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락 스타처럼 노래하고 열 두 사도는 히피족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 황당한 이야기같지만 이런 내용으로 만든 뮤지컬이 있다. 곧 우리말 앙코르 공연의 막이 오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이다.
국내에서는 종교인들이 단체관람 가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원작이 올려졌던 서구에서는 종교인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국내에도 일찌감치 소개됐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아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막달라 마리아의 ‘어떻게 그를 사랑하나'는 잘 알고 있지만 유다도 자살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모른다. 또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기 전 마지막 고뇌를 담은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가 헤비메탈 가수의 창법처럼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불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심지어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으면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 하늘에선 “잘 했다 유다, 불쌍한 유다”라는 천상의 노래까지 들린다. 폭넓은 상상을 보태자면 유다가 배신했기 때문에 예수는 순교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종교적으론 차라리 불경스럽다고까지 할만한 발칙한 가정이다.
뮤지컬을 만든 사람은 영국의 천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이다. 21살의 앳된 나이에 자신보다 세 살 연상이었던 작사가 티모시 라이스와 함께 만든 문제작이다. 1971년 브로드웨이의 마크 헬링턴 극장에서 ‘수퍼스타’가 초연될 때 극장 밖에서는 흥분한 기독교인들의 데모가 소용돌이쳤다. 우유부단한 예수, 불쌍한 유다라는 극 내용을 용납할 수 없을뿐더러 예수를 수퍼스타라 부르는 것 자체가 신격모독이라는 항의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유태인들도 데모대에 합류했다. 극중 분열양상으로 일관하는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이 유태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점철됐다는 불만 탓이었다. 그러나 격렬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연일 만원사례를 이뤘고 음반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적으로 봐도 ‘수퍼스타’는 흥미로운 장르다. 바로 록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록 음악이 대중화됐지만 60~70년대의 사정은 달랐다. 록 음악은 당시 서구를 휩쓸던 젋은이들의 음악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었다. 로이드 웨버는 이 작품에서 록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로만 이뤄진 하나의 전위적인 실험극을 시도하려 했다. 하긴 2000년전 예수가 기존 사회에 대한 저항정신의 기수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실로 절묘한 대비인 셈이다.
로이드 웨버의 실험정신은 캐스팅에서도 돋보였다. 공연에 앞서 발매된 ‘수퍼스타’의 두 장짜리 컨셉 앨범을 보면 재미있다. 예수 역으로 전설적 록 밴드인 딥 퍼플의 리드 싱어 이안 길런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72년 발표된 그들의 대표곡 ‘스모크 언 더 워터(Smoke on the Water)’는 지금도 젊은 밴드들의 인기 레퍼토리로 통하는 록음악의 전설이다. 그런 딥 퍼플의 리드싱어가 예수로 나왔으니 가히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던 셈이다. 우리로 치자면 BTS나 블랙 핑크의 멤버가 사극에서 세종대왕이나 명성황후 역을 맡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유명한 사랑 노래 ‘어떻게 그를 사랑하나’도 일반인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달콤한 사연만을 담은 것이 아니다. 극중에서 노래를 부르는 막달라 마리아는 몸을 파는 창부다. 그런 여자에게 남자에 대한 기대나 환상 따위가 남았을 리 만무하다. 또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그녀는 군중들에 의해 돌팔매질 당해 죽을 수도 있는 미천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사랑에 빠졌고, 그 대상이 늘씬한 바람둥이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존경받는 인물 – 예수였다. 무대에서의 초연 때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부동의 마리아 역을 맡은 여배우는 이본느 엘리만인데 이 노래 하나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부동의 인기 스타로 등극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윤복희가 ‘언제나 막달라 마리아’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이 역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창부역의 여배우들(?)이라 인정할 만하다.
50여년 연륜의 뮤지컬 ‘수퍼스타’는 지금도 여전히 성장 중이다. 98년부터 전 영국을 순회한 30주년 기념공연은 초연 못지않은 과감한 무대 표현과 실험정신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었고, 또 최근에는 대형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계단식 구조의 야외 공연장 버전이 큰 인기를 누렸다. 리메이크의 인기는 단지 서양에 국한된 것만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이클 리나 박은태가 등장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과거 기독교인들의 그렇게 심한 박해(?)를 받으며 로이드 웨버가 ‘수퍼스타’를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2000년전 예수의 죽음을 아무 치장 없이 오늘에 재조명해 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극중에서 유다는 “예수, 당신은 왜 하필 매스 미디어도 없는 이런 옛날에 태어났지? 차라리 20세기를 선택했다면 TV며 신문이며 난리 났을 것 아니오... 당신이 말하는 하늘나라엔 부처님도 있소? 마호멧의 기적은 그저 PR을 위한 과대포장이었나?”라고 노래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러나 뮤지컬 속 노랫말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믿어서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도 믿는 현대인들에게 묻는 고약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희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하는 이 뮤지컬의 별스런 재미이자 백미다.
2022년 앙코르 무대에선 마이클 리와 임태경, 한지상, 윤형렬, 백형훈, 서은광, 김보경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계 스타들이 대거 무대에 등장한다. 기적도, 부활도 하지 않는 예수라는 파격과 실험의 정신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 벌써부터 객석의 반응이 궁금하다. 한아름 기대와 호기심을 품고 50주년 기념 한국공연의 역사적인 개막을 기다려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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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원의 커튼 콜 (Curtain Call)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편집부 기자
news@yakup.co.kr
입력 2022-11-04 14:03
수정 최종수정 2022-11-14 11:22
현대인의 시각으로 예수의 죽음을 발칙한 상상을 더해 구현하다
예수는 락 스타처럼 노래하고 열 두 사도는 히피족처럼 옷을 입고 다닌다!? 황당한 이야기같지만 이런 내용으로 만든 뮤지컬이 있다. 곧 우리말 앙코르 공연의 막이 오를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Jesus Christ Superstar)’이다.
