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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51> 약국 및 약무의 혁신: 약업계는 고령화 시대를 준비하였는가?
세계적으로 바이오·의료산업 시장은 2,40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가 발간한 보고서는 향후 10년내 전세계 GDP의 약 40%가 헬스케어 분야에서 창출될 것이라 예측하였다. 이에, 주요 선진국들은 국가의 사활을 걸고 바이오/제약/헬스케어 클러스터를 구축하여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이나 도약의 필수요건으로 공학과 의약학 융합 인재의 확보를 꼽는다. 공학 기반의 의약학과학자 없이 신성장동력인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정부는 인재양성을 위한 제도개선방안을 준비하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은 연구중심 의과대학을 유치하려고 노력 중이다(그림1).
그림1. 연구중심병원 생태계와 협력체계
고령화 추세
한편,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UN이 정한 ‘고령사회’란 총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14%를 초과할 때이고, ‘초고령사회’란 20%를 초과하는 시점이다. 2020년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15.7%이며 2025년에는 20.3%라고 예측하는데, 이는 한국사회가 향후 10년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가 매년 80만명씩 65세 노인이 되는 고령화 폭주기관차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고령사회의 의료비 부담은 막대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건보가입자의 진료비는 2018년에 30조원을 돌파했고 전체 진료비의 41%를 차지했다. 2011년에 15조원이었는데 단 7년 만에 2배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2019년 기준 43.4%로 OECD국가 평균치 15.7%의 3배다. 이런 추세라면 노년층이 더 이상 지불하기 곤란한 의료비는 고스란히 청장년층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급기야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 등 각종 돌봄 정책을 입안하여 의료비 부담을 축소시키려 하지만 재원이나 의료기술을 고려할 때 환자가 감당할 재정부담을 줄이기는 역부족이다. 이에 각국 정부와 유관 산업계는 4차 산업혁명 혹은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라 불리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응용기술을 해결책으로 활용하려 한다.
고령화 시대의 디지털 헬스케어
우리나라의 헬스케어 스타트업(startup)이 개발한 기술이나 사업모델의 약 75%는 한국에서 사용할 수 없기에 의료선진국 시장에 먼저 진출하여 사업화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최신의 디지털 기술은 단순노동을 줄이는 대신 노동자에게 디지털화에 따른 변화를 강요한다. 더구나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포감이 오히려 건강과 장수에 대한 관심을 높여서 적어도 본격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의 도래를 10년은 앞당겼다고 한다.
인류의 평균수명은 1세기 만에 2배나 연장되었고 이제는 100세 시대를 당연시 한다. 재생의학과 유전정보를 활용해 언제쯤 장기이식이 필요할 지 예측하는 이른바 예측의학도 출현하였으니 이를 더하면 어느덧 전세계 보건의료산업 시장은 2017년 기준 1경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라고 추산된다. 현재 전세계 반도체 시장의 규모를 700조원대라 하니 왜 각국 정부와 산업계가 보건의료산업에 전력을 기울이는지 이해된다.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1946~1964년생)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고령화는 가속되었는데 2017년에 노인인구가 이미 5천만명을 넘었고 2042년에 7천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는 2030년에 미국 내 의사가 12만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고급전문인력은 일시에 대량 공급이 불가능하므로 그 해법으로 IT기술기반의 헬스케어 기술을 인력난, 시설 부족, 치료비 폭증 문제의 해결에 활용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헬스케어는 웨어러블 기기와 AI,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약복용 여부, 심박수, 체온, 혈압, 호흡을 측정해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검사일정관리, 낙상위험측정, 만성질환을 관리해줄 수 있다. 또 디지털 응급의료시스템을 도입하여 응급실 대기시간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헬스 모니터링이나 가상 간병인 기술은 비용절감 효과가 커서 전문의료기관이나 보험사가 큰 관심을 보이는 분야이다(그림2).
그림2. 헬스케어의 발전된 개념과 영역
디지털 헬스케어와 약사과학자
헬스케어 시장을 조사하고 국내외 의료전달체계를 연구해보니 인공지능체가 환자를 모니터링하며 획득한 수치 정보를 의료인과 공유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은 의사나 약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이들과 협력이 더 필요한 것이다.
미국이 디지털 헬스케어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었던 요인은 과학과 공학을 임상과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의사과학자(MD-PhD)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란 점도 작용했다. 의사과학자는 의사면허소지자로서 진료와 동시에 질병 연구와 과학 및 공학기술을 서로 이어주는 ‘중개연구’를 추진하는 의사를 말한다. 그렇다면 약학분야에서는 신약물질발굴과 임상시험연구, 약료를 동시에 수행할 약사과학자의 본격적인 양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까지 의사과학자가 대학과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고, 설사 자리를 얻더라도 안정적인 연구비의 확보나 생계를 위한 수입도 임상의 대비 여의치 않다. 아마도 당분간은 약사과학자의 처지도 비슷하거나 더 열악할 것이다. 의료시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이 그동안 일반의에서 전문의로, 다시 의사과학자로 변모하는 동안 약료(약업)시장은 답보상태인 듯하여 안타깝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마트 헬스케어 시대가 성큼 도래했는데, 여전히 약학대학은 이 분야에서 활동할 임상약료와 약과학을 동시에 수행할 전문인력이 갖춰야 할 역량의 범주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의 부속기관으로 의료의 지원체계로서의 병원임상약학은 전문약사제도를 통하여 축적한 노하우와 인력 풀을 활용하려는 준비를 지난 8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약 40년간 꾸준히 수행해왔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 약국의 대비
실상 약국현장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급격한 인구고령화,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 노인환자의 약제비용 폭증, 다약제복용으로 인한 약물부작용 증가, 약국형 디지털 의료에 대한 요구 증가, 전문약사에 대한 구체적 업무영역 설정, 약국영세화 심화, 병월/의원/보건소와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임상약료체계 구축, 약국에서 발생한 연간 5억 건의 전문처방 데이터의 저장-발췌-분석-활용 체계 구성, 일반약이나 건기식 및 각종 의료제품의 판매 데이터 혹은 비정형 데이터의 수집 및 활용 체계 정립, 약국을 이용한 경증질환자의 편의성이 증진되도록 약국과 연동된 앱의 개발과 상용화 부진 등 디지털 혁명 시대에 속히 따라잡아야 할 분야가 많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만성질환에 대한 약처방이 증가하여 처방조제 수요도 동반 상승하고 개국가의 수익증대가 가능하다는 기대감이 높은 듯하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이미 선진국은 ICT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고도화하고 폭넓게 수용하여 보험재정에서 차지하는 약제비의 증가를 막고 제반 간접의료비를 낮춤과 동시에 원격기술을 활용한 진단과 모니터링 및 간병 분야에서 비용을 줄이고 의료시장의 노동 패러다임을 재편하고 있다(그림3).
그림3. 디지털 헬스케어의 목표
한국형 노인약물사용 가이드라인, 약물부작용 방지체계, 유전체-약물작용 연계 알고리즘 개발, 지역약국 경영합리화 및 수익증대 프로그램, 지역사회 노인약료체계, 복약순응도 향상 및 건장증진 프로그램, 다양한 약국매개 특화서비스의 개발과 수가 적용 등 연구개발해야 할 분야가 많다.
필자의 견해로는 약국을 중심으로 한 약업계는 중복 및 낭비가 매우 많다. 굳이 전국에 분회장이 250명이나 필요하며 분회별로 연 3억원 이내의 저예산으로 분회를 운영하면서 완성도가 낮은 회무나 자체사업, 실효성이 낮은 교육프로그램과 의례적인 연례행사를 개최해야 할까? 아직도 불용재고에 대한 처리방안은 완전하지 않고, 한약사 직역과 20년 넘은 갈등상황은 여전하다. 약국에서의 임상약료에 대한 자신의 능동적 연구와 발표가 있어야 할 ‘학술대회’보다는 타인이 정리한 내용의 교육내용을 청취하거나 제조공급사들이 진행하는 신제품 설명회에만 인산인해를 이루는 수동적인 학습태도와 단지 ‘학술제’ 수준에 머무르는 행사를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까?
국내 몇몇 지부가 개최하는 대형 학술제에서조차 해가 거듭할수록 오히려 연구논문 발표 건수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약사는 과연 무슨 전략으로 AI와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혁신을 대비할 것인가? 모쪼록 다가오는 새해에는 공부하는 연구회가 더 많이 생기고, 직접 연구하여 획득한 근거를 기반의 약료를 실천하는 약국과 약사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11-24 06: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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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50> 약국 및 약무의 혁신: 약국도 디지털 트윈을 개발해야 한다
근래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미 우리나라 유치-초등-중등-고등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은 메타버스의 사용법을 익히고 가상공간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도록 대대적링 연수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맞춰 약국이 메티버스 기술을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지 이야기하는 경우도 들린다. 필자는 약국 중심의 약업산업은 아직 메타버스 기술의 응용을 논하기는 시기상조라 여기며, 오히려 선진 대기업들이 앞다퉈 도입 중인 ‘디지털 트윈’이란 개념을 어떻게 소화하고 이를 약국현장에 도입할 것인지 먼저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전환의 큰 흐름 속에서 주목해야할 개념이요 특성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트윈은 물리적 자산, 시스템 또는 프로세스를 소프트웨어로 표현하는 것이라 정의하며, 실시간 분석을 통해 대상을 감지, 예방, 예측 및 최적화하여 비즈니스 가치를 제공한다(그림1).
그림1. 디지털 트윈의 정의(출처: 딜로이트, 2017년)
그래서 선진 글로벌 기업은 디지털 트윈 소프트웨어로 자산, 네트워크 및 프로세스의 3가지 핵심 영역에서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기에 약업산업도 속히 디지털 트윈의 개념과 실제적 구현방안을 연구하고 상용화를 앞당겨야만 종래의 아날로그적인 모습을 보다 미래지향적으로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자산 디지털 트윈(Asset Digital Twin, ADT)
아무래도 ADT는 약국에 자산성과관리(APM) 솔루션의 모습으로 제공될 것이다. 디지털 트윈 소프트웨어는 자동조제기나 집진장치, 냉장고, 약장, 광고용 모니터, PC 같은 장비나 자산시스템 전체의 운영 및 플릿(Fleet)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트윈을 생성해줄 수 있다. 이는 약국뿐 아니라 유통, 금융 산업과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의약외품, 의료용구, 건기식, 특수의료용 식픔 등 다양한 유관산업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ADT를 통한 비용절감효과도 매우 클 것이다. 디지털 트윈의 실시간 모니터링 기능을 통하면 고객들은 연간 수조원을 절약할 수 있고, 이 분야의 선도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장차 약국내 조제기, 조제검수기, 투약기, 재고관리로봇, 다용도 냉장고, 정수기, 고객용 안마기 등 약국내 아니 일정지역에 산재한 다수 약국내 수백~수만개 디지털 트윈을 우선적으로 관리하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ADT 소프트웨어를 먼저 확보하는 기업은 환자 및 약국 고객이 직면한 문제들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해결방안도 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데이터, 분석 및 전문지식을 사용하면 가용성, 신뢰성, 효율성 및 수익성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또 ADT를 활용하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약국의 다양한 예측진단역량을 향상시켜줄 것이다. 예측진단을 적용하면 각 약국은 적시에 적절한 자산에 적절한 수준의 관리서비스를 제공받고, 업무중단시간과 유지관리비용을 절감하여 약국의 수익이 높아질 수 있다. 현재의 약국들은 초급 수준의 ERP나 POS 수행기능을 활용할 뿐이지만, ADT가 제대로 구축되면 다수의 고객과 의료제품을 취급하는 약국경영자의 유지보수 작업을 최적화해주고, 갑작스런 다운타임도 예측, 방지하는 필수적 약국경영도구로 정착될 수 있다(그림2).
그림2. 자산 디지털 트윈의 개념
네트워크 디지털 트윈(Network Digital Twin, NDT)
약업현장을 위한 NDT는 마치 전력망(Grid)처럼 약업산업 생태계의 큰 그림을 조망하고 창출하는역할을 제공할 수 있다. NDT 운영자는 안정적이고 저렴하면서 언제나 이용 가능한 상태로 의료제품과 각종 정보를 공급하는 과제를 진다. 또한 약국 밖에서 일어나는 극심한 환경변화, 노후된 인프라의 개선, 약국을 대체하려는 각종 상품이나 서비스의 도전도 대응해야 한다. 여기에 NDT 운영자는 약국내 혹은 약국간 가상 네트워크 모델을 생성하여 그것이 다양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나아가 향상된 방식으로 운영, 분석, 최적화 되도록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전력 그리드 산업의 NDT 구축 성공사례를 예로 들면, 최대 30%의 비용절감, 최대 20% 계획시간단축, 최대 7% 내부프로세스 비용절감 효과를 제공했다. 또한 관리기업은 현장 및 지원부서의 생산성을 8% 향상시켰고, 개선된 네트워크 자산분석 및 데이터 정확성을 제공하였다.
NDT 운영자의 관리화면에는 지역약국 네트워크의 현재상황, 예측상황, 실시간 현황 보기가 포함되며, 더 나은 결과를 확보하기 위해 타 기관이나 산업의 축적된 데이터까지 제공받거나 약사가 활용하도록 지우너할 수 있다. NDT을 사용하면 관제센터뿐 아니라, 약국현장을 관리하는 이동 업무팀까지 더 스마트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어, 현장 문제와 상관없이 약국업무가 중단되지 않고 원활히 진행될 것이다(그림3).
그림3. 네트워크 디지털 트윈
프로세스 디지털 트윈(Process Digital Twin, PDT)
PDT는 약국이 취급하는 의료제품 제조업체가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수요, 규제법규, 약사의 세대간 지식격차 문제의 해결까지도 지원할 수 있다. PDT는 특정 환경에서 프로세스를 실행하는 최선의 방법을 모델링하는데, 흔히 이를 ‘골든배치‘라고 부른다. 이는 약국의 약사가 제품의 입고-보관-조제-판매-사후관리를 위한 최적의 프로세스를 식별함으로써 품질, 비용, 경영목표를 일관되게 달성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그림4).
약국은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고 조제 및 투약, 복약지도, 건강관리, 고객관리의 변동이나 소요비용을 최소화하려고 개선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제조기업의 90%는 향후 5년간 경영예측기능에 투자하거나 할 계획이고, 75%는 인공지능의 기계학습에 투자 중이지만, PDT는 NDT 및 ADT에 비해 아직은 초기 단계이다. 많은 국내외 대기업이 사용 중인 운영성과관리(Operations Performance Management, OPM) 솔루션을 통해 이미 여러 산업분야는 PDT를 사용 중이다. 이에
우리나라의 약국도 이런 모델을 약국실정에 맞게 설계한 솔류션의 개발과 보급이 요구된다.
어쩌면 미래의 우리나라 약국도 여전히 영세해서라기 보다 효율성을 높게 설계 및 운영하여 여전히 1~2인 약사가 운영하는 모습의 약국으로 남을 것이다. 여기에 약사의 임상적 전문성과 배타성이 유지되고 사회적으로도 존중받기위해서는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사용중인 PDT 소프트웨어의 약국 버전을 속히 개발, 보급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또한 약국들은 이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림4. 프로세스 디지털 트윈
약국용 디지털 트윈의 미래를 위해서
디지털 트윈 소프트웨어는 미래 우리나라의 약국이 각종 규제와, 시장변화, 신기술동향 등 외부요인이 급속히 증가하는 환경에 안전하게 적응하도록 지원해줄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약국들은 약국의 경쟁력을 높여줄 디지털 트윈의 개발을 기대하고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수만 개의 약국이 서로 연계되어 엄청난 데이터를 수집 공유하면서 보다 빠른 판단과 대응이 가능하고 심지어 규모의 경제까지 간편한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서 지체없이 발전해야 한다.
실제로는 디지털 트윈 경험과 디지털 린(Lean) 기술을 활용하여 가능한 빨리 바라는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 센서, 선정한 의료제품이나 약료서비스의 품질이나 배치프로세스 제어를 포함해 대량의 데이터를 활용하기에 용이한 도구와 고급의 인공지능 분석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은 약국이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적정기술을 설계하고 획득하도록 지원해 줄 수 있는 약사 친화적 소프트웨어 공급기업들을 발굴하고 협력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11-10 1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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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9> 약국 및 약무의 혁신: 협동조합을 통한 약업생태계 재구성
우리나라에서 약국의 협동조합을 국지적으로 추진한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활성화되거나 약국의 미래 환경 대비를 위한 모델로 부각되거나 선호되지 못하는 원인을 면밀히 검토해보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어떤 사업모델을 기획할 때 사업의 목표와 핵심역량 수립, 조직구조, 참여자의 자격과 책임과 권한을 규정, 전문인력 확보 및 전문성의 지속적 확대방안, 초기 운전자금 확보 및 중장기 투자유치방안, 비즈니스 생태계 측면의 수익성, 강건성, 혁신성 증대를 고려하여 준비하는게 옳다.
그래서 필자가 지난 번에 현존하는 전국 단위 약사회와 가칭 약업협동조합의 병립 체계를 제안하였을 때, 약협이란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것은 일종의 대기업을 설립하는 것과 유사하므로 가급적 현장경험이 풍부한 전문경영진을 확보하고 동시에 역량을 갖춘 관리조직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된다고 지적했었다.
협동조합의 유래와 골격
협동조합(協同組合, cooperative, coop)은 유사한 목적을 가진 생산자나 소비자가 모여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1920년대 경제적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협동조합운동이 활성화 되었고, 1930년대에는 수십만 조합원을 거느린 수백 개의 협동조합이 있었다. 1940년대는 세계대전에 일제가 물자와 인력 동원을 위해 금지시키면서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투옥되거나 탄압을 당해 활동이 위축되었다. 1950년대는 남한에만 8,700여 개 협동조합이 운영되었다. 이어 1957년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성장하다가, 5.16 혁명 후 협동조합은 암흑기를 지났고,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면서 다시 협동조합의 설립이 쉬워지게 되었다.
협동조합도 기업의 유형이지만 주로 자본이나 기반이 취약한 경제적 약자들이 모여서 결성한다. 주요 목적은 이윤추구보다는 조합원 상호 협동을 통한 편의 증대이므로 일반 사기업과 다른 원칙 가지고 운영된다. 협동조합에 가입해 조합원이 되려면 자본금과 유사한 성격의 출자금을 납부한다. 이는 주식과 달리 천원을 내나 천만원을 납부하나 동일한 의결권을 갖는데, 일반적으로 최소 출자 금액을 정관에 기재하며 조합의 성격이나 규모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1인당 출자 가능 액수의 상한이 있다(협동조합기본법에는 조합원 1인 출자 좌수는 총 좌수의 30%를 초과 못함).
