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브린을 둘러싼 신경전
제2차 세계대전은 지구상 대부분의 영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하늘에선 폭격기와 전투기가, 땅에선 탱크와 보병이, 바다에선 군함이, 그 밑에선 잠수함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열대우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직 순수하게 전략적 목표만을 위해 몰려드는 군인들에게 그 지역의 기후는 춥건 덥건 별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고 기승을 부린 존재도 있다. 말라리아다.
말라리아는 온대지방에서도 유행하긴 하지만 그래도 더 빈발하는 지역은 열대나 아열대지역이다. 덥고 습한 이 지역에서 모기는 말라리아 유충을 품고 잘 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늘어난 군인들의 피를 빨며 물리적인 반대급부로 말라리아 유충을 선사했다. 총, 칼, 화약을 대비하던 군인들이 예상치 못한 자연의 습격에 당황한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군인들도 대처법을 찾았다. 말라리아는 고대 로마 시절부터 알려진 질병이었고 이에 대한 치료법도 경험적으로 나와 있었다. 대표적인 방법이 신코나(키나) 나무껍질 추출액이었다. 근대 화학이 발전하면서는 이 추출액에서 실제 약효를 띄는 성분을 분리해서 퀴닌이라는 이름으로 복용하고 있었다. 쓰디쓴 물질이었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다. 사람들은 퀴닌을 술에 타서 먹거나 토닉 워터와 함께 복용하곤 했다.
문제는 퀴닌의 보급이었다. 남미 안데스 산맥 인근에서 생산되던 신코나 나무의 종자를 밀반출해서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재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래도 제2차 세계대전의 폭발적인 수요를 따라가긴 어려웠다. 보다 효과적으로 이 물질을 생산·보급하는 방법은 없을까? 화학자들이 다시 힘을 낼 때였다.
퀴닌은 식물이 생산하는 화합물이었다. 구조는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복잡한 구조 모두가 실제 약효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간단하지만 비슷한 구조를 배열하면서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코나 나무가 아니라 화학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아는가? 꿈은 이루어지는 법이다.
1930년대 독일의 화학자들은 퀴닌의 분자 구조를 기반으로 보다 만들기 쉽고 간단한,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구조적으로 유사한 물질들을 만들어냈다. 지금까지도 개발도상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클로로퀸이나 아타브린이 여기에 해당한다. 드디어 방법이 생겼다. 만들고 싶다고 이렇게 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면 사람의 힘도 대단하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런 물질들은 연합국과 추축국을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게 된다. 특허 문제는 없었을까? 전쟁 중인 상황이었다. 특허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울 이유가 많았다.
독일에서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다. 자신들이 애써 만들어놓은 물질을 그냥 쓰는 것이 싫었던 독일의 과학자들은 어느덧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아타브린을 복용하면 불임이 된다는 식의 소문이었다. 순진한 미국의 병사들은 이 헛소문에 낚여서 열대지역에서도 아타브린의 복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이어졌고, 이는 다시 해당 부대의 말라리아 창궐 및 전투력 급감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이런 흑색선전을 차단하기 위해 미군 부대는 다시 군인들을 교육시켜야만 했다.
말라리아의 폐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연간 2억 회 이상 감염이 일어나고 6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질병이 말라리아다. 빌 게이츠 등의 자산가나 거액을 후원하고 각국 정부가 연구비를 편성해 지구상에서 말라리아를 박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모기는 인류의 천적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질환이다. 매년 300~400명 가량 감염되곤 했는데 해외 유입이 아니라 순수하게 국내에서 감염된다는 사실이 무섭다. 그리고 코로나 엔데믹을 맞은 2023년 국내 말라리아 환자가 무려 700명을 넘었다는 사실은 더 무섭다. 그래도 마냥 희망은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1만5천 건을 상회했다. 공중보건이 개선되고 약물을 개발하며 어느 정도는 통제 가능한 수준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해도 된다. 이런 약물 개발의 이면에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
아타브린을 둘러싼 신경전
제2차 세계대전은 지구상 대부분의 영역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하늘에선 폭격기와 전투기가, 땅에선 탱크와 보병이, 바다에선 군함이, 그 밑에선 잠수함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열대우림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직 순수하게 전략적 목표만을 위해 몰려드는 군인들에게 그 지역의 기후는 춥건 덥건 별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고 기승을 부린 존재도 있다. 말라리아다.
