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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Prologue !
편집부
입력 2021-10-22 09:55 수정 최종수정 2021-10-2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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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국립국악원 미공개 소장품전이 개막됐다. 국악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면 두 명의 작곡가 컬렉션을 만나게 된다. 오래 묵은 녹음테이프와 친필 악보가 전시된, 작곡가 백대웅과 이해식의 컬렉션이다.

그들은 같은 해인 1943년에 태어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은 학교 국악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같은 방송국에서 피디로 일했다. 그러다 각각 학교로 적을 옮기고 정년까지 후학을 길러내며 연구와 창작 활동으로 전통 음악의 터전을 확장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삶의 궤적만 놓고 보면 참으로 닮은 인생이다.

백대웅의 ‘남도아리랑’

국악과를 졸업하고도 국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백대웅이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방송국에서 일하며 만정 김소희 명창이 소리하는 모습을 촬영할 때였다. 심청가 한 대목에 그가 마음을 빼앗겼다.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을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명창의 소리를 악보에 옮기기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악보를 들고 다시 만정 선생을 찾아갔다. 악보대로 부르는 그의 노래를 듣고 만정 선생은 ‘성음은 호랭이가 싹 물어가 버리고, 길하고 장단은 꼭 맞소.’ 하고 평했다. 명창의 핀잔에 웃음기가 배어있다. 그 인연은 명고수 김명환 선생으로, 또 다른 명인 명창으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당대의 명인 명창들을 기록하고 연구하며 그는 본격적으로 국악학자이자 국악 작곡가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작곡가 백대웅은 원형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치고 체화하는 것을 전통의 확장, 혹은 창작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백대웅이 작곡한 곡 중에는 친근한 민요 선율을 차용해 만든 곡들이 많다. 강원도아리랑과 한오백년을 녹여낸 ‘신 관동별곡’, 가야금․대금․해금․장구․징 등 ‘다섯 악기를 위한 몽금포타령’, 가야금 3중주로 연주하는 ‘강강술래 변주곡’ 등 누구나 한 소절쯤 흥얼거릴 수 있는 가락이 악기의 조합에 따라 풍성해지고 담박해진다. 그가 작곡한 음악들은 창작곡이지만 누가 들어도 전통 음악처럼 여겨지고, 또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국악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남도아리랑’도 그중 하나이다. 수많은 아리랑 중 존재감이 확연한 전라도와 경상도의 대표 아리랑, 진도아리랑과 밀양아리랑을 가져다 ‘남도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두 아리랑의 주선율이 다채로운 빛깔을 품은 한 곡이 되어 가야금에서 피리로, 소금으로, 다시 해금으로 흐른다. 
이 곡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악단이 함께 세계 최초의 아시아 민족악단을 표방하며 창단한 ‘오케스트라 아시아’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중국 상해오케스트라가 서양 악기로 연주하기도 했다. 이 곡의 여러 가지 버전을 유튜브 채널 ‘정창관의 아리랑’에서 들어볼 수 있다.

                                                                       국악 관현악 연주 모습(©국립국악원)

이해식의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교편을 잡았던 이해식은 작곡의 꿈을 놓지 않았다. 조금 늦게 국악과에 입학한 그는 작곡 공부에 매진해 여러 차례 공모전에서 입상하기도 하였다. 국악과 양악 모두에서 두각을 보였으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방송국에 들어가 10여 년을 프로듀서로 일했다. 그 역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찾아낸 ‘우리의 소리’를 차곡차곡 비축했다. 이렇게 모은 3,000여 점의 다채로운 시청각 자료들은 그의 방송 프로그램을 살찌우고, 그의 창작 활동에 동력이 되었으며, 그가 정년을 맞이할 즈음에는 후학들을 위한 선물로 국립국악원에 보내졌다. 

채록한 민요를 자양분으로 삼았으나 백대웅이 민요의 선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이해식은 리듬에 집중했다. 리듬을 쪼개고 변주하고 반복하며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그의 국악 관현악곡 중에는 타악기가 도드라지는 곡들이 흔하다. 타악기와 리듬은 그가 평생 화두로 삼았던 굿, 춤, 바람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가 작곡한 음악의 제목에 ‘춤’ 혹은 ‘바람’이란 단어가 들어간 곡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이다.

중학교 교과서에 감상곡으로 실려 있기도 한 ‘젊은이를 위한 춤, 바람의 말’에는, 모든 젊은이들이 국악을 쉽게 이해하길 바라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곡이 국악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는 작곡가의 바람이 담겨 있다. 도입부부터 경쾌한 리듬으로 시작해 각 악기가 흥겨움을 더하는 이 곡은 국악방송 누리집에서 동영상으로 감상해볼 수 있다. 2014년 국립극장에서 열린 작곡가 시리즈의 국립국악관현악단 버전과 2015년 개교 60주년을 맞이한 국립국악고등학교 목멱예술제에서 2학년 학생들이 연주한 영상이 남아 있다.(목멱예술제 영상의 바로 앞 순서는 백대웅의 남도아리랑이다. 지금은 성인이 되었을, 1학년들이 연주한다.) 

국악 관현악은 수십여 가지 악기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새로운 것을 지향하기 마련인 창작곡에는 관객이 예상치 못한 실험적 요소들이 곁들여지곤 하는데 세계 곳곳의 악기들은 물론, 악기 아닌 것들이 음악의 도구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작곡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기상천외한 물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재미는, 용감하게 창작 음악 감상에 도전하는 관객에게만 주어지는 덤이다.


<필자소개>
김보람 씨는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영상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에서 소식지 국악누리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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