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도 이어진 말라리아 전쟁
연간 2억 명이 감염되고 60만 명이 사망하는 말라리아는 전장에서 특히 문제였다. 새로운 지역에서 싸우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모기가 날아들어와 피를 뽑고 그 자리에 말라리아 원충을 심어두곤 했다. 말라리아를 정복하는 자가 전쟁을 승리한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10년 넘게 남측의 자본주의권과 북측의 공산주의권이 나눠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그들을 공통적으로 괴롭히던 존재는 말라리아였다. 한 문헌에 따르면 전투로 죽는 사람보다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이 네다섯 배는 더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말라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물질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당시에도 말라리아 치료제는 있었다. 퀴닌처럼 신코나 나무에서 나오는 원조 말라리아 치료제는 이미 내성이 생길만큼 생겨 효과가 없었다. 이후 개발한 아타브린이나 클로로퀸과 같은 합성 퀴닌 유도체들이 그나마 희망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국지적으로 약물 사용기간이 길어질수록 모기들도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신규 말라리아 치료제가 필요한 이 상황에서 남측의 자본주의 진영은 미국이 앞장서서 관련 연구를 주도해 나갔다. 당시 직접적으로 참전해서 전투를 선도하는 나라였고 어떻게든 빨리 전쟁을 끝내서 국내 반전 여론을 돌려야 하는 미국의 입장을 감안하면 당연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북측의 공산주의 진영은 어떻게 했을까? 북베트남 자체적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할 역량은 부족했다. 소련은 전쟁과 거리를 둔 상태였다. 따라서 북베트남은 자신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관련 기술력과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이었다.
사실 중국이라고 해도 그다지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던 시절이 1960년대였다. 문화대혁명을 통해 관련 기술을 사장시키고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에도 말라리아는 골칫거리였다. 1964년 중국의 말라리아 환자가 대략 4천만 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말라리아는 전지구적인 문제였다.
중국 과학자들이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해 시도한 방법은 문화대혁명과 일맥상통하는 방법이었다. 자국의 문헌을 뒤져서 효과 있는 약초를 찾고 그중에서 활성 있는 물질을 분리해 약으로 개발하는 전략이다. 정치적으로도 별 무리 없는 접근법이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지금도 많은 의약품을 이런 방식으로 개발한다.
많은 중국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던 와중에 투유유라는 연구원이 주목했던 약초는 개똥쑥이었다. 3세기 무렵 갈홍이 집필한 <주후비급방>이란 문헌에 따르면 개똥쑥을 우러낸 물이 말라리아 증상에 좋은 치료 효과를 보였다. 그렇다면 개똥쑥에서는 관련 효과를 보이는 물질이 있음이 분명하다.
다양한 물질이 뒤섞인 생약 추출물에서 효과 있는 주성분을 찾아내는 작업은 대부분 비슷하다. 물리적으로 잘게 부수고, 화학적으로 추출하고, 생물학적으로 활성을 보는 과정이다. 화학적으로 추출할 때는 주성분이 어느 유기용매에 녹을지 알 수 없으므로 다양한 유기용매를 순차적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나온 유기용매 추출물 중 효과가 있는 유기용매 추출물을 우선적으로 추가 분리하곤 한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접근법이다.
그런데 투유유는 이런 작업을 190번이나 반복해도 성공하지 못 했다. 물론 190번을 하는 와중에 여러 번의 변화를 줬을 것이다. 유기용매를 바꾼다거나 추출 온도를 높인다거나 다른 지역의 개똥쑥을 사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갈홍이 언급한 효과를 보지는 못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191번째 실험에서 투유유가 시도했던 변화는 추출 용매의 온도를 낮추는 작업이었다. 보통 생약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온도를 높이려 한다. 그래야 잘 녹을 것이고 따라서 분리도 쉬울 테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갈홍은 개똥쑥을 찬물로 우러내곤 했었다. 그렇다면 추출물의 온도가 중요한 것일까? 투유유는 찬물로 우리고 추출 용매도 낮은 온도에서 보관한 후 작업하면서 드디어 원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아르테미시닌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다.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내고 나니 분리가 어려웠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구조가 불안정해 고온에서 다른 구조로 변화됐던 것이다. 그 불안정한 구조 덕분에 말라리아 원충을 죽일 수 있음도 밝혀낼 수 있었다. 투유유는 이러한 혁신을 통해 정체기에 빠져 있던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었고, 이후 2015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노력과 기여에 경의를 표한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베트남에서도 이어진 말라리아 전쟁
연간 2억 명이 감염되고 60만 명이 사망하는 말라리아는 전장에서 특히 문제였다. 새로운 지역에서 싸우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모기가 날아들어와 피를 뽑고 그 자리에 말라리아 원충을 심어두곤 했다. 말라리아를 정복하는 자가 전쟁을 승리한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었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10년 넘게 남측의 자본주의권과 북측의 공산주의권이 나눠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그들을 공통적으로 괴롭히던 존재는 말라리아였다. 한 문헌에 따르면 전투로 죽는 사람보다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이 네다섯 배는 더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말라리아를 치료하기 위한 물질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당시에도 말라리아 치료제는 있었다. 퀴닌처럼 신코나 나무에서 나오는 원조 말라리아 치료제는 이미 내성이 생길만큼 생겨 효과가 없었다. 이후 개발한 아타브린이나 클로로퀸과 같은 합성 퀴닌 유도체들이 그나마 희망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국지적으로 약물 사용기간이 길어질수록 모기들도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었다.
