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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10> 다이어트 신약이야기
엄청난 다이어트 신약이 곧 세상에 나올 것 같다. 제약회사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과체중이나 비만인 사람이 이 약을 72주 사용하면 체중이 22.5%(24kg)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위약(플라세보)을 준 그룹에서 체중 감소는 2.4%에 불과했다.
아직 학술지에 실린 연구 결과는 아니다. 개발사인 일라이 릴리가 신약 티제파티드(tirzepatide)의 임상 3상 연구결과를 발표했을 뿐이다. 하지만 22.5%라는 수치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2021년에 또 다른 다이어트 신약 세마글루티드가 참가자 체중을 15%까지 감소시킨다는 연구논문이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실려 화제가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더 놀랍다. (세마글루티드 임상시험에서도 위약군의 체중 감소는 2.4%로 나타났다.) 아직 둘을 일대일로 비교한 임상연구 결과는 없지만 일단 체중 감소만을 놓고 보면 티제파티드의 감량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작용 면에서는 세마글루티드가 나을 수도 있다. 당뇨 치료약으로 둘을 비교한 임상시험(SURPASS-2)에서 부작용으로 인해 약 사용을 중단한 참가자 비율이 티제파티드 그룹(6.0~8.5%)에서 세마글루티드(4.1%)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두 약 모두 구역, 구토, 설사와 같은 위장관계 부작용이 가장 흔했다.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은 아니지만(그런 약은 없다) 그래도 기존의 펜터민과 같은 중추신경 흥분제에 비하면 훨씬 나은 다이어트 약이다.
신약이 개발되는 것 자체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기틀이 되는 과학 지식이 축적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티제파티드는 인체에서 만들어내는 호르몬인 인크레틴(incretin)을 본떠 만든 약이다. 인크레틴은 호르몬이 과학으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1930년대에 만들어진 용어다. 1932년 벨기에의 생리학자 장 라 바래(Jean La Barre)는 장에서 분비되어 인슐린, 글루카곤과 같은 췌장 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있을 거로 추측하며 여기에 인크레틴이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실제로 인크레틴이 존재하는지 입증하기는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았다. 콜레시스토키닌(CCK)을 발견한 당대의 생리학자이며 의사 앤드류 아이비(Andrew Ivy)가 인크레틴이 존재할 가능성이 낮다고 단언하면서 1940년대부터 20여 년 동안 인크레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와서 로절린 얠로와 솔로몬 버스의 획기적 기술을 개발한다. 방사면역측정법(RIA)으로 인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호르몬 연구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게 된다. 때맞춰 인크레틴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포도당을 먹었을 때 주사로 정맥에 주입했을 때보다 인슐린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먹었을 때 장에서 인크레틴이 분비되어 췌장이 인슐린을 더 많이 내놓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추측이었다. 이어 1970년대 초에 GIP가 발견되고 1980년대 중반에는 GLP-1(glucagon-like peptide-1)이라는 또 다른 인크레틴이 발견되었다.
GLP-1과 GIP는 모두 짧은 동안만 존재했다가 금방 사라지는 호르몬이다. GLP-1의 반감기는 약 5분, GIP는 약 2분이다. 짧은 시간 동안만 작동하기 때문에 이들 인크레틴을 약으로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 호르몬의 모양과 유사한 분자를 만들고 효소(DPP-4)에 의해 분해되는 것을 막는 구조로 하면 약효를 길게 할 수 있다. 효소의 활동을 막아 인체가 만드는 GLP-1, GIP가 분해되는 것을 늦추는 약이 글립틴이라고 불리는 약이다. GLP-1 유사체로 만들어진 약이 세마글루티드와 같은 약이다. GIP 유사체는 약으로 만들어도 효과가 시원찮다는 게 이제까지의 중론이었다. 그런데 GIP와 GLP-1의 양쪽 모두와 비슷하게 만든 이중 작용제의 경우 GLP-1 작용제보다 효과가 더 좋다는 게 티제파티드라는 신약의 개발 과정에서 알려진 것이다. 길고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다. 신약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이렇게 오랜 과학자들의 발견과 지식의 축적이 필요하다.
2022-06-08 2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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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9> 염증과 통증 약이야기
만성 염증은 만성 통증을 부른다. 운동하다가 다쳐서 염증이 생긴다면 염증을 완화하기 위해 소염진통제를 쓰는 게 낫다는 게 이제까지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 연구자들이 있다. 지난 5월 11일 자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실린 연구 결과이다. 급성 통증이 있을 때 이전에 생각한 것과 달리 소염진통제보다 해열진통제가 나을 수도 있단 얘기다.
급성 염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염증이 있을 때 아프다고 얼른 소염진통제를 사용하면 그게 인체의 자연스러운 회복을 막아서 도리어 더 오래 아프게 된다는 연구 결과이다. 이런 연구가 가능하게 된 것은 RNA 시퀀싱 비용이 전보다 저렴해져서 세포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탈리아에서 급성 요통 환자 98명의 혈액을 채취하고 이들 환자를 3개월 동안 추적 관찰했다. 이들 중 절반은 회복하면서 통증이 사라졌고 절반은 두 번째 방문 시에도 통증이 계속됐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났는지 보기 위해 연구진은 RNA 시퀀싱 기술을 이용해 면역 세포 속에서 어떤 RNA가 만들어졌는지 조사했다. 세포 속 유전 정보는 DNA로 들어있지만 이걸 꺼내쓸 때는 RNA로 전사된다. 따라서 어떤 RNA가 만들어졌는지 보면 세포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론할 수 있다. 이렇게 RNA를 분석해본 결과 통증이 만성화한 요통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면역세포 속에서 염증과 관련한 유전자가 활성화한 환자의 경우 만성 통증이 없었다. 반대로 면역세포 속에서 아무 일이 없었던 환자의 경우 만성 통증이 나타났다.
보통 아프면 소염진통제나 스테로이드를 써서 염증을 치료한다. 불을 얼른 꺼서 만성 통증으로 발전하는 걸 막으려는 의도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 결과는 정반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기간 염증이 굵고 짧게 나타난 사람이 예상과 반대로 회복이 좋다는 거다. 반면에 그런 염증 반응이 없었던 사람이 오히려 더 만성 통증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연구진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여서 이번에는 동물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동물로 생쥐의 좌골신경을 손상시켜서 통증, 염증을 유발하고 한쪽은 염증을 줄여주는 코르티코스테로이드 덱사메타손을 투여하고 다른 집단에는 소금물을 주사했다. 처음에는 항염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쪽 생쥐가 통증 증상이 더 적게 나타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관찰한 결과 항염 주사를 맞은 쪽 생쥐가 회복이 더뎠다. 소금물만 주사한 쪽 생쥐의 경우 이삼 주 만에 통증이 사라졌지만 항염 주사를 맞은 쪽은 통증이 낫는 데 150일까지 걸렸다. 정말 염증을 낮춘 게 문제였나 확인하기 위해 염증은 낮추지 않고 통증만 완화하는 진통제(가바펜틴, 모르핀, 국소 리도카인)를 쓴 경우와 소염진통제(디클로페낙)을 쓴 경우도 비교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소염진통제를 투여한 실험동물만 만성 통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잠깐, 위의 연구 결과가 실린 중개의학이 뭔지 살펴보자. 중개의학은 실험실에서 주로 진행되는 기초과학을 실제 환자를 돌보는 임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다리를 이어주는 학문이다. 동물실험으로 기전을 추론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환자에게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도 살핀다. 그러니 연구진이 영국의 급성 요통 환자 2,163명의 자료까지 들여다본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이들 중에 461명의 급성 요통은 만성 통증으로 진행했다.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소염진통제(NSAID)를 복용한 사람은 다른 약 또는 약을 먹지 않은 사람에 비해 만성 통증으로 진행할 확률이 거의 두 배 더 높았다. 이런 비교만으로 인과 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다른 두 연구 결과를 함께 고려하여 추론하면 비슷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갑자기 요통이 올 때는 소염진통제보다 해열진통제가 통증의 만성화를 피하는 데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 뒤에 염증으로 아픈 건 정상적 회복 과정이며 이런 염증을 가라앉히면 오히려 통증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추측이다. 물론 이 연구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심한 급성 통증이 있을 때는 병원에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부터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염증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연구 결과다.
