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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컬쳐 포커스
편집부
입력 2022-04-22 10:02 수정 최종수정 2022-04-2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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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문화사에 담긴 병을 이기는 수호그림들”

2년간 우리를 괴롭혀온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느덧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었다. 한 마디로 코로나19의 완전 퇴치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오랜 봉쇄에 지친 국민들의 일상과 침체에 빠진 경제 회복,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막대한 비용 및 의료비 부담 등을 줄이기 위한 대안책인 셈이다. 확진자 수 억제보다 치명률을 낮추는 새로운 방역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제 여행길이 조금씩 열리면서 경제도 유통도 숨을 쉴 전망이다.

“소통 가능한 치유”라는 시각 속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마스크나 백신이 점차 일반화 됐던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도 치료제와 함께 새로운 극복의 코드로 읽힐 것이다. 그렇다면, 예방법이 흔치 않던 전통 시대 속에서 백신이나 치료제의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찌 보면 약업의 보편화가 과학시대와 맥을 같이 한 것이기에, 유행병이 인류를 급습할 때마다 과학을 대체한 것은 ‘종교나 샤머니즘’이 아니었나 싶다. 이른바 부적 같은 그림들은 악귀를 물리치는 처용설화에서부터, 역병을 구한다는 기독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Saint Sevastian)’, 인간을 고통에서 구원하는 ‘중생의 구제자 관음보살(觀音菩薩)’ 등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할 것 없는 구원 같은 바람 속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그림1. 울산시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열리는 '처용문화제'

2022년 56주년을 맞이한 처용문화제는 울산의 향토 문화뿐 아니라 전통연희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기획으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그림2. 악학궤범 속 처용(좌) / 정조의 을묘년(1795년. 정조 19년) 화성행차를 기록한 의궤의 제 14면에 소개된 처용그림(우) 

악귀를 물리치는 대표적인 이야기, 처용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처용이 돌아온 것을 알고 두려움에 떨던 역신(疫神; 당시의 천연두)은 그가 노래와 춤만 추고 화를 내지 않자 모습을 드러내고 꿇어앉아 말했다. “내가 당신 아내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대는 화내지 않으니 그 마음에 감동하였습니다. 맹세코 앞으로는 당신의 얼굴이 있는 그림만 보아도 그 문 안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역신은 조용히 물러났다. 이 일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나쁜 악기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이 설화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처용설화의 내용이다. 신라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處容說話)」에서 비롯된 가면무(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는 조선 초기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라는 다섯 방위의 춤으로 구성돼 다양한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12월 회일(晦日;그 달의 마지막 날) 하루 전날 궁중에서 나례(儺禮: 잡귀를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를 행한 뒤에 처음과 끝 두 차례에 걸쳐 처용무를 추었다. 조선 초 <악학궤범>, 전(傳) 김홍도(1745~1806)의 <부벽루연회도>, 정조의 을묘년(1795) 화성행차를 기록한 의궤의 제14면 혜경궁(홍씨) 회갑잔치 장면 등에는 5방위를 상징하는 처용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늘날의 백신과 같은 역할을 했던 처용과 관련한 그림과 춤은 역병을 내좇고 행운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여겨져 ‘유행을 뛰어넘는 종교’와 같은 기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역병 희생자를 위로하는 기독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벌거벗은 채 온몸에 화살이 박힌 한 남자, 3세기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근위병이었던 성 세바스티아누스다. 몰래 믿었던 기독교 신앙이 발각되자 죽음을 맞았는데, 화살이 집중포화 됐음에도 주요 신체 부위들을 모두 빗겨간 기적이 이루어졌다. 화살을 맞고도 살아난 성인, 바로 이 이미지에서 사람들은 그를 방패와 같은 성인으로 생각했다. 특히 중세는 페스트 같은 무서운 질병들에 노출돼 있던 시절이다. 이런 질병은 신이 쏜, 보이지 않는 화살 때문이라는 옛 이교 신앙의 관념이 병마가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새롭게 되살아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성 세바스티아누스 같은 성자의 존재가 이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가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았기에 그를 경모하는 이들 역시 자신이 전염병의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이 성인의 숭배 의식은 14세기 이후 유럽 민중에게 광범위하게 퍼졌다. 이 무렵 특히 페스트가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1347년부터 1350년에 걸쳐 유행한 페스트는 유럽에서만 약 2000만에서 3500만 명가량의 희생자를 낳았다. 페스트의 유행은 기사와 성직자 계급이 지배하던 중세유럽의 봉건 제도를 뿌리째 뒤흔들었고, 이는 사회경제적 손실 뿐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에도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기도나 고행이 병치료에 효과가 없다는 인식은 교권의 추락으로 이어졌고, 역병이 죄에 대한 벌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회의를 품게 했다. 역설적이게도 역병은 소수인권의 성장, 종교개혁의 가속화, 신문물로의 전환 등 낡은 패러다임을 몰아내고 새로운 가치와 희망찬 미래를 여는 동력이 되었다. 

그림3. (우) 한스 홀바인, 전염병 희생자들의 수호성인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의 순교, 1516 / (좌) (우) 안드레아 만테냐, 1480

중생의 구제자 관음보살(觀音菩薩)

관음신앙은 대표적인 불교의 구원사상으로, BC 2세기에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는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이타구세(利他救世; 고통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신앙으로 불교의 전파 경로를 따라 인도에서 서역지방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고,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삼국시대에 전래된 관음신앙은 고구려와 백제 및 신라를 고쳐 고려불화에서 정점을 찍는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입법계품」의 내용 중에서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깨달음을 얻는 가운데, 보타락가산에 머물고 있는 관음보살을 28번째로 찾아가 진리를 구하는 장면을 묘사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를 살펴보자.

그림4. 보물 제1903호, 고려 수월관음보살도 (호림박물관 소장)

산호가 장식된 암벽에 앉아서 왼쪽을 바라보는 관음보살과 왼쪽 아래서 합장한 선재동자를 중심으로 대나무와 정병을 그린 전형적인 형식을 갖췄다. 그 가운데 관음보살의 뒤에 뻗어 있는 청죽(靑竹)과 왼쪽의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淨甁)은 깨끗함과 정갈함을 상징하지만, 중심에 있는 버드나무 껍질은 아스피린과 같은 해열제 역할을 한다. 바로 인간이 얻고자 하는 깨달음의 한가운데에는 고통어린 현실, 아픔로부터 벗어나 구원을 바라는 단순한 명제가 담겨있는 것이다. 
  
<필자소개> 
안현정씨는 예술철학전공 철학박사출신의 문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성균관대학교박물관 학예관, 유중재단 이사, 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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