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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2> 약국 및 약무의 혁신: 헬스케어 3.0 시대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미래 사회의 모습을 흔히 테크사회(super smart society), 초갈등 사회, 초고령 사회, 초개인화 사회, 초솔로 사회, 우울 사회, 위험 사회 그리고 수축 사회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의 사회적 트렌드를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부르는데, 올드 노멀(old normal)시대를 이익, 표준, 집중, 경쟁 및 성장으로 표현한다면, 뉴노멀 시대는 지속가능성, 다양, 분산, 공감 및 개성이 중시되는 특성이 강조된다.
과학기술에 의한 제 4차 산업혁명
혁명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이 미래 사회의 생활모습과 산업근간을 바꾸어 놓을 기세이다. 물론 개개의 기술이 가진 영향력도 파괴적이지만 이들이 융합될 때의 파급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미 약업현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조제자동화기기, 전산관리시스템 등이 실용화되어 있는데 머지않은 장래에는 인공지능과 연동된 약국경영 및 환자관리시스템이 보편화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약사의 직능과 약국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는 약사의 직업윤리의식 확대 및 전문약사제도의 도입과 그 궤를 같이 하리라 예상되는데, 당장은 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시장의 변화에 대하여 많은 약업종사자들은 제도와 법률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기대하지만, 산업현장에서 다양한 변화와 혁신방안이 시도되고 이로 인한 문제점을 정리, 관리하는 수순으로 제도가 정비되는 것이 상례이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혁신마인드의 제고가 약업종사자가 최우선적으로 갖춰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
혁신이란 현재까지의 관행이나 구형 시스템을 고치고 벗어나는 과정을 포함한다. 지금 약업현장은 한약사와의 직역 다툼, 인터넷 판매로 인한 유통질서의 변화, 코로나19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 등이 주요 현안이지만, 이는 모든 직역이나 산업분야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기에 보다 중요한 점은 각양 각색의 도전과 변화에 대하여 약사, 약사회, 약업종사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와 고비를 극복할 역량을 축적하였는가 여부이다.
조직적 규모의 혁신을 경험하지 않고 현재의 구조적, 심리적, 관행적 장애물을 방치한 채 뭔가 현재의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묘수 만을 찾거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혁신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필자가 자주 주장하듯이 ‘약사법’이란 국회의원 약 150명만 찬성하면 언제든지 내용 변경이 가능한 법률체계에 불과하다. 그래서 약사 직능은 유관 법률조항에 의지하기 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에 기여함으로써 국민이 필요로 하며 국민의 가치를 높여 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존중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근래에 우리나라 대학이 존폐의 위협을 느낄 만큼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필자가 대학에 근무하다 보니 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의 존폐 위험은 급격한 학령인구의 감소나 반값 등록금 기조의 유지, 정부의 지나친 간섭, 그리고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2018년 이후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나, 반값등록금으로 인한 재정의 악화, 중앙정부의 대학에 대한 통제강화 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예견되거나 지속되어 온 현상이기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약업분야도 혁신을 이루려면 우선 변화의 방향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혁신마인드를 제고시킨 후, 혁신의 추동력과 모멘텀을 이끄는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이에, 헬스케어 패러다임 변화의 방향성부터 고찰해보자.
헬스케어 개념의 확대와 시대적 발전
약업도 크게 보면 헬스케어 산업의 일부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우선 건강에 대한 개념이 지난 수십 년간 변화하였는데, 약업의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큰 변화는 의약품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그리고 복지 중심으로 헬스케어 및 건강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요구가 지속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그림1). 다만 아쉬운 점은 국민의 요구는 복지지향적(파란색 화살표)인데, 아직도 보건의료현장은 여전히 환자지향적(흰색 화살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1. 헬스케어 개념의 확대 (출처: 필자 작성)
헬스케어 개념의 변화란 욕구의 지향점, 핵심기술, 소비트렌드, 전문인력구조 등 많은 사항이 변했다는 의미이며 이를 학문적, 산업적 관점에서 1~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우선 헬스케어 산업의 범주는 (1)의료서비스, (2)의약품(제약/바이오), (3)의료기기, (4)화장품, (5)식품(건강기능식품)을 포함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기대수명이 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Well-Aging, Wellness, Anti-Aging)’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사회적, 기술적 환경변화에 따라 외연이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그림2).
그림2. 헬스케어 개념의 시대적 변화 (출처: 삼성경제연구원)
이는 약국과 약사의 역할도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게 적응하고 변해야 한다는 것이므로 약사에게는 큰 자극과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헬스케어 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2가지 분야부터 ICT와 융합하여 고도화되는 양상이다. 우선 의료서비스 분야는 개인맞춤형 예방과 관리에 건강정보(big-data)와 AI를 활용하여 이른바 '4P (예측, 예방, 개인화, 참여)시대'에 진입하였다. 그리고 제약바이오(신약발굴) 분야는 미충족의료수요도가 높은 만성질환을 중심으로 축적된 학술정보(big-data)에 AI를 이용한 신약후보개발시스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커지고 있다. 물론 우리의 약업시장은 의료서비스 분야에 속한다고 정의하는 것이 합당하다.
헬스케어 분야와 ICT의 융합양상
필자가 지난번에 고령자를 위한 기술을 ‘시니어 테크’라는 용어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고령화와 같은 인구학적(demographic) 변화에 기술(technology)를 결합시킨 ‘데모테크’ 라는 말이 헬스케어 분야의 발전양상을 표현해 주고 있다. 헬스케어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양식에 따라서 진보하여 E헬스케어에서 U헬스케어로, 스마트헬스케어를 지나 IT헬스케어로 발전 중이다(그림3).
현재 우리나라는 ‘스마트 헬스케어’가 구현되는 시점이지만 조만간 ‘IT헬스케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이는 고속통신망(5G), 생체신호센서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과학과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의 성숙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아니면 급격히 구현될 것으로 예견되는데, 어쩌면 IT헬스케어의 인프라 기술이 완성될 2040년 무렵이 그간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초인공지능의 출현 시점인 ‘기술특이점(Singularity point)’ 시대의 개막과 겹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약사와 약국과 약료서비스는 바로 이 ‘IT헬스케어’ 시대에 적합한 직능과 역할, 기능, 그리고 서비스 모델을 구축하고 운영되도록 끊임없이 혁신하고 발전해야 한다.
그림3. 헬스케어와 ICT의 융합트렌드 (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세기적 기술 및 사회 혁신은 헬스케어 영역으로부터
선진 산업국가의 정부는 특정 제도를 정비하거나 직능단체 혹은 이익집단을 보호하기에 앞서 산업적, 경제적 효과를 우선시 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의 스마트 헬스케어 패러다임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보유한 정보통신 기술과 융합되기 쉬우며 더불어 유관 산업의 발전과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술을 발전시켜 시장에 적용하면 국민의 보건의료수준과 삶의 질이 향상되며 건강보험 재정까지 절감되는 효과를 먼저 고려한다. 그래서 이제는 의료와 약료 서비스는 직능의 관점(직능 차별성과 배타성, 안전성)보다는 시스템의 관점(경제사회적 효율성, 산업경쟁력, 소비자 가치)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란 데 정부나 소비자들은 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정체된 제도나 시스템이나 사회구조는 개혁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서 선제적 전략과 대응이 중요하다. 변화와 위기를 조율하고 대응하는 것이 혁신이고 진정한 실력이다. 약업은 분명히 헬스케어 산업의 일부분으로 해석되고 잇다. 그래서 ICT가 융합된 스마트 헬스케어, 그리고 IT헬스케어 패러다임 속에 놓였기에 이러한 변화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스스로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7-15 10: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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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1> 100세 시대의 고찰: 소명의식과 은퇴의 재구성
소명(召命, calling)이라는 말은 초월적 끌림을 기반으로 하며,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한 목적과 의미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새롭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타인을 돕고자 하는 가치와 목표를 중요한 동기로 삼는 것이다. 이는 원래 종교적 용어로 사용되어왔는데 신으로부터 도덕적,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라고 부름을 받았다(called)고 해석되는 특별한 용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종교인이 아니라도 깊은 성찰을 통해 내적 요구나 음성(inner voice)를 따르는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누구나 어떤 일을 하든 ‘평범한 일상과 일터에서 자신이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는 것’으로 확대 해석되어 이제는 심리학과 경영학에서도 주목하는 연구주제이다.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소명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장점과 고령화 시대에 이것이 왜 중요한지 살펴보자
소명의식의 요인
전문가에 따르면, 소명의식을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질문에 진지하게 생각하여 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1)초월적 부름, 초월적 인도력이다. 이것은 무엇 혹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려주는 내적인 지식과 성찰이요 내면의 소리와 관련된 것이다. 다음은 (2)목적, 의미, 가치추구이다. 이것은 일을 통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일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가, 삶에서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가 이다.
이어서 (3)일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것과 개인과 환경에 대한 적합도이다. 이것은 일과 자신을 얼마나 가깝게 여기며, 또 일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 이다. 끝으로 (4)친사회적 지향성과 친사회적 인도인데, 이것은 자신의 일이 타인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공공선에 기여하여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각 사람의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다. 혹자는 돈을 버는것이 중요하고(Job), 어떤 이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만(Career), 어떤 이에게는 일의 의미를 추구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것(Vocation)이 중요하다.
낯설지만 중요한 소명의식
약 6개월전에 ‘100세 시대의 고찰’이란 부제로 연재 글을 시작하면서 이상적인 노화의 조건을 언급하였다. 장수시대에는 개인에게 건강과 재정도 중요하고, 할 일과 대인관계와 사회참여도 중요하지만, 실은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생명이 존속할 때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생명의 존속기한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여서 곧 나의 삶이 완성되는 것인데 단지 통계학적으로 국가의 평균수명이 연장되었다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정 우리는 하루하루를 복되고 값지게 살기 위해 올바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소명의식은 전문직, 사무직, 일용직을 포함한 직장인은 물론 가정주부, 학생에게도 존재한다. 아직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학생 신분일 지라도 장차 가지게 될 직업에 대해 일찌감치 소명의식을 가지고 준비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소명의식을 가진 학생이 학업에 대한 몰입도와 진로선택에 대한 효능감과 성숙도가 높게 나타났으며 직장인의 경우는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높고 직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소명의식의 개인차이
연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직장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같은 조직, 같은 업무 안에서도 구성원간 소명의식의 차이가 뚜렷했다. 소명의식이 높은 이는 어디서든지 업무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으며 이는 외국에서 진행된 연구결과와 비슷했다. 즉, 소명의식은 동서와 직업을 막론하고 대체로 공통적인 결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일의 의미와 가치는 일을 맡은 사람이 스스로 부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기에 소명의식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명의식을 보유했을 때 누릴 장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위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이 유익하지 않을까?
필자가 2019년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노인학 강좌를 진행했다. 몇주간의 강좌가 끝날 무렵, 75세가 넘은 수강생 한 분이 다가와 지갑 속에 늘 넣고 다니는 자신의 성취내역을 보여주었다(그림 1).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그분과의 대화 속에서 자기 인생에 대한 소명의식, 감사,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잘 마감하고자 애쓰는 의욕과 신중함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림1. 나의 삶의 발자취 (출처: 2019년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70대 수강생)
은퇴와 소명의식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영향
민수기 8장 23~25절을 제외하면 성경 속에도 인간의 은퇴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과 북미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가 은퇴라는 개념이 19C말~20C초에 등장했다고 한다. 이때는 연금도 없었기에 대략 사망하기 3년 전까지 일하는 것이 관례였다. 공식적으로 은퇴제도를 만든 최초의 국가는 1889년의 독일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회적 변화도 잠시, 인류는 놀랍게 연장된 장수시대에 집입하면서 지난 100여년 간 지속된 ‘은퇴’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100년만의 새로운 혁신, 은퇴를 재구성하기
은퇴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하나의 유익한 충격이며, 공식적 은퇴 이후는 노인이 성장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의 재능과 기질, 삶의 경험에 좀 더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으며, 한 사람의 소명을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변화를 꾀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은퇴 후에도 할 일(노동)이 있다. 그래서 ‘노동’이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에너지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식 은퇴와 연금제도 모델을 막 도입한 우리나라는 제도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다시 서구의 재구성된 은퇴모델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그림2).
그림2. 인생 3막, 은퇴의 재구성 (출처: 나이듦의 신학, 폴 스티븐스 저, 2018년)
우리가 죽기 전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다양한 면이 강조되기도 한다. (1)우리는 일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2)노동은 세상에 유익하다. (3)노동은 자신에게 유익하다. (4)노동은 이웃을 사랑하는 실제적 방법이다. (5)노동은 영적성장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6)노동은 다가올 삶을 준비하게 한다. 즉, 일하는데 발휘되는 재능과, 실제로 일하는 방식,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의 문제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노동조건을 갖춘 최상의 일터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소명의식과 노동, 은퇴, 여가 등에 대한 노인학적 연구가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인데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고령화 시대가 밀려왔다. 이런 변화상을 차분히 준비했던 이에게는 대처할 여유와 적응력이 있겠지만, 시류에 맡기 듯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식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것은 아름답고 보람된 삶의 마감을 행하기에 너무 단순한 대응이 아닌가 싶다.
인생후반기의 용기와 지혜
어떤 은퇴자의 고백에 의하면, “이제 남아있는 단 하나의 계획은 ‘잘 죽는 법’을 배우고 싶다”라고한다. 노년기에 자신의 소명을 찾는 일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1)매 순간 준비되어 있어야 하며, (2)소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3)소명을 지키기 위한 훈련도 필요하다. 또한, 우리 인생은 우상의 유혹을 받아 쉽게 어그러질 수 있다. 인생의 1~2삼분기에는 돈에 눈이 먼 이득, 사람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영광, 성공으로 쾌락을 얻는 즉각적 황홀감의 우상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은퇴한 3분기(노년기)에는 자기만족, 쾌락, 의미추구라는 우상에 쉽게 빠지기 쉽다.
서구문화권에서는 나이 듦의 악덕으로 다음과 같은 7가지 치명적 죄악을 꼽는다. (1)교만(Superbia)이란 자신을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2)시기(Invidia)란 남이 잘되는 것을 바라보며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3)분노(Ira)란 통제하려는 불타는 욕망을 말한다. (4)태만(Acedia)이란 일 자체를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5)탐욕(Avaritia)이란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욕구이다. (6)탐식(Gula)이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 먹기 위해 사는 것이다. (7)음욕(Luxuria)이란 타인을 소유하고자 하는 내적갈망이다. 그래서 미덕을 지키기 위해 오래 인내했다는 사실이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성공하지 못해도 미덕을 위해 고군분투한 사실이 권위의 진정한 근거가 되는 것이 아름답고 정당하다.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꼽힌다. (1)노년에 자기의 소명을 버리지 않았다(소명으로부터 은퇴하지 않음), (2)노년에 개인적 결점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부풀려 졌다(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났음), (3)노년에도 맡은 사역에 적극적이었다(다음세대를 위해 투자, 소망을 품은 채 죽음 이후 세계를 바라봄), (4)노년에도 빛이 청정한 상태였다(절대자와 관계에서 늘 열려있고 새로운 계시를 받음).
나이듦의 미덕
나이 들며 갖추는 아름다운 특성으로는, 절제, 겸손, 인내, 단순함, 믿음(절대자를 향한 열렬한 반응), 소망(마지막 때를 향해 나아가는 사실을 믿음; 다음세대에 대한 투자; 평안히 죽음을 맞이함; 살면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더 큰 삶을 준비함), 그리고 사랑(사람, 장소, 공동체를 진심으로 돌봄) 등이 거론된다.
인간의 미덕은 함양될 수 있다고 한다.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을 원하든지 배우는 것이다. 성품은 습관에 영향을 주고, 습관은 선택에 의해 형성된다. 그래서 도덕적 훈련이 미덕의 함양에 도움이 된다. 또한 미덕은 개인 스스로 쌓아 올리는 것만으로 불가능하며 절대자의 선물임을 인정한다. 도덕적 삶은 단순히 인간적 성취가 아닌 가장 중요한 것에 반응하며 늘 절대자 중심으로 사는 것이다.
소명의식은 (1)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심의 진실된 욕구와 끌림을 이해하며, (2) 일상의 일을 통해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며, (3) 자신의 주변에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소명의식을 품고 일할 때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사람은 그 당사자라고 한다. 100세 시대,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정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6-30 1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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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40> 100세 시대의 고찰: 시니어를 위한 주거 혁신
근래 수년간 우리나라에 지역사회통합돌봄(Community Car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커뮤니티 케어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우리사회에 전국민에 대한 보편적 복지와 더불어 헬스케어를 실현하는 한가지 대안으로 떠오르는 바, 미래사회에 발생할 커다란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주거문화의 혁신이라 생각한다.
전후 70년간 우리의 주거문화는 산업화와 더불어 집단주택(아파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도시의 과밀화 및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택이 보유자산의 핵심이 되고 아파트와 자가용을 소유하면서 양호한 교육환경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다소 획일화 된 방식을 선호하였던 베이비붐 세대의 사람들이 이제 다시 자신들의 노후생활에 대한 혁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성공적 노화의 3가지 요건
흔히 (1)노화에 따른 질병의 예방과 관리, (2)최상의 신체 및 정신 기능을 유지, (3)적극적 사회참여 등을 성공적인 노화의 3가지 요건으로 손꼽는다. 하지만 이것을 구현하는 방식에는 상호연계 없이 각각에 대한 상세 방안을 추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역사회통합돌봄 등 고령사회를 대비한 접근방식에는 재택복지(홈케어)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노인을 위한 복지행태는 주택에서 시작하여 주택으로 끝난다는 말도 있다(그림1).
그림1. Community Care (출처: Making our health and care systems fit for an ageing population, kingsfund.org.uk)
성공적인 한국형 커뮤니티 케어를 위한 방안으로는, (1)복지목표와 사회적 투자에 대한 보다 폭넓은 사회적 합의, (2)건강한 고령화 모델 구축, (3)노년기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비전의 공유, (4) 커뮤니티 케어를 노인정책의 중심이론으로 채택, (5)성공적인 노인중심 통합케어 제공의 원칙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통적 실버타운의 개념과 실태
‘실버타운’이란 말은 1960년대 미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노인전용 주거지역에서 기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복지형 주택을 ‘실버(복합)타운’이라 불렀고 60세 이상의 건강한 사람이 입주 대상이었다. 실버타운은 입주자의 생활편의를 위한 체육시설, 여가 및 오락시설, 의료시설 등 각종 서비스 시설이 갖추어진, 단순 거주지가 아닌, 입주자의 2차적 욕구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주거단지를 뜻한다. 실버타운은 소요되는 일체의 비용을 입주자가 부담한 입주금으로 운영하는 유료시설로서 임대 또는 분양 방식으로 입주했으나 2015년 노인복지법의 개정으로 더 이상 분양은 불가능하다.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된 우리나라의 실버복합타운의 문제점은 첫째, 실버복합타운의 범위가 제한적이란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에서도 실버타운을 중산층 이상 대상 유료시설로써 건강한 노인용 시설이라고 제한하지만, 노인의 경제수준, 건강상태는 개인별로 다양하므로 다양한 요구사항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실버복합타운의 정의와 범위가 재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노인전용 주거정책에도 불구하고 노인용 주거시설과 요양시설의 난립과 돌봄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노인용 주거시설은 무료와 유료 시설로 양분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 이상을 위한 유료시설로 양분되어서 실제로는 중하층을 위한 주거공간이 많이 필요하지만 이는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시설이 난립하고 종말돌봄(터미널 케어) 등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셋째, 노인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요구사항인 안전, 쾌적, 편리하게 설계된 주택에 거주하는 것과 생활시설, 대중교통, 녹지공원, 의료시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욕구충족과, 접근성을 선호하는 사실들을 모두 충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실버복합타운의 개발 방향
첫째는, 노인의 거주공간을 중심으로 혁신을 꾀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실버복합타운이 유료노인주택이라고 정의된다면, 미래에는 경제상태, 건강상태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소가능한 시설을 지향해야 한다. 더 이상 건물 안에서 모든 서비스가 완비된 폐쇄공간(Gated Community)이 아닌,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공간(Open Community)으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면서도 돌봄서비스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방식의 혁신이다. 노인의 건강, 식사, 일상생활지원 서비스의 한계에서 나아가 일하고 싶은 욕구, 지역주민과 소통하려는 욕구, 사회에 기여하려는 욕구가 실현되는 공간의 제공이 중요하다. 더불어 터미널 케어 서비스 제공(살던 곳에서 임종까지 가능)이 가능해야 한다.
