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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컬쳐포커스
편집부
입력 2022-10-07 10:48 수정 최종수정 2022-10-0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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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t를 뉴트로로 읽어낸 ‘문학계의 백남준’ 구용 김영탁 탄신100주년
종합주의를 구현한 ‘한국문학의 대가’ 조망전시, 성대박물관 내년 3월31일까지
 

“묵념은 등대의 목줄기를 쳐다보며 별들의 숨을 쉰다. 정관(靜觀)은 바다 안개로 피화(皮化)한 가로등 불에서 소리를 발견한다.” - 김구용, 「말하는 풍경」(1959)
 
성균관대박물관(관장 조환)은 혼란한 한국현대사회를 독특한 색채로 구현한 문학가 구용 김영탁(1922~2001/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삶과 詩 세계를 오늘의 관점에서 해석한 《구용의 New-tro, 무위이화》 전시를 개최한다. 구용에 대해 문학평론가 임우기(김구용 문학전집 편집을 담당)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시 정신을 논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대시인”이라며, 동양의 정신세계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정서로 표현한 ‘산문시’의 대가로 평가했다.
 구용 김영탁 사진

다방과 산방 사이, 詩 세계를 탐닉하다.
 
구용의 본명은 영탁(永卓)이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이다. 공자의 이름[孔丘]에서 ‘구(丘)’를, 중용에서 ‘용(庸)’을 따온 필명인 ‘구용(丘庸)’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50년대 전후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었고, 한학(漢學)에 대한 깊은 소양을 바탕으로 한문 고전을 생동하는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였으며, 추사를 비롯한 전근대 한국 예술가를 깊이 숭앙했던 서예가이자, 성균관대학교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였다. 구용의 삶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한국전쟁이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생존과 문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다. 이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환기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수양했으며 동양의 고전에 흠뻑 빠져있던 동학사 사찰의 산방(山房)과 서구 최신의 문예 기조를 습득하며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유하였던 부산의 다방(茶房)을 전전했다.

 최순우가 김영탁에게 보내 온 편지와 우편물 


이렇듯 성과 속의 공간을 넘나드는 태도는 이후 삶에서도 이어졌다. 또한 전통 시기 옛 문인들을 애호하며 그 정신을 힘든 정신 속에서 재창조하려는 의지도 새롭게 다졌다. 본 전시의 초반파트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던 산방의 구용, 다양한 문인들과 교유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다듬어간 다방의 구용, 추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옛 문인들의 정신을 되새기고 새롭게 창조해간 구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문학계에서 불려온 ‘난해성의 벽(壁)’
 

시각화된 구조 안에서는 ‘초현실적 아방가르드’와 매치되며 이는 다양한 전통과 현대, 문학과 미술 사이를 융합적으로 파고드는 현시대의 다층적 콜라보를 함축한다. 전시를 통해 살펴본 구용 시의 분석과 해석들이 미완의 비평과제를 남겼다면 시각과 매치된 글씨와 그림은 오히려 ‘통시성과의 대화’를 시도한 ‘구용스타일’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서구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학, 한시의 전통과 선시 등을 종합적으로 연결시킨 부분은 문학을 벗어난 문화재 해석과 당대 화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하되 근본을 꿰뚫는 ‘명쾌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언어에 갇힌 문학가가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정취가 다양한 도판 위에 쓴 자기해석과 맞닿았을 때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용의 글씨와 그림, 초현실을 종합한 전통해석
 

구용이 그리고 쓴 무위자연

구용의 무위이화는 ‘통하여 이어지는 해석-전통傳統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이성자의 1974년 현대화랑 개인전 도록 속에는 당대의 여류 추상 그림을 접한 문학가의 자기 해석이 간결한 문체와 글씨 속에서 재발굴된다. 표준어를 넘어선 언어와 기호를 가로지른 섬세한 비평, 아마도 발굴되지 않은 수 많은 화가들과의 교류 속에 ‘구용의 新비평 스타일’이 담겨있을 것이다. 날 서지 않은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둥그러진 캘리그라피와 같은 글씨 형식은 구전을 자연적으로 시각화한 詩형식을 보여준다. 김구용이 「風味」(1970)에서 언급한 “대답은 반문하고 물음은 공간이니 말씀은 썩지 않는다.”는 구절은 정확한 인식이 불가능한 예술해석의 다양한 취향, 이른바 보편구조를 벗어난 21세기라는 탈구조적 개별양식을 예견하고 있다.

 배채기법으로 구용을 재 해석한 신제현의 <히든 사이드>

그가 읽어내려간 언어의 불협화음들은 낯설게 공존하는 ‘전통을 향한 오늘의 인식’을 보여준다. 이성자의 1972년작 <5월의 도시, 72-no.3>의 원형구조를 “푸른 거울”로 해석한 것이나, 1966년작 <음악이 필어난 잠자리>를 “부풀어 오른 행복, 별은 꽃 피리라”(1974)와 같은 리드미컬한 동시(童詩)와 같이 표현한 것은 그가 기존에 보여준 난해한 시형식과는 또 다른 순수성의 영역을 보여준다. 실제로 구용은 이성자 외에도 천경자와 같은 여류 화가들과 교류함으로써 시각예술이 보여주는 이미지의 확장구조를 시세계에 반영했을지 모른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 추사 김정희에 대한 흠모에 대해 최순우 관장이 보낸 <세한도(歲寒圖)> 엽서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듯이, 구용의 네트워크와 신구고금과의 대화는 어떤 인위도 없는 자연스러운 대화-無爲而話(무위이화)의 세계관을 통해 우리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아이같은 캘리그라피, 구용글씨에 담긴 현대성
 
김구용의 글씨는 최근 유행하는 한글 캘리그라피의 전형으로 평가할 만하다.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필체 위에 날개를 달고 여백 위로 솟는 듯한 섬세한 갈무리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폭발시키는 다이나믹하면서 순수한 마음글씨”를 지향한다. 인간의 삶을 무의식적인 자동기술법 속에서 표출한 시인이기에 구용의 심층 이미지를 드러낸 ‘시각과의 매치_콜라보 시리즈’는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긴다.

 독특한 개성이 있는 구용의 글씨체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기법상의 독특함을 실험적 개념 페인팅을 선보이는 신제현 작가의 <히든사이드>2022 시리즈와 연동시킴으로써 ‘전통-현대’를 뒤섞는 순환의 매치방식을 선보인다.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의 역설을 보여주는 시·공간의 주체해석은 뉴트로 문화로 예견되는 ‘현실과 메타버스’ 세계의 연동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마치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오웰 Good Morning Mr. Orwell>(1984)이 통감각적 SNS 시대를 예견했듯이, 구용의 뒤섞고 해체시키는 종합주의적 해석은 “구용을 오늘에 다시 되살려내야 한다”는 전시의 합목적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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