협동조합이 사업한 결과로 이익금이 발생하면, 각 조합원은 사업참여도에 따라 배당 받고 이후에는 출자금에 비례하여 배당을 받는다. 배당금은 다시 출자금에 더할 수도 있지만 만약 협동조합이 사업을 전개했음에도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당연히 배당도 없는데, 이는 이익의 확보도 출자자의 책임영역이다. 농협, 수협, 신협 등 금융업까지 병행하는 협동조합이라 할지라도 조합원들의 출자금은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조합원은 채권자가 아니라 협동조합의 경영결과를 책임지는 주인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탈퇴할 때는 납부했던 출자금을 전액 환불 받을 수 있지만, '탈퇴 조합원의 지분 환급은 탈퇴 신청 연도의 자산부채액에 따라 다음 해에 지급한다'는 협동조합기본법 제26조 제1항에 따라 자산부채에 비례하여 환불 받는다.
주요 선진국들에서 협동조합들이 고용안정의 효과까지 보이자 우리나라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여 협동조합의 설립 조건을 완화하였다. 이전에는 조합설립 시 3억원 이상 출자금과 200명 이상 발기인이 필요했지만 제정된 기본법에는 출자금 제한이 삭제되고 발기인도 5명 이상으로 기준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협종조합원들은 주식회사의 주주처럼 유한책임, 즉 협동조합이 거액의 빚을 져도 변제할 의무는 없이 자신들이 출자한 금액만 상실할 뿐이다.
물론, 협동조합이 기존의 기업형태를 전부 대체할 수 없다. 기업과 협동조합은 그 장단점이 뚜렷하고 또 보완적 성격을 가진다.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사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자본을 유치하기 어렵지만, 기업과 소비자의 사이에서 소비자의 불편사항을 공감하기 쉽고 3차 산업에 특화되어 있거나 기존 기업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도 적합하다. 또한, 협동조합이 그 명칭에 '조합'이 포함된다고 민법상 비영리조직인 ‘사회적 협동조합’과는 달리 엄연히 기업의 성격을 띠는 법인이다.
기업의 형태인 협동조합이 가진 장단점
협동조합은 출자금 액수와 무관하게 조합원 한 명이 한 표의 의결권만 행사하므로 민주적 경영이수월하다. 만약 협동조합의 이사나 대의원의 활동이 조합의 설립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즉각 조합원 협의에 따라 해당 인사의 해임이 가능하다. 그래서 자본에 의한 기업지배, 소수의 경영진에 의한 독단적 운영은 거의 불가능하다. 조합 자체가 아닌 조합원의 이익이 우선시하므로 협동조합은 비록 적자가 발생해도 각 조합원이 이익을 우선 보장받도록 경영하는 것을 중시한다. 더불어 부당해고가 거의 없기에 가장 민주적인 기업 조직이라 불릴 정도로 개인의 의견이 경영에 잘 반영된다.
하지만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투자자라면 협동조합 유형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협동조합은 주식회사가 아니기에 투자금액 대비 회수 금액이 낮기 때문이다. 근래 협동조합의 설립을 위한 조건은 완화되었지만 안정적인 사업성과 수익성을 모두 갖춘 협동조합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은 유럽 제국의 전통적 조합들과 비교하면 대체로 취약한데, 한국이나 일본은 농협조차 관제 협동조합이라고 저평가되고 있다.
주식회사 대비 유한회사의 특징
정부는 지난 2010년대 초반 약국의 법인화에 대하여 유한회사형태를 제안했었다. 약사회는 물론, 필자 역시도 이 방안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엇이든 특장점과 한계점이 있듯이, 미래의 약국모델이나 약업산업의 초기 생태계를 잘 구축하려면 중장기 전략의 수립과 시행을 위한 강력한 추진력도 필요하다. 주식회사 형태인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미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미래의 선도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지금, 약국모델에 대한 공개적 논의와 학문적 접근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상법에 따르면, 회사는 주식회사, 유한회사, 유한책임회사, 합자회사, 합명회사 등 5가지다. 유한회사와 주식회사는 자본금의 모집과 사업 유형 측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우선, ‘유한회사’는 출자자들이 유한책임만 지고 소유와 경영이 적절히 분리된다. 경영은 전문인에게 위임하며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지 않은 인적자원에 기반을 둔 사업이 이런 회사에 적당하다. 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느슨하게 분리된 특징이 있는데, 이사회나 감사도 없으며 1인 단독으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유한회사는 1인 이상 사원으로 구성되어 자신이 출자한 금액의 한도 내에서 간접 유한책임을 진다. 다만, 유한회사는 지분 양도가 주식회사만큼 자유롭지 못하고, 주식을 통한 자본 모집이 쉽지 않다. 결국 유한회사의 장점은 설립과 운영이 비교적 쉽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이다. 한편, 그리고 ‘유한책임회사’는 외형적으로는 회사의 모습을 가지나 내부적으로는 조합의 특징을 가진다.
‘주식회사’는 가장 흔한 유형이며, 자본과 소유가 분리되며 주식을 소유한 주주와 경영을 담당하는 이사로 더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 유한회사 및 주식회사의 가장 큰 차이는 주식의 발행인데, 주식회사는 주식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어 자본을 모집하기 수월하다. 그러므로 이른바 주식투자 행위를 한다는 것은 주주의 입장에서는 한 기업의 주식을 매입, 관리하는 것인데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본금이 조달되는 방식이며, 주주는 주식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도 있고 주식 가격의 상승과 하락은 그 기업의 가치에 따라 정해진다.
주식회사는 기업규모가 커지면 외부인의 감사를 받고 공시 의무가 생기는데 이를 위반하거나 허위로 발표하면 거래가 중단되거나 상장이 폐지되는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주요한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거쳐야하는데 지분을 많이 소유한 대주주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유한회사 혹은 주식회사 같은 기업은 약국을 개설할 수 없다. 법인이 아닌 자연인 중 약사면허소지자만 약국을 개설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약국들의 연합체가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약사법 등 법제 개정을 고려하며 중간단계의 과도기적 모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지역별 시범운영도 필수적이다.
정부 및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존재와 기능을 이해하고 활용하자
국가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설치 목적은 ‘보건산업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민보건 향상’이며, 정체성은 ‘보건산업의 미래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진흥 전문기관’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약국도 지원대상에 해당할 듯 한데, 예전에 지적한 바와 같이, 안타깝게도 약국은 보건산업의 범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보건산업이란, 보건복지부가 업무를 담당하는 식품, 의약품, 화장품,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 5개 분야를 말한다. 그래서 식품산업, 의약품산업(제약산업), 화장품산업, 의료기기산업, 의료서비스산업이 존재할 수 있으며 정부는 이러한 보건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통하여 고부가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의 틀은 (1)보건의료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2)규제의 합리화, (3)전략 제품의 육성, (4)해외시장정보 제공, (5)보건산업 육성을 위한 로드맵 작성 등 5가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5대 보건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이미 2004년 3월부터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보건산업발전협의회’를 관련 단체장 및 산업계대표로 구성하였고, 산하에 5개의 ‘산업별발전협의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각 산업별로 현장을 중심으로 대상과제 선정을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완료했고, 산업별발전협의회를 개최하여 선정된 과제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토론회도 가졌고, 보건복지부와 식약청 등 업무 담당자를 중심으로 개괄적 정책방향에 관한 토론회까지 마쳤다. 이에 기반하여 산업별 진흥대상 과제에 관한 구체적 대책의 수립도 완료되어 지금 시행 중이다.
다시 눈을 돌려서 우리나라 약국이 처한 현실을 보자. 전체 약사의 85% 이상이 밀집된 지역사회는 악업산업의 생태계가 구축하지 못하고 각자도생하며 의약품 소매유통 단위체로 지난 20년가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5개 보건산업 분야는 집중적으로 육성되어 이제는 글로벌 시장경쟁력을 차곡차곡 갖춰가고 있다.
많은 약국의 약사들이 지역사회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 프로젝트에 약사 직능이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고, 또한 국가적 금연프로젝트나 캠페인에서 약사가 소외되었다고, 또한 방문약료방안이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이나 시스템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등 약사의 직능과 직역이 지속적으로 경시 당한다고 주장한다.
학자그룹이나 유관 학회, 그리고 약사회 리더십은 이 같은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고 협력하여 대안을 연구하고 제시하면 좋겠다. 상대적으로 산업약사나 병원약사 직능의 미래는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제약바이오산업과 의료서비스산업 생태계는 전세계적으로 호황기이며 국가의 성장동력산업으로서 육성 받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약국은 지난 20년 간 기본적인 산업생태계조차 구축되지 못했고, 여전히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약사의 직능이나 권리만을 운운하다가는 국가 정책이나 심지어 소비자로부터도 외면당하고, 날로 고도첨단화되는 디지털헬스케어 시대에 어쩌면 약국은 도태하거나 바이패스 당할지도 모른다.
약업산업 생태계가 아직 독립되기 어렵다면 의료서비스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중요성과 가치를 부각시키고 약국은 개인소매업태를 속히 탈피하여 집단화된 대기업적 속성을 갖추면서 규모의 경제 주체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기반으로 국가적 지원과 육성 대상 산업으로 선정되어야만 약사의 직능적 가치는 물론이고, 국민보건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정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10-27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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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8> 약국 및 약무의 혁신: 미래 약업생태계를 운영할 지도력과 전문가 육성
우리나라의 약국과 의약품 유통산업, 금융산업과 ICT산업이 함께 공생할 소위 ‘약업산업’을 발족시켜 산업적 역량을 갖추고 강화하려면 유능한 인재양성과 운영체계, 그리고 리더십이 튼튼해야 한다. 2년 후에는 전문약사면허 발급이 시작되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아직 준비가 부족한 미래의 디지털화 될 약국과 약업산업생태계 안에서 그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어떤 선행적 조건이 갖춰져야 할까?
현재 약사법 개정안 준비과정 실무진으로는 일군의 학자와 약사가 참여 중인데 이들은 사회약학 전공자들이거나, 임상약학 전공분야에서는 외국에서 전문약사면허를 취득하고 활동하다 귀국했거나, 면허만 취득하고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약사로 활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본 제도의 도입과 정착을 우선적으로 책임지고 수행하는 대한약사회 등은 지난 1년간 중간발표 한번 없이 전문약사 내용이 포함된 약사법 개정안 초안까지 이미 마련한 것으로 보여 매우 아쉽고 우려된다.
전문약사의 필요성과 수요분야(목표와 전문영역), 중장기 인력수급 예측결과(장래성, 기여도), 권한과 책임의 한계(역할과 책임범위, 경제성), 면허취득 요건과 수험내역 및 절차와 사후관리(운영 체계와 조직) 등을 지속적이고 공개하면서 반론이나 제안사항을 수렴하여 문제점이나 미비점을 파악한 뒤 해결안을 모색해도 제도의 정착까지 수많은 진통과 실책이 발생할 텐데, 아마도 제도의 발족 시한에 맞춰 법적 요건과 절차만을 우선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약사면허를 부여하기 전 학생의 선발, 교육, 수험준비는 약학대학이 주관하였다. 그러나 기존 약사면허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약사면허는 자격시험의 실시를 국시원에 위임하더라도 전문성 수련 내역과 과정, 도달수준, 수련자의 전문성 규명, 세부내역 규정, 면허자 관리 등 일체의 업무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은 직능단체의 몫이다. 그렇다면 진작에 대약(大藥), 병약(病藥), 산약(産藥) 등 직능단체와 유관학회가 공동으로 통합기획위원회 및 전문기구를 발족했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대약이 중심이 되어 약사직능 개발과 발전을 책임질 전략을 수립하고 전담조직, 인력, 추진체계를 갖추는 것이 적절하다.
약사, 약국, 약업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법제적, 역사적,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약사회 집행부나 소수의 인사들이 본인들의 공명심이나 치적으로 여기거나, 견제와 비판을 우회하여 추진해도 될 단순한 안건이 아니다. 지난 세기에 결정되었던 ‘약사직능분류’, ‘한약분쟁’을 되돌아봐도 성급히 끼운 단추가 지금 어떤 결과를 나타냈는가? 약사는 의료인이 아닌 보건전문인이고, 약국의 업태는 보건업이 아닌 양약소매업이며, 한약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위축되고 한약사 제도가 출범하여 지금과 같은 난맥상을 초래했다. 역대 약사회 집행진과 자문진의 결정이었겠지만, 시대변화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상세전략은 없이 당시의 현실 대응에 급급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얼마전 산업현장 역군들의 개념설계능력의 취약성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우리나라 공학전공 교수들이 제기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약업산업생태계 구축에도 적용하자고 제안한 이후에 필자는 선후배 독자의 질문과 구체적 실현방안 도출을 위한 학술활동을 제안 받았다. 약국의 약료적, 경영적, 산업적 미래상을 설계 및 구현하기 위한 약업계 지도층의 포부와 능력이 신속히 제고되어야 전문화, 디지털화, 뉴 노멀화의 시대에 국민보건향상과 약사직능발전, 약국을 통한 약사의 직업적 성취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 보며
필자는 역사적, 산업적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약국과 약사, 약업의 발전 시대를 3개로 구분한다. 제1기는 해방~산업화의 시기에 너무도 부족했던 1차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양질의 의약품 공급처이자 구매처로서 역할이 부각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순차적으로 20개의 약대가 설립되었고, 제약산업의 기틀이 갖춰지면서 약국도 현대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1993년에 한약분쟁이 시작되었고 한약조제자격 면허제도가 도입되었다. 약사의 독점권과 배타적 권리가 독보적이었던 1945년~1996년까지 50년의 격랑기를 지금 50대 이상의 약사들은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더불어 이 기간은 현대적 약학 연구와 교육이 자리 잡히면서 임상약학과 사회약학이란 개념이 소개되었다.
제2기는 1996년부터 2022년까지의 약 25년이라고 본다. 이 시기는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2000년도 의약분업의 실시와 약대 6년제의 시작, 1987년도부터 물질특허제도를 도입한 뒤 1995년경부터 신약개발을 국가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하면서 제약산업의 기틀은 세계적 수준으로 정비되며 고도화 되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더불어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힘겨운 파도와 싸웠으며, IMF구제금융과 세계금융위기를 연이어 겪으면서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를 피부로 실감하였다. 이 기간에 약대는 노령환자의 증가를 이유로 17개가 증설되어 총 37개가 되었다.
국내외 경제사회적 위기가 이어지는 동안 약사의 기능과 독점권은 축소되고, 한약사 직능이 등장하고, 약사인력의 공급과잉에 따른 약국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되었다. 병원약학은 정부의 병원/의료산업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회원의 증가와 더불어 임상전문화의 길을 착실히 진행하였다. 더불어, 2013~2017년, 2018~2022년 2회에 걸쳐 정부주도의 ‘제약산업육성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어 제약바이오산업의 호황기가 찾아왔고 대한약사회, 병원약사회에 이어 ‘산업약사회’가 발족하였다.
마지막 방점은 전세계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 및 디지털 전환 패러다임이 시작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면서 약업은 다극화, 고도화, 전문화 되고 외부인은 약사의 역할에 대해 존폐의 위기를 언급하는 실정이다.
파괴적 혁신이 일상화 될 향후 12년
제3기를 2023년~2035년까지 12년으로 구분해보는데 약업, 약국, 약사 생태계의 변환 사이클은 앞으로 더욱 짧아지고, 더욱 가속화되고, 더욱 파괴적인 양상일 것이라 예측한다.
12년째 시행했던 기존 2+4학제는 2022년도부터 통6년제로 전환되면 약사는 4년제 출신 약사 및 한약조제자격 여부, 2+4년제 출신 약사, 6년제 출신 약사, 10여개 분야의 전문약사로 다양해진다. 어쩌면 동질성과 일체감이 약해지면서 공동체 의식이나 결집력이 예전과 달라질 것인데, 약사의 수급과 처우가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면서 약사 간 상호이해가 심각해지면서 전문약사들부터 단체를 결성하여 차별화된 처우를 주장할 것이다.
세계는 디지털헬스케어 시대로 진입하면서 정부 및 기업 주도의 원격의료산업이 발전하고 종래의 약국과 약업, 약사 직능의 재정의를 요구하는 외부의 도전은 심화될 것이다. 여전히 이에 대응할 전략과 리더십과 비즈니스모델이 미흡하다면 향후 6년 이내, 혹은 6년제 약사가 청 2만명을 돌파할 시기에는 더욱 강력한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등장할 것이다.
‘제약산업’으로 인식되던 영역이 ‘제약바이오산업’과 ‘디지털헬스케어산업’으로 확연히 재편되어 더욱 차별화되고 융합된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약업계의 주류 세력은 더 이상 제약기업이나 약사, 약국이 아닐 수 도 있다. 2028년부터 매년 2천명의 약사가 배출된다. 3년제 법전원체제로 학제 변경 후 10배로 증가한 변호사시험 합격생이 배출되는 법률시장을 보면, 약업계의 비상한 대비가 필요하다. 신규 약사는 취업과 전문약사면허 취득 경로 또는 대학원 진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면서 대학원 진학률은 절대적으로 급감할 것이다.
6년의 약대과정, 3년 이상의 전문약사면허 취득과정, 4~5년의 대학원 과정 등 10여년의 기간과 2.5배나 상승한 교육비를 투자할 만한 매력적이고 보람되고 자랑스러운 직업을 만들 책임이 악업계 리더십 그룹에 주어졌다. 그래서 내년에 출범할 약사회 리더십은 4~5년 안에 지난 70년과 비교할 때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와 혁신을 설계하고 추진해야 할,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약업은 ‘가치산업’을 넘어 ‘확장가치산업’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약업생태계를 역동적이고 발전가능성이 넘치도록 육성할 구조를 설계하고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지도력, 거센 반발과 어려움이 있어도 설득하고 포용하는 소통의 지도력, 미래 약사직능가치를 향상시킬 복안을 갖춘 지도력, 세상의 변화 방향과 속도를 감지한 지도력, 인재를 등용한 뒤 합리적, 능률적으로 조직을 구축하고 운용하는 지도력, 구습이나 관행을 벗어나 세계적 변화의 조류를 이해하고 국제적 감각과 역량을 지닌 지도력이 약업계에 절실히 필요하다.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색다른 시야와 인내심을 가져야
필자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큰 의욕을 가지고 회사에 입사했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한 상황을 많이 겪었다. 그때 모시던 CEO께서 소중한 조언을 하셨는데, 당신도 지난 세월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사항을 써서 자신의 책상서랍 안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인식과 해결방안이 15년간 축적되었고 이제 CEO의 자리에서 추진하려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으니 곁에서 도와달라고 하셨다.
장기판에서 훈수를 두면 왠지 문제가 잘 보이고 해결의 실마리도 잘 떠오른다. 좋은 지도자는 참모나 조력자를 잘 활용해야 한다. 권한을 위임하고 실수가 생기면 대신 책임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크고 중요한 조직의 지도자일수록 이런 여유와 기회를 선용하면 좋겠다.
