쏟아내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정 발효시에 생성된 히스타민이 술에 녹아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은 특히 맥주와 와인에 고농도로 들어있고 색깔 있는 술에 더 많다.
소염진통제 외에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생제이다. 페니실린 계열 항생제의 경우, 환자 10명에 1명꼴로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진짜 항생제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순한 설사, 소화불량 등은 알레르기와는 무관한 단순 부작용을 알레르기로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정확한 여부를 알려면 병원에서 진단검사가 필요하다.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의 경우 이를 모르고 약을 투여하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약국, 병의원을 방문할 때는 항상 자신의 약물 알레르기에 대한 정보를 먼저 말하는 것을 습관으로 해야 한다.
2021-07-14 1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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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87> 코로나19와 약에 대한 이슈 정리해보기
작년에 아스피린이 코로나19 입원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이나 사망률을 낮추는 걸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몇 건 있었다. 대부분 관찰 연구 결과였다.앞서 칼럼에서 쓴 것처럼 관찰만으로는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다. 위약(플라시보)을 주고 진짜 약의 효과인지 확인해봐야 한다. 약을 복용 중인 환자만 효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연구자들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다보면 결과가 편향될 수 있다. 이런 선입견으로 인한 편향을 막기 위해 이중맹검법을 쓴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의사와 환자 모두 투여한 약이 위약인지 아닌지 모르게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거의 1만5천 명의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무작위로 위약 또는 아스피린을 배정하여 생존률을 비교한 RECOVERY(Randomised Evaluation of COVid-19 thERapY) 임상 시험 결과가 6월 8일 공개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사망률에 별 차이가 없었다. 매일 아스피린 150mg을 복용한 환자 7351명과 위약을 복용한 환자 7541명의 사망률은 17%로 동일한 수준이었다. 아스피린을 투여한 환자의 입원기간이 8일로 위약 그룹(9일)보다 하루 짧은 정도였다. 28일 뒤에 생존해서 병원을 퇴원하는 비율은 75%로 위약그룹(74%)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이 연구 결과는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약업 신문에서 6월 9일자 기사 한 건을 찾은 게 전부이다. 그동안 아스피린이 코로나19 생존률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뉴스가 많이 보도된 것에 비하면 의아할 정도로 적게 다뤄졌다.작년 가을 RECOVERY 임상시험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18건을 찾을 수 있는데 그 결과에 대한 보도는 한 건에 불과한 것이다. 효과가 없다는 소식은 적게 다루고 뭔가가 효과 있다는 소식은 떠들썩하게 다룬다.유튜브, 카카오톡,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매체도 마찬가지다. 아스피린 복용이 코로나19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건 거의 안 다룬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뭐가 좋다는 게 귀에 솔깃하지 별 도움 안 된다는 이야기에는 시큰둥하다.하지만 이렇게 뉴스가 한쪽으로 쏠리면 위험하다. 불필요하게 나도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해야 하나 궁금해 하는 사람이 주변에 너무 많다. 그럴 필요 없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를 종합 요약해보자. 코로나19를 대비하여 스스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할 이유는 없다. 의사의 권유로 이미 아스피린을 오랫동안 복용 중 이었던 사람이 코로나19 때문에 약을 끊을 필요도 없다. 아스피린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이제 거둘 때다.백신을 맞고 난 후에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에 대한 권고도 바뀌었다. 반드시 아세트아미노펜일 필요는 없고 아스피린과 소염진통제도 복용할 수 있다. 이게 맞다. 백신 접종 후 통증이나 발열이 있을 때 해열진통제 대신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위험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게 아니다. 소염진통제의 염증 완화 효과로 인해 혹시나 백신의 효과가 줄어들까 우려하여 백신 접종 뒤에 가급적 해열진통제를 권하는 것이다.그런데 왜 소염진통제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부프로펜 같은 소염진통제라고 해도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용량에서는 소염 작용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1200mg 정도에서는 소염 작용이 약하다. 하루 2400mg 이상이 되어야 소염 작용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이부프로펜 알약은(애드빌, 부루펜, 이지엔6애니, 탁센400)은 보통 한 번에 200~400mg을 하루에 세 번 복용하므로 하루 1200mg 이하가 될 때가 대부분이다.
