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가스와 항암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4월 22일 벨기에의 이프르 지역에서 수상한 연기가 솟아올랐다. 독일군이 염소(chlorine) 가스의 실린더를 열어버린 것이다. 그전부터 화학무기를 발사하는 것에 대해 국제적으로 규제가 가해지고 있었지만 독일군은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화학무기를 ‘발사’하지는 않고 공기 중에 풀어놓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동풍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후 바람을 타고 조조군을 물리친 제갈량의 화(火)공처럼, 독일군의 화(化)공은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서쪽의 연합군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화학무기가 더욱 강력해진 것은 그로부터 2년 뒤 유황겨자가스(sulfur mustard)가 나오면서다. 이 물질은 가스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녹는점이 14도 정도인 액체다. 이 무시무시한 액체를 분무하는 방식으로 연합군에게 사용하면, 손쓸 방도도 없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가령, 초기에 사용하던 염소 가스는 방독면을 착용하거나 적절한 중화제를 부직포에 덧대는 방식으로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유황겨자가스는 이런 연합군의 전략을 비웃듯이 호흡기 외에 일반적인 피부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적 없는 세상을 만난 생태계 외래종마냥 우리 몸을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1년 뒤인 1918년, 전쟁의 막바지에서 유황겨자가스는 다시 질소겨자가스(nitrogen mustard)로 변신한다. 여기에는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질소를 잘 다루는 자였던 질소의 왕, 프리츠 하버(Fritz Haber)가 관여한다. 하버는 당시 하버법을 통해 반응성이라고는 1도 없던 공기 중 질소를 반응시켜서 암모니아로 전환하는 방법을 개발한 터였다. 이 암모니아는 반응성이 뛰어나 화학비료에도 쓰고 화약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독가스로도 사용한 것이다. 얼마나 질소가 풍부하면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당시로서는 한 차원 앞선 기술이었음이 분명하다.
유황겨자가스에 비해 질소겨자가스가 가지는 차이점은 화학적 다양성이다. 황은 일반적인 화학결합을 두 개까지 하지만, 질소는 세 개까지 가능하다. 따라서 독가스의 구조를 다양하게 할 수 있고 독성도 극대화할 수 있다. 물론 초기에 사용하던 질소겨자가스는 질소가 가지는 추가적인 치환기를 화학적으로 가장 간단한 구조인 메틸(CH3)기로 제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만 가지고도 충분한 살상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은 전쟁에 졌다. 독가스로 뒤엎을 수 있는 전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베르사유 조약 등을 통해 전쟁을 수습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의약품 개발과 관련해서도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드러난다. 겨자가스에 노출된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특별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백혈구의 감소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크롬바르(E. B. Krumbhaar) 대령은 전쟁 당시 겨자가스 피해 군인의 백혈구 수치가 극적으로 줄어들었음을 종전 후인 1919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백혈구가 줄어들면 안 좋은 것 아닌가? 백혈구가 너무 많아도 위험하다. 비정상적으로 백혈구가 늘어나 손쓸 새도 없이 죽는 병을 백혈병이라 부른다. 암이다.
대부분의 암은 조직을 제거해 버리는 게 최선이다. 꼭 원인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라내 버리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는 암도 있다.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이다. 피를 뽑아낼 수는 없으므로 수술이 불가능하다. 초기부터 학자들이 수많은 암 중에도 백혈병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했던 이유다. 또 백혈병 치료제는 효과를 관찰하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절개를 통해 암조직을 관찰하는 번거로운 작업 없이 그저 채혈해서 백혈구 수치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치료제가 잘 작용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백혈구 수치를 줄이는 물질 자체가 별로 없었다. 고작 찾아낸 물질이 벤젠이다. 지금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이지만 당시의 의학 수준은 이런 물질에라도 기대야 할 정도의 처참한 수준이었다. 벤젠이 싫다면?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백혈구 수치를 줄이는 방법도 진지하게 연구되었다. 참고로 말라리아 감염으로 매독을 치료한 사람은 노벨상도 받았다. 말라리아 원충이 무섭다면? 수혈도 가능했다. 단, 일란성 쌍둥이만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방사선 치료도 있긴 했지만, 역시 지금처럼 최첨단 장비가 아님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여러모로 답이 없던 시절에 독가스가 백혈구 수치를 낮춘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의약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후속 단계로 이어지기에 겨자가스는 어쨌든 독가스였다. 피해자들이 버젓이 눈뜨고 지켜보던 바로 그 물질, 독가스의 대명사가 겨자가스였다.