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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편집부
입력 2022-02-11 12:18 수정 최종수정 2022-02-1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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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발렌타인데이를 기다리나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When I Fall in Love’ 




많고 많은 로맨스 영화들 중에서도 발렌타인데이 시즌마다 회자되는 작품들이 있다. 남녀 주인공이 발렌타인데이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하 ‘시애틀’, 노라 에프론, 1993)이 대표적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라는 공간 설정은 할리우드가 사랑한 멜로드라마의 고전, ‘러브 어페어’에서 본딴 것이다. ‘러브 어페어’는 1939년 이후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지만 이 영화 속에서 직접 차용한 것은 데보라 카와 캐리 그랜트가 나오는 1957년작이다. 

결혼을 앞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부자(父子)의 사연에서 운명을 느낀 ‘애니’(멕 라이언)는 고민 끝에 ‘샘’(톰 행크스)에게 만나자는 편지를 쓴다. 여느 로맨스 영화처럼 마법 같은 사랑, 한 순간에 빠져드는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이 영화에는 독특한 점들이 있다. 주인공들이 마지막 신에서야 정식으로 만나게 되므로 러브신이 전혀 없다는 점, 샘의 아들 ‘조나’(로스 맬링거)가 먼저 애니에게 호감을 느끼고 아빠와 애니를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은 내용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삽입곡들이다. 

루이 암스트롱, 지미 듀랜트의 곡도 있지만 ‘시애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삽입곡은 역시 자막이 올라갈 때 나오는 ‘When I Fall in Love’일 것이다. 클라이브 그리핀과 셀린 디온이 커버한 이 노래는 빅터 영이 작곡하고 넷 킹 콜이 처음 불렀는데, 지금까지도 결혼식 축가로 많이 불릴 만큼 아름다운 곡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몇 년 후인 1996년에 넷 킹 콜이 나탈리 콜과 듀엣으로 부른 버전보다 오히려 모던하고 감각적으로 편곡된 것이 특징이다. ‘내가 사랑에 빠질 땐 영원한 사랑일 거예요’로 시작해서 ‘내가 사랑에 빠질 땐 당신과 함께 사랑에 빠진 때죠’로 끝나는 에드워드 헤이만의 가사는 영화의 끝맛을 더욱 달달하게 돋우기에 충분하다. 

방금 만나서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탄 두 남녀의 사랑이 운명이고, 마법이라는 걸 믿게 만들면서. 삶이 너무 팍팍해서, 나이가 들어서 이런 사랑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시애틀’이 필요하다. 영화음악이 제일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연애 세포를 깨우는 일이니까. 

윤성은의 Pick 무비 /
영화를 향한 장이머우의 러브레터, ‘원 세컨드’


지난 4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개막했다. 팬데믹 상황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 전세계인들의 축제로서의 의미 상실 등 논란도 많지만 시원한 눈과 빙판에서 펼쳐지는 멋진 경기만 떼어놓고 보자면 집콕 생활로 인한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개막식에 대해서도 호평과 혹평이 혼재했다. 

유명 인사들을 앞세우는 대신 11,600 제곱미터에 달하는 HD LED 무대로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내고, 어린이들의 공연으로 감동적인 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는 시대정신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가 있었던 반면, 문화 공정이 엿보이는 의상 선택에는 국가적 비난이 쏟아졌고, 의미만 부각시켰던 성화점화 방식에도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번 개막식을 총연출한 이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장이머우였다. 

장이머우의 필모그래피 안에는 이번 개막식만큼 논쟁적인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붉은 수수밭’(1988), ‘국두’(1990) 등 초기작들에서 중국 서민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세계영화계의 이목을 끌었으나 일각에서는 그의 영화들 스스로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품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시각적 스펙터클, 이미지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영웅’(2002), ‘연인’(2004), ‘황후화’(2006) 3부작은 사실 중국 내셔널리즘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는 작품들이기도 했다. 

2010년대에도 그는 ‘5일의 마중’(2014)과 같은 명작과 ‘그레이트 월’(2016) 같은 망작을 함께 내놓았다.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 장르 영화와 비장르 영화를 오가는 연출적 스펙트럼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련의 작품들에 중국에 대한 예찬과 비판이 묘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보면 비상한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달 27일에 개봉한 그의 연출작, ‘원 세컨드’(2020)는 어떨까. 우선, 이 영화는 당장 장이머우판 ‘시네마천국’(쥬세페 토르나토레, 1988)이라 불릴 만큼 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짙게 묻어난다. 의문의 남자, ‘장주성’(장역)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딸이 영화 상영 전에 틀어주는 뉴스에 나온다는 사실을 듣고 영화가 상영될 마을로 간다. 그러나 자기와 남동생을 괴롭히는 동네 아이들에게 전등갓을 빚진 ‘류가녀’(류호존)의 방해가 만만치 않다. 쓸모없는 필름으로 전등갓을 만드는 게 유행이기 때문이다. 딸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온갖 위험을 감수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도 감동적이지만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온 마을이 동원되어 사막 모래에 다 망가진 영화 필름을 복원하고 상영하게 되는 과정이다. 

처음 보는 영화도 아니건만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면 마을 잔치처럼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숨을 죽이고 영화를 감상했던 시대의 풍경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묘사된다. 문화대혁명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빌어 동시대 중국의 문제점들을 말하려는 날카로운 시선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 국가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인물들이나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 모두 70대의 노장에게는 연민과 향수의 대상일 뿐이다. 대신 ‘원 세컨드’는 영화를 향한 열정과 순수에 방점을 찍는다. 

필름을 복원하는데 진심인 사람, 좀 더 좋은 자리에서 영화를 보려고 다투는 사람, 보고 싶은 장면을 무한 반복해서 돌려 보는 사람, 이 모두가 우리 영화의 역사와 과거와 추억 속에도 있었다. OTT 산업의 도약과 영화관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조금이라도 서운함을 느꼈던 이들이라면 눈가가 촉촉해질 작품이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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