2022-05-25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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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8> 성욕저하장애약 이야기
세상은 복잡하다. 우울증은 성욕을 저하시킬 수 있다. 항우울제를 복용해서 우울증 증상이 나아지면 저하됐던 성욕도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반대로 항우울제의 부작용으로 성욕 저하 장애를 경험할 수도 있다. 특히 SSRI 계열 약에서 잘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들 약물은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막아서 그 작용을 강화한다. 세로토닌은 흔히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 물질이지만 성기능 장애와도 관련된다. 테스토스테론, 도파민은 성욕 증가, 세로토닌은 성욕 감퇴와 연관된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면 반대로 테스토스테론과 도파민 수치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성욕 감퇴와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으로 인해 성기능 장애가 의심될 때는 우선 약을 처방한 의사와 상담해봐야 한다. 부프로피온, 미르타자핀 또는 SNRI와 같은 다른 계열의 약으로 바꾸면 부작용이 줄어들 수 있다. 이들 약물은 세로토닌 외에도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다른 신경전달물질에도 영향을 주므로 성기능 장애 위험이 더 낮게 나타난다.
여성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이가 들면서 성호르몬이 감소하므로 성욕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여성은 여성호르몬이 정상치인데도 성욕 저하로 인해 고통받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울증이나 다른 만성질환, 약 부작용으로 인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원인이 있을 경우에는 원인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성욕저하장애도 있다. 18~44세 여성의 8.9%, 45~64세 여성의 12.3%, 65세 이상 여성의 7.4%가 성욕저하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6월 미 식품의약국(FDA)는 새로운 성욕저하장애 치료제를 승인했다. 성분명이 브레멜라노타이드(Bremelanotide)이다. 어려운 이름이다. 상품명은 조금 낫다. ‘경유하여, 통하여’라는 뜻의 via와 ‘쉬운, 편안한’을 뜻하는 easy를 합하여 만든 바이리시(Vyleesi)이다. 약을 통해서 성욕저하장애로 인한 고통을 덜 수 있다는 제조사의 메시지를 담은 작명이다.
바이리시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출시된 성욕저하장애 치료제다. 첫 번째로 출시된 약 플리반세린은 애디(Addyi)라는 상품명으로 미국에서 2015년 출시됐지만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았다. 플리반세린은 원래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성욕저하장애 치료제로 용도가 바뀌었다. 이 약이 세로토닌에 미치는 영향이 기존의 항우울제와는 반대로 성욕을 증가시키는 쪽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과가 느리게 나타난다. 복용 4주가 되어야 효과가 나기 시작해서 최대 효과를 얻기까지 8-12주가 걸린다. 알코올과 상호작용도 있다. 술을 마시고 2시간 내에 애디(플리반세린)를 복용하면 저혈압, 실신 부작용 위험이 있다. 이에 반해 바이리시는 알코올과 상호작용이 없고 성관계 45분 전에 투여하면 효과를 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먹는 약은 아니다. 일회용 펜 타입의 피하 주사 형태로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어서 곧 출시가 예상된다. 플리반세린의 효과를 두고 논란이 있었던 데 반해 브레멜라노타이드는 효과가 나은 편이다. 24주 동안 1,247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 성욕이 증가한 사람이 약 투여군에서 51%로 위약(플라시보)의 21%보다 높게 나타났고 만족도 또한 57%로 위약(26%)보다 높았다. 다만 한 달에 만족을 주는 성관계 회수(SSE)에는 차이가 없었다.
바이리시(브레멜라노타이드)는 멜라노코르틴이라는 호르몬을 흉내 낸 약이다. 이들 호르몬이 작용하는 수용체에 작용하여 약효를 내는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한 기전은 아직 모른다. 여성의 성욕저하장애 치료에 사용이 승인되었지만 남성에게도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 약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작용으로 오심, 구토, 고혈압이 생길 수 있다. 얼굴이 빨개지거나 코막힘, 기침을 경험할 수도 있다. 제일 큰 문제로 피부색이 햇빛에 탄 것처럼 어두워질 수 있다. 멜라노코르틴이 자외선에 노출될 때 멜라닌 세포를 자극하는 호르몬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다. 이런 피부 색소침착 부작용은 피부색이 원래 짙은 사람의 경우에 생기기 더 쉽고 약을 매일 사용하면 위험이 더 크다. 게다가 약 사용을 중지하고 나서도 색소침착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약도, 그 약이 작용하는 인체도 전혀 단순하지 않다. 약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함부로 쓰지 말자.
2022-05-12 0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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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7> 치매약 이야기
아직 치매를 완치할 수 있는 약은 없다. 하지만 치매의 약물 치료는 빨리 시작할수록 효과가 좋다. 치매는 뇌의 신경세포가 손상되거나 죽어서 뇌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뇌 신경세포가 죽고 나면 약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직까지 치매약이 할 수 있는 일은 살아남은 뇌 세포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이다. 약물 치료가 너무 늦어져 이미 너무 많은 뇌 세포가 손상되면 약을 써도 잘 반응하지 않고 진행을 늦추기 어렵다. 영국에서 2014년 발표된 종합 분석 연구에 따르면 약물치료를 1년을 늦출 때마다 그로 인한 유익이 17% 감소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조기 발견하여 조기 치료를 시작할 경우, 치매 환자의 가족은 향후 8년간 약 7,800시간의 여가시간을 더 누릴 수 있고 6,400만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게다가 치매 초기단계부터 조기 치료하면 5년 후 요양시설 입소율이 55% 감소한다. 치매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약물치료를 꾸준히 한 사람의 90%는 5년 후에도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었던 반면 치료를 포기한 사람은 10명 중 6명이 요양 시설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치매 증상이 심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치매 환자의 뇌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이해하면 치매 약의 작동원리도 이해하기 쉽다. 치매 환자는 뇌 신경세포가 파괴되면서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메신저와 같은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줄어든다. 신경세포 간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니까 마치 통신망이 두절된 것처럼 뇌에서 문제가 생긴다. 치매 치료에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약은 아세틸콜린이 조금 더 오래 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적게 만들어지니까 버리지 않고 아껴 쓰는 방식으로 인지기능이 유지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약을 써도 병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경과를 6개월에서 2년 이상 늦출 수 있다.
아세틸콜린 효소 분해를 억제하는 약은 오심, 구토, 설사, 두통 등의 부작용이 흔하게 나타난다. 이런 부작용은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고 낮은 용량에서부터 조금씩 약을 늘리는 방법으로도 피할 수 있다. 약을 식후에 복용하는 게 빈속에 복용할 때보다 위장관 부작용이 덜하다. 하지만 3-4주가 지났는데도 오심, 구토가 계속되면 의사와 상담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비슷한 계열이지만 다른 약으로 바꾸거나 또는 붙이는 패치와 같은 다른 제형으로 바꿔볼 수 있다.