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론을 반전시킬 거대한 한 방이 필요했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독가스와 항암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4월 22일 벨기에의 이프르 지역에서 수상한 연기가 솟아올랐다. 독일군이 염소(chlorine) 가스의 실린더를 열어버린 것이다. 그전부터 화학무기를 발사하는 것에 대해 국제적으로 규제가 가해지고 있었지만 독일군은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화학무기를 ‘발사’하지는 않고 공기 중에 풀어놓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동풍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후 바람을 타고 조조군을 물리친 제갈량의 화(火)공처럼, 독일군의 화(化)공은 참호 속에 웅크리고 있던 서쪽의 연합군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화학무기가 더욱 강력해진 것은 그로부터 2년 뒤 유황겨자가스(sulfur mustard)가 나오면서다. 이 물질은 가스라는 말과 어울리지 않게 녹는점이 14도 정도인 액체다. 이 무시무시한 액체를 분무하는 방식으로 연합군에게 사용하면, 손쓸 방도도 없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가령, 초기에 사용하던 염소 가스는 방독면을 착용하거나 적절한 중화제를 부직포에 덧대는 방식으로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유황겨자가스는 이런 연합군의 전략을 비웃듯이 호흡기 외에 일반적인 피부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천적 없는 세상을 만난 생태계 외래종마냥 우리 몸을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1년 뒤인 1918년, 전쟁의 막바지에서 유황겨자가스는 다시 질소겨자가스(nitrogen mustard)로 변신한다. 여기에는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질소를 잘 다루는 자였던 질소의 왕, 프리츠 하버(Fritz Haber)가 관여한다. 하버는 당시 하버법을 통해 반응성이라고는 1도 없던 공기 중 질소를 반응시켜서 암모니아로 전환하는 방법을 개발한 터였다. 이 암모니아는 반응성이 뛰어나 화학비료에도 쓰고 화약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독가스로도 사용한 것이다. 얼마나 질소가 풍부하면 이렇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어쨌든 당시로서는 한 차원 앞선 기술이었음이 분명하다.
유황겨자가스에 비해 질소겨자가스가 가지는 차이점은 화학적 다양성이다. 황은 일반적인 화학결합을 두 개까지 하지만, 질소는 세 개까지 가능하다. 따라서 독가스의 구조를 다양하게 할 수 있고 독성도 극대화할 수 있다. 물론 초기에 사용하던 질소겨자가스는 질소가 가지는 추가적인 치환기를 화학적으로 가장 간단한 구조인 메틸(CH3)기로 제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만 가지고도 충분한 살상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은 전쟁에 졌다. 독가스로 뒤엎을 수 있는 전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베르사유 조약 등을 통해 전쟁을 수습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의약품 개발과 관련해서도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이 드러난다. 겨자가스에 노출된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특별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바로 백혈구의 감소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군의관으로 참전했던 크롬바르(E. B. Krumbhaar) 대령은 전쟁 당시 겨자가스 피해 군인의 백혈구 수치가 극적으로 줄어들었음을 종전 후인 1919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백혈구가 줄어들면 안 좋은 것 아닌가? 백혈구가 너무 많아도 위험하다. 비정상적으로 백혈구가 늘어나 손쓸 새도 없이 죽는 병을 백혈병이라 부른다. 암이다.
대부분의 암은 조직을 제거해 버리는 게 최선이다. 꼭 원인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잘라내 버리면 되겠지만 그럴 수 없는 암도 있다.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이다. 피를 뽑아낼 수는 없으므로 수술이 불가능하다. 초기부터 학자들이 수많은 암 중에도 백혈병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했던 이유다. 또 백혈병 치료제는 효과를 관찰하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절개를 통해 암조직을 관찰하는 번거로운 작업 없이 그저 채혈해서 백혈구 수치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치료제가 잘 작용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백혈구 수치를 줄이는 물질 자체가 별로 없었다. 고작 찾아낸 물질이 벤젠이다. 지금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이지만 당시의 의학 수준은 이런 물질에라도 기대야 할 정도의 처참한 수준이었다. 벤젠이 싫다면? 말라리아를 감염시켜 백혈구 수치를 줄이는 방법도 진지하게 연구되었다. 참고로 말라리아 감염으로 매독을 치료한 사람은 노벨상도 받았다. 말라리아 원충이 무섭다면? 수혈도 가능했다. 단, 일란성 쌍둥이만 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방사선 치료도 있긴 했지만, 역시 지금처럼 최첨단 장비가 아님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여러모로 답이 없던 시절에 독가스가 백혈구 수치를 낮춘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있는 결과였다. 하지만 의약품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후속 단계로 이어지기에 겨자가스는 어쨌든 독가스였다. 피해자들이 버젓이 눈뜨고 지켜보던 바로 그 물질, 독가스의 대명사가 겨자가스였다.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론을 반전시킬 거대한 한 방이 필요했다.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