위기의 때에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내가 권한을 위임해줄 때 열심과 능력을 보여줄 조력자가 몇 명 있는지부터 먼저 헤아려보자. 대부분 내 사람이라 하면 나에게 표를 던져 줄 사람인 경우가 많지만, 이에 앞서 나와 함께 길을 갈 역량 있는 사람부터 육성하자. 내가 발굴하고 육성한 약업계의 인재가 없다면 아직은 큰 일을 도모하면 안된다. 내가 못보는 것을 보는 인재, 나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충언할 인재, 초심이 흔들리지 않고 사리사욕이 없는 인재, 지혜로운 마음과 실행력을 가진 인재 등이 있는 사람이 진짜 지도자이다.
이제 약사공동체 및 약업환경 변화의 제3기로 접어들며 더 큰 변화가 더 빨리 더 자주 찾아올 것 같다. 지도력 곧 리더십이란, 주변에 밥 잘 사주고, 잘 놀아주며, 한자리씩 나눠주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을 발굴하고 육성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신상필벌하며, 결과를 책임지는 경영예술이다.
약사들은 1천명 이상, 1만명 이상이 함께 일하는 대형 조직에 근무해본 경험이 대체로 없기에 인사역량, 조직역량, 소통역량이 다소 부족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어떤 조직의 인원수가 2배로 늘면 조직의 역량은 4배쯤 커진다. 하지만 조직통솔에 필요한 소통은 8배 이상 늘어난다. 좋은 지도력이란 진정한 소통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인내와 책임을 동반한다.
너무도 변화무쌍한 약업계와 불투명한 약사직능의 미래를 책임질 리더들이 많이 등용되어 다양성의 시대, 전문화의 시대, 융복합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가 일반화된 시대를 지혜롭고 아름답게 헤쳐나가면 좋겠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10-12 1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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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7> 약국 및 약무의 혁신: 약국의 미래를 위한 창의적 도전
우리나라 약국이 선택할 수 있는 혁신의 종류를 미시적, 거시적인 것으로 나눠본다면, 미시적 혁신이란 전국에 산재한 23,000여개 약국이 각자도생 할 구체적 방안을 뜻하겠지만 거시적 혁신은 아마도 공동운명체로서 약국의 미래상을 결정하는 고뇌가 동반되는 중요한 선택일 것이다.
지난 번에 급속한 성장을 이룬 한국경제가 미래의 근본적인 도약을 위한 체질개선을 위하여 개념설계능력에 대한 개념을 소개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약국의 미래상에 대한 지도층의 능력이 제고되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공학자들이 주장한 개념설계라는 개념이 왜 약업계의 지도층에게도 요구되는 것일까?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 약업계에는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현재 약업계는 더 이상 뛰어난 현안 관리자(manager)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설계 역량을 지닌 창의적 지도자(leader)이자 길잡이(path finder)가 요구된다.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의 길을 찾는 지도자
불투명한 우리나라 약국의 미래를 발전과 번영의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약사와 약국이 가진 경쟁력과 기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첫째, 전국에 걸쳐 형성된 약사회의 행정 체계와 각 약국이 지닌 축적된 역량을 십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약사들이 가진 발전과 혁신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미 잘 형성된 정부, 정당, 시민단체, 약학대학 등과 연대한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학연, 지연, 정치사회적 성향을 초월한 연대감과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발적 동질감을 위기극복의 원동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창의적 미래 개념을 설계하고 추진할 조직력과 리더십, 경영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약국은 가치기반 산업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이제 약업계는 약국과 약사의 기능이나 역량을 냉정하게 분리해서 고찰하고 접근할 전략이 필요하다. 약업계는 전통적으로 약국과 약사를 일체화시키는 것을 당연시 해왔으나, 국민과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점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소비자의 권익을 강조했으나, 사실은 약사의 배타적 권리 수호와 약국의 수익성을 우선시 하지는 않았는지 반추해보아야 한다.
전국에 산재한 24시간 편의점은 시공간적 접근성이 소비자에게 가장 큰 편의성을 제공한다. 약국도 이와 유사하다. 즉, 누가 개별 편의점의 점주이거나 시간제로 근무하는지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과 가격측면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어떤 약국이나 약사인 지가 고객에게 얼마나 차별성과 만족을 제공하고 있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현재 약국은 ‘시간’과 ‘장소’라는 결정 변수를 놓고 강도높은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간의 변수란 편의점과 안전상비약의 조합으로서 유관 유통산업의 침투에 이미 침해당했고, 장소의 변수란 중대형 의료기관 인근에 위치한 문전약국과 그렇지 않은 약국으로 구분되어 상호 경쟁이 심화되어 있다.
대형병원의 경우는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편의성이나 가치가 다양하다. 병원의 위치, 병상 수, 최첨단 진단기기 보유율, 대기시간, 원스톱서비스 수준, 친절도, 오진율, 난치성 질환자 치료율, 수퍼스타급 전문의사의 보유율, 심지어 주차장 이용의 편의성 조차도 모두 차별화 요소이다. 더구나 병원은 1, 2, 3차 의료기관으로 구분되므로 환자 관점에서는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 유통채널이 다층화 되어 있어 병원 상호간 경쟁환경이 약국과는 다르다. 그래서 시대적 명제인 ‘디지털 전환’이나 ‘전문화’의 요구도, 심도, 속도가 약국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이 같은 사실은 2023년이면 전대미문의 ‘전문약사제도’의 전면적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향후 약사회를 통해 리더십을 발휘할 인사들이 심각하게 연구하고 해법을 강구해야 할 분야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약업계 리더는 이러한 약국과 약사가 직면한 환경적,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면서 또한 전문화되고 다층화, 다변화 될 가능성에 적절한 해법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약국은 확장가치산업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선진국은 일반적으로 자국 산업의 속성을 ‘기반가치산업’에서 생산한 가치를 더욱 높이는 ‘확장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한다. 간단한 예로써, 기반가치산업에서 생산한 재화(제품)나 용역(서비스)의 가치가 1만원이라면 외국시장으로 수출하여 2만원의 가치를 획득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어떤 재화나 용역을 시∙공간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기반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도록 산업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가치확장산업의 속성을 가지려면 지원산업군이 함께 발전되어야 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금융서비스나 법률서비스 영역 등이다. 의약품이란 정보라는 꼬리표가 붙는 아주 특별한 유형의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그래서 약사라는 전문직이 필요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의약분업 이후에 이를 잘 살리지 못하여 약사 스스로가 가장 원초적으로 전문약의 처방조제와 복약지도 및 의료제품의 판매행위에 스스로 집중해버리고 역할과 직능이 하향평준화의 늪에 빠져버렸다.
의약품은 제품의 관점에서 보면 생산자 혹은 판매자를 거쳐 최종사용자까지 전달되는 과정이 복합적이고 다단계적 특성을 가진다. 의약품에는 ‘정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재화와 용역(약사의 서비스)이 융합된 속성이 있다는 뜻이다. 재화의 측면에서 의약품은 강제적 인 정찰제 품목인데, 이는 국민의 세금으로 구성된 건강보험 급여대상 품목이기 때문이다. 한편, 약사 용역의 측면에서는 조제료와 복약지도료가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약국이 확장가치산업으로 성장하려면 어느 분야부터 눈여겨보아야 할까? 필자는 의약품의 유통분야와 약국 업무의 가치사슬의 연장선에서 시작함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평소에 약사전문성의 가치는 의약품의 배송에 있지 않으므로 약국 밖에서 이뤄지는 의약품 배송사업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자고 주장하곤 한다. 대신, 아예 더 나아가 약국에서 조제된 의약품의 택배사업을 약국산업의 유관 사업분야로 포함시켜 더욱 확장시키자고 제안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일단 동일지역 내 소재한 약국 간 신사적 협정과 상도덕의 준수가 강력히 요구된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사항을 통제 및 중재할 수 있는 주체는 지역약사회가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난 호에서 지역약사회가 가칭 ‘약업협동조합’을 결성하고 그 조합은 유한회사의 성격을 가지되 혹시나 조합장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존 지역약사회와 악업협동조합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준비하여 출범시킬 필요성이 커진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기존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과 그 활동의 장단점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기에 굳이 협동조합이 아닌, 우선적으로 ‘특수목적법인(Special Purpose Company, SPC) 형태로 일부 특정지역을 선정하여 시범사업을 먼저 전개한 뒤에 목표로 정한 완전한 기능을 가진 협동조합으로 완성해 가는 점진적 방식이 적절하다고 사료된다(그림1).
그림1. 특수목적법인을 활용한 약국연합체 구축과 우리나라 농협의 조직구조
일개 신생 스타트업(Startup)이 기존 약업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직간접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끼쳐서 기존의 질서를 훼손시키고 있으니 약사회는 일단 일개 기업에 의한 의약품의 배송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데 집중했으나, 이는 향후에 만일 지역 혹은 전국적으로 약국연합체가 의약품 배송사업으로 진출하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자승자박이 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히 검토하면 좋겠다.
의약품은 최종 소비자가 사용하기까지 모든 단계에 고도의 안전성이 지속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특성이 있고 약사회는 이를 지속적으로 정부와 국민에게 알려왔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소비자나 그 보호자가 수령하여 운반하던 일을 약업영역으로 흡수하는 것은 일견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더불어 향후에는 여하한 형태의 의약품에 대한 소비자 지향 운송 체계를 약사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전문영역으로 확장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는 약사의 영역도 아니고 약국의 영역도 아니기에 기업형태를 지닌 약국연합체를 우선 결성함으로써 사업의 규모와 짜임새를 갖추어 진출하는 것이야말로 약업산업을 ‘확장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는 예가 아닐까?
이때가 되면 필연적으로 이 같은 제반 활동을 통제, 관리하는 전산프로그램 및 다수의 회원으로가입한 다수의 약국연합체가 탄생할 터인데 이것이 이른바 ‘플랫폼 기업’의 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기존의 기업 행태와 달라야 하는 점은 소수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거나 과점하지 못하도록 한 지역 안에서 발생하는 처방전 전달, 조제, 배송의 총량에 대하여 배분비율을 정하여 통제와 자율경쟁을 병행하고, 타 지역으로 유출이나 유입 분에 대하여 일단 처방전이 발생된 해당 지역적 배타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구조설계가 필요하다. 이러면 한편으로 제약기업, 의약품 유통기업, 병의원연합체나 지역의사회와 대등한 수준의 협상이나 협력도 유리해질 것이다.
그림2. 플랫폼 기업 모델 (출처: 구글 이미지)
약국연합체는 모범적인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 플랫폼 기업이 지나친 사업영역의 확장으로 인해 관계 당국의 제제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플랫폼 기업의 폐단으로 규정짓고 무조건 배타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는 것보다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고 서서히 정착시키는 것이 수십 배는 어려운 과정이기 대문이다.
전국의 약국과 종사자는 네트워크화된 조직이다. 여기에 기업형조직과 경영기법, 그리고 리더십까지 더해지면 약업생태계를 새롭게 할 훌륭한 플랫폼이 구축되지 않을까?(그림2). 약국의 산업화, 약사직능의 전문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건강사회를 구현하면서 확장가치산업적 속성까지 보유하는 약국연합체를 설계하고 운영할 지도력의 등장과 약업계 구성원들의 협력을 기대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9-24 0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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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6> 약국 및 약무의 혁신: 약국의 미래를 위한 개념설계 역량
지난 호에서 개미가 지닌 개별성 및 집단적 속성의 장점들을 현행 약국비즈니스에 빗대어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이는 약국이 마주한 규모 확장의 한계, 특화된 전문성 증대의 한계, 약료 및 경영 서비스 확장의 한계, 외부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수준과 속도의 한계를 고려할 때 진지한 고민과 적극적인 검토를 당부하고자 함이었다.
약 6년 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26명의 의견을 엮은 ‘축적의 시간’이란 책이 발간되어 세간에 큰 울림을 주었다. 여기에 많이 쓰인 어휘가 ‘개념설계능력(conceptual design capability)’ 이다. 책의 저자들은 이를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이 역량은 고부가가치 영역으로서 한 산업의 패러다임을 설정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도약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 역량이라 강조하였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역사를 이끌어 온 초대형 기업들에서 연구개발, 전략기획, 사업개발 분야에 종사했던 관점에서 볼 때 앞서 소개한 멘토들이 언급했던 내용에 구구절절이 공감한다.
역사로부터 혁신의 아이디어를 얻자
의학의 역사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사와 약사의 구분이 없었다. 아마도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지면서 필요성과 합리성에 의해 의약의 전문직이 분리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지금 우리나라의 약국은 위기를 맞고있다. 약사의 권리 및 활동 영역과, 약국의 비즈니스 영역은 일심동체이자 불가분의 관계이다. 만약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동네 약국이 사라져버린다면 약사 직능의 존재감은 얼마나 남게 될까?
의사가 의료계의 핵심직능으로 존속하게 된 이유가 많이 거론되는데, 전통적인 도제식 의사양성체계에 의예과 과정인 2년 간의 기초과학교육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의술(Art of Healing)에서 의과학(Medical Science)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촉진되어 전통과 경험을 중시하던 기존의 의술을 급속히 발전하는 최신 과학기술이 적용된 진단 및 검사장비를 채용하였고, 연구와 시험결과에 바탕을 둔 이른바 근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더불어, 개별 의사가 운영하는 의원(clinic)에까지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중증 환자를 의료진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왕진의료체제로부터 이른바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종합병원(General Hospital)체계를 발명하였다. 이렇듯 의사 양성과정에 기초과학 교육을 강화하고 전문화된 의료인이 한 장소에 모여 있기에 다양한 중증환자의 입원과 협진 및 집중치료에 용이한 종합병원이란 발명품을 만들어 발전시킨 것도 미국의 업적이다.
지난 2천여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서양의학은 그동안 유럽 제국이 발전을 주도하였는데, 19~20세기 변환기와 연이어 발생한 세계대전들을 지나면서 선진의학체계는 미국이 선도하는 양상으로 변모하였다. 미국은 후발 산업국가로서 선진기술의 적극적인 수용과 대량생산을 중시했는데, 플래밍이 발견한 페니실린도 원개발국인 영국이 아닌 미국의 제약회사를 통하여 대량생산되어 전세계로 공급된 사례가 이를 잘 뒷받침한다.
더 나아가 미국은 1950년대부터 ‘임상약학(clinical pharmacy)’이란 개념이 태동되었고, 1960년대에는 캘리포니아 소재 대학들부터 임상약학 교육 및 실무체계가 자리잡혔다. 이윽고 1970년대에 ‘전문약사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것도 미국이었고,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일환으로 의료, 약료가 시행되던 것을 프랜차이즈형 ‘체인약국’ 비즈니스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도 미국이다.
이처럼 국민, 곧 고객의 편의성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 체계를 창출할 수 있는 ‘개념설계 역량’을 시의적절하게 발전시키고 활용하였기에, 과학적인 의학교육체계, 고효율의 첨단의료를 제공하는 종합병원체계, 임상약학 교육체계, 전문약사제도, 체인약국체계, 인구고령화에 대응할 MTM 같은 보건의료체계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면 이는 필자의 지나친 억측일까?
약국 비즈니스의 개념설계를 다시 하자
필자는 현존하는 전국의 단위 약사회들이 회원의 권익보호와 직능발전을 위한 회무기능에서 한 발짝 진보하여 회원을 경제연합체로 묶어 발전을 도모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농업협동조합(농협), 축산업협동조합(축협), 수산업협동조합(수협)과 유사하게 가칭 ‘약업협동조합(약협)’을 출범시키자는 주장이다. 농업, 축산업, 수산업에 종사하는 개별 가계가 경제주체로 자립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역단위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해당 업종 가구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애로사항 해소는 물론, 정부 및 소비자를 대상으로 강력한 협상력을 보유한다. 구체적으로는 관련 업종의 차량, 선박, 기계류도 대여(리스)하고, 금융은 물론, 관련 분야의 지식이나 정보의 공유, 생산물의 수집, 저장, 유통 및 가격 안정화에까지 관여하여 조합원의 생활여건 향상은 물론, 외국기업이나 수입업체의 파상공세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시장보호기능까지 보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농축수산업 종사자가 모두 협동조합의 지배하에 있지는 않다. 조합원으로서 누리는 혜택도 매우 크지만 가입 및 탈퇴도 가능하다. 이 밖에 해당 산업생태계에는 많은 유관 기업들이 있다. 조합과 연계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회원 각자가 본인의 편의를 위하여 별도의 온라인 쇼핑몰을 설립, 운영하는 등 적절히 ICT를 활용 할 수도 있다.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의 환경변화나 외부요인이 발생하면 전국의 지역단위 조합원은 서로 연대하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전국의 250개 분회와 16개 지부가 연대한다면 23,000여개 약국은 물론, 의약품과 약료서비스를 위한 연구개발, 생산유통, 기타 서비스에 종사하는 8만명 규모의 약사 조합원을 보유하는 거대한 공동집단체로 변모할 수 있다. 지금의 약사회와 다를 게 무엇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경제공동체는 정치사회적 이념공동체와 상이한 수준의 결집력과 역량을 보유할 수 있다. 거의 전국적 규모의 대기업과 유사한 역량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농축산부 산하에 농촌진흥청이 존재하며 새로운 품종개발, 농업기술, 농지활용 연구 등이 진행되고 대학에 농학과, 농경제학과, 농생물학과 등이 설치되어 다양한 연구도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건복지부나 산하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가칭 ‘약업산업 진흥부서’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여기를 중심으로 국가차원의 정책연구와 약업산업 발전을 견인할 국책사업과 이에 대한 자금지원도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존의 병원을 의료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연구중심병원 구축사업’, ‘의료관광 진흥사업’, ‘의료빅데이터 구축사업’ 등을 실행했던 것처럼 약국도 이와 유사한 진흥사업과 정책지원이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자는 것이다. 왜 스타트업 기업이 약 배송 앱(App.)을 만들어 기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저항만 할 뿐 약업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여기서 주관하여 전국의 약배송사업을 오히려 주관하면서 약업의 디지털 전환을 실천하여 전국민의 편의성까지 향상시키도록 약사들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은 아닐까?
개미의 사회성과 집단생존방식을 벤치마킹하여 약사의 생존방식도 재정의하자
약업현장의 목소리에 따르면, 약업현장은 이제 대외적 도전 못지않게 내부의 과당경쟁과 비윤리적 행위와 상도덕의 파괴 정도가 심각하다. 더구나 자정능력까지 부족하여 약국중심의 약업계는 어느덧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있는 듯 보인다.
의약학 직능인들과 직업 공무원은 타 직군에 비하여 소위 ‘모범생’ 성향이 농후하다. 이들은 대체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한다. 전통 및 관습을 지향하고 안정을 추구하기에 법령이나 제도의 틀 안에 고착된 사고체계가 강하며, 책임지기를 꺼려하고, 중요한 결정을 타인에게 위임하고, 리더십 그룹의 지시나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예 판도까지 바꾸어 버리는 이른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잘 시도하지 못한다.
