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를 지닌 ‘원생미술(原生美術)’을 우리는 아르브뤼(Art Brut)라고 부른다. 최근엔 이건용 작가가 국민일보와 여는 ‘발달장애 작가발굴’도 ‘아르브뤼 예술상’이고 다양한 발달장애 작가들의 활동이 ‘아르브뤼 작가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에는 지체장애 혹은 발달장애 작가들을 위한 ‘미술장터’ 혹은 미술전시가 활발한 데 비해, 국내에는 아직도 ‘장애/비장애’라는 인식 속에서 정상 범주의 예술이 아닌 ‘비주류의 방식’으로 통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서구 역사 속의 아르브뤼와 한국 내 발달장애 작가들의 전시 활동,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혜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전후예술의 반성이 낳은 순수로의 길, 장 뒤뷔페
원래 아르브뤼는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가 1945년에 만든 용어로, 아마추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종의 순수한 미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뒤뷔페는 어린이나 정신병자 또는 소박한 미술가 등 교양이나 전통적 미술에 거의 영향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고도로 훈련되고 의도적인 직업 화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솔직하고 창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하나의 기법으로서 도입하였다. ‘날 것 그대로의’, ‘다듬지 않은’, ‘야만적인’이라는 뜻의 ‘brut’는 서구적인 ‘지(知-이성)’가 배제되거나 그것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 본능과 무의식에 의해 창조된 산물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르브뤼는 2차대전 이후 ‘아카데믹한 서구사회에 대한 반성’의 차원으로 발전했고, 반교양주의적·반문화적·반예술적인 입장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후 서구의 지적 풍토를 재생시키기 위한 기폭제로서 인정되었다.
성수동 ‘공간 와디즈’는 2023년 11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발달장애 작가 15인의 남다른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예술가에게 발달장애는 ‘남다름 혹은 색다름’으로 평가된다. 발달장애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순수로의 회귀를 꿈꾼 아르브뤼와 달리 예술성과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선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열린 행성 프로젝트 2023-미디어 콜라보레이션’ 전시는 공통적으로 순수하면서도 원색적인 색채들이 작가들마다 다른 자기 개성화의 길을 보여주었다. 전시 주제는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세계’. 작가들의 내면세계가 담긴 작품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에너지가 신선한 영감과 감동을 준다. 이 전시는 권태웅, 권강희, 김기혁, 김용원, 김지우, 브라이언박, 피터안, 윤다냐, 이동민, 이민서, 이은규, 이해, 장형주, 정성준, 한성범 등 한국과 미국의 발달장애 아티스트 15명이 참여했다. 평면작품과 작품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페인팅, ASMR·AI 보이스 레코딩·모션그래픽·3D 애니메이션 등 미디어 컬래버레이션 작품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발달장애 예술가를 소개하는 ‘열린 행성 프로젝트’는 2012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 7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개최됐고, 서울 전시 후 내년 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진다. 사실 이들을 향한 다양한 행보들은 이 기관뿐 아니라, 장애라는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발달장애작가들의 어머님’들이 만든 ‘아르브뤼 조합’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며 소속 작가시스템을 정착시키려는 운동이 한창인데, 이는 단독행동보다 집단지성의 에너지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동되는 힘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함께하는 ‘아르브뤼미술상’ 공모(올해 2회째)도 성황리에 마감됐다. 신경다양성(발달장애 등) 신진 예술인의 참여 기회를 넓히기 위해 제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은 한국의 1세대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공동 주최해 복지의 대상으로 인식됐던 장애 예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상 이름은 프랑스 화가 장 드뷔페가 아마추어·어린이·자폐·정신질환 등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미술 세계를 ‘아르브뤼’라고 명명한 데서 땄다.