뇌에서 글루타메이트(glutamate)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인지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MSG를 많이 먹으면 뇌에서 흥분독소로 작용한다는 설은 여기서 나온 말이지만 틀린 이야기다. 글루타메이트는 고농도에서도 뇌-혈관 장벽을 거의 통과할 수 없다.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글루타메이트가 문제다. 메만틴이라는 약물은 글루타메이트와 결합하는 NMDA 수용체를 차단하여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감기약, 요실금이나 배뇨장애를 치료하는 항콜린제는 치매 환자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들 약은 치매 증상을 완화하는 약과는 반대로 인지기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뇌에서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치매를 직접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은 없지만 신경안정제를 오래 복용하면 치매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PPI)의 경우도 장기 복용 시 비타민B12 부족으로 치매 위험이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꼭 치매가 아니더라도 노년층이 이들 약물을 장기 복용하는 경우에 위험과 약물 치료의 유익 중 어느 쪽이 더 큰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아직 치매의 진행을 늦추거나 치매의 원인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더 확실히 알게 되고 병의 진행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약이 개발되기까지는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릴 듯하다. 아쉽지만 지금 있는 약으로 제때 치료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알아 두는 게 현실적으로 제일 나은 방법이다.
2022-04-27 2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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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6> 남성호르몬을 높이는 법
어렵고 생소한 의학용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중년 남성이라면 누구나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말과 친숙하다. 근육을 만들고 성욕과 체력을 유지시켜 준다는 바로 그 남성 호르몬 말이다. 갑자기 남성 호르몬이 확 줄어들진 않는다.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테스토스테론은 40대부터 매년 1%씩 감소한다. 그러나 어느 날 팔을 만져보면 단단하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단단함은 오로지 배를 두른 지방층에서만 느껴진다. 성욕 감퇴나 발기 부전은 물론이고 야한 상상마저 할 수 없다. 쉽게 피로하며 우울하기까지 하다. 전부 남성호르몬이 부족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남성호르몬을 높여줄 수 있는 방법에 귀가 솔깃해진다. 하지만 특정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남성호르몬을 높이기는 어렵다. 남성호르몬을 더 떨어뜨리는 방법은 하나 있으니 바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과음하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떨어진다. 일시적이고 30분 정도가 지나면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긴 한다. 하지만 과음을 반복하면 알코올이 고환 세포에 해를 준다. 게다가 간에서 테스토스테론이 더 빨리 대사된다. 더 적게 만들고 더 빨리 청소해서 없애니 혈중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2003년 핀란드 연구에 따르면 한두 잔의 술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살짝 높여줄 수 있다고 한다. 간에서 남성호르몬 대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다. 남성호르몬 감소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다면 술은 적게 마시는 게 좋다.
과식도 남성호르몬에게 악영향을 준다. 많이 먹고 뱃살이 늘어날수록 남성호르몬 수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내장지방 속 효소가 남성호르몬을 여성호르몬으로 전환시켜 남성호르몬을 더욱 줄어들게 한다. 여성호르몬 증가는 남성에게 여성형 유방(gynecomastia)이 나타나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허리둘레는 남성호르몬 저하에 관한 한 나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10년 더 나이들 때보다 허리둘레가 10cm 더 늘어날 때 테스토스테론 부족을 경험할 확률이 두 배 더 높다.
그래도 뭔가 도움이 되는 음식이 있지 않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현대인 대부분은 이미 충분히 잘 먹고 있다. 너무 잘 먹어서 문제다. 연어, 등푸른생선, 채소류, 견과류 같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고 남성호르몬이 더 늘어날 가능성은 낮다.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연어가 좋다는 주장이 있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연구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2016년 아르헨티나 연구 결과 개 다섯 마리에게 매일 생선 기름을 먹이자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지긴 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연어를 찾진 말자. 캐나다에서 야생의 곰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곰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연어를 많이 먹을 수 있을 때는 낮아지고, 도리어 연어를 구할 수 없을 때 더 높아졌다. 연구자들은 이런 결과가 아마도 경쟁해야 하는 환경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나타난 게 아닐까 추측했다. 그런데 실제로 생활에 적용하긴 어려운 연구 결과다. 연구자들 추측이 맞다면 시골 한적한 길에서 운전하는 사람보다 경적을 울리며 옆 차와 싸우듯 운전하는 도시의 운전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남성호르몬 수치를 높이겠다고 도로에서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방법은 있다. 운동이 도움이 된다. 10-15분 동안 바벨을 드는 중량 운동으로도 짧게나마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으로 남성호르몬에 미치는 효과는 줄어들지만 그래도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건 음식에만 기대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다. 특정 부위만 운동하는 것보다는 전신운동이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이는 데 효과가 낫다.
하지만 운동도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운동은 남성호르몬 수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잠도 충분히 자야 한다. 남성호르몬은 잠잘 때 만들어진다. 2011년 미국 시카고 대학 연구 결과 하루 잠을 5시간으로 줄이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0-15%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고루 적당히 먹고 절제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운동하라. 남성호르몬을 높이는 방법도 역시 특별한 건 없다. 이미 알고 있는 답이 정답이다. 실행만 하면 된다.
2022-04-13 1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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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5> 국수와 소화이야기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직관적으로는 음식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2012년에 화제가 되었던 라면 면발이 소화되지 않은 위내시경 동영상처럼 말이다. 먹고 난 지 2시간 뒤 인스턴트 라면은 거의 변화가 없었고 집에서 만든 생면은 풀어졌다. 하지만 이 동영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실은 위내시경 동영상이라는 것부터가 문제다. 사람의 위에서는 탄수화물과 지방이 소화되지 않는다. 단백질만 부분적으로 소화된다. 위 속 내용물을 내시경으로 보여주면서 ‘이봐라! 라면은 소화되지 않는다’라고 외친다면 그건 그냥 사기다. 대장 내시경 또는 대변에서 소화되지 않은 면발이 대거 발견되어야 비로소 라면이 소화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일말의 신빙성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발견을 기대하기 어렵다. 라면은 장에서 소화 흡수되기 때문이다.
첨가물 때문에 라면이 소화되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 없다. 라면은 튀기는 과정을 통해 수분 함량이 크게 줄어서 굳이 보존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튀김에 사용된 기름이 산패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항산화제(산화방지제)는 필요하다. 그런 용도로 사용된 게 TBHQ이다. TBHQ의 사촌격인 BHA, BHT와 같은 산화방지제는 약품 제조에도 많이 쓰인다. 감기약, 소염진통제 같은 약품 연질캡슐 속에 유지가 들어있다. 유지가 산화되지 않도록 막아주려면 산화방지제를 소량 넣어줘야 한다. 하지만 워낙 소량이다. 전체 중량의 0.02%에 불과하다. 이 정도 양으로 라면의 소화를 막을 정도의 효과를 내긴 어렵다.
라면이나 짜장면에 소다가 들어있어서 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밀가루 반죽에 베이킹 소다를 넣어주면 알칼리성을 띠면서 조금 더 단단하고 탄력 있는 면이 만들어진다. 밀가루 속 플라보노이드가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알칼리면 특유의 색깔을 낸다. 시간이 지나도 면발이 살아있어서 배달 중국집에서 선호하는 면이다. 베이킹 소다가 제산제, 소화제로 사용된다. 식후에 베이킹 소다를 너무 많이 먹으면 이산화탄소 가스가 발생하여 트림이나 복부 팽만감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면에 반죽된 상태로 섞여 있는 소다가 뱃속에서 소화 불량을 일으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면을 먹고 소화가 잘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라는 건 아니다. 면은 원래 소화가 느린 음식이다. 면의 탄수화물은 빵이나 밥을 먹었을 때보다 더 천천히 흡수된다. 치밀하고 단단한 구조로 인해 소화효소가 접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스타 제조사 바릴라에서 파스타는 당지수(GI)가 낮은 음식이라고 홍보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파스타만 그런 게 아니고 국수가 대부분 그렇다. 국내 연구진이 영국 영양학 저널에 발표한 2019년 연구결과를 보면 라면, 스파게티, 수타면, 쌀국수는 모두 당지수가 낮은 음식이다. 먹고 나서 당분이 천천히 흡수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탄수화물의 양이 많으니 당뇨병 환자라면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소화가 되긴 되는데 느리게 된다. 라면, 짜장면만 그런 게 아니고 면이 대부분 그렇다. 게다가 라면이나 짜장면에는 다른 국수보다 지방 함량이 높다. 라면은 기름에 튀겼고 짜장면은 소스를 기름에 볶아서 만든다. 지방은 단백질, 탄수화물보다 소화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만큼 위에 오래 머문다. 소화가 느리게 진행되고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포만감이 오래가서 좋을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불편해할 수도 있다.