이와 유사하게, 농업 종사자들도 수십년 간 전래된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밭고랑이나 이랑의 넓이와 방향까지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대로 활용한다. 마찬가지로 의사들은 자기가 수련 받거나 공식화된 방식대로 수술을 집도한다.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수술법이라도 의료경제성평가가 완료되어 의료보험수가가 책정되지 않으면 한 의사가 자기 맘대로 새로운 방식으로 처치하면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의약학 분야에서 ‘대가’라는 소리를 듣자면 수십년 수련받고 숙련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우리는 아직 개미 무리의 리더십 체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철새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때 누가 비행 인도자의 위치에 설지, 비행에 지치면 자리를 바꾸어 여유 있는 추종 비행을 하거나, 지쳐서 낙오하는 개체는 어떻게 무리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뒤따라오도록 함께 동반비행하는 방식도 보유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망망대해도 횡단하고 9천미터에 육박하는 높이의 히말라야 산맥도 횡단할 수 있다. 코끼리 무리는 가장 나이 들고 현명한 암컷, 곧 선임자 할머니 코끼리가 이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의료계나 약업계도 현명하고 미래지향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
약업의 혁신은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유럽의 서양의학 의사가 현대 과학기술을 과감히 현업에 채용하여 의업의 과학화와 현대화를 이룬 반면, 혁신의 타이밍을 놓친 동양의 한의학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반면교사를 삼으면 좋겠다. 약국이 사라져버린 약업은 당장 상상조차 안된다. 약사의 직능이 보존되고 더욱 발전하려면 일단 약국의 기능을 보존하고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기업형 약국이 싫으면 유사하게라도 지속 가능한 대체모델을 연구하고 시험해보아야 한다. 내가 잘 모르면 타인의 지식이나 경험이나 기술을 요청해야 한다. 이를 경영학과 산업계에서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라 부른다(그림1).
그림1. 개방형 혁신의 개념도(출처: 구글이미지)
올 해는 연말에 전국의 260여개 각종 약사회 회장을 선출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개방형 혁신, 파괴적 혁신, 약업의 고도산업화, 약사직능의 전문화, 약사 권익의 보호와 더불어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건강사회를 구현할 개념설계 역량과 상세전략, 실천력을 보유한 지도자들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9-13 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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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5> 약국 및 약무의 혁신: 약체가 군집을 이뤄 강자처럼 사는 법
지난 번에는 급격한 환경변화를 극복하는데 기업이 가진 속성과 특징, 장점을 열거하였다. 약국은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보건의료, 또는 제약바이오, 헬스케어, 소비자 직렬 유통서비스 산업 생태계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경제주체로는 매우 나약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살아남아서 더욱 존재감을 가지고 발전하려면 지금까지의 생존방식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한 개체만 보면 개미는 매우 나약한 곤충처럼 보인다. 하지만 때론 개미보다 거대한 생명체가 개미에게 심지어 공포심을 느끼거나 경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것은 이들의 가진 군집의 속성이다. 생태학자의 말처럼 필자는 평소에 이를 ‘집단적 사회성을 모방한 생존방식’이라 부르곤 한다. 마찬가지로 약사라는 전문직능인과 약국이란 경제주체는 밀접하게 연계된 채 주로 약사회를 통하여 집단적 사회성을 구축하여 생존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번부터는 상대적 약체인 약국이 미래환경에서 강자처럼 살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고찰해 보자.
집단적 사회성이 약사와 약국을 진화시켰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이제까지 집단적 사회성이 인류를 발전시켜왔는데, 특히 가까운 혈연끼리 상부상조했던 ‘친족선택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얻은 교훈대로 생존경쟁에서는 협동하는 집단이 살아남았기에 타인 혹은 타 주체와의 협력과 공감을 강조하는 '집단선택론'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필자는 예전에 대한약사회에서 임원직을 수행하셨던 선배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약사회는 잘 조직된 행정체계를 보유했는데, 대약 집행부나 국가기관이 전국의 개별 약국에 긴급한 중요사항을 공지할 필요성이 있을 때, 전국의 약 260개 지부 및 분회 사무국에 팩스로 공문을 발송하는데 불과 40분 가량밖에 소요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기준으로 대약에서 지부로 지부에서 분회까지 확산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뜻하는 것이고, 지금은 이메일과 문자전송, 약사 인트라넷 등을 사용할 테니 전국의 23,000 여개 개별 약국 및 근무 약사들에게 메시지를 전파하는 속도는 이보다 훨씬 단축되었을 것이다. 또한 필자가 식약처, 건보공단, 심평원이 개최하는 회의에 참석해보면, 참석한 여타 보건의료직능 인사들로부터 특정 사안에 대하여 약사직능의 대응 속도와 공통된 목소리 등 단결력과 실행력을 부러워하는 언사를 자주 접한다.
위의 사례만 보더라도 약사의 집단적 사회성은 이제까지 약업환경을 지배해왔고 또 약사는 여기에 익숙하다. 한데, 이는 약사의 직능 보호와 발전 측면의 행정적 체계이고, 개별 약국이 생존, 번영하는데 직접적 파급효과나 기능은 약하다.
개미의 사회성과 집단생존방식을 모방하자
개미 한 마리는 나약하고 미미한 생명체처럼 보이지만 집단을 이루어 약점을 극복한다. 개미는 서로 약속한 단순한 행동을 준수하며 거시적으로는 창의적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개미는 자신과 다른 개체가 뿌린 페로몬을 그대로 찾아가는 단순한 규칙을 지킴으로 최단거리로 이동(페르마의 물리원칙 충족)할 수 있다. 또한 서로 몸을 이어서 포개는 방식으로 떨어진 공간을 스스로 다리를 만들어 최단 거리와 시간을 확보하며, 흐르는 물을 만나거나 홍수를 만나면 서로 뭉쳐 큰 덩어리를 이루어 뗏목과 비슷한 구조를 만들어 장애물을 극복한다(그림1). 무엇보다 항상 잉여노동력을 배치하고 활용하여 단순하지만 집단이 생존할 수 있는 최상의 해결방안을 선택한다.
그림1. 개미의 집단적 사회성과 생존방식 (출처: 구글이미지)
이렇듯 다수의 단순한 요소가 복잡한 전체의 특성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을 창발(emergence)이라고 부른다. 이는 구성요소들은 비교적 단순한 규칙과 행동을 따르지만 상호작용을 통해서 복잡한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뜻한다. 생물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전 지구상에 살고있는 개미를 다 모으면 그 무게가 전 인류의 몸무게를 합쳐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니, 개미와 인간은 혹독한 자연생태계에서 잘 적응한 동물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미의 집단대응력은 경영학적 시각으로 보면, 투입되는 노동력을 상대적으로 절감함으로써 비용-편익이 가장 적합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첫째, 현재까지 연구결과에 의하면, 개미집단은 중앙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존재 없이 탈중앙화에 따라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decentralized complex system). 대신 중앙의 지시가 없이 전체 집단이 효율적으로 조직되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속성도 가지고 있다.
둘째, 개미 집단의 놀라운 행동의 근원은 각 개체가 수행하는 극도로 ‘단순화된 작업(simple work)의 유기적 연결’이다. 20세기 초반의 놀라운 자동화 혁명에 바탕을 둔 산업사회의 출현도 복잡한 작업을 단순한 여러 개의 작업 요소로 나누어 한 사슬처럼 연결한 분업형 공장작업방식에 근간을 두었다.
이 같은 작업의 효율성 이외에 개미 집단은 ‘공동 과업 실패에 대한 복원성’도 가지는데, 공동으로 먹이를 구하여 개미굴로 운반하는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먹이 운반 시 개미는 3개의 길을 만들어 이동하는데, 가운데 길은 개미굴로 먹이를 이동시키는 통로이며, 그 양 옆의 두 길은 물어오려고 이동하는 통로라고 한다. 만약 먹이를 물고 굴로 돌아오는 개미가 먹이를 놓치는 실수를 하더라도 양 옆길로 통과하는 개미들에 의해 먹이의 유실이 방지되는 것이다.
이를 착안한 로봇공학자들도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복잡한 구조의 로봇개체를 설계, 제작하기 보다는 단순한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똑똑한(smart) 작은 개체(particle)라 하여 ‘스마티클(smarticle)’ 로봇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군집형 행동을 하는 개체로봇인 것이다.
셋째, 개미 집단을 관찰하면 각 개체 단위의 개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노력하는데 크게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 만약 각 개미 개체가 단순한 알고리즘만을 가지고 환경변화에 대처가 가능하다면, 불필요하게 중복소비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서 더 유익하고 가치 있는 곳에 활용할 수 있다.
개미 집단은 외부에서 가져오는 먹이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래서 지금 굴에 먹이를 저장한 개미 노동력이 먼 곳으로 먹이를 가지러 다시 출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때가 있다. 이때, 각 개미는 머리에 난 촉수로 다른 개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데, 먹이를 물고 굴로 되돌아오는 중앙 통로로 이동하는 개미의 수가 많으면 계속 먹이를 가지러 출발하고, 그 수가 줄어들면 총 이동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헛걸음을 감소시켜 총 노동력을 조절하는 적응력(adaptability)를 보유하고 있다.
이 원리는 컴퓨터 통신공학에서도 활용하는데 데이터를 송수신하기에 충분한 대역폭이 확보될 때만 통신을 시작하도록 짜인 알고리즘과 유사하다.
자동차 산업도 집단생존방식이 통했다
올해 초 피아트크라이슬러(이태리+미국)와 푸조시트로엥(프랑스)이 합병하며 만든 자동차 기업 ‘스텔란티스’는 ‘약체들의 집합체’라고 불렸다. 합병으로 도요타, 폴크스바겐, 르노닛산, GM, 현대-기아차에 이어 세계 6위의 자동차 기업이 되었으나 양사 모두 내연기관 기술만 보유하여 미래의 경쟁력이 부족하고 마세라티, 지프 등 개별 브랜드는 14개나 되지만 판매량은 급감하는 추세였기에 합병회사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만에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여기에 3가지 측면의 시너지 효과가 손꼽히는데, 첫째, 합병으로 제품군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고객수요에 대응할 수 있었다. 둘째, 연구·개발 분야 효율성이 크게 높아졌다. 셋째, 각국에 본사를 유지한 채 온라인 화상으로 회의하고, 지원부서는 통합운영하여 불필요한 비용지출을 최소화했다. 그리하여 원가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 낮아졌고, 하나의 신제품 차를 개발하는데 3천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차량골격을 여러 차종이 공유함으로써 부품구매비는 낮아지고 판매대수가 늘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였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위기요소는 여전하다. 최대시장인 중국에서 테슬라나 GM에 뒤처져 성장이 정체되어 있고, 전기차/수소차 관련 기술력은 낮은 편이다.
약국과 약사도 개미나 합병기업의 생존방식을 활용하자
앞에서 개미와 자동차 기업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약국과 약사사회를 빗대어 보면 일부는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숨가쁜 경영환경 변화와 냉혹하고 경쟁적인 생태계에서 약국이 개미의 생활방식을 일부 차용하면 어떨까?
필자는 이미 1년여 전에 각 지역의 약사회 분회를 단위협동조합 같은 유사 기업형태로 운영하는방안을 이 연재 글을 통해 제시했었다. 그러니까 전국을 250여개의 약국기업체 성격의 집단으로 재편성하는 것이다. 당연히 분회장은 기존의 중앙 약사회 산하의 (1)’회무중심 공적조직’의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분회가 조직된 권역에 소재하는 수백 여개 약국의 (2)’경제적 연합체’의 책임자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현재 모습처럼 개별 약국이나 약사는 위 (1)번에는 의무적으로 가입하되, 이 시험의 성공여부를 알기까지 당분간 (2)번은 선택사항으로 하면 어떨까?
당연히 분회 단위는 수백명의 약국 대표약사 조합원으로 구성된 것이므로, 조합회사의 대표를 겸직하는 분회장은 상당한 수준의 경영 및 조직운영 역량이 필요하다. 하지만 개별약국의 경영과 대기업 규모의 경영은 차원이 다르므로 필자는 각 단위 분회 마다 ‘약국조합운영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정치적, 사회적, 직능공동체로서의 약사회 분회는 그대로 운영하되, 분회 부설 약국운영기업체는 외부의 전문경영자나 탁월한 경영역량을 가진 자가 분회장과 더불어 공동대표나 부대표를 맡고, 분회장과 분회 임원은 운영회사의 이사와 감사로 보임하여 관리감독하도록 초기부터 운영회사의 정관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체의 유형이나 업무 내역은 관련 연구를 더 진행하면서 조율해야 하겠지만, 개별 약국의 약사는 조합구성원이 되거나 혹은 주주가 되는 구조이고, 기여한 만큼 배당이나 혜택을 받는 구조로 설계하는 방식이 좋을 듯하다. 현재 전국의 개별 약국들은 굳이 대기업이나 자본이 중심이 된 법인약국의 등장을 동의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개별 약국 약사의 소유 및 경영권(governance)은 유지한 채, 수백 개 약국이 때로는 각 개미처럼, 때로는 개미 집단과 유사한 기업 속성을 발휘하여 중복되는 관리비용, 구매/조달/재고 비용은 낮추고 집단적 협상력과 환경변화 대응력은 향상시키며 약사의 본질적 기능을 가다듬고 향상시킬 기회로 선용하는 방식으로 작금의 위기 요인에 대응하면 좋을 듯 하다.
물론, 현행법상 불가한 부분도 있고, 담합이나 불공정금지조항에 저촉될 소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형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체계를 유지한 채 21세기형 변화의 높은 파고를 대응하기에 역부족인 상황이 어쩌면 더 악화될 듯 하다. 다만, 약국의 생존과 약사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과 소비자 및 국가의 이익간의 충돌이 심화될 경우를 대비하여 대안 모델과 시나리오 설정해 놓고 그 가능성과, 타당성, 효율성을 타진해보는 것이 보다 유연하고 설득력을 가진 대응방식은 아닐까 싶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8-26 1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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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4> 약국 및 약무의 혁신: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의 약국
약국은 아직까지도 독립된 산업군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하나의 경제활동 분야가 국가 산업군 내에서 일원으로 인정받아 성장하려면 산업으로서의 범위와 핵심요소를 갖춰야 한다. 약국이 중심주체로 활동하는 산업을 ‘약업산업’이라 불러본다면, 약국은 우선 통상적인 ‘기업’의 경영 목적과 속성을 갖추는게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대적 관점에서 하나의 산업이란 각종 공통 속성을 가진 유관 기업 사이의 네트워크망을 일컫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약국도 현존 네트워크망에서 생존하면서 더욱 발전하려면 당장 대기업 형태는 아니라 해도 기본적으로 기업적 성격을 이해하고 모방하는 것이 필요한데, 왜냐하면 약국은 대다수 약사가 활동하는 약업의 본원적 사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가 갑자기 약국을 대기업화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약국모델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 거시적으로 국가의 ‘산업육성’이라는 보호와 기회의 틀 안에서 개별약국 경영자가 알아야 할 기업의 속성을 고찰해 보자는 의미이다.
기업이란?
미시적 관점에서 기업이란, (1)돈 버는 곳, (2)이윤을 극대화하는 기관, (3)최소자원으로 최대효과를 추구하는 수단, (4)여러 자원을 조합해서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는 곳이자, (5)자아실현 수단, (6)스트레스와 보람을 주는 곳, (7)공동목적을 추구하는 곳, (8)구성원의 능력을 개발시키는 곳 등이다. 한편, 거시적 관점에서 기업이란, (1)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주는 곳, (2)국력의 기본, (3)정부에 세금을 내는 기관, (4)고용기회를 창출하는 곳, (5)새로운 기술의 산실, (6)국가경제발전의 주춧돌, (7)인간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곳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기업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사회적 단위에 해당한다. 그래서 기업은 이익을 추구할 목적으로 비즈니스 활동을 전개하는 생산경제 조직체이고,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재화와 서비스 같은 생활자원을 생산하는 개별 경제주체라 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기업관이 존재한다.
기업관의 유형
첫째, ‘자본조직체관’에 따르면, 기업은 자본가나 투자자의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출된 부가가치는 투자자나 자본가에 귀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째, ‘노동조직체관’에 따르면, 기업은 노동자의 노동에 의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창출된 부가가치는 노동자에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셋째, ‘기업공동체관’에 따르면, 기업은 자본과 노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창출된 부가가치는 자본가나 투자자와 노동자에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넷째, ‘협동적 생산실체관’에 따르면, 기업은 소비자, 투자자, 종업원, 원재료 공급업자 등 기업활동에 참가하는 모든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동에 의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창출된 부가가치는 이 모두에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입장(공익성, 공공성, 사회성)이다.
약국도 기업과 다르지 않다
기업의 목적은 어떤 활동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성과나 결과이며, 사회적 부가가치 창출을 통한 이익추구라고 요약된다. 여기서 부가가치란, (1)현재 사업 코스트(경비, 감가상각비 등), (2)미래 사업 코스트(연구개발비, 기획ㆍ조사ㆍ교육비, 유보이익 등), (3)협의의 분배 코스트(인건비, 이자, 배당금 등)를 말하는데, 기업목적 달성을 위하여 다음의 3가지 공식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1)부가가치(value added) 또는 이익(P) = 수익(R) – 비용(C) [P: Profit, R: Revenue, C: Cost)]
(2)수익(R) = 영업수익(판매수량X판매단가) + 영업외수익
(3)비용(C) = 구매, 생산, 재무, 인사, 마케팅, 회계 및 사무 활동 소요비용
위 공식을 활용한 기업경영의 3가지 과제는 바로 생산성, 경제성, 수익성의 향상이다.
생산성이란, 생산물의 산출량을 생산요소의 투입량으로 나눈 것인데, 세부적으로는 ‘노동생산성’(①물량표시 노동생산성=산출량/종업원 수; ②화폐표시 노동생산성=(산출량X제품가격)/종업원 수)과 ‘부가가치생산성’(부가가치 생산성=부가가치/종업원 수)으로 나뉜다.
경제성이란,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측정된다.
①경제성=목표/수단=성과/희생=산출/투입=수익/비용=급부/원가;
②경제성=실제산출/표준산출=실제수익/목표수익=목표달성도(유효성);
③경제성=실제투입/목표투입=실제비용/목표비용=수단절약도(효율성)
수익성이란, 이익을 자본으로 나눈 값이며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으로 측정된다.
①수익성=자본이익률;
②수익성=(이익/매출액)X(매출액/자본);
③수익성=매출액 이익률X자본회전률.
