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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뮤직 in CINEMA
편집부
입력 2021-01-22 10:10 수정 최종수정 2021-02-0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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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기다리는 이들이라면, ‘가위손’, 그리고 대니 엘프만

세월이 흘러도 특정 계절마다 다시 꺼내 보게 되는 작품이 있다. 작년에 서른 살 생일을 맞은 ‘가위손’(감독 팀 버튼, 1990)은 눈을 기다리는 겨울이면 한 번쯤 생각나는 영화다. 사실 이 영화는 한 발명가가 미처 완성시키지 못한 ‘에드워드’(조니 뎁)의 슬픈 경험담이다. 작은 마을에서 화장품 방문 판매를 하던 ‘펙’(다이안 웨스트)은 언덕 위의 성에 들어갔다가 창백한 얼굴에 상처 투성이를 하고 손가락 대신 가위 날이 달린 에드워드를 만난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 에드워드를 환영하는 듯 하지만 그의 재능을 이용하려다 실패한 사람들의 모략 때문에 에드워드는 다시 성으로 쫓겨 가고 만다. 인간의 편협함과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는 사회성 짙은 이 작품이 에드워드와 ‘킴’(위노나 라이더)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야기로 널리 각인되어 있는 이유는 몇몇 로맨틱한 이미지들과 그 분위기를 한껏 돋워준 음악에 있다. 

에드워드가 거대한 얼음을 깎아내면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하얀 드레스를 입은 킴이 그 아래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그 어떤 영화의 러브신과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낭만적이다. 크리스마스라는 시간적 배경, 천사 조각상, 청초한 킴, 에드워드의 순수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음악에는 성가의 경건함과 판타지의 웅장함, 캐롤의 영롱함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가위손’의 작곡가인 대니 엘프먼은 길예르모 델 토로, 이안, 브라이언 드 팔마 등 뛰어난 감독들과 100편이 넘는 영화에 참여해온 거장이다. 그러나 엘프먼과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한 감독은 팀 버튼이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스코어들도 팀 버튼의 작품들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원래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오잉고 보잉고’라는 밴드로 뮤지션의 커리어를 시작한 엘프먼에게 영화계에 입문할 기회를 준 것 역시 팀 버튼이다. 두 사람이 명콤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엘프먼이 팀 버튼의 환상적이고 기묘한 세계를 이해하고 음악적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최적의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엘프먼은 어른들의 동화가 가진 음산함, 어두운 현실과 그것을 넘어서는 초월적 세계, 그 사이의 몽환적 감수성을 자유롭게 표현해낸다. 변칙적인 화성과 리듬을 쓰는 엘프먼의 스타일은 ‘엘프먼에스큐’라 명명될 정도로 독창적이다.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가위손’에도 이러한 특징은 잘 드러나 있다. 가령, 펙이 성을 방문하는 신에는 에드워드의 존재에 미스터리와 신비스러움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오케스트라 기반에 합창이 얹어지고 예상치 못한 리듬이 끼어들었다가 사라지기도 하면서 영상에 감정의 굴곡을 심어주고 있다. 

유례없이 황량한 마음으로 맞이한 새해이기에, 차가움 속에 따스함이 숨어 있는 ‘가위손’의 정서가 더 그리워진다. 에드워드의 순애보가 만들어내는 얼음눈이라도 실컷 내렸으면 좋겠다. 

윤성은의 Pick 무비

지금, 당신의 위치를 가리킬 수 있나요, ‘운디네’

‘운디네’(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사랑이야기다. 두 남녀가 운명처럼 만나고 열렬히 사랑하다가 넘어설 수 없는 장애로 인해 헤어지는 멜로드라마의 관습적 서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평범하지만은 않다. 연인들의 만남과 이별이 독특하고 전반적인 톤 앤 매너도 신비스럽다.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개연성이 떨어지는 순간들이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다분히 판타지적 성격이 들어 있지만 어딘가에는 이런 관계가 존재할 것만 같은 현실감도 느껴진다. 그것은 어쩌면 절절한 사랑이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게 된 시대에 오히려 더 커져 버린 사랑의 힘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운디네’(파울라 베어)는 산업 잠수부인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와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죽을 만큼 사랑했던 ‘요하네스’(야콥 맛쉔츠)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지 1시간쯤 후, 같은 카페에서의 일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운디네에게 수조 속에 있던 산업 잠수부 미니어처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크리스토프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자신을 배신했던 요하네스를 금세 잊어버린 운디네는 새로운 연인에게 깊은 애정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러나 크리스토프가 그녀에게 선물한 산업 잠수부 조각상이 부러지는 사건이 암시하듯 두 사람의 애틋한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고 위기에 빠진다. 

신화에서 남성들의 짝사랑을 이루어주는 정령, 질투의 화신 혹은 배신의 희생양으로 묘사되었던 운디네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사랑의 주체로 거듭난다. 그녀가 도시역사학자이며 박물관에서 베를린이라는 유서 깊은 도시의 건축물에 대한 강의를 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도시 재건에 있어서도 옛 것과 현재의 것이 같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그녀는 요하네스와 크리스토프를 혼동하거나 저울질하지 않는다. 질투에 빠지는 것은 오히려 남성들이다. 도시가 발전하는 것처럼 운디네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운디네는 강의 때마다 도시 모형관에서 사람들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를 가리킬 수 있는 분?”, “전에 베를린궁이 있던 자리를 가리킬 수 있는 분?” 그녀가 공간의 현재와 과거를 연구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흐름과 상태, 연인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행위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바바라’(2012), ‘피닉스’(2014), ‘트랜짓’(2018) 등으로 유수의 영화제에서 꾸준히 주목받아 온 독일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는 운디네의 캐릭터를 바꾸고 성역할을 전복시킴으로써 보다 현대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신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결말부는 다소 아쉽다. 2020년의 ‘운디네’에서는 그녀의 선택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윤성은씨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으로 현재 다양한 매체에 영화음악 칼럼과 짧은 영화소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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