소다가 들어간 면은 입속에서 미끄러진다. 나도 라면이나 짜장면을 먹을 때 그 느낌이 좋아서 덜 씹고 삼키곤 한다. 나야 짜장면 3.5그릇까지는 먹고도 아무렇지 않으니 괜찮다. 하지만 면을 먹고 속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국수도 여러 번 씹어 삼키는 게 좋다. 2020년 영국 연구에 따르면 국수의 소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저작 입자의 크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 씹고 삼키면 더 느리게 소화되고 오래 씹을수록 더 잘 소화된다는 이야기다.맛있다고 너무 빨리 다 먹고 나서 국수를 탓하지 말자.
2022-03-30 1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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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4> 프로바이오틱스 이야기
마케팅은 과학보다 빨리 간다. 프로바이오틱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에는 주로 유산균에 대한 이야기가 매체에 자주 등장했지만 요즘 더 핫한 용어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다.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는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유산균은 발효과정에서 유산(젖산)을 만들어내는 균을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균이 모두 사람의 장속에 머물 수 있거나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우유를 발효시키는 유산균은 우유를 요거트로 변화시키며 그 속에서는 잘 살아간다. 하지만 산업적으로 요거트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유산균은 사람의 장내에는 살아남지 못한다.
프로바이오틱스는 특정 미생물이 인체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의 관점에서 바라본 용어이다. 유산균과 같은 세균뿐만 아니라 사카로마이세스보울라디와 같은 효모도 프로바이오틱스에 포함된다. WHO(세계보건기구)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충분한 양을 투여하면 숙주(즉 사람)에게 건강상 이익을 제공하는 살아있는 미생물”로 정의한다.
WHO 정의는 제품 홍보에 너무 많이 이용된다. 이러려고 WHO가 프로바이오틱스를 정의했나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프로바이오틱스가 살아서 장까지 간다고 해서 거기 오래 머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착해서 살기에는 이미 살고 있는 미생물의 텃세가 만만치 않다. 어떤 균은 넣어줘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나마 살아서 머문다 해도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길어야 2주이다. 프로바이오틱스 판매업체 관점에서는 나쁜 일이 아니다. 계속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하지만 업체에서 그렇게 광고하는 경우는 드물다. 마치 자사 제품을 먹으면 그 속의 미생물이 장에 계속 머물면서 영원히 효과를 낼 것처럼 이야기한다.
의약품으로 출시된 제품도 있지만 건강기능식품이 현재 유통되는 프로바이오틱스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외 직구로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미생물의 종류와 효능을 입증할 자료는 물론이고 제품 자체의 품질도 의문스러운 경우가 많다. 2020년 브라질 연구에 따르면 분석에 사용한 11개 제품 중에 라벨과 제품 성분이 일치하는 경우는 2개에 불과했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이 2020년 소비자 선호도가 높은 프로바이오틱스 15개 제품을 대상으로 시험, 평가한 결과 균수는 전 제품이 적합했고 대장균군, 이물 등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3-19종의 균종을 함유했다는 제품 대부분이 대표 균 1-2종에 편중되어 있었다. 19개 균종이 함유되었다고 표시해놓고 실제로는 1개 균종이 88%를 차지한 제품도 있었다. 나머지 18개는 전체의 12%에 불과했다. 이들 18종은 그냥 구색을 갖추기 위한 용도로 넣은 걸로 의심되는 결과이다.
프로바이오틱스의 효과에 대한 홍보도 과장된 경우가 많다. 비만의 원인은 뚱보균이며 그러니 날씬이균을 먹으면 살이 빠질 거라는 광고도 눈에 자주 띈다. 2006년 연구에 근거한 이야기이지만 이는 과장이다. 후속 연구에서 한때 뚱보균이라고 불린 후벽균이 비만과 연관성이 없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후벽균은 하나의 미생물 종이 아니고 수천 개의 종을 포함한다. 종속과목강문계에서 문에 해당한다. 이렇게 넓은 범주인데 여기에 간균(Bacillus)이 추가되면서 명칭도 Firmicutes에서 Bacillota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간균 명칭만 강조된 게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뚱보균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프로바이오틱스 연구의 권위자 천종식 박사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기대는 크지만 아직 입증된 효과가 많진 않다. 변비, 설사의 경우처럼 비교적 쉽게 효과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건강기능식품으로서 기능성 내용도 기본적으로는 원활한 배변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 다른 기능성이 표시된 개별인정형 제품도 늘고 있다. 장내 미생물 군집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앞으로 이런 제품이 더 다양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광고에 나오는 만큼의 극적 효과는 보기 어려운 경우가 아직 많다. 그러니 마케팅이 과학보다 빨리 간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고 기억해두자.
2022-03-16 14: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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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3> 약과 식품에 함께 사용되는 물질이야기
같은 성분이 들어있는 약인데 사용법이 다른 경우가 있다. 처방약인 라미나지액과 비처방약인 개비스콘 더블액션, 윌로겔 더블액션과 같은 약에는 동일한 알긴산 나트륨 성분이 들어있다. 둘 다 위식도 역류 증상 개선에 사용된다. 하지만 복용 방법이 다르다. 처방약은 식전 공복에 복용하고 비처방약은 식후에 복용한다.
같은 알긴산 나트륨이 들어있지만 이렇게 복용법이 다른 것은 하나는 아래로 가라앉도록 하나는 위로 뜨도록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알긴산은 상처가 낫도록 도와주는 일부 습윤밴드에도 들어있는 성분으로 물을 잘 빨아들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상처에 진물이 과도하게 나오는 걸 흡수하고, 지혈 및 상처 부위가 더 빨리 재생되도록 도와주는 효과가 있다. 처방약으로 된 알긴산 나트륨 물약을 복용하면 위장으로 내려가서 위산과 반응하면 젤리처럼 변하여 위 또는 십이지장의 상처 부위를 마치 습윤밴드처럼 보호해준다. 약을 빈속에 복용해야 궤양 또는 상처 부위를 커버해주기 좋고 그런 이유로 1일 3~4회 공복에 복용을 권장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약국에서 처방 없이 구입 가능한 위장약에도 같은 알긴산 나트륨 성분이 처방약과 동일한 양으로 들어있다. 그런데 비처방약(일반의약품)의 경우에는 약 성분이 두 가지가 더 들어있다. 탄산수소나트륨, 탄산칼슘 두 가지이다. 이 성분은 제산제로 작용하여 위산을 중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위산과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알긴산 젤을 위로 뜨게 해서, 위 내용물 윗부분에 방어층을 형성한다. 이렇게 생겨나는 방어층이 위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는 것을 막으면 위식도 역류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리하면 처방약은 위궤양이나 손상된 위점막의 보호를 위해 쓰는 거라서 공복에 복용해서 위점막을 코팅해주는 것이라면, 일반약은 위산 역류로 인한 속쓰림을 막는 용도여서 식후에 복용하는 것이다.
알긴산 나트륨은 해조류에서 추출한 다당류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에 많이 들어있다. 알긴산이 물을 흡수하면 팽창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다이어트를 돕는 용도로도 쓰인다. 복용 후 주성분인 알긴산이 위장에서 겔 형태로 변하면서 최대 2~300배까지 부풀어 오르고 이로 인해 포만감을 주지 않겠느냐는 논리인데 실제로는 효과가 크지 않다. 사람의 위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영양가 없는 물질로 배를 채우기만 하는 식으로 속지 않고 진짜 음식을 찾는다.