노인을 위한 혁신적 주거 모델
미국 애리조나주의 선시티는 미국 최초의 대규모 은퇴자 마을(Retirement Community)로써 서부 선시티에만 3만명 이상이 거주하며, 10만~100만 달러의 단독주택, 복층아파트, 정원형 아파트, 콘도 등의 임대도 가능하나, 가족 중 1인이라도 55세 이상, 19세 미만이면 입주가 불허된다. 입주자의 자녀가 방문하여도 최장 90일만까지만 체류할 수 있고, 자신이 소유한 집이라도 헛간이나 창고의 자의적 증축은 불허된다. 거주민이 자치회를 만들어 도시를 직접 운영하므로 이른바 “요양원은 NO! 같이 모여 즐겁게 살자”라는 구호가 온전히 실현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선시티형 실버타운 모델도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된다. 새로운 모델 중의 하나는 ‘대학 연계형 은퇴자 마을(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UBRC)’인데, 지역사회의 은퇴자 커뮤니티가 대학 캠퍼스 안에 노인전용 주거시설을 건설하여 평생교육프로그램 운영하는 것으로써 대학진학률이 높았던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1946~1964년생)의 고령화 현상에 의한 자연스런 산물로서 대학교 부근에서 노후시간을 보내며 청년기의 향수를 느끼고 평생교육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쉽다는 장점을 가진다. 더불어 대학들은 학생수의 감소와 주정부의 재정지원 감소로 인해 신규 수익원 확보가 절박한 현실을 타개할 방편이 되는 이른바 일거양득의 묘수이다.
이미 미국의 러셀大, 플로리다大, 스탠퍼드大, 노트르담大, 듀크大, 코넬大 등도 은퇴자를 위한 ‘대학 연계형 은퇴자 마을(UBRC)’을 조성했다. UBRC의 입주자는 대학 도서관이나 식당을 이용할 수 있으며, 대학의 강의를 청강하거나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의 UBRC는 2014년에 약 100여개였으나 앞으로 20년 간 미국 대학의 10%인 400여개가 UBRC를 구축하리라 예상된다.
노인요양시설, 주거복지시설의 선진 모델
첫째,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이다. 이곳은 초기 치매를 앓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수용하는 특별 요양원인데 입주자들을 병실에 수용하는 것이 아닌, 마을 내부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친숙한 생활환경을 재창조할 수 있도록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며, 자유롭게 장도 보고, 공방에서의 활동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마을 내에 소형슈퍼마켓, 정원, 미용실 등 보통의 마을 모습인데 이곳의 직원들은 환자(입주자들)와 동행하고, 요구사항을 상시 들어주기 위해 특별히 배정되고, 공간 및 시설들도 입주자가 길을 잃거나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더불어 입주자가 활동적으로 능력을 증진시켜 줄 수 있도록 요리, 조형예술 등 25개의 상이한 클럽을 운영 중이다.
둘째, 독일의 바트 뵈리스호펜이다. 전통적으로 목축업을 하던 이 도시는 1800년부터 ‘자연이 최고의 약국’이라고 주장하며, 물, 운동, 허브 등을 활용한 자연치료법으로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마을로 자리매김하였고 이제는 노인을 위한 관광도시로 발전하였다. 온천도 개발하고 치료요양시설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주변까지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23개의 치유시설과 170여개의 호텔, 펜션을 운영하여 노인요양시설을 일종의 산업으로 혁신하여 지역활성화를 이룬 성공적 사례로 손꼽힌다.
셋째, 일본의 요양시설의 지역사회개방과 자원화 모델인데, 일본은 65세 이산이 인구의 26%인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하였기에 지역케어시스템 확립을 추진 중이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개발하였다. 특히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노인 홈’의 지역사회 대상 개방 및 자원화 추진은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일본 노인정책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후생성 산하 중앙사회복지심의회 노인복지전문분과회는 노인 홈의 입소자가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노인 홈의 다양한 자원을 지역사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입소시설의 지역사회 공헌 및 기여 사업방안을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과거의 일본도 사회복지시설 중 입소시설은 기존 지역사회와 격리되는 경향이 있었고, 노인 홈도 다른 사회복지시설과 비교할 때 지역사회에 대한 폐쇄적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노인 홈은 의료, 보건, 복지의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한 곳이므로 이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며 지역사회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혀서 주민에게 신뢰받는 자원이 되었다.
노인용 요양시설 및 주택의 최신 트렌드
첫째, 세대통합형 모델이다. 일본의 ‘노유(老幼)복합시설’ 모형은 어린이집, 유치원, 아동복지관 등의 보육시설 및 아동시설이 노인주간보호시설, 노인요양시설 등과 같은 노인시설과 동일 대지, 혹은 동일 건물에 함께 축조되거나 병설되어 있다. 한편, 독일의 모형은 고령화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세대교류를 추진 중이며, 세대교류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고 다양한 모형을 개발하는 등 독일정부가 세대교류의 효과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하고 실천하는 점이 특징이다. 미국은 세대교류의 발상지로서 1960년대부터 조부모 프로그램 같은 세대교류를 시작했다. 세대간 상호교류 기회를 의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 세대의 심리적 사회적 욕구에 기여한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세대교류 프로그램을 제창하였고, 이후 노유복합시설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전술한 (1)UBRC 모형은 1980년 초반, 지역사회 노인과 은퇴한 교직원 및 동문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고 개발되었다. 2000년 초반에는 대학연계은퇴주거단지가 전국적으로 개발되었고, 많은 대학이 노인에게 교육, 연구 및 공공서비스 등의 다양한 캠퍼스 생활환경을 제공했다. 대학이 사업주체로서 실버타운과 같은 노인복지주택을 직접 운영하거나 노인복지주택의 거주자들이 대학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은퇴자 커뮤니티와 대학 모두 상승효과를 이끌어내었다. 따라서 필자는 우리나라도 지금 지방의 대학들이 경영난에 빠져서 폐교가 불가피하다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UBRC를 한국실정에 맞도록 혁신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미국의 두번째 모형인 (2)유년세대연계(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ies, CCRC)은 연속적인 케어가 가능한 은퇴자 커뮤니티 모델로서 초등학교(유년세대) 연계 노인복지주택인데, 대표적 사례로 메사추세츠주 Dedham에 위치한 ‘New Bridge on the Charles를 들 수 있다. 여기는 750명의 주민이 거주 중인데, 2010년에 ‘The Rashi School’을 개교하여 유치원~8학년까지 308명의 아동이 노인과 상호공존과 이익관계를 형성한다.
미국의 세번째 모형은 (3)청년세대연계 Longview (an Ithacare community)이다. Longview 는 뉴욕주 Ithaca시에 있으며 1974년 Ithaca College와 Cornell University의 합작으로 출발했다. 100개 독립생활유닛(independent living units), 60개 노인생활보조유닛(assisted living units)로 구성되며 Longview와 Ithaca College는 독특하고 활동적인 프로그램을 토대로 노인과 청년 사이의 세대연계 사회를 성공적으로 구축하였다.
둘째, 자연을 이용한 생태학적 주거단지 모델이다. 독일 뮌헨시는 인공생태호수, 우수침투 조경, 일조량을 조절하는 입면 등 자연친화적, 생태학적 시설로써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Riem주거단지’를 조성했다. 청정공기의 공급과 순환, 공간의 경제적 사용과 물순환 개념을 수자원 소비감소 및 수질확보 방식으로 실현했고, 교통문제는 소음과 배기량 감소로 쾌적함을 향상시켰고, 토양을 적정용도로 사용하여 보존했으며, 도시 전체의 쓰레기 발생량까지 감소시켰다.
일본의 마테르아노우는 태양열집열판, 풍력발전시설, 주차장 및 옥외녹화 등 생태학적 시설이 갖춰진 주거단지인데, 주차장과 차양, 에어필터, 온도/습도 조절기능을 겸비한 발코니를 녹지화하면서 미세기후를 고려해 부지 내 산책로와 바람길까지 조성하였다.
끝으로 서유럽에서 비교적 흔한 유아들의 교육과 건강을 위한 ‘숲 유치원’ 모형이 있다. 유아의 비만, 주의력집중장애, 우울증 등 건강 및 사회적응 문제를 해결하며 창의성과 상상력 발달을 촉진시키는 이점이 있는 숲 유치원은 숲 속에 작은 오두막 시설을 갖거나 유치원 자체에 숲을 조성하여 동물을 기르거나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는 자연활동을 제공한다. 통합적 숲 유치원은 일반 유치원이 숲 활동을 교육과정에 도입한 경우로써, 매일 2시간 정도 숲에서 지내거나 일반 유치원과 숲에서 1주일 씩 교대로 지내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100세 시대 주거혁신을 통한 복지 및 헬스케어의 실현
약사 등 보건의료전문인에 의한 질병관리나 치료, 투약과 복약지도는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한 작은 부분집합에 불과하다. 집은 삶의 안식처이지만 단순히 공간만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공간에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위한 힐링공간을 제공하여 거주자에게는 삶의 편안함을, 지역주민들에게는 삶의 편안함을 제공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시설들이 연구개발 중이다. 거주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일할 수 있는 공간,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이제 최신의 지역사회통합돌봄 모델은 4대가 함께 어울려 사는 것으로 변모 중이다. 지역사회의 아이들과 더불어 다양한 활동을 하고, 대학가에 머물면서 대학생이 되어 대학생과 어울려 본인의 자아실현 및 어른으로 경험과 지혜를 후대에 전수하고 있으며, 지역의 아이들과 함께 자연에서 소통하면서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100세 시대를 지향하는 모습이 아닐까?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6-16 1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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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9>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을 위한 기술
고령화 사회가 은퇴를 미룬 노년 세대 때문에 청년의 일자리가 줄고, 부양부담까지 가중시켜 세대갈등을 촉발시킬까 우려된다. 하지만 고령화로 사회의 구조가 변화되면서 새로운 투자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란 긍정적 견해도 있다.
고령화 시대의 시니어는, 무시할 수 없는 사회구성원이자 신시장의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과거의 시니어 대비 소비성향도 매우 다르다. 외식, 엔터테인먼트, 문화의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성향이 뚜렷하며, 자기계발과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여유로운 경제력과 건강을 바탕으로 소비와 여가를 즐기며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는 시니어 세대, 인구고령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선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시니어 시프트
근래 ‘노인’ 대신 서구식 표현인 ‘시니어’를 선호한다. 2011년 국회는 ‘노인’이란 용어를 ‘시니어’로 정비하려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법률이나 학술적으로는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나 산업적으로는 50~64세를 ‘New Senior’나 ‘Active Senior’로, 65세를 ‘Old Senior’나 ‘Silver’로 구분하는 추세이다. 기업이 주목하는 부류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뉴 시니어’들이다. 우리나라의 고령친화시장 규모는 2016년 27조원에서 2020년 78조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는데,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기술이 고령친화산업과 융합되는 양상이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를 시작한 2007년이 소비 트렌드의 변곡점이었다. 일본 유통기업 AEON사는 2011년 전략보고서에 ‘Senior Shift’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2013년에는 도쿄의 카사이점을 리뉴얼해 ‘그랜드 제너레이션’ 몰로 바꾸었다. 10~20대를 타깃으로 삼았던 일본의 편의점도 고령 소비자에 집중했는데 세븐일레븐의 고객은 1989년 29세 이하 고객이 63%이었으나 2013년에는 29%로 줄어들었고 동기간 50세 이상 고객은 9%에서 30%로 증가했다.
시니어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키는 미국의 서비스도 괄목할 만 하다. 1975년에 설립된 ‘로드 스칼러’사는 5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교육과 여행을 접목시킨 상품을 제공했는데,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며 큐레이터의 강의를 듣는 ‘Art Lovers’ 및 역사유적지를 열차로 방문하는 ‘Train Journeys’, 그리고 시골마을을 방문해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My Hometown’ 등 매년 4,600번의 프로그램에 10만명이 참여했는데 대부분은 대졸이상 학력에 평균연령 72세 노인이었다.
미국의 Lively 노인케어서비스는 냉장고, 출입문, 의약품상자에 센서를 장착해 동작을 감지하여 데이터를 수집한 뒤 건강을 관리해준다. 미국의 24eight사는 압력센서를 부착한 스마트 슬리퍼를 개발했는데, 노인의 압력과 보폭을 측정해 평소 때와 다른 변화가 감지되면 가족과 주치의에게 알려 사고를 예방한다. 자율주행자동차나 로봇 역시 반응능력이나 근력 등이 떨어질 수 있는 고령층에 적합한 기술의 예이다.
노인을 위한 기술, Aging Tech
로봇,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하는 스마트 헬스케어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활동성을 증가시키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는데, 노약자가 착용하면 시속 12㎞까지 움직이도록 다리 힘을 강화시켜주는 로봇인 ‘휴마’를 비롯해 의료로봇 ‘H-MEX’, 보행보조로봇 ‘H-LEX’는 현재 의료기기 허가용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노인 재활훈련을 돕는 로봇도 있다. AI와 사물인터넷을 활용하여 뇌졸중·치매 재활기기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는 센서가 장착된 스마트 장갑을 통해 병원이 아닌 집에서 재활훈련을 하도록 도와주는데, 글러브에 장착된 센서와 AI가 환자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재활훈련 난이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준다(그림1).
한 챗봇은 AI 기술로 진료기록은 물론, 환자-의사 간 대화를 분석하여 고혈압, 당뇨 환자에게 식단과 건강관리법을 조언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치매예방 앱, 스마트폰 화면 글자를 크게 확대하거나 음성으로 변환시켜 읽어주는 앱도 있다.
그림1. 치매·뇌졸중 재활솔루션을 제공하는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출처: 네오펙트)
사고예방 기술
고독한 노인은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갑작스런 사고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L사의 ‘부모안심 IoT 패키지’는 자녀가 노부모의 외출·귀가 여부를 확인하고 가스밸브나 전열기구를 원격으로 통제하며 홈CCTV를 통해 부모님의 건강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안심 LED솔루션’은 LED 전등에 실시간 동작감지센서와 텍스트-음성 변환기능을 내장하여 독거 치매노인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일정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생활관리자에게 알려주는 서비스인데, ‘IoT기반 위치추적기’는 집밖에서 길을 잃은 치매노인의 위치를 알려준다.
노인전용 스마트폰은 통화 시 의도하지 않은 터치를 예방하는 ‘똑똑한 터치잠금’과 별도 버튼으로 데이터서비스를 차단하거나 켜는 ‘데이터 잠금’ 기능도 있다. 라디오 안테나를 내장하여 데이터를 사용없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똑똑한 FM라디오’ 기능도 있다. 또한, 노인용 IoT 스피커 ‘소통박스’는 휴대폰 사용에 미숙한 고령자가 음성만으로 지인과 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실버 러시
식품업계는 노쇠한 노인의 특징인 근감소증 개선방안을 찾는 연구소를 출범시켰다. 혈류를 개선해주는 오메가-3와 항산화제 베타카로틴이 함유된 치즈 등 시니어 푸드도 개발하였다. 시니어 전문식자재 기업은 국공립시설, 요양원 등 고객맞춤형 상품을 선보였다. 음식을 삼키는 것이 어려운 노인이나 환자를 위해 식재료를 갈거나 다져 만든 ‘연화식’도 제공한다.
유통업계는 간병 및 보조용품, 병원 및 의료용품을 판매하는 시니어 전용관 ‘실버스토어’를 운영하며 노인의 편의를 위해 인터넷 대신 전화로 주문하는 ‘텔레마트’도 선보였다. 오프라인 편의점 업계는 성인용 기저귀 등 노인전용브랜드를 개발했다.
금융업계도 노인의 관심사인 건강과 여행을 연계한 통장을 선보였다. 이는 환갑, 칠순 등 기념일이나 자녀결혼, 여행, 공적연금수령 등 이벤트를 맞이할 때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또한, 은퇴설계 등 맞춤형 금융서비스와 여행·쇼핑·건강 등 비금융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정보격차 문제
극장이나 철도, 공항에서 표를 사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일이 흔해졌다. 그러나 기계주문기와 마주하는 노인의 형편은 참담하다. 글씨 크기도 작고, 높이도 안 맞는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이고 대기 줄을 서지 않아 편리하다지만 노인은 키오스크와, 모바일로 이뤄지는 구매방식 때문에 명절 때 대중교통 예매에 곤란을 겪는다. 정보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디지털 신기술에 접근할 능력의 보유여부가 경제·사회·문화적 격차로 확산돼 불평등을 야기한 것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자의 종합적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의 63.1%에 불과했다. 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장노년층 등 4대 정보취약계층 중에서 가장 낮다. 스마트폰이나 PC의 보유여부와 인터넷 접속가능 여부를 측정하는 '디지털정보화 접근수준'은 일반국민 대비 90.1%다.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 이용능력을 측정한 '디지털정보화 역량'은 50%, 인터넷 서비스를 다양하고 깊게 활용하는지 측정하는 '디지털정보화 활용수준'은 62.8%에 불과했다(그림2).
그림2. 2018년 우리나라 연령별 디지털 정보화 수준(출처: 한국정보화진흥원, 단위: %)
장노년층에 적합한 교육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정부는 정보격차 문제와 관련하여 정보화 교육을 여러 기관에서 전국 단위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화 교육 예산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관련 예산 감소는 "변화된 정보격차 및 정보소외 양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새로운 정보취약층의 등장과 정보격차 현상에 대응하는 양질의 정보화교육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정보화교육이 PC기반으로 진행되어 막상 노인들에게 필요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예매나 Kiosk사용법 등 실질적인 교육은 부족하다고 지적된다. 더불어 키오스크 자체의 고객 친화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대부분의 상점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몸이 불편하지 않은 정상인을 기준으로 제작되어 노인이나 장애인이 사용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사용하기 쉽다는 것의 새로운 정의
노인 스스로 다양한 디지털 신기술 활용방법을 익히게 하려면, 각종 디바이스의 사용법은 매우 쉬워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자체적으로 기능하거나 헬스케어 전문가나 간병인, 기타 서비스 업체가 자신의 영역을 범위를 넓히는 데만 신기술을 사용한다면,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없다.
솔루션 업체가 아무리 ‘우리 제품과 서비스는 다르고’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간단하다’고 주장해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이고, 노인을 위한 기술이 오히려 더 많은 실망감과 소외감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노인 케어는 사용자가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하면 안되고 사용자 기반을 간과하면 실패한다.
