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러스
풍류 천일야화 미인탐방 2부
<17> 허난설헌(許蘭雪軒) <제4話>
편집부
입력 2016-08-31 09:36 수정 최종수정 2016-12-01 17:30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스크랩하기
작게보기 크게보기
임금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는 작은오빠 허봉을 그미는 피붙이를 넘어 존경하였다. 거침이 없는 말수와 논리 정연한 사물에 대한 사고도 매력적이었으나 헌헌장부 같은 모습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겼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빠 허봉은 12살 위로 때로는 학문에 대해 열띤 토론까지 벌이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문득문득 ‘오빠가 남이었으면...’ 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남이면 헌헌장부에게 연심을 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찰나적이지만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속내를 들키는 것 같아 가을석류 같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그미는 오빠를 빤히 쳐다보기도 하였다.

허봉은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 올 때마다 초희에게 상아빗과 화장품, 그리고 거울 등을 사다주었다. 그럴 때면 그미는 “오빠, 소녀는 어머니가 쓰시는 동백기름을 바르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돼요! 명나라 사대부들이 많이 읽은 책을 사다주세요!” 라고 지적 호기심을 서슴없이 말하였다. 그럴 때면 허봉은 기쁘면서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초희를 바라보았다. 저 영리하고 재기발랄한 것을 어느 사내가 감당해 낼까 걱정이 앞섰다.

아무튼 허난설헌은 안동김씨 집안의 김성립과 결혼하여 건천동(현 명동 근처) 친정에서 3일을 묵은 후 시집인 옥인동으로 들어갔다. 소위 삼일우귀(三日于歸)의 결혼 제도다. 거문고를 키는 것 보다 붓으로 글쓰기를 즐겼으며 비단에 수놓는 것 보다 말 타고 석성을 달리는 것을 선호했던 그미는 날개 꺾인 봉황이 되어 별당에 갇히게 되었다.

그미의 꿈은 꿈으로 끝날 현실이 되어 버렸다. 초희는 어릴 때 소학·대학·논어·중용 등을 탐독하여 학문의 세계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과거를 봐 장원급제 했었으리라! ‘하늘하늘 창 아래 난초 잎/ 가지와 잎 어찌 그리도 향기로운가/ 하늬바람 한번 스치면/ 시들어 버리니 가을 서리를 슬퍼하노라/ 빼어난 고운 빛 시들어 버려도/ 맑은 향기는 끝내 없어지지 않는구나/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흘러 옷깃이 젖네...’ ≪어리석었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은유했음이다. 꿈 많던 소녀가 별당에 갇힌 신세가 되었으니 그 마음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미는 진정한 조선판 노라이즘, 아니 페미니즘이었을 게다. 적자도 서자도 빈자도 부자도 남자도 여자도 천민도 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꿔 왔을 것이다.

아버지 허엽은 화담 서경덕(徐敬德·1489~1546)의 문인으로 도학적 학풍을 이어 받았다. 또한 허엽은 동인 중에서 자유분방한 북인계에 속했으며 김성립은 성리학의 철저한 지킴이 남인계다. 이처럼 가문이 가지고 있는 학풍이 서로 다른 이들이 결혼하였다. 김성립의 안동김씨 집안은 5대가 문과에 급제한 명문가문으로 시를 쓰는 자유분방한 허난설헌의 집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결혼은 가문과 가문이 관계를 맺는 풍습으로 결혼 당사자의 생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허난설헌과 김성립도 그 중의 한 쌍이다. 난설헌이 김성립이 마음에 들지 않듯이 김성립도 난설헌이 결코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을 게다. 여자란 남자 품에 쏙 들어와야 하는데 난설헌은 그런 여자가 아니었었다.

오히려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의 여자여서 언제나 버거운 상대였다. 계속 실패했었던 과거도 난설헌이 사망한 뒤 힘겹게 급제하였다. 어머니 송씨의 한을 풀었다. 아마 보기 싫은 시나 쓰는 며느리가 없어져 아들이 과거에 급제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가문의 경사가 생겼다.

난설헌이 살아있을 때 김성립이 과거에 급제했다면 며느리 구박이 좀 덜 했을 터인데 그것마저 안돼 그미는 시어머니 복도 남편 복도 없는 여자로 결혼생활 13년을 끝냈다. ‘신선께서 알록달록 봉황새를 타고/ 한밤중 조원궁에 내려오셨네/ 붉은 깃발은 바다 구름에 흩날리고/ 예상 우의곡이 봄바람에 울리네/ 요지 봉우리에서 나를 맞으며/ 유하주 한 잔을 권하시더니/ 푸른 옥지팡이를 빌려주시며/ 부용봉에 오르자고 인도하시네...’ ≪부용봉에 오르다≫다. (시 옮김. 허경진)

이렇듯 그미는 결혼생활에서 얻지 못하는 꿈을 눈만 감으면 현실처럼 나타나는 신선세계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곳 신선세계에서 서왕모(西王母)를 만나고 그곳 세상에서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에서 못 이룬 삶의 아름다움과 시의 세계도 마음껏 펼쳤으리라...

하지만 육신이 거처하는 옥인동 시집에선 끝이 없는 갈등이 빚어졌다. 김성립은 초희에게서 얻지 못하는 여자와의 사랑을 제3의 여자한테서 찾았다. 육체의 희열을 넘어 아이까지 낳아 안방으로 들어오는 사건을 일으켰다. 장남인 김성립에겐 대를 이를 중책이 허난설헌에게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정사다.

하지만 이 또한 초희가 감내 해 내야하는 여자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와중에 아버지 허엽의 비보가 날아든다. 경상북도 감찰사 겸 병마절도사로 임명됐으나 병마로 사퇴하고 귀경길에 상주객관에서 절명(1580년 2월 4일)했다는 절망적인 소식이다.

그미는 서둘러 건천동 친정집으로 갔다. 같은 사대문 안인데 3년 만에 간 친정집이다. 몰라보게 야윈 초희의 모습에 영월댁 김씨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네 곱디고운 선녀 같은 모습은 어디가고 이 몰골이 무엇이냐?” 영월댁 김씨는 남편 사망소식보다 딸의 몰라보게 변한 모습을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 저 괜찮아요! 요즘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요...” 그미는 태연하다. 어머니와 같이 표정을 바꾸면 더욱 놀라실까 의연하게 행동하였다.

그것이 초희의 본래 모습이다. 딸은 어미를 쏙 빼 닮는다. 초희도 강릉김씨를 닮은꼴이다. 딸이 어머니를 보면 자신이 늙은 모습이고 어미가 딸을 보면 자기의 젊은 때 모습이다. 초희네 모녀가 지금 그러하다.

모녀는 서로 입만 보고 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하나 궁리하는 표정이다. 모녀는 굳게 닫힌 입을 끝내 열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만 두 볼로 흘려보내고 있다. 그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마른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체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17> 허난설헌(許蘭雪軒) <제4話>
아이콘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관한 사항 (필수)
  - 개인정보 이용 목적 : 콘텐츠 발송
- 개인정보 수집 항목 : 받는분 이메일, 보내는 분 이름, 이메일 정보
-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 기간 : 이메일 발송 후 1일내 파기
받는 사람 이메일
* 받는 사람이 여러사람일 경우 Enter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최대 5명까지 가능)
보낼 메세지
(선택사항)
보내는 사람 이름
보내는 사람 이메일
@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약업신문 타이틀 이미지
[]<17> 허난설헌(許蘭雪軒) <제4話>
이 정보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
스크랩한 정보는 마이페이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Copyright © Yakup.com All rights reserved.
약업신문 의 모든 컨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