알긴산은 식품 제조에도 이용이 되는데, 아이스크림에 쓰인다. 아이스크림 속에 큰 결정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여 부드러운 느낌을 주도록 한다. 디저트 푸딩이나 젤을 만드는데도 알긴산을 사용한다. 한동안 미식 트렌드를 이끌었던 분자요리에도 알긴산이 사용된다. 알긴산나트륨을 섞은 과일주스나 고기국물을 염화칼슘을 녹인 물에 떨어뜨리면 젤리처럼 굳으면서 구슬처럼 동그란 알이 만들어진다. 젤리처럼 생겼는데 씹으면 주스나 맑은 수프가 터져 나오는 느낌이 재미있어서 분자요리에 자주 쓰인다.
약과 식품의 경계는 대체로 뚜렷하지만 때로 모호할 때도 있다. 보통 기호식품이라고 불리는 커피, 술과 같은 음료는 음식이다. 하지만 각각 카페인과 알코올이라는 약리활성물질이 보통 마시는 양으로도 약리적 효과를 내기에 충분한 정도로 들어있다. 원료 면에서 봐도 동일한 성분이 약에도 사용되고 식품에도 사용될 때가 있다.
알긴산 나트륨 외에도 많다. 스테아린산 마그네슘도 대표적 예 중 하나다. 일부 업체에서 마치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을 알약에 쓰면 큰일 나는 것처럼 몰고 가지만 이 역시 식품에도 쓰인다. 알약이나 캔디를 찍어내는데 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면 곤란하다. 이때 달라붙지 않도록 막아주는 성분이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이다. 스테아린산은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에도 들어있는 지방산이고 야자유, 팜유와 같은 식물성 유지류에도 들어있다. 마그네슘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둘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이 해를 준다는 이야기는 그냥 마케팅 공해다. 약과 식품보다는 과도한 마케팅을 경계하며 살자.
2022-02-23 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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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2> 영양제 복용방법과 제형 팩트체크
영양제 먹는 방법에 관한 한 가짜 뉴스가 많다. 대표적으로 ”수용성 비타민을 식후에 복용하면 기름이 흡수를 방해하니 식전에 먹으라”는 이야기가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인데 방송 대본에도 자주 나온다. 방송작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영양제 먹는 방법, 흡수율에 대해 많은 사람이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대중의 관심을 알고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거다. 팩트에는 관심이 없고 눈길을 끌어 이익을 얻는 데만 관심이 큰 사람들이다. 가짜 뉴스는 인류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나온다. 전문가라면 그냥 틀렸다고만 말하지 말고 자세하게 왜 잘못된 정보인지 조목조목 밝혀야 한다.
수용성 비타민이 기름으로 흡수 방해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따져보자. 물에 녹는 수용성 비타민 흡수를 기름이 어떻게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음식 속 지방이 수용성 영양성분 흡수를 방해하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사람이 전신에 기름을 바르면 피부 호흡을 못해서 죽는다는 초등학교 괴담만큼 어처구니없다. (사람은 피부 호흡을 하지 않으며 따라서 전신에 기름을 발라도 죽지 않는다.) 지용성 비타민은 식후에 복용해야 흡수율이 좋아지지만 대체로 수용성 비타민은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해도 흡수율 면에서 큰 상관이 없다. 수용성 비타민 비타민B2는 식후에 복용해야 더 많이 흡수되고, 비타민B1은 식후에 복용하면 흡수 속도가 느려지긴 해도 흡수되는 양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조차도 별 의미는 없다. 두통약은 흡수 속도가 중요하다. 아픈 사람에게는 효과가 빠를수록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영양제는 대개 식후 바로 복용하면 충분하다.
누가 봐도 잘못된 이야기를 방송에서 그대로 말하는 전문가가 있다. 작가에게 대본을 받으면 아무런 팩트 체크를 하지 않고 토씨 하나까지 그냥 읽는 사람이다. 그렇게 읽어도 전달력만 좋으면 제작진이 좋아한다. 가끔 역사나 예술에 대한 설명이 틀리면 큰 문제가 되는데 의약학 분야는 희한하게도 틀린 말을 계속해도 계속 살아남는다. 대중이 팩트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상당수 전문가도 팩트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읽고 머릿속으로 받아들일 뿐 의심하거나 팩트 체크를 하지 않는다.
비타민D 정제는 그렇게 연질캡슐에 밀렸다. 연질캡슐, 정제 중 어느 것이 가장 좋으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연질캡슐이 정제보다 흡수가 잘 된다는 설명은 틀린다. 비타민D가 지용성이긴 하지만 엄청난 고용량을 복용하지 않는 이상 제형에 따른 흡수율의 차이는 크지 않다. 비타민D 2000IU가 겨우 50mcg이다. 실제로는 비타민D를 언제 복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비타민D는 지용성이어서 흡수를 위해 지방의 도움이 필요하다. 연질캡슐 속 소량의 지방으로는 불충분하다. 지방이 충분한 식사를 해야 제대로 흡수된다.
비타민D를 아침보다 저녁 식후에 복용하는 게 좋은 것도 같은 이유다. 아침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가벼운 아침 식사에는 알약 속 비타민D의 흡수를 도와줄 만큼의 지방이 들어있지 않다. 2010년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연구에서 비타민D 보충제를 투여해도 결핍증이 잘 치료되지 않던 환자들에게 하루 중 제일 식사량이 많을 때 보충제를 복용케 하는 조치만으로 혈중 농도를 50% 높이는 데 성공했다. 종합비타민제에도 다양한 지용성 비타민이 들어있다. 식사 직후 복용이 흡수 면에서 좋다.
정리하면 비타민C, 비타민B군과 같은 수용성 비타민은 식전, 식후에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다. 흡수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제때 복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빈속에 알약을 복용하면 속 쓰림, 메스꺼움 같은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 굳이 꾹 참고 공복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식후에 복용하는 게 낫다. (항생제는 다르다. 위산에 불안정하여 공복 복용을 권하는 항생제일 경우는 반드시 공복을 지켜주는 게 좋다.) 흡수에 대한 이야기는 제품 홍보나 차별화를 위해 과장된 것이 때가 많다. 약에 관한 한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이야기라고 다 사실은 아니다.
2022-02-09 1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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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1> 팍스로비드 팩트체크
화이자에서 내놓은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를 지난 1월 14일부터 국내에서도 쓸 수 있게 됐다. 좋은 일이다. 임상시험 결과 유증상자이면서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사람이 증상이 나타난 후 가능한 한 빨리 5일 이내에 복용하면 입원 또는 사망 위험을 88% 감소시켰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 약을 가지고도 허위 주장을 펼친다.
지난 가을에는 팍스로비드가 이버멕틴을 재포장한 거라는 낭설이 돌았다. 올해 1월 2일에는 팍스로비드에 마이크로칩이 숨겨져 있다는 음모론이 친트럼프 성향의 웹사이트 welovetrump.com에 떴다. 팍스로비드 알약을 부수거나 깨물어 먹으면 안 된다니까 그 안에 마이크로칩이 숨겨져 있어서 그렇다는 거다.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가지 사실을 묶으면 거짓말이 된다. 음모론자들은 화이자 CEO 앨버트 불라가 예전에 조현병 전자약 인터뷰한 내용과 이번에 나온 팍스로비드 알약을 연결시켜서 마치 둘이 동일한 약인 것처럼 가짜뉴스를 만들었다.