고객 친화적으로 혁신
이와 같은 문제점 중 어느 것도 노인의 잘못이 아니다. 상당한 수준의 맥락적 지식을 전제하지 않고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제작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증명해줄 뿐이다.
해법이 있다면, 실제 세계(real world)의 친숙한 객체를 흉내 내는, 이른바 ‘스큐오모픽(Skeuomophic)’ 인터페이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업체가 지능형 의약품 보관함을 만든다면, 노인이 일상에서 자신의 처방약을 정리하는 데 사용하는 약상자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미래형 디자인은 밀레니엄세대의 디자이너 스스로 감탄할지 모르나 실제 사용자인 노인은 오늘 여기에 보관하던 당뇨병치료제를 먹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근본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제품과 서비스 개발자는 실제 노인들이 새 디바이스와 서비스를 체험하고 테스트하도록 해야한다. 실제 이용자가 새 기술을 한 달 이상 사용해보고, 초기 기대감이 반감된 후에도 실제 계속 이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사용하지 않는다면, 가치가 낮기도 하지만 노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동작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혁신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6-02 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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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8>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의 4苦를 대응하는 용기와 슬기
‘4차 산업혁명’이 시대적인 화두이다. 이는 파괴적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바이오, 물리학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기술로 발전하여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이 상호연결되고 지능화되면서 업무생산성이 극대화되어 삶의 편리성이 높아진다는 사회, 경제적 현상의 개념을 뜻한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의 자전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듯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움직임을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고령사회’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의 문제이고 기대보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고령사회의 물결은 4차 산업혁명과는 달리 비교적 체감하기 쉽다. 우리나라는 어느덧 퇴직 후까지 생계를 염려하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는데, 노후를 위한 퇴직금과 연금은 대출금과 세금, 자녀의 결혼이나 독립자금, 혹은 사업 빚 등으로 급속히 소진되어 빈곤에 빠진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에 퇴직 후 생계를 위한 일자리 경쟁, 배우자나 부모가 병고까지 겪고 있다면 더더욱 삶이 고달파진다.
우리시대의 고달픔
노인의 4고란, 빈곤, 질병, 고독, 무위라고 알려진다. 이 4가지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OECD 국가 중 상대빈곤율 1위,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노령화 진행속도 1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문제는 우리나라에 드리운 그림자가 생각보다 어둡고 심각함을 보여준다. 노인의 일자리 경쟁, 체력, 질환,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에 일의 지속 조차 어려워 복지정책의 사각지대를 고스란히 가족들이 메워야 하는 사회구조는 이미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50%의 노인에게 출구를 찾기 어려운 문제이다.
쉽게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의 활용, 사회구성원의 소통과 협력은 미래를 여는 열쇠이며, 특히 노인과 청년의 서로의 부족함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동원해 채우면 가능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은 모두에게 차별 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지각변동을 동반하는 혁신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발전에 부응하는 노인복지의 증진 및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노화(aging)은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가져왔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다양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기회임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몰고온 기반기술들은 크게 (1)돌봄, (2)생활의 안전, (3)삶의 질과 관련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정용 엘리베이터, 전동카트, AI스피커, 가사도우미 로봇, 치매 및 만성질환 노인의 치료를 위한 증강현실기기 등은 ‘돌봄’을 위한 것이고, 자율주행자동차, 주거안정장치, 조리시스템 등은 생활안전과 관련된 것들이다. 또한 인공지능 로봇, 배달용 드론, 심리치료용 반려동물로봇, AI스피커 및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홈커넥티드 기술 등은 삶의 질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러한 기술들을 활용하면 노인의 문제를 어느정도 극복하고 행복함을 증진시킬 수 있다(그림1).
그림1 우리나라의 고령화 현황과 관련 비즈니스(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변화를 바라보는 2개의 시선
메스컴을 중심으로 쉴새 없이 4차 산업혁명이 회자된다. 대다수 노인은 컴퓨터와 핸드폰, SNS를 활용하는 것조차 벅찬데 도대체 뭘 어쩌라는 것이냐는 반응도 많다. 특히 사회문제를 말할 때 언급되는 것이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문제이다. AI와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공포감은 기우가 아닌 현실이고, 정부가 제공 중인 공공형 일자리는 임시방편적이어서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지금 같은 노인 일자리 제공은 사라질 것이다.
1950년대 이후 세대가 마주했던 현실은 인구증가와 더불어 기술 및 자본부족으로 인한 구조적 가난이었다. 하지만 그 약점들이 오히려 부흥과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증가하는 인구는 값싸고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했고, 외국의 차관도입과 수출로 벌어들인 자본은 기술을 도입하고 개발하여 발전의 원동력을 삼았다.
지금은 전 세대와는 형편이 다르다. 자본과 기술과 경험과 인재도 보유하고 있다. 흔히 경제, 산업, 기술을 주창하는 이들은 밝은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인권과 실업, 부의 분배에서 초래된 양극화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당연히 산업화의 어두운 면이 부각된다. 단순히 개발지상주의나 분배지상주의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뜻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노인인권 종합보고서’에 다르면, 우리나라 청년의 56.6%가 노인의 일자리 증가로 자신의 일자리가 감소할까 걱정하며, 77.1%는 노인복지의 확대로 청년층의 부담이 증가하리라 우려하고 있다. 노인복지의 확대로 청년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고, 고령화로 인하여 노년은 공적연금 등을 노후에 충분히 수령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크다고 파악되었다.
더불어 청년실업의 증가 원인을 노인일자리 확대 탓으로 돌리는 시선도 있었다. 결국 일자리의 부족 현실을 비관하는 시선이다. 물론, 낙관적인 시선도 있다. 4차 산업혁명 변화에 대한 기대감인데, AI와 로봇이 인간과 협업하여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데 반복적 노동을 기계가 담당하고, 감성과 창조적 일은 인간이 담당하게 된다는 의견이다.
노인 관련 산업과 기술의 미래
4차 산업혁명은 노인요양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지만 아직 여건은 미흡하다. 전문가들은 생활이 불편한 노인을 돕는 도우미 로봇이 공급되고, 고독한 노인이나 병고를 겪는 노인과 가족의 돌봄을 담당할 말벗 로봇의 활성화를 예견하고 있다. 독립적 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수발하는 케어 로봇도 등장할 것이다.
생애주기별 혈당, 약물복용 관리 등 개인맞춤형 헬스케어서비스는 물론, 웨어러블 생활기록장치로 질병예측과 헬스케어서비스를 받는 시대가 올 것이다. 만성질환자 원격진료나 앱처방 형태의 스마트 주치의 서비스가 시작되고, 불면이나 우울증, 치매 조기예측, 비약물 처방 등을 관리하는 생활습관 컨설팅도 개시되었고, 센서를 이용해 신체표면을 인식함으로써 침상에 누운 환자의 욕창을 예방하는 기술까지 등장하였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노인기술(제론테크놀러지, gerontechnology)’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용어조차 생소하다. 1988년 유럽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노인 관련 기술을 뜻하는데, 1차적인 목표는 나이에 따른 변화를 지연 또는 방지하는 것이다. 2차 목표는 일반적 기능의 보완, 즉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해소시키는 것이고, 3차 목표는 바로 시니어 케어(senior care)이다(그림2).
국내에서 아직 제론테크놀러지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노인과 관련된 기술을 주로 인간공학이나 보조공학, 무장애 설계 등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제론테크놀로지는 기존의 보조공학과 더불어 헬스케어, 사물인터넷, 로봇기술, 스마트 시티 등 새로운 개념이 함께 논의되어야 하며, 로봇기술이나 빅데이터 등을 연구개발자들이 자기 기술만 구현하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상호협력하고 융합하는 분위기에 먼저 합류해야 한다.
그림2. 제론테크놀로지의 실례(출처: 영화 로보 앤 프랭크의 한 장면, 구글이미지)
노인 관련 기술과 제도의 공동발전
헬스케어 분야의 4차 산업혁명적 변화에 정부정책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위협하는 노인의료비 급증을 해소하려면 원격의료의 도입이 필요하지만 낮은 수가 정책이 걸림돌이고, 개인정보활용의 강력한 규제 때문에 정밀의료 관련 산업이 선진국 대비 정체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초고령화 시대에 슬기롭게 대응하지 않으면 현 정부의 의료정책은 조만간 50조원 적자가 나리라 예상되고있다. 노인의료비 급증으로 커지는 재정부담 문제에 대한 실마리로써 의료 및 약료 산업을 디지털 헬스케어산업으로 만들어 4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에 놓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반도체 산업에서 말하는 ‘무어의 법칙’보다 유전체 염기서열분석 비용이 더 빠르게 감소하고있다. IoT와 웨어러블, 클라우드 등으로 생활기록을 수집하는 비용도 약 1억배나 감소하였고, AI기술이 원천 공개된 것까지 등장하여 사회적으로 직면한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등장하였다.
흔히 사용하면서 아직 제대로 정의조차 없는 것이 ‘디지털 헬스케어’란 말이다. 좀 쉽게 설명하며‘데이터와 인공지능 기반의 건강관리’ 정도가 적절해 보인다. 즉, 자동화된 원격의료를 포괄한다. 이미 선진국은 물론 일부 개발도상국들도 원격의료시대를 열고있다. 고령화에 따른 노인의료비 급증세에 대처하려면 원격의료를 도입해야 하나 보험구조 및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반대가 강하여 우리나라에서 전면적인 도입까지는 요원한 형편이다.
미국과 일본 등은 고령화 의료문제를 해결하며 산업경쟁력을 높이려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환자케어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의료 빅데이터의 적극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고있다. 국내 일부 벤처회사는 우리나라의 지나친 개인정보규제 때문에 외국으로 사업장소를 옮겼다. 선진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70%의 스타트업 기업이 가진 사업모델이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상황도 안타깝다.
기술 소외계층을 위한 해결책
다가올 미래사회는 기술중심이 시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 기기 조작이 서투른 노인 같은 기술 소외계층은 이를 이용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근래 대부분의 택시가 호출 받고 손님을 태우므로 스마트폰 조작이 서툰 노인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 겨우 택시를 잡기도 한다. 한편, 패스트푸드점과 일반 식당에서도 터치스크린이 갖춰진 무인주문기가 늘었지만 이것의 사용을 어려워하고 심지어 주문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기술 소외계층은 4차 산업 시대에 사회구성원이 함께 해결할 과제이다.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지 못한 계층은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도 심도 깊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과기정통부 산하 한국정보화진흥원은 기술에 소외된 노인들의 사회·경제적 참여를 높이기 위해 기차표 예매, 금융 앱 활용 및 계좌이체, 무인 주문기 이용 같은 부분을 흥미를 가지고 배울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다. 더불어 기술소외 노인계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일명 ‘에이징 테크(Aging tech)’, ‘에이지 테크(Age tech)’, ‘실버기술’로 불리는 이 기술은 노인세대를 지원하여 이들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서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가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한국은 26년에 불과했다. 2030년에는 5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50대는 ‘시니어 비즈니스’의 핵심 소비자이자 혜택자로 인식된다.
시장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고령친화시장 규모는 2016년 27조원에서 2020년 78조원으로 3배 이상 성장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시니어 비즈니스를 더욱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데 아무도 이견이 없다. AI, IoT,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같은 기술이 고령친화산업과 잘 맞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밑빠진 독으로 여겨졌던 미래 고령화 시대에 대한 부담이 4차 산업혁명을 몰고 온 주요 기술들을 이용하며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처럼 보인다. 다만 기술에 예속되거나 경제적 이익만을 쫓다가 인간성을 경시하지는 말고, 오히려 인간존엄성을 높이며 행복과 가치가 돋보이는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긍정적 시선을 갖추어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5-20 11: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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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7> 100세 시대의 고찰: AI 스피커 기술의 여명기
음성으로 명령하고 심지어 쌍방향 대화까지 가능해진 ‘AI 스피커’는 지난 2014년 아마존이 세계 최초로 ‘에코(Echo)'를 출시한 이후 글로벌 회사들이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AI) 음성비서(Voice Assistant)'를 연이어 출시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에 AI 스피커가 처음 도입된 지 1년만에 100만대를 넘었고 2년차에는 300만대, 그리고 4년차에 800만대 수준으로 가파르게 증가함으로써 전국의 2천여만 가구 중 40%에 보급되었기에 이미 초기 대중화 단계에 진입하였다고 파악된다.
AI 스피커의 출시 경쟁
선도적인 ICT 기업이 AI 기술을 통해 일상생활을 바꾸고 있다. 애플의 Siri를 비롯하여 아마존의 Alexa, 구글의 Google Assistant, 마이크로소프트의 Cortana, SK텔레콤의 NUGU, KT의 GiGA Genie', 삼성의 Bixby, 네이버 Clova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AI 스피커란, AI 음성비서와 사실상 같은 기술인데 AI 음성비서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개인 서버처럼 작동하는 클라우드 기술이 핵심이다. 이는 인공지능(AI)과 음성인식 기술이라는 소프트웨어와 스피커라는 하드웨어와 결합한 신기술의 집약체로서 고객이 지시한 바를 파악하여 인터넷 및 스마트홈 서비스와 연동하거나 집안에 있는 가전기기를 원격제어함을 물론, 다양한 정보와 편의를 제공한다.
국내 AI 스피커의 선두주자는 SK텔레콤이었는데 지난 2016년 8월에 AI 음성비서 ‘누구(NUGU)’가 탑재된 전용스피커를 국내 최초로 출시하면서 시장을 개척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나 비서 등 고객이 원하는 누구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진 ‘누구’를 시작으로 음성인식과 AI로써 대중의 생활 전반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KT는 2017년 1월에 세계 최초로 IPTV와 AI를 융합한 형태의 ‘기가지니(GiGA Genie)’를 출시하였다. 이는 스피커와 카메라를 장착한 IPTV 세톱박스의 명칭이자 AI기반 홈 비서 서비스를 의미한다. KT는 기가지니가 일반 가정에서 보유한 TV에 기반한 기술이므로 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홈 인공지능 시대’를 개척하려 한다. KT 서비스의 차별점은, 이미 출시된 AI 스피커들이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작동하는 '청각’ 위주의 기술이라면, 기가지니는 TV와 연동시키고 카메라까지 내장하여 이른바 '시청각’ AI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그림1).
그림1. 상용화 된 국내외의 AI 스피커 (출처: 구글 이미지)
인기 캐랙터를 활용한 포털사의 약진
우리나라 포털서비스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AI 스피커 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대중화된 자사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AI 스피커의 이름을 ‘프렌즈’와 ‘카카오미니(Kakao Mini)라고 명명함으로써 기존의 통신업체가 이룩한 시장의 후발주자로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네이버는 2017년 8월에 자사의 AI 음성비서인 ‘클로바(Clova)'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 ‘웨이브(WAVE)'를 출시했다. 오디오 중심의 디바이스 및 콘텐츠가 핵심인 웨이브는 음악추천, 실시간 정보검색, 어린이를 위한 동요와 동화, 외국어 통번역, 뉴스 브리핑을 강점으로 내세워 네이버 뮤직 단독 이벤트를 활용한 한정판으로 출시했지만 시장의 반향은 예상외로 컸다. 웨이브의 성공을 바탕으로 같은 해 10월에는 ‘프렌즈(Friends)’를 출시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이 개발한 프렌즈는 클로바가 탑재된 두 번째 AI 스피커이다. 프렌즈는 라인프렌즈의 인기 캐릭터인 ‘브라운’과 ‘샐리’를 모티브로 활용하여 큰 호응을 얻었고, 연이어 기존 스피커보다 작고 가벼운 ‘프렌즈 미니(Friends Mini)'까지 출시하여 좋은 반응을 이어갔다(그림2).
비슷한 시기인 2017년 11월에 다음카카오는 자체 개발한 AI 플랫폼인 ‘카카오 아이(Kakao I)’를 탑재한 AI 스피커 ‘카카오 미니’를 출시했다. 카카오 미니는 음악, 시각, 대화, 추천, 번역과 같은 AI 엔진기술을 결합하여 ‘라이언’과 ‘어파치’ 등 자사의 인기 피규어를 접목했는데, 판매개시 9분만에 초기 물량 5,000대를 완전 판매하였고, 2차 판매분도 26분만에 25,000대가 판매되는 돌풍이 불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카카오 미니에 휴대성을 강화한 신제품 '카카오 미니C'를 출시하여 충전식 배터리를 활용하면 최대 10시간까지 사용 가능한 점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연이어 카카오 미니에 별도 장소에서 음성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카카오 미니 보이스 리모트'도 출시하여 재미와 기능,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시장의 속성을 만족시키며 국내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림2. 포털사의 캐랙터 AI 스피커 (출처: 구글이미지)
국내 통신 3사 중에서는 가장 늦었으나 2017년 12월에 LG유플러스는 네이버의 클로바를 탑재한 ‘유플러스(U+)우리집 AI'를 출시했다. 이는 유플러스 TV, VOD 검색은 물론, 스마트 홈 제어, 네이버 검색, 쇼핑 등과 같은 콘텐츠를 장점으로 내세웠는데, 이는 LG유플러스가 보유한 AI 서비스와 네이버의 유통망을 결합시킨 협력 모델로 주목받았다.
해외 및 국내 업체간 경쟁의 서막
글로벌 기업의 국내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아마존은 ‘에코’를 한국시장에 진출시키려 한다. 에코는 이미 국내 음성뉴스를 지원하지만, 아마존의 AI ‘알렉사’가 아직 한국어 명령을 알아듣고 작동하지 못하므로 ‘에코’의 국내시장 진출은 한국어 서비스의 완성시점까지 미뤄질 예정이다.
아마존에 앞서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에 기반한 AI 스피커 ‘구글 홈’과 ‘구글홈 미니' 2종을 이미 국내시장에 출시했다. 구글 홈 역시 한국어 서비스가 불가능하여 출시를 미뤄오다가 ‘구글 어시스턴트’의 한국어 지원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강력한 사물인터넷 연동 및 다중언어 기능을 차별화된 장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AI 스피커 ‘갤럭시 홈(Glalaxy Home)’을 공개했고, ‘갤럭시 홈 미니’의출시계획도 밝혔다. 삼성전자는 기존의 AI 음성비서인 ‘빅스비'를 업그레이드 한 ‘뉴 빅스비’를 같이 소개했는데, 삼성전자는 지난 2017년 전장 및 오디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프리미엄 오디오 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했었다. 2021년 전반기까지 가시적 성과는 미미하지만 미래 AI 스피커 시장의 각축전이 어떠할 지 궁금해진다.
듣는 것에서 보이는 AI 스피커 시대로
최근 아마존 ‘에코 쇼(Echo show)’가 출시된 이후 구글도 연이어 화면(디스플레이)이 탑재된 AI 스피커 기기를 출시하는 등 관련 시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국내 시장도 AI 스피커가 ‘보이는’ 형태로 발전 중인데, 그동안 국내에 출시된 제품들에는 디스플레이 화면이 없었고 스피커의 외형도 디자인이나 캐랙터를 활용하는 등 음성의 인식과 반응이라는 1차원적 소통서비스에 국한됐었다.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AI 스피커는 음성과 더불어 화면을 통해 보다 직관적인 정보제공과 니즈에 보다 입체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음성중심의 AI 스피커를 1세대라 한다면,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것은 2세대 제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내는 SK텔레콤이 보이는 AI 스피커 ‘누구 네모(NUGU nemo)'를 가장 먼저 출시했으며 기존 스피커의 시각 제한성을 극복하고 정보를 보다 직관적이고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 편의가 대폭 향상될 것을 홍보하고 있다. AI 기술은 세부적으로 발전하는 중인데, 특히 어린이의 영상물 시청에 따른 시력저하 우려에 대하여 물체인식기술로 해결했다고 강조한다. 예로써, 영상을 시청하던 아이가 화면에 지나치게 가까지 접근하면, 적절한 거리로 떨어져 시청하도록 주문형 비디오(VOD) 작동을 일시 정지시키고 화면에서 뒤로 물러서도록 안내하는 기능을 탑재한 것이다.