또한, 수익성의 개념은 유지존속을 위한 ‘적정이윤’; 유지존속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최저이윤’, 최소한 기업의 생존을 보장하고 기업이 과거에 달성한 정상이윤을 커버할 수 있는 ‘만족이윤’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생산성과 경제성을 ‘경영의 선택원리’라 하고, 수익성은 ‘기업의 선택원리’라 부른다. 물론, 이 같은 원칙 하에 약국들이 경영되고 있겠으나, 개별 단위 약국의 경제규모가 대체로 작기에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약국도 일반약국과 중대형 의료기관 인근의 약국을 비교하면, 후자가 더 기업적 모습을 띠는데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원칙에 보다 근접하고 충실히 이행하는 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기업 생존부등식의 종류와 조건
앞에서 제시한 공식에서 한 기업이 계속 생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익(P)을 증가시켜야 하며 그 방안은 다음 2가지 이다. 그리고 약국의 생존력을 강화하려면 다음 3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경영해야 한다.
R값 증가: R = 영업수익(판매수량X판매단가)+영업외수익
▶영업수익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판매수량 또는 판매가격을 증가시켜야 함
C값 감소: 원재료, 노동력, 에너지 및 기타 경영활동 비용을 절감
●조건(1): 판매수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방안(소비자의 입장)
① 제품 및 서비스의 가치(V)>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P) [ V - P > 0 ]
소비자의 혜택(consumer’s benefit)이 존재해야 한다. 소비자는 지불하는 가격(P)보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제공하는 가치(V)가 클 때 구매를 선택한다. 제품 및 서비스의 가치는 화폐단위로 환산할 수는 없으나 소비자가 머리 속으로 계산하는 ‘지각가치(perceived value)’ 또는 ‘효용(utility)’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비자는 지각가치를 가격과 비교한 뒤 구매를 결정한다.
●조건(2): 제품의 가격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기업의 입장)
② [ P>C ] 또는 [ P-C>0 ]
생산자 혜택(Producer’s benefit)이 존재해야 하며, 제품의 가격이 비용보다 커야 한다.
●조건(3): 기업이 생존,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건(1), (2)를 결합한 조건(3)이 만족되어야 한다.
③ [ V>P>C ]
소비자 혜택과 생산자 혜택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 ①의 V-P>0을 달성하기 위하여 V를 높이고 P를 낮추고;
• ②의 P-C>0을 달성하기 위하여 P를 높이고 C를 낮추며;
• ①에서 P를 낮추고, ②에서 P를 높이는 선택이 있으나, 장기적으로 V를 높이고 C를 낮춘다.
이렇듯 현대 환경에서는 소비자 지향적 기업경영이 필요하다. 그것은 소비자들이 1차적으로 시장에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 가운데 V-P가 가장 큰 대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생존부등식의 적용
V (제품 및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경쟁기업에 비해 많은 가치를 제공해 줄 제품을 생산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끊임없이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노력을 통해 가치창출을 해야 한다. 이를 기업의 ‘창조성’이라 한다. 한편, C(비용)를 낮추기 위해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원가절감노력이 필요하다. 즉 ‘생산성’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창조성과 생산성은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현황
물론, 위와 같은 원리를 각개 약국들은 잘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약국은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기업적 외형과 속성이 부족하다 보니 정치, 경제, 사회, 기술(PEST) 분야의 변화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지역사회 소규모 의원(clinic)도 비슷한데 그나마 의원은 의료산업 가치사슬의 하단에 포함되기에 약국보다는 다소 우월한 위치를 점유하는 듯 하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란 어떤 모습일까? 현존하는 의료전달체계 안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의료관련 정보탐색 행위, 진단 행위, 의료기관내 치료 및 처지 행위, 처방 및 처방전 전달 행위, 처방감사 및 조제 행위, 투약 및 복약지도 행위, 의약품 배송 행위 등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각종 편의를 향상시키는 게 과연 전부일까?(그림1)
최근 국내외 신생 스타트업(Sratup)에 의해 소개되기 시작한 서비스에 대하여 국내 의업계와 약업계가 매우 혼란스럽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저항감과 공포감을 느끼는 의원과 약국은 서로 공통점이 많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 진입한 지금, 대형병원이 과연 저항감과 공포감을 느낀다는 증거가 있는가? 통상적인 기업과 동일한 경영원리를 추종하고 있음에도 의원과 약국은 변화에 적응함에 있어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그림2)
‘스타트업’이란 아직 온전한 기업체로서의 구조와 역량을 갖추고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전의 ‘임시적 조직’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올해 전반기, 카카오는 창업 10여년 만에 시가총액 기준 국내 3위 기업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약국이나 의원은 이러한 성장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앞서 설명한 다양한 경영 이론과 원칙을 아무리 알아도 이를 활용하는 듯 활용하지 못하는 1인 기업의 모습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아직은 국내의 약업과 의업은 상당히 정부로부터 보호받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때를 독립적 산업으로서의 구성요소, 특징, 역량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선용하도록 약업산업, 헬스케어산업에 종사하는 구성원의 용기와 공감과 혁신의지와 리더십이 간절하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8-13 0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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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3> 약국 및 약무의 혁신: 약국 생태계도 산업화 기반을 갖추자
세계 각국 정부는 치열한 경제전쟁터에서 자국의 미래산업을 책임지고 선도할 성장동력분야에 대하여 국운을 걸고 지원 중이다.
우리나라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선정한 ‘19대 미래성장동력’이란 산업분야가 있는데, (1)5세대 이동통신 (2)스마트 자동차 (3)실감형 콘텐츠 (4)착용형 스마트기기, (5) 지능형 사물인터넷 (6)지능형 반도체 (7)고기능 무인기 (8)지능형 로봇 (9)빅데이터 (10)융복합 소재 (11)심해저 해양플랜트 (12)가상훈련시스템 (13)맞춤형 웰니스케어 (14)스마트 바이오생산시스템 (15)신재생에너지 하이브리드시스템 (16)재난안전관리 스마트시스템 (17)멀티터미널 고압직류 송・배전 시스템 (18)초임계 CO2발전시스템 (19)첨단소재 가공시스템 등이다.
정부는 위키백과 등에까지 이러한 내용을 게시하여 국민과 산업계 종사자에게 홍보 중인데, 19개 각 분야별로 2020년 현재기준의 육성목표와 분야별 주요 제품·서비스의 예까지 간추려 놓았다.
필자는 위 19개 기술을 보면서 약 15개 분야가 미래 약국모델에 직, 간접으로 연계될 수 있는 기술분야라고 생각했다. 현재 및 미래에는 다양한 산업분야가 기술의 융복합 현상을 거치며 발전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약국은 현재 어떤 기로에 서 있을까?
비즈니스 생태계
우리나라는 지난 1960년대에는 경공업, 1970~8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육성기를 거쳐 2000년 이후에는 IT산업을 통하여 급성장을 이뤄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변동성이 커지면서 제조업 산업의 한계에 직면하자 각국의 정부는 지식서비스 중심의 선진국형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다양한 혁신방안을 추진 중이다.
스마트 기기의 활용이 증가함에 따라 기술적 융합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면서 신성장동력 기술은 선진국형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데 있어 필수적 핵심요소로 부상하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우리 약업계도 기존의 주력 사업에 대한 혁신 및 고도화는 물론, 신산업을 창출하는 전략적 마인드를 고취하며 신속한 대응이 절실하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끝 장면에 다음과 같은 명대사가 있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극복하는 것이다.”
이제 약업계도 주변 환경의 폭발적인 변화상을 극복하기 위해 약국은 독립된 산업적 구성요소를 갖추지 못하여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 속에서 의약품 제조업과 유통업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는 상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비즈니스 내부의 성장동력 요인을 선정하여 연구개발, 전문인력양성, 금융지원, 제도개선 등 종합적인 육성책을 갖춰야 할 때이다.
비즈니스 생태계란, 공급자, 유통업자, 아웃소싱 기업, 운송서비스 기업, 기술 제조업자들의 느슨하게 결합된 상호 의존적인 네트워크의 또 다른 용어이다. 과거의 산업구조는 역할 별로 고정되어 그 경계가 분명하고, 또 하나의 산업분야에만 집중했지만 최근 선도 기업들은 하나의 산업분야에만 참여하지 않고 해당산업 전반에 참여한다. 그리고 비즈니스 생태계는 여러 산업 사이에서 발생한다. 더불어 핵심기업(keystone firms)으로 불리는 주체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비즈니스 생태계를 지배하여 플랫폼을 제공하며, 틈새기업(Niche firms)이란 생태계 속에서 다수를 이루면서 핵심기업이 만든 플랫폼을 사용하는 기업이다(그림1).
비즈니스 생태계의 건강성
산업부문의 주요 비즈니스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매개 플랫폼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플랫폼 및 생태계 진화이론의 골격이다. 일반적으로 비지니스 생태계는 고객, 중개 및 유통 기업, 공급자, 그리고 자신을 포함하는 시스템으로 이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들 간의 유연한 네크워크로 구성된다.
비지니스 생태계가 잘 구축되어 건강해진다는 의미에 대하여 이안시티 교수는 2004년도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 게재한 “Strategy as Ecology”라는 글에서 기업생태계의 건강성(Healthiness of Ecosystem)을 측정하기 위한 요소로 다음 3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생산성(Productivity)은 생태계의 개별 주체들의 부가가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원가혁신을 통한 비용절감 능력을 갖추어 산출결과물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이는 기업생태계의 ‘생존엔진’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강건성(robustness)은 생태계내 개별 주체들의 유입과 퇴출에 의하여 결정된다. 유입되는 주체가 늘어나 기업수가 증가하면 생태계의 성장은 촉진되는 반면에, 기업수가 줄어들면 활력이 줄어들며 생태계의 부담이 증가한다. 소위 창업이 줄고 퇴출되는 기업이 많아지는 고령화 생태계로 변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생태계의 ‘유지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혁신성(niche creation)은 생태계가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하여 확장해가는 능력이며 새로운 결합을 통해 새로운 분야를 창출하고 틈새를 확보하여 생태계의 범위를 넓혀갈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기업 생태계의 ‘성장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그림2).
국내 산업생태계의 건강성의 실례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들을 보유한 국내 ICT 산업생태계의 건강성은 어떠할까? 이 주제의 연구결과는 거의 없다. 다만 ICT 생태계가 생각처럼 건강하지는 않을 것이란 추측만으로 디지털융합연구원이 발간한 ‘ICT 생태계의 진화와 글로벌 디지털 리더십’이라는 자료에서 우리나라의 ICT 산업 분야별 OECD 국가내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
기기나 인프라, 서비스의 경쟁력은 상위에 속하지만, 정부와 국내시장 경쟁력은 중간수준, 그리고 가치공유 및 혁신능력, 글로벌 진출 경쟁력, 기업 경쟁력, 산업효율성은 하위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 평가결과를 생태계의 건강성 척도인 생산성, 강건성, 혁신성을 기준으로 평가해보면 국내 ICT 생태계의 생산성은 좋은 편인데, 시장과 이를 육성하는 정부 경쟁력인 강건성은 보통이며, 신시장을 창출하고 글로벌 하게 확장시키는 기업경쟁력은 낮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도 현재 국내 산업분야 중 대내외적으로 자랑스러운 성과를 보여온 ICT 산업계가 이 정도 평가를 받는다면 과연 약국 중심의 의약품 유통업은 어느 정도의 산업 건강성을 보유하고 있을까?
비즈니스 생태계의 건강성 지표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열하면, 한 생태계의 생존을 위해서는 ‘수익성’이 확보되고 난 뒤 ‘생산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그 후에 생산성의 인프라가 되는 생태계를 이루는 구성원의 ‘강건성’을 높이는 것이 올바른 순서인데 이는 개방과 상생의 시장이 만들어지고, 이어 강건한 생태계 속의 구성원 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혁신을 통해 생태계가 확장되어야 한다.
쇠퇴하는 생태계란, 단기적인 수익성에 몰두하여 독점적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생태계 구성원의 강건성을 해치고 결국 생태계의 혁신 능력은 저하되어 쇠퇴의 길을 가게 된다. 마치 작은 숲 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면서 닥치는 대로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어 결국 자기가 굶어 죽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중단 없는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종이 유입되고 신규 시장의 개척같은 혁신이 이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진화, 발전하는 생태계는 수익성보다는 강건성을 강조하고, 강건성보다는 혁신성이 강조되는 특성이 갖춰져야 한다(그림3).
기업 생태계 부등식
필자가 예전에 가톨릭대학교 약학대학 유치 및 신설 추진단의 PM으로 활동할 시, 이 대학교의 기획처장이며 경영학 전공자로서 자동차산업의 전문가이던 김기찬 교수는 필자와 신설 약학대학의 미래형 역할과 기능을 설계할 시 산업생태계 이론을 적극 활용한 바 있다. 이때가 2009년인데, 이때부터 필자는 우리나라의 약업생태계 속에서 미래의 약국이 갖춰야 할 모형과 약업의 국가 핵심 산업화를 위한 제반 환경조성을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김기찬 교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장, 진화하는 기업을 부등관계로 표현한 뒤 ‘기업생태계 부등식(business ecosystem inequality)’이라 정의한 바 있다. 김 교수는 기업생태계 부등식에 대한 실증연구를 통해서 건강한 생태계가 되기 위해서는 단기적 수익성을 추구하기 보다는 강건성과 혁신성을 진화의 원천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을 강조하였다.
강건성은 수익성에 상관관계를 가지지만 일정수준이 넘어가면 수익성 제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반면, 혁신성은 일정수준까지는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어떤 생태계에 구성원의 유입이 많아지면 수익이 증가하지만, 어느 수준을 지나면 포화되어 버리는 반면, 혁신이 초기에는 효과를 보지 못하지만 네트워크 효과를 통하여 변곡점을 넘어서면 문지방 효과를 나타낸다(그림4).
비지니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당장의 수익이 필요하지만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계에 보다 다양한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성과 이들과 함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갈 수 있는 혁신과 상생의 기반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업생태계 부등식이 의미하는 성공하는 생태계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그림5).
헬스케어 비즈니스 생태계의 미래 모형
필자는 약국을 포함한 보건의료산업이 ICT와 융합되어 새로운 생태계로 진화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즉 e-헬스케어 형태가 기본형이 된다는 의미이며, 이 생태계 모형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각종 신기술들은 상호충돌하면서 신시장을 만들어 낸다는 게임이론모델도 제시된 바 있다(그림6, 그림7). 우리나라의 약업생태계와 약국모델도 향후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환경변화를 겪으며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고 시장으로부터 검증 받을 것이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7-29 16: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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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2> 약국 및 약무의 혁신: 헬스케어 3.0 시대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미래 사회의 모습을 흔히 테크사회(super smart society), 초갈등 사회, 초고령 사회, 초개인화 사회, 초솔로 사회, 우울 사회, 위험 사회 그리고 수축 사회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의 사회적 트렌드를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부르는데, 올드 노멀(old normal)시대를 이익, 표준, 집중, 경쟁 및 성장으로 표현한다면, 뉴노멀 시대는 지속가능성, 다양, 분산, 공감 및 개성이 중시되는 특성이 강조된다.
과학기술에 의한 제 4차 산업혁명
혁명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이 미래 사회의 생활모습과 산업근간을 바꾸어 놓을 기세이다. 물론 개개의 기술이 가진 영향력도 파괴적이지만 이들이 융합될 때의 파급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미 약업현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조제자동화기기, 전산관리시스템 등이 실용화되어 있는데 머지않은 장래에는 인공지능과 연동된 약국경영 및 환자관리시스템이 보편화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약사의 직능과 약국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는 약사의 직업윤리의식 확대 및 전문약사제도의 도입과 그 궤를 같이 하리라 예상되는데, 당장은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의 변화에 대하여 많은 약업종사자들은 제도와 법률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기대하지만, 산업현장에서 다양한 변화와 혁신방안이 시도되고 이로 인한 문제점을 정리, 관리하는 수순으로 제도가 정비되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혁신마인드의 제고가 약업종사자가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
혁신이란 현재까지의 관행이나 구형 시스템을 고치고 벗어나는 과정을 포함한다. 지금 약업현장은 한약사와의 직역 다툼, 인터넷 판매로 인한 유통질서의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 등이 주요 현안이지만, 이는 모든 직역이나 산업분야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기에 보다 중요한 점은 각양 각색의 도전과 변화에 대하여 약사, 약사회, 약업종사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와 고비를 극복할 역량을 축적하였는가 여부이다.
조직적 규모의 혁신을 경험하지 않고 현재의 구조적, 심리적, 관행적 장애물을 방치한 채 뭔가 현재의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묘수 만을 찾거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혁신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필자가 자주 주장하듯이 ‘약사법’이란 국회의원 약 150명만 찬성하면 언제든지 내용 변경이 가능한 법률체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약사 직능은 유관 법률조항에 의지하기 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국민이 필요로 하며 국민의 가치를 높여 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존중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근래에 우리나라 대학이 존폐의 위협을 느낄 만큼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필자가 대학에 근무하다 보니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의 존폐 위험은 급격한 학령인구의 감소나 반값 등록금 기조의 유지, 정부의 지나친 간섭, 그리고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2018년 이후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나, 반값등록금으로 인한 재정의 악화, 중앙정부의 대학에 대한 통제강화 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예견되거나 지속되어 온 현상이기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약업분야도 혁신을 이루려면 우선 변화의 방향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혁신마인드를 제고시킨 후, 혁신의 추동력과 모멘텀을 이끄는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이에, 헬스케어 패러다임 변화의 방향성부터 고찰해보자.
헬스케어 개념의 확대와 시대적 발전
약업도 크게 보면 헬스케어 산업의 일부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우선 건강에 대한 개념이 지난 수십 년간 변화하였는데, 약업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큰 변화는 의약품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그리고 복지 중심으로 헬스케어 및 건강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그림1). 다만 아쉬운 점은 국민의 요구는 복지지향적(파란색 화살표)인데, 아직도 보건의료현장은 여전히 환자지향적(흰색 화살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1. 헬스케어 개념의 확대 (출처: 필자 작성)
헬스케어 개념의 변화란 욕구의 지향점, 핵심기술, 소비트렌드, 전문인력구조 등 많은 사항이 변했다는 의미이며 이를 학문적, 산업적 관점에서 1~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우선 헬스케어 산업의 범주는 (1)의료서비스, (2)의약품(제약/바이오), (3)의료기기, (4)화장품, (5)식품(건강기능식품)을 포함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기대수명이 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Well-Aging, Wellness, Anti-Aging)’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사회적, 기술적 환경변화에 따라 외연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그림2).
그림2. 헬스케어 개념의 시대적 변화 (출처: 삼성경제연구원)
이는 약국과 약사의 역할도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게 적응하고 변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약사에게는 큰 자극과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헬스케어 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2가지 분야부터 ICT와 융합하여 고도화되는 양상이다. 우선 의료서비스 분야는 개인맞춤형 예방과 관리에 건강정보(big-data)와 AI를 활용하여 이른바 '4P (예측, 예방, 개인화, 참여)시대'에 진입하였다. 그리고 제약바이오(신약발굴) 분야는 미충족의료수요도가 높은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축적된 학술정보(big-data)에 AI를 이용한 신약후보개발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커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약업시장은 의료서비스 분야에 속한다고 정의하는 것이 합당하다.