국내에서는 종교인들이 단체관람 가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원작이 올려졌던 서구에서는 종교인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국내에도 일찌감치 소개됐지만 그 내용을 제대로 아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막달라 마리아의 ‘어떻게 그를 사랑하나'는 잘 알고 있지만 유다도 자살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모른다. 또 로마 군인에게 체포되기 전 마지막 고뇌를 담은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가 헤비메탈 가수의 창법처럼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불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심지어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으면서도 자신의 억울함을 절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 하늘에선 “잘 했다 유다, 불쌍한 유다”라는 천상의 노래까지 들린다. 폭넓은 상상을 보태자면 유다가 배신했기 때문에 예수는 순교할 수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종교적으론 차라리 불경스럽다고까지 할만한 발칙한 가정이다.
뮤지컬을 만든 사람은 영국의 천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이다. 21살의 앳된 나이에 자신보다 세 살 연상이었던 작사가 티모시 라이스와 함께 만든 문제작이다. 1971년 브로드웨이의 마크 헬링턴 극장에서 ‘수퍼스타’가 초연될 때 극장 밖에서는 흥분한 기독교인들의 데모가 소용돌이쳤다. 우유부단한 예수, 불쌍한 유다라는 극 내용을 용납할 수 없을뿐더러 예수를 수퍼스타라 부르는 것 자체가 신격모독이라는 항의도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유태인들도 데모대에 합류했다. 극중 분열양상으로 일관하는 이스라엘 사회의 모습이 유태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점철됐다는 불만 탓이었다. 그러나 격렬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연일 만원사례를 이뤘고 음반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신화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적으로 봐도 ‘수퍼스타’는 흥미로운 장르다. 바로 록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록 음악이 대중화됐지만 60~70년대의 사정은 달랐다. 록 음악은 당시 서구를 휩쓸던 젋은이들의 음악으로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었다. 로이드 웨버는 이 작품에서 록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로만 이뤄진 하나의 전위적인 실험극을 시도하려 했다. 하긴 2000년전 예수가 기존 사회에 대한 저항정신의 기수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실로 절묘한 대비인 셈이다.
로이드 웨버의 실험정신은 캐스팅에서도 돋보였다. 공연에 앞서 발매된 ‘수퍼스타’의 두 장짜리 컨셉 앨범을 보면 재미있다. 예수 역으로 전설적 록 밴드인 딥 퍼플의 리드 싱어 이안 길런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72년 발표된 그들의 대표곡 ‘스모크 언 더 워터(Smoke on the Water)’는 지금도 젊은 밴드들의 인기 레퍼토리로 통하는 록음악의 전설이다. 그런 딥 퍼플의 리드싱어가 예수로 나왔으니 가히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던 셈이다. 우리로 치자면 BTS나 블랙 핑크의 멤버가 사극에서 세종대왕이나 명성황후 역을 맡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유명한 사랑 노래 ‘어떻게 그를 사랑하나’도 일반인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달콤한 사연만을 담은 것이 아니다. 극중에서 노래를 부르는 막달라 마리아는 몸을 파는 창부다. 그런 여자에게 남자에 대한 기대나 환상 따위가 남았을 리 만무하다. 또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그녀는 군중들에 의해 돌팔매질 당해 죽을 수도 있는 미천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사랑에 빠졌고, 그 대상이 늘씬한 바람둥이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존경받는 인물 – 예수였다. 무대에서의 초연 때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부동의 마리아 역을 맡은 여배우는 이본느 엘리만인데 이 노래 하나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부동의 인기 스타로 등극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윤복희가 ‘언제나 막달라 마리아’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이 역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창부역의 여배우들(?)이라 인정할 만하다.
50여년 연륜의 뮤지컬 ‘수퍼스타’는 지금도 여전히 성장 중이다. 98년부터 전 영국을 순회한 30주년 기념공연은 초연 못지않은 과감한 무대 표현과 실험정신으로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었고, 또 최근에는 대형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계단식 구조의 야외 공연장 버전이 큰 인기를 누렸다. 리메이크의 인기는 단지 서양에 국한된 것만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이클 리나 박은태가 등장해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과거 기독교인들의 그렇게 심한 박해(?)를 받으며 로이드 웨버가 ‘수퍼스타’를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2000년전 예수의 죽음을 아무 치장 없이 오늘에 재조명해 보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극중에서 유다는 “예수, 당신은 왜 하필 매스 미디어도 없는 이런 옛날에 태어났지? 차라리 20세기를 선택했다면 TV며 신문이며 난리 났을 것 아니오... 당신이 말하는 하늘나라엔 부처님도 있소? 마호멧의 기적은 그저 PR을 위한 과대포장이었나?”라고 노래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러나 뮤지컬 속 노랫말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기독교를 믿어서 인류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다윈의 진화론도 믿는 현대인들에게 묻는 고약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희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금 곱씹어보게 하는 이 뮤지컬의 별스런 재미이자 백미다.
2022년 앙코르 무대에선 마이클 리와 임태경, 한지상, 윤형렬, 백형훈, 서은광, 김보경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계 스타들이 대거 무대에 등장한다. 기적도, 부활도 하지 않는 예수라는 파격과 실험의 정신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해석될지 벌써부터 객석의 반응이 궁금하다. 한아름 기대와 호기심을 품고 50주년 기념 한국공연의 역사적인 개막을 기다려본다.
<필자소개>
원종원씨는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대학(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 강단에 서고 있는 지금도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