팍스로비드 같은 항바이러스제는 필름코팅이 되어 있다. 보통 필름코팅이 된 알약은 서방정, 장용정과 달리 부수어 먹어도 되는 걸로 알고들 있다. 하지만 필름코팅정이라고 다 쪼개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냥 필름코팅이 아니라 약 성분의 흡수를 돕기 위한 필름코팅도 있기 때문이다. 위장관에서 잘 녹아서 흡수가 용이하도록 만든 장치 중 하나인 코팅이 손상되면 약의 흡수가 줄어든다. 그래서 코팅된 알약을 깨물거나 부수지 말고 그대로 삼키라는 거다. (또는 필름코팅된 알약을 가루로 만들어 투여했을 때와 알약 그대로 복용했을 때 혈중 농도 차이에 대한 자료가 없어서 쪼개 먹지 말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음모론자가 가짜뉴스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면 제약회사는 조금 더 쉽고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이유를 제시하지 않아 공백이 생기면 그 틈을 음모론자가 파고 든다.)
음모론자들이 굳이 끌어다온 마이크로칩은 항바이러스제와는 관계없다. 조현병 환자들은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될 때가 있다 보니 복약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마이크로칩이 들어있는 디지털 알약을 개발한 거다. (아직 국내에는 없는 제형이다.) 둘은 전혀 관계없는 약이다. 하지만 관계없는 사실 두 가지를 마치 관계있는 것처럼 묶어 사기를 치는 게 전형적 음모론 수법이다. 이런 속임수에 속아서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미국 트위터에 최소한 4천 명 이상이다. 음모론자는 부지런하다. 약의 전문가로서 약사는 약에 대한 이런 가짜뉴스가 나올 때마다 지치지 말고 팩트체크하여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팍스로비드가 국내 도입되었지만, 아직 실제 사용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팍스로비드에는 주의가 필요한 약물 상호작용이 있다. 항바이러스제가 체내에 더 오래 머무르도록 도와주는 약 성분 리토나비르(ritonavir) 때문이다. 팍스로비드는 니마트렐비르(nirmatrelvir) 150mg과 리토나비르(ritonavir) 100mg의 두 가지 알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바이러스제로 작용하는 것은 니마트렐비르이다. 리토나비르도 원래는 HIV-1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로 개발되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에는 효과가 없다. 리토나비르의 역할은 니마트렐비르가 인체 내의 약물 대사효소 CYP 3A4에 의해 대사되는 것을 막아서 약효가 더 오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약물 상호작용이 생긴다.
CYP 3A4에 의해 대사되는 약성분은 시판 의약품의 30-50%에 달한다. 그만큼 상호작용을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팍스로비드는 5일 동안 짧게 복용하므로 그 닷새 동안 끊을 수 있는 약이라면 잠시 복용을 중단하는 조치로 상호작용을 피할 수 있다. 상호작용의 정도는 약물이 대사효소(CYP 3A4)에 의해 어느 정도로 대사되느냐에 따라 다르다. 먹는 치료제를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쓸 일이 없으면 더 좋은 일이다. 여전히 최선책은 백신을 맞는 거다. 백신을 맞자. 부스터까지. 기왕이면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2022-01-26 1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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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100> 다이어트 약 이야기
지난 10월 나비약에 대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탐사보도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알약 모양이 나비처럼 생겼다고 하여 나비약이라 불리는 식욕억제제 펜터민에 대한 보도였다.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다가 환각, 환청, 이상 행동을 경험한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불행히도 이런 부작용은 펜터민이라는 식욕억제제가 작동하는 방식 때문에 생길 수 있다.
펜터민은 기본적으로 중추신경 흥분제이다. 노르에피네프린처럼 작용하여 식욕을 억제하지만 동시에 두통, 불면증, 불안, 도취감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교감신경 흥분제이므로 심장혈관계에도 부담을 주어 고혈압, 가슴 두근거림, 빈맥과 같은 부작용도 일어날 수 있다. 비만 자체로 인해 심혈관계 위험이 큰 경우에 이런 부작용은 치명적일 수 있다. 정말 비만인 사람에게 펜터민과 같은 약을 사용할 때 많은 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보도된 것처럼 드물게 환청, 망상과 같은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불면, 불안, 과민해지는 증상은 그에 비해 전체 복용자의 24~27%로 더 흔하게 나타난다.
중추신경 흥분제로서 식욕을 억제하는 약의 원조는 암페타민이다. 이 약은 오남용 가능성이 높고 부작용 위험도 커서 체중 감량을 돕는 용도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펜터민은 이에 비하면 부작용이 적긴 하지만 여전히 오남용 가능성이 있다. 체중이 증가할 때마다 약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식욕억제제는 식이조절, 운동, 생활상 행동 조정과 같은 다른 체중 감량 방법에 더해서 보조하는 역할이지 첫 번째 선택이 아니다. 장기간 사용에 관한 안전성 연구가 부족하다. 약을 끊으면 체중이 원상회복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흐름이 바뀔 조짐이 보인다.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GLP-1 수용체 작용제가 체중 감량에도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임상시험을 통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리라글루티드, 세마글루티드 같은 약이다. 이들 약은 뇌와 장에서 포만감을 자극하는 호르몬 중 하나인 GLP-1처럼 작용하여 체중을 감소시킨다.
2021년 뉴잉글랜드의학저널(NEJM)에 실린 논문에서 세마글루티드는 평균적으로 참가자 체중을 15%까지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의 1/3에서는 체중이 20% 이상 감소했다. 이에 반해 위약군에서 체중 감량은 2.4%에 불과했다. 리라글루티드는 매일 주사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는데 세마글루티드는 1주일에 한 번 피하 주사하면 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1,961명을 대상으로 68주 동안 연구한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펜터민이 계속 명맥을 이어온 것은 체중 감량 효과가 큰 편이기 때문이다. 보통 다이어트 약이라고 알려진 다른 약이 4~5% 정도 감량 효과가 있다면 펜터민은 7.5%까지 체중이 줄어든다. 그런데 15%를 감량할 수 있는 약이라니 게임 체인저라고 부를 만하다. (다만 세마글루티드를 게임 체인저라고 부른 연구자가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는 것은 기억하고 넘어가자.)
다른 체중감량 보조제와 마찬가지로 세마글루티드 역시 약을 끊으면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체중 유지를 위해 약을 평생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이 약을 체중 감량 용도로 장기간 사용해도 괜찮은가에 대해서는 연구가 부족하다. 당뇨병 치료약으로서 피하주사로 사용할 때 용량은 1mg인데 반해 체중 감량 용도로는 2.4mg으로 더 많은 양을 사용한다. 아직 약값도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이 약물은 흥미롭게도 경구로도 흡수가 가능하다. 주사 대신 먹는 약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뇨병 치료약으로는 이미 먹는 약인 정제로 출시되었고 비만치료제로서 먹는 약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 중이다. 분자량 4000이 넘는 덩치 큰 펩티드여서 흡수가 좋진 않지만, 흡수 촉진제로 SNAC(salcaprozate sodium)의 도움을 받아 위장에서 1%까지 흡수된다. 흡수가 적은 만큼 먹는 약으로 사용할 때는 용량도 7-14mg으로 주사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을 쓴다. 아직 더 살펴봐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비만을 치료하는 신약에 기대감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2022-01-12 1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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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9> 통풍약 이야기
통풍은 바람에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뾰족한 요산 결정이 발가락 관절과 같은 곳에 쌓이면 염증과 함께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실제로 통풍 발작이 시작되면 홑이불에 발가락이 닿기만 해도 괴롭다는 사람이 많다. 발에 천이 닿지 않도록 막아주는 가드를 사용해서 마치 텐트를 치듯 이불을 걸쳐줘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이다.
