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는 정말 귀에 익숙한데 무슨 영화의 OST인지, 아니 영화음악인지 아닌지조차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곡이 있다. 고전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문 리버’도 그런 노래 중 하나일 것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이하, ‘티파니’)’(감독 블레이크 에드워즈, 1961)은 트루먼 카포티 원작,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 오드리 햅번 주연 등 크레딧 만으로도 당시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세월을 뛰어넘는 유명세에 있어서만큼은 영화 첫 신부터 마지막까지 다양한 편곡으로 연주되는 테마음악에 밀린 것 같다. 여주인공, ‘홀리’(오드리 햅번)가 직접 노래를 불러야 했기에 철저히 오드리 햅번의 음역과 음색에 맞춰 작곡된 노래임에도 말이다.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한 헨리 맨시니는 1950년대부터 영화음악 작곡을 시작했지만 노래 작곡가로서의 역량은 입증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작사에서도 처음에는 그에게 ‘티파니’의 스코어 작곡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맨시니가 이 곡을 감독과 프로듀서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그들은 이 노래야말로 홀리의 인생과 영화의 분위기를 함축한 명곡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영화음악이 팝 뮤직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맨시니는 ‘문리버’를 적당한 길이로 편집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도록 했고, 그 결과 ‘티파니’는 음반 판매에 성공한 최초의 영화가 되었다.
맨시니는 오케스트라와 재즈를 보완해 이전까지 영화에서 잘 들을 수 없었던 종류의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작곡가다. ‘티파니’에서도 그는 악기수를 많이 줄이는 시도를 했는데, 세 개의 노트로 이루어진 소박한 멜로디의 느낌과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 홀리의 상처와 피로감이 잘 묻어나는 가사까지 얹어지면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영화에서 명품 드레스를 입은 시골 처녀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데에도 조니 머서가 쓴 서정적 가사의 역할이 크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티파니’ 속 햅번의 목소리로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윤성은의 Pick 무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도, ‘소울’
코로나19 1년. 팬데믹이 바꾸어 놓은 것이 비단 우리의 일상만은 아닐 것이다. 가족들과 명절을 보낼 수 없고, 영화관에서 연인의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실 수도 없고, 여행의 기쁨도 누릴 수 없었던 나날들 속에 사람들의 인생관은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가 지금 꿈꾸어야 할 ‘뉴노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삶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늦게까지 음식을 나누거나 마음껏 소리 지르며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면서 예전에는 잘 몰랐던 그 시간의 소중함에 흠뻑 감동하는 날들 말이다.
픽사의 신작, ‘소울’(감독 피트 닥터, 2015)의 메시지는 코로나19의 교훈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픽사는 첫 장편이었던 ‘토이 스토리’(감독 존 라세터)부터 지금까지, 인생 좀 아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다. 늘 새로운 기술을 시도할 뿐 아니라 인문학적 주제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는데 큰 역할을 해온 것이다. ‘소울’이 얼어붙은 극장가의 구원투수가 된 것은 이러한 관객들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작들이었던 ‘인사이드 아웃’(감독 피트 닥터)이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시각화했고, ‘코코’(감독 리 언크리치, 2017)가 사후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담고 있다면, ‘소울’은 사람이 태어나기 전 시공간들에 대한 21세기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유 세미나’로 불리는 생전의 세계에서는 천사나 황새의 도움 대신 생명체들이 별똥별 떨어지듯 지구로 뛰어내린다. 대신 그 전에 그들은 경험이 풍부한 멘토를 만나 각자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통행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평생 소원해왔던 재즈 클럽 연주를 앞둔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불의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유 세미나로 떨어진다. 그가 가슴 속의 ‘불꽃’을 찾아주어야 할 멘티는 태어나기를 거부하는 ‘22’(티나 페이)다. 마음이 다급한 조는 통행증을 만들어 자기에게 주면 유 세미나에 계속 머물 수 있다고 22를 설득한다. 의기투합한 두 인물은 지구로 떨어지는데, 하필 병원에 있던 조의 몸 속에는 22가, 치료 고양이의 몸 속에는 조가 들어가게 된다. 인간의 몸으로 지구를 처음 경험하게 된 22와 고양이가 된 조의 모험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유쾌하다.
‘소울’에도 어른들의 코 끝을 찡하게 만들 만한 주제가 들어있다. 삶에 대한 목표가 어떤 직업이나 특정 이벤트, 혹은 물질에 있다면, 그것을 막상 이루었을 때 허무함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생애 최고의 연주를 마치고 난 후, 조는 그토록 꿈꿔왔던 무대에 매일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조가 연주하는 순간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 또한 지루한 일상 정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22가 그랬듯 코 끝을 간질이는 피자 냄새, 부드러운 바람이 뺨에 닿을 때의 감촉처럼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보는 것,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해볼 만한 시도가 아닐까.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