헬스케어 분야와 ICT의 융합양상
필자가 지난번에 고령자를 위한 기술을 ‘시니어 테크’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고령화와 같은 인구학적(demographic) 변화에 기술(technology)를 결합시킨 ‘데모테크’ 라는 말이 헬스케어 분야의 발전양상을 표현해 주고 있다. 헬스케어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양식에 따라서 진보하여 E헬스케어에서 U헬스케어로, 스마트헬스케어를 지나 IT헬스케어로 발전 중이다(그림3).
현재 우리나라는 ‘스마트 헬스케어’가 구현되는 시점이지만 조만간 ‘IT헬스케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는 고속통신망(5G), 생체신호센서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과학과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성숙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아니면 급격히 구현될 것으로 예견되는데, 어쩌면 IT헬스케어의 인프라 기술이 완성될 2040년 무렵이 그간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초인공지능의 출현 시점인 ‘기술특이점(Singularity point)’ 시대의 개막과 겹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약사와 약국과 약료서비스는 바로 이 ‘IT헬스케어’ 시대에 적합한 직능과 역할, 기능, 그리고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고 운영되도록 끊임없이 혁신하고 발전해야 한다.
그림3. 헬스케어와 ICT의 융합트렌드 (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세기적 기술 및 사회 혁신은 헬스케어 영역으로부터
선진 산업국가의 정부는 특정 제도를 정비하거나 직능단체 혹은 이익집단을 보호하기에 앞서 산업적, 경제적 효과를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스마트 헬스케어 패러다임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보유한 정보통신 기술과 융합되기 쉬우며 더불어 유관 산업의 발전과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술을 발전시켜 시장에 적용하면 국민의 보건의료수준과 삶의 질이 향상되며 건강보험 재정까지 절감되는 효과를 먼저 고려한다. 그래서 이제는 의료와 약료 서비스는 직능의 관점(직능 차별성과 배타성, 안전성)보다는 시스템의 관점(경제사회적 효율성, 산업경쟁력, 소비자 가치)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란 데 정부나 소비자들은 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정체된 제도나 시스템이나 사회구조는 개혁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선제적 전략과 대응이 중요하다. 변화와 위기를 조율하고 대응하는 것이 혁신이고 진정한 실력이다. 약업은 분명히 헬스케어 산업의 일부분으로 해석되고 잇다. 그래서 ICT가 융합된 스마트 헬스케어, 그리고 IT헬스케어 패러다임 속에 놓였기에 이러한 변화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스스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7-15 1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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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1> 100세 시대의 고찰: 소명의식과 은퇴의 재구성
소명(召命, calling)이라는 말은 초월적 끌림을 기반으로 하며,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목적과 의미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타인을 돕고자 하는 가치와 목표를 중요한 동기로 삼는 것이다. 이는 원래 종교적 용어로 사용되어왔는데 신으로부터 도덕적,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다(called)고 해석되는 특별한 용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종교인이 아니라도 깊은 성찰을 통해 내적 요구나 음성(inner voice)를 따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누구나 어떤 일을 하든 ‘평범한 일상과 일터에서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어 이제는 심리학과 경영학에서도 주목하는 연구주제이다.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소명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장점과 고령화 시대에 이것이 왜 중요한지 살펴보자
소명의식의 요인
전문가에 따르면, 소명의식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질문에 진지하게 생각하여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1)초월적 부름, 초월적 인도력이다. 이것은 무엇 혹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려주는 내적인 지식과 성찰이요 내면의 소리와 관련된 것이다. 다음은 (2)목적, 의미, 가치추구이다. 이것은 일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일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가,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가 이다.
이어서 (3)일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과 개인과 환경에 대한 적합도이다. 이것은 일과 자신을 얼마나 가깝게 여기며, 또 일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 이다. 끝으로 (4)친사회적 지향성과 친사회적 인도인데, 이것은 자신의 일이 타인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공선에 기여하여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각 사람의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 혹자는 돈을 버는것이 중요하고(Job), 어떤 이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만(Career), 어떤 이에게는 일의 의미를 추구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Vocation)이 중요하다.
낯설지만 중요한 소명의식
약 6개월전에 ‘100세 시대의 고찰’이란 부제로 연재 글을 시작하면서 이상적인 노화의 조건을 언급하였다. 장수시대에는 개인에게 건강과 재정도 중요하고, 할 일과 대인관계와 사회참여도 중요하지만, 실은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생명이 존속할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생명의 존속기한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서 곧 나의 삶이 완성되는 것인데 단지 통계학적으로 국가의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정 우리는 하루하루를 복되고 값지게 살기 위해 올바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소명의식은 전문직, 사무직, 일용직을 포함한 직장인은 물론 가정주부, 학생에게도 존재한다. 아직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학생 신분일 지라도 장차 가지게 될 직업에 대해 일찌감치 소명의식을 가지고 준비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이 학업에 대한 몰입도와 진로선택에 대한 효능감과 성숙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직장인의 경우는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고 직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소명의식의 개인차이
연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같은 조직, 같은 업무 안에서도 구성원간 소명의식의 차이가 뚜렷했다. 소명의식이 높은 이는 어디서든지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으며 이는 외국에서 진행된 연구결과와 비슷했다. 즉, 소명의식은 동서와 직업을 막론하고 대체로 공통적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의 의미와 가치는 일을 맡은 사람이 스스로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기에 소명의식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명의식을 보유했을 때 누릴 장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위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필자가 2019년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노인학 강좌를 진행했다. 몇주간의 강좌가 끝날 무렵, 75세가 넘은 수강생 한 분이 다가와 지갑 속에 늘 넣고 다니는 자신의 성취내역을 보여주었다(그림 1).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그분과의 대화 속에서 자기 인생에 대한 소명의식, 감사,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잘 마감하고자 애쓰는 의욕과 신중함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림1. 나의 삶의 발자취 (출처: 2019년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70대 수강생)
은퇴와 소명의식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영향
민수기 8장 23~25절을 제외하면 성경 속에도 인간의 은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과 북미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가 은퇴라는 개념이 19C말~20C초에 등장했다고 한다. 이때는 연금도 없었기에 대략 사망하기 3년 전까지 일하는 것이 관례였다. 공식적으로 은퇴제도를 만든 최초의 국가는 1889년의 독일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회적 변화도 잠시, 인류는 놀랍게 연장된 장수시대에 집입하면서 지난 100여년 간 지속된 ‘은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100년만의 새로운 혁신, 은퇴를 재구성하기
은퇴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하나의 유익한 충격이며, 공식적 은퇴 이후는 노인이 성장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재능과 기질, 삶의 경험에 좀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소명을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변화를 꾀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할 일(노동)이 있다. 그래서 ‘노동’이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식 은퇴와 연금제도 모델을 막 도입한 우리나라는 제도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다시 서구의 재구성된 은퇴모델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그림2).
그림2. 인생 3막, 은퇴의 재구성 (출처: 나이듦의 신학, 폴 스티븐스 저, 2018년)
우리가 죽기 전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다양한 면이 강조되기도 한다. (1)우리는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2)노동은 세상에 유익하다. (3)노동은 자신에게 유익하다. (4)노동은 이웃을 사랑하는 실제적 방법이다. (5)노동은 영적성장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6)노동은 다가올 삶을 준비하게 한다. 즉, 일하는데 발휘되는 재능과, 실제로 일하는 방식,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의 문제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노동조건을 갖춘 최상의 일터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소명의식과 노동, 은퇴, 여가 등에 대한 노인학적 연구가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인데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고령화 시대가 밀려왔다. 이런 변화상을 차분히 준비했던 이에게는 대처할 여유와 적응력이 있겠지만, 시류에 맡기 듯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아름답고 보람된 삶의 마감을 행하기에 너무 단순한 대응이 아닌가 싶다.
인생후반기의 용기와 지혜
어떤 은퇴자의 고백에 의하면, “이제 남아있는 단 하나의 계획은 ‘잘 죽는 법’을 배우고 싶다”라고한다. 노년기에 자신의 소명을 찾는 일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1)매 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2)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3)소명을 지키기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또한, 우리 인생은 우상의 유혹을 받아 쉽게 어그러질 수 있다. 인생의 1~2삼분기에는 돈에 눈이 먼 이득,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영광, 성공으로 쾌락을 얻는 즉각적 황홀감의 우상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은퇴한 3분기(노년기)에는 자기만족, 쾌락, 의미추구라는 우상에 쉽게 빠지기 쉽다.
서구문화권에서는 나이 듦의 악덕으로 다음과 같은 7가지 치명적 죄악을 꼽는다. (1)교만(Superbia)이란 자신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2)시기(Invidia)란 남이 잘되는 것을 바라보며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3)분노(Ira)란 통제하려는 불타는 욕망을 말한다. (4)태만(Acedia)이란 일 자체를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5)탐욕(Avaritia)이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욕구이다. (6)탐식(Gula)이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해 사는 것이다. (7)음욕(Luxuria)이란 타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내적갈망이다. 그래서 미덕을 지키기 위해 오래 인내했다는 사실이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성공하지 못해도 미덕을 위해 고군분투한 사실이 권위의 진정한 근거가 되는 것이 아름답고 정당하다.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꼽힌다. (1)노년에 자기의 소명을 버리지 않았다(소명으로부터 은퇴하지 않음), (2)노년에 개인적 결점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부풀려 졌다(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났음), (3)노년에도 맡은 사역에 적극적이었다(다음세대를 위해 투자, 소망을 품은 채 죽음 이후 세계를 바라봄), (4)노년에도 빛이 청정한 상태였다(절대자와 관계에서 늘 열려있고 새로운 계시를 받음).
나이듦의 미덕
나이 들며 갖추는 아름다운 특성으로는, 절제, 겸손, 인내, 단순함, 믿음(절대자를 향한 열렬한 반응), 소망(마지막 때를 향해 나아가는 사실을 믿음; 다음세대에 대한 투자; 평안히 죽음을 맞이함; 살면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더 큰 삶을 준비함), 그리고 사랑(사람, 장소, 공동체를 진심으로 돌봄) 등이 거론된다.
인간의 미덕은 함양될 수 있다고 한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을 원하든지 배우는 것이다. 성품은 습관에 영향을 주고, 습관은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 그래서 도덕적 훈련이 미덕의 함양에 도움이 된다. 또한 미덕은 개인 스스로 쌓아 올리는 것만으로 불가능하며 절대자의 선물임을 인정한다. 도덕적 삶은 단순히 인간적 성취가 아닌 가장 중요한 것에 반응하며 늘 절대자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소명의식은 (1)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심의 진실된 욕구와 끌림을 이해하며, (2) 일상의 일을 통해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며, (3) 자신의 주변에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소명의식을 품고 일할 때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사람은 그 당사자라고 한다. 100세 시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정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6-30 1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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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0> 100세 시대의 고찰: 시니어를 위한 주거 혁신
근래 수년간 우리나라에 지역사회통합돌봄(Community Car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커뮤니티 케어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우리사회에 전국민에 대한 보편적 복지와 더불어 헬스케어를 실현하는 한가지 대안으로 떠오르는 바, 미래사회에 발생할 커다란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주거문화의 혁신이라 생각한다.
전후 70년간 우리의 주거문화는 산업화와 더불어 집단주택(아파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도시의 과밀화 및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택이 보유자산의 핵심이 되고 아파트와 자가용을 소유하면서 양호한 교육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다소 획일화 된 방식을 선호하였던 베이비붐 세대의 사람들이 이제 다시 자신들의 노후생활에 대한 혁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성공적 노화의 3가지 요건
흔히 (1)노화에 따른 질병의 예방과 관리, (2)최상의 신체 및 정신 기능을 유지, (3)적극적 사회참여 등을 성공적인 노화의 3가지 요건으로 손꼽는다. 하지만 이것을 구현하는 방식에는 상호연계 없이 각각에 대한 상세 방안을 추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역사회통합돌봄 등 고령사회를 대비한 접근방식에는 재택복지(홈케어)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노인을 위한 복지행태는 주택에서 시작하여 주택으로 끝난다는 말도 있다(그림1).
그림1. Community Care (출처: Making our health and care systems fit for an ageing population, kingsfund.org.uk)
성공적인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방안으로는, (1)복지목표와 사회적 투자에 대한 보다 폭넓은 사회적 합의, (2)건강한 고령화 모델 구축, (3)노년기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비전의 공유, (4) 커뮤니티 케어를 노인정책의 중심이론으로 채택, (5)성공적인 노인중심 통합케어 제공의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통적 실버타운의 개념과 실태
‘실버타운’이란 말은 1960년대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인전용 주거지역에서 기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복지형 주택을 ‘실버(복합)타운’이라 불렀고 60세 이상의 건강한 사람이 입주 대상이었다. 실버타운은 입주자의 생활편의를 위한 체육시설, 여가 및 오락시설, 의료시설 등 각종 서비스 시설이 갖추어진, 단순 거주지가 아닌, 입주자의 2차적 욕구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주거단지를 뜻한다. 실버타운은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을 입주자가 부담한 입주금으로 운영하는 유료시설로서 임대 또는 분양 방식으로 입주했으나 2015년 노인복지법의 개정으로 더 이상 분양은 불가능하다.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된 우리나라의 실버복합타운의 문제점은 첫째, 실버복합타운의 범위가 제한적이란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에서도 실버타운을 중산층 이상 대상 유료시설로써 건강한 노인용 시설이라고 제한하지만, 노인의 경제수준, 건강상태는 개인별로 다양하므로 다양한 요구사항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실버복합타운의 정의와 범위가 재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노인전용 주거정책에도 불구하고 노인용 주거시설과 요양시설의 난립과 돌봄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노인용 주거시설은 무료와 유료 시설로 양분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 이상을 위한 유료시설로 양분되어서 실제로는 중하층을 위한 주거공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이는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시설이 난립하고 종말돌봄(터미널 케어) 등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셋째, 노인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요구사항인 안전, 쾌적, 편리하게 설계된 주택에 거주하는 것과 생활시설, 대중교통, 녹지공원, 의료시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욕구충족과, 접근성을 선호하는 사실들을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실버복합타운의 개발 방향
첫째는, 노인의 거주공간을 중심으로 혁신을 꾀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실버복합타운이 유료노인주택이라고 정의된다면, 미래에는 경제상태, 건강상태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소가능한 시설을 지향해야 한다. 더 이상 건물 안에서 모든 서비스가 완비된 폐쇄공간(Gated Community)이 아닌,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공간(Open Community)으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돌봄서비스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식의 혁신이다. 노인의 건강, 식사, 일상생활지원 서비스의 한계에서 나아가 일하고 싶은 욕구, 지역주민과 소통하려는 욕구, 사회에 기여하려는 욕구가 실현되는 공간의 제공이 중요하다. 더불어 터미널 케어 서비스 제공(살던 곳에서 임종까지 가능)이 가능해야 한다.
노인을 위한 혁신적 주거 모델
미국 애리조나주의 선시티는 미국 최초의 대규모 은퇴자 마을(Retirement Community)로써 서부 선시티에만 3만명 이상이 거주하며, 10만~100만 달러의 단독주택, 복층아파트, 정원형 아파트, 콘도 등의 임대도 가능하나, 가족 중 1인이라도 55세 이상, 19세 미만이면 입주가 불허된다. 입주자의 자녀가 방문하여도 최장 90일만까지만 체류할 수 있고, 자신이 소유한 집이라도 헛간이나 창고의 자의적 증축은 불허된다. 거주민이 자치회를 만들어 도시를 직접 운영하므로 이른바 “요양원은 NO! 같이 모여 즐겁게 살자”라는 구호가 온전히 실현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선시티형 실버타운 모델도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된다. 새로운 모델 중의 하나는 ‘대학 연계형 은퇴자 마을(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UBRC)’인데, 지역사회의 은퇴자 커뮤니티가 대학 캠퍼스 안에 노인전용 주거시설을 건설하여 평생교육프로그램 운영하는 것으로써 대학진학률이 높았던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1946~1964년생)의 고령화 현상에 의한 자연스런 산물로서 대학교 부근에서 노후시간을 보내며 청년기의 향수를 느끼고 평생교육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쉽다는 장점을 가진다. 더불어 대학들은 학생수의 감소와 주정부의 재정지원 감소로 인해 신규 수익원 확보가 절박한 현실을 타개할 방편이 되는 이른바 일거양득의 묘수이다.
이미 미국의 러셀大, 플로리다大, 스탠퍼드大, 노트르담大, 듀크大, 코넬大 등도 은퇴자를 위한 ‘대학 연계형 은퇴자 마을(UBRC)’을 조성했다. UBRC의 입주자는 대학 도서관이나 식당을 이용할 수 있으며, 대학의 강의를 청강하거나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의 UBRC는 2014년에 약 100여개였으나 앞으로 20년 간 미국 대학의 10%인 400여개가 UBRC를 구축하리라 예상된다.
노인요양시설, 주거복지시설의 선진 모델
첫째,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이다. 이곳은 초기 치매를 앓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수용하는 특별 요양원인데 입주자들을 병실에 수용하는 것이 아닌, 마을 내부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친숙한 생활환경을 재창조할 수 있도록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며, 자유롭게 장도 보고, 공방에서의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마을 내에 소형슈퍼마켓, 정원, 미용실 등 보통의 마을 모습인데 이곳의 직원들은 환자(입주자들)와 동행하고, 요구사항을 상시 들어주기 위해 특별히 배정되고, 공간 및 시설들도 입주자가 길을 잃거나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더불어 입주자가 활동적으로 능력을 증진시켜 줄 수 있도록 요리, 조형예술 등 25개의 상이한 클럽을 운영 중이다.
둘째, 독일의 바트 뵈리스호펜이다. 전통적으로 목축업을 하던 이 도시는 1800년부터 ‘자연이 최고의 약국’이라고 주장하며, 물, 운동, 허브 등을 활용한 자연치료법으로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마을로 자리매김하였고 이제는 노인을 위한 관광도시로 발전하였다. 온천도 개발하고 치료요양시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주변까지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23개의 치유시설과 170여개의 호텔, 펜션을 운영하여 노인요양시설을 일종의 산업으로 혁신하여 지역활성화를 이룬 성공적 사례로 손꼽힌다.
셋째, 일본의 요양시설의 지역사회개방과 자원화 모델인데, 일본은 65세 이산이 인구의 26%인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하였기에 지역케어시스템 확립을 추진 중이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개발하였다. 특히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노인 홈’의 지역사회 대상 개방 및 자원화 추진은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일본 노인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후생성 산하 중앙사회복지심의회 노인복지전문분과회는 노인 홈의 입소자가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노인 홈의 다양한 자원을 지역사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입소시설의 지역사회 공헌 및 기여 사업방안을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과거의 일본도 사회복지시설 중 입소시설은 기존 지역사회와 격리되는 경향이 있었고, 노인 홈도 다른 사회복지시설과 비교할 때 지역사회에 대한 폐쇄적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노인 홈은 의료, 보건, 복지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한 곳이므로 이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며 지역사회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서 주민에게 신뢰받는 자원이 되었다.
