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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커튼 콜
원종원
입력 2023-12-22 09:41 수정 최종수정 2024-01-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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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퀴리 부인이라 불렀다. ‘라듐을 발견한 여성 과학자 이야기다이름은 익숙하지만 자세한 사연이나 뒷이야기는 왠지 낯설다국내 창작진이 그녀를 소재로 창작 뮤지컬로 만들었다바로 뮤지컬 마리 퀴리.

뮤지컬의 제목이 퀴리 부인이었다면 오히려 홍보에는 더 큰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하지만이 무대의 제목은 마리 퀴리누군가의 배우자가 아닌그러니까 결혼하면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히 한 시대를 살다간 여성 과학자 마리 스크워도프스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로 알려진 그녀의 조국은 사실 폴란드다. 1867년생이었던 그녀가 살던 시대의 폴란드에선 여성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회참여의 기회가 제한됐다뛰어난 재능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그녀는 자신은 물론 언니의 학비까지 마련해야 했고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으로 유학을 와서 여성 최초로 이 대학의 물리학 박사가 됐다당시 소르본느에는 6000여명의 남학생이 있었지만여학생은 단 200여명에 불과했으니 그녀가 겪었을 차별과 고난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녀를 이해하고 함께 연구를 진행한 것은 동료이자 남편이었던 피에르 퀴리다평생을 함께했지만정작 첫 노벨상이었던 물리학상 수상 당시 연단에서 감사 연설을 할 수 있던 것은 남성이었던 남편뿐이다. 1906년 불의의 사고로 피에르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마리 퀴리는 라듐과 방사선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고결국 1908년 노벨 화학상마저 수상한다자신의 생애에 노벨상을 두 번이나 그것도 다른 분야에서 수상을 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사실 무대에서 역사는 좋은 이야깃거리다뮤지컬로 재연된 사료들은 공연이라는 변주를 통해 새 생명을 얻어 되살려진다이미 알고 있던 과거의 사건들이 문화적인 양식을 빌어 재구성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고 매력적이다역사 소재 뮤지컬이 각광받는 이유다.

 

영웅담이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런 배경 탓이다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해서 무대 위로 구현해내는 과정은 늘 흥미진진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어떠했을 것이라 짐작했던 선입견 속 인물들이 시대적 환경이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것은 극적인 재미를 느끼게 한다그래서 역사의 영웅이 현대적 해석을 빌어 요즘 시대상에 맞는 인물로 다시 환생되는 경우도 뮤지컬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예수의 십자가 처형 전 일주일간의 행적을 그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아르헨티나 비운의 국모 이야기를 담은 에비타’, 구한말 일본 낭인의 손에 목숨을 잃은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그린 명성황후나 잃어버린 얼굴 1895’,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그려낸 영웅’ 등이 그래서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뮤지컬들이다.

역사적 사실을 넘어 작가적 상상력까지 더해 흥미를 더하는 경우도 있다발상의 전환이 빚어내는 발칙한 상상들이다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암살범들이 등장해 각자의 사연을 들려주는 어쌔신스’, 일본 개화기의 풍경을 시공을 초월한 노래와 이야기로 재구성한 태평양 서곡’, 욕지거리를 하는 세종대왕이 등장해 한글창제의 비화를 들려주는 세종 1446’이 그런 경우들이다.

과거를 극화하고 비틀기의 미학이 더해진 무대가 선보일 때면 언제나 역사 속 진실을 둘러싼 공방이 펼쳐진다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생산물들을 이해하고 즐기는 방식은 역사적 사실의 고증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비록 이야기 소재는 역사에서 비롯됐지만사실 대부분 무대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현재 그러니까 오늘날의 저간의 사정들을 반영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물론 이러한 공식만 잘 파악한다면 사극은 뮤지컬 창작의 좋은 보고이자 모티브가 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문화산업속 진리다.

뮤지컬 마리 퀴리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만하다극적인 긴장감과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키는그래서 실제 역사속 사실(fact)과 가상의 이야기(fiction)을 버무리는 팩션(faction)의 재미가 더해졌다이 작품속 재미난 상상은 바로 마리 퀴리와 우연히 만나 평생 우정을 나누는 또 다른 폴란드 이민자 여성 안느 코발스키다프랑스로 이민 오는 기차 속에서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두었던 조국의 흙을 서로 나누는 장면이나 한참 세월이 지나 라듐의 부작용을 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등에서 묘사되는 두 여성의 우정은 꽤 묵직한 감동을 객석으로 전한다무대라서 가능했던 재미난 유추와 해석 그리고 발칙한 상상의 결과물들이다

극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과학적 지식을 활용한 제작진의 아이디어도 신선하다극중 칠판에 적는 주인공 마리 퀴리의 과학 공식이 그렇다초연 당시 실제로 공학도이자 카이스트 출신인 김태형 연출이 진짜 공식을 외워서 흑판에 적게끔 배우들에게 요구했다는 후문이다당시 여자 주인공 마리 퀴리 역의 배우 리사가 고등학생 시절 과학시간보다 대사를 외며 더 진지하게 공식을 암기했다는 너스레를 들려주기도 했다

과학은 실험과 결과 그리고 과학적 사고에 기인한 인과관계의 증명을 중요하게 여기지만무대를 통해 과학자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과학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큰 명제를 곱씹게 만든다여성서사로 재구성된 마리 퀴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기는 이유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대본과 음악이 폴란드로 수출된 좋은 기록도 있다. 제작사 인 라이브는 “2026년 폴란드 서부 비엘코폴라스카주에 있는 포즈난 극장에서 현지 배우들이 폴란드어로 막을 올리는 역사적인 초연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몰 라이선스 방식으로 수출되는데, 창작 뮤지컬로서는 슬로바키아에서 공연됐던 뮤지컬 ‘투란도트’에 이은 두 번째 유럽 진출이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아뮤즈도 올해 도쿄 텐노즈 은하극장과 오사카 우메다 예술극장에서 초연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 가극단 다카라즈카 출신의 스타 배우 마나키 레이카가 주인공 마리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글로벌 흥행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래저래 반가운 소식이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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