하필 이런 통풍 발작은 밤에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2월 관절염과 류마티즘 학회지(Arthritis & Rheumatology)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정부터 이른 아침(자정~오전 7:59)에 통풍 발작이 생길 위험은 낮 시간(오전 8:00~오후 3:59)보다 2.36배 높았다. 통풍 위험을 낮추려고 술을 안 마시고 퓨린 섭취를 줄이는 사람의 경우에도 밤에 통풍 발작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밤에 통풍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정확한 기전은 아직 모른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밤에 체온이 더 낮아지고 이로 인해 요산 결정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자는 동안의 체내 수분 감소, 염증을 줄여주는 코티솔 호르몬 수치가 밤중에 낮아지는 것이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주말 밤에 통풍 발작이 시작되면 환자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문을 연 병·의원을 찾는 게 힘들다. 이 때를 대비해서 미리 콜키신 같은 약을 처방받아서 가지고 있는 게 좋다. 콜키신은 통풍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지만 얼른 복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통풍 발작이 시작되고 24시간 이내에 사용하는 게 좋다. 증상이 나타나고 36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
콜키신은 백혈구 중에서 호중구가 염증 부위로 이동하는 것을 방해하여 통풍으로 인한 염증을 줄여준다. 20년 전에는 한 시간마다 0.6mg씩 최대 6mg까지 복용했지만, 요즘에는 처음에 1.2mg (0.6mg 알약으로 두 알), 1시간 뒤에 0.6mg을 복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다음 날부터는 하루에 0.6mg 알약을 아침, 저녁에 한 번씩 총 2회 복용한다. 이렇게 저용량으로 복용하면 복통, 설사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줄어든다. 콜키신은 자몽 주스와 상호작용이 있고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도 주의해야 하는 약이다. 가까운 약국에 문의하여 이런 상호작용 문제가 있는지 미리 점검해두는 게 안전하다.
소염진통제도 급성 통풍 발작에 자주 사용되는 약이다. 나프록센 같은 소염진통제는 약국에서 처방 없이도 구입이 가능하다. 평소에 두통이나 근육통 또는 생리통에 대비하여 집에 가지고 있는 약을 통풍으로 인한 통증 완화에 사용해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복용량이 다르다. 사용설명서의 깨알 글씨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이때는 읽어보고 약을 복용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급성 통풍에 나프록센을 사용할 경우 일반적으로 처음에 750mg을 복용하고 발작이 없어질 때까지 250mg을 8시간 간격으로 복용한다. 500mg씩 하루 두 번을 복용하는 방법도 있다. 한 알에 250mg이라면 처음에 3알 복용 뒤 8시간마다 1알, 또는 하루 두 알씩 두 번을 복용하는 식이다. 콜키신은 식사와 관계없이 복용할 수 있지만 나프록센 같은 소염진통제는 식후에 복용해야 속이 덜 불편하다. 자다가 일어나서 복용해야 할 때는 우유로라도 복용하는 게 빈속에 맹물로 복용하는 것보다 낫다. (우유로 약을 삼키면 안 된다는 건 모든 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장용정으로 된 변비약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모두가 소염진통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용 전에 약물 알레르기, 만성질환 유무에 대해 의사, 약사와 충분히 상담해 두어야 한다.
발작이 자주 있을 경우는 병·의원에 방문하여 예방약을 사용할 필요가 있는지 의논해보는 게 좋다. 하지만 통풍 발작이 있을 때는 참지 말고 얼른 통증, 염증을 줄여주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증상이 생기자마자 약으로 치료하면 이삼일 만에 나을 수도 있지만 증상이 있고 삼사일이 지나 뒤늦게 약을 쓰면 다 낫기까지 이삼 주가 걸릴 수도 있다. 통풍 약도 때맞춰 써야 더 효과적이다.
2021-12-22 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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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8> 체온1도 올리는 게 좋을까
날씨가 쌀쌀해지면 체온 1도 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뜬다. 체온이 1도가 내려가면 면역력이 30퍼센트 감소하고 체온 1도를 올려주면 면역력이 500~600퍼센트 상승한다는 주장이다. 내려갈 때는 30퍼센트인데 올라가면 왜 500-600퍼센트인가? 계산부터 뭔가 이상하다. 그러니 팩트 체크를 해봐야겠다.
피부 체온은 바깥 온도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몸속 깊은 곳의 심부체온(core body temperature)은 거의 일정하다. 심장, 간, 신장과 같은 인체 깊숙이 자리한 장기들의 온도는 항상 37도로 유지된다. 보통 아침보다 저녁 심부체온이 높고, 자는 시간에 조금 낮아지지만, 변동 폭은 그리 크지 않다. 하루 0.5도 이내의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침입자들이 감염을 일으키면 체온이 올라간다. 열이 나면 불편감을 줄 수 있지만 열 자체는 별로 해롭지 않다. 체온 상승은 면역 반응을 증강시켜 인체가 병원성 미생물과 더 잘 싸울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체온 1도를 올려주면 면역력이 500~600퍼센트 상승한다는 말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인간의 면역 체계는 완벽하지 않다. 항생제나 약의 도움 없이는 감염을 물리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체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40도 이상 고열이 계속될 때는 자연치유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가까운 병·의원에 방문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할 때다. 드물지만 약 부작용으로 열이 날 때도 있다. 일부 항생제, 항암제, 항고혈압약, 조현병 치료제를 복용할 때 약으로 인해 열이 날 수 있는데, 특히 이런 약을 복용하면서 과도한 운동을 하면 고체온증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약 때문에 체온조절 능력에 이상이 생긴 경우에도 그대로 방치하면 치명적이다. 약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수 있다. 폭염 속 야외활동이 위험한 것도 마찬가지다. 덥고 습한 날 과도한 운동을 하면 심부체온이 올라 매우 위험하다. 체온은 올리는 게 아니라 유지하는 거다.
생강차를 마셔도, 뜨거운 음료나 매운맛 음식을 먹어도 심부체온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뜨거운 음료의 열기나 매운맛 성분의 자극으로 인해 피부 혈관이 확장되고 그로 인해 피부 표면의 체온은 일시적으로 상승한다. 술을 마시면 혈관 확장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더운 느낌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열 손실이 늘어날 수 있다. 호주 시드니 대학교에서 차가운 음료와 뜨거운 음료를 주고 실제 실험한 결과를 보자. 뜨거운 음료를 마시면 처음엔 땀난다. 바깥 공기가 차고 건조한 환경에서 땀이 증발하면서 몸을 식힌다. 결과적으로 차가운 음료를 마셨을 때보다 뜨거운 음료를 마셨을 때 열 손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이 나면 당장은 더운 느낌이 들지만 이내 땀이 증발하며 피부 표면이 시원해진다. 동남아시아처럼 연중 날씨가 무더운 지역에서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추위를 더 예민하게 느낀다고 체온이 낮은 건 아니다. 보통 여성이 추위에 더 민감하지만, 남성이나 여성이나 심부체온 측정값은 비슷하다. 오히려 여성이 조금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는 실제 체온보다 피부 온도를 통해 추위를 더 잘 느낀다. 기온이 내려가면 여성의 손발이 더 빠르게 차가워져서 손의 표면 온도가 3도 가까이 낮게 측정된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는 배란기가 되면 추위에 더 민감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 쾌적하게 느끼는 실내 온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심부체온은 실내 온도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매운맛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에 추운 나라에선 고칼로리 음식을 좋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겨울이 긴 캐나다에선 크림과 설탕을 두 스푼씩 넣은 더블더블 커피가 어찌나 인기인지 결국 사전에까지 올랐다. 본래 사람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에너지원은 음식이다.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열을 더 많이 낼 수 있다. 많이 먹는 자에게 추위란 없다고 내가 가끔 농담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추위를 덜 탄다고 더 건강해지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맞다. 내 말이 그 말이다.
2021-12-08 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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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7> 당지수 이야기
방송에 GI 지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일단 동어 반복이다. GI는 Glycemic Index의 약어이므로 혈당지수라고 쓰거나 그냥 GI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당지수를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있진 않다.
