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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준의 클래스토리
편집부
입력 2021-12-03 08:29 수정 최종수정 2021-12-0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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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짧은 시간일까요? 아니면 긴 시간일까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10분의 시간을 짧다고 여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침에 조금만 더 자고 싶을 때, “10분만 더 잘께..” 라고 말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10분을 더 자고 일어난 탓에 지각을 하고 말았던 경험을 갖고 있는 이들도 꽤 되겠지요. 별 것 아닐 것 같은 10분의 차이. 하지만, 그 차이는 경우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것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루마니아 출신의 소프라노 일레아나 코트루바스(I. Cotrubas, 1939- ).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와 <라 보엠>의 ‘미미’ 역으로 특히 유명했던 그녀의 커리어를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51세라는 이른 나이에 무대를 떠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스칼라 극장에 데뷔했다는 것이지요.

1975년 1월 7일, 스칼라 극장에서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이 공연될 예정이었습니다. 남자 주인공 ‘로돌포’ 역에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 Pavarotti, 1935-2007)가, 여자 주인공 ‘미미’ 역에는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M. Freni, 1935-2020)가 캐스팅된 상태였습니다. 이 오페라의 공연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캐스팅으로 손꼽히곤 하는 이들의 호흡을 많은 이들이 무척 기대했을텐데, 공연 당일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프레니가 아파서 노래를 할 수 없게 된 것이었지요. 그러자, 파바로티가 ‘코트루바스를 데려오자’고 제안합니다. 당시 코트루바스는 런던 근교에 살고 있었는데, 스칼라 극장에서 아직 노래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극장 측에서는 그녀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연락이 닿았고, 그녀는 당시 ‘미미’를 1년 정도 부르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 비행기 티켓을 사서 급히 스칼라 극장이 있는 밀라노로 향했습니다. 

시간은 매우 촉박해서, 코트루바스는 비행기 안에서 분장을 스스로 시작해야 했고, 극장 측에서는 공항으로 그녀가 타고 올 차를 보냈는데, 경찰이 호위한 상태였지요.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공연 시작 불과 15분 전. 그녀는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의 지휘 방식에 대한 지휘자의 메모만 전달받은 채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망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이 공연은 대성공이란 표현도 부족할 정도의 성공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가 끝나자, 극장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고도 회고했지요.

그런데,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의문이 생깁니다. 보통 극장에서는 공연에서 주역 가수가 갑자기 노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을 대비하여, 대타를 마련해놓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수를 커버(Cover)라고 부르지요. 그러니, 멀리 있었던 코트루바스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데려와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코트루바스가 공연 시간에 임박하여 극장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 이미 한 가수가 분장을 마치고, 가발까지 쓴 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수의 이름은 지네트 필루(J. Pilou, 1937-2020). 이 <라 보엠> 공연 한 달 전,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에서 조연인 ‘마르첼리나’ 역으로 스칼라 극장에 데뷔했던 가수였지요. 필루는 이미 1967년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데뷔하는 등, 당시의 코트루바스처럼 국제적인 커리어를 잘 다져가고 있던 가수였습니다. (그녀의 메트 데뷔는 공연 당일 아팠던 가수를 대신함으로써 이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 아팠던 가수도 프레니였습니다.)

코트루바스(왼쪽, 출처: www.taminoautographs.com)와 필루(오른쪽, 출처: parsifal79.blogspot.com)

스칼라 극장은 만약 코트루바스가 공연 시작 10분전까지 도착을 하면, 코트루바스가 공연을 하고, 만약 5분 전에 도착하면, 필루가 공연을 할 것이라는 방침을 필루에게 전달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필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파바로티부터 스칼라 극장 측까지 코트루바스를 제 시간에 데려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상황은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이 상황 속에서도 스칼라 극장에서 주연으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을 듯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코트루바스가 공연 시작 15분 전에 도착해서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그녀는 분장을 지우고 극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불과 10분 차이였지요. 코트루바스가 10분만 더 늦었더라면, 그 무대에는 분명 필루가 올라갔을 것입니다. 물론, 무대에 오른다는 것과 성공적으로 그 무대를 마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세계적인 무대에 주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10분 차이로 날아가 버린 아쉬움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라 보엠> 공연 이후, 코트루바스는 확고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스칼라 극장에서는 몇 차례 더 <라 보엠>을 공연하였고, 독창회를 두 번 갖기도 했지요. 반면, 필루는 1977년 드디어 주연으로 스칼라 극장에서 노래했지만, 그 이후로 스칼라 극장 무대에 서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녀가 메트나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같은 다른 유명한 극장에서는 상당히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것을 생각해보면, 스칼라 극장 무대에 많이 서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만일 필루가 그 <라 보엠> 공연에서 노래했다면, 이러한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까요? 

10분 차이로 두 가수의 희비가 엇갈려버린 <라 보엠> 공연 이야기에서, 코트루바스의 데뷔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때에는 알 수 없는 달콤씁쓸함이 느껴집니다. 모두가 행복하기는 힘든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지요. 어쩌면 그래서 더욱 곱씹어볼만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추천영상: 필루와 코트루바스가 부른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를 비교하여 감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보다 맑은 음성의 필루와 보다 부드러운 음성의 코트루바스가 창조해낸 미미를 들어보세요. 필루의 음원은 1969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의 녹음이고, 코트루바스의 영상은 1979년 스칼라 극장의 공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979년 영상에서도 상대역은 파바로티가 맡았지요. (영상 퀄리티가 상당히 아쉽습니다.) 

참고로, 필루에 대한 일부 자료에서는, 그녀가 1960년에 이미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역으로 스칼라 극장에서 데뷔하였다고 적혀있는데, 스칼라 극장 홈페이지의 아카이브에 따르면, 필루는 <피델리오>와 <파우스트> 두 작품으로 스칼라 극장에서 노래하였으며, 두 프로덕션 모두 1970년대 중반에 공연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에는 <라 트라비아타> 자체가 공연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1960년에 필루가 데뷔하였다는 정보는 잘못된 것으로 보입니다.

필루가 부른 ‘내 이름은 미미’: https://www.youtube.com/watch?v=gcDYNELmNEI


<필자소개>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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