소통을 통한 큰 치유, 포용의 초상들 '정은혜'
정은혜 작가는 선천적으로 다운증후군과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장애인 교육 시설 지원이 없어지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단절을 맞이했고, 퇴행이 오고 중복된 정신질환과 조현병, 틱 등이 생기면서 급기야 환시와 환청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그때 만난 그림과의 만남 다른 이들보다 늦은 23살 때의 일이다. 정은혜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영옥 역)의 쌍둥이 언니 영희 역을 맡아 소화하며 강렬한 존재감으로 화제가 되었던 극중 캐릭터이다. 전시장에서 본 정은혜 작가의 성향을 많이 반영한 캐릭터였다. 실제 작가는 캐리커처를 그려온 현역 화가이자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출신이다. 경기 양평의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2016년부터 초상화를 그리며 지금껏 노희경 작가를 포함해 4,500여 명의 얼굴을 그려 전시한 <니얼굴>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작가에게 유일한 소통은 바로 그림이었다.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가와 부모님은 함께 문호리 마켓을 지켰다. 그림 속 인물들을 그려나가며 자기만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조현병 증세가 사라졌고, 최근에는 파소갤러리와 워킹하우스뉴욕이 기획한 《해의 시선》(서울문화재단 후원전시)을 개최했다. ‘은혜씨가 사랑하는 작업들’이란 이름으로 모아 놓은 작품들은 군산 이성당 프로젝트와 골목풍경부터 엄마와 할머니, 친한 이모들 등 작가를 아껴주는 가족과 지인의 얼굴, 가장 친한 친구인 반려견 지로, 자화상 등까지 다양하다.
정은혜의 어머니(장차현실 작가)도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온 작가다. “은혜가 그림을 시작한 게 23살 때였으니 이제 10년이 되었다. 나 역시 20년 넘게 만화를 그리고 있는 창작자이지만 딸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잡지의 광고 사진을 따라 그린 스케치 한 점에서 시작된 명쾌한 선들과의 조우, 그렇게 시작된 초상화들은 ‘우리들의 블루스’의 흥행 이후 비주류, 이른바 소외된 계층의 ‘다름’을 특별한 작품들로 인식토록 만들었다. 사실 정은혜는 변한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은 작품을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다. 이러한 작가들의 다각적 행보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모범적인 사례로서, 이들이 국내 미술계에도 ‘장애작가’가 아닌 ‘창조적 아티스트’로서 읽힐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보여주고 있다.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세련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를 지닌 ‘원생미술(原生美術)’을 우리는 아르브뤼(Art Brut)라고 부른다. 최근엔 이건용 작가가 국민일보와 여는 ‘발달장애 작가발굴’도 ‘아르브뤼 예술상’이고 다양한 발달장애 작가들의 활동이 ‘아르브뤼 작가군’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에는 지체장애 혹은 발달장애 작가들을 위한 ‘미술장터’ 혹은 미술전시가 활발한 데 비해, 국내에는 아직도 ‘장애/비장애’라는 인식 속에서 정상 범주의 예술이 아닌 ‘비주류의 방식’으로 통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서구 역사 속의 아르브뤼와 한국 내 발달장애 작가들의 전시 활동, <우리들의 블루스>의 ‘정혜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전후예술의 반성이 낳은 순수로의 길, 장 뒤뷔페
원래 아르브뤼는 프랑스의 화가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가 1945년에 만든 용어로, 아마추어들의 작품에 나타나는 일종의 순수한 미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뒤뷔페는 어린이나 정신병자 또는 소박한 미술가 등 교양이나 전통적 미술에 거의 영향받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고도로 훈련되고 의도적인 직업 화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솔직하고 창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특성을 하나의 기법으로서 도입하였다. ‘날 것 그대로의’, ‘다듬지 않은’, ‘야만적인’이라는 뜻의 ‘brut’는 서구적인 ‘지(知-이성)’가 배제되거나 그것에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 본능과 무의식에 의해 창조된 산물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르브뤼는 2차대전 이후 ‘아카데믹한 서구사회에 대한 반성’의 차원으로 발전했고, 반교양주의적·반문화적·반예술적인 입장을 가리켰다. 하지만 이후 서구의 지적 풍토를 재생시키기 위한 기폭제로서 인정되었다.