KT는 화면과 셋톱박스를 결합한 국내 최초의 일체형 인공지능 TV인 ‘기가지니 테이블TV'를 공개했다. 이는 개인용 TV로도 활용할 수 있는데, 화면 크기는 11.6 인치이고, 유선 랜(LAN) 없이 와이파이 연결만으로 이용하며 기존 기가지니처럼 하만카돈의 프리미엄 스피커를 사용한다.
SK텔레콤과 KT가 잇따라 보이는 AI 스피커를 출시하여 경쟁하는 동안 구글도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AI 스피커 ‘구글홈 허브(Google Home Hub)’를 출시 준비 중이다. 이미 미국시장에는 출시됐으며, 7인치 화면을 통해 음성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면서 크롬캐스트가 연결된 TV에서 동영상을 스트리밍할 수 있게 해준다.
왜 AI 스피커인가?
AI 스피커는 스마트폰 내에 머물렀던 음성비서 기능을 가전제품과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디바이스로 확장시키는 플랫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전제품을 비롯하여 집안의 장치를 연결, 제어하는 스마트 홈의 고도화를 앞당기는 '커넥티드 홈'을 구현하는 핵심체인 것이다. AI 스피커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음성’이라는 도구가 지닌 장점 때문이다. 음성은 사람의 가장 본질적이고 유용한 의사전달도구이다. 하지만 ‘자연어’인 사람의 음성을 컴퓨터가 인식하여 상호 소통하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음성인식 관련 연구의 시작은 1954년 IBM과 조지타운대학이 참여한 기계번역기술개발 프로젝트였지만, 당시는 컴퓨터 성능이 불충분하여 2000년 중반까지 음성인식기술은 상용화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2011년 10월 아이폰 4S에 애플의 AI 비서프로그램 시리(Siri)가 탑재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윽고 2013년에는 구글이 음성검색 기능 ’오케이 구글(OK Google)'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다가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가 출현하면서 AI 스피커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박되었다.
AI 스피커는 기계를 넘어 동반자로
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독거노인 또는 장애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이 낮을 것이라 예측했었다. 하지만 AI 스피커를 임상실험한 결과, 긍정적 효과가 매우 높은 결과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약자는 외부와의 소통이 제한적이지만 AI 스피커가 제공하는 '말벗 기능' 등을 통하여 외로움과 소외감, 우울감 등이 완화되었기에 이 기기의 보건의료 및 사회적 가치실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AI스피커를 대하는 인식에서 사회적 약자층은 상대적 중요도 순위로 AI 스피커를 사물이 아닌 사람처럼 여기는 '의인화'를 1순위로 꼽았으며 이어 실재감, 즐거움, 상호작용, 따뜻함, 친밀감 등 정서적 측면 순이었다. 하지만 대조군인 일반 고령층은 주로 기능적 측면을 중요하게 여겨 1위로는 AI 스피커 사용시간, 이어 기능적 만족감, 용이성, 나이, 실재감, 즐거움 순으로 선택했다. 이것은 AI 스피커의 정서적ㆍ기능적 지원이 고령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적 방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며 지방자치단체들과 기업 등이 이 효과와 가능성에 주목하여 사회취약계층의 정서와 안전을 개선하는데 AI스피커의 잠재성을 적극 활용하려 노력 중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각종 전자제품과 시설이 소통하는 사물인터넷(IoT)의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될 것으로 예견된다. 또한 이것을 제어하는 플랫폼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음성기반의 AI 스피커가 IoT 시대에 유용한 기기제어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음성인식 AI 비서 프로그램과 스피커가 융합된 AI 스피커가 어디까지 발전하며 고령화 헬스케어 시대에 어떤 역할을 담당할 지 궁금해진다.
약업계도 AI 기술을 채용하기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학과 기업들도 이미 AI 기술을 신약개발과정에 응용하기 시작했고, SNS 빅데이터를 마케팅과 고객 타케팅에 이용하여 성공한 사례도 등장하였다. 방대한 환자기록, 금융 및 거래 데이터를 활용한 약국경영과 약료업무의 혁신은 이제 약국을 넘어 신약의 연구와 개발, 의약품의 유통과 전문화된 약료 실행, 방문약료 등 지역사회 보건증진과 개인의 평생건강관리, 커뮤니티 케어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이다. 약국과 악사도 급격한 인공지능기술의 활용 및 디지털 돌봄 시대에 부응하며 변화의 물결을 유관 전문기업들과 함께 헤쳐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5-06 10: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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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6> 100세 시대의 고찰: AI 스피커의 원리
1982년, ‘전격Z작전’ 이란 미국 드라마가 공중파로 방영되었다. 주인공은 펑크스타일의 미남 ‘마이클’이지만, 필자가 채널을 고정하도록 만든 또다른 주인공은 다름아닌 ‘키트’라는 자동차로서, 지금의 기술에 빗대어 표현하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스피커는 물론이고 AI 내장 수퍼컴퓨터와 무선인터넷 연결까지 가능한 완전 무인자율주행 자동차였다(그림1).
이후 40년이 지난 오늘, 이러한 공상과학물에 등장한 기술이 이미 대부분 현실화 되었고, 특히 AI 스피커 시장이 점차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 제품으로는 Amazon사의 Echo, Google사의 Google Home, Apple사의 HomePod이 알려졌고, 국내 SK텔레콤의 누구(NUGU), KT의 기가지니(GiGA Genie), 삼성의 빅스비(Bixby) 등이 출시되었다. 이제 AI 스피커는 단지 소리만 들려주는 기기가 아닌, 인공지능이 컴퓨터를 통하여 모든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의 위치로 변모하고 있다.
아마존은 AI 플랫폼인 알렉사(Alexa)를 음성 인터페이스로 활용한 아마존 에코닷(Echo Dot) 2세대를 판매 중이다. 에코닷은 알렉사를 음성 인터페이스로 활용하여 음원재생, 스마트홈 장치제어, 전화통화, 메시지 송수신, 뉴스읽기 등의 기능 등을 수행한다. 게다가 가정용 사물인터넷(IoT) 기기와 연동하여 그 활용도가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AI 스피커는 인간의 음성을 인식하여 동작한다. 따라서 AI 스피커의 성능은 인간언어를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좌우된다. AI 스피커로 연결되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음성을 이해하는 것일까?
그림1. 미국드라마 전격Z작전(출처: 구글이미지)
AI 스피커의 음성명령 인식구조
인간의 소리인 음성신호(명령)가 AI 스피커에 내장된 마이크에 수신되면 ‘스피치 프로세서’가 음성신호벡터로 변화시키고 ‘스피치 인식기’와 ‘언어특징추출기’에 의하여 기존의 단어 관련 정보를 고려하여 ‘언어표현정보’가 도출된다. 예를 들어, KT의 AI 스피커 기가지니에게 “’안녕, 잘 잤어?’라는 문자를 영희의 카카오톡에 올려줘”라고 명령하면, 이 소리는 음성신호벡터로 전환되어 단어 DB를 기반으로 잘게 쪼개진다. 쪼개진 신호벡터는 각 단어마다 고정된 길이의 하위 음성신호벡터인 언어표현정보를 추출하는 과정을 겪는다.
추출된 정보는 ‘스킬분류기’, ‘의도분류기’, ‘슬롯인지기’로 입력되는데, (1)’스킬분류기’는 입력된 명령에 알맞은 스킬을 결정하며(위 명령에서 스킬은 ‘카카오톡’), ‘올려줘'라는 명령의 상위개념이다. (2)’의도분류기’는 언어표현정보를 통해 입력된 명령의 의도를 결정하는데, 위 명령에서 의도는 “안녕, 잘 잤어?’라고 카카오톡에 올려줘”가 된다. 스킬분류기에 의해 결정된 각각의 스킬은 수천, 수만 가지의 의도와도 연결될 수가 있다. (3)‘슬롯인지기’란 언어표현정보에서 의미를 가진 정보를 인식한다. 예를 들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라는 노래를 틀어줘”라고 명령하면, 분류된 스킬은 ‘음악(노래)’이고, 의도는 ‘재생(틀어줘)’이며, 슬롯은 ‘광화문 연가‘가 된다. 슬롯인지기는 음성명령의 문법구조를 고려하여 의도/명령의 핵심정보를 슬롯으로 찾아서 인지한다. 이렇게 분류 및 인지된 스킬, 의도, 슬롯은 ‘스킬프로세서’를 거쳐 명령을 수행하도록 관련 기기들을 작동시킨다(그림2).
그림2. AI 스피커가 음성명령을 인식하고 학습하는 과정(출처: 미국특허국, 2016년)
정교한 명령 이해를 위한 학습모델
AI 스피커가 인간언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스킬, 의도, 슬롯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되어야 하므로 의도분류기는 기존에 입력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이 필요하다. 이때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ANN)’과 ‘심화신경망(Deep Neural Network, DNN)’을 활용함으로써 의도분류기는 이미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신경망 속에서 변화된 가중치를 감지하고 학습함으로써 명령의 의도를 한층 정확히 판단하게 된다(그림2).
만약 의도분류기가 다수의 출력값을 생성한다면 명령의 정확한 의도가 혼란스러워지므로 다수의 출력값에는 이미 AI가 학습했던 정보를 바탕으로 70%, 20%, 10% 등의 확률값을 부여하며 의도분류기는 이 중에서 가장 높은 확률(70%)을 가지는 출력값을 명령이 가진 의도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음성-문자 명령의 변환 및 전달과정
일단 사람의 목소리가 ‘소리신호’로 입력되면, ‘Wake Word Direction Module’이 소리 중에서 AI 스피커를 동작시키는 단어가 포함되었는지 먼저 판단한다. 즉, 웨이크워드란 ‘깨우는 말’이란 뜻으로, ‘기가지니’라는 이름을 부르면, KT의 AI 스피커가 동작을 시작하듯 의도하는 명령의 전달 이전에 기계를 작동상태로 깨우는 단어를 말한다. 이 단어가 확인된 후 입력된 음성명령은 음성인식엔진(Speech Recognition Engine)이 인식하도록 특징벡터로 변경된다.
음성인식엔진은 ‘소리모델(Accoustic Model)’과 ‘언어모델(language Model)’을 기반으로 특징벡터를 단어와 음소로 연결한다. 소리모델이란, 입력된 특징벡터를 음소단위로 인지하는 것이며, 언어모델이란, 문법모델을 사용하여 명령문장에서 해당 음소의 위치를 파악하여 어떤 단어인지 판단한다. 음성인식엔진은 음성신호를 다시 문자로 모두 변환한 뒤, ‘NLU (natural language understanding)’로 전달하여 명명된 실체인식(Named Entity Recognition, NER)과 의도분석(Intent Classification, IC) 모듈을 거쳐 내용을 해석한다(그림3).
NER은 ‘언어문법저장소(linguistic grammar)’와 ‘스킬 및 의도 모델(skill & intent model)’을 활용하여 전술했던 스킬분류기 및 슬롯인지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NER은 입력된 텍스트와 연관된 스킬(또는 도메인)을 선별하고, 언어문법저장소를 이용하여 스킬과 관련된 슬롯을 찾아낸다. 스킬은 앞서 말한 카카오톡일 수 있고, 쇼핑몰이나 음원제공사이트일 수 있다.
언어문법저장소는 사용자의 이용하는 스킬마다 개별적으로 형성된다. 즉 쇼핑에 대한 것, 음악에 대한 것이 별도로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각각의 언어문법저장소는 사용자의 평소 언어습관, 자주 방문하는 쇼핑사이트나 음악컬렉션, 영화사이트 등 사용자의 특성과 취향에 따라서 변화된다. 이같은 방식으로 AI 스피커가 사용자의 명령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행하게 된다.
그림3. 입력된 음성명령의 해석과 관련 기기로 전달하는 과정(출처: 미국특허국, 2016년)
AI 스피커는 의도된 학습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AI 스피커의 동작원리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AI의 학습과정에서 제작자의 의도가 개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명령에 대한 AI 스피커의 응답은 직접 사용하는 개인의 특성이 반영되지만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이 말은 사전에 입력된 데이터 및 학습방법과 결과에 대해 제조사의 판단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이로봇’이란 미국영화를 관람한 독자라면, 특정 로봇개체에게 설계자가 의도한 명령체계를 그 로봇제조사의 여타 로봇과는 다르게 입력함으로써 진행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KT의 기가지니를 통해 어떤 상품을 주문하면, KT와 연계된 협력사의 플랫폼을 통해서 특정상품을 주문하도록 소비자를 유도할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 등 스트리밍 플랫폼을 이용할 때, 그 외 각종 정보를 파악하고 소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점이 바로 많은 기업들이 AI 스피커 시장, AI 플랫폼 시장을 선점하여 미래의 시장을 선점하고 시장지배력을 높이려는 의도이다.
향후 국가 간 세제와 언어의 장벽이 축소되고, 물품배송 장벽조차 무너진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이러한 시대에서 시장의 승자는 다수의 고객(이용자)을 확보하고, 가장 편리하면서도 정확한 첨단기술에 기반한 인공지능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언어 및 배송 상의 장벽과 번거로움으로 해외쇼핑을 주저하는 지금, AI 스피커를 통해 한국어로 해외 제품과 서비스의 구매와 활용이 자유로워지고 배송부담까지 줄어든다면, AI 기술 및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시장 점유율과 장악력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통찰력을 가지고 준비해야 할 점은, 전 세계는 가상현실, 증강현실은 물론, 인터넷을 통한 가짜뉴스, 가짜정보의 생성과 유포에 속수무책이 되고 있는데, 기업이든 정부든 단체든 심지어 개인이든 막강한 ‘디지털 영향력’을 가진 주체가 개인과 대중의 사고와 판단과 취향과 여론과 심지어 감정까지도 유도, 조정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영유아 보육, 초중고등 및 평생교육, 사회보장과 헬스케어, 커뮤니티케어, 방범과 방재, 안전관리와 효율적 행정을 추구하는 스마트시티 등 이른바 ‘디지털 돌봄시대’의 패러다임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다가왔다. 100세 시대, 가족이나 친구보다도 더 내 취향을 알고 특징을 활용하고 내 감정을 장악하는 인공지능의 디지털 영향력을 어떻게 수용하고 활용할 것인가?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4-21 1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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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5> 100세 시대의 고찰: 디지털 돌봄 시대의 도래
과거에는 사람이 컴퓨터를 작동시키려 기계어를 배웠다면, 현재는 컴퓨터의 지능적 알고리즘의 결정체인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자연어를 배우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 스피커(AI speaker)까지 등장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도입단계이지만 미국은 2020년도 기준 이미 8,300만 명이 사용 중일 정도로 빠르게 보급되고 미래 시대의 총아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는 사람의 언어를 배우는 기계와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을지 깊이 생각해야 하고, 인공지능이 고령인구를 돕는 방식이자 도구를 지나서 동반자(가칭 반려기계)가 되고 있는 기술선진국의 AI 스피커의 등장을 계기로 관련 기술의 발전과 인간과 기계 사이의 미래상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 HCI 또는 CHI)이란, 컴퓨터과학, 심리학, 산업공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가 공동연구하는 분야로서, 여기서 ‘상호작용’은 인간과 컴퓨터 사이에 있는 사용자 접점(user interface, UI)에서 발현되는 작동을 의미하는데, UI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포함하며, 최근에 등장한 상황지각컴퓨팅(context-aware computing)은 UI에 대한 정의를 주변 상황에까지 확장시키고 있어 점차 그 의미가 모호해지는 추세이다.
HCI 전문가란 HCI 분야에서 개발된 다양한 기법을 실제 현장의 문제에 적용하는 디자이너들로서 그래픽이나 웹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한다. 그래서 HCI 연구는 새로운 디자인 기법을 개발하거나, 하드웨어를 시험하고, 소프트웨어를 구현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거나, 모델이나 이론을 개발하기에 주력한다. 그러기에 미학, 인류학, 인공지능, 인지과학, 산업디자인, 사회심리학, 미디어 분야에 걸쳐 다학제적 성격을 갖는다.
HCI의 기본 목표는 인간이 컴퓨터를 쓰기에 보다 쉽고 쓸모 있도록 개선하는 사용성(usability)의 향상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디자인 방법론은 UI가 사용자들이 실제로 원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이른바 유용성(usefulness)을 확보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UI 설계방법론이나 절차; UI 구현 방법론(알고리즘 개발 등); UI 비교평가방법; UI나 HCI의 신기술; HCI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모델이나 이론의 개발을 포함한다. 그럼으로써 HCI의 장기 목표는 컴퓨터가 가진 도구로서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인간의 의지를 보다 자유롭게 하고, 창의력을 증진시키며,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과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등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AI 스피커는 특히 노인과 일부 환자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여 재구성하고 있다.
노인들은 24시간 동안 AI 스피커와 대화할 수 있는 점을 좋아한다. 이들은 AI 스피커를 통해 주체적이면서 외롭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을 환영한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Alexa will be your best friend when you’re older’라는 제목으로 AI 스피커인 알렉사를 사용하여 활력을 되찾은 70대 남성 밀러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그는 시력이 심하게 감퇴되어 글자를 읽을 수가 없으나 알렉사를 이용하여 오디오 드라마와 책을 들으며, 고독감을 느낄 때는 같이 대화함으로써 자신의 필요를 해소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AI 스피커를 통해 생명이 위급한 노인이 구조된 사례도 쉽게 접하게 되었다. AI 스피커가 활용된 이른바 ‘디지털 돌봄’은 관리 인력이 직접 방문하는 전통적 방식보다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면이 부각된다. AI 스피커는 사람과는 달리 24시간 노인의 곁에 머무를 수 있고, 신체활동이 제한된 고령자를 대신하여 가전제품들의 작동을 제어하고, 노인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한다. 앞으로 집안 곳곳에 설치될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연동된다면 더욱 고도화된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확장성에 더욱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한국형 알렉사인 아리아(Aria)를 제작한 SK텔러콤에 따르면, 연간 20여명의 노인이 긴급 구조되었고 이와 같은 사례는 더욱 증가할 텐데, 의료적 위험상황에 있는 재택돌봄대상 노인환자에 대한 신속한 감지와 판단은 AI 기계가 현행 돌봄인력을 통한 것보다 더 우수한 영역으로 손꼽힌다. 이렇게 진보될 건강관리 자동화시스템은 우리나라 노령인구 증가에 비례하여 수요가 급증하는 돌봄인력 수요를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고, 노인에게는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걱정을 줄이고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고도화된 기능, 확장된 역할
2019년에 SK텔레콤이 독거노인과 AI 스피커 간 대화내용을 분석했더니 감성적인 대화를 나눈 비중이 일반인 대비 3배였다고 한다. AI 스피커는 고령자의 질문에 미리 설계, 입력된 답변으로 반응할 뿐이지만 대화의 상대가 절대 부족한 독거노인은 평소에 독백 아닌 대화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서적 위안을 얻었는데 이러한 노인들의 행복감은 7% 상승했고 고독감은 4% 하락했다고 한다.