정리하면 백신 접종 이후에 굳이 타이레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타이레놀 외의 아세트아미노펜 해열진통제도 많고 다른 소염진통제도 많다. 물론 약 성분에 알레르기나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 만성질환자는 이들 약을 복용 전에 약사와 상담하는 게 안전하다.<수상록>으로 유명한 몽테뉴가 16세기 온천수를 두고 쓴 것처럼 사람은 바라는 것에 쉽게 속는다. 뭔가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효능에 대한 소식에는 민감하고 효과 없다는 이야기에는 둔감하다. 21세기에는 과학 지식이 그런 편향성을 바로잡아 약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2021-06-23 16: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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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86> 가짜약이 필요한 이유
진짜약은 가짜약을 필요로 한다. 실제 효과와 약에 대한 믿음으로 인한 효과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른바 플라시보 효과다. 플라시보는 라틴어로 “나는 기쁠 것이다”라는 뜻이다. 신약 후보물질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살펴보는 임상시험은 한쪽 그룹은 진짜약, 다른 한쪽 그룹에는 가짜약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짜약을 받은 환자들도 증상 완화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니 실제 약의 효과가 얼마인가를 보려면 그중 얼마까지 플라시보 효과일 수 있는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진짜약과 가짜약의 효과에 별 차이가 없다면 그 약은 신약으로 승인받기 어렵다. 신약이 정부의 허가를 받으려면 임상시험으로 플라시보 이상의 유의미한 효과를 입증해야 한다.가짜약을 사용한 임상시험이 필요한 것은 관찰만으로 인과 관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로 돌아가보자. 남성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여성호르몬이 치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남성환자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한 연구자들이 있었다. 작년 4월 미국에서만도 2건의 연구가 있었다. 뉴욕에서는 남성 코로나19 환자에게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는 식으로 LA에서는 또 다른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투여하는 식으로 연구가 진행됐다. 남성과 여성의 코로나19 감염 확률은 비슷한데 유독 사망 비율은 남성이 높게 나타난다. 이런 차이가 남성 호르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 연구자들이 남성 코로나19 환자에게 여성호르몬을 투여하기로 한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남성 호르몬이 코로나19 예후에 좋지 않다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5월 발표된 다른 연구에서는 반대로 남성 호르몬 수치가 낮은 남성 환자들이 정상인 환자에 비해 중증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이제 남성 코로나19 환자에게 여성호르몬이 아니라 남성호르몬을 투여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 않다. 그런 관찰 연구만으로는 인과 관계를 알 수 없다. 약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물질이 정말 약효가 있는가 보려면 가짜약 투여그룹과의 비교하는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긍정적 믿음은 긍정적 효과를 낳는다. 이런 긍정적 믿음이 삶에서는 좋은 결과로 이끌 수 있지만 약의 연구에서는 잘못 오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파킨슨병 환자의 경우 플라시보 효과가 치료에 특히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약이 비싸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약효가 28%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가짜약은 진짜약의 부작용에 대해 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약으로 인해 해를 입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는 노시보 효과 때문이다. 진짜약 때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인지 가짜약으로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인지 보면 약의 실제 부작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가짜약은 이렇게 신약 개발에 중요하지만 실제 약의 사용자인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어떤 약을 쓰기로 결정한 후에는 플라시보 효과를 최대화하고 노시보 효과는 최소화하는 전략을 세워야한다. 한 연구에서는 천식 증상 완화에 사용하는 기관지 확장제를 주고, 두 그룹에 각기 설명을 반대로 했다. 이 약이 숨을 쉬기 어렵게 만드는 약이라고 거짓 정보를 준 쪽 그룹에서는 약효가 제대로 설명한 그룹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다른 실험에서는 천식 증상을 악화시키는 약을 주고 한쪽에는 제대로 말해주고 다른 쪽에는 이 약이 천식에 효과 있는 약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약으로 인해 천식이 악화되는 비율이 절반으로 줄었다.약을 사용할 때에야 효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겠지만 약을 개발할 때는 그렇지 않다. 가짜약을 사용한 경우와 대조하여 효과를 검증한 약만 진짜약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효과 있는 치료약이나 치료법이 나왔다는 소식이 종종 들리지만 대부분 아직 근거가 부족하거나 가짜뉴스이다. 효과 있는 치료법이 얼른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다보니 이런 가짜뉴스에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러지 말자. 효과가 검증된 백신을 맞자.