노인용 요양시설 및 주택의 최신 트렌드
첫째, 세대통합형 모델이다. 일본의 ‘노유(老幼)복합시설’ 모형은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복지관 등의 보육시설 및 아동시설이 노인주간보호시설, 노인요양시설 등과 같은 노인시설과 동일 대지, 혹은 동일 건물에 함께 축조되거나 병설되어 있다. 한편, 독일의 모형은 고령화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세대교류를 추진 중이며, 세대교류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고 다양한 모형을 개발하는 등 독일정부가 세대교류의 효과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하고 실천하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은 세대교류의 발상지로서 1960년대부터 조부모 프로그램 같은 세대교류를 시작했다. 세대간 상호교류 기회를 의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 세대의 심리적 사회적 욕구에 기여한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세대교류 프로그램을 제창하였고, 이후 노유복합시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술한 (1)UBRC 모형은 1980년 초반, 지역사회 노인과 은퇴한 교직원 및 동문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고 개발되었다. 2000년 초반에는 대학연계은퇴주거단지가 전국적으로 개발되었고, 많은 대학이 노인에게 교육, 연구 및 공공서비스 등의 다양한 캠퍼스 생활환경을 제공했다. 대학이 사업주체로서 실버타운과 같은 노인복지주택을 직접 운영하거나 노인복지주택의 거주자들이 대학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은퇴자 커뮤니티와 대학 모두 상승효과를 이끌어내었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나라도 지금 지방의 대학들이 경영난에 빠져서 폐교가 불가피하다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UBRC를 한국실정에 맞도록 혁신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미국의 두번째 모형인 (2)유년세대연계(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ies, CCRC)은 연속적인 케어가 가능한 은퇴자 커뮤니티 모델로서 초등학교(유년세대) 연계 노인복지주택인데, 대표적 사례로 메사추세츠주 Dedham에 위치한 ‘New Bridge on the Charles를 들 수 있다. 여기는 750명의 주민이 거주 중인데, 2010년에 ‘The Rashi School’을 개교하여 유치원~8학년까지 308명의 아동이 노인과 상호공존과 이익관계를 형성한다.
미국의 세번째 모형은 (3)청년세대연계 Longview (an Ithacare community)이다. Longview 는 뉴욕주 Ithaca시에 있으며 1974년 Ithaca College와 Cornell University의 합작으로 출발했다. 100개 독립생활유닛(independent living units), 60개 노인생활보조유닛(assisted living units)로 구성되며 Longview와 Ithaca College는 독특하고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토대로 노인과 청년 사이의 세대연계 사회를 성공적으로 구축하였다.
둘째, 자연을 이용한 생태학적 주거단지 모델이다. 독일 뮌헨시는 인공생태호수, 우수침투 조경, 일조량을 조절하는 입면 등 자연친화적, 생태학적 시설로써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Riem주거단지’를 조성했다. 청정공기의 공급과 순환, 공간의 경제적 사용과 물순환 개념을 수자원 소비감소 및 수질확보 방식으로 실현했고, 교통문제는 소음과 배기량 감소로 쾌적함을 향상시켰고, 토양을 적정용도로 사용하여 보존했으며, 도시 전체의 쓰레기 발생량까지 감소시켰다.
일본의 마테르아노우는 태양열집열판, 풍력발전시설, 주차장 및 옥외녹화 등 생태학적 시설이 갖춰진 주거단지인데, 주차장과 차양, 에어필터, 온도/습도 조절기능을 겸비한 발코니를 녹지화하면서 미세기후를 고려해 부지 내 산책로와 바람길까지 조성하였다.
끝으로 서유럽에서 비교적 흔한 유아들의 교육과 건강을 위한 ‘숲 유치원’ 모형이 있다. 유아의 비만, 주의력집중장애, 우울증 등 건강 및 사회적응 문제를 해결하며 창의성과 상상력 발달을 촉진시키는 이점이 있는 숲 유치원은 숲 속에 작은 오두막 시설을 갖거나 유치원 자체에 숲을 조성하여 동물을 기르거나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는 자연활동을 제공한다. 통합적 숲 유치원은 일반 유치원이 숲 활동을 교육과정에 도입한 경우로써, 매일 2시간 정도 숲에서 지내거나 일반 유치원과 숲에서 1주일 씩 교대로 지내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100세 시대 주거혁신을 통한 복지 및 헬스케어의 실현
약사 등 보건의료전문인에 의한 질병관리나 치료, 투약과 복약지도는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한 작은 부분집합에 불과하다. 집은 삶의 안식처이지만 단순히 공간만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공간에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위한 힐링공간을 제공하여 거주자에게는 삶의 편안함을, 지역주민들에게는 삶의 편안함을 제공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시설들이 연구개발 중이다. 거주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일할 수 있는 공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이제 최신의 지역사회통합돌봄 모델은 4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것으로 변모 중이다. 지역사회의 아이들과 더불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대학가에 머물면서 대학생이 되어 대학생과 어울려 본인의 자아실현 및 어른으로 경험과 지혜를 후대에 전수하고 있으며,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자연에서 소통하면서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100세 시대를 지향하는 모습이 아닐까?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6-16 1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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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9>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을 위한 기술
고령화 사회가 은퇴를 미룬 노년 세대 때문에 청년의 일자리가 줄고, 부양부담까지 가중시켜 세대갈등을 촉발시킬까 우려된다. 하지만 고령화로 사회의 구조가 변화되면서 새로운 투자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란 긍정적 견해도 있다.
고령화 시대의 시니어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구성원이자 신시장의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과거의 시니어 대비 소비성향도 매우 다르다. 외식,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성향이 뚜렷하며, 자기계발과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여유로운 경제력과 건강을 바탕으로 소비와 여가를 즐기며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는 시니어 세대, 인구고령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선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시니어 시프트
근래 ‘노인’ 대신 서구식 표현인 ‘시니어’를 선호한다. 2011년 국회는 ‘노인’이란 용어를 ‘시니어’로 정비하려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법률이나 학술적으로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나 산업적으로는 50~64세를 ‘New Senior’나 ‘Active Senior’로, 65세를 ‘Old Senior’나 ‘Silver’로 구분하는 추세이다. 기업이 주목하는 부류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뉴 시니어’들이다. 우리나라의 고령친화시장 규모는 2016년 27조원에서 2020년 78조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는데,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기술이 고령친화산업과 융합되는 양상이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를 시작한 2007년이 소비 트렌드의 변곡점이었다. 일본 유통기업 AEON사는 2011년 전략보고서에 ‘Senior Shift’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2013년에는 도쿄의 카사이점을 리뉴얼해 ‘그랜드 제너레이션’ 몰로 바꾸었다. 10~20대를 타깃으로 삼았던 일본의 편의점도 고령 소비자에 집중했는데 세븐일레븐의 고객은 1989년 29세 이하 고객이 63%이었으나 2013년에는 29%로 줄어들었고 동기간 50세 이상 고객은 9%에서 30%로 증가했다.
시니어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는 미국의 서비스도 괄목할 만 하다. 1975년에 설립된 ‘로드 스칼러’사는 5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교육과 여행을 접목시킨 상품을 제공했는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며 큐레이터의 강의를 듣는 ‘Art Lovers’ 및 역사유적지를 열차로 방문하는 ‘Train Journeys’, 그리고 시골마을을 방문해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My Hometown’ 등 매년 4,600번의 프로그램에 10만명이 참여했는데 대부분은 대졸이상 학력에 평균연령 72세 노인이었다.
미국의 Lively 노인케어서비스는 냉장고, 출입문, 의약품상자에 센서를 장착해 동작을 감지하여 데이터를 수집한 뒤 건강을 관리해준다. 미국의 24eight사는 압력센서를 부착한 스마트 슬리퍼를 개발했는데, 노인의 압력과 보폭을 측정해 평소 때와 다른 변화가 감지되면 가족과 주치의에게 알려 사고를 예방한다. 자율주행자동차나 로봇 역시 반응능력이나 근력 등이 떨어질 수 있는 고령층에 적합한 기술의 예이다.
노인을 위한 기술, Aging Tech
로봇,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활동성을 증가시키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는데, 노약자가 착용하면 시속 12㎞까지 움직이도록 다리 힘을 강화시켜주는 로봇인 ‘휴마’를 비롯해 의료로봇 ‘H-MEX’, 보행보조로봇 ‘H-LEX’는 현재 의료기기 허가용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노인 재활훈련을 돕는 로봇도 있다. AI와 사물인터넷을 활용하여 뇌졸중·치매 재활기기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센서가 장착된 스마트 장갑을 통해 병원이 아닌 집에서 재활훈련을 하도록 도와주는데, 글러브에 장착된 센서와 AI가 환자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재활훈련 난이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준다(그림1).
한 챗봇은 AI 기술로 진료기록은 물론, 환자-의사 간 대화를 분석하여 고혈압, 당뇨 환자에게 식단과 건강관리법을 조언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치매예방 앱, 스마트폰 화면 글자를 크게 확대하거나 음성으로 변환시켜 읽어주는 앱도 있다.
그림1. 치매·뇌졸중 재활솔루션을 제공하는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출처: 네오펙트)
사고예방 기술
고독한 노인은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갑작스런 사고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L사의 ‘부모안심 IoT 패키지’는 자녀가 노부모의 외출·귀가 여부를 확인하고 가스밸브나 전열기구를 원격으로 통제하며 홈CCTV를 통해 부모님의 건강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안심 LED솔루션’은 LED 전등에 실시간 동작감지센서와 텍스트-음성 변환기능을 내장하여 독거 치매노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일정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생활관리자에게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IoT기반 위치추적기’는 집밖에서 길을 잃은 치매노인의 위치를 알려준다.
노인전용 스마트폰은 통화 시 의도하지 않은 터치를 예방하는 ‘똑똑한 터치잠금’과 별도 버튼으로 데이터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켜는 ‘데이터 잠금’ 기능도 있다. 라디오 안테나를 내장하여 데이터를 사용없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똑똑한 FM라디오’ 기능도 있다. 또한, 노인용 IoT 스피커 ‘소통박스’는 휴대폰 사용에 미숙한 고령자가 음성만으로 지인과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실버 러시
식품업계는 노쇠한 노인의 특징인 근감소증 개선방안을 찾는 연구소를 출범시켰다. 혈류를 개선해주는 오메가-3와 항산화제 베타카로틴이 함유된 치즈 등 시니어 푸드도 개발하였다. 시니어 전문식자재 기업은 국공립시설, 요양원 등 고객맞춤형 상품을 선보였다. 음식을 삼키는 것이 어려운 노인이나 환자를 위해 식재료를 갈거나 다져 만든 ‘연화식’도 제공한다.
유통업계는 간병 및 보조용품, 병원 및 의료용품을 판매하는 시니어 전용관 ‘실버스토어’를 운영하며 노인의 편의를 위해 인터넷 대신 전화로 주문하는 ‘텔레마트’도 선보였다. 오프라인 편의점 업계는 성인용 기저귀 등 노인전용브랜드를 개발했다.
금융업계도 노인의 관심사인 건강과 여행을 연계한 통장을 선보였다. 이는 환갑, 칠순 등 기념일이나 자녀결혼, 여행, 공적연금수령 등 이벤트를 맞이할 때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또한, 은퇴설계 등 맞춤형 금융서비스와 여행·쇼핑·건강 등 비금융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정보격차 문제
극장이나 철도, 공항에서 표를 사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일이 흔해졌다. 그러나 기계주문기와 마주하는 노인의 형편은 참담하다. 글씨 크기도 작고, 높이도 안 맞는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이고 대기 줄을 서지 않아 편리하다지만 노인은 키오스크와, 모바일로 이뤄지는 구매방식 때문에 명절 때 대중교통 예매에 곤란을 겪는다. 정보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디지털 신기술에 접근할 능력의 보유여부가 경제·사회·문화적 격차로 확산돼 불평등을 야기한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자의 종합적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의 63.1%에 불과했다.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장노년층 등 4대 정보취약계층 중에서 가장 낮다. 스마트폰이나 PC의 보유여부와 인터넷 접속가능 여부를 측정하는 '디지털정보화 접근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90.1%다.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 이용능력을 측정한 '디지털정보화 역량'은 50%, 인터넷 서비스를 다양하고 깊게 활용하는지 측정하는 '디지털정보화 활용수준'은 62.8%에 불과했다(그림2).
그림2. 2018년 우리나라 연령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 단위: %)
장노년층에 적합한 교육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정부는 정보격차 문제와 관련하여 정보화 교육을 여러 기관에서 전국 단위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화 교육 예산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관련 예산 감소는 "변화된 정보격차 및 정보소외 양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새로운 정보취약층의 등장과 정보격차 현상에 대응하는 양질의 정보화교육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정보화교육이 PC기반으로 진행되어 막상 노인들에게 필요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예매나 Kiosk사용법 등 실질적인 교육은 부족하다고 지적된다. 더불어 키오스크 자체의 고객 친화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대부분의 상점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몸이 불편하지 않은 정상인을 기준으로 제작되어 노인이나 장애인이 사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사용하기 쉽다는 것의 새로운 정의
노인 스스로 다양한 디지털 신기술 활용방법을 익히게 하려면, 각종 디바이스의 사용법은 매우 쉬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자체적으로 기능하거나 헬스케어 전문가나 간병인, 기타 서비스 업체가 자신의 영역을 범위를 넓히는 데만 신기술을 사용한다면,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없다.
솔루션 업체가 아무리 ‘우리 제품과 서비스는 다르고’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간단하다’고 주장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이고, 노인을 위한 기술이 오히려 더 많은 실망감과 소외감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노인 케어는 사용자가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하면 안되고 사용자 기반을 간과하면 실패한다.
고객 친화적으로 혁신
이와 같은 문제점 중 어느 것도 노인의 잘못이 아니다. 상당한 수준의 맥락적 지식을 전제하지 않고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제작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해줄 뿐이다.
해법이 있다면, 실제 세계(real world)의 친숙한 객체를 흉내 내는, 이른바 ‘스큐오모픽(Skeuomophic)’ 인터페이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업체가 지능형 의약품 보관함을 만든다면, 노인이 일상에서 자신의 처방약을 정리하는 데 사용하는 약상자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미래형 디자인은 밀레니엄세대의 디자이너 스스로 감탄할지 모르나 실제 사용자인 노인은 오늘 여기에 보관하던 당뇨병치료제를 먹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근본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제품과 서비스 개발자는 실제 노인들이 새 디바이스와 서비스를 체험하고 테스트하도록 해야한다. 실제 이용자가 새 기술을 한 달 이상 사용해보고, 초기 기대감이 반감된 후에도 실제 계속 이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사용하지 않는다면, 가치가 낮기도 하지만 노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동작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혁신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6-02 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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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8>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의 4苦를 대응하는 용기와 슬기
‘4차 산업혁명’이 시대적인 화두이다. 이는 파괴적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바이오, 물리학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기술로 발전하여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이 상호연결되고 지능화되면서 업무생산성이 극대화되어 삶의 편리성이 높아진다는 사회, 경제적 현상의 개념을 뜻한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의 자전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듯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움직임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고령사회’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의 문제이고 기대보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고령사회의 물결은 4차 산업혁명과는 달리 비교적 체감하기 쉽다. 우리나라는 어느덧 퇴직 후까지 생계를 염려하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는데, 노후를 위한 퇴직금과 연금은 대출금과 세금, 자녀의 결혼이나 독립자금, 혹은 사업 빚 등으로 급속히 소진되어 빈곤에 빠진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에 퇴직 후 생계를 위한 일자리 경쟁, 배우자나 부모가 병고까지 겪고 있다면 더더욱 삶이 고달파진다.
우리시대의 고달픔
노인의 4고란, 빈곤, 질병, 고독, 무위라고 알려진다. 이 4가지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OECD 국가 중 상대빈곤율 1위,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노령화 진행속도 1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문제는 우리나라에 드리운 그림자가 생각보다 어둡고 심각함을 보여준다. 노인의 일자리 경쟁, 체력, 질환,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일의 지속 조차 어려워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고스란히 가족들이 메워야 하는 사회구조는 이미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50%의 노인에게 출구를 찾기 어려운 문제이다.
쉽게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의 활용, 사회구성원의 소통과 협력은 미래를 여는 열쇠이며, 특히 노인과 청년의 서로의 부족함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동원해 채우면 가능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은 모두에게 차별 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지각변동을 동반하는 혁신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발전에 부응하는 노인복지의 증진 및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노화(aging)은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가져왔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다양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회임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몰고온 기반기술들은 크게 (1)돌봄, (2)생활의 안전, (3)삶의 질과 관련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정용 엘리베이터, 전동카트, AI스피커, 가사도우미 로봇, 치매 및 만성질환 노인의 치료를 위한 증강현실기기 등은 ‘돌봄’을 위한 것이고, 자율주행자동차, 주거안정장치, 조리시스템 등은 생활안전과 관련된 것들이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 배달용 드론, 심리치료용 반려동물로봇, AI스피커 및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홈커넥티드 기술 등은 삶의 질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러한 기술들을 활용하면 노인의 문제를 어느정도 극복하고 행복함을 증진시킬 수 있다(그림1).
그림1 우리나라의 고령화 현황과 관련 비즈니스(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변화를 바라보는 2개의 시선
메스컴을 중심으로 쉴새 없이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된다. 대다수 노인은 컴퓨터와 핸드폰, SNS를 활용하는 것조차 벅찬데 도대체 뭘 어쩌라는 것이냐는 반응도 많다. 특히 사회문제를 말할 때 언급되는 것이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문제이다. AI와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포감은 기우가 아닌 현실이고, 정부가 제공 중인 공공형 일자리는 임시방편적이어서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지금 같은 노인 일자리 제공은 사라질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세대가 마주했던 현실은 인구증가와 더불어 기술 및 자본부족으로 인한 구조적 가난이었다. 하지만 그 약점들이 오히려 부흥과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증가하는 인구는 값싸고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했고, 외국의 차관도입과 수출로 벌어들인 자본은 기술을 도입하고 개발하여 발전의 원동력을 삼았다.
지금은 전 세대와는 형편이 다르다. 자본과 기술과 경험과 인재도 보유하고 있다. 흔히 경제, 산업, 기술을 주창하는 이들은 밝은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인권과 실업, 부의 분배에서 초래된 양극화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당연히 산업화의 어두운 면이 부각된다. 단순히 개발지상주의나 분배지상주의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뜻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노인인권 종합보고서’에 다르면, 우리나라 청년의 56.6%가 노인의 일자리 증가로 자신의 일자리가 감소할까 걱정하며, 77.1%는 노인복지의 확대로 청년층의 부담이 증가하리라 우려하고 있다. 노인복지의 확대로 청년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고, 고령화로 인하여 노년은 공적연금 등을 노후에 충분히 수령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크다고 파악되었다.