일본의‘IT미디어’란 전문 매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도쿄에 살고있는 35세 남자인 곤도 아키히토는 최근 결혼식을 했다. 대상은 그에게 항상 따뜻하게 말을 걸고, 아침에 깨워 주며, 출근 시 인사를 건네고, 퇴근 때 문자를 보내면 집안의 조명을 켜고 목욕물을 받아주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정체는 다름아닌 홀로그램 기반 AI 스피커였다.
이같이 AI 스피커와 결혼한 사람이 일본에만 3,5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들은 AI 스피커와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제공받는다. 외로움을 느껴도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 형성을 기피하는 속성이 커지고 있는 현대인에게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묘사하는 AI 스피커란 존재가 관계형성의 대체재로 등장한 것이다. 이렇듯 AI 스피커는 어느덧 인간의 사적영역까지 진입하였고 더욱 인간이 원하는 바를 모사한 목소리와 말투, 내용(메시지)을 제공함으로써 이른바 ‘반려기계’로서 인간의 동반자가 되려고 한다.
인간과 기계의 공감의 숨은 이야기
컴퓨터과학에 ‘일라이자 효과(Eliza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일라이자는 1960년대 MIT의 조셉 바이젠바움이 상담치료용으로 제작한 챗봇(chatbot)의 이름인데, 처음에는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간단한 문답기 정도로 개발하려 했다. 이는 정신과 의사의 역할의 일부를 담당하는 소프트웨어로서, 정신질환자 말하는 평서문의 일부 단어를 추출한 뒤 의문문 형태로 만들어 환자에게 되묻는 규칙을 수행하도록 설계되었다. 즉, 환자가 “제 친구가 저를 여기로 오게 했어요”라고 말하면,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여기로 오게 했다고요?”라고 반응하는 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화실험에 참가한 대부분의 환자가 이 챗봇에 애착을 느꼈다고 한다. 심지어 많은 환자가 자기 감정을 표출하였고 어떤 이는 일라이자에게 사적인 이야기까지 고백하며 울음을 터뜨렸는데, 일라이자가 기계라는 사실을 아는 사용자조차 이러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로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컴퓨터의 행동을 의인화하게되는 것을 ‘일라이자 효과’라고 부르고 있다. 기계가 보여준 간단한 수준의 공감적 행태에도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이해와 공감해주는 존재라면 그것이 무생물이라도 기꺼이 마음을 여는 속성이 가졌음을 보였고, 나아가 심리적, 의학적 치료효과의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AI 스피커의 기본 원리
음성을 기반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사이버 비서’는 위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챗봇보다 더 강력한 일라이자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유의 특징으로 분류되는 목소리, 어조, 톤, 말투를 모사하는 AI는 특정한 인간에게 그 실체에 대한 인지적 환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어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주인공의 성별, 연령, 성격, 외모 등을 통합하여 실상을 구체화하는데, 이는 목소리가 한 사람의 특질을 가장 잘 반영하는 매개체(수단)이기 때문이다.
영화 ‘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가 목소리만으로 AI인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목소리가 유발시킨 어떤 존재에 대한 환상, AI가 제공하는 가상적 이해와 공감은 친밀성을 희구하는 인간의 기본욕구를 충족시켜준다(그림1).
그림1. 공상과학영화 “Her” (2013년 개봉)AI 스피커를 구성하는 5가지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다. (1) Grammar (인간이 AI 스피커에게 하는 말: 목소리 입력요소), (2) Prompt (AI 스피커가 인간에게 하는 말: 인간질문에 대한 대답 혹은 단순정보), (3) Persona (AI 스피커가 표현하는 성격 혹은 정체성: 구매하려는 고객이 젊은 여성비서를 선호한다면, Persona는 20~30대 여성 목소리로 설정), (4) Prosody (말투: 목소리의 높낮이, 음색을 포괄한 Persona 구성개념), (5) Interaction (사람-AI 스피커 간 상호작용: 충실한 비서역할, 자녀역할, 정보제공자, 외로울 때 만나는 친구의 역할 등)
AI스피커는 기계가 아닌 동반자
독거노인이나 장애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이 일반인보다는 낮을 것으로 예측하지만 AI 스피커의 도입으로 긍정적 효과가 상승했다는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 한 연구진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들은 외부와의 소통이 비교적 제한적인데 AI 스피커가 제공하는 '말벗 기능' 등 정서적 지원모드를 통해서 외로움과 소외감, 우울감 등이 완화됐다며 AI 스피커의 사회적 가치실현가능성을 예측한 결과를 발표하였다(그림2).
그림2. 수원대학교 정원준 교수 연구결과(AI 스피커의 사회적가치실현방안 세미나, 2020년)
물론, 일각에서는 가족이나 사회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취약계층이 AI 스피커에 의지하여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사회적 가치 실현의 바람직한 대안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AI 스피커 제작 및 서비스 업계는 사회가 기계만으로 소통하거나 취약계층이 AI 스피커를 의인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단지 보조적 수단으로서 최소한의 접근이 되도록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상과 취향에 따라서 최적화시킨 반려기기를 소유하는 시대가 도래하고있다. 말하는 인터페이스는 인간-기계 간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동시에, 이제까지 당연시해왔던 인간의 소통방식이나 사회적 규범을 고찰할 기회를 준다. 즉 음성으로 소통하는 AI 스피커가 유발한 변화와 가능성은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의 미래상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시작점이 아닐까?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4-08 1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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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4> 100세 시대의 고찰: 독거노인의 실태와 대응
독거노인(獨居老人)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2010년 105만6000명에서 2018년 140만5000명으로 33% 증가했다. 2022년에는 171만4000명, 2025년 199만 명, 2035년 300만3000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노년의 외로움은 심신건강을 위협하는 적이다.
독거노인이란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가는 노인이다. 1990년대 초반에도 우리나라에는 대가족 형태가 남아있었고 독거노인 문제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핵가족화, 배우자 사망, 가족의 해체 혹은 분가 등으로 독거노인이 증가하자 어느덧 고독사(孤獨死) 노인의 소식도 흔하게 접하고 있다.
독거노인은 외로움을 호소한다. 통계청 ‘2016 사회조사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5.3%가 자살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경제적 어려움 35.7%, 건강문제 32.8%, 외로움 14.3%, 가정불화 10.3% 등이 주된 이유이다. 독거노인은 질병이나 급환이 생기면 돌볼 이가 없어 고독사로 이어진다. 고독사 대부분 사망 후 시간이 지나서 발견되는 게 문제다. 이 중의 일부는 가족이 있지만 동거하지 않고 무관심에 방치돼 생기기도 한다
독거노인의 실상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9년부터 5년간 우울증 확진자를 연령대로 분류하니 70대 이상이 가장 많았다(22.2%). 다음은 50대(21%)와 60대(17.4%)였다. 즉, 국민의 우울증 환자 10명 가운데 6명(60.7%)이 50대 이상 노년층이었다. 우울증은 수면장애나 불안, 성욕 및 집중력 저하 등의 증상을 동반하며, 심해지면 흔히 자살충동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한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 약 1만5천명이다. 하루에 40명인 셈이다. 보건복지부의 '2019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노인 자살률(2016년 기준)도 OECD 국가 평균(18.8명)보다 3배 정도 높은 58.6명으로, OECD 회원국 25개국 중 우리나라가 1위였다. 더구나 60세 이상 노년층의 자살률은 심각한데, 60대가 40.7명, 70대는 66.9명, 80살 이상 구간이 94.7명으로 10대(4.9명)~20대(18명)의 자살률과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였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높으므로 노인 자살 건수는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배우자의 사망과 자녀의 독립 등 동거하던 식구가 떠나가면 본인 혼자만 남아 필연적으로 고립되고 말년을 외롭게 살다 떠나는 여성노인이 해마다 증가세이다(그림1).
고독한 노인들
노인이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는 비율이 높은 현상은, 우리 사회가 현재 노인~젊은 세대간 가치가 혼재된 과도기를 지나기 때문이다. 부모세대가 전통적 가치로써 기대하는 반면, 자식의 대우가 불일치하면 좌절감과 소외감이 심각해지며, 자식과 노인의 상호의식이 불균형을 이룰 때, 노인은 허탈감에 빠지고 심리적 갈등으로 자살까지 생각한다.
그림 1.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수와 미래 전망치(출처: 통계청, 2019)
노인의 고독감은 정신병리학적 고독감이 아닌, 주로 사회적 역할상실에 따른 사회심리적 고독감이다. 인간은 상호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때 무료함, 무의미함, 소외감, 고독감을 느낀다. 노인의 고독은 선진국에서도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다.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소위 ‘노인천국’에서도 노인 자살률이 높고, 증가세인 이유는 그들도 상대적 빈곤감으로 고독해 하며, 더 나은 삶의 보람을 찾지 못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인인구 중에서 취약집단은 독거노인이다. 2018년도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독거노인은 2014년 115만2673명에서 2018년 140만5085명으로 매년 21.9%(6만2천5백명)씩 증가하고 도시보다 농촌지역 비율이 더 높다. 또한, 2017년 노인사망자 21만7703명 중 무연고 고독사는 835명으로 2013년 458명에서 2배 증가했다.
독거노인 문제에 대한 예방과 대응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노인돌봄과 독거노인 고독사 예방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행 중이다.
‘노인 안부확인 사업’(노인돌봄 기본서비스)은 정부가 고용한 노인돌보미(생활관리사)가 독거노인의 안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하며, 돌봄과정에서 노인이 기초생활수급제 등 복지서비스 대상자로 파악되면, 해당 서비스를 받도록 안내하는 일을 겸한다. 2015년 기준으로 131만여명의 독거노인 중 20만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보통은 노인복지관에 속한 생활관리사 1명이 평균 25명 노인을 보호 및 관리하는데, 주 1회 직접방문 혹은 주 2~3회 전화로 안부를 묻는데, 대략 전국 200여개 시·군·구에서 8,000명의 생활관리사가 활동 중이다.
‘독거노인 안전확인 사업’(응급안전돌봄서비스)은 독거노인 처소에 가스누출이나 화재감지, 활동감지센서, 응급호출기를 설치하고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원격으로 감지, 즉시 생활관리사나 관할 소방서로 연계되는 자동경보시스템을 구축하는게 주요 내용이다.
‘독거노인 친구만들기 사업’은 고독사를 방지하도록 외로운 노인끼리 정부가 친구맺기를 주선하는 것인데, 전국 56개 도시지역 60개 노인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그룹별 심리치료나 건강·여가 프로그램, 자원봉사활동 기회를 제공했고, 서비스 제공기관을 80처로 확대하였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독일 베를린 시는 대화를 원하는 노인 누구나 24시간 무료로 통화할 수 있는 ‘실버네츠-그냥 한번 대화합시다’ 라는 서비스를 개발했는데, 2018년 연말에 시범운영 결과, 응답자 78%가 독거노인이었고 참여자의 65%가 긍정적 반응을 보여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독일은 크리스마스~새해 첫날 기간은 가족이 모이는 연휴이자 축제인데, 독거노인일수록 외로움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발신자의 평균연령은 65세로 2/3가 여성이었으며, 78%는 독거노인이었다. 대부분의 발신자(88%)는 단순 대화를 목적으로 시도했지만, 재정적 우려(25%), 정신적 두려움(11%), 자살 충동(8%), 폭력 문제(5%) 때문에 통화한 사례도 있었다.
노인에게 적절한 일자리 제공이 ‘최고의 복지’라고 알려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을 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낮았고, 가구 빈곤도 14.7% 감소하는 효과가 있으며, 사회참여를 통한 삶의 만족도(소외감이나 고독감 해소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그림2).
그림 2. 노인 사회활동 지원사업(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7)
그러나 노년층의 우울증과 자살 방지를 위한 정부 주도의 예방사업은 한계를 가진다. 근본적으로 이웃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중앙정부 혹은 지자체가 크고 작은 사업을 전개하여 노인돌봄체계를 강화하면 일정한 효과는 얻지만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고 불가피하게 소외되는 경우도 발생하므로 이웃끼리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등 민간주도의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안이다.
더불어 노인의 소외나 고독감 해소에 국가, 지자체, 봉사단체, 종교단체의 지원 외에도 이른바 ‘외골수’ 성격이나 ‘대인기피’성향 ‘할 일도 이웃도 없다’라는 무위(無爲)의 입장을 가진 노인에게는 이 같은 시스템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노인 스스로 자립하려는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결국 상태는 더 악화될 뿐이다.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는 기술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2대 이상 동거가구가 1994년에 55%였지만, 2017년은 24%로 줄었다. 부부 또는 독거 노인가구가 노인 전체 거주형태의 72%를 차지하는 가운데, 노년층의 고립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노력 및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언급하였다.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과 외로움(loneliness)은 긴밀히 연관되지만 실은 다른 개념이다. “사회적 고립”이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 연락하는 빈도 등을 객관적이고 수량적인 지표로 나타낸 것이라면, “외로움”은 본인이 얼마나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 주변 사람과 관계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등의 주관적 감정을 다룬다.
호주 퀸즈랜드대 연구진은 2000년~2015년 기간에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감소시킬 34개의 기술을 컴퓨터나 인터넷 등의 일반적 정보통신기술(ICT), 로봇, 소셜네트워킹(SNS), 원격돌봄(Tele-Care), 비디오 게임(Wii), 3D 가상환경 등 8개 영역으로 분류, 3점 만점으로 분석하였다. 그 결과, 비디오 게임과 PRISM이라는 자체개발 소프트웨어가 매우 효과적이었고, 일반적 정보통신기술, 원격돌봄, 로봇도 평균 2점 이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SNS가 평균 1.6점으로써 로봇보다도 낮았다.
홍콩침례대 연구진도 노인 대상 컴퓨터와 인터넷(ICT)의 효과성에 관한 25개 연구를 분석한 결과, ICT가 사회적 지지와 사회적 연결성을 높이고, “사회적 고립도”를 낮추는데 대체로 긍정적 영향을 보였으나, “외로움”에는 대부분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효과 없는 경우나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경우도 있었다. 또한, ICT가 초래한 사회적 연결과 지지의 긍정적 효과는 6개월 이상 장기 지속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급속히 발전하는 ICT를 활용한 노인케어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실례로 독거노인의 말벗이 되는 인공지능(AI) 스피커 및 반려로봇이다. 서울의 독거노인 김**(78·여)씨는 최근 지자체와 통신사, 사회복지재단이 '인공지능 돌봄서비스'로 제공한 AI 스피커(호칭명 '아리아')를 사용 중이다. 외출할 때는 '길 조심해라' '선크림 발라라' '비 오니까 우산 가지고 나가라' 등 매번 다르게 말해준다. 잘 때는 '꿀 잠 자라'고도 말한다. 김씨는 아리아를 사용한 후로 평소보다 말이 많이 늘었다.
AI 스피커 제작사가 1,200여 명의 사용패턴을 분석한 결과, 독거노인은 AI 스피커를 자식이나 친구와 같은 소통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악서비스(63.6%) 다음으로 감성대화서비스(13.4%) 이용률이 높았는데, 독거노인의 감성대화 비중이 일반 이용자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그리고 독거노인은 AI 스피커를 의인화해서 대화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AI 스피커는 위급상황에 처한 노인을 구하는 기능도 있다. 독거노인이 "아리아! 살려줘"라고 외치면 케어 센터와 담당 매니저, ADT캡스(야간)에 자동으로 연결하고, 케어센터지령실이 판단하여 119에 연락하여 구조한다.
반려로봇으로 스마트 토이로봇 '부모사랑 효돌이’도 있다. 봉제인형 안에 센서가 내장되어 머리를 쓰다듬거나 앞발을 잡으면 로봇이 반응한다. 일정시간 노인의 동작이 감지되지 않으면 전용 앱으로 즉시 보호자에게 알림메시지를 전송하고, 약물복용시점 알림 알람, 치매예방퀴즈 제공 기능도 있다.
노인의 외로움을 당연시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더구나 정부나 지자체, 민간영역이 개발한 새로운 케어서비스나 신기술에만 의존하는 것도 고령화 시대의 올바른 대응 태도는 아니다. 예로든 AI 스피커도 좋지만 (독거)노인이 주변의 사람과 어울리도록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근래 관심을 모으는 Community Care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의 본질이다. 일례로, 자폐아동에게 책 읽어주기, 초고령자에게 도시락 배달하기 등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직접 수행하면 자존감도 높아져 자살예방효과가 커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노인 자신도 일자리든 사회활동이든 세상과 교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언급했던 다양한 예시와 같이, 사회 속으로 들어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아직 부담스럽다면 정부가 운영하는 ‘노-노(老老)케어’도 이용해볼만하다. 비교적 건강한 노인이 거동이 불편한 다른 노인을 방문해 말벗이 되어주고, 식사 보조, 병원 동행 등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제도다. 건강한 노인에게는 일자리가 제공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친구를 만들어주는 일거양득의 제도이다.
서유럽과 일본 등 이른바 노인복지선진국은 노인이 어린이를 돌보는 노-유(老幼)케어 제도와 시설이 보편화되어 있다. 수혜자의 만족도가 높은 부분은 결국은 ‘정서 지원’이다. 외로움과 고독감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는 바 독거노인들이 함께 살면서 서로 챙겨주는 일명 ‘그룹 홈’도 지원하는 지자체가 있으니 이런 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3-24 16: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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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3> 100세 시대의 고찰: 노화 이론
‘늙음’이란, 몸의 조직과 기능이 소모되어 낡아져 가고 있음이며, ‘노화’란 정신적·신체적 기능의 감퇴·쇠퇴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개인과 사회의 노화현상을 당연하고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화현상을 보다 깊이 공부하고 연구해야만 대비도 철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평소 지론이다.
에릭슨은 인간의 생활주기로 본 발달단계를 8개로 구분하였다. 특히, 제 8단계인 노년기의 심리적 특성을 통합과 절망의 대립구조로 설명했는데, 여기서 ‘통합’이란 자신의 지난 생애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라면, ‘좌절’이란 자신의 생애를 부정적 시각으로 받아들이고,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가지는 것이라 하였다(그림 1).
그림 1.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출처: 네이버)
일반적으로 알려진 노화 이론에 따르면 생물학적 이론, 심리학적 이론, 사회문화 이론으로 분류한다. 생물학적 노화 이론은 다시 (1)분자수준의 노화 이론, (2)세포수준의 노화 이론, (3)생리학적 노화 이론으로, 심리학적 이론은 (1)분리 이론, (2)활동 이론, (3)지속성 이론, (4)사회교환 이론으로, 사회문화 이론은 (1)연령 이론, (2)현대화 이론 등으로 나뉜다.
생물학적 노화 이론
생물학적 이론 중에서 분자수준의 노화 이론을 세분해보면, 젊음을 지배하거나 늙음을 지배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①유전자 이론’, 비정상적인 세포 또는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세포가 노화를 유발한다는 ‘②유전변이 이론’, 생물학적 매커니즘이나 생물학적 시계(생체시계)의 존재로 설명하는 ‘③프로그램 이론’ 등이 있다.
