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지휘자 번스타인(L. Bernstein, 1918-1990)은 처음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은 말러(G.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9번. 번스타인이 매우 아끼던 작품이었지요. 반면, 베를린 필에게는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히 생소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총 리허설이 평소와는 달리 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진행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모았던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의 만남은 이틀간 열렸던 공연 이후 다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RIAS 방송국에서 첫 날 공연을 녹음하였고 그 음원이 번스타인이 사망한 후인 1992년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정식 음반으로 발매되었습니다.
번스타인이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유일한 기록이라는 희소성만으로도 이 음반은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는데 그래미 상을 비롯하여 몇몇 음반상을 수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반 속에 담긴 음악 자체도 매우 훌륭했지요. 그런데, 이 음반은 또 하나의 큰 화제 거리를 몰고 왔습니다. 4악장이 절정에 이르는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트롬본 소리가 아예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말러는 그의 9번 교향곡에 총 3대의 트롬본을 편성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음반에서 문제가 된 부분에서는 3대의 트롬본이 모두 매우 크게 연주하도록 표기해 놓았지요. 그러니까 이는 당시 베를린 필의 트롬본 주자들 모두가 그들의 소리가 뚜렷하게 부각되어야만 하는 이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는 뜻이 됩니다.
천하의 베를린 필 주자들이 왜 이런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두고 이런저런 추측들이 오고 갔습니다. 베를린 필이 당시 말러 교향곡 연주에 익숙하지 않아서 트롬본 주자들이 실수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그 중 하나였지요. 그러던 중에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인터넷에 등장했습니다. 이 공연에 객원 호른 주자로 참여했다는 사람이 이 실수에 대해 설명했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문제가 된 이 부분에서 트롬본 주자들 뒤에 앉아있던 청중 한 명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트롬본 주자들의 주의가 흐트러져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실수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쓰러진 청중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트롬본 주자들이 의사가 급히 와야 했던 위급한 상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었지요.
베를린 필과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가 끝난 뒤 박수를 받고 있는 번스타인
(출처: Archiv Berliner Philharmoniker)
이 이야기는 믿을만한 것일까요? 인터넷에 실명을 밝히지 않은 채 올라왔던 글이어서 그 신빙성에 의문을 품을 법도 한데 오랫동안 베를린 필의 제1 바이올린 주자로 활약하였고 번스타인의 말러 공연에도 참여했던 페터 브렘(P. Brem, 1951- )의 회고록을 보면 이 이야기는 사실로 보여집니다. 브렘 또한 이 부분에서 관악기 뒤에 자리한 청중 한 명이 실신했다고 밝히고 있으니까요. 브렘은 그 청중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는지의 여부까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공연 도중 쓰러져 트롬본 주자들이 영향을 받아 실수를 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실수의 원인은 밝혀졌지만 이제 궁금해지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큰 실수가 포함된 음반이 발매되었을까요? 답은 이 공연이 원래는 정식으로 녹음될 계획이 없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만약 음반사가 이 공연 실황을 음반으로 발매하려는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다면 적어도 이틀 간의 공연과 총 리허설을 녹음했을 것입니다. 그래야 편집을 통해 실수를 수정하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의 말러 공연은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첫 날의 공연만 녹음되었습니다. 아마도 라디오 송출을 위함이었겠지요. 그래서 트롬본 실수처럼 큰 실수가 존재해도 이를 대체할 편집 음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번스타인은 이 공연이 음반으로 정식 발매되는 것을 찬성했을까요? 서두에서 언급하였다시피, 이 음반은 번스타인이 사망한 후에야 발매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번스타인의 대답은 추측만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번스타인이 이 음반의 발매를 분명 반겼으리라 생각합니다. 공연에서 그와 베를린 필 사이에 깊은 음악적 교감이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대성공으로 끝났던 첫 공연에서 번스타인이 무대에서 눈물을 훔치면서 단원들을 포옹했으며 단원들도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는 뉴욕 타임즈의 기사와 첫 리허설 때만 해도 베를린 필이 번스타인이 원하는대로 말러를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공연에서 마침내 그가 원하는대로 연주할 수 있었다는 브렘의 회고를 통해 알 수 있지요. 트롬본 실수를 비롯하여 앙상블이 다소 산만한 몇몇 부분들은 자주 지적되지만 처음 만났던 이들이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낸 음악적 성취가 이로 인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의 공연이 편집을 통해 기술적으로 보다 완성도 높은 음반으로 발매되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분명 그 음반도 훌륭했겠지만 한 공연을 온전히 담아낸 생생함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이 음반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아쉬움은 트롬본 파트의 실수가 아닌, 이것이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의 유일한 만남이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들의 만남이 더 이어졌더라면 어떤 흥미로운 결과물들이 탄생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유일해서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들의 만남을 음반을 통해 찬찬히 음미해보는 것을 어떨까요?
추천음반: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의 말러 교향곡 9번 음반입니다. 4악장에서 트롬본 파트의 실수가 들어있는 부분은 1시간10분34초부터 등장하지요. 전곡을 듣다보면, 조금씩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들리기도 하는데, 번스타인과 베를린 필이 처음으로 함께 했다는 점이 실감납니다. 그러나, 전곡을 관통하는 강력하고 생생한 에너지는 일품이지요. 번스타인이 지휘를 하며 기합을 넣는다거나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도 들을 수 있는데, 음악에 한껏 몰입해 지휘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연주가 끝나고 쏟아졌던 청중들의 박수 소리도 음반에 실어주었으면 생생한 현장감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박병준씨는 음악학자이자 음악칼럼니스트로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립음악대학교에서 비올라를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음악학)를 취득했다. 현재는 광명 심포니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