밥이나 빵처럼 탄수화물이 풍부한 곡물 음식이 혈당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때는 약간의 의미가 있긴 하다. 가령 통곡물로 만든 빵이나 현미밥을 먹으면 그냥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백미밥보다는 당지수가 낮고 그만큼 당분 흡수가 느려져 혈당이 천천히 오른다. 하지만 누가 맨밥만 먹나. 반찬을 곁들여 먹으면 혈당지수가 달라진다.
치즈피자처럼 곡물 도우에 치즈의 단백질과 지방이 더해지면 당지수가 낮아진다.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소화가 어려운 만큼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당뇨환자에게 약 부작용으로 갑자기 저혈당이 오면 초콜릿을 주면 안 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초콜릿은 지방 함량이 높아서 당지수가 낮은 편이다. 초콜릿 속 당분은 빠르게 흡수되지 않으니 저혈당인 사람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 포도당 캔디나 꿀물, 설탕물, 주스, 청량음료가 낫다. 아카보스를 당뇨약으로 복용 중인 사람은 설탕물도 곤란하다. 아카보스가 소장에서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알파글루코시다아제를 억제하므로 설탕의 소화 흡수가 저해된다. 이때는 포도당 캔디나 주스가 낫다.
당지수가 무용하다고만 볼 수 없으며 여러 음식을 함께 먹더라도 개별 음식의 당지수가 낮을수록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흰 빵에 피넛버터가 통곡물빵만 먹는 것보다야 혈당이 천천히 오르겠지만 그래도 흰 빵에 피넛버터보다는 통곡물빵에 피넛버터가 낫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다 보면 음식 속의 당에 대해서만 집착하게 된다. 당지수만 따지다가 섭취량을 무시하게 되는 것도 문제이다. 수박은 당지수가 높은 음식이지만 밥 한 공기만큼의 당분을 수박으로 섭취하려면 수박 1/4통을 먹어야 한다.
당지수는 탄수화물 50g에 해당하는 음식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식품으로 탄수화물 50g을 섭취한 후 2시간 동안의 혈당 변화를 포도당 50g을 섭취한 경우를 100으로 하여 비교한 상대적 수치이다. 당지수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된 음식의 양은 일반적으로 먹는 1회 분량과는 차이가 크다. 당지수가 낮아 혈당이 천천히 오른다는 방송을 보고 잡곡밥을 배불리 먹으면 탄수화물 섭취량이 늘어나 결국 혈당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에 더해 탄수화물 섭취량까지 고려한 당부하지수(Glycemic Load)를 사용하기도 한다.
당지수가 낮은 음식 위주로 챙겨 먹는다고 장기적으로 건강상 유익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군집이 다르고 이로 인해 동일 음식을 먹어도 혈당치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있다. 장내 미생물 군집을 살펴보면 사람마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에서는 중국 음식을 먹으면 금방 배고프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반대로 중국에 맥도날드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햄버거는 먹고 나도 금방 배가 고프다는 불평이 많았다. 햄버거를 간식처럼 생각해서 먹고 나서 또 밥을 먹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아프리카에 남미의 옥수수가 도입된 것은 17세기였지만 지금 아프리카 농부들은 옥수수를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다고 불평한다. 이런 차이는 문화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장내 미생물군집의 영향일까? 장내 미생물에 관한 연구가 더 진행되고 24시간 내내 혈당 측정이 가능한 연속혈당측정기가 더 많이 보급되면 아마도 이런 개인차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듯하다.
당지수 하나 가지고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나눌 수 없다. 당지수를 따져서 혈당 관리에 도움을 받는 당뇨환자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지나치게 당지수 하나에만 집착하지는 말자. 먹는다는 건 복잡한 일이며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2021-11-24 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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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약국] <96> 성인 여드름과 약 이야기
마스크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스크네(Maskne)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사용이 늘어나면서 생긴 여드름을 말한다. 지난해부터 유행한 신조어이다. 보통 사춘기까지는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의 영향을 받아 남성에게 여드름이 더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성인 여드름은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여드름이 가장 많이 나는 시기는 사춘기이고 성인이 되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대에 성인 여성의 35%, 남성의 20%가 얼굴에 여드름이 나서 고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50대 이상 성인에게서도 여성의 15%, 남성의 7%가 여드름의 영향을 받는다. 성인 여드름은 대개 사춘기 여드름이 안 낫고 성인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지만, 성인이 되어서 처음 여드름이 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사춘기 때와 달리 주변에 여드름인 사람 수가 더 적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부담이 더 크다.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심하게는 우울증, 불안장애, 사회적 고립 등의 문제를 겪기도 한다. 천식, 간질, 당뇨병, 관절염만큼이나 여드름이 삶의 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다.
보통 사춘기에는 남성 호르몬 때문에 피지가 과다하게 분비하고 이로 인해 여드름균(Cutibacterium acnes)이 과다 증식해 여드름이 많이 생긴다. 하지만 성인 여성의 경우 호르몬 변화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생리 전에 여드름이 주기적으로 악화되는 것도 호르몬 변화 때문이다. 유분이 많거나 모공을 밀폐시키는 화장품도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다. 메이크업을 한 뒤에 마스크를 착용하면 유분으로 인한 밀폐효과가 더 커져서 여드름이 생길 수 있다. 마스크네를 막기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 부위에 화장을 최소로 하고 보습제를 발라서 피부장벽을 강화해주는 게 좋다. 바세린은 피해야 한다. 마스크 성능을 저하시킬 수 있고 모공을 막을 가능성이 있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도 여드름의 악화 요인이다. 스트레스 없는 삶은 불가능하지만 가벼운 운동이나 취미활동 등으로 나만의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찾는 건 도움이 된다. 피임약 복용 시에 여드름이 악화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피임약 복용으로 여드름이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 의사, 약사와 상담해 자신에게 맞는 피임약을 찾아보는 게 좋다.
음식과 여드름의 관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여러 연구결과에 의하면 식습관과 여드름 사이에 관련성이 있긴 있는 것 같다. 특히 당류와 우유 섭취가 인슐린과 인슐린유사 성장인자(IGF-1)를 증가시켜 여드름을 악화시키는 것으로 의심하는 연구자가 많다. 특정 음식 섭취 뒤에 여드름이 악화되는 것으로 의심될 때는 이삼 주 정도 해당 음식을 피하는 식으로 테스트해 보는 게 좋다.
여드름이 심한 경우에는 우선 병의원에 방문해 상담부터 받아보는 게 유익하다. 모낭 내 여드름 균을 감소시켜 염증반응을 줄이는 항생제를 먹거나 바르고 비타민A 유도체 계열의 바르는 처방약, 아주 심할 때는 이소트레티노인과 같은 먹는 처방약이 사용된다. 가벼운 여드름에는 과산화벤조일이나 살리실산(2%)이 사용된다. 과산화벤조일은 모공 속에 쌓여있는 각질을 용해시키고 세균 증식을 억제하며 염증을 줄인다. 살리실산은 모공이 막히지 않도록 도와준다. 티눈 제거에 사용되는 살리실산도 같은 성분이지만 농도가 다르므로 반드시 여드름 전용 제품을 써야 한다. 이부프로펜피코놀도 바르는 약으로 여드름 염증을 줄여준다.
과산화벤조일 성분이 함유된 약은 햇빛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할 수 있다. 그래서 가급적 밤에 바르고 낮에 햇빛에 노출을 피하는 게 좋다. 낮에 자외선차단제를 바르는 것도 좋은데 유분이 많은 자외선차단제의 경우 여드름을 악화시킬 수 있어 선택 시 주의해야 한다. 과산화벤조일 성분 여드름 약과 비타민 A 유도체를 동시에 바르면 피부가 지나치게 건조해지거나 피부 자극이 증가할 수 있다. 함께 처방받은 경우가 아니라면 동시에 사용을 피하는 게 좋다. 얼른 상황이 나아져서 마스크를 벗고 다녀도 될 날이 오길 바란다.
2021-11-10 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