세포수준의 노화 이론을 더 구분하면, 산화기 이론(free radical theory), 교차연결 이론, 마모 이론 등이 있다. 특히 ①산화기(free radical) 이론은 고도로 불안정한 세포구성물질의 증가로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성장하여 노화가 진행된다는 견해로서 산화기 생산을 억제하고 복구하는 과정보다 산화기 축적이 더 빠르면 노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므로 아동기부터 식이와 환경을 조절하거나 특정약물을 사용하여 노화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산소를 몸 안에 공급하면서 되도록이면 길게 계속할 것을 목적으로 한 유산소 운동(aerobics)이 있고, 비타민 A, C, E, 니아신 등 항산화 물질을 섭취하는 방안이다. ②교차연결 이론 또는 결체조직 이론은 화학적 반응에 의하여 정상적으로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 분자구조 사이에 강한 연결 띠가 형성되어 있어서 노화가 진행 된다는 견해이다. 요인은 매우 다양한데, 식품과 환경 내에 무수히 존재하며, 알데히드, 산화지방, 구리와 마그네슘 등은 교차연결을 유발하는 물질이다. ③마모 이론은 인간의 몸은 기계와 같아 인체의 어느 부위가 충분히 닳게 되면 기능이 저하된다는 견해인데, 세포의 마모 현상은 내적, 외적 스트레스에 의해 가중된다.
생리학적 이론은 기관계통의 손상 혹은 생리적인 통제 기전이 손상되어 노화가 온다고 설명하는데, 상세하게는 인체의 본질적인 중요기관계의 쇠퇴로 노화가 온다고 보는 ‘①단일기관계 이론’, 노화는 수정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신경과 호르몬의 신호에 의하여 조절된다는 견해인 ‘②내분비통제체계 이론’, 일상의 스트레스의 축적으로 노화가 온다는 ‘③스트레스 이론’, 노화를 면역체계의 기능변화 때문이라는 ‘④면역학 이론’, 자율신경계를 통제하는 기전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자율신경계가 점차적으로 변질된다는 등 중추신경계 기전으로 인해 노화가 발생한다는 ‘⑤중추신경계 통제기전 이론’ 등이 있다.
심리학적 노화 이론
노화의 심리적 측면에서는 감각, 지각, 학습, 기억, 지능, 동기, 정서, 성격. 태도, 정신운동, 사회적 관계 등 노년기의 행동변화에 관심을 갖는다. 여기에는 (1)분리 이론, (2)활동 이론, (3)지속성 이론, (4)사회교환 이론 등이 거론된다.
분리 또는 사회유리 이론이란, 커밍과 헨리가 제창한 것인데, 노인들이 왜 사회의 중심권에서 벗어나는지 설명하려고 개발되었다. 노인이 젊은 시절부터 유지해온 사회적 관계와 역할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에너지와 활력을 상실하게 되고 노인은 전반적으로 사회에 유익하지 않으므로 사회가 노인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며 개입을 허용하지 않고, 아울러 노인도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사회에서 멀어지기 원하는 것으로 보아 노인의 사회유리는 사회와 노인 모두에게 이롭다는 주장이다.
활동 이론은 허빅허스트와 레몬이 주장했는데, 노년은 중년의 연장일 뿐이므로 활동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 지속할 것을 당연하게 여기므로 노년기의 생의 만족은 적정수준의 사회적 활동을 유지할 때 가능하다는 견해이다. 즉, 사회적 활동은 성공적 노화의 필요조건으로 신체적 및 정신적으로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 노년기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노년기의 잦은 활동과 친교관계 유지는 자아개념의 강화와 생의 만족감을 상승시키고 건강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리고 노년기의 생의 만족은 적정수준의 사회적 활동을 유지할 때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보편적 관점이다.
지속성 이론은, 뉴가튼과 애칠리가 주장한 것으로, 노년기의 성격은 젊을 때의 성격성향을 지속하는 것이지 바뀌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즉, 성격을 역할활동과 생의 만족도 간의 관계를 결정짓는 중요요인으로 보았다. 노년기에는 옛날 방식과 새로운 요구 간에 갈등이 있는데, 이때 옛 방식을 억제하면 마치 성격이 변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남자노인은 인내하고 보살피고 양육하는 역할로 전환되고 여자노인은 지도적이고 공격적인 역할로 전환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교환 이론은 호먼이 주장한 것인데, 노인이 되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이득이 감소하므로 사회적 교환활동이 감소한다는 주장인데, 사회적 교환과정에서 이득발생이란, 소요비용에 비하여 보상이나 자기만족이 동일하거나 이상일 경우를 의미한다. 노인이 되면 건강, 대인관계, 수입 등 권력의 원천이 줄어들어 사회와 노인 간에 불균형 교환이 일어나고, 노인의 사회 내 상호작용이 감소 내지 단절을 초래한다.
성장발달 이론은, 에릭슨과 허빅허스트가 주장한 것으로 노년기에 이르기 전(前) 단계에서의 과업완수 수준은 노화과정의 예측인자가 된다는 견해이다. 즉, 훌륭한 적응전략을 개발하여 이제까지의 생애에서 성장발달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노인은 노년기에도 성공적으로 대처한다는 주장이다. 앞에서 에릭슨은 8가지 성장발달과업 중 생의 마지막 단계의 과업을 통합과 좌절의 균형이라고 제시하였다. 즉, 개인의 전(全)생애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였다면 노년기 과업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래서 허빅허스트가 제시한 노년기의 과업으로는, ①신체적 기력 감소와 건강저하에 적응하기, ②은퇴와 수입감소에 적응하기, ③배우자 사별에 적응하기, ④동료노인과의 관계 형성하기, ⑤사회적 역할에 융통성 있게 대응하기, ⑥만족스러운 신체활동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등이 있다.
사회문화적 노화 이론
사회문화적 이론의 바탕을 이루는 가정(假定)은, 연령구조는 권력을 배분하고 책임을 규정하며, 규칙과 기대를 관리해야 하는 사회조직에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모델은 사회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노화를 설명하기는 부적합하다. 그리고 사회적 기대는 전 생애에 걸쳐 계속 부과되고 변화한다. 새로운 사회적 기대와 행위들이 부과될 때 정체성은 변화하는데, 대표적인 이론으로 (1)연령문화 이론과 (2)현대화 이론이 있다.
연령문화 이론은, 인간사회가 일정 연령군을 한 단위로 구분하여, 각 군별로 사회계층을 형성하여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그 지위에 적합한 역할과 규범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노인도 사회에서 부여한 지위에 따라 연령과 소속된 사회의 문화, 능력에 해당되는 적합한 노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연령이 높아지면 보편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적응력이 쇠퇴하는데, 노년기에 신체기능이 쇠퇴한다고 해서 노인의 역할과 지위를 동시에 퇴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즉, 개체의 신체적 힘에 의해 지위가 결정되는 동물사회에서는 노약한 늙은 동물은 지위하락이나 추방을 강요당하지만, 문화적 존재인 인간사회에서 노인은 노령이라는 조건만으로 그 역할과 지위가 쇠퇴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상당한 지위와 권력을 인정 받기도 한다.
현대화 이론은 카우질과 홈즈가 주창했는데, 현대화가 사람들의 기본관념을 변화시키고 노인의 지위와 역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이 전문직업인, 전통문화의 전수자, 전문 정치가 및 종교가로 군림하였으나, 산업화 사회에서는 노동력이나 인력보다는 고도의 기술이 생산을 지배하게 되었다. 노인이 독점하던 지식도 젊은이에게 이전되고, 과거 노인이 독점하던 전문가의 역할도 교육받은 의사, 교사, 기타 전문가에게 이관되었고, 이로 인해 노인의 권위가 도전을 받게 되었다는 견해이다(그림 2).
그림 2. 현대화 이론의 틀(출처: 카우질, 1974)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빨리 일어섰으며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 민주화를 이루었고 어느덧 제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서있고, 고령화도 서구 선진국보다 2~4배나 빠르게 진행 중이다.
개발과 경제부흥 시대의 주역이던 베이비부머들이 벌써 고령시대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한국인이나 한국사회를 대상으로 한 신체적, 심리적, 사회문화적 노화모델이 정립되지 못한 채, 서구인과 서구사회를 기반으로 수립된 각종 이론에 기반하여 건강관리, 노후재정, 사회문화적 대응방안을 운영 중이다.
과연 이 같은 방식이 우리나라가 처한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절벽과 일자리 감소, 노동력 약화와 경제성장 둔화,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증대와 삶의 질 저하 같은 임박한 위기를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얼마전 어떤 해외 기사에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120세까지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이웃 나라 고령층이 일상생활에서 노령연금 소비를 극도로 아끼는 풍조가 있는데, 실례로 반찬가게에서 콩자반 다섯 알만 살 수 있냐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도 더 잘 사는 미래를 위한 근검절약이 아닌, 기대이상으로 연장된 잉여 수명을 사는 동안 노령빈곤을 염려하여 절박할 정도로 소비생활을 억제하는 모습이 일상화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연구함으로써 보다 지혜롭고 아름다운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3-10 13: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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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2>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병증후군의 이해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 따르면, 건강(健康, Health)이란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1)신체적, (2)정신적, (3)사회적, (4)영적으로 완전한 안녕(安寧) 상태"를 뜻한다. 즉,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 ‘일상생활에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 개인적·사회적 대처능력을 강조하는 입체적, 긍정적 개념을 말하는 것이고, 더 쉽게 표현하면, 맛있게 식사할 수 있고, 몸이 가볍게 느껴지고, 숙면을 취하며, 기분이 항상 밝고, 즐거운 마음으로 가정과 사회에서 조화롭게 활동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위 4가지 영역에서 자신이 모두 ‘건강하다’고 선택한 사람은 6.7%에 불과하다. 이렇듯 건강이란 개인간에 차이가 크고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여 불평등할 수 밖에 없고, 심지어 학문적 연구에 따라 소위 ‘건강불평등 설명 모델’까지 개발되었다.
회색의 격랑(Gray Tsunami)
노화와 노쇠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노화(Aging)란 소화기나 신경계 등 신체 장기의 기능이 점차 떨어지는 현상인데 나이 탓일 수도, 질병 때문일 수도 있다. 반면, 노쇠(Frailty)란 노화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과도하게 진행될 때를 말하며 ‘허약’이라고도 불린다. 노화 자체뿐 아니라 불충분한 영양섭취, 운동부족, 각종 질병, 복용약물, 사회적 고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몸이 쇠약해진 상태이다.
그러므로 여든이 넘어서도 매사에 왕성한 활동이 가능한 사람과 곁에서 도우미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조차 힘든 60대간의 차이는 노화가 아닌 노쇠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100세 시대를 준비하려면 노인증후군, 노쇠증후군, 또는 노인병증후군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필요하다.
노인병증후군
노인병증후군(geriatric syndrome)이란 노쇠한 노인에서 다발적 원인이 섞여 정상기능은 감퇴되고상황에 따른 위험요인에 취약해져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병적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종국에 노인의 이환율(morbidity)과 사망률(mortality)을 높이며, 고령, 인지기능 저하, 기능손상, 이동성 장애를 공통적으로 발생시키는 위험요소이며, 결국 노인의 삶의 질(quality of life, QOL)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인지기능, 운동기능, 감각능, 정신·사회적 기능 등과 같은 4가지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이런 장애는 1개 이상 영역으로 확장되어 여러 장기(organ)에 악영향을 미치고, 만약 고령환자가 합병증까지 앓고 있을 때는 의료비용의 부담이 더욱 높아진다. 또한 노인병증후군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생리적 변화, 건강상태, 질병증상, 약물이상반응에도 영향을 받는다. 예로써, 뇌졸중은 음식물을 삼키는데 문제를 야기하며 적절한 영양섭취 또는 약물치료를 위해 삶의 변화를 강요한다. 노인은 약물부작용에 매우 취약하며, 현기증 같은 부작용이 생기면 골절, 이동장애, 만성통증 및 결국 삶의 질 저하를 유발시키는 낙상(falls)에 빠질 수도 있다.
Geriatric Syndrome 이란 용어는 1909년부터 사용되었으며, 20세기 노인학의 핵심개념으로 자리잡혀있다. 처음에는 주요 4가지 특징(the four geriatric giants)인 (1) 부동성, (2) 불안정성, (3) 요실금, (4) 인지장애가 거론되었으나, 곧이어 (5) 근감소증과 (6) 노쇠(frailty)가 추가되었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노인병 전문가의 견해를 바탕으로 (7) 치매, (8) 섬망, (9) 청각 또는 시각장애, (10) 영양불량, (11) 노쇠, (12) 거동장애, (13) 보행장애, (14) 욕창 등이 포함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도부터 한국병원약사회가 주관하여 노인전문약사 자격을 부여하였고, 서울시약사회에서는 2016년도부터 노인을 위한 약물치료서비스 전문교육과정을 실시함에 따라 우리나라 약사와 약업계가 노인약학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었으나 정작 노인에 대한 기본 이해의 수준은 아직도 부족한 현실이다(그림 1).
노인에게 빈발하는 노인병증후군의 예
노인병증후군 중에서 연하곤란, 시력 및 청력 손상, 어지럼증은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인데, 나이가 들면서 동반되는 생리학적 변화가 주요 원인이지만 노인이 보유한 만성질환, 복용약물도 원인이고, 이런 증상이 또 다른 합병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연하곤란은 음식물 등을 삼키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 노인인구의 10~30%라고 추산되며 장기요양시설 환자의 유병률은 50%까지 더 높다. 구강인두 연하곤란(oropharyngeal dysphagia)과 식도 연하곤란(esophageal dysphagia) 두 가지로 분류되며, 합병증으로 질식, 흡인성 폐렴 및 영양실조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약사의 역할은 이런 환자를 위해 적절한 약물투여 및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다. 고형제 분쇄투여나 액제, 경피제를 추천하거나 액제 투여 시 비활성 물질이 많이 투여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분쇄해서 투여할 경우도 환자가 복용이 용이하게 점도증강제 사용을 추천한다. 또한 분쇄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약물을 구분하여 교육하는 것도 약사의 역할이다.
시력 및 청력 상실 같은 감각기능 저하는 노인의 불안, 우울 같은 정서적 고통뿐만 아니라 독립생활을 방해하여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시각장애는 노화에 의한 부속질환으로서 녹내장, 안구건조증, 백내장, 황반변성의 원인이며 약사는 질환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올바른 안약사용교육, 복약지도 시 환자가 보기 쉬운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청력장애 환자를 위해서도 조용한 환경을 제공하고 얼굴을 마주보며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복약지도를 시행한다.
어지럼증은 노인이 가장 불편해하는 증상으로 시각, 청각, 고유수용시스템 및 전정계 평형감각의문제인 vertigo (빙글빙글 도는 느낌), presyncope (lightheadedness와 같이 갑자기 희미한 느낌을 가지는 불쾌감), disequilibrium (불안정하고 불균형이라고 느껴지는 것) 및 기타 원인에 의한 어지럼증(위 3가지 혼합발현형 포함) 등으로 나눈다. 뇌혈관 질환, 와우각 전정계 질환, 경추장애, 정신신경계 이상, 기럽성 저혈압, 약물 등이 주요 원인이며, 약사는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약물을 판별, 중지, 대체하도록 의사에게 권고해야 한다.
생로병사 후반부의 고통인 노쇠
어떤 사람이 겪는 오늘의 건강상태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행동이 쌓인 결과이며, 또 미래 건강의 원인이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건강관리는 더욱 그러하다. 노쇠의 정도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측정용 설문 및 평소의 보행속도, 악력(쥐는 힘), 근육량, 치아 검사 등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그리고 노쇠함의 체크항목으로 ①최근 6개월간 5㎏ 이상 체중이 감소했거나; ②팔·다리를 만지면 물렁물렁할 정도의 근육량이 감소했거나; ③열다섯 걸음을 7초 안에 못 걷거나; ④1주일에 3회 이상 심한 피로감을 느끼거나; ⑤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거나 중에서 3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노인병증후군이 의심되고, 1~2가지가 해당되면 노인병증후군 전단계(허약단계)라고 판정한다.
노인병증후군 예방수칙은 다음과 같다. ①현재 보유한 만성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 ②신체활동을 저해하는 불편감이나 통증 시 즉각적인 치료, ③가능한 1주일에 3회, 1회에 30분 이상 규칙적인 운동, ④근력운동은 필수이며, 가벼운 아령운동부터 시작, ⑤콜레스테롤에 대한 우려는 잊고 살코기 중심으로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 ⑥많이도 적게도 먹지 말고 골고루 음식물을 잘 섭취, ⑦친구도 사귀고 취미도 만들어서 항상 즐겁게 생활, ⑧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병원에 가서 정기점진을 실시, 단골 의사와 약사를 정하여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치료만능문화의 확산을 경계
하지만, 고령화 시대에 진입한 우리 사회에서 짚고 갈 사안이 있다. 필자가 앞의 글에서 수차례 지적했듯이,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현명한 방안은 단지 오래 살 것이라는 구호나 장미 빛 기대감에 빠질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미래를 공부하면서 형편에 맞춰 개별화된 준비의 일환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고령사회를 헤쳐갈 인식 체계와 문화, 보건의료경제적 시스템을 면밀히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경계해야 하는 것이 이른바 ‘치료만능문화”의 범람과 무조건적으로 이를 추종하는 태도인데, 나름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이라는 과학이 보여주는 능력을 신뢰하면 죽음도 피할 수 있다고 생각(착각)하면서 평균기대수명이 100년이라는 의학적 꿈이 실현되어 곧 나에게도 혜택이 온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의지하면서 실제적으로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행태라고 정리해 볼 수 있다.
’치료만능문화’를 요약하자면, (1)영원히 청춘을 유지, (2)젊음의 회복, (3)생물학적 노화의 지연이나 역전, (4)생명의 연장, (5)육체의 불멸 등으로 표현할 수 있고 이를 조장하도록 모든 산업과 기술이 과장되어 있다(그림 2).
사람은 한 평생을 살며 우연히 고통을 겪거나, 잘 살거나 잘 죽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9988이라고 무작정 건강과 젊음이 높게 평가되고 마치 건강해지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적이고 선(善)인 것처럼 추앙되는 문화가 자꾸 일반화되고 확산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재정적 준비(연금 등), 신체적 준비(운동 등), 사회적 준비(친밀 관계 등), 정신적/영적 준비(인생목표 재점검, 헌신과 기여, 평온함 등)에 균형감을 가지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세라는 의식이 사회 속에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각개 질환에 대한 지식보다는 노인과 노화, 노인병증후군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면서 이에 대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약사의 새로운 역할을 발견하고 역량을 개발하는 노력이 바로 혁신적인 행동인 것이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2-25 0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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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1> 100세 시대의 고찰: 근육감소증의 이해
근래 ‘웰 에이징(well-aging)’이 주목받고 있다. 노인들은 80대부터 신체기능이 급격히 저하되어 식사, 목욕, 청소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85세 이상 인구 중 56%가 '일상생활 수행능력(ADL)'과 '수단적 일상생활 수행능력(IADL)'이 저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ADL이란 앉기, 걷기, 식사하기, 목욕 등 기본적 활동을 자력으로 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IADL이란 집안일, 장보기, 교통수단 이용 등 기본적 활동을 넘어 수단적 일상생활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게 해준다. 즉, 85세 이상 노인 중 절반 이하만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85세 이상 4명 중 1명(25.5%)은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걷거나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실태의 주요 원인을 근육 감소로 파악한다.