신규 말라리아 치료제가 필요한 이 상황에서 남측의 자본주의 진영은 미국이 앞장서서 관련 연구를 주도해 나갔다. 당시 직접적으로 참전해서 전투를 선도하는 나라였고 어떻게든 빨리 전쟁을 끝내서 국내 반전 여론을 돌려야 하는 미국의 입장을 감안하면 당연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북측의 공산주의 진영은 어떻게 했을까? 북베트남 자체적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할 역량은 부족했다. 소련은 전쟁과 거리를 둔 상태였다. 따라서 북베트남은 자신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관련 기술력과 잠재력이 풍부한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이었다.
사실 중국이라고 해도 그다지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던 시절이 1960년대였다. 문화대혁명을 통해 관련 기술을 사장시키고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에도 말라리아는 골칫거리였다. 1964년 중국의 말라리아 환자가 대략 4천만 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말라리아는 전지구적인 문제였다.
중국 과학자들이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해 시도한 방법은 문화대혁명과 일맥상통하는 방법이었다. 자국의 문헌을 뒤져서 효과 있는 약초를 찾고 그중에서 활성 있는 물질을 분리해 약으로 개발하는 전략이다. 정치적으로도 별 무리 없는 접근법이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지금도 많은 의약품을 이런 방식으로 개발한다.
많은 중국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던 와중에 투유유라는 연구원이 주목했던 약초는 개똥쑥이었다. 3세기 무렵 갈홍이 집필한 <주후비급방>이란 문헌에 따르면 개똥쑥을 우러낸 물이 말라리아 증상에 좋은 치료 효과를 보였다. 그렇다면 개똥쑥에서는 관련 효과를 보이는 물질이 있음이 분명하다.
다양한 물질이 뒤섞인 생약 추출물에서 효과 있는 주성분을 찾아내는 작업은 대부분 비슷하다. 물리적으로 잘게 부수고, 화학적으로 추출하고, 생물학적으로 활성을 보는 과정이다. 화학적으로 추출할 때는 주성분이 어느 유기용매에 녹을지 알 수 없으므로 다양한 유기용매를 순차적으로 사용한다. 그렇게 나온 유기용매 추출물 중 효과가 있는 유기용매 추출물을 우선적으로 추가 분리하곤 한다. 지극히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접근법이다.
그런데 투유유는 이런 작업을 190번이나 반복해도 성공하지 못 했다. 물론 190번을 하는 와중에 여러 번의 변화를 줬을 것이다. 유기용매를 바꾼다거나 추출 온도를 높인다거나 다른 지역의 개똥쑥을 사용하는 식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갈홍이 언급한 효과를 보지는 못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191번째 실험에서 투유유가 시도했던 변화는 추출 용매의 온도를 낮추는 작업이었다. 보통 생약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온도를 높이려 한다. 그래야 잘 녹을 것이고 따라서 분리도 쉬울 테니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갈홍은 개똥쑥을 찬물로 우러내곤 했었다. 그렇다면 추출물의 온도가 중요한 것일까? 투유유는 찬물로 우리고 추출 용매도 낮은 온도에서 보관한 후 작업하면서 드디어 원하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아르테미시닌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다.
아르테미시닌을 찾아내고 나니 분리가 어려웠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구조가 불안정해 고온에서 다른 구조로 변화됐던 것이다. 그 불안정한 구조 덕분에 말라리아 원충을 죽일 수 있음도 밝혀낼 수 있었다. 투유유는 이러한 혁신을 통해 정체기에 빠져 있던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한 차원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었고, 이후 2015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노력과 기여에 경의를 표한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