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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편집부
입력 2022-05-20 10:06 수정 최종수정 2022-05-2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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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술가의 초조한 시간, ‘틱, 틱... 붐!’ 

예술가라면 대개 가난을 경험해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집세를 못 내 주인에게 매일 시달리고, 마약의 유혹과 에이즈의 공포에 잠식당해 있으면서도 저마다 자기가 믿는 예술이라는 종교를 향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순수 예술가들은 화려한 도시의 한 켠에 그림자처럼 존재해왔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이 19세기 초반 파리 뒷골목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그렸다면, 뮤지컬 ‘렌트’는 그것을 20세기 중반 뉴욕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버전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어 토니상과 드라마 부문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던 이 작품의 작곡가이자 작사가는 안타깝게도 36세의 나이로 생애를 마친 조너선 라슨이다. 그는 ‘렌트’의 첫 프리뷰 전날 밤, 드레스 리허설을 한 후 집에서 찻잔에 물을 따르다 대동맥혈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작이 되어 버린 ‘틱, 틱... 붐!’ 은 마치 그런 비극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 것만 같은 작품이다. 막 서른 살이 된 조너선 라슨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자전적 1인극은 강렬한 록음악과 친근한 발라드가 공존하는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공명이 큰 ‘렌트’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영화판 ‘틱, 틱... 붐!’은 배우이자 음악감독인 린-마누엘 미란다가 연출하고 넷플릭스에서 제작했다. 조너선 라슨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세계 대한 이해도가 높은 영화로 오스카상 2개 부문의 후보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노래, 춤, 연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한 앤드류 가필드는 더 많이 주목 받아야 마땅하다. 

주인공 ‘존’(앤드류 가필드)은 식당 웨이터로 일하면서 8년 동안이나 준비한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숍 공연을 앞두고 불안과 신경과민에 시달린다. 때마침 여자친구는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고 하고, 에이즈에 걸린 친구들도 하나씩 숨을 거두는 상황에서 마지막 곡이 써지지 않는 그는 일분일초가 초조하기만 하다. 예술가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를 구원한 것이 결국 그 답답함에서 우러나온 선율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조너선 라슨을 그토록 괴롭혔던 여주인공의 노래, ‘Come To Your Senses’는 워크숍 장면에서 공개되는데, 자칫 평범할 수 있는 선율의 발라드가 여배우(바네사 허진스)의 맑은 목소리와 현실 여자친구를 교차시키는 편집을 통해 힘있게 연출되었다. 공연예술과 영화의 묘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윤성은의 Pick 무비
그래도, 우리는 가족  ‘봄날’




가족이란 단어만큼 이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목숨까지 내어줄 수 있을 것처럼 사랑스러웠다가도 남에게는 함부로 못할 날카로운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기 일쑤인 것이 가족이다. 비혼과 저출생, 1인 가구의 시대에는 핏줄보다 자주 만나는 친구나 이웃이 곧 가족이라는 말이 점점 더 기정사실화 되어 간다. 그러고 보면 명절에도 여행을 다니는 인구가 많아졌다. 벌써 경조사 외에 진짜 가족이 필요한 날은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여기, 부고 때문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있다. 왕년에 큰 형님으로 힘 깨나 썼던 ‘호성’(손현주)은 출소한 지 얼마 안 되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을 만난다.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지만 동생 ‘종성’(박혁권)은 형이 사고라도 칠까 안절부절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배우를 꿈꾸는 아들 ‘동혁’(정지환)은 아버지가 부끄럽기만 하다. 호성은 가족들의 눈치 속에서 예전에 자기를 따르던 조폭들을 하나 둘 부르기 시작한다. 곧 장례식장 복도는 업소에서 보낸 화환으로, 빈소는 조폭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로 자욱한데, 아들과 부조금을 세던 호성은 기상천외한 사업을 떠올린다. 곧 호성의 주관으로 장례식장에서는 밤새 한 판 게임이 벌어지고 여러 지역에서 모인 조폭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봄날’(감독 이돈구)은 가족들과 오랜만에 만나 서먹서먹한 장남 호성과 그가 만들어낸 장례식장의 엉뚱한 풍경,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에 (살아서) 등장하는 3대에는 혼인 관계가 없고 모두 유전자를 공유한 직계가족이다. 해준 것 없어도 울 아버지니까 제대로 상을 치러드리고 싶고, 전과자라도 가족이라서 남이 욕하면 화가 나고, 조폭일지언정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식들에게만큼은 인정받고 싶은 각 인물들의 심리가 잘 살아있다. 근래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한 가장 유쾌한 블랙코미디로 소개할 수 있을 만큼 씁쓸한 감정까지 웃음으로 감싼 솜씨가 300만원 짜리 장편데뷔작(‘가시꽃’)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받았던 이돈구 감독의 재능을 다시 느끼게 한다. 

코로나 사태로 가정의 달을 무색하게 지낸 지 3년째, 이번 달에는 부모님과 나들이라도 갈 수 있을까. 여의치 않다면 팝콘을 먹으면서 ‘봄날’처럼 신파 없는 가족 영화 한 편 같이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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