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클래시그널[CLASSI그널]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편집부
입력 2022-10-21 14:23 수정 최종수정 2022-10-21 14:29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오페라 <타히티 섬에서의 소동>

<
사진: 주인공 디나(Dinah)가 테마송 'Island Magic'을 부르는 장면>
 
전 세계적으로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만큼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을 대표하는 카라얀과 비견될 만한 존재감을 가진 미국출신 지휘자일 뿐더러 작곡가, 피아니스트, 작가, 방송인 등등 못 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었다.

그는 지휘와 견줄 만큼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교향곡, 실내악, 성악곡 등 거의 모든 장르의 클래식을 아울렀으며 영화음악을 비롯하여 <온 더 타운>, <원더풀 타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같은 뮤지컬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만능 작곡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번스타인이 오페라도 작곡했을까?

아무래도 대중적인 뮤지컬 작곡가로 각인이 되어 있다 보니 번스타인의 오페라는 상당히 생소한데 그가 작곡한 2개의 오페라가 존재한다. '타히티에서의 소동(Trouble in Tahiti)' 그리고 속편 '콰이어트 플레이스(A Quiet place)'.

특히 뉴욕타임즈로부터 찬사를 받은 '타히티에서의 소동'은 번스타인이 1952년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발표한 오페라 처녀작으로 195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의 현실을 그려낸 참신한 미국 오페라다.
 
이 오페라의 출연진은 5명으로 단출하다. 주인공 샘(바리톤)과 디나(메조 소프라노) 그리고 극의 내러티브를 받쳐주는 재즈 보컬 트리오 셋. 줄거리는 1950년대 미국 교외에 사는 한 가정의 부부간 불화를 다루고 있으며 하루 동안 전개되는 내용이 담겨있다. 오페라는 짧은 일곱개의 씬으로 이루어진 단막극이다.
 
각 장면속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아침 식사 대화속에서 부부간의 갈등이 촉발되며 디나는 샘과 그의 비서사이 불륜을 의심하고 있으며 샘은 이를 부인한다. 디나는 오후에 아들이 출연하는 연극을 남편에게 상기시키지만 샘은 체육관에서 개최되는 핸드볼 토너먼트 경기로 인해 참석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계속되는 대화속에 의견차이를 보이며 언쟁을 벌이던 둘은 저녁에 다시 만나서 얘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2장에서는 일터에서 프로답게 일하는 샘의 모습이 부각 되며 3장에서 정신과 의사를 찾은 디나는 자신의 꿈에서 본 신비한 정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샘은 사무실에서 자신의 비서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무마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4장에서 깊은 감정의 골을 엿볼 수 있는데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샘과 디나가 서로 점심 약속이 있다며 거짓으로 둘러대고 각자 과거가 되어버린 행복에 대해 노래한다.
5장과 6장은 각각 핸드볼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직후 승리에 도취된 샘의 모습과 모자가게를 찾은 디나의 모습이 담겨있다. 디나는 오후에 영화 '타히티에서의 소동'를 보고 날 선 감상비평을 쏟아낸다. 여기서 디나의 가장 잘 알려진 노래 '섬의 마법(Island Magic)'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의 판타지에 사로잡혀 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녀는 샘의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린다.
.
마지막 7장에 이르러 저녁 시간 다시 마주한 디나와 샘. 둘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디나는 자신도 아들의 연극에 불참했다고 털어놓는데 둘은 확실히 관계회복을 바라고 있지만 확신은 없다. 마침내 샘은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의 선택은 다름 아닌 '타히티에서의 소동'.
 
이 작품의 참신한 매력은 '유럽풍'을 연상시키는 여느 오페라와 달리 미국인 번스타인이 바라본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1950년대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과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담은 시대상이 부부관계의 드라마 속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명의 재즈 보컬 트리오는 오페라에 틈틈이 등장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반어적으로 비틀며 노래에 담아낸다. 예를 들어 오페라의 첫 장면에 등장하여 부르는 곡은 교외에 사는 중산층의 삶을 예찬하는 노래로 사실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풍자한다.
 
번스타인이 유일하게 음악뿐 아니라 대본까지 도맡아 작업한 극음악이라는 점 또한 흥미를 돋군다. 가사 속에 묻어나는 그의 생각과 철학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4장 이후 막간에 등장한 재즈 보컬 트리오는 화려한 욕실, 고급 쿠페자동차를 비롯하여 사치품들을 늘어놓으며 소유물이 행복한 삶을 보장한다는 식의 소비만능주의를 노래하는데 번스타인의 시니컬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자신의 부모 사이 관계를 모티브 삼아 작곡한 번스타인의 이 오페라에는 당시 남녀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5장에서 토너먼트 게임에서 이긴 샘은 "There's a law about men"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승리에 취한 샘이 전형적인 미국 남성상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들의 연극도 빼 먹은 채 타히티섬 배경의 현실도피 로맨스 영화를 볼 정도로 현실속에서 무료하고 고독한 아내 디나가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생각난 건 남편의 저녁식사를 차려주는 일이었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이 오페라에 대해 '남자다움에 집착하며 일과 운동의 승부속에서 도피처를 찾는 샘과 영화들에 사로잡혀 있는 디나의 이야기"로 묘사한 바 있다. 재즈 보컬 트리오가 노래한 것처럼 겉으로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중산층 가정처럼 보이지만 내재 된 고독과 자본주의가 낳은 부작용과 상처들이 부부의 일상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번스타인의 가장 어두운 작품으로 간주 되기도 하지만 불화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않 고 관계회복을 꿈꾸는 커플의 현실적 고민속엔 희망이 내재되어 있다.

번스타인은 1950년대 사투리와 표현방식을 주의 깊게 연구하며 미국문화 본연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이 작품에 온 힘을 쏟았다. 45분이면 참신한 미국 오페라 한편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짧아서 좋다.

테마송 "Island Music"는 주인공 디나가 영화 '타히티에서의 소동'을 형편없는 영화로 치부하면서도 이국적인 남태평양 타히티섬의 환상에 젖어 부르는 노래다. 현대적 화성에 재즈의 리듬과 화성적인 요소가 가미된 절로 춤이나오는 흥겨운 곡이다.

*유튜브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6qzWI-fUvU
 
<필자소개>
아드리엘 김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지휘와 바이올린을 전공, 졸업(석사)했으며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부지휘자와 디토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를 역임한바 있다, 현재는 지휘자, 작곡가, 문화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아드리엘 김의 모멘텀 클래식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