2021-06-10 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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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85> 아스피린 팩트체크
코로나19 백신 접종 전에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하는가 묻는 사람이 많다. 아스피린 복용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혈전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때는 면역 반응으로 인해 혈소판이 줄어들기 때문에 아스피린 복용은 오히려 출혈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아스피린과 소염진통제를 백신 접종 전에 복용하면 백신의 효과를 떨어드릴 우려도 있다.
최근에는 아스피린에 대한 이야기가 카카오톡, 페이스북과 같은 메신저나 소셜미디어를 타고 돌면서 나도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하나 고민하는 경우도 본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 중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염률이 29% 낮다는 이스라엘 관찰 연구 결과도 있긴 하다. 하지만 백신의 효과가 훨씬 분명하고 뛰어나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분기 코로나19 백신의 접종 후 예방효과는 접종 14일 후 기준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92.2%, 화이자 100%이다.
게다가 아스피린은 출혈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런 부작용 위험 때문에 최근에는 심혈관계 질환 예방 목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도 의사의 판단 아래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게 원칙이다.
그래도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체크해보자. 아스피린의 출혈 위험은 코로나19 백신보다 더 높다. 이는 프랜시스 콜린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이 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혈소판 감소를 동반한 뇌정맥동혈전증(CVST, Cerebral venous sinus thrombosis)이라는 희귀 혈전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얀센 백신 접종을 일시 중단시켰다가 지난 4월 23일부터 재개하는 일이 있었다. 얼마나 희귀한 부작용인가 하면 지난 4월 21일 기준 보고된 CVST 사례는 얀센 백신을 접종한 800만명 중 16건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50세 미만 여성(18~48세)에서 나타났다. 100만명당 2명 수준이다. 콜린스 원장은 아스피린을 복용한 뒤 장출혈을 일으킬 위험은 500명~1000명 중 1명 수준이라면서 백신 접종 뒤에 부작용을 경험할 확률이 아스피린 복용시보다 1000분의 1로 적다고 말했다. 나중에 콜린스 원장은 아스피린의 출혈 위험이 이보다 더 높아서 1.8%로 100명당 2명이라고 사실을 정정했다. 원래 발언보다 아스피린 출혈 위험이 더 높다며 백신의 안전성을 강조한 것이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매일 복용하면 뇌졸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팩트체크 해보자. 정답은 누가 아스피린을 복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건강한 성인은 뇌졸중을 예방하려고 아스피린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아스피린의 복용은 뇌졸중 방지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을 이미 앓은 환자한테 재발을 막으려는 2차적 예방 목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 아직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을 겪지 않은 사람도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게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환자 스스로 복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와 상담하여 신중하게 유익과 위험에 대해 저울질해봐야 한다. 약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려면 그로 인한 유익은 크고, 위험은 작아야 한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질환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부작용보다 유익이 더 클 것이 기대되지만,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지 않다. 이때는 출혈 부작용 위험이 더 예상되는 이익보다 더 클 수 있다. 최근에는 건강한 사람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한다고 더 건강해지진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아스피린이 희귀한 백신 부작용 예방에 별 효과가 없고 건강한 사람에게 특별한 유익을 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아스피린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혈전 생성을 막아 치료에 도움을 주는가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약은 필요한 사람에게만 약이다.
2021-05-26 1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