더불어 청년실업의 증가 원인을 노인일자리 확대 탓으로 돌리는 시선도 있었다. 결국 일자리의 부족 현실을 비관하는 시선이다. 물론, 낙관적인 시선도 있다. 4차 산업혁명 변화에 대한 기대감인데, AI와 로봇이 인간과 협업하여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데 반복적 노동을 기계가 담당하고, 감성과 창조적 일은 인간이 담당하게 된다는 의견이다.
노인 관련 산업과 기술의 미래
4차 산업혁명은 노인요양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지만 아직 여건은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생활이 불편한 노인을 돕는 도우미 로봇이 공급되고, 고독한 노인이나 병고를 겪는 노인과 가족의 돌봄을 담당할 말벗 로봇의 활성화를 예견하고 있다. 독립적 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수발하는 케어 로봇도 등장할 것이다.
생애주기별 혈당, 약물복용 관리 등 개인맞춤형 헬스케어서비스는 물론, 웨어러블 생활기록장치로 질병예측과 헬스케어서비스를 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만성질환자 원격진료나 앱처방 형태의 스마트 주치의 서비스가 시작되고, 불면이나 우울증, 치매 조기예측, 비약물 처방 등을 관리하는 생활습관 컨설팅도 개시되었고, 센서를 이용해 신체표면을 인식함으로써 침상에 누운 환자의 욕창을 예방하는 기술까지 등장하였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노인기술(제론테크놀러지, gerontechnology)’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용어조차 생소하다. 1988년 유럽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노인 관련 기술을 뜻하는데, 1차적인 목표는 나이에 따른 변화를 지연 또는 방지하는 것이다. 2차 목표는 일반적 기능의 보완, 즉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해소시키는 것이고, 3차 목표는 바로 시니어 케어(senior care)이다(그림2).
국내에서 아직 제론테크놀러지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노인과 관련된 기술을 주로 인간공학이나 보조공학, 무장애 설계 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제론테크놀로지는 기존의 보조공학과 더불어 헬스케어, 사물인터넷, 로봇기술, 스마트 시티 등 새로운 개념이 함께 논의되어야 하며, 로봇기술이나 빅데이터 등을 연구개발자들이 자기 기술만 구현하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상호협력하고 융합하는 분위기에 먼저 합류해야 한다.
그림2. 제론테크놀로지의 실례(출처: 영화 로보 앤 프랭크의 한 장면, 구글이미지)
노인 관련 기술과 제도의 공동발전
헬스케어 분야의 4차 산업혁명적 변화에 정부정책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노인의료비 급증을 해소하려면 원격의료의 도입이 필요하지만 낮은 수가 정책이 걸림돌이고, 개인정보활용의 강력한 규제 때문에 정밀의료 관련 산업이 선진국 대비 정체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초고령화 시대에 슬기롭게 대응하지 않으면 현 정부의 의료정책은 조만간 50조원 적자가 나리라 예상되고있다. 노인의료비 급증으로 커지는 재정부담 문제에 대한 실마리로써 의료 및 약료 산업을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으로 만들어 4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에 놓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반도체 산업에서 말하는 ‘무어의 법칙’보다 유전체 염기서열분석 비용이 더 빠르게 감소하고있다. IoT와 웨어러블, 클라우드 등으로 생활기록을 수집하는 비용도 약 1억배나 감소하였고, AI기술이 원천 공개된 것까지 등장하여 사회적으로 직면한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등장하였다.
흔히 사용하면서 아직 제대로 정의조차 없는 것이 ‘디지털 헬스케어’란 말이다. 좀 쉽게 설명하며‘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반의 건강관리’ 정도가 적절해 보인다. 즉, 자동화된 원격의료를 포괄한다. 이미 선진국은 물론 일부 개발도상국들도 원격의료시대를 열고있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의료비 급증세에 대처하려면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하나 보험구조 및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반대가 강하여 우리나라에서 전면적인 도입까지는 요원한 형편이다.
미국과 일본 등은 고령화 의료문제를 해결하며 산업경쟁력을 높이려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환자케어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의료 빅데이터의 적극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고있다. 국내 일부 벤처회사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개인정보규제 때문에 외국으로 사업장소를 옮겼다. 선진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70%의 스타트업 기업이 가진 사업모델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상황도 안타깝다.
기술 소외계층을 위한 해결책
다가올 미래사회는 기술중심이 시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 조작이 서투른 노인 같은 기술 소외계층은 이를 이용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근래 대부분의 택시가 호출 받고 손님을 태우므로 스마트폰 조작이 서툰 노인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 겨우 택시를 잡기도 한다. 한편, 패스트푸드점과 일반 식당에서도 터치스크린이 갖춰진 무인주문기가 늘었지만 이것의 사용을 어려워하고 심지어 주문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기술 소외계층은 4차 산업 시대에 사회구성원이 함께 해결할 과제이다.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한 계층은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도 심도 깊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과기정통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은 기술에 소외된 노인들의 사회·경제적 참여를 높이기 위해 기차표 예매, 금융 앱 활용 및 계좌이체, 무인 주문기 이용 같은 부분을 흥미를 가지고 배울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다. 더불어 기술소외 노인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일명 ‘에이징 테크(Aging tech)’, ‘에이지 테크(Age tech)’, ‘실버기술’로 불리는 이 기술은 노인세대를 지원하여 이들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서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한국은 26년에 불과했다. 2030년에는 5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50대는 ‘시니어 비즈니스’의 핵심 소비자이자 혜택자로 인식된다.
시장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고령친화시장 규모는 2016년 27조원에서 2020년 78조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시니어 비즈니스를 더욱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데 아무도 이견이 없다. AI, IoT,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같은 기술이 고령친화산업과 잘 맞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밑빠진 독으로 여겨졌던 미래 고령화 시대에 대한 부담이 4차 산업혁명을 몰고 온 주요 기술들을 이용하며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처럼 보인다. 다만 기술에 예속되거나 경제적 이익만을 쫓다가 인간성을 경시하지는 말고, 오히려 인간존엄성을 높이며 행복과 가치가 돋보이는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긍정적 시선을 갖추어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5-20 1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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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7> 100세 시대의 고찰: AI 스피커 기술의 여명기
음성으로 명령하고 심지어 쌍방향 대화까지 가능해진 ‘AI 스피커’는 지난 2014년 아마존이 세계 최초로 ‘에코(Echo)'를 출시한 이후 글로벌 회사들이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AI) 음성비서(Voice Assistant)'를 연이어 출시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에 AI 스피커가 처음 도입된 지 1년만에 100만대를 넘었고 2년차에는 300만대, 그리고 4년차에 800만대 수준으로 가파르게 증가함으로써 전국의 2천여만 가구 중 40%에 보급되었기에 이미 초기 대중화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파악된다.
AI 스피커의 출시 경쟁
선도적인 ICT 기업이 AI 기술을 통해 일상생활을 바꾸고 있다. 애플의 Siri를 비롯하여 아마존의 Alexa, 구글의 Google Assistant, 마이크로소프트의 Cortana, SK텔레콤의 NUGU, KT의 GiGA Genie', 삼성의 Bixby, 네이버 Clova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AI 스피커란, AI 음성비서와 사실상 같은 기술인데 AI 음성비서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개인 서버처럼 작동하는 클라우드 기술이 핵심이다. 이는 인공지능(AI)과 음성인식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와 스피커라는 하드웨어와 결합한 신기술의 집약체로서 고객이 지시한 바를 파악하여 인터넷 및 스마트홈 서비스와 연동하거나 집안에 있는 가전기기를 원격제어함을 물론, 다양한 정보와 편의를 제공한다.
국내 AI 스피커의 선두주자는 SK텔레콤이었는데 지난 2016년 8월에 AI 음성비서 ‘누구(NUGU)’가 탑재된 전용스피커를 국내 최초로 출시하면서 시장을 개척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나 비서 등 고객이 원하는 누구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 ‘누구’를 시작으로 음성인식과 AI로써 대중의 생활 전반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T는 2017년 1월에 세계 최초로 IPTV와 AI를 융합한 형태의 ‘기가지니(GiGA Genie)’를 출시하였다. 이는 스피커와 카메라를 장착한 IPTV 세톱박스의 명칭이자 AI기반 홈 비서 서비스를 의미한다. KT는 기가지니가 일반 가정에서 보유한 TV에 기반한 기술이므로 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홈 인공지능 시대’를 개척하려 한다. KT 서비스의 차별점은, 이미 출시된 AI 스피커들이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작동하는 '청각’ 위주의 기술이라면, 기가지니는 TV와 연동시키고 카메라까지 내장하여 이른바 '시청각’ AI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그림1).
그림1. 상용화 된 국내외의 AI 스피커 (출처: 구글 이미지)
인기 캐랙터를 활용한 포털사의 약진
우리나라 포털서비스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AI 스피커 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대중화된 자사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AI 스피커의 이름을 ‘프렌즈’와 ‘카카오미니(Kakao Mini)라고 명명함으로써 기존의 통신업체가 이룩한 시장의 후발주자로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네이버는 2017년 8월에 자사의 AI 음성비서인 ‘클로바(Clova)'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 ‘웨이브(WAVE)'를 출시했다. 오디오 중심의 디바이스 및 콘텐츠가 핵심인 웨이브는 음악추천, 실시간 정보검색, 어린이를 위한 동요와 동화, 외국어 통번역, 뉴스 브리핑을 강점으로 내세워 네이버 뮤직 단독 이벤트를 활용한 한정판으로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향은 예상외로 컸다. 웨이브의 성공을 바탕으로 같은 해 10월에는 ‘프렌즈(Friends)’를 출시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이 개발한 프렌즈는 클로바가 탑재된 두 번째 AI 스피커이다. 프렌즈는 라인프렌즈의 인기 캐릭터인 ‘브라운’과 ‘샐리’를 모티브로 활용하여 큰 호응을 얻었고, 연이어 기존 스피커보다 작고 가벼운 ‘프렌즈 미니(Friends Mini)'까지 출시하여 좋은 반응을 이어갔다(그림2).
비슷한 시기인 2017년 11월에 다음카카오는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인 ‘카카오 아이(Kakao I)’를 탑재한 AI 스피커 ‘카카오 미니’를 출시했다. 카카오 미니는 음악, 시각, 대화, 추천, 번역과 같은 AI 엔진기술을 결합하여 ‘라이언’과 ‘어파치’ 등 자사의 인기 피규어를 접목했는데, 판매개시 9분만에 초기 물량 5,000대를 완전 판매하였고, 2차 판매분도 26분만에 25,000대가 판매되는 돌풍이 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카카오 미니에 휴대성을 강화한 신제품 '카카오 미니C'를 출시하여 충전식 배터리를 활용하면 최대 10시간까지 사용 가능한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연이어 카카오 미니에 별도 장소에서 음성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카카오 미니 보이스 리모트'도 출시하여 재미와 기능,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시장의 속성을 만족시키며 국내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림2. 포털사의 캐랙터 AI 스피커 (출처: 구글이미지)
국내 통신 3사 중에서는 가장 늦었으나 2017년 12월에 LG유플러스는 네이버의 클로바를 탑재한 ‘유플러스(U+)우리집 AI'를 출시했다. 이는 유플러스 TV, VOD 검색은 물론, 스마트 홈 제어, 네이버 검색, 쇼핑 등과 같은 콘텐츠를 장점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LG유플러스가 보유한 AI 서비스와 네이버의 유통망을 결합시킨 협력 모델로 주목받았다.
해외 및 국내 업체간 경쟁의 서막
글로벌 기업의 국내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아마존은 ‘에코’를 한국시장에 진출시키려 한다. 에코는 이미 국내 음성뉴스를 지원하지만, 아마존의 AI ‘알렉사’가 아직 한국어 명령을 알아듣고 작동하지 못하므로 ‘에코’의 국내시장 진출은 한국어 서비스의 완성시점까지 미뤄질 예정이다.
아마존에 앞서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에 기반한 AI 스피커 ‘구글 홈’과 ‘구글홈 미니' 2종을 이미 국내시장에 출시했다. 구글 홈 역시 한국어 서비스가 불가능하여 출시를 미뤄오다가 ‘구글 어시스턴트’의 한국어 지원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강력한 사물인터넷 연동 및 다중언어 기능을 차별화된 장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AI 스피커 ‘갤럭시 홈(Glalaxy Home)’을 공개했고, ‘갤럭시 홈 미니’의출시계획도 밝혔다. 삼성전자는 기존의 AI 음성비서인 ‘빅스비'를 업그레이드 한 ‘뉴 빅스비’를 같이 소개했는데,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전장 및 오디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프리미엄 오디오 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했었다. 2021년 전반기까지 가시적 성과는 미미하지만 미래 AI 스피커 시장의 각축전이 어떠할 지 궁금해진다.
듣는 것에서 보이는 AI 스피커 시대로
최근 아마존 ‘에코 쇼(Echo show)’가 출시된 이후 구글도 연이어 화면(디스플레이)이 탑재된 AI 스피커 기기를 출시하는 등 관련 시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국내 시장도 AI 스피커가 ‘보이는’ 형태로 발전 중인데, 그동안 국내에 출시된 제품들에는 디스플레이 화면이 없었고 스피커의 외형도 디자인이나 캐랙터를 활용하는 등 음성의 인식과 반응이라는 1차원적 소통서비스에 국한됐었다.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AI 스피커는 음성과 더불어 화면을 통해 보다 직관적인 정보제공과 니즈에 보다 입체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음성중심의 AI 스피커를 1세대라 한다면,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것은 2세대 제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내는 SK텔레콤이 보이는 AI 스피커 ‘누구 네모(NUGU nemo)'를 가장 먼저 출시했으며 기존 스피커의 시각 제한성을 극복하고 정보를 보다 직관적이고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 편의가 대폭 향상될 것을 홍보하고 있다. AI 기술은 세부적으로 발전하는 중인데, 특히 어린이의 영상물 시청에 따른 시력저하 우려에 대하여 물체인식기술로 해결했다고 강조한다. 예로써, 영상을 시청하던 아이가 화면에 지나치게 가까지 접근하면, 적절한 거리로 떨어져 시청하도록 주문형 비디오(VOD) 작동을 일시 정지시키고 화면에서 뒤로 물러서도록 안내하는 기능을 탑재한 것이다.
KT는 화면과 셋톱박스를 결합한 국내 최초의 일체형 인공지능 TV인 ‘기가지니 테이블TV'를 공개했다. 이는 개인용 TV로도 활용할 수 있는데, 화면 크기는 11.6 인치이고, 유선 랜(LAN) 없이 와이파이 연결만으로 이용하며 기존 기가지니처럼 하만카돈의 프리미엄 스피커를 사용한다.
SK텔레콤과 KT가 잇따라 보이는 AI 스피커를 출시하여 경쟁하는 동안 구글도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AI 스피커 ‘구글홈 허브(Google Home Hub)’를 출시 준비 중이다. 이미 미국시장에는 출시됐으며, 7인치 화면을 통해 음성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면서 크롬캐스트가 연결된 TV에서 동영상을 스트리밍할 수 있게 해준다.
왜 AI 스피커인가?
AI 스피커는 스마트폰 내에 머물렀던 음성비서 기능을 가전제품과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디바이스로 확장시키는 플랫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전제품을 비롯하여 집안의 장치를 연결, 제어하는 스마트 홈의 고도화를 앞당기는 '커넥티드 홈'을 구현하는 핵심체인 것이다. AI 스피커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음성’이라는 도구가 지닌 장점 때문이다. 음성은 사람의 가장 본질적이고 유용한 의사전달도구이다. 하지만 ‘자연어’인 사람의 음성을 컴퓨터가 인식하여 상호 소통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음성인식 관련 연구의 시작은 1954년 IBM과 조지타운대학이 참여한 기계번역기술개발 프로젝트였지만, 당시는 컴퓨터 성능이 불충분하여 2000년 중반까지 음성인식기술은 상용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011년 10월 아이폰 4S에 애플의 AI 비서프로그램 시리(Siri)가 탑재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2013년에는 구글이 음성검색 기능 ’오케이 구글(OK Google)'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다가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가 출현하면서 AI 스피커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박되었다.
AI 스피커는 기계를 넘어 동반자로
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독거노인 또는 장애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이 낮을 것이라 예측했었다. 하지만 AI 스피커를 임상실험한 결과, 긍정적 효과가 매우 높은 결과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약자는 외부와의 소통이 제한적이지만 AI 스피커가 제공하는 '말벗 기능' 등을 통하여 외로움과 소외감, 우울감 등이 완화되었기에 이 기기의 보건의료 및 사회적 가치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AI스피커를 대하는 인식에서 사회적 약자층은 상대적 중요도 순위로 AI 스피커를 사물이 아닌 사람처럼 여기는 '의인화'를 1순위로 꼽았으며 이어 실재감, 즐거움, 상호작용, 따뜻함, 친밀감 등 정서적 측면 순이었다. 하지만 대조군인 일반 고령층은 주로 기능적 측면을 중요하게 여겨 1위로는 AI 스피커 사용시간, 이어 기능적 만족감, 용이성, 나이, 실재감, 즐거움 순으로 선택했다. 이것은 AI 스피커의 정서적ㆍ기능적 지원이 고령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적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며 지방자치단체들과 기업 등이 이 효과와 가능성에 주목하여 사회취약계층의 정서와 안전을 개선하는데 AI스피커의 잠재성을 적극 활용하려 노력 중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각종 전자제품과 시설이 소통하는 사물인터넷(IoT)의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될 것으로 예견된다. 또한 이것을 제어하는 플랫폼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음성기반의 AI 스피커가 IoT 시대에 유용한 기기제어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음성인식 AI 비서 프로그램과 스피커가 융합된 AI 스피커가 어디까지 발전하며 고령화 헬스케어 시대에 어떤 역할을 담당할 지 궁금해진다.
약업계도 AI 기술을 채용하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학과 기업들도 이미 AI 기술을 신약개발과정에 응용하기 시작했고, SNS 빅데이터를 마케팅과 고객 타케팅에 이용하여 성공한 사례도 등장하였다. 방대한 환자기록, 금융 및 거래 데이터를 활용한 약국경영과 약료업무의 혁신은 이제 약국을 넘어 신약의 연구와 개발, 의약품의 유통과 전문화된 약료 실행, 방문약료 등 지역사회 보건증진과 개인의 평생건강관리, 커뮤니티 케어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다. 약국과 악사도 급격한 인공지능기술의 활용 및 디지털 돌봄 시대에 부응하며 변화의 물결을 유관 전문기업들과 함께 헤쳐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5-06 10: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