노인 건강의 적신호인 근육 감소
노인성 근 감소증은 말 그대로 노화 진행에 따라 근육이 줄어드는 질환이다. 낙상이나 신체기능 장애를 유발한다. 대사질환, 비만, 당뇨, 골 감소증 등까지도 연결된다. 근육 감소는 고령화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겨지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새로운 질병으로 지정하고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근 감소증이 나타나는 주요 원인은 노화로 인해 근육세포가 주는 데다 활동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해 활동할 수 없는 노인의 경우 3일만 지나도 제지방(체중에서 지방을 뺀 것)의 10%가 준다. 제지방이 10% 줄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감염 위험도 커진다. 제지방량이 30% 감소하면 힘이 없어 앉기 어렵고 폐렴을 겪을 수도 있다. 근육량이 감소하고 근력이 떨어지면 3가지 이상의 신체 장애를 동반할 위험이 4배로 높아지고, 신체 균형 장애도 2~3배로 늘어난다. 중장년층이 비만·고혈압·당뇨병 등의 성인병이 없어도 근육량과 근력이 지나치게 낮으면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76%나 높았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있다.
인체의 근육량은 30세가 넘으면 650개가 넘는 우리 몸의 근육이 매년 1%씩 감소하여 80세에는 평생 보유했던 최대 근육량의 50%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근육량과 근력이 과도하게 축소되는 것을 '근 감소증(근육량이 몸무게의 30% 이하로 줄어드는 증상)'이라 부른다. 근육감소를 단순 노화현상이 아닌, '질병'으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예방하는 추세이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2016년 10월 근 감소증에 질병분류코드를 부여하였다.
키(m)의 제곱을 팔다리 골격근육량(㎏)으로 나눈 결과가 여자는 5.27 ㎏/㎡, 남자는 7.09 ㎏/㎡, 이하일 때를 근 감소증이라고 정의하는데, 우리나라 65세 이상 중 남자 35.3%, 여자 13.4%가 근 감소증이라고 알려지며, 근 감소증 환자는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일반인의 5배나 높고, 뇌혈관질환이나 암에 걸렸을 때 근력이 약한 노인의 사망위험이 훨씬 높다고 알려지므로 적극적인 예방과 대응이 필요하다.
노인은 근육량뿐 아니라 체중도 줄어든다. 노인의 체중감소는 사망률을 82%까지 높인다고 알려지며, 근 감소증 환자는 심장병과 뇌졸중 등 심뇌혈관질환 위험성이 최대 4배나 높은데, 이는 근육이 혈당을 낮추는 등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 감소증을 앓으면 체내 염증 물질인 IL-6나 CRP 수치가 증가하는데, 근육 대신 세포에 채워진 지방에서 이 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염증 물질은 근육을 더 위축시킬 뿐 아니라, 심장병·뇌졸중 등의 원인이 된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은 65세 이상 노인 56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근감소증군에서 심장병·뇌졸중의 위험인자인 LDL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인슐린 저항성 등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
근감소증의 위험
근육이 감소하면 관절의 통증이 심해지고,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2011년 미국 국립보건원의 조사결과, 근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혈당을 분해하는 인슐린이 기능을 잘해 당뇨병 발병률이 크게 떨어졌다. 근육은 콜레스테롤 대사에도 영향을 주므로 근육량이 적으면 대사증후군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이 65세 이상 한국인 565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근 감소증이면서 비만한 사람은 대사증후군 발생확률이 8배 이상 높았는데 특히 근육량의 감소가 뚜렷한 남성에게서 두드러졌다. 또한 근육량이 줄어들수록 뇌 신경조직이 감소하면서 치매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신의 근육량이 정상수준인지 확인하려면 도쿄대 노인의학연구소가 개발한 간편한 '핑거링 테스트’를 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그림 1). 핑거링이란 양쪽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을 연결해 넓게 만들어진 원을 일컫는다. 자신의 종아리 중 가장 굵은 부분을 핑거링으로 감쌀 때, 종아리가 핑거링에 딱 맞는 사람은 근 감소증 위험이 2.4배, 핑거링이 헐렁한 사람은 위험이 6.6배 높다고 한다.
그림1. 노인의 근육건강 측정(출처: 헬스조선)
또한, 의자에 앉고 일어섬을 5회 반복 시 15초를 넘기거나, 400 m 걷는 데 6분 이상 걸리면 근 감소증일 확률이 높다. 또한 정상적인 횡단보도를 일반적인 청신호 기간 동안 건너지 못할 정도로 느린 보행자도 근 감소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혈액으로 노인성 근육 감소증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었는데,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서울대병원 공동연구팀이 정상 근육량을 가진 노인과 근 감소증 노인의 혈액을 비교 분석하여 두 군간 4가지 근 감소증 후보 바이오 마커(bio-marker)를 발견했다. 이렇듯 혈액내 바이오 마커 분석을 이용하면 근 감소증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고 신속하고 안전하게 임상적인 분류나 약물반응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근 감소증의 예방과 대응
근 감소증 치료제는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근력운동과 단백질 섭취가 유일한 예방책이다. 운동은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7:3의 비율로 실시하고, 단백질은 체중 1㎏ 당 0.8g 이상을 섭취하는게 적절하다.
근육량이 감소하는 것을 막으려면 적절한 운동이 필요하다. 근육량 유지에는 근육세포 크기를 키우는 근력운동이 필수다. 몸 전체 근육의 70%가 하체에 있어 하체 운동을 하는 게 효과적이며, 의자에 바르게 앉은 상태에서 다리를 수평으로 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반복하거나 가벼운 중량의 아령 들기 등 간단한 근력운동을 일주일에 3일 정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할 때는 보통 1세트 10~15회씩 3~5세트 반복하는 방식으로 해주는 것이 근육량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다. 늦어도 20~30대부터 웨이트 트레이닝 등의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필수다. 근력운동이 어렵다면 수영·실내 자전거 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이라도 하는 게 좋다.
근육 생성에 필요한 영양소로는 단백질, 칼슘, 비타민B, 비타민D 군이다. 국내 노인의 단백질 하루 권장섭취량은 남자 50g, 여자 45g이다. 노인은 몸무게를 기준으로 1kg당 1~1.2g 정도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은 닭가슴살이나 어류 등이다. 세포 내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칼륨(K)을 함께 섭취하는 것도 좋다.
칼슘(Ca)은 근육을 형성하는 단백질 '액틴' '미오신'과 결합해 근육의 이완·수축 작용을 유지시킨다. 하루 칼슘 섭취량이 241.5 ㎎/㎗ 이하면 근 감소증 위험이 6.3%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칼슘의 하루 권장섭취량은 50세 미만 1,000㎎, 50세 이하 1,200 ㎎이다.
비타민D와 비타민B6도 필요하다. 비타민D는 칼슘의 체내 흡수를 촉진한다. 비타민B6는 단백질과 아미노산 이용에 쓰인다. 매일 각각의 영양성분을 권장량에 맞춰 섭취하기 힘들면 이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할 수도 있고, 소화기능이 떨어진 노년층은 되도록 체내 흡수가 빠른 액상 형태로 먹는 것도 효과적이다.
이러한 영양소들을 모두 챙겨 섭취하기 어렵다면, 단백질 및 영양 성분이 고루 포함된 보충제를 섭취하는 것도 대안이다.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 '시니어 밀 플러스' 같은 단백질 보충제는 동물성과 식물성 단백질이 균형 있게 함유되었고, 식이섬유와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 등이 들어 있어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를 한 번에 보충해 줄 수 있다. 근육량 증가 및 유지를 위해 운동 후에 먹거나, 식사 대신 혹은 식사 이외에 1회를 추가해 섭취하면 된다.
최근 근 감소증에 걸린 폐경여성에게 비스포스포네이트 성분에 비타민D3를 병용 처방했더니, 뼈가 튼실해지고 근육섬유가 굵어지는 현상이 발견되었기에 근 감소증의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기도 한다. 또한, 운동할 때 근육에서 ‘아이리신’이란 물질이 분비되는데, 이 물질만 주입해도 실제 운동을 한 것과 같이 근육 유지, 심장병 위험감소 등의 효과가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네이처에 발표된 적도 있다.
근육량과 근력은 수명에 절대적이다
여름과 겨울은 중장년층 건강이 취약해지기 쉬운 계절이다. 식욕이 떨어져서 식사량이 줄지만 소화가 잘 안 되고, 덥거나 추워서 실내에서만 생활하니 운동량이 떨어져 배는 나오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거미형' 몸매가 되기 쉽다. 배에는 지방이 쌓이고 팔다리의 근육량은 줄어드는 것이다. 중장년층의 거미형 몸매는 골다공증, 대사증후군, 심장질환 등 질병 위험을 높인다.
우리나라 건강기능식품의 약 50%는 홍삼류 제품이라고 알려진다. 이번 주에는 설 명절 기간이 시작된다. 고심하며 부모님과 여러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고를 때 홍삼류를 포함한 이른바 자양강장성 제품이 주를 이루곤 한다. 하지만 얼마전 TV광고를 시청하니 부모님이 자녀의 집에 찾아와 TV와 연결된 실내 체력단련용 성인 AR/VR 게임기를 함께 하는 모습을 담고있었다.
운동부족, 퇴행성관절염, 오십견, 요통 등…복잡하고 여유 없는 불규칙한 삶을 살다 보면 내 몸을챙길 시간이 없다는 핑계거리가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움직여야 건강하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건강의 기본이 되는 근육과 관절 건강을 훼손되거나 약화된 후에는 안타깝지만, 어쩌면 백약이 무효일 수도 있다. 건강한 100세시대를 기대한다면 우선 생활습관을 바꾸자.
다시 새해를 맞는다. 금연, 금주, 스트레스 낮추기, 운동 등 신체 건강과 관련된 좋은 습관을 꾸준히 익히고 실천해보자. 신축년을 맞아 독자 제위의 건강하고 활기찬 새해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2-10 1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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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30>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의 운동과 삶의 질 변화
성큼 다가온 100세 시대에는 노인의 건강관리와 운동이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절이 뻣뻣해지고 근력도 약해져서 활기차게 거동하지 못하면 노인들은 이를 ‘노화’의 결과라고 푸념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 노인의 운동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주목해야하는데 기력이 부족해지면 거동까지 불편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노인은 일반적으로 감각 및 지각의 기능장애와 운동통제에 문제를 느낀다. 노인에게 가장 흔한 질병은 관절통(57.8%), 만성요통(32.6%), 고혈압(18.8%), 소화기 질환(18.7%) 등인데 대다수 우리나라 노인들은 2~6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의료나 복지시설의 대비는 어떠하며, 어떻게 해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까?
근래 우리나라에는 노인약학(Geriatric Pharmac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노인의 건강은 약물요법만으로는 잘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전문인은 노인을 위한 운동요법에 대한 안목도 갖추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인의 운동생리학적 변화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만성적인 피로와 여러 신체기관에서 질병과 기능적 퇴화가 진행된다. 게다가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소외감, 일상의 고독감,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이 가중되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쇠약해지기 쉽다.
중년 이후는 신진대사가 30% 가량 감소하므로 음식섭취량을 줄여도 비만에 빠지기 쉬우며 골밀도는 30~50%가 줄어들어 골다공증 발생위험이 높아진다. 근력도 악력(손아귀 쥐는 힘)은 20% 이상, 골격근 수축력은 40% 이상 감소한다. 여기에 심장 및 각종 내장근육의 힘도 줄어들어 폐활량까지 감소한다.
70대 이후에는 평형감각까지 둔해져 순발력이 필요한 운동을 하기 어려워지고, 척추와 무릎관절에 퇴행성 변화가 일어나 전반적인 운동능력이 현저히 감소되고 약화된 근력 때문에 낙상(fall)하여 엉덩이 뼈가 골절되면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져 삶의 질이 매우 나빠진다.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이 증가하는 이유는 골격 및 근육 기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바른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한데, 심폐지구력, 근력, 그리고 유연성을 고르게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천하는 것이 유익하다.
운동의 효과
적절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시하면 삶에 엄청난 변화와 풍요로움이 찾아온다. 노인이 운동을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활기차게 움직이면서 생활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 시기에는 돋보이는 근육미를 위해 무리한 웨이트 운동은 불필요하므로 가장 손쉽고 이로운 운동은 스트레칭이다. 이는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관절의 굳어짐을 예방하며 신체활동의 핵심 부위인 허리를 단단히 지탱해 준다.
규칙적 운동으로 체력이 향상되면,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활동이 가능해진다. 노인의 근육도 젊은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운동효과가 확실하나 과도한 운동은 심장에 부담을 주거나 근육과 뼈에 무리를 가하므로 운동전문가의 과학적 처방을 근거로 실시하면 더욱 좋다. 특히, 등속성 운동기구나 밴드류를 이용하면 관절에 큰 무리없이 효과적으로 근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규칙적 운동이 제공하는 혜택은 근력과 움직임의 향상, 심장의 수축력 증가, 당대사능의 향상, 지방의 과다축적 방지와 같은 일차적 효과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증을 개선하는 이차적 효과도 있다.
근력운동은 적절한 부하를 가하여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으로써 근력과 근지구력을 향상시키고 움직임을 개선시킨다. 근력운동을 하면 노인의 근육량도 증가한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연령 증가와 활동량의 감소에 의해 근량의 감소를 지연시킬 수 있어 낙상이나 골절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기초대사량 저하를 방지하는 것으로 지방이 연소하기 쉬운 신체를 만들어, 비만과 당뇨병 등 생활습관병의 예방, 개선 효과가 있는데, 근력운동에 의해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시키는 것과 골밀도 유지에도 유익하다.
노인의 근력운동
운동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운동부하검사’를 실시한다. 1992년도 오가와의 연구에 의하면, 노화로 유산소성 능력이 감소하는 근본적 원인은 최대 심박수가 감소하여 초래하는 심박출량 감소와 1회 박출량의 감소 때문이었다. 최대 유산소성 능력은 20세 이후부터 평균적으로 매년 1%씩 감소한다. 또한, 72세 노인 피험자에게 6개월 동안 자전거 운동을 시킨 1994년도 바보크의 연구결과, 최대 산소섭취량은 21.7ml/kg/min에서 26.2ml/kg/min로 21%나 향상되었다.
1987년도 스미스와 길리건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의 신체활동 프로그램은 심폐능력 저하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사망까지 초래하는 급성골절의 원인인 골다공증을 예방하는데 유용했다. I형 골다공증은 50~65세에 빈발하며 척추와 아래쪽 요골의 골절을 흔히 일으키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8배 높게 발병한다. II형 골다공증은 70세 이상에서 흔한데 대퇴, 골반, 상완골 골절을 일으키며 여성에서 2배 높게 나타난다. 뼈는 직립자세와 근육수축에 관련되므로 척추와 골반의 무기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보다 걷기나 조깅같이 근육자극이 가해지는 운동이 좋고, 체력이 약하거나 골절 경험이 있는 노인에게는 자전거 타기나 수영이 더 좋다는 결과를 얻었다.
노인 운동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심폐능력의 증진과 골격기능의 유지이다. 노화에 따른 생리적인 기능쇠퇴는 지구력이나 근력강화 운동을 규칙적으로 실행하여 완화시킬 수 있다. 규칙적 운동프로그램을 준수하면 최대산소섭취량 증가, 혈압저하, 인슐린감수성 개선, HDL 증가 및 LDL 감소가 가능하지만 충분한 효과를 얻기까지 장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노인의 운동훈련지침은 젊은층과 유사하더라도 정확하고 정밀한 의학적 검사와 위험요소 평가가 병행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무용이 남녀 노인의 운동능력과 웰니스(wellness) 자각도 향상에 효과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65세 이상 남녀 16명이 12주 동안 한국무용 참가 전후의 근력, 평형성, 유연성, 반응시간의 운동능력과 웰니스 자각도를 측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남자의 근력, 평형성, 유연성, 반응시간은 모두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둘째, 여자의 근력, 평형성, 유연성은 유의하게 증가하였지만, 반응시간에는 효과가 없었다. 셋째, 남자의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 웰니스는 유의하게 증가하였고, 사회적 건강, 지적건강, 정서적 건강은 유의한 증가가 없었다. 넷째, 여자의 신체적 건강, 사회적 건강, 정신적 건강, 지적 건강 웰니스는 유의하게 증가하였고, 정서적 건강은 유의한 증가가 없었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시작하며 매일 가능한 종목을 정하여 생활습관을 조정하되 운동계획을 급히 변화시키지 말고 서서히 조절해야 한다. 첫째, 유산소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5~15분 유연체조와 스트레칭, 에어로빅 활동을 함으로써 근육을 준비시키고 심박수를 증가시킨다. 둘째, 운동빈도 및 시간은 1주일에 3회, 1회당 20~30분 유산소운동을 하는데, 지속적으로 60분까지 점차적으로 증가시킨다. 셋째,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여 숨차지 않는 강도로 한다. 운동강도측정을 위해 ‘Kavonen 방법’을 사용하면, 안정시 심박수를 측정하여 운동목표범위를 50~70%로 결정하여 목표 심박수를 ’[최대심박수(220-연령)-안정시 심박수]*0.5+안정시 심박수’로 산출한다. 넷째, 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종목을 선택하고 최소한 6주 이상 지속해야 한다(그림 1).
근육이 수명이다(Muscle is Time)
젊을 때부터 하체근육을 비축해야 중년, 노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계단운동을 젊을 때부터 꾸준히 한다면 소위 가성비 높게 근력을 키워 중년, 노년을 위한 대비에 유익하다. 암 환자는 암보다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다가 발생하는 ‘근감소증’으로 사망할 위험이 높아진다.
근육량이 급격히 줄면 대사를 조절하는 인슐린 기능이 떨어져 몸 안에 염증이 발생하여 치매발생 위험이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신경학'(Neur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다리근육을 쓰는 달리기는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허벅지 근육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가벼운 걷기나 요가를 한 사람보다 기억력 및 사고력 테스트에서 더 우수한 성적을 보였다.
그림1.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출처: 도쿄도립건강장수센터연구소, 조선일보 번역)
노화가 진행되면 허벅지 등 큰 근육이 줄어드는데, 혈당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근육이 줄어들면 당뇨가 발생하거나 악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리나라 임상현장에서 당뇨환자가 정기검진을 받을 때 허벅지 근육강화를 위한 적절한 운동요법이나 식이요법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이는 우리의 의료체계가 당뇨환자 800만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아직도 예방이나 케어(care)가 아닌, 중증질환의 치료(cure)와 고도약물요법 패러다임에 머물러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필자는 약사가 지역사회에서 진정한 건강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2022학년도부터 시작하는 6년제 약학교육체계안에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에 대한 기초교과목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당뇨병 증세가 악화된 환자에게 자가혈당측정기를 구입하여 혈당수치만을 적극 관리하기를 강조하는 지금의 의료/약료 행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최소한 환자 본인에게 적합한 운동강도산출법을 알려주고 허벅지 둘레의 변화를 측정하도록 줄자를 사용해보도록 제안하는 것도 작은 의미의 약업혁신이자 지역사회 건강관리자의 역할은 아닐까?
전국 지역사회약국에 종사하는 3만명의 약사가 방방곡곡에서 800만의 당뇨위험자를 돌보고 약사 1명당 267명의 국민이 값싸고 양질의 건강관리서비스를 받게 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고령화 시대에 하루라도 젊을 때 시작하는 근육운동은 가장 확실하고 가성비 높은 노령연금이자 건강보험인 것이다. 100세 시대의 대비는 국가정책에 앞서 기존의 관행을 탈피하여 의미 있는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1-27 08: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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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9>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의 시간을 이해하자
수 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젊음이란 성장의 고통을 수반한다. 뭔가를 빨리빨리 이루기 바라 듯 성장도 성공도 그러한데, 이윽고 어떤 정점에 이르면 이때부터는 성장보다는 노화란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출생 후 약 25년이 경과하면 성장을 멈추고 서서히 노화과정을 겪는다. 노화를 대하는 일반적인 견해는 안타깝고, 슬프고, 아쉬움이 크지만, 필자는 “우리 모두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대중가요의 한 소절을 참 좋아한다.