말라리아는 온대지방에서도 유행하긴 하지만 그래도 더 빈발하는 지역은 열대나 아열대지역이다. 덥고 습한 이 지역에서 모기는 말라리아 유충을 품고 잘 살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늘어난 군인들의 피를 빨며 물리적인 반대급부로 말라리아 유충을 선사했다. 총, 칼, 화약을 대비하던 군인들이 예상치 못한 자연의 습격에 당황한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군인들도 대처법을 찾았다. 말라리아는 고대 로마 시절부터 알려진 질병이었고 이에 대한 치료법도 경험적으로 나와 있었다. 대표적인 방법이 신코나(키나) 나무껍질 추출액이었다. 근대 화학이 발전하면서는 이 추출액에서 실제 약효를 띄는 성분을 분리해서 퀴닌이라는 이름으로 복용하고 있었다. 쓰디쓴 물질이었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다. 사람들은 퀴닌을 술에 타서 먹거나 토닉 워터와 함께 복용하곤 했다.
문제는 퀴닌의 보급이었다. 남미 안데스 산맥 인근에서 생산되던 신코나 나무의 종자를 밀반출해서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재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래도 제2차 세계대전의 폭발적인 수요를 따라가긴 어려웠다. 보다 효과적으로 이 물질을 생산·보급하는 방법은 없을까? 화학자들이 다시 힘을 낼 때였다.
퀴닌은 식물이 생산하는 화합물이었다. 구조는 복잡하기 짝이 없지만 복잡한 구조 모두가 실제 약효와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간단하지만 비슷한 구조를 배열하면서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코나 나무가 아니라 화학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아는가? 꿈은 이루어지는 법이다.
1930년대 독일의 화학자들은 퀴닌의 분자 구조를 기반으로 보다 만들기 쉽고 간단한,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구조적으로 유사한 물질들을 만들어냈다. 지금까지도 개발도상국에서 널리 사용하는 클로로퀸이나 아타브린이 여기에 해당한다. 드디어 방법이 생겼다. 만들고 싶다고 이렇게 뚝딱 만들어내는 걸 보면 사람의 힘도 대단하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런 물질들은 연합국과 추축국을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게 된다. 특허 문제는 없었을까? 전쟁 중인 상황이었다. 특허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울 이유가 많았다.
독일에서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다. 자신들이 애써 만들어놓은 물질을 그냥 쓰는 것이 싫었던 독일의 과학자들은 어느덧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아타브린을 복용하면 불임이 된다는 식의 소문이었다. 순진한 미국의 병사들은 이 헛소문에 낚여서 열대지역에서도 아타브린의 복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이어졌고, 이는 다시 해당 부대의 말라리아 창궐 및 전투력 급감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이런 흑색선전을 차단하기 위해 미군 부대는 다시 군인들을 교육시켜야만 했다.
말라리아의 폐해는 현재 진행형이다. 연간 2억 회 이상 감염이 일어나고 60만명 이상이 사망하는 질병이 말라리아다. 빌 게이츠 등의 자산가나 거액을 후원하고 각국 정부가 연구비를 편성해 지구상에서 말라리아를 박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모기는 인류의 천적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질환이다. 매년 300~400명 가량 감염되곤 했는데 해외 유입이 아니라 순수하게 국내에서 감염된다는 사실이 무섭다. 그리고 코로나 엔데믹을 맞은 2023년 국내 말라리아 환자가 무려 700명을 넘었다는 사실은 더 무섭다. 그래도 마냥 희망은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말라리아 발병 건수는 1만5천 건을 상회했다. 공중보건이 개선되고 약물을 개발하며 어느 정도는 통제 가능한 수준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해도 된다. 이런 약물 개발의 이면에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필자소개>
백승만 교수는 서울대학교 제약학과 졸업후 동 대학원에서 생리활성 천연물의 화학적 합성에 관한 연구로 약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경상국립대학교 약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의약화학을 강의·연구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약의 역사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분자 조각자들’ 등이 있다.