성수동 ‘공간 와디즈’는 2023년 11월 28일부터 12월 3일까지 발달장애 작가 15인의 남다른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예술가에게 발달장애는 ‘남다름 혹은 색다름’으로 평가된다. 발달장애 작가들은 의도적으로 순수로의 회귀를 꿈꾼 아르브뤼와 달리 예술성과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선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열린 행성 프로젝트 2023-미디어 콜라보레이션’ 전시는 공통적으로 순수하면서도 원색적인 색채들이 작가들마다 다른 자기 개성화의 길을 보여주었다. 전시 주제는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의 세계’. 작가들의 내면세계가 담긴 작품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에너지가 신선한 영감과 감동을 준다. 이 전시는 권태웅, 권강희, 김기혁, 김용원, 김지우, 브라이언박, 피터안, 윤다냐, 이동민, 이민서, 이은규, 이해, 장형주, 정성준, 한성범 등 한국과 미국의 발달장애 아티스트 15명이 참여했다. 평면작품과 작품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페인팅, ASMR·AI 보이스 레코딩·모션그래픽·3D 애니메이션 등 미디어 컬래버레이션 작품들이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발달장애 예술가를 소개하는 ‘열린 행성 프로젝트’는 2012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 7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개최됐고, 서울 전시 후 내년 1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진다. 사실 이들을 향한 다양한 행보들은 이 기관뿐 아니라, 장애라는 편견을 뛰어넘으려는 ‘발달장애작가들의 어머님’들이 만든 ‘아르브뤼 조합’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서로가 정보를 공유하며 소속 작가시스템을 정착시키려는 운동이 한창인데, 이는 단독행동보다 집단지성의 에너지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동되는 힘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함께하는 ‘아르브뤼미술상’ 공모(올해 2회째)도 성황리에 마감됐다. 신경다양성(발달장애 등) 신진 예술인의 참여 기회를 넓히기 위해 제2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은 한국의 1세대 실험미술 거장 이건용 작가와 공동 주최해 복지의 대상으로 인식됐던 장애 예술을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상 이름은 프랑스 화가 장 드뷔페가 아마추어·어린이·자폐·정신질환 등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미술 세계를 ‘아르브뤼’라고 명명한 데서 땄다.
소통을 통한 큰 치유, 포용의 초상들 '정은혜'
정은혜 작가는 선천적으로 다운증후군과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장애인 교육 시설 지원이 없어지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단절을 맞이했고, 퇴행이 오고 중복된 정신질환과 조현병, 틱 등이 생기면서 급기야 환시와 환청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그때 만난 그림과의 만남 다른 이들보다 늦은 23살 때의 일이다. 정은혜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영옥 역)의 쌍둥이 언니 영희 역을 맡아 소화하며 강렬한 존재감으로 화제가 되었던 극중 캐릭터이다. 전시장에서 본 정은혜 작가의 성향을 많이 반영한 캐릭터였다. 실제 작가는 캐리커처를 그려온 현역 화가이자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출신이다. 경기 양평의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2016년부터 초상화를 그리며 지금껏 노희경 작가를 포함해 4,500여 명의 얼굴을 그려 전시한 <니얼굴>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작가에게 유일한 소통은 바로 그림이었다. 눈이 오고 비가 와도 사람들과 만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가와 부모님은 함께 문호리 마켓을 지켰다. 그림 속 인물들을 그려나가며 자기만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조현병 증세가 사라졌고, 최근에는 파소갤러리와 워킹하우스뉴욕이 기획한 《해의 시선》(서울문화재단 후원전시)을 개최했다. ‘은혜씨가 사랑하는 작업들’이란 이름으로 모아 놓은 작품들은 군산 이성당 프로젝트와 골목풍경부터 엄마와 할머니, 친한 이모들 등 작가를 아껴주는 가족과 지인의 얼굴, 가장 친한 친구인 반려견 지로, 자화상 등까지 다양하다.
정은혜의 어머니(장차현실 작가)도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온 작가다. “은혜가 그림을 시작한 게 23살 때였으니 이제 10년이 되었다. 나 역시 20년 넘게 만화를 그리고 있는 창작자이지만 딸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다. 잡지의 광고 사진을 따라 그린 스케치 한 점에서 시작된 명쾌한 선들과의 조우, 그렇게 시작된 초상화들은 ‘우리들의 블루스’의 흥행 이후 비주류, 이른바 소외된 계층의 ‘다름’을 특별한 작품들로 인식토록 만들었다. 사실 정은혜는 변한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은 작품을 보는 사회적인 시선이다. 이러한 작가들의 다각적 행보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무는 모범적인 사례로서, 이들이 국내 미술계에도 ‘장애작가’가 아닌 ‘창조적 아티스트’로서 읽힐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보여주고 있다.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