성숙과 숙성은 결코 서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질주하는 열차라 하더라도 종착역에 가까워 질수록 속도를 줄이는게 정상이다. 이에, 100세 시대의 고찰할 주제의 한가지로서 노인이 느끼는 시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시간의 종류와 측정법
문명세계속의 현대인은 시간을 시계를 통하여 인식한다.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객관적 시간(objective time)’ 또는 ‘실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마음의 시간은 객관적 시간과는 달리 길어지거나 짧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시간을 ‘주관적 시간(subjective time)’ 또는 ‘심리적 시간’이라고 부른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주관적 시간은 객관적 시간에 비해 길다고 느낀다. 이는 시간을 과대추정(overestimation)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인 단 자카이는 시간에 대한 판단이나 예측을 전망법(prospective method)과 회고법(retrospective method)으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전망법’이란 어떤 일을 경험하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경과되고 있는지에 대한 예측을 해 보는 방법이고, ‘회고법’은 어떤 일을 경험했을 때 그 일이 끝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회상하여 판단하는 방법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전망법에 해당한다. 보고픈 사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에 주의를 기울이며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느낀다. 이것은 시간의 흐름이 아닌, 다른 곳에 주의를 기울일수록 기다림의 시간을 짧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기다리는 시간을 회고법으로 추정하는 경우에는 사건의 기억이 중요하다. 기다리는 동안에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 대한 기억의 총량이 기다림에 소비한 시간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사건의 양이 많을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기다리는 사람의 주된 관심사는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 이므로 시계나 달력을 자주 보게 된다. 만약,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한다면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 시간은 변할 수 있을까? 기다리는 동안에 제공되는 시간 정보는 두 가지로 나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예상시간 정보’와 현재 기다림이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수정하며 알려주는 ‘시간위치 정보’이다. 정류장에서 버스의 도착예상 시각을 알려주는 전광판은 전자이고, 대기표를 뽑고서 남은 순서를 기다리는 은행이나 매표소의 전광판은 후자에 해당한다(그림 1).
그림1. 인생은 기다림 (출처: 2004년 영화 ‘터미널)
기다림의 주관적 시간은 객관적 시간에 비해 대체로 길게 느끼게 되는 과대추정이 일어나는데, 어느 정도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시간흐름 정보를 제시하고 기다리는 이유를 알게 되면 주관적 시간이 짧아지는 ‘과소추정’을 하게 된다. 특히,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는 즉시 만남이 이뤄지도록 연출된 회고법 추정실험에서는 30퍼센트 정도의 시간이 단축된 것으로 인식했다. 이는 10분이라는 객관적 시간을 7분 정도였다고 주관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예상한 대로 기다리다가 제 때에 만나는 것은 인내를 발휘했던 시간을 보상해주는 일종의 감동인 것이다.
노인이 느끼는 시간의 속도
프랑스 소르본대학교 교수였던 폴 자네는 “1년을 10세는 10분의1, 50세는 50분의1, 70세는 70분의1로 느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처럼 자각한다”라는 ‘시간수축효과(Time-Compression Effect)’를 주장했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호흡·혈압·맥박·체온·세포분열·신진대사 등 생체시계가 느려지고 행동이 둔해지는 것과도 관련성이 깊다.
19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스 카렐은 “강물을 시간에 비유하면 청소년은 더 빨리 강둑을 달린다. 중년이 되면 속도가 느려지고 노년은 강물보다 훨씬 뒤처진다”고 밝혔다. 특히 행복감과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20세에 최고 농도를 기록하다가 10년을 주기로 5~10%씩 줄어드는 사실도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요인으로 꼽는다.
각기 다른 연령대를 대상으로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3분을 측정하라고 실험하였다. 그 결과, 10대는 2분50초, 40대는 3분30초, 80대는 4분20초가 지나자 3분이 경과했다고 답했다. 노인이나 중년은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 반면, 10대는 실제 시간이 더 길다고 감지한 것이다. 1995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피터 망간의 실험에서도 9~24세, 45~50세, 60~70세군은 각각 3분3초, 3분6초, 3분40초가 됐을 때 3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어린 나이일수록 뇌 신경세포의 정보전달 속도가 빠르고 모든 경험이 강렬하게 기억되는 반면, 나이가 들수록 속도는 느려지고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어린이는 모든 대상과 사건이 새로움으로 기억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각과 지성이 점차 퇴화하여 새로운 자극 없이 지나치는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는 고성능 카메라가 더 빠른 속도로 사진을 찍는 것과 비슷하다. 젊을수록 뇌의 성능이 우수하므로 같은 시간에 발생한 사건이라도 더 많은 프레임의 사진을 뇌에 저장하고 사건들이 마치 슬로모션처럼 기억된다. 사진이 많을수록 연결해 놓으면 슬로모션이 확장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그래서 젊을수록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느낀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뇌기능이 저하되면서 뇌가 사건을 듬성듬성 촬영하므로 익숙한 일상의 모습들은 상대적으로 기억에 잘 남지 않아 많은 부분을 놓쳐버리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네덜란드 그로닝겐대학교의 다우베 드라이스마 교수는 2001년에 출간한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서 시간수축 효과의 원인이 다음 세 가지라고 주장했다. (1)망원경처럼 과거의 일이 확대돼 시간거리가 축소되면서 최근 일로 기억하는 ‘망원경 효과’. (2)갈수록 기억의 지표로 사용할 경험이 줄고 기억력도 떨어지는데, 일상이 늘상 반복되는 30~40대는 기억이 단순화되는 ‘회상 효과’. (3)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줄어 생체시계가 느려지는 ‘생체시계 효과’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체감시간을 늦추는 방법으로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과 추억을 많이 쌓아 기억할 일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첫 사랑, 첫 출근, 첫 창업처럼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일주일 동안 해외출장에서 돌아와서 문득 보름쯤 지난 것 같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이는 낯설고 새로운 경험이 뇌 속에 많은 기억을 생성하여 체감시간이 길어진 결과이다.
시간의 상대성
프랑스의 지질학자 미셸 시프레는 1962년 7월 다량의 생필품과 식료품을 준비하여 시계없이 알프스 산의 130미터 깊이 빙하동굴에 텐트를 치고 63일 동안 어둠 속에서 지냈다. 그가 실험을 마친 때는 9월이었는데, 시프레는 그날을 8월이라고 대답했다. 시프레의 인식 속에서 25일이 사라진 것이다. 이 실험은 인체에 생물학적 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간은 어떤 외부적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의식에서 생겨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시계가 나타내는 시간 외에, ‘의식의 시간’ 곧 ‘본연의 시간’이 있는데, 이는 직관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개인 내면세계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이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뇌 속의 ‘선조체(striatum)’를 시간을 감지하는 기관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뇌에 장애가 발생하면 아무 때나 먹고, 자고, 깨고, 한밤중에도 일을 하는 등 생활질서가 교란된다. 또한, 뇌에 이상이 생기면 시간의 질주를 경험하는데 이 환자에게 1분이 경과하면 표시하라 하면 5분이 경과한 후에야 답하는 등 인식 속에서의 시간이 실제보다 5배나 느리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뇌병변이 없는 정상인도 시간 감각이 항상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의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는 시간감각을 ‘박자기계’를 이용하여 실험한 결과, 사람들은 속도가 일정해도 소리가 점점 커질 경우 속도가 빨라졌다고 느꼈다. 그만큼 우리 뇌의 시간 감각은 외부의 변화에 취약한 것이다.
더불어, 문화에 따라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과거는 뒤에, 미래는 앞에 놓여 있다고 인식하지만 안데스 산맥에 거주하는 아이마라족은 과거를 물으면 시야의 앞쪽을 가리킨다. 과거의 사건들은 이미 한번 경험했기에 볼 수 있는 앞쪽에 있고, 미래의 사건들은 알 수 없으므로 등 뒤에 있다는 것이다.
노인의 기다림
기다림의 끝이 곧 미래다. 인지적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과거의 기억은 미래의 상상보다 생생하고, 상상은 미래가 멀수록 구체성은 낮아진다. 하지만 기억을 회상할 때보다 미래를 상상할 때 감정은 훨씬 활발히 반응한다. 사람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한다. 현재가 안타깝고 아쉬워도 미래의 보상은 풍성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과 기대가 기다림을 견디게 해준다.
감정이 존재하는 목적이 행동에 앞서 상황을 판단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행동하기 전에 이미 마음은 부정적인 것은 피하고 긍정적인 것은 받아들이도록 준비한다는 뜻이다. 기다림은 지루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를 알 면, 그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에 대한 통제감(sense of control)을 얻는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의 경과 시간을 풍요롭게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100세 시대에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노후준비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삶의 약 95%는 기다림의 연속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이다. 따라서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연속적인 기다림속에서 잘 느끼고 성숙해져가는 것이다. 그리고 100세 시대란, 기다림의 미학을 이해하는 사회적 환경과 개인적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지난 70여년동안 고도성장을 이루며 고속열차처럼 달려왔다. 그 속의 승객이었던 현재의 노인들은 속도감에 익숙해져 있다. 노화가 진행하면서 비록 육신은 느려지지만, 평생 지속되어온 기다림의 순간을 곱씹어보며 삶의 종점이 더 가까워온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름다운 기다림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이제는 100세 시대의 후반기는 누군가를 기다리기 보다 자기 인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곧 기대감의 기다림이 아니라 마무리의 기다림을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1-01-13 1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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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28> 100세 시대의 고찰: 노인학에 대한 관심과 공부
다가오는 ‘100세 시대’를 이해하고 잘 대비하려면 노인학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간 필자는 빠르게 도래한 고령화 현상을 주로 시장 중심적 관점에서 소개했는데, 그렇다고 노인을 고령화 사회의 유행을 창출하는 경제적 주체로만 편협하게 표현한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달로 제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여도 결국 사람의 노화과정이란 불가피한 현상이기에 현대 노인학은 인간이 자신의 마지막을 잘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학문이라고 부르고 싶다. 따라서 장수(長壽)도 단지 수명만 늘어나기 보다는, 예전보다 질어진 삶의 연장선 안에서 보다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방안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노인학이란?
노인학(老人學, gerontology)은 노년학(老年學)이라고도 부르는데, 노화의 사회학적, 심리학적, 인지학적, 생물학적 관점의 연구를 총칭하며, 노인의 질병치유에만 전문화된 ‘노인의학(노인병학, geriatrics)’과는 구별된다. 다학제적 속성을 지닌 노인학은 생물학, 간호학, 의학, 범죄학, 치과학, 사회복지학, 물리학, 작업요법학, 심리학, 정신의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건축학, 지리학, 약리학, 공중위생학, 주거(housing), 인류학 등 다양한 전문영역을 포괄한다.
특히 다음 3가지 학문이 대표적인데, (1)고령자에게 흔히 발생하는 질환의 원인, 진단, 치료, 예방을 연구하는 ‘임상노인의학(clinical gerontology)’; (2)노화의 기전을 규명하는 ‘노화학(biological gerontology)’; 그리고 (3)고령자의 복지, 사회, 행동심리학을 다루는 ‘노년학(social gerontology)’이 그것이다.
노인의학은 노인병학(Geriatrics)이라고도 부르는데, 20C 후반 선진국에서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정규의학의 한 분야로 정착했는데, 1944년에 미국에서 Gerontology 학회가 창립되었고, 1946년에는 The Journal of Gerontology란 학술지가 창간되었다. 이렇듯 선진국에서는 지금 Gerontology가 의학, 사회, 경제 부문에서 고령자와 고령사회를 연구하는 분야로 정착하여 다양한 측면의 대응방안을 제시하며 발전하고 있다(그림1).
노령인구에 대한 미국의 대처
미국은 190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310만명에서 2009년에 3,560만명으로 늘었고 2030년경에는 70세 이상만 7,1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 집단 내에서 고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 (1)복합만성질환, (2)노쇠, (3)특별한 의료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그림1. 국가별 기대수명 및 백세인 현황
미국은 1935년에 미래의 노년사회를 대비하여 사회보장법(일반인 대상 연금프로그램)을 제정하였고, 1942년에 노인병학회(American Geriatrics Society)가 창립되었는데, 1945년에는 노화학회(Gerontological Society of America)가 창립된 후, 1947년에는 다학제적 학회의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1940~1950년대는 노인의학과 노년학의 협동연구가 활발했고, 1960년대 후반에는 ‘노인의학 전공의사(fellow) 양성프로그램’까지 등장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는 노인 및 장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도 시작되었다.
이어 1974년에는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가 설립되었고, 1970년대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900만명의 재향군인들이 노인이 되자 국가는 이들에게 원활한 의료서비스의 제공을 위하여 본격적인 재원조달을 추진하였다.
한편, 의학연구원(The Institute of Medicine, NGO, 국가자문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것은 1978년에 ‘노령과 의학교육’이란 제1차 보고서를 통하여 의과대학생이나 전공의를 위한 노인의학 교육과정의 구축을 제안하였고, 1987년 제2차 보고서에서는 노인의학지도자의 역량을 향상시킬 우수교육센터의 구축도 제안하였다. 이어 1993년 제3차 보고서에서는 지역사회 일차진료의사에 대한 노인의학교육의 강화, 노인의학전문의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1980~90년대에 급속히 늘어나던 노인의학전문의 과정 지원자는 2000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는데, 추가로 2006~2007년에는 재향군인(VA)병원과 메디케어(Medicare)에서 노인의학 펠로우프로그램에 대한 재정지원까지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런 결과의 요인으로는, 미국내 노인환자의 다수가 적용 받는 메디케어의 보험급여가 사(私)보험보다도 낮아졌고, 노인의학 전문의사의 직무만족도는 높지만 내과학 전문의사보다도 현실적인 급여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선진국의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중 한가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특정분야 전문인력의 양성과 유지에는 정부의 정책이나 사회체제에 의해서 경제적 지원체계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노인의학 발전사
영국에서는 1947년에 다학제적 모임인 영국노인병학회(BGS, British Geriatrics Society)가 설립되었고, 1948년에는 국가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Insurance)에 의해 모든 보건의료제도가 통제되기 시작했다. 노인의학은 1970년대 중반부터 전문영역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현재 영국노인병학회는 2,500여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일본의 고령화 현황과 노인의학의 역사
일본의 노인의학 및 사회제도의 역사는 깊은 편이다. 이미 1900년대 초부터 고령자에 대한 일차진료, 노인병에 대한 기초 및 임상연구 역량이 발전하였으며, 1959년에는 ‘일본노년의학회’가 창립되었다. 1987년에는 후생성 산하에 고령사회 대비 방안을 준비하는 ‘장수과학조직검토위원회’가 설치되어 (1)노화기전 규명, (2)고령자 특유질환의 원인규명, (3)진단-치료-예방법 탐구, (4)고령자의 사회적-심리적 문제의 연구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던 일본은 1973년부터 7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의료비 무료화 정책을 실시하였고, 고령자의 의료비 부담에 대한 공평성과 장년기부터 종합보건대책에 의한 고령자의 건강확보를 위하여 1982년에는 ‘노인보건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는 ‘간병보험제도’까지 시작했는데, 이것은 고령친화사업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훗날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제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부터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접어든 후, 무상의료보험제도로 인한 국가의 재정부담을 낮추기 위해 2008년 4월부터 75세 후기고령자와 특정 장애를 보유한 65세~74세 전기고령자를 같은 건강보험제도에 편입시키는 이른바 ‘후기고령자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였다.
일본 노인의학회는 1995년에 사단법인이 되었고, 2004년부터 노인병 전문의를 배출하기 시작했고, 2010년 기준 6,500여명의 정회원이 활동 중이다.
노령화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처
우리나라는 1990년도 후반부터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2018년에는 14%를 돌파하여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26년경에는 20% 넘어 초고령사회로 변모될 예정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노인인구 비율이 70~80%를 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어 정부나 지역사회, 개인들이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앞으로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점들이 많이 등장할 것에 대한 염려가 깊어지고 있다.
1968년에 대한노인병학회가 창립되었고, 노령화사회를 대비한 ‘국민연금제도’도 출범하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의학계에 노인병 개념이 정립되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1999년에는 ‘노인보건복지 중장기 발전계획 추진상황’을 시작으로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준비에 착수하였고, 2002년에는 ‘노인보건복지종합대책’의 일환으로 노인요양보장제도가 시작되었다. 2004년에는 ‘고령화 및 미래사회 위원회’를 구성하고, ‘저출산·고령화 대책단’도 발족되어 고령화 사회에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반구축 등 다양한 정책들을 실행하였다.
같은 해, 저출산 및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산부인과 및 소아과 전문의 공급의 축소를 결정하고, 해당 정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되, 잉여인력은 노인치료 관련 전공분야로 전환하기로 하였다. 이는 2020년 무렵에는 산부인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15년 전에 비해 70~80% 감소되고 소아환자는 30%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어 대신 노인요양환자를 치료할 전문인력을 증원하는 방향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2005년에는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법’(법률7496호)을 입법했는데 제28조 1항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노인질환 치료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입법하여 질병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곤란한 노인에게 수발급여제공을 시작했고, 요양보호사제도를 도입하여 ‘요양보호사’를 육성하는 등 차분히 고령화 사회를 위한 제도정비를 추진 중이다.
노인학은 이미 65세를 넘은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을 위한 실제적인 학문이고, 아직 65세에 이르지 못한 이에게는 일종의 미래학문이다. 모든 인간은 노화를 겪게 되며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노인학은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할 필수과목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공동체 안에 축적한 경험을 현재나 미래를 살아가는데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특유의 장점을 가졌다. 더구나 현대는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활동의 흔적(데이터)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현재와 미래를 위한 예측과 판단에 활용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현상은 물론, 사회현상도 확률이나 통계적 법칙에 따른다. 인간이 끊임없이 학습해야하는 이유는 아무 생각없이, 무작위적 선택이나 결정으로 인한 오류와 실패의 가능성을 낮추고 합리적인 결정의 확률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선진국 사회에서 고령화 시대에 필수적 준비요소라고 강조하는 ‘부(wealth)’와 ‘건강(health)’은 정량적 측정이 가능하기에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은 ‘행복’과 ‘만족’과 ‘가치’라는 측정도 어렵고 정답조차 모호한 요소들을 어떻게 준비할 지 고민하고 있다. 이에, 100세 시대를 대비하며 노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가시적이고 계측 가능한 요인들을 준비하는 것 외에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게되는 이로움이 있다.
COVID-19란 전 세계적인 역병으로 인하여 오래 산다는 것과 삶의 의미를 깨달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내년에는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며,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희망과 활로를 찾는 자기 혁신의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방준석 교수(숙대약대)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약국, 병원, 제약회사, 연구소 등에서 활동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약학대학의 임상약학 교수이자, 경영전문대학원의 헬스케어MBA 주임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약사이자 약학자로서 약과 약사, 약국과 약업은 물론, 노인약료와 스마트헬스케어 분야의 혁신과 발전방안을 연구하여 사회의 각계 각층과 교류하며 실천